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113권
대보적경 제113권
북량(北梁) 사문 석도공(釋道龔) 한역
송성수 번역
44. 보량취회(寶梁聚會) ①
1) 사문품(沙門品)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비구 대중 8천 명과 함께 계셨다. 보살마하살도 만 6천 명이 있었는데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일생보처(一生補處)였으며 모두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로부터 와서 모인 이들이었다.
그때 마하 가섭(摩揀迦葉)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사문(沙門)이라 함은 어떤 이를 사문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사문이란 번뇌가 고요히 사라졌기 때문이요 다스렸기 때문이며 교법을 받기 때문이요, 계율의 몸이 깨끗하기 때문이며 선정에 들기 때문이요, 지혜를 얻기 때문이며 사실대로 이치를 알아 해탈을 얻기 때문이요, 삼해탈문(三解脫門)에 의심함이 없기 때문이며, 성인이 행한 법에 편히 머무르기 때문이요 4념처(念處)를 잘 닦기 때문이며, 온갖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기 때문이니라. 4정근(正勤)에 편히 머무르기 때문이요, 4여의족(如意足)을 잘 닦기 때문이며, 믿음의 뿌리[信根]를 성취하기 때문이요, 불․법․승을 믿기 때문이며, 불․법․승에 대한 굳은 믿음을 성취하기 때문이요, 그 밖의 도(道)를 믿지 않기 때문이며, 부지런히 행하면서 온갖 번뇌를 여의기 때문이며, 7보리분(菩提分)을 잘 닦으면서 온갖 착하지 않은 일을 여의고, 온갖 착한 법을 진실하게 닦기 때문이니라. 바른 기억[正念]과 바른 지혜의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요, 오로지 모든 착한 법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며, 선정과 지혜의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요, 다섯 가지 힘[五力]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온갖 번뇌의 어지러움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요, 7보리분법을 잘 닦기 때문이며,
온갖 법 안의 인연과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요, 거룩한 도[聖道]의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니라. 바른 소견[正見]과 바른 선정[正定]의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요, 네 가지 변재의 힘을 얻고서 외도를 믿지 않기 때문이며, 이치[義]에 의지하면서 말[語]에 의지하지 않고, 지혜[智]에 의지하면서 의식[識]에 의지하지 않으며, 분명한 이치의 경전[了義經]에 의지하면서 분명하지 않은 이치의 경전[不了義經]에 의지하지 않고, 법(法)에 의지하면서 사람[人]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네 종류 악마를 여의기 때문이요, 5음(陰)을 잘 알기 때문이며, 온갖 번뇌를 끊기 때문이요, 최후의 몸을 얻기 때문이며, 나고 죽음의 길을 여의기 때문이요, 온갖 애욕을 여의기 때문이며, 부지런히 행하면서 괴로움[苦]을 알고 쌓임[集]을 끊으며 사라짐[滅]을 증득하고 도(道)를 닦기 때문이요,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를 잘 보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법 가운데서 다른 도(道)를 믿지 않기 때문이니라. 할 일을 다 마쳤기 때문이요, 온갖 번뇌[漏]을 끊었기 때문이며 여덟 가지 떠나버림[八背捨]을 닦기 때문이며, 제석(帝釋)과 대범(大梵)천왕의 칭찬을 받기 때문이요, 본래부터 오로지 도를 수행하는 데에만 마음을 쓰기 때문이며, 아란야(阿蘭若)의 처소를 좋아하기 때문이요, 거룩한 법 안에 편히 머무르기 때문이며, 부처님 법의 의식(儀式)을 좋아하기 때문이요, 마음이 기울어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며, 출가한 대중이나 집에 있는 대중을 친하게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마음에 혼자 다니기를 좋아함은 마치 무소의 뿔과 같기 때문이요, 사람들이 많이 괴롭히고 어지럽게 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혼자 머물러 살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요, 혼자 머물러 살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요, 항상 삼계(三界)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진실한 사문의 과위[沙門果]를 얻기 때문이요, 온갖 희망을 여의기 때문이며, 세간의 여덟 가지 법 즉 이익과 손해와 뒤에서의 비방과 칭찬과 앞에서의 찬양과 훼방과 괴로움과 즐거움 등을 여의기 때문이니라. 굳은 마음으로 동요하지 않음이 마치 땅과 같기 때문이요, 그와 나의 뜻을 보호하면서 범한 것이 없기 때문이며, 혼탁하지 않기 때문이요, 바르게 행하기 때문이며, 마음을 쓰고 성취함이 마치 허공과 같기 때문이요, 모든 형상에 대하여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음이 마치 허공 안에서 손을 움직여도 걸리는 것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만일 이와 같이 행하는 법을 성취하게 되면 이것을 사문이라 하느니라.”
그때 마하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전에 없었던 일이옵니다. 여래께서는 사문의 덕행(德行)을 잘 말씀하여 주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미래 세상에 어떤 여러 사문 가운데서 진실하지 못한 사문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바로 사문이다’라고 하거나, 청정한 행[梵行]을 행하지 않은 사문이 스스로 말하기를 ‘나에게는 청정한 행이 있다’라고 한다면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곧 벌써 여래의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쌓고 모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침범하고 훼손한 것이옵니다.”
“이렇게 여래의 보리를 침범하고 훼손하는 죄는 말로써는 다할 수 없느니라. 가섭아, 내가 멸도(滅道)한 뒤에는 너나 그 밖의 큰 제자들도 역시 다 멸도할 것이요, 또 이 세계의 모든 큰 보살들도 모두가 다른 지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가게 될 터인데, 그때 나의 법 안의 어떤 비구들은 모든 행하는 일에 아첨과 굽은 마음이 많이 될 것이니라.
가섭아, 나는 이제 사문이 짓는 때[垢]와 사문으로서의 허물들을 말하겠느니라.
