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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658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4권

by Kay/케이 2024.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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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4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제4권

담무참 한역
김월운 번역

9) 시품(施品)보살이 차례로 육바라밀을 만족한 뒤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나니, 이른바 단바라밀다ㆍ시바라밀다ㆍ찬제바라밀다ㆍ비리야바라밀다ㆍ선바라밀다ㆍ반야바라밀다이다.
어떤 것이 단바라밀다인가? 간략히 말하면 아홉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시(自性施)요, 둘째는 일체시(一切施)요, 셋째는 난시(難施)요, 넷째는 일체문시(一切門施)요, 다섯째는 선인시(善人施)요, 여섯째는 일체행시(一切行施)요, 일곱째는 제뇌시(除雷施)요, 여덟째는 차세타세락시(此世他世樂施)요, 아홉째는 청정시(淸浮施)이다.자성시라 함은 보살이 언제나 탐욕하지 않기를 원하여 재물과 몸을 아끼지 않고 신구의의 업을 일으켜서 베풀 말한 물건과 여법한 재물을 기꺼이 베풀며 율의(律儀)에 머물러서 미래의 과위 보기를 바라나니, 이와 같은 뜻으로 중생에게 베푸는 것을 자성시라고 한다.일체시(一切施)라 함은 간략히 말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안의 물건이요, 둘째는 밖의 물건이다. 보살이 몸을 버리어 보시하면 이를 내시(內施)라 하고, 보살이 먹고 토하는 중생을 위하여 먹었던 것을 토해서 보시하면 이를 내외시(內外施)라 하고, 위 두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외시(外施)가 된다.
보살의 내시에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남이 하고자 하는 일에 따라 그가 자재하도록 몸을 버리는 보시이니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이 의식 때문에 남에게 매여 그의 종이 되듯이 하되 이 보살은 이익을 위하지 않고 오직 무상보리를 구하기 위하여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단바라밀을 만족케 하기 위하여 그들이 하고자하는 일에 따라 그가 자재하도록 몸을 버려 보시하는 것이다.
둘째는 남이 구하는 것에 따라 머리ㆍ눈ㆍ손ㆍ발과 온갖 마디와 피ㆍ살ㆍ심줄ㆍ뼈에서 골수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구하는 것이면 모두 베풀어 주는 것이다.
보살의 외시(外施)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그들이 구하는 것에 따라 사용할 좋은 도구를 기꺼운 마음으로 모두 보시해 주는 것이요, 둘째는 그를 받들어 섬기기 위하여 모든 것을 평등한 마음[捨心]으로 베풀어 주는 것이다.보살이 만든 안팎의 물건에 대하여 차별 없이 균등하게 보시하는 것은 아니니, 베풀어야 하거나 베풀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만일 중생이 즐겁기만 하고 편안하지 않거나 즐겁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으면 보시하지 않는다. 또 중생이 편안하기만 하고 즐겁지 않거나 편안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면 모두 보시해야 한다.
이와 같이 보시해야 할 것과 보시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간략히 설하였으므로 다음에 더 자세히 설하리라.만일 보살이 보시를 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고통을 받거나 핍박을 당하거나 사기 등의 침해를 받게 되거나 법답지 못하게 자력(自力)이나 타력(他力)으로 구하거든 그들의 요구에 따르지 않아야 한다.
보살은 중생을 위한 까닭에 차라리 스스로 백 천의 몸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저들이 중생을 핍박하고 해치고 속이고자 하는 일은 따르지 말아야 한다. 보살이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를 수행하여 무량한 중생을 이익되게 할 때 어떤 이가 와서 몸이나 머리, 눈과 마디마디를 구하면 베풀어 주지 말아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보살이 깨끗한 보시를 행할 때에 ‘베풀어 주어야 할 것인가, 베풀어 주지 말아야 할 것인가?’ 하고 생각함으로써 마음이 약해져서 물러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청정한 마음으로 눈앞의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행을 비록 몸을 버리지는 않는다 해도 깨끗한 마음에 어긋나지는 않는다.만일 천마(天魔)나 그 졸개가 겁을 주기 위하여 몸을 요구할 때는 주지 말지니 그가 큰 죄를 얻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또 어떤 중생이 미쳐 날뛰면서 몸을 보시하라 하여도 그에게 몸을 던져 보시하지 말지니 제 마음이 제대로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이며, 마음이 어지럽기 때문이며, 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위와는 달리 구하러 오는 자에게는 그가 요구하는 대로 모두 몸을 버리어 보시하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안의 물건을 보시할 것인가, 보시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이다.
보살이 밖의 물건을 보시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는, 어떤 중생이 독약ㆍ불ㆍ칼ㆍ술 등을 구해서 스스로를 해치려 하거나 남을 해치고자 하면 보시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스스로를 거두기 위하거나 남을 거두어 주기 위해서라면 보시를 해야 하며 만일 남의 재물인데 먼저 동의하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주지 못한다.보살은 중매[媒行]를 위하여 이쪽의 것을 저쪽에 주지 못하며 벌레가 있는 음식을 절대로 남에게 주지 못한다. 어떤 중생이 장난이나 쾌락을 위하여 이롭지 못한 일로 구하러 왔거든 보살은 주지 말아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베풀어 준다면 보살에게 조금은 즐거움이 되겠지만 나쁜 행을 많이 일으키고 목숨이 다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만일 광대놀이 하는 기구라면 나쁜 길에 떨어지지는 않으나 선근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중생들이 성숙해지거나 그를 거두어 주기 위해서라면 베풀어 주어야 한다.어떤 때에 주고, 어떤 때에 주지 않는가? 이른바 사냥하고 살생하는 법을 배워 지극히 많은 탐욕으로 큰 방편을 지어서 중생을 무수히 죽이는 등 이러한 무리에게는 보살은 주지 말아야 하며, 또 가르치지도 말아야 한다.
양을 죽여 하늘에 제사하는 이에게도 보시하지 말아야 하며, 중생을 괴롭히는 자가 물과 육지의 중생이 많은 못에서 구걸하거든 모두 베풀어 주지 말아야 하며 올가미나 투망 등 세간의 갖가지 도구로 중생을 괴롭히는 자에게도 일절 베풀어 주지 말아야 한다.
꾸짖거나 죽이거나 결박하거나 벌주는 등의 일을 스스로가 하지도 말고 남을 시키지도 말아야 하며, 원수나 원수의 아들에게 모두 주지 말아야 하나니 간추려 말하면 중생을 핍박하는 온갖 놀이기구를 일절 보시하지 말아야 한다.또 갖가지 코끼리ㆍ말ㆍ수레ㆍ장엄한 의복ㆍ맛난 음식ㆍ노래ㆍ춤 등을 위한 갖가지 도구ㆍ몸에 바르는 향과 꽃ㆍ장엄하게 꾸미는 진기한 노리개ㆍ공원ㆍ숲ㆍ누각ㆍ집ㆍ남자와 여자, 그리고 갖가지 기술이나 교묘한 사업장 등 이러한 온갖 광대놀이기구를 믿음과 즐거움의 인연으로 와서 구하거든 모두 주어라.중생들이 스스로의 양(量)을 알지 못하거나 병(病)에 맞지 않는 갖가지 음식을 구하거든 일절 주지 발아야 하며 이미 배불리 먹었는데 본성이 탐욕스러워서 더 얻으려는 자에게도 주지 말아야 한다.
어떤 중생이 근심과 걱정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을 하려 하거나 독약을 먹으려 하거나 절벽에서 떨어져 죽으려 하거든 이러한 구걸은 모두 베풀어 주지 말아야 한다.보살이 왕이 되어 여러 나라를 통치할 때에는 타인의 처자를 남에게 베풀어 주지 말아야 하며, 성읍과 촌락과 인민의 세금은 제외하고 자신에게 속한 재물로 베풀어라. 보살이 애지중지하던 처자나 노비를 남에게 베풀고자 할 때에는 먼저 부드러운 말로 방편을 써서 달랠 것이요, 만일 좋아하지 않거든 베풀어 주지 말고 좋아하거든 알맞은 바에 따라 베풀라.만일 악지식(惡知識)이나 악인이나 악귀 등이 와서 구하거든 모두 베풀어 주지 말며, 종을 삼으려는 자에게도 베풀지 말라.
