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부자합집경(父子合集經) 10권
부자합집경 제10권
서천 서역 삼장 조산대부 시홍로경 선범대사 사자사문 일칭 등 한역
송성수 번역
20. 대범천왕수기품(大梵天王授記品)
그때 그 모임의 60구지 범천자(梵天子)들은 저 아수라왕과 내지 타화자재천 등이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을 보고, 또 여래께서 그들에게 수기하시는 말씀을 듣고는 매우 기뻐하면서 전에 없던 일이라 괴이하게 여겼다.
이 천자들은 이미 과거에 부처님께 친근하고 공양하여 선근을 쌓았고 선정을 깊이 닦아 세속법을 뛰어넘었으며,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각각 최상의 심심한 법의 즐거움을 얻고 환히 통달하여 모든 희론(戱論)을 떠나 결정적인 이해를 내었다.
그리하여 모든 법은 지음도 아니요 지음이 없음도 아니며 남[生]도 아니요 남이 없음도 아니며 얻음도 아니요 얻음이 없음도 아니며 다함도 아니요 다함이 없음도 아니며 떠남도 아니요 떠남이 없음도 아니며 때[垢]도 아니요 때를 떠남도 아니며 어리석음도 아니요 어리석지 않음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요 지혜 없음도 아니며 봄[見]도 아니요 봄이 없음도 아니며 취함도 아니요 취하지 않음도 아니며 공(空)도 아니요 공 아님도 아니며 상도 아니요 상이 없음도 아니며 원도 아니요 원이 없음도 아님을 알았다.
이 천자들은 이렇게 알고는 마음에 집착이 없어 모든 생각을 멀리 떠나고 의지하여 구하는 바가 없으며 아무 구하는 생각이 없었다. 짓는 자라는 생각이 없고 짓는 자의 법이라는 생각도 없으며, 범부라는 생각이 없고 범부의 법이라는 생각도 없으며, 성문이라는 생각이 없고 성문의 법이라는 생각도 없으며, 연각이라는 생각이 없고 연각의 법이라는 생각도 없으며, 보살이라는 생각이 없고 보살의 법이라는 생각도 없으며, 여래라는 생각이 없고 여래의 법이라는 생각도 없으며, 열반이라는 생각이 없고 열반의 법이라는 생각도 없으며, 윤회라는 생각이 없고 윤회의 법이라는 생각도 없었다. 이 천자들은 저 법의 성품이 허공과 같음을 알고 집착이 없어 불법 안에서 분별하는 생각을 떠났다.
그때 범천왕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고요한 뜻으로 부처님을 게송으로 찬탄했다.
여래는 평등한 슬기를 원만히 갖추시고
고요함의 행을 닦아 저 언덕에 이르렀으며
고요함의 법을 연설해 중생을 제도하시고
모든 세간이 언제나 고요함을 관찰하시네.
보리는 고요하여 본래 더러움이 없는데
고요함의 경계를 의지하여 어지러움이 없고
언제나 고요함의 감로(甘露)의 맛을 먹으면서
일체의 곳에 두루 다 통달하네.
이와 같은 고요함의 최상의 길을
잘 관찰하는 사람은 묘한 즐거움 얻고
여덟 가지 바른 길을 오래 닦아서
세간의 온갖 번뇌 결박을 잘 끊으시네.
고요함의 법을 닦아 보리를 증득한다는 것은
이는 바로 과거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결정코 능히 열반의 성(城)에 이르러
부처님과 같아서 다름없으리.
만일 누구나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의해
그것을 받들어 지니고 독송하며 부지런히 수학하여
고요한 해탈의 문을 구해 나아가면
일체 세간에 그보다 더 좋은 것 없으리.
평등하고 고요한 길을 잘 닦으면
모든 감관이 고르고 순종해 항상 청정하고
온갖 복과 지혜를 갖추어 두루 장엄하여
마치 나라연(那羅延)이 큰 힘을 가진 것 같으리.
만일 고요한 감로(甘露)의 법을 알면
곧 능히 모든 상(相)을 다 떨쳐버리고
세간에 의지할 데 없음을 관찰하리니
그를 일러 여래의 최상의 제자라 하네.
이 사람은 오래 전부터 모든 부처님 만나
끝이 없는 훌륭하고 좋은 인을 심었으므로
이 고요한 등지(等持)의 문(門)을 통달해
모든 혹(惑)을 다 떨쳐버리고 번뇌에 물들지 않네.
