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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660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6권

by Kay/케이 2024.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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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6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제6권

담무참 한역
김월운 번역

11) 인품(忍品)어떤 것이 보살의 찬제(羼提)바라밀인가? 간략히 말하면 아홉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인(自性忍)이요, 둘째는 일체인(一切忍)이요, 셋째는 난인(難忍)이요, 넷째는 일체문인(一切門忍)이요, 다섯째는 선인인(善人)이요, 여섯께는 일체행인(一切行忍)이요, 일곱째는 제뇌인(除惱忍)이요, 여덟째는 차세타세락인(此世他世樂忍)이요, 아홉째는 청정인(淸淨忍)이다.어떤 것이 자성인인가? 보살이 사유의 힘에 의하지나 혹은 천성으로 남이 주는 불이익의 일을 참되 모든 인욕은 탐욕 있는 마음과 순일한 비심(悲心)에 의하는 것이니, 이를 자성인을 간략히 말한 것이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인(一切忍)인가? 간략히 말하면 두 가지 있으니, 첫째는 재가의 경우요, 둘째는 출가의 경우이다.
이 두 가지에 각각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타불요익인(他不饒益忍)이요, 둘째는 안고인(安苦忍)이요, 셋째는 법사유해인(法思惟解忍)이다.타불요익인이라 함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오는 끊임없는 큰 고통이나 남이 해코지하는 일이 눈앞에 절박하거든 보살은, ‘이는 내 스스로의 업으로 지은 허물과 죄에서 생긴 것이다. 전에 지은 죄업으로 오늘의 고통을 받으니 오늘 참지 않으면 다시 미래의 큰 고통의 인연이 된다. 내가 지금 스스로가 거듭 괴로움을 만드는 것이지 다른 이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또 이 몸이나 그가 모두 유위행고(有爲行苦)인데 그가 무지한 까닭에 나의 본래 가지고 있는 괴로움[性苦] 위에 다시 괴로움을 더해 주고 있지만 나는 지혜가 있거니 어제 그 고통을 더하리오. 또 성문들도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거늘 하물며 보살로서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는 처지이겠는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한 뒤에 다섯 가지 생각을 닦아 익히어 원수와 친한 이를 통틀어 하품ㆍ중품ㆍ상품의 괴로움이나 즐거움, 덕 있는 이와 덕 없는 이 등이 주는 괴로움을 모두 능히 참는다.어떤 것이 다섯 가지 생각인가? 첫째는 본친속상(本親屬想)이요, 둘째는 법수상(法數想)이요, 셋째는 무상상(無常想)이요, 넷째는 고상(苦想)이요, 다섯째는 섭취상(攝取想)이다.
본친속상이라 함은 보살이 생각하기를 ‘오랜 옛날부터 친한 적이 없는 이라도 모두가 부모ㆍ형제ㆍ자매ㆍ화상ㆍ아사리ㆍ스승 등 모두가 존중히 여겨야 할 권속이다’라고 한다. 그 중생들이 미워하고 원망할 때 이와 같이 바르게 생각하면 원망하고 미워하여 이익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본래부터 친한 이라는 생각에 머문다. 본래부터 친한 이라는 생각에 머무르면 다른 이가 해코지하는 것을 경계를 모두 참아내는 것이다.법수상(法數想)이라 함은 보살이 생각하기를 ‘인연행수(因緣行數)와 법수(法數:같은 또래의 법)에는 나와 중생의 수명도 없으며, 태어남도 없고 꾸짖는 이도 때리는 이도 다투는 이도 없다’고 한다. 이와 같이 바르게 생각할 때에 중생이라는 생각을 여의고 법수상에 머무르며, 법수상에 의해 머무른 뒤에는 다른 이가 해코지하는 것을 모두 찾아내는 것이다.무상상(無常想)이라 함은 보살이 생각하기를 ‘일체 중생이 일으키는 것은 모두가 무상한 죽음의 법이요, 그 위에 다시 이익되지 못한 일이 있어 그 목숨을 끊으려 한다. 이렇듯 무상한 중생은 그 본성이 죽은 법이기에 지혜로운 이는 깨끗하지 않은 마음을 일으키지도 않거늘 손이나 돌이나 칼이나 몽둥이로 그의 목숨을 끊을까보냐?’라고 하다. 이와 같이 바르게 생각할 때에 항상 견고하다는 생각을 여의고 무상하여 견고치 않다는 생각에 머무르며, 무상하다는 생각에 머무른 뒤에는 다른 이가 해코지하는 것을 모두 참아내는 것이다.고상(苦想)이라 함은 보살이 관찰하기를 ‘큰 힘이 구족한 이도 행고(行苦)ㆍ변고(變苦)ㆍ고고(苦苦)의 세 가지 상을 여의지 못하거늘, 하물며 갖추지 못한 자이겠는가?’ 한다. 이어 보살은 생각하기를 ‘항상 괴로워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고통을 여의게 해야 할 것이거늘 어찌 보복을 하여 그 고통을 더하겠는가?’ 한다. 이와 같이 바르게 생각할 때에 즐겁다는 생각을 여의고 괴롭다는 생각에 머물며, 괴로움을 참는다는 생각에 머무는 뒤엔 다른 이가 해코지하는 것을 모두 참아내는 것이다.섭취상(攝取想)이라 함은, 보살이 생각하기를 ‘나는 모든 중생에게 보리심을 내었고 모든 중생에게 친척이라는 생각을 내었으니, 내가 이제 그들을 두루 거두어 모두 아락케 하리라. 친속인 중생이기에 마땅히 이롭게 해야 할 곳에 도리어 이롭지 못한 일로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 한다. 