통합대장경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16권
불본행집경 제16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20.야수다라몽품 ②
그때 국사(國師)에게 우타이(優陀夷)수나라 말로는 총변(聰辯)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총명하고 지혜로워 모든 의론(論)과 변재에 능하였다. 정반왕은 사람을 보내 우타이를 불러놓고 일렀다.
“우타이야, 너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니 이제 실달(悉達)태자에게 가서 모시되 방편의 힘을 써서 우리 태자가 마음 편히 궁중을 애락케 하고 애욕에 염증을 느껴 출가하지 않도록 하여라.”
그리고 일체 석가족 권속들을 불러모으고 말하였다.
“그대들아, 실달태자가 집에 머물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대들은 이제 나를 도와 어떤 방편을 써서라도 그가 떠나지 않게 하라.”
모든 석가족들은 대왕에게 아뢰었다.
“우리들이 다 같이 태자를 보호하고 지킨다면 그가 무슨 수로 굳이 출가 하겠습니까?”그때 정반왕과 석가족들은 가비라성 동(東)문 밖에 5백의 용맹스러운 젊은이를 두었다. 그들은 용병술과 활쏘기에 능하고 많은 방편을 부리며 대적할 자 없는 장사처럼 힘이 센 자들이었다. 하나하나의 젊은이마다 5백의 수레가 스스로 에워싸고, 하나하나의 수레 곁에 또 5백의 힘센 장부가 각각 에워쌌다. 이런 차례로 남ㆍ서ㆍ북문도 마찬가지로 위에서 말한 대로 5백 명이 방어하였다.
또 석가족 원로 대신들도 다 각각 십자(十字) 네 거리에서 서로 교대하여 실달 태자를 수호했다.
그리고 정반왕은 따로 가장 건장한 석가족 5백 명을 시관(侍官)으로 두었다. 그들 모두 몸에 갑옷을 입고 코끼리도 타고 말도 타고 정반왕궁의 사면을 에워싸서 각각 궁문 안팎서 밤새도록 지키게 했다.이때 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提) 교담미(憍曇彌) 왕비가 궁중의 모든 채녀들을 모아놓고 일렀다.
“너희들은 잘 알아 두라. 지금부터는 낮이나 밤이나 잠자지 말라. 여러 밝은 보배 구슬을 높은 깃대 위에 놓고 밤을 밝히며 또 곳곳에 따로 소유(蘇油)의 향등과 납촉에 항상 불을 켜서 꺼지지 않도록 하라. 모든 문을 자물쇠로 잘 단속하여 굳게 닫아 함부로 아무나 열지 못하게 하라. 영락으로 몸을 장엄하고 각각 손을 잡아 쇠사슬 처럼 서로 이어서 태자를 에워싸고 함부로 다니지 말게 하라.
활과 칼을 쥐거나 깍지와 방망이를 들거나 혹은 창을 든 채 앉거나 서거나 그것들을 잡거나 갖다대면서 갖가지 병기로 밤낮없이 주의하여 태자의 행동에 모르는 일이 없게 하라. 그가 만약 출가하면 우리 궁중은 텅 비어서 즐거울 것이 없으리라.”그때 국사의 아들 우타이는 태자를 시위하고자 동궁 안에 들어 갔다. 태자를 보니 궁전 가운데에서 생각에 잠겨 앉아 있고 궁내의 채녀들도 다 묵연히 말이 없었다. 이런 것을 보고 그 모든 여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모든 담론과 이야기와 농담으로 남의 뜻을 잘 맞춰줄 줄 안다. 슬픈 일을 기쁨으로 변화시키고 세상에 비할 데 없이 예쁘다. 각각 이러한 재능이 있는데 오늘은 어째서 가만히 있느냐. 잊어버렸느냐?
이러한 재주로 응당 저 북울단월 국토의 장엄같이 할 수 있을 것이며, 북방 비사문천의 호세(護世)대왕의 후비(后妃)라도 될 만한데 하물며 인간의 궁전을 감당하지 못하느냐. 너희들 채녀는 어찌 이 태자에게 욕락을 여의게 하려느냐. 너희들과 같은 이는 진정한 성인에게도 5욕을 행하게 하겠거든 하물며 오늘날 이 석가 태자로 하여금 세간에 빠지게 하지 못하느냐?
너희들은 말을 예쁘게 해서 성난 사람도 기쁘게 하고 교묘히 그의 마음을 빼앗을 것이며, 여자의 몸에 지닌 방편과 매혹하는 기술로, 가령 여자에게라도 욕락을 행하게 하겠거든 하물며 남자를 빠지게 하지 못하겠는가? 너희들과 세간 사람이 함께 한 곳에 있으면서 욕락을 행하지 않는 경우는 결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너희 모든 채녀들아
큰 방편의 힘이 있어서
교묘히 남을 현혹케 하며
너희들 경계를 잘 보이리니.
