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변정론(辯正論) 8권
변정론 제8권
법림 지음
이영무 번역
10. 출도위류편(出道僞謬篇)
1) 영문(靈文)을 분산한 잘못
군자(君子)가 말하였다.
“참으로 까닭이 있구나. 참으로 까닭이 있구나. 대저 난정(蘭庭)과 포사(鮑肆)가 날이 오래될수록 그 먼저 친압(親狎)한 것을 사랑하고 양문(陽文)과 돈흡(敦洽)이 그 사랑함이 쌓일수록 그의 곡정(曲情)을 반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슴과 말은 형체가 다르지만 진(秦)나라 사람은 그 모습을 한가지로 여겼고, 기린과 사슴은 바탕이 다르지만 노(魯)나라 풍속은 그 얼굴을 알지 못하여서 남의 말에 덩달아 따라 짖는 무리들이 여기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이제 그의 부사(浮詐)함을 고찰하여 거듭 후곤(後昆)들에게 보이겠다. 조사하여 보니 『태상통현령보황록간문위의경(太上洞玄靈寶黃錄簡文威儀經)』에서 “원시천존(元始天尊)이 태상대도군(太上大道君)에게 ‘하원황록령선품(下元黃錄靈仙品)은 공이 개도(開度)함에 지난다’고 하였다. 그 글은 영선궁(靈仙宮) 가운데 있어서 옛적에는 8백 부가 있었으나 용한(龍漢)1) 이래로 예전의 글이 분산되었으며, 드디어 적명(赤明)에 이르러 그 글을 고쳐 바꾸었기에 번외(煩猥)한 것이 많았다. 그러기에 이제 하원(下元) 81조(條)를 베끼고 모아서 요용(要用)을 지었으니, 위로는 3원(元)의 수에 응하고, 중간에는 8경(景)의 신에 응하며, 아래로는 24기(氣)를 응하여서 항상 3부(部)의 위신(威神)이 있어서 영문을 호위한다”고 하였다.
군자가 말하였다.
“영문의 진록(眞錄)은 자연에서 나왔기에 천존이 보호하는 글이요 여러 성인이 행하는 법으로서 옥검(玉檢)에 간직되어 있고 비밀로 현대(玄臺)에 있으며 3부의 위신이 사변(四邊)으로 호위한다. 그런데 무시(無始)에 근원하였고, 무종(無終)에 극(極)하였다면 어찌하여 용한을 거쳐서 분산되었으며 적명(赤明)에 이르러서 고쳐 바꾸어졌겠는가? 고쳐 바꾸어진다는 것은 실답지 못함이 되고 분산하였다면 곧 신령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거짓되고 허망함이 있기에 자주 버리어 욕됨을 부르는가?”
2) 영보태상(靈寶太上)이 겁(劫)을 따라 생하고 죽는다는 잘못
『영보제천령서도명묘경(靈寶諸天靈書度命妙經)』에 천존(天尊)을 일컬어 “큰 겁(劫)이 교주(交周)하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서 여섯 하늘 가운데 욕계(欲界)의 안에 모든 법이 널리 멸하여 남아 있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태평도경(太平道經)』에 “부처가 『법화경』의 크고 작은 품(品)의 경을 말씀하시고는 위아래 십팔천(十八天) 가운데를 두루 유행(遊行)하시고서 색계(色界)의 안에 계시다가 큰 겁이 교주하여 하늘과 땅이 개폐(改廢)하고서는 그 글이 없어진다. 그러나 옥청상도(玉淸上道)의 『삼통신경(三洞神經)』의 진문(眞文)과 금서옥자(金書玉字)의 『영보진경(靈寶眞經)』은 모두 원시(元始)에서 나와서 이십팔천 무색계(無色界) 위에 있다가 대겁(大劫)이 두루할 때에 모두 하늘 위의 대라천(大羅天) 가운데의 옥경(玉京)의 산 칠보의 현대(玄臺)에 돌아오니 재앙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그것은 대라천은 5억 5만 5555천 위의 하늘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연의 글은 운수와 함께 나고 운수와 함께 멸하니, 이를 받드는 자는 7대의 선조(先祖)들이 하늘에 태어나고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대대로 끊기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영보진문도인본행경(靈寶眞文度人本行經)』에서는 “시방의 큰 성인들이 ‘무슨 인연으로 태상이라는 소임을 얻게 되는가?’라고 스스로 이 말을 하였다. 도(道)가 ‘스스로 원시라고 일컫는다. 개광(開光)으로부터 적명(赤明) 원년에 이르기까지 9천9백9억 겁을 지나면서 항하사(恒河沙)의 대중들을 제도하였으며, 적명으로부터 상황(上皇) 원년에 이르도록 사람을 제도하기에 끝이 없었다. 나는 겁을 따라 나고 죽으면서 대대로 끊기지 아니하고 항상 영보와 함께 나며 7백억의 겁을 지나서 청제(靑帝)의 겁을 만나 마침내 9기(氣)가 운을 고쳤다.
이에 홍씨(洪氏)에게 태(胎)를 의탁하여 나고 3천7백 년을 쌓아서 적명개통(赤明開通)의 갑자년에 이르러 장력개천(狀力蓋天)에 날 적에 다시 영보와 함께 나와서 사람을 제도하기에 끝이 없다. 원시 천존이 나의 이러한 인연으로써 나에게 태상의 호를 주었으며 현도(玄都) 옥경에 있게 하였다. 그것은 내가 영보를 믿기 때문이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견란(甄鸞)이 이 글을 보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 진문이 이미 옥경의 산 가운데 있어서 재앙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하고, 또 ‘자연의 글이 운수와 더불어 함께 나고 함께 멸한다’고 하였으니, 나고 멸하는 날이 어찌 재앙이 아니겠는가?
또 ‘나의 몸이 항상 영보와 더불어 동시에 나고 죽는다’ 하였으며, 또 ‘나는 겁을 따라 나고 죽는다’고 하였으니, 계산하면 영보의 운수가 멸하는 날에는 태상이 이치로 봐서 홀로 있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장생불사(長生不死)의 큰 법이라고 한 것은 이 말이 망설(妄說)일 뿐이다.
또 ‘옥경의 산은 여러 산의 위에 있어서 재앙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한 것은 이치로 봐서 의심하겠다. 왜냐하면 일체의 법이 다 무상(無常)하여서 형색(形色)으로 된 것은 남아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옥경의 산과 금대와 옥궐은 칠보로 이루어졌으면 이는 곧 색계(色界)에 섭(攝)하는 것이니, 이미 색계에 소속되었으면 어찌 항상하다고 하겠는가? 또 ‘적명(赤明)의 연호가 갑자년이다’라 하였으니, 적명의 연호를 믿을 수 있는가?”
3) 부처의 경전을 훔치고 고쳐서 도교의 경전으로 만든 잘못
『태상선공청문경(太上仙公請問經)』에 “용을 타고 허공에 빛나며 목 위에는 원광(圓光)을 지고 몸에는 천광(天光)을 낸다”고 하였으며, 노자는 “대대로 왕후(王侯)의 집에 태어난다”고 하였으니, 이는 전륜성왕을 이름이요, 마침내는 진선(眞仙)의 도에 들어가는 것이다.
『태상령보오련생시묘경(太上靈寶五練生尸妙經)』에서는 “천존이 향림원(香林園) 가운데에 있으니 상지동자(上智童子)와 윤천관세음보살(輪天觀世音菩薩) 등이 앞으로 나아가 왼쪽에서 예배하고 천존께 상백(上白)하였다”고 하였다.
『본상경(本相經)』에 “천존이 법을 설할 때에 건달바(乾闥婆)와 인비인(人非人)들과 여섯 어금니의 흰 코끼리와 사부대중이 1백 수십 겹을 둘러쌌다. 천존이 중하(中夏)에 일음(一音)으로써 이 뜻을 연설하니, 중생들이 음성을 따라 이해하였다. 천태산(天台山)에 신선이 있으니 이름이 천존이다. 36천(天)이 종을 치고 고각(鼓角)을 울리며 음악을 지어 천존의 처소에 갈 적에 10순(旬)에 도달하였다. 천존은 정수리에 육책(肉幘)이 있고 목 뒤에는 원광을 지고 귀는 머리털보다 높고 이마에는 삼건(三乾)이 있으며 손은 무릎을 지나고[脾] 사슴의 장딴지요, 얼굴과 머리는 평평하고 윤택하니, 이를 천존의 8상(相)이라고 이른다. 후에는 총괄하여 말하여 32상과 80종호의 오묘한 자태라고 하였다.
또 10행(行)과 10회향(廻向)과 10주(住)를 고쳐서 10선(仙)과 10승(勝)과 10주처(住處)로 하는 등 절(節)과 급(級)으로 시초를 세우며, 환희지(歡喜地)로부터 나아가 법운지(法雲地)에 이르며 상호가 구족하여 금강으로 보였으며, 그에는 10장(障)과 및 4도과(道果)가 있다”고 하였다.
또 “좌선하는 것은 번뇌의 생각을 끊음이니 신심(神心)이 정해지면 수미산 꼭대기에 석제환인(釋提桓因)의 궁이 있으니, 사방이 4천 리이고 그 주위에 1천2백 개의 문이 있다. 그 가운데 작은 궁이 3천6백 구(區) 5성(城) 12문이 있는데, 순전히 땅이 유리로 되어 있으며 32천이 사변(邊)을 보필한다”고 하였다.
또 “천존이 숲 가운데 있어서 눈썹 사이의 백호광명(白毫光明)을 내서 남쪽으로 대천(大千)의 국토를 비추니, 성문(聲聞)과 연각(緣覺)들이 나아감을 알아서 관찰한다. 나아갈 줄 안다 함은 모든 번뇌[漏]가 이미 다하여서 더는 번뇌가 없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법화경』과 『유마경』과 『반야경』 등을 고쳤다.
『방등경(方等經)』 두 권을 또는 『묘법미다자경(妙法彌多子經)』이라고도 하는데, 위(魏)나라 때에 도사 장달(張達)이 지은 것으로서 불가(佛家)의 『대방등경』의 이름을 훔친 것이요, 묘법미다자라 함은 『묘법연화경』의 미다라니자(彌多羅尼子)의 이름을 취한 것이다. 2승(乘)의 나루터와 길을 돌려서 1승의 바른 길을 펴고 순일하여 섞임이 없는 것이다.
무엇으로써 1승이니 2승이니 하며, 무엇을 순일하다고 이르며, 무엇을 섞임이 없다고 합니까?
조사하여 보니 『법화경』에 1승과 2승, 순일과 섞임 없음이 있어서 청백(淸白)한 범행(梵行)의 모양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이를 7선(善)이라고 이른다 하였는데, 어떻게 세었습니까?
아타단국(阿吒單國)과 아예국(阿隸國)과 반진국(反眞國)과 아반타국(阿盤吒國)과 적미국(赤眉國)과 아강제국(阿剛提國)이다.
이 여섯 나라는 지금 어느 곳에 있습니까?
서적에는 실려 있으나 또한 그런 이름은 없다. 이는 불가(佛家)의 외국 이름을 고친 것이라 하겠다. 서른여섯 명의 진인(眞人)에게 귀명(歸命)하겠다.불가의 서른다섯 명의 부처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사자후(師子吼) 진인에게 귀명한다.불가의 사자후 보살의 이름을 취한 것이다. 보승(寶勝) 진인에게 귀명한다.불가의 보승 부처의 이름을 취한 것이다. 각각 호궤 합장(互跪合掌)하여 여법하게 참회하며 삼삼이 합하여 하나가 된다.[불가의 삼삼을 고쳐서 아홉 가지로 합하였다.] 지금의 몸이든지 만일 먼저의 몸이든지 죄가 있으면 다 참회해야 한다.불가와 같은 것이다.
