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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103 불교 (대지도론/大智度論) 91권

by Kay/케이 2024.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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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지도론(大智度論) 91

 

 

대지도론 제91권

81. 조명품(照明品)을 풀이함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經】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과 18공(空)과 37조도법(助道法)과 부처님의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4무애지(無礙智)와 18불공법(不共法)을 행하여 보살의 도(道)를 두루 갖추지 못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하면 보살의 도를 완전히 갖추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방편의 힘으로 단(檀)바라밀을 행하면서 보시를 얻지 않고 보시하는 이도 얻지 않으며 받는 이도 얻지 않고 또한 이 법을 멀리 여의지도 않고 단바라밀을 행하면, 이것이 곧 보살의 도를 밝게 비추는 것이니라.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보살은 방편의 힘으로써 보살의 도를 두루 갖추며, 갖춘 뒤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나니, 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 내지는 18불공법(不共法)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익히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되 방편의 힘으로써 물질[色]을 파괴하지 않고 물질을 따르지도 않느니라. 왜냐 하면, 이 물질의 성품은 없기 때문에 파괴할 것도 없고 따르지도 않나니, 나아가 인식[識]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의 힘으로써 단바라밀을 파괴하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느니라. 왜냐 하면, 단바라밀의 성품은 없기 때문이니, 나아가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의 제 성품[自性]을 파괴할 수도 없고 따를 수도 없다면,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반야바라밀과 모든 보살마하살이 배워야 할 것을 익힐 수 있겠습니까.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우지 않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말과 같아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우지 않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지만, 방편의 힘을 여의지 않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느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만일 하나의 법이라도 얻을 수만 있다면 마땅히 취해야 되지만, 만일 얻을 수 없다면 무엇 때문에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이다, 이것이 선(禪)바라밀이다, 이것이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이다, 이것이 찬제(羼提)바라밀이다, 이것이 시라(尸羅)바라밀이다, 이것이 단(檀)바라밀이다, 이것이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이다,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라고 취하려 들겠느냐.
사리불아, 이 반야바라밀은 취할 수 없는 모양이며 나아가 온갖 부처님의 법도 취할 수 없는 모양이니라. 사리불아, 이것을 바로 반야바라밀에서 부처님의 법까지를 취하지 않는다 하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배워야 할 것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이 가운데서 배울 때에도 그 배우는 모양도 또한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반야바라밀과 부처님의 법과 보살의 법과 벽지불의 법과 성문의 법과 범부의 사람의 법이겠느냐.
왜냐 하면 사리불아, 모든 법은 어느 한 법에도 성품이 없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성품이 없는 모든 법에서 어떤 것이 범부의 사람이며 또 수다원이고 사다함이며 아나함이고 아라한이며 벽지불이고 보살이며 부처님이겠느냐.
만일 이런 모든 성현이 없다면 또 어떻게 법이 있겠느냐. 이러한 법 때문에 분별하면서 ‘이 사람이 바로 범부의 사람이요, 이 분이 수다원이며 사다함이요, 아나함이며 아라한이요, 벽지불이며 보살이요, 부처님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에 성품이 없고 진실이 없으며 근본이 없다면, 어떻게 그 사람이 범부의 사람이며 나아가 그 분이 부처님인 줄 알 수 있겠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범부들이 집착하고 있는 곳의 물질에는 성품이 있고 진실이 있더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다만 뒤바뀐 마음일 뿐이기 때문이니,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에서 18불공법까지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방편의 힘으로써 모든 법에는 성품이 없고 근본도 없다고 보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방편의 힘으로써 모든 법에는 성품이 없고 근본도 없다고 보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법의 근본을 보면 그 속에 머물러서, 물러나거나 게으른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사리불아, 모든 법의 근본에는 실로 나[我]가 없고 있는 바 성품이 없어서 언제나 공하지만, 다만 뒤바뀌고 어리석기 때문에 중생은 음(陰)ㆍ입(入)ㆍ계(界)에 집착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이 있는 바 성품이 없고 항상 공하며 제 성품이 공한 것을 볼 때에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스스로 서서는 마치 환술사[幻師]처럼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느니라. 간탐하는 이에게는 보시하는 법을 말해 주고 계율을 파한 자에게는 지계의 법을 말해 주며, 성을 내는 이에게는 인욕하는 법을 말해 주고 게으른 이에게는 정진하는 법을 말해 주며, 생각이 산란한 이에게는 선정의 법을 말해 주고 어리석은 이에게는 지혜의 법을 말해 주느니라. 그 중생으로 하여금 보시 내지는 지혜에 머무르게 하고 그런 뒤에는 그들을 위하여 거룩한 법을 설해 주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나니, 이런 법 때문에 수다원의 과위를 얻고 나아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를 얻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도 얻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이 중생의 있는 바 없음을 얻고서도 교화하여 보시와 지계 내지는 지혜에까지 머무르게 하며, 그런 뒤에는 그들을 위하여 거룩한 법을 설해 주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나니, 이런 법 때문에 수다원의 과위 내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얻을 죄과가 있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사리불아,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을 얻지 않기 때문이니, 다만 공한 법이 상속(相續)하기 때문에 중생이라 할 뿐이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두 이치[二諦]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니, 곧 세속의 이치[世諦]와 으뜸가는 이치[第一義諦]이니라.
사리불아, 두 이치 가운데서 중생은 비록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의 힘으로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나니, 중생은 이 법을 듣고도 지금의 세상에서 나[吾我]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그 소용되는 법을 얻겠느냐.
이와 같아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보살마하살은 마음이 넓고 커서 하나의 모양[一相]이나 다른 모양[二相]이나 별개의 모양[別相]으로서 얻을 만한 어떤 법도 없는데도 이와 같이 크게 서원으로 장엄합니다. 이런 장엄 때문에 욕계(欲界)에 태어나지 않고 색계(色界)에 나지도 않고 무색계(無色界)에 나지도 않으며, 유위의 성품[有爲性]도 보지 않고 무위의 성품[無爲性]도 보지 않으며, 삼계(三界) 가운데서 중생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하면서도 또한 중생을 얻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중생은 속박되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중생은 속박되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기 때문에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으며,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기 때문에 5도(道)를 분별하는 일도 없고, 5도를 분별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업(業)도 없고 번뇌도 없으며, 업도 없고 번뇌도 없기 때문에 또한 과보도 있지 않아야 하지만, 이 과보 때문에 삼계에 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그대가 말한 것과 같아서 만일 중생이 먼저는 있다가 뒤에 없다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에게는 죄과가 있을 것이니, 모든 법과 5도의 생사(生死)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일 먼저는 있다가 뒤에 없다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은 곧 죄과가 있을 것이니라.
