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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609 보살본연경(菩薩本緣經) 상권

by Kay/케이 2024.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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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보살본연경(菩薩本緣經) 상권

 

보살본연경(菩薩本緣經) 상권
승가사나(僧伽斯那) 지음
오(吳) 월지(月支) 우바새(優婆塞) 지겸(支謙) 한역
1. 비라마품(毘羅摩品)
만약 마음이 좁고 용렬하다면
비록 보시를 많이 하더라도
받는 자가 청정하지 못하게 되니
그러므로 과보가 적게 되는 것일세.
만약 보시를 할 때
복전이 비록 청정하지 못하더라도
능히 넓고 큰 마음을 내면
과보가 헤아릴 수 없는 것일세.
내가 예전에 들었다.과거에 지자재(地自在)라 이름하는 왕이 있었다. 그는 성품이 포악해서 정벌(征伐)하기를 좋아하니, 그때 있던 작은 나라 8만의 모든 왕들이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항상 와서 조공을 바쳤다.
그 왕은 입이 사납고 몸으로는 착하지 않은 짓을 하고 항상 그릇된 방법으로 남의 영역을 침범하였다. 왕을 보좌하는 정승은 큰 바라문으로서 청정한 행을 닦아 지혜로운 사람이라 칭찬 받았다.
입으로는 부드러운 말만 하고 거친 소리를 하지 않았으며,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능히 신속히 처리하였고, 면목(面目)이 단정하고 엄숙하여 세상의 존경을 받았다. 4비타(毘陀)의 전적을 익히지 않은 것이 없었고 모든 바라문들의 경론(經論)을 모두 통달하여 알았다.이때 정승이 이미 노쇠하여서 병든 지 오래지 않아 문득 세상을 떠나니, 왕과 백성들이 그의 죽음을 듣고 모두 슬퍼하면서 사모의 정을 참기 어려워하였다. 왕이 잠시 생각하다가 곧 백성과 신하들을 위하여서 게송을 말하였다.
어찌하리오. 이 대지에
갑자기 다스리던 사람이 가셨으니,
마치 바다에 임자 없는 배가
바람 따라 이리저리 떠도는 것 같네.
내가 존경하던 분은
출가를 이미 성취하였고,
입으로 하는 말은 착하고 부드러워
언제나 세상을 이롭게 하였네.
어찌하리오. 갑자기 가셨으니
내 마음은 괴롭기만 하여서,
마치 등불 없이
암실에 들어가는 것 같네.
그때 모든 신하들이 곧 임금에게 말하였다.
“부디 대왕께서는 마음을 진정하시고 근심하지 마십시오. 이 나라 안에는 다시 정승을 맡길 만한 자가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이제 큰 바라문은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 아들이 있습니다.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풍채가 단정하여서 세상에 따를 자가 없습니다. 말은 부드럽고 온순하여서 듣는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인욕(忍辱)을 닦고 행해서 마음이 언제나 적정하며, 교만하게 자신을 높이는 일이 없습니다.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서 모르는 글이 없으며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마치 범왕(梵王)과 같습니다. 이름은 비라마(毘羅摩)라고 합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곧 이 사람에게 명하여서 정승[輔相]으로 삼으소서.”이때 왕이 대답하였다.
“그분에게 그러한 아들이 있었다면 내가 어찌하여 일찍이 듣지 못하였단 말인가.”신하가 또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이 바라문의 아들이 항상 바른 법을 구하고 삿된 법을 여의었으나, 아직 법을 지키고 남을 위하지는 못합니다.”왕이 대답하였다.
“그 아들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 어찌 선친의 가법(家法)을 어기고 훼손하겠느냐. 만약 선친의 업을 어긴다면 바른 법을 구하는 자라고 할 수 없으리라. 이 사람의 아버지는 항상 바른 법으로써 나를 도와서 나라를 다스렸고 우리들로 하여금 모든 악을 멀리 여의게 하였으며, 비록 이와 같이 나라를 다스리고 일을 처리하였으나 끝까지 바라문의 법을 잃지 않았다. 만약 그 사람이 그대의 말과 같다면 어디 한번 불러와 보라.”신하들이 명령을 받들고 곧 사자를 보내어서 비라마를 데려왔다. 왕의 처소에 이르러서 왕을 뵙고 말하였다.
“대왕님께서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왕이 대답하였다.
“그대도 알지 않는가? 내가 박복하여서 정승이었던 너의 아버지가 불행하게도 돌아가셔서 대지도 기울고 백성들이 요동하는지라, 내가 근심이 되어서 마음이 괴롭다.”그때 비라마가 왕에게 여쭈었다.
“무릇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고 여의는 것은 대왕님만 혼자 당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유위법(有爲法)의 모양입니다. 대왕님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라ㆍ건달바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사문ㆍ바라문ㆍ늙은이ㆍ젊은이를 막론하고 아무도 이 죽음을 여읜 자는 없으니 대왕이시여, 일체 중생에게 이것은 결정되어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불의 성질이 능히 모든 물건을 태우는 것처럼, 항상함이 없는 법도 이와 같아서 일체 중생들을 모두 파괴하는 것입니다.
대왕님께서는 모르십니까? 이 늙음ㆍ병듦ㆍ죽음이 능히 중생을 상하게 하는 것은 마치 저 네거리에 있는 꽃 나무나 과실 나무를 여러 사람들이 흔들고 꺾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시여, 급한 물은 잠시도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중생들의 수명도 이와 같습니다.대왕이시여, 마치 금시조(金翅鳥)가 용궁에 들어가서 모든 용들을 잡아먹는 것처럼, 또 사자가 노루나 사슴의 떼 속에서 맹위를 떨치는 것처럼, 일체 중생들이 삼계에서 유전하는 동안 죽음이란 것에서 벗어나지 못함도 이와 같습니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은 죽음의 법은 재물로 친근히 함으로써 구하거나 부드럽게 달래는 말로 아첨해도 벗어날 수 없으며, 또한 4병(兵)의 위력으로도 막아내지 못하는 것이며, 이와 같은 죽음의 법은 결정되어 있는 중생의 변치 않는 법이니, 그러므로 대왕님께서는 슬퍼하지 마십시오.”그때 왕이 듣고는 마음이 기뻐서 신하들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일찍이 없던 일이다. 이렇게 동자가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경험 많은 어른들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을 처음 본다.”
곧 왕이 비라마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모르는가, 그대의 선친께서 나를 애호하기를 어린아이처럼 했다. 그러므로 내가 그 은혜의 두터움을 느끼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가볍고 약하며 완고하고 어두워서 아는 것이 없으며, 그대 말대로 나는 오래 살았을 뿐 이렇다 할 것이 없다.
그대가 이제 만약 나를 돌아보고 불쌍히 여기거든 선친의 뒤를 이어 가업을 계속하기 바라노라. 내가 마땅히 성심껏 죽을 때까지 의지하리라.”그때 비라마가 생각하였다.
‘내가 이제 갑자기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지금 이 말을 듣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치 허약한 사람이 높은 산에 오르는 것 같구나.’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제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국정을 돕는다면 모든 백성에게는 비록 많은 이익이 있겠지만 내가 닦는 바 순수하고 선한 법에는 손해가 된다.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려면 만백성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데, 마땅히 한량없는 잘못과 걱정되는 일이 있으니, 이를테면 벌을 주거나 남의 재물을 빼앗으며, 위세가 천하를 덮어서 혹은 물리치거나 혹은 몰아내고 하는 것이다. 왕을 따라서 이러한 법을 행하면 바른 법을 행하는 것 같으되 나의 선은 줄어든다.