제대(帝代)가 서로 이은 9토(土)의 안에는 오직 장궤(長跪)니 돈수(頓首)니 계수(稽首)니 계상(稽顙)이니 고두(叩頭)니 박협(博頰)이니 하는 말이 있다. 서사(書史)의 가운데는 원래 호궤합장(互跪合掌)하는 일이 없으며, 도가(道家)에는 다만 수건을 벗고 땅에 엎드리는 것은 있으나 또한 호궤(互跪)라는 말이 없으며, 또 다 회향하게 하여서 일체를 공양한다고 하며이는 불가의 일체 공경에서 따온 말이다, 더 위가 없는 천존에게 귀명한다불가의 더 위가 없는 높은 분에게 귀명한다 함을 취한 것이요, 방등(方等)의 진경(眞經)에 귀명한다불가의 살바야(薩婆若)에 귀명한다 함을 취한 것이요, 4유(維)와 위와 아래의 허공 법계에 도를 얻은 성중(聖衆)에게 귀명한다불가의 응진(應眞)한 스님에 귀명한다 함을 따온 말이요, 중생들을 교화하여 모두 다라(多羅)의 과를 얻는다 하였다. 어떠한 것을 회향이라 이르며, 무릇 몇 번의 회향을 해야 하며 몇 가지의 법을 써서 이루며 어느 곳에 회향합니까?
「육십사진보허품(六十四眞步虛品)」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떤 것은 보니 과거의 높은 분이
저절로 참된 도를 이루어서
몸의 빛이 금산(金山)과 같고
단엄(端嚴)하고 심히 미묘하네.
깨끗한 유리 속과 같으며
안으로 원시의 진(眞)을 나타내었고
성존(聖尊)께서 대중에 있으면서
부연(敷演)해서 미혹하고 강한 이를 교화하네.
『묘법연화경』의 게송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또 보니 모든 여래가
저절로 부처의 도를 이루어서
몸빛이 금산과 같고
단엄하고 심히 미묘하였다.
깨끗한 유리 속과 같으며
안으로 진금(眞金)의 상을 나타내었고
세존께서 대중에 있으면서
깊은 법의 뜻을 부연하네.
이는 모든 여래를 고쳐서 과거의 높은 이로 한 것이며, 부처의 도를 고쳐서 참된 도라 한 것이며, 진금의 상이라 한 것을 고쳐서 원시의 진이라 한 것이며, 깊은 법의 뜻을 고쳐서 미혹하고 강한 이를 교화한다고 한 것이니, 바로 무루(無漏)의 과를 얻는다.
어떤 것을 일러 무루의 과라고 하는가?
제(齊)나라 경명(景明) 원년 8월 16일에 도사 진현명(陳顯明)이 당차자(堂車子)로부터 이 경을 받았다고 하였다.
『지혜사미정지경(智慧思微定志經)』에서는 “법사가 제도하기 위하여 10계와 5계를 일러주었다”고 하였으니, 이는 불가의 5계인 것이다. 또 “지난 옛적 항사(恒沙)의 수”라고 하였다.
만일 도가에서 먼저 10계가 있어 자연에서 나왔다 하고, 노자가 이미 대대로 제왕(帝王)의 스승이 되었으면 예부터 임금들이 준수하여 행했을 것인데 어찌하여 그의 법을 지금에 이르도록 전했다는 사람을 듣지 못하였을까? 그리고 외국에 8대하(大河)가 있었으니, 하나는 항하(恒河)이고, 또 하나는 신두(辛頭)들이다. 그의 하수는 넓고 크며 모래의 수가 한량이 없었기에 부처님께서 그를 빌려다가 비유하신 것이 두루 여러 경전에 나왔다. 그런데 이제 항사라고 한 것은 어느 곳에서 나왔느냐? 부처님의 경전을 도둑질하여 쓴 그 도적이 나타났다.
또 “즐겨서 깨끗이 믿는 것은 현재의 내 몸이요, 법해라 함은 좌현진인(左玄眞人)이요, 법해의 아내라 한 것은 우현진인(右玄眞人)이다”라고 한 것은 모두 『금광명경(金光明經)』과 『법화경(法華經)』 등을 고친 것이다.
『태현진일본제경(太玄眞一本際經)』의 「호국품(護國品)」 제2권에 “이때에 원시천존이 다섯 방위의 국토를 성취하여서 일체의 사람을 제도한다”고 하였다. 군자는 “만일 천존이 세상에 나와서 일체의 사람들을 제도하면 반드시 땅이 움직이고 광명을 놓으며 하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을 것인데, 어찌하여 서책(書策)에 싣지 않아서 지금과 옛날에 전하지 아니하였는가? 9주(州)의 사람이 한 사람도 본 이가 없었음은 그의 거짓되고 허망함이 모두 이러한 유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성행품(聖行品)」에는 3달(達)과 5안(眼)과 4등(等)과 5탁(濁)과 6통(通) 등의 말이 있다. 또 제도하지 못한 자를 제도하게 하며, 편안하지 못한 자를 편안하게 하며, 해탈하지 못한 자를 해탈하게 하여서 3승(乘)을 교화하여 끌어서 1승의 도에 들어와서 일념으로 3세(世)를 요달(了達)한다고 하였다.
「도성품(道性品)」에는 정정(正定)과 7소겁(小劫)과 3유(有)와 4마(魔)와 4취(趣)와 5도(道)와 6근(根)과 6진(塵)과 6식(識)과 3도(途) 등의 말이 있으며, 다시 72상(相)과 81종호(種好)와 4섭(攝)과 4변(辯)과 비인(非因)과 비비인(非非因)과 비과(非果)와 비비과(非非果)의 말이 있다.
군자가 말하였다.
“앞에 벌려 놓은 법문의 명자(名字)는 모두 부처의 경전을 훔쳐다가 그들의 위전(僞典)을 만든 것이니, 하나하나 찾아 검사하여 부(部)와 부의 것을 총괄하여 다하면 모두 불교의 『열반경』과 『반야경』의 글을 취한 것이거나, 혹은 『법화경』과 『유마경』의 말을 훔쳐다 쓴 것이다. 그들이 훔쳐 취한 것은 눈 앞에서 증험할 수 있다. 그것은 박식한 선비들이 다 자세히 연구한 것인데 자세하게 말할 수가 없어서 그의 큰 뜻만을 들겠다.
『승현내교경(昇玄內敎經)』에 ‘도교에서 말하기를 5품(品)과 5기(氣)가 8극(極)에 두루 흐른다 하였으며, 혹은 원시라고 부르고 혹은 노군(老君)이라고 부르며, 혹은 태상이라고 부르고 혹은 여래라고 불렀다. 마땅히 여러 천궁(天宮)에 노닐기를 사념(思念)하여 제석천왕과 더불어 부처님에 대하여 묻고 불경을 의논한다’ 하였으며, 『구전선경(九轉仙經)』의 제5 보시전(布施轉)에서는 ‘불승(佛僧)에 선행(旋行)한다’고 하였다.
『영보경(靈寶經)』의 제13원(願)이라 함은 현재의 부처의 법을 관하는 것이요고쳐서 도교의 법이라 하였다, 제14의 원이라 함은 미래 부처의 법을 관하여 교화가 널리 치우침이 없는 것이요도교의 법이라고 고쳐서 말하였다. 제15의 원이라 함은 과거와 미래의 불도(佛道)를 관하여 다 더러움과 티가 없는 것이다.『약사경(藥師經)』을 고쳐서 말하였다.
『선공청문경(仙公請問經)』에서는 ‘또한 도사가 용맹정진(勇猛精進)함을 보았고, 또한 현자(賢者)가 용맹정진함을 보았다’고 하였다.『법화경』에서 나온 것을 고쳐서 말한 것이다.
「부적진인행품(不積眞人行品)」에 ‘둘째는 부처님의 몸이 금강과 같아서 색상(色相)의 구족함을 보았다’고 하였으며, 『태상소마보진경(太上消魔寶眞經)』에서는 ‘만일 세속의 집에 사는 아내와 자식들을 보면 누구나 일찍이 애욕의 옥(獄)을 나와서 뜻을 섭(攝)하여 계를 받들기를 서원하라’고 하였다.『화엄경』의 1백40의 원(願)을 고쳐서 만든 것이다.
『원양경(元陽經)』에 ‘태상영보가 무앙수(無央數)의 겁으로부터 도교에 있으면 도교의 근본이 되고, 불교에 있으면 불교보다 먼저가 된다. 시방의 부처가 다 영보에서 시작하였으니 동쪽의 향림찰토(香林刹土)에는 그 부처의 이름이 입정진(入精進)이고, 그 보살의 이름이 경수(敬首)라고 한다’고 하였으며, 『원양경』에서 또 ‘적송자(赤松子)의 유선(遊仙)이 원양의 집 가운데서 변화하는 일을 보았으니 그 가운데는 『화엄경』의 선재동자가 선지식(善知識)을 구하여 법계(法界)에 들어가고 신통을 나타내는 것들의 말이 모두 있다’고 하였다.
『영보묘진경(靈寶妙眞經)』의 게송에서는 ‘가령 성문의 무리들이 벼와 삼과 대나무와 갈대와 같아서 시방의 국토에 두루 차서 다 생각하고 함께 탁량(度量)하여도 도교의 지혜는 헤아리지 못한다’ 하였으니, 이는 『영보경』에서 오직 부처라는 글자를 고쳐서 도교라는 글자로 하였을 뿐이고, 그의 체상은 전적으로 『법화경』의 것을 취한 것이니, 그 나머지 글의 예는 다 이것저것 모은 것이다.
송(宋)나라 사람 사상시(謝常侍)가 『박도론(駁道論)』을 지어서 도사 고환(顧歡)에게 물으니, 고환이 ‘『영보묘경』은 천문(天文)의 대자(大字)로서 자연에서 나온 것이요, 본래 『법화경』을 고쳐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이 간사하고 망령되어서 그의 제자 승위(僧褘)와 더불어 우리 도가의 『영보』를 고쳐서 그로써 『법화경』을 만든 것이요, 『법화경』을 고쳐서 『영보』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정상을 준하면 이는 정으로 구한 것이니 영보의 경은 말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만일 구마라집이 『영보경』을 고쳐서 『법화경』을 만들었다 말하나 어떤 기록이나 전기에 나왔는가? 이는 중국 사람들을 속이고 하민(下民)들을 미혹하는 데 그칠 뿐이다. 서역(西域) 지방에는 향할 수 없다. 불경이 있는 곳에는 다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제 구마라집이 중국에 올 때 가지고 온 경으로서 패다라(貝多羅)의 나뭇잎에 초하여 베껴 온 것이며, 그날에 또 번역하는 사람을 파견하여서 대조하여 번역한 것이 지금의 경문과 다르지 않다. 이로써 증험하면 결정코 도사가 『법화경』을 훔쳐다가 고쳐서 도교의 경전으로 만든 것임을 알겠으니, 이 일은 참으로 믿을 만한 것이어서 전의 예를 든 것과 같다. 이는 『영보』의 한 부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릇 도교의 서적으로서 노자의 『오천문(五千文)』을 제외하고는 다 불교의 경전을 훔치고 고쳐서 자기들의 경전에 둔 것이니, 참으로 『열반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윽히 생각하여 보니 부처와 스님들이 대대로 서로 이어서 앞에 간 현인(賢人)과 뒤에 오는 철인(哲人)들을 사람마다 흠경(欽敬)하는 것은 대개 위령(威靈)으로 말미암아 교화가 이치와 일에 가피(加被)되었음을 자세히 알겠다. 그러기에 지나간 옛날과 다가오는 지금에 이름 있는 스님들이 발꿈치를 잇는 것이 마치 사자가 두려움 없음을 얻는 것과 같으며, 향기 있는 숲에 전단(栴檀)이 둘러 있는 것과 같아서 나라의 경계에 머물면서 명(冥)으로 윤택함을 줌이 한량없고 자비로써 몸을 닦아서 사람들을 편하게 하고 자기를 용서하였으니, 행동을 삼가한 아름다움을 선사(先師)에 욕되게 함이 없을 것이다.