사리불아, 이제 부처님이 계시거나 부처님이 계시지 않거나 간에 모든 법 모양은 항상 머물러 달라지지 않나니, 이 법의 모양 가운데에는 오히려 나[我]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으며 나아가 아는 이도 없고 보는 이도 없거늘 하물며 물질ㆍ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이 있겠느냐. 만일 이런 법이 없다면 어떻게 5도를 왕래하면서 중생을 구출할 곳이 있겠느냐.
사리불아, 이 모든 법의 성품은 항상 공하나니, 이 때문에 모든 보살마하살은 과거의 부처님으로부터 이 법의 모양을 듣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뜻을 일으키느니라. 이 가운데에는 나[我]로서 얻어야 하는 어떤 법도 없고 또한 중생이 결정코 머물 곳과 법도 없어서 벗어날 수도 없는데 단지
중생이 뒤바뀐 까닭에 집착할 뿐이니, 이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큰 서원의 장엄을 일으켜 항상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느니라. 이 보살은 ‘나는 장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의심하지 않으니, ‘나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야 한다’고 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뒤에는 진실한 법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고 뒤바뀐 데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사리불아, 비유하건대 마치 환술사가 백천억만의 사람을 환술로 만들어서 갖가지 음식을 주어 배부르게 하면, 그들은 기뻐하면서 외치기를 ‘나는 큰 복을 얻었다, 나는 큰 복을 얻었다’고 하는 것과 같나니,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가운데서는 사람이 먹고 마셔서 배부를 것이 있더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처음에 뜻을 내어서부터 6바라밀과 4선(禪)과 4무량심(無量心)과 4무색정(無色定)과 4념처(念處) 내지는 8성도분(聖道分)과 14공(空)과 3해탈문(解脫門)과 8배사(背捨)와 9차제정(次第定)과 부처님의 10력(力)과 더 나아가 18불공법(不共法)까지도 행하여 보살의 도를 완전히 갖추어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하면서도 중생으로서 제도할 만한 어떤 법도 없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도(道)이기에 보살은 이 도를 행하여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처음 뜻을 내어서부터 단바라밀을 행하고 시라ㆍ찬제ㆍ비리야ㆍ선ㆍ반야바라밀을 행하며, 나아가 18불공법을 행하면서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을 행하여
중생을 성취시키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을 행할 때에 자기 자신이 보시하고 또한 중생을 교화하여 보시하게 하고 말하기를 ‘선남자들이여, 그대들은 보시에 집착하지 마시오. 그대들은 보시에 집착하기 때문에 다시 몸을 받아야 하고 다시 몸을 받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오. 선남자들이여, 모든 법의 모양에는 보시하는 것도 없고 보시하는 이도 없으며 받는 이도 없나니, 이 세 가지 법의 성품은 모두가 공하오. 이 성품이 공한 법은 취할 수도 없으니, 취할 수 없는 모양이 곧 성품이 공한 것이오’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에게 보시하면서도 이 가운데서는 보시도 얻지 않고 보시하는 이도 얻지 않으며 받는 이도 얻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얻을 것이 없는[無所得] 단바라밀, 이것을 이름하여 단바라밀이라 하기 때문이니라. 이 보살은 이 세 가지 법을 얻지 않기 때문에 중생들을 교화하여 수다원의 과위를 얻게 하고 나아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도 얻게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을 성취시키나니, 이 보살은 자기 자신이 보시를 행하고 또한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보시를 행하게 하며, 보시하는 법을 찬탄하고 보시를 행하는 이를 기뻐하며 칭찬하느니라. 이 보살은 이와 같이 보시한 뒤에 찰리의 큰 족성[大姓]과 바라문의 큰 족성과 거사의 큰 집안에 태어나며 또는 작은 나라 왕이나 전륜성왕이 되느니라. 이때에 네 가지의 일[四事]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나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의 일이냐 하면, 보시(布施)와 애어(愛語)와 이행(利行)과 동사(同事)이니라.
이 네 가지의 일로 중생을 거두어 주고 나면 중생은 점차로 계율[戒]과 4선과 4무량심과 4무색정과 4념처 내지는 8성도분과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삼매에 머물러
정위(正位) 안에 들게 되고 수다원의 과위를 얻으며, 나아가 아라한의 과위까지를 얻고 또는 벽지불의 도를 얻으며 또는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느니라.
그는 말하기를 ‘선남자들이여, 그대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어야 하나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얻기 쉬운 것이오. 왜냐 하면, 어떤 정해진 법으로서 중생이 집착할 곳이란 없기 때문이니, 다만 뒤바뀐 까닭에 중생이 집착할 뿐이오. 그러므로 그대들은 자기 자신이 생사(生死)를 여의면서 또한 다른 이도 교화하여 생사를 여의게 하여야 하며, 그대들은 발심하여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해야 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도 이익을 얻게 해야 하오’라고 하나니,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단바라밀을 행하여야 하느니라.
이 단바라밀을 행한 인연 때문에 처음 뜻을 내어서부터 끝내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전륜성왕이 되나니, 왜냐 하면 그 심는 바에 따라 큰 과보를 얻기 때문이니라. 이 보살은 전륜성왕이 되었을 적에 구걸하는 이를 보면 생각하기를 ‘나는 다른 일 때문에 전륜성왕의 과보를 받은 것이 아니다. 다만 온갖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받았을 뿐이다’고 하느니라. 그때에 그는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그대들의 물건이니, 어려워할 것 없이 그대들은 몸소 와서 가져가시오. 나는 아끼는 것이 없소. 나는 중생들을 위하여 짐짓 생사를 받은 것이니, 그대들을 가엾이 여긴 까닭이오’라고 하느니라.
