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6권
대보적경 제6권
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송성수 번역
2. 무변장엄회 ③
2) 출리다라니품(出離陀羅尼品)
그때에 무변장엄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모든 법 벗어나는[出離諸法] 다라니문’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변장엄아, 그것은 모든 문자에서 벗어난 법인[法印]으로서 온갖 법이 모두 그 가운데 들어가느니라. 어떤 것을 ‘들어간다’고 이름하는가? 평등한 까닭에 온갖 법이 다 평등한 데 들어가되, 또한 법이 평등에 들어감을 보지 못하며 깨달아 알지 못하며 얻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온갖 법 자성이 진실하게 분별되지 않을 때에 온갖 법이 다 그 가운데 들어가서, 지음 없는 것[無作]과 지음 있는 것[有作]을 여의었으므로 문자와 말로 모든 법을 연설하여도 이 두 가지가 실답지 못한 까닭이며,
자성이 평등한 까닭으로 온갖 문자와 말이 다 평등하니라. 모든 법 가운데 있는 바 언설은 다 실답지 않음이니, 이것이 모든 법의 진실한 구의(句義)로서 있는 바 문자와 말, 이 둘이 다 없느니라. 있는 것이 없으므로 진실을 열어 보여 연설함이 없나니, 말한 바 문자와 말에 진실함 없는 것이 곧 모든 법의 차별 없는 구이며, 보탤 것[增勝] 없는 구이며, 시설할 것 없는 구이니라. 이 매우 깊은 법은 선설할 수 없느니라.
온갖 법은 다 진실이 아니며 진실 아님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온갖 법의 본성은 문자 언설로써 선설하여 보고 얻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온갖 법이 다 본성이 없나니
이와 같이 온갖 법이 지음[作]도 아니요 지음 아님도 아니며, 같음[等]도 아니요 같음 아님도 아니며, 적정(寂靜)도 아니요 적정 아님도 아니니라. 그러나 모든 법이 또한 적정과 적정 아님에 머무르나니 머무른다는 것도 또한 머무를 것이 없으며, 또한 달라짐[變異]이 아니며, 달라짐 아닌 법에 머무름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법이 본래 무엇에 머무름이 없으므로 산수(算數)에 들지 않느니라. 산수로 말미암아 언교(言敎)를 세우지 않지만 능히 법으로 하여금 산수에 들어가게 하며, 모든 문자․언어․연설을 다 얻을 수 없으며, 어떤 곳이나 어디에나 머무르지 않나니, 이와 같은 문자․언어는 좇아 온 데가 없으며, 가서 이를 데가 없으며, 어떤 중간이나 한쪽 가에 머무르지 않나니
모든 문자와 언어가 하는 일[業]이란 하는 일이 아닌 까닭이며, 공용(功用)이 아닌 까닭이니라. 온갖 문자․언어의 자성이 공(空)한 까닭에 문자․언어가 또한 다 공한 것이며, 문자․언어가 타성(他性)이 공한 까닭에 자성이 또한 공하며, 자성(自性)․타성이 공한 까닭에 그것이 곧 적정하며, 만일 적정할진대 그것이 곧 적멸(寂滅)하며, 만일 적멸할진대 온갖 법이 곧 적멸문(寂滅門)이니라.
이러한 문으로 말미암아 법의 이름을 말하거나 문자를 말하거나 어업을 말하여도 저 모든 문을 얻지 못하나니 문이 청정한 까닭이며, 있음도 없는 까닭으로 이러한 문으로 말미암아 모든 법을 연설하지만 이 문이 마침내 청정하며, 능히 평등하게 온갖 법에 들어가서 이와 같이 떠나 버리나니 어떻게 떠나 버리는가? 탐심의 본성을 말함이니라. 탐심의 본성 그것이 곧 청정하나니 만일 청정할진대 그것이 곧 최상[究竟]이니라. 만일 최상일진대 어찌하여 탐이 있으며 어찌하여 말이 있겠는가?
무변장엄아, 이와 같이 대강 분별이 없고
희론이 없는 법문 청정 다라니문을 말하였나니, 이 문에 들어옴으로써 능히 무명 흑암의 무거운 장애를 깨뜨리고, 능히 생각하는 대로 법의 종성을 밝혀 온갖 법이 밝고 깨끗한 법안(法眼) 다라니문에 들어가며, 능히 문자 차별로 연설하는 법문을 증득하느니라. 이 문으로 말미암아 온갖 지혜의 지혜에 들어가며, 여러 부처님을 가까이하여 모든 법 가운데 씩씩한 장부가 되며, 능히 외도를 쳐부수고 마군을 항복 받아서 중생으로 하여금 착한 뿌리[善根]를 길러내어 여래 비밀법에 들어가게 하며, 따라서 법문 다라니문을 얻게 되느니라. 이 문으로 말미암아 10력(力) 가운데 큰 광명을 얻어서 재빨리 여래의 힘을 성취하느니라.