비록 애욕을 여읜
진정한 모든 선인들이라도
너희들을 보게 되면
반드시 욕심을 내겠거든.
하물며 이 태자는
너희들 오락(娛樂)을 보고도
5욕을 행하지 않는다니
그럴 이치가 어디 있느냐.
“이렇게 너희들은 자기 경계에서 교묘히 방편을 쓴다. 내가 보기에 너희에게 이러한 방편이 구족한데도 왕태자가 너희들에게 애욕의 마음이 물들게 하지 못함을 나는 매우 못마땅히 생각하노라. 너희들은 다시 제각기 더욱 마음을 써서 공교로운 방편을 내어 실달 태자가 너희들에게 특별히 욕심을 내도록 하고 싫어서 떠날 생각을 내지 않게 하라.
너희들 채녀는 듣지 못했느냐. 옛날 가시국(迦尸國)에 제바야나(提波耶那)수나라 말로는 연상생(埏上生)이라 함라는 선인이 하나 있었는데 손타리(孫陀梨)라는 음녀에게 홀렸다. 그 선인은 하늘과 다름이 없었고 모든 하늘도 어찌하지 못했으나 손타리 음녀의 꼬임에 끌린 까닭에 그를 따라 걸어서 성안으로 들어 왔다. 또 옛날 독각(獨角) 선인의 아들이라 부르는 선인이 있었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아직 음행이 없었으나, 그때 상다(商多)수나라 말로는 적정(寂定)이라 함라는 음녀에게 홀려 드디어 선(禪)과 5신통을 잃었다.
또 옛날에 비상밀다(毘商蜜多)수나라 말로는 화지(化支)라는 선인이 있었는데 오래도록 고행을 하여 10년이 지나도록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미가나(彌迦那)수나라 말로는 일자(一者)라고 함라는 아주 예쁜 음녀가 있었는데 그 선인도 그녀에게 매혹을 당했다.
이런 모든 큰 신선들도 저 음탕한 여자들에게 홀려 얽매여 세상 욕락을 배우고 행했는데, 하물며 오늘 실달다 태자는 한창 젊은 나이로 몸도 부드럽고 대왕의 아들로서 모든 일을 잘 알고 있으니, 너희들은 지극한 마음으로 섬기고 받들어서 너희들에게 애착심을 내게 하여 왕의 혈통을 끊지 않도록 하라.”그 채녀들은 국사의 아들 우타이에게 이 말을 듣고 나서 태자에게로 나아갔다. 그리고 갖가지 추파와 교태를 부려 가장 강렬하고 묘한 욕심이 나도록 했다. 어떤 채녀는 춤을 추어 보이고 어떤 채녀는 미묘한 소리로 노래하고 찬송하며 혹은 음악을 하며 혹은 웃음과 기이한 얼굴을 내며 혹은 갖가지 말과 글귀를 지으며 혹은 태자 앞에서 빙빙도는 교묘한 걸음을 나타내며 혹은 온갖 기이하고 미묘한 좋은 꽃을 태자에게 바치며 혹은 백 가지로 화합한 갖가지 향을 만들어 태자의 몸에 바르며 혹은 손가락을 입 안에 대어 온갖 새소리를 내며 또 이런 말을 아뢰었다.
“성종(聖種) 왕자여, 저희들이 갖가지 세속의 욕정으로 지어서 희롱하는 말을 들으소서.”
그러나 태자는 궁중에서 이런 여러 가지 음욕으로 희롱하는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을 했다.
‘세간에 살면 생ㆍ노ㆍ병ㆍ사의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미 그러하거든, 그들은 괴로움을 버리고 떠나서 돌아가 의지할 곳을 찾을 줄 모르는구나. 나는 이제 어떻게 교묘한 방편을 지어서 이런 세간의 모든 괴로움인 생ㆍ노ㆍ병ㆍ사를 버릴 것인가.’
여전히 모든 채녀들은 여러 가지로 노래와 춤과 음성을 나타내고 혹은 갖가지 온갖 욕락의 일을 지었으나 실달 태자는 그것을 보아도 희한하다거나 애착하는 마음이 나지 않았다.
그때 궁녀들 가운데 한 채녀가 자수로 말리(末利) 꽃다발을 가지고 앞에 나와 태자의 목에 걸었다. 그러자 태자는 뚫어지게 보면서도 눈을 깜짝이지 않고 그 여자를 보며 곧 도로 말리 꽃다발을 풀어서 손수 창문 밖에 내던져 버렸다.그러자 국사의 아들 우타이는, 태자가 단정히 앉아 골똘히 생각하며 세간의 함이 있는 경계에 집착하지 않고 또 묘한 빛과 소리와 향기에 물들지 않음을 보았다. 이것을 보고 난 우타이는 총명하고 지혜로워 갖가지 특수한 방편과 훌륭한 논변을 알고 있었으므로 태자에게 간하였다.
