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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484 법원주림(法苑珠林) 41권

by Kay/케이 2024.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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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41

 

법원주림 제41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38. 공양편(供養篇)[여기에는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3보(寶)는 평등하여 허공처럼 텅 빈 것이다. 이치에는 원친(怨親)이 없고 일에는 귀천(貴賤)이 끊어졌다. 그러므로 힘을 따라 정성을 들여 내외(內外)를 두루 공양하며, 힘을 다해 남겨주신 상(相)을 두어 두루 일으키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비사가모(毘舍佉母)가 아라한 5백 명을 따로 청했을 때 여래는 그를 꾸짖고 평등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제한하는 기준[限極]이 없으면 두루함이 시방에 미치고 재물에 다소(多少)가 없으면 마음이 법계(法界)에 두루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2) 인증부(引證部)
『지지론(持地論)』에서 말하였다.
“보살이 여래께 공양함에는 대략 열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몸 공양이요, 둘째는 지제(支提; 靈塔) 공양이며, 셋째는 현전(現前) 공양이요, 넷째는 불현전(不現前) 공양이며, 다섯째는 자작(自作) 공양이요, 여섯째는 타작(他作) 공양이며, 일곱째는 재물 공양이며, 여덟째는 승(勝) 공양이며, 아홉째는 불염오(不染汚) 공양이요, 열째는 지처도(至處道) 공양이다.
만일 보살이 부처님의 색신(色身)을 위해 공양을 베풀면 이것을 몸에 대한 공양이라 한다. 또 만일 보살이 여래를 위해 투바(偸婆; 率都婆)나 굴(窟)이나 집 등 [그것들이 묵었거나 새것이거나]을 공양하면 이것을 지제 공양이라 한다. 또 만일 보살이 부처님의 몸 및 지제를 직접 보고 공양하면 이것을 현전 공양이라 한다.
만일 보살이 여래 및 지제에 대해 희구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을 가지면 이것도 다 현전 공양이다. 한 여래에 대한 것과 같이 3세(世) 여래에 대해서도 그렇다. 또 여래 및 지제와 3세 시방 무량한 세계에 대해 현전으로 공양하면 [새롭거나 묵었거나] 이것도 다 보살의 현전 공양이라 한다.
또 보살이 현전이 아닌 여래 및 지제이거나 또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엘 부처 사리로 투바를 세우되 하나이거나 둘이거나 내지 억백천만을 힘이 미치는 데까지 세우면 이것을 다 불현전 공양이라 한다. 만일 보살이 현전으로 공양하면 큰 공덕을 얻고 불현전으로 공양해도 큰 공덕을 얻으면 현전과 불현전으로 아울러 공양하면 최대의 큰 공양을 얻는다.
만일 보살이 여래 및 지제에 손수 스스로 공양하고 게으르게 남을 시켜 공양하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의 자작 공양이라 한다.
만일 보살이 여래 및 지제에 대해 혼자 공양하지 않고 친족과 재가ㆍ출가 모두로 하여금 두루 공양하게 하면 이것을 자타(自他) 공양이라 한다. 만일 보살이 자비심으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박복한 중생들에게 보시하여 그들로 하여금 여래 및 지제에 공양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되 그것을 제 것으로 하지 않으면 이것을 타작 공양이라 한다. 자작으로 공양하면 큰 공덕을 얻고 타작으로 공양하면 크고 큰 공덕을 얻으며 자작 타작으로 아울러 공양하면
최대의 큰 과보를 얻는다.
만일 보살이 여래 및 지제에 대해 의식과 온갖 보배 등 갖가지로 공양하면 이것을 재물 공양이라 한다.
만일 보살이 오랫동안 많거나 적거나 재물로 공양하고 자작과 타작을 깨끗하고 순수한 신심으로 공양한 뒤에 이 선근을 위없는 보리로 회향하면 이것을 승(勝) 공양이라 한다.
만일 보살이 제 손으로 여래 및 지제에 공양하면서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방일하지 않으며 게으르지 않고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하며, 더럽지 않은 마음과 신심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드러내는 아첨하는 마음으로 재물을 구하지 않으며 또 온갖 부정한 물건 등으로 공양하지 않으면 이것을 불오염(不汚染) 공양이라 한다.
만일 보살이 수승(殊勝)하여 더럽지 않은 재물로 여래 및 지제에 공양할 때, 제 힘으로 얻거나 남에게 구하거나 마음대로 재물을 얻거나 혹은 변화로 된 몸, 즉 2ㆍ3 내지 백천만억 몸으로 다 여래께 예배하며, 그 낱낱 몸에 변화로 백천의 손을 만들고 그 낱낱 손으로 갖가지 꽃과 향을 여래 및 지제에 공양하며 그 일체의 몸으로 여래의 진실한 공덕을 찬양하고 중생들을 이롭게 하면 이런 것을 뜻대로 하는 자재한 힘의 공양이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여래가 세상에 나오시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왜냐 하면, 퇴전(退轉)하지 않는 자리에 있는 보살은 일체 부처 국토에 장애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보살이 제 힘으로 재물을 얻지 못하고 또 남에게서 구하지도 않고서
공양하지만 다른 중생, 내지 시방의 무량한 세계에 대해 상ㆍ중ㆍ하의 마음으로 공양할 때, 보살이 그 일체의 공양에서 깨끗한 신심과 훌륭하고 묘한 이해하는 마음으로 모두를 따라 기뻐하면, 이 보살은 조그만 방편으로 큰 공양을 일으켜 큰 보리를 거두고 내지는 소젖을 짜는 동안에라도 4종의 무량심(無量心) 등을 닦을 것이니, 이것을 지처도(至處道)의 공양이라 한다. 그리고 여래는 최상이어서 앞의 재물 공양에 비하면 백배ㆍ천배 내지 산수나 비유로도 견줄 수 없느니라. 이런 열 가지 공양을 보살이 모든 것으로 여래께 공양하는 것이라 한다. 법과 승(僧)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그러므로 이 3보에 대해 열 가지 공양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 보살은 여래에 대해 여섯 가지 깨끗한 마음을 일으킨다. 첫째는 복밭이 최상이라는 마음이요, 둘째는 은덕이 최상이라는 마음이며, 셋째는 일체 중생이 최상이라는 마음이요, 넷째는 우담바라 꽃처럼 만나기 어렵다는 마음이며, 다섯째는 3천대천세계에 홀로 제일이라는 마음이요, 여섯째는 세간 출세간의 법에 있어서 일체를 구족하여 이치에 의한다는 마음이다. 이 여섯 가지 마음을 조금이라고 생각하여 법과 승에 공양하면 무량한 공덕을 얻는다. 하물며 많이 생각함이겠는가?”
『유가론(瑜伽論)』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여래께 어떤 것을 공양하는가? 공양에 대략 열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설리라(說利羅)의 공양이요, 둘째는 제다(制多)의 공양이며, 셋째는 현전(現前)의 공양이요, 넷째는 현전이 아닌 공양이며, 다섯째는 스스로 짓는 공양이요, 여섯째는 남을 시켜서 하는 공양이며, 일곱째는 재물의 공양이요, 여덟째는 광대한 공양이며, 아홉째는 더러움이 없는 공양이요, 열째는 바른 행의 공양이다.”[해석한 글은 위와 거의 같다.]