무변장엄아, 모든 여래가 10력으로 힘을 삼으며, 최상의 힘․일체 세간을 초월하는 힘을 삼아서 능히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여래의 10력이라 하는가? 무변장엄아, 여래는 최상의 온갖 지혜의 지혜로써 저 옳고 옳지 않은 이치[處非處]에 옳고 옳지 않은 것을 진실히 깨달아 아느니라. 이것이 여래 제일의 힘이니라. 이 힘으로 말미암아 큰 선인의 지위[大仙位]에 처하여 모든 중생을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하며 또한 최상의 법바퀴를 굴리나니, 오직 여래를 제하고는 천상․인간에서 능히 그와 같이 굴릴 자가 없느니라.
다시 여래가 분별없는 온갖 지혜의 지혜로써 사실대로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업과, 업을 거두어 잡아 지니는 원인의 선과 불선의 한량없는 행상(行相)을 깨달아 알되 집착함이 없고 걸림이 없나니 이것이 여래 제2의 힘이니라.
다시 여래가 분별없는 온갖 지혜의 지혜로써 집착함이 없고 걸림이 없이 능히
일체 중생의 한량없는 모든 행을 깨달아 아나니 이것이 여래 제3의 힘이니라.
다시 여래가 최상의 온갖 지혜의 지혜로써 사실과 같이 갖가지의 훌륭한 견해와 한량없는 훌륭한 견해와 온갖 분별과 망상 분별을 사무쳐 아느니라. 이것이 여래 제4의 힘이니라.
다시 여래는 능히 사실과 같이 한량없는 경계[界]․갖가지의 경계[種種界]와 한량없는 인연․갖가지 인연의 중생의 세간을 아나니 이것이 여래 제5의 힘이니라.
다시 여래는 능히 사실과 같이 어떤 인(因)․어떤 연(緣)을 알고 중생이 나아가는 길을 알고 보나니 이것이 여래 제6의 힘이니라.
다시 여래는 하늘 눈․걸림 없는 지견과 최상의 온갖 지혜의 지혜로써 진실히 모든 중생의 나고 죽는 것을 사무쳐 아느니라. 이것이 여래 제7의 힘이니라.
다시 여래는 능히 진실한 정려(靜慮)․해탈․등지(等持)․등지(等至)와 생각을 여읜 자재한 지혜[能出入智]를 아나니 이것이 여래 제8의 힘이니라.
다시 여래는 지난 세상 일[宿住]을 기억하여 증명하는 지혜로 진실하게 아나니 이것이 여래 제9의 힘이니라.
다시 여래는 번뇌가 다한 지혜[漏盡智]와 그것을 증명하는 지혜로써 사실대로 사무쳐 아나니 이것이 여래 제10의 힘이니라.
무변장엄아, 이와 같이 한량없고 위없는 온갖 지혜의 힘을 다 성취함으로써 모든 보살과 중생을 위하여 모든 부처님 지혜를 거두어 잡아 가지게 하려고, 일체 법지(法智)의 청정을 증득하게 하려고, 끝없는 법장(法藏)을 열어 보여 연설하느니라. ”
부처님께서 다시 무변장엄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너는 이제 여래가 말한 바가 이렇게 깊고
이렇게 알기 어려운 줄을 관할지니라. 온갖 지혜의 지혜 힘이 청정한 까닭에 설한 법은 여래와 여래의 힘이라고 이름하느니라. 그러나 그 법은 또한 볼 수 없으며 말할 수도 없느니라.
무변장엄아, 말한 바 힘이란 여래의 꺾어 누를 수 없는 최상의 법문이라 이 법에 머물러 이 법의 이치를 열어 보여 연설하느니라. 이 이치를 내세우는 힘으로 말미암아 능히 온갖 법의 내세울 수 없는 성질을 연설함으로써 힘을 삼나니 이와 같은 모든 힘이 생기성(生起性)이 없으며, 자성이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느니라. 이렇게 여래의 10력이 원만하여 능히 한량없이 깊은 법을 열어 보이느니라.
무변장엄아,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법문이라, 이 문에 머물고는 여래의 10력을 연설하며, 또한 능히 이 힘의 청정한 법문․두루 청정한 법문을 설하느니라.
무변장엄아, 내가 다시 모든 보살들이 능히 법문에 청정을 얻게 하기 위하여 다라니를 설하리니 너는 잘 들어 지닐지니라.”
