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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622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

by Kay/케이 2024.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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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

 

보살선계경(菩薩禪戒經)
-우바리가 보살의 계 받는 법을 물음-


구나발마(求那跋摩) 한역
홍승균 번역


보살마하살이 계(戒)를 성취하고 선계(善戒)를 성취하고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계[利益衆生戒]를 성취하려면, 먼저 마땅히 우바새계(優姿塞戒)와 사미계(沙彌戒)와 비구계(比丘戒)를 충분히 배워야 한다. 말하자면 우바새계를 갖추지 않고 사미계를 얻는 일은 있을 수 없고, 사미계를 갖추지 않고 비구계를 얻는 것 역시 있을 수 없으며 이와 같은 세 가지 계를 갖추지 못하고서 보살계를 얻는 일 역시 있을 수 없다. 비유하면 4층으로 이루어진 차례와 같으니, 첫 층을 지나지 않고 둘째 층에 이르는 일은 있을 수 없고, 둘째 층을 지나지 않고 셋째 층에 이른다거나 셋째 층을 지나지 않고 넷째 층에 이른다는 일 역시 있을 수 없다.
보살이 세 가지 계를 모두 충분히 갖추고 난 후에, 보살계를 받고자 하면 마땅히 지극한 마음으로, 탐착하는 마음이 없이 모든 안감의 물건을 버려야 한다. 만약 버리지 못하거나 세 가지 계를 갖추지 못하면, 끝내 보살계를 얻을 수 없다.
이때 받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관(觀)하기를 지자(智者)를 관하듯이 하고 적정(寂靜)한 곳에서 시방의 부처님께 예배하고, 동쪽을 향한 불상 앞에서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라.
“대덕(大德)이신 시방의 불보살님과 스님들께서는 들어주십시오. 지금 저 아무개가 보살계를 구합니다. 저는 이미 우바새계를 갖추었고 지혜로운 이의 일들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시방의 불보살님과 스님들께서 보살계를 주시기를 구합니다. 지금 시방의 불보살님과 스님들께서는 저의 마음을 관하시어, 저에게 만약 믿지 않는 마음이나 보리를 훼손하는 마음이 있거나, 악한 마음이나 속이는 마음이 있으면 저에게 계를 베풀어 주지 마시고, 그런 마음이 없으면 불쌍히 여기시어 계를 베풀어 주십시오.”
두 번째 세 번째도 역시 이와 같이 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조용히 전념(專念)에 머물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라.
“이제 이미 저에게 보살계를 베풀어 주셨고, 제가 이미 보살계를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시방의 불보살님께서 타심지(他心智)로써 저의 마음을 관하시어 저에게 진실한 마음이 있는 것을 아시고 나서 불쌍히 여기신 까닭에 저에게 계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에게는 달리 스승이 없고 시방의 불보살님께서 스승이 되십니다.”
두 번째 새 번째도 역시 이와 같이 말하라. 이때 시방의 불보살님께서 곧 모습을 지어 보이시니, 계를 얻은 줄 알게 된다. 시방의 불보살님께서 모든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저 세계에 아무개가 있어 진실로 보살계를 받았다. 내가 이미 베풀었으니 불쌍히 여긴 까닭이다. 이제 이 사람에게 다른 스승이 없고 내가 스승이 되어 이제 호념(護念)하리니, 이 사람은 나의 법제자이다”라고 하시면, 곧 일어나 시방의 불보살님께 예배하라. 이것이 자갈마(自羯磨)이다.
만약 어떤 지자(智者)가 있으나 교만하므로 그에게서 받을 수 없어 보살계를 얻을 수 없거나 지자가 계를 깨뜨린 사람이거나 지자가 먼 곳에 있거나, 나라에 난이 일어났거나, 스스로 중병(重病)에 걸렸거나, 여러 사람을 이익되게 하기 위해서나, 다시 받을 데가 없을 때나, 출가했거나, 출가하지 않았거나 간에 능히 버리고 능히 베풀어 깊은 마음으로 원을 세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거나 할 때에, 만약 보리심을 함께하고, 불법을 같이 믿고, 뜻을 같이 하면서, 능히 설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는 법도를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계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그 곳에 가서 머리를 땅에 대고 예배하고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서 합장하고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대덕(大德)께서는 잘 들어주십시오. 제가 지금 대덕으로부터 대자재한 계이며 위없는 계이며 가장 수승한 계인 보살계 받기를 빕니다. 저를 소중히 생각하시는 마음이 없으시더라도 불쌍히 여기시어 부디 저에게 계를 베풀어 주십시오.”
만약 저 대덕이 잠자코 듣고만 있으면, 마땅히 다시 일어나 옷을 단정히 하고, 눈은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땅에 계시는 모든 보살님들께 향하고, 머리를 땅에 대고 예배하라. 그리고 자기 지혜의 힘에 따라 모든 불보살님께서 지니신 공덕을 찬탄하고 오로지 삼보를 생각하면서 불상 앞에서 무릎 꿇고 합장하고서 다음과 같이 말하라.
“대덕이시여. 저 아무개가 지금 보살계 받기를 빕니다. 대덕께서는 이제 불쌍히 여기시어 보살계를 베풀어 주십시오.”
만약 저 대덕이 잠자코 듣고 있으면, 받으려 하는 사람은, 이때 지극한 마음으로 오로지 삼보를 생각하면서 환희심을 내며, 다시 이러한 생각을 해야 한다.
“이제 내가 이미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고 위없는 공덕의 보장(寶藏)을 이루었으니, 보살이 받아 지니는 계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일심으로 조용히 머물러야 한다. 이때 지자가 받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선남자여, 자세히 들어라. 법제보살(法弟菩薩)이여, 너는 지금 진실로 이 보살인가, 진실로 보리심을 내었는가”라고 하면, 받는 사람은 “대덕이시여, 실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라.