몸을 세워 도를 받들었으니 이름을 드날림이 나타나 있다. 그가 만일 도교의 경전을 훔쳐 고쳐서 『법화경』을 만들었으면 이미 속임의 말을 익히고 배웠을 것이니, 어찌 허다하게 뛰어난 행과 마음 씀이 높고 맑으며 지혜의 바다가 크고 깊음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도사들은 이미 진문(眞文)을 받들었으면서 무슨 일로 어리석고 짧은 짓을 서로 이어서 서사(書史)에 실은 것이 그 하나도 얻지 못하는가? 이로써 미루어 보면 부처님의 바른 경을 고쳐서 도교의 삿된 경전을 만든 것이 그의 뜻이 폭로됨을 여럿이 함께 자세히 한다.”
4) 부처님법의 사과(四果)와 십지(十地)를 훔친 것의 잘못
도교의 경전 『도국왕품(度國王品)』에 “천존이 순타왕(純陀王)에게 ‘여러 도를 얻은 큰 성인의 무리들과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여래가 범부로부터 행을 쌓아서 득도하지 아니한 자가 없다. 10선(仙)이라 함은 한량없고 수없이 많은 대중이며 또한 하나가 일어나서 한 신선을 이룬다. 또한 범부로부터 그 머묾을 얻는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공이 높으면 하나가 들리고 공이 낮으면 십(十)에 오르기 때문이다. 십에 오른다 함은 10주(住)가 계급에 처하여 가니 환희지(歡喜地)로부터 법운지(法雲地)에 이르면 상호(相好)가 구족하여 몸을 나타냄이 금강과 같다’ 하였다. 이에 큰 임금과 작은 임금들이 천존이 설법함을 듣고 즉시 4과(果)를 얻었다”고 하였다.
또 조사하여 보니 『도신품(度身品)』에 “니건자(尼乾子)가 천존의 처소에서 설법함을 듣고 정(定)에서 풀려나자 문득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었다”고 하였고, 또 “현중양(玄中養)이 영축산(靈鷲山) 가운데서 5부(部)의 존경(尊經)을 설하여서 사람을 제도함이 한량없었다”고 하였으며, 또 “태화(太和) 선생과 더불어 단독산(檀毒山) 가운데서 크게 왕민(王民)을 제도하니, 사문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조사하여 보니 『문시전(文始傳)』에 “노자가 계빈국에 있으면서 손가락을 튀겨 모든 하늘 임금과 아라한(阿羅漢)을 인도하니 오신통의 하늘을 나는 대중들이 일시에 함께 이르렀기에 윤희(尹喜)를 그곳에 보내 스승으로 삼았다”고 하였으며, 또 “도를 얻은 보살이 노자를 위하여 게송을 지었다” 하였다.
또는 『영보지혜죄근품(靈寶智慧罪根品)』에 “항하사와 같은 많은 하늘 사람들이 법을 듣고 도를 얻어서 이미 여래를 이루었다”고 하였으니, 이러한 것들은 허망한 말이 이미 많았으며 또한 부처를 비방함이 매우 심하다. 그러한 까닭은 불교와 도교는 자취가 같지 않고, 나고 들며 숨고 나타나는 변통이 또한 달라서 도교는 자연으로써 종(宗)을 삼고, 불교는 인연으로써 뜻을 삼는다. 자연이라 함은 무위(無爲)에서 이루어지고, 인연이라 함은 행을 쌓아야 이에 증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소승(小乘)에서는 4과(果)의 사다리를 벌려 놓았고 대승(大乘)에서는 10지(地)의 등급을 나타내어서 범부로부터 참됨[眞]에 들어감이 글의 증거가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도가에서 벌여 놓은 4과와 10지는, 이름은 불교의 것과 같으나 수행하는 품목과 차례는 그러한 말을 보지 못하였다.
또는 도가에서 닦는 것이 혹은 기운을 마셔 하늘에 찌르고, 혹은 물을 마셔 도를 증득하고, 혹은 법을 들음으로써 허공을 날고, 혹은 풀을 약으로 하여 시해(尸解)한다. 이렇게 행하는 업이 이미 다르고 증득하는 과의 이치가 달라서 혹은 아홉 겹의 하늘을 이르고, 혹은 3만 6천을 말하고, 혹은 81천(天)을 말하며, 혹은 60의 대범(大梵)을 말하고, 혹은 36천을 말하며, 혹은 32제(帝)를 말하고, 혹은 28천을 말하며, 혹은 24제를 말하고, 혹은 18천을 말하며, 혹은 9진천왕(眞天王)을 말하고, 혹은 9기천군(氣天君)을 말하며, 혹은 욕계(欲界)의 6천을 말하고, 혹은 사방의 기군(氣君)을 말하며, 혹은 3원(元)과 3천(天)을 말하고, 혹은 9궁(宮)의 천조(天曹)들을 말하며, 혹은 옥청대유(玉淸大有)를 말하고, 혹은 현도자미궁(玄都紫微宮)을 말하며, 혹은 삼황태극(三皇太極)을 말한다.
모든 이와 같은 종류를 간략하게 그 조목을 들었지만 알지 못하겠다. 이러한 하늘들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세로로 되었는가 가로로 되었는가, 높은 것인가 낮은 것인가, 허(虛)한 것인가 실(實)한 것인가, 어떤 업행(業行)을 닦아야 올라갈 것이며, 어떤 풀을 복용하여야 가서 태어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인연과 차제에 대해서는 그 말을 듣지 못하였다.
그러한 뒤에 그러한 까닭을 보고 그 말미암은 것을 살피며 그 두는 곳을 관찰하니 그들의 허망한 정을 보겠다.
5) 도교의 경전에서 나오지 않은 것을 나왔다고 하는 잘못
현도(玄都)를 조사하여 도사들이 올린 일체의 경 제목을 보니 “송(宋)나라 사람 육수정(陸修靜)이 지은 것을 취하여 의거하여 등사하여 보냈다” 하였다.
검사하여 보니 육수정의 옛 제목에 주석한 『상청경(上淸經)』에 1백86권이 있는데 거기서 1백17권은 이미 세상에 행하여졌고, 시청(始淸)으로부터 아래에 40부(部)가 있어 합하여 69권은 세상에 행하여지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의 도교의 경의 제목을 검사하여 보니 “육수정의 경의 목록대로 현재 있다”고 하였으며, 또 “『통현경(洞玄經)』이 36권이 있는데 그 21권은 이미 세상에 행하여졌으나 큰 겁과 작은 겁의 아래에 있는 11부는 합하여 15권인데 천궁(天宮)에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 한다. 그런데 지금의 경의 목록을 검사하여 보니 모두 주석하여 “현재에 있다” 하였다.
육수정이란 자는 송나라 명제(明帝) 때의 사람으로서 태시(太始) 7년에 칙명으로 인하여 이 경의 목록을 올리면서 주석하여 “천궁에 숨어 있어서 세상에 나오지 아니하였다” 했다. 이로부터 2백여 년에 하늘 사람들이 내려왔다 함을 듣지 못하였고, 또 도사들이 하늘에 올라갔음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니 이 경들이 무슨 인연으로 왔는지 알지 못하겠다.
옛적에 문성(文成)은 서적들을 소에게 먹이면서 왕모(王母)의 명령이 이르렀다고 거짓말을 하였으며, 그리고 황정원(黃庭元)은 거짓말로 불교를 고쳐 바꾸어서 도교의 경전이라 하였고, 장릉(張陵)은 『영보』라는 책을 만들어 내서 오(吳)나라 적오년(赤烏年)에 처음 나왔고, 그 『상청(上淸)』을 갈현(葛玄)에서 시작하였는데 송나라와 제나라 때에 행하여졌으며, 포정(鮑靜)이 『삼황경(三皇經)』을 지었으나 당시에 일이 탄로나서 그만두었고, 문성은 한나라 때에 죽임을 당하였고, 포씨(鮑氏)는 지난 옛날에 친족이 멸망하였다. 그런데도 지금의 배우는 자들이 그의 방술(方術)을 뒤따르고 있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한나라의 유언(劉焉)의 전기에 “장노(張魯)의 조부 능(陵)은 환제(桓帝) 때에 촉(蜀)에 나그네로 가서 학명산(鶴鳴山)에서 도를 배웠으며, 부적의 글을 조작하여서 백성들을 미혹하게 하였다. 그의 도를 받은 자는 쌀 다섯 말[五斗]을 바쳤기에 쌀도적이라고 일렀다.
장릉이 그의 아들 형(衡)에게 전하니 장형이 계사(繼師)가 되었으며, 장형이 아들 노(魯)에게 전하니 아들 장노가 사사(嗣師)가 되었다. 그래서 이 셋을 스승이라 이르고, 와서 배우는 자를 처음에는 귀졸(鬼卒)이라 일렀다가 뒤에는 좨주(祭酒)라고 불렀으며, 추한 무리들을 모아 합하여서 자주 비거(非據)가 되었고, 세 사람의 아내를 3부인(夫人)이라 불렀다. 장릉이 구렁이에게 물려 죽었고, 그의 제자들도 서로 이어서 뱀에게 물려 죽었는데 다 대낮에 하늘에 올라갔다”고 하였다. 그들의 속임수가 요사하고 허망하였음을 전기에서 밝힌 것이다.
조사하여 보니 『요서(姚書)』에 “상대로부터 부요(符姚)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러 중들을 불러서 도사라고 일렀는데, 위(魏)나라 태무제(太武帝) 때에 요망한 사람 구겸지(寇謙之)가 기사광혹(欺詐誑惑)하여 스스로 천사(天師)라고 불렀으며, 비로소 도사의 이름을 훔쳐다 썼으며 사적으로 좨주의 칭호를 바꾼 것이다”라고 하였다.
『예』를 조사하여 보니, “활을 잘 만드는 자손은 반드시 키[箕]를 잘 만들고, 풀무질을 잘하는 집은 갖옷을 잘 만든다” 하였으니, 그들의 일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만일 장릉의 도가 실지로 소박하다면 그의 자손들이 무엇을 이어받았기에 요사하고 속임이 이와 같은가?
또 조사하여 보니 『삼원품경(三元品經)』에 “선행을 쌓은 사람은 선행을 쌓은 자손이 그 집에 와서 나고, 악행을 쌓은 사람은 착하지 못한 자손이 그 집에 태어난다”고 하였다. 그러니 장릉이 이미 대낮에 승천하였으면 무슨 착하지 못함이 있기에 이렇게 요사하고 허망한 자손을 불렀는가? 천착(穿鑿)의 폐단이 다 이러한 것들임을 알겠다.
6) 도사가 기운을 합하는 잘못
『진인내조율(眞人內朝律)』에 “진인이 ‘예법에 남자와 여자가 초하루와 보름의 날이 되면 먼저 3일(日)을 재계(齋戒)하고 입조(入朝)하면 스승이 사방(私房)에 들어가고, 와서 이르는 스승이 공덕을 세우면 음(陰)과 양(陽)을 아울러 나오기를 명하고 공덕 세우기를 마치고 나가기를 청허(聽許)한다. 낮과 밤 여섯 때[時]에 항상 공덕을 세운다’”고 하였다.
또 『진인내례도가내시율(眞人內禮道家內侍律)』을 조사하여 보니 “내시(內侍)의 차례를 잃어서는 아니 되며, 외도(外道)를 탐하여서 중어(中御)의 가르침을 잃어서는 아니 되며, 밖으로 교접(交接)하기를 좋아하여서 내양(內養)의 예를 잃어서는 아니 되며, 앞에 있기를 좋아하여 내수(內修)의 일을 잃어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
노자가 “나의 스승이 나에게 『금단경(金丹經)』을 가르쳐서 나로 하여금 마음을 오로지하여 옥경(玉莖)을 기르게 했네. 삼(三)과 오(五)와 칠(七)과 구(九)로 음(陰)의 정기를 돌리고, 옥지(玉池)에 호흡하여 현명(玄冥)한 데 들어가서 행도(行道)에 반(半)을 지키면 태청(太淸)에 오르네”라고 하였다.