다냐타바라 모절녜 니모절녜모절녜 비바라 민절니 아절례 아비
怛姪他鉢囉二合牟折寧一儞牟折寧二牟折寧三毘鉢囉二合悶折儞四阿折黎五阿毘
야 타니 바라 파노아뎨 뎨세 마하뎨세 아바라 뎨야 마라아나
耶二合咤儞六鉢囉二合婆怒揭帝七帝誓八摩訶帝誓九阿鉢囉二合底耶二合末囉阿那引
마라니 아 마라나비수다니 니다나바라 베샤니 도라아니가사
靺囉尼十一阿引靺囉拏毘戌達儞十二儞駄那鉢囉二合吠設儞十三突囉阿儞乞屣
바니 마우 마우사바례 사바라미수단니 모다라 모다라미수
鉢儞十四靺虞十五靺虞薩嚩黎十六薩嚩囉尾戌憚儞十七母達囉二合十八母達囉尾戌
단니 사바례바례 삼만다바례바례 아가라 누마대 가타
憚儞十九
薩鉢唎縛黎二十三漫多鉢黎嚩黎二十一阿揭囉引二合弩麽底二十二遏他二合
사단니 싱가라 니마체단니 수례 수라매리예 아 가라
娑憚儞二十三僧羯囉二合尼麽掣憚儞二十四戌黎二十五戌囉寐唎曳二合二十六阿引褐囉
니 오바나마뎨 니나례 샤니 삼만다바례보리야 아뎨
二合尼二十七烏波那末底二十八儞那黎二合設儞二十九三曼多波黎普里也二合揭帝三十
다라 누아뎨 아니미샤니 아산니미샤니 다 라니아뎨 니다
駄羅引弩揭帝三十一阿儞迷設儞三十二阿傘儞迷設儞三十三陀引囉尼揭帝三十四儞駄
나바리수단니 아누다라비바지니 파치새 파다라 바뎨
那鉢唎戌憚儞三十五阿弩達囉毘婆枲儞三十六跋▼(口+致)曬二合三十七跋達囉二合筏帝三十八
모이 모기바뎨 산다라니 오바다 리니 아난다바라 바베
莫异三十九莫企筏底四十珊駄囉尼四十一烏筏駄引唎尼四十二阿難多鉢囉二合皤吠四十
바라 보 다바리바례 샤니 바리 시샤니 마하바가 세
三鉢囉二合步引多鉢唎嚩黎四十四設儞四十五鉢唎二合些設儞四十六摩訶嚩迦引世四十七
아가 샤사모사라니 미뎨미라가라니 살바야바다 비슈다니 녈반
阿迦引捨娑牟薩囉尼四十八弭底彌囉迦囉尼四十九薩婆若鉢他上毘輸達儞五十涅槃
나바다 산나리샤니 사바하
那鉢他上珊那唎設儞五十一莎 訶五十二
“무변장엄아, 이것이 다라니인(陀羅尼印) 법교(法敎) 법문이라, 온갖 법이 다 그 가운데 들어가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 가운데 말과 같이 수행하면 훌륭한 변재와 차별 지혜를 갖추며 능히 가장 훌륭한 벗어남[最勝出離]의 다리니구를 깨달아 알게 되리라.”
사 아라아 바연다 소미 로라다나바아라산니절야 아비다니 아삼비다
娑上揭囉阿上鉢演多一蘇迷上
嚧囉怛那婆揭囉珊儞折耶二阿毘톄儞三阿三毘怛
니 아비마례 바아라 산니 나베샤니 아가추 비니 아싱가추 비니
儞四阿卑靺黎五拔折囉二合珊儞六涅陛設儞七阿乞芻二合毘儞八阿僧乞芻二合毘儞
아가사 야 아피야이 가사 야아바연뎨 아가사 나아사연
九阿乞沙二合耶十阿避夜已二合十一乞沙二合耶阿鉢演帝十二阿乞師二合去那乞沙演
다사냐리 세 아바리가사 예 아비가소 피니 아비아례 아
多薩姪里二合世平十三阿鉢唎乞沙二合曳十四阿毘乞疏二合避儞十五阿毘揭黎十六阿
비아랴야나아라니 사바하
毘揭羅若那揭囉尼十七莎 訶十八
“무변장엄아, 이 훌륭한 벗어남의 다라니구를 만일 보살이 이 법에서 부지런히 수행하면 곧 능히 지혜를 길러 내기 바다 같으며, 능히 큰 자비심으로 중생을 위안하며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광대한 법약(法藥)을 맡겨 주며 너희들의 무명의 어둠을 깨뜨리고 너희들의 처음도 없고 끝도 없고 나고 죽는 번뇌와 근심 걱정의 독한 화살을 빼어 버리며, 또한 너희들을 애욕의 쇠사슬에서 풀어내어 모든 나고 죽음의 폭포를 뛰어 건너서 큰 법의 광명을 놓아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착한 뿌리를 길러 내게 하여 능히 최상의 제도를 얻게 하리라’라고 하리라.
이와 같은 선남자는 좋은 앞잡이가 되어 능히 온갖 지혜의 지혜에 들어가게 하며, 또한 어떤 중생이라도 이로 좇아 가장 높은 지혜에 물러서지 않게 하며, 능히 자비로 일체를 덮어 주며, 아직 이 법문을 받아 지니지 않은 중생도 법의(法義)와 서로 응하게 하며, 번뇌가 꺼지고 세속을 여의어 무생지문(無生智門)에 들어가 걸림 없는 말솜씨를 얻게 하느니라.