악인이 와서 왕위를 달라고 하거든 베풀어 주지 말라. 만일 이러한 악인이 이미 왕이 되어 있거든 보살은 힘이 있는 대로 폐위시켜 물리치되 그의 부모와 처자와 노비와 재물로 보시하지 말라. 만일 보시함으로써 부모가 근심하고 처자와 노비가 고통을 받게 된다면 보살은 이 같은 보시를 하지 않아야 한다.법답지 않은 물건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 무릇 보시하는 물건은 청정하고 법다워야 하나니 핍박이나 질책으로 남에게서 빼앗은 것이 아닌 재물로 보시해야 하며, 부처님의 계를 범하지 않고 보시를 해야 한다.보살은 모든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으로 보시하여 복전(福田)이 된다는 생각을 할지언정 그가 원수인가, 친한 이인가, 중간 정도의 사람인가, 공덕이나 허물은 상등인가, 중등인가, 하등인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하고 분별하지 말지니라.
보살은 구하는 바와 같이 주겠다고 이미 허락한 것을 나중에 일부분만 보시해서는 안 되며 나중에 추악한 물건을 보시해서도 안 되며 좋은 물건을 보시한 뒤에는 마음에 거만함이 없고 아쉬워하거나 속을 끊이는 일도 없어야 한다.보살은 보시한 뒤에 스스로 찬탄하여 ‘나는 너에게 은혜를 베풀 것이 많다’라고 하지 않는다. 낮은 무리에게 보시하고도 가벼이 여기는 생각이 없거늘 하물며 덕이 있어 공경할 만한 분에게 보시하고서이랴?
보살은 구하는 바와 같이 주겠다고 이미 허락한 것을 나중에 일부분만 보시해서는 안 되며 나중에 추악한 물건을 보시해서도 안 되며 좋은 물건을 보시한 뒤에는 마음에 거만함이 없고 아쉬워하거나 속을 끓이는 일도 없어야 한다.
보살은 보시한 뒤에 스스로 찬탄하여 ‘나는 너에게 은혜를 베풀 것이 많다’라고 하지 않는다. 낮은 무리에게 보시하고도 가벼이 여기는 생각이 없거늘 하물며 덕이 있어 공경할 만한 분에게 보시하고서이랴?
어떤 중생이 온갖 악행에 머물러서 들떠 요동하고 계를 훼손하고 꾸짖고 성내더라도 또한 그를 슬퍼하거나 뉘우치거나 한탄하는 마음을 내지 않나니, 그에게 가엾이 여기는 생각을 낸다.
큰 모임을 열어 살생하면서 법을 구하는 무리에게 삿된 소견으로 보시하지 않고, 희유하며 길하고 경사스러운 모임을 위하여 보시하지도 않으며, 완전한 청정의 행분(行分)을 위하여 보시하지도 않고, 세간이나 출세간의 이욕청정(離欲淸淨:법)을 구함에 있어 청정해지는 방편을 위하여 보시할지언정 과보를 구하기 위하여 보시하지 않는다.
모든 보시는 한결같이 무상보리에 회향해야 한다.보살은 갖가지를 보시한 인연으로 갖가지의 여실한 과보를 얻는 것이지 다른 것에 인하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가 알기 때문에 보시하나니, 이른바 밥을 보시하면 힘을 얻고, 옷을 보시하면 미모[色]를 얻고, 탈 것[乘]을 보시하면 즐거움을 얻고, 등불을 보시하면 눈 밝음을 얻는 등, 이렇듯 모든 것을 널리 말할 수 있다.보살은 빈궁해질 것이 두려워서 보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 때문에 보시한다. 보살은 또 구걸하러 온 이에게 법답지 못한 음식을 베풀지 않나니, 이른바 출가인에게 먹다 남은 음식이나, 똥ㆍ오줌ㆍ침ㆍ가래ㆍ고름ㆍ피 등으로 더럽혀진 음식이나 말하거나 알리지도 않은 밥이나 보리밥이니, 법대로 하면 버려야 할 것이다. 즉 파[蔥]를 먹지 않는 사람에게 파가 섞이거나 파로 더럽혀진 음식을 주거나, 이와 같이 고기를 먹지 않는 이에게,1) 술을 마시지 않는 이에게 술이 섞이거나 술로 더럽혀진 음식 등은 베풀지 않는다.
예법한 업으로 모인 음식이라면 보살은 보시하지만 이렇듯이 예법치 못한 시물(施物)로는 남에게 보시하지 않는다.또 보살은 구하는 이로 하여금 자주자주 왕래케 하고, 장애를 주어 고민이 생기게 한 뒤에야 보시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하며, 아첨하려고 보시하는 짓도 하지 말아야하나니 이른바 ‘국왕이나 대신, 장자나 거사 등 이런 모든 단월(檀越)은 내가 보시한줄 알면 반드시 나에게 공경하리라하는 생각으로 보시하는 것이다.
또 상대를 부리기 위하여 보시해서도 안 되나니, 적은 물건은 물론이요 하물며 많은 물건이겠는가?
또 보시해 줌으로써 그로 하여금 탐욕을 일으켜 근심 걱정을 하다가 마침내 멸망하게 해서는 안 되며 또 보시해 줌으로써 그로 하여금 성과 음을 등지고 자기를 따르게 해서도 안 된다.
보살은 쉼 없이 지혜롭게 정진하여 스스로의 서원으로 장엄할 능력을 갖추어야 하나니, 먼저 자신이 보시를 행한 뒤에 남을 가르치며, 스스로가 게으르지 않은 뒤에야 남들로 하여금 보시할 것을 지킨 이나 계를 범한 이를 가리지 않고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균등하게 보시한다.보살은 재물 얻은 것이 많건 적건 그때그때 베풀 것이요 많이 쌓이기를 기다렸다가 보시하지도 않으며, 남이 두려워서 보시하지도 않나니, 이른바 성내고 때리고 꾸짖고 헐뜯고 죽이고 속박하고 내쫓는 등 이러한 일들이 두려워서 보시하지는 않는다.
보살은 보시하려 할 때에 즐거워하고 보시를 하면서 기뻐하고 보시한 뒤에는 후회하지 않는다. 또 마니ㆍ진주ㆍ가패(珂珼)ㆍ옥석ㆍ유리ㆍ산호 등과 비슷한 가짜 물건으로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보살은 가지고 있는 온갖 재물에 대하여 처음 얻을 때부터 모든 중생에게 보시할 것을 생각하고, 나중에 구걸하는 이가 와서 자기의 물건을 구하거든 보살은 알맞은 때에 보시할 것이요 때 아닌 때에 보시하지 않으며, 나와 남이 모두 깨끗한 보시를 할 것이요 깨끗지 못한 보시를 하지 않으며, 위의에 어긋나지 않는 보시를 할 것이요 위의에 어긋나는 보시는 하지 않으며, 결정된 마음으로 보시할 것이요 결정되지 않은 마음으로 보시하지 않는다.
구걸하러 오는 사람을 보아도 끝내 비웃지 않으며 조롱하지도 않고 핀잔도 주지 않고 먼저 칭찬하는 말을 해준 뒤에 베풀어 준다.