그는 대비(大悲)를 두루 갖추고 이 대비를 행하여 중생들을 이롭게 하면서도 또한 실로 일정한 중생의 모양을 얻지 않으며, 다만 임시로 붙인 이름만이 있기 때문에 그가 중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니, 이 이름도 또한 공하여서 마치 메아리 소리와 같아 실로 모양을 말할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단바라밀을 행하면서 중생들에 대하여 아끼는 것이 없어야 하나니, 나아가 자신의 살조차 아끼지 않거늘 하물며 바깥의 물건이겠느냐. 이런 법 때문에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어떤 것이 그런 법이냐 하면, 이른바 단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 내지는 18불공법이니, 이는 중생들을 생사 가운데서 해탈하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보시한 뒤에 말하기를 ‘선남자들이여, 그대들은 어서 와서 계율을 지니시오. 나는 그대들에게 공급하여 모자란 것이 없게 하리니, 의복ㆍ음식ㆍ침구에서 살림에 필요한 것까지 모조리 다 대줄 것이오. 그대들이 모자라는 것 때문에 계율을 깨뜨린다면 나는 그대들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이에 7보(寶)까지도 모자란 것이 없이 모두 주겠소. 그리하여 그대들은 이 계율의(戒律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점차로 괴로움을 다하게 되며, 성문승과 벽지불승과 불승의 이 3승(乘)을 타고 제도되어 벗어나게 될 것이오’라고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만일 중생이 성을 내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선남자들이여, 그대들은 무슨 인연 때문에 성을 내고 괴로워하는 것이오? 나는 그대들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주리니, 그대들이 바라는 것을 나에게서 가져가시오. 음식이나 의복에서 살림에 필요한 것까지 모자람이 없이 모두 주겠소’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은 단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중생들을 교화하여 인욕을 하게하면서 말하기를 ‘온갖 법 가운데는 견실한 것이 없소. 그대들이 성을 내는 이 인연도 공하여 견실함이 없는 것이니, 모두가 허망한 기억과 생각에서 생기는 것이어서 그대들에게 그 근본이 있는 것이 아니오. 그대들은 성을 내어 마음을 무너뜨려 욕설을 퍼붓고 꾸짖고 칼과 몽둥이로 서로 해치며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는데, 그대들은 이 허망한 법으로 성을 낸 까닭에 지옥과 축생과 아귀나
그 밖의 악도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그대들은 이 허망하고 진실이 없는 모든 법 때문에 죄업을 짓지 않도록 하시오. 이런 죄업 때문에 오히려 사람 몸조차도 얻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부처님이 계신 세상에 태어날 수 있겠소. 여러 사람들이여, 부처님의 세상은 만나기 어렵고 사람의 몸은 얻기가 어려우니, 그대들은 이런 좋은 때를 잃지 마시오. 만일 좋은 때를 잃게 되면 구제될 수 없을 것이오’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중생을 교화하면서 자기 자신이 인욕을 행하고 또한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인욕을 행하게 하며, 인욕하는 법을 찬탄하고 인욕을 행하는 이를 기뻐하면서 칭찬하느니라. 이 보살은 중생으로 하여금 인욕 가운데에 머무르게 하고 점차로 3승으로써 뭇 괴로움을 다하게 하나니,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중생으로 하여금 인욕에 머무르게 하느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보살이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중생으로 하여금 정진을 내게 하느냐 하면, 수보리야, 보살은 중생이 게으른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은 무엇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는가’라고 할 적에, 그 중생들이 말하기를 ‘인연이 적기 때문이오’라고 한다면, 이 보살은 단바라밀을 행할 때에 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그대들에게 인연을 두루 갖추게 하리니, 보시와 지계와 인욕 등 이러한 인연을 그대들로 하여금 완전히 갖추게 하겠소’라고 하느니라.
이 중생들은 보살에게서 이익되는 인연을 얻었기 때문에 몸으로 정진하고 입으로 정진하고 마음으로 정진하나니, 몸으로 정진하고 입으로 정진하고 마음으로 정진하기 때문에 온갖 착한 법을 두루 갖추고 거룩한 무루(無漏)의 법을 닦느니라. 거룩한 무루의 법을 닦기 때문에 장차 수다원의 과위 내지는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를 얻으며 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을 행할 때에 정진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중생들을 거두어 주느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을 교화하여 선바라밀을 닦게 하겠느냐?”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중생의 마음이 산란한 것을 보면 말하기를 ‘그대들은 선정을 닦아야 한다’라고 할 적에, 그 중생들은 말하기를 ‘저희들은 인연을 두루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라고 한다면, 이 보살은 말하기를 ‘나는 그대들에게 인연을 지어 주리니, 이런 인연 때문에 그대들의 마음이 거친 생각[覺]과 세밀한 생각[觀]을 따르지 않게 하겠으며 또한 밖으로 내달리지 않게 하겠소”라고 하느니라.
중생들은 이런 인연 때문에 거친 생각과 세밀한 생각을 끊으며 초선(初禪)ㆍ제2선ㆍ제3선ㆍ제4선에 들어가고 자(慈)ㆍ비(悲)ㆍ희(憙)ㆍ사(捨)의 마음을 행하나니, 중생들은 이 선(禪)과 한량없는 마음[無量心]의 인연 때문에 4념처 내지는 8성도분을 닦으며 37조도법(助道法)을 닦을 때에 점차로 3승에 들어가 열반을 얻으며 끝내 도(道)를 잃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을 행할 때에 선바라밀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고 선바라밀을 행하게 하느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을 행하고 반야바라밀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느냐 하면, 수보리야, 보살은 중생이 어리석어서 지혜가 없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그대들은 무엇 때문에 지혜를 닦지 않는가’라고 할 적에, 그 중생들은 말하기를 ‘인연을 아직 두루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라고 한다면, 이 보살은 단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말하기를 ‘그대들이 필요한 지혜를 두루 갖추려 하면 나로부터 취할 것이니, 이른바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과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오. 이런 인연을 두루 갖춘 뒤에는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해야 하오. 곧 반야바라밀을 생각할 때에는 〈얻을 수 있는 어떤 법이 있는가. 나[我]와 중생과 수명 내지는 아는 이ㆍ보는 이를 얻을 수 있는가.
물질ㆍ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과 욕계ㆍ색계ㆍ무색계와 6바라밀과 37조도법과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는가〉라고 해야 하는 것이오’라고 하느니라.