바른 생각과 정진의 힘을 갖춤으로 말미암아
아첨과 게으른 생각을 모두 버리고
생사(生死)가 바로 곧 열반임을 아나니
이 세상의 모든 상을 잘 떠났기 때문이네.
모든 부처님께서 이 세간에 나오시어
고요한 해탈의 법을 연설하실 때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깨치고 의혹이 없어
윤회(輪廻)의 바다를 아주 벗어나네.
만일 누구나 5온(蘊)에서 해탈을 구하고
고요한 법을 사랑하고 즐거워하지 않으면
다만 5온의 법이 견고하지 않은 것만 깨닫고
부처님의 보리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내네.
욕심을 떠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해탈을 구하면
밝은 슬기로 능히 잘 가리어 결정하는데
욕심에 집착하고 상을 취하는 어리석은 사람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열어 보이지 않네.
만일 적멸을 취하면 그것도 결박이어서
일체의 지혜를 성취할 수 없나니
일체의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야
그것을 일러 상이 없는 행에 잘 머문다 하네.
이름이 없는 안온한 곳에 능히 이르러
맑고 깨끗한 부처님의 공덕을 얻으면
갖가지 논쟁을 그치고 악마를 항복 받고
일체의 번뇌의 결박을 잘 끊을 수 있으리.
나는 평등하고 고요한 뜻으로
모니의 복덕을 찬탄하나니
그것을 법계의 모든 유정들에게 회향하여
다 함께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리이다.
그때 대범천왕이 모든 범중(梵衆)의 천자들이 게송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한 것을 알고는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게송으로 말하였다.
모니께서는 이 세간의 법을 잘 아십니다.
결정코 비고 거짓됨이 빈주먹과 같고
또한 가을 구름과 번갯불과 같음을
부처님께서 항상 나타내 보여 모든 허망을 없애십니다.
마치 사람이 꿈속에서 굶주림의 핍박을 받다가
아주 묘한 밥을 먹고 온갖 맛난 반찬 먹지만
필경에는 음식도 없고 또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여래가 증득하신 법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또는 꿈속에서 몹시 목이 마른 사람이
맑고 시원한 감로수를 마시는 것과 같아
알아야 하나니, 그 목마르고 물 마심 모두가 없음을.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법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꿈속에서 미묘한 말 들었다 하더라도
저 말의 모습을 참으로 얻을 수 없어서
또한 말한 자와 듣는 이가 없나니
법이 그러함 알고서 의혹이 없습니다.
또 공후(箜篌)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만
그 소리는 본래 제 성품이 없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5온을 보는 이치도 그와 같아서
5온의 제 성품을 얻을 수 없음을 압니다.
짓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고 중생도 없고
짓는 바 업도 없고 받는 과보도 없고
또한 그 과보를 받는 사람도 없나니
부처님께서는 이 이치를 잘 아십니다.
비유하면 마니주의 본체가 밝게 트여
옷 위에 그것 놓으면 빛을 따라 변하는 것처럼
모든 법의 제 성품은 본래 티끌 없지만
그 분별함을 따라 더욱 더러워집니다.
또 부는 고동이 큰 소리를 내는 것과 같아서
그 소리나는 곳을 찾은들 무엇을 얻겠습니까?
그 소리의 제 성품은 본래 공하나니
부처님께서 모든 법을 아시는 것도 그러합니다.
또 세간의 향기롭고 맛난 음식
그것은 여러 가지 맛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져
음식의 제 성품을 관찰하면 본래 공한 것처럼
부처님께서 모든 법을 아시는 것도 그러합니다.
천제(天帝)의 당기가 아주 높이 매달려
아무런 생각 없이 모든 색상을 나타내지만
저 당기의 자성이 본래 공한 것처럼
대선(大仙)께서 증득하신 법도 그러합니다.
또 이 몸뚱이가 온갖 인연으로 이루어져
그 체성(體性)을 찾아보아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알아야 하나니, 모든 온(蘊)은 본래 그러함을.
여래가 증득하신 법도 또한 그러합니다.
또 북을 두드려 내는 그 소리가
듣는 이들로 하여금 모두 기쁘게 하지만
그 소리는 본래 공인 것처럼
여래가 증득하신 법도 또한 그러합니다.