지자가 다시 말하기를 “네가 지금 세 가지 계를 모두 갖추었느냐”라고 하면, “다 갖추었습니다”라고 대답하라. 또 묻기를 “안팎의 모든 물건들을 능히 버릴 수 있겠느냐”라고 하면, “버릴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라. 또, 묻기를 “몸과 재물을 아끼느냐”라고 하면, “아끼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라. 또 묻기를 “네가 능히 나에게서 모든 보살계를 받아, 모든 보리도계(菩提道戒)와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계를 다 지닐 수 있겠느냐, 이 계는 시방삼세의 모든 불보살님의 계와 같으니 네가 능히 지닐 수 있겠느냐”라고 하면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라.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역시 이와 같이하고서, 지자는 마땅히 소리 높여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과 대덕스님들께서는 들으십시오. 지금 아무개가 저에게 구하여, 시방의 부처님과 보살님과 스님들에게서 보살계 받기를 빕니다. 이미 세 가지 계를 갖추었고 보리심을 내었으니, 진실한 보살로서 능히 모든 안팎의 물건들을 버리고 목숨을 아끼지 않습니다. 원하오니 시방의 모든 불보살님과 스님들께서는 불쌍히 여기시어 아무개에게 보살계를 베풀어 주십시오. 불쌍히 여기시어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고 위없는 공덕보장계(功德寶藏戒)를 베풀어 주십시오. 중생을 이익되게하기 위해서이며 불보살님의 법을 증장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역시 이와 같이 한다. 이때 모든 방향에서 서늘한 바람이 일어나리니, 지자는 시방의 모든 불보살님과 스님들께서 이 사람에게 계를 베풀어 주신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면 받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아무개는 자세히 들어라. 시방의 모든 불보살님과 스님들께서 이제 너에게 계를 베풀어 주셨으니 모든 삼세의 보살계[一切三世菩薩戒]이다. 너는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 지녀야 할 것이니, 능히 받아 지닐 수 있겠느냐”라고 하면,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라.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역시 이와 같이 하고 나서 지자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과 스님들께 공경히 예배하고 불상에 예배한다. 예배하고 나서 다시 다음과 같이 큰 소리로 말한다.
“시방의 모든 불보살님과 대덕들은 들으십시오. 이제 아무개가 세 번 말하기를 마치고 이미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에게서 보살계를 받았습니다. 설한 사람은 저이고, 받은 사람은 아무개 입니다. 제가 아무개의 증인(證人)이 되었으며, 큰 스승은 다름 아닌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불보살님과 스님들이시고, 작은 스승은 바로 저입니다. 스승에는 두 종류가 있어, 첫째는 볼 수 있는 스승이고, 둘째는 볼 수 없는 스승이니, 볼 수 없는 스승은 시방의 모든 불보살님과 스님들이시고, 볼 수 있는 스승은 바로 저입니다. 볼 수 있는 스승과 볼 수 없는 스승에게서 이 사람이 계를 얻기를 마칩니다. “ 두 번째 세 번째도 이와 같이 하고 이와 같이 갈마를 마친다. 갈마를 마치고 나서 두 사람이 다 가만히 있으면, 이때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께서 이 일을 아시고서 모든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저 세계 중에 이와 같은 사람이 있어 저 지자(智者)로부터 보살계를 받았다. 이와 같은 사람은 곧 나의 법제자이니, 내가 이제 지심으로 가엾이 여겨 호념하리라. 시방의 부처님과 보살님과 스님들이 불쌍히 여기시어 호념하시는 까닭이다.”
주는 이와 받는 이는 모두 선법(善法)을 증장하여 가만히 잠시 머물러 있다가 곧 일어나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과 스님들께 공경히 예배하라. 이를 가리켜 보살이 보살계 받기를 마쳤다고 한다.
이 보살계는 일체계이며 위없는 계이며 끝없는 계이며 공덕이 모인 계이며 적정(寂靜)한 계이며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계이며 모든 중생의 번뇌를 깨뜨리는 계이니, 이와 같은 계는 시방의 모든 성문과 벽지불계보다 뛰어나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보살이 보살계를 받고 나면 보살법장과 보살마이(摩夷)를 배우고 독송하여야 한다. 보살계를 받고자 할 때는 먼저 마땅히 관찰하여, 만약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받지 말아야 한다. 인색한 사람이나 탐욕스런 사람이나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나 계율을 깨뜨리고 계를 더럽히고 계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지 않고, 탐내고 성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참지 못하는 사람이나, 남을 위해서 죄의 허물을 끊지 않는 사람이나, 게으르고, 세속의 즐거움을 받기를 탐하고, 세상사를 이야기하기 좋아하고, 한 순간도 삼보를 염하지 못하고, 의심하고 어리석으며, 보살법장과 보살 마이를 능히 독송하지도 못하면서 비방하는 이러한 사람에게서는 받지 말아야 한다.
이미 계를 받고 나서는 저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설하지 말아야 하고, 대승을 비방하는 사람에게도 설하지 말아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만약 믿지 않으면 이 인연으로 지옥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그에게 설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만약 설하면 죄가 된다. 보살이 저 사람에게 설하여 능히 저 사람의 악구(惡口)와 악업(惡業)과 믿지 않는 마음을 깨뜨릴 수 있음을 확실히 알 때는 설하여도 죄가 없다.
보살이 이미 보살계를 받고 나면, 스승은 범하고 범하지 않는 법을 설하여야 한다. 만약 지극한 마음으로 능히 받되 공양 때문에 받는 것은 아니며, 남을 흉내내어 받는 것도 아니고, 교만하기 때문에 받는 것도 아닌 줄을 알면, 이때에 스승은 곧 그를 위하여 범하고 범하지 않는 법을 설하고, 아무개[某甲]는 자세히 듣는다.
보살계에는 여덟 가지 중법(重法)이 있는데 네 가지 중법은 앞서 발은 계와 같다. 보살이 이익[利養]에 탐착하여 자신을 스스로 찬양하여 보살계를 받고 보살지(蓄龍地)에 머물면, 이것을 보살의 다섯째 중법이라고 한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나 병든 이가 와서 구걸할 때, 보살이 욕심이 많아서 아껴서 베풀지 않아 한 푼어치의 물건까지도 아끼며, 법을 구하는 사람에게 인색하여 한 게송도 베풀어 주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의 여섯째 중법이라고 한다.