또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재가
보살이 만일 우바새계를 받아 지니려면 먼저 차례로 6방(方)에 공양해야 한다. 이른바 동방이란 즉 부모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부모에게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ㆍ집ㆍ재보(財寶) 등을 공양하고 또 공경하고 예배하며 찬탄하고 존중하면 이 사람은 동방의 부모에게 잘 공양하는 것이다. 이 부모는 다시 다섯 가지로 그 공양에 갚아야 한다. 첫째는 지극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둘째는 끝까지 그를 속이지 않으며, 셋째는 재물을 주고, 넷째는 좋은 집안과 결혼시키며, 다섯째는 세상일을 가르치는 것이다.
남방이란 즉 사장(師長)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사장에게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 등을 공양하고 또 존중하고 찬탄하며 공경하고 예배하며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그 좋은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면 이 사람은 남방의 사장을 잘 공양하는 것이다. 이 사장도 또 다섯 가지로 그 공양에 갚아야 한다. 첫째는 빨리 가르쳐 때를 놓치지 않게 하고, 둘째는 다 가르쳐 남기지 않게 하며, 셋째는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시기심을 내지 않게 하고, 넷째는 엄한 스승과 좋은 벗에게 그를 부탁하며, 다섯째는 임종 때에 그에게 재물을 희사하는 것이다.
서방이란 곧 처자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처자에게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과 영락ㆍ복식(服飾) 등 몸을 장식하는 기구를 공급하면 이 사람은 서방의 처자를 잘 공양하는 것이다.
이 처자는 또 열네 가지로 그것을 갚아야 한다.
첫째는 할 일을 마음을 다해 경영하고, 둘째는 항상 노력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셋째는 할 일을 반드시 마치고, 넷째는 빨리 하여 때를 놓치지 않으며, 다섯째는 그의 손님을 우러러보고, 여섯째는 그 방과 침구를 깨끗이 하며, 일곱째는 그를 사랑하고 공경하며 말은 부드럽고, 여덟째는 하인들을 부드러운 말로 시키며 아홉째는 재물을 잘 수호하고, 열째는 새벽에 일어나고 밤 늦게 자며, 열한째는 깨끗한 음식을 드리고,
열두째는 그 교훈을 잘 참아 행하여, 열세째는 그의 나쁜 일을 잘 덮어 주고, 열네째는 그 병을 잘 돌보는 것이다.
북방이란 곧 좋은 벗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좋은 벗에 대해 힘을 다해 그를 위하고 가르침이 공순하고 말이 부드러우며 예배하고 찬탄하면, 이 사람은 북방의 좋은 벗을 잘 공양하는 것이다. 이 좋은 벗도 또 네 가지로 그에게 갚아야 한다. 첫째는 선법(善法)을 닦게 하고, 둘째는 악법을 버리게 하며, 셋째는 두려움이 있을 때 그를 잘 구해 주고, 넷째는 방탕할 때 그것을 버리게 하는 것이다.
하방(下方)이란 곧 노비(奴婢)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노비에게 의복ㆍ음식과 병이나 허약할 때는 약을 공급하면 꾸짖지도 않고 때리지도 않으면, 이 사람은 하방의 노비를 잘 공양하는 것이다. 이 노비도 열 가지 일로 그것을 갚아야 한다. 첫째는 죄를 짓지 않고, 둘째는 그가 시킴을 기다리지 않고 행하며, 셋째는 하는 일은 반드시 마치고, 넷째는 빨리 해서 때를 놓치지 않으며, 다섯째는 주인이 빈곤하더라도 끝내 배반하지 않고, 여섯째는 아침 일찍 일어나며, 일곱째는 주인 물건을 잘 지키고, 여덟째는 적은 은혜를 많은 것으로 갚으며, 아홉째는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생각하며, 열째는 그의 나쁜 일을 잘 덮어 주는 것이다.
상방(上方)이란 곧 사문ㆍ바라문 등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상방인 사문ㆍ바라문 등에게, 의복ㆍ음식ㆍ집ㆍ침구ㆍ의약 등으로 공양하고 두려워할 때 잘 구호하며 흉년에는 음식을 보시하고 악한 일을 들으면 잘 중지시키며 예배하고 공경하며 존중하고 찬탄하면, 이 사람은 상방인 사문 등을 잘 공양하는 것이다.
이 출가인(사문ㆍ바라문)도 다섯 가지 일로 그것을 갚아야 한다. 첫째는 그에게 신심을 내게 하고, 둘째는 지혜를 닦게 하며, 셋째는 보시를 행하게 하고, 넷째는 계율을 지키게 하며 다섯째는 많이 듣게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상의 6방에 잘 공양하면 이 사람은
재물과 수명을 늘리고 우바새계를 받아 지닐 수 있느니라.”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은 법을 공경하기 때문에 법에 공양하고 법을 스승으로 삼는다. 왜냐 하면, 3세의 모든 부처님은 다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스승으로 삼기 때문이다.”
【문】 “부처님 복덕을 구하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법에 공양하십니까?”
【답】 “부처님께서는 원래 무량한 겁(劫) 동안 온갖 공덕을 닦으시며 온갖 선을 항상 행하면서도 다만 과보를 바라지 않았을 뿐이요 공덕을 공경하기 때문에 그에 공양하시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였다. 아나율(阿那律)이 아직 천안(天眼)을 얻기 전에 손으로 옷을 꿰매다가 바늘이 옷섶을 벗어났다. 그는 곧 ‘누가 복덕을 사랑하여 나를 위해 이 바늘을 바로 잡아 주겠는가?’ 하고 말하였다.
이때 부처님께서 거기 가셔서 그 비구(아나율)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복덕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 옷섶을 이리 가져오너라.’
이 비구는 부처님의 말소리를 알아듣고, 빨리 일어나 가사를 입고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는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공덕이 이미 원만하신데 어째서 복덕을 사랑한다 하십니까?’
부처님께서는 답하셨다.
‘나는 공덕의 은혜를 갚는 힘을 깊이 알기 때문에, 그것이 나로 하여금 일체 중생 중에서 제일이 되게 했으니 그것은 이 공덕 때문이다.’
또 그 제자를 교화시키기 위해 말씀하셨다.
‘나도 공덕을 짓는데 너는 왜 공덕을 짓지 않느냐?’
어떤 기생집의 1백 세 노인이 춤을 추었다. 어떤 사람이 ‘나이 1백 세가 된 노인이 춤은 무슨 춤이냐’ 하고 그를 꾸짖었다. 노인은 ‘나는 춤을 추고 싶지 않다. 다만 자손들을 가르치고 싶어서일 뿐이다’고 했다.
부처님도 이와 같아서, 비록 공덕은 원만하지만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공덕을 짓는 것이며 또 그 때문에 공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유모인 대애도(大愛道)가 죽었을 때 사천왕이 그 상여를 보냈는데 부처님께서는 그 앞에서 향로에 향을 피워 공양했으니, 그것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이다. 비록 과보를 구하지는 않지만 이로써 평등한 공양을 행한 것이니,
오직 부처만이 부처께 공양할 뿐이요 다른 사람은 부처의 공덕을 모르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 게송의 말과 같다.