때에 맞추어 구하는 바에 응해 주되 지체하지 않으며, 그가 분명히 지적해서 구하지 않거든 자기 마음을 열어 스스로 알아서 베풀며, 손수 가져가거든 마음대로 가져가게 허용한다.보살은 나쁜 지혜로 보시하지 않고 항상 좋은 지혜로 보시의 업을 닦아야 하나니, 지혜로운 보시라 함은 보살이 자기 재물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마땅하게 보시하는 것이다. 구하러 오는 이를 보거든 생각하기를 ‘구걸하는 이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부유하여서 가난하지 않거나 외롭지 않아 의지할 데가 있는 이요, 둘째는 빈궁하고 고독하고 친하고 의지할 데가 없는 이이다’라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만일 내가 재물이 많다면 당연히 모두를 구족하게 베풀겠지만 재물이 적으니 우선 저 가난하고 의지할 데가 없는 이에게 베풀리라’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먼저 생각한 뒤에는 생각한대로 베풀고는 저 부유한 사람이 섭섭해 하거든 “그대 한(恨)하는 생각을 내지 마시오”라며 진심으로 타일러서 보낸다.어떤 탐욕스러운 중생이 재물이 많으나 스스로 아끼느라 감히 입지도 먹지도 못하는 것을 보거든 보살은 그에게 가서 친근한 벗이 되어 친절한 생각으로 말하되 “그대가 만일 아까워서 보시를 못하겠거든 내게는 무량한 재물이 있어 흡족한 단바라밀을 행하여 두루 구걸하는 모든 중생을 위하고자 한다. 만일 어떤 중생이 그대에게 구하러 가거든 내게 와서 나의 재물을 가져다주어 그들이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게 하라. 만일 몸소 와서 가져가기가 어렵거든 일꾼을 보내서 가져가라. 내가 보시할 때에 그대도 수희(隨喜)하라” 한다.
그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내게는 손해될 것이 없으면서 저들은 이익을 얻게 되었도다’라고 생각하게 되리라. 이로 인해 보살과 가까워지면 비록 지금 당장은 보시하지 못하더라도 이미 내세에 탐욕과 인색함을 여월 종자를 심은 셈이 되는 것이다.
그는 차례로 닦아 익히게 하되 이미 안 것[自知]을 근본으로 하여 공교한 방편으로 조금 베풀게 하고 이러한 하품의 무탐[下無貪]에 의하여 중품에 이르게 하고 중품에 의하여 상품에 이르게 한다.또 화상(和上)이나 아사리(阿闍梨)나 함께 사는 제자나 가까이 사는 제자나 범행을 닦는 이가 천성이 인색하고 탐욕할 경우, 또는 인색하거나 탐욕스럽지 않으며 비록 재물은 갖추지 못했으나 보시할 마음을 간직하고 있거든 보살은 자기의 재물로 불ㆍ법ㆍ승에 베풀어 복을 지으려 했으므로 가졌던 것을 그에게 주어 그로 하여금 짓게 하고 자신은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보살의 공덕이 더욱 불어나 인색하고 탐욕스런 자는 번뇌를 항복시키게 하고 저 법을 즐기는 자도 그 바람을 원만히 채우게 한다.
이와 같이 중생을 거두어서 성숙시킨다.또 보살은 구하러 오는 이가 무엇인가 구하는 기색이 있음을 보거든 그의 마음을 아는 즉시 그의 말을 기다리지 말고 필요에 따라 베풀어 주어 모주 만족케 한다.
만일 어느 장사치가 다른 사람을 속이려 할 때 보살은 알고 있으면서 덮어 주고 발설치 않는다. 그가 나쁜 짓을 해서 다른 사람을 속이려는 것도 덮어 주거늘 하물며 자신을 속이려 한 일이겠는가? 그의 원을 채워 주기 위하여 마음대로 가져가도록 재물을 주어서 그로 하여금 창피한 생각 없이 얻고는 기뻐하고 두려움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게 한다.
저 상인들이 속이려는데 보살이 처음에는 전혀 깨닫지 못하다가 속고 난 뒤에는 비록 깨달았더라도 그를 꾸짖지 않으며 그로 하여금 기억케 하지도 않나니, 그로 하여금 도적질 할 마음을 내게 하지 않고 수희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와 같이 베풀어야 할 물건들을 베푸나니 이것들을 보살의 지혜보시라 한다.또 다음은 보살이 재물 없이 보시할 때 먼저 익혔던 세간의 기술에 맞는 일거리가 생기거든 적은 방편으로 많은 재물을 얻어서 중생들에게 보시한다.
또 저들에게 장엄하게 설법하고 아름답고 착하게 설법하며 인자한 마음으로 설법하면 가난하고 괴로운 이도 그 법문을 들으면 환희하는 마음으로 공양할 것이거늘 하물며 항상 보시하기를 좋아하는 이이겠는가?
만일 신심 있는 장자나 거사가 항상 보시하기를 익히었고 재물도 무량하거든 구하는 이를 그에게 데리고 가서 이익되게 한다. 그가 행하는 보시의 공덕을 몸소 가서 도와주어 구족하게 하되 신심이 청정하고 신ㆍ구ㆍ의업 어느 것이나 자기의 힘에 따라 도와주어 그가 경영하는 일이 장애가 없도록 하며, 구하는 이의 뜻을 만족케 한다.
그가 일손이 딸려 온전히 보시하지 못하거나 혹은 붕당(朋黨)을 따르거나 법답지 않은 행을 하거나 바른 생각을 잃었을 때 이 보살은 재물이 없더라도 지혜를 보시하여 청정심을 얻지 못한 이에게 청정심을 얻게 하나니 그리하면 그 보살은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태어날 적마다 항상 한량없는 재물을 얻게 된다.또 어떤 사람이 삿된 견해를 가지고 불법의 허물을 구할 때 보살은 그것을 알고 그에게는 법을 설해 주지도 않고, 경권(經卷)을 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성품이 재물을 탐내어 경권을 사 모으는 자에게도 베풀어 주지 않으며, 경권을 얻은 뒤에는 숨기고 감추어 나타내지 않는 이에게도 주지 않으며, 그가 알아들을 정도의 뜻이 아니라하면 베풀어 주지 않는다.
만일 그가 뜻을 알아들을 만한 자라면 보살도 스스로가 그 경권의 뜻을 진작 알아서 문득 그 경을 갖다가 그가 좋아하는 정도에 따라 베풀어 주고, 만일 자신이 그 뜻을 알지 못하거든 모름지기 스스로가 배워야 한다.또 다른 사람에게 이러한 경이 있는 줄 알면 그 곳을 일러 주거나 혹은 다시 써서 줄 것이요, 만일 일러 줄 곳도 없고 또 쓸 수도 없거든 보살은 스스로 그 마음을 관하되 ‘법간(法慳)이 마음에 읽혀서 베풀지 못하는가? 아니면 다른 일이 있어서 베풀지 못하는가?’ 한다.
이렇게 스스로 관찰하고는 다시 생각하되 ‘만일 조금만의 법간이 있거든 경을 주리니 법시(法施)를 위해서이다. 내가 정념 법시를 한 보답으로 이 생에서 벙어리가 된다 해도 번뇌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보시를 행하여야 하겠거늘 하물며, 장래의 지혜방편을 위해서 이겠는가?’ 한다.
이렇게 관찰할 때에 아주 미세한 법간도 없다면 그 보살은 스스로 배우되 ‘나는 번뇌를 제거하기 위해 법시를 수행하고, 지혜방편을 만족하기 위해 법시를 수행하며, 중생을 사랑스럽게 여기기 때문에 법시를 수행한다’고 한다.보살이 속으로 번뇌견(煩惱見)이 없음을 스스로 확인하면 저에게 보시하지 않더라도 현세에 지혜를 얻고 미래세엔 더욱 무량하게 늘어나리니 저에게 베풀었기 때문에 이런 공덕을 얻는 것이 아님을 본다. 경법(經法)에 따라 보시한 이는 미래세에 조그마한 법리(法利)를 얻겠지만 스스로 배워서 지혜가 열리는 데는 미치지 못하나니, 지금은 비록 베풀지 않더라도 반드시 모든 중생을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지혜를 베풀 것이다.
