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2권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제2권
담무참 한역
김월운 번역
4) 진실의품 ②다시 다음에 보살이 오랜 세월 동안 무아법지(無我法智)에 들어가 언어자성(言語自性)을 여의고 모든 법을 여실히 안 뒤엔 일으킬만한 망상은 한 법도 없기에 사물에 따라 취하고 이치에 따라 취할 뿐 ‘이것은 사물이다, 이것은 이치이다’라는 등의 생각이 없이 오직 정의만을 행한다.제일의를 행한 뒤에 모든 법이 진여이어서 무등등(無等等)함을 여실히 보고 안다. 모든 것이 평등하므로 평등한 마음을 관하여 제일의 사(捨)를 얻고 제일의 사에 의지한 뒤에는 모든 경론(經論)과 일체 선교방편[巧便]을 모두 잘 통달한다.온갖 고통에서도 끝내 물러서지 않고 그 마음이 견고하며 몸에는 피로함이 없다. 하는 일마다 선교한 방편이 있어서 큰 기억의 힘을 얻고 모든 선교한 방편에 대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지도 않으며, 법으로 중생을 교화하되 아낌이 없다.
모든 선교한 방편에 대하여 겁을 내거나 나약한 마음이 없고 감당할 일에서는 물러섬이 없으며 큰 견고함을 갖춘 투구[大堅固鎧]를 쓰고는 이러이러하게 생사의 고통이 늘어남과 이러이러하게 능히 감당해내는 힘이 늘어남과 이러이러하게 위없는 보리를 늘어나게 할 수 있음과 이러이러하게 공덕이 더욱 늘어남과 이러이러하게 교만이 차츰 줄어듬과 이러이러하게 지혜가 더욱 밝아짐과 이러이러하게 저회끼리 다툼과 계를 범함과 번뇌 등을 모두 안다.안 뒤에는 놓아버려서 이러이러하게 공덕이 더욱 늘어나면 이러이러하게 더욱 덮어 감추어 남이 알지 못하게 하나니 이양(利養)을 위해서가 아니다.보살은 이와 같은 무량한 복리(福利)로 보리도(菩提道)에 수순하되 모두 그 지혜에 의하는 까닭에 보살은 이미 보리를 얻었거나 지금 얻거나 장차 얻을 때에 모두 그 지혜에 의지하고 다른 것에 의하지 않는다.
열등하거나 수승하거나 이렇게 허망함을 여의나니, 보살은 이렇듯 무량한 복리가 있다. 스스로가 위없는 불법을 성취하고는 다시 삼승의 법으로 중생을 이익케 하나니 이를 바르게 나아간다[正趣]라고 이름한다.바르게 나아간 뒤에는 스스로가 몸과 재물에 대하여 탐애를 멀리 여의고, 탐애 버리는 법을 배운 뒤에는 다시 중생들로 하여금 탐애를 여의어 몸과 재물을 버리게 하며 평등한 마음으로 중생을 대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베푼다.
모든 감관을 잘 단속하고 몸과 입의 계율을 익히고, 천성이 악하지 않아 어질고 진실되며, 다른 이가 해를 가하거나 온갖 악행을 가해도 참는다.참음을 닦아 배운 뒤엔 성냄과 원한이 점점 엷어져서 남을 핍박하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모든 배워야할 법을 부지런히 닦아 배워 중생들의 의문을 잘 풀어주고, 잘 거두어 이익되게 하며 스스로도 모든 지혜의 씨앗[因]을 거두어 받아들인다.
안으로 그 마음을 거두어 모아 삼매에 안주하고 4선정[梵處]을 맑게 하고 5신통에 노닌다.
모든 사업을 방편으로 배워서 온갖 선교방편을 세우거나 폐하거나 하매 끝내 피로해하지도 싫증내지도 않는다.제일 진실의 도리를 잘 관찰하고 제일대승의 법을 잘 닦아 배우고는 끝내 세간의 열반을 구하지 않는다. 이렇듯이 평등함을 끝까지 구족하고는 모든 대덕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나쁜 중생에게는 대비심을 일으켜 힘껏 악행을 제거해 주며, 자기에게 혐의와 한을 품어 이롭지 못하게 하는 이에게는 자비한 마음을 일으켜 힘에 따라 아첨치 않음[不詔]과 거짓되지 않음[不僞]과 안락과 요익으로 그들의 원한을 풀고 악이 저절로 소멸하게 한다.이롭게 해주기를 마친 이는 동등하게 해주거나 그보다 조금 더 베풂으로서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하며 법답게 구하는 이가 있으면 모두 만족케 해준다.
만일 스스로에 힘이 없으면 그가 비록 청하지 않았으나 방편을 쓰되 마음을 쉬지 않고 그로 하여금 나는 인색함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나니 이를 이름하여 보살이 허망함을 멀리 여의고 제일의 진실지(眞實智)에 의하는 평등방편(平等方便)이라 한다. 어떻게 하여야 모든 법이 언설을 여읜 줄을 아는가? 이는 모든 법의 자상에 거짓이름을 시설한 것이니 이른바 색ㆍ수ㆍ상ㆍ행ㆍ식과 마침내 열반에 이르기까지이다. 마땅히 알라. 거짓 이름은 자성이 없으나 역시 그것을 떠나서 언어의 행할 곳과 언어의 경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이렇듯이 자성이 없는 것은 언어로 말한 바와 같으며 역시 일체는 도무지 없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아무 것도 있고, 또 일체가 도무지 없는 것도 아니거늘 그가 어찌 있겠는가? 실체가 있다면 이는 곧 실체를 비방하는 것이니 이 두 가지를 모두 여의고서 이렇듯이 있는 것을 제일의자성(第一義自性)이 온갖 망상을 여읜 지혜의 행할 곳[智慧行處]이라 하느니라.만일 법이 말에 따라 사물이 변하는 일이 있다면 자성이 있을 것이요, 만일 그렇다면 한 법, 한 사물마다에 여러 개의 자성이 있어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이른바 한 법, 한 사물에 여러 가지 이름이 시설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여러 이름이 제각기 결정적인 성품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 하나의 이름에만 자성이 있고 나머지 이름에는 자성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설된 거짓이름은 여러 이름이건 한 이름이건 모두 자성이 없다.다시 다음에 색과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법이 만일 이름[名字]을 따라 자성이 있다면 먼저 법이 있은 뒤에 필요에 따라 이름을 지어야 한다. 이름이 있기 전의 그 법은 자성이 없는 것이니 만일 자성이 없다면 까닭 없이 이름을 짓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이름은 없어도 법이 있다 하면 이 또한 옳지 못하다. 만일 어떤 법이 본래 자성이 색(色)이라면 뒤에 이름과 언어로써 그것을 색이라 하겠지만 만일 그렇다면 이름을 떠나서도 색의 시설이 있어서 중생들이 스스로 알 것이요, 색은 이름을 기다려서 알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생은 이름이 없으면 색을 알지 못하나니 이런 까닭에 모든 법은 언설자성(言說自性)을 여읜 것임을 알 수 있고 색과 나아가 열반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다.다시 다음에 두 종류의 사람이 부처님의 정법을 파괴하나니, 첫째는 색 등의 모든 법과 색 등의 모든 일에 거짓 이름으로 시설하여 자성과 자상이라 말하면서 실답지 않은 법에 대하여 망상으로 헤아리고 집착하는 것이요, 둘째는 거짓 이름을 시설한 곳과 거짓 이름이 의지한 곳은 언설의 자성을 여읜 제일의 실의(實義)라고 이렇게 비방하여 헐뜯고 파멸시키는 것이니, 일체가 도무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앞에 말한 것과 같이 실답지 않은 허망한 모습을 건립하는 허물이란 이른바 색 등의 모든 법과 색 등의 모든 일이 실답지 않은데 실답다고 계교하는 것이니 이러한 허물 때문에 정법을 파괴 한다. 또 색 등의 모든 법과 색 등의 모든 일의 인연과 분제(分齊)를 비방하고 헐뜯고 멸하여 아무 것도 없다고 하여 정법을 파괴한다.이제 설명하리니 색 등의 모든 법과 모든 일의 인연과 분제를 비방하면서 진실됨이 없다거나 거짓 이름도 없다고 말한다면 이 두 가지가 모두 옳지 못하다.