지인(智人)이라야 지인을 잘 공경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이야기하면 지인은 기뻐한다.
지인이라야 지인을 잘 아나니
마치 뱀이 뱀을 잘 아는 것과 같다.”

또 『빈비사라왕예불공양경(頻毘娑羅王詣佛供養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마갈타국(摩竭陀國)의 빈비사라[안색이 단정하다는 뜻] 왕은 부처님께 가서 아뢰었다.
‘저는 이 나라를 맡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모든 재산으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여래와 비구들에게 의복ㆍ음식ㆍ평상ㆍ침구ㆍ의약 등을 공양하고, 또 모든 신민들에게 권해 그들로 하여금 구제를 받고 3도(塗)를 떠나 길이 편안히 살게 하겠습니다.’
부처님은 이 청을 받으시고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사당은 커서 으뜸이 되고
게송도 또한 으뜸이 되며
왕은 사람 중에 으뜸이 되고
바다는 흐름 중에 으뜸이 된다.

모든 별 중에서 달이 그 으뜸이요
모든 광명 중에서 해가 그 으뜸 되어
상하와 또 사방의
모든 곳에서 만물을 낸다.

천상과 또 이 세간에
부처가 그 최상이거니
공덕 심는 것을 구하려 하는 사람은
부디 그것을 3불(佛)께 구하라.”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덟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그들에게 결정코 보시하여 싫어하지 말라. 첫째는 아버지요, 둘째는 어머니이며, 셋째는 부처님이요, 넷째는 제자이며, 다섯째는 멀리서 오는 사람이요, 여섯째는 멀리 떠나는 사람이며, 일곱째는 병든 사람이요, 여덟째는 병든 사람을 간호하는 사람이니라.”
또 『지도론(智道論)』에서 말하였다.
“모든 보살은 무량 무진한 공덕을 성취하여, 한 끼니의 음식으로 시방의 부처님과 승에게 공양하여
다 충족시키더라도 음식은 다하지 않는다. 마치 그것은 솟는 샘물이 자꾸 솟아 나와도 다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것은 또 저 문수사리 보살이 한 발우의 환희환(歡喜丸)으로 8만 4천의 승에게 공양하여 다 충족시켜도 다하지 않는 것과 같다. 또 보살이 한 발우의 음식을 시방의 부처님께 공양할 때 시방의 부처님 앞에 음식의 기구가 다 완비되어 나온다. 그것은 마치 귀신이 사람을 한 입에 다 먹고 천만배가 나오는 것과 같다.“
또 『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범지(梵志)는 나이 20세였다. 그는 젊어서부터 장가도 가지 않고 음탕한 마음도 없어 사람이 없는 깊은 산에 살면서 띠풀로 집을 짓고 쑥으로 자리를 만들고 물과 나무열매를 먹으며 재물을 구하지 않고 국왕이 불러도 갈 생각이 없었다. 고요한 산에서 수년 동안 금수들과 서로 즐기면서 사람과의 교제는 아주 끊었다. 그 산에 네 마리 짐승이 있었다. 첫째는 여우요, 둘째는 원숭이며, 셋째는 수달이요, 넷째는 토끼였다. 이 네 마리 짐승은 날마다 이 도인(범지)에게 와서 설법(說法)을 들었다. 이렇게 오래 지낼 때 먹을 과실이 다 떨어졌다. 그래서 도인은 거기서 떠나려 했다. 이 짐승들은 크게 근심하여 서로 의논했다.
‘우리가 각기 가서 먹을 것을 구해서 도인에게 공양하자.’
원숭이는 다른 산에 가서 맛난 과일을 구해 와서 도인에게 올리면서 ‘여기 계시고 떠나지 마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여우는 사람으로 화해 마을에 가서 보리밥 한 그릇을 구해와서 도인에게 올리면서 ‘한 달은 지낼 수 있을 것이니 여기 계시고 떠나지 마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수달도 물에 들어가 큰 고기를 잡아 와서 도인에게 올리면서 ‘한 달은 지낼 것이니 여기 계시고 떠나지 마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토끼는 ‘나는 무엇으로 도인에게 공양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곧 그 몸으로 공양하리라 생각하고 나무를 모아 불을 붙여 벌건 숯을 만들고는 도인에게 가서 ‘나는 토끼로서 불 속에 들어가 살을 구워 도인께 바치겠습니다. 하루 양식은 될 것입니다’ 하고 곧 불 속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불은 그것을 태우지 않았다. 도인은 이것을 보고 토끼의 인의(仁義)에 감탄하고 그를 가엾이 여겨 거기 머물렀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범지는 지금의 저 제화갈불이(提和竭佛)요, 그 때의 그 토끼는 지금의 나이며, 그 때의 원숭이는 지금의 사리불이요, 그 때의 그 여우는 지금의 아난이며, 그 때의 수달은 지금의 목건련이니라.”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리기사(梨耆闍) 강변에 계실 때였다. 그 때 부처님의 발우와 비구들의 발우가 다 한 데[露處]에 있었다. 어떤 원숭이가 숲 속을 다니면서 벌꿀을 찾았으나 그것이 없었다. 원숭이는 거기 와서 부처님 발우를 가지고 가려 했다. 비구들이 그것을 못하게 하자 부처님은 ‘막지 말라. 아무 악의가 없다’ 하셨다. 원숭이는 꿀을 발우에 담아 와서 부처님께 바쳤다. 부처님께서는 받지 않으시고 발우를 물에 씻기를 기다렸다. 원숭이는 부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거기 벌레가 있어 그러시는 것인가 생각하고 자세히 살피다가 발우 가장자리에 꿀이 흘러 있는 것을 보았다. 원숭이는 곧 물가에 나가 발우를 씻어 가지고 와서 다시 부처님께 바쳤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받으셨다. 원숭이는 크게 기뻐하면서 물러가 춤을 추다가 구덩이에 떨어져 목숨을 마치고 삼십삼천(三十三天)에 났다. 그 때 비구들은 다음 게송을 외웠다.
세상 영웅 10력(力)께서 숲에 계실 때
부처님 발우와 비구들 발우는 한 데[露處]에 있었다.
들짐승은 복덕을 심고 정(情)과 지혜가 있어
잘 성숙(成熟)한 벌꿀이 없는 것을 보고

앞으로 바로 가서 부처님 발우 가지려 할 때
비구들은 막으려 했으나 부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원숭이는 그 발우에 꿀을 담아 부처님께 바치고
부처님께서는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그것을 받았다.