무변장엄아, 만일 보살이 설법하고자 할 때에 어떻게 이 다라니구에 생각을 모아 앞에 드러나서 법으로 하여금 끊이지 않게 하느냐? 말하자면 모든 보살이 사자좌에 앉아
걸림 없는 말솜씨로써 여래의 한량없는 공덕을 생각하고, 넓은 방편의 지혜로 말미암아 선교지(善巧地)로 극히 청정하게 하려는 까닭에, 모든 중생이 법 듣는 곳에 와서 모일 때에 대비심을 내며, 모든 중생에게 대자심을 일으켜 광대하고 결정한 이치로써 진실히 열어 보이되 늘거나 줄게 하지 않으며, 모든 중생의 뜻으로 즐겨하는 성품의 차별을 알아서 잘 분별하는 결정한 어업(語業)과 문구로써 널리 연설하느니라.
이런 말로 말미암아 능히 자기의 착한 뿌리를 더 길러 내며 청정한 법으로 중생을 거두어 잡아들이느니라.
여래가 능히 한량없는 비유로 이와 같은 법 무더기[法聚] 다라니문을 열어 보여 연설하나니, 너희들이 만일 능히 이렇게 위없는 바른 법을 선설하면 이것은 곧 부처의 할 일에 머물러서 속히 4무소외를 원만하게 하리라.
무변장엄아, 이와 같이 보살이 큰 방편의 청정한 지혜로 능히 신통업을 닦아 익히면 지닌 바 모든 법이 곧 능히 광대한 지혜의 무더기[智聚]를 거두어 지니느니라. 이 가운데 어떤 것이 신통업을 일으킴이냐? 무변장엄아, 만일 보살이 뜻대로 움직이는 신통[神足通] 가운데 머물러서 허공과 같이 의지할 데 없는 생각으로 능히 네 가지 원소[四大種]가 모인 것을 잘 분석하느니라.
여래는 걸림 없는 지견, 끝없는 지견을 성취하여 이 지견의 힘으로 모든 법에 방편의 지혜를 얻어서 능히 잘 결정하여 어떤 법도 알 것이 없으며, 얻을 것 없는 데 머무르며, 무엇으로도 견줄 수 없는[無等等] 자리에 머무르며 또한 함께 아란야(阿蘭若)에 머무르지 않고 집착 없는데 머무르며, 청정한 지혜에 머물러서 어떤 법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함이 없으며, 어둠을 멀리 여의어 장애됨이 없으며, 한량없고 끝없는 지견에 잘 머무느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평등한 지견[平等見]으로 온갖 법이 환술과 같고 꿈과 같은 줄을 깨달으며, 또한 능히 무명법의 망상[無明法想]을 열어 보이나니 그러므로 우리들이 ‘마땅히 부처님을 따라 배우리라’라고 할지니라.
여래의 지혜는 걸림이 없이 능히 중생들의 상근(上根)․중근(中根)․하근(下根)을 알아 모든 보살들이 평등에 머물러서 신통업을 일으키게 하나니, 그러므로 뜻대로 움직이는 신통이 앞에 나타나게 되며, 이 신통의 도움으로 계(界)․정(定)․혜(慧)와 해탈지견으로 깨끗이 법의 지혜를 베풀어 편안히 잘 머물게 하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능히 참다운 위신력을 얻어서 한량없는 차별 신통을 거두어 지니어 범천세계에 자재하며, 사자좌에 앉아서 큰 법고(法鼓)를 울려 모든 모임을 다 기쁘게 하며, 중생을 위하여 큰 이익을 짓느니라.
무변장엄아, 마치 큰 철륜위산왕(鐵輪圍山王)이 중생의 업력(業力)으로 이 세계를 둘러싸고 있지만 중생으로 하여금 지옥의 냄새를 맡거나 지옥의 소리를 듣거나 지옥을 보지 못하게 하나니, 이와 같이 보살은 이 법 가운데 잘 닦아 배우고는 중생들을 위하여 온갖 장애 되는 법은 제거하고 온갖 장애 없는 법을 맡겨 주느니라. 이와 같이 보살이 금강지(金剛智)로 선교방편을 거두어 주며, 이 교법의 깊은 이치를 깨달아 들어가며 얻을 것 없는데 머물러서 감로(甘露)의 법을 부어 주나니, 어떤 것을 감로의 법을 부어 준다 하는가? 말하자면 번뇌의 마군과 5온(蘊)의 마군과 하늘의 마군이 방해하지 못하며 비록 죽을 때에 죽음의 마[死魔]가 있더라도 또한 마음대로 죽음의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저 정사(正士)가 공한 성품[空性]과 모양 없고[無相]․소원 없는[無願] 데 머물러서 온갖 법에 분별함 없으며, 남도 아니요 없어짐도 아니며, 무너짐도 아니요 일어남도 아니며, 온 것도 아니요 간 것 도 아니요 머묾도 아니며, 물듦도 아니요 깨끗함도 아니며 또한
겁약(怯弱)함도 아니요 장애가 있음도 아니며, 얻을 것이 없어서 교만을 놓아 버리고 그 마음이 겸손하여 안으로 미혹을 여의고 밖의 것을 잘 사무쳐 알아서 보고 듣고 깨달아 앎에 능히 끌려 들어가지 아니하며, 모든 법이 다 평등한 줄을 깨달아 알아서 진실히 여래의 법에 들어가 허망한 것이 아니므로 변함이 없이 진여(眞如)에 머무르나니 이것이 곧 보살들의 들어갈 바 반야바라밀문이니라.