이와 같이 바르게 생각할 때에 남이라는 생각을 멸해 제거하고 거두어 주리라는 섭취상에 머무르며 섭취상에 머무른 뒤에는 다른 이가 해코지 하는 것을 모두 참아내는 것이다.무엇을 참는다 하는가? 성내지 않고, 보복하지 않고 한탄하는 마음을 품지 않으면 이를 참는다 한다.안고인(安苦忍)이라 함은 보살이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예전부터 항상 5욕의 일을 구하여 모든 고통의 원인을 만들어 무량한 큰 고통을 받았으니, 이른바 세상을 살아가는 생업[營世生業]과 재산 늘리기[治生種殖]와 왕가를 받드는 일[奉事王家] 등으로서 이러한 일을 경험하지 않은 것이 없으나 모두가 어리석고 무지한 때문이었다. 이제 즐거움의 인[樂因]을 닦아 익히어 선법을 구족하면, 무량한 뭇 고통도 모두 참을 수 있거늘 하물며 작은 고통이겠는가?’ 한다. 이와 같이 바르게 생각할 때에 지혜가 구족해서 모든 괴로운 일을 모두 참아낸다.모든 괴로운 일에는 여덟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의처(依處)요, 둘째는 세법처(世法處)요, 셋째는 위의처(威儀處)요, 넷째는 섭법처(攝法處)요, 다섯째는 비구수계처(比丘隨戒處)요, 여섯째는 방편처(方便處)요, 일곱째는 이중생처(利衆生處)요, 여덟째는 제소작처(諸所作處)이다.의처라 함은 네 가지 의지하는 법을 말하니, 바른 법에 의해 출가해서 비구의 자격을 얻는 것이다. 보살은 설사 거칠고 자잘하고 떫고, 헤지고 더러운 공양구를 만났거나 공경치 않는 무리나 때 없이 장애를 주는 일을 만나더라도 근심하는 일이 없다. 보살은 그러한 갖가지 괴로움 속에서도 정진을 버리지 않나니, 이를 인의처의 괴로움을 참는 것이라 한다.세법처(世法處)라 함은 아홉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불리(不利)요, 둘째는 불칭(不稱)이요, 셋째는 훼(毁)요, 넷째는 고(苦)요, 다섯째는 괴법괴(壞法壞)요, 여섯째는 진법진(盡法盡)이요, 일곱째는 노법노(老法老)요, 여덟째는 병법병(病法病)이요, 아홉째는 사법사(死法死)이다.
이 모든 법은 합하거나 여의거나 간에 뭇 고통을 내기 때문에 세법처라 하나니, 보살이 그러한 뭇 고통에서도 정진을 버리지 않으면 이를 세법처의 괴로움을 참는 것이라 한다.위의처(威儀處)라 함은 네 가지 위의가 있으니 행ㆍ주ㆍ좌ㆍ와(行住坐臥)이다. 이 보살이 다니건 앉건 밤낮 두 시각에 가린 장애를 제거하고 마음이 청정해져서 때 아닌 때에는 와상(臥床)인 좌상(坐床)이나 풀 자리나 잎자리에 눕지 않으며, 이로 인해 고통이 생기더라도 모두 참아낸다. 보살이 그러한 뭇 고통을 버리지 않고 정진하면 이를 위의처의 괴로움을 참는 것이라 한다.섭법처(攝法處)라 함은 일곱 가지가 있으니, 삼보께 공양하고 덕있는 이에게 공양하고 바른 법을 청해 묻고, 남에게 널리 설명하고 못한 음성으로 찬탄하고, 혼자서 조용히 생각하고 마지막에 분량에 맞추어 관찰하여 기억하고 받아들인 뒤엔 지관(止觀)을 닦아 익히는 것이다.
보살이 이 일곱 가지 법의 방편을 닦아 익히면 일어나는 뭇 괴로움을 모두 참아내게 되어 마침내는 이로 인해 바른 방편을 버리지 않는다.비구수계처(比丘隨戒處)라 함은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겉모양을 헐고 머리와 수염을 깎아 세속의 모습을 버리는 것이요, 둘째는 괴색(壞色)의 옷을 입는 것이요, 셋째는 세속에서 행하던 법답지 못한 행을 버리고 마음을 정념(正念)에 머무는 것이요, 넷째는 남에게 의존해서 살아가고 세속의 사업을 버리는 것이요, 다섯째는 목숨이 다하도록 남에게 옷을 구하되 쌓아두지 않는 것이요, 여섯째는 수명이 다하도록 인간의 오욕을 막고, 모든 감각기관을 거두어 범행 아닌 행을 버리는 것이요, 일곱째는 수명이 다하도록 노래나 춤, 광대놀이 등 갖가지 놀이를 버리는 것이니 이렇듯 일어나는 갖가지 장애 틈에서 비구계를 지닐 때 이로 인해 고통이 생기더라도 보살은 잘 참아 정진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정근(精勤)이라 함은 보살이 부지런히 삼보께 공양하고 보살장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베껴 쓰고 해설하며 그 이치를 생각하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성도(聖道)를 닦아 모을 때 이로 말미암아 고통이 생기더라도 보살은 잘 참으며 이로 인해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이중생처(利衆生處)라 함은 간략히 말하면 열한 가지가 있으니 앞에 말한 바와 같거니와 이로 인해 고통이 생기더라도 보살은 잘 참으며 이로 인하여 정진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제소작처(諸所作處)라 함은 출가인은 의발(衣鉢)의 업 등이요, 재가인은 생업을 경영하는 등인데 이로 인해 고통이 생기더라도 보살은 잘 참으며 이로 인해 정진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보살은 뭇 고통을 받더라도 반드시 잘 참으면서 무상보리를 닦아 익혀야 하나니, 닦아 익히지 않아서는 안 된다. 이렇게 닦아 익힌 뒤엔 마침내 물러서지 않고 마음이 항상 기뻐서 물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나니 이를 고통을 참는 안고인(安苦忍)이라 한다.
법사유인(法思惟忍)이라 함은 이 보살이 법에 대하여 바르게 선택하여 잘 관찰하고 깨닫고는 여덟 가지 해탈처(解脫處)에 깊이 들어가서 생각을 매어 두는 것이니 이른바 삼보의 공덕과 진실한 이치와 제불보살의 큰 신통력과 인과 과와 얻어야 할 이치와 이치를 얻는 방편과 알고 행해야 할 곳이다.
