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105 불교 (대지도론/大智度論) 93권

by Kay/케이 2024. 4. 26.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대지도론(大智度論) 93

 

대지도론 제93권

82. 정불국토품을 풀이함 ②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經】“또 수보리야, 보살이 물질[色]의 모양[相]과 느낌[受]ㆍ생각[想]ㆍ의욕[行]ㆍ인식[識]의 모양과, 눈[眼]의 모양과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ㆍ뜻[意]의 모양과, 빛깔[色]ㆍ소리[聲]ㆍ내음[香]ㆍ맛[味]ㆍ접촉[觸]ㆍ법[法]의 모양과, 남자의 모양ㆍ여자의 모양과, 욕계(欲界)의 모양ㆍ색계(色界)의 모양ㆍ무색계(無色界)의 모양과, 착한 법[善法]의 모양ㆍ착하지 못한 법[不善法]의 모양과, 유위법(有爲法)의 모양ㆍ무위법(無爲法)의 모양을 취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거친 업[麤業]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모두가 이와 같은 거친 업의 모양을 멀리 여의고, 자기 자신이 보시하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보시하게 하느니라. 밥을 구하면 밥을 주고 옷을 구하면 옷을 주면서 나아가 갖가지 살림에 필요한 것을 모두 다 대주며 또한 다른 사람들도 교화하여 갖가지로 보시하게 하나니, 이 복덕을 지니어 온갖 중생들과 함께하고 그들과 같이 회향(回向)하여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며,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도 또한 이와 같이 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혹은 3천대천 국토에 가득 차는 진기한 보물을 3존(尊)1)께 베풀면서 서원하기를 ‘저는 이 선근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저의 국토를 모두 7보(寶)로 이뤄지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하늘의 음악으로 부처님과 탑에서 연주하면서 서원하기를 ‘이 선근의 인연으로 저의 국토에서는 언제나 하늘의 음악이 울리도록 해주옵소서’라고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3천대천의 국토에 가득 차는 하늘의 향으로 모든 부처님과 탑에 공양하면서 서원하기를 ‘이 선근의 인연으로 저의 국토에서는 언제나 하늘의 향기가 있도록 해주옵소서’라고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모든 맛있는 음식을 부처님과 승가에게 보시하면서 서원하기를 ‘이 선근의 인연으로 저의 국토에 사는 중생으로 하여금 누구든지 모든 맛있는 음식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하늘 향[天香]의 부드럽고 윤택함으로써 부처님과 승가에게 보시하면서 서원하기를 ‘이 선근의 인연으로 저의 국토에 있는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하늘 향의 부드럽고 윤택함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뜻에 맞는 5욕(欲)을 부처님과 승가와 아울러 온갖 중생들에게 베풀어주면서 서원하기를 ‘이 선근의 인연으로 저의 국토 가운데의 제자들과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뜻에 맞는 5욕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은 뜻에 맞는 5욕으로써 온갖 중생과 함께 하면서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는 데에 회향하며 서원하기를 ‘제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에 이 국토에서는 하늘의 5욕과 같이 마음에 응하여 이루어지게 해주옵소서’라고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서원하기를 ‘저는 자신이 초선(初禪)에 들어가고 또한 온갖 중생들을 교화하여 초선에 들게 하며, 제2선ㆍ제3선ㆍ제4선과 자ㆍ비ㆍ희ㆍ사의 마음 내지는 37조도법(助道法)도 또한 이와 같이 하며, 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는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4선(禪)을 멀리 여의지 않게 하고 나아가 37 조도법을 멀리 여의지 않게 해주옵소서’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해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이 보살은 때에 맞게 보살도를 행하면서 이 모든 서원을 만족시키고, 이 보살은 자기 자신이 온갖 착한 법을 성취하고 또한 온갖 중생들에게도 착한 법을 성취하게 하며, 이 보살은
자신이 단정한 몸을 받고 또 교화할 중생들까지도 단정한 몸을 받게 하나니, 그것은 왜냐하면 복덕의 인연이 두텁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하므로 이 국토에는 3악도라는 이름까지도 없고 또한 삿된 견해와 3독(毒)과 성문ㆍ벽지불이라는 2승의 이름도 없으며, 귀로는 ‘무상하다, 괴롭다, 공하다’는 소리도 듣지 않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으며, 나아가 모든 결사(結使)와 번뇌의 이름조차도 없고 또한 모든 과위[果]를 분별하는 이름도 없느니라.
바람은 7보(寶)로 된 나무에 불어 제도해야 할 바에 따라 음성이 나오나니, 이른바 공하고ㆍ모양이 없고ㆍ조작이 없다 하는 모든 법의 실상과 같은 음성이니라.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온갖 법은 온갖 법의 모양이 공하여 그 공한 가운데에는 모양이 없고, 모양이 없는 가운데에는 조작이 없다’고 이와 같은 법음(法音)을 내나니, 낮이거나 밤이거나 앉거나 눕거나 서거나 다니거나 간에 항상 이러한 법을 듣게 되느니라.
이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는 시방 국토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께서 찬탄하시므로 중생들은 이 부처님의 이름을 듣고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게 되느니라.
이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때때로 설법을 하면 중생들로서 듣는 자는 믿지 않고 의심을 내거나 ‘이것은 법이다, 이것은 법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일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모든 법의 실상(實相) 가운데서는 모두가 곧 법이어서 법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어떤 박복(薄福)한 사람들은 모든 부처님과 제자들에 대하여 선근을 심지도 않고 선지식(善知識)을 따르지도 않으며, 나라는 견해[我見]에 떨어지고 나아가 온갖 갖가지 견해에 빠져 있으며, 단멸한다[斷]ㆍ항상 있다[常]하는 치우친 소견에 떨어져 있나니, 이와 같은 사람은 삿된 견해 때문에 부처님이 아닌데도 ‘부처님이다’라 하고 부처님인데도 ‘부처님이 아니다’고 하며, 법이 아닌데도 ‘법이다’라 하고 법인데도 ‘법이 아니다’고 말하느니라.
이와 같은 사람은 법을 파괴하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악도인 지옥에 떨어지나니, 모든 부처님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을 적에 이런 중생들이 다섯 가지 세계[道]를 왕래하는 것을 보시고 사취(邪聚)를 여의면서 정정취(正定聚) 안에 서게 하시며 다시는 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있는 부처님 국토의 중생들은 잡다하고 더러운 마음, 즉 세간의 법과 출세간의 법과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와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라는 마음이 없으며, 나아가 이 국토의 중생들은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이 곧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니라.”
【論】해석하겠다. 또 거친 업[麤業]이 있으니, 모든 법이 필경 공한 가운데서 모양을 취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이른바 물질의 모양과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의 모양, 눈의 모양 내지는 뜻의 모양, 빛깔의 모양 내지는 법의 모양, 남자의 모양과 여인의 모양, 삼계(三界)의 착한 것과 착하지 못한 것, 유위와 무위의 모양 등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문】남자나 여인의 모양은 허망하고 진실하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밖의 물질 등의 착하고 착하지 못한 법에 만일 모양을 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물질 등에 싫증을 내면서 착한 법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답】부처님 법에서는 두 가지의 공이 있나니, 첫째는 중생의 공[衆生空]이요, 둘째는 법의 공[法空]이다. 중생의 공으로는 중생의 모양을 파괴하는 것이니, 이른바 남자와 여인 등의 모양이다. 법의 공으로는 물질 등의 법 가운데 허망한 모양을 파괴하는 것이니, 온갖 법을 파괴하는 공[破一切法空] 가운데서 설명한 것과 같다.
