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99권
대보적경 제99권
원위(元魏) 삼장법사 불타선다(佛陀扇多) 한역
송성수 번역
32. 무외덕보살회(無畏德菩薩會)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바가바(婆伽婆)께서 왕사대성(王舍大成)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5백의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보살마하살도 한량없고 그지없었으며 또 8천의 보살마하살이 우두머리였으니, 모두가 삼매(三昧)와 다라니(陀羅尼)를 얻었고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의 삼해탈문과 선교(善巧)와 모든 신통에 잘 들어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이른바 미루(彌漏)보살․대미루(大彌漏)보살․상입정(常入定)보살․상정진(常精進)보살․보수(寶手)보살․상희근(常喜根)보살․발타바라(跋陀波羅)보살․보상(寶相)보살․라후(羅睺)보살․석천(釋天)보살․수천(水天)보살․상의(上意)보살․승의(勝意)보살․증상의(增上意)보살 마하살 등, 8천 인이 그 우두머리였다.
그때 바가바께서는 왕사성에 머물러 계셨으므로 왕과 왕자며 모든 바라문․장자․거사 등이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며, 그때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백천만의 대중들과 함께 있었고 그들에게 공경을 받으면서 에워싸이어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계셨다.
그때에 존자 사리불(舍利弗)과 존자 대목건련(大目犍連)과 존자 대가섭(大迦葉)과 존자 수보리(須菩提)와 존자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와 존자 이바다(離波多)와 존자 아습비(阿濕卑)와 존자 우바리(憂波離)와
존자 라후라(羅睺羅)와 존자 아난(阿難) 등, 이러한 한량없는 성문(聲聞)들이 이른 아침에 가사를 단정하게 입고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으로 들어가서 한 집 한 집 옮아가며 법답게 걸식하였으며 다른 일이 없었다.
그때에 모든 성문들은 이와 같은 걸식을 하면서 가다가 드디어 아사세왕(阿闍世王)이 살고 있는 궁전에까지 이르렀으며 그 왕 앞에 이르러서는 한 쪽으로 물러나 잠자코 서 있으면서 걸식한다거나 걸식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아사세왕에게 무외덕(無畏德)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단정하기 견줄 데 없었고 짝할 이 없었으며 함께 어울릴 이가 없었으며 가장 훌륭하고 수묘한 공덕을 성취하였으나 나이는 겨우 스무 살 밖에 되지 않았다. 마침 무외덕은 그의 부왕(父王)이 있는 당각(堂閣) 위에서 금으로 된 보배 신을 신고 그곳에 있다가 모든 성문들을 보았으면서도 일어나지 않고 맞아들이지도 않고 잠자코 있으면서 함께 문답하지도 않았으며 예배하지도 않고 자리를 양보하지도 않았다.
아사세왕은 무외덕이 잠자코 있는 것을 보고 곧 그녀에게 말하였다.
“너는 어찌 모르고 있느냐. 이 분들은 모두가 석가 여래의 뛰어난[上足] 제자들로서 큰 법을 성취하신 이들이요, 세간의 복전(福田)이시니라. 모든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걸식하고 계신데 너는 지금 보고 있으면서도 무엇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고 맞아들이지도 않고 예배하지도 않으며 함께 서로 문답하지도 않으면서 그 분들에게 자리도 양보하지 않는 것이냐. 너는 이제 무슨 까닭으로 일어나지도 않고 맞아들이지도 않는 것이냐.”
그때 무외덕이 부왕에게 아뢰었다.
“자세히 몰라서 묻습니다만, 대왕이시여, 전륜성왕이 여러 작은 왕들을 보았을 때에 일어나거나 맞아들이는 것을 혹시 보셨거나 들으셨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못 보았느니라.”
다시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짐승의 왕인 사자가 야간(野干)을 보았을 적에 일어나거나 맞아들이는 것을 혹시 보셨거나 들으셨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못 보았느니라.”
또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제석천왕이
그 밖의 하늘들을 맞아들이는 것을 혹시 보셨거나 들으셨습니까? 대범천왕이 일찍이 다른 하늘들에게 예배하고 공경하는 일을 혹시 보셨거나 들으셨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못 보았느니라.”
“또 대왕이시여, 큰 바다의 신(神)이 강물이나 냇물과 못 등의 신에게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을 혹시 보셨거나 들으셨습니까?”
“못 보았느니라.”
“또 수미산왕이 그 밖의 작은 산왕들에게 예배하고 공경하는 일을 혹시 보셨거나 들으셨습니까?”
“못 보았느니라.”
“또 말하기를 대왕이시여, 일광(日光) 월광(月光)의 신(神)이 반딧불인 벌레에게 예배하고 공경하는 일을 혹시 보셨거나 들으셨습니까?”
“못보았느니라.”
다시 딸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이 보살은 발심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하여 나아가는 전륜성왕이며 큰 자비로서 처음 발심하여 수행하여 마친 이거늘 어떻게 큰 자비가 없는 소승(小乘)의 성문에게 예배하고 공경한단 말씀입니까? 대왕이시여, 행여 이미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바른 깨달음[無上正眞正覺]의 도를 구하는 짐승의 왕인 사자와 같은 사람으로서 소승인 야간(野干)과 같은 사람에게 예배하는 일이 있었습니까?
대왕이시여, 행여 이미 크고 깨끗한 도[大梵道]를 구하면서 일으키고 나아간 이가 미미하고 작은 선근을 지닌 성문승의 사람을 친근하는 일이 있었습니까?
대왕이시여, 행여 큰 지혜의 바다에 이르고자 하고 큰 법의 무더기를 구하려 하면서 소 발자국 같은 성문의 사람을 구하는 일이 있었습니까? 그는 다른 이로부터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시여, 행여 부처님의 수미산에 이르고자 하고 여래의 그지없는 색신(色身)을 구하기 위하면서 다시 조그마한 겨자씨 속의 공삼매(空三昧)의 힘을 구하고자 하는 모든 성문의 사람에게 예배하고 공경하는 일이 있었습니까?