“대성 태자여, 저는 대왕의 명령으로 여기 와서 태자님과 벗하고 즐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제 말씀드리겠으니 태자님은 들으소서. 저는 태자님이 세상일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기에 게송을 읊겠습니다.”
벗이 무엇임을 내 간략히 말하리다.
악은 간하고 선한 일을 권하며
온갖 액난에서 서로 구제하나니
이것을 참된 벗이라 이름하나이다.
그리고 우타이는 이 게송을 읊고 나서 또 이런 말을 하였다.
“대성 태자여, 나는 이제 태자의 벗입니다. 좋고 나쁜 모든 일을 함께 의논할 것입니다. 다름을 보고도 말이 없이 나를 버리고자 함은 벗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태자께 말씀하겠습니다. 벗의 마음으로 원하오니 부디 받아들이소서. 태자는 이제 한창 나이로 젊습니다. 내가 이제 태자의 마음을 보니 좋은 일을 하지 못하고 모든 채녀들을 버리고 곁에 가기도 싫어하니 그들에게 무슨 미운 구석이 있습니까? 무릇 마음의 얽힘은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애착의 정은 욕구로서 근본을 삼으며 부녀의 몸은 오직 장부가 존경하고 소중히 여김으로 기쁨을 삼나이다.
만약 태자의 마음이 결코 5욕의 일에 애착하지 않고 세간의 부귀영화를 환란이라 한다면 다만 아름다운 말과 좋은 말로 궁인들을 위유(慰喩)하여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소서.”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부인의 공경이 즐겁고
공경하는 것이 제일 큰 낙이네.
공경없이 오직 색만 있는 부인은
꽃 없는 나무와 다름 없네.
그때 태자는 국사의 아들 우타이에게 이런 말을 듣고 갖가지 훌륭한 말과 불쌍히 여기는 소리를 냈는데, 마치 겹겹 구름 속에서 울려나오는 우레같이 미묘하였으며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부드러운 소리였다. 그런 소리로 우타이에게 대답했다.
“그대 우타이여, 나도 그대가 나의 어진 벗이요 나의 착한 벗이 되어 좋은 마음으로 일러 주고 내 뜻을 깨우치도록 간하는 것을 안다. 나를 향한 그대 마음이 친밀하고 두터운 줄 알겠으니 내 이제 그대의 마음을 어기거나 거스르지 않겠다. 그대는 나에게 이런 허물이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이제 그대를 따르겠다.
그러나 내가 이 세간의 5욕락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일을 관찰하여 분명히 알았노라. 나는 이 세간이 무상하여 파괴됨을 알았노라. 이런 까닭에 이곳이 두려워 마음과 뜻이 즐겁지 않노라.”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세상 영화 즐거우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네.
이 네 가지가 없다면
어찌 내 마음인들 기쁘지 않으랴.
이때 태자는 이 게송을 읊고 나서 다시 우타이에게 말했다.
“그대 우타이여, 여기 있는 모든 채녀들을 보아라. 이미 늙어서 젊은 빛을 빼앗겼으면 서로 보아도 마음에 즐겁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여기서 사랑하고 즐길 마음이 날 것인가?”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는 법
이 네 가지 법에 머물러
즐거운 마음이 난다면
새나 짐승과 다름 없으리.
이렇게 태자가 국사의 아들 우타이와 말을 주고 받을 때 드디어 해가 넘어갔다. 태자는 해가 이미 진 것을 보고 곧 궁중에 들어가서 모든 채녀들과 함께 5욕을 행하고 쾌락과 환희에 젖어 서로 모여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태자의 비(妃) 야수다라(耶輸陀羅)는 그날 밤 문득 임신한 줄을 알았다.
그날 밤에 태자의 이모 교담(憍曇) 성씨의 마하파사파제도 잠을 자다가 흰 소 한 마리가 성안에서 큰소리로 울면서 조용히 걸어가는데 한 사람도 그 앞을 가로막는 이가 없는 꿈을 꾸었다.
그날 밤에 정반대왕도 꿈을 꾸었다.
성안 복판에 제석천왕의 깃대가 우뚝 섰는데 여러 가지 온갖 보배로 장엄했으며 또 갖가지 영락을 가지고 꾸미고 장엄해서 마치 수미산이 땅에서 솟아 허공 가운데 있는 것과 같았다.
그 제석천왕의 깃대 가운데서는 또 큰 광명이 나와서 사방을 두루 비췄으며 또 사방에서 큰 구름이 일어나 그 제석천왕의 깃대 위에 모여 큰비를 내렸는데 큰 빗줄기가 쏟아져 그 깃대를 씻었다. 또 공중에서 갖가지 한량없는 묘한 꽃을 비 내리고 그 깃대 둘레에는 또 한량없는 갖가지 미묘한 음악이 있어 치지 않아도 저절로 울렸다. 또 다시 곱고 흰 일산이 하나 있었는데 온갖 보배로 대[竿]를 만들고 황금으로 살을 만들어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저절로 그 깃대 위의 사방을 덮었다. 또 사대천왕과 모든 권속들이 성 가운데 로 와서 문을 열고 그 제석천왕의 깃대를 가지고 나갔다.또 그날 밤에 야수다라 태자비가 아무 것도 모른 채 피곤하게 잠을 자다가 스무 가지 무서운 꿈을 꾸고는 마음과 몸이 떨리고 공포와 불안에 싸여 놀라서 문득 잠을 깼다.