물질 등과 착한 법을 관찰할 적에 마치 환과 같고 변화한 것과 같다고 여기며, 일정하거나 진실한 모양을 취하지 않으면서 싫증내는 마음을 얻으면, 곧 ‘항상 있다’거나 ‘무상하다’는 등의 희론을 버리게 되나니, 이것을 두고 ‘모양을 취한다[取相]’고 말하지는 않는다. 또 물질 등과 착한 법은 모두가 화합하여 성품이 공한 행이기 때문에 모든 번뇌를 내지 않는다.
【문】온갖 유위의 법은 임시로 붙인 이름이 화합한 까닭에
취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무위의 법은 진실한 법이라 이른바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이거늘 무엇 때문에 취하지 않는가?
【답】모양을 취하지 않는 이 무위의 법은 모양이 없으므로 무위의 법문(法門)이라 하지만, 만일 모양을 취한다면 그것은 바로 유위이어서, 이와 같은 온갖 것은 거짓이요 모양을 취하여도 진실하지 않나니, 거친 몸과 입과 뜻의 업을 멀리 여읜 것이다.
보살은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하려고 이와 같은 등의 거친 몸과 입과 뜻의 업을 멀리 여의면서 자기 자신이 6바라밀을 행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도 교화하여 행하게 하나니, 깨끗한 인연을 함께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국토가 깨끗해진다.
위에서는 전체의 모양(總相)으로 말하고 아래에서는 각각의 모양(別相)으로 설명한다.
이 보살은 3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7보를 부처님과 승가에게 보시하며, 서원을 세우기를 ‘나는 이 보시한 인연으로 나의 국토를 모두 7보로 장엄하게 하리라’고 한다.
【문】만일 3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값진 보배라면 그것을 다 어디서 얻는 것인가? 또 모든 부처님과 성현은 욕탐이 적고 만족할 줄 아시거늘 누가 그것을 받는다는 것인가? 가령 범부와 같이 만족할 줄 모른다 해도 어떻게 그 삼천세계의 물건을 다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답】이 보살은 바로 법성의 생신[法性生身]이다. 신통바라밀을 완전히 갖춘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시방의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하여 삼천세계의 진기한 보배와 같은 것으로 공양하는 것이다. 또 이 보배는 신통의 힘으로 만든 것이라 가볍고 미세하면서 장해가 없는 것이 마치 제3선(禪)의 변정천(遍淨天)에서 60명의 사람이 한 개의 바늘 끝에 앉아서 법을 들어도 서로가 거치적거리지 않는 것과 같다. 하물며 큰 보살이 신통에 깊이 들어 만들어진 보배이겠는가.
혹 어떤 보살은 몸을 수미산만큼 크게 변화하여 시방의 부처님 앞으로 골고루 가서 등불의 심지가 되어 부처님과 탑에 공양하면서 서원을 세우기를 ‘나의 국토로 하여금 항상 광명이 있게 하여 해와 달과 등불과 촛불이 필요 없게 하소서’라고 한다.
혹 어떤 보살은
모든 꽃ㆍ향ㆍ번기ㆍ일산과 영락을 비처럼 내리게 해서는 그것으로 공양하면서 또한 원을 세우기를 ‘나의 국토의 중생으로 하여금 단정하기가 마치 꽃과 같고 몸매가 장엄하고 깨끗하며, 누추하게 생긴 이가 없게 하소서’라고 하나니, 이와 같은 등의 좋은 모습의 인연을 원한다.
또 어떤 보살은 하늘의 풍악으로 부처님과 탑묘에 연주하기도 하나니, 이 보살은 때로 신통의 힘으로써 하늘의 풍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혹은 천왕(天王)과 전륜성왕의 풍악을 연주하기도 하며, 혹은 아수라와 신(神)과 용왕 등의 하늘 풍악으로 연주하기도 하면서 ‘나의 나라에는 언제나 좋은 소리가 들리게 하소서’라고 서원한다.
【문】모든 부처님과 성현은 바로 욕탐을 여읜 사람들이므로 음악이나 노래나 춤이 필요하지 않거늘, 무엇 때문에 풍악으로 공양하는 것인가?
【답】모든 부처님은 비록 온갖 법에 대하여 마음에 집착하는 것이 없고 세간의 법이 모두 필요하지 않다 하더라도, 모든 부처님은 중생을 가엾이 여기신 까닭에 세간에 출현하셨고 공양하는 이마다 그의 서원에 따라 복을 얻게 하여야 되므로 받으시는 것이다. 또 꽃과 향으로 공양하는 것도 부처님께는 필요하지 않나니, 부처님의 몸에는 항상 묘한 향기가 있어서 모든 하늘들도 미칠 수 없지만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받으시는 것이다.
이 보살은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좋은 음성을 구하며, 국토에 있는 중생으로 하여금 좋은 음성을 듣고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려고 하는 것이니, 마음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교화를 받기 쉽게 된다. 이 때문에 음성의 인연으로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다.
혹은 어떤 보살은 3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향으로 모든 부처님과 탑에 공양하다. 곧 뿌리 향[根香]ㆍ줄기 향[莖香]ㆍ잎 향[葉香]ㆍ가루 향[末香]과 또는 하늘의 향이나 변화로 만든 향 또는 보살의 과보로 생긴 향 등의 이러한 향으로써 서원하기를 ‘나의 국토에는 언제나 좋은 향이 있어서 그것을 만드는 이가 없게 하소서’라고 한다.
혹은 어떤 보살은 백미(百味)로써 모든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백 가지의 맛을 공양하므로 이것을 백미라 한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떡의 종류와 수효가 5백 가지나 되고 그 맛이 백 가지나 있으므로 이것을 백미라 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백 가지나 되는 약초(藥草)와 약과(藥果)로 환희환(歡喜丸)2)을 만드니, 이것을 백미라 한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음료수와 밥과 국과 떡을 모두 합쳐서 백 가지 맛이 있으므로 백미라 한다”고 하기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밥과 음식이 갖가지로 두루 갖추어졌으므로 백미라 한다”고 하기도 한다.
사람의 음식이기 때문에 백 가지 맛이 있지만, 하늘의 음식에는 백천 가지의 맛이 있다. 보살의 복덕으로 생긴 과보의 음식과 신통의 힘으로 변화한 음식에는 한량없는 맛이 있어서 능히 사람의 마음을 바꾸면서 욕탐을 여의고 깨끗하게 만든다. 이러한 네 가지의 음식[四種食]을 보살은 인연에 따라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그 국토에는 저절로 백 가지 맛이 나는 음식이 있게 된다.
혹 어떤 보살은 하늘의 바르는 향[塗香]을 쓰기도 한다. 천축(天竺)의 나라는 몹시 덥고 또 몸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에 향을 몸에 바르고 모든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나의 국토의 중생으로 하여금 하늘의 부드럽고 윤택함을 받게 하소서’라고 한다.