대왕이시여, 행여 모든 부처님․여래의 공덕과 지혜가 마치 햇빛․달빛과 같다 함을 들은 뒤에도 반딧불의 벌레인 모든 성문의 사람에게 예배하고 공경하는 일이 있었습니까? 모든 성문은 오직 자기만을 윤택하게 하고 자기만을
비출 뿐이며 다른 이로부터 음성을 들으면서 이해를 얻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시여, 부처님께서 열반하셨다 해도 오히려 모든 성문의 사람에게 예배하거나 공경하지 않았거든 하물며 지금 세존께서 세상에 계심이겠습니까? 왜냐 하면 대왕이시여, 만일 어떤 이라도 성문을 가까이 하게 되면 이 사람은 곧 성문의 마음을 일으키게 되고, 만일 사람이 연각을 가까이 하면 이 사람은 곧 연각의 마음을 일으키게 되며, 만일 어떤 이가 바르고 진실한 바른 깨달음을 가까이 하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딸 무외덕은 이와 같이 말하고 나서 게송으로 부왕 아사세에게 말하였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바다로 가서
엽전 한 푼을 취하는 것과 같이
저는 모든 성문의 소행(所行)도
역시 그와 같다고 보고 있습니다.
큰 법의 바다에 이르러도
대승의 보배 무더기를 버리고
좁다랗고 비열한 마음을 일으켜
소승의 도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왕과 친근해서
거리낌 없이 드나들어도
왕으로부터 한 푼만 얻는다면
그 사람은 단지 왕과 친할 뿐입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전륜왕을 가까이 모시면서
왕으로부터 백천의 재물을 얻어서
한량없는 빈궁한 이들을 윤택하게 한다면
왕과 진실로 친한 이라 할 것입니다.
마치 한 푼만을 구하는 사람과 같이
성문도 역시 그와 같은 이들이니
진실한 해탈을 구하지 못하고
조그마한 열반을 취하는 것입니다.
만일 좁고 비열한 마음을 일으켜
자기만을 제도하고 남을 제도 않으면
마치 좀스럽고 시원찮은 의사가
자기의 몸만을 치료함과 같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큰 의왕(醫王)은
여러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자비의 마음을 잘 일으키므로
공경과 명성을 얻는 것과 같으며,
그런 의사가 세간에 이익이 됨은
의학과 처방을 통달했기 때문이니
자기만 제도하고 남을 제도하지 않으면
지혜 있는 이는 그를 공경하지 않습니다.
마치 기술 좋은 용한 의왕이
처방을 통달한 뒤에
한량없는 천억의 모든 중생들이
병들어 고생하는 것을 구제하므로,
저 의왕은 세간에서
공경과 명성을 얻는 것과 같이
보리의 마음을 일으킨 이는
번뇌의 병을 널리 치료합니다.
대왕이시여, 아주까리 숲은
꽃과 향기와 그림자가 묘하지 않듯이
성문은 마치 아주까리와 같아서
세간 구제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마치 큰 나무 왕[樹王]에게로 가면
많은 이들이 이익을 얻는 것처럼
모든 보살도 또한 그러하여
온갖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합니다.
가을의 햇빛으로는
모든 적은 물도 마르게 하지 못하지만
큰 바다에 이르고 나면
한량없는 무리를 적실 수 있습니다.
성문의 도가 좁고 비열한 것이
마치 소가 밟아 놓은 발자국과 같아
중생들의 모든 번뇌를
없애 줄 수가 없습니다.
작은 산에 오르면
금빛 나는 못이 나타나지 않나니
오직 수미산으로 올라가야만
금빛 몸을 모두 다 보게 됩니다.
대왕이시여, 모든 보살은
또한 수미산과 같나니
그들이 세간에 머무르기 때문에
세간은 해탈을 얻게 됩니다.
모두가 이는 한 빛깔의 몸이요
온갖 지혜를 두루 갖추었으나
성문의 지혜는 그렇지 못하니
마치 아침의 이슬과 같습니다.
세간을 윤택하게 하지 못함은
법을 증득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마치 땅이 많고 늘어나면
한량없는 무리를 이롭게 함과 같습니다.
성문은 마치 꽃의 이슬과 같고
보살은 마치 큰비와 같나니
가까이 하여 큰 법을 얻게 되는 것은
마치 바다가 적셔 주는 작용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철쭉나무의 꽃에는
미묘한 향기가 없어
남자와 여인들이 좋아하지 않는 바요
오직 기뻐하는 것은 첨복화(簷蔔花) 뿐입니다.
마치 푸른 연꽃을 구하면
꽃과 향기가 심히 기묘하듯이
철쭉은 마치 성문과 같아서
그 지혜는 중생들을 윤택하게 못합니다.
마치 첨복화처럼
모든 보살도 그러하나니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중생들을 잘 교화할 수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행여 어떠한 이가
크게 기특한 이인 줄 아십니까?
한 사람이라도 너른 들판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그런 분입니다.
만일 안온하게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면
마땅히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고
이승(二乘)의 도를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간의 광활한 들판에서
길 잃은 무리를 잘 구제하는
저 착한 길잡이처럼
모든 보살도 그러합니다.
대왕이시여, 일찍이 조그마한 뗏목이
큰 바다를 건너는 것을 보셨습니까?
오직 저 큰 배를 타야만
한량없는 무리를 건너게 할 수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성문은 뗏목과 같고
보살은 큰 배와 같아
도법을 닦아 훈수(薰修)한 뒤에는
굶주림의 바다를 건너게 합니다.
대왕이시여, 일찍이 나귀를 타고
싸움터로 들어간 것을 혹시 보셨습니까?
오직 코끼리와 말 탄 것을 보아야만
싸움에서 곧 이기는 것입니다.
성문은 마치 나귀를 탄 것과 같고
보살은 마치 큰 코끼리와 같나니
악마를 항복 받고 도수(道樹)에 앉아
한량없는 중생들을 제도합니다.
마치 밤의 허공에
모든 별은 있지만 나타내지 못하다가
둥근 달이 환히 드러났을 때
염부제를 비출 수 있는 것과 같나이다.
성문은 마치 별과 같고
보살은 마치 둥근 달과 같아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열반의 길을 나타내 보입니다.