그때 태자가 야수다라에게 물었다.
“그대 야수다라여, 어째서 이렇게 놀라 떨며 숨이 가쁘고 마음이 불안해서 일어나는가? 그대 야수다라여, 지금 시다림에 있는 것도 아니며 시체에 둘려 싸인 것도 아니며 산에 있는 것도 아니며 빈 들판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 이 성 안에는 한량없는 군사들이 왕궁을 지키고 있지 않은가. 이곳은 깊고 견고하여 들짐승의 두려움도 없고 도적이 침범할 걱정도 없이 안락하고 두려움이 없는데, 내가 지금 보니 그대 야수다라는 마음이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며 걱정과 근심이 있고 마음이 의심스러워 문득 깨어나니 무슨 일로 그러는가?”그러자 태자비 야수다라는 눈물을 비 오듯 흘리고 공포로 슬피 흐느끼며 태자에게 대답했다.
“대성 태자여, 내가 간밤에 스무 가지 변괴의 꿈을 꾸었사오니 부디 자세히 들으소서 내가 말하겠나이다.성자여, 나는 꿈에 온 대지가 두루 진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성자여, 다음은 꿈에 제석천왕의 깃대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성자여, 다음 꿈에 허공의 해와 달과 모든 별들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으며, 성자여, 다음 꿈에 가장 크고 깨끗한 일산이 하나 있으니 이것은 그전부터 나에게 그늘을 지어 나를 수호하고 나를 연민히 여기던 것인데 저 종이 낳은 차닉(車匿)이 건장한 힘으로 나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성자여, 다음 꿈에는 모든 보배로 장엄한 내 머리털을 칼로 끊는 것을 보았습니다.성자여, 다음 꿈에는 내 몸에 있던 영락이 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성자여, 다음 꿈에는 내 몸이 아름답고 단정한데 문득 추하고 더러워짐을 보았습니다.성자여, 다음에는 내 몸에서 손발이 저절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성자여, 다음에는 내 몸이 문득 벌거숭이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성자여, 다음에는 내가 그전부터 항상 앉던 상(床), 내가 앉아 태자님을 섬기던 그 상이 문득 저절로 땅에 떨어지는 꿈을 꾸었습니다.성자여, 또 다음에는 내가 항상 태자님과 함께 누워 자며 쾌락을 누리던 침대의 네 다리가 부러지는 꿈을 꾸었습니다.성자여, 다음에는 많은 보배로 이루어진 큰 산의 가늘고 날카로운 네 모서리와 한량없이 높은 봉우리가 불에 타서 무너져 땅에 떨어지는 꿈을 꾸었습니다.성자여, 다음에는 정반대왕 궁전 안에 미묘한 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바람이 불어 거꾸러지는 꿈을 꾸었습니다.성자여, 또 다음에는 밝고 둥근 달이 뭇 별에 에워싸여 이 궁중에 있다가 문득 꺼지는 꿈을 꾸었습니다.성자여, 다음에는 밝은 해가 환하게 비추어 천 가지 빛으로 이 궁전을 에워싸고 있다가 문득 꺼지자 세간에 빛이 없어 어두워진 꿈을 꾸었습니다.성자여, 다음에는 이 궁성 안에서 한 개의 큰 횃불이 성 밖을 향해 나가는 꿈을 꾸었습니다.성자여, 다음에는 이 성을 그전부터 수호하던 신(神)이 온 몸에 갖가지 영락으로 장엄하여 아름답고 단정했는데, 그가 문득 슬피 울다가 큰소리로 통곡하면서 문 밖에 서있는 꿈을 꾸었습니다.성자여, 다음에는 가비라성이 문득 빈 들판이 되어 두렵기 밤과 같아서 마음에 즐거워할 곳이 없는 꿈을 꾸었습니다.성자여, 다음에는 가비라성의 모든 못의 물이 다 흐리고 모든 나무의 꽃과 과실과 가지와 잎이 다 떨어져 땅에 흩어지고 하나도 볼 것이 없게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성자여, 다음에는 모든 장사들이 손에 칼과 창을 들고 몸에 갑옷을 입은 채 사방에서 이리저리 뛰어가는 꿈을 꾸었나이다.성자여, 저는 이런 스무 가지 꿈을 꾸고 마음이 크게 두렵고 놀랍고 의심스럽고 편치 않나이다. 이 무슨 징조, 길한지 흉한지, 이것이 어떤 과보인지 또 내 몸의 목숨이 다하려 함인가, 태자님의 사랑과 이별할 것인가? 이런 까닭에 나는 이제 마음이 절구질하듯 겁나서 떨며 어쩔 줄 모르다가 잠에서 문득 놀라 깨었습니다.”그때 태자는 이 말을 듣고 나서 스스로 생각했다.