보살이 이 바라밀문에 머무르고는 곧 능히 가없는 지혜를 성취하며, 이 지혜의 힘으로 능히 부사의지(不思議智)와 모든 여래의 비밀한 언설에 들어가서 온갖 법을 능히 사무쳐 알며, 따라서 차별 없는 평등한 보리를 깨달으므로 차별 없는 부사의 법을 깨달음이 보리 부사의와 같으며, 차별 없는 분별 여읜 경계를 깨달음이 보리의 분별없는 경계와 같아서 차별 없는 것과 보리법의 얻을 것 없는 것을 깨달아 안 까닭에 그는 차별이란 생각을 내지 않으며, 보리의 평등하다는 생각을 내지 않고
차별 없는 것과 보리가 지은 것도 아니요 무너짐도 아니며, 모인 것도 아니요 흩어짐도 아니니, 이 이치 가운데 능히 보살업을 닦는 이는 이에 말한 적정 법문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또한 모든 업의 과보를 분별하지 않으면서 능히 업의 갚음의 평등함을 사무쳐 아느니라. 평등함으로써 업 갚음을 얻지 않으며 또한 분별하지 아니하고 집착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그는 번뇌와 업장의 가볍고 안온함을 얻어서 그 흑업(黑業)의 원인을 멀리 여의고 모든 법문에 횃불[照耀]을 얻고 이 다라니품에서 광명을 얻느니라.
그가 이러한 청정법문에 머물기 때문에 능히 시방세계에 노닐면서 맑은 행을 갖추어 집착함이 없으며, 세속 법에 물들지 않고
모든 세간 천상․인간 가운데 복밭으로써 친근 공양을 받을 만하니라.
무변장엄아, 내가 제8지에 머무르는 선남자를 공양한 공덕도 한량없다고 말하나니, 하물며 보살이 이러한 법에 수행하는 자이랴. 만일 보리와 중생과 중생의 법과 세간 법에 얻을 것이 없으며, 또한 분별과 희론을 여의면, 그 사람은 능히 이 법을 깨달아 알고 말과 같이 수행하며 능히 세간의 온갖 공양을 받을 것이니 마땅히 여래의 공양으로써 공양할지니라.
무변장엄아,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을 닦아 배우면 저 공양에 온갖 것을 갖추어 온갖 두려움을 여의고 능히 그 몸과 목숨을 놓으리라. 그는 모든 법에 거두어 잡아 가질 것이 없되 능히 광대한 법을 거두어 잡아 지니어 두려움 없는 자리에 앉아서 사자후를 하여 외도와 외도법을 항복 받고 파순(波旬)과 마군의 무리를 꺾어 없애며,
능히 중생의 온갖 장애를 없애고 법의 배[法船]로 모든 중생을 건네어 온갖 지혜의 길을 보여 주며, 능히 일체 중생들을 방편의 길[隨順道]에 편안히 머물게 하며, 그 모든 중생이 성제(聖諦)에 따라 서로 어기고 거스르지 않게 하며, 중생을 위하여 온갖 보리 부분법을 열어 보이며, 법시(法施)로 중생을 위안하며, 그들로 하여금 법의 희열[法喜]을 얻게 하느니라.
무변장엄아, 만일 이 다라니문을 능히 믿어 받으면 곧 보리의 수기(授記)를 받은 이와 다름이 없으리라. 그는 이미 법을 듣고 제 몸에 스스로 수기하기를 ‘여래 법왕이 이 법을 베풀어주시고 이 법장을 여의어 능히 이
다라니인을 안립(安立)하고 또한 능히 이 모든 법문을 내세우셔서 우리들을 거두어 잡아 주시니, 이것은 우리들의 아버지로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다’라고 하느니라.
무변장엄아, 만일 보살이 거룩한 의욕으로 능히 나의 처소에서 아버지의 생각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장차 여래의 수(數 )에 들어가 나와 다름없으리라.
무변장엄아, 이 다라니문 법품에 이것이 제2의 벗어나는 다라니인[出離陀羅尼印]으로 법장을 연설함이니라.”
3) 청정다라니품(淸淨陀羅尼品) ①
그때에 세존께서 4방을 관찰하시고 이러한 갖가지의 신통을 나타내어 신통력으로 이 모임의 보살들이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을 보게 하며,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법을 듣게 하셨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무변장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여래가 온갖 법에 지은 바가 없으며 헤아림[數]이 없으니 헤아림과 적정하다는 상을 여의어서 능히 이러한 자재 신통을 나타내신다’고 관찰할지니라. 여래의 두려움 없는 힘이 이러하니라.