반딧불의 빛으로는
할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되거니와
햇빛이 염부제를 환히 비추어 주면
갖가지의 일을 하게 됩니다.
성문은 마치 반딧불과 같아서
많은 이익을 줄 수 없거니와
부처님은 해탈의 광명을 갖추어서
모든 중생들을 가엾이 여깁니다.
야간(野干)이 우는 소리로는
짐승의 왕을 두렵게 할 수 없으며
오직 사자 왕이 한 번 외쳐야만
날아가던 새들도 떨어지게 됩니다.
대왕이시여, 모든 성문들은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서
중생을 이익 되게 하지도 못하고
온갖 번뇌도 없애 주지 못합니다.
대왕이시여, 이런 것을 보았기 때문에
성문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이미 큰 마음[大心]을 일으킨 뒤거늘
어떻게 작은 마음을 일으키겠습니까?
대왕이시여, 몸을 잘 얻었기 때문에
위없는 마음[無上心]도 일으킬 수 있고
온갖 중생을 구제하면서
스승의 도를 버리는 것입니다.
세간의 몸을 잘 얻었고
다시 세간의 이익을 얻었으며
세간에 잘 와 있으면서
위없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위없는 도를 바라고 구하면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나니
만일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이면
그 사람은 참으로 찬탄할 만합니다.
또한 세간의 명성도 얻고
그리고 마지막의 도[究竟道]도 얻었으므로 저는 이제
성문을 예배하거나 공경하지 않습니다.
그때 아사세왕은 딸 무외덕에게 말하였다.
“너는 아주 교만을 부리는구나. 어째서 모든 큰 성문들을 보고 있으면서도 받들어 맞아들이지 않는 것이냐?”
딸은 대왕에게 말하였다.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대왕도 교만을 부리고 계십니다. 어째서 왕사성 안의 모든 가난한 이들을 맞아들이지 않습니까?”
왕은 딸에게 말하였다.
“그들은 나와 같은 유(類)가 아니거늘 내가 어떻게 맞아들이겠느냐?”
딸이 대왕에게 말하였다.
“처음 마음을 내는 보살[初心菩薩]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든 성문과 연각은 같은 유가 아닙니다.”
왕이 딸에게 말하였다.
“너는 모든 보살들이 모든
중생들에게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도 보지 못하였느냐?”
딸이 대왕에게 말하였다.
“보살은 교만을 부리고 성을 내는 중생들을 제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반성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해서며 그 때문에 모든 중생에게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요, 중생의 모든 선(善)의 근본을 자라게 하기 위하여 그 때문에 보살은 중생에게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성문들은 성내거나 원망하는 마음도 없고 또한 선근을 더 자라게 하지도 못합니다.
대왕이시여, 가령 백 천의 모든 부처님․여래께서 그들을 위하여 묘한 법을 말씀한다 하여도 그들이 얻는 계율과 정삼매(定三昧)는 더 증가함도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성문은 마치 유리(琉璃)와 같고 보살은 마치 보배 그릇과 같습니다.
대왕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병 속이 가득 차 있는지라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에도 한 방울의 물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대왕이시여, 모든 성문들도 백 천의 모든 부처님․여래께서 그들을 위하여 묘한 법을 말씀한다 하여도 받아들여 윤택하게 함도 없고 계율․선정․지혜 등을 더욱 늘리게 하지도 못하며 또한 중생들로 하여금 마음을 내어 일체지(一切智)에 이르게 하지도 못합니다.
대왕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큰 바다는 모든 강물과 비 등을 잘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 하면 큰 바다는 바로 한량없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시여, 모든 큰 보살마하살 등은 법을 연설할 때에 들은 대로 큰 복과 이익을 얻으면서 온갖 모든 선의 근본을 더욱 자라게 합니다. 왜냐 하면 모든 보살은 그지없는 언설의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사세왕은 딸의 말을 듣고 잠자코 있었다.
그때 존자 사리불이 생각하기를 ‘이 무외덕(無畏德)은 큰 변재(辯才)를 얻어서 이렇게 그지없이 말을 잘 하는구나. 나는 이제 그에게로 나아가서 소소(少少)히 물어보아야겠다. 나는 우선 그에게 당신은 지혜[忍]를 얻었느냐고 물어야겠구나’ 하고 그에게로 나아가서 여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성문승(聲聞乘)에 머물러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연각승(緣覺乘)에 머물러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대승의 마음[大乘心]에 머물러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사리불이 물었다.
“만일 그렇다면 어느 승(乘)에 머물러 있기에 그렇게 사자후(師子吼)를 하십니까?”
여인은 존자 사리불에게 대답하였다.
“만일 제가 지금 머무름이 있다면 사자후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머무름이 없기 때문에 사자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리불께서는 ‘어느 승에 머물러 있느냐’고 말씀하시는데 마치 사리불께서 증득한 그 법에서도 어찌 승에 분별이 있겠습니까? 바로 그 성문․연각의 승은 대승까지 이르는 것입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당신은 나의 설명을 들으십시오. 내가 증득한 법에는 승(乘)이니 승이 아니니[非乘] 라는 차별의 모양이 없는 것은 한 모양[一相]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모양 없음[無相]이 그것입니다.”
무외덕 여인이 말하였다.
“존자 사리불이여, 만약 법에 모양이 없다면 어떻게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무외덕 여인이여, 모든 부처님의 법과 범부의 법에는 무슨 이기고 지는[勝負] 차별된 모양이 있겠습니까?”
여인이 존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공(空)과 고요함[寂靜]에는 무슨 차별이 있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무외덕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마치 공과 고요함에 차별이나 이기고 지는 모양이 없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의 법과 범부의 법에도 이기고 지는 차별된 모양이 없습니다. 또 사리불이여, 마치 허공이 모든 물질을 받아들이면서 차별함이 없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의 법과 범부의 법에는 차별도 없고 또한 다른 모양도 없습니다.”
그때 존자 대목건련이 무외덕 여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부처님의 법과 성문의 법에 무슨 차별이 있다고 보기에
이러한 모든 큰 성문들을 보면서도 일어나 맞아들이지도 않고 서로 문답하지도 않으며 자리를 양보하지도 않은 것입니까?”