보살은 만약 화가 나더라도 악(惡)을 퍼붓지 말라. 만약 손으로 때리거나 몽둥이나 돌로 때리거나 포악하게 꾸짖고 욕하거나, 혹 힘이 없어 때리거나 욕할 수 없어 마음속에 분을 품거나, 만약 다른 사람에게 매를 맞거나 욕을 먹으면, 그 사람이 참회를 구하여도 그 참회를 받지 않고 마음에 노여움과 원망을 품어 계속 키워서 마음이 부정(不淨)하면, 이를 보살의 일곱째 중법이라고 한다.
보살은 만약 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배우는 이가 보살의 방등법장(方等法藏)을 비방하고, 법과 유사하나 법이 아닌 것을 배우고 받들면 함께 머물지 말라.
만약 확실히 알고 나서도 사람들에게 그 덕을 찬탄하지 않으면 이를 보살의 여덟째 중법이라고 한다.
보살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재가자요, 둘째는 출가자이다. 재가자에게는 여섯 가지 중법이 있고 출가자에게는 여덟 가지 중법이 있는데, 이 여덟 가지 중법 가운데서 만약 보살이 어느 하나의 중법을 범하거나 또는 모두 범하면, 현재에 끝없고 위없는 보리를 장엄할 수 없고, 마음을 적정케 할 수 없다. 이를 곧 명자보살(名字菩薩)이라고 하니, 옳지 못한 보살이며, 이를 보살전다라(菩薩旃陀羅)라고 하며, 사문(沙門)이라고 부를 수 없고 바라문[淨行]도 아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바르게 나아갈 수 없다.
보살의 마음에는 하ㆍ중ㆍ상의 세 종류가 있으니, 만약 뒤의 네 가지 중법을 하와 중의 마음으로 범했을 때는 범했다고 하지 않고, 상심(上心)인 악한 마음으로 범하여야 이를 범했다고 한다. 상(上)이란 이른바 이와 같은 네 가지 일을 즐거이 짓고도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이 뉘우침을 알지도 못하고 죄의 범함을 보지도 못하며 계를 범하는 것을 칭찬하는 것이니, 이를 상악심(上惡心)으로 범함이라고 한다.
보살은 비록 이와 같은 네 가지 중법을 범하여도 끝내 보살계를 잃지는 않나니 비구가 네 가지 중법을 범하면 바라제목차계(波羅提木叉戒)를 잃듯이 보살도 비구의 네 가지 중법을 범하면 역시 바라제목차계를 잃으며, 보살계를 더럽힌다. 더럽힌 사람은 현재 보리를 장엄할 수 없고 무량복덕삼매를 이를 수 없으니, 이를 더럽힌다고 한다. 두 가지 인연이 있으면 보살계를 잃게 되나니, 첫째는 보리심에서 물러나는 것이고, 둘째는 상악심을 갖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인연을 여의면 다음 생에 지옥이나 축생이나 아귀 중에 떨어지더라도 끝내 보살계를 잃지 않는다. 보살계란 바라제목차계와는 같지 않으니, 만약 보살이 다음 생에 다시 보살계를 받을 때는 ‘새로 받는다’고 하지 않고 ‘영정(塋淨)을 개시(開示)한다’고 한다.
이제 다시, 보살계를 받음에 있어 이 범하고 범하지 않는 법의 가볍고 무거운 상중ㆍ하의 차이를 설하겠다.
보살이 만약 보살계를 받고 나서, 밤낮으로 탑과 상(像) 앞에서 경을 독송하는 천만(千萬)의 보살들에게 꽃과 향으로 공양 예배하거나 찬탄하고 마음으로 기뻐하기를 잠깐이라도 그친다면 이를 무거운 법을 범했으나 여덟 가지 무거운 법을 범했다고는 하지 않으며[犯重不名八重], 또 이를 보살의 더럽혀진 마음, 의심하는 마음이라고 하니, 처음으로 떨어져서 부정(不淨)한 마음을 일으킨다. 만약 이러한 마음을 내면 공경심이 없어지니, 믿지 않는 까닭이며 게으른 까닭이다. 이를 무거운 법을 범했으나 여덟 가지 무거운 법을 범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만약 의도적인 마음이 없었다면 이는 가벼운 법을 범했다고 한다. 범함이 아닌 것은, 청정한 마음으로 항상 보리를 구할 때이니, 청정한 마음이란 수다원(須陀洹)이 가지고 있는 네 가지 믿음과 같다.
보살이 만약 만족할 줄 모르고 욕심을 적게 낼 줄 모르고 이익에 탐착하면, 이를 무거운 법을 범했으나 여덟 가지 무거운 법을 범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만족할 줄 모르는 것으로써 능히 중생을 조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을 때이다.
보살이 만약 상좌(上座)나 덕 있는 사람이나 한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도반을 보고 교만한 마음을 내거나 악한 마음으로, 일어나 맞이하지 않고 예배하지 않으며 자리를 마련하지 않고 함께 이야기 하지 않으며, 먼저 인사를 하지 않거나, 또는 의심나는 것을 물어도 그를 위해 해설해 주지 않으면, 이를 무거운 법을 범했으나 여덟 가지 무거운 법을 범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또 이를 보살의 더럽혀진 마음, 의심하는 마음이라고 하며, 처음으로 떨어지되 부정한 마음은 일으키지 않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병이 들었을 때나 잠을 잘 때나 마음이 산란할 때나 지심으로 법을 듣고 부처님을 공양할 때나 경을 베끼고 독송하고 해설하고 논의할 때나 먼저 온 손님과 이야기 할 때나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때나 함께 말하지 않음으로써 능히 조복시킬 수 있을 줄을 알 때나 승가의 제도를 보호하기 위할 때나 여러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 때이다.