예컨대 사대부 등의 음(陰:五陰)을 사람이라 한다면 이는 옳거니와 일없이[無事]사람이라 말하면 옳지 못하다. 일없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경우와 같이 일이 없지 않고서 사람이라 말하는 것도 그와 같다.
인연과 분제의 색 등 법에 거짓 이름을 세우는 것은 일없이 거짓 이름을 세운 것이 아니므로 이는 옳거니와 만일 다만 거짓 이름뿐이고 일이 없다면 이는 의지할 곳이 없음이요 거짓 이름도 없는 것이니 이는 옳지 않다.이 사람은 알기 어려운 경전인 대승의 깊고 깊은 공상응의(空相應義)를 듣고 여실한 말씀을 한결같이 알지 못하여 바르지 않은 생각을 일으켜 허망하게 분별하며 선교방편의 지혜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일체는 모두가 거짓 이름이어서 진실이 없다. 이렇게 관찰하면 이것을 정관(正觀)이라 한다. 이들은 거짓 이름에 의지하였으므로 모두 있지 않고 거짓 이름도 없다. 거짓 이름이 이미 없다면 거짓 이름의 진실 또한 없지 않다.”진실과 거짓 이름, 이 두 가지를 모두 비방하는 것을 도무지 없음이라 하나니, 지혜로운 범행인(梵行人)은 이렇게 없음을 말하는 이와는 더불어 말하지 않아야 하며 더불어 살지 말아야 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세상도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이런 일을 위하여 말씀하시기를 “차라리 신견(身見)을 일으킬지언정 악취공(惡取空)을 내지 말라”하셨다.무슨 까닭인가 하면 신견을 일으킨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계율에 대하여 온갖 아는 바를 비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런 소견으로 인하여 나쁜 길에 떨어지지 않고 다른 이의 믿음과 즐거움[信樂]을 파괴하지 않으며, 괴로움을 여의고 해탈하는 일에 장애를 주지 않으며 진제(眞諦)의 정법을 능히 세우며 계율에 대하여 교만하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악취공에 빠진 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계율에 대하여 알고 있는 모두를 비방하니, 이 까닭에 나쁜 길에 떨어지고 다른 이의 믿음과 즐거움을 파괴하고 괴로움을 떠나 해탈하는 일에도 장애를 주며, 계율에 대하여 교만하고 게을러 진실한 법을 비방하며 그로 인해 불법을 파괴한다.어떤 것을 악취공이라 하는가?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 법과 저 법이 모두 공하다고 말하면 이를 악취공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이것은 공하되 저것의 성품이 없다’고 말하거나 ‘이것은 공하되 이것의 성품은 있다’고 말하면 이는 옳다. 만일 일체가 성품이 없다면 어느 곳의 어느 법이 공하겠는가? 이것 그대로가 공이라고 말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어떤 것이 선취공(善取空)인가? 만일 이 물건에 저 물건이 없다면 이를 공(空)이라 하나니, 이 물건이 공하지 않은 줄을 여실히 아는 것, 이것을 여실하여 뒤바뀌지 않은 공이라 한다.
이른바 색 등은 거짓 이름을 시설한 것으로서 자성이 있으나 색 등의 나머지는 있나니 말하자면 색 등의 거짓 이름과 일[事]의 인연과 분제를 모두 여실히 아는 것이다.
이른바 일의 분제에는 일의 분제와 거짓 이름의 분제가 있는데 진실치 않음을 주장하지도 않고 진실을 비방하지도 않는다. 늘리지도 않고 줄이지도 않으며 들뜨지도 않고 비하하지도 않아 여실하고 여여하게 언설을 여읜 자성을 여실히 알면 이를 선취공(善取空)이라 하니 바른 지혜로 아는 것이다.내가 구족한 생각[思量]으로 결집(結集)하여 모든 법이 언설자성(言說自性)을 여읜 도리를 설하였다. 부처님에게 들은 모든 법의 언설자성을 여읜 도리를 이제 말하리니 불ㆍ세존의 취유계경(趣有契經)에 게송으로 보여 주신 것이 있다.마치 갖가지 이름으로
3갖가지 법을 설명하지만
여기에는 저것이 없나니
이 법은 원래가 그렇다.이 게송은 색 등의 모든 법의 이름은 거짓 이름으로 시설한 것임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색 등의 이름으로 모든 법을 선설하고 퍼뜨리며 말하고 가르친다. 색, 내지 열반이라 할 때의 색 등은 거짓 이름으로서 색 등의 자성은 없으며 색 등의 법은 또한 다른 자성도 없다. 이 색 등은 거짓 이름일 뿐이요, 모든 법은 말을 여의어 정의가 없다. 이를 제일의자성법(第一義自性法)이라 한다.
또 세존께서는 의품(義品)에서 이렇게 말씀하였다.세간에서 모은 언설을
모니(牟尼)는 모두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는데 누가 집착하리요
견문의 집착[見聞着]을 일으키지 않는다.이 게송은 색 등의 거짓 이름으로 색 등의 일을 시설한 것을 드러내어 보인 것이니 이것을 일러 ‘세간에서 모은 언설’이라 한다.
이 거짓 이름은 그 일에 그 자성이 없나니, 무슨 까닭인가? 주장하거나 비방함에 그 소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뒤바뀐 소견이 없으므로 이를 일러 ‘소견에 집착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이렇게 집착되지 않거늘 누가 색 등의 일에 대해 소견에 집착함을 일으키겠는가? 주장하건 비방하건 간에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다.
바야흐로 경계를 관하는 것을 견(見)이라 하고 알아야 할 말을 듣는 것을 문(聞)이라 한다. 그러므로 보고 들음에 염착(染着)을 일으키지 않으면 모든 반연에서 모두를 버리게 된다. 이것을 일러 ‘견문의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다’라고 한다.다시 부처님이 대가전연(大迦旃延)비구를 꾸짖으시되, “비구야, 지(地)에 의하여 선을 닦지 말라. 수ㆍ화ㆍ풍(水火風)에 의하거나 공(空)ㆍ식(識)ㆍ무소유(無所有)ㆍ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에 의하거나 차세(此世)와 타세(他世)에 의하거나 일월에 의하거나 견ㆍ문ㆍ각ㆍ지(見聞覺知)에 의하거나 구(求)와 득(得)과 각(覺)과 관(觀)에 의하지 말지니 이러한 것들에 의지하지 말고 선정을 닦으라.
어떻게 하여야 지(地)와 각(覺)과 관(觀)에 이르기까지 이것에 의하지 않고 선정을 닦는가? 가전연아, 지(地)에서는 지상(地想)을 제거하고 나아가 일체에서는 일체상(一切想)을 제거하라.
비구야, 이렇게 선정을 닦으면 이것이 지에 의하지 않고 선정을 닦는 것이며 나아가 일체에 의하지 않고 선정을 닦는 것이다. 비구야, 이렇게 선정을 닦으면 제석천ㆍ대력천(大力天)ㆍ범천(梵天)이 모두 와서 예경하고 이런 게송으로 한탄할 것이다.가장 높으신 선비님이시여
선비 위의 선비님이시여
나는 지금 잘 모르겠으니
그대는 어디에 의해 선정을 닦으시는가?이 계경(契經)은 지(地) 등이 모든 일에 거친 이름임을 드러내어 보인 것이니 저 지등에게 거짓 이름을 붙인 것을 지상(地想)이라 한다.