가섭아, 마지막 말법(末法) 동안의 어떤 비구들은 몸을 닦지도 않고 계율을 닦지도 않으며 마음을 닦지도 않고 지혜를 닦지도 않아서 어리석음이 마치 어린 아이가 어두운 데를 향하면서도 아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요 마음이 조복되지 않았으므로 사문의 때[沙門垢]를 이룰 것이니라. 가섭아, 어떤 것을 사문의 때라 하는가. 가섭아, 사문의 때에는 서른 두 가지가 있나니, 출가한 사람은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서른두 가지인가 하면 탐내는 거친 생각[欲覺], 성내는 거친 생각[瞋覺], 남을 해치려는 거친 생각[惱覺],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것, 다른 이를 헐뜯는 것, 삿되게 이익을 구하는 것, 이익으로 인하여 이익을 구하는 것, 남이 보시하는 복을 훼손하는 것, 죄과를 감추고 숨기는 것, 집에 있는 사람[在家人]을 가까이 하는 것, 출가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 대중의 시끄러운 장소를 좋아하는 것, 미처 이익을 얻기 전에 방편을 써서 구하는 것, 다른 이의 이익에 대하여 희망하는 마음을 내는 것, 자기의
이익에 만족할 줄 모르는 것, 다른 이의 이익에 질투하는 것, 항상 다른 이의 허물을 구하는 것, 자기의 허물은 보지 않는 것, 해탈하는 계율을 굳건히 지니지 않는 것, 자신에게 부끄러워하고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 공경하고 삼가하는 뜻이 없으며 젠체하고 마음이 들떠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 모든 번뇌[結使]를 일으키는 것, 12인연(因緣)을 거스르는 것, 치우친 소견[邊見]을 취하는 것, 번뇌가 고요히 사라지지도 않고 욕심을 여의지도 않는 것, 나고 죽음을 좋아하면서 열반을 즐기지 않는 것, 외전(外典)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 다섯의 덮개[五蓋]가 마음을 가리어 모든 번뇌를 일으키는 것, 업보(業報)를 믿지 않는 것, 삼해탈문을 두려워하는 것, 깊고 묘한 법을 비방하면서 번뇌를 고요히 사라지게 하는 행이 아닌 것, 3보(寶)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존경하지 않는 것 등이 바로 사문의 때이니라. 가섭아, 이것을 사문의 서른두 가지 때라고 하나니, 만일 이 모든 때를 여의게 되면 이를 사문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또 사문의 행을 가리는 여덟 가지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거나 순종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교법을 존경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잘 생각[思惟]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아직 듣지 못했던 법을 듣고 나서 비방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중생이 없고 나도 없고 수명도 없고 사람도 없다는 법을 들은 뒤에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요, 여섯째는 온갖 행(行)은 본래 생김이 없다 함을 듣고 나서도 유위(有爲)의 법은 이해하고 무위(無爲)의 법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차례대로 설명하는 법을 들은 뒤에 몹시 깊은 곳에 떨어지는 것이요, 여덟째는 온갖 법은 생김도 없고 성품도 없고 벗어남도 없다 함을 들은 뒤에 마음이 헤매어 가라앉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을 사문의 행을 가리는 여덟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법을 출가한
사문이면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가섭아, 나는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었다 하여 사문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이른바 공덕이 있고 의식(儀式)을 두루 갖춘 이라야 비로소 사문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사문이 몸에 가사를 입었으면 마음으로는 마땅히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행을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마음에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행이 없어야만 비로소 나는 가사를 입으라고 허락하였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만일 마음에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 등이 있으면서 몸에 가사를 입으면, 오로지 계율을 지닌 데에만 마음을 쓰는 이를 제외하고는 그 밖에 계율을 지니지 않는 사람은 곧 가사를 태워서 없애게 되느니라. 왜냐 하면 성인의 표식(表式)으로 번뇌가 고요히 사라짐을 따르면서 자비로운 마음을 행하며 욕심을 여의어 없앤 이가 입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너는 이제 나의 말을 들어라. 성인의 표식에는 열두 가지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두 가지인가 하면 가섭아, 계율을 지니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선정에 드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며 지혜가 있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해탈하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며, 해탈에서 생겨난 지견[解脫知見]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에 드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니라. 12인연(因緣)을 잘 아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4무량심(無量心)을 행하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며, 4선(禪)을 행하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4무색정(無色定)을 행하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며, 4향(向)의 바른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온갖 번뇌[漏]를 끊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니라. 가섭아, 이것을 성인의 열두 가지 표식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어떤 비구라도 이 성인의 열두 가지 표식을 완전히 갖추지 못하고서 몸에 가사를 입는다 하면 나는 ‘이 비구는 바로 삿된 법을 행함이요, 번뇌가 고요히 사라짐을 행하는 것이 아니며, 부처님 법의 행을 여의고 열반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생사의 행을 따르면서 악마에 걸려들었으므로 생사를 건너지 못하며, 바른 법에서 물러나 삿된 법을 행하고 있다’라고 말하느니라.
가섭아, 그러므로 출가한
비구가 몸에 가사를 입었을 때에 아직 사문의 과위를 증득하지 못하였다면 마땅히 여덟 가지 법으로써 가사를 공경하고 존중할 것이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몸에 입은 가사가 마땅히 탑이라는 생각과 세존이라는 생각과 고요히 사라진다는 생각과 인자하다는 생각과 공경하기를 마치 부처님과 같다는 생각과 자신에게 부끄러워한다는 생각과 남에게 부끄러워한다는 생각과 나로 하여금 오는 세상에 탐냄․성냄․어리석음을 여의고 사문의 법을 갖추게 할 것이라는 생각 등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가섭아, 이것을 여덟 가지 법으로써 가사를 공경하고 존중한다고 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네 가지 성인의 성품[四聖種]에서 만족할 줄을 모르고 사문의 법을 여의거나 또한 이 여덟 가지 법으로써 가사를 공경하거나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는 따로 사문 비슷한 이들만이 고통을 받는 작은 지옥에 떨어지느니라. 가섭아, 그 지옥 안에는 사문 비슷한 이들만이 그 안에서 죄를 받는데 옷과 발우와 온 몸뚱이가 모두 다 불에 활활 타고 있으며 앉고 눕는 곳과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도 역시 모두 활활 타고 있음은 마치 큰 불 무더기와 같나니, 사문과 비슷한 이들만이 이러한 죄를 받느니라. 왜냐 하면 깨끗하지 못한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성취한 까닭에 이런 죄를 받는 곳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가섭아, 만일 사문이 아닌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바로 사문이다’라고 하거나, 범행을 하지 않는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에게는 범행이 있다’라고 계율을 지니고 공덕이 구족한 사람에게 오른 편을 도는 등의 공경과 존중을 받게 되거나 또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그런 예배 공경과 공양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악(惡)인 줄을 모르면 그 악한 비구들은 이 착하지 않은 뿌리 때문에 여덟 가지 가벼운 법을 얻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 가벼운 법인가 하면 첫째는 어리석은 이가 되고, 둘째는 벙어리가 되며, 셋째는 난장이가 되고, 넷째는 얼굴이 추악하게 생길 뿐더러 비뚤어져서 보는 사람마다 비웃게 되며 다섯째는 여인의 몸으로 바꾸어 나서 가난하여 여종이 되고, 여섯째는 그 몸의 형상이 파리해지면서 일찍 죽게 되며, 일곱째는 사람들의 천대를 받으면서 항상 악한 이름이 있고, 여덟째는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계율을 지닌 이들의 예배와 공경을 받으면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법을 얻게 되느니라. 가섭아,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이러한 법을 들은 뒤에는 마땅히 계율을 지닌 비구의 예배와 공경과 공양을 받지 않아야 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어떤 사문이 아닌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바로 사문이다’라고 하거나 청정한 행이 없는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에게는 청정한 행이 있다’라고 한다면 이 큰 땅 안에서 눈물을 흘리고 침을 뱉을 곳조차도 없거늘 하물며 발을 올리고 내리고 하거나 가고 오고 하거나 몸을 구부리고 펴고 할 데가 있겠느냐. 왜냐 하면 과거의 대왕(大王)이 이 대지(大地)를 가져다 계율을 지니고 덕이 있는 이에게 베풀어 그 안에서 도(道)를 행하게 하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발을 올리고 내리고 하는 곳에는 온갖 신심 있는 이의 보시가 이 사람에게는 미치지 않거늘 하물며 승방(僧房)과 사방에서 모인 객승이 묵는 절[招提僧舍]이며, 거니는 곳[經行處]이겠느냐. 설령 방사가 있거나 평상이 깔린 곳이나 동산 숲이 있으며 온갖 옷과 발우와 침구와 탕약 등의 온갖 믿음 있는 보시[信施]가 있다 하여도 받지 않아야 되느니라.