만약 비구가 죄과(罪過)를 구하기 위하여 보살계를 듣고자 할 때 받은 것을 믿지 않고, 가르침을 믿지 않으며 우바새계를 성취하지 않았거나 사미계를 성취하지 않았거나 바라제목차계를 성취하지 않는 이는 보살계를 들을 수 없으니, 들으면 죄가 된다. 만약 비구가 바야제죄(波夜提罪)를 범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거나 뉘우치지 않고 보살계를 들으면 투라차죄(偸羅遮罪)가 된다. 만약 비구가 투라차죄를 범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거나 뉘우치지 않고 보살계를 들으면 승가바시사죄(僧伽婆尸沙罪)를 얻는다.
만약 비구가 승가바시사죄를 범하고도 부끄러워하거나 뉘우치지 않고 보살계를 들으면 바라이죄(波羅夷罪)를 얻는다. 만약 이러한 사람에게 여덟 가지 무거운 법을 설하는 사람이 있으면 승가바시사죄를 얻는다. 그러므로 경 가운데 이와 같은 말이 있다. ‘믿지 않은 사람은 듣지 말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설하지도 말라.’
믿음이 깊은 단월(檀越)이 자기 집이나 탑사나 촌락이나 국토에서 필요한 의복이나 음식이나 와구나 의약을 공급하고자 보살에게 와 주기를 청할 때, 보살이 교만하여 성내고 원망하고 경멸하고 천하게 여겨 가서 받지 않으면 죄를 얻는다. 이 죄는 번뇌로 인하여 범한다. 만약 보살이 동반자 없이 혼자 가서 세속 사람의 집에 이르면 착류죄(錯謬罪)를 얻는다. 만약 세속 사람의 집에 도착하여 능히 설법하고 개시하고 교화하여 불ㆍ법ㆍ승 삼보에게 공양하게 하지 않으면 이를 무거운 법을 범했다고 하고 여덟 가지 무거운 법을 범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병이 났거나 어리석어 둔하거나 미쳤을 때나 먼 데서 청했을 때나 도로에 난(難)이 있을까 염려될 때나 청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저들을 조복시킬 수 있는 것을 알 때나 먼저 청을 받은 것이 있을 때나 선법(善法)을 부지런히 닦을 때나 아직 듣지 못한 것을 듣고자 할 때나 청하는 사람의 마음이 진실하지 않은 것을 알았을 때나 저 사람의 청을 들으면 여러 사람이 성을 낼 것 같을 때나 승가의 제도를 보호하기 위할 때이다.
만약 단월이 금ㆍ은ㆍ진주ㆍ자거ㆍ마노ㆍ유리 파리(頗梨)ㆍ노비ㆍ거승(車乘)ㆍ코끼리ㆍ말 등의 물건과 여러 색으로 된 가사를 보시하면 보살은 받아야 할 것이니, 만약 받지 않으면 죄를 얻는다. 이 죄는 번뇌로 인하여 범하는 것이다. 범함이 아닌 것은, 미쳤을 때나 받고 나면 반드시 탐착하는 마음이 생길 줄을 알 때나, 받고 나면 시주가 후회할 줄을 알 때나, 시주가 베풀고 나서 발광(發狂)할 줄 알 때나, 받고 나면 시주가 빈궁해질 줄을 알 때나, 이 물건이 삼보께 바치도록 되어 있는 것인 줄을 알 때나, 이 물건이 남에게서 빼앗은 것인 줄을 알 때나, 받고 나면 많은 괴로운 일 말하자면 왕난(王亂)이나 도적의 난을 당하거나, 죽거나 묶여 가두어지거나, 나쁜 소문이 퍼져 경계 밖으로 쫓겨나거나 하는 일을 당하게 될 줄 알 때와 받고 나면 능히 버리지 못하여 좋은 복전에 복덕을 심을 수 없을 줄 알 때이다.
만약 중생이 뜻을 알기 위하여 법을 듣고자 보살이 있는 곳에 머무르며 여쭈었으나 듣지 못하였을 경우, 보살이 가벼이 여기는 마음과 오만한 마음으로 그를 위하여 설하여 주지 않으면 죄를 얻나니, 이 죄는 번뇌로 인하여 범한다. 범함이 아닌 것은, 그 사람이 악한 사견으로 과죄(過罪)를 찾으려 하는 줄을 알 때나 병이 났을 때나, 병이 비로소 차도가 있을 때나, 미쳤을 때나, 설하지 않음으로써 그를 조복시킬 수 있는 줄 알 때나, 부처님께서 아직 제정하시지 않으신 것일 때나, 저 사람이 삼보를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줄 알 때나, 거동이 거칠 때나, 근기가 둔하여 깊은 뜻을 듣고 나면 삿된 생각을 내게 될 줄을 알 때나, 삿된 생각이 있음을 확인했을 때나, 듣고 나서 도리어 악한 사람에게 널리 말하려 정법을 파괴하게 될 줄을 알 때이다.
만약 악한 사람이나 내지 전다라가 다른 이를 살해하였을 때 보살이 친하게 왕래하지도 않고 그를 위하여 설법하지도 않으면 죄를 얻는다. 왜냐하면, 보살은 만약 계를 지키고 정진하여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한 사람을 보고는 자비심을 내지 않아도, 악한사람을 보면 능히 자비심을 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보살이 그를 위해서 설하지 않으면 죄를 범하게 된다. 범함이 아닌 것은, 미쳤을 때나, 왕의 제도나 승가의 제도를 보호하기 위할 때나, 여러 사람이 혐오할 것이 우려될 때나, 설하지 않음으로써 그를 조복시킬 수 있는 줄을 알 때이다.
만약 친척이 아닌 장자나 바라문인 단월이 갖가지 옷을 보살에게 보시하려 하면 보살은 받아야 한다. 만약 보살에게 스스로 구하여 얻은 것이 많이 있더라도 역시 그것을 받아야 할 것이니, 옷과 발우도 이와 같다. 옷과 발우와 같이 실[線]도 이와 같다. 보살이 만약 단월의 주변에 가서 실을 찾아 구하여 친척이 아닌 옷감 짜는 사람을 시켜 옷감을 짜게 하되, 촘촘히 짜라고 시키거나 넓고 두껍게 짜라고 시키면서 ‘나 자신이 입을 것이 아니다. 너와 단월이 모두 복이 있다’라고 말하여 단월이 ‘제가 스승을 위해서 만든 것이니 오직 스스로 입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거나, 보살이 얻고 나서 스스로 자신을 위하여 옷감 짜는 사람에게 가서 치밀하게 짜도록 시키거나 넓고 두껍게 짜도록 시켜서 옷을 얻은 뒤에 자신이 스스로 입으면 무거운 법을 범한 것이나 여덟 가지 무거운 법을 범한 것은 아니다. 만약 시키지 않았으면 범한 것이 아니다.