무변장엄아, 여래의 성품은 같은 것도 아니요 다름도 아니며 하나와 다름 아님도 아니니, 아무 것도 없는 까닭이니라.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자성이 있는 것도 아니요 자성이 없는 것도 아니니라. 마땅히 이렇게 여래의 성품을 알면 내지 어떤 법도 얻을 것이 없느니라. 이렇게 보는 자는 또한 어떤 법도 볼 것이 없느니라. 만일 보지 못하면 있는 것이 없으며 또한 취할 것이 없느니라.
무변장엄아, 여래의 성품은 무엇이 진실하다, 무엇이 진실하지 않다 할 것이 없느니라. 만일 무엇이 진실하다, 무엇이 진실하지 않다 하면 이것은 곧 여래의 성품이 있다. 여래의 성품이 없다고 말하리라. 여래의 성품은 있는 것을 여의고 없는 것을 여의며 또한 일찍이 여읨도 아니니라.
무변장엄아, 온갖 법의 본성이 허공과 같나니
이러한 법문은 모든 여래가 세상에 나오시기 전에는 일찍이 말하지 않았느니라.
무변장엄아, 온갖 법의 본성이 허공과 같나니 이러한 법문은 모든 여래가 세상에 나오시기 전에는 일찍이 말하지 않았느니라.
무변장엄아,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 가운데 이렇게 아는 이는 능히 한량없는 변재를 얻어서 모든 법에 능히 등불이 되며, 부처의 두려움 없는 법[無畏]에 광명이 되리라.
무변장엄아, 두려움 없는 법이라고 함은 여래의 최상의 두려움 없는 힘을 얻어서 능히 어떤 법에도 거두어 잡아 들어가지 않는 까닭이며, 더 느는 것[增長]도 아니며 얻을 것이 아닌 까닭이며, 모두 얻을 것이 아닌 까닭이며, 어느 부분만 얻을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거나 않거나 법은 늘거나 줄지 않으며, 두루 늘고 줆도 아니요,
모든 법 본성[住性]이 항상 머무르는 법계(法界)의 본성이며 법계의 정성(定性)이니라. 무변장엄아, 온갖 법이 법의 본래의 정성이 머무르나니 이와 같이 유(有)․무(無)를 얻을 수 없느니라. 온갖 법이 다 망상의 분별이라 업보로써 성취됨도 아니며, 그러므로 능히 온갖 법 업보 없는 문에 들어가나니,
이러한 모든 법이 자성이 없는 까닭이며 진실이 아닌 까닭이며 모든 업이 그 과보에 생(生)․멸(滅)의 원인이 아니며 그 멸에 나아가는 도(道) 또한 인(因)이 아니니라. 여래가 다만 세속 법을 내세워서 인과 인 아닌 것이 있다고 말하나니 인이 자재한 까닭이며, 인이 있다고 할 것이 없는 까닭이니라. 이것이 여래의 두려움 없는 경지니라. 여래는 한량없는 변재를 갖추었으므로 능히 큰 두려움 없는 경지에 들어가느니라.
무변장엄아, 어떤 것이 두려움 없는 것이냐? 말하자면 모든 여래가 4무소외(無所畏)가 있으니 이 사무소외는 연각(緣覺)도 오히려 없거니 하물며 성문(聲聞)과 나머지 세간이랴. 어떤 것이 넷인가? 첫째는 소리쳐 말하되 ‘나는 여래, 바로 다 깨달은 자[應正等覺]이고 다 아는 자[一切知者]이며 다 보는 자[一切見者]’라고 하면, 혹 온갖 세간 천상․인간이
나에게 ‘능히 모든 법을 깨달아 알지 못한다’하리니, 이런 이치는 있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능히 최상의 두려움 없는 법을 얻어서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하되 ‘내가 능히 위없고 가장 높고 광대한 교법을 연설한다’ 하느니라.
둘째는 소리쳐 말하되 ‘나는 온갖 번뇌가 다한 자이다’라고 하면, 일체 세간 천상․인간이 나에게 ‘모든 번뇌가 다하지 않았다’ 하리니, 이런 이치는 있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능히 안락한 데 머물러서 ‘내가 능히 한량없는 겁(劫)에 쌓아 둔 위없는 법장(法藏)을 열어 보인다’ 하느니라.
셋째는 ‘내가 말한 생사를 벗어나 깨달음을 얻는 법에 그대로 닦아 익히면 괴로움을 멸하여 다하리라’고 하면, 혹 세간 천상․인간이 나에게 대하여 ‘괴로움이 다하는 도에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리니, 그런 이치가 있을 수 없느니라. 나는 이런 모양을 보지 못하노라. 내가 이런 모양을 보지 못하였을 때에 안락한 머무름을 얻어서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이 법의 본성을 나타내 보여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하느니라.