또 사람이 북채로 북을 두드리는 것 같아
그 소리 오는 곳을 찾은들 어디서 오며
다시 사라지는 곳을 찾은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듯이.
여래가 증득하신 법도 또한 그러합니다.
또 북의 소리가 미워하거나 사랑함이 없어
젖은 인연을 떠나면 곧 소리를 내는 것처럼
이 몸이 허망하고 거짓임은 본래 그렇고
여래가 증득하신 법도 또한 그러합니다.
또 사람이 북을 두드려 소리를 낼 때
그 소리는 저절로 나와 부름이 없는 것처럼
이 몸도 그와 같아 제 성품이 공함을 아나니
여래가 증득하신 법도 또한 그러합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모든 범중과 대범왕 등의 마음속을 아시고, 그들이 고요한 뜻으로 여래를 찬탄해 마치자, 곧 입 안에서 큰 광명을 내어, 그들이 그 광명을 보고는 견고한 바른 견해로 더욱 깨끗한 슬기를 내게 하셨다. 그러자 존자 마승 비구가 게송으로 여쭈었다.
여래가 지금 기이한 현상을 나타내시어
깨끗한 광명을 놓으심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모든 하늘과 사람과 용과 또 귀신들은
이 신변(神變)을 모두 의심합니다.
최상이신 모니 조어사께서
이런 상서 나타내심은 까닭 없지 않으리라.
원하옵나니, 이 광명의 그 연유 말씀하시어
이 모인 대중들로 하여금 그 마음 기쁘게 하소서.
저희들은 일심으로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내어
인자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잠깐도 눈을 안 떼나니
만일 부처님의 그 범음성(梵音聲)을 들을 수 있으면
각각 의심을 풀고 믿음과 이해를 낼 것입니다.
여래가 이런 신통의 일을 나타내심은
반드시 모든 중생을 어여삐 여기심이리이다.
무슨 인연으로 이런 깨끗한 광명을 놓으십니까?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설명하여 주소서.
큰 성인이신 모니의 방편의 힘은
지금 이 대중들로 하여금 증상심(增上心)을 내게 하십니다.
이 대중들은 합장하고 부처님 앞에 섰습니다.
원하옵나니, 여래께서는 빨리 연설해 주소서.
그때 세존께선 마승 비구를 위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승아, 너는 이 광명을 보아라.
이것은 유정들을 두루 성숙시키기 위해서이다.
지금은 이 대중이 만일 내 말을 들으면
그들은 곧 보리에서 퇴전하지 않으리라.
대범천왕과 저 범천의 대중들
법의 성품을 잘 통달하고 의혹을 없애나니
저들은 이미 나유타의 겁 동안
끝이 없는 맑고 깨끗한 행을 닦아 익혔느니라.
모든 경계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이 없고
그 마음은 허공과 같아 아무 걸림 없으며
항상 모든 유정을 이롭고 즐겁게 하기를 원해
보리의 결과를 취하여 증득하지 않았다.
저들은 다시 오는 세상에서는
한량이 없는 구지의 겁을 지나
해탈의 문을 원만히 닦아 증득하고
끝이 없는 큰 인내의 힘을 성취하리라.
그런 뒤에야 위없는 도를 이루게 되어
그 명호를 대인력(大忍力) 여래라 하고
모든 중생을 제어해 항복하고 포섭해 교화하고
이 세간을 모두 비고 고요한 것이라 관찰하리라.
그 부처님의 수명은 극히 길고 오래인데
모두 함께 옛날에 여러 겁 동안 수행하여
큰 위엄과 공덕, 또 명예를 모두 갖추고
유정들이 나고 죽는 괴로움을 잘 구제하리라.
그 부처님의 국토는 극히 장엄하고 깨끗하며
부(富)하고 즐거우며 풍요하여 그 짝이 없었나니
설사 나유타의 겁 동안
그 공덕을 말하여도 다하지 못하리라.
그 부처님께서 설명하는 법은 생각하기 어렵나니
제 성품이 비고 고요해 의지하는 곳이 없으며
그 국토에 사는 모든 중생들
좋은 인(因)을 성숙시키어 줄어드는 일이 없다.
그들은 모두 윤회의 괴로움의 끝을 다하여
다시는 한번도 뒤에 날 몸[後有身]을 받는 일 없고
또한 귀신이나 축생이나 지옥이란 이름도 없고
오직 변천해 흐르는 ‘제행(諸行)이 고(苦)함’만 있을 뿐이다.