【문】사미계(沙彌戒) 내지는 1일계(日戒)를 받는 이조차도 오히려 몸에 향을 바르지 않거늘, 어떻게 향으로써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는 것인가?
【답】이 보살은 몸에 귀히 여기는 물건으로 필요한 때에 따라 공양하는 것이니, 혹은 땅에 바르기도 하고 벽이나 또는 다니고 앉고 하는 데에 바르기도 하며, 또는 마음의 5욕(欲)을 따라 모든 부처님과 승가와 그 밖의 중생들에게 공양하는 것이다.
이 보살은, 좋은 수레와 말ㆍ처첩ㆍ시녀ㆍ번기ㆍ일산ㆍ금은ㆍ의복과 값진 보물 등은 출가한 사람은 받지 않는 것이므로 모든 중생들에게 보시하면서 서원하기를 ‘나의 국토의 중생으로 하여금 언제나 뜻대로 5욕을 얻게 하소서’라고 한다.
【문】이 5욕을 부처님은 “마치 불과 같고 구덩이와도 같으며 종기와도 같고 감옥과도 같으며 원수와도 같고 도적과도 같아서 사람들의 선근을 빼앗는다”고 말씀하셨거늘, 보살은 무엇 때문에 중생으로 하여금 5욕을 얻게 되기를 원하는 것인가?
또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아, 마땅히 누더기를 입고 걸식하면서 나무 아래에 앉아 있어야 하다”고 하셨거늘, 보살은 무엇 때문에 중생이 5욕을 얻게 되기를 바라는 것인가?
【답】천상과 인간에서 이 5욕은 바로 복덕의 과보이다. 만일 이 세상에서나 뒷세상에 가난하고 박복한 이가 스스로 살아갈 수 없게 되면 곧 도둑질을 하게 되고, 혹은 물건의 주인에게 해를 입히기도 하며, 혹은 재물을 위하여 다른 이를 죽이기도 하고, 혹은 따져 물으면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나니, 이와 같이 차례로 열 가지 착하지 못한 일[十不善]을 짓는 것은 모두가 빈궁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5욕을 두루 갖추게 되면 바라는 일이 뜻대로 되므로 열 가지 착하지 못한 일을 행하지 않게 되나니라.
보살의 국토에는 중생들이 풍요와 쾌락을 누리면서 제 마음대로 하거나 모자란 것이 없으므로 거의 뭇 악이 없다. 다만 애욕[愛]과 잘난 체하는[慢] 등의 연한 결사(結使)만이 있으므로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거나 혹은 그 제자들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부드럽고 연해지기 때문에 법을 듣고 도를 얻는 것이 쉽게 된다. 비록 집착하는 마음이 많다 하더라도 근기가 영리하기 때문에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다’는 말을 들으면 곧 도를 얻게 된다. 비유하건대 마치 때가 낀 옷을 잿물에 담갔다가 하룻밤 지내고 나서 물에다 빨면 한꺼번에 때가 다 없어지는 것과 같다. 보살은 중생으로 하여금 집착하지 않게 하려고 5욕으로 보시하는 것이며 다만 한꺼번에 다 버리게 하려고 그런 것을 줄 뿐이다.
그대가 먼저 말한 것과 같아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누더기를 입고 걸식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전생에 지은 죄의 인연 때문에 악한 세상에 태어나 있으면서 물들고 집착하는 마음이 많다. 만일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얻으면 집착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고 또 좋은 의복과 음식을 구하게 되기 때문에 도를 행함을 방해받고 그만두게 된다. 이 보살이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면서 중생에게 한량없는 복덕을 성취하게 하면, 5욕도 마찬가지가 되어 다시는 귀히 여기거나 집착하지 않게 되며, 또한 다시는 구하지도 않기 때문에 장해될 것도 없다.
또 만일 수행하는 이가 5욕을 여의고 고행을 닦으면 성냄이 더욱 자라게 되고 또 5욕을 기억하게 되면 번뇌가 생기면서
그때에는 곧 향할 곳이 없어지나니, 이 때문에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괴로움도 즐거움도 버리고 지혜에 의지해 중도(中道)에 처하라”고 하신다. 이 때문에 부처님 국토가 깨끗하게 되면 5욕의 보시에도 방해될 것이 없다.
【문】만일 그렇다면 비니(毘尼) 가운데서 무엇 때문에 한 비구가 말하기를 “나는 부처님 법의 이치를 알므로 5욕을 받아도 도(道)에 방해되지 않는다”고 하자, 이 비구를 세 번이나 꾸짖고 그래도 중지하지 않자 내쫒아 버렸는가?
【답】부처님의 법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소승과 대승이다. 소승 가운데서 박복한 사람은 3독이 치우치게 많다. 마치 『바차경(婆差經)』에서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의 속인 제자는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며 나아가 5백 인이 넘는다. 그들은 붉은 전단향을 몸에 바르고 좋은 향과 꽃을 받으며 처자와 같이 눕고 노비를 부리면서도 3결(結)3)을 끊고 수다원을 얻었으며 3결을 다하고 3독(毒)이 얇아져서 사다함을 얻었느니라”고 하셨는데, 이 아리타(阿梨吒) 비구는 이 일을 듣고 말하기를 “비록 5욕을 받는다 하더라도 도에 방해되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이 일을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은 누구를 위하여 말씀하신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속인들을 위하여 말씀한 것인데 이 비구는 출가한 법 가운데서 집착하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수다원이나 사다함 등은 “나는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음욕을 범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지만, 남아 있는 3독 때문에 때때로 도를 잊으면서 음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출가하는 사람은 승가[僧] 가운데서 자기 입으로 맹세하기를 “나는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음욕을 범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요,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만일 출가한 사람이 음욕을 범하면 내쫒기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이런 비구는 자기 자신이 맹세했으면서도 범하면 그것이 바로 첫 번째의 죄요, 부처님이 금지한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어기고 범하면 이것은 바로 두 번째의 죄이며, 이 비구가 속인이 도를 얻는 것을 보고 일부러 자기 자신을 그와 동일하게 간주하면 이 때문에 죄에 떨어지는 것이다.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하는 데는 두 가지 중생이 있나니, 출가와 재가이다. 집에 있는 이는 비록 5욕을 받는다 하더라도 죄가 없고 또한 방해될 것도 없다.
마치 도솔타천(兜率陀天)의 여러 하늘들과 울단왈(鬱單曰)4) 사람들은 비록 5욕을 받더라도 중한 죄를 일으키지 않는 것과 같다. 출가한 중생은 부처님의 허락을 따라야 하나, 출가한 이가 5욕을 받더라도 역시 허물할 것이 없다. 소승의 법 가운데서 아리타(阿梨吒) 비구를 위하여 말씀한 것이니, 박복하고 중한 죄를 지은 이는 마음에 뉘우침이 많기 때문이다.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는 이는 세상마다 6바라밀과 세 가지 해탈문을 익히고 행했으므로 비록 5욕을 얻는다 하더라도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마치 경에서 말씀한 것과 같아서, 이른바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나는 자신이 초선에 들어가야 하고 또한 중생들도 교화하여 초선에 들어가게 하여야 하며, 4선(禪)과 4무량심(無量心)에서 37품(品)까지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하며, 이 보살은 서원을 세우기를 ‘나는 부처님이 되려고 할 때에는 4선에서 37품까지를 모두 행하리라’고 생각한다”고 하니, 이와 같은 복덕 때문에 중생이 비록 5욕을 받는다 하더라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이 보살은 한량없는 아승기의 원을 세웠고 그럴 때마다 도를 행하여 그 원을 두루 갖추게 되니, 이 보살은 온갖 착한 법을 모두 다 성취한다. 그리고 성취시키는 중생에게도 온갖 착한 법이 성취된 까닭에 단정한 몸을 얻어서 보는 이들이 싫어함이 없고 또한 그 중생들도 단정한 몸을 성취하게 된다.