가섭아, 나는 이제 말하리라. 만일 어떤 사문이 아닌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바로 사문이다’라고 하거나 청정한 행이 없는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에게는 청정한 행이 있다’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한 털끝만큼도 믿음 있는 보시를 갚을 수 없으리라. 왜냐 하면 성인들의 복밭은 마치 큰 바다와 같아서 가장 미묘하고 가장 뛰어나 어떤 시주(施主)가 깨끗한 믿음으로 보시의 종자를 그 복밭 안에 심는 것이며, 이러한 시주는 한량없이 보시한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가섭아, 만일 어떤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마치 하나의 털을 백 개로 나누었을 때에 그 악한 비구가 받은 신도의 보시가 그 중의 한 털끝만큼 이라 하여도 그 받은 털끝만한 분량에 따라 곧 시주의 복덕을 덜어내는 것이므로 그렇게 큰 바다와 같이 많은 복의 한 부분이라도 다 갚을 수가 없는 것이니라.
가섭아, 그러므로 마땅히 그 마음이 깨끗하여야 다른 이의 신심 있는 보시를 받을 것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그때 대중 가운데서 깨끗한 행이 있고 욕심이 적어서 멍에를 여읜 2백의 비구들이 이런 말을 들은 뒤에 눈물을 닦으면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제 죽어야겠나이다. 사문의 과위를 얻지 못하고서 다른 이의 신심 있는 밥 한 그릇의 보시조차도 받을 수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선남자들아, 너희들이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미래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마치 금강(金剛)과 같다면 그것이 곧 현재 세상에서의 영락(瓔珞)이니라. 선남자들아, 나는 이제 말하리라. 세상에는 신심 있는 보시[信施]를 받아도 되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부류의 사람인가 하면 첫째는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는 이요, 둘째는 해탈을 얻은 이이니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비구로서 해탈을 얻은 이나 착한 법을 행한 이나 내가 말한 것과 같이 견고하게 계율을 지니는 이나 온갖 행이 덧없고 괴롭다는 것과 온갖 법에는 나가 없다는 것을 관찰하는 이가 열반의 경계인 번뇌가 고요히 사라짐[寂滅]을 관찰하면서, 원하고 구하며 얻고자 하면 이러한 비구들은 남의 신시(信施)를 받은 것이 마치 수미산 만큼이라 하여도 그들은 반드시 그 신시의 복을 갚을 수 있느니라. 만일 어떤 비구가 신심 있는 시주의 보시를 받게 되면 이 시주로 하여금 큰 이익을 얻게 하고 큰 과보를 얻게 하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항상 복덕이 생기기 때문이니, 세 가지 복이 있느니라. 첫째는 항상 음식을 보시하게 하고, 둘째는 절 방사(房舍)를 보시하게 하며, 셋째는 인자한 마음을 행하게 하는 것이니, 이 세 가지 복 중에서 인자한 마음이 가장 뛰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비구가 시주로부터 보시를 받았을 때에 즉 옷이나 발우나 침구나 탕약 등을 받고 나서 한량없는 선정에 들게 되면 그 시주로 하여금 한량없는 복을 얻게 하고 한량없는 과보를 얻게 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큰 바다조차도 오히려 다 마르게 할 수 있지마는 이 시주가 얻는 복과 과보는 다할 수 없느니라.
가섭아, 알아야 하느니라. 계율을 깨뜨린 비구는 시주의 그렇게 많은 복덕을 손상시키게 되나니, 만일 시주의 보시를 받은 뒤에 악한 법을 행하면 남의 신심 있는 보시를 훼손하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러한 것을 사문의 때[垢]라 하고, 사문의 죄악이라 하고, 사문의 아첨이라 하고, 사문 안의 도둑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계율을 지니는 비구면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쓰면서 이러한 온갖 악한 법을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가섭아, 이른바 사문이라 함은 눈[眼]이 빛깔[色] 안에 흐르지 않고 귀․코․혀․몸․뜻이 법(法)안에 흐르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를 사문이라 하느니라. 또 6입(入)을 선택하고 6통(通)을 환히 통달하며 6념(念)을 오로지 생각하고, 6경(敬)의 법에 편히 머무르며, 6중(重)의 법을 행하는 것이니, 이를 사문이라 하느니라.”
2) 비구품(比丘品)
그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말한 대로 비구란 번뇌를 잘 깨뜨리기 때문에 비구라 하며 나라는 생각[我想]과 중생이라는 생각[衆生想]과 사람이라는 생각[人想]과 남자라는 생각[男想]과 여자라는 생각[女想]을 깨뜨리면 이를 비구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계율을 닦고 지혜를 닦는 이를 바로 비구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두려움을 여의기 때문에, 세 가지 있음[三有]과 네 가지 번뇌의 흐름[四流]을 건너기 때문에, 있음[有]과 흐름[流]의 모든 허물과 근심을 보기 때문에, 온갖 존재와 흐름을 여의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도(道)에 편안히 처하기 때문에, 이를 비구라 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어떤 비구가 이러한 법과 그 밖의 착한 법을 스스로 성취하지 않은 줄을 알고 또 이 법을 여의면서 그 밖의 도를 행한다면, 가섭아, 그런 비구는 나의 제자가 아니요 나는 그의 스승이 아니니라.
가섭아, 악한 비구들이 많이 있어서 나의 불법을 파괴하게 되느니라.
가섭아, 95부류 외도(外道)가 나의 법을 파괴하는 것도 아니요, 또한 그 밖의 외도들이 나의 법을 파괴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의 법 안에 있는 온갖 어리석은 사람들이 나의 법을 파괴할 뿐이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사자는 짐승중의 왕이라 설령 그가 죽은 뒤라 하여도 범이나 이리나 새나 짐승들 중에는 그의 살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없다. 가섭아, 사자의 몸 속에서 저절로 모든 벌레가 생기어 도리어 그 살을 파먹는 것처럼, 가섭아, 나의 법 안에서도 이러한 악한 비구들이 나와서 이익을 탐내고
이익에 가려져서 악한 법은 없애지 않고 착한 법은 닦지 않으며 거짓말을 여의지 못하나니, 가섭아, 이러한 비구들이 나의 법을 파괴하는 것이니라.