제행이 무상함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각각 훌륭한 서원을 세우고 이 세계를 싫어하리니
그러므로 그 나라에 사는 모든 유정들은
모두 늙음과 병과 죽음을 능히 아주 떠나게 되리라.
또 저 유정들은 선을 잘 닦고 지어
귀로는 다시 다른 소리를 듣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이란 무아(無我)와 무상(無常)과
고(苦)와 공(空)과 적정(寂靜)과 무상(無相)의 법뿐이다.
부처님 말씀을 받들어 지녀 방일하지 않고
언제나 순수하고 깨끗한 진실한 행을 닦으면서
감로(甘露)의 해탈문(解脫門)과
최상이요 가장 훌륭한 보리의 도를 구하여 나아간다.
그 국토에 있는 모든 절의
담장이나 벽이나 숲의 나무들
모두 맑고 깨끗한 묘한 법음(法音)을 내나니
그것을 듣는 이는 모두 불퇴(不退)의 자리에 오른다.
이것은 바로 여래의 신통의 힘 때문이니
그것이 이런 여덟 가지 범음성(梵音聲)을 내면
그 소리 듣고는 나고 죽는 흐름을 등지고
적정(寂靜)의 진실하고 항상된 즐거움을 깨닫는다.
그 국토에 사는 모든 중생들
그들은 이미 과거에 항하의 모래 수 같은 겁 동안에
보리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수행했나니
이제는 반드시 차례로 부처를 이루리라.
대범천왕과 그 범중(梵衆)들
언제나 적멸(寂滅)의 이치를 닦아 증득함으로 말미암아
그 때의 그 부처님과 또 중생들은
다 함께 적멸(寂滅)의 감로와 같은 맛을 먹으리라.
다시 중생 세계가 본래 공함을 관찰하되
일찍이 잠깐도 피로하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나니
그러므로 능히 모든 법의 성품에 두루 들어가
언제나 적정의 상(相)이 없는 행을 닦는다.
21. 광음천수기품(光音天授記品)
그때 그 모임에 있던 80구지의 광음천자(光音天子)들은 아수라왕과 내지 범천왕 등이 세존께 각각 신기한 변화를 나타내어 온갖 공양을 올리는 것을 보고, 또 여래께서 그들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기별을 주시는 말씀을 듣고는 전에 없던 일이라 하여 기뻐하였다.
이때에 광음천왕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부처님 앞에 서서 아뢰었다.
“조명제법(照明諸法)이라는 삼마지가 있습니다. 만일 어떤 보살이 이 삼마지를 잘 닦아 익히면 일체 모든 법에 들어가 이해할 것이며 다시 무량한 변재를 얻을 것입니다. 이른바 집착이 없는 변재와 가지(加持)한 변재ㆍ교묘한 변재ㆍ아름답고 묘한 변재ㆍ뜻에 맞는 변재ㆍ결박을 떠난 변재ㆍ안온한 변재ㆍ매우 깊은 변재ㆍ미묘한 변재ㆍ짝이 없는 변재 등이며, 나아가서는 여래께서 가지신 최상의 변재를 얻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조명제법 삼마지라 하는가 하면, 만일 보살이 이 삼마지를 얻으면 모든 법에 대해 심사(尋伺) 및 작의(作意)가 없고 만일 이것을 떠나면 의혹이 없으며 만일 모든 법에 대해 의혹을 끊으면 일체의 곳에 통달하여 걸림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저 모든 법은 자성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만일 모든 법에 자성이 없음을 알면 그 보살은 곧 ‘아자의문(阿字義門)’에 들어가 이해할 것이니 이른바 ‘아(阿)’ 자(字)는 지음이 없고, ‘아’자는 보변(普遍)이며, 아자는 유위가 아니요 아자는 무위가 아니며, 아자는 성취하지 못할 것이 없고 아자는 의지하는 데가 없으며, 아자는 움직임이 아니요 아자는 어지러움이 아니며, 아자는 분별이 아니요 아자는 분별을 떠난 것이 아니며, 아자는 필경이 아니요 아자는 산괴(散壞)가 아니며, 아자는 형색이 아니요 아자는 현색(顯色)이 아니며, 아자는 주지(住持)가 아니요 아자는 정주(定住)가 아니며, 아자는 앎이 아니요 아자는 봄[見]이 아니며, 아자는 말이 아니요 아자는 말을 떠난 것이 아니며, 아자는 사의(思議)가 아니요 아자는 사의를 떠난 것이 아니며, 아자는 오고 감이 아니요 아자는 듦과 남이 아닙니다.