또 이 지 등의 상[地等想]이 저 거짓 이름인 모든 일에 자성을 내세우거나 혹은 일체를 헐어 없애되 제일의를 파괴하여 비방을 받으면 이를 상(想)이라 하고 그러한 상을 제거하면 이를 단(斷)이라고도 하고 사(捨)라고도 한다. 마땅히 알라. 이를 제일의의 스승이신 여래로부터 모든 법의 언설을 여읜 자성을 들었다고 한다.이와 같이 모든 법이 언설자성을 여의었다면 모든 언설은 무엇에 쓰이겠는가? 만일 언어가 없다면 남에게 언어를 여읜 법을 말해 줄 수 없을 것이요, 말해 주지 않는다면 듣는 이도 없다. 말하는 이도 없고 듣는 이도 없다면 모든 법의 언어를 여읜 자성을 아는 이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언설이 있어야 그로 하여금 듣고서 예시하고 여실하게 알게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범부는 알지 못하는 까닭에 여덟 가지 망상을 일으켜서 세 가지 일을 내어 모든 중생과 기세간(器世間)이 늘어나게 하나니 여덟 가지 망상이란, 첫째는 자성망상(自性妄想)이요, 둘째는 차별망상(差別妄想)이요, 셋째는 섭수적취망상(攝受積聚妄想)이요, 넷째는 아망상(我妄想)이요, 다섯째는 아소망상(我所妄想)이요, 여섯째는 염망상(念妄想)이요, 일곱째는 불념망상(不念妄想)이요, 여덟째는 구상위망상(俱相違妄想)이다.어떤 것이 망상에서 생겨난 세 가지 일인가? 첫째는 자성망상과 차별망상과 섭수적취망상이니 이 세 가지 망상은 망상이 거짓된 곳에 거짓되게 반연하는 일[虛僞攀緣事]이다.
이를 말미암아 생기고는 색 등의 거짓 이름과 혹은 그 사물에 대하여 명상(名想)과 언어(言語)로 섭수하여 증장케 하고 무량한 거짓이 항상 움직여 쉬지 않는다.둘째는 아망상(我妄想)과 아소망상(我所妾想)이니 이 두 가지 망상은 신견(身見)이니 인견은 모든 참된 견해의 근본이며 아만의 근본이다. 아만은 모든 거만을 낸다.셋째는 염망상(念妄想)과 불념망상(不念妄想)과 구상위망상(俱相違妄想)이니 경우에 따라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낸다.
이것이 여덟 가지 망상이 세 가지 일을 내는 것이니 이른바 망상처의 거짓된 일[妄想處虛僞事]과 신견의 아만의 일[我慢事]과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일[貪瞋癡事]이다. 망상허위에 의하여 신견의 아만을 내고 신견의 아만에 의하여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내니 이 세 가지 일이 모든 세간을 적취(積聚)하는 부분에서 모두 치성하다.어떤 것이 자성망상인가? 색 등의 거짓 이름에 대하여 망상으로 말하기를, 색이라 하면 이것이 자성망상이다.어떤 것이 차별망상인가?
이 색 등의 거짓 이름에 대하여 이는 색이요 이는 색이 아니다. 이는 보이는 것이요 이는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이는 대할 수 있는 것[有對]이요 이는 대할 수 없는 것[無對]이다. 이는 유루요 이는 무루다, 이는 유위요 이는 무위다 하여 이렇듯 한량없이 분별하여 자성망상인 자리에서 차별된 망상을 지으면 이것이 차별망상이다.어떤 것이 섭수적취망상인가?
색 등의 거짓 이름의 일에 대하여 아상ㆍ인상ㆍ수명상ㆍ중생상[我人壽命衆生]을 내고 세속법인 망상과 색 등의 이로움에 대하여 많은 법을 적취하고 적취한 것은 섭수하며 인하여 집이나 군대ㆍ무리ㆍ숲ㆍ음식ㆍ의복ㆍ수레를 장만하고 다시 거기에서 세속적인 망상으로 이로워하는 것이니 이것이 섭수적취망상이다.어떤 것을 아아소망상(我我所妄想)이라 하는가? 저 여러 사물들을 유루의 수음(受陰)으로 오랜 동안 아와 아소(我所)의 집착을 쌓아 익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섭수할 것이 없는 곳에서 스스로가 일들을 익힌다. 이런 까닭에 여실치 않은 망상을 일으키나니 이것이 아아소망상이다.어떤 것이 염망상인가? 깨끗하고 미묘한 법과 기뻐하는 일을 반연하는 망상이다.
어떤 것이 불념망상인가? 깨끗하지 않은 법과 기뻐하지 않는 곳을 반연하는 망상이다.
어떤 것이 염불념구상위연망상(念不念俱相違緣妄想)인가? 깨끗한 법과 깨끗하지 않는 법, 기뻐할 일과 기뻐하지 않는 일을 모두 여읜 곳을 반연하는 망상이다.거기에는 간략히 두 가지 일이 있으니, 망상(妄想)과 망상의 의지[妄想依]인 망상의 연사[妄想緣事]이다.
이 두 가지 일은 모두가 본래부터 서로가 의지[因] 하고 있나니 과거의 망상이 현재의 망상연사(妄想緣事)를 내고 현재의 망상연사가 다시 현재에 연사망상(緣事妄想)을 내거니와 현재의 망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미래의 망상연사(妄想緣事)를 내거니와 현재의 망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미래의 망상연사(妄想緣事)를 내고 연사를 낸 뒤에는 반드시 다시 연사망상(緣事妄想)을 낸다.어떻게 망상인줄 아는가? 네 가지 구함[求]과 네 가지 여실지(如實知)가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 구함인가? 첫째는 명구(名求)요, 둘째는 사구(事求)요, 셋째는 자성시설구(自性施設求)요, 넷째는 차별시설구(差別施設求)이다.
명구라 함은 보살이 명(名)과 명의 분제(分齊)를 관하는 것이 명구요, 이러한 사와사의 분제를 관하는 것이 사구요, 자성시설과 자성시설의 분제를 관하는 것이 자성시설구요, 차별시설과 차별시설의 분제를 관하는 것이 차별시설구이다.
그 명(名)과 사(事)에 대하여 상을 여의고 관하거나 상을 합해서 관하나니 명과 사를 합쳐서 의지 하므로 자성시설과 차별시설을 관하느니라.어떤 것이 네 가지 여실지인가? 명구를 따르는 여실지[隨名求如實知]와 사구를 따르는 여실지[隨事求如實知]와 자성시설구를 따르는 여실지[隨自性求如實知]와 차별시설구를 따르는 여실지[隨差別求如實知]이다.
