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15권
불본행집경 제15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17.정반왕몽품(淨飯王夢品)
“그때 작병 천자는 신통력으로 태자에게 출가할 마음을 내게 하려고 그날 밤에 정반왕에게 일곱 가지 꿈을 꾸게 하였다.
정반왕이 침상 위에 누워 자다가 이런 꿈을 꾸었다. 첫째는 꿈에 제석천의 큰 깃대를 보았는데 그 깃대 주위에 한량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것을 들고 가비라성 동쪽 문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둘째는 꿈에 태자가 열 마리의 큰 코끼리로 멍에한 수레를 타고 가비라성 남쪽 문으로 나가는 것을 본 것이었으며, 셋째는 꿈에 태자가 네 말이 끄는 수레에 단정히 앉아 가비라성 서쪽 문으로 나가는 것을 본 것이었고, 넷째는 꿈에 온갖 보배로 장엄한 큰 수레바퀴가 가비라성 북쪽 문으로 나가는 것을 본 것이었다. 다섯째는 꿈에 태자가 가비라성 중앙 큰 거리에서 손에 큰 북채를 들고 큰 북을 치는 것을 본 것이었다. 여섯째는 꿈에 이 가비라성의 중앙 높은 누각에 태자가 단정히 앉아 사방으로 한량없는 보배를 던지매 사방에서 또 한량없는 수억의 중생들이 와서 그 보배를 가지고 가는 것을 본 것이었다. 일곱째는 꿈에 이 가비라성 밖 멀지 않은 곳에 여섯 사람이 있어 대성통곡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각각 두 손으로 자기 머리털을 뽑으며 땅에 뒹구는 것을 본 것이었다.정반왕은 꿈에서 이런 장면을 보자 크게 두렵고 놀라워 털이 곤두서고 온몸이 떨렸다. 놀랍고 괴이하고 의심스러워하다가 문득 잠을 깼다. 잠을 깨고 나서 궁내에 당직하는 모든 대신들을 불러모으고 이렇게 말했다.
‘경들은 아는가? 내가 오늘 밤 꿈에 이런 크게 두려운 일을 보았노라.’
그리고 위에 말한 일곱 가지를 차례차례 이야기하고는 또 명령했다.
‘그대들은 이 꿈들을 잘 기억하고 잊지 말았다가 내일 조회 때 모임 가운데서 나에게 알려 달라.’
모든 신하들은 왕의 칙명을 듣고 나서 왕에게 아뢰었다.
‘삼가 대왕의 칙명대로 어김없이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날이 밝아 왕이 자리에 앉자마자 모임 가운데서 지난밤 꿈을 왕에게 자세히 아뢰었다.
정반왕은 신하의 아룀을 듣고서 나라에서 꿈 해몽 잘하는 바라문들을 불러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큰 지혜로 내 꿈을 풀이해 보라. 어떤 과보가 있을지. 내 꿈은 이러했다.’
그리고는 앞에서와 같이 말했다. 그들 큰 지혜 있는 바라문들은 왕의 칙명을 듣고 나서 함께 생각하여 가부를 헤아려 보고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굽어살피소서. 저희들은 아직 이런 꿈은 듣지도 못했습니다. 저희들이 듣고는 마음이 어지러워 이 꿈에 어떤 과보가 있을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정반왕은 그들의 이런 말을 듣고 더욱 근심하여 이런 생각을 했다.
‘혹 태자가 전륜성왕이 되지 못하거나 또 전륜왕이 되었다가 도로 떨어지지 않을지, 이제 내 마음에 큰 걱정이 생겼으니 누가 나의 의심을 풀어 줄 것인가?’그때 작병 천자가 정거천궁에서 멀리 정반대왕이 이렇게 걱정하며 즐겁지 않은 것을 보고 문득 그 천궁에서 몸을 감추어 내려왔다. 그는 바라문으로 변신했는데, 머리에는 소라 상투가 있었고 꽃타래로 갓을 만들어 썼다. 총명하고 지혜롭고 단정하고 한창 젊었으며 검은 사슴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정반왕궁 문 밖에 서서 이렇게 말하여 외쳤다.
‘내가 정반왕의 꿈을 해설하여 의심을 풀어 주리라.’
그때 당번 문지기는 바라문의 이런 말을 듣고 빨리 정반왕의 처소에 나아가 꿇어앉아 절하고 정반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굽어살피소서. 밖에 어떤 바라문이 서서 <내가 모든 꿈을 잘 푼다> 하옵니다.‘
정반왕은 곧 그 바라문을 궁중으로 불러들였고, 그가 들어오자 매우 기뻐서 이렇게 물었다.
‘그대 매우 지혜로운 큰 바라문이여, 이제 알았는가. 내가 지난밤 꿈에 이런 일곱 가지 현상을 보았소. 첫째는 제석천의 깃대가 하나 있고 한량없는 수만의 인민들이 둘러싸 그 깃대를 들고 가비라성 동문으로 나가는 것을 본 것이며……(중략)……이 가비라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여섯 사람이 크게 통곡하며 손으로 머리털을 뽑는 것을 본 것이오. 나는 이제 공포로 마음이 창황하여 좋은 꿈인지 나쁜 꿈인지 모르겠으니, 그대는 나를 위해 낱낱이 해설해 주시오.’