또 안다[解]는 것에는 두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오랫동안 닦아 익히는 것이요, 둘째는 빨리 정지(淨智)를 얻는 것이니, 이를 보살의 일체인(一切忍)이라 하며, 세 가지 분별에 의하여 널리 말하면 난인(難忍) 등이 된다.어떤 것을 난인이라 하는가? 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가 있으니 만일 보살이 하열한 중생에게 이롭지 못함은 당하였더라도 모두 능히 참아내면 이를 첫째 난인이라 하고, 만일 하인들에게 이롭지 못함을 당하고도 모두 능히 참아내면 이를 둘째 난인이라 하고, 낮은 종성의 낮은 무리가 가장 심한 허물을 범했더라도 능히 참아내면 이를 셋째난인이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문인(一切門忍)인가? 간략히 말하면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친척들의 이롭지 못함을 참아내는 것이요, 둘째는 원수의 이롭지 못함을 참아내는 것이요, 셋째는 중품(中品) 사람의 이롭지 못함을 참아내는 것이요, 넷째는 하품과 상품의 이롭지 못함을 참아내는 것이다.어떤 것이 선인인(善人忍)인가? 간략히 말하면 다섯 가지가 있으니, 이 보살이 먼저 인욕을 행하면 큰 복과 이로움이 있음을 보는 것이다. 말하건대 인욕을 수행한 이는 미래 세상에 원한을 많이 맺지 않고, 마음에 어긋나는 일이 없고 마음이 많이 즐겁고 죽을 때에 뉘우침이 없고 죽은 뒤에는 좋은 갈래에나 하늘 세계에 화생(化生)하나니, 이러한 등의 공덕과 이익을 보았으므로 능히 스스로가 참아내고 남들로 하여금 인욕을 행하게 하며 항상 남에게 인욕의 공덕을 찬탄하고 다른 이가 인욕을 행하는 것을 보면 그 마음도 따라 기뻐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행인(一切行忍)인가? 이르되 여섯 가지와 일곱 가지가 있어 간략히 말하면 열세 가지가 있나니, 보살이 참지 않는 이에게는 큰 고보(苦報)가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는 까닭에 참고, 일체 중생에게 자심(慈心)ㆍ비심(悲心)ㆍ친후심(親厚心) 친애심(親愛心)이 있기 때문에 참고, 무상보리를 간절히 원하고 찬제바라밀을 만족시키는 인(因)으로 삼고자 참나니, 참는 힘 때문에 출가한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항상 구족계 등의 계를 받아 지니는 것을 출가인(出家忍)이라 하고 이를 다시 수법인(受法忍)이라 하며 종성(種性)이 구족하거나 전생에 닦아 익힌 것을 현재에까지 지니고 있으면 이를 성인(性忍)이라 하고, 일체법에는 중생이란 것이 없음을 알고 언어와 법수(法數)를 여읜 것임을 알면 이를 정념법인(正念法忍)이라 하고, 온갖 이롭지 못함을 참으면 일체인(一切忍), 또는 일체처인(一切處忍)이라 하니 이른바 한 사람과 대중의 경우요 일체시인(一切時忍)이라 하니 이른바 새벽과 낮과 저녁과 밤과 또는 과거ㆍ현재ㆍ미래이다.병이 있건 병이 없건, 누었건 일어났건 몸으로 항상 인욕을 행하여 남을 괴롭히지 않고, 입으로 항상 인욕을 행하여 사랑스럽지 못한 말을 여의고, 뜻으로 항상 인욕을 행하여 분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깨끗치 못한 희망도 일으키지 않는다.어떤 것이 보살의 제뇌인(除惱忍)인가? 간략히 말하면 여덟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보살이 괴롭히면서 구하는 이에 잘 참아서 귀찮아하지 않음이요, 둘째는 흉포하고 몹시 악한 이에게 대비심으로 잘 참아서 귀찮아하지 않음이요, 셋째는 출가자로서 계를 범한 이에게는 대비심으로 잘 견디어 귀찮아하지 않음과 또 다섯 가지 정진으로 잘 참고 견디어 귀찮아하지 않나니, 괴로워하는 중생에게 괴로움을 제거해 주기 위하여 법과 법의 차례[法次]와 법의 회향[法向]을 구하는 이가 있으면 이런 법을 널리 설명해주고 중생들이 하려는 일은 모두 거들어 도와주고 정진하여 잘 견디어낸다.
이것이 여덟 가지 제뇌인이니, 중생들이 근심하는 것은 잘 견디어 제거해 주고 모자라는 것은 잘 참고 견디어 풍요롭게 해 준다.어떤 것이 보살의 차세타세락인(此世他世樂忍)이라 하는가? 간략히 말하면 아홉 가지가 있으니, 이 보살이 방일치 않는 선법에 머물러서 추위와 더위, 주림과 목마름, 모기와 등에에게 물림, 바람과 햇볕, 뭇 짐승의 독에 물림 등을 모두 잘 참아내며, 몸과 마음의 피로도 모두 잘 참아내며, 생사의 바다에 빠져 생로병사의 온갖 괴로운 중생에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앞세워 이렇듯이 참는다.