무외덕 여인이 목련에게 대답하였다.
“가령 별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가득 찬다 하여도 환히 비출 수 없나니, 성문도 역시 그러합니다. 선정의 지혜에 들어감으로써 비추어 알 수 있는 것이요, 만일 선정에 들어가지 못하면 깨달아 알지 못합니다.”
대목련이 말하였다.
“만일 선정에 들어가지 못하면 중생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목련이여, 부처님은 선정에 들지 않아도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세계에서 그에 알맞게 설법하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시는 것은 마음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미미하고 작은 별과 같은 광명을 지닌 성문들이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여래의 훌륭한 일[勝事]이십니다.
또 대목련이여, 모든 성문이 혹시 몇 개의 세계가 이루어졌다가 몇 개의 세계가 무너졌는가를 잘 알고 계십니까?”
대목련이 말하였다.
“알지 못합니다.”
여인이 목련에게 말하였다.
“성문들이 혹시 얼마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미 열반에 드셨고 얼마의 모든 부처님께서 장차 열반에 드실 것이며 얼마의 모든 부처님께서 현재 열반에 드시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목련이 대답하였다.
“알지 못합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목련이여, 성문들이 혹시 얼마의 중생이 탐욕이 많은 이요, 얼마의 중생이 성을 냄이 많은 이며, 얼마의 중생이 어리석음이 많은 이요, 얼마의 중생이 세 가지가 다 많은 이인 줄 알고 계십니까?”
목련이 대답하였다.
“알지 못합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목련이여, 성문들이 혹시 얼마의 중생이 성문승을 받아들이고 있고 얼마의 중생이 연각승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얼마의 중생이 불승(佛乘)을 받아들이고 있는 줄 알고 계십니까?”
목련이 대답하였다.
“알지 못합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목련이여, 성문들이 혹시 얼마의 중생을 성문들이 제도하였고, 얼마의 연각들이 제도하였으며, 얼마의 중생을 부처님께서 제도하신 줄 알고 계십니까?”
목련이 대답하였다.
“알지 못합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목련이여, 성문들이 혹시 얼마의 중생이 정취(定聚)에 있어 바른 소견을 지닌 이며, 얼마의 중생이 사정취(邪定聚)에 머물러 있는 줄을 알고 계십니까?”
목련이 대답하였다.
“알지 못합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목련이여, 오직 여래․정진(正眞)․정각만이 사실대로 모든 중생 세계를 잘 아시면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십니다. 이와 같은 일은 모든 성문과 연각의 경계가 아니거든 하물며 그 밖의 중생이겠습니까?
목련이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여래의 수승한 일인 줄 아셔야 합니다. 여래는 온갖 지혜를 두루 얻으셨기 때문이나 온갖 성문과 연각에게는 없습니다.”
그때 무외덕 여인은 다시 존자 대목련에게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항상 대목건련에게 ‘신통중에서는 맨 첫째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련께서는 신통으로 향상(香象) 세계를 잘 아시고 또 가실 수도 있습니까? 그리고 그 세계의 온갖 나무에서는 모두가 으뜸가고 묘한 전단 향기를 뿜고 있는데 그것도 아십니까?”
목련이 대답하였다.
“지금 비로소 그 세계의 이름을 듣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 세계를 갈 수 있겠습니까?”
목련은 이어서 그 여인에게 물었다.
“그 부처님의 명호는 무엇이며 지금 그곳 세계에서 설법하고 계십니까?”
여인이 곧 대답하였다.
“그 부처님의 명호는 방향광명(放香光明) 여래․응공․정변지시며 그 곳에서 설법하고 계십니다.”
목련이 여인에게 말하였다.
“지금 어떻게 그 부처님을 뵐 수 없겠습니까?”
그때 무외덕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위의(威儀)를 흐트리지도 않고 서원을 세웠다.
“만일 보살이 처음 발심하게 될 때에 온갖 성문과 연각보다 더 낫다고 하시면 그것에 대하여 서원하나이다. 원컨대 저 방향광명 여래께서는 이곳에 몸을 나타내시어 모든 성문과 연각들로 하여금 저 향상 세계를 보게 하시며 그리고 으뜸가고 묘한 전단 향기를 맡게 하옵소서.”
그때 무외덕 여인이 이런 서원을 세우자마자 방향광명 여래께서
몸으로부터 광명을 놓으셨다. 광명을 놓으셨기 때문에 그때 모든 성문들이 모두가 저 향상 세계를 볼 수 있었고 그리고 부처님께서 보살과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나망(羅網)으로 몸을 가리시고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고 계신 것을 보았으며 그 곳에서 하신 설법을 이 곳에서 모두 듣게 되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신력으로 다시 그 모든 나무에서 나는 전단 향기를 맡을 수 있었으며 그 세계의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무외덕 여인이 말한 것과 같으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처음 발심할 때에 벌써 성문과 연각의 경계를 지나가느니라.”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미륵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묘한 나무의 향기가 어떤 인연으로 풍겨 오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미륵아, 그것은 무외덕 여인이 여러 성문들과 같이 법답게 논의(論議)를 하면서 서원을 세우자 부처님께서 아시고 짐짓 신력으로 그와 같은 향기와 그 세계를 나타내신 것이며, 그 으뜸가고 묘한 전단의 향기가 이 삼천대천 세계에 두루 찬 것이니라.”
그때 무외덕 여인이 목련에게 말했다.
“만일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훌륭한 공덕을 보셨으면서도 좁고 비열한 소승인 성문의 마음을 일으키면서 자기만을 제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선근이 아주 작고 미미한 줄 아셔야 하십니다. 그 누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한 보살을 보면서도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목련이여, 그 부처님의 세계가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 줄 아시기나 하십니까?”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목련이여, 모든 신통을 다 부려서 백천 겁 동안 지내면 그 부처님 세계를 알 수도 있고 볼 수도 있으리라고 여긴다면 아주 잘못된 생각이십니다. 비유하면 마치 온갖 대나무와 갈대와 우거진 숲과 같은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의 그러한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지나가야 비로소 그 향상 세계가 있게 됩니다.”