어떤 것이 명구를 따르는 여실지인가? 보살이 명과 명의 분제에서 이러한 명을 구하여 여실하게 알되 이 명(名)은 이 일을 위하여 세운 것이며 상(想)과 견(見)과 유포(流布)를 위한 것이다.색 등의 거짓 이름의 사물에 대하여 색 등의 이름을 세우지 않으면 색 등의 사물을 알 이가 없을 것이요, 아는 이가 없다면 생각하여 헤아리는 이도 없을 것이요, 생각하여 헤아리는 이가 없다면 말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여실하게 아는 것을 가리켜 명구를 따르는 여실지라 한다.어떤 것이 사구를 따르는 여실지인가? 보살이 사(事)와 사의 분제에서 색 등의 거짓 이름의 일과 모든 언설의 일이 언설을 여읜 것이라고 하여 구해 관찰하면 이들 두번째 사구를 따르는 여실지라 한다.어떤 것이 자성시설구를 따르는 여실지라 하는가? 보살이 색 등의 거짓 이름인 자성시설과 자성시설의 분제에서 그 자성시설을 구하는 것이니, 이 자성사(自性事)에서 자성의 상을 관하여 여실히 알되 허깨비ㆍ그림자ㆍ메아리ㆍ아지랑이ㆍ물속의 달ㆍ꿈ㆍ요술 같아서 자성상에 진실이 없다고 관하면 이를 가리켜 셋째인 깊고 깊은 이치에 대하여 자성시설구를 따르는 여실지라 한다.어떤 것이 차별시설구를 따르는 여실지인가? 보살이 차별시설과 차별시설의 분제에서 거짓 이름인 색 등의 사물은 차별과 시설이 들이 아님을 구하는 것이니, 저 사물은 유성(有性)도 아니요 무성(無性)도 아니며 언설 그 자체도 얻을 수 없으나 또 무성(無性)도 아니니 언설 자체를 여의고 건립된 성품은 색이 아니니 제일의제이기 때문이요 무색(無色)도 아니니 세제(世諦)의 색이기 때문이라고 관찰한다.유성(有性)과 무성(無性), 유색(有色)과 무색(無色)의 경우와 같이 가견(可見)과 불가견(不可見) 등 모든 법의 차별된 시설도 모두 이렇게 안다. 이렇듯 차별과 시설이 둘 아닌 이치를 여실하게 아는 것을 차별시설구를 따르는 여실지라 한다. 만일 저 여덟 가지 삿된 망상을 지닌 어리석은 범부라면 세 가지 일을 내어 세간이 늘어나게 하나니, 네 가지 여실지(如實知)가 구족하지 못한 이는 삿된 망상과 번뇌가 일어나고 번뇌가 일어나므로 생사를 받고 생사를 받음으로 생사를 따라 생ㆍ노ㆍ병사 등의 모든 괴로움이 늘어나게 한다.만일 보살이 네 가지 여실지에 의하면 현세에서 여덟 가지 망상을 알고, 현세를 알면 미래에 의지할 곳과 반연 가운데 거짓되고 헛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미래 세상의 반연에 망상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듯이 그 사물과 망상이 멸한 뒤에는 모든 허위도 사라지고 허위가 사라진 뒤에 이 보살은 대승의 대반열반을 빨리 얻어 현세에 능히 기특한 대사(大士)의 수행처를 얻으며 티 없는 지혜로 모든 대자재한 힘을 성취하나니 이른바 갖가지 변화와 변화의 힘, 갖가지 신변(神變)과 신변의 힘, 일체지지(一切知智)와 걸림 없는 무소가애(無所罣礙)와 원하는 대로 살고 죽음에 자재함 등과 같은 한량없는 자재함을 얻는다. 이를 일러 일체 중생에서 최승무상(最勝無上)이라 한다.이와 같이 모든 것에 자재한 보살은 다섯 가지 높고 묘한 공덕을 이룬다. 첫째는 제일정심(第一淨心)이니 적멸(寂滅)로써 삼매에 들 뿐 적멸로써 일체 번뇌를 짓지 않는다. 둘째는 배워야 할 모든 것에 깨끗한 지견이 불어나 줄어들지 않음이요, 셋째는 중생을 위한 까닭에 생사에 처해 있으되 피곤해 하거나 싫어하지 않음이요, 넷째는 여래의 언설과 이치에 잘 들어감이요, 다섯째는 대승의 법을 잘 알되 다른 것(외도의 법)을 따라 받지 않음이다.이 다섯 가지 공덕은 다섯 가지 업을 이루나니, 첫째는 현세의 제일낙주(樂住)이니, 열어 깨우치는 방편으로 물과 마음의 방편에 생긴 피로를 모두 멸하니 이는 마음이 고요해지는 공덕의 업이다. 둘째는 모든 불법을 성취하니 이는 모든 배워야 할 것에 지견이 청정해지는 공덕의 업이다. 셋째는 중생을 성취시키는 것이니 이는 생사에서 피로해 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공덕의 업이다. 넷째는 중생을 교화하되 이미 일어난 의심이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의심을 잘 깨우쳐 주고 정법을 잘 간직하여 오래 머무르게 하여 비슷한 법이 정법을 멸하는 일이 있으면 잘 알고 잘 설명하여 능히 제거하여 멸하나니 이는 여래의 말씀과 진리에 잘 들어가는 공덕의 업이다. 다섯째는 온갖 외도의 잘못된 주장을 항복 받고 견고하게 정진하여 바른 서원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니, 이는 대승의 법을 잘 알되 다른 것(외도의 법)을 따라서 받지 않는 공덕의 업이다.이와 같이, 보살의 온갖 행위는 모두 다섯 가지 공덕의 업에 속하나니 이른바 더럽혀지지 않은 즐거움이며 불법을 성숙시키며 중생을 성취시키며 정법을 잘 지키며, 외도의 잘못된 주장을 항복시키고 치연(熾然)히 정진하여 바른 서원에서 요동치 않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진실의에서 처음과 둘째는 하등이요, 셋째는 중등이요, 넷째는 상등이다.5) 역품(力品)어떤 것이 보살의 힘인가? 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 제불과 보살이 자재삼매(自在三昧)를 얻고는 그 자재삼매에 의하여 그 하고자 하는 것에 따라 모두를 감당해내는 것이니 이를 성스러운 힘이라 한다.
둘째는 법에 큰 과위와 큰 이익이 있는 것이니 이를 법의 힘이라 한다.
셋째는 제불과 보살이 먼저부터 큰 복덕의 방편을 성취하였기에 제불과 보살은 태어날 때부터 갖춘 기특한 미증유의 법을 가지고 있으니, 이를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는 힘이라 한다.다시 다음에 이 세 가지 힘을 종류에 따라 분별하면 제불과 보살에게는 다섯 가지 힘이 있으니, 첫째는 신통력이요, 둘째는 법의 힘이요, 셋째는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는 힘이요, 넷째는 모든 성문연각들과 함께하는 힘이요, 다섯째는 누구와도 함께하지 않는 독특한 힘이다.
신통력이라 함은 이른바 6신통이니, 첫째는 신족통(神足通)이요, 둘째는 천이통(天耳通)이요, 셋째는 타심통(他心通)이요, 넷째는 숙명통(宿命通)이요, 다섯째는 생사지(生死智)요, 여섯째는 누진작증(漏盡作證)이니, 이것이 신통력이다.