이제 내가 전처럼 선한 법을 수행하면 곧 위로 대왕의 마음을 맞추지 않는 것이 되고, 만약 왕의 법을 맞추면 선한 법이 날로 쇠퇴할 것이다.’이렇게 생각할 때 왕이 또 말하였다.
“대사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그때 비라마가 곧 왕에게 대답하였다.
“제가 생각하는 바는 마땅히 어떠한 방법으로써 대왕의 몸과 나라의 백성들이 모두 이익을 얻어서, 모든 쇠퇴와 소모가 없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임금과 국민들의 복덕과 과오를 생각하매, 만약 먼저는 선을 행하다가 뒤에는 악을 행한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차라리 진실한 말을 하여서 원수를 살지언정 아첨하는 말로써 친하지 말 것이며, 바른 법을 설하고서 지옥에 떨어질지언정 그릇되고 아첨하는 말을 해서 천상에 나지는 않아야 할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저는 지금 이러한 일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대왕이시여, 만약 누구든지 능히 이러한 뜻을 생각하게 된다면 필경 이 사람은 능히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할 것입니다.”왕이 이 말을 듣고 환희심을 내면서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대사여, 우리가 만약 능히 이렇게 법을 행한다면 닦은 선한 법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오.”그때 비라마가 곧 왕명을 받들고 선친의 뒤를 이어 정승이 된 뒤에, 점차로 권하고 교화해서 왕과 8만 4천의 소왕(小王)들이 바른 법을 닦아 지니었고, 또한 그 나라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악을 멀리 여의고 5욕을 탐하지 않게 하였다.
그때 왕은 한량없는 선법(善法)을 닦아서 비라마와 다름이 없었다. 비라마가 왕의 이러함을 보고 환희심이 나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그 동안 나라를 다스렸으나 내가 닦는 선한 법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구나.’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마땅히 어떠한 인연으로써 모든 중생들에게 권하여서 모두 편안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에 머물게 할 것인가. 그러나 모든 중생들이 받은 성품이 같지 않아서 혹은 법을 들으려 하고, 혹은 재물을 탐하며, 혹은 5욕을 즐기고, 혹은 사랑스런 말을 좋아하며, 혹 떠들기를 좋아하여 많은 사람들과 친하고, 혹 착한 사람의 행을 따르기를 좋아하며, 혹은 많은 애욕을 탐하여 마음에 싫증내지 않는데, 나에게 다행히 큰 지혜의 방편이 있어서 일체 중생을 다 능히 포섭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편안히 머물게 하였다. 나에게 또한 다른 방편이 있다. 비유하면 마치 해가 떠서 비록 온 천하를 다 비추지만 눈먼 자를 위하여는 밝음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역시 이와 같아서 비록 능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서 위없는 도를 설하였으나 능히 지혜의 눈이 없는 자를 이롭게 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제 다시 의복과 음식을 넉넉하게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실컷 배가 불러서 기뻐하게 한 후에 다시 법을 설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믿어 받아들이도록 하리라.’비라마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왕의 처소에 이르러서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이미 한량없는 중생을 위하여 법을 짓는 일을 마쳤으니 3법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이른바 바른 법을 닦는 것이며, 돈과 재물을 모아서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며, 일체 국토를 안락하게 하여 원수가 없도록 하는 것이니, 바른 법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 마치 초승달과 같아서 좋은 이름이 8방(方)ㆍ상하에 퍼질 것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제가 위없이 바른 법을 수행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그때 대왕은 이 말을 듣고는 마음이 놀랍고 기뻐서 털이 곤두섰다. 왕이 말하였다.
“대사여, 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말하시오.”비라마가 말하였다.
“제가 이제 크게 보시를 하고자 하니 보시에 필요한 것을 저에게 갖추어 주십시오. 그때 대왕께서는 곧 성 밖에 편안하고 넓은 곳을 보시할 장소로 꾸미시되, 대왕께서 착한 말로 타이르고 깨우쳐 주셔서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저에게 성내거나 원망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때 대왕과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음식과 필요한 것을 장만하여 놓았다. 곧 여러 곳에 북을 쳐서 알렸다.
‘만약 의복이나 음식이나 와구(臥具)ㆍ의약ㆍ코끼리ㆍ말ㆍ수레ㆍ향ㆍ꽃ㆍ영락ㆍ가루향ㆍ바르는 향ㆍ집ㆍ등불 따위가 필요한 중생들은 다 모여라. 마땅히 모두에게 공급하리라.’다시 게송을 설하였다.
내가 모든 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모든 중생을 따라서 필요한 걸 대어 주리.
심지어 몸뚱이와 손과 발, 피와 살을
버리어 여읠 때도 초개처럼 하겠네.
그대들이 만약에 이 공양을 받을 때면
마땅히 한 마음으로 착한 법을 사유하라.
공양을 받고 나서 탐욕ㆍ애착하지 말고
마땅히 착한 법으로 일체를 이롭게 하라.
내 힘으로 빨리 열반에 들 수 있지만
중생을 위하자니 생사에 유전한다.
그러므로 오래 머물러 열반을 취하지 않고
한량없는 중생들을 늙고 죽는 감옥에서
내가 빼내어서 영원히 여의게 하려네.
그때 비라마보살마하살은 베푼 공양구(供養具)로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들이 뜻에 따라서 필요한 것을 모두 충족하게 얻도록 하고, 훌륭한 말로 법을 설하였다.
“모든 대덕들이여, 내가 이제 내 몸을 잊고 그대들의 몸을 근심하였다. 그대들이 이제 나의 공양을 받았으니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마땅히 바른 법을 관하라. 만약 죽을 때가 이르게 되면 비록 부모와 처자와 친족과 한량없는 재보가 있더라도 목숨을 한 생각 동안도 머물게 하지 못하며, 그 목숨이 다하면 혼자 다른 세상에 가건만 부모ㆍ처자ㆍ친족ㆍ재보도 따라가지 못하고 오직 업(業)만이 떨어지지 않고 따라가느니라.”다시 대중을 위하여서 게송을 설하였다.
부모와 친족을 위하여
나쁜 짓을 하다가,
죽어서 3취(趣)에 떨어질 때
따라올 자 아무도 없네.
지금 이 현세(現世)에서도
괴로움을 받게 될 때엔
비록 부모나 형이 있어도
조금도 나눠 받지 못하는 것을,
하물며 미래의 세상에서
마땅히 대신할 자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한 마음으로
저 나쁜 짓 하지를 말라.
“모든 대덕들이여, 그대들은 이제 몸이 편안하여 우환이 없으니, 이른바 쇠약하고 늙고, 폐병을 앓고 기침하고 머리 아픈 이러한 병이 없으니 마땅히 부지런히 일체의 선한 법을 닦으라.”
이 비라마보살마하살이 두 가지 방법으로써 중생을 포섭하였으니 이른바 재물과 법이었다. 여름 90일이 차서 안거가 지나매 보시할 물건을 원하는 대로 받드니, 이른바 금 쟁반[金盤]이8만 개인데 거기에는 은싸라기를 채웠고, 은 쟁반이 8만 개인데 거기에는 금싸라기를 채웠으며, 8만 마리의 작은 소와 8만 마리의 젖소에는 모두 송아지가 한 마리씩 따랐고, 이 젖소 한 마리에서는 젖이 한 섬씩이나 나오는데, 순백색 털로써 그 몸뚱이를 싸고 뿔은 금으로 발굽은 은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8만 명의 동녀는 형체가 단정하며 금과 보배 영락으로써 스스로 장엄하였고, 한 여인마다 한 사람씩 시녀가 있어 받들어서 모두 정결하게 하였다. 이 모든 여인들에게 각각 한 개의 침상이 있는데, 혹은 금으로 혹은 은ㆍ유리ㆍ파리ㆍ상아ㆍ향목으로 되었고, 갖가지 요를 그 위에 깔았다.