정반왕은 이 말을 하고 나서 말없이 앉아 그 해몽을 듣고자 하였다.그때 작병 천자는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굽어살피소서. 대왕의 꿈에 제석의 깃대를 한량없는 인민들이 들고 성 동문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대왕의 실달태자가 한량없는 수만의 모든 하늘들에게 좌우로 에워싸여 태자의 지위를 버리고 궁전으로부터 성을 넘어 출가할 것으로서 이 꿈은 그것이 먼저 나타난 상서로운 현상입니다.또 대왕께서 보신 대로 태자가 열 마리 코끼리로 멍에한 수레를 타고 성 남문으로 나간 것은, 그가 출가하고 나서 곧 살바야(薩婆若)와 10력(力)을 증득하는 것으로서 이 꿈은 그것이 먼저 나타난 상서로운 현상입니다.또 대왕이 보신 대로 태자가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서문으로 나간 것은, 그가 출가하여 살바야를 증득하고 4무소외(無所畏)를 얻는 것으로서 이 꿈은 그것이 먼저 나타난 상서로운 현상입니다.또 대왕의 꿈과 같이 온갖 보배로 장엄한 수레바퀴가 성 북문으로 나간 것은, 그가 출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뒤에 천상과 인간 앞에서 위없이 미묘한 법바퀴를 굴리는 것으로서 이 꿈은 그것이 먼저 나타난 상서로운 현상입니다.또 대왕의 꿈과 같이 태자가 가비라성 네거리 한복판에서 손에 북채 하나를 들고 큰 북을 친 것은, 그가 출가한 뒤 보리를 증득하고 법바퀴를 굴릴 때 모든 하늘들이 각각 소리 높여 전한 소리가 위로 범천까지 사무쳐 서로 전해 알게 되고, 메아리가 색계(色界)에 두루할 것이니 이 꿈은 그것이 먼저 나타난 상서로운 현상입니다.또 대왕의 꿈에 태자가 가비라성 누각 위에 앉아서 사방으로 갖가지 보배를 던진 것은, 그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 나서 저 모든 천상과 인간 8부 대중들 앞에서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支)ㆍ8정도(正道) 등 온갖 미묘한 법보를 펼칠 것으로서 이 꿈은 그것이 먼저 나타난 상서로운 현상입니다.또 대왕의 꿈과 같이 가비라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여섯 사람이 크게 울며 제 손으로 머리털을 뽑는 것을 본 것은, 태자가 출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여 보리를 이루면 그때 부란나 가섭(富蘭那迦葉)ㆍ마바가라 구사자(摩婆迦羅瞿奢子)ㆍ아기나 지사감바라(阿耆那只奢甘婆羅)ㆍ바라부다 가다야나(波羅浮多迦吒耶那)ㆍ나사이비야사치지자(那闍夷裨耶私致只子)ㆍ니건타야저자(尼乾陀若低子) 등 여섯 학파의 우두머리[六師]들이 매우 근심하고 걱정할 것이니, 이 꿈은 그것이 먼저 나타난 상서로운 현상입니다.”작병 천자는 정반왕을 위하여 꿈을 해몽하고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기뻐하시고 공포나 근심 걱정을 품지 마소서. 왜냐 하면 이 꿈은 길한 상서라 좋은 과보를 얻을 것이니, 스스로 경축할 일이라 염려하지 마소서.’
이렇게 정반왕을 위로하고는 문득 몸을 숨겼다.정반왕은 자기 꿈이 길한 상서이며 좋은 과보를 가져올 것이라는 바라문의 해몽을 듣고 곧 태자를 위하여 다시 5욕의 도구를 늘리고 태자의 마음이 애정에 물들고 집착하여 출가하지 않기를 바랐다.
이때 태자는 궁중에 있으면서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5욕락을 마음껏 받았다.”
18.도견병인품(道見病人品)
“그때 작병 천자는 다시 생각했다.
‘이 호명보살은 저 궁중에 있으면서 5욕에 애착하여 방일하고 정을 쏟으면서 이미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세간은 무상하고 한창 나이는 잃기 쉽구나. 호명보살은 빨리 궁중을 버리고 출가해야 할 것이니, 내가 먼저 그에게 상을 나투어 그가 각성해서 빨리 떠나도록 권청하리라.’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작병 천자는 자신의 신통력과 호명보살의 숙세 복덕 인연으로 궁중에 앉았다가 문득 동산에 나가 구경하면서 놀 마음을 내게 하였다.그때 태자는 말몰이꾼을 불러서 일렀다.
‘착한 말몰이꾼아, 너는 빨리 좋은 수레를 장엄하라. 나는 성에서 나가 동산에 가서 노닐며 숲을 구경하고자 하노라.’
이때 말몰이꾼은 태자에게 아뢰었다.
‘성자의 칙명대로 어김없이 하겠습니다.’