법의 힘이라 함은 이른바 6바라밀이니, 단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바라밀ㆍ반야바라밀이다. 이들을 법의 힘이라 하나니 이 모든 법은 감당하는 힘이 있으므로 법의 힘이라 한다.어떤 것을 신족(神足)이라 하는가? 간략히 말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변(變)이요 둘째는 화(化)이니, 만일 종류로써 분별하면 무량한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변신족(變神足:변하는 신통)인가? 종로써 분별하면 이른바 진동(震動)ㆍ치연(熾然)ㆍ충만(充滿)ㆍ시현(示現)ㆍ전작이분(轉作異分) ㆍ거래(去來)ㆍ대소(大小)ㆍ색상입신(色儀入身), 소왕상사(所往相似)ㆍ은현(隱顯)ㆍ자재(自在)ㆍ장타신통(障他神通)ㆍ여변(與辯)ㆍ여념(與念)ㆍ여락(與樂)ㆍ방대광명(放大光明) 등이니 이러한 것들을 변신족이라 한다.진동이라 함은 불ㆍ보살이 자재삼매를 얻으면 능히 진동을 일으키게 하나니 절ㆍ건물ㆍ성곽ㆍ궁전ㆍ취락ㆍ전택(田宅)ㆍ지옥ㆍ축생ㆍ아귀ㆍ인간ㆍ하늘과 4천하ㆍ일천세계ㆍ2천세계ㆍ3천세계ㆍ백 3천세계ㆍ천 3천세계ㆍ만 3천세계와 무수한 삼천대천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진동하는 것이다.치연이라 함은 몸 위로는 불이 나오고 아래로는 물이 나오거나 몸 위로 물이 나오고 아래로 불이 나오거나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 온몸이 활활 타거나 갖가지 빛깔 즉 청ㆍ황ㆍ적ㆍ백ㆍ홍색과 파리색(頗梨色)으로 나타나는 것이다.충만이라 함은 몸에서 광명이 나와 한 방에 충만하거나 내지 무량무수한 삼천대천세계에 충만한 것이다.시현이라 함은 앉았거나 왕래하되 사문ㆍ바라문ㆍ성문ㆍ연각 보살들로 나타나거나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인비인 등으로 나타나거나 제불보살로 나타나거나 아래로는 악도(惡道)로부터 위로는 인간과 하늘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타나며 시방의 항하사세계에 이르기까지도 이렇게 하며 무량한 항하사 수를 지나는 국토에라도 부처님 명호가 있거나 국토의 이름이 있는 곳에는 모두 나타나서 그 부처님과 국토의 명호를 설하기도 하며, 다시 이 수효를 지나서도 그가 바라는바에 따라 모두 능히 시현하는 것이다.전작이분이라 함은 혹 땅을 바꾸어 물로 만들면 곧 진짜 물이어서 진실하여 다른 것이 아니게 하고 불과 바람으로 변하는 것도 이와 같게 하며, 땅을 그렇게 하듯이 물ㆍ불ㆍ바람도 역시 그러하여 다른 것이 아니게 한다. 4대가 그러하듯이 색ㆍ냄새ㆍ맛ㆍ촉감도 그러하나니 초목ㆍ진흙 등을 음식ㆍ의복ㆍ영락ㆍ향ㆍ꽃ㆍ도향(塗香)ㆍ모든 장엄구로 변하게 하며 모래ㆍ기왓장ㆍ돌을 못 보배로 변하게 하고 설산 등 모든 산을 금빛으로 변하게 한다. 모두가 그러하게 여실하여 다른 것이 아니게 하며, 좋은 빛의 중생을 나쁜 빛으로 하며 나쁜 빛의 중생을 좋은 빛으로 변하게 하며, 혹은 좋은 빛과 나쁜 빛을 중간 빛으로 변하게 하며, 혹은 중간 빛을 좋거나 나쁜 빛으로 변하게 한다.좋고 나쁜 빛의 경우와 같이 신체의 사지가 구족하거나 구족하지 못하거나 혹은 살피거나 여위거나 한 이러한 모두가 가지고 있는 제 모습에서 능히 그 빛을 걸림 없이 자재하게 변하여 본래의 모든 것이 아니게 하니 그 소망하는 대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거래라 함은 석벽도 걸림 없이 위로는 범세(梵世)에서 색구경천(色究竟天)에 이르기까지 가고 오는 것에 모두 자재하며, 시방의 무량무변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한다. 화신이나 추한 사대의 몸으로 가고 오는 것도 역시 그러하며 멀고 가까운 곳에도 한 생각에 즉시 왕래한다.대소라 함은 설산을 하나의 먼지 같게 하며, 하나의 먼지 같은 것을 설산과도 같게 한다.색상입신이라 함은 사문ㆍ바라문 등 모든 대중과 마을ㆍ성ㆍ초목 우거진 숲ㆍ산ㆍ땅 등 모든 색상(色像)을 모두 몸속에 넣으면 그때의 대중들은 제각기 자신의 보살의 몸에 들어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소왕상사라 함은 만일 찰리중(刹利衆)에 가면 그들의 모습과 같아지고 몸 부피의 크고 작음, 음성과 날씨가 모두 그들과 같아지고 그들이 하는 말로 그들과 더불어 이야기하며 그들이 모르는 것은 그들을 위하여 보여 주고 널리 정법을 말하여 기쁘게 해준 뒤에는 곧 그 앞에서 사라지되 누가 나왔다 누가 들어가는지 그들은 전혀 모르게 한다.하늘과 인간을 위함도 찰리의 경우와 같게 하고 바라문 거사ㆍ사문들과 사천왕천ㆍ삼십삼천ㆍ야마천ㆍ도솔타천ㆍ화락천ㆍ타화자재천ㆍ범신천(梵身天)ㆍ범중천ㆍ대범천ㆍ소광천ㆍ무량광천ㆍ광음천ㆍ소정천ㆍ무량정천ㆍ변정천ㆍ무장천(無障天)ㆍ복생천ㆍ광과천ㆍ무번천ㆍ무열천ㆍ선견천ㆍ선현천ㆍ색구경천도 그와 같게 한다.은현이라 함은 대중 앞에서 백이 되고 천이 되고 혹은 이런 숫자를 훨씬 넘어서 무량하게까지 하며 그런 뒤에 다시 사라지기도 하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자재라 함은 보살이 중생들로 하여금 오게도 하고 가게도 하며 멈추게도 하고 말하게도 하는 것이다.장타신통이라 함은 여래의 신력으로 그 밖의 신력을 모두 가리거나 또는 구경(究竟)의 지위인 보살의 일생보처(一生補處)까지도 모두 나타나게 한다. 여래 또는 자기와 동등한 또래의 보살[等行菩薩]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보살은 모두 가리며, 자기보다 위인이나 같은 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가리운다.여변이라 함은 변재가 없는 중생에게 변재를 주는 것이요, 여염이라 함은 법에 대해 기억력[念]이 없는 중생에게 기억하게 하는 것이요, 여락이라 함은 바른 법을 널리 설하여 그들로 하여금 듣게 하고 그들의 능력에 따라 거두어 주고 이익되게 해 주어 지식락(止息樂)을 얻게 하며 모든 번뇌를 여의고 오롯한 마음으로 범을 들게 하며 시절에 따라 구경락(究竟樂)이 아니거나 4대가 어지러울 때엔 쾌적하게 조절해 주며 귀신[非人] 무리에게 시달림을 당하여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다.방대광명이라 함은 이른바 불보살이 신력으로 광명을 놓아 시방의 무량한 세계에 두루 미치게 하여 지옥중생들의 고통을 쉬게 하며 위로는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인비인에 이르기까지 광명을 보고 부처님 처소에 이르게 하며, 다른 세계의 불보살도 모두 모여 오시게 한다. 이때 시방세계 한량없는 부처님들의 광명의 공덕을 말해 주어 무량한 중생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는 것이다.이것이 전변신족(轉變神足)이니, 만일 종류로써 분별하면 무량무수이지만 그 자체가 변하여 다른 물건으로 변하는 것은 제외한다. 그러므로 전변신족이라 한다.어떤 것이 화신족(化神足)인가? 간략히 말하면 아무 일 없는데서 변화를 일으켜 그가 하고자 하는대로 모두 변화해 내는 것이니 이를 화신족이라 한다.
이 화신족에 여러 가지가 있으니 화신(化身)과 화어(化語)이다.
화신이라 함은 자기의 몸과 같거나 혹은 같지 않게, 남의 몸과 같거나 혹은 같지 않게, 자신 또는 남의 몸과 같거나 혹은 같지 않게, 근과 근의 의지할 바[根所依]를 비슷하게 변화해 내되 실제의 근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또 비슷한 경계를 변화해 내나니, 이른바 음식ㆍ뭇 보배 또는 색ㆍ냄새ㆍ맛ㆍ촉감에 속하는 온갖 기구 모두를 뜻에 따라 변화해 낸다.
