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종지현문본론(大宗地玄文本論) 19권
대종지현문본론 제19권
마명 지음
진제 한역
이병욱 번역
37. 교량공덕찬탄신행현시이익(校量功德讚歎信行現示利益) 대결택분
이와 같이 크게 불가사의하고 중중(重重)해서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는 아설본왕의 대결택분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공덕을 헤아리고 믿음의 행을 찬탄하며 이익을 나타내 보이는 대결택분을 설명하겠다. 그 내용은 어떠한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비유하면 활활 타오르는 불덩어리가
비록 지극히 멀리 있다 해도
광명의 세력으로 능히
먼 곳의 어둠 깨뜨릴 수 있는 것과 같다.
여기 『대종지현문본론』도
또한 그러하니
만약 어떤 중생의 부류가
동일한 세계에 함께 머물면
비록 보고 배울 수 없다 하나
이 논(論)의 불꽃 광명으로
멀리 중생 마음의
깨닫지 못한 그 어둠 깨뜨릴 수 있으리라.
앎의 밝음을 깨닫게 하여
분수에 따라 그 번뇌를 조복하리니
비유하면 활활 타오르는 불덩어리와 같아
더욱 수승하게 그곳에 다가갈수록
빛의 밝음 점점 더 환해지고
어둠의 깨뜨림도 더욱 늘어나니
여기 『대종지현문본론』도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중생의 부류가
동일한 나라에 함께 머물면
미처 보고 배우지 않았다 해도
이 논의 불꽃 광명으로
중생의 무지를 제거하여
더욱 더 밝게 하리라.
비유하건대 활활 타오르는 저 불덩어리가
더욱 그곳에 다가가면
광명의 빛남이 더욱 증가하는데
이 『대종지현문본론』도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어떤 중생의 부류가
동일한 성에 함께 머물면
미처 보고 배우지 못했다 해도
이 논의 불꽃 광명으로
중생의 무지를 제거하여
더욱 더 밝게 하리라.
비유하건대 활활 타오르는 저 불덩어리가
더욱 더 그곳에 다가가면
광명이 거듭거듭 더하고
따뜻한 기운이 몸을 데우는데,
이 『대종지현문본론』도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어떤 중생의 부류가
동일한 집에 함께 머물면
비록 아직 보고 배우지 않았다 해도
이 논의 불꽃 광명으로
마음의 미혹을 없애고 그 몸 감싸니
더욱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어느 한 사람이
저 성대한 불덩어리 얻으면
이 사람은 문득
여섯 가지의 큰 이익 얻는다.
말하자면 추운 기운 막을 수 있고
바탕의 갖춤을 성숙시킬 수 있으며
독충 등이 들어오지 않으며
어둠을 깨뜨려 항상 밝으며
청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보시하고
더러운 똥 등을 태워 없애는데,
이 『대종지현문본론』도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어떤 중생의 부류가
이 『대종지현문본론』을 얻으면
이 사람은 문득
여섯 가지 큰 이익을 얻는다.
말하자면 번뇌의 군대를 내치고
공덕의 성품을 성취하며
삿된 마귀의 무리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무명의 품류(品類)를 타파하고
반야의 지혜를 현전하여
부처님 법의 재물이 없어서
구걸하는 중생에게
차례대로 널리 베풀고
번뇌의 똥을 태워 없앤다.
비유하면 묘화(妙花)가 있는데
챵수(▼((糸+昌)/立)水)의 깊은 연못에서는
청련화라 이름한다.
누구라도 한 찰나만이라도
이 연화의 모습을 보면
1백7일 동안
그 안근(眼根)은 해맑아
종일토록 흐리고 탁함이 없는데,
이 『대종지현문본론』도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중생의 부류가
이 논의 바다같은
글 뜻 다 알지 못하나
이 논을 한 번 보기만 하면
그 안근이 청정해져서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뵙는
방편의 눈을 가지게 되리라.