우거(牛車)가 8만이고, 코끼리와 말이 8만씩이며, 또 모든 창고에 돈과 재물과 여러 가지 진귀한 보배가 헤아릴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물건으로 빠짐없이 장엄하고서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이 보시할 물건이 적지는 않을까?’그때 보살이 바라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내가 이제 이와 같은 갖가지 금ㆍ은ㆍ여인ㆍ수레ㆍ코끼리ㆍ말ㆍ창고에 가득한 곡식과 진귀한 보배들을 모아 놓았으니, 잠깐 동안 말없이 조용히 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 주기 바라노라. 그런 뒤에 뜻에 따라서 함께 나누도록 하라.”
그때 모든 바라문들이 고요한 채 소리가 없었다.이때에 보살이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서 그 마음을 스스로 간(諫)하였다.
‘네 마음의 짓는 바에 항상 과보를 구할지니, 마치 원숭이가 깊은 숲 속에 들어간 것 같다.’
그리고는 게송을 설하였다.
내가 이제 보시하는 바는
널리 모든 중생들을 위한 것이니
이렇게 보시하는 것이
실로 그 과보를 바람이 아니로다.
모두 중생에게 베풀어서
같이 쾌락을 받게 하고 싶으나,
네가 선함을 탐착하기 때문에
오래 천상에 있게 되는 것이며
또한 악함을 탐착하기 때문에
오래 지옥에 머무는 것이며,
다시 탐하고 애착하기 때문에
이 큰 보시를 하게 된 것이로다.
혹은 빈궁한 사람이 되고,
혹은 큰 보시를 하고,
어느 때는 마음대로 하여
재물을 지키되 인색하고 탐하며,
혹은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스스로 가난한 고통을 받고,
혹은 또 방종과 안일 때문에
오래 생사에 있게 된 것이로다.
윤회 전생함이 끝이 없어서
바퀴가 땅 위에서 도는 것과 같은데,
내가 오래고 먼 옛날로부터
수순과 공경으로 너를 섬겼나니
비록 이런 일을 하였으나
능히 너를 기쁘게는 못하였노라.
너는 이제 마땅히 편안히 있어
적정한 가운데서 움직이지 말라.
내가 이제 보시하는 바는
모두 중생들을 위함이로다.
그때 비라마보살이 곧 오른손으로 조관(澡灌)을 잡고, 대자비로써 그 마음을 훈습하여 닦아서 일체 중생을 가엾게 여기는 까닭에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이제 보시하는 것은 범천의 왕ㆍ마혜수라(摩醯首羅)천왕ㆍ석제환인(釋提桓因)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며, 설사 이 세 가지보다도 더 나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희구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불도(佛道)를 구하여서 중생을 이롭게 하여 모든 번뇌를 끊으려 하는 것이다.
내가 이제 마땅히 내 몸뚱이ㆍ처자ㆍ노비ㆍ진귀한 보배ㆍ사택도 버려서 오직 해탈을 구하는 것이요, 생사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제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여인을 보시하는 것은 모든 중생이 미래세에서 탐욕을 모두 끊기를 원해서이며, 내가 이제 베푸는 바 다섯 가지 우유의 맛은 모든 중생들이 미래세에서 항상 능히 다른 사람에게 법미(法味)를 베풀기를 원해서이며, 내가 이제 베푸는 이와 같은 깔 것[敷具]은 모든 중생이 미래세에서 다 여래의 금강좌에 처하기를 원해서이며, 내가 이제 베푸는 갖가지 진귀한 보배는 모든 중생이 미래세에서 모두 여래의 7보리(菩提)의 보배를 얻기를 원해서이다.’
이렇게 말하고는 윗자리에서부터 씻을 물을 돌리는데 물이 내려가지 않으니, 마치 그것은 인색한 사람이 보시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그때 보살이 곧 생각하였다.
‘이제 이 물이 어째서 내려가지 않는가?’
또 생각하였다.
‘장차 내가 원하는 것을 미래세에도 이루지 못할 징조인가, 누가 물을 못 내려가게 막는 것인가, 이 가운데에 대덕이 없어서 그 나머지는 나의 공양을 받을 만하지 못한 것인가, 혹시 나의 보시가 널리 두루하지 못하는 것인가, 혹은 내가 부리는 사람이 기뻐하지 않는 것인가, 이 가운데에 살생이 있는 것인가?
나는 이제 결정코 중생을 괴롭히지 않음을 알고 있으며, 내가 이제 보시하는 것은 또한 제때에 베푸는 것이며, 또한 받는 자의 옳고 그름을 보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이 세숫대야의 물이 내려가지 않는가?’그때 보살이 바라문을 보니 이 모든 여자들에게 탐욕과 질투심을 내어서 각기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
“저 여자는 단정하니 응당 내가 취할 것이요, 네가 취할 것이 아니다.”
“저 소는 살찌고 튼튼하니 내가 응당 취할 것이요, 너는 취할 것이 아니다.”
금ㆍ은 쟁반의 금ㆍ은 싸라기를 보고도, 나아가 진귀한 보배에 대하여도 역시 이 모양이었다.그때 보살은 모든 바라문들이 탐심으로 물건을 다투어서 서로 성내는 것을 보고 곧 이렇게 말하였다.
“이 모든 받을 자들이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으로 마음을 어지럽혀서 능히 받지 못하는 것이로구나. 이러한 공양은, 마치 수레의 축이 부러지고 바퀴가 파괴되어서 싣고 운반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이와 같아서 종자는 좋은데 밭이 척박하고 나쁘구나. 이 받는 자의 마음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이 세숫대야의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구나.
내가 이제 비록 이와 같이 보시하지만 나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도록 하는 사람이 없구나. 그러나 내가 스스로 일체 중생을 위해서 이러한 마음을 낸 것이니 이제 마땅히 스스로 시험해 보리라. 내가 만약 진실로 중생을 가엾게 여긴다면 물이 마땅히 내려올 것이다.”
곧 왼손으로 세숫대야를 들고 부으니 물이 곧 보살의 오른손으로 흘러 내렸다.바라문이 이것을 보고는 각기 참괴심이 생기어 베푸는 물건을 떠나서 청정한 행을 닦기로 하고 모두 함께 머리를 조아리면서 보살에게 스승이 되어 달라고 청하였다.
보살이 가엾게 여기어 그 뜻을 받아들이고 가르쳐서 4무량심(無量心)을 수학하게 하였다. 이렇게 한 인연으로 목숨을 마치자 곧 범천(梵天)에 태어났으며 한량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게 하였다.
보살마하살이 단(檀)바라밀을 행할 때, 이것은 복밭이니 이것은 복밭이 아니니 하는 것을 보지 않았고, 또 친하고 친하지 않음을 분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보살이 만약 보시할 때에 많거나 적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간에 응당 일심으로 청정하게 받들어 올려서 받는 자에게 하열(下劣)하다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한다.