또 자신과 비슷하게 하나를 변화해 내거나 무량하게 변화해 내기도 하며,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인비인 등의 갖가지 형상과 인간ㆍ축생ㆍ아귀ㆍ지옥과 성문ㆍ연각ㆍ보살ㆍ여래 등 이러한 형상을 알맞은 바에 따라 모두 변화해내되 자신과 비슷하게 한다.
만일 자신과 다르면 이를 불상사(不相似)라고 하고 저 하늘 등을 변화시키되 자신과 같게 하면 이를 타상사화(他相似化)라 하고, 저 하늘 등을 변화시키되 자신과 같지 않게 하면 이를 타신불상사화(他身不相似化)라 한다.하늘의 몸과 같이,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그러하다.
무량한 몸이라 함은 불보살이 시방의 무량무수한 세계에서 동시에 갖가지 색상을 변화해내어 시방의 무량한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과 보살이 딴 곳으로 가더라도 변화한 몸은 여전히 머물러 있으며 혹 중생을 위하여 잠시 나타나며 혹은 음식ㆍ의복ㆍ거승(車乘)ㆍ금ㆍ은ㆍ진주ㆍ유리ㆍ파리(頗梨)ㆍ가패(珂珼)ㆍ옥석 등 이러한 것을 모두 변화해 내되 현실과 다르지 않아 항상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을 화신(化身)이라 한다.화어(化語)라 함은 묘음(妙音)이 구족하고 광음(廣音)이 구족하며 자신에게서 일어나거나 혹은 타신(他身)에서 일어나거나 혹은 일어난 곳이 없이 일어나거나 혹은 정법을 설하거나 혹은 사연에 따라 가르치고 꾸짖는 것이다.묘음(妙音)이라 함은 불보살이 음성을 변화해 낸 것인데 그 소리가 깊고 멀어서 마치 우레와 같거나 또는 미묘하여 가릉빈가의 즐거운 소리ㆍ기쁜 소리ㆍ사랑스러운 소리와 같다. 이와 같이 무량한 음성을 널리 변화해 내어 말씨가 또렷또렷 바르고 알기 쉽고 듣기 좋아 수순하는 것이 한량없다.널리 변화해내는 소리[廣聲]라 함은 이른바 불보살이 큰 음성을 변화해 내어 하늘ㆍ용ㆍ야차 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인비인 등과 성문ㆍ연각 보살 등의 무량한 대중과 내지 한 유순 안팎에서 두루 듣게 하며 소천세계ㆍ중천세계ㆍ대천세계와 시방의 무량한 세계에 이르기까지 두루 듣게 하는 것이며 또 중생을 위한 까닭에 자신에서 한 음성을 내어 무량한 법을 설하는 것이다.타신에서 일어난다 함은 남의 말을 변화해내어 사람들에게 설법해서 그로 하여금 방일(放逸)을 제거하게 하는 것이요 일어난 곳이 없이 일어난다 함은 공중에서 소리를 변화해 내되 마치 사람의 말과 같이 하여 정법을 설하는 것이니 어리석은 중생을 위하여 정법을 설해 주어 깨닫게 하는 것이다.사연에 따라 가르치고 꾸짖는다 함은 비록 의심치 않고 믿음을 내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방일하는 이가 있다면 그로 하여금 부끄러운 마음을 내어 다시는 방일치 않게 하는 것이다.이렇듯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가 있으니 화신(化身)과 화성(化聲)과 화경계(化境界)이다. 이를 화신족(化神足)이라 하니 만일 낱낱이 분별한다면 무량한 종류가 있다.
이러한 불보살들의 두 가지 신족[二神足:化身ㆍ化語]은 능히 두 가지 일을 완성하나니, 첫째는 중생들로 하여금 즐거워하는 믿음을 내게 하기 위하여 신족으로 변화의 몸을 나타내어 불법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괴로워하는 중생을 거두어 주어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하는 것이다.어떤 것이 숙명지통(宿命智通)인가? 이른바 불보살이 스스로의 전생의 일[宿命]을 알되 이러이러한 중생일 때 이러이러한 것이 나의 이름이었다 하는 것이니 경에 널리 말한 것과 같다. 다른 이의 숙명을 아는 것도 자신의 경우와 같다.
스스로가 숙명을 알고는 남들도 알게 하되 그 중생들이 본래 동사(同事)였음을 알게 하며, 또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숙명을 알게 한다. 그 중생들은 지난날 보살과 동사였음을 알고는 또 다른 중생이 자기와 동사였음도 알며, 다시 다른 중생들로 하여금 차례차례 숙명의 이름을 알게 하나니 이름 등 갖가지 인연을 여기서 널리 설하였다.
지금 현재로부터 과거와 나아가 과거 무량무수한 겁 동안 생각생각과 중간의 크고 작고 많고 적은 일의 차례를 모두 아는 것, 이것을 제불보살의 숙명지통(宿命智通)이라 한다.보살이 지난 세상에 보살도를 행하였던 미증유의 일을 스스로 알고는 능히 중생을 위하여 열어 보이고 드러내어서 그들로 하여금 공경히 믿어 불법을 좋아하고 생사를 싫어하여 여의게 하며 또 과거의 인과를 드러내 보인다. 항상하다고 계교하는 이로 하여금 상견(常見)을 여의게 하나니 이른바 과거 망상의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이다.어떤 것이 생사지통(生死智通)인가? 이른바 불보살의 천안의 깨끗함은 인간의 눈을 넘어서니, 모든 중생이 죽을 때의 좋은 벗ㆍ나쁜 벗ㆍ낮은 벗ㆍ높은 벗을 보며 나아가 후생(後生)에 점점 자라서 모든 근이 성숙하는 일과 몸으로 짓는 착한 일ㆍ착하지 못한 일ㆍ무기(無記)의 일 등을 천안의 광명으로 비추어보아 다 알며 내지는 변화된 색계천의 미세한 빛을 모두 다 보며, 위로는 색구경천까지, 아래로는 무간 지옥까지와 시방세계에 대하여도 낱낱이 다른 방편을 쓰지 않고도 시방의 무량무변한 세계의 온갖 색상을 동시에 두루 보며, 여러 불국토에서 여러 부처님이 갖가지 대중의 모임에서 설법하시는 등의 이러한 모든 것을 모두 보아 남음이 없는 것이다.어떤 것이 천이지통(天耳智通)인가? 이른바 불보살이 천이(天耳)로써 하늘이나 인간무리의 소리ㆍ성스러운 소리ㆍ성스럽지 않은 소리ㆍ거친 소리ㆍ미세한 소리ㆍ이야기 소리ㆍ이야기가 아닌 소리ㆍ변화된 소리 변화되지 않은 소리ㆍ먼 소리 가까운 소리 등 온갖 것을 다 듣는 것이다.만일 한정 있는 방편으로 본다면 위로 색구경천까지요, 한정 없는 방편으로 본다면 위로 무량한 세계까지이다. 하늘의 소리라 함은 사천왕천으로부터 색구경천까지의 소리요, 인간의 소리라 함은 4천하의 모든 소리요, 성스러운 소리라 함은 불보살이나 성문연각이 내는 소리로 중생을 가르치고 경계하는 것이니, 이른바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찬탄하고 기쁘게 하여 착한 법은 닦고 착하지 못한 법은 버리게 하니 그 중생 가운데 물든 마음이 없는 이가 받아들이고 외우고 논의하고 법답게 어려움을 물으면 기억하게 해 주거나 경계해 주거나 그 밖의 모든 좋은 말로 이익을 주는 것이니, 이러한 소리들을 성스러운 소리라 한다.성스럽지 않은 소리라 함은 이른바 중생들의 거짓말ㆍ이간질 하는말ㆍ욕ㆍ꾸미는 말 등과 무간지옥으로부터 위로 하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중생들의 갖가지 소리이다.거친 소리라 함은 중생의 큰 소리ㆍ대중이 모인 소리 갖가지 고통에 시달린 소리서로 외쳐 부르고 대답하는 소리ㆍ우레 소리ㆍ북 소리ㆍ나팔 소리 등이다.미세한 소리라 함은 심지어 귓속말로 작게 하는 소리 등이요, 이야기 소리라 함은 뜻을 알아들을 만한 소리요, 이야기가 아닌 소리라 함은 뜻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이니, 마치 타미라국(陀彌羅國)의 말씨와 같은 것과 비바람 소리ㆍ초목의 소리ㆍ앵무새ㆍ구욕새ㆍ구기라ㆍ명명조(命命烏) 등의 소리와 같은 것이다.변화한 소리라 함은 신통이 자재하여 중생의 마음에 따라 모든 소리를 변화해 낸 것이요, 먼 소리라 함은 불보살이 계시는 마을이나 성이나 읍에서 나는 소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시방의 무량한 세계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음성이다.제불보살은 천안통으로 시방의 중생들이 몸으로 짓는 깨끗하거나 더러운 빛까지를 보나니 본 뒤에는 방편으로 마땅함에 따라 이익되게 하고 천이통으로는 입으로 행하는 깨끗하거나 더러운 소리를 듣나니, 들은 뒤에는 방편으로 마땅함에 따라 이익되게 한다. 이를 일러 제불보살이 천안통과 천이통으로 하는 일을 간략히 말했다 한다.어떤 것이 지타심지통(知他心智通)인가? 이른바 불보살이 지타심지통으로 시방의 무량무변한 세계의 중생들의 번뇌전심(煩惱纏心:번뇌에 묶인 마음)을 알며 번뇌전심을 여읜 것을 알며, 번뇌의 상속과 번뇌의 사심(使心:딸린 마음)을 알며 번뇌의 상속과 번뇌의 사심을 여읜 것을 알며 삿된 바람, 즉 외도의 마음이나 탐욕스럽고 회구하는 마음을 안다.