‘나는 이제 오래지 않아 세상을 버리고 출가하리라. 그런 까닭에 지금 야수다라가 이렇게 무서운 꿈을 꾼 것이다.’
그리고 태자는 야수다라에게 대답했다.
“야수다라여, 그대가 비록 천 개의 제석천 깃대가 무너져 땅에 자빠지는 것을 보았으나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으며, 설사 또 천 개의 해와 달과 모든 별들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해도 그대가 괴로울 것이 무엇인가? 비록 천 개의 일산을 종 차닉이 힘으로 강탈해갔지만 이것은 이미 꿈에서 빼앗은 것인데 백일하에 무슨 상관이 있어 그대의 마음이 어지러운가? 근심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대 착한 대비여, 놀라지 말고 두려워도 말고 여러 생각을 말라. 세간법 가운데는 원래 이런 허망한 꿈이 있으니 근심을 품지 말고 편안히 보통 때와 같이 잠이나 자라. 그대 착한 대비는 나이 젊고 몸이 부드러우니 그렇게 걱정을 하면 피로할까 두렵노라.”
야수다라는 쾌락을 누리기만 하던 몸으로서 아직 괴로움을 겪지 않았는지라, 태자의 이런 말을 듣고 도로 누워 잠들었다. 태자는 야수다라를 편안히 위로하고자 하여 5욕락으로 함께 즐기며 다시 같이 누워 잤다.그때 태자는 그날 밤에 몸소 다섯 가지 꿈을 꾸었다.
첫째 꿈에는 이 대지로 침상을 삼고 수미산을 베개로 삼고 동쪽 대해를 왼팔에 놓고 서쪽 대해를 오른팔에 놓고 남쪽 대해를 두 발에 놓는 것을 보았다.둘째 꿈에는 건립(建立)이란 풀이 한 줄기 배꼽에서 솟아나 그 머리가 위로 아가니타 천에 이른 것을 보았다.셋째 꿈에는 여러 가지 빛을 가진 네 마리의 새가 사방에서 날아와 태자의 두 발 아래 있었는데 자연히 변하여 순전히 한 가지 흰빛이 되는 것을 보았다.넷째 꿈에는 네 마리의 흰 짐승이 있는데, 머리는 다 검은 빛이며 발 위에서 무릎에 이르도록 태자의 다리를 핥는 것을 보았다.다섯째 꿈에는 높고 큰 똥무더기 큰 산이 있었는데 태자 자신이 그 산 위에서 두루 걸어다니나 똥이 묻지 않는 것을 보았다.
21.사궁출가품(捨宮出家品) ①
그때 태자가 궁중에서 밤에 잠잘 때 숙직하며 궁을 지키는 한 대신이 모든 야경꾼에게 일렀다.
“너희 모두는 서로 시각을 알릴 때는 각자가 꼭 이렇게 부르라. ‘금비라(金毘羅)수나라 말로는 가외(可畏)라고 함야, 또는 목제라(目帝羅)수나라 말로는 해탈(解脫)이라 함야, 또 앙가나(鴦伽那)수나라 말로는 낙이(落裏)라 함야, 너희 모두 여기 있느냐?’라고 하라. 그러면 그들은 ‘여기 있노라.’고 대답하리라”
대신은 다시 그 모두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당직할 때 꼭 조심하라. 너희들은 당직할 때 꼭 조심하라.
오늘 밤도 이미 깊었다. 모든 무리들이 물이나 육지나 나무나 굴 속이나 산골 곁에서나 집 안에서 다 피로하여 잠에 빠졌다.
너희들 모두는 오늘 밤 야경에 다 병기를 가지고 함께 궁문을 지키되 각별히 경비를 삼엄히 하라. 그 밖에 점포에서 경호하는 사람들도 잠자지 말도록 하라. 대왕께서 이렇게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왜냐 하면 태자께서 이 궁성을 버리고 삭발 출가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성태자가 궁내에 계시도록 지킨다면 반드시 전륜성왕이 되어 4천하를 통치하리라. 대선국사가 이렇게 예언 하였다.”
이렇게 말할 때 초저녁이 이미 지나고 밤이 되었다.
시각을 알리는 사람이 크게 외쳤다.
“우리 성인께서는 항상 존승하소서. 원컨대 우리 태자는 장수하고 편안하소서.”
초저녁이 지나고 밤중에 접어들어 자정이 못 되었을 때 색계(色界)의 모든 정거천왕들이 가비라성에 내려왔다.