“수보리야, 보살은 이와 같이 하면서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해야 하느니라”고 하셨다.
또 부처님의 국토가 깨끗하게 되면 나아가 3악(惡)이라는 이름조차 없거늘 하물며 3악도가 있겠는가.
【문】모든 부처님은 큰 자비의 마음으로 고뇌하는 중생들을 위하여 세간에 출현하시는데, 만일 3악도가 없다면 가엾이 여길 것이 무엇이겠는가?
【답】부처님이 출현하시는 것은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3악도에 있는 중생은 제도될 수 없고 다만 선근을 심게 할 수 있을 뿐이니, 이 때문에 부처님을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라 한다. 만일 하늘과 인간도 없고 3악도만이 있다면
그렇게 따질 수도 있고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부처님은 중생을 가엾이 여기시면서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는 가운데서는 무엇 때문에 3악도의 중생이 없는 것인가?
【답】온갖 중생을 가엾이 여기시되 평등하여 차이가 없다. 이 가운데서는 깨끗한 인연을 설하고 있으므로 이 국토에는 3악도가 없다.
또 부처님에게는 하나의 국토만이 아니고 이에 시방으로 항하의 모래수처럼 많은 국토가 있으며, 그 부처님께는 깨끗한 국토[淸淨國土]도 있고 잡다한 국토[雜國土]도 있다. 잡다한 국토 가운데에는 5도(道)를 갖추고 있다.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는 데에는 혹은 인간과 천상의 구별이 있기도 하고 혹은 인간과 천상의 구별이 없기도 하다. 마치 과거 세상의 천왕불(天王佛)의 국토에서는 오직 부처님만이 세간에서 가장 높으신 이[世尊]었고 법왕(法王)이었던 것과 같으니, 이 때문에 명호가 천왕불이었다.
또한 어떤 국토에는 3독(毒)이나 삿된 견해가 없었다.
【문】모든 부처님은 다만 중생들의 번뇌를 제거시켜 주기 위하여 세간에 출현하실 뿐이다. 삿된 소견과 3독은 곧 그것이 번뇌인데 만일 번뇌가 없다면 출현하신들 하실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답】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가운데서는 큰 복덕의 인연 때문에 삿된 소견이나 3독이 일어나지 않나니, 그 때문에 없다고 말한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안에 있는 보살들은 모두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고 항상 6바라밀 등의 모든 공덕을 닦으면서 항상 시방을 돌아다니며 중생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하고, 모든 부처님이 닦아 익히신 삼매(三昧)에서 수없는 성문과 벽지불을 훌륭하게 교화한다. 또한 아비발치(阿鞞跋致)의 보살과 중생을 성취한 보살과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는 보살을 훌륭하게 교화하여 부처님의 도[佛道]에 가까워지게 하기 때문에 이롭게 함이 더욱더 크며, 이 국토에는 2승(乘)이라는 이름도 없다”고 한다.
【문】그 밖의 다른 부처님도 3승(乘)으로 교화하셨거늘 어찌 유독 못하심이 있겠는가?
【답】부처님은 5탁악세[濁惡世]5)의 나쁜 세상에 출현하시어 하나의 도[一道]에서 나누어 3승으로 삼으신다.
【문】만일 그렇다면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아촉불(阿閦佛) 등은 5탁의 세상에 나시지 않았거늘 무엇 때문에 또 3승이 있는가?
【답】모든 부처님은 처음 발심할 때에 모든 부처님께서 3승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는 것을 보고 친히 서원을 세우기를 ‘나도 또한 3승으로써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하신 것이다.
‘또한 무상하고ㆍ괴롭고ㆍ공하고ㆍ나 없다는 이름도 없다’고 함은, 중생들은 항상 있다[常]ㆍ즐겁다[樂]는 등의 뒤바뀜에 깊이 집착한 까닭에 그들을 위하여 ‘무상하다ㆍ괴롭다’ 하는 법을 말하게 되지만, 이 가운데에는 항상 있다ㆍ즐겁다는 등의 뒤바뀜이 없기 때문에 ‘무상하다ㆍ괴롭다’는 등의 말이 필요 없다. 마치 병이 없으면 약이 필요 없는 것과 같다. 또한 내 것[我所有]이라는 것이 없는 것에서 모든 번뇌와 결사(結使)가 없는 것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다.
2승이 없기 때문에 또한 수다원 등의 모든 과위도 없으니, 다만 한결같이 모든 법의 실상(實相)에 두고 있을 뿐이다. 먼저 무생법인을 얻은 이는 모든 삼매와 다라니(陀羅尼)의 문을 얻고 더욱더 모든 지위[地] 등의 공덕이 불어나게 된다.
‘바람이 7보(寶)의 나무에 불어 제도해야 할 것을 따라 음성을 낸다’고 함은, 이 보살은 중생으로 하여금 법을 듣기 쉽게 하려고 7보로 된 나무에서 법의 음성이 나오게 한다. 보배나무가 온 국토에 두루 차있기 때문에 중생들은 태어날 때부터 법을 들으면서 다른 마음은 내지 않으니, 다만 법의 마음만이 생길 뿐이다.
【문】모든 부처님께는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신통의 힘이 있거늘, 무엇 때문에 한량없는 몸을 변화로 지어내어 설법하면서 중생을 제도하지 않으시며, 왜 나무의 음성을 필요로 하시는가?
【답】중생은 너무 많다. 만일 부처님께서 곳곳마다 많은 몸을 나타낸다면 중생은 믿지도 않고 환이요 변화한 것이라 여기면서 마음으로 공경하거나 존중하지도 않게 된다.
어떤 중생은 사람으로부터 법을 들으면 마음이 깨쳐지지 못하지만, 만일 축생으로부터 법을 들으면 곧 믿고 받기도 한다. 마치 『본생경(本生經)』 에서 “보살이 축생의 몸을 받아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면 사람들은 희유하기 때문에 믿고 받지 않는 이가 없다”고 한 것과 같으며, 또 이르기를 “축생은 마음이 곧고 속임수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고 한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축생은 바로 생각이 있는 존재[有情物]이어서 모두 속임수가 있지만, 나무는 마음이 없는 것이라 거기에서 음성이 나오면 모두가 믿고 받는다”고 한다. 이른바 ‘공하고ㆍ모양이 없고ㆍ조작이 없어서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온갖 법은 항상 공하고, 공하기 때문에 모양이 없으며, 모양이 없기 때문에 조작도 없고 일어나는 것도 없다’고 하는 이와 같은 등의 법이 밤이나 낮이나 항상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 밖의 국토에서는 신통의 힘[神通力]과 입의 힘[口力]으로써 갖가지로 변화하는데, 이 가운데서는 항상 자연의 음성으로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한다. 부처님은 항상 모든 부처님의 찬탄을 받으면서 크게 공덕을 짓기 때문에 이와 같이 깨끗한 국토를 얻게 되나니, 만일 그 깨끗한 국토의 부처님 명호를 들으면 반드시 부처님이 되도록 되어 있다.