또 아(阿)자는 겉이 있는 것이 아니요 아자는 겉이 없는 것도 아니며, 아자는 이름이 아니요 아자는 모양이 아니며, 아자는 대치(對治)가 아니요 아자는 복장(覆障)이 아니며, 아자는 다함이 아니요 아자는 다함이 없음도 아니며, 아자는 둘이 아니요 아자는 둘이 아님도 아니며, 아자는 진실이 아니요 아자는 허망도 아니며, 아자는 구함이 아니요 아자는 구함을 떠난 것도 아니며, 아자는 깨끗함이 아니요 아자는 깨끗함을 떠남도 아니며, 아자는 집착이 아니요 아자는 집착을 떠남도 아니며, 아자는 남[生]이 없으나 나지 않는 것도 아니요 나야 할 조그만 법도 없으며, 아자는 멸함이 없으나 멸하지 않는 것도 없고 멸해야 할 조그만 법도 없으며, 아자는 공하지 않으나 공하지 않은 것도 없으며 아자는 상이 없으나 상 아닌 것도 없으며, 아자는 원이 없으나 원하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깨쳐 들어가면 희론(戱論)이 아님을 아나니, 이것을 아자의문(阿字義門)을 깨쳐 들어가는 것이라 합니다.
세존이시여, 또 모든 법은 마음으로부터 생기며 아(阿)자로 말미암아 달(達) 자(字)를 끌어냅니다. 만일 달자문(達字門)을 깨쳐 들어가면 일체의 교법(敎法)을 깨쳐 들어갈 것이니, 이른바 함이 있는 법과 함이 없는 법, 표시 있는 법과 표시 없는 법, 세속법과 승의법을 깨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승의법이란 오직 하나인 진여(眞如)이니 말로써 설명해 나타낸들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갖가지 일을 하는 것과 같아서 꿈의 경계는 진실이 아니요 다만 거짓 이름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깨고 나면 다 마음으로 지은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빈 골짜기가 음향을 전하는 것과 같아서 자성에는 진실이 없고 화합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또 요술쟁이가 요술을 부리는 것과 같아서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고 진실로 있다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또 아지랑이를 보고 망령되게 물 생각을 내는 것과 같아서 지혜로운 이는 본래 그 실체가 없는 것임을 압니다. 세존이시여, 또 거울 속에 나타나는 모든 색상과 같아서 망령되게 분별을 내지마는 실체는 얻을 수 없습니다. 모든 법성이 공한 것도 이와 같아서 다만 저 어리석은 사람을 기쁘게 할 뿐이요 필경에 모든 법은 본래 적정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옛날 과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승의제의 법을 듣고 진실한 견해를 얻었습니다.”
이 천자들은 이렇게 말하여 부처님의 인가(印可)를 받았다. 그리하여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세존께서는 제일의(第一義)를 잘 통달하셨나니
그러므로 차례로 법을 잘 말씀하시네.
총명한 슬기를 가진 모든 부처님의 참 제자들
부처님의 가르침의 바다에 잘 유희하네.
지혜가 적은 세간의 모든 어리석은 자는
‘나[我]’에 집착하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지만
‘나’와 또 ‘나의 것’이란 본래 공한 것이어서
시방을 두루 찾아보아도 얻을 수 없네.
마치 아지랑이를 보고 본래 물이 아니건만
어리석은 자는 망령된 생각으로 물이라 아는 것처럼
이와 같이 전도된 집착으로 ‘나’라고 하나니
그것은 번뇌에 물든 슬기로써 참 지혜를 모르기 때문이네.
다섯 욕심에 대해 사랑과 즐거움을 내기 때문에
나고 죽는 온갖 고초를 갖추어 받지마는
모든 온(蘊)은 제 성품이 본래 공한 것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잘못하여 여러 갈래의 윤회에 떨어지네.
저들은 바른 지혜가 없어 마음이 어지럽고
온갖 괴로운 경계를 망령되이 즐거움이라 하며
세 가지 독(毒)의 불에 오랫동안 타면서
일찍이 깨닫지 못하고 두려움을 내네.