가섭아, 네 가지 법을 성취한 이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탐내는 이와 성내는 이와 어리석은 이와 젠체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잘난 체하면서 아주 방자한 이와 자신에게 부끄러워함이 없는 이와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는 이와 입의 허물을 삼가지 않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들떠서 동요하는 이와 남을 업신여기는 이와 이익을 탐하는 이와 그릇된 법을 많이 행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간사하고 거짓이 많은 이와 다른 사람을 현혹되게 하는 이와 삿된 생활을 많이 하는 이와 악한 말을 많이 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현재 남의 은혜를 받으면서 보답할 줄 모르는 이와 남에게 조그마한 은혜를 베풀면서 큰 보답을 바라는 이와 먼저 다른 이의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와 친한 벗을 침범하고 훼손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남의 신심 있는 보시를 받고서 다른 이의 복과 과보를 잃게 하는 이와 계율을 잘 지키지 않는 이와 받은 계율을 가벼이 여기는 이와 굳건하게 계율을 지니지 않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나[我]가 있다고 논하는 이와, 중생이 있다고 논하는 이와, 수명이 있다고 논하는 이와, 사람이 있다고 논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는 이와, 가르침을 공경하지 않는 이와, 스님을 공경하지 않는 이와, 계율을 공경하지 않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스님네가 화합하는 것을 마음에 기뻐하지 않는 이와 혼자 있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와 대중들 가운데에 있기를 즐기는 이와 항상 세속에 있는 온갖 말들을 논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이익을 구하는 이와 큰 명예를 구하는 이와 많은 벗들을 구하는 이와 성스런 종자[聖種]에 머물지 않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악마에 매달려 있는 이와 악마에게 해를 당하는 이와 잠을 많이 자는 이와 선(善)을 행하는 데에 기뻐하지 않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불법 중에서 썩고 망가진 이와 마음에 아첨을 품고 있는 이와 번뇌에 해를 당하는 이와 사문의 과위[沙門果]을 여읜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음욕의 불에 타고 있는 이와 성냄의 불에 타고 있는 이와 어리석음의 불에 타고 있는 이와 또한 온갖 번뇌의 불에 타고 있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음녀(婬女)가 있는 마을에 많이 놀고 있으면서도 그의 허물을 알지 못하는 이와, 만족할 줄 모르는 이와, 비록 학문이 많다 하더라도 만족할 줄 모르는 이와, 필요한 물건에 대하여 항상 시샘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다른 이에게 보시하지 못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어두운 데서부터 어두운 데로 들어가고 어리석음에서부터 어리석은 데로 들어가는 이와 거룩한 진리[聖體]를 보지 못하여 의혹을 많이 내는 이와 항상 생사에 얽매어 있는 이와 열반의 문을 닫어버린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몸에 간사한 행[姦行]이 많은 이와, 입에 간사한 행이 많은 이와, 뜻에 간사한 행이 많은 이와, 의식(儀式)에 간사한 행이 많은 이이니라. 어떤 것을 몸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는가 하면 찬찬히
다니는 그것이 몸의 간사한 행이요, 좌우를 돌아보지 않는 그것이 몸의 간사한 행이며, 좌우를 돌아보기는 하나 한 길[一尋]을 넘지 않는 그것이 몸의 간사한 행이요, 삿된 생활을 하여 옷을 입는 그것이 몸의 간사한 행이니라. 아첨하는 마음으로 한적한 곳을 다니고, 한적할 데서 행할 법을 구하지 않으며, 아첨하는 마음으로 걸식(乞食)을 하면서 걸식하는 모양을 관찰하지 않고, 아첨하는 마음으로 누더기[糞掃衣]를 입나니, 부끄러워 할[慚愧] 줄을 모르기 때문이니라. 또 아첨하는 마음으로 산의 굴과 나무 아래를 다니고 12인연(因緣)의 행을 분별할 줄 모르며 아첨하는 마음으로 오래 묵어서 버릴 약을 먹으면서도 감로(甘露)의 법약(法藥)은 구하지 않는 것이니, 가섭아, 이것을 몸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것을 입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는가 하면 ‘다른 이는 나를 안다. 다른 이가 나를 청한다. 구하는 대로 나는 이미 얻었다. 나는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 다른 이가 나에게 아주 훌륭한 공양을 보내주면 나는 모두 받는다. 많은 이익을 나도 역시 얻었다. 나는 항상 착한 법을 행하고 있으므로 공양을 받을 만하다. 나는 문답을 잘한다. 나는 법의 모양에 잘 순종한다. 나는 법의 모양에 잘 거역한다. 나는 온갖 법에 대하여 이치와 이치가 아님을 안다. 다른 이가 만일 나에게 이렇게 물으면 나는 이렇게 잘 대답한다. 대답한 뒤에는 그를 조복시켜 그로 하여금 잠자코 있게 한다. 나는 이것을 말한 뒤에는 대중들로 하여금 모두 다 기뻐하게 한다. 또한 모두가 잘한다고 감탄하는 말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 대중들로 하여금 나를 청하여 공양하게 한다. 공양을 받은 뒤에는 또 그 시주로 하여금 나를 자주자주 오라고 청하게 한다’라고 하는 것이니라.
가섭아, 만일 입을 조복시키지 못하고 말한다면 그렇게 하는 온갖 말은 모두 바른 말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입에 간사한 행이 많은 것이니, 가섭아, 이것을 입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것을 뜻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는가 하면 마음으로는 끄달리어 옷과 발우와 침구와 의약 등의 이익을 탐하고 구하면서도 입으로는 말하기를 ‘온갖 이익이 나에게는 필요 없다’라고 하거나 마음으로는 진실로 많이 구하고 있으면서도 ‘만족할 줄을 안다’라고 거짓으로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뜻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으로는 이익을 구하면서도
입으로는 만족할 줄 안다고 하며
삿된 생활을 하면서 이익을 구하므로
언제나 유쾌한 즐거움이 없느니라.
그의 마음에는 간사함이 많아서
온갖 것을 모두 속이게 되며
이러한 마음은
도무지 깨끗하지 않은 것이니라.
모든 하늘과 용과 신(神)으로서
천안(天眼)이 있는 이와
모든 부처님․세존께서는
모두 함께 그것을 알고 보시하느니라.
가섭아, 이러한 악한 비구는 착한 법의 의식(儀式)을 여의고 삿된 생활[邪命]을 하기 때문에 3악도(惡道)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3) 전타라품(旃陀羅品)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이를 전타라와 같은 사문[旃陀羅沙門)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도살하는 전타라가 항상 무덤 사이를 다니면서 죽은 시체를 구할 때에 자비로운 마음이 없이 중생과 죽은 시체를 보면 몹시 기뻐하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사문 전타라는 항상 인자한 마음이 없이 시주(施主)의 집으로 가서 착하지 않은 마음을 쓰고 구하던 것을 얻고 나면 귀중히 여기는 마음을 내며 시주의 집에서 이익을 받은 뒤에는 시주에게 부처님의 법과 율[毘尼]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 이익만을 위하여 집에 있는 이[在家]들을 가까이 하며 법을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에 인자한 마음도 없고 언제나 이익만을 구하느니라. 가섭아, 이런 사람을 사문 전타라라 하느니라.
가섭아, 마치 전타라가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듯이 이른바 대신이나 장자며 모든 작은 왕․찰제리․바라문 그 밖의 서민 및 하천한 이들까지도 멀리하면서 그와 함께 벗이 되려고 하지 않느니라. 가섭아, 이러한 사문 전타라도 역시 모두에게 멀리함을 당하나니, 이른바 계율을 지니고 덕이 있는 사람으로서 공경을 받을 이와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와 하늘․용․귀신 및 건달바 등이 그런 분들이니, 그가
계율을 깨뜨리고 악한 법을 행하는 줄 알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들을 사문 전타라라 하느니라.
가섭아, 마치 전타라가 지니고 있는 의복과 음식과 모든 필요한 물건들을 좋은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지도 않고 또한 받아쓰지도 않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사문 전타라가 지니고 있는 옷과 발우와 사용하는 물건들은 모두가 이는 계율을 깨뜨리고 법답지 않으며 몸과 입과 뜻의 업으로 아첨하여 얻은 것이라 계율을 지니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버리면서 좋아하지도 않고 또한 수용하지도 않으면서 이 사람에 대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느니라.