보살은 현재의 법에서 스스로가 안락한 경지에 머물러서 모든 악업을 멀리 여의고, 다시 내세의 안락할 인연을 삼고 또 다른 이들로 하여금 금세와 후세의 쾌락과 편안함으로 향하게 하나니, 그러므로 차세타세락인(此世他世樂忍)이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청정인(淸淨忍)이라 하는가? 간략히 말하건대 열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다른 이가 이롭지 못하게 해도 보복하려는 마음이 없음이요, 둘째는 성내는 마음과 한탄하는 마음도 일으키지 않음이요, 셋째는 원망하고 미워하는 생각이 없음이요, 넷째는 항상 이롭게 하되 예전도 본심(本心)과 같게 하고 뒤에도 그렇게 이롭게 할 뿐 이롭지 않게 하는 일은 하지 않음이요, 다섯째는 이롭지 않게 하는 이에게 부드러운 말로 타일러 줌이요, 여섯째는 상대방이 뉘우쳐 사과하면 속히 받아들임이요, 일곱째는 그가 참지 못하는 것을 보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보내 줌이요, 여덟째는 그가 인욕행을 닦는 것을 보면 갑절로 공경하는 마음을 냄이요, 아홉째는 중생이 두려워하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킴이요, 열째는 온갖 참지 못하는 허물을 끊어 제거하고 욕망을 여의어 청정해짐이다.
이러한 열 가지를 보살의 청정인(淸淨因)이라 하나니, 이와 같이 자성인(自性忍)으로부터 청정인(淸淨忍)은 광대하고 무량한 대보리과이니 이 인욕을 인하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12) 정진품(精進品)어떤 것이 보살의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인가? 간략히 말하면 아홉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정진(自性精進)이요, 둘째는 일체정진(一切精進)이요, 셋째는 난정진(難精進)이요, 넷째는 일체문정진(一切門精進)이요, 다섯째는 선인정진(善人精進)이요, 여섯째는 일체행정진(一切行精進)이요, 일곱째는 제뇌정진(除惱精進)이요, 여덟째는 차세타세락정진(此世他世樂精進)이요, 아홉째는 청정정진(淸淨精進)이다.어떤 것이 자성정진인가? 이 보살이 마음에 무량한 선법을 거두어들이고는 모든 중생을 이익하고 안락하게 함이 왕성하여 단절되지 않고 또 전도되지 않으면 그가 일으킨 신ㆍ구ㆍ의업을 보살의 자성정진이라 한다.어떤 것이 일체정진(一切精進)인가? 간략히 말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재가요, 둘째는 출가이다. 이 두 가지에 각각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큰 서원이요, 둘째는 모든 선법을 거둠이요, 셋째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큰 서원의 정진이라 함은 보살이 먼저 정진방편을 일으켰으므로 마음에 참는 힘이 생기고는 큰 서원의 투구를 쓰면서 말하기를 “나는 다만 한 중생의 필통을 벗겨주는 이유 때문에도 백천 겁을 하루로 삼고 그러한 수효로 백천 겁을 지옥에 있더라도 성불하기까지 맹세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위없는 보리를 얻기 전에는 끝내 정진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하거늘 하물며 잠시 동안 적은 고통을 받는 일이겠는가?” 하나니, 이것을 보살의 큰 서원의 정진이라 한다.이러한 보살의 큰 서원정진에 조그마한 이해나 조그마한 믿음을 일으키더라도 능히 무량한 깨달음과 부지런한 방편의 성품이 자라나거늘 하물며 이와 같은 큰 서원의 정진을 성취한 보살이겠는가? 보살은 무상보리를 위한 까닭에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에 어려움으로 여겨 물러날 생각을 내지 않는다.선법을 거두는 정진이라 함은 보살의 정진은 단바라밀의 방편을 성취하기 위한 때문이며 계율ㆍ인욕ㆍ선정ㆍ반야바라밀의 방편을 성취하기 위한 때문이다. 간략히 말하면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흔들리지 않음이니, 일체 망상과 번뇌와 다른 주장과 무량한 고통에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요, 둘째는 견고함이니, 활짝 방편을 닦기 때문이요, 셋째는 무량한 지혜를 얻음이니, 바른 기억에 안주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방편이 구족함이니 얻어야 할 이치, 즉 뒤바뀌지 않은 도에 수순하여 얻기 때문이요, 다섯째는 바른 정진의 이치로 이롭게 함이니 얻어야 할 이치로 서원을 성취하기 때문이요, 여섯째는 치연(熾然)이니, 항상 방편에 힘쓰기 때문이요, 일곱째는 교만을 여읨이니, 방편에 정진하되 스스로 자랑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보살이 이 일곱 가지 선법을 거두는 정진방편을 닦으면 모든 바라밀을 속히 만족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일체 보리행과 선법이 모두 이 정진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 정진은 가장 높고 가장 수승한 인이어서 견줄 이도 없고 위도 없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수다라에서 갖가지로 정진을 칭찬하시기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인이 된다’고 하셨다.
보살의 중생을 이롭게 하는 정진에는 열한 가지가 있으니, 계품(戒品)에서 설한 것 같거니와 거기에서는 계를 설하였고 여기서는 정진을 설했을 뿐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난정진(難精進)인가? 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가 있으니, 이 보살이 끊임없이 정진할 때 옷이나 음식을 생각하거나 잠자리를 생각하거나 자기 몸이란 생각 등이 없이 항상 선법을 닦나니, 이를 첫째의 난정진이라 한다.
보살이 이렇게 정진하되 마침내 몸을 버리고 몸을 받게 이르러서도 항상 선법을 닦아 정진을 버리지 않나니 이를 둘째의 난정진이라 한다.
이에 평등하게 분별하여 공덕이 구속한 뒤에 느슨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으며 마음이 전도되지 않아 바른 이치도 이롭게 하는 정진을 성취하면 이를 셋째 난정진이라 한다.
또 이 보살의 난정진의 힘은 대비와 지혜를 거두는 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문정진(一切門精進)이라 하는가? 간략히 말하건대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염오법을 여읨이요, 둘째는 백정법(白淨法)을 냄이요, 셋째는 삼업(三業)을 맑게 제거함이요, 넷째는 지혜를 더함이다.
염오법을 버린다 함은 보살이 정진하여 모든 번뇌를 여의되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은 일어나지 않게 하고 이미 일어난 것은 멸하게 하는 것이다.
백정법을 낸다 함은 아직 생기지 않은 선법은 생기게 하고 이미 생긴 전법은 방편으로 늘어나게 하는 것이다.