이 중생들이 이와 같이 생각할 때에는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얻을 수 있거나 집착할 수 있는 어떤 법도 없나니, 만일 모든 법을 집착하지 않으면 이때에는 생겨나는 것이 있거나 없어지는 것이 있거나 더러운 것이 있거나 깨끗한 것이 있는 어떤 법도 보지 않으며, ‘이것이 지옥이다, 이것이 축생이다, 이것이 아귀이다, 이것이 아수라의 무리이다, 이것이 하늘이다, 이것이 사람이다, 이것이 지계(持戒)이다, 이것이 파계(破戒)이다, 이것이 수다원이다, 이것이 사다함이다, 이것이 아나함이다, 이것이 아라한이다, 이것이 벽지불이다, 이분이 곧 부처님이다’라고 분별하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을 행할 때에 반야바라밀로써 중생들을 거두어 주느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시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 내지는 37조도법으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느냐 하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공양 거리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느니라. 이런 이익의 인연 때문에 중생은 4념처(念處)와 4정근(正勤)과 4여의족(如意足)과 5근(根)과 5력(力)과 7각분(覺分)과 8성도분(聖道分)을 닦으며, 중생은 이 37조도법을 행하여 생사 가운데서 해탈을 얻나니,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무루(無漏)의 거룩한 법으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교화할 때에 말하기를 ‘선남자들이여, 그대들은 나에게서 필요한 음식과 의복과 침구와 향화 내지는 7보 등 갖가지 살림에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모두 가져가시오. 그대들은 이 물건으로써 중생들을 거두어 주되, 그대들을 오랫동안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여 준다는 그러한 생각은 하지 마시오. 이 물건들은 나의 소유(所有)가 아니며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중생들을 위하여 이런 모든 물건을 쌓은 것이니, 그대들은 이 물건들을 자기 물건이나 다름없이 여기면서 가져가서 중생들을 교화하고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과 지혜를 행하게 하고 나아가 37조도법과 부처님의 10력 내지는 18불공법을 얻게 하며, 또한 무루법의 과위 즉 수다원 내지는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해야 하오’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와 같이 중생들을 교화하며, 3악도와 온갖 생사의 왕래하는 고통을 여읠 수 있게 해야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에 머물러 중생을 교화하며 말하기를 ‘중생들이여, 그대들은 어떤 인연이 모자라 계율을 깨뜨리는 것인가. 나는 그대들에게 그 인연 즉 보시 내지는 지혜와 갖가지 생활에 필요한 것을 두루 갖추어지게 하리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은 시라바라밀에 머물러 중생을 이롭게 하면서 10선도(善道)를 행하고 10불선도(不善道)를 멀리 여의게 하나니, 이 모든 중생은 모든 계율을 지니어 계율을 깨뜨리지 않고 계율을 이지러뜨리지도 않으며, 계율을 흐리게 하지도 않고 계율을 섞이게 하지도 않으며, 계율에 집착[取]하지도 않으면서 점차로 3승으로써 괴로움이 다하게 되느니라.
시라바라밀을 첫머리로 삼음은 마치 단바라밀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니,
나머지 네 가지 바라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論】【문】앞에서 “보살은 6바라밀 등의 모든 도를 돕는 법[助道法]을 행하여도 보살의 도를 갖추지 못하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이제 수보리는 마땅히 스스로 6바라밀을 행하여 보살의 도를 두루 갖추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는 줄 알아야 되겠거늘, 무엇 때문에 또 물었는가?
【답】수보리는 ‘어떻게 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가’에 대하여는 의심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다만 ‘어떻게 보살의 도를 두루 갖추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만일 보살이 6바라밀 등 모든 법을 이용하면 방편의 힘과 화합함으로써 행할 수 있고 이때에 보살의 도를 두루 갖춘다”라고 하셨다. 방편의 힘은 결코 이 보시 등 세 가지 일을 얻지 못하며 또한 이 세 가지 일을 여의고는 단바라밀을 행하지도 못하나니, 이때에 보살의 도를 밝게 비춘다. 밝게 비춘다[照明]는 것과 두루 갖춘다[具足]는 것은 동일한 뜻이다.
만일 보살이 보시 등 세 가지 일을 결정코 얻으려 하면 항상하다는 뒤바뀜[常顚倒]과 모양을 취하는 것[取相]과 법에 집착하는 것[著法] 등의 죄과에 떨어지며, 만일 이 세 가지 일을 얻지 않는다면 단멸(斷滅)의 치우친 견해1)와 공에 집착함[著空]에 떨어져서 도리어 삿된 소견 등 모든 번뇌를 일으켜 곧 보살의 도를 여의게 된다.
만일 보살이 이 두 가지 치우친 데를 여의면 공으로 인하여 이 보시 등 임시로 붙인 이름의 거짓된 법을 버리며, 모든 법의 실상(實相)으로 인하여 이 공에 집착한 것을 여의면 보시하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나니, 마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모양과 같다. 이 보시를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여 다름이 없으니, 이와 같은 보시를 ‘두루 갖춘다[具足]’고 한다. 나아가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다. 사리불은 이 모임 안에 있으면서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반야는 심히 깊으며 과보가 크고 이익이 있다”는 말씀을 듣고, “비록 이익이 있다 하더라도 결정된 성품이 없거늘 어떻게 익힐 수 있습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물질을 파괴하지 않고 물질을 따르지도 않나니, 이와 같은 것을 이름하여 반야바라밀을 익힌다 하느니라”고 하셨다.
보살은 처음 발심하면서 진실한 법을 알게 되기 때문에 항상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도 차례대로 그 알맞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보시 등 모든 법을 행하나니, 이 때문에 항상 말하기를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시 등 모든 법을 행한다”고 하는 것이다.
‘물질을 파괴하지 않는다’고 함은, ‘이 물질은 무상한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이 물질은 공하여 있는 바가 없다’고 말하지도 않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물질을 파괴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질에 따르지 않는다’고 함은, 눈으로 빛깔을 보고 모양을 취하며 집착을 내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또 이 물질은 ‘항상 있다’거나 ‘무상하다’거나 ‘괴롭다’거나 ‘즐겁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물질에 따르지 않는다’고도 한다. 항상하다는 것과 무상하다는 것 등은 모두가 물질의 실상이 아니다.
또 ‘이 물질의 근본은 세간의 성품 가운데서 왔다’거나 ‘작은 티끌에서 왔다’거나 ‘대자재천(大自在天, Maheśvaradeva) 가운데서 왔다’라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때가 돼서 왔다’고도 말하지 않고 ‘저절로 생겼다’고도 말하지 않으며, 또한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이 억지로 생겼다’고도 말하지 않으니, 이와 같은 것 등을 ‘따르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 가운데서 부처님은 친히 그 인연을 말씀하시면서 “이 물질은 성품이 없기 때문에 따르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는다”고 하셨다. ‘성품이 없다’고 함은 이 물질은 일체가 4대(大)로 화합하여 임시로 물질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니, 이 가운데에는 물질이라 하는 정해진 어느 하나의 법도 없다는 것이다. 앞의 물질을 타파하는[破色] 가운데서 설명한 것과 같다.