또 “노자가 ‘나의 스승이 나에게 스승의 정기(精氣)를 통하게 가르치니 금단(金丹)을 회식(會食)하여 태청에 올라가오. 내가 삼과 오를 행하고 칠과 구에 머무르며, 태현(太玄)을 호흡하여 문 어귀를 내며, 옥지를 굳게 지켜 도모(道母)에 절하네’라고 하였고, 적송자(赤松子)는 ‘나의 스승이 나에게 『금단경』을 가르쳐서 나로 하여금 마음을 오로지하여 옥경을 기르게 하오. 삼과 오와 칠과 구로 음의 정기를 돌리고, 옥지에 호흡하여 현묘한 성(城)에 들어가며, 행기(行氣)가 반을 지키면 태청에 오르네’”라고 하였다.
『진인내례예사가행도율(眞人內禮詣師家行道律)』에 “기(氣)를 행함에 차례대로 하고 마음대로 하여서는 아니 되며, 추함을 배설하여 좋음에 가까우면 차례 넘는 것을 초절(抄截)한다”고 하였다.
또 『도사례율(道士禮律)』에 “현자(玄子)가 말하기를 ‘격려하지 아니하면 세상을 지나게 되고 질투하지 아니하면 세상을 지내며 음과 양이 화합하면 용을 타고 간다’고 하였고, 적송자는 ‘목승선(木昇仙)이 생문(生門)을 여니 진인의 자부(紫府)에서 장호(腸戶)를 연다’”고 하였다.
견란(甄鸞)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옛날에 나이 스무 살 때에는 마음으로 도술을 좋아하여 여러 도사에게 나가서 먼저 황서(黃書)의 합기(合氣)와 삼과 오와 칠과 구와 남자와 여자가 교접하는 도를 행하였다. 눈이 넷이요, 콧구멍이 넷이요, 입이 둘이요, 혀가 둘이요, 손이 넷이라는 것은 마음으로 하여금 바로 음양을 대하여 음양의 법과 24기(氣)의 수에 맞게 도를 행하게 하는 것이다. 참비결은 단전(丹田)에 있다. 오직 금비(禁秘)로써 중요하게 여기고 도로에서 설정(泄精)하지 아니하며 서로서로 질투하여서는 아니 되니, 이를 행하는 자는 재액이 다 제거되어 진인이라 불리고 세상을 제도하며 연령을 늘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을 바꾸고 아내를 바꾸어서 오직 색(色)을 중요하게 여기고 아버지와 형이 앞에 서 있어도 수치스러움을 알지 못하여서 스스로 중기(中氣)의 참다운 술법이라 하였다. 이제 민간에서도 도사가 항상 이 법을 행하면서 이로써 도를 구하는 것은 허락하지 못함이 있지 아니할까?”
7) 천존과 교화의 자취를 펴는 잘못
『영보지혜정지통미경(靈寶智慧定志通微經)』에 “천존이 과거의 세상에는 도민(道民)이었는데 성은 낙(樂)이요 이름은 정신(淨信)이었다. 그가 도사에게 공양함으로써 천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우현진인(右玄眞人)은 과거의 때에 비구에게 재물과 명주와 음식들을 베풀었기에 이제 진인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도교에 있는 열 가지의 호는 다 자연히 응화(應化)한 것이어서 천존은 하늘보다 먼저 나고 업행으로 말미암아 얻어진 것이 아니며, 그는 본래 아버지 어머니가 없어서 음양을 품(稟)한 것이 아니니, 어찌 과거에 인(因)을 닦아서 이제 무극(無極)을 이루겠는가? 스스로 서로 모순되니 거짓이고 허망함을 알겠다. 만일 실지로 씨족(氏族)에서 난 것이면 어찌하여 전기에 싣지 않았는가?
『영보도명경(靈寶度命經)』에서는 “천존이 서하(西河)의 가에 나가 노닐면서 약수(弱水)의 위에 앉으시어 입으로 다섯 빛의 광명을 놓아서 널리 제천(諸天)의 사방을 비추니 변두리의 나라들이 모두 그 광명을 보고 어른 어린이 남자 여자가 모두 가서 머리를 조아렸다”고 하였다.
천존이 입으로 다섯 편의 진언(眞言)을 뱉어서 남자와 여자에게 베풀어 보였다 함을 이제 간략하게 말하겠다. 그러한 까닭은 적현(赤縣)의 신주(神州)는 대인(大人)이 앉을 곳이어서 성읍과 취락에 호구(戶口)가 매우 많으니 천존의 정성된 마음이면 평등해야 할 것인데 어찌해서 멀리 변두리의 나라에 노닐면서 가까이는 중국을 버렸는가? 그것은 신통의 힘이 두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백성들이 용렬하고 낮아서 교화를 견디지 못함이니, 그들의 용렬함 때문이라면 저들의 변두리에 있는 오랑캐들을 용렬하다고 본 것이 아닐까?
변두리의 오랑캐들이 이미 성스러운 힘의 수용(受容)을 입었으면 중국의 땅은 어찌해서 자비의 빛을 내리는 덕을 나타내지 않았는가? 만일 중국에 오지 못하였으면 이것은 곧 신령함이 없는 것이다. 다만 헛된 말을 꾸민 것이 도리어 거짓말이 되었다. 요사이 사실은 장사꾼들이 몰라서 돌아다니고 외국 사신들이 수없이 다니지만 아무런 발자취가 없다.
『지혜죄근경(智慧罪根經)』에 “스승을 가볍게 보지 말며 법을 소홀하게 여기지 말며 삼보를 오만하게 여기지 말라. 제12계(戒)에서 부처의 경전을 훔쳐서 허망하게 도요(道要)를 펴지 말라” 하였다.
『십이문론(十二門論)』에 “적적(寂寂)하여 진제(眞際)에 융합하고, 소소(蕭蕭)하여 지혜의 하수에 노니네. 한 번 대승의 바다에 들어가면 뉘라서 1천 겁이 많다고 헤아리겠는가? 삼계의 밖을 초월하여서 자비의 마음이 세간을 벗어나오. 부처님은 무심(無心)의 종(宗)이 되고 또한 사물이 있는 원인이 되어서 공덕을 세우는 데 일정한 주인이 없어 본원(本願)은 각기 사람에게 달렸소. 생각을 비워서 여러 중생을 제도하지만, 넓은 자비는 본래 고르지요”라고 하였다.
8) 제자(諸子)의 사상을 도교의 서적으로 삼은 잘못
『현도관경(玄都觀經)』을 검사하여 보니 스스로 도가라고 일컫는 전기와 부적과 도론(圖論)들이 통틀어 6천3백63권이 있다. 그 가운데 2천40권은 현재 있는 책으로서 계산하면 종이가 4만 54장이 필요하다.
현재 있는 도교의 서적 가운데 1천1백56권은 순수한 도교의 경전과 부도이고 그 나머지의 8백84권은 이것이 제자(諸子)의 책이다. 4천3백23권을 조사하여 보니, 도사 육수정이 송나라 명제(明帝)에 대답하여 올렸던 목록인데 그 목록과 책은 이제 모두 보지 못하는 것이다.
『양생경(養生經)』 1부 10권팽조(彭祖)가 편집하여 찬술함ㆍ『신선전』 1부 10권포박자(抱朴子) 갈홍(葛洪)이 편집하여 찬술함ㆍ『열선전(列仙傳)』 1부 10권유향(劉向)이 편집하여 찬술함ㆍ『이하론(夷夏論)』 1부 5권도사 고환(顧歡)이 편집하여 찬술함ㆍ『장자(莊子)』 1부 17권장주(莊周)에서 나오고 갈홍이 편집하여 찬술함ㆍ『포박자』 1부 20권갈홍이 지음ㆍ『광성자(廣成子)』 1부 4권상락공(商洛公)이 편집하여 찬술함ㆍ『윤문자(尹文子)』 1부 2권유흠(劉歆)이 편집하여 찬술함ㆍ『회남자(淮南子)』 1부 20권한나라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지음ㆍ『문자(文子)』 1부 11권문양(文陽)이 지음ㆍ『열자(列子)』 1부 8권열구(列寇)가 지음ㆍ『포박자복식방(抱朴子服食方)』 1부 4권갈홍이 지음ㆍ『최문자경(崔文子經)』 1부 7권최문자(崔文子)가 지음ㆍ『귀곡자경(鬼谷子經)』 1부 13권귀곡 선생이 지음ㆍ『복식금기경(服食禁忌經)』 1부 5권ㆍ『황제룡수경(黃帝龍首經)』 1부 5권현녀황인(玄女皇人) 등의 말임ㆍ『치련오석(治練五石)』 1부 8권ㆍ『괴이지(怪異志)』 1부 12권ㆍ『흥리택사법(興利宅舍法)』 1부 5권ㆍ『태현경경(太玄鏡經)』 1권ㆍ『안마경(案摩經)』 1권ㆍ『치병경(治病經)』 1권ㆍ『설음양경(說陰陽經)』 1권ㆍ『일월명경경(日月明鏡經)』 1권ㆍ『최문자주후경(崔文子肘後經)』 1권ㆍ『도주변화술경(陶朱變化術經)』 1권도주공(陶朱公)이 지음ㆍ『팽조기경(彭祖記經)』 1권ㆍ『양성경(養性經)』 1권팽조 등에서 섞여 나옴ㆍ『정심경(定心經)』 1권ㆍ『귀곡선생변화류경(鬼谷先生變化類經)』 1권ㆍ『사광위서궁자수약경(師曠爲西宮子授藥經)』 1권ㆍ『구궁시구서경(九宮蓍龜序經)』 1권ㆍ『도인도(導引圖)』 1부 1권ㆍ『하도문(河圖文)』 1부 9권하승천(何承天) 등이 편집하여 찬술함ㆍ『지초도경(芝草圖經)』 1권ㆍ『지초도(芝草圖)』 6권ㆍ『추양자경(鄒陽子經)』 1권ㆍ『강도왕사성(江都王思聖)』 1부 2권ㆍ『도덕현의(道德玄義)』 33권맹지주(孟智周)가 편집하여 찬술함ㆍ『필연론(必然論)』 1권ㆍ『영은론(榮隱論)』 1권ㆍ『수통론(遂通論)』 1권ㆍ『귀근론(歸根論)』 1권ㆍ『명법론(明法論)』 1권ㆍ『자연인연론(自然因緣論)』 1권ㆍ『오부론(五符論)』 1권ㆍ『삼문론(三門論)』 1권이다.앞의 여덟 개의 논서는 육수정이 지은 것이다.
도사들이 올린 도교 경전의 목록에 모두 “송나라 사람 육수정이 나열한 것에 의거한다” 하였는데, 이제 육수정의 목록을 조사하는 가운데는 현재 있는 경서와 약방문과 부도(符圖) 등 합하여 1천2백28권만 있고 본래 잡서(雜書)와 제자(諸子)의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 도사들이 나열한 것에 이에 2천40권이 있고, 그 가운데는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의 목록을 취하여 8백84권을 망령스럽게 취하여 도교의 경론으로 삼았다. 이와 같은 모양을 근거하였으니 이치로 봐서 괴이하다 하겠다. 왜냐하면 한자(韓子)와 맹자(孟子)와 회남자(淮南子)의 무리들이 모두 도의 일을 말하였으며, 또 8노(老)의 황백(黃白)의 비방(秘方)과 도주(陶朱)의 변화의 기술과 하늘을 뒤집고 땅을 거꾸러뜨리는 부적과 군사를 물리치고 귀신을 죽이는 방법과 약방문과 주염(呪厭)을 모두 도교의 서적으로 한다면 그 『연산(連山)』과 『귀장(歸藏)』과 『주림(周林)』과 『태현(太玄)』과 황제(黃帝)의 『금궤(金匱)』와 태공(太公)의 『음부(陰符)』와 음양서(陰陽書)와 『오성택도(五姓宅圖)』와 『칠십이장서(七十二葬書)』 등이 또한 도교의 서적이 되겠는가?
조사하여 보니 육수정이 전에 올렸던 목록 가운데는 모두 전의 서적들이 없었는데 이제 문득 모아 놓았으니 장차 무엇을 근거한 것인가?