가섭아, 이들을 사문 전타라라 하느니라.
가섭아, 마치 전타라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는 그릇을 가지고 다른 이에게 걸식을 하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사문 전타라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승방으로 들어가고 다른 집에 이르고 혹은 대중 가운데로 가기도 하며 또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로 가고 또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여래의 탑에 예배하며 또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가고 오고 구부리고 펴며 또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다니고 서고 앉고 누우며 온갖 행하는 것이 모두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니, 악한 법을 감추고 숨기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나는 이제 말하리라. 전타라가 이르게 된 곳마다 착한 곳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스스로 악한 법을 행하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러한 사문 전타라가 이르게 되는 곳도 역시 착한 길[善道]에는 이르지 못하나니, 악한 업을 많이 짓고 악한 길의 법을 막지 않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들을 사문 전타라라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이를 사문으로서 부패한[敗壞] 사람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향기와 맛을 갖춘 좋은 술에서 이 술의 제호(醍醐)를 다 짜고 나면 찌꺼기만이 있게 되므로 사람들이 천히 여기고 베풀어 사용함이 없는 것처럼, 가섭아, 이렇듯 부패한 사문도 법 맛[法味]을 여의고 번뇌의 찌꺼기를 취하므로 사람들이 천히 여기고 베풀어 사용함이 없으며
계율을 지니는 향기를 여의고 모든 번뇌를 맡고 있는지라 이르는 곳이 있어도 자기의 이익이 되지 못하고 또한 남을 이롭게 하지도 못하느니라.
가섭아, 이들을 사문으로서 부패한 사람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부패하고 썩었다 함은 마치 먹은 음식이 변하여 더러운 똥이 되어 악취가 나고 깨끗하지 못하므로 사람들이 싫어하고 여의게 되는 것과 같나니, 가섭아, 이러한 썩은 사문도 마치 더러운 똥과 같나니, 몸과 입과 뜻의 업이 청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들을 부패하고 썩은 사문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썩은 종자를 대지에다 심어도 끝내 싹과 열매가 생기지 않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부패하고 파괴된 사문도 비록 부처님 법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선근이 생기지 않고 사문의 과위도 얻지 못하느니라.
가섭아, 이들을 부패하고 썩은 사문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이를 사문으로서의 상자[沙門篋]라 하는가 하면 비유하면 마치 그림이 그려진 상자가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그 안에다 더러운 냄새나는 것을 넣으면 갖가지로 깨끗하지 못한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사문으로서의 상자도 밖으로는 사문으로서의 행을 성취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안으로는 갖가지의 더러운 때가 있으면서 모든 악한 업을 행하고 있나니, 가섭아, 이런 이를 사문으로서의 상자라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이를 사문으로서의 구란도(枸欄茶)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구란다꽃의 빛깔과 모양은 산뜻하여 좋지마는 그 몸은 딱딱하여 마치 나무나 돌과 같고 그 냄새는 악취가 나서 마치 똥을 발라 놓은 것과 같으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이 꽃을 보게 되면 가까이 하지도 않고 만지지도 않으면서 멀리 피하며 도망을 가거니와 어리석은 사람들이 보게 되면 그의 허물을 모르고 가까이 하면서 냄새를 맡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사문으로서의 구란다도 사문과 같은 행을 나타내기는 하나, 거칠고 사나움이 있으며 오만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면서 더러운 악취가 나고 깨끗하지 못하며 또 계율을 깨뜨리고 의식의 행이 없으면서 바른 소견을 깨뜨린 이이니라.
가섭아, 이러한 사문으로서의 구란다는 지혜 있는 이가 가까이 하지도 않고 예배하고 공경하면서 오른편으로 돌지도 않으며 악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멀리하고 여의느니라.
가섭아, 어리석어서 마치 어린 아이와 같은 이가 있다면 그러한 어리석은 이들만이
친근할 바요 예배 공경하고 오른편으로 돌면서 그의 말을 믿어 받으리니, 마치 구란다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가섭아, 이들을 사문으로서의 구란다라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이를 사문으로서 이익을 구하는 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아첨하는 사람은 마음이 항상 인색하여 탐욕에 가려져 있으므로 만일 다른 이의 재물을 보면 희망하면서 얻으려 하며 날카로운 칼과 몽둥이를 쌓아 두고서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서 항상 해치려는 마음이 있으며 설령 빈 늪과 산 숲과 마을을 다니면서도 다른 이의 재물을 희구하고 얻고자 하며 항상 자기 것은 몸에 감추고서 다른 이들이 보지 않게 하려는 이런 마음을 내느니라.
가섭아, 이러한 사문으로서 이익을 구하는 이는 마음이 항상 인색하면서 탐욕에 가려져 있으므로 얻은 바의 이익에 있어서도 마음에 만족할 줄을 모르고 다른 이의 재물을 희망하면서 얻고자 하며 이르게 되는 성읍이나 마을에서마다 항상 이익만을 위하고 착한 법은 위하지 않으면서 모든 악(惡)을 감추고 숨기느니라. 이를테면 ‘착한 비구는 내가 계율을 깨뜨리고 있음을 알 것이요, 알고 난 뒤에 만일 설계(說戒)할 때에 혹은 나를 쫓아낼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 착한 비구에게 두려움만을 내면서 마음에 항상 아첨을 떨면서 의식(儀式)을 나타내게 되느니라. 그러나 온갖 하늘․용․귀신으로서 천안(天眼)이 있는 이들은 그 비구가 ‘올 때에는 도둑이 오고 갈 때에는 도둑이 가며 다닐 때에는 도둑이 다니고 앉을 때에는 도둑이 앉으며 누울 때에는 도둑이 눕고 옷을 가질 때에는 도둑이 옷을 가지며 옷을 입을 때에는 도둑이 옷을 입고 마을에 들어갈 때에는 도둑이 마을에 들어가며 마을을 나올 때에는 도둑이 마을을 나오고 음식을 먹을 때에는 도둑이 먹으며 마실 때에는 도둑이 마시며 머리를 깎을 때에는 도둑이 머리를 깎고 있다’ 함을 알고 있느니라.
가섭아,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이 가고 오고 하는 의식은 모두 하늘․용․귀신들이 알고 보게 되므로 본 뒤에는 꾸짖되 ‘이러한 악한 사람이 곧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을 파괴하고 멸망시키고 있다’라고 하며 이렇게 모든 악한 비구들을 꾸짖느니라.
또 그 모든 하늘․용․귀신들은
계율을 지니고 청정한 행[梵行]을 닦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보면 더욱더 믿는 마음으로 예배 공경하고 존중하나니, 이런 사람은 불법 가운데서 마땅히 이익을 받을 만한 이들이니라.
가섭아, 이 사문으로서 이익을 구하는 이는 불법 가운데에 출가하였으면서 한 생각도 고요히 사라진 욕심을 여읜 마음을 낼 수조차 없거든 하물며 사문의 과위를 얻겠느냐. 만일 얻는 이가 있다면 옳지 못한 일이니라.