원숭이는 기뻐하여 물러가 춤을 추다가
발이 미끄러져 언덕에서 떨어져 목숨 마치고
그 길로 바로 삼십삼천에 올라가 살다가
인간에 내려와서는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또 『문수사리문경(文殊師利問經)』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불ㆍ법ㆍ승 및 부모ㆍ형제에게 공양하기 위해 재물을 얻고, 또 절을 짓고 불상을 만들며 보시하는 등 이런 일을 위해 금ㆍ은 등 재보를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허물이 아니다. 게송을 읊는다.

아득하여라 긴 나루여,
아득하여라 먼 수레여,
지금 번뇌에 갇혀 있나니
이것을 벗어나기 실로 어렵네.

진실로 힘써 오르지 않으면
무엇을 타고 높은 자리 얻으리
3보(寶)께 잘 공양하면
저 10지(地)를 멀리 뛰어넘으리.

39. 수청편(受請篇) ① [여기에 9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청승부(請僧部) 성승부(聖僧部)
시식부(施食部) 식시부(食時部) 식법부(食法部)
식흘부(食訖部) 주원부(呪願部) 시복부((施福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공양하는 모임[供會]의 법은 한정하지 않으므로 근본을 삼나니 좋아함도 없고 싫어함도 없어야 단월의 마음에 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죽이고 상(相)을 버리면 공제(空際)와 더불어 극(極)을 함께 하고, 때에 맡기고 인연을 따르면 법계(法界)와 양(量)이 같게 된다. 씨앗이 이미 다함이 없으므로 열매도 또한 다함이 없다. 속인은 아끼고 재물이 모자라 물질을 한정해 보시를 행하나니 물질이 이미 한정이 있으므로 마음도 또한 구애를 받는다. 그리하여 혹은 사람을 헤아려 공양을 생각하고 혹은 덕있는 사람을 가린 후에 초청한다. 그리하여 한계가 있는 복을 버리지 못하고 끝이 없는 과보를 얻지 못한다.
대개 어리석은 법으로 보시하는 사람은 물질을 두루 갖추나 보시는 적으며 좋은 방편으로 희사하는 사람은 물질은 적으나 보시는 두루 한다.
그러므로 외국에서는 재(齋)를 베풀 때 솔직하고 넓어 막음이 없고, 마음을 시방에 놀게 하여 법계를 모두 둘러싸는 것이다.