이 물질은 인(因)과 연(緣)이 화합하여 생겼기 때문에 그것이 곧 성품이 없는 것이요, 성품이 없는 것은 곧 성품이 공한 것[性空]이다. 만일 이 물질 모양의 성품이 공한 것을 얻으면 곧 그것이 반야바라밀을 익히는 것이니, 나아가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다.
다시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에 파괴하거나 따를 수 있는 제 성품이 없다면,
어떻게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익히겠습니까. 반야바라밀을 배우지 않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부처님은 사리불의 뜻을 인가하면서 친히 그 인연을 말씀하시기를 “만일 보살이 방편의 힘으로써 6바라밀을 행하면, 이 사람은 비록 모든 법이 공한 줄 안다고 하더라도 능히 반야바라밀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리불아, 만약 보살이 온갖 법을 구할 적에 조금이라도 정해진 성품을 얻는다면 취하고 집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지금 보살은 실로 온갖 법을 구하고 찾는다 해도 정해진 실체를 얻지 않는다. 이른바 ‘이것이 반야바라밀이요 이것이 선바라밀이며, 나아가 이것이 18불공법이다’라고 하는 이 모든 법은 모두 얻을 수 없느니라. 얻을 수 없거늘 무슨 취할 바가 있겠느냐.
사리불아,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취함이 없는[無取] 반야바라밀이라 하나니, 보살은 마땅히 취함이 없는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취함이 없는 것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반야 등의 모든 법이겠느냐. 온갖 법은 성품이 없기 때문이니라”고 하셨다.
사리불은 또 여쭈기를 “만일 온갖 법에 성품이 없다면 어떻게 이것은 범부의 사람이요 나아가 부처님인 줄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온갖 법에는 비록 근본과 정해진 모양이 없다고 하더라도 다만 범부의 사람들이 뒤바뀌게 생각하는 까닭에 집착할 뿐이며,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방편의 힘으로써 온갖 법에 근본이 없음을 알면서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이 보살은 모든 법의 성품이 공한 것을 깊이 행하기 때문에 온갖 법에 근본이 있다고 보지 않으며, 보지 않기 때문에 게으르지 않고 물러나지도 않으며, 온갖 법에는 나[我]도 없고 있는 바 성품이 없으며 성품은 항상 공한 것인데 다만 중생들이 어리석고 뒤바뀐 까닭에 이 음(陰)ㆍ계(界)ㆍ입(入)에 집착할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느니라.
이때에 보살은 모든 법은 매우 깊고 고요히 사라진 모양인데도 중생들이 거짓과 뒤바뀐 데에 깊이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헤아리면서
보살은 스스로 서서 마치 환술사와 같이 갖가지 신통으로 변화하여 법을 설하면서 사람들을 제도한다.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이와 같이 미워하는 것도 없고 사랑하는 것도 없이 평등한 마음으로 법을 설하나니, 이른바 간탐하는 이에게는 보시 등의 여섯 가지 법을 가르쳐주며, 다시 그들을 위하여 차츰차츰 더 뛰어난 법을 굴리면서 생사(生死)에서 벗어나 수다원의 과위 내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느니라”고 하셨다.
【문】6바라밀 외에 다시 어떠한 법이 있기에 더 뛰어나다 하며, 무엇 때문에 다시 그들을 위하여 뛰어난 법[勝法]을 설한다 하셨는가?
【답】여기서는 바라밀을 말한 것이 아니다. 다만 간탐하는 이를 위해서는 보시할 것을 말해 주고 나아가 어리석은 이를 위해서는 지혜를 말해 줄 뿐이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법에는 처음이 있고 나중이 있으니, 처음의 법은 이른바 보시와 지계이다. 지계와 보시의 과보로는 천상의 복락(福樂)을 얻지만 그들에게 5욕(欲)의 맛을 말해 주는 것은, 이익은 적고 과실만 많다. 세간의 몸을 받으면 다만 쇠퇴와 고통만이 있을 뿐이니, 세간을 멀리 여의고 탐애의 법을 끊는 것을 찬탄하며, 그런 뒤에야 그들을 위하여 4제(諦)를 말해 주어 수다원의 과위를 얻게 한다.
이 가운데서 보살은 다만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 도를 얻게 하려고 먼저 교화하여 여섯 가지 법을 행하게 할 뿐이다. 이 가운데서 착한 지혜[善智慧]는 3해탈문(解脫門)에 포섭된 것이라 하지 않으니, 이 착한 지혜는 보시 등의 착한 법을 내고 간탐과 성냄 등의 나쁜 법을 없애며 중생으로 하여금 천상에 태어 날 수 있게 한다. 어째서 그런 줄 아느냐 하면, 도 보다 더 뛰어난 법이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법’이라 함은, 이른바 4제의 거룩한 법[聖法]이며, 벗어나는 법[出法]이다. 온갖 성인이 행하는 법을 거룩한 법이라 하며, 삼계(三界)의 생사를 벗어나게 하므로 벗어나는 법이라 한다.
이 4제(諦)로써 법을 설하기 때문에 중생의 근기와 인연에 따라 수다원의 과위를 얻게 하고 나아가 일체종지를 얻게 한다. 이 가운데서 비록 처음의 여섯 가지 법을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보시 등을 말하면 이미 포섭된 줄 알아야 한다.

보살은 부처님 도를 위하여 이 여섯 가지 법을 설하는 것인데 다만 중생의 뜻이 등하기 때문에 스스로 소승(小乘)을 취할 뿐이니, 이 때문에 보시와 지계와 생천(生天)과 과보를 받는 일[受報] 등의 처음 여섯 가지 법을 설해주지 않는 것이다.
사리불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앞에서 보살은 끝내 얻을 수 없는 법[畢竟不可得法]을 설하고 있는 바 없는[無所有]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있는 바 없는 법을 얻게 하나니, 이른바 수다원의 과위 내지는 일체종지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지금 있는 바 없는 법을 얻었기 때문에 중생으로 하여금 있는 바 없는 법을 얻게 할 수 있으니, 그렇다면 얻을 것이 없는 것[無所得]이 곧 얻을 것이 있는 것[有所得]입니까”라고 한다.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얻을 것이 있다는 어떤 허물도 없다. 왜냐 하면,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과 그리고 법을 보지 않으며 다만 모든 인(因)과 연(緣)이 화합한 임시로 붙인 이름의 중생일 뿐이기 때문이다.
보살은 두 이치[二諦]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면서도 다만 공(空)만을 말하지도 않고 다만 존재[有]만을 말하지도 않는다. 애착이 있는 중생을 위해서는 공을 설해 주지만, 모양을 취하고 공에 집착하는 중생을 위해서는 존재를 말해 주어서 있다[有]ㆍ없다[無]하는 두 가지 곳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나니, 중생은 현재 있는 나의 몸과 그리고 나[我]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느냐”고 하셨다.