넷째는 ‘내가 모든 장애법(障碍法)을 말할 때 이에 어떤 천상․인간․마․범(梵)․사문․바라문들이 나에게 그것을 닦아 행하더라도 장애될 것 없다’고 하면, 그런 이치는 있을 수 없느니라.
내가 이런 모습을 보지 못할 때에 최상의 안락한 머무름[增上安樂住]을 얻어서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하되 ‘내가 능히 최상의 법바퀴를 굴리니 일체 외도와 세간 천상․인간이 능히 굴릴 바가 아니다’라고 하느니라.
무변장엄아, 이것이 여래의 4무소외(無所畏)니라, 이 가운데서 보살이 부지런히 닦아 익히면 속히 두려움 없는 경지를 얻어서 인간․천상 가운데 가장 뛰어남을 얻느니라.
무변장엄아, 보살이 허공 같은 모습을 잘 닦아 익히므로 능히 부사의하고 모두 청정한 법문을 내나니 이 문으로 말미암아 온갖 법에 근본을 사무쳐 알아서
온갖 법과 허공의 모습이 둘이 없고 다름이 없음을 보느니라. 온갖 법도 분별하지 않으며 희론하지 않느니라. 의(義) 선교를 얻어서 어떤 작은 법도 좇아온 데가 없으며 또한 가져감도 아니며 쌓아 모음이 아니니라. 이에 능히 온갖 법을 쌓아 모음이 없으며, 온 것도 아니며, 간 것도 아님을 관찰하여 온갖 법에 행할 바 없음을 행하며, 큰 법의 횃불을 밝혀 모든 중생을 위하여 법의 등불이 되느니라.
무변장엄아, 네가 이 법을 관하라. 능히 보살에게 얼마만한 이익이 되며 얼마만한 사업이 되겠는가? 말하자면 부처의 10력과 4무소외라는 것도 어떤 법도 얻을 것이 없으며 얻지 못함도 없느니라.
무변장엄아, 온갖 법이 허공의 모습과 같건마는 의리(義利)를 얻기 위하여 업의 의지할 바 일과 그 업의 원인을 열어 보여 연설하나니 그 가운데 또한 의리의 얻을 것이 없느니라.
무변장엄아, 이 깊은 법은 일체 세간의 믿기 어려운 바이니라. 이렇게 세간은 다 멸해 없어지는 허망한 건립이라, 이 까닭에 이 법 비나야(毘奈耶)가 능히 믿어 지니지 않으며 또한 세간으로 능히 세간을 아는 것이 아니니, 다 법이 아니건만 집착하므로 세간과 안주처가 있다고 말하느니라. 가령 법이란 생각에 집착할지라도 또한 어떤 법을 집착할 것이 없느니라. 법 아닌 데 집착을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여래와 여래의 말한 법에 함께 쟁론을 일으키며, 또 능히 온갖 법의 본성을 알지 못하므로 다시 무생법(無生法)과 서로 어그러지나니 그러므로 이 깊은 법교를 능히 알아 깨닫지 못하느니라.
무변장엄아, 나는 일체 천상․인간이 믿을 만한 진실하게 말하는 자․쟁론이 없는 자이니, 여래 세존은 쟁론을 쉰 까닭이며
온(蘊)을 놓아 여읜 까닭에 이러한 법교를 열어 보여 연설하되 그 가운데 온이 없으며 또한 온이 다함도 없느니라.
무변장엄아, 일체의 유(有)라는 것은 말하자면 일체의 선법․불선법인데 실은 그 가운데 도무지 선법․불선법이 없나니 선법․불선법이 다 적정하여 각기 서로 알지 못하여, 서로 가려 덮는 것이 아니지마는 선․불선에 집착하는 인연으로 말미암아 있으니, 그러므로 여래가 온갖 법이 다 무기(無記)라고 말하느니라. 그 진실한 선법․불선법을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니 만일 얻을 것이 있다면 곧 기억할 것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그 가운데 인(因)이 없나니 인을 볼 것도 없기 때문이니라.
무변장엄아, 네가 이제 온갖 법이 다 무기인 줄을 관할지어다. 만일 보살이 이렇게 깨달으면 온갖 법 무기에 언설(言說)도 또한 얻지 못하리니, 이러한 법문은 모든 보살이 불선법을 사실대로 본 까닭으로 모두 놓아 버림[捨]의 원만을 얻어 법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무기문으로 모든 법에 증입(證入)하느니라.
이 무기문이 곧 문이 아니니 만일 문이 아닐진대 얻을 수 없으며, 만일 그것을 얻지 못할진대 그것이 곧 청정하나니, 이것이 모든 보살이 들어갈 다라니청정문이니라. 이 문으로 말미암아 온갖 법 광명의 횃불을 얻어서 모든 법 가둔데 우암(愚闇)․미혹․망설임 없음과 능히 걸림 없는 법과 지혜의 눈이 청정함을 얻느니라.