『소도론(笑道論)』에 “제자(諸子)의 서적 3백50권을 허망하게 주석하여 도교의 경전으로 삼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만일 의지하고 근거함이 있다면 어찌하여 앞과 뒤의 주석이 동일하지 않은가?
또 사람에게 악함이 있으면 남이 알까 두려워하고, 자기에게 만일 착함이 있으면 남이 보지 못할까 염려한다. 그러기에 도사들이 스스로 “도교의 계를 받지 아니한 자는 전독(轉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 도교의 경전이 이와 같은 모양이니, 도교에 무슨 추함이 있기에 남이 알까 염려하는가? 만일 도사들이 주석한 것이 제자(諸子)의 서적으로써 도교의 서적으로 한다면 인민들 가운데 제자(諸子)들을 다 추입(追入)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조사하여 보니 도주(陶朱)라는 자는 곧 범려(范蠡)이다. 범려가 친히 월(越)나라 임금 구천(句踐)을 섬기다가 임금과 신하가 다 오(吳)나라에 포로가 되어서 똥을 먹고 오줌을 마셨으니 이것은 매우 심한 일이다. 또 범려의 아들이 제(齊)나라에서 죽임을 입었으니 아비가 이미 변화하는 기술이 있었으면 어찌하여 변화를 시켜 죽음을 면하지 아니하였는가?
조사하여 보니 『조립천지기(造立天地記)』에 “노자는 유왕(幽王) 황후(皇后)의 배 속을 의탁하여 태어났다”고 하였는데, 이는 곧 유왕의 아들이다. 또 “노자가 주나라 주하(柱下)의 사관(史官)이 되었다”고 하였으니, 이는 다시 유왕의 신하이다. 그런데 『화호경(化胡經)』에서는 “노자가 한(漢)나라에 있어서 동방삭(東方朔)이 되었다”고 하였으니,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유왕이 견융(犬戎)에게 죽임당할 것을 알았으면 어찌하여 군부(君父)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신기한 부적을 주어 군부로 하여금 죽지 않게 하지 않았는가?
또 한나라 무제(武帝)가 군사가 다하고 피폐하여 중국 천하의 호구(戶口)가 태반이 감하는 데 이르렀다. 그런데도 노자는 어찌하여 그의 부적을 주어서 군사를 물리치지 아니하였는가? 이러한 것들로써 증험하여 보면 주염의 방법이 어찌 그리 속임수인가? 어찌 그리 속임수인가? 『현도관경목록(玄都舘經目錄)』에 “도교 경전의 기(記)와 부(符)와 도(圖)와 논(論)은 무릇 6천3백63권인데 2천40권은 이미 있어서 현재 행해지지만 4천3백23권은 육수정의 목록에 의한 것으로 이미 정본(正本)이 없다”고 하였으니, 어찌 그리 속임수가 심한가? 그리고 육수정의 목록을 만든 것이 이미 큰 거짓이니, 그렇다면 이제 『현도록』은 거짓 가운데의 거짓이라 하겠다.
11. 역대상승편(歷代相承篇)
첫째, 도교에는 금강밀적(金剛密迹)과 사자(師子)가 없음
둘째, 불교와 도교는 형체와 복장이 다름
셋째, 도가의 절일(節日)
넷째, 종과 번(幡)이 같지 않음
다섯째, 기구의 이름이 같지 않음
여섯째, 행성(行城)에 맞지 않음
일곱째, 법에 의거하여 조배(朝拜)함
여덟째, 경의 목록 세우기를 청함
아홉째, 현도(玄都)와 동화(東華)는 도관(觀)이 아님
1) 도교에는 금강밀적과 사자가 없음
조사하여 보니 도가의 『사견론(四見論)』에는 무릇 21조(條)의 큰 뜻이 있으니, 첫째는 서치(序致)요, 둘째는 이름을 벌려 놓음[列名]이요, 셋째는 이름을 풀이함[釋名]이요, 넷째는 변색(辯色)이요, 다섯째는 기수(氣數)요, 여섯째는 이수(里數)요, 일곱째는 중수(重數)요, 여덟째는 이명(異名)이요, 아홉째는 출체(出體)요, 열째는 다소(多少)요, 열한째는 이동(異同)이요, 열두째는 광석(廣釋)이요, 열셋째는 증감(增減)이요, 열넷째는 추세(麤細)요, 열다섯째는 삼박(三縛)이요, 열여섯째는 7악(惡)이요, 열일곱째는 승겁(乘劫)이요, 열여덟째는 수명(壽命)이요, 열아홉째는 사상(事相)이요, 스무째는 5악(岳)이요, 스물한째는 문답(問答)이다. 통틀어 도가의 36천(天)을 밝혔다. 처음 황증(皇曾)으로부터 무상대라(無上大羅)에 이르기까지 여러 하늘이 모두 순서대로 있고, 도신(道神)들이 살고 있는 궁전과 누각과 금궐(金闕)과 옥성(玉城)과 보수(寶樹)와 경지(瓊枝)와 상금(祥禽)과 서조(瑞鳥)들이 그 가운데 나열되어 있는데, 오직 선동(仙童)과 옥녀(玉女)들이 태상을 시위하는 것만 있고 본래부터 금강의 신은 없었으며 밀적역사의 상은 보지 못하였다.
조사하여 보니 도가의 『현묘내편(玄妙內篇)』ㆍ『대진과(大眞科)』ㆍ『구천생신장(九天生神章)』ㆍ『혼성도(渾成圖)』ㆍ『무상진인전(無上眞人傳)』ㆍ『오악신선도(五嶽神仙圖)』ㆍ『청허전(淸虛傳)』ㆍ『좌선공전(左仙公傳)』ㆍ『현도율(玄都律)』ㆍ『경문제장(瓊文帝章)』ㆍ『등진은결(登眞隱決)』ㆍ『태평진과중경찬송(太平眞科衆經讚誦)』ㆍ『제천내음(諸天內音)』ㆍ『대소은서(大宵隱書)』ㆍ『무상진서(無上眞書)』에는 모두 금강역사(金剛力士)의 신은 없었다.
조사하여 보니 『삼천정법경(三天正法經)』ㆍ『외국방품경(外國放品經)』ㆍ『옥위경(玉緯經)』ㆍ『삼도순행경(三道順行經)』ㆍ『통현경(洞玄經)』ㆍ『통신경(洞神經)』ㆍ『통진경(洞眞經)』ㆍ『영서경(靈書經)』ㆍ『현단경(玄丹經)』ㆍ『관신대계경(觀身大戒經)』ㆍ『정지경(定志經)』ㆍ『도인경(度人經)』ㆍ『보현경(寶玄經)』 등에 모두 서(序)하기를 “태현(太玄)의 도읍과 옥광(玉光)의 주(州)와 금진(金眞)의 군(郡)과 천보(天寶)의 현(縣)과 원명(元明)의 향(鄕)과 정지(定志)의 리(里)와 금궐(金闕)과 옥경(玉京)과 청령궁(淸靈宮)과 극진궁(極眞宮)과 자양궁(紫陽宮) 등이 있으니, 이는 도가의 높은 신들이 앉아 있는 곳인데, 다만 기린과 봉황과 백작(白雀)과 주악(朱鶚)과 곤계(鵾鷄)와 영곡(靈鵠)과 적오(赤烏)와 청작(靑雀)들이 원유(苑囿)의 가운데 나열해 있고 궁대(宮臺) 안에 흩어져 있으나 또한 금강의 신과 밀적역사의 상(像)이 없었다”고 하였다.
이제 도사가 금강의 이름을 고쳐서 천강(天剛)이라 한 것은 조사하여 보니 조씨(曹氏)의 『태일식경(太一式經)』에 “황제(黃帝)가 치우(蚩尤)의 상란(喪亂)한 세상을 만났을 적에 어떤 신녀(神女)가 있어서 음과 양의 열고 닫는 절도를 밝힘으로써 선기(琁璣)의 돌아 행하는 법을 달통하고 6갑(甲)의 굽히고 펴는 징험에 통달하며 귀신의 영축(盈縮)의 응함을 더듬어서 하늘과 땅을 미루어 알며 정밀함을 다하고 미묘한 데 들어갔다.
그러기에 해와 달과 별과 사시(四時)와 5행(行)과 6률(律)과 7변(變)과 8절(節)과 9궁(宮)과 12진(辰)으로 베풀어서 위에는 신장(神將)으로써 이름을 세우고, 아래로는 일진(日辰)으로써 이름을 하여서 수(宿)가 합하는 진(辰)으로써 달을 삼았고, 신월(神月)이 세우는 기로써 진(辰)을 삼았다. 천강이라 이름한 것은 8월(月)의 신월이 유(酉)에 있는 것을 이름이니, 말하자면 만물이 강하고 굳세어서 가지와 잎이 굳세고 야들야들하며 열매가 굳고 강하기에 천강이라 한다”고 하였다. 여러 서적에 모두 “천강은 월장(月將)의 이름이다” 하였으니 도가의 신은 아니다.
『통방내경(洞房內經)』에 금강역사가 있고, 『신주경(神呪經)』에 밀적역사 3만억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다 허랑한 말이다.
조사하여 보니 구류백씨(九流百氏)의 서적에 “날개 달린 벌레가 3백60인데 봉황새가 그 위가 되고, 털 난 벌레가 3백60인데 기린이 그 위가 되며, 갑(甲) 달린 벌레가 3백60인데 용이 그 위가 된다” 하였다.
『춘추(春秋)』에는 “기린과 봉황 등의 다섯 영물(靈物)은 임금된 자의 아름다운 상서다” 하였으나 사자는 논하지 않았으며, 삿됨을 피함이 있다고 말하지 않아서 이 전분(典墳)에는 진술하지 않음이 없었다. 한나라로부터 오직 서역 지방에서 드린 자가 있다고 전하였으니, 현재의 것으로 옛 것을 증험하여 일을 즉면해서 알 만하다.
그런데 만일 도가에서 먼저부터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하수와 한수(漢水)를 말함과 같아서 사람들의 정에 가깝지 않은 것이다. 저 『삼천신선대도의(三天神仙大道儀)』에는 금강역사가 있으며, 『도인경(度人經)』에는 오색(五色)의 사자가 있고, 『본상경(本相經)』에는 일곱 색깔의 사자가 있다.
『본상경』에 “천존의 문 안에 사자와 사나운 범이 있어서 문의 좌우를 지키며 하늘을 항거하는 역사가 앞과 뒤를 위혁(威赫)한다” 하였다.
조사하여 보니 한나라와 위나라와 진(晋)나라의 3도(都)와 양 경(兩京)과 강남(江南)과 회북(淮北)의 여러 도사의 관(觀)에는 오직 박[瓠罏]으로써 경의 근본을 삼았고, 천존의 상과 금강신이 없었다.
그러니 오늘날 짓는 것은 다 육수정과 장빈(張賓) 등이 위경(僞經)에 말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금강과 사자는 법을 보호하는 착한 신이기에 진(晋)나라 이전에는 도사의 관 안에는 또한 일찍이 없었으며, 나아가 비송(碑頌)과 찬영(贊詠) 등에도 다 논하지 않아서 사적(史籍)과 문전(文典)에 싣지 않았던 것이다.
청하여 묻는다. 옛 일을 많이 알고 지금 세상에 통달한 선비들이 정전(正典)을 상고하여 연구하면 스스로 헛됨과 실지임을 알 것이다. 만일 『도인경』과 『본상경』 등을 의거하면 천존은 사자를 타고 연꽃에는 앉지 않았다.
2) 불교와 도교는 형체와 복장이 다름
여래는 홍조(紅爪)와 감발(紺髮)과 과순(果脣)과 화목(花目)과 만자(萬字)와 천망(千輞)과 월면(月面)과 일륜(日輪)과 32상(相)과 80종호(種好)가 있으며, 입는 옷은 금루(金縷)로 짠 것이다. 1천 잎의 연꽃 위에 앉으셨으니 형체를 그릴 수 있고 모양을 채색할 수가 있다.