(2) 청승부(請僧部)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부처님의 이모(姨母) 마하파사파제(摩詞波舍波提)는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뒤에 손수 길쌈해서 금색의 모포 한 자락을 미리 만들어 [가사를 지어] 부처님께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가지고 가서 여러 스님에게 주라 하셨다. 이모는 ‘마음을 바로잡고 부처님의 승낙을 기다리리라’ 생각하고, ‘자비를 드리워 나를 위해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어머님은 알뜰한 마음으로 그것을 내게 주시려 합니다. 그러나 은애(恩愛)의 마음은 복이 넓지 못합니다. 만일 그것을 스님들에게 보시하면 그 얻는 과보는 더욱 많을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일을 알기 때문에 권하는 것입니다. 혹 단월이 16종류의 사람을 따로따로 청하면 그 복의 과보는 얻더라도 많다 할 수는 없습니다. 16이란 비구 비구니에게 각각 있는 8배(輩)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4인(人)을 널리 청하여 얻는 복덕보다는 못하여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장래 말법(末法) 시대가 끝나려 할 때 비록 비구가 아내를 두고 아들을 안으며, 또 4인 이상의 명자승(名字僧)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사리불이나 목건련처럼 공경해야 할 것입니다.’
그 때 이모는 비로소 깨닫고 그 옷을 스님들에게 보시하기로 했다. 스님들에게 차례를 돌렸으나 아무도 받으려 하지 않았는데, 미륵 앞에 가자 곧 그것을 받았다. 그 때 미륵은 스님들에게 물었다.
‘만일 어떤 단월이 계율이 청정한 사문을 청해 사문이 그 집에 갔을 때 그에게 공양하는 이익과 어떤 사람이 천만 전(錢)을 얻는 이익과 그 우열이 어떠합니까?’
그러자 교진여는 말했다.
‘가령 어떤 사람이 1백 수레의 보배를 얻더라도 그 복리는, 계율이
청정한 한 사문을 집으로 청해 공양하는 복리보다 못해 이것이 훨씬 많습니다.’
사리불은 말하였다.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염부제에 가득한 보배를 얻더라도 그 이익은 계율이 청정한 한 사문을 집으로 청해 공양해 얻는 이익보다 이것이 더 많습니다.’
목건련은 말하였다.
‘가사 어떤 사람이 두 천하에 가득한 7보를 얻더라도 그 이익은 계율이 청정한 한 사문을 집으로 청해 공양하는 이익보다 못해 이것이 더 많습니다.’
그 이외의 비구들도 각각 비유를 인용해 그 이익을 비교하여 다 저것보다 이것이 많다 했다. 그 때 아나율이 다시 말했다.
‘가령 사천하에 가득한 보배를 얻더라도 그 이익은 계율이 청정한 한 사문을 집으로 청해 공양하는 이익보다 못해 이것이 몇 배나 더 많습니다. 왜냐 하면 내가 바로 그 증인입니다. 나는 기억합니다. 과거 비바시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불법이 멸하려 할 때, 아루타(阿淚吒)라는 한 장자는 집이 몹시 가난하고 그 위에 흉년이 들어 사람들일 굶주리고 양식은 떨어졌습니다. 그는 날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와서 피를 사서, 그것으로 그 처자를 먹여 살렸습니다.
그 때 어떤 벽지불(辟支佛)이 밥을 빌었으나 얻지 못하고 그 집에 와서 피죽을 나누어 먹기를 청했습니다. 그가 손수 피죽을 들고 나가 주자 벽지불은 그에게 ≺당신도 굶주리는데 어떻게 나누어 먹자 하십니까?≻ 했습니다. 아루타는 ≺우리는 속인이라 음식에 일정한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존자(尊者)님은 하루 한 끼만을 잡수십니다. 그저 받아주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벽지불은 그것을 받아 다 먹고 그 지극한 마음에 감동되어 그로 하여금 큰 원을 세우게 했습니다. 그리고 벽지불은 돌아갔습니다.
그 때 아루타는 늪으로 들어가 나무를 하다가 토끼 한 마리를 보고 그것을 잡으려고 멀리서 낫을 던졌습니다. 토끼는 죽어 땅에 쓰러졌습니다. 아루타가 그것을 가지러 갔을 때 토기는 죽은 사람으로 화해, 그의 등에 올라가 얼른 그의 머리를 움켜잡았습니다. 그는 힘을 다해 그것을 떨쳐 버리려 했으나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그는 겁이 나고 당황하면서 못내 괴로워했습니다. 성 안으로 들어가 그 집에 가서 아내와 함께 떼려 하다가, 다시 성지기가 보고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할까 두려워서 해가 저물기를 기다려 옷을 뒤집어쓰고 토끼를 등에 진 채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토끼는 땅에 떨어지면서 한 덩이 염부단금으로 변해 번쩍거리는 빛이 온 이웃을 다 비추었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려 왕이 듣고 직접 와서 보았습니다. 금덩이는 다시 죽은 사람으로 변해 곧 썩으려 했습니다. 왕은 물었습니다.