삼업을 맑게 제거한다 함은 보살이 정진하여 삼업을 청정케 하고는 신 구ㆍ의의 선한 업을 모두 다 거두어 모으는 것이다.
지혜를 더한다 함은 보살이 정진하여 문사수의 지혜를 얻고는 늘어나게 하고 구족하게 하는 것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선인정진(善人精進)인가? 간략히 말하건대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무부작(無不作)이니, 일체 하고자 하는 방편을 쉬지 않기 때문이요, 둘째는 불하수(不下隨)니, 그 일으킨 것이 중품이건 상품이건 더욱 정진해서 자라나게 하기 때문이요, 셋째 불해태(不懶怠)니, 용맹하고 왕성하여 오랫동안 끊임없이 정진하여 방편의 마음이 물러서지 않으며 쉬지 않으며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요, 넷째는 부전도의(不顚倒義)이니, 바른 뜻으로 이롭게 하는 방편으로 거두기 때문이요, 다섯째는 은근방편(慇懃方便)이니, 정진으로써 무상보리를 빨리 찾기 때문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행정진(一切行精進)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와 일곱 가지로서 열세 가지가 있으니, 여섯 가지라 함은 이른바 항상한 정진이니 항상 방편을 닦기 때문이요, 활짝 하는 정진[頓精進]이니 끝까지 이르는 방편을 닦기 때문이요, 의지하는 정진[依精進]이니 본래의 정진력을 인하기 때문이요, 방편의 정진이니 좋은 방편을 생각하고 계교하기 때문이요, 움직이지 않는 정진[不動精進]이니 온갖 괴로움에 동요되지 않기 때문이며 또 다른 이치로 향하지 않기 때문이요, 만족할 줄 모르는 정진이니 한량에 따라 수승하게 정진하되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살이 이와 같은 여섯 가지 일체행정진을 성취하면 부지런히 정진하여 능히 견딜 수 있고 견고해지므로 모든 선법에서 헐거나 무너뜨릴 수 없다.다시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의욕과 함께하는 정진이니, 간절한 바람으로 무상보리를 자라게 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구족정진이니, 모든 나머지 번뇌와 염오심으로 머무는 자리에 보살이 정진하여 모든 선법에서 균등하게 마음으로 머물기 때문이요, 셋째는 수승하게 나아가는 정진이니, 모든 나머지 번뇌와 상품 번뇌의 마음 머무는 자리에 그러한 번뇌를 끊기를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구하는 정진이니 배워야 할 모든 것을 구하기 때문이요, 다섯째는 배우는 정진이니, 그러한 모든 법에 대하여 그에 알맞게 법차법향(法次法向)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요, 여섯째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정진으로 열한 가지가 있으니 앞에서 말한 내용과 같다. 일곱째는 스스로의 바른 방편으로 보호하는 정전이니 만일 이지러뜨린 점이 있으면 법답게 참회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곱 가지이다.
이와 같은 열세 가지를 보살의 일체행정진(一切行精進)이라 한다.
보살의 제뇌정진(除惱精進)과 차세타세락정진(此世他世樂精進)은 인욕장(忍辱章)에서 말한 것과 같다.어떤 것이 보살의 청정정진(淸淨精進)인가? 간략히 말하건대 열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수순(隨順)이요, 둘째는 수습(修習)이요, 셋째는 전착(專着)이요, 넷째는 선섭(善攝)이요, 다섯째는 시구족(時具足)이요, 여섯째는 분별상구족(分別相具足)이요, 일곱째는 불퇴약(不退弱)이요, 여덟째는 불괴(不塊)요, 아홉째는 평등(平等)이요, 열째는 회향대보리(廻向大菩提)이다.이 보살이 번뇌를 끊기 위하여 그에 알맞게 닦아 익히고 대치하되 애욕에 결박된 이는 부정관을 닦고 성내는 이는 자심관을 닦고 어리석은 이는 연기관(緣起觀)을 닦고 각관(覺觀:분별)에 어지럽혀진 이는 안반염(安般念)을 닦고 교만한 이는 분별계방편관(分別界方便觀)을 닦나니 이러한 것들을 수순정진이라 한다.이 보살이 초업의 정진[初業精進], 즉 마음이 이미 머무름을 성취하지 않고도 교수(敎授)와 교계(敎誡)에 대하여 방편을 수습하고 방편으로 조복시키면 이를 보살의 수습정진(修習精進)이라 한다.이 보살이 수습정진, 즉 교수 교계에 방편심을 머무르지 않으면 그것이 초업(初業)일지라도 그 보살을 이 방편에서 전정방편(專精方便)과 상방편(常方便)과 돈방편(頓方便)에 정진하나니 이를 보살의 전착정진(專着精進)이라 한다.이 보살이 모든 존귀한 분에게 많이 들은 힘으로 뒤바뀌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 마음이 전정방편(專精方便)에 머무르면 이를 선섭정진(善攝精進)이라 한다.이 보살이 이와 같이 뒤바뀌지 않는 받아들임으로 멈출 때에는 멈춤[止]을 닦고, 움직일 때에는 움직임[擧]을 배우고 버릴 때에는 버림[捨]을 배우면 이를 시구족정진(時具足精進)이라 한다.보살이 멈춤ㆍ움직임ㆍ버림 등의 상에서 삼매에 머무르되 다시 지혜의 상을 일으켜 항상 잘 관찰하여 허망하게 분별치 않으면 이를 보살의 분별상구족정진(分別相具足精進)이라 한다.이 보살이 가장 미묘하고 수승하고 가장 심심(甚深)하고 불가사의한 무량보살의 정진방편을 들으면 스스로를 가벼이 여기지 않고 겁을 내지도 않으며 조그만큼 앞으로 나아간 뒤에 흡족하게 여겨 더 이상 구하지 않으려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나니 이를 보살의 불퇴약정진(不退弱精進)이라 한다.이 보살이 항상 감각기관을 지키고 음식에 분량을 알며, 초저녁에서 늦은 밤까지 일찍 잠을 자지 않고 정진하는 방편으로 바른 지혜에 마음을 머무르며, 이와 같은 등의 삼마발제(三摩跋提)로 정근을 갖추고 정의(正義)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면 이를 보살의 불괴정진(不壞精進)이라 한다.