비유하면 하늘의 복이 있어
원만히 생겨나는 나무 꼭대기에 달렸으니
그 이름을 묘한 소리의 깨달음이라 하는데,
무량한 하늘의 여인이
이 북 소리를 듣고 나면
2천7일 동안
그 이근(耳根)이 깨끗하고 신속해서
막히는 일이 없듯이
이 『대종지현문본론』도
또한 마찬가지다.
비록 어떤 중생의 부류가
이 논의 글과 뜻을 모른다 해도
귀로 이 논을 들으면
그 이근이 깨끗해져서
모든 부처님의 범향(梵響)을 듣는
방편의 귀를 얻는다.
비유하면 묘한 약이 있어
설산의 꼭대기에서 자생하며
그 이름을 지극한 맛의 향상함이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이 약을 취해
혀의 근원에 대면
몸의 향기가 극히 향기로워서
음식을 먹지 않더라도
그 수명 지극히 길고
또한 허공을 날아다니듯이
이 『대종지현문본론』도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어떤 중생의 부류가
이 논의 한 글자와
한 구절ㆍ한 줄과
한 결택분(決擇分)과
한 권의 분량이라도
혀로 독송한다면
그 의미와 이치를
다 알지 못한다 해도
모든 수다라(修多羅)의 바다 같은
경전 독송의 공덕 얻을 것이다.
비유하면 어떤 보살은
그 이름을 부사의(不思議)한 큰 힘의
해탈한 사람이라 하는데,
이 보살대사가
신통이 자재하기 때문에
모든 지은 것에
다 장애가 없고
감응대로 모두 현전하듯이
이 『대종지현문본론』도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중생이
그 의미와 이치[義理]를 꿰뚫어 통달하여
글 속의 의미를 깨닫고
일체의 법을 통달하니
모두 장애되는 것이 없어
하나하나의 깨달음이 분명하다.
비유하면 어떤 신왕(神王)은
그 이름을 대안락(大安樂)이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작은 도구가 필요해서
이 신왕에게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면
7보의 장(藏)을 일으켜서
대안락을 얻게 하듯이
이 『대종지현문본론』도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한 쌍의 남녀가
이 대종지현문본론을
부지런히 수지 독송하고
어떤 사람이 작은 도구가 필요해서
전심전력으로 이 사람을 공양하면
곧바로 다함없는
복덕과 지혜의 보배를 얻어서
의심하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
비유하면 어떤 묘향(妙香)은
그 이름을 방만포(芬滿布)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이 향기 간직한 채
멀리 있는 곳에 가게 되면
그 지나는 곳곳마다
칠칠 일 동안
향기가 없어지지 않듯이
이 『대종지현문본론』도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한 쌍의 남녀가
이 논부(論部)를 짊어지고
먼 곳을 가는데
큰 바다의 물을 건너면
그곳의 온갖 중생들이
모두 큰 이익을 얻고
산과 들을 지나면
그곳의 모든 중생들도
모두 큰 이익을 얻는다.
비유하면 어떤 묘한 구슬이
그 이름을 여의보(如意寶)라 하는데
이 구슬이 머무는 곳에 따라
헤아릴 수 없는 옥으로 된 권속들이
두루 둘러싸는 것처럼
이 『대종지현문본론』도
또한 마찬가지다.
그 머무는 곳에 따라서
시방세계의
티끌 수량의 대신왕이 있고
그 하나하나의 대신왕이
각기 시방세계의
티끌 수량의 권속의 신을 거느려서
이 논의 구슬을 수호한다.
만약 정법이 멸할 때
미진이 흩어져 무너지게 되면
모든 신왕들이
대성통곡하며 눈물 흘리면서
티끌이 머무는 곳을 따라
가서 항상 수호하듯이
이 논을 수지한 사람도
이와 같은 수량의 신들이
태어나거나 죽은 뒤이거나 간에
항상 여의지 않고 수호한다.
공덕이 비록 헤아릴 수 없지만
간략히 말하면 이와 같다.
38. 교량과환가책비방현시죄업(校量過患呵責誹謗現示罪業) 대결택분
이와 같이 공덕을 헤아리고 믿음의 행을 찬탄하며 이익을 나타내 보이는 대결택분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과환을 헤아리고 비방하는 것을 꾸짖어 죄업을 나타내 보이는 대결택분을 설명하겠다. 그 내용은 어떠한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비유하면 어떤 산이
그 이름을 보륜상(寶輪上)이라 하는데
이 산은 7보를 갖추었고
다시 다함이 있지 않은 것과 같다.