말몰이꾼은 태자의 이런 명을 듣고 나서 정반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굽어살피소서. 태자께서 동산에 나가 좋은 경치를 구경하고자 합니다.’
정반왕은 국내 인민들에게 칙명을 내려 가비라성을 깨끗이 청소하고 꾸미게 하였다. 또 일체의 풀이며 돌ㆍ자갈ㆍ가시덤불ㆍ썩은 나무ㆍ흙 무더기ㆍ쓰레기 등 냄새 나는 것을 치워 버리고 평탄하게 하며……(중략)……동산 안에도 모든 여성의 이름이 붙은 나무에는 여자의 영락 도구로 장엄하고, 남성의 이름이 붙은 나무는 남자의 영락으로 장엄하게 하였으며……(중략)……길에서 태자 앞에는 늙은이나 병자들도 얼씬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태자가 그것을 보고 싫증을 내어 떠날 생각을 내지 않도록 함이었다.
그때 말몰이꾼은 수레를 장엄하고 태자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수레를 장엄하여 대령하였습니다. 바라옵건대 성자께서 때를 잘 아시옵소서.’
이때 태자는 보배 수레를 타고 대왕의 위신과 드높은 성덕을 가지고 성 남쪽 문에서 점점 나가 동산 숲에 가서 구경하고 유희하고자 했다.그때 작병 천자는 태자의 앞길에서 한 병자로 변해서 나타났다. 뼈마디까지 괴로워하며 배에 난 종기에서 물이 흘러 매우 고통스러워하였다. 몸이 파리하고 팔과 다리가 가늘며 혈색이 누렇게 떴고, 숨을 가늘게 헐떡이며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으며, 쓰레기 가운데 뒹굴면서 신음하는 중이었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입을 열어 말을 하려 하나 겨우 소리를 내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나를 좀 붙들어 앉혀 주소서.’
태자는 그 병자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과 붙들어 앉혀 달라고 겨우 말하는 것을 보고서 말몰이꾼에게 물었다.
‘착한 말몰이꾼아, 저 자는 어떤 사람인데 배가 저렇게 큰 솥같이 부풀었는가? 헐떡이며 숨을 쉴 때 온몸이 떨리며 팔과 발목이 가늘고 안색이 누렇게 떴구나. 그리고는 <아아, 어머니> <아아, 아버지> 하고 부르며, 슬프고 간절하고 신산해서 차마 보고 들을 수 없으며 또 남의 몸을 의탁해 겨우 일어나는구나.’
그때 작병 천자는 신통력으로 말몰이꾼을 시켜 태자에게 대답하게 했다.
‘원하옵건대 성자는 들으소서. 이런 이를 병자라 합니다.’태자는 다시 말몰이꾼에게 물었다.
‘어째서 병자라고 하느냐?’
말몰이꾼은 대답했다.
‘대성 태자여, 이 사람은 몸이 편안하지 못하고 위덕이 이미 다했으며 매우 곤하고 힘이 없습니다. 죽을 때가 되어도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으며, 부모도 모두 죽고 없어 호소할 곳도 없습니다. 이미 돌아가 의지할 곳도 없고 호소할 곳도 없기 때문에 이 사람은 오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이 다할 것입니다. 살고자 해도 매우 괴로워 결코 잘 살 수 없고, 낫기를 바라도 그럴 수가 없으며, 오직 때를 기다릴 뿐입니다. 대성 태자여, 이런 인연으로 병자라고 합니다.’
이런 게송이 있었다.
태자님은 말몰이꾼에게 물으셨네.
이 사람은 이런 고통 왜 받느냐고.
말몰이꾼은 태자에게 대답했다네.
4대(大)가 고르지 못해 병이 났다고.
태자는 또 말몰이꾼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하나만 이렇게 된 것이냐, 세간의 모든 중생에게도 다 이런 법이 있느냐?’
말몰이꾼은 대답했다.
‘이 병이라는 법은 한 사람뿐만 아니라 일체 하늘과 인간과 중생 잡류도 다 이런 법을 면하지 못합니다.’
태자는 또 말했다.
‘나도 이 병을 벗어나지도 면하지도 못하고 저와 같은 일을 당하게 되리라. 아아, 두렵구나.’
그리고 태자는 그 말몰이꾼에게 일렀다.
‘너 말몰이꾼아, 내 몸도 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온갖 병을 면하기 어렵다면 나는 이제 동산 숲에 나가 유람하고 즐길 겨를이 없다. 수레를 돌려 궁중에 들어가서 생각해 보리라.’
말몰이꾼은 대답했다.
‘태자의 명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곧 명령대로 수레를 돌려 궁으로 돌아왔다.
이때 태자는 도로 궁중에 들어와 단정히 앉아 생각했다.
‘나도 역시 병을 만날 것이다. 병이란 것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나 어찌 정욕을 마음대로 할 것인가?’그때 정반왕은 말몰이꾼에게 물었다.
‘태자가 동산에서 유람하고 환락을 누렸느냐?’
말몰이꾼은 대답했다.