차라리 모든 중생에게 지금 아무 것도 베풀어 주지 않을지언정 어느 한 사람을 위하여 경권(經卷)을 주지는 않는다.
이렇게 여실히 알고서 베풀지 않으면 허물이 없고 후회도 없고 보살이 지켜야 할 계에 어긋나지도 않는다.어떤 것이 보살이 방편으로 베풀지 않는 것인가? 결코 주지 않겠다고 곧장 말하지 않고 부드러운 말로 깨우쳐서 돌려보낸다. 이런 방편을 써서 베풀지 않는다.
보살은 본래부터 간직했던 모든 보시할 물건을 청정한 마음으로 모든 시방의 불보살에게 바쳐서 청정한 보시를 하나니 마치 비구가 자기의 옷과 물건을 화상이나 아사리에게 바쳐서 청정보시를 하는 것 같이 한다. 이렇듯이 청정보시의 인연을 삼기 위한 까닭에 갖가지 무량한 재물을 비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성종보살(住聖種菩薩)이라 하나니, 역시 무량한 공덕을 얻는다.
항상 스스로가 이러한 공덕을 생각하므로 언제나 항상 계제에 맞게 증장하나니 무릇 청정보시에 쓰기 위해 비축한 물건은 제불보살께서 맡겨 두신 것으로 여기다가, 구하러 온 이를 보거든 그 사람이 만족히 여기는 모습이 있는가를 관찰해야 한다.
먼저 이미 베풀려던 물건으로 청정보시를 하려거든 가져다 주면서 생각하되 ‘제불보살은 온갖 중생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 없도다’라고 하나니, 이렇게 알고는 구하는 이의 뜻을 만족케 한다.그 사람을 관찰하여 만족하게 여기는 모습이 없거든 청정보시의 법으로 깨우쳐 주면서 “현수(賢首)여, 이 물건은 벌써 베풀어진 것인지라 이미 속해 있소”라고, 부드러운 말로 돌려보내어 원한을 품지 않게 하거나 다른 물건을 두세 곱 베풀어 주라.
이런 방편을 써서 그로 하여금 ‘보살은 간탐 때문에 보시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자재하지 못하여 나에게 보시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할지니 이러한 경법(經法)에 따라 베풀어 주지 않는다. 보살이 이러한 법시를 하면 이를 지혜시(智慧施)라 한다.
또 보살은 일체 보시, 즉 법시ㆍ재시ㆍ무외시의 종류에 대하여 그 모습의 이름이나 이치나 차별된 인과를 여실히 안 뒤에 보시를 행하나니, 이것을 보살의 지혜보시라 한다.
또 보살은 자기에게 이롭지 않게 하는 이에게는 자심(慈心)으로 보시하고, 고뇌하는 자에게는 비심(悲心)으로 보시하고, 공덕 있는 자에게는 희심(喜心)으로 보시하고, 자기에게 이로운 이와 선지식과 친척에게는 사심(拾心)으로 보시하나니, 이를 보살의 지혜보시라 한다.또 보살에게는 장시(障施)가 있으니, 장시와 대치법(對治法)을 여실히 알아야 한다. 장시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예전부터 닦아 익히지 않은 것이요, 둘째는 보시할 물건이 적은 것이요, 셋째는 재물은 비록 많으나 탐애가 치성한 것이요, 넷째는 미래 세상에 재물의 과보가 구족할 것을 보고 탐착심을 내는 것이다.
먼저부터 보시를 닦아 익히지 않았다 함은 보살이 바야흐로 구하러 온 이를 보았을 때 재물은 많으나 보시할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다. 보살은 이는 자신이 일찍이 보시를 익히지 않은 때문이었음을 알고서 빨리 지혜를 움직여 ‘내가 정녕 옛날에 베풀려는 마음을 익히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비록 재물이 있다 해도 구하러 오는 이에게 베풀 마음을 내지 않게 되었구나. 만일 지금 베풀지 않으면 내생에 또 이러한 시애(施礙)가 생길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한 뒤에 시장을 대치하는 법에 따라 보시를 행하면 보시를 익히지 않은 시장(施障)을 여읜다.보시할 물건이 적다고 함은 보살이 구하러 온 이를 보아도 베풀 물건이 적어서 베풀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시장이 생기는 것이니 빨리 지혜를 움직여 ‘차라리 궁핍하게 살지언정 꼭 보시는 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비심(悲心)으로 보시한다.
다시 ‘나는 옛적부터 숙업(宿業)의 허물 때문에, 남의 부림을 받아 내가 굶주리고 춥고 고단해져서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주지 못했다. 차라리 지금 내가 이 일로 인하여 목숨을 잃거나 현세에 고통을 받게 되더라도 꼭 보시를 행하여 중생을 거두되 받는 이의 마음이 만족케 하리다. 게다가 나는 오늘 과일이나 채소 등 살아갈 것이 있으니, 마땅히 고통을 참으면서 보시를 행하리라’고 생각한다.재물이 비록 많으나 탐애가 치성하다 함은 보살은 구하러 온 이를 보아도 아끼는 마음이 치성해서, 그 물건이 가장 비싸기 때문에 베풀어야 할 물건에 대하여 베풀 마음을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때 그 보살은 쌓아 모으는 허물을 알기 때문에 빨리 지혜를 움직여, ‘내가 괴로움에 대하여 즐겁다는 생각을 내면 미래 세상에 큰 고통을 받으리니 이러한 뒤바뀐 생각은 알아야 하고 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능히 보시를 행한다.미래 세상에 재물의 과보가 구족할 것을 보고 탐착심을 낸다 함은 보살이 보시를 행한 뒤에 보시한 과보로서 얻을 큰 재물에 대하여 복이 되고 이익이 되리라는 소견을 내어 무상보리를 뜻 모아 구하지 못하리니 보살은 알고 있는가? 과보가 허물이 되는 줄 알고는 빨리 지혜를 움직여 ‘모든 행(行)은 견고하지 않아 찰나찰나에 파멸하며, 받게 되는 과보도 역시 그러하여 모두가 흩어지고 파멸할 법이다’라고 바르게 관찰한다.이렇게 관찰할 때에 과보를 보고 곧 끊어서 보시한 모든 공덕을 무상보리에 회향한다. 이것이 보살이 네 가지 장시(障施)를 대치하는 지혜라 하는 줄 알지니 이른바 분별과 괴로움을 참음과 뒤바뀜을 거둘 줄 아는 것과 모든 행(行)이 견고치 않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이 중 앞의 세 가지의 대치하는 지혜로는 곧 올바르게 보시를 하는 것이요, 나중 한 가지의 대치하는 지혜로는 바른 과보를 받아들이는 것이니, 이것을 보살의 지혜보시라고 한다.또 보살이 속으로 혼자 청정한 마음이 순후(淳厚)하고 깨끗한 믿음[淨信]의 생각[覺想]이 뛰어나게 미묘해진 이가 한량없는 보시물을 일체 중생에게 즐거이 베풀어 주면 이 보살은 적은 방편으로도 무량한 공덕을 내나니, 이는 지혜로운 보살의 큰 지혜의 보시라 한다.
이것이 보살의 유재시(有財施)와 무재시(無財施)에 속하는 법을 간략히 말한 것이라 한다.
이와 같이 법시(法施)ㆍ분별시(分別施)ㆍ정심시(淨心施)ㆍ시장대치지혜보시(施障對治智慧布施)ㆍ정심의해시(淨心意解施) 등을 보살의 불공시(不共施)라 하나니, 마땅히 알라. 이것을 일러 보살의 온갖 안팎의 베풀 물건을 널리 분별했다 한다.