빈궁하여 보배의 종류 구하는 이
헤아릴 수 없고 가없으나
구슬이 있어 능히 보배를 금(禁)하니
그 이름을 정파리(頂玻璃)라 한다.
만약 사람들이 이 구슬 가지면
능히 7보를 취할 수 있어서
빈궁의 고통 멀리 여의고
큰 안락을 얻으나
만약 사람들이 이 구슬 없으면
능히 보배를 금할 수 없어서
종일토록 안락 얻을 수 없는지라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만약 구슬이 없으면 사람이 찾아도
다만 호랑이ㆍ이리ㆍ곰ㆍ
붉은 뱀ㆍ푸른 뱀ㆍ
온갖 잡된 독충만을 볼 뿐
끝내 진귀한 보배를 보지 못하니
독충의 종류만 보기 때문이다.
그 마음 지극히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미친 듯이 내달리니
죽어 없어질 때에 이르러서도
보배는 자연히 그냥 있지만
저렇게 찾아 헤매는 사람은
복이 박하고 죄가 두터워
끝내 보배를 얻을 수 없듯이
중생도 또한 마찬가지다.
선근이 매우 깊은 사람은
견고한 믿음의 구슬을 받들어
대승의 깊은 바다에 들어가
공덕의 보배 취하여
삶과 죽음, 고통의 윤회를 벗어나지만
선근이 작고 엷은 이는
심오한 논(論)을 보아도
진실한 믿음 없어
바른 가르침에 의지해도 삿된 이해 지으니
고통스런 윤회를 받는 것이 기약이 없다.
비유하면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이
미묘한 장엄의 도구를 얻었다 해도
기뻐하는 일이 없듯이
어리석은 사람도 또한 마찬가지다.
비록 심오한 논을 얻었다 해도
그의 어리석음은 심하여
출세간의 보배인 줄 알지 못하며
배우려는 마음이 없다.
비유하면 우물에 살던 용은
흐르는 물을 따라 바다에 이르러도
크게 헤매고 크게 어지럽기 때문에
바다를 비방하며 목숨 다하듯이
어리석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익힌 견고한 집착 때문에
하나만을 고집하며 바뀌지 않으니
일찍이 없었던 법을 듣는다 해도
크게 헤매고 크게 어지럽기 때문에
그 광대한 이치를 비방하니
악도에 떨어져서
벗어날 기약조차 없다.
만약 어떤 중생의 부류가
이러한 논의 가르침을 보고 듣고서
믿지 않는 마음으로 비방하면
이 사람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삼세의 모든 법의 장(藏)과
삼세의 모든 스님의 바다를
비방하는 것이라서
이 사람이 얻을 죄는
무량하고 무량한 수이어서
그 끝을 알 수 없다.
시방세계의 티끌 수만큼의
모든 부처님과 큰 보살이
한 때에 모두 나타나시어
이 같은 양의
법문의 큰 바다를 말씀하시는데,
이러한 사람의 교화에 전념해서
무량겁을 지난다 해도
끝내 교화할 수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으니
오직 이 법만이 있을 뿐
나머지 다른 도(道)가 없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중생의 무리는
시방세계의 티끌 수량의
모든 부처님과 큰 보살이
큰 신통력으로
미래의 먼 겁을 향하여
그 한계를 관찰해 보아도
도를 깨달을 기약이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으니
서른네 가지
대금강의 궤칙(軌則)을 배우지 않고도
대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이런 경우는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수행자는
부지런히 방편을 닦아
그 법의 바다를 응당 관찰해야 하나니,
그 근원을 알지 못하면
비방하는 마음이 망령되게 생기어
악도에 떨어져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
결정코 짓지 말아야 하고
결정코 짓지 말아야 하나니,
비록 죄업이 헤아릴 수 없다고 하지만
간략히 말하면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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