보살이 만약 보살계를 받은 뒤에는 사치스러운 물품들을 받으면 비축하여야 할 것이니 백천만 개의 금은(金銀)도 역시 그러하다. 성문은 단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까닭에 여래께서 받아 비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나, 보살은 그렇지 않아서 중생의 이익을 위하므로 비축하는 것을 허락하셨으니 부득이 받아야 한다. 만약 지족(知足)과 명예를 위하여 받지 않으면 실의죄(失意罪)를 얻으니, 떨어지기는 하지만 의심과 부정한 마음은 일으키지 않는다. 만약 보살이 인연을 게을리 하여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지 못하면 죄를 얻나니, 이 죄는 번뇌로 인하여 범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보살이 사람들에게서 십주(十住)라거나, 아라한(阿羅漢)이라거나 수다원(須陀洹)이라거나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찬탄하는 말을 듣고, 잠자코 받아들이면 죄를 얻나니, 이 죄는 번뇌로 인하여 범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보살이 승가 가운데 들어가서 여러 사람이 범답지 않게 장난치고 웃고 하는 것을 보고도 꾸짖지 않으면 죄를 얻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법을 들을 때이니, 조복시키기 위해서이며, 마음에 따라 설법하기 위해서이며 능히 이익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어떤 이가 있어 “보살은 열반을 기뻐하지 않으나 또한 기뻐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번뇌를 두려워하지 않으나 역시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생사를 유전하기 때문이다”라고 보살이 말을 하면 죄를 얻는다. 왜냐하면 보살의 열반을 기뻐하는 것은 성문과 연각은 능히 알 수가 없나니, 성문과 연각이 열반을 기뻐하는 것을 보살의 기쁨에 비하면 백 분, 천 분, 백천만 분의 일도 안 된다. 보살이 번뇌를 두려워함을 가책(呵責)하는 것도 성문과 연각은 알 수 없는 경지이니, 성문과 연각이 번뇌를 두려워함을 가책하는 것은, 보살이 번뇌를 두려워함을 가책하는 것에 비하면 백 분, 천 분, 백천만 분의 일도 안 된다. 왜냐하면 성문과 연각은 단지 자신만을 위할 뿐이어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없기 때문이지만 보살은 그렇지 않아 스스로를 이익되게 하고 남도 이익되게 한다. 보살이 비록 행함에 누(漏)가 있다 해도 본래 나한보다 수승하여 종일토록 누와 번뇌 속에 있어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이러한 까닭에 죄를 얻는다.
만약 보살이 험담을 두려워하지 않고 험담을 방지하지 않으면 실의죄(失意罪)를 얻는다. 만약 다른 사람이 악한 것이 없는데 함부로 남을 악하다고 칭하면 악죄(惡罪)를 범하게 되나니 이 죄는 번뇌를 인하여 범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조복시키기 위하여 악한 말을 하였으면 실의죄를 얻으니, 이는 악죄가 아니다. 범함이 아닌 것은 외도가 거짓으로 와서 현재 보살계를 받으려 하여 그를 꾸짖을 때나, 마음에는 본래 악이 없는데 입에서 악한 말이 나왔을 때나, 미쳤을 때나, 꾸짖음으로 해서 큰 이익이 있을 줄 알 때나, 저 사람에게 성을 내면 저 사람이 이익을 얻게 될 줄을 알 때나 계를 지키기 위하여 화를 내지 않으면 죄를 얻게 될 때나, 저 사람에게 화를 내면 현세에 조금의 이익도 없지만 다른 생에는 큰 이익이 될 줄을 알 때이다.
만약 보살이 때린 사람에게는 때리는 것으로 보복하고 욕을 한 사람에게는 욕하는 것으로 보복하고, 괴롭힌 사람에게는 괴롭히는 것으로 보복하면 실의죄를 얻나니 이 죄는 번뇌로 인하여 범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보살이 서로 비난하고 헐뜯으면, 사실이거나 사실이 아니거나 간에 보살은 곧 겸손히 자기를 낮추어 사과하여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를 얻으며, 사죄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이것 역시 죄를 얻는 것이 된다. 방일하기 때문에 사죄하지 않아도 죄를 얻고, 방일하기 때문에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죄를 얻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저 사람이 본래 폐악(弊惡)하여 항상 와서 남의 단점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 때나,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저 사람의 악한 것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알 때이다.
만약 보살이 남에게 화를 내고 원한을 품어 항상 ‘내가 보기만 하면 반드시 때려주고 욕을 하리라’하는 생각을 쉬지 않고 그치지 않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면 죄를 범한다.
만약 보살이 비구니와 함께 한 길을 가면 범하는 것이 아니나, 만약 탐내는 마음이 있으면 죄를 얻는다. 험함이 마닌 것은 조복시키고자 할 경우이다.
만약 보살이 친척이 아닌 비구니에게서 음식을 받으면 범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보리심을 발하고 나면 모든 중생이 친척 아닌 이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보살이 탐욕스러워 사람을 부리려고 제자를 많이 기르면 죄를 범하는 것이다. 범함이 아닌 것은, 조복시키기 위할 때나 법을 지키기 위해서일 때나 탐내는 마음이 없을 때이다.
만약 보살이 게으르고 나태해서 열심히 정진하지 않고, 잠자고 눕기를 좋아하면 죄를 얻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병이 났을 때나 병이 차도가 있으나 아직 기력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을 때나, 먼 길을 다녀왔을 때나, 독송해서 피곤할 때나 대치(對治)할 것을 생각할 때이다.