2. 일체시품(一切施品)
모든 보살들께서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자기의 신명(身命) 버리기를
초개(草芥)와 분뇨(糞尿)같이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내가 일찍이 들었다.과거에 일체시(一切施)라 하는 왕이 있었다. 이 왕이 처음 태어나자마자 곧 부모를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한량없는 중생들을 위하여 소중한 신명도 버릴 수 있는데, 하물며 그 나머지 물건이나 진귀한 보배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부모님께서는 존경하고 귀중히 여기시어 이름을 지으시되 일체시라 해주십시오.”
그가 처음 나면서부터 몸으로 보시하는 것이 점점 늘어서 마치 초승달이 보름달로 되어가듯 하였다.
그 뒤에 오래지 않아서 부왕이 돌아가시자 곧 큰 업을 계승하여 나라를 다스리되 법대로 백성을 교화하여 모든 사람을 괴롭히지 않았으며, 스스로 몸을 지키고 다른 일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다른 이웃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고, 이웃 나라에서 만약 쳐들어오면 이를 토벌하여 사로잡았다.
빈민을 구호하여 재물을 베풀어 주었고 사문과 바라문들을 공경하였다.
항상 청정한 손으로써 중생에게 먹을 것을 주었으며, 입으로는 늘 ‘이 사람에게 옷을 주어라’, ‘이 사람에게 밥을 주어라’, ‘재물을 주어라’, ‘이 사람을 사랑하여 보호하라’, ‘이 사람을 보아라’ 라고 말하였다.그때 보살이 항상 이와 같이 착한 보시를 행하니, 이웃 나라 백성들이 왕의 공덕을 듣고 모두 와서 귀화하여서 그 나라에 가득하여 빈틈이 없게 되니, 마치 산 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계곡으로 쏟아지는 것 같고, 반달에 바닷물이 조수로 밀리는 것처럼 그 나라에, 밖에서 와서 귀화하는 백성들로 가득해지는 것도 역시 이와 같았다.
그 나머지 이웃 나라들이 점점 백성을 잃으매 각각 성내어 원한(怨恨)을 품고 곧 함께 모여서 같이 쳐들어가자고 상의하였다. 이렇게 의논하고는 곧 4병(兵)을 거느리고 그 나라로 향하여 오니,그때 변방을 지키던 사람이 멀리서 달려와서 왕에게 여쭈었다.“이웃 나라 원적(怨賊)들이 지금 벌써 핍박하여 들어오는데 마치 폭풍우와 같습니다.”
왕이 곧 말하였다.
“그대들은 마땅히 내 마음을 괴롭히지 말라.”
그리고는 곧 게송을 설하였다.
이웃 나라에서
우리 나라를 치는 까닭은
바로 백성들과
창고에 쌓인 진보 때문일세.
좋다, 대단히 좋다.
마땅히 내어 주리라.
내가 마땅히 버리고서
출가하여 도를 배우련다.
많은 국토를 지니고도
5욕을 탐하기 때문에
백성을 침해하고 빼앗아서
쌓아 모아도 만족함이 없나니,
아느냐? 이러한 왕은
그 목숨 마치고 나면
곧 지옥으로 가거나
축생이나 아귀도에 떨어지리라.
“그러므로 나는 이제 내 자신을 위해서 중생을 침해하거나 남의 재물을 빼앗거나 함으로써 스스로 모면하지 않으련다.”그때 대신과 모든 백성들이 이렇게 말하였다.
“부디 대왕께서는 버리고 가지 마십시오. 신들이 마땅히 이 적을 막겠으니 대왕께서는 보고 계십시오. 신들이 오늘 마땅히 5병(兵)과 창과 칼로써 분전하여서 이 적들을 격파하리니, 저 폭풍이 불어서 비와 구름을 몰아내는 것처럼 하겠습니다.”왕이 대답하였다.
“그대들이여, 딱하도다. 나는 그대들이 나에 대해 크게 애호하는 마음을 내고 존중하고 공경하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았노라. 그리고 또 그대들의 용맹과 굳건함을 이기기 어렵고, 크고 날쎈 무략(武略)과 책모(策謀)가 제일임도 아노라. 그러나 다만 저 왕의 이번 거사가 그대들을 상대함이 전혀 아니요, 바로 나를 노린 것이니, 설사 저들이 오더라도 그대들을 해치지 않을 터인데 어째서 이런 악한 마음을 내는가? 나는 오래전부터 5음(陰)이 성한 이 몸뚱이는 온갖 화살의 과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노라. 내가 그대들을 위하여서 말한 지 오래인데 그대들은 모르는가? 보살은 마땅히 저 중생들을 하나같이 자식이라고 생각해야 하나니, 그대들도 마땅히 다른 중생들에게 성내고 해치려는 마음을 내지 말라.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응당 일심으로 선행을 닦을지니라.”
이렇게 말할 때에 적이 벌써 와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왕이 그 소리를 듣고는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모든 신하들이 비감함을 품고 소리를 놓아 슬피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악한 적들이 죄없는 많은 백성들을 해치는 것이 마치 사나운 우박이 오곡을 상해하는 것과 같고, 또 맹렬한 불이 마른 풀을 태우는 것과 같으며, 폭풍이 불어서 큰 나무를 뽑는 것과 같고, 또 저 사자가 짐승들을 살해하는 것처럼 원적들이 살해함이 역시 이와 같습니다.”그때 모든 신하들이 왕의 명령을 받들지 않고 각기 흩어져 나가서 곧 4병을 거느리고 맞서 싸웠으나 군사에 주장(主將)이 없으매 곧 밀리어 흩어졌고 군사들이 헤아릴 수 없이 죽었다.
그때 왕이 누각에 올라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악한 욕심 때문에 사람으로 하여금 악을 행하게 한다. 이러한 욕심들은 마치 죽은 송장이나 측간의 분뇨와 같은 것인데, 어찌 그것을 위하여 악을 행하느냐. 어리석은 사람이 나라를 탐하여 다투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마치 뭇 까마귀가 고깃덩이를 다투는 것과 같도다. 이 모든 중생들에게 언제나 원망하고 미워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늙음ㆍ병듦ㆍ죽음이다. 어째서 이것을 관찰하지 않고 다른 데로 원한을 돌려서 다투느냐?”
일체시왕이 이 뜻을 생각할 때에 적국의 왕은 곧 궁중에 들어왔다.왕은 이때 곧바로 수채 구멍으로 빠져나가서 깊은 산으로 들어가 밀림 속에 이르러서 원적을 면하였다. 그곳은 청정하였고 숲에는 온갖 꽃과 과일이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었다. 물은 맑고 부드러우며 8미(味)를 구족하였고, 여러 가지 새들ㆍ오리ㆍ기러기 따위의 금수도 헤아릴 수 없었다. 왕은 이것을 보고는 마음이 기뻐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이제 진실로 집을 떠나서 근심이 없게 되었구나. 한량없는 중생들이 항상 늙음ㆍ병듦ㆍ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쫓기는데, 이제 이런 곳을 얻어서 청정하고 안락하니 상쾌하기가 말할 수 없도다.
이 숲은 곧 자비를 닦는 보살이 거처할 곳이며, 또 4마(魔)를 부수는 사람의 견고한 성이로다. 내가 이미 깨끗하게 여러 가지 더러움을 씻어 버렸으므로 여기서 이 여러 사슴들과 벗이 되어 몸도 마음도 편안하게 극히 높은 낙을 받는 것이다.”그때 적국의 왕은 그 나라를 얻고 나서 곧 영을 내리어 본래의 왕을 찾았다.