위에서 일체 보시를 분별한 까닭은 다시 난시(難施) 등을 분별키 위한 뜻도 있기 때문임을 알라.어떤 것이 보살의 난시인가? 간략히 말하면 세 종류가 있나니, 보살이 재물을 조금만 가지고 있으면 자신은 빈궁함을 참고 남에게 보시하는 것이 첫째의 난시요, 보살이 사랑스러운 물건을 몹시 애착하고 오래도록 애착했거나 아주 좋은 물건인지라 깊이 탐착하던 것을 능히 스스로 결단하여 남에게 베푸는 것이 둘째 난시요, 보살이 애써서 구해얻은 재물을 남에게 베푸는 것이 셋째 난시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문시(一切門施)인가? 간략히 말하면 네 가지가 있으니 이 보살이 스스로 얻은 물건이나 남에게 권해서 얻은 물건이나 스스로가 남의 보시를 모은 물건이나 부모ㆍ처자ㆍ노비ㆍ일꾼ㆍ친구ㆍ대신ㆍ친속의 물건을 남의 필요에 따라 모두 베풀어 주나니 이것을 보살의 네 가지 일체시문을 간략히 말한 것이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선인시(善人施)인가? 간략히 말하면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보살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공경히 보시하는 것이요, 셋째는 자기 손으로 보시하는 것이요, 넷째는 때에 맞추어 보시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남을 침해하지 않고 보시하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의 선인시(善人施)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행시(一切行施)인가? 간략히 말하면 열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무의시(無依施)요, 둘째는 광시(廣施)요, 셋째는 환희시(歡喜施)요, 넷째는 상시(常施)요, 다섯째는 기시(器施)2)요, 여섯째는 일체시(一切施)요, 일곱째는 일체처시(一切處施)요, 여덟째는 일체시시(一切時施)요, 아홉째는 무죄시(無罪施)요, 열째는 일체물시(一切物施)요, 열한째는 방토물시(方土物施)3)요, 열두째는 자재시(資財施)요, 열셋째는 곡시(穀施)이니 이러한 열세 가지를 보살의 일체행시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의 제뇌시(除惱施)인가? 간략히 말하면 여덟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음식을 필요로 하는 이를 보면 보살은 음식을 베풀어 주고, 둘째는 수레나 탈 것을 필요로 하거든 탈 것을 주고, 셋째는 옷을 필요로 하거든 옷을 주고, 넷째는 장엄구(莊嚴具)를 필요로 하거든 장엄구를 주고, 다섯째는 갖가지 기구를 필요로 하거든 모두 주고, 여섯째는 꽃다발이나 바르는 향을 필요로 하거든 그 뜻에 따라 주고, 일곱째는 집을 필요로 하거든 집을 주고, 여덟째는 등불을 필요로 하거든 등불을 준다. 이것이 보살의 제번뇌시이다.어떤 것이 차세타세락시(此世他世樂施)인가? 간략히 말하면 아홉 가지가 있으니, 이르되 재시(財施)ㆍ법시(法施)ㆍ무외시(無畏施)이다. 재시라 함은 뛰어나고 묘하고 청정하여 간탐의 때[垢]와 쌓아 모으는 번뇌를 법답게 조복시키기 위하여 보시를 수행하는 곳이니, 간탐의 때를 조복시킨다[調伏慳垢]함은 집착심을 버리는 것이요, 쌓아 모으는 번뇌를 조복시킨다[調伏藏積垢] 함은 수용하려는 집착은 버리는 것이다.
무외시라 함은 사자ㆍ호랑이ㆍ이리나 왕ㆍ도적ㆍ물ㆍ불 등의 온갖 두려움에서 구출하여 편안함을 얻게 하는 것이다. 법시라 함은 뒤바뀌지 않게 설법하고 구족하게 설법하고 사람들에게 금계(禁戒)를 일러 주는 것이다. 이것이 간략하게 설한 보살의 아홉 가지 보시이니, 중생들로 하여금 금생과 후생에 안락함을 얻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재시와 무외시는 금생의 즐거움을 분별한 것이요, 법시는 금생과 후생의 즐거움을 분별한 것이다.어떤 것이 보살의 청정시(淸浮施)인가? 간략히 말하면 열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불유난(不留難)이요, 둘째는 불이견(不異見)이요, 셋째는 불적취(不積聚)요, 넷째는 불고심(不高心)이요, 다섯째는 무소의(無所依)이요, 여섯째는 불퇴약(不退弱)이요, 일곱째는 불하심(不下心)이요, 여덟째는 불배면(不背面)이요, 아홉째는 불구은(不求恩)이요, 열째는 불구보(不求報)이다.불유난이라 함은 구하러 오는 이를 보거든 보살은 빨리빨리 보시하여 지체하지 않되 때에 맞추어 그 소원을 만족케 하거나 그가 원하는 것보다 더 빨리 원만케 해주는 것이다.
불이견(不異見)이라 함은 보살이 보시할 때에 딴 소견[異見]을 일으켜서 ‘과보가 없다’고 말하지 않으며, ‘생명을 죽여서 보시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으며 ‘이 법은 이러한 보시로는 세간과 출세간의 청정함을 구할 수 없다’고 말하지도 않는 것이다.
불적취시(不積聚施)라 함은 보살이 오랫동안 재물을 쌓은 뒤에 몽땅 보시하지 않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보살은 베풀 물건이 있으면서 구하러 온 이를 보고는 능히 베풀지 않을 수 없으며, 법답지 못한 소견으로 베풀어 주지 않는 것도 아니거늘 어찌 쌓아 모은 뒤에야 베풀겠는가?
또 쌓아 모았다가 보시하여야만 보시의 복이 더욱 많아지는 것이 아니다. 베푸는 물건이 균등하고 구하는 이도 역시 균등하거늘 차츰 베풀거나 활짝 베푸는 것에 무슨 인연으로 복이 차별되리라고 보겠는가?
또 보살은 쌓아 모았다가 베푸는 것에는 허물이 있다고 보고 생기는대로 베푸는 것에는 허물이 있다고 보지 않나니 무슨 까닭인가? 말하자면 쌓아 모았다가 베풀면 먼저부터 구하러 온 이가 혹 수백 명이 될 터인데 주지 않으면 그들로 하여금 꺼리고 한탄하는 마음을 품게 하거나 참을 수 없는 마음을 내게 하지만 나중에 구하러 온 이에게 활짝 베풀어 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불적취시(不積聚施:쌓아 모았다가 베풀지 않음)한다.불고심시(不高心施)라 함은 보살은 구하러 온 이에게 겸손하고 낮추는 마음으로 보시하되 남의 뛰어남을 보고 경쟁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지 않으며, 보시한 것을 스스로 칭찬하되 “나는 시주이지만 다른 이는 그렇지 못하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무의시(無依施)라 함은, 보살이 명예나 칭찬 때문에 보시하지 않는 것이니, 거짓 명예 같은 것은 마치 먼지와 같이 여긴다.
불퇴약시(不逸弱施)라 함은 보살은 보시하려 할 때엔 마음이 가볍고 보시할 때엔 기쁘고 보시한 뒤에는 후회하지 않으며, 재물이 많고 으뜸가게 못한 것을 가진 보살이 다른 이가 더 널리 수승하고 못하게 보시했다는 소문을 듣고는 스스로 가벼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불하심시(不下心施)라 함은, 보살이 생각하기를 “가장 수승하고 묘한 물건으로 보시하리라” 하면 이것이 불하심시이다.
불배면시(不背面施)라 함은 보살이 평등한 마음으로 붕당(朋黨)이나 원친(怨親)을 따르지 않고 그 사람들에게 비심(悲心)으로 평등하게 베푸는 것이다.