【문】그 밖의 다른 부처님은 갖가지로 애쓰시면서 설법하여도 중생들은 오히려 도를 얻지 못하거늘, 무엇 때문에 다만 부처님의 명호만을 들어도 곧 도를 얻게 되는가?
【답】그 밖의 다른 곳의 부처님은 갖가지로 법을 설하면, 그 중생들은 혹 도를 얻기도 하고 혹은 선근을 얻어서 끝내 헛된 말씀이 되지 않지만, 만일 이 부처님의 명호를 들으면 마침내는 아비발치(阿鞞跋致)에 이르게 되나니, 지금 당장에 된다는 말은 아니다.
【문】온갖 부처님은 만일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명호를 들으면 모두가 부처님에 이르게 된다. 마치 『법화경(法華經)』에서 말씀하시기를 “그의 복덕이 크거나 작거나 간에 모두가 부처님이 될 것이다”고 한 것과 같거늘, 무엇 때문에 유독 깨끗한 국토의 부처님만을 말씀하는가?
【답】사람들이 그 밖의 다른 부처님의 명호를 들으면 ‘생(生)을 받았으므로 다른 사람과 차이가 없고 다만 일체지(一切智)가 있고 도를 얻은 것이 다를 뿐이다’라고 여겨서 마음으로 공경하거나 중히 여기지도 않기 때문에 비록 선근을 심는다 하더라도 깊이 심지 못한다.
이 가운데서는 바로 법성생신(法性生身)의 부처님이라 몸에는 한량없고 끝이 없는 광명이 있고 설법하는 음성은 시방의 국토에 두루 차며, 그 국토의 중생들은 모두가 부처님의 도에 가까운 이들이다.
한량없는 아승기 유순(由旬)의 대중 가운데서 설법하고 한량없는 억(億)의 아승기의 해와 달보다 뛰어난 광명이 항상 몸으로부터 나오니, 부처님은 중생으로 하여금 보면 볼 수 있게 하고 만일 듣지 않으면 볼 수 없게 한다.
이 부처님의
낱낱 털구멍에서는 항상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부처님이 나오게 하니, 그 각각의 모든 부처님은 똑같아서 다르지 아니하다. 그 변화한 부처님 곁에서 전전(展轉)하면서 다시 출현하니, 제도되어야 할 중생에 따라 부처님을 뵙는 데는 우열(優劣)이 있지만 그 근본이 되는 참 부처님과는 크고 작은 차이를 분별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은 등으로 뵙기도 하고 그 명호를 들으며 또는 이와 같은 공덕을 들어서 깊이 믿고 공경하며 존중하기 때문에 심게 되는 선근이거늘, 어찌 마침내 부처님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이 부처님이 법을 설하실 때는 의심하는 이도 없고 나아가 한 사람도 이 법을 법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가 없나니, 부처님의 입으로 직접 말씀하신 것이라 모두가 다 법이다.
【문】그렇다면 어째서 사람들 가운데 석가문니(釋迦文尼)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 의심을 내는 이가 많았는가?
【답】부처님은 이 가운데서 친히 그 인연을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들은 박복(薄福)하여 선근을 심지 못하고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의심을 내는 것이니라”고 하셨으니, 나라는 견해[我見]와 치우친 견해[邊見]와 삿된 견해[邪見]등의 모든 번뇌에 가려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이 아닌데도 부처님이라 하고, 그 분이 부처님인데도 부처님이 아니라 한다. 선근을 깊이 심지 못하고 착한 스승을 따르지 않았기에 3독과 삿된 견해가 한꺼번에 일어나서 의지할 데가 없으며 제 마음대로 방자하게 군다. 만일 삿된 견해를 보고는 그의 뜻에 맞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일체지이다’라고 하며, 모든 부처님께서 ‘필경 공하다’는 말씀을 하는 것을 보면 그의 뜻에는 맞지 않으므로 곧 ‘부처님이 아니다’ 하면서, 법이 아닌 것을 법이라 말하고 법을 법이 아니라고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의심을 많이 내며, 의심을 많이 내기 때문에 마음에 후회하게 된다. 하지만 이 깨끗한 부처님의 국토에는 이러한 죄인이 없기 때문에 의심을 내지 않는다.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은 죄인은 모든 법의 실상을 파괴하기 때문에 죽으면 지옥 악도에 떨어진다”라고 하셨으니, 모든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서 이런 모든 죄인이 생사 속에서 왕래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의 신통한 힘으로 그 중생들을 구출하여 정정취(正定聚)6) 안에 머무르게 하며 3악취(惡趣)7)에 떨어지지 않게 하나니,
이것을 일컬어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한다’고 한다.
이 부처님의 국토에는 이와 같은 모든 허물이 없고 두루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어서 세간과 출세간, 유루와 무루, 유위와 무위 등의 가운데서 장애되는 것이 없다. 이른바 그 국토는 7보로 이루어지고 중생들은 몸이 단정하고 상호(相好)로 장엄하였으며 한량없는 광명이 있고 언제나 법음(法音)을 들으면서 항상 6바라밀 내지는 18불공법을 여의지 않나니, 이 가운데의 중생들은 모두가 필경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른다.
【문】앞에서 ‘부처님의 명호를 들으면 마침내 부처님에 이르게 된다’는 것과 여기서 ‘모든 법에서 장애되는 것이 없어 반드시 부처님이 된다’는 것에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답】여기에서 중생은 항상 부처님을 뵙고 늘 법을 들으면서 선근을 깊이 심고 부처님 법을 많이 쌓기 때문에 빨리 부처님이 될 수 있으나, 부처님의 명호를 듣는 이는 비록 다 같이 마침내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앞의 것보다 조금은 못하다.
이와 같은 등을 바로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하는 모양이라 하나니, 10지(地) 가운데 보리수를 장엄하는 곳[十地中莊嚴菩提樹]에서의 설명과 같다.

83. 필정품(畢定品)을 풀이함 ①

【經】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정해져[畢定] 있는지요? 아니면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정해져 있으니, 반드시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아니니라.”
“세존이시여, 어느 곳에 반드시 정해져 있는지요? 성문의 도에 정해져 있는지요? 벽지불의 도에 정해져 있는지요? 부처님의 도에 정해져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에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요, 이 부처님 도에 반드시 정해져 있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처음 뜻을 낸 보살에게 반드시 정해져 있는지요? 아니면, 맨 마지막 몸의 보살에게 반드시 정해져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처음 뜻을 낸 보살에게 반드시 정해져 있고 아비발치의 보살에게도 반드시 정해져 있으며, 마지막 몸의
보살에게도 반드시 정해져 있느니라.”
“세존이시여, 반드시 정해져 있는 보살도 악도(惡道) 가운데에 떨어져 태어나는지요?”