“누구든지 일체시왕을 잡아서 죽이든지 이곳으로 묶어 오든지 하면, 내가 마땅히 상을 후하게 내리며 그동안 필요한 것을 모두 주리라.
그는 전날에 항상 바른 법을 행한다고 스스로 칭찬하면서 우리들을 헐뜯어, 포악하여 악을 행한다고 하였으니, 내가 이제 보고 그가 착함을 닦아서 얻은 바 과보를 보이려는 것이다.”그때 다른 곳에 한 명의 바라문이 있었는데, 빈궁하고 고독하고 초췌하여 구걸하여 먹고 사는데다가 관재까지 겹치어 믿고 의지할 바가 없었다. 왕의 이름과 보시하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곧 그 나라를 떠나 왕에게로 와서 필요한 것을 구걸하려 하였는데, 도중에 굶주리고 목마름에 지쳐서 숲 속에서 걸음을 쉬면서 찬탄하였다.
“이곳은 고요하여 성인이 거처할 곳이며, 또 신선ㆍ욕심을 여읜 사람ㆍ해탈을 구하는 자가 음식을 끊고 노비를 두지 않고 거마(車馬)를 타지 않고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알며, 피 열매나 모든 뿌리와 약초를 먹는 대비심을 지닌 분의 거처할 곳이다. 또 일체의 나는 새와 달리는 짐승이 무서워할 것이 없는 곳이며, 자재천왕(自在天王)이 중생에게 집이란 것이 허물과 걱정임을 알리기 위해 변화시켜 놓은 곳이로다.”그때 일체시왕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기쁨이 생겨 곧 가서 그를 보고 서로 인사하고 앉게 하였다.
바라문이 앉으니 일체시왕이 곧 따다 둔 여러 가지 맛있는 과일을 받들어 올렸다. 배 부르게 먹은 뒤에 왕이 물었다.
“큰 바라문이여, 이곳은 무서워서 사람이 없으며 오직 한가롭고 고요하게 도를 닦는 사람이나 혼자 있는 곳인데, 인자는 어떻게 오셨습니까?”바라문이 말하였다.
“그대는 마땅히 이러한 일을 나에게 묻지 마시오. 그대는 곧 복덕이 청정한 사람이라, 멀리 가정이라는 감옥의 얽매임에서 떠났거늘 어찌 이와 같은 일을 나에게 묻습니까? 그대는 마땅히 흐리고 사나운 소리를 듣지 마시오. 만약 누가 나를 침범하면 나도 그를 침범하고, 만약 누가 내 것을 빼앗으면 나도 그의 것을 빼앗다가 재물도 친족도 잃고 시들어 떨어지는 것이라,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 다 집에 있기 때문입니다. 대덕이여, 그대는 이제 이미 일체의 얽매임을 끊어 버리고 편안히 산림 속에 머무르니 큰 용과 코끼리 같아서 자유자재하여 걸림이 없지 않습니까?”일체시보살은 곧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이제 말한 것은 청정하고 부드러운 것이었소. 어째서 여기서 함께 있으려 하지 않으시오.”바라문이 말하였다.
“만약 들으려고 한다면 내가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갖추어서 말하리다.
내가 본래 태어난 곳은 여기서 멀리 떨어졌는데, 박복한 소치로 포악한 왕을 만났는데, 마치 사자가 사슴의 무리 가운데에서 착한 마음이란 조금도 없는 것처럼 우리 왕의 포악함도 이와 같아서 모든 백성들에 대해 자비롭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없고 죄가 있든 없든 재물만 거둬들였습니다.
나는 나면서부터 소심하고 겁쟁이여서 일찍이 털끝만큼도 왕의 법을 범한 일이 없는데도, 우리 집을 압수하고 나를 가두고는 나에게 금전 50을 요구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능히 마련이 되면 마땅히 너의 집을 돌려주고 죄를 면해 주려니와, 만약 가져오지 않는다면 내가 마침내 놓아 주지 않고 가두고 매질을 하리라.’
날짜를 정하여 금전을 바치기로 하고 내려왔으나 집이 곤궁하고 가난하여 능히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일찍이 들으니, 이 나라의 일체시왕이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거두어서 보호하고 은혜로운 보시를 끊이지 않게 함이 마치 봄과 여름 나무에 꽃과 과실이 잇달아 있는 것과 같고, 또 저 광막한 들판에 맑고 시원한 물이 있어 목마른 사람이 지나다가 마음대로 마시는 것과 같으며, 또 큰 모임에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이가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이제 간략히 말하였지만, 가령 어떤 사람이 머리가 천 개 있고, 머리마다 천 개의 입이 있고 입마다 천 개의 혀가 있으며, 혀마다 천 가지 뜻을 말하여서 이 왕의 공덕을 찬탄하더라도 능히 다 할 수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저 왕이 이와 같은 공덕을 성취하였다기에, 내가 이제 집에서 왕의 포악함을 만나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다시 믿고 의지할 데가 없으므로 거기에 나아가서 구걸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 내 마음 속에는 늘 이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내가 언제 거기에 당도하여서 뜻대로 구걸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저 대왕이 보면 반드시 불쌍히 여기고 조금이라도 줄 수 있을 것이니, 내 집도 찾고 생명도 온전히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면 나도 오래지 않아 죽게 될 것이다.’”그때 보살이 이러한 사정을 듣고는 마음이 답답하여 땅 위에 쓰러지니 마치 사나운 바람에 큰 나무가 쓰러지는 것과 같았다.
그때 바라문이 곧 냉수를 왕의 몸에 뿌려서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바라문이 물었다.
“큰 신선이여, 그대가 내 집의 이러한 괴로움을 듣고 마음이 괴로워진 것입니까? 이 산 속이 청정하여 그대가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이거늘 능히 자비심을 낸 것입니까?
나는 이제 여기에 와서 오히려 괴로움이 없거늘 당신은 이제 어찌하여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입니까?”왕이 곧 대답하였다.
“그대가 본래 뜻을 내어서 저 왕에게 가려고 하지만 박복한 까닭에 바로 그 왕이 없는 때를 만난 것이로다. 그대가 이제 만약 간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못 볼 것이므로 내가 근심한 것이로다.”그때 바라문이 물었다.
“어디로 간 것입니까?”일체시왕이 대답하였다.
“적국의 왕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지금은 도망하여 빈 산의 숲 속에 있으면서 오직 짐승들과 더불어 친구가 되었다.”그때 바라문이 이 말을 듣고는 곧 기절하니, 왕이 또 냉수를 뿌려서 깨어나게 하고 위로하였다.
“그대는 일어나 앉으라. 그리고 너무 근심하고 괴로워하지 말라.”바라문이 말하였다.
“내가 오늘 목숨이 반드시 온전하지 못하리라. 왜냐 하면 본래 소원하여 구하던 것이 이제 다 무너져 버렸으니 내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 결정코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리라.”일체시왕이 그때 곧 자비심을 일으켜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가엾도다. 이 도사(道士)가 소원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아귀가 맑은 물을 멀리서 바라보다가 정작 가서는 얻지 못하고 답답해서 땅에 쓰러진 것처럼 이 바라문의 형편도 이와 같구나.’
다시 부르면서 말하였다.
“딱하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일어나 앉으라. 그대는 일어나 앉으라. 일체시왕은 바로 이 몸이로다. 그대가 본래 보려 했던 것을 이제 만났는데 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괴로워하는가?”바라문이 왕에게 물었다.
“이제 좋은 말로 나를 위로하지만 나에게 돈과 재물이 생기게 되겠습니까?”왕은 곧 대답하였다.