‘대왕이시여, 굽어살피소서. 태자께서 성 밖에 나가 못과 늪을 구경하고자 하는데, 길 중간쯤 이르렀을 때 한 병자를 보았습니다. 그가 붙들어 일으켜 달라고 하는 것을 보고 태자께서 명령을 내려 수레를 돌려 돌아와 궁중에 고요히 앉아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그때 정반왕은 이 말을 듣고 나서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아사타 선인의 수기가 결정코 진실하구나. 태자가 집을 버리고 출가하지나 않을지, 나는 이제 태자를 위하여 5욕락의 일을 더 늘려 태자가 5욕에 더욱 애착하여 그것을 버리고 출가하지 못하게 하리라.’
정반왕이 태자에게 5욕의 도구를 두 배로 만들어 주었다. 이런 게송이 있었다.
태자가 오래 궁전 안에 머물다가
동산에 나가 5욕락을 누리고자 했네.
길에서 비쩍 마른 병자 하나를 보자
5욕락에 싫증을 내고 수레를 돌렸네.
단정히 앉아 늙고 병드는 원인을 생각하되
면하지 못했으니 내 이제 무엇이 즐거우랴.
그러나 색과 소리, 향기와 맛과 모든 촉감은
가장 묘하고 가장 좋아 싫어할 수 없네.
보살[大士]의 지난날 착한 업연으로
이제 비길 데 없이 지극한 향락을 받도다.
이런 차례로 태자는 궁 안에 있으면서 밤낮으로 끊임없이 5욕의 공덕을 빠짐없이 누렸다.”
19.노봉사시품(路逢死屍品)
“그때 작병 천자는 또 어느 때 이런 생각을 내었다.
‘이 호명보살 대사는 궁중에 있으면서 마음껏 기쁘게 즐긴다. 지금 때가 되었으니 호명보살은 빨리 출가해야 한다. 나는 이제 그 대사를 위해 5욕락을 싫어하여 집을 버리고 출가하게 권청하리라.’
작병 천자는 마음으로 호명보살을 권해 발심시키기 위해 그가 궁중에서 나와 동산 숲에 나가 좋은 경치를 구할 마음을 내게끔 했다.
그러자 태자는 말몰이꾼에게 일렀다.
‘착한 말몰이꾼이여, 너는 속히 네 말이 끄는 보배 수레를 멍에하라. 나는 성에서 나가 동산에서 노닐고자 하노라.’
이때 말몰이꾼은 태자의 명령을 듣고 빨리 정반왕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굽어살피소서. 태자께서 동산 숲에 나가 유람하시고자 합니다.’
정반왕은 칙명을 내려 가비라성을 장엄하도록 했다. 길거리를 쓸어 가시덤불ㆍ돌 자갈ㆍ썩은 나무ㆍ흙 무더기ㆍ쓰레기며 기왓장과 돌을 다 깨끗이 치우고……(중략)……동산 안에 있는 나무 중에 여자의 이름이 있는 것은 여자의 영락으로, 남자의 이름이 있는 것은 남자의 영락으로 장식하고 또 요령을 흔들고 이렇게 외쳤다.
‘상서롭지 못한 이는 하나라도 태자 앞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라. 늙었거나 병들었거나……(중략)……태자가 본 뒤에 싫어 떠날 생각을 내지 않도록 하라.’
그 말몰이꾼은 곧 태자를 위하여 좋은 수레를 장엄하고 나서 태자에게 아뢰었다.
‘성자여, 잘 들으소서. 수레를 장식해 대령하였으니 때를 아소서.’
태자는 수레에 앉아 위신과 큰 덕으로 서문에서 나와 동산 숲으로 유람을 떠났다.
그때 작병 천자는 태자 앞에서 한 시체로 변하여 나타났는데 상여 위에 누웠고, 여러 사람이 메고 갔다. 갖가지 묘한 빛깔의 추마의(蒭摩衣)로 휘장을 쳤으며, 수많은 친척들이 좌우 전후에서 에워싸고 통곡하며 울었다. 혹은 머리털을 풀었으며, 혹은 가슴을 치며 머리를 두드리고 두 팔을 비비꼬며, 혹은 또 두 손으로 흙을 쥐어 얼굴에 끼얹었다. 혹은 갖가지 흐느끼는 소리를 내거나 눈물을 비오듯 쏟거나, 크게 부르짖고 통곡하는데, 애처러운 흐느낌은 듣기 어려웠다.
태자는 이것을 보고 비참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 말몰이꾼에게 물었다.
‘착한 말몰이꾼이여, 이는 누구이길래 상여 위에 누워 가지가지 꽃으로 둘러싸 장엄하고……(중략)……잡색 추마의복으로 휘장을 치고 사람들이 메고 가며 여러 사람이 두루 에워싸고 원통하다고 부르짖으며 통곡하는가?’
게송으로 읊었다.
왕자의 묘한 자태 신체도 단정한데
말몰이꾼에게 물었네. 이것이 누구이기에
상여에 누워 네 사람이 메고 가며
모든 친척들이 둘러싸고 통곡하는가.