불구은시(不求恩施)라 함은 보살이 자비심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니, 그것을 받지 않는 자는 그 은혜를 계교하여 욕락에 빠진 중생이 애욕이 치성한 것을 관하니, 그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보시를 구하지 않는 자는, 보살이 보시한 뒤에 미래 세상에 재물이 부귀해질까를 바라지 않고 오직 모든 행은 전부 파멸된다고 관하며 무상보리는 진실한 복리(福利)라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열 가지를 보살의 깨끗한 보시라 하나니, 이렇듯 보살이 아홉 가지 보시에 의한 까닭에 단바라밀을 구족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10) 계품(戒品) ①어떤 것이 보살의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인가? 간략히 말하면 아홉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계(自性戒)요, 둘째는 일체계(一切戒)요, 셋째는 난계(難戒)요, 넷째는 일체문계(一切門戒)요, 다섯째는 선인계(善人戒)요, 여섯째는 일체행계(一切行戒)요, 일곱째는 제뇌계(除惱戒)요, 여덟째는 차세타세락계(此世他世樂戒)요, 아홉째는 청정계(淸淨戒)이다.어떤 것이 자성계인가? 간략히 말하건대 네 가지 덕을 성취하면 이를 자성계라 하나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남에게서 바르게 받아들임이요, 둘째는 착하고 밝은 마음으로 받아들임이요, 셋째는 범한 뒤엔 곧 뉘우침이요, 넷째는 오롯이 정진하고 생각을 모아 굳게 지니어 물러나지 않음이다.
남에게 바르게 받아들인다 함은 밖으로 돌아보고 자신이 범한 일에 대하여 다른 이에게 부끄러운 마음[愧心]을 내는 것이요, 착하고 맑은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함은 안으로 스스로 돌아보아 자신이 범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慚心]을 내는 것이다.
범한 뒤에 곧 뉘우친다 함과 오롯이 정진하여 범하지 않는다 함은 이렇게 해서 계를 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보살은 두 가지 인연이 있어 뉘우침[悔]을 여읠 수 있나니, 이 보살은 계를 받아 정심계(淨心戒)가 일어나고 참괴심(慚愧心)도 일어난다. 참괴심 때문에 능히 계를 잘 보호하고 계를 보호하기 때문에 뉘우침이 없다.
남에게 바르게 받아들임과 밝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이 두 가지는 바로 법(法)이요, 범하면 곧 뉘우침과 오롯이 정진하여 범하지 않음을 따르는 법이다.
남에게 바르게 받아들임과 맑은 마음으로 받아들임과 오롯이 정진하여 물러나지 않음 등 이 세 가지 법은 보살의 무너지지 않는 법이요, 범한 뒤에 곧 뉘우침은 무너진 뒤에 다시 회복하는 법이다.
만일 보살이 이 네 가지 공덕을 성취하면 이를 자성계(自性戒), 또는 진실계(眞實戒)라 하여 자신도 편안하고 남도 편안케 하며, 많은 이를 편안케 하고 많은 이를 쾌락하게 하며 세간을 가엾이 여기고 인간과 하늘을 이롭게 하리라.
계를 받고 계에 따르면 보살은 무량한 청정계를 무량하게 거두어 받아들일 것이며 모든 중생을 거두어 안락하게 할 것이며 큰 과보를 이루고 큰 복리를 얻어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줄 알라.어떤 것이 일체계(一切戒)인가 하면, 간략히 말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재가분(在家分)이요, 둘째는 출가분(出家分)이니 이것이 일체계이다.
일체계에는 다시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율의계(律儀戒)요, 둘째는 섭선법계(攝善法戒)요, 셋째는 섭중생계(攝衆生戒)이다.
율의계라 함은 칠중(七衆)이 받는 계이니, 비구ㆍ비구니ㆍ식차마니(式又拏尼)ㆍ사미ㆍ사미니ㆍ우바새ㆍ우바이이니, 재가와 출가를 통하여 그에게 맞는 것을 율의계라 한다.섭선법계라 함은 보살이 받는 율의계로서 큰 보리와 신ㆍ구ㆍ의의 업을 뛰어나게 닦는 것이니, 이것은 일체계의 섭선법계를 간략히 설한 것이다.
어떤 것을 이르는가? 이른바 보살이 계에 의지하고 계에 머물러서 문혜(聞慧)와 사혜(思慧)의 사마타(奢摩他)와 비바사나(毘婆舍那)와 수혜(修慧)를 닦는 것이다.
비고 한가한 곳에서 고요히 있으면서 스승과 웃어른을 공경하되 예로 섬기어 공양하고, 병들은 이가 있으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살펴보고 공급하며 설법을 듣는 자를 보면 장하다고 찬탄하고, 진실로 덕 있는 이를 보면 장하다고 드높여 찬탄한다.
모든 중생이 지은 공덕에 대하여 생각이나 말로 수희하고 기뻐하며, 침범하는 자가 있을 때엔 모두 참아내며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업은 이미 지은 것이나 장차 지을 것이나 그 전부를 무상보리에 회향한다.
때에 따라 갖가지 뛰어난 원은 닦고 항상 부지런히 삼보께 공양하며, 모든 착한 법에 마음을 게을리 하지 않고, 지혜로운 생각으로 몸과 입의 정계(淨戒)를 간직하며, 모든 감각기관의 문을 잘 지키고 먹는 음식의 양을 알아 지키며, 초저녁이나 새벽에 자는 일이 없고 착한 이를 가까이 하여 선지식에 의지하며, 스스로가 자기의 허물을 살피어 알고 안 뒤에는 다시 범하지 않으며, 범할 적마다 불보살이나 동행(同行)에게 여법히 참회하나니, 이러한 등으로 보호해 지니어 선법계(善法戒)가 자라나게 하면 이것을 섭선법계라 한다.섭중생계(攝衆生戒)라 함은 간략히 말하건대 열한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중생에게 이익되는 일이 있을 때엔 모두 동무가 되어 주는 것이요, 둘째는 이미 병고를 만난 중생이거나 아직 만나지 않은 모든 이나 그들을 간병하는 이들에게 가서 길동무가 되어주는 것이요, 셋째는 중생들을 위하여 세간과 출세간의 법을 설해 주거나 혹은 방편으로 지혜를 얻도록 해 주는 것이요, 넷째는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중생들의 갖가지 공포, 즉 사자ㆍ호랑이ㆍ이리ㆍ왕ㆍ도적ㆍ물ㆍ불 등의 두려움을 모두 구호해주는 것이니, 혹 어떤 중생이 친속이나 재물을 잃는 어려움이 있으면 모두 깨우쳐 주어 근심 걱정을 여의게 해준다. 여섯째는 가난하여 굶주리는 중생을 보면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따라 모두 공급해 주며, 일곱째는 덕행을 구족하고 삼매에 의지하여 여법하게 무리를 거두는 것이요, 여덟째는 먼저 위로하는 말을 해 주고 때에 맞춰 오가면서 음식을 주고는 세간의 선한 말을 해준다. 이렇게 진행하고 멈추기를 그치지 않고 가고오고 하는 때 알맞은 물건을 준다. 이렇게 하는 일에서 중생을 편안케 하는 것은 모두 수순해 주고 편안케 하지 않는 것은 모두 멀리하는 것이다. 아홉째는 진실로 덕이 있는 이는 드높여 찬탄해 주는 것이요, 열째는 허물이 있는 이는 인자한 마음으로 꾸짖어서 굴복시키건 벌주건 내쫓아서 고치게 하는 것이요, 열한째는 신통력으로 악도를 보여 주어 중생들로 하여금 뭇 악을 두려워하고 불법을 만들어 닦고 기쁜 마음으로 믿고 좋아하여 회유하다는 마음을 내게 하는 것이다.어떤 것이 보살이 율의계에 머무르고 섭선법계에 머무르고 섭중생계에 머무는 것인가? 어떤 것이 계를 잘 지키는 것이며 선법(善法)의 계를 잘 거두는 것이며 일체 행으로 중생의 계를 잘 거두는 것인가?