아래 마음[下心], 즉 욕계의 중생 내지는 새 짐승의 마음을 알며 중간 마음[中心], 즉 색계 하늘의 마음을 알며 위 마음[上心], 즉 무색계 하늘의 마음을 알며, 괴로움과 상응하는 마음을 알며 즐거움과 상응하는 마음을 알며 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것과 상응하는 마음을 안다.일념타심지(一念他心智)로써 한 중생의 마음을 알되 그가 생각하는 대로 모두를 여실히 알며 일념타심지로써 무량한 중생의 마음을 알되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모두를 여실히 안다.
또 불보살은 지타심지통으로 갖가지 근력(根力)과 갖가지 해력(解力)과 갖가지 계력(界力)과 지처도력(至處道力)과 누진력(漏盡力)을 삼아 알맞은 바에 따라 방편을 베푼다.어떤 것이 누진지통(漏盡智通)인가? 이른바 불보살이 번뇌가 다한 것을 여실히 아는 것이니 자기나 중생이 누(漏)가 다했는지 아닌지를 여실히 알며 자기나 중생이 누진지의 방편을 일으켰는지 아닌지도 여실히 알며, 저 중생들이 누진지에 대한 증상만을 일으켰는지 일으키지 않았는지도 모두 여실히 아는 것이다.보살은 모든 누진지를 여실히 알고도 누진지를 증득하지는 않나니, 보살은 번뇌를 버리지 않고 모든 유루의 일을 갖추어 항상 그 일을 행하되 물들지 않는다. 이러한 힘을 최상의 힘이라 한다.
또 불보살의 누진지통은 스스로가 번뇌를 여의고는 다시 중생을 위하여 널리 분별하고 설명해 주어 그들로 하여금 증상만을 여의게 하나니 이렇게 하면 이를 누진지업(漏盡智業)이라 한다.어떤 것이 법의 힘인가? 이른바 불보살의 단바라밀과 내지 반야바라밀이다. 이 육바라밀에 각기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첫째는 대치(對治)요, 둘째는 성보리구(成菩提具)요, 셋째는 스스로와 남을 거두어들임[攝取自他]이요, 넷째는 미래의 과보를 얻음[得未來果]이다.어떤 것이 보시의 네 가지 일인가? 첫째는 보시로써 간탐(慳貪)은 대치하고 둘째는 보시로써 보리의 도구를 성취한다. 셋째는 보시로써 거두어 주어 중생을 성취시키나니, 선심시(善心施)와 청정심시(淸淨心施)로 베풀기를 원하고 베푼 뒤에는 후회하지 않고 매일 세 차례씩 기뻐하므로 스스로를 이익되게 하면 이를 스스로를 거둠이라 한다. 저 중생들이 기갈ㆍ추위ㆍ더위ㆍ질병에 필요한 것을 주어 모든 장난과 두려움을 모두 멀리 여의게 하고 이로써 이롭게 하면 이를 남을 거둠이라 한다. 넷째는 이런 인연으로 태어나는 곳마다 큰 재산과 부를 얻고 큰 종족과 큰 권속을 얻게 된다. 이를 보시의 네 가지 공덕의 힘이라 하며 견줄 만한 것도 없고 이보다 더 높은 것도 없다.어떤 것이 지계의 네 가지 일인가? 첫째는 몸과 입의 계율을 받아서 범계(犯戒)를 대치하고 둘째는 계를 받아서 보리의 도구를 이룬다. 셋째는 정계(淨戒)를 받아 지니되 같은 이익으로 거두어 주어 중생을 성취시키며 범계와 원수와 공포를 멀리 여의어 자나 깨나 항상 편안하므로 스스로를 이익되게 한다. 또 계를 가지면 마음에 뉘우침이나 한(恨)이 없이 항상 기꺼우며 나아가서는 마음이 항상 자리(自利)의 일에 안정되어 있으면 이를 스스로를 거둠이라 하고 모든 중생에게 두루 무외법(無畏法)을 베풀면 이를 남을 거둠이라 한다. 넷째는 계를 가진 인연으로 목숨을 마친 뒤에는 하늘에 태어난다. 이것이 계를 가지는 네 가지 공덕의 힘이라 하나니, 견줄 만한 것도 없고 이보다 더 높은 것도 없다.어떤 것이 인욕의 네 가지 일인가? 첫째는 인욕을 닦음으로써 참지 못하는 허물을 대치하는 것이요, 둘째는 인욕을 닦음으로써 보리의 도구를 성취한다. 셋째는 견고한 인욕으로써 같은 이익을 거두어 중생을 성취시킴으로 자신과 남이 큰 공포에서 벗어나나니 이를 스스로와 남을 함께 거둠이라 한다. 넷째는 이러한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 원망도 미워함도 없으며 이별하는 이도 없다. 이미 이별이 없어지면 근심과 고통도 없고 임종할 때에 후회하는 마음이 없으며 이 몸을 버린 뒤에는 하늘 세계에 태어난다. 이것이 인욕의 네 가지 공덕의 힘이니 견줄만한 것도 없고 이보다 더 높은 것도 없다.어떤 것이 정진의 네 가지 일인가? 첫째는 정진으로 게으름을 대치하고, 둘째는 정진으로 보리의 도구를 성취한다. 셋째는 부지런한 정진에 의하여 같은 이익으로 거두어 주어 중생을 성취시키며 정진하는 즐거움에 머물러 모든 악업을 여의고 공덕이 자라게 하는 것을 기뻐하고 좋아하여 스스로를 이익되게 하면 이를 스스로를 거둠이라하고 부지런히 선행을 닦아 몸과 입으로 중생을 두렵게 하지 않으며 중생이 이를 보고 그들 역시 즐기어 정진하게 하면 이를 남을 거둠이라 한다. 넷째는 이러한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 큰 사람[大人]의 기특한 공업(功業)을 이룬다. 이를 정진의 네 가지 공덕의 힘이라 하나니, 견줄만한 것도 없고 이보다 더 높은 것도 없다.어떤 것이 선정의 네 가지 일인가? 첫째는 선정으로써 번뇌를 대치함이니 언어(言語)의 어지러운 지각이나 색을 기뻐하고 좋아하는 생각 등의 번뇌가 모두 소멸되는 것이요, 둘째는 그로 인해 보리의 도구를 성취한다. 셋째는 모든 선정에 의하여 같은 이익으로 거두어 주어 중생을 성취시키며 현재 법의 즐거움[現法樂]에 머물러 스스로를 잘 거두어 그 마음이 고요해서 탐욕을 여의면 이를 스스로를 거둠이라 하고, 모든 중생에 대하여 성내거나 괴롭히지 않으면 이를 남을 거둠이라 한다. 넷째는 이러한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 그 가보로서 천상에 태어나거나 지혜가 깨끗하고 신통이 깨끗해진다. 이를 선정의 네 가지 공덕의 힘이라 하며 견줄만한 것도 없고 이보다 더 높은 것도 없다.