“나에게 돈과 재물은 없지만 다만 방편이 있으니 그대에게 많은 진귀한 보배를 얻게 할 수 있다.”바라문이 말하였다.
“어떠한 방편입니까?”왕이 다시 대답하였다.
“내가 이전에 저 원수의 소문을 들었는데, 내 나라에 들어와 있으면서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만약 능히 일체시왕을 잡아서 그를 죽이거나 묶어오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후하게 상을 주어서 필요한 것을 뜻대로 하여 준다.’
나는 예전부터 일찍이 남에게 악한 법을 행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으므로 그대에게 내 머리를 베라고는 할 수 없으니 다만 새끼줄로 묶어 가지고 저 왕에게 나아가도록 하라. 왜냐 하면 이 몸뚱이밖에는 달리 돈과 재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이 몸뚱이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매, 재물과 바꿀 수 있으니 이로써 서로 구제하는 것이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바라문이여, 내가 이제 이로움을 얻었으니 견고하지 못한 몸으로 견고한 몸을 바꾸었도다.
도사는 생각해 보라. 설사 이 몸이 여기에 있다가 목숨을 마쳐도 주검은 빈 들판에 버려지는 것이니 초목과 다를 것이 없으며, 만일 새나 짐승이 와서 먹는다면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이제 이와 같은 재와 흙의 몸뚱이를 가지고 진금ㆍ보물을 바꾸어 얻는 것인데 나에게 다시 무슨 미련이 있어 아까워할 것인가.”그때 바라문이 이 말을 듣고는 슬피 울면서 말하였다.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왜냐 하면 당신은 위없는 조어사(調御師)이며 중생의 부모로서 잘 애호하는 큰 귀의처(歸依處)가 되어 한량없는 중생들이 지닌 무서움을 능히 없앨 수 있고, 짓는 바가 광대하여 과보를 바라지 않으며, 모든 중생들에게 언제나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내고, 능히 어두운 세상에 있어서 큰 횃불이 될 수 있거늘, 제가 어떻게 바른 법을 파괴하고 당신의 몸을 묶어서 원수 왕에게 보내겠습니까. 가령 왕을 묶어서 저 원수의 처소에 이르러 금은 보배를 얻더라도 제가 다시 무슨 마음으로 손을 벌려서 받겠습니까. 설령 받는다 하더라도 손이 마땅히 땅에 떨어질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남자가 제 몸뚱이를 기르기 위하여 부모의 살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이 사람이 비록 생명을 존속하게 되더라도 원수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나도 이와 같아서, 설사 왕의 몸을 묶어 가지고 저 원수에게 보내면 비록 많은 재물을 얻어서 그것으로써 집을 돌려 받는다 하더라도 나는 귀하게 여기지 않겠습니다.”그때 왕이 또 대답하였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가? 그대는 필시 나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로다. 내가 스스로 묶여서 그대의 뒤를 따라 저 원수에게 가면 그대에겐 죄가 없고 나는 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바라문이 할 수 없이 말하였다.
“공손히 왕의 명에 따르리니 뜻대로 하십시오.”이렇게 말하고 나서 곧 스스로를 묶고 바라문과 함께 성에 이르렀다.
그 왕의 옛 신하와 모든 백성들이 왕을 보고 모두 놀라고 괴이하게 여겼다.
“슬프다. 바라문아, 너는 나찰이지 바라문이 아니다. 너는 나찰이요, 바라문이 아니다. 너는 본래 실제로는 포악한 귀신으로서 간사하게 바라문의 모양으로 위장하였구나. 자비로운 마음이 없으니 참으로 죽음의 마군이라, 언제나 사람 죽이기를 구할 것이다.
네가 이제 이 왕으로 하여금 죽게 한다면 마치 월식(月蝕)을 하고 일곱 해가 한꺼번에 비추어서 큰 바다가 마르는 것과 같으리라.
아아, 위없는 법의 등불이 오늘 다 없어지는구나.
전다라(旃陀羅) 종자야, 네가 이제 어찌 그 손목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네 그 몸뚱이가 어째서 땅으로 빠져 들어가지 않느냐?
저 사자와 같은 것도 이미 죽고 나면 누구도 해칠 수 없는데, 이 일체시왕이 오래 전에 벌써 국성과 처자와 창고의 진귀한 보배와 일체의 다툼을 멀리 떠나서, 물러가 깊은 산 속에서 적멸의 행을 닦거늘 네게 무슨 원한이 있어서 여길 데리고 왔느냐?”온 성의 백성들이 같은 소리로 원하였다.
“모든 큰 신선과 성인이시여, 세상을 보호하시는 사천왕이시여, 원컨대 위
신(威神)을 내리시어 이 왕을 옹호하여 생명을 온전하게 해주십시오.”바라문이 이 말을 듣고는 마음에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일체시왕을 데리고 빨리 왕의 처소에 이르러서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제가 지금 일체시왕을 잡아왔습니다.”
원수 왕이 보고는 생각하였다.
‘이 왕은 나이가 한창이고 몸도 좋고 용모가 단정하며 그 힘도 제어하기 어려울 것인데, 이 바라문은 나이가 쇠폐(衰弊)한데다가 형용(形容)이 초췌하고 얼굴이 추악하며 힘이 없어 보이거늘 어떻게 이 왕을 잡을 수 있었을까?’
속으로 또 생각하였다.
‘아마 범왕이 아니면 자재천왕이나 나라연천(那羅延天)이거나 석제환인이거나 사천왕이 아닐까?’원수 왕이 곧 물었다.
“누가 너를 위하여 묶어 주더냐?”
바라문이 말하였다.
“제가 묶었습니다.”
원수 왕이 핀잔을 주었다.
“치워라. 어리석은 놈아.”
또 물었다.
“네가 묶었다면 주술(呪術)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냐. 네 몸은 파리하고 약하며 저 왕의 몸은 단엄하여 마치 제석과 같거늘 어떻게 네가 묶었다는 말이냐?
가령 어떤 사람이 스스로 수미산을 불어서 가루와 같이 할 수 있다고 말하면 이것을 믿겠느냐?”그때 원수 왕이 곧바로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이제 이 어려운 일이, 이것이 꿈속이냐, 환영이 변화한 것이냐, 내 마음이 복잡해서 정신을 잃고 착각을 한 것이냐? 이 늙은 원숭이가 어떻게 제석을 묶을 수 있었단 말이냐?
여러 신하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어떻게 연뿌리 속에 있는 실로써 수미산을 매달겠느냐, 토끼의 몸으로 큰 바다를 건너겠느냐, 모기가 바다 밑을 뚫겠느냐?”바라문이 이 말을 듣고는 곧 원수 왕을 향하여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대왕이여, 아시라.
실은 내가 묶은 것이 아니라
이 왕이 자비하므로
나를 위해 스스로 온 것일세.
그물로써 바람을 잡는다면
그것이 될 말인가.
바로 하늘의 제석에게 시켜도
역시 이것만은 못할 것일세.