가섭아, 이들을 사문으로서 이익을 구하는 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이를 피 사문[稗沙門]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보리 밭 안에 피가 났을 적에 그 형상은 흡사 보리와 같아 분별할 수 없으므로 그때 농부는 생각하기를 ‘이 피도 모두 좋은 보리이다’라고 하다가 뒤에 그 이삭이 난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것이 아닌 것을 알고 ‘모두가 다 보리’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피 사문도 대중 가운데에 있으면서 계율을 지니고 덕행이 있는 이와 같으므로 시주들을 보고 ‘모두 이들은 사문이다’라고 여기게 되느니라.
그리고 그 어리석은 사람들은 실로 사문이 아니면서도 ‘나는 사문이다’라고 하고 범행이 있는 이가 아니면서도 ‘나는 범행이 있다’라고 하지만 원래 썩고 망가져서 계율을 여의었으며 또한 대중의 수효에 들지 못할 이이므로 불법 중에서 지혜의 생명이 없고 당연히 악도(惡道)에 떨어지리니, 마치 피가 좋은 보리들 가운데에 있는 것과 같으니라.
그때 하늘․용․귀신으로서 천안(天眼)이 있는 이면 그 어리석은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질 것을 보게 되며 본 뒤에는 저마다 서로 말하기를 ‘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우선 사문과 같기는 하나 착하지 않은 법을 행하고 있으므로 이제 큰 지옥 안에 떨어지게 되리라. 이제부터는 끝내 사문으로서의 덕행과 사문의 과위를 얻을 수가 없음은 마치 피가 좋은 보리 안에 있는 것과 같구나’라고 하느니라.
가섭아, 이들을 피 사문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이를 부들로 생긴 사문[蒲生沙門]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부들이 벼 모 안에서 생기지만 익지 않기 때문에 부들로 생겼다 하며 속이 차 있지 않기 때문에 바람에 날려 없어지고 굳고 무거운
힘이 없는지라 벼와 같으면서도 벼가 아닌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부들로 생긴 사문은 형상은 사문과 같으나 가르쳐주고 꾸짖어 줄 사람도 없고 덕의 힘이 없는지라 악마의 바람에 날리며 또한 혈기(血氣)인 계율을 지니는 힘이 없고 많은 견문[多聞]을 여의었으며 선정의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역시 지혜에서 멀어졌고 모든 번뇌의 도둑을 깨뜨릴 수 없나니, 이러한 사람은 가볍고 비열하고 힘이 없다 하겠으므로 악마에 매이게 되고 악마의 갈고리에 걸리게 되며 온갖 번뇌 속에 빠져 있으면서 악마의 바람에 날림이 마치 부들로 생긴 벼와 같다고 하느니라. 가섭아, 부들로 생긴 벼는 종자가 되지도 못하고 또한 싹도 나지 않느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부들로 생긴 사문은 부처님 법 중에서 도(道)의 종자도 없고 성현의 법 가운데서 해탈할 수도 없느니라. 가섭아, 부들로 생긴 사문이란 이른바 계율을 깨뜨리고 악(惡)을 행하는 이이니, 이들을 부들로 생긴 사문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이를 비슷한 사문[似沙門]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공교하게 금을 구리에 발랐을 때에 그 빛깔은 금과 비슷하나 그 값어치는 금과는 같지 않으며 그것이 닦였을 때에야 비로소 금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처럼 가섭아, 비슷한 사문이란 자신을 꾸미기 좋아하여 항상 몸을 깨끗이 하고 옷을 단정하게 입으면서 사문으로서 지니는 의식(儀式)은 모두 갖추고 있으며 가고 오고 구부리고 펴는 데에 항상 의식을 바르게 갖느니라. 그러면서도 그는 항상 탐냄․성냄․어리석음에 해를 당하고 있고 또한 이익과 예배와 공경과 찬탄에 해를 받고 있으며 또한 아만(我慢)과 증상만(增上慢)과 온갖 번뇌에 해를 받고 있으므로 비록 사람들이 귀히 여긴다 하더라도 귀중한 법이 없으며 항상 부지런히 몸을 장엄하고 음식을 희망하며 성인의 법을 구하지 않고 미래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현재에는 존중받지마는 장래에는 존중을 받을 이가 아니며 다만 몸을 살찌우기만 하면서 이익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지 않으며 갖가지에 속박되어 집안의 일에나 힘쓰고 집에 있는 이의 마음을 따르며 또한 그것에 따라 받나니, 괴로울 때에는 괴로움을 받고 즐거울 때에는 즐거움을 받으면서 사랑과 미움에 해를 당하며
사문의 법대로 하려 함이 없고 모든 의식도 없기 때문에 반드시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그 사람에게는 사문으로서의 진실이 없고 사문으로서의 명칭도 없으며 사문과 더불어 같지도 않느니라. 가섭아, 이들을 비슷한 사문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이를 사문의 혈기(血氣)를 잃었다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남자거나 여인이거나 사내아이거나 계집아이거나 간에 사람 아닌 것[非人]이 그의 혈기를 빨아먹으면 그 사람은 쇠약해지고 얼굴빛이나 힘이 없게 되는 것과 같이 피와 기운을 잃게 되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러한 사람은 혈기를 상실했기 때문에 모든 약이나 주술(呪術)이나 모든 칼․몽둥이로도 다스릴 수 없는 것이요 반드시 죽기에 이르느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사문에는 계율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의 혈기가 없고 자(慈)․비(悲)․희(喜)․사(捨)의 혈기도 없으며 또한 보시하고 조복하여 몸과 입과 뜻의 업을 보호하는 혈기도 없고 또한 네 가지 성인의 성품에 편히 머무르는 혈기도 없으며 의식(儀式)의 혈기도 없고 몸과 입과 뜻을 깨끗하게 하는 혈기도 없느니라.
가섭아, 이들을 사문으로서 혈기를 잃은 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혈기를 잃은 사문이라 하면 비록 여래의 법약(法藥)을 받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제도되지 못하느니라. 법약이라 함은 이른바 만일 음욕이 일어나면 마땅히 깨끗하지 않다고 관찰해야 하고, 성과 분이 일어나면 마땅히 인자한 마음[慈心]을 내어야 하며, 어리석음이 일어나면 마땅히 12인연(因緣)을 관찰하여야 하고, 모든 번뇌에 대하여는 바른 생각[正思惟]을 해야 하며, 대중을 좋아하는 일을 여의고 나의 소유(所有)를 버리면서 출가한 이의 세 가지 일을 좋아하며 지켜야 하느니라. 세 가지 일이라 함은 이른바 계율을 깨끗하게 지니는 것이요 그 마음을 조복하는 것이며 선정에 들어서 산란하지 않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법약(法藥)은 내가 말한 것이요 내가 먹도록 허락한 것이나 비록 이런 약을 받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제도되지 못하느니라.
가섭아, 또 세간을 벗어나는 법이 있나니, 이른바 공관(空觀)과 무상관(無相關)과 무작관(無作觀)이며, 5음(陰)․18계(界)․12입(入)에서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體]와
12인연(因緣)을 아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법약으로써도 그 사람은 역시 스스로 제도되지 못하느니라.