그때 그 부처님께서는 광명을 거두셨고 광명이 거두어지자 향상
세계와 그 여래는 홀연히 보이지 않았다.
그때 존자 마하가섭이 무외덕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일찍이 향상 세계와 여래․응공․정변지를 뵈었습니까?”
여인이 곧 대답하였다.
“대가섭이여, 여래는 볼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만일 빛깔로써 나를 보거나 소리로써 나를 구하면 그는 모두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라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여래의 본체[體]는 곧 바로 법신(法身)입니다. 부처님의 법은 보거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알거나 볼 수 있겠습니까? 어떤 방편을 따르면서 중생이 좋아하게 되면 부처님은 곧 장애 없는 몸을 나타내고 보이시는 것은 방편에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가섭께서 저에게 말씀하기를 ‘저 세계를 보았고 저 부처님 등정각을 뵈었느냐’ 하시는데 저는 그 부처님을 뵈었으나 육안(肉眼)으로 본 것이 아니라 육안으로 볼 바의 물질[色]이 아니기 때문이요, 천안(天眼)으로 본 것도 아니니 느낌[受]이 없었기 때문이며, 혜안으로 본 것도 아니니 생각[想]을 여의었기 때문이요, 법안(法眼)으로 본 것도 아니니 모든 지어감[行]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불안(佛眼)으로 본 것도 아니니 의식[識]으로 보는 것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대가섭이여, 제가 여래를 뵈온 것은 존자 가섭께서 보신 것과 같이 무명(無明)과 애견(愛見)의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대가섭이여, 저 부처님을 뵈온 것도 역시 존자 가섭께서 보신 것과 같이 또한 나와 내 것[我我所] 등을 보는 것도 그러합니다.”
가섭이 여인에게 말하였다.
“만일 법이 영영 없다면 어떻게 무명과 욕망과 나와 나라는 모양을 일으키겠습니까? 존재하는 모든 중생은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대가섭이여, 그와 같이 모든 법이 끝내 없거늘 그것을 어떻게 봅니까?”
대가섭이 말하였다.
“만일 온갖 불법이 마침내는 이것이 없다면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대가섭이여, 모든 불법이 더욱 자라는 이치를 보십니까?”
대가섭이 말하였다.
“나는 오히려 모든 범부의 법조차도 알지 못하거든 하물며
부처님의 법이겠습니까?”
무외덕 여인이 말하였다.
“그러므로 존자 대가섭도 그 법을 성취하지 못하거늘 어떻게 끊어지거나 이어짐이 있어 증득하지 못한 이가 보겠습니까? 대가섭이여, 모든 법은 끝내 없어서 보이거나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가섭이여, 모든 법은 본래 없습니다. 만일 법이 본래부터 없다면 어떻게 저 청정한 법계를 볼 수 있겠습니까? 대가섭이여, 만일 청정한 여래를 뵙고자 하는 저 선남자와 선여인은 마땅히 자기의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그때 대가섭이 무외덕에게 말하였다.
“어떻게 자기의 마음을 잘 청정하게 합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대가섭이여, 마치 자기 몸의 진여(眞如)와 온갖 법의 진여와 같이 만일 그것을 믿는다면 짓지도 않고 잃지도 않아서 자기 마음의 청정함을 보기 때문입니다.”
가섭이 물었다.
“자기 마음은 무엇으로 본체를 삼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공으로 본체를 삼습니다. 만일 그것이 공함을 증득하면 자기 몸이 공 함을 믿기 때문이며 곧 진여가 공임을 믿은 것이라 온갖 법의 성품이 고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때 존자 대가섭이 무외덕 여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어느 부처님으로부터 이러한 법을 들으셨기에 바른 소견을 얻었습니까? 마치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아서 바른 소견을 일으킨 이는 두 가지의 인연이 있으니, 다른 이로부터 법을 듣는 것과 속으로 생각하는[內思惟] 것입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대가섭이여, 저 바깥 소리를 빌어서 바깥 소리를 듣기 때문이요, 그 뒤에는 속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대가섭이여, 보살 대사(大士)는 다른 이의 말을 빌리지도 않고 음성을 빌리지도 않거늘 어떻게 열반[寂滅]에 머무른다 하겠습니까?”
가섭이 여인에게 말하였다.
“들은 법마다 관찰하기 때문에 관행(觀行)이라 합니다.”
그때 대가섭이 다시 여인에게 물었다.
“보살은 어떻게 속으로 생각하는 것입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대가섭이여, 만일 모든 보살과 함께 같은 일[同事]을 설법하되 중생이란 모양[衆生相]을 일으키지 않나니 보살은 이와 같이 속으로 관(觀)하므로 내관(內觀)을 성취한다고 합니다. 대가섭이여,
모든 법은 본제(本際)와 중제(中際)와 후제(後際)를 두루 갖추고 있어 모든 법의 진여 본체이기 때문이요, 모든 법은 현재의 진여 본체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와 같이 관하면 이 보살을 내관이 성취한 이라고 하는 줄 아셔야 합니다.”
가섭이 여인에게 말하였다.
“어떻게 하면 이 모든 법이 안정되게 됩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대가섭이여, 이와 같이 마땅히 지어야 합니다. ‘마치 저 진여와 같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대가섭이 말하였다.
“어떻게 보는 것을 바른 소견[正見]이라 합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대가섭이여, 만일 두 극단으로 치우친 소견[二邊見]을 떠나면 짐짓 짓지도 않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이와 같이 보면서도 보지 않으면 이것을 바른 소견이라 합니다.
대가섭이여, 법이란 이름만 있을 뿐인데, 그 이름을 여의었기 때문에 영원히 증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때 대가섭이 다시 여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를 보게 됩니까?”
무외덕 여인이 말하였다.
“마치 존자 대가섭께서 보는 것과 같습니다.”
대가섭이 말하였다.
“나는 자기 몸을 보거나 내 것[我所]을 보지 않습니다.”
여인이 존자 대가섭에게 말하였다.