≺너는 이것을 무엇으로 보는가?≻
아루타는 ≺내가 볼 때는 이것은 실로 금덩이입니다≻ 하고 대답하고 그 금을 조금 떼어 왕에게 바쳤습니다. 왕은 그것을 보고 희한한 일이라고 공경하고, 어떻게 그것을 얻었느냐고 그 내력을 물었습니다. 아루타는 ≺벽지불에게 보시했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장한 일이라 찬탄한 뒤에 다시 상을 내리고 그를 대신으로 삼았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저 아루타는 바로 나입니다. 나는 저 세상에서 피죽 한 그릇을 벽지불에게 보시한 인연으로 그 뒤 91겁 동안 천상에 나서 아무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또 『상법결의경(像法決疑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단월이 음식을 차리고 스님들을 청할 때는 사람을 시켜 대문을 닫고 장지를 가지고, 다른 비구 및 늙고 병들고 빈궁한 거지들은 그 모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들은 음식만 축낼 뿐, 마침내 아무 좋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또 『보광경(普廣經)』에서 말하였다.
“4배(輩) 제자가 재계(齋戒)를 행할 때는 항상 시방승(十方僧)을 청하기를 생각하되, 그의 선이나 악, 계를 지키거나 헐거나 그 행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말라. 여러 절에 가서 스님을 청할 때는 승차(僧次)를 따라 공양하고 다른 생각이 없으면 그 복은 가장 많아 무량 무변 하리라. 또 아라한과 4과(果)를 얻은 도인 및 큰마음을 가진 이를 만나면 이 공덕에 의해 그는 무궁한 복을 받을 것이며, 한번 설법을 들으면 지극한 도인
위없는 열반을 얻을 것이다.”
또 『십송율(十誦律)』에서 말하였다.
“녹자모(鹿子母)가 5백 아라한을 별청(別請)했을 때 부처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지혜롭지 못하고 좋지 못한 일이다. 승차(僧次)에 의해 한 사람을 청하면, 그가 얻는 큰 공덕과 과보의 이익은, 5백 아라한을 별청(別請)하여 사방 사람이 다 듣는 것보다 더 훌륭하니라.’”
또 『청승복전경(請僧福田經)』 및 『인왕경(仁王經)』에서 갖가지로 별청을 나무라고 허락하지 않으면서, 별청이란 외도의 법이요 7불(佛)의 법이 아니라 했다.
또 『범망경(梵網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어떤 단월이 와서 스님을 청할 때 객승(客僧)에게도 그 이익의 한 몫이 있으면, 그 승방(僧房)의 주인은 객승도 차례로 보내 그 청을 받게 해야 한다. 먼저 거기 사는 스님만 청을 받고 객승은 보내지 않으면, 그 방주는 축생처럼 무량한 죄를 받을 것이다. 또 그는 사문이 아니요 석종(釋種)도 아니며 경구죄(輕垢罪)를 범하는 것이다. 또 불자(佛子)는 별청을 받아 얻는 이익은 일체 혼자 차지해서는 안 된다. 이 이익은 시방승에 속하는 것이므로 별청을 받는 이익은 곧 시방승의 물건을 빼앗는 것이 된다. 만일 사사롭게 쓰면 그것은 경구죄(輕垢罪)를 범하는 것이다.
또 출가한 사람이나 집에 있는 사람으로서, 만일 어떤 단월이 승(僧)의 복전(福田)을 청해 어떤 소원을 말할 때는 승방에 들어가 그 주인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차례로 청하려 하는 사람은 곧 시방의 현성승(賢聖僧)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세상 사람은 5백 아라한과 보살 승만을 별청하지만, 그것은 승차에 의해 한 범부승(凡夫僧)을 청하는 것보다 못한 것이다. 만일 승을 별청하면 이것은 외도의 법이다. 7불에게는 별청법이 없으며 그것은 효도에 따르지 않는 것이다. 만일 일부러 별청하면 그것은 경구죄를 범하는 것이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어떤 부귀한 장자는 스님들을 믿고 좋아하여
승집사(僧執事)에게 말하였다.
‘저는 스님을 차례로 집에 청해 음식을 공양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차례로 청해 사미(沙彌)에 이르렀다. 그러나 집사는 사미가 청을 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여러 사미들이 ≺무엇 때문에 사미는 허락하지 않습니까?’≻하고 집사에게 물었다. 집사가 ≺단월이 젊은 스님 청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수염과 머리털은 눈처럼 희고
이빨은 다 빠지고 얼굴은 주름지고
곱사등이 걸음에 몸을 말라빠졌지만
이런 일로 하여 청하기 좋아하네.’