“아니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8인(人)이나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이 악도에 태어나더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처음 뜻을 내어서부터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을 행하고 지혜를 닦으며 온갖 착하지 못한 업을 끊기 때문에 악도에 떨어진다거나 장수천(長壽天)에 태어난다거나 착한 법을 닦지 못하는 곳에 나거나 변두리 나라에 난다거나 사악한 견해를 지닌 집이나 무작의 견해[無作見]를 지닌 집안에 태어나는 그런 일이 없나니, 이 가운데에는 부처님[佛]이라는 이름도 없고 가르침[法]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승가[僧]라는 이름도 없으므로 이러한 일은 있을 수조차 없느니라.
수보리야, 처음 뜻을 낸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깊은 마음으로 열 가지 착하지 못한 도[十不善道]를 행하는 일은 있을 수조차 없느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선근의 공덕을 성취함이 있는데도 부처님께서 친히 본생(本生)에서 말씀한 것과 같이 착하지 못한 과보를 받는다면 이때에 그 선근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요?”
부처님은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그들에 따라 몸을 받아 그 몸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축생이 되었을 때에 이런 방편의 힘이 있으므로 만일 원수나 도둑이 와서 살해하려 하더라도 이 위없는 인욕(忍辱)과 위없는 자비심으로 몸을 버리어 그 원적들을 괴롭히지 않느니라. 그대들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에게는 이러한 힘이 없나니, 이 때문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큰 자비의 마음을 두루 갖추어 중생을 가엾이 여기면서 이롭게 하려고 일부러 축생의 몸을 받는 것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어떤 선근 가운데에 머무르기에 이러한 모든 몸을 받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처음 발심하여 도량(道場)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선근으로써 두루 갖추지 못한 것이 없으며, 두루 갖춘 뒤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느니라. 이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처음 뜻을 내면서부터 마땅히 온갖 선근을 두루 갖추기를 배워야 하고, 선근을 배운 뒤에는 일체종지를 얻어야 하며 온갖 번뇌의 습기를 끊어야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희고 깨끗한[白淨] 무루의 법[無漏法]을 성취하면서도 악도의 축생 가운데에 태어나게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님은 희고 깨끗한 무루의 법을 성취한 것이더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온갖 희고 깨끗한 무루의 법을 성취하셨습니다.”
“수보리야, 만일 부처님이 몸소 축생의 몸으로 변화하여 불사(佛事)를 하고 중생을 제도한다면 진실로 그 몸이 축생인 것이더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희고 깨끗한 무루의 법을 성취하여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축생의 몸을 받아 그 몸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니라.”
부처님은 이어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아라한 같은 이도 몸을 변화하여 중생을 기쁘게 할 수 있더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 희고 깨끗한 무루의 법으로써 제도해야 할 중생에 따라 몸을 받아 그 몸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면서도 역시 괴로움을 받지 않느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환술사가 갖가지 형상의 코끼리ㆍ말ㆍ소ㆍ양과 남자ㆍ여자 등을 환술로 만들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보일 적에 수보리야, 이 코끼리ㆍ말ㆍ소ㆍ양과 남자ㆍ여자
등은 실제로 있는 것이더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희고 깨끗한 무루의 법을 성취하여 갖가지 몸을 나타내어 중생에게 보이면서 일부러 그 몸으로 일체를 이롭게 하면서도 또한 뭇 고통을 받지 않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의 큰 방편의 힘은 거룩한 무루의 지혜를 얻고서 제도해야 될 중생의 몸을 따라서 갖가지 형상을 지어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論】【문】위의 「아비발치품(阿鞞跋致品)」에서는 “이와 같은 모양이 아비발치이고 이와 같은 모양은 아비발치가 아니니라”고 말씀하셨다. 곧, 아비발치는 곧 반드시 정해져 있다고 하셨거늘, 수보리는 이제 무엇 때문에 다시 묻는가?
【답】이 반야바라밀에는 갖가지의 문(門)이 있고 갖가지의 도(道)가 있나니, 아비발치는 그 중 하나의 문[一門]에 대한 설명이요, 지금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을 묻는 것은 다른 문[異門]을 묻고 있는 것이다.
또 부처님은 마음속으로 온갖 중생과 온갖 법은 모두가 반드시 정해져 있건만 사람들은 지혜가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비록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그가 큰 공덕을 쌓았다 하더라도 반드시 물러나서 소승(小乘)이 된다는 것도 아시고 또한 미세한 곤충이어서 아직 착한 마음이 있지 못하다 하더라도 많은 겁을 지나서 발심하여 뒤에는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것도 아신다. 그리고 온갖 법은 모두가 이와 같아서 ‘이런 원인으로부터 이런 과보를 얻는다’는 것을 반드시 아시기 때문에 부처님을 ‘온갖 법 가운데서 장애가 없는 분’이라 하는 것이니, 그것은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또 수보리는 『법화경(法華經)』 가운데서 “부처님께서 지으신 조그마한 공덕에 대하여, 나아가 장난으로 웃으면서 한 번 ‘나무불(南無佛)’하고 불러도 장차 반드시 차츰 부처님이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었고, 아비발치품에서는 물러나는 것과 물러나지 않는 것이 있음을 들었으며, 또 “성문의 사람은 모두가 장차 부처님이 된다”는 등의 말을 들었다.
만일 그렇다면 물러나는 것이 있지 않아야 한다.
마치 법화경에서 “반드시 정해져 있다”고 말씀해도 그 밖의 다른 경에서는 “물러나는 것도 있고 물러나지 않는 것도 있다”고 한 것과 같나니, 이 때문에 지금 “반드시 정해져 있습니까, 아니면 반드시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이와 같은 등의 갖가지 인연 때문에 정해진 것[定]과 정해지지 않은 것[不定]을 묻는 질문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길 “보살은 곧 반드시 정해져 있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수보리는 마음으로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 반드시 정해져 있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이 때문에 “어느 도(道)에서 반드시 정해져 있습니까”라고 물었으며,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반드시 정해진 바가 없는 것은 2승이요 다만 대승 가운데에서 반드시 정해져 있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부처님 도를 구하는 이에게는 상(上)ㆍ중(中)ㆍ하(下)가 있다. 이 때문에 “처음 뜻을 낸 이에 반드시 정해져 있습니까, 아비발치에 반드시 정해져 있습니까, 맨 마지막 몸에 반드시 정해져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수보리의 생각은 ‘아비발치의 이상은 반드시 정해져 있나니, 그것은 부처님의 도 안에 머무르기 때문이다’고 한 것인데, 부처님은 “세 가지의 보살은 모두가 반드시 정해져 있다”고 대답하셨다. ‘반드시 정해져 있다[畢定]’고 함은 반드시 부처님이 된다는 것이다.
【문】위의 품(品) 가운데서 말씀한 것과 같아서, “부처님의 불안(佛眼)으로써 시방에 있는 보살들을 보건대 부처님을 구하는 이는 항하의 모래수처럼 많은데도 아비발치를 얻는 이는 한 사람 아니면 두어 사람이다”고 하셨거늘, 여기서는 무엇 때문에 “세 가지의 보살은 모두 다 반드시 정해져 있다”고 말씀하시는가?
【답】나는 앞에서 이미 “반야는 매우 깊어서 한량없는 문(門)이 있다”고 말했으니, 어떤 이는 “모든 보살은 물러나게 되어서 반드시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보살은 반드시 정해져 있어서 물러나지 않는다”고 하기도 한다.