보살이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에 머물러서 전륜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울 때 존귀한 지위를 초토(草土)와 같이 여겨 돌아보지 않고, 오욕(五欲)을 버리되 침을 뱉는 듯하며 내지 내세의 마천(魔天)의 자리를 원하거나 좋아하지 않으며 결코 그런 것들을 위하여 범행(梵行)을 닦아 지니지 않으며,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여실하게 자기의 허물을 되돌아보며, 현재의 즐거움을 버리되 태풍이나 우박을 두려워하듯 하며, 바른 지견으로 관찰하여 맛 들여 집착하지 않는다.그 성품이 고요하여 비고 한가한 곳을 좋아하며 혼자 있건 여럿이 있건 마음이 항상 편안히 머무르며, 계를 지키는 기한을 정하여 흡족하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계에 의하고 계에 머물러서 보살의 삼매[正受]에서 생기는 무량공덕을 닦아 익히며, 만일 사부대중과 가까이 있을 때엔 그릇된 법을 말하지 않으며, 비고 한가한 곳에 홀로 있을 때엔 나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설사 잠시 일으켰더라도 곧 스스로 뉘우쳐 그 허물을 깊이 알며, 허물을 안 뒤에는 바로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만일 보살이 일체 계법과 온 누리 보살들의 미묘하고 무량하고 불가사의하고 오래 걸리는 난행(難行)에 관해 듣더라도 두려워하거나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저들은 대장부로서 보살의 불가사의한 신ㆍ구의 정계[身口淨戒]를 지녔다. 나 또한 대장부인지라 장차 반드시 그와 같은 것에 결정코 의심이 없도다’라고 생각한다.율의에 머무른 보살은 항상 자기의 허물을 살릴 뿐 남의 단점을 보지 않으며, 흉포한 자나 악성인 자를 보면 성내거나 한탄하는 마음이 있어 법다운 마음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방편으로 해탈을 얻게 한다. 율의에 머무는 보살은 중생들에게 두렵다는 생각도 내게 하지 않거늘 하물며 해를 가하겠는가?
율의에 머무른 보살은 다섯 가지 방일하지 않는 행을 성취하나니 과거와 함께 함, 현재와 함께 함, 미래와 함께 함, 이미 지음, 장차 지음이다.
보살이 과거에 범한 것에 대하여 여법히 참회하면 이를 과거의 방일하지 않는 행이라 하고, 미래에 범할 것에 대하여 여법히 참회하면 이를 미래의 방일하지 않는 행이라고, 현재 범한 것에 대하여 여법이 참회하면 이를 현재의 방일하지 않는 행이라 하고, 행한 바나 머무른 바와 어긋나지 않게 오롯한 마음으로 지키어 지니면 이를 이미 지은 방일하지 않는 행이라 하고, 이미 지은 방일하지 않은 행에 의하여 행한 바와 머무른 바와 어긋나지 않게 하여 계 범할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이를 장차 지을 방일하지 않는 행이라 한다.율의에 머무른 보살은 공덕은 숨기고 나쁜 일은 드러내며,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며, 뭇 고통을 참고 근심걱정을 하지 않으며, 다니고 멈춤[進止]이 조심스럽고 위의(威依)가 점잖으며 온갖 아첨 등 나쁜 짓을 떠났고 정명(正命)을 깨끗이 닦나니 보살이 이와 같은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율의에 머물러서 계를 잘 보호해 지닌다고 한다.
이른바 오욕에 대하여 연연하지 않으며, 미래의 오욕에 대하여 흠모하지 않으며, 현재의 오욕에 대하여 탐착하지 않으며, 비고 한가한 곳에 즐겨 앉아 만족하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나쁜 말과 나쁜 생각을 떠나 마음을 경솔히 하지 않으며, 편안하고 즐겁게 머물러 잘 참으며, 게으르지 않고 위의로써 짧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보살이 섭선법계에 머무를 때 몸과 목숨과 재물에 대하여 티끌 같은 집착이라도 일으키면 즉시 제멸하여 늘어나지 않게 하며, 온갖 계를 범하는 인연인 번뇌와 같은 것이 일어나면 즉시 제멸하며, 중생에게 성내거나 해치려는 마음이 일어나면 즉시 제멸하며, 게으름을 일으키면 즉시 제멸하며 맛에 상응한 선이 일어나면 곧 제멸한다. 다섯 곳을 여실히 다니니 이른바 좋은 인[善因]ㆍ좋은 과[善果]ㆍ좋은 인과의 뒤바뀜[善因果側]ㆍ뒤바뀌지 않음[非倒]ㆍ좋은 법을 거두는 데 장애됨[攝善法障] 등을 모두 여실히 안다.보살은 좋은 과보의 복과 이로움을 보고서 좋은 일을 구할 때, 섭선법도(攝善法倒)를 여실히 아나니 보살이 선근을 얻었으므로 무상(無常)을 상(常)이라고 하는 소견이나 부정(不淨)을 정(淨)이라 하는 소견이나 무아[非我]를 아(我)라고 하는 소견을 일으키지 않으며 섭선법장(攝善法障)을 여실히 아나니, 선법을 거두어들이지 않는 장애를 여읜다.
보살이 이와 같은 열 가지 행을 성취하면 섭선법계에 머물러서 모든 선한 법과 일체행에 이르기까지 빨리 받아들이나니 이른바 보시에 의하고 계에 의하고 인욕에 의하고 정진에 의하고 선정에 의하는 등의 다섯 가지 행으로 이루어지는 지혜이다.보살은 섭중생계에 머무를 때 열한 가지가 있어 낱낱 종목에서 모든 행을 성취한다. 첫째는 중생들이 하는 일에 모두 동사(同事)해 주는 것이니 처음 생각할 때와 그리고 그것을 시행할 때와 길을 오갈 때와 바야흐로 사업하는 방편이 필요할 때와 재물을 수호할 때와 싸우거나 화합할 때와 세간의 길흉사로 모일 때와 모든 복스러운 사업을 할 때 모두 동사해 준다.둘째는 모든 괴로운 일에 길동무가 되어 주나니, 병에 걸린 이를 보면 살려 주고 시봉해 주고, 눈먼 이는 인도해 주고, 길을 잃으면 인도해 주고, 귀 먼 자는 가리켜 주고 절름발이의 짐을 져주고, 애욕에 얽매여 괴로워하는 이는 멀리 여의게 해 주고, 성냄의 번뇌와 들뜸과 의심의 덮개 등의 이러한 고통 역시 멀리 여의게 해 주고, 애욕의 생각ㆍ성냄의 생각ㆍ해치려는 생각ㆍ친척이라는 생각ㆍ국토라는 생각ㆍ죽지 않으려는 생각ㆍ남을 업신여기는 생각ㆍ귀한 가문이라는 생각 등도 모두 멀리 여의게 해 주고, 소송을 일으키고도 괴로운 줄을 모르는 중생은 모두 깨우쳐 화해시켜 주고, 길을 가느라 지치고 피로한 이에게는 온갖 쉴 자리를 베풀어 준다.셋째는 중생들을 위하여 구족히 설법해 주는 것이니, 악을 행하는 중생에게는 악행을 제거하는 좋은 법문 좋은 뜻 좋은 이치[義]와 수순하는 법과 통달하는 법과 증장(增長)하는 도품(道品)을 설해 주는 것이다. 방편으로 법을 설하나니 악을 짓는 중생을 위하여 악행을 제거하는 법을 설해 주고, 간탐(慳貪)하는 중생에게는 간탐을 제거하는 법을 설해 주어 현세에 좋은 과보를 얻는 법과 적고 빠른 방편으로 큰 재물을 얻는 법과 얻은 뒤에는 지키는 법을 설해 주며, 미워하는 법에 걸린 이에게는 믿음과 즐거움을 내게 하여 청정하게 진리를 보게 하고 모든 악취(惡趣)를 여의게 하며 번뇌가 영원히 다하고 일체 고를 멸하게 한다.