노자는 코에 쌍주(雙柱)가 있고 두 귀는 삼루(參漏)하고 머리는 뾰족하고 입은 높으며 입술이 두텁고 이가 성글며 다리는 음양과 오행의 그림을 밟았고 손에는 십자(十字)의 글을 잡았으며 하늘을 법하는 관(冠)을 이고 땅을 모양하는 신을 끌었으며 머리털은 희고 얼굴이 쭈그려지며 늙고 안색이 쇠하였다.
『도은거내전(陶隱居內傳)』2)에 “모산(茅山)에 불교와 도교의 두 당(堂)을 세워서 하루 건너 예배한다. 부처의 당에는 상이 있고 도교의 당에는 상이 없다. 그러한 까닭은 도교는 본래 형체가 없어서 다만 원기(元氣)뿐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양생경(養生經)』에서는 “도라 함은 기(氣)다. 기를 보전함을 도를 얻었다고 한다. 예부터 달통한 선비는 기로써 도를 삼아서 따로 도교의 신은 없다. 만일 따로 있다고 말했다면 옛날의 서적들이 어찌하여 싣지 않았겠는가?” 하였다. 그러니 이제 도교에 형상을 짓는 것은 무엇을 의지하여 법을 취하였는가? 만일 형체가 있다면 옛날에는 어찌하여 전하지 않았을까?
3) 도가의 절일(節日)
조사하여 보니 도가의 금록(金錄)과 옥록(玉錄)과 황록(黃錄) 등의 『재의(齋儀)』와 『통신(洞神)』과 『자연(自然)』 등의 여덟 가지 재의 법식에는 오직 3원(元)의 절(節)만 있으니, 말하자면 공거천상(功擧遷上)이요, 말하자면 공장삼회(功章三會)에는 남자와 여자들이 함께 향거호속(鄕居戶屬)을 펴서 보호를 청하였다.
정월 5일이 상원절(上元節)이 되고, 7월 5일이 중원절(中元節)이 되고, 10월 5일이 하원절(下元節)이 된다. 이날이 되면 도사가 장(章)을 아뢰어서 천조(天曹)에게 말을 올려서 천달(遷達)하며 장수하기를 바란다. 7월 15일은 도가의 절일이 아니다.
4) 도가의 종(鍾)과 번(幡)이 같지 않음
도가의 법에 의거하면 보통 여섯 때에 종을 치는 것이 맞지 않다. 왜냐하면 조사하여 보니 도사들이 숭상하는 것이 3대(大)의 재법(齋法)에 갖추어져 있다. 금록과 옥록과 황록 등의 재 의식에는 가지가지로 모두 시설하지만 본래 종은 논하지 않았으며, 또한 북을 울리지 않았고 다만 안시(安施)를 이미 마쳤다고 말하였다. 안시를 이미 마쳤으면 높고 낮은 이가 서로 차례대로 밖의 단으로부터 들어가서 천문(天門)에 이르면 먼저 이를 두드리고서 중간 단에 들어가서 세 번 향을 올려 마친 뒤에 상계(上啓)한다 하였다.
『옥경산경(玉京山經)』의 보허사(步虛詞)에는 “오래 재를 올리고 현도에 모여서 옥을 울리면서 경종(瓊鍾)을 치고, 법고(法鼓)로써 여러 신을 모아서 영창(靈唱)함이 두루하지 않음이 없네”라고 하였다.
이는 여러 신선의 집회(集會)를 말한 것이다. 이에 음악을 베풀어서 북을 울리고 경쇠를 치니 경종이라 함은 다만 옥경(玉磬)뿐이고 가창(歌唱)으로 도군(道君)을 즐겁게 한다.
그러기에 『제천내음(諸天內音)』에 또 “누도(樓都)의 북과 장아(長牙)를 울리고 종을 친다”고 하였다. 이는 9성(成)의 음악을 갖춘 것이어서 아침에 옥경에 연회를 베푼 것이니, 불가에서 여섯 때로 종을 쳐서 대중을 모아 도를 행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청하나니 재의 의식을 검사하여 흑백을 가리겠으니, 또 도교의 법에 의거하면 불가에서 찰(刹)을 세우고 번을 다는 것과는 맞지 않다.
조사하여 보니 『금록황록대재의(金錄黃錄大齋儀)』와 『현도율(玄都律)』과 『제천내음』 등에는 가지가지로 나열하여 놓았지만 모두 번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허사에는 옥경을 찬성하여 읊었지만 다만 황황(煌煌)하게 빛나는 경지요, 높고 높은 보대(寶臺)여서 금찰(金刹)과 금자(金姿)와 용가(龍駕)가 불꽃같이 와서 봉황을 울리고 절(節)에 응하여 신령스러운 바람이 꽃다움을 부채질하니 붉은 연기가 궁(宮)을 이루고 하늘 음악으로 서로 즐거워하지만 절대로 번의 일은 없었다.
청하나니 그 뜻에 의거하여 『통방내경(洞房內經)』에 열 가지 절묘(絶妙)하고 신령스러운 번에 연이어 쓰기를 아홉 자에 흰 글씨를 써서 마(魔)를 명하여 다섯 방소에 두고 방소를 따라 색칠을 하여서 흰 흙으로써 푸른 비단 위에 써서 동쪽의 신의 이름을 지어서흰 가루로 옛 글자를 지어서 동쪽의 신의 이름을 썼다. 당방(當方)에 두었으니 명(命)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만일 산에 산다면 오색의 비단에 쓰고 위에는 부적의 글을 쓰기를 “구천풍기 현구진서(九天風氣玄丘眞書)”라고 써서 다만 두 다리만 세우고 도무지 잡색(雜色)은 쓰지 않았으며 다시 큰 번은 없었다. 금록 등의 재의 글에는 종과 번은 나열하지 않았으며, 또한 제벌(制罰)의 의식도 없었다.
『명진과(明眞科)』에서 “죽은 혼을 빼서 속죄하려고 항상 정월과 3월과 5월과 7월과 9월과 11월에 의식을 행하며 또 월(月)의 1일과 8일과 14일과 15일과 18일과 23일과 24일과 28일과 29일과 30일에 의식을 행하며, 8절(節)의 갑자일과 경신일에 명진재(明眞齋)를 한다.
봄에는 9일 낮 9일 밤을, 여름에는 3일 낮 3일 밤을, 가을에는 7일 낮 7일 밤을, 겨울에는 5일 낮 5일 밤을, 사계(四季)의 달에는 12일 낮 12일 밤을 재를 올린다.
재를 올릴 때에는 중간 뜰에 하나의 장등(長燈)을 켜니 높이가 아홉 자이다. 천선(天仙)과 지선(地仙)과 진인(眞人)과 비선(飛仙)과 일월(日月)과 9궁(宮)과 5제(帝)와 5악(岳)과 3하(河)와 4독(瀆)의 신들을 계청(啓請)하여서 낮에는 향을 사르고 밤에는 등을 켠다.
도사는 중간 뜰의 등 밑에서 등을 돌며 도를 행하여 두루 시방의 영보천존(靈寶天尊)에게 예배할 적에는 다 수건을 벗고 고두(叩頭)와 박협(搏頰)을 하며 혹은 여덟 번이나 혹은 열한 번이나 혹은 이백여든여덟 번을 한다.
만일 액난(厄難)일 적에는 붉은 글씨로 진문 다섯 편을 쓰고 중간 뜰에서 다섯 책상을 각각 한 방소에 두고 그 책상 위에는 진문을 안치한다. 또한 상금(上金) 다섯 냥으로 다섯 마리의 용의 형체를 지어서 다섯 책상을 진압한다. 또한 다섯 색의 무늬가 있는 비단을 써서 신(信)을 삼아 5제(帝)의 자리를 진압한다.
또한 해를 따라 붉은 무늬로 신을 삼으며 진문을 받을 적에는 금룡(金龍) 세 매(枚)를 수부(水府)와 영산(靈山)과 주택(住宅)의 세 곳에 던진다. 그리고 금전 2만 4천을 써서 24기(氣)를 의뢰하면서 여섯 때에 참회ㆍ사과하고 중간 뜰에서 일을 행하지만 모두 번을 달거나 종을 치지 않는다. 『명진과』에서는 그 일을 말하지 않았다.
『불설태자서응경(佛說太子瑞應經)』에는 “부처님이 처음 날 때에 5백 마리의 사자가 설산(雪山)에서 와서 문 옆에 시위하여 벌여 섰다” 하였으며, 『살바다론(薩婆多論)』에는 “돌사자의 효후(哮吼)함이 있었기에 여러 외도들을 항복시켜 가람(伽藍)을 지키고 보호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는 서역으로부터 나왔다. 오늘날 바치는 것은 다 서역으로부터 온 것이다. 지금으로써 옛 것을 증명함에 일이 눈으로 증험하듯 하다.
『인왕경(仁王經)』에는 “번의 길이가 다섯 길이다”라고 하였으며, 『약사경(藥師經)』에는 “번의 길이가 49척(尺)이다. 다 오색의 여러 비단을 갖추었으며 그로써 나라를 보호하고 수명을 연장하고 장애를 돌리고 재앙을 녹인다. 용구(龍鉤)에 걸어두고 봉찰에 메어단다”고 하였다. 그러니 가령 도가에서 있다 하여도 교의 종지가 이미 다르고 번의 만듦이 또한 다르다. 응당 색채를 구별함이 없이 양과 수를 공동되게 하여서는 안 된다.
『우란분경(盂蘭盆經)』에는 “7월 15일 승(僧)이 자자(自姿)할 때에 우란분을 받쳐서 공양하는 자는 일곱 대(代)의 부모의 고통을 구한다”고 하였다. 요사이 여러 주(州)의 도사들을 보니 또한 이 법을 행하고 있으니, 어찌 외람되지 않겠는가?
5) 기구의 이름이 같지 않음
『승기율(僧祇律)』 등에는 “법에 응해서 조관(澡灌)3)은 목은 가늘고 배는 크게 하여 호정(護淨)에 편하게 하고 착함을 내고 도를 길러서 가장 요긴하게 씀이 된다. 그 때문에 부처님께서 이를 만드시는 것을 찬탄하셨고, 여러 제자들이 아울러 가지게 하였다”고 하였다.
요사이 도사들을 보니 또한 이 기구를 가지고 있다. 만일 불가의 병 쓰기를 즐긴다면 또한 승려가 사용하는 발우를 받아 가져야 하는데 발우를 이미 즐겨 쓰지 않는다. 그러니 병도 이치로 봐서 또한 쓰지 않아야 한다.
조사하여 보니 내법(內法)에 재를 올리면 밥을 받고서는 먼저 주원(呪願)과 창(唱)을 하고서 공양을 한다. 이 법은 모두 『십송률(十誦律)』에서 나왔다. 요사이 도사들을 보니 또한 다 주원을 하고 창(唱)들을 올려 공양한다. 도교에서 이미 그러한 글이 없으니 무엇을 의거한 것인가?
단(檀)이라 함은 서역의 말로서 중국에서 번역하여 시(施)라고 쓰며, 월(越)이라 함은 건넌다는 말이니, 만일 단을 행하면 나고 죽음에서 월도(越度)한다. 그러기에 단월(檀越)이라 한 것이요, 우바이(優婆夷)라 함은 역시 서역의 말로서 중국에서 번역하여 청신녀(淸信女)라고 한다.
요사이 도사들을 보니 또한 속인들을 단월이라 부르며 우바이라 하니, 무슨 전적을 근거로 하여 이렇게 부르는가? 청하건대 각기 자기들의 경을 의지하여 따로 이름을 세워야 할 것이다. 만일 도사가 부처의 법을 좋아하면서도 고쳐 쓰기를 즐기지 않는다면 또한 저 도의 글자를 고쳐서 보리(菩提)라고 일러야 할 것이요, 만일 그것이 서역의 말이어서 즐겨 일컫지 않는다면 단월이니 우바이니 하는 명칭을 또한 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6) 행성(行城)에 맞지 않음
『태자서응경(太子瑞應經)』 등에 “2월 8일은 사천왕(四天王)이 태자의 말 발꿈치를 받들어 왕성을 넘어서 출가한 날이다. 이로 인하여 행성(行城)의 법이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태자의 말의 발자취를 추모하여 성인을 연모하는 정을 표한 것이다.