그때 원수 왕이 곧 일체시왕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나를 두려워하였으므로 깊은 산골짜기 숲 속 쓸쓸한 곳에 들어가서 오직 짐승들과 더불어 벗삼아 즐기었고, 욕심을 줄이고 만족할 줄 알아서 물을 마시고 과실을 먹고 풀을 깔고 살면서 나와 다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원망하는 마음이 오히려 없어지지 않았고, 또 나는 이제 마음대로 능히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데 어떠한 인연으로 여기에 온 것인가?”그때 일체시왕이 기뻐하면서 미소를 띠고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었으며,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서 마치 사자왕처럼 늠름하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대는 모르는가? 내 이름이 곧 일체시왕이라는 것을. 나는 본래의 서원을 성취하기 위해 이제 여기에 온 것이니 여기엔 세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저 바라문이 돈과 재물을 구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그대가 먼저 내 몸뚱이를 가져오는 자에게는 후한 상을 준다고 했기 때문이며, 셋째는 내가 먼저 마땅히 일체를 보시하리라고 서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와서 몸뚱이의 목숨을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대는 마땅히 생각하여 보라. 만약 내 이 몸뚱이가 목숨을 마치고서 땅에 들어간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내가 본래 도망하여 산림에 들어간 까닭은 무서웠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모든 중생들을 애호(愛護)하기 때문이었다. 그대는 이제 마음대로 하면서도 원한이 없어지지 않았다고 하였다.
내가 이제 이렇게 왔으니 마음대로 죽이고 베어서 원한을 없애라. 그러면 마음이 곧 편안할 것이니, 그대는 이제 마땅히 빨리 하여라.”
그리고는 곧 게송을 설하였다.
원수에게 성내고 원망하는 건
스스로 마음을 볶는 것이니
마치 재 속에 있는 불이
능히 만물을 태움과 같네.
성내는 마음 때문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나니
마치 사나운 독화살에
맞으면 죽는 것과 같네.
만약 원수를 미워하고 성내게 되면
마음에 적정함을 얻을 수 없으리니
비유하면 마치 눈 아픈 자가
능히 바른 빛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네.
이 몸을 자세히 살펴보면
피ㆍ살ㆍ뼈ㆍ골수ㆍ기름ㆍ뇌장,
똥ㆍ오줌ㆍ코ㆍ가래,
더러운 것을 엷은 가죽으로 싸놓은 것뿐일세.
이 몸은 움직이는 측간 같아서
주장할 게 없고 나랄 것도 없거늘
왕에게 무슨 원수 졌기에
언제나 성을 내고 있단 말인가.
생로병사의 무서운 적이
항상 왕의 몸을 침범하여 오거늘
어찌하여 이 속에서
도리어 친구처럼 생각하는가.
내 몸은 4대(大)로 이루어진 것.
왕의 몸도 역시 그렇게 되었으니
이제 만약 성냄을 나타낸다면
이는 곧 자신에게 성냄이 되네.
“그러므로 대왕은 마땅히 화내지 말라. 만약 굳이 화를 낸다면 이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바라건대 뜻대로 어서 죽일 것이며, 먼저 모집한 대로 이 사람에게는 상을 주는 것이 옳으리라.
나는 이제 결정코 목숨을 버려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이 인연으로써 모든 중생들이 능히 일체를 보시하고 보시한다는 이름 얻기를 원하노라.”그때 원수 왕이 이 말을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하고 일체시왕에게 공경하고 예배하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직 원컨대 대왕이여, 본 자리로 돌아가 앉으시오. 그대는 법의 왕이고, 바른 교화의 주인이며 나는 나찰이고 포악한 사람이었소.
그대는 세상의 등불이며 세상의 부모가 되었는데, 나는 세상에 폐악(弊惡)한 큰 도적으로서 오로지 악법을 행해서 남의 재물을 겁탈하였습니다. 그대는 법의 저울이며 바른 법의 밝은 거울인데, 나는 법의 저울이 아니며 항상 남을 속여 왔으나 마치 장님과 같아서 스스로 허물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처럼 죄과가 깊고 무거운 이들은 이 몸뚱이가 오래전에 벌써 이 땅 속으로 빠져들어갔어야 할 것인데, 오늘까지 천연(遷延)되어 온 까닭은 실로 인자(仁者)의 덕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땅을 내놓고 또 이 몸으로써 인자를 받들어 보시하리다.”일체시왕이 곧 원수 왕을 위해 널리 법요(法要)를 설하여서 그로 하여금 정법(正法) 가운데 편안히 머물게 하였으며, 재보로써 크게 바라문에게 베풀어서 본토로 돌려보냈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단바라밀을 행할 때, 이렇게 소중한 몸뚱이도 버리는데, 하물며 그 밖의 것인 재보(財寶)이겠느냐.
3. 일체지왕자품(一切持王子品) ①
보살마하살이
중생들을 위하여
모든 소중한 것을
보시하지 않음이 없네.
이와 같이 내가 예전에 들었다.과거에 왕이 있었고, 그 왕에게 일체지(一切持)라 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나이 어려서도 형상과 용모가 단정하여 마치 보름달이 여러 별 가운데서 밝은 것과 같으니 중생들이 보고 싫어함이 없었다.
위의(威儀)가 안정되고 침착함이 수미산과 같고, 지혜가 매우 깊어서 큰 바다와 같으며, 인욕을 성취하여 대지(大地)와 같고, 마음에 변역(變易)이 없음은 염부단금(閻浮檀金)과 같으며, 항상 일체 인간과 천상으로부터 사랑받으니 마치 8미(味)를 갖춘 청정한 물과 같았고, 모든 세간에 있어서 그 마음이 평등하니 마치 일월이 만물을 고루 비추는 것과 같았으며, 중생들의 소원을 채워 주니 여의보(如意寶)와 같았고, 모든 구걸하는 자를 보며 마음에 기쁨을 내니 마치 인자한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을 보는 것과 같았다.이때 왕자가 게송을 설하였다.
내가 이제 자재함을 얻었고
소유한 재물이 한량없는데
모두 중생들과 함께하기를
마치 해가 똑같이 비추듯이 하겠네.
구걸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
없다는 말을 하지 않고
구하여 찾는 바가 없는 자라도
또한 평등하게 보시하겠네.
왕자 보살의 모든 근(根)이 적정함이 마치 범천(梵天)과 같았고 재물이 구족함이 비사문(毘沙門)과 같았다.
왕은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서 공급하고 심부름하는 것을 마치 제자가 스승을 섬기듯 하였고, 마음에 항상 일체 중생을 사랑하는 것을 마치 부모가 자신이 낳은 자식을 생각하듯 하였으며, 중생을 교화하는 법칙과 예의가 큰 박사와 같았다.
왕자 보살이 이와 같은 공덕을 다 성취하고 마음으로 항상 일체 중생에게 보시하기를 즐겨서 ‘이 물건은 이 사람을 주리라’ ‘저 물건은 아무개를 주리라’ ‘이 사람은 무서워하니 내가 마땅히 편안히 위로하리라’ 하여, 바른 법을 수행하고 보시를 폐하는 일이 없었다.
보시하는 물건을 들어 보면 금ㆍ은ㆍ유리ㆍ파리(頗梨)ㆍ진주ㆍ차거(車𤦲)ㆍ마노(馬瑙)ㆍ산호ㆍ벽옥ㆍ갖가지 기물(器物)과, 나아가 의복ㆍ침상ㆍ깔것ㆍ탈것ㆍ집ㆍ논밭[田地]ㆍ곡식ㆍ노비ㆍ코끼리ㆍ말ㆍ소ㆍ양 따위인데, 필요하다는 대로 다 능히 풍족하게 주니, 비유하면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백곡이 불어나는 것 같았고, 항상 다섯 손가락으로써 남에게 재물을 베푸는 것이 마치 다섯 용이 큰비를 내리는 것 같았다.