그때 작병 천자는 신통력으로 말몰이꾼을 시켜 태자에게 대답하게 했다.
‘대성 태자여, 이것은 죽은 시체라고 합니다.’
태자는 다시 말몰이꾼에게 물었다.
‘죽은 시체란 어떤 것이냐?’
‘대성 태자여, 이 사람은 이미 세상의 목숨을 버리고 위덕이 없으며, 이제 돌이나 나무, 담벼락과 다름이 없습니다. 일체 친족과 아는 이를 버리고 오직 정신만이 스스로 저 세상으로 향하여 지금부터는 다시 볼 수 없습니다. 부모ㆍ형제ㆍ처자ㆍ권속들과 이별하여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이라 합니다.’
태자를 향하여 게송을 읊었다.
이미 마음과 뜻과 모든 근을 버리니
시체는 앎이 없어 나무나 돌과 같네.
친척들 에워싸 울고 뛰는 것도 잠깐일 뿐
은혜도 사랑도 여기서 영영 이별이라네.
태자는 또 말몰이꾼에게 물었다.
‘착한 말몰이꾼이여, 나에게도 죽는 법이 있느냐? 또 이 죽는 법은 내가 초월할 수 없느냐?’
말몰이꾼은 대답했다.
‘대성 태자여, 태자의 높으신 몸도 역시 죽는 법에서는 면하거나 벗어나지 못합니다. 세간의 일체 천상이나 인간은 모든 친족이나 권속이나 아는 이들과 각각 이별하는 일이 있어서 그는 이를 보지 못하고 이도 그를 보지 못합니다.’
그때 게송을 읊었다.
일체 중생들은 이 업이 다하면
천상이나 인간이나 귀천이 평등하다네.
선한 세간, 악한 세간에 달리 처해도
죽음이 이를 때는 다름이 없어라.
태자는 이 말을 듣고 나서 말몰이꾼에게 일렀다.
‘내 몸도 똑같이 죽음이 있고 죽음의 법을 면하지 못한다면, 또 이제 하늘과 하늘 가운데 모든 권속을 내가 보지 못하며, 그들 또한 나를 보지 못한다면, 나는 이제 어느 겨를에 저 동산 숲에 나가 유람하고 즐길 것인가. 속히 수레를 돌려 궁중으로 들어가자. 나는 생각하리라.’
말몰이꾼은 태자의 명령을 듣고서 곧 수레를 돌려 궁중으로 향하였다. 태자는 궁중에 이르자 단정히 앉아 생각했다.
‘나는 마침내 반드시 죽는구나. 죽음의 법을 초월하지 못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말없이 이런 생각에 집중하였다.
‘이러한 세간의 과보는 마침내 무상으로 돌아가는구나.’
그런데 태자가 처음 궁 안에 들어오려 할 때 지혜가 없고 어리석은 관상쟁이 하나가 대왕의 궁문 밖에 서서 태자의 얼굴이며 상하의 형용과 장부상을 자세히 우러러보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너희 모든 사람들아, 모두 알아 두라. 오늘부터 7일 안에 이 태자는 7보가 자연히 성취되어 오게 될 것이다.’
정반왕은 말몰이꾼에게 물었다.
‘너 착한 말몰이꾼이여, 태자를 인도하여 동산 숲에 가서 자못 마음에 맞는 환락을 즐겼느냐?’
말몰이꾼은 무릎을 꿇고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굽어살피소서. 태자께서 이번에 나가 동산 숲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정반왕이 어째서 동산에 가지 않았느냐고 묻자 말몰이꾼은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잘 들으소서. 태자가 궁에서 나가 중간쯤 갔을 때 죽은 사람 하나를 상 위에 누이고 네 사람이 들어 메고 가는데……(중략)……친척들이 에워싸고 통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고 나서는 도로 궁중에 들어와 생각에 잠겨 즐겨 하지 않았습니다.’
정반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사타 선인의 수기가 반드시 진실하도다. 태자가 나를 버리고 출가하지 않을는지. 나는 이제 다시 태자에게 5욕락을 더해 주어 그가 여기에 애착하고 출가하지 않도록 하리라.’
그때 정반왕은 다시 태자에게 갖가지 의복과 놀잇감을 더욱 충족하게 공급하였다.
이런 게송이 있었다.
한량없는 겁해(劫海)의 공덕행으로
태자는 목숨이 다한 사람을 보고 나자
마음으로 크게 슬퍼 우수에 잠기고
도로 궁중에 들어와 죽을 일 생각하네.
옛부터 이 성에는 궁전이 묘하고
태자는 한창 나이에 매우 아름다웠네.
마음에 찰 때까지 5욕을 스스로 즐겨
천목환희원(千目歡喜苑)에 놀듯 하였네.
이런 차례로 태자는 궁중에 있으면서 5욕락을 빠짐없이 받으며 마음대로 즐겼다.”