가섭아, 이러한 사문은 더러운 악취가 나고 깨끗하지 못하나니, 계율을 깨뜨렸기 때문이요 복덕이 얇기 때문이며 극히 하천한 곳에 태어나서 교만하기 때문이니라. 여기에서 목숨을 마치면 다른 곳에는 태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큰 지옥에 떨어지리니, 마치 사람이 혈기를 잃으면 반드시 줄기에 이르는 것처럼 이러한 사문도 여기에서 목숨을 마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들을 혈기를 잃은 한 사문이라 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여 마치자마자 5백의 비구들이 계율을 버리고[捨戒] 세속으로 돌아갔다.
그때 여러 비구들은 그 비구들을 꾸짖었다.
“만일 대덕들이 부처님 법 안에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간다면 이러한 일이야말로 좋지 않으며 이러한 일이야말로 법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만일 그와 같이 한다면 법을 따른다고 하느니라. 만일 비구가 남의 신심 있는 보시를 받고 싶지 않아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을 법에 따르는 것이라 하느니라. 그 모든 비구들은 믿고 이해하는 마음이 많기 때문에 뉘우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서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깨끗하지 않은 행을 행하면서 다른 이들의 신심 있는 보시를 받았었다면 마땅히 뉘우치는 마음을 내고 물러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하였다.
“가섭아, 나는 이제 이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리라. 여기서 목숨을 마치면 도솔천(琓率天)의 미륵보살이 있는 곳에 태어났다가 미륵여래가 세간에 출현할 때에는 그 모든 비구들은 첫 번째 모인 법회(法會)의 수효 안에 들어 있으리라.”
4) 영사비구품(營事比丘品)
그때에 마하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비구가 여러 일들을 맡아 할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두 부류의 비구가 여러 일들을 맡아 할 수 있다고 허락하느니라. 어떤 것이 두 부류인가 하면 첫째는 청정하게 계율을 지니는 이요,
둘째는 미래 세상을 두려워하기를 마치 금강과 같이 여기는 사람이니라. 또 두 부류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부류인가 하면 첫째는 업보(業報)를 아는 이요, 둘째는 모든 부끄러워함[慚愧]과 뉘우치는 마음이 있는 이이니라.
또 두 부류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부류인가 하면 첫째는 아라한이요, 둘째는 팔배사(八背捨)를 닦는 이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두 부류의 비구라야 나는 일을 맡아 하도록 허락하여도 스스로 부스럼과 혹이 없을 것이니라. 왜냐 하면 가섭아, 다른 사람들의 뜻을 보호하는 이런 일은 어렵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부처님 법 가운데서 갖가지로 출가하여 갖가지의 성품과 갖가지의 마음과 갖가지로 해탈하고 갖가지로 번뇌[結]를 끊으면서 혹 어떤 이는 아란야(阿蘭若)에 있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걸식을 하기도 하며 혹 어떤 이는 숲에 머무르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마을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깨끗하게 계율을 지니기도 하며 혹 어떤 이는 네 가지의 멍에[扼]를 여의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부지런히 많은 견문을 닦기도 하며 혹 어떤 이는 모든 법을 잘 말하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계율을 잘 지니기도 하며 혹 어떤 이는 비니(毘尼)의 의식을 잘 지니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모든 성읍과 마을에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법을 말하는 등의 이러한 모든 비구승들이 있게 되나니, 일을 맡아보는 비구[營事比丘]는 이러한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잘 간파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아란야 비구가 한적한 곳을 좋아하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온갖 사역(使役)을 시키지 않아야 하느니라. 때로 아란야 비구가 비구들간의 차례에 따라 사역을 하게 되더라도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대신 그 일을 하여야 하고 만일 스스로가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고용하여서라도 그 비구 대신 일을 하게 해야 하며 아란야 비구를 부려서는 안 되느니라. 만일 도를 행하지 않을 때에는 조금은 일을 시킬 수 있느니라. 또 걸식하는 비구가 있으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그 걸식하는 비구에게는 좋은 음식을 주어야 하며 또 어떤 비구가 네 가지 멍에를 여의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구한 바의 물건들을 마땅히 공급(供給)해야 되나니, 이른바 의복과 음식과 침구와
의약 등이 그것이니라. 또 멍에를 여읜 비구가 머물러 있는 곳이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그가 머물러 있는 곳에서는 높은 소리로 크게 불러도 안 되고 또한 다른 이를 시켜서 높은 소리로 크게 부르게 해도 안 되나니, 그 멍에를 여읜 비구를 보호해주기 위해서이니라.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멍에를 여읜 비구에 대하여 마땅히 존경하기를 마치 세존과 같다는 생각을 내어야 하며 생각하기를 ‘이러한 비구는 부처님 법 가운데서 법의 기둥이 될 것이므로 구하는 대로 그에게 공급해야 한다’라고 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많은 견문[多聞]을 부지런히 닦는 비구가 있으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마땅히 권유하면서 말하기를 ‘대덕께서도 많은 견문을 부지런히 닦으셔서 읽고 외며 환히 알게 하십시오. 나는 여러 대덕을 위하여 공급하며 심부름을 할 것입니다. 만일 모든 대덕께서 많은 견문을 부지런히 닦으시면 비구승 가운데서 이는 좋은 영락(瓔珞)이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 널리 바른 법을 말씀하실 수 있으며 또한 저절로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라고 하느니라.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바른 때가 아니면 일을 시켜서는 안 되며, 마땅히 옹호해 많이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섭아, 만일 설법하는 비구가 있으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일마다 모두 공급해야 하고 설법하는 비구를 데리고 성읍이나 마을에 이르러서 모든 사람들에게 권유하여 법을 듣게 해야 하며 설법하는 곳도 역시 공급해야 하고 설법하는 사람을 위하여 좋고 높은 자리를 펴야 하느니라. 만일 어떤 비구가 억지로 힘을 써서 설법을 파괴하려고 하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그에게로 가서 화해시켜야 하며 또한 자주자주 설법하는 사람에게로 가서 ‘아주 잘하십니다’라고 하며 칭찬해야 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어떤 비구가 계율을 잘 지니고 계율의 이치를 잘 지니면서 일을 하되 자주자주 이치를 물으면서 ‘제가 어떻게 일을 맡아보면 죄를 짓지 않게 되며 스스로 잃어버리는 것도 없고 남을 해치지도 않게 됩니까’라고 해야 하느니라. 그 계율의 이치를 지니는 비구는 그 일을 맡아보는 이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맡아보는 일에 따라 설법해 주어야 하나니, 이를테면
‘이것은 해야 한다. 이것은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니라.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계율을 지닌 사람에게 일심으로 믿음을 내어 예배 공경하고 공양해야 되느니라. 만일 비구승들이 소유하는 몫의 물건들이면 마땅히 때때로 대중들에게 공급해야 하고 대중이 구하는 것을 감추지도 말 것이며 마땅히 나누어주되 때맞추어 주어야 하며 악한 마음으로 주어서도 안 되고 법답지 않게 주어서도 안 되며 욕심을 내며 주어서도 안 되고 성을 내면서 주어서도 안 되며 어리석은 마음으로 주어서도 안 되고 두려운 마음으로 주어서도 안 되며, 상가의 법[僧法]과 행을 따르고 집에 있는 이[在家]의 행을 따르지 않으며, 상가의 제정된 행에 따르고 자신이 제정한 행에 따르지 않으며, 승물(僧物)에 대하여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내어서는 안 되며, 조그마한 일에 이르기까지도 대중과 함께 판단해야 하고 제 마음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느니라. 또 소용되는 물건[所用物] 즉 상주승(常住僧)의 물건과 부처님 물건[佛物]과 사방에서 모인 객승들[招提僧]의 물건에 있어서 그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마땅히 분별하여야 하느니라. 상주승의 물건을 객승들에게 주어서도 안 되고 객승들의 물건을 상주승에게 주어서도 안 되며 상주승의 물건을 객승들의 물건과 함께 섞어서도 안 되고 객승들의 물건을 상주승의 물건과 함께 섞어서도 안 되며 상주승의 물건과 객승들의 물건을 부처님 물건과 함께 섞어서도 안 되고 부처님 물건을 상주승의 물건과 객승들의 물건에 함께 섞어서도 안 되느니라. 만일 상주승의 물건이 많아서 객승이 구하는 것이 있다면 일을 맡아 보는 비구는 마땅히 대중을 집합하여 상의한 뒤에, 만일 대중들이 동의하면 상주승의 물건을 객승에게 나누어주어도 되느니라.