왕자 보살이 항상 보시를 행하여 날마다 끊이지 않았으니, 혹 하루라도 구걸하러 오는 사람이 없으면 얼굴빛이 초췌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이 마치 초승달이 안개에 덮여서 빛이 없는 것과 같았다.그러자 모든 신하들이 이 왕자에게 모두 싫은 생각을 내고 한탄하였다.
딱도 하구나. 우리 임금님이여.
어리석다 해도 그렇게 모를까?
재산이 있어도 먹지도 않는다네.
후세에 편안하게 머물려고
보고도 능히 쓰지 못하고
또 그 아들을 꾸짖지도 않네.
창고의 재물을 흩어서
아무 공도 없는 자에게 주고 있건만.
창고에 저장한 게 다 없어지면
백성들도 으레 흩어지리니
백성들이 흩어져 버리고 나면
원수가 이르러도 누가 지키리.
만약에 지키는 이 없게 된다면
목숨이 당연히 온전하지 못하고
목숨이 이미 온전하지 못하면
나라에는 또 누가 살게 될 건가.
그때 대신과 모든 백성들은 각각 이 일을 근심하였다.
그때 부왕에게 한 마리의 흰 코끼리가 있어서 연꽃 위로 다니는데 힘으로 능히 적국의 원수를 항복시킬 수 있었다.
이 코끼리가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능히 침범하거나 업신여기지 못하였는데, 변방에 있는 원적(怨敵)의 왕이 항상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어떻게 하면 저 흰 코끼리를 얻을 수 있을까?’
곧 사람들을 고행하는 바라문의 모양으로 변장시켜 보내며 왕자에게 가서 흰 코끼리를 달라고 하도록 하였다.그때 왕자가 대신들이 성내는 것을 보았으므로 흰 코끼리를 타고 성 밖으로 나아가 소풍하고자 하여 한 숲으로 향하는데 곧 그 길에서 바라문과 마주쳤다. 왕자를 보고는 크게 기뻐서 축원하면서 말하였다.
“원컨대 왕자님께서 대왕님의 높으신 지위를 이으시고 성수무강하여지이다. 이웃 나라도 덕화로 돌아오고 천하가 태평하여지이다. 왕자님, 저희들은 모두 바라문입니다.
먼곳에 있지만 항상 왕자님께서 보시하기를 좋아하신다는 말을 들었기에 멀리서 왔습니다. 길에서 굶주리고 목이 말라서 온갖 고통을 받았습니다.
왕자님, 알아 주십시오. 저희들은 청정한 금계를 지키고 독송하는 바가 많아서 섭렵하지 않은 글이 없습니다.
왕자님의 공덕은 시방에 유포되어서 소문만 듣고도 칭찬하면서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능히 중생들에게 소원을 만족하게 해주셔서 와서 구걸하는 자가 있으면 하나도 그냥 돌아감이 없이 하신다니 당신께서 타신 코끼리를 주시기 바랍니다.”그때 왕자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제 만약 주지 않으면 중요한 근본을 어기는 것이고, 만약 주기로 한다면 내 것이 아닐 뿐더러 이것은 부왕께서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곧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들이 만약 금ㆍ은ㆍ유리와 갖가지 수레나 노비(奴婢) 따위가 필요하다면 내가 모두 줄 수 있으나 이 코끼리는 이미 내 것이 아니어서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이것은 부왕(父王)께서 타시는 코끼리인데 어떻게 주겠는가?
이 흰 코끼리의 값이 얼마인가를 따져 내가 마땅히 그 값어치를 주면 그대들이 궁핍하지 않을 것인데, 어찌 꼭 이 흰 코끼리를 얻으려 하는가?
그대 바라문은 중생을 가엾게 여기고 출가하여 계를 받았는데 이미 일체 의 것을 멀리 여의었거늘 무엇에 이 코끼리를 쓰려는 것인가? 그대가 만약 얻는다면 혹 어떠한 근심이라도 있으리라.”바라문들이 또 이렇게 말하였다.“저희에게는 전재(錢財)ㆍ진보(珍寶)가 소용없고 오직 필요한 것은 이 코끼리뿐입니다. 타고서 산에 들어가서 좋은 꽃을 구해다가 모든 하늘에 공양하고는 마땅히 중생들로 하여금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에 들게 하려는 것입니다.
왕자님의 본원이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일진댄 저희도 이렇게 남을 이롭게 하겠습니다.”그때 왕자가 이 말을 듣고는 곧 자비심을 내어서 문득 흰 코끼리에서 내려서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코끼리는 비록 부왕의 소유여서 이제 이것을 보시해 버리면 대신과 백성들에게 반드시 미움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남을 이롭게 하자면 어찌 이런 것을 따지랴. 그리고 내가 보시하는 바는 명성을 구하거나 천상에 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 인연으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번뇌를 끊게 하려는 것이다.’이렇게 원하고는 곧 흰 코끼리를 바라문에게 주고 자신은 한 필의 말을 구하여 타고서 돌아오려고 하였다.저 바라문들은 코끼리를 얻으매 곧 여럿이 함께 타고 돌아가는데 잠깐 동안에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그때 대신들이 곧 함께 모여서 급히 왕에게로 가서 아뢰었다.
“대왕께서 오늘 상쾌하고 좋으십니까? 소중히 여기시던 흰 코끼리를 왕자님이 벌써 바라문에게 보시하였고 바라문들을 이미 타고 갔는데 지금은 적국에 갔을 것입니다.
대왕께서 먼저 왕자님이 금ㆍ은ㆍ진귀한 보배를 보시하는 것을 보시고도 꾸짖지 않으셨기 때문에 오늘 다시 흰 코끼리를 원수에게 주는 데까지 이른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세간에서 나쁜 자식들이 많은 허물을 저지르고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고 색을 탐하는데 쓰는 것이라면 신들이 감히 아뢰어서 책망하시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왕자님이 만약 이제부터 다시 재물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면 가히 머물 것을 허락하실 만하지만 만약 그치지 않는다면 곧 마땅히 물리쳐서 멀리 깊은 산 속에 가서 있도록 하십시오.”그때 부왕이 곧 그 아들을 불러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상하다. 내가 지금 어째서 하루아침에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내 자식에게 마음대로 보시하지 못하게 하는고. 내가 지금 부끄러워함이 마치 부인네가 시어머니를 겁내는 것 같구나.’
곧 그 아들을 향하여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부터 다시 일체 공덕에 탐착하지 말고 보시하는 마음을 버려야 옳으니라. 바른 법을 행할진대 마땅히 풀 옷을 입고 냉수와 과실을 먹으면서 멀리 깊은 산에 처하여라.
그대가 응하지 않는다면 그 오른쪽 눈을 뽑아서 왼쪽 눈을 고치는 격이다.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서 하루아침에 내 마음과 모든 대신들을 괴롭히는 것이냐? 대체로 사람되는 법이 먼저 그 어버이를 편안히 한 후에 마땅히 나머지를 다른 사람에게 미치어야 하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내 흰 코끼리를 가져다가 원수에게 주었느냐?”

이 경의 제3폭(幅) 14행(行) “사슴의 무리 가운데 맹위를 떨치고[鹿郡威猛]”의 아래에, 거란장경[丹本]에는 “내가 일찍이 들었다……오곡이 익게 되었을 때 사나운 우박을 퍼부을[五穀臨熟遇天惡雹]”까지 모두 26행 442자가 있는데, 국본(國本)과 송본(宋本)에는 없다. 지금 거란본의 글을 조사해 보면 이 경의 하권(下卷) 「용품(龍品)」 제8의 글이다. 거란장경이 착란하여 함부로 여기에다 놓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 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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