이때 성 안의 모든 인민들은 다 까맣게 잠이 들었고 정반왕과 좌우들과 태자의 마구간에 말 지키는 모든 신하들과 궁인 채녀들도 다 혼미하고 피로하여 깊은 잠에 들었다.이때 하늘 무리들 가운데 법행(法行)이란 천자가 궁 안에 이르러 신통력으로 모든 채녀들 몸의 의복과 장엄을 안정치 못하게 이리저리 흩트려 놓았다. 혹 팔다리가 드러나도 수습하지 못하고 혹 어떤 채녀들은 손으로 불을 받치고 차며, 어떤 채녀들은 공후(箜篌)를 한쪽에 내 던지고 몸을 기대고 누웠으며, 어떤 채녀는 두 팔로 북을 안고 자며, 혹은 두 손을 창문에 내놓고 반신을 드러낸 채 자고 있었다. 또는 각각 두 팔로 서로 껴안고 자며, 어떤 채녀는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채 쳐다보면서 자며, 어떤 채녀는 모든 영락을 내려뜨리고 자며, 어떤 궁인은 용모가 단정하고 평소 행동에 부끄러움을 잘 알고 모든 공능이 구족하였으나, 이제 깊은 잠에 빠져 방귀 소리를 내고 몸의 여러 부분에 냄새를 풍겨도 도무지 알지 못했다. 혹은 몸의 모든 영락을 벗고, 혹은 온갖 꽃타래를 내던지고, 혹은 옷을 버리고 눈을 부릅뜨고 자는 것이 마치 죽은 시체와 다름이 없어, 옆 사람이 본다면 산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못할 정도였다. 혹은 쳐다보고 누워 길게 팔다리를 뻗고 입을 벌리고 자며, 혹은 발을 아무렇게나 던지고 한쪽에 포개고 자며, 혹 주먹을 쥐고 손과 팔을 오그려 몸뚱이를 비틀고 비비며 자고, 혹은 벽에 기대서서 술 취한 사람처럼 흔들거리면서 자고, 혹은 머리를 덮고 코를 골고 자며, 혹은 쭈그리고 앉아 목을 움추리고 자며, 혹은 얼굴이 창백하고 빛을 잃어 매우 추하게 잤다. 어떤 채녀는 장고를 목에 걸고 겨드랑이를 뒤틀고 자며, 어떤 채녀는 공후에 목을 걸치고 자며, 어떤 채녀들은 이를 갈고 울부짖으며 자고, 어떤 채녀들은 고개를 드리우고 중얼대고 자며, 어떤 채녀는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마치 무덤 사이의 시체와 같이 자며, 어떤 채녀들은 더러운 대ㆍ소변을 흘리면서 자고 있었다.그때 태자는 문득 잠이 깨어 궁전 안을 보았다.
주먹덩이 같고 팔뚝 같은 촛불과 등불이 휘황하게 빛나 매우 밝았으므로 궁인들이 이렇게 누워 자는 꼴을 보았다. 혹 동발(銅鉢)ㆍ생(笙)ㆍ큰 거문고ㆍ갈잎 피리ㆍ퉁소ㆍ거문고ㆍ축(筑)ㆍ비파ㆍ저ㆍ고동들을 가지고 입으로 흰 거품을 내고 콧물과 침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갖가지 얼굴과 모양을 보고 태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부인들의 형용은 다만 이런 것이로구나. 부정하고 추악한데 무엇을 탐낼 것이 있는가. 겉으로 분과 연지며 영락과 의복이며 꽃타래와 비녀 팔찌로 꾸며 거짓 몸을 장엄했도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줄 몰라서 색 경계에 속고 미혹하여 망령되이 욕심을 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면 바른 생각으로 이렇게 관찰할 것이다. 부인의 몸과 체성이 이렇게 공하여 꿈이나 꼭두각시 같이 주인이 없구나, 이 가운데서는 사람이라고 할 것 조차 없는데 방일하고 탐을 내는구나. 이러한 사견 때문에 무명에 얽히는구나.’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세간의 부정과 온갖 미혹 가운데
부인의 몸보다 더한 것이 없도다.
의복과 영락으로 꾸미기 때문에
미련한 이 여기에 탐욕을 내지만
그림자 같고 꿈 같아 참이 아니라.
사람이 능히 이렇게 관하여
속히 무명을 버리고 방일하지 않으면
반드시 해탈한 공덕의 몸 되리라.
그리고 태자는 다시 집중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아아, 세간에는 이런 큰 우환이 있도다. 아아, 두렵구나. 무엇을 탐낼 것이 있는가?’하고는 자애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불쌍히 여긴 까닭에 소리를 내어 크게 울었다.