20.야수다라몽품(耶輸陁羅夢品) ①
“그때 작병 천자는 태자가 나가 유람하려다 시체를 보고 세간의 5욕락에 대해 싫증을 느껴 궁 안에 돌아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6일이 지난 뒤에 다시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이 호명보살 대사는 5욕락에 집착하여 마음이 미혹하고 방일하여 버리려 하지 않는구나. 이제 때가 되었으니 호명보살이 빨리 이것을 버리고 출가하도록 나는 이제 권청하는 인연을 지으리라.’
작병 천자가 태자에게 출가할 마음을 내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 작병 천자의 숙세 복덕 인연에 감응하여 태자는 동산 숲에 나가 놀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게 되었다.그래서 태자는 말몰이꾼을 불러 칙명을 내렸다.
‘착한 말몰이꾼이여, 급히 탈것을 장엄하라. 내가 동산에 나가고자 하노라.’
말몰이꾼은 명령을 받고 곧 정반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굽어살피소서. 태자께서 이제 동산에 나가 유희하고 구경하고자 하십니다.’
정반왕은 칙명을 내려 전과 다름없이 갖가지로 가비라성을 청소하고 장엄하게 하였다.……(중략)……그리고 요령을 흔들며 성 안 사람들에게 알렸다.
‘늙고 병들거나 죽은 이나 6근이 온전치 못한 불구자는 한 사람도 태자 앞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라. 태자가 보면 싫어하는 마음을 낼 것이다.’
말몰이꾼은 명을 받고 좋은 보배 수레를 대령하였다. 태자는 때를 알고 수레 위에 앉아 존중한 위덕으로 성 북문에서 나와 수레를 몰고 갔다.그때 작병 천자는 신통력으로 수레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태자 앞에 한 사람으로 화하여 나타났다. 그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승가리를 입고 오른쪽 어깨를 내려 드러내고 손으로 석장을 짚고 왼손바닥에 발우를 받쳐 들고 길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태자는 이것을 보고 나서 말몰이꾼에게 물었다.
‘착한 말몰이꾼이여, 이건 어떤 사람인가? 내 앞에 있으면서 위의가 정숙하고 행보가 조용하며 한 길[尋] 앞만 보고 좌우를 돌아보지 않으며 마음을 집중하고 가는 것이 다른 사람과 같지 않구나. 또 머리와 수염을 깎았으며, 옷 색을 순전히 붉게 나무껍질로 물들여 흰 옷과 같지 않으며, 발우는 보랏빛으로 마치 흑연(黑鉛)과 같구나.’
그때 작병 천자는 신통력으로 그 말몰이꾼으로 하여금 태자에게 말하게 하였다.
‘대성 태자여, 이 사람은 출가한 사람이라 합니다.’
태자는 또 말몰이꾼에게 물었다.
‘출가라 하는 것은 어떤 행을 행하는 것이냐?’
말몰이꾼은 대답했다.
‘이 사람은 항상 착한 법을 행하고 비행을 멀리 떠나며 평등행과 보시행을 잘합니다. 모든 근(根)을 잘 조복하고 자신을 잘 조복하며 두려움 없음을 잘 베풀며 모든 중생들에게 큰 자비를 냅니다. 모든 중생들을 공포스럽지 않게 하며 모든 중생들을 살해하지 않으며 모든 중생들을 잘 보호해 생각합니다. 태자여, 이러한 까닭에 출가라 합니다.”
태자는 또 말몰이꾼에게 물었다.
‘너 착한 말몰이꾼이여, 이 사람은 모든 업을 잘 짓는구나. 왜냐 하면 법을 행한다는 것은 좋은 행이며……(중략)……중생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 수레를 몰아 저 출가한 사람 곁으로 가자.’
말몰이꾼은 명령을 받고 태자에게 아뢰었다.
‘태자의 명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수레를 끌어 출가인의 곁으로 갔다.
그때 태자는 그 출가인에게 물었다.
‘존자 대사여, 그대는 무엇하는 사람입니까?’
작병 천자는 신통력으로 그 출가 삭발한 사람으로 하여금 태자에게 대답하게 했다.
‘태자여, 저는 출가한 사람이라 합니다.’
태자는 또 물었다.
‘어진이여, 무엇 때문에 출가한 사람이라 합니까?’
그는 또 대답했다.
‘제가 일체 세간의 모든 것을 보니 다 무상합니다. 이런 것을 관하고 나서 세속의 모든 일을 버리고 친족을 멀리 여의고 해탈을 구하기 위해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어떤 방편을 행하여 모든 목숨을 살릴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일은 족함을 알고 법다운 행을 잘 행하며……(중략)……일체의 모든 생명을 살해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태자여, 이런 까닭에 저는 출가라 이름합니다.’
태자는 또 말했다.
‘어진 이여, 이런 업을 짓는다니 매우 훌륭하시오. 그대가 만약 모든 것이 다 무상한 법이라고 보았다면, 이와 같이 알고……(중략)……일체 중생에게 두려움 없음을 주며……(중략)……마음으로 모든 중생에게 살해할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며, 또는 목숨을 살리고 그에게 편안함을 베풀 것입니다.’
그때 게송을 읊었다.
세간이 멸하는 법인 줄을 관찰하고
다함 없는 열반을 구하려고 하는구나.