어리석은 사람은 온갖 더러운 유혹을 싫어하지 않고
원수를 친한 벗이라 하여 따르는 것처럼
여래가 말씀하시는 승의의 공(空)을 듣고는
도리어 두려움을 내거나 혹은 업신여기네.
마치 이 세간에 겁이 많은 사람이
비록 예리한 칼을 가지고는 두려워하는 것처럼
여래는 바른 법을 연설하시니
이른바 비밀한 아(阿)자이네.
최상의 진실한 슬기 내시니
평탄한 땅에 교목(喬木)이 난 것 같나니
여러 악마 군사들을 잘 항복시키고
위없는 보리의 도를 빨리 증득하셨네.
모니의 모든 훌륭한 제자들
이와 같은 제일의를 다 알고는
스스로 세 가지 독(毒)의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독에 걸린 다른 사람을 보면 법의 약을 보시하네.
여덟 가지 바른 길의 큰배로
중생들을 실어 날라 유(有)의 바다에서 나오게 하고
모든 법이 본래 공함을 알게 하여
온갖 그릇된 주장과 허망한 분별을 쉬게 하네.
현명한 사람이 삿됨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옴은
과거에 일찍이 그 좋은 인을 닦았기 때문이니
법의 본체와 성품이 본래 공함을 알면
마음에 집착이 없어 곧 해탈하리라.
만일 법의 성품이 곧 부처와 같은 줄 알면
그를 일러 큰 지혜의 나라연이라 하네.
모든 법의 성품이 공하지만 공함 또한 없고
또한 결박도 없거니와 결박하는 자도 없네.
진여(眞如)는 적멸하여 모든 상을 떠났고
그 본체는 더러운 것도 아니요 깨끗한 것도 아니네.
그것은 법이(法爾)로서 본래 그러하나니
번뇌의 결박도 아니요 또한 끊을 것도 없네.
이와 같이 모든 법의 성품을 알면
이 사람은 오래지 않아 보리를 얻을 것이며
스스로를 능히 제도하고 남도 이롭게 하며
바른 이치를 잘 말하면서도 갚음을 바라지 않네.
유정은 항상 허망한 생각을 내어
경계에서 남자와 여자의 모습에 집착하여
어리석고 더러운 마음을 더욱 자라게 하나니
마치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보고 달리는 것 같네.
그 여러 가지 업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세계에 나는데
이 업은 다 허망한 생각에 의해 생기는 것이네.
업의 본체와 성품이 본래 공한 것임을 알면
필경에는 그 업을 짓는 사람도 없네.
저희들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그 뜻 알도록
생각하기 어려운 묘한 법문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모니 대도사님께 귀명하옵나니
모든 감관이 적정하여 집착함이 없네.
여래는 맑고 깨끗해 더러움 없고
끝이 없는 공덕의 바다를 성취하시고
삼계 가운데서 등불이 되셨나니
모든 하늘의 묘한 공양을 받으실 만하네.
저희들은 지금 이 큰 모임에서
능인(能仁)의 큰복을 찬탄하네.
장하십니다. 견줄 데 없는 이족존(二足尊)께서는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의 뜻을 다 아시네.
이 얻은 바 선근의 힘을
3유(有)의 모든 중생들에게 돌려 베풀고
오는 세상의 저 정토(淨土)에서
모두 보리의 결과를 성취하기 원하옵니다.
그때 세존께선 광음천자들의 생각과 그들이 불법을 밝게 통달하고, 뛰어나고 광대한 변재를 갖추고 여래의 수기를 바라는 것을 아시고, 곧 입 안에서 큰 광명을 놓았다. 그러자 존자 마승 비구는 이것을 보고는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게송으로 여쭈었다.
큰 슬픔으로 이 세간을 구호하시는 어른
상서로운 공덕 무더기를 성취하시고
방편의 힘으로 모든 의혹을 풀어 주십니다.
이 광명을 놓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여기 이 대중이 만일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
마음에 깨끗한 믿음을 내고 결정코 알아
부지런히 묘한 행을 닦고 보리로 나아가
윤회하는 생사의 바다를 뛰어넘을 것입니다.
일체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들
늙음과 병과 죽음의 핍박을 받을 때
여래는 언제나 크게 슬퍼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구제하여 여덟 가지 성도를 닦게 하십니다.
저들은 용맹스러운 큰 정진으로 말미암아
깊은 마음이 견고하여 물러남이 없어
이와 같은 묘한 법문을 즐거이 닦으면서
맹세코 보리를 증득하고 부처 지혜 구하려 하나이다.