만약 보살이 세간의 하잘 것 없는 말을 함께 이야기하면 죄를 얻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다른 사람이 물어서 대답할 경우이니, 저 사람의 마음을 따라 조복시키기 위한 까닭에 말할 때에는 지극한 마음으로 더하거나 덜하지 말라.
만약 보살이 교만한 마음으로 고의로 스승에게 묻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죄를 얻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병이 들었을 때나, 미쳤을 때나, 어리석을 때나, 매우 총명하고 다문(多聞)하여 지혜로써 중생을 조복시키기 위할 때나, 삼매에 들었을 때이다.
만약 보살에게 욕심이 일어났을 때, 잘 관(觀)하여 대치하여서 빨리 조복시켜 없애지 못하면 죄를 범하는 것이다. 범함이 아닌 것은 비록 관하여 대치하더라도 번뇌의 힘이 성하여 없앨 수 없을 때나, 일부러 자신을 시험하려고 욕심을 낼 때이다.
예컨대 보살이 말하기를 “성문계를 받지 말고 성문경(聲聞經)을 읽지 마라. 왜냐 햐면 성문경과 율(律)은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니, 만약 이러한 말을 하면 무거운 법을 범했으나 여덟 가지 무거운 법을 범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소승의 경과 율에 탐착하는 사람을 위해서 말할 때이다.
만약 보살이 보살법장을 읽지도 않고 염송하지도 않고 오로지 성문경율만 독송하면 죄를 얻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보살장(菩薩藏)이 있음을 들은 적이 없어 알지 못할 때이다.
만약 보살이 여래정경(如來正經)을 읽지도 염송하지도 않고서 세속의 전(典)ㆍ문(文)ㆍ송(頌)ㆍ서(書)ㆍ소(疎)를 독송하면 죄를 얻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삿된 견해를 깨뜨리기 위한 경우나, 3분의 2는 불경을 읽고 3분의 1은 외서(外書)를 읽을 경우이니, 왜냐하면 외전은 곧 허망한 법이고 불법은 진실한 법인 것을 알기 위해서이며, 세속의 일을 알기 위해서이며 세상 사람의 경멸을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만약 보살이 보살장과 성문장에 불가사의한 일이 있는 것을 듣고는, 믿지 않고 받아 지니지 않으며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 아니라고 말하여, 스스로 비방하거나, 남이 비방하는 것을 시인하거나 하면 죄를 얻는다.
만약 보살이 말하기를 “나의 지혜의 힘이 약하고 육안(肉眼)이 깨끗하지 못하여 여래의 깊고 깊은 경계를 보지 못한다. 여래의 경계는 부처님 눈으로 보는 것이라, 오직 부처님만이 모든 법계를 능히 아실 수 있으니 내가 미칠 바가 아니다”라고 한다면, 이와 같이 사유하고 관할 수 있는 이는 실행보살(實行菩薩)이라고 하며 확실히 알거나 알지 못하거나 두 경우가 범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보살이 교만한 마음으로 성내어 스스로 말하기를 “지계(持戒)와 다문(多聞)과 지혜가 모두 너보다 뛰어나다”고 하면 죄를 얻나니 이 죄는 번뇌로 인하여 범한다. 범함이 아닌 것은 삿된 견해를 깨뜨리기 위한 때나 불법을 경멸하는 사람을 물리치기 위한 때나, 저 사람의 스스로 잘난 체하는 마음을 굴복시키기 위한 때나, 이미 믿음이 생긴 사람에게 믿음을 증장시키도록 하기 위한 때이다.
만약 보살이 어디서 설법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일유순(一由旬)에 이르더라도 가서 듣지 않으면 죄를 얻는다. 만약 설법을 가벼이 여겨 가지 않으면 죄를 얻으니, 이죄는 번뇌로 인하여 범한다. 만약 게을러 가지 않으면 실의죄를 얻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하였을 때나, 병이 났을 때나 병이 처음 차도가 있으나 기력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을 때나, 설법하는 사람이 헷갈리고 뒤바뀌어 정법이 아닌 것을 설하는 줄 알고 설법하는 사람이 부끄러운 마음을 일으킬까 염려할 경우와, 한 법[一法]이어서 다시 다른 뜻이 없는 법을 설할 때와 선법(善法)을 닦을 때나, 중생을 교화할 때나, 저 사람이 설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나, 능히 억념(憶念)할 수 없을 때이다.
만약 보살이 설법하는 이를 가볍게 여겨 공경심을 내지 않고 그 덕을 찬탄하지 않고 설법한 것을 비웃어 말의 뜻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죄를 얻는다.
보살이 만약 보살계를 받고 나서 중생들이 하는 일을 더불어 함께 하지 않으면 죄를 얻는다. 이른바 가고 오고 들고 남[去來入出]에 재물을 지키고, 싸우는 이들을 화합시키고, 모든 선한 일 즉 지계와 보시와 다문을 함께 하지 않으면 죄를 얻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병이 났을 때나, 일을 하는지 몰랐을 때나, 큰 일을 스스로 하고 있을 때나, 다른 사람을 돕겠다고 이미 허락했을 때나, 스스로 선법을 닦을 때나, 여러 사람이 성낼까봐 염려스러울 때나, 기쁠 때나, 어리석거나 미쳤을 때나, 함께하지 않음으로써 능히 저 사람을 조복시킬 수 있을 줄을 알 때와 승가의 제도를 보호하기 위한 경우이다.
보살이 만약 설법하는 사람을 가벼이 여겨 욕하고 때리며, 말하는 것을 비웃고, 단지 글자에만 의거하고 뜻에 의거하지 않으면 죄를 얻나니, 이 죄는 번뇌를 인하여 범하게 되는 것이다.
보살이 만약 보살계를 받고 나서 중생의 마음을 능히 따를 수 없으면 죄를 얻는다. 이른바 행주좌와에 모든 선한 일을 닦아야 할 것이니, 보살이 만약 보살계를 받고 나서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보고 능히 간호하고 돌보아 주지 못하면 죄를 얻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만약 스스로 병이 났을 때나, 일할 힘이 없어 힘 있는 다른 사람에게 권화(勸化)할 경우나, 저 병자에게 친척이 많을 경우나, 스스로 급히 위없는 선법을 닦을 때나, 이미 다른 사람의 병을 간호하고 있을 때나, 근기가 암둔한 경우이다. 병이 나서 빈궁하여 곤란을 겪고 있는 경우도 이와 같다.