원수나 친한 이나 평등한 마음 내고
세간에서 욕락을 즐기는 일을 행하지 않는구나.
산 숲이나 나무 아래 의지해
혹 무덤 사이나 맨땅에 거처하며
일체 모든 유위법을 버리고
진여(眞如)를 관하며 밥을 빌어 사는구나.
그때 태자는 법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수레에서 내려 출가인 앞에 걸어가서 머리와 얼굴을 숙여 그에게 정례하고 세 번 돌고서 도로 수레 위에 앉았다. 그리고 말몰이꾼에게 명하여 도로 궁중으로 돌아왔다.
이때 궁중에 사슴 아가씨라 불리는 여자가 있다가 멀리 태자가 궁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애욕으로 게송을 읊었다.
정반대왕이 쾌락을 즐기시니
마하파사(摩訶波闍)는 근심이 없네.
궁 안의 채녀들 매우 고운데
뉘라서 이 성자의 곁에 당하랴.
그때 태자는 이 게송 읊는 소리를 듣자 온몸이 떨리고 눈물이 비오듯 했다. 다만 마음속으로 열반의 즐거움을 사랑하고, 청정한 모든 근은 열반을 향했으며,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제 저 열반을 취할 것이요, 나는 이제 저 열반을 증득할 것이요, 나는 이제 저 열반을 행할 것이요, 나는 이제 저 열반에 머물 것이다.’그때 정반왕은 궁정에 앉아 문무백관들에게 좌우로 에워싸여 있었는데, 문득 태자가 와서 합장하고 몸을 굽히고 서서 부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이제 제가 출가하여 열반을 구하고자 하니, 부디 허락하소서. 대왕이여, 굽어살피소서. 일체 중생에게는 다 이별하는 일이 있습니다.’
정반왕은 태자의 이런 말을 듣고 나자 코끼리가 나무를 흔들 듯 온몸이 벌벌 떨리고, 팔다리에 맥이 빠지며 눈에 가득 눈물이 고여 흐느끼는 소리로 태자에게 일렀다.
‘내 아들 태자여, 그 생각은 중지하라. 너는 지금이 출가할 때가 아니다. 나도 젊어서 모든 근이 움직일 때에는 아직 세간의 모든 근심을 알지 못했으며 법행을 행하지 않았다. 또 나쁜 욕심을 보지 않았고 고행을 하지 않았다. 네가 이런 마음을 내니 심히 참을 수 없도다. 내 아들 동자여, 어릴 때는 마음과 뜻이 안정되지 못하고 모든 근이 조복되지 못하여 조용한 수행처에 머물고자 하나 때로 고행을 감당하지 못하리라. 내 아들 동자여, 나도 늙어서 때가 되면 법행을 하고자 나라를 버리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는 고요하고 한적한 데 들어가 고행을 하려 하노라.
내 아들 동자여, 만약 네가 내 마음을 따르지 않고 내 말을 어기고 법행을 한다면 너는 어른의 말을 어긴 대가로 현세에 불선법(不善法)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이 정진하려는 마음을 급히 버리고 궁중에 머물며 집안에서 마음을 편안히 하고 속법(俗法)을 행하라. 내 아들 동자여, 세간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먼저 5욕락을 누린 뒤에 뜻을 세워 출가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태자는 대답했다.
‘대왕이여, 이제 이 자식의 출가할 마음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불이 붙어 사납게 불꽃이 이는 집에서 뛰쳐나가려 하는 것처럼, 그것은 힘센 사람이라도 막을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태어난 적이 있는 사람은 모두가 마침내 이별하게 됩니다. 만약 누군가 세간에 필연적으로 헤어짐이 있음을 깨닫고도 헤어지는 법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것은 착하고 이로운 것이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이 일을 하다가 이루지 못한 채 죽을 때가 이르러도 빨리 하지 못하면 이것은 잘하는 것이 아니고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부왕을 위하여 게송을 읊었다.
만약 모든 것이 결정코 무상함을 본다면
존재하는 모든 법이 마침내 부서짐을 본다면
차라리 세간의 모든 친족과 떠남을 참을지언정
죽음이 이르려 하니 할 일 속히 이루어야겠네.
그때 정반왕은 다시 간절히 태자에게 일렀다.
‘나의 아들 동자여, 결정코 나를 버리고 출가하지 못하리라.’
또 모든 대신들도 옛부터 내려오는 논(論)에 따라 각각 본 대로 태자에게 간하였다.