가섭아, 만일 여래의 탑에 혹 필요한 것이 있고 또는 무너지려 할 때면, 상주승의 물건이나 객승의 물건이 많이 있을 때에 그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마땅히 대중을 집합하여 그들과 상의하면서 말하기를 ‘이 부처님 탑이 파괴되려 하니 이제 수선을 하여야겠습니다. 이 상주승의 물건과 객승의 물건이 많으니,
대덕 스님네는 들으십시오. 만일 스님네께서 때가 되고 스님네께서 허락하시거나 스님네께서 얻으신 시주의 물건에 아까워하시지 않는다면 이 상주승의 물건과 객승의 물건을 가져다가 부처님 탑을 수리하겠습니다’라고 하느니라. 만일 대중들이 동의하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마땅히 승물(僧物)로써 부처님 탑을 수리해야 되거니와 만일 대중이 화합하지 않으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마땅히 그 밖의 집에 있는 이들에게 권하여 거기서 얻은 재물로써 부처님 탑을 수리해야 되느니라.
가섭아, 설령 부처님 물건[佛物]이 많다 해도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부처님 물건으로 상주승에게나 객승에게 나누어주어서는 안 되느니라. 왜냐 하면 이 물건은 마땅히 세존과 같다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의 소유물은 한 오라기의 실까지도 모두가 이는 시주의 신심으로 부처님께 보시한 것이니, 그러므로 모든 하늘과 세간 사람들은 이 물건에 대하여는 부처님의 탑이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겠거든 하물며 3보(寶)의 물건이겠느냐. 만일 부처님 탑에 먼저 옷을 보시하였다면 이 옷이 부처님 탑 안에서 차라리 바람에 날리고 비에 문드러져서 다 해지고 못쓰게 될지언정 이 옷으로써 다른 보물과 바꾸어서는 안 되느니라. 왜냐 하면 여래의 성탑(聖塔)에 있는 물건은 값을 쳐서 줄 사람도 없고 또 부처님께서는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이 착하고 깨끗하게 일을 맡아보는 사람은 3보의 물건을 뒤섞이게 하여서는 안 되며 또 자기의 이익에 대하여 마음에 항상 만족할 줄 알면서 3보의 물건 안에서는 내 것이라는 생각을 내어서도 안 되느니라.
가섭아,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만일 성을 내면서 오른쪽으로 돌며 예배하고 공경해야 할 계율을 지닌 큰 덕이 있는 이에게 자기 마음대로 몰아쳐 부리면 이 때문에 그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성내는 마음으로 인하여 큰 지옥에 떨어지게 되며 설령 사람으로 된다 하여도 남의 노예가 되어 항상 그 주인에게 고역(苦役)을 당하면서 남들에게 매를 맞게 되느니라.
또 가섭아, 만일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제 마음대로 다시 중한 법제(法制)를 만들어서
대중이 통상하는 한계를 넘어 비구들을 벌주고 때 아닐 적에 부리게 되면 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이 착하지 않은 뿌리 때문에 못이 많은 작은 지옥에 떨어지게 되며 그 안에 태어난 뒤에는 백천 개의 못이 그의 몸에 박히면서 그의 몸은 훨훨 큰 불길을 뿜어냄이 마치 큰 불 무더기와 같을 것이니라. 만일 계율을 지니고 큰 덕이 있는 이에게 심각한 일로 그를 두렵게 하면서 성내는 말을 하게 되면 그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지옥에 떨어져서 5백 유순이나 되는 긴 혀를 얻게 되고 그 혀에다 백천 개의 못을 박게 되며 각각의 못에서는 큰 불길을 뿜어내게 될 것이니라.
가섭아, 만일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자주자주 승물(僧物)을 얻어서는 아까워하면서 감추어 두거나 혹은 적당하지 않은 때에 대중에게 주거나 혹은 다시 어렵게 주거나 혹은 괴롭히면서 주거나 혹은 적게 주거나 혹은 주지 않거나 혹은 어떤 이에게는 주고 혹은 어떤 이에게는 주지 않거나 하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이 착하지 않은 뿌리 때문에 더럽고 악한 아귀(餓鬼)에 떨어져서 항상 똥덩이를 먹게 될 것이니라. 이 사람이 목숨을 마치고 장차 이 안에 태어나면 그때 다시 어떤 아귀가 있으면서 음식을 그에게 보이면서도 주지는 않을 것이므로 이 아귀는 그때 그 음식을 얻고 싶어하면서 그 음식을 뚫어지게 보며 눈을 잠시도 깜박거리지 않으면서 배고프고 목마르는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그는 백천 년 동안 항상 음식을 얻지 못하게 되며 혹시 음식을 얻게 되더라도 변하여 똥오줌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혹은 피고름으로 되어버리느니라. 왜냐 하면 사람들이 공경하고 예배할 계율을 지닌 사람에게 승가 대중이 소유할 물건을 제 마음대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만일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상주하는 승려의 물건과 객승의 물건과 부처님 물건을 제멋대로 뒤섞어서 쓰면 일 겁 동안 아니 일 겁을 더 넘게 모진 고통의 과보를 받느니라. 왜냐 하면 3보의 물건을 침범하였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만일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이러한 죄를 듣고 다시 이러한 죄를 알면서도 일부러 계율을 지닌 이에게 성을 내게 되면
내가 이제 이들에게 말하리니, 모든 부처님께서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니라. 가섭아, 그러므로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이러한 그릇된 법의 죄를 듣고 나면 마땅히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잘 지키면서 제 자신도 보살피고 남도 또한 보살펴야 하느니라. 가섭아,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차라리 제 몸의 살을 먹을지언정 끝내 3보의 물건을 뒤섞어 써서 옷이나 발우나 음식을 만들지 말 것이니라.”
그때 마하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전에 없었던 일이옵니다. 여래께서는 스스로 인자한 마음으로 이와 같은 법을 말씀하시어, 부끄러워함[慚愧]이 없는 이를 위해서는 부끄러워함이 없는 법을 말씀하셨고 부끄러워함이 있는 이를 위해서는 부끄러워함이 있는 법을 말씀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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