마치 「아비발치품(阿鞞跋致品)」에서 수보리는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보살로서 물러나는 이는 어느 곳에서 물러나는지요? 물질에서부터 물러나게 되는지요?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 내지는 18불공법에서부터 물러나게 되는지요?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에 모든 법은 모두가 물러나지 않습니다”라고 한 것과 같으니, 이 가운데서 부처님이 무엇 때문에 또다시 물러나지 않는 것을 말씀하시겠는가.
【문】이 두 가지 이치에서는 어느 것이 진실인가?
【답】두 가지 일이 모두가 진실이니, 부처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은 모두가 진실하지 않은 것이 없다. 마치 부처님은 “모든 법은 공하여 있는 바가 없다”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보시와 지계 등은 곧 유위(有爲)이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하며,
처음 발심한 이에게는 “모든 법은 유위이다”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오래도록 배운 사람으로서 착한 법에 집착한 이에게는 “모든 법은 공하여 있는 바가 없다”고 말씀하시기도 한 것과 같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해 게으름을 피우면서 견고하지 못한 이러한 사람은 성문의 도에서 제도되어야 하는 이인데도 성문을 구하지 않으면 오래도록 생사 속에서 괴로움을 받는다. 이 때문에 “발심한 이들은 항하의 모래수처럼 많아도 아비발치를 얻는 이는 한 사람 아니면 두어 사람이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중생들이 이런 말씀을 듣고 나서 뭇 고통을 받아낼 수 있는 이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반드시 정해져 있지만, 만일 그러하지 못하는 이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를 취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이인데도, 대비(大悲)의 마음이 박하고 자신만을 사랑하고 중히 여긴다. 이런 사람은 ‘부처님은 되기도 어렵고 물러나는 이가 많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생각하기를 ‘나는 혹 부처님이 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차라리 일찍 열반을 취하는 것이 낫겠다. 무엇 때문에 세상마다 갖은 괴로움을 받겠는가’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일체의 보살로서 처음 발심한 이까지 모두가 반드시 정해져 있다”고 하신 것이니, 마치 법화경에서의 말씀과 같다.
【문】만일 보살이면 모두가 반드시 정해져 있거늘,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갖가지로 2승을 꾸짖는 것이며, 보살에게는 2승의 증득을 취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는가?
【답】부처님의 도를 구하는 이면 마땅히 법 성품[法性]을 두루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늙고ㆍ병들고ㆍ죽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법 성품의 조그마한 부분으로 증득을 취하여 곧 스스로 그치고 그만두어 부처님의 도를 버리고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과 보살에게 “너는 아무리 버리고 떠나려 해도 마침내 여읠 수 없게 된다. 아라한을 증득하면 그때에는 모든 보살의 깊은 삼매(三昧)를 구하지 못하며 중생들을 널리 교화하지 못하니, 이는 곧 부처님의 길에서 멀리 돌아가 지체되고 마는 것이다”고 질책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문】아라한이 전생의 인연으로 받게 된 몸은 반드시 소멸되어야 하거늘, 어느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부처님의 도를 완전히 갖추는가?
【답】아라한이 되는 때는
삼계(三界)의 모든 번뇌의 인연이 다하여 다시는 더 삼계에 태어나지 않게 되지만, 깨끗한 부처님의 국토에서는 삼계를 벗어나서 번뇌라는 이름까지도 없게 되니, 이 국토의 부처님 처소에서 법화경을 듣고 부처님의 도를 두루 갖춘다. 마치 법화경에서 말씀하기를 “어떤 나한(羅漢)이라도 만일 법화경을 듣지 않고 스스로 멸도(滅度)를 얻겠다고 여기면 나는 다른 나라에서 그들에게 이 일을 설하겠나니, 너희는 그때서야 모두 부처님이 될 것이니라”고 하신 것과 같다.
【문】만일 아라한이 깨끗한 부처님의 국토에 가서 법성신(法性身)을 받는다면 이처럼 빨리 부처님이 될 수 있거늘, 무엇 때문에 “멀리 돌아가게 되어 지체되고 만다”고 말씀하시는가?
【답】이런 사람은 소승에 집착한 인연으로 중생을 버리고 부처님의 도를 버리면서 또 다시 “도를 얻었다”고 헛된 말까지 하는 것이다. 이런 인연 때문에 비록 생사의 고뇌는 받지 않더라도, 보살보다는 근기가 둔하여 빨리 부처님 도를 이룰 수도 없으니, 곧장 나아가는 보살과는 같지 않다.
또 부처님의 법은 다섯 가지 불가사의[五不可思議] 가운데 맨 첫 번째이다. 지금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곧 부처님이 된다’는 말은, 오직 부처님만이 아시는 것이므로 논의 하는 이[論議者]는 그 일을 바르게 논해야 되니, 추측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희론을 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일 부처님이 되기를 구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환히 알 수 있나니, 그 밖의 다른 사람은 믿을 수는 있어도 알 수는 없다.
‘반드시 정해져 있는 보살은 3악도 가운데에 떨어지는 것입니까’라고 함은, 수보리는 부처님의 한량없는 본생(本生)의 인연에서 혹은 코끼리나 사슴이 되고 비둘기나 공작새나 앵무새가 되어서 갖가지 고통을 받았다는 말씀을 듣고, 이 때문에 부처님께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이 이와 같은 등의 축생의 몸을 받는다면, 어찌하여 온갖 보살이 반드시 정해져 있다고 말씀하십니까”라고 한 것이다.
‘반드시 정해져 있다[畢定]’고 함은, 곧 아비발치(阿鞞跋致)를 말하니, 아비발치를 얻은 이는 3악취(惡趣)에 떨어지지 않는다.
부처님이 반문하시기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8인(人)등의 성인은 3악도에 떨어지느냐”고 하셨다. 수보리는
‘이 모든 성인들은 성인의 도[聖道]에 들어갔기 때문에 3악도에 떨어지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대답하기를 “아닙니다”고 하자,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3악도에 떨어지는 인연이 다했거늘, 어떻게 3악도에 떨어지겠느냐”고 하셨다.
‘3악도에 떨어지는 인연’이란 이른바 모든 착하지 못한 법[不善法]을 말한다. 이 보살은 처음 뜻을 일으켜서부터 보시와 지계 등의 모든 착한 법을 닦아 익히면서 살생(殺生) 등의 열 가지 착하지 못한 길[十不善道]을 끊었다. 만일 이런 사람인데도 3악도에 떨어진다 하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조차 없다. 왜냐 하면, 모든 악한 법을 없애고 착한 법이 더욱 늘어났기 때문이다. 착하지 못한 길에는 상ㆍ중ㆍ하가 있다. 상은 지옥에 떨어지고, 중은 축생에 떨어지며, 하는 아귀에 떨어진다. 이 보살은 이 세 가지가 이미 다하고 깊은 마음으로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있나니, 이 때문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문】만일 그렇다면 3악도는 이런 가운데서는 생기지 않아야 하며, 이 보살은 복덕이 많거늘 무엇 때문에 장수천(長壽天)에 태어나지 않는가?