“마땅히 그와 같이 온갖 법을 보셔야 합니다. 왜냐 하면 나와 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법을 말했을 때에 존자 수보리가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무외덕 여인에게 말했다.
“큰 이익을 잘 얻으셔서 이러한 변재(辯才)를 성취하셨구려.”
그때 무외덕 여인이 곧 존자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수보리여, 법에는 얻을 수 있는 것도 있고 얻을 수 없는 것도 있는데 그런데도 구해야 합니까? 저에게 ‘잘 변재를 얻었고’ 저에게 ‘변재가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만일 제가 깨달아 아는 바가 없다면 안이거나 밖이거나 변재가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때 수보리가 곧 여인에게 말하였다.
“여인께서는 무엇을 증득했으며 얻은 법이 무엇이기에 그러한 흔쾌하면서 묘한 변재가 있는 것입니까?”
여인은 곧 대답하였다.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얻을 착한 법과 착하지 않은 법의 차별의 모양도 모릅니다.
이렇게 법을 아는지라 물듦과 청정함과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와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와 세간과 출세간(出世間)과 범부의 법을 보지 못합니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 법의 본체가 바로 부처님이요, 부처님의 법이며, 그리고 부처님 법을 얻었으면서도 부처님을 보지 못합니다. 수보리여, 만일 그렇다면 깨닫거나 보는 것 없이 이런 변재가 있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어떤 것이 변재입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수보리여, 마치 어진 이께서 얻은 것과 같이 제거하여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여인이 존자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마치 저 법의 본체가 듣는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으면서 말하는 것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여인이 존자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법의 본체가 머무를 수 있습니까? 또 늘리거나 줄일 수도 있는 것입니까? 그러기에 이런 변재가 있을 수 있습니까? ”
그때 수보리가 곧 여인에게 말하였다.
“만일 무루의 법을 증득하면 차별도 없고 변설도 없습니다. 그 때문에 법의 본체는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여인이 존자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온갖 법에서 어떻게 ‘그 이익을 잘 얻었고 그러한 변재를 얻었다’고 그와 같은 생각을 내십니까?”
수보리가 여인에게 말하였다.
“변재를 얻었기 때문에 말한 것이요, 얻지 않았는데 일부러 말한 것이겠습니까?”
여인이 존자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한 것과 같은 ‘모든 법은 마치 메아리와 같다’고 함을 믿으십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저는 그런 일을 믿습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그림자나 메아리에는 변제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안에서의 소리 때문에 바깥의 메아리가 있는 것입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수보리여, 인연으로 생긴 소리가 있기 때문에 그 메아리가 있는 것인데 그 메아리에는 어떤 성품과 모양이 있는 것입니까? 그 메아리와 소리에는 성품이나 모양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만일 인연으로 생긴다면 그것은 생겨남이 없다[無生]는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모든 법은 인연으로 생깁니다.”
무외덕 여인이 말하였다.
“모든 법은 체성(體性)이 생기지 않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만일 모든 법의 체성이 그와 같이
끝내 없다면 어떻게 여래께서는 ‘항하의 모래만큼의 모든 부처님께서 장차 정각(正覺)을 이루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법계(法界)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생길 수 없습니다.”
무외덕 여인이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여래께서는 법계의 성품과 모양과 같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온갖 모든 법계는 보지 못합니다.”
무외덕 여인이 말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무루(無漏)를 증득한다’ 하면서 ‘항하 모래 만큼의 많은 모든 부처님께서 장차 정각을 이루신다’ 하는데 이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왜냐 하면 법계는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온갖 설명이나 설명이 아닌 것은 마침내는 청정하기 때문이니, 저 일이 아닌 것은 말로는 설명할 수도 없으며 실제(實際)를 떠나 있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당신은 심히 기특하십니다. 집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묘하게 설법을 잘하며 또 이렇게 그지없는 변재가 있으니 말입니다.”
무외덕 여인이 말하였다.
“수보리여, 보살은 취하지 않을 것을 취하거나 듣지 않을 것을 듣거나 함이 없는지라, 집에 있거나[在家] 집을 떠나거나[出家] 변재가 있습니다. 왜냐 하면 마음이 청정한 까닭에 지혜가 드러나게 되고 지혜가 드러나는 까닭에 변재가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존자 수보리에게 이어서 말하였다.
“이제 보살의 행을 잘 말해야겠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당신이 말씀하시면 나는 듣겠습니다.”
무외덕 여인이 말하였다.
“수보리여, 보살은 여덟 가지 법 행을 성취하기 때문에 ‘집에 있으니’ ‘집을 떠나느니’ 하는 말은 할 수가 없습니다. 수보리여, 어떤 것이 여덟 가지 법이냐 하면, 첫째는 보살은 몸의 청정함을 얻고 반드시 보리를 믿습니다. 둘째는 대자대비를 성취하면서 중생을 버리지 않습니다. 셋째는 대자대비를 성취하기 때문에 세간의 온갖 일에 선교(善巧)합니다. 넷째는 몸과 목숨을 버릴 수 있고 그리고 방편 선교를 성취합니다. 다섯째는 교묘하게 한량없는 원을 세웁니다. 여섯째는
반야바라밀 행을 성취하고 온갖 소견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일곱째는 큰 용맹스런 정진을 일으켜 모든 착한 업을 닦으면서 만족해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덟째는 장애가 없는 지혜를 얻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보살은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기 때문에 집에 있으니 집을 떠나느니 말할 수 없으며 어느 위의(威儀)를 따르거나 보리 안에 머무르면서 장애가 없습니다.”
그때 존자 라후라가 무외덕 여인에게 말하였다.
“이런 말이야말로 청정하지 못한 언설(言說)입니다. 당신은 보배 신을 신고 또 높은 평상에 앉아 있으면서 이렇게 모든 성문들과 함께 논의(論議)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당신은 어찌 ‘청정하지 않은 사람과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설법하지 말라’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까?”
그때 무외덕 여인이 곧 존자 라후라에게 말하였다.
“혹시 청정하다 청정하지 않다 함을 사실대로 아십니까?
존자 라후라여, 이것은 세간에서의 청정한 것을 말씀하십니까?”