사리불은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넓고 큰 마음[曠大心]을 지닌 이가 바로 보살입니다”라고 하였다.
‘넓고 큰 마음’이란, 이 가운데서 그는 스스로 인연을 말하면서 “이른바 하나의 모양이나 다른 모양을 얻을 수 있는 어떤 법도 없나니, 마치 사람이 저자거리에서 물건을 살 때는 반드시 서로 물품의 교환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큰 마음[大心]을 지닌 사람은 그렇지 않아서 의지하는 바 없으면서 큰 장엄[大莊嚴]을 일으킵니다만, 큰 장엄 때문에 삼계(三界)에 나지도 않으며 또한 중생을 구출하여 삼계를 벗어나게 하면서도 중생은 얻을 수 없나니, 속박되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기 때문에
온갖 법은 공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오랜 옛적부터 번뇌와 뒤바뀜은 모두 그것은 거짓이요 진실하지 않은 것이니, 이 때문에 속박이 없다고 하며 속박이 없기 때문에 벗어남도 없다. 속박은 곧 더러운 것[垢]이요 해탈은 곧 깨끗한 것[淨]이니,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기 때문에 6도(道)의 분별이 없다. 6도를 분별하지 않기 때문에 죄와 복의 업도 없고 죄와 복의 업이 없기 때문에 죄의 복의 업을 일으킬 수 있는 번뇌가 없으니, 죄와 복의 업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또한 과보도 있지 않아야 한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이 필경 공한 가운데서 큰 장엄을 짓나니, 이것이 바로 희유한 것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사람이 허공 속에 나무를 심으면 나무ㆍ잎ㆍ꽃ㆍ열매로 인하여 이로운 것이 많은 것과 같다.
부처님은 사리불의 뜻을 인가하시니, 사리불이 이 공에 대하여 따지기 때문에 부처님도 대답하시면서 인가하신다. 그 공을 말하기 때문에 인가하는 것이요, 그 공을 따지기 때문에 대답하신 것이다.
이른바 “사리불아, 만일 중생과 모든 법이 먼저는 있다가 지금은 없다면 모든 부처님과 성현에게는 죄과가 있느니라. 죄과(罪過)란 것은 이른바 중생으로 하여금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여 영원히 물질 등의 온갖 법을 없애고 공한 가운데에 들게 하여 모두가 있지 않게 하면 중생과 온갖 법을 아주 없어지게[斷滅]하기 때문에 죄과가 있다는 것이다.
사리불아, 중생과 그리고 온갖 법은 먼저 어디서 오는 곳도 없으니,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항상 머물러 있으면서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모든 법의 실상(實相)이니라. 이 때문에 6도(道)의 생사도 없고 또한 중생을 구출해야 하는 것도 없느니라.
사리불아, 온갖 법은 본래부터 공하다. 그러므로 보살은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모든 법의 이러한 모양을 듣는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면서 생각하기를 ‘보리 가운데에는 얻을 수 있는 어떤 법도 없으며 또한 실로 중생이 집착하면서 제도할 수 없게 하는 어떤 정해진 법도 없다. 다만 중생이 어리석고 뒤바뀐 까닭에 이 거짓된 법에 집착할 뿐이다’고 하느니라.

이 때문에 보살은 큰 장엄을 일으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다. 얻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고 하며, 얻은 뒤에는 진실한 법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중생은 뒤바뀐 데서 벗어나게 되느니라”고 하셨다.
이런 일을 분명히 알게 하려고 경에서 환술사[幻師]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환술사란 곧 보살이고, 환술사가 만든 동산 숲ㆍ집ㆍ누관[盧觀]이란 곧 중생을 제도하는 6바라밀 등의 법이며, 환술사가 만든 코끼리ㆍ말ㆍ남자ㆍ여인이란 곧 보살이 제도해야 할 중생을 말한다. 마치 환술사가 혼자서 환술의 힘으로 중생과 동산 숲과 집과 누관 등을 환술로 만들어서 중생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과 같다. 그런데 만일 환술사가 환술로 만든 일을 진실이라 생각하여 환술로 된 사람에게 그 은혜를 구한다면 그것은 곧 미친 사람이다.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온갖 법의 성품은 공하고 마치 환과 같다”는 말씀을 듣고 보시 등으로 중생들을 이롭게 하면서 그들에게 은혜와 복의 보답을 구한다면 곧 그것은 뒤바뀐 일이다.
【문】환술을 부리는 법과 주술(呪術)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환술로 만들어진 물건은 거짓이다. 마치 중생이 공한 것처럼 보살도 공하여 보살은 중생을 변화로 만들지 못하거늘 어찌하여 비유로 삼을 수 있는가?
【답】모든 법의 실상 가운데는 법조차도 없거늘 하물며 중생이겠는가. 중생이란 이름을 다르게 부르면서 환술사라 한 것으로 환술사도 실제로는 없다. 그런데 어째서 ‘환술사는 존재하나 환술로 만든 것은 없다’고 하는가? 그대는 ‘환술사는 실제로 존재하고 환술로 만든 것은 없다’고 하지만, 성인은 환술사와 환술로 된 물건은 다름이 없다고 관찰한다. 그런 일에 대하여 분명히 알게 하려고 비유를 든 것이고 그 작은 부분의 서로 비슷한 것을 비유로 삼은 것인데 무엇 때문에 모두 취하여 따지고 드는가.
마치 사자를 왕에게 비유한 것과 같다. 사자는 짐승 가운데서 두려울 것이 없고
왕은 신하들 가운데서 자재하여 어려울 것이 없기 때문에 비유로 삼거늘, 어찌 네 발이 돋쳤고 털이 있는 것이 다르다고 책망하겠는가.
부처님은 성품이 공한 법을 설하고 모든 법은 모두가 공한데도 오히려 중생은 있나니, 이 때문에 환(幻)을 비유를 드신 것이다. 나는 그 비유로써 중생을 타파하고 있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다시 중생을 가지고 따지는 것인가.
그때에 수보리는 부처님께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는 도(道)입니까”라고 하였다. 수보리는 비록 보살의 도를 알고 있다고 해도 이 가운데서는 심히 깊은 성품의 공을 말씀하고 있으므로 듣는 이들 중에서는 의심을 내기도 하나니, 이 때문에 질문을 한 것이다.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보살은 처음 뜻을 일으켜서부터 6바라밀 내지는 18불공법을 행하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의 도요, 이 도를 행하여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셨다.