‘여기는 얽어매는 곳인데 어리석은 이는 마치 백정의 손에 목숨이 끊기는 짐승 같은 처지다. 여기는 더러운 곳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망령되이 애락을 낸다. 꽃병에다 똥오줌을 가득 채운 것처럼. 여기는 헛된 거짓 뿐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마치 코끼리가 진흙 구덩이에 빠지듯 매몰되어 있다. 여기는 더러운 냄새뿐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마치 돼지가 뒷간에 살 듯 향기롭다고 생각한다.
여기는 허황된 거짓 뿐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마치 개가 살없는 뼈다귀를 붙들 듯 함부로 염착을 낸다. 여기는 손해뿐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마치 하루살이가 등불에 덤비듯 다투어 들어간다. 여기는 독이 있는 곳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마치 고기가 미끼를 삼키듯 탐착하고 좋아한다.
여기는 누렇게 마른 곳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즐겨 집착하고 가까이한다. 마치 물 속의 꽃이 물을 떠나 햇빛에 쪼여지듯. 여기는 위태로운 곳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늙은 소가 깊은 수렁을 오가듯 밟고 지나다닌다. 여기는 험한 벼랑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장님이 큰 벼랑에서 떨어지듯 추락하여 빠진다.
여기는 순환(循環)뿐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생사(生死)에 유전(流轉)한다. 마치 옹기장이가 그릇 돌리는 물레와 같이. 여기는 얽매임뿐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거기에 감긴다. 마치 개가 사슬에 얽혀 자유가 없듯이. 여기는 윤택이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마치 여름날 더위에 마른 풀처럼 바싹 말라 있다.
여기는 쇠하고 소모되는 곳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달이 이지러져서 없어지듯 날마다 소멸해간다. 여기는 이익이 없는 곳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노름꾼들이 남에게 돈과 재물을 잃는 것처럼 선근(善根)을 다 써버린다.’그때 태자는 이렇게 모든 채녀들의 몸을 관찰하고 나서 다시 생각했다.
‘나는 이제 분명히 이런 모양을 보았다. 응당 기뻐하고, 용맹하게 부지런히 정진하는 마음을 내어 복덕을 기르고 큰 서원을 일으켜 세간을 건지리라. 구할 이 없는 중생에게 구호가 되며 양육할 이 없는 사람들에게 귀의할 데가 되고 집이 없는 중생에게 집이 되리라. 이제 해야 할 일이 이미 내 앞에 나타났으니 오래잖아 결정코 이 뜻을 이루리라. 왜냐하면 이 모든 채녀들이 다 부끄러움을 버리고 깊이 잠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때 작병천자(作甁天子)는 밤중이 되어서 이미 태자가 잠에서 깨어난 것을 보고 조용히 다가와 태자에게 아뢰었다.
“태자여, 지난 날 진실한 일을 구족히 성취하였나이다. 또 태자께서는 옛날 인간 세상에 있을 때, ‘내가 몸을 버리고 도솔천에 나고자 합니다’하는 마음을 냈는데, 발원했던 때가 이미 지났습니다. 또 옛날 도솔천에 있을 때 ‘인간 세상에 나서 모태를 받겠습니다’하였는데 그 원도 원만히 이루어졌습니다. 태중에 있을 때 빨리 나기를 원했는데, 그 원도 이루어졌습니다.
또 ‘나서 자라고 궁중에 있으면서 동자로서 자재하게 쾌락을 누리고 놀게 하여지이다.’하였는데, 그 원도 지났습니다. 약관(弱冠)인 때 정근하여 모든 기예를 배우고자 하던 그 원도 이미 이루어졌으며, 장년(壯年)으로서 마음대로 세상 낙을 누리고자 하던 그 원도 현재에 시험해 보았습니다. 오래 탐할 것이 못 된다고. 오늘 모든 하늘과 모든 사람들은 태자께서 이것을 버리고 출가하여 성도(聖道)를 수학하기를 원합니다.”그때 태자는 작병천자의 이런 말을 듣고나서 곧 스스로 금 8천억 근(斤) 값의 온갖 보배로 만든 가죽신을 신고 발에 꿰고 일어나려다가 그가 앉았던 보배 침대를 돌아보고 이렇게 큰소리로 말하였다.
“이것은 내 몸이 최후에 5욕락을 받던 곳이다. 이제부터는 다시 받지 않으리라.”그때 태자는 오른손으로 온갖 보배로 만든 그물 휘장을 들치고 궁전에서 나와 조용히 걸어 처음으로 조금 땅을 걸었다. 궁전 안에서 동쪽으로 향해 서서 합장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였다. 생각하고 나자 머리를 들어 허공과 모든 별들을 우러러 보았다.그때 세상을 호위하는 4대천왕과 제석천왕이 태자가 출가할 때가 되었음을 알고서 각각 힘닿는 대로 도구를 갖추고 왔다.