라후라가 말하였다.
“청정하다거나 청정하지 않음은 없습니다.
여래께서 제정한 계율을 따르면서 받아 행하다가 그 계율을 범하면 청정하다거나 청정하지 않은 것이 되거니와 만일 또 어떤 사람이 그 계율을 범하지 않으면 청정하다거나 청정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무외덕 여인이 말하였다.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만일 설법이나 제정된 계율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청정하지 않음을 말한다 하는데 라후라여, 그는 무루의 법을 증득했기 때문에 그는 곧 범한 것이 아니며, 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한 청정함과 청정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성문은 이미 모든 설법을 다 들었고 모든 제정된 계율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여래는 모든 성문으로서 배우는 이를 위하여 삼계(三界)에 오셔서 그들을 위하여 짐짓 말씀하신 지라 그 성문들은 벌써 삼계를 지나갔습니다. 이런 이치 때문에 지나갔다 지나가지 않았다 함을 말하는데 모든 경계도
그와 같습니다. 그는 계율을 깨달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청정하다 청정하지 않다 함을 말하나 허공이란 오직 언설이 있을 뿐이요 지혜의 힘만으로 보는 것이니, 이 때문에 청정하다거나 청정하지 않음을 말할 수 있습니다.”
라후라가 말하였다.
“청정함과 청정하지 않음에는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무외덕 여인이 말하였다.
“비유하면 마치 순금에서 모든 때[垢]를 다 빼버리고 꾸미개를 만들기도 하고 만들지 않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빛깔에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라후라가 말하였다.
“차별이 없습니다.”
무외덕 여인이 말하였다.
“청정하다 함과 청정하지 않다 함은 오직 이름으로만 차별이 있을 뿐 다른 차별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법의 성품은 온갖 때[垢]를 여의어 물듦과 집착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이어서 존자 라후라에게 말하였다.
“높고 넓은 평상에 앉아서는 설법하지 않아야 합니다. 온갖 보살은 풀로 만든 깔개에 앉았으나 높은 평상에 앉은 것보다 더 뛰어나고 성문이 범천(梵天)에 있는 것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라후라가 말하였다.
“무슨 이치 때문입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라후라여, 혹시 보살이 어떤 자리에 앉아서 보리를 얻는가를 보셨습니까?”
라후라가 말하였다.
“풀로 만든 자리에 앉아서입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보살이 풀로 만든 자리에 앉아 있으면 온 삼천대천세계의 제석․범왕과 호세 사천왕(護世四天王) 등과 그 밖의 하늘들이며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 등이 모두 와서 예배하고 합장하고 보살의 발에 예배하게 됩니다.”
라후라가 말하였다.
“그러합니다, 그러합니다.”
이때 무외덕 여인이 라후라에게 말하였다.
“이와 같은 법을 성취했기 때문에 보살이 풀로 만든 자리에 앉아 있어도 높고 넓은 큰 평상에 앉아 있는 것보다 뛰어나고 성문이 범천에 있는 것보다 더 뛰어납니까?”
그때 아사세왕이 딸 무외덕에게 말하였다.
“너는 그 분이 석가 여래의 아드님이요, 계율을 배우는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임을 모르느냐.”
딸 무외덕이 부왕에게 말하였다.
“그만 두십시오. 대왕이시여,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라후라가 여래의 아드님’이라 하시는데 대왕이시여, 혹시 사자가 야간(野干)을 낳았다는 일을 보셨거나 들으셨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보지 못했느니라.”
딸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혹시 전륜성왕이 그 밖의 작은 나라의 왕에게 예배하거나 공경하는 일을 보셨거나 들으셨습니까?”
대답하였다.
“보지 못했느니라.”
딸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아서 여래는 사자인 왕이요, 큰 법륜[法輪]을 굴리시면서 성문에게 에워싸여 계시는 분입니다.
대왕이시여, 만일 바른 법에 의거하여 말씀하자면 어느 분이 여래의 참된 아들이겠습니까? 곧 ‘모든 보살’이 아들이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대왕이시여, ‘여래에게 아드님이 있다. 없다’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만일 여래에게 참된 아드님이 있다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이가 바로 여래의 아드님이라 하셔야 합니다.”
이 법문을 말할 때에 아사세왕 궁전안에 있는 만 명의 여인들이 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2만이나 되는 천자(天子)들이 그 법에 만족하면서 이 여인의 사자후를 들은 뒤에 보리 마음을 내었다.
왕은 다시 말하였다.
“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아들은 여러 가지 번뇌를 끊고 성문의 계율을 배우거늘 어떻게 참된 아들이 아니라 하겠느냐.”
그때 모든 천자들이 꽃을 부처님과 왕사성에 두루 뿌리니 이는 무외덕 여인에게 공양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무외덕 여인은 그 평상을 내려왔고 그런 뒤에야 모든 큰 성문들에게 예배하고 공경하면서 갖가지의 미묘한 공양을 베풀었으며 먹어보기도 하고 맛보기도 하면서 법답게 공양하였다.
그 모든 성문들이 공양을 다 마치자 말하였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존자이신 큰 성문들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른 아침에 여래 곁을 떠나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마땅히 법을 들으신 연후에 걸식을 하셔야 합니다. 존자들께서는 어서 들어가십시오. 저도 바로 뒤를 따라 그 곳으로 가겠습니다.”
무외덕 여인은 이른 아침에
아사세왕과 그의 어머니와 왕사성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앞뒤로 둘러싸인 부처님께 가서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으로 가서 앉았으며 그 모든 성문들도 역시 부처님께로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한 뒤에 물러나 한쪽으로 가서 앉았다.
그때 존자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무외덕 여인은 이와 같이 특출하였으며 큰복과 이익을 얻었나이다.”
부처님께서 존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무외덕 여인은 이미 과거 90억 부처님의 처소에서 보리 마음을 내었고 그 부처님들께 모든 선근을 심었으니, 위없는 부처님의 보리를 구하기 위해서였느니라.”