‘대성 태자여, 듣지 못하였습니까? 겁초 이래로 위타론(韋陀論) 가운데 옛날 모든 왕들은 젊었을 때는 각기 자기 나라에서 법답게 다스리다가 늙어서는 맏아들로 이어 각각 세자를 삼아 왕위를 전한 뒤에 산에 나가 법행을 닦았습니다. 이런 까닭에 대성 태자만 유독 선왕의 법을 어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 정반왕은 모든 대신들의 이런 말을 듣고 나서 눈물을 비오듯 흘리며 한마음으로 눈도 깜짝하지 않고 태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때 태자는 마음속에 의심과 걱정 때문에 즐겁지 않아 태자궁으로 돌아왔다. 태자가 궁에 이르자 모든 채녀들은 멀리서 태자를 보고 다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하고 혹은 얼굴에 교태를 지으며 혹은 춤추고 노래하며 혹은 몸으로 받들기도 했다. 태자가 앉은 것을 보자 각각 욕심을 내어 교태를 부리며 태자를 에워싸고 함께 즐기니, 자재천이 궁 안에 있을 때와 같이 위덕이 드높고 모든 것이 황홀하게 빛나고 즐기는 것도 그러하였다.그때 태자가 같이 태어나고 상호가 다 같은 형제들과 함께하며 항상 장엄하여 밤낮으로 유희하였더니, 태자의 모든 상호가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보고 속으로 희유한 생각을 내어 ‘월천자(月天子)가 스스로 땅에 내려오셨다’ 고 하였다.
저 채녀들은 태자의 이러한 상호를 보고 매우 부러운 마음을 내어 혹은 눈썹을 쳐들고 혹은 눈을 마주치고 혹은 입으로 소근거리고 혹 손짓으로 부르기도 했으나 태자의 위신력 때문에 그들의 욕심은 치성하지 못하고 또 웃지도 못하였다.
태자가 부왕 곁에서 나오자 정반왕은 말몰이꾼을 불러 말했다.
‘착한 말몰이꾼이여, 태자가 저 동산 숲에 가지 않았느냐?’
말몰이꾼은 대답했다.
‘대왕이시여, 굽어살피소서. 태자께서 저 동산 숲에 가려 하였는데, 중도에 이르러서 한 사람이 머리와 수염을 깎고 몸에 물든 옷을 입고 지팡이와 발우를 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을 보고서 수레를 돌려 궁중에 들어와 단정히 앉아 생각하고 계십니다.’정반왕은 이 말을 듣고 나서 이런 생각을 했다.
‘대선(大仙) 아사타의 말은 허망하지 않도다. 반드시 태자가 집을 버리고 출가할까 걱정이다. 나는 이제 다시 5욕을 증가하여 그가 물들고 애착하여 출가하지 않도록 해야 되겠다.’
그리하여 정반왕은 다시 5욕을 증가하여 태자가 궁 안에 머물며 쾌락을 누리게 하고, 출가하겠다는 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거듭 게송을 읊었다.
태자가 길에서 출가한 사람을 보니
몸에 나무껍질에 물들인 옷 입었네.
그것을 보고 무상도(無上道)를 구하고자
마음 깊이 오직 출가를 즐기네.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 끝없음을 보았고
출가해 밥을 빌어 사는 것을 보았네.
세간을 싫어하여 세 가지 우환을 버리고자
해탈을 사모하고 무위(無爲)를 구하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상처투성이
태자는 그런 괴로움을 여의고자 하네.
길에서 출가한 사람을 보고 나서
이야말로 참되다고 크게 기뻐했다네.
탐내고 성내는 모든 뿌리 버리고서
나도 삭발하고 산 숲에 들리라고
태자는 지극히 참된 법을 구하고자
그 사문을 보고 크게 기뻐하였네.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삼계를 벗어나려고 짐짓 동산을 구경했어라.
중도에서 속복을 벗은 사문을 보고
최상의 보리라고 크게 기뻐했다네.
정반왕은 다시 태자를 위하여 5욕락을 즐길 일을 더 많이 준비하였는데, 갖가지를 더욱 늘렸고, 또 궁전의 성곽 밖 사방을 빙 둘러 지키고 더욱 굳게 방비하였다.
높고 큰 토성을 따로 쌓고 궁전 둘레에는 깊은 참호를 파고 그 성가퀴에는 갖가지 7보 그물을 두르고, 그물 코마다 방울을 달아 울리게 만들었다. 궁궐 문을 엄중히 단속하여 아침 저녁 출입하며 여닫을 때 큰 소리가 나서 사방의 문 밖에까지 들리게 했다.
또 한량없는 군사와 수레ㆍ코끼리ㆍ말을 두고 사람들로 대오를 지어 서로 지키도록 하였는데, 그들에게 모두 잘 만든 튼튼한 갑옷을 입혔다. 그 다음 궁궐 밖에도 백천의 장사들을 두었는데 모습이 단정하여 볼 만하기 짝이 없었으며, 모두 다 모든 원적(怨敵)을 물리칠 인물들로서 몸에 갑주를 입고 손에 삼지창ㆍ화살ㆍ긴 칼ㆍ창ㆍ작은 창ㆍ철봉 등의 무기를 들고 안팎 성문에서 태자를 지키고 보호하였다.
그리고는 궁 안도 엄중히 단속하여 모든 채녀들은 밤낮으로 끊임없이 모든 음악을 연주하며 일체 오락을 제공하였고, 모든 여인들은 매혹시키는 재주를 펼쳐 5욕의 쇠사슬로 얽어 욕심에 애착하여 이것을 버리고 출가하지 못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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