보살이 만약 보살계를 받고 나서 악한 중생이 악법을 수행하는 것을 보고도, 가르치고 꾸짖어 그를 권면하지 않으면 실의죄를 얻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이 사람에게 선지식이 있어 꾸짖어 가르칠 수 있을 줄 아는 때나 설하여도 그 말을 따르지 않을 줄 알 때나, 그릇된 견해로 말을 할 때나, 해치려는 마음을 가졌을 때이다.
보살이 만약 보살계를 받고 나서 축척한 물건을 세속인과 함께 쓰면 실의죄를 얻는다.
보살이 만약 보살계를 받고 나면, 금은으로 만든 그릇으로 음식을 받아먹으면 안 되고, 비축한 동기(銅器)를 저 세속 사람과 함께 사용할 수 없다. 나무그릇이나 뿔로 만든 그릇의 사용도 모두 허락하지 않는다. 사용하면 죄를 얻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본래 가지고 있던 그릇을 잃어버렸을 때나, 길에서 청할 때나 중한 병이 걸렀을 때이다.
보살이 만약 보살계를 받고 나서 은혜를 받고 잊어버리면 죄를 얻는다. 이 죄는 번뇌로 인해서 범한다.
보살이 만약 보살계를 받고 나서 남의 은혜를 입고 능히 보답하지 못하면 죄를 얻는다. 보답한다는 것을 지계(持戒)하고 정진하고 좌선하고 경전을 독송하고 시주의 마음에 기뻐하는 일을 따르는 것이니, 이와 같이 보답한다. 범함이 아닌 것은 시주가 받지 않을 때이다.
보살이 만약 보살계를 받고 나서 고통받는 사람, 즉 죽게 되거나 물건을 잃어버렸거나 왕난(王亂)이나 도적의 난을 만났거나 수해(水害)를 만났거나 친속과 이별한 사람을 보면, 마땅히 그곳에 가서 설법하고 위로하여 편의에 따라 힘이 닿는대로 베풀어주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를 범한다. 범함이 아닌 것은 마음대로 갈수 없을 때나, 자신이 중병에 걸렀을 때나,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나, 난이 일어날 것 같을 때나 왕이 저 사람에게 진노하였을 때나, 승가의 제도를 보호하기 위한 때에다.
보살이 만약 보살계를 받고 나서 제자를 기르면서, 여러 믿음이 깊은 단월에게서 능히 필요한 의복과 음식과 와구와 의약과 방사(房舍) 등을 구하여, 수시로 공급하여 줄 수 없거나, 수시로 설법하지 않거나 하면 죄를 얻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제자에게 큰 세력이 있는 총명하고 복덕이 많은 단월들이 많이 있는 줄 알 때나, 의도가 거짓으로 와서 법을 훔칠 때나, 불법을 증장시킬 수 없는 줄 알 때이다.
보살이 보살계를 받고 나서는 항상 다른 사람의 착한 일을 찬탄하여야 할 것이니,만약 다른 사람의 덕을 숨기면 죄를 얻는다. 이 죄는 번뇌로 인해서 범하게 되는 것이다. 범함이 아닌 것은 저 사람이 숨겼을 때나, 산란하고 둔하여 알지 못했을 때나, 깊은 병이 들었을 때나, 다른 사람이 혐오할까봐 염려될 때나, 암라과(菴羅果)처럼 확실히 알기가 어려울 때이다.
보살이 만약 보살계를 받고 나서 앉는 걸상이 8지(指)를 넘으면 죄를 얻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설법할 때나, 믿음이 깊은 단월의 청을 받았을 때나, 외도의 사당에 가서 그 안에 앉을 때이다.
보살이 만약 보살계를 받고 나서 제자에게 마땅히 성을 내야 할 때 성을 내지 않고, 꾸짖어야 할 때 꾸짖지 않고, 벌을 주어야 할 때 벌을 주지 않고, 쫓아내야 할 때 쫓아내지 않으면 죄를 얻는다. 이 죄는 번뇌로 인해서 범한다. 성을 내지 않아야 할 때 성을 내고, 꾸짖지 말아야 할 때 꾸짖고, 벌을 주지 않아야 할 때 벌을 주고, 쫓아내지 않아야 할 때 쫓아내어도 죄를 얻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제자가 탑사를 태우거나 또는 스승이나 화상이나 동사(同師)나 동화상(同和尙)이나 부모를 죽이는 것 같은 매우 악한 일을 저지를 수 있을 줄 알 때나, 시기를 기다릴 때나, 이 인연으로 여러 승가를 파괴시키게 될 줄을 확실히 알 때나, 뒷날에 스스로 참괴하는 마음을 내게 될 줄을 알 때이다.
보살이 만약 보살계를 받고 나서 대신족통(大神足通)을 얻어 두려워해야 할 사람도 두려워하게 하지 못하고, 믿음을 내야 할 사람도 믿음을 내게 하지 못하면 죄를 얻는다. 범함이 아닌 것은 모두 삿되고 전도된 견해를 믿고 불법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때이다.
보살이 만약 보살계를 받고 나면 항상 지극한 마음으로 범하려는 생각을 내지 않도록 염하되, 만약 범하였으면, 곧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고 참회하여야 한다. 이른바 대승이나 소승인 중에서 뜻을 능히 잘 알아서 널리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하여야 하나니, 이를 보살일체계(菩薩一切戒)라고 한다. 보살의 초지(初地)에서 육바라밀 내지 모든 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보살의 금계(禁戒)를 잘 알고 있으면, 이를 일러 일체계라고 한다. 여래께서 먼저 성문경(聲聞經) 가운데에서 미처 설하지 못하신 것을 지금 보살장마이(菩薩藏摩夷) 중에서 설하신 것이니, 어찌하여 이름을 일체계라고 하였는가. 출가한 사람의 계율과 세속 사람의 계율을 모두 합하여 설하셨기 때문이다.