이 보살이 방편에 정진하되 느슨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고 평등하게 일체 방편을 닦아 익히어 평등하게 활짝 닦으면 이를 보살의 평등정진(平等精進)이라 한다.이 보살이 정진으로 지은 온갖 공덕을 무상보리에 회향하면 이를 보살의 정회향정진(正廻向精進)이라 한다.이와 같이 자성정진으로부터 나아가 청정정진에 이르면 반드시 대보리의 과위를 얻으리니, 보살이 이 정진에 의하여 비리야바라밀을 만족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13) 선품(禪品)어떤 것이 보살의 선바라밀인가? 간략히 말하건대 아홉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선(自性禪)이요, 둘째는 일체선(一切禪)이요, 셋째는 난선(難禪)이요, 넷째는 일체문선(一切門禪)이요, 다섯째는 선인선(善人禪)이요, 여섯째는 일체행선(一切行禪)이요, 일곱째는 제뇌선(除惱禪)이요, 여덟째는 차세타세락선(此世他世樂禪)이요, 아홉째는 청정선(淸淨禪)이다.어떤 것이 자성선인가? 보살장(菩薩藏)에서 듣는 지혜, 생각하는 지혜를 앞세워 세간과 출세간의 선을 행하되 일심으로 지분(止分)이나 혹은 관분(觀分), 혹은 이 두 가지를 비슷하게, 혹은 함께하는 데 머무르면 이를 자성선이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선(一切禪)인가? 간략히 말하건대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간이요, 둘째는 출세간이다. 또 알맞은 바에 따라 각각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현법락주선(現法樂住禪)이요, 둘째는 출생삼매공덕선(出生三昧功德禪)이요, 셋째는 이익중생선(利益衆生禪)이다.보살이 선정으로 한 세상의 망상을 여의고 몸과 마음이 멈추어지고 으뜸가게 적멸하고 들뜨는 마음이 멈추고 모든 집착과 일체 상을 여의어 버리면 이를 현법락주선이라 한다.보살이 선정으로 갖가지 불가사의하고 무량하고 무변한 십력(十力)의 종성에 속하는 삼매를 얻으면 그 삼매는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이 그 이름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일으키거나 생긴 이승의 해탈이겠는가? 오직 소승의 일체에 들어가고 무애혜(無碍慧)와 무쟁원지(無諍願智)의 수승하고 묘한 공덕에 들어가는 때는 제외하나니 이를 보살의 출생삼매공덕선이라 한다.이익중생선(利益衆生禪)이라 함은 열한 가지가 있으니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보살이 보시에 의하여 중생들이 하는 일에 바른 도리로써 이롭게 할 수 있으면 모두 동사(同事)가 되어 주고 뭇 고통을 제거해 주기 위하여 알맞게 설해주어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케 하며 모든 두려움을 막아주고 모든 어려움과 근심과 고통을 잘 풀어주고 살림살이가 부족한 이에게는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며 여법히 대중을 길러 잘 수순하며 진실한 공덕이 있음을 보면 환희하는 마음으로 찬탄하며 허물이 있는 이를 보면 평등한 마음으로 굴복시키거나 신통력으로 겁을 주어 환희케 한다.
이것이 간략히 일체선을 말한 것이니 남음도 없고 위도 없다.어떤 것이 보살의 난선(難禪)인가? 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가 있으니, 보살이 오랫동안 수승하고 묘한 선정을 익혀서 모든 삼매에서 마음이 자재하게 되었으나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성숙시켜 주기 위하여 제일 선천의 즐거움을 버리고 욕계에 태어나면 이를 보살의 제일 난선(難禪)이라 한다.
보살이 선정에 의하여 무량ㆍ무수ㆍ불가사의한 모든 깊은 삼매를 출생시킨 것이 일채 성문ㆍ벽지불을 훨씬 초월하면 이를 제이 난선이라 한다.
보살이 선정에 의하여 무상보리를 얻으면 이를 제삼 난선이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문선(一切門禪)인가? 간략히 말하건대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관과 각이 있는 선정[有觀有覺禪]이요, 둘째는 기쁨과 함께하는 선정[喜俱禪]이요, 셋째는 즐거움과 함께하는 선정[集俱禪]이요, 넷째는 평등함과 함께하는 선정[捨俱禪]인가?
간략히 말하건대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맛들여 집착하지 않음이요, 둘째는 인자한 마음과 함께 함[慈心俱]이요, 셋째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함께 함[悲心俱]이요, 넷째는 기뻐하는 마음과 함께 함[喜心俱]이요, 다섯째는 평등한 마음과 함께 함[捨心俱]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행선(一切行禪)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와 일곱 가지로서 간략히 말하면 열세 가지이니 선한 선[善禪:착한 마음]과 무기로 변화하는 선[無記化化禪]과 지분의 선[止分禪]과 관분의 선[觀分禪]과 나와 남이 이로운 선[自他利禪]과 정념의 선[正念禪]으로 신통력의 공덕을 출생시키는 선[出生神通力功德禪]과 명연선(名緣禪)과 의연선(義緣禪)과 지상연선(止相緣禪)과 거상연선(擧相緣禪)과 사상연선(捨相緣禪)과 현법낙주선(現法樂住禪)과 제일의선(第一義禪)이니 이 열세 가지는 보살의 일체행선(一切行禪)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제뇌선(除惱禪)인가? 간략히 말하건대 여덟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보살이 선정에 들면 모든 고통ㆍ근심ㆍ독해(毒害)ㆍ우박ㆍ서리ㆍ열병ㆍ귀신병을 제거하나니 이를 주술소의선(呪術所依禪)이라 한다.