수보리는 다시 “어떻게 이 법을 행해 중생을 성취시킵니까”라고 물었는데, 수보리의 뜻은 ‘만일 이 법은 성품이 공하고 중생도 또한 성품이 공하다면 어떻게 성취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보살은 방편의 힘 때문에 보시하는 법으로써 중생들을 교화하고 그들로 하여금 보시에 집착하지 않게 하는 것으로 진실을 삼느니라”고 하셨다.
방편이라 함은, 보살이 중생에게 말하기를 “그대들 선남자여, 와서 보시하면서도 이 보시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 것이니, 경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중생은 보시로써 존귀하고 쾌락이 있는 데에 태어나며, 존귀와 쾌락을 누리는 인연 때문에 잘난 체하는 교만을 내고, 잘난 체하는 교만이 더욱 자라면 그 때문에 착한 법을 깨뜨리며, 착한 법을 깨뜨리기 때문에 3악도에 떨어진다. 이 때문에 보살은 먼저 교화하면서 말하기를 “보시에 집착하지 말라. 다만 이 보시로 인하여 지계 등의 착한 법을 닦아 모두 이 법을 돌이켜 열반으로 향할 뿐이니, 그것은 왜냐하면, 이 성품이 공한 모든 법의 실상은 모양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한다.
이와 같이 보살은 방편의 힘 때문에 중생을 교화하여 수다원의 과위 내지는 부처님의 도를 얻게 하나니,
이 보살은 자기 자신이 보시를 행하고 또한 중생들에게도 보시하도록 가르쳐 준다. 만일 그 자신이 보시하지 않으면 혹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만일 보시하는 그것이 좋은 법이라면 어째서 자기 자신은 행하지 않는가”라고 한다. 이 때문에 보살은 먼저 자신부터 보시하는 것이다.
또 보살은 착한 법을 깊이 사랑한다. 보시, 이것은 첫 번째의 문이니, 그러므로 이 보시부터 행하는 것이다. 또 보살은 중생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지만, 그 자비심이 비록 크다고 하더라도 중생을 다 만족시켜 줄 수는 없으므로 우선 보시를 행하여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놓고 다시 인도해야 한다.
보시한 인연으로 네 가지 족성으로 태어나며 또한 전륜성왕도 된다. 4섭법(攝法)으로써 중생을 거두어서 점차로 3승의 법으로써 열반을 얻게 하고, 다른 이에게 보시하도록 가르치고 보시하는 법을 찬탄하며, 보시하는 이를 기뻐하면서 찬탄하나니, 이것은 곧 보시를 깊이 좋아하면서 행(行)을 같이하는 것을 보기 때문에 기뻐하면서 칭찬하는 것이다.
또 마음으로 중생을 가엾이 여겨서 만일 복을 닦는 것을 보면 그를 위하여 기뻐하는 것은, 마치 인자한 아버지가 아들이 착한 행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과 같다. 이 사람은 네 가지로 보시를 행하여 찰리(刹利) 등의 귀한 족성으로 태어나서 보시로써 거두어 준 뒤에 점차로 교화하여 지계와 선정 내지는 벽지불의 도를 얻게 한다.
혹 어떤 중생으로서 큰 마음[大心]을 지닌 이를 보면 조그마한 자비심이 있기는 하나, 이 사람은 생사가 길고 오랜 것을 두려워하여 그의 마음이 게을러지고 물러나므로 보살은 방편의 힘으로 그 중생에게 말하기를 “여보시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얻기 쉽거늘 그대들은 무엇 때문에 어렵다고 여기는가. 중생들이 집착하는 이 가운데서는 어떤 정해진 실제의 법으로서 가로막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없나니, 그대들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켜야 하며, 자기 자신이 제도된 뒤에는 중생들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해야 하오”라고 한다.
‘중생들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함은, 보살
자신은 대승의 수레를 타고 건너고 3승으로써 중생을 제도해야 할 바에 따라 제도하니, 스스로 이익을 얻고 또한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함은, 자기 자신이 부처님이 되고 3승으로써 중생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만일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수 있다면, 처음 발심해서부터 끝내 3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항상 전륜왕이 된다는 것이니, 보살은 대부분 욕계에 태어난다. 왜냐 하면, 무색계에서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교화할 수가 없고 색계 가운데서는 거의 모두가 선정의 즐거운 맛에 집착하여 싫증내는 마음이 없으므로 교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욕계의 하늘[欲天]에 나지 않나니, 그것은 왜냐하면, 미묘한 5욕(欲)에 집착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교화하기 어렵고 인간 세계에 있을 때는 세상마다 네 가지의 일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므로 전륜성왕이 된다.
이 가운데서 부처님은 친히 그 인연을 말씀하시기를 “그 심은 바에 따라 큰 과보 등을 얻는다”고 하셨으니, 경에서 보시의 모양을 말씀한 것과 같다.
또 보살은 단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이 파계(破戒)하는 것을 보면 그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은 인연을 두루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계율을 깨뜨리고 있는데 나는 그대들이 필요한 것을 모자람 없이 다 대주리라”고 한다.
파계하는 사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계율을 지닐 인연이 두루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니, 마치 빈궁한 사람이 배고픔과 추위가 더 급하기 때문에 도적이 되는 것과 같다. 둘째는 계율을 지닐 인연은 비록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나쁜 마음을 익혔기 때문에 나쁜 일을 좋아하고 행하는 이다.
가난하여 계율을 깨뜨린 이면 보살은 그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계율만을 지니도록 하라. 내가 그대에게 필요한 것을 보태주겠다. 그대들은 지계(持戒) 가운데에 머물러 점점 3승으로써 제도되어 벗어나게 된다”고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시로 인하여 계율을 낸다고 한다.
중생들은 뜻대로 되지 않는 일 때문에 성을 내기도 하나니, 물건을 구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성을 내며, 또 어떤 사람은 제 뜻에 맞지 않는다 하여 성을 내기도 한다. 보살은 단(檀)에 머무르면서
그들의 뜻에 맞추어 만족하게 공급한다.
【문】가난한 이에겐 모두 대주면서 성을 내지 않게 한다는 일은 그럴 수도 있지만, 사람이 제 뜻에 맞지 않는다 하여 괴로워하며 성을 낸다는 일은 또 무엇인가?