그때 제두뢰타천왕이 관할하고 있는 건달바들과 일체 권속 백천 만의 무리들은 앞뒤에 인도하고 따르며 모든 음악을 울리며 동쪽에서 와서 가비라성을 세 번 빙 돌고 땅 위에 내려 동쪽에 물러나 서서 합장하고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태자에게 얼굴을 향했다.그때 비류륵차 천왕이 관할하는 구반다들과 일체 권속 백천 만의 무리는 앞뒤로 늘어서서 손에는 보배 병에 갖가지 미묘한 향탕을 가득 담아 들고 남쪽에서 와서, 세 번 가비라성을 빙 돌다가 땅 위에 내려와 물러나 남쪽에 서서 합장하고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태자에게 얼굴을 향했다.그때 비류박차 천왕이 관할하는 모든 용왕과 일체 권속 백천 만의 무리들은 앞뒤에 인도하고 따르며, 손에 갖가지 미묘한 진주 꾸러미와 갖가지 온갖 진기한 보배를 가지고, 갖가지 향기 구름과 꽃 구름과 보배 구름을 일으키고, 또 미묘하고 보드러운 향기 바람을 일으키며 서쪽에서 와서, 세 번 가비라성을 빙 돌다가 땅 위에 내려 물러나 서쪽에 서서 합장한 채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태자에게 얼굴을 향했다.그때 비사문 천왕이 관할하는 모든 야차들과 일체 권속 백천 만의 무리들은 앞뒤에 인도하고 따르며, 손에 불구슬이나 등촉이나 횃불을 들어, 불길이 휘황하며, 몸에 갑주를 입고 혹은 활ㆍ살ㆍ칼ㆍ창의 무기들을 쥐고 북쪽으로부터 와서, 세 번 가비라성을 빙 돌다가 땅 위에 내려 도로 북쪽에 서서 합장하고 머리를 숙인 채 허리를 굽혀 태자에게 얼굴을 향했다.그때 천주(天主) 석제환인(釋提桓因)은 그 권속 일체의 모든 천자들 백천 만의 무리들과 앞뒤에 인도하고 따르며 하늘의 꽃다발과 가루향ㆍ바르는 향을 가지고, 혹은 번당과 보배 일산을 가지고 혹은 갖가지 온갖 미묘한 영락을 가지고 저 33천에서 내려와 세 번 가비라성을 빙 돌다가 도로 위의 허공에서 합장하고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태자에게 얼굴을 향했다.그때 태자는 여러 방면을 보고 허공과 모든 별들을 우러러보았다. 아울러 세상을 수호하는 4대천왕이 가장 묘한 갖가지 영락으로 몸을 장엄하고 머리에 하늘관을 쓰고 차례로 조용히 걸어가고, 건달바ㆍ구반다ㆍ모든 용과 야차 등 백천의 권속들이 좌우로 에워싸고 각각 동ㆍ서ㆍ남ㆍ북에서 여기 이르러 각각의 방위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또 천주 석제환인이 백천의 모든 하늘 권속들을 거느리고 앞뒤로 늘어서 허공에 있는 것을 보았으며 또 귀수 별[鬼星]이 달과 합한 것을 보았다.
그때 모든 하늘들은 큰소리로 외쳤다.
“대성 태자여, 귀수 별이 이미 합하였으니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뛰어난 법을 구하려거든 여기 머물지 마소서. 인간의 왕 사자는 때가 되었으니 빨리 떠나 출가하소서.”
모든 하늘들도 도와서 찬탄해 말했다.
“머물지 말고 속히 나가소서.”그때 태자는 허공을 우러러 보며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밤중이라 고요하여 귀수 별[鬼星]이 이미 합했으며 모든 하늘 대중들과 땅과 허공도 다 도와주니 결정코 나에게 이제 때가 왔다는 말이 헛되지 않도다. 마땅히 출가하리라.’
태자는 이렇게 마음으로 생각하고서 같은 날 태어난 종 차닉을 불러 말했다.
“차닉아, 너는 어서 와서 나를 거역하지 말라. 나와 한날 태어난 큰 말 건척을 끌고 빨리 내 앞에 나오되 우리 집 모든 권속과 석가족들이 그 말 울음을 듣지 못하게 하라.”
차닉은 태자의 이런 말을 듣고 나서 허공을 우러러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아직 밤중인데.’
마음에 의심이 나고 온몸이 두루 떨리고 몸의 털이 곤두서고 송구하고 불안스러워 태자에게 아뢰었다.
“대성 태자여, 어찌하여 밤중에 저를 보내 큰 말 건척을 끌고 오라 하시나이까, 무슨 무서운 일이라도 있나이까, 무슨 원수라도 있나이까,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나이까, 혹은 성 밖이나 성 안에 좋고 나쁜 일이라도 있사옵니까.”
태자는 차닉에게 일렀다.
“너 차닉아, 내게는 지금 급한 일과 공포와 원수가 있고, 모든 고뇌에 핍박 당하는 줄을 네가 어찌 알랴. 다만 속히 나와 함께 태어난 말 건척을 끌어오너라. 빨리 끌어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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