둘째는 보살이 선정에 들면 사대(四大)에서 일어난 모든 병을 능히 소멸시키나니 이를 제뇌선이라 하고, 셋째는 보살이 선정에 들면 단비를 불러 일으켜 가뭄의 재앙과 모든 기갈을 구제하나니 이를 운우선(雲雨禪)이라 한다.
넷째는 보살이 선정에 들면 모든 두려움의 환란, 즉 온갖 물 육지의 인간 또는 인간 아닌 무리의 공포를 구제하나니 이를 등도선(等度禪)이라 하고, 다섯째는 보살이 선정에 들면 능히 음식으로 넓은 들의 목마르고 굶주린 중생을 이롭게 하나니, 이를 요익선(饒益禪)이라 한다.
여섯째는 보살이 선정에 들면 능히 재물로 중생을 조복시키나니 이들 조복선(調伏禪)이라 하고, 일곱째는 보살이 선정에 들면 미혹하고 취한 무리로서 시방의 방위를 몰라보는 모든 이를 골고루 깨우쳐 주나니, 이를 개각선(開覺禪)이라 하고, 여덟째는 보살이 선정에 들면 중생들이 하는 일이 모두 성취되나니, 이를 등작선(等作禪)이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차세타세락선(此世他世樂禪)인가? 간략히 말하건대 아홉 가지가있으니, 첫째는 신족(神足)으로 변화해내고서 중생을 조복시키는 선이요, 둘째는 말하는 대로 시현해서 중생을 조복시키는 선이요, 셋째는 교계(敎誡)로 변화해내고서 중생을 조복시키는 선이요, 넷째는 악한 중생을 위하여 나쁜 갈래를 보여 주는 선이요, 다섯째는 말재주를 잃은 중생에게 말재주로써 이롭게 하는 선이요, 여섯째는 기억[念]을 잃은 중생에게 기억으로써 이롭게 해 주는 선이요, 일곱째는 뒤바뀌지 않는 논설과 미묘한 찬송인 마득륵가(摩得勒伽)를 지어 바른 법으로 하여금 오래도록 세상에 머무르게 하는 선이요, 여덟째는 세간의 기술과 정의로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거두어 주나니, 이른바 글 쓰고 셈하고 살림하는 방법을 계산해 주는 것이니 이런 것들을 종종중구선(種種衆具禪)이라 하고, 아홉째는 나쁜 길의 고통을 잠시 쉬게 하기 위하여 광명을 놓는 선[放光明禪]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청정선(淸淨禪)인가? 간략히 말하건대 열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간의 청정이 청정하여 맛들이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는 선정[不染汚禪]이요, 둘째는 출세간의 청정이 청정한 선이요, 셋째는 방편의 청정이 청정한 선이요, 넷째는 근본청정을 얻은 청정한 선이요, 다섯째는 근본이며 최상으로 수승하게 정진하는 청정이 청정한 선이요, 여섯째는 들고 머무르고 일어서는 힘의 청정이 맑은 선이요, 일곱째는 버림[捨]에서 다시 들어가는 힘의 청정이 청정한 선이요, 여덟째는 신통으로 지어진 힘의 청정이 맑은 선이요, 아홉째는 온갖 견해를 여읜 청정이 맑은 선이요, 열째는 번뇌장과 지장(智障)이 끊어진 청정이 맑은 선이니, 이와 같이 보살은 무량한 선정으로 대보리의 과위를 얻는다.
보살은 이에 의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나니 이미 얻었고 장차 얻는다.
14) 혜품(慧品)어떤 것이 보살의 반야바라밀인가?
간략히 말하면 아홉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혜(自性慧)요, 둘째는 일체혜(一切慧)요, 셋째는 난혜(難慧)요, 넷째는 일체문혜(一切門慧)요, 다섯째는 선인혜(善人慧)요, 여섯째는 일체행혜(一切行慧)요, 일곱째는 제뇌혜(除惱慧)요, 여덟째는 차세타세락혜(此世他世樂慧)요, 아홉째는 청정혜(淸淨慧)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자성혜인가? 알아야 할 모든 경계에 알맞게 들어가서는 법답게 오명처(五明處), 즉 내명(內明)ㆍ인명(因明)ㆍ성명(聲明)ㆍ의방명(醫方明)ㆍ세공교명(僅工巧明)을 선택하고 관찰하고 반연하나니 이를 자성혜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혜(一切慧)인가? 간략히 말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간이요, 둘째는 출세간이다. 이 두 가지 간략하게 말하면 각기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알아야 할 진실에 대하여 깨달음에 따라 분별해 아는 지혜요, 둘째는 오명처(五明處)와 삼취법(三聚法)을 잘 거두는 지혜요, 셋째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에 밝은 지혜이다.
보살이 무언설(無言說)과 무아법(無我法)으로 진제(眞諦)를 깨닫고 깨달은 뒤에는 최상의 반야와 제일의 적멸처 생각을 묶어 안주하여 망상을 여의고 거짓을 제거해 멸해서 평등한 대총상관(大總相觀)에 들어가 건립(建立)이나 비방[誇] 두 가지를 모두 여의고 중도에 들어가면 이를 깨달음에 따라 분별하는 지혜[隨覺分別慧]라 한다.5명처를 잘 거둔다 함은 역종성(力種性) 장에서 널리 말한 것이 있고 삼취(三聚)라 함은 이치로 이롭게 하는 법취(法聚:법의 무더기)와 이치 아닌 것으로 이롭게 하는 법취와 이치로 이롭게 하는 것도 아니고 이치 아닌 것으로 이롭게 하는 것도 아닌 법취이다.