넷째는 은혜를 알아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니, 자기에게 이롭게 하는 이에게는 좋은 마음으로 더불어 말하고 문안하며, 찬탄하기를 “잘 오시었소[善來]” 하고 자리를 권하여 앉게 하며, 보답을 대등하거나 혹은 더하여 그 대가에 손해를 입게 하지 않도록 하며, 하는 일은 모두 함께 일해 주며 병고에 시달리는 이는 보살펴 주고 수순하여 설법해 주며, 두려움을 제거해 주고 근심 걱정을 여의게 해 주며 가난하여 궁색한 이에게는 갖가지 도구를 보시해 주며, 법답게 의지하여 그 마음을 수순해 주며 진실한 덕이 있는 이에게는 드높여 찬탄하고 기뻐해 주며, 허물이 있는 이는 인자한 마음으로 꾸짖어서 조복시키거나 내쫓거나 뉘우치게 하며 신통력을 보이되 그의 정도에 맞추어 나타낸다.다섯째는 두려워하는 중생에게 구호자가 되어 주는 것이니, 이른바 물ㆍ불ㆍ왕ㆍ도적ㆍ귀신ㆍ맹수ㆍ인비인(人非人) 등의 온갖 두려움을 모두 구제해서 편안케 하며, 어떤 중생이 친속이나 재물 걱정으로 근심하거나 혹은 친속이나 벗이나 선지식이나 스승이나 어른 등 모든 존경할 분을 잃었거나 혹은 왕이나 도적에게 재물을 빼앗겼거나 소중한 보물무더기가 불에 타버렸거나 물에 떠내려가서 잃어버렸거나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재산을 강제로 빼앗기거나 혹은 나쁜 권속이 가산을 탕진하여 괴로워할 때 모두 깨우쳐 주어 근심 걱정을 여의게 한다.여섯째는 살림이 부족한 중생을 보면 그가 필요한 것을 모두 공급해 주는 것이니, 음식ㆍ의복ㆍ탕약 등 뭇 기구와 향ㆍ꽃ㆍ등(燈)ㆍ장엄구 등 갖가지 꾸미개와 수레ㆍ노비ㆍ재물ㆍ주택 등 이런 것들을 궁핍한 이에게 모두 베풀어 준다.일곱째는 법답게 받아들인 대중에게 우선 의지가 되어 주는 것이니, 탐욕을 여인 마음과 가엾게 여기는 마음으로 설법해 주고 필요한 물건은 보시해 주되 자기에게 없으면 신심 있는 거사나 장자에게 가서 구해다 준다. 법답게 얻은 의복ㆍ음식ㆍ탕약ㆍ방등은 함께 수용하여 따로 숨김이 없으며 다섯 가지 법으로 때에 따라 가르치고 경계할지니 역종성품(力種性品)에서 설한 것과 같다.여덟째는 남의 마음을 따르는 계니, 먼저 중생들의 자성과 성품을 알아서 함께 살아야 할 자는 함께 살고 그의 마땅함에 따라 함께 종사하기도 한다.
남의 마음을 따른다 함은 그의 행위를 관찰하되 만일 이러이러한 몸짓과 이러이러한 말씨로 그가 근심하게 되거나 이익이 되는 일이 없다면 보살은 하지 않는다. 비록 근심하게 하지만 이익이 되게 할 수 있다면 보살은 한다.
만일 보살이 스스로가 행한 몸짓ㆍ말씨가 계에 속하는 것도 아니요, 공덕이 되는 지혜도 방편도 아니요, 그들로 하여금 근심을 내게 하여 이익이 없게 한다면 보살은 하지 않고 위와 반대되는 것을 보살은 한다.
근심과 고통을 내게 하는 것이 그렇듯이 괴로움과 즐거움도 그러하니 마땅함에 따라 널리 분별하여 설한다.또 남의 마음을 따른다 함은 만일 어떤 중생이 얼굴에 화난 빛을 띠고 있음을 보면 그 덕도 오히려 찬란하지 않거늘 하물며 그 악을 말하거나 참회로 뉘우치지 않는 일이 있겠는가?
또 남의 마음을 따른다 함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인사와 문안을 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몸소 가서 인사하고 문안하거늘 하물며 인사하러 온 이에게 답례를 하지 않겠는가? 다만 가르칠 때는 예외이다.
또 남의 마음을 따른다 함은 다른 사람을 번거롭게 하지 않나니, 다만 인자한 마음으로 모든 감관을 고요하게 하여 제자들을 꾸짖어 조복시키는 경우는 제외한다.
또 남의 마음을 따른다 함은 남을 비웃거나 조롱하여서 그로 하여금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의혹과 후회하는 마음을 내게 하지 않으며, 설사 상대방이 졌더라도 결코 ‘너는 이제 나에게 졌다’고 말하지않으며 남이 겸손한 것을 보아도 스스로 교만하지 않는다.또 남의 마음을 따른다 함은 가까이 하지 않을 이에게 지나치게 가까이 하지 않지도 않으며 때 아닌 때에 가까이 하지도 않는다.
또 남의 마음을 따른다 함은 남이 친절을 베푸는 이에게 그 허물을 말하지 않고, 남이 원망하는 이에게 그 공덕을 칭찬하지 않으며, 친하지 않은 이와 함께 일하지 않으며, 지나친 욕심으로 구하지 않고, 만일 물건을 얻게 되면 양을 알고 만족할 줄 알며, 청하는 이가 있으면 그 뜻을 거역하지 않고, 만일 나를 혐오하고 꾸짖는 이가 있으면 여법하게 참회하고 감사한다.아홉째 진실로 공덕 있는 자는 찬탄하고 환영하며 기뻐하고 구족한 이는 그 믿음의 공덕을 찬탄하는 것이니, 계와 들음과 보시와 지혜가 구족한 이에게도 이와 같이 한다.열째 꼭 꾸짖어야할 자에게는 꾸짖어서 조복시키며, 적은 허물을 적게 범한 이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부드러운 말로 꾸짖고 중간 허물을 중간쯤 범한 이는 중간 말로 꾸짖고, 최상의 허물을 최상으로 범한 이는 최상의 말로 꾸짖는다.
꾸짖는 법과 같이 조복시키고 벌주고 내쫓는 것도 이와 같다. 허물이 적거나 중간쯤 범한 이는 때에 따라 잠시 내쫓았다가 다시 함께 살게 할지니 계를 범한 이와 그 밖의 다른 사람을 교화시키기 때문에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대중 밖으로 내쫓는 것이다. 최상의 허물을 최상으로 범한 이는 함께 살지 않고 함께 먹지도 않으며 참회하더라도 함께 살지 말지니, 가엾이 여기는 마음 때문이며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불법 안에서 더 많은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며 또 다른 중생에게 경계를 주기 위해서이다.열한째는 보살이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까닭에 신통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두렵게 하기도 하고 혹은 기뻐하게 하기도 하여 악을 행하는 자에게 나쁜 과보를 보여 주기 위한 까닭이니 이른바 한빙지옥(寒氷地獄)이나 변지지옥(邊地地獄) 등 모든 나쁜 갈래이다.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이것을 보라. 인간이 악을 지으면 반드시 저기에 태어나서 무량한 고통을 받으리라” 하면 그가 이를 보고 두려워하여 멀리 여의려는 마음을 내고 모든 악행을 버린다.
보살은 대중 가운데서 믿지 않는 이가 남의 일을 물었는데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면 곧 금강역사(金剛力士)나 그 밖에 힘센 모든 하늘 귀신 등으로 변화하여 두려워하게 하나니 두려운 까닭에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공경과 믿음으로 바르게 대답하게 되고, 그 밖의 대중도 그 빠른 대답을 듣고는 역시 모두가 조복된다.또 신통력으로 하나를 많게 나타내고 많은 것을 하나로 나타내며 석벽을 걸림 없이 지나고 몸에서 물과 불이 나온다. 혹은 성문들의 신통력을 나타내어 그들로 하여금 기쁘게 해 주면 믿지 않는 이는 믿고 계를 범한 자는 청정해지고 들은 것이 적은 이는 많이 듣게 되고 인색한 자는 보시를 하고 어리석은 자는 지혜로워지나니 어떠한 보살들은 모든 행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계를 성취한 것이니, 이를 보살의 세 가지 계취의 무량한 공덕취(功德聚)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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