【답】이 보살은 중생을 가엾이 여기면서 6바라밀을 행하여 비록 선(禪)바라밀에 들었다 하더라도 자비의 행에 화합하여 선정의 맛[禪味]에 집착하지 않으며,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욕계(欲界)의 법을 생각하기 때문에 선도(禪道)에서 물러난다. 그 가운데서는 고뇌가 없어서 선정의 맛에 깊이 집착하여 깨달음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에 장수천에 태어나지 않는다.
변두리 나라[邊國]에는 장애가 있어서 착한 법을 닦을 수 없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보살은 법을 아끼는[悋法] 근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니, 법을 아끼는 인연 때문에 변두리에 있는 나라와 같이 법을 모르는 곳에 태어나는 것이다.
또 이 보살은 항상 중도(中道)를 좋아하며 두 가지 치우친 소견을 버리기 때문에 변두리에 있는 나라에는 태어나지 않는다. 변두리에 있는 나라에는 3보(寶)라는 이름도 없고 7중(衆)8)도 알지 못하며, 다만 이 세상에서의 현재 보이는 일만을 귀히 여기고 복덕의 도법(道法)을 귀히 여기지 않기 때문에 변두리의 땅[邊地]이라 한다. 그러나 비단
변두리에 있는 나라에 태어나기 때문에 변두리의 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만일 3보를 알게 되면 죄와 복이 상속(相續)하는 인연도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알게 되므로 이런 사람이면 비록 염부제(閻浮提) 밖에서 태어난다 하더라도 변두리라고 하지 않거늘 하물며 염부제 가운데에 태어나는 것이랴.
이 보살은 항상 좋아하면서 다른 이를 위하여 법을 설하고 또한 착한 법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뜻대로 착한 중생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되나니, 이른바 가운데에 위치한 나라[中國]의 사람이 된다. 가운데 위치하여 있는 나라에서는 삿된 소견을 지닌 집에 태어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이 보살은 세상에서 마다 언제나 자기 자신이 바른 견해를 행하였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바른 견해를 가르쳤으며, 바른 견해의 법을 찬양하고 바른 견해를 지닌 이를 기뻐하며 찬탄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사악한 견해를 지닌 집에 태어나지 않는다.
【문】이 보살은 큰 복덕과 지혜의 힘으로 마땅히 변두리 땅이나 삿된 견해를 지닌 집에 태어나서 그들을 교화해야 할 것인데,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며 그곳에 태어나지 않는가?
【답】보살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큰 힘을 성취한 보살이요, 둘째는 인연에 의지해 새로 발심한 보살이다. 큰 보살은 중생을 위하여 제도해야 할 바에 따라 몸을 받아서 변두리 땅이나 삿된 견해를 지닌 집을 피하지 않지만, 새로 뜻을 낸 보살은 만일 이런 곳에 태어나게 되면 이미 남을 제도할 수 없을 뿐더러 자기 자신도 무너져버리니, 이 때문에 태어나지 않는다. 비유하건대 마치 순금은 진흙 속에 있어도 끝내 못쓰게 되지 않지만 구리나 쇠는 곧 못쓰게 되는 것과 같다.
삿된 견해란 이른바 작용이 없는 견해[無作見]이다. 비록 62종은 모두가 삿된 견해라 할지라도, 이 작용이 없는 견해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하다. 그것은 왜냐하면, 작용이 없다는 것은 “공덕을 지으면서 열반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천작(天作)’이라 하고 ‘세계시래(世界始來)’라 하는 것도 비록 그것이 삿된 견해이기는 하나 복덕을 짓는 것을 막지 않지만, 이 작용이 없는 것은 몹시 나쁜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견해의 집에는 태어나지 않는다.
또 처음 발심한 보살이 몹시 나쁜 마음으로 열 가지 착하지 못한 길[十不善道]을 행한다는 일은 있을 수조차 없다. 왜냐 하면, 이 보살은 한 마음으로 회향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귀중히 여기고,
세간의 법을 귀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아직 욕탐의 인연을 여의지 못한 까닭에 비록 모든 번뇌를 일으킨다 하더라도 끝내 깊은 마음으로 악을 짓지는 않나니, 아무리 매질을 가한다 하여도 마침내 그의 목숨을 빼앗지 못하며, 다른 이의 재물을 취하여 그의 목숨까지 잃게 하는 일도 없다. 이 보살은 온갖 착하지 못한 법을 끊고 온갖 착한 법을 닦아 쌓았기 때문에 여덟 가지 어려운 일이 있는 곳[八難處]9)에 나지도 않고 언제나 여덟 가지의 좋은 곳[八好處]을 만난다.
수보리는 여쭈기를 “만일 보살이 이와 같은 선근을 성취함이 있다면 어찌하여 본생의 인연[本生因緣]에 사슴이나 말 등으로 되는 일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보살은 실로 복덕이 있고 선근을 성취하므로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축생의 형태를 받기는 하지만 역시 축생으로서의 죄는 없다”고 하셨다.
이 가운데서 부처님은 친히 그 인연을 말씀하시기를 “이른바 보살은 축생 가운데에 있을 때에도 원적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지만 아라한이나 벽지불로서는 이런 일이 없다”라고 하셨으니, 아라한이나 벽지불은 원적이 와서 해칠 적에 비록 그에게 보복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를 사랑하고 공양하며 베풀어주는 일은 하지 못한다.
보살이 옛날 여섯 개의 어금니를 가진 흰 코끼리 몸을 받아 태어났을 적에 사냥꾼이 독화살로 그의 가슴을 쏘았다. 그때에 보살 코끼리는 코로써 그 사냥꾼을 감싸 안으면서 다른 코끼리들이 해칠 수 없게 했다. 그리고는 암컷 코끼리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보살의 부인이거늘 무슨 인연으로 나쁜 마음을 낸단 말이오. 이 사냥꾼은 번뇌의 죄 때문에 그런 것이니, 이 사람의 허물은 아니오.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면 당연히 그 번뇌의 죄를 없애 줄 것이오. 비유하건대 마치 귀신에게 사람이 홀렸을 때에 주술사(呪術師)가 와서는 그 귀신만을 다스릴 뿐 사람에게는 성내지 않는 것과 같소. 그러니 그의 죄를 추궁하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그런 뒤에 천천히 그 사냥꾼에게 묻기를 “당신은 무엇 때문에 나를 쏘았는가”라고 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나는 너의 어금니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러자 코끼리는 곧 갈라진 돌틈으로 가서는 어금니를 빼어 그에게 주었다. 피와 살이 한데 섞이어 줄줄 흘러 내렸으나 아파하지도 않은 채 그에게 양식을 주고는 지름길까지 가리켜 주었다.
이와 같은 등의 자비가 아라한이나 벽지불에게는 없다.
이처럼 좋은 마음을 가지거늘 어떻게 축생의 몸을 받겠는가. 그러므로 이것은 변화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인 줄 알아야 한다.
【문】무엇 때문에 사람의 몸이 되어서 그들에게 법을 설하지 않고 이런 짐승의 몸이 되는가?
【답】때로는 중생들이 사람의 몸을 보면 믿고 받아들이지 않다가, 축생의 몸으로 설법하는 것을 보면 곧 믿고 좋아하면서 그의 교화를 받아들인다. 또 보살이 큰 자비의 마음을 두루 갖추려 하고 그 진실한 일을 행하려 하면, 중생들은 그런 것을 보고 놀라고 한편 기뻐하면서 모두가 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