이와 같은 여덟 곳을 반야로 잘 거두어 크고 무상한 지혜의 모든 것을 만족시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해야 할 것에 열한 가지가 있음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거니와 그 하나하나에서 지혜의 방편으로 중생을 조복시킨다.어떤 것이 난혜(難慧)인가? 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가 있으니, 매우 깊은 무아의 법을 아는 것이 첫째의 난혜요, 중생을 조복시키는 방편을 아는 것이 둘째의 난혜이며, 온갖 알아야 할 일에 장애가 없는 것이 셋째 난혜이다.어떤 것이 일체문혜(一切門慧)인가? 간략히 말하면 네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성문장이나 보살장을 배울 때의 문혜(門慧)와 사혜(思慧), 그리고 보살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 힘에 속하는 지혜[思惟力攝慧), 그리고 닦는 힘에 속하는 정정지(正定地)의 무량한 지혜[無量慧]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선인혜(善人慧)인가? 간략히 말하면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바른 법을 얻어 듣는 지혜요, 둘째는 안으로 바르게 생각할 때 함께하는 지혜요, 셋째는 자리와 이타의 방편과 함께하는 지혜요, 넷째는 모든 법과 법상(法相)과 법주(法住)에 대하여 뒤바뀌지 않게 결정하는 지혜요, 다섯째는 번뇌를 여의는 지혜이다.
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미세함이 그 성품과 같은 경계에 들어가는 지혜요, 둘째는 두루 이름이 그 성품과 같은 경계에 들어가는 지혜요, 셋째는 본래 얻은 지혜에 뭇 딸린 지혜가 함께 나는 지혜요, 넷째는 제불여래와 높은 지위의 보살들이 설한 법을 여법히 받아 지니는 지혜요, 다섯째는 정심지(淨心地)에서 나아가 구경지(究竟地)를 얻을 때 속하는 지혜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행혜(一切行慧)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와 일곱 가지로서 간략히 말하면 열세 가지가 있으니, 네 가지 진리 즉 고지(苦智)ㆍ집지(集智)ㆍ멸지(滅智)ㆍ도지(道智)에 구경진지(究竟盡智)와 무생지(無生智)를 보태면 이를 여섯 가지라 하고, 일곱 가지라 함은 법지(法智)ㆍ비지(比智)ㆍ등지(等智)ㆍ신통지(神通智)ㆍ상지(相智)ㆍ십력방편지(十力方便智)ㆍ사사구족지(四事具足智)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제뇌혜(除惱慧)인가? 간략히 말하건대 여덟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경법(經法)을 아는 까닭에 법무애(法無礙)라 하고, 둘째는 법상(法相)을 아는 까닭에 의무애(義無礙)라 하고 셋째는 법의 명칭을 아는 까닭에 사무애(辭無礙)라 하고, 넷째는 모든 법의 갖가지 구절과 이치를 아는 까닭에 요설무애(樂說無礙)라 하고, 다섯째는 이교도의 온갖 주장을 굴복시키는 지혜요, 여섯째는 모든 정론을 건립하는 지혜요, 일곱째는 산업을 일으키고 재산을 늘릴 줄 아는 지혜요, 여덟째는 왕으로서 세상일을 능숙하게 결단할 줄을 아는 지혜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차세타세락혜(此世他世樂慧)인가? 간략히 말하건대 아홉 가지가 있으니, 내명처(內明處)를 맑게 건립하는 지혜와 인명(因明)ㆍ성명(聲明)ㆍ의방명(醫方明)ㆍ세공교명(世工巧明)을 맑게 건립하는 지혜와 이렇듯 맑게 건립된 명에 의하는 보살이 중생들의 어리석음과 방일함과 게으름 등을 조복시켜 빠르게 그 차례에 따르게 하기 위하여 드러내어 보이고 교수해 주고, 밝게 비추어 주어 기쁘게 하는 지혜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청정혜(淸淨慧)인가? 간략히 말하면 열 가지가 있다. 첫째 전실의(眞實義)에 두 가지가 있으니, 본성의 진실의[盡所有性]와 본성 같은 진실의[如所有性]요, 둘째는 섭수유전의(攝受流轉義)에 두 가지가 있으니, 정인(正因)과 정과(正果)요, 셋째는 섭수취의(攝受取義)에 두 가지가 있으니, 뒤바뀜과 뒤바뀌지 않음이요, 넷째는 여실지방편의(如實知方便義)에 두 가지가 있으니, 모든 것을 할 것인가와 하지 말 것인가 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여실지구경의(如實知究竟義)에 두 가지가 있으니 더러움과 청정함을 여실하게 아는 지혜이다.이와 같이 다섯 가지ㆍ열 가지로 맑은 지혜를 분별하면 청정함이 으뜸가는 것임을 알 것이다. 이러한 보살들은 무상의 지혜를 잘 결정하여 큰 보리의 과위를 얻나니, 보살은 이에 의하여 반야바라밀을 만족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또 이 육바라밀은 여러 수다라에서 세존께서 분별하여 말씀하셨거니와 이제 간략히 설하리니, 이렇게 알라. 여래께서 수다라에서 단바라밀과 내지 반야바라밀을 설하시되 자성(自性) 단바라밀에서 청정(淸淨) 단바라밀에 이르기까지 그 알맞음에 따라 속하는 바를 분별하고 이렇듯 시라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까지도 그 알맞음에 따라 속하는 것을 분별하였으니 그렇게 알라.여래께서 보살일 적에 무량한 생을 지나면서 고행과 상응하고 온갖 단바라밀과 상응하였으며 나아가 반야바라밀과 상응하였나니 혹은 하나만 거두기도 하시고 혹은 둘ㆍ셋ㆍ넷ㆍ다섯, 혹은 여섯 바라밀을 모두 거두기도 하셨으니 마땅히 알라. 이 여섯 바라밀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서원을 일으켜 보살의 크게 청정한 법과 크게 청정한 바다에서 모든 중생의 온갖 종류의 정법인(正法因)인 크고 진귀한 보배를 얻게 한다. 이렇듯 한량없는 공덕과 지혜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얻나니 견줄 이도 있고 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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