그런데 이 사미들은 모두가 큰 아라한이었다. 이들은 사자 머리를 후려치듯 홀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게송으로 답하였다.

‘단월은 지혜 없는 사람이어서
그 외형만 보고 덕은 취하지 않네.
기년(耆年)의 상(相)은 모두 버리고
다만 늙고 여읜 검버섯만 취하네.’

거룩한 기년의 상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른바 장로(長老)의 모습이란
반드시 나이가 많은 것만은 아니라네.
얼굴 여위고 수염과 머리털 희고
한갓 늙기만 하고 그 속에 덕 없으면

죄와 복의 과보를 버릴 수 있고
부지런히 범행(梵行)을 잘 행하며
일체의 법을 모두 다 버렸으면
이것을 일러 장로라 하네.’

이때 사미들은 다시 ‘우리는 저 단월들이 스님들의 좋고 나쁨을 헤아리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볼 수만은 없다’ 하고 곧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칭찬하고 꾸짖는 가운데서도
우리들의 마음은 하나이지만
이 사람은 불법을 비방하나니
반드시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우리는 빨리 그 집에 가서
법으로 가르쳐서 타일러 주자.
우리가 만일 제도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반드시 버림받는 물건이 되리.’

그리하여 사미들은 스스로 몸을 변화시켜 모두 노인이 되었다.


수염과 머리털은 눈처럼 희고
빼어난 그 눈썹은 눈을 덮으며
피부에 잡힌 주름은 물결과 같고
그 등은 구부러져 마치 활 같다.

두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
차례로 집에 들어 청을 받을 때
온몸은 후들후들 자꾸 떨리어
가고 서기 조금도 편하지 않다.

비유하면 그것은 버드나무가
부는 바람을 따라 흔들림과 같았다.
단월은 이러한 이들을 보고
기뻐하며 맞이해 들여앉혔다.

이들은 앉아 있다가 어느새 소년으로 변했다. 단월은 놀라 다음 게송으로 말했다.
‘그와 같은 그 늙은이의 모양이
어느새 소년의 몸으로 변했구나.
마치 젊어지는 약을 먹은 것과 같나니
대체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미들은 말하였다.
‘당신은 의심하지 마십시오. 예사로 평가하는 그것이 하도 가엾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보인 것입니다. 당신은 깊이 알아야 합니다. 성중(聖衆)은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게송을 외웠다.

비유하면 모기가 그 주둥이로
깊은 바다 밑을 재는 것 같아
일체의 저 하늘과 사람들은
아무도 스님들을 잴 수 없다.

스님의 공덕의 귀함으로도
오히려 분별하지 못하겠거늘
그런데 당신은 그 나이로
저 모든 대덕(大德)을 평가하는구나.