어떤 것이 반야의 네 가지 일인가? 첫째는 지혜로 무명을 대치하고, 둘째는 그로 인해 보리의 도구를 성취한다. 셋째는 보시ㆍ애어(愛語)ㆍ이익(利益)ㆍ풍리(風利)로써 모든 중생을 거두어 성취케 하고 알아야 할 일에 대하여 그 의의에 따라 분명히 알고는 훌륭하고 묘한 이익을 얻어 기뻐하면 이를 스스로를 거둠이라 하고 두루 중생들을 위하여 선교방편으로 설법해 주어 금세와 후세의 안락을 얻게 하면 이를 남을 거둠이라 한다. 넷째는 이러한 인연으로 온갖 평등한 선근을 거두고 미래 세상에 장애, 즉 번뇌장과 지혜장(智慧障)을 끊고 깨달음을 얻는다. 이를 지혜의 네 가지 공덕의 힘이라 하나니, 견줄 만한 것도 없고 이보다 더 높은 것도 없다. 이것이 법의 힘이다.어떤 것이 불보살의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는 힘인가? 본 성품이 숙명을 알아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니 끝없는 무간지옥의 큰 고통을 생각하여 모두 능히 참아냄으로써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중생들이 좋아하는 것은 그 마음에 모두 따라 좋아한다.도솔천에 태어나서 하늘의 수명에 따라 머무는데 세 가지 훌륭한 것이 있어 모든 하늘 사람보다 뛰어나나니, 첫째는 천수(天壽)요, 둘째는 천색(天色)이요, 셋째는 천명칭(天名稱:좋은 소문)이다.모태로부터 태어날 때엔 기이한 광명이 세계에 충만하며 태에 드는 것과 태에 머무는 것과 태에서 나오는 것을 안다. 태어날 때 땅에 떨어지자 일곱 걸음을 걷고 손을 들고 외치되 ‘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어른[無上尊]이다’라고 한다.
하늘 무리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이 하늘의 향기로운 꽃과 풍악과 당번(幢幡) 등으로 갖가지로 장엄하여 공양하며 32상으로 장엄하니 이것이 최후의 몸이다.
모든 마와 원수가 침노하지 못하니 보리수[佛樹] 밑에 앉아 자비심으로 마군을 항복받는다. 낱낱 몸매에 나라연(那羅延)의 힘이 있어 어릴 적부터 동년(童年)에 이르기까지 자연히 생긴 방편으로 온갖 학문이나 기술, 예능을 터득하되 스승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도량의 보리수 밑에 맞아 자연스레 등정각을 이루면 범왕이 내려와서 설법해 주기를 간곡히 청한다. 우레와 번개가 치면서 아무리 큰 소리를 내어도 여래의 삼매[正受]는 깨뜨리지 못하고 나쁜 짐승도 친하게 따르고 길들어 두려움이 없다.
모든 중생이 공양하니 예컨대 원숭이가 향밀(香蜜)을 받들어 올릴 때 세존이 가엾이 여겨 받으시면 그들은 기뻐 재롱을 부리고 춤을 추며, 용은 비를 뿌려 그 몸을 씻고 만일 밖으로 나가시면 비가 문득 그친다. 보살이 이렇듯이 보리수 밑에 앉았으면 나무는 가지를 구부려 그늘을 드리운다.정각을 이룬 뒤에 6년 동안 천마 파순(波旬)이 그의 흠을 잡으려 하나 끝내 장을 얻지 못한다. 항상 바른 생각으로 평등하게 안주(安住)하며 모든 중생의 갖가지 다른 알음알이와 다른 생각과 다른 느낌의 생하고 머물고 멸하는 것을 그때그때 모두 안다.여래는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는 힘으로 시현색신(示現色身)과 성위의(聖威儀)로 중생을 거두어 주나니 색신을 시현하기 때문에 미친 자가 깨어나고 거슬린 태가 순산되고 소경이 보고 벙어리가 듣고 삼독이 있는 자는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여의게 된다. 이와 같은 종류로 색신을 시현하여 중생을 거두어 주나니 이를 시현구생신력(示現俱生神力)이라 한다.위의구생력(威儀俱生力)이라 함은 항상 오른쪽으로 늘되 마치 사자 같이 하며 풀자리가 흐트러지지도 않고 바람이 옷을 흔들지 않으며 다니는 것은 사자와 같고 걷기는 소와 같아서 먼저 오른 발을 내딛고 다음에 왼 발이 따르며 가는 곳마다 평탄하여 자갈이나 돌이 없고 다닐 때에는 편안하여 모든 감관이 고요하다.
만일 문에 들어갈 때 낮은 문은 높아지고 음식은 입을 지나지 않았지만 입에는 남은 것이 없다.
이와 같이 무량한 미증유의 일은 모두가 성위의에 속하는 구생신력[聖威儀所攝俱生神力]이라 한다.어떤 것이 제불보살이 성문이나 벽지불과 함께하지 않는 힘이며 어떤 것이 함께하는 힘인가?
함께하지 않는 힘이라 함은 간략히 말하면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세(細)요, 둘째는 분별(分別)이요, 셋째는 계(界)이다. 불보살이 무량무수 아승기 중생에게 무량한 힘과 방편으로 이익되게 할 수 있음을 여실히 알면 이를 세라 하고, 모든 종류의 신통력과 법력과 구생력을 만족하게 성취하면 이를 분별이라 하고, 모든 세계의 모든 중생이 그 힘의 경계라 하면 이를 계라 한다.성문이라 함은 2천 세계 안의 국토세계와 중생세계로 신통의 경계를 삼는 무리요, 여각이라 함은 3천세계로 신통의 경계를 삼는 무리이니 무슨 까닭인가? 그들은 스스로를 조복시켰으므로 일체 중생은 아니다. 그러므로 오직 3천세계만으로 경계를 삼나니 이를 제외한 불보살의 모든 신통력은 공력(共力)이라 한다. 성문이나 연각도 보살의 신통력에는 미치지 못하거늘 하물며 인간ㆍ천상ㆍ외도ㆍ범부이겠는가?보살이 세 가지로 시현하는 힘이 있으니, 첫째는 신족(神足)이요, 둘째는 시타심(示他心)이요, 셋째는 교계(敎誡)이다. 이 또한 신통에 속하는 것으로서 그 상응하는 바에 따르면 차례대로 신족통ㆍ타심지통ㆍ누진지통에 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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