그런데 보니 요사이 여러 주와 현에서 도가들이 또한 이 법을 행한다. 행성할 때에는 이에 창원(唱願)하기를 “내가 도량(道場)에 앉아서 향과 꽃으로 공양한다”고 하였는데 도교에서는 오직 부처의 글자를 고쳐서 도교로 한 것이 다를 뿐이다. 다만 도가에서는 이미 이러한 법이 없었으니 분명히 허망하여 실답지 못함을 알겠다. 만일 그러한 법이 있었다면 어떤 경고(經誥)에서 나왔는가? 이로써 준하면 여러 일들이 많이 불교의 의식에 붙였다고 하겠다.
7) 법에 의거하여 조배(朝拜)함
『사분율(四分律)』과 여러 경에 모두 “백의(白衣)는 스님에게 예배하고 스님은 속인을 공경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도가에 의거하여 보면 노자는 스승인데도 신하라 일컬어 임금에게 배례(拜禮)하였다. 요사이 보니 도사들이 임금에게 배례하지 않는 것은 비록 도사의 정에 따르는 것이라 하지만 노자의 말에는 어긋난다. 구차하게 자기의 진취를 탐해서 종(宗)에 어긋남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니 다만 자신이 영달하고자 하여서 어찌 종지(宗旨) 잃음을 기약하겠는가?
만일 본사(本師)의 법에 의거한다면 합당히 도사는 신하라 일컫고, 여관(女官)은 첩(妾)이라 일러야 하며, 원정(元正)과 동지(冬至)에는 다 홀(笏)을 가지고 신을 끌면서 임금에게 조배(朝拜)하여야 한다. 이러한 짓은 곧 도사들의 요풍(澆風)을 바꾸어서 돌이켜 노자의 근본 가르침에 돈독한 것이라 하겠다.
8) 경의 목록 세우기를 청함
조사하여 보니 예전과 지금의 불가에서는 일체경(一切經)의 목록을 세웠으며 번역한 제왕의 연대와 아울러 의심되고 거짓됐다는 별부(別部)를 주석하였다. 그것은 백성들을 미혹시키고 혼란하게 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지금의 도가는 번역하였다는 것이 먼저 없고 이어서 기목(記目)을 세워서 혹은 불교의 경전을 의방(依傍)하고, 혹은 별도로 가조(假造)하였으면서 연월(年月)을 기록하지 않고 세대(世代)를 자세히 쓰지 않아서 장치와 축이 불교의 경전과 한 가지가 되었다.
거짓말이 공중에서 스스로 나왔는지 혹은 도교의 골짜기에서 날아 왔는지 세상에 성하게 행하여져서 하우(下愚)들을 의심나고 잘못되게 하였다. 근자에는 대업(大業) 말년에 5통관(通觀)을 한 도사 보혜상(輔慧詳)이 3년 동안 묵언(默言)하고서 불교의 『열반경』을 고쳐 『장안경(長安經)』이라 하고서 당시에 금약(禁約)해서 성문(城門) 밖으로는 내놓지 않고 집 안에서 보고서 누런 옷을 입은 이를 잡아서 유수(留守)에게 보내니, 불교의 경을 고친 일이 발각되어 상서 위문승(衛文昇)이 임금께 아뢰어서 금광문(金光門) 밖에서 죽임을 당한 것은 듣고 본 이들이 한가지로 증험하였다.
일이 발각된 자는 이미 그러하지만 발각되지 않은 것도 있으니 청컨대 대덕(大德)과 명승(名僧)과 유생(儒生)과 도사들로 하여금 재보(宰輔)와 조준(朝俊)을 대하여서 안팎의 경과 역사를 자세히 검사하여 옳고 그름을 간정(刊定)하며 목록을 세워 기록하여서 삿되고 거짓됨을 쉬게 하여 도를 사모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종(宗)을 의지하여 자세히 배워 길이 미망(迷妄)함을 끊게 하여야 하겠다.
9) 태현(太玄)은 도읍이고 동화(東華)는 궁실임
『사견론(四見論)』에 “삼계 밖에 4민천(民天)이 있으니, 이른바 동화(東華)와 남리(南離)와 서령(西靈)과 북진(北眞)이다. 인(仁)을 행하는 자는 동화궁(東華宮)에 나고, 예(禮)를 행하는 자는 남리궁에 나며, 의(義)를 행하는 자는 서령궁에 나고, 신(信)을 행하는 자는 북진궁에 난다. 말하자면 삼계의 안에 큰 겁이 교대할 때에 네 가지의 행이 있는 자는 그곳의 백성이 되니, 왕모(王母)가 그를 맞아 사천(四天)에 올라와서 하민(下民)이 된다’고 하였다.
『석명(釋名)』에는 “도읍[都]이라 함은 관(觀)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화하(華夏)의 땅은 제왕(帝王)이 사는 곳이고 1만 나라가 돌아와서 모인다. 처소가 화려하고 물건이 화려하니 이를 일러 육해(陸海)라 하고 볼 것이 있기 때문에 도(都)라 한다. 『찬문(纂文)』에는 “경(京)과 도(都)는 다 큰 것이다. 큰 것을 도라 이르고, 작은 것을 읍이라고 이르는데 천존이 다스리는 곳이기에 현도라고 일컫는다”고 하였으며, 『석명』에는 “천자(天子)가 있는 곳을 도라 하고 궁이라 하며, 제후들이 사는 곳을 제(第)라 하고 댁(宅)이라 하며, 손님이 머무는 곳을 관(館)이라 하고 어진 이가 모이는 곳을 관(觀)이라고 하니, 지금의 홍로(鴻臚)와 홍문(弘文)과 같은 것이다. 이 때문에 장형(張衡)의 『양경(兩京)』 좌사(左思)의 『삼도(三都)』에는 관(觀)이라고는 하지 않았는데 지금 도와 궁으로써 관이라 한 것은 그의 뜻이 아니다”고 하였다.
『석명』에는 “관(觀)이라 함은 위에서 관망(觀望)하는 것이다. 한나라 궁전의 이름이 장안(長安)인데 57개의 관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이아(爾雅)』에서 궁을 해석할 적에 관이라는 글자가 없었다.
그러니 만일 도를 고쳐서 관이라 하는 것은 높은 이를 강등(降等)시켜 낮은 데로 나아감이요, 관으로써 궁에 대치(代置)하는 것은 다시 큰 것을 퇴보(退步)시켜 작은 것을 짓는 것이다.
그리고 또 사민(四民)의 천궁은 천존이 앉을 곳이 아닌데도 이제 도관(道觀)을 삼은 것은 이치가 맞지 않다. 이름이 이렇게 바르지 못하고 법이 또한 삿되다. 어찌해서 낮은 관이라는 이름을 쓰고 선궁(仙宮)이라는 호를 폐하는가?
12. 귀심유지편(歸心有地篇)
1) 양나라 무(武)황제가 도교를 버리는 칙문(勅文)
천감(天監) 3년 4월 8일에 양나라 황제 난릉 소연(簫衍)은 머리를 조아리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시방의 높은 법과 시방의 보살승에게 화남(和南)합니다. 삼가 경문의 현묘한 뜻을 보니 이치를 반드시 전표(銓表)하여 “보리의 마음을 발한다”라고 한 것은 곧 부처의 마음이다. 그 나머지의 온갖 착한 것은 비유하여 말할 수가 없으니 중생으로 하여금 삼계의 괴로운 문을 벗어나서 무위(無爲)의 뛰어난 길에 들어가게 합니다.
공을 표(標)하고 이치를 살핌에 연현(淵玄)하고 미묘하며 뜻에 나아가 말을 세워서 용(用)을 인하여 나타남을 이룬다. 그러기에 여래의 누(漏)가 다한 지혜는 견고히 깨달음을 이루고, 지극한 도는 기틀에 통달하는 덕이 원만하여 성인을 취합니다.
지혜의 횃불을 발하여 미혹한 이를 비추고 법의 흐름을 거울삼아서 더러움을 맑힌다. 상서의 자취를 하늘 가운데 열었으며 신령스러운 거동을 상(像) 밖에 불태워서 중생들을 고통 바다에서 건지고 함식(含識)을 인도하여 열반에 나가게 하며 항상하고 즐거운 높은 산에 올라서 애욕의 바다의 깊은 즈음에 벗어납니다. 말은 4구(句)에 어긋나고 의론은 백비(百非)에서 초절(超絶)하였습니다.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자취를 응하여 정반(淨飯) 왕궁에 남을 보이셨고, 왕궁에 모양을 탄생하시어서 삼계에 걸음하여 높은 이가 되었으며, 보리의 나무에 빛을 이루시어 널리 대천세계(大千世界)에 비춤을 흘리었습니다.
이 국토의 근기와 정식(情識)이 얕고 얇아서 싫어하고 게으름을 내기 좋아하기에 스스로 2개월 뒤면 쌍림(雙林)에 이를 것을 기약하셨으니, 이는 또한 원상(圓常)을 담설(湛說)하신 것이요, 또 학수(鶴樹)에서 빛남을 잠기신 것입니다.
아사세왕(阿闍世王)이 죄를 멸하였고 바수밀다(婆藪密多)가 재앙을 덜었으니 그들이 만일 큰 성인의 법왕(法王)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뉘라서 구제하여 인접(引接)하겠습니까? 자취에 있어서는 비록 숨으셨지만 그의 도는 이지러짐이 없습니다.
이 제자가 오랫동안 미혹하고 거칠어서 노자를 탐하여 섬겨서 역대(歷代)로 서로 이으면서 이 삿된 법에 물들었으나 익힌 인(因)이 좋게 발하여 미혹함을 버리고 돌아설 줄 알았습니다. 이제 옛날에 익혔던 것을 버리고 바른 깨달음에 귀빙(歸憑)합니다.
원하오니 미래의 세상에 동남(童男)으로 출가하여서 경의 가르침을 널리 펴서 중생들을 화도(化導)하여서 다 함께 성불하고, 여러 지옥에 들어가서 널리 군맹(群萌)을 제도하겠습니다. 차라리 바른 법 가운데 있으면서 길이 악도에 빠질지언정 노자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잠깐 하늘에 남을 얻는 것을 즐겨 하지 아니합니다. 대승의 마음을 건너고 2승(乘)의 생각을 여의겠습니다. 바로 원하오니 모든 부처가 증명하시고 보살들이 섭수(攝受)하옵소서. 소연(簫衍)이 화남합니다.
칙지(勅旨)를 신필(神筆)로 스스로 중운전(重雲殿)의 중각 위에서 쓰면서 보리의 마음을 발하니 그때에 승속[黑白] 2만 사람이 또한 같이 발심하여 받아 가졌다.
문하에 칙명을 내렸다.
“큰 경에서 말한 도에 아흔여섯 가지가 있는데 오직 부처님의 한 도만이 바른 도이고 그 나머지의 아흔다섯 가지는 다 외도이다. 짐이 외도를 버리고 여래를 섬긴다. 그러니 만일 공경(公卿)으로서 이 서원(誓願)에 들어오는 자가 있으면 각각 보리의 마음을 발해야 할 것이다.
노자와 주공과 공자 등은 비록 여래의 제자들이지만 교화를 폄이 이미 삿되어서 세간의 착함을 한데 그쳤고 범부를 고쳐 성인을 이루지를 못하였다. 그러니 공경과 백관(百官)과 후왕(侯王)과 종실(宗室)들은 거짓을 돌려 참됨에 나아가고 삿된 것을 버리고 바른 데 들어와야 한다.
경의 가르침인 『성실론』에서 ‘만일 외도를 섬기는 마음이 무겁고 부처의 법을 믿는 마음이 가벼우면 이것이 곧 삿된 견해이고, 만일 마음이 하나여서 다 같이 무기(無記)면 착함과 악함에 해당하지 않으며 부처를 섬기는 마음이 강하고 노자를 믿는 마음이 적은 자는 이를 청신(淸信)이라 한다’ 하였다.