크고 작은 것은 지혜에 있고
그 늙고 젊음에 있는 것 아니다.
지혜도 있고 부지런히 정진하면
비록 젊었으나 이는 곧 늙음이요
게으르고도 또 지혜 없으면
비록 늙었으나 이는 곧 젊음이다.

‘당신이 지금 스님들을 예사로 평가하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 마치 손가락 하나로 큰 바다 밑을 재 보려는 것과 같아서 그것은 지혜로운 이가 크게 비웃는 것입니다. 당신은 왜 듣지 못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벼이 할 수 없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태자는 비록 작으나
장차 국왕이 될 것이니 그를 경시(輕視)할 수 없고, 둘째는 뱀새끼는 비록 작으나 그 독은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 그것도 경시할 수 없으며, 셋째는 불씨는 비록 미미하나 산과 들을 태울 수 있으니 그것도 경시할 수 없고, 넷째는 사미는 비록 작으나 신통을 얻었으니 이것은 가장 경시할 수 없는 것이다≻’
단월은 이 말을 듣고 또 그 신통을 보았으므로 크게 놀라 온몸의 털이 다 일어섰다. 그는 합장하고 사미들에게 아뢰었다.
‘여러 성인들이시여, 저는 지금 참회합니다. 저는 범부로서 항상 마음에 죄를 짓고 있습니다. 지금 물어 보고 싶습니다. 불보(佛寶)와 승보(僧寶)에 대해 신심이 청정하면 어느 쪽에 복이 많습니까?’
사미들은 답하였다.
‘우리들은 불보와 승보 중에서 그 우열을 조금도 보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이 때문입니다. 즉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바제성(舍婆提城)에 들어가 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바라타서(婆羅埵逝)라는 성을 가진 바라문이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자주 그 집에 가서 걸식하셨으므로 그는 ≺이 사문은 왜 이처럼 자주 오는가? 마치 빚쟁이처럼……≻ 하고 생각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생각을 아시고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때맞춘 비가 자주자주 내리면
5곡(穀)은 자주자주 자라고
복의 업을 자주자주 닦으면
그 과보를 자주자주 받는다.

세상에 나는 법을 자주자주 받으면
그 때문에 자주자주 죽음을 받고
성인의 법을 자주자주 이루면
그 누가 자주자주 나고 죽으리.

바라문은 이 게송을 듣고 ≺큰 성인은 내 마음을 아신다≻ 하고 참회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발우를 받아 가지고 집으로 들어가, 맛난 음식을 가득 담아 가지고 나와 부처님께 올렸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받지 않으시고 ≺내가 게송을 외웠기 때문에 이 음식을 얻는구나. 나는 먹지 않으리라≻ 하셨습니다. 바라문이 ≺그러하오면 이 음식을 누구에게 주리까?≻ 하자 부처님께서는 ≺나는 하늘이나 사람으로 이 음식을 능히 소화시킬 자를 보지 못했다. 너는 이것을 가지고 가서 풀이 적은 땅이나 벌레가 없는 물 속에 버리라≻ 하셨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분부대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벌레가 없는 물 속에 버렸습니다. 물은 곧 크게 끓으면서 열기와 불꽃이 한꺼번에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마치 뜨거운 큰 철판을 물에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바라문은 이것을 보고 크게 놀라면서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음식에도 이런 신통의 힘이 있구나≻ 하고 부처님께 예배하면서 참회하고 출가하여 계를 받았습니다. 그는 차츰 번뇌를 끊고 아라한의 도를 얻었습니다.
또 마하교담미(摩詞憍曇彌)는 금색으로 된 아래위의 옷을 지어 부처님께 바쳤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스님에게 보시하라 권하시면서 ≺그들이면 소화할 수 있고 또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불보와 승보에는 복의 많고 적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게송으로 말했다.

만일 누가 부처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면
또한 그는 스님들도 사랑하고 공경하리라.
거기에는 구별할 것 있을 수가 없나니
그것은 다 같이 보배이기 때문이네.

또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에서 부처님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누구나 생각하고 뜻을 두기를,
밥 때마다 적게 먹을 줄 알면
그 때문에 고통은 적어지고
쉽게 소화해 수명을 보전하라.

또 『잡비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사위국(國)의 어떤 가난한 집의 뜰에 포도나무가 있었다. 거기에 포도 몇 송이가 달려 있었는데 그녀는 그것을 도인(道人)에게 보시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나라 왕이 한 달 전부터 미리 그 포도를 달라고 했다. 그 가난한 집에서는 왕의 세력이라 거절할 수 없었다. 한 달이 막 되려 했을 때, 그녀는 비로소 도인을 만나 그것을 주면서 도인에게 말했다.
‘보시하려 생각한 지 한 달을 지나 이제 소원을 풀었습니다.’
도인은 그 우바이에게 말했다.
‘벌써 한 달 동안 보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우바이가 말했다.
‘저는 포도 한 송이 밖에 보시한 것이 없는데 어째서 한 달 동안 보시를 받았다 하십니까?’
도인이 말하였다.
‘한 달 동안 보시하려 생각하고 있었으니, 한 달 동안 보시 받은 것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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