이 일체계에는 세 가지 난계(難戒)가 있다. 첫째는 보살이 매우 자재로와서 재물과 부귀가 무량하나 모두 능히 버리고 보살계를 받는 것이니 이를 일러 난계라 한다. 둘째는 보살이 위급할 때에도 계에 조금의 어긋남도 없게 하나니 하물며 허물고 깨뜨리겠는가. 이를 일러 난계라고 한다. 셋째는 보살이 비록 중생을 따라 행주좌와를 하지만 항상 계를 굳게 지켜, 허물고 범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를 일러 난계라고 한다.
일체자계(一切自戒)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수(受)이고 둘째는 성(性)이고, 셋째는 수(修)이고, 넷째는 방편(方便)이다. 수(受)란 3갈마(羯磨)를 말한다. 성(性)이란 성과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니, 보살마하살은 성(性)이 부드러운 까닭에 몸과 입과 뜻의 업이 항상 선하다. 수(修)란 무량한 부처님에 대해서 모든 보살이 닦는 것이다. 방편이란, 모든 보살이 사섭법(四攝法)으로 중생을 거두어 몸과 입과 뜻을 선하게 닦아 모으게 하니, 이것을 일체자계라고 한다.
선인계(善人戒)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금계(禁戒)를 스스로 받아 지니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을 가르쳐 받아 지니게 하는 것이고, 셋째는 계를 찬양하는 것이고, 넷째는 즐겨 받아 지니는 사람을 보면 기뻐하며 찬탄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범하고 나면 후회하는 마음이 그치지 않는 것이니, 이를 선인계라고 한다.
일체행계(一切行戒)에는 열세 가지가 있다. 회향하여 열반할 것을 발원하는 것이고, 둘째는 광대한 것이고, 셋째는 청정한 것이고, 넷째는 환희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깨뜨리지 않는 것이고, 여섯째는 매이지 않는 것이고, 일곱째는 견고한 것이고, 여덟째는 영락(瓔珞)이고, 아홉째는 진실한 것이고, 열째는 의로운 것이고, 열한째는 믿는 것이고 열두째는 보물이고, 열셋째는 항상 함이니 성문지(聲聞地)의 성문금계(聲聞禁戒)와 같은 것이다. 모든 선법(善法)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인(因)이 되니 이를 일러 일체행계라고 한다.
제계(除戒)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 보살은 항상 이와 같이 생각하여야 한다. ‘내가 죽음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같이 모든 중생도 역시 그러할 것이니, 그러므로 중생의 목숨을 죽여서는 안 된다. 내가 도둑질하고 음행하고 악한 말을 하고 거짓말과 이간질과 신의가 없는 말을 하고 몽둥이와 돌로 때리고 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같이 중생도 또한 그러할 것이니, 도적질과 음행과 악한 말과 거짓말과 이간질과 신의가 없는 말과 몽둥이와 돌로 때리고 욕하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제계(除戒)라고 하니, 보살은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끝내 이와 같은 여덟 가지 계는 무너뜨리지 않는다.
자리이타계(自利利他界)란, 보살이 계를 닫아야 할 곳에서는 닫고, 열어야 할 곳에서는 여는 것이니, 닫아야 할 곳에서 닫지 않고 열어야 할 곳에서 열지 않으면 죄를 얻는다. 보살이 모든 중생을 거두어 들일만 하면 거두고 버려야 할 것 같으면 버릴 줄을 알고, 몸과 입으로 계를 지켜 항상 단바라밀행(檀波羅蜜行)을 함께하고 반야바라밀행에 이르기까지 함께하여, 이와 같이 계를 지켜 자기를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이니, 이를 자리이타계라고 한다.
적정계(寂靜戒)란, 처음 계를 받았을 때부터 지극한 마음으로 굳게 받아 지니는 것이다. 사문과(沙門果)를 얻기 위해서이며, 보살과를 얻기 위해서이고, 신명(身命)을 위해서가 아니니, 이를 적정계라고 한다. 보살이 앉아 있다가 왕이나 장자(長者)를 보고 일어나면 죄를 얻으니, 만약 먼저 결가부좌를 하고 앉았다가 왕이나 장자를 보고서 무릎을 꿇고 앉으면 죄를 얻고, 먼저 옷을 단정히 하지 않고 있다가 왕이나 장자를 보고 용모를 단정히 하고 옷매무새를 고치면 죄를 얻으며, 왕이나 장자가 악한 말을 할 때 그 비위를 맞추어 칭찬하면 죄를 얻는다. 의심하지 않아야 할 때 억지로 의심을 하면 죄를 얻고, 마땅히 의심해야 할 때 의심하지 않아도 죄를 얻는다.
보살계란, 초저녁부터 아침까지 누워 잠자지 아니하고, 착한 바람과 착한 행과 착한 법을 두루 갖추고 중용(中用)을 능히 감당해내며, 정명(正命)을 성취하고,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멀리 여의어서 중도를 온전히 행하며, 오욕락을 떠나서 위없고 비길 데 없으며 삿된 견해를 멀리 떠나 깨지지 않고 허물어지지 않으니, 이것을 적정계 등의 보살계들이 성취하여 갖춘 한량없는 묘한 과덕이라고 한다.
이 계들의 인연으로 시바라밀(尸波羅蜜)을 구족한다. 받는 사람은 비록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아직 얻지는 못하더라도 다섯 가지 공덕을 이미 두루 갖추게 되니, 첫째는 항상 모든 불보살님의 기억하시는 바가 되는 것이고, 둘째는 상정락(常淨樂)을 받는 것이고, 셋째는 죽음에 임하여 후회가 없는 것이고, 넷째는 몸을 버리면 모든 부처님 세계에 태어나게 되는 것이고, 다섯째는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장엄하는 것이니 보살계를 받아 지니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오직 남을 위해서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장엄하기 위해서이다.
이 보살계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항하사와 같은 모든 불보살님께서 성취하신 것이며 나아가서 시방의 모든 불보살님에 이르기까지도 이와 같이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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