【답】여의주(如意珠)로써 그들에게 보시하면 사람들의 뜻에 다 맞게 되나니, 여의주의 위덕 때문에도 성을 내는 이가 없다. 마치 수행하는 이가 자삼매(慈三昧)에 들어가기 때문에 성을 내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나니, 이 때문에 “어떠한 인연 때문에 성을 내고 있는가? 내가 그대들에게 모자라는 것을 모두 갖추게 하리라’라고 말한 것이다. 또 온갖 법의 성품은 모두가 공하여 있는 바가 없다. 그대가 성을 내고 있는 그 인연도 모두가 거짓이요, 정해진 것이 없거늘 그대들은 어떻게 이 거짓된 일 때문에 성을 내고 욕하면서 해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기까지 하는가? 이런 중한 죄업을 일으킨 까닭에 3악도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대들은 거짓되고 진실이 없는 일로 인하여 큰 죄를 받지 말라”고 말한다.
산 속에 하나의 절이 있었다. 그 절에는 따로 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방 안에 귀신이 와서 도인(道人)들을 괴롭히기 때문에 도인들은 모두 그 방을 버리고 떠났다.
마침 한 객승(客僧)이 찾아왔기에 유나(維那)2)는 그 빈 방에 머무르게 하면서 말하기를 “이 방 안에는 귀신이 있는데, 사람을 괴롭히기 좋아합니다. 거기라도 괜찮다면 머무르도록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그 객승은 자신의 지계(持戒)의 힘과 견문이 많은[多聞] 것을 믿고 “그 하찮은 귀신이 무슨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오. 내가 항복시키겠소” 하고, 곧 그 방으로 들어가 쉬었다.
날이 저물어서 다시 한 객승이 와서 묵을 데를 청했다. 유나는 역시 그 방에 머물도록 하면서 또한 귀신이 있어서 사람을 괴롭힌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 사람도 역시 “그 하찮은 귀신이 무슨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요. 내가 항복시키겠소”라고 하였다.
먼저 들어가 있던 이는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단정히 앉아 귀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온 이는 캄캄한 데 서서 문을 두드리면서 들어가기를 청했다. 먼저 들어가 있던 이는 “이것이 귀신이로구나” 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자, 뒤에 온 이는 온 힘을 다하여 문을 열려 했으며 안에 있던 도인도 힘을 다하여 잡고 있었다.
결국 밖에 있던 이가 이겨서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갔다.
그러자 안에 있던 이가 그를 치자 밖에서 들어간 이도 있는 힘을 다해 때렸다. 그들은 밤새도록 치고받고 하다가 날이 새서 얼굴들을 보자 옛날 같이 공부하던 친구사이였다. 그들은 서로가 부끄러워하면서 사죄했고 여러 사람들은 구름처럼 모여 와서 웃어대며 괴이하게 여겼다.
중생들도 또한 이와 같아서, 5중(衆)에는 나[我]도 없고 남도 없고 공한 것인데 모양을 취하며 싸우고 있다. 만일 사지가 해체된 채 땅에 버려져 있으면 다만 뼈와 살만이 남을 뿐이어서 사람도 없고 나도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보살은 중생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은 근본이 공한 데서 다투며 죄를 짓지 말라. 다투기 때문에 사람의 몸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겠거늘 하물며 부처님을 만나겠는가. 사람 몸은 얻기 어렵고 부처님 세상은 만나기 어렵다. 좋은 시절을 부질없이 보내다가 한번 재난에 떨어지면 영영 헤어나기 어렵다.
만일 지옥에 떨어져서 타고 지지고 삶기고 끊길 때면 어떻게 교화를 받겠는가. 만일 축생에 떨어지면 서로 잔인하게 해하므로 역시 교화될 수 없고, 또 아귀에 떨어지면 배고프고 목마름의 모진 고뇌로 역시 교화되지 못한다. 만일 장수천(長壽天)에 태어나면 천만 부처님이 다 지나가도록 선정의 맛에 집착하여 모두 깨닫지 못하며, 안식국(安息國, Arsak)과 같은 여러 변두리의 땅에 태어나면 모두가 사람됨이 어리석어서 교화될 수가 없다.
비록 중앙의 나라[中國]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혹은 6정(情)이 불구이기도 하고 혹은 팔다리가 완전치 못하기도 하며, 혹은 소경ㆍ귀머거리ㆍ벙어리 등이 되기도 하고 혹은 의리(義理)를 모르기도 하며, 혹은 6정이 온전히 갖추어지고 모든 감관이 영리하면서도 삿된 견해에 깊이 집착한 채, “죄와 복은 없는 것이다”고 말하기도 하므로 그들 역시 교화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하여 “좋은 때는 지나가기 쉽고 모든 재난 안에 떨어지면 제도될 수 없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나머지 바라밀은 경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나니, 그러므로 다시 더 해설하지 않는다.
【문】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다섯 가지 바라밀을 행하였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6바라밀을 말씀하는가?
【답】위에서는 하나의 바라밀[度] 가운데에 차례로 다섯 가지 바라밀을 두루 갖추었고, 여기서는 곧 한꺼번에 통틀어서 설명하고 있다. 또 앞에서는 다만 6바라밀만을 설명하였지만, 여기서는 통틀어서 37품(品)과
모든 도의 과위[道果]를 설명하고 있다.
【문】37품은 스스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거늘, 어떻게 이런 인연을 줄 수 있는가?
【답】보살은 좌선(坐禪)하는 이에게는 의복ㆍ음식ㆍ의약ㆍ법장(法杖)ㆍ선국(禪毱)ㆍ선진(禪鎭)3)을 공급하여 좋은 스승의 가르침을 얻게 하고 좋은 제자를 얻어 교화를 받게 하며, 뼈로 된 사람의 그림[骨人]을 주면서 관(觀)하게 하고4) 선경(禪經)을 주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선법(禪法)을 설해 주게 하나니, 이와 같은 것들이 37조도법(助道法)의 인연이다.
또 사람들로 하여금 마하연(摩訶衍)의 법을 말하게 하면서 “그대들이 필요한 의복과 음식을 모두 와서 가져가라. 곧 이것은 그대들의 물건이니, 스스로 의심하거나 어려워하지 말라. 그대들은 이 물건을 얻은 뒤에 스스로 6바라밀을 행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교화하여 6바라밀을 행하게 하라. 이 보시의 성품은 모두가 공하나니, 그대들은 이 보시와 그리고 과보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게 한다.
중생은 이 성품의 공함을 얻고 점차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무여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다.
마치 보시를 첫 번째로 삼아 마치 다섯 가지 바라밀을 내는 것처럼 나머지의 바라밀도 또한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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