사리불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여인은 여자의 몸을 바꾸지 않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그 여인이 어찌 여인으로 보이느냐. 너는 이제 그렇게 보지 않아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것은 그 보살이 세운 원력(願力) 때문에 여인의 몸을 나타내 보인 것이며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였느니라.”
이때 무외덕 여인은 이런 서원을 세웠다.
“만일 온갖 법이 남자도 아니고 여인도 아니라면 저로 하여금 지금 장부의 몸을 나타내어서 온갖 대중들이 모두 다 보게 하여지리다.”
이 말을 마치자마자 곧 여인의 몸이 없어지고 장부의 몸을 나타내면서 7 다라수(多羅樹) 높이의 허공으로 올라가 서 있으면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때 세존께서 곧 존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 사리불아, 저 무외덕 보살이 허공에 서 있으면서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보았느냐?”
사리불이 말하였다.
“보았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이 무외덕 보살은 다시 7천 아승기겁을 지나서 정각(正覺)을 이루게 되리니, 명호는 이구(離垢) 여래․응공․정변지이시니라. 그 부처님 세계의 이름은 광명(光明)이요, 부처님의 수명은 백
겁이며 정법(正法)은 십 겁 동안이요 순전히 보살승(菩薩僧)만으로 삼만세 동안 물러나지 않는 지위[不退轉位]의 보살일 것이니라. 그 부처님 세계는 깨끗한 유리(琉璃)로 된 땅이요 여덟 갈래의 길로 장엄되어 연꽃으로 덮일 것이며 모든 악도(惡道)의 이름조차도 없고 하늘과 사람으로 가득 찰 것이니라.
사리불아, 마치 도솔천(兜率天)에서 미묘한 즐거움과 수승한 법의 맛을 누리는 것처럼 그 모든 하늘과 사람들도 그러한 즐거움을 누릴 것이니라.”
그때 무외덕 보살의 어머니 이름은 월광(月光)인데 아사세왕과 함께 있다가 열 손가락을 모아서 합장하고 부처님께로 나아가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큰 이익을 얻었사옵니다. 저는 아홉 달 동안 이 아들을 임신하고 있었나이다. 그런데 이 선남자가 지금 이렇게 큰 사자후를 하고 있나이다. 저는 이제 이 선근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겠사오니, 이후에는 저 이구광(離垢光) 세계에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깨달음을 이루게 하소서.”
그러자 부처님께서 존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너는 지금 보았느냐?”
대답하였다.
“예, 보았나이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월광 여인은 여기서 몸을 버린 뒤에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나면 이름을 광명증상(光明增上) 천자라 할 것이며 미륵 보살이 보리를 증득할 때 그는 저 견왕(見王)의 뛰어난 아들이 되어 그 곳에서 미륵부처님께 공양한 뒤에 곧 출가할 것이니라. 저 견왕의 아들은 미륵부처님이 말씀한 법을 처음과 중간과 나중에 설한 모두를 다 잘 기억하여 지닐 것이요, 차례로 현겁(賢劫)의 모든 부처님을 모두 뵈오면서 모두 공양할 것이며 이렇게 점차로 부처님께 공양하여 마치고 그런 뒤에는 저 이구 여래가 보리를 증득할 때에 대왕(大王)이 되어서 7보(寶)가 구족할 것이니, 이름은 지지(持地)라 할 것이니라. 저 견왕의 아들은 이렇게 모든 여래께 공양하고 나서 역시 그제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될 것이요, 명호는 변광(遍光) 여래․응공․정변지이시며 부처님의 세계를 구족하게 성취할 것이니,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그때 월광부인은 기뻐 뛰면서 백천 냥(百千兩)의 값어치가 되는 묘한 보배 영락을 부처님께 공양하고 대왕에게 말한 뒤에 5백의 바른 계율을 받고 범행을 갖추어 닦았다.
그때 무외덕 보살이 여래 앞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 서원 하는 인연의 힘으로 제가 미래 세상에 보리를 증득할 적에 모든 보살들도 역시 법복(法服)을 입고 모두 화생(化生)하게 하옵시며 이 서원하는 인연으로 원하옵건대 저로 하여금 여덟 살[八臘] 가량의 나이 어린 비구가 되게 하소서.”
무외덕 보살이 그런 몸이 되기를 서원 하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른 법복을 입고 곧 비구가 되면서 위의(威儀)가 두루 갖추어졌다.
그때 무외덕 보살이 그의 부왕 아사세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모든 법은 다 이와 같습니다.”
그때 홀연히 화생(化生)하는 모양을 나타내어 모든 분별로 일으켰던 모양과 모든 뒤바뀜이 없이 여인의 몸을 나타내면서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보셨습니까?”
대왕이 말하였다.
“보았느니라. 그러나 나는 빛깔을 지닌 몸의 모양을 보지 못했느니라. 나는 방금 나타낸 비구의 몸을 보고 나서 다시 여인의 몸을 보았느니라.”
부처님께서 왕에게 물었다.
“어느 것이 진짜입니까? 대왕이시여, 이와 같이 온갖 법을 배우고 머무르면서 바르게 보아야 합니다. 중생은 번뇌에 타고 있기 때문에 법의 힘을 통달하지 못하고 의심하지 않을 곳에서 의심하며 뉘우치고 있으니, 마땅히 자주자주 여래와 문수사리 동자 보살을 친근해야 합니다. 그 보살의 위덕과 힘
때문에 대왕으로 하여금 허물에 대한 참회를 받게 할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무외덕보살수기법문(無畏德菩薩授記法門)을 받아 지니어 읽고 외면서 잊지 말도록 하라.
아난아,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들이 7보를 두루 갖추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모든 부처님․여래께 보시하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이 이 무외덕보살수기법문의 한 구절이나 한 게송이라도 듣고 나서 받아 지니게 되면 이 사람이 얻을 복이 지금까지의 복보다 훨씬 뛰어나거든 하물며 온전히 읽고 외며 널리 사람들에게 해설하면서 법답게 수행함이겠느냐.”
여래께서 이 무외덕보살수기법문을 말씀하여 마치시니, 무외덕의 어머니 월광 부인과 모든 하늘․용․아수라 등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가 크게 기뻐하면서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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