청신이라 함은 청(淸)은 밖과 안이 함께 청정하여서 때의 더러움과 미혹한 누(累)가 다 없어진 것이요, 신(信)은 바름을 믿어 삿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기에 청신한 부처님의 제자라 말하고 그 나머지의 여러 착함은 다 삿된 견해여서 청신이라고 일컬을 수가 없다. 문하에서 속히 시행하여라.”
천감(天監) 3년 4월 11일 공덕국주(功德局主) 진석(陳奭)ㆍ상서(尙書) 도공덕주(都功德主) 고(顧)ㆍ상서령(尙書令) 하경용(河敬容)ㆍ중서사인(中書舍人) 임효공(任孝恭)ㆍ어사중승(御史中丞) 유흡(劉洽)ㆍ조고사인(詔告舍人) 주선(周善).
2) 소릉왕(邵陵王)4)이 칙명을 받들어 노자의 법을 버리고 보살계 받기를 허락해 달라고 청함
신(臣) 윤(綸)은 아뢰나이다.
신이 듣기로는 여래의 단엄(端嚴)하신 상호는 높고도 높아 유정(有頂:有頂天)을 능가하시고 미묘(微妙)하신 색신(色身)은 밝고도 밝아 무제(無際:끝없는 세계)에 드러나신다 합니다. 금륜(金輪:금륜왕의 상징물)에 의하시어 만물을 계도하시고 은속(銀粟:돈륜왕과 속산왕 등 군소왕)에 맞추어 범인에 응하시며, 반야의 예리한 검을 갈고 열반의 열매를 거두시며 생사의 고해(苦海)에 배를 띄워 상락(常樂)의 저 언덕으로 인도하시옵니다.
하옵기에 자비의 구름을 드리우사 감로의 비를 내리시니 칠처(七處)와 팔회(八會)에서 교화하신 이치가 끝이 없고 오시(五時)와 사제(四諦)로써 이익을 주신 방편이 다함이 없으시니 모두가 얼음이 맑고 햇빛이 밝고 안개가 걷히고 구름이 흩어지며 타오르는 불꽃이 빛을 가리우고 뜨거운 모래바람이 저절로 고요해진듯 함을 얻게 하시옵니다.
실로 세속에 드셔서는 어리석음을 감화시키시고, 세속 밖에서는 이 진여를 성취하셔서 삿된 소견의 빽빽한 숲에 빠진 사람으로 하여금 법문을 우러르기에 게으름이 없게 하시고 갈애(渴愛)에 눈멀고 귀먹은 인사로 하여금 거룩한 진리를 흠모하여 돌아갈 곳을 알게 해 주시나이다.
도수(道樹:보리수이나 여기서는 부처님을 가리킨 듯)가 가유(迦維:가비라국)에서 시작하여 덕음(德音:불법)이 서울[京洛]에서 성대해짐에 이르기까지 항성(恒星)이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주(周) 때에 그 조짐이 비추었고 만월(滿月) 같이 둥근 모습이 한왕(漢王)의 꿈에 보였나이다.
오법(五法)5)으로 전하시니 만덕(万德)이 비로소 싹텄고 화락(華洛:낙양중화)에 옛법이 사라지더니 고매한 도덕의 바람이 드높이 일었나이다.
삼명(三明)6)을 의지하여 미혹한 길목의 실수를 비추었고, 칠각(七覺)을 의지하여 긴긴 밤의 고통을 구제하였나이다.
때마침 황제보살(皇帝菩薩)께서 천명에 응하사 천하를 통치하시고 어좌에 앉으사[負] 백성을 다스리시니 빛이 우주를 감싸고 광채가 땅 끝에 미치시옵니다. 무애변(無碍辯)을 드리우사 만백성을 두루 접하시고 본원력(本願力)으로 뭇 중생을 거두어 주시나이다.
그러므로 어디서나 병에 맞추어 약을 지으시고 권(權:方便)으로써 그 원인[因]을 드러내시되 일승(一乘)의 취지 드높이시고 십지(十地)의 터를 넓히셨나이다.
그런 까닭에 만방(万邦)이 회향(廻向)하여 모두가 바른 식견(識見)을 물려받았고, 유현(幽顯)의 영기(靈祇)는 모두가 친절한 구제를 받았나이다.
사람들은 부처님과 가까워지려는 원을 세웠고 중생들은 보리심을 일으키고는 모두가 근본 경지로 돌아가기를 바랐으며 근원으로 돌아가는 길목을 기뻐했나이다. 모두가 자비를 보전하고 다 같이 인욕을 닦았으니, 이른바 덮어주고 이롭게 해 주며 돌다리와 나룻배가 되어 주는 것이옵니다.
도법이 이미 이와 같이 널리 퍼지자 백성 또한 감화되었으니 이에 응진(應眞)의 비석(飛錫)의 그림자가 허공에 이어졌고 사도와 외도를 부수는 힘으로 국정을 굳게 지탱하고 있사오며, 가람과 정사의 보찰이 추녀를 맞대어 이어졌고, 도와 경전을 논하고 전하는 소리는 간 곳마다 귀에 가득하나이다.
신은 지난날 근본이 되는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잘못하여 외도의 법을 받았었사오니 마치 단 과일을 먹고자 하면서 쓴 씨앗을 심은 것 같고 기갈을 면하고자 하면서 도리어 바닷물을 찾는 것과 같았나이다.
이제 잘못 접어든 길을 깨닫고서야 비로소 가야 할 곳을 어렴풋이 알았사옵기에 보살대계를 받아 몸과 스스로의 마음을 단속하고 노자의 삿된 가풍을 버려 법류(法流)의 참된 가르침에 들고자 하오니, 바라옵건대 높으신 자비를 내리시어 허락하여 주옵소서.
천감(天監) 4년 3월 17일 시중(侍中) 안전장군(安前將軍) 단양윤(丹陽尹) 소릉왕 신 소륜(簫綸) 아룀.
이에 대한 대답[勅]
미혹을 고치고 바른 길로 들어오니 숙세에 수승한 인을 심었다 하리라. 더욱 용맹정진하도록 하라.
천감 4년 3월 18일 중서사인(中書舍人) 신(臣) 임효공(任孝恭) 발표함.
3) 상서(尙書) 우복야(右僕射) 채국공(蔡國公)에게 드리는 글
제법사(濟法寺)의 석법림(釋法琳)은 상서 우복야 채국공 좌하[足下]에 아룁니다.
법림은 초의(草衣)를 걸친 야객(野客)으로서 목실(木實)을 먹는 산인(山人)이니 마치 굽은 바늘과 같고 썩은 겨자를 닮았나이다.
세상에 알려질 만한 것이 없은즉 마땅히 평생 동안 입을 다물고 분수껏 지내야 할 것이온데 이미 덕을 안으로 쌓는 일에 부끄러움이 있고 명예는 겉으로 가득 채우는 일에 창피함이 있사오니 이 어찌 혜원(慧遠)을 저버리는 것뿐이겠습니까? 실로 도안(道安)에게까지 누를 끼치는 일이옵니다.
그러므로 청계(靑溪)에 뜻을 다하고 자개(紫蓋)에 마음을 붙이며 복선암(覆船巖) 밑에서 영원히 경서(經書)에 맛들이고 귀곡지(鬼谷池) 앞에서 영원토록 고기와 새나 구경하려 하거늘 어떻게 숲속을 떠나 다시 세속으로 들어갈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오랫동안 진천(秦川)에 떠돌다보니 어느덧 초새(楚塞)와 멀어졌고 여덟 갈래 물에 부평초처럼 떠다니며 낙엽을 세 번이나 보았고 먹고사는 데 끄달리는 폐단이 이미 오래 되었으니 중숙(仲叔)의 정이 어디에 남아 있겠습니까?
영대(靈臺)에 누어서 한을 되씹고 백사(白社)에 거닐면서 흥을 돋우노라니 고향을 찾는 정[南巢之戀] 곱절이나 더하고 고향으로 가고픈 슬픔[北風之悲]은 더욱 간절하나이다.
태어난 바탕이 불우[坎]하고 타고난 기질이 우둔[迍邅]해서 공연히 『칠애(七哀)』를 읊조리고 헛되이 『구탄(九歎)』을 내뱉으면서 제몸을 어루만지며 외로운 제 그림자를 위로하지만 운수야 어쩌겠습니까? 더구나 병은 고황(膏肓)에 들고 풍(風)은 피부[腠理]에 얽히어 여러 해를 쉬었으나 조금도 차도를 느끼지 못하나이다. 심지어는 눈발에 비추고 반딧벌레를 모으려 해도 이미 근력이 쇠진해져서 구류(九流)와 칠략(七略)에서 들어갈 길[緣山]을 찾기 매우 어렵고, 만 권의 백가서적은 아직도 그 실천의 길이 묘연하옵니다.
전날 인편[傳子]에 글월[斐然]을 올렸으나 아직도 잘못된 근원을 다하지 못했으므로 이제 다시 『변정론』을 닦았사온데, 자못 경서(經書)에 갖추어지지 않은 것과 사적(史籍)에 충분치 못한 부분을 채우려고 짧은 지식을 다하였사오나 바로 되었는지 아닌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생각하옵건대 복야공께서는 장막 안에서 산가지를 세는 재주로 아형(阿衡)의 소임에 계시온데, 사람을 알아보시는 도량은 산과 바다[山濤]보다 넓으시고 선비를 제접하시는 마음은 다시 조무(趙武)에 견줄 만하십니다.
풍자(風姿)가 상명(爽明)하시고 지식[識度]은 넓으십니다. 어느덧 영사(靈蛇)의 구슬을 손에 쥐시더니 다시 형산(荊山)의 옥을 차셨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업무를 처리하심에 문장이 현란하심은 덕경(德鏡)과 진신(搢紳)들이 조야(朝野)에서 칭송하고 있나이다.
더구나 가문이 필해(筆海)로 불리시고 대대로 유종(儒宗)이라 일컬어지시건만 전생의 회포를 잊지 않으시고 어여삐 여기시는 방문을 주시니, 싸늘한 재가 다시 따뜻해졌고 죽었던 나무가 다시 살아났나이다.
옛날에 왕찬(王粲)이 글을 읽을 때엔 채씨(蔡氏)에게 자문을 구했고 상여(相如)가 시를 완성할 때엔 반드시 양후(楊侯)에게 의뢰했었습니다.
바라는 뜻은 그저 제자(諸子)들의 잡서(雜書)와 진(晋)ㆍ송(宋) 이래 내외의 문집으로서 석전(釋典)과 관계된 곳이오니 모두 훑어보아 주옵소서. 삼가 별록(別錄)을 앙정(仰呈)하나이다. 두터우신 은혜 주시기를 희망하노라고 청원의 말씀을 경솔히 사뢰었으니 송구한 마음 어찌 다하오리까?
사견(邪見)과 신심은 옛부터 공존하는 터요, 선인과 악당이야 오늘인들 없겠습니까? 전날 인편에 접한 진정[讇言]에 간략히 나의 주장을 폈거니와 이미 상(上)의 재가를 받고 다시 포상[褒揚]을 받으니 간절히 마음 모아 덕을 참괴할 뿐입니다.
지난날 『삼도부(三都賦)』를 썼으나 장화(張華)를 만나지 못했던들 아무도 감상할 길이 없듯 오늘 나의 『파사론』도 당신[君子]을 만나지 않았다면 뉘라서 보배롭게 여겨 주리까?
전에도 나라 안[海內] 여러 고을에서 사방의 도속(道俗)들이 퍼뜨리고 베끼고 찬탄하고 가락을 만들어 삿된 소견의 마음을 돌이키고 어리석은 사람의 선(善)을 시작했으니 어찌 당신의 힘이 아니겠나이까?
반드시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에 큰 공이 있을 것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이로써 장엄하여 모두 회향하게 되어지이다. 공이시여, 큰 단월이 되어 주시기 바라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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