지금 여기 모인 이 대중은 딴 생각 없고
일심으로 부처님의 인자한 얼굴을 우러러 보면서
여래의 미묘한 음성을 듣고는
의심 그물을 풀고 기뻐하기 원하옵니다.
부처님께서 이런 신변의 일을 나타내시어
입 안에서 이 깨끗한 광명을 놓으시는 것 보면
마치 고질병을 앓는 이가 용한 의사 만난 것 같고
또한 어린애가 인자한 어머니를 돌아보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깊은 법의 이치를 묻고는
넓고 큰 자비의 원력을 만족시키고
이 최상의 비밀한 문을 얻었기에
부처님께서 나타내시는 이 드문 일을 감득하였나이까?
여기 모인 대중들 마음으로 모두 크게 기뻐하면서
부처님께서 광명의 인연을 말씀하시기 바라옵니다.
각각 맑고 깨끗한 마음을 원만히 잘 갖추고
이와 같은 삼마지를 닦아 익히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마승 비구를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승은 능한 변재를 원만히 갖추고
대중의 마음에 잘 응하여 이렇게 묻는구나.
지금 바로 그 때의 까닭을 말하리니
이것은 곧 여래의 신변(神變)의 힘이니라.
이 모든 광음천자들은
과거에 일찍이 무수한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세간에서 괴로워하는 중생들을 관찰하고는
부처의 도를 구해 제도하려고 맹세했었다.
이미 넓고 큰 진실한 행을 닦았거니
결정코 장차 일체의 지혜를 얻어
저 그릇된 견해로 깊이 집착하는 이들을 위해
지시하여 모두 바른 도에 돌아가게 하리라.
저들은 부처의 바른 가르침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그 이치의 맛에 깊이 들어가 존중하는 마음 내되
마치 저 세간의 모든 여자들
기꺼이 아들을 얻어 마음에 만족하는 것 같으리.
이 모든 천자들은 마음이 맑고 깨끗하여
위없는 부처님의 보리를 뜻에 두고 구하여
일찍이 나유타의 겁 동안
남을 이롭게 하는 뛰어난 행을 닦았다.
그 교화된 중생은 한량이 없는데
모두 대승의 마음을 잘 일으키고
복과 지혜의 상(相)을 두루 갖추어 몸을 장엄하고
저 성수겁(星宿劫) 동안에 다 부처되리라.
저 모든 천자들이 부처를 이룰 때에는
그 국토는 무량 백천억이요
넓고 뛰어나고 묘하여 불가사의하며
갖가지 장엄은 그 짝이 없으리라.
세 가지 나쁜 세계와 여덟 가지 무가(無暇)는
저 모든 부처 국토에서는 들은 적이 없으며
또한 2승(乘)을 구해 증득하는 사람도 없고
제각기 모두 물러나지 않는 자리에 오른다.
또 저 모든 부처 국토 안에는
거기 사는 유정들의 수명이 모두 같아
10억 항하의 모래의 수만큼 오래 살면서
언제나 모든 부처님을 잘 받들어 섬긴다.
만일 나유타의 중생들로 하여금
2승의 법에 의해 멸도(滅度)를 취하게 하더라도
그것은 혹은 남자나 혹은 여자로 큰 행을 닦는
한 사람을 잘 교화하는 것보다 못하느니라.
처음의 복 무더기를 이것에 견준다면
백천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거늘
하물며 많은 사람들을 권하고 격려하여
대승의 보살도에 편히 머물게 함이랴.
마승아,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야 한다.
여래가 이 세상에 나오는 일은 매우 드무나니
비유하면 저 우담바라꽃을
무변한 겁 지내도 만나기 어려움 같다.
좋고 교묘한 방편으로 설법하는 스승은
진실한 무위(無爲)의 도를 잘 가르치나니
적정한 보리를 뜻에 두고 구하는 사람은
그를 공경하고 언제나 친근해야 하느니라.
나유타 수의 모든 천자들은
묘한 보배 옷을 흩으면서 공중에서 내려와
다시 맑고 깨끗하고 묘한 게송으로
여래의 훌륭한 공덕을 찬탄하였다.
부처가 말한 적정한 감로의 법은
중생들의 번뇌의 뜨거움을 잘 없앤다.
만일 여래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면
점차로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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