무변장엄아, 이 법 가운데 마땅히 희망의 즐거움[願樂]을 낼지니라. 어떤 것을 희망의 즐거움이라 하느냐? 말하자면 모든 법에 취할 바가 없으므로 집착할 것이 없으며, 마침내 여의어 버리고 거두어 감춤[攝藏]을 뛰어넘으며, 희구가 없으므로 선법․불선법․온갖 유위법 및 세간법에 대립을 보지 않는 것이니라. 이것이 위없는 불방일(不放逸)의 경지며
반연을 여읜 경지니라.
모든 법 가운데 머무를 바가 없으며 오는 것도 아니요 가는 것도 아니며 내세울 것이 없나니, 이것을 곧 지혜 눈[慧眼] 청정이라 이름하나니 끝내 멀리 여의어 취할 것이 없는 까닭이며, 잘 관찰하여 일체를 놓아 버린 본연 자성을 지혜 눈이라 이름하느니라. 지혜 눈이라 함은 이른바 번뇌가 다 없어지고 세간을 여읜 지혜의 성품[智性]이다.
이러한 지혜의 성품은 난 것도 없고 조작도 없으며, 본성이 적정하되 또한 적정과 서로 응함도 아니니 서로 응함이 끊어진 까닭이며, 또한 끊임도 아니요 끊임이 없는 것도 아니며, 이지러짐도 없고 준 것도 없나니 이것을 깨끗한 지혜 눈이며 희론 없는 도[無戱論道]라 하느니라.
이 지혜 눈이 성취되므로 큰 자비로 중생을 거두어 잡아 그들을 발심시켜 중생에게 반연하는 다함없는 묘행[無盡妙行]에 머무르게 하며, 또한 능히 온갖 법이 나․인․중생․수자가 없는 이치를 깨달아 알게 하느니라. 그가 만일 큰 보리를 얻을 때에 결정코 능히 무상 법장을 열어 보여 연설하며 또한 능히 청정다라니문으로 모든 중생을 위하여 불종성(佛種性)과 교법을 계속하게 하기 위하여 마땅히 법인(法印)을 두느니라.
무변장엄아, 이 다라니의 청정한 법문은 모든 부처님이 항상 보호하시고 거두어 잡아주시고 연설하시는 것이며, 시방에 머무르는 3세 모든 부처님도 또한 모두 이러한 법문을 연설하시되 모든 보살을 위하여 3세의 평등한 법성을 열어 보이시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능히 3세의 모든 법에 있어서 이 법문을 깨쳐 들어가게 하나니 보살이 청정한 3세 총지혜(摠持慧)를 성취한 까닭이니라.
그 보살은 3세라는 생각이 없고 선․불선에 둘이 없는 줄을 깨달아 알고 능히 온갖 착한 뿌리를 길러내어
몸․말․뜻으로 하는 일이 다 청정하며, 두루 한량없는 법문을 청정하게 하나니 청정한 총지혜(總持慧)를 얻은 까닭에 또한 능히 조작 없는 자성 청정의 법교를 연설하며, 다시 능히 온갖 법이 마침내 공적함이 마치 허공과 같음을 열어 보이며, 또 능히 광대한 지혜의 빛을 보이나니
청정한 지혜를 열어 보이기 위한 까닭이니라. 또한 능히 온갖 법과 보리가 허공성과 같음을 열어 보이나니 온갖 지혜의 지혜가 청정함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까닭이니라. 또한 청정한 도법이 곧 보리임을 열어 보이나니 그 원하는 대로 원만함을 얻는 까닭이니라. 능히 진실한 이치[實諦]를 연설하는 방편선교를 깨달아 아나니 능히 분별 없는 이치[無分別諦]를 연설하는 까닭이니라. 능히 모든 부처님의 지혜를 열어 보이나니 모든 법의(法義)를 수순하여 깨달은 까닭이니라.
무변장엄아,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 가운데 잘 닦아 배운다면 속히 청정한 불의 자량으로 보리를 얻어 머무르되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어떤 법과 서로 어그러지지 않으며, 또한 이 말한 바 법에 멀고 가까움을 보지 않으며, 법과 비법으로써 보리를 견주어 보지 않고, 보리는 어떤 것으로도 나타내 보일 수 없는 것을 통달하여 능히 평등하여 나타내어 보일 수 없는 뜻으로 보리를 깨달아 알며, 또한 모든 법의 적정한 뜻[義]을 관할 때에 보리라 분별하지 않고 또한 적정과 적정 아닌 뜻을 보지 않으며,
적정 밖에 적정 아닌 것을 보지 않으며, 조금도 본다는 생각 없이 어디서나 능히 청정하게 보며, 또한 조금이라도 청정하게 했다는 것이 없느니라. 이것이 모든 보살의 청정한 문이라, 이 문으로 말미암아
능히 모든 여래의 끝없는 법장 다라니문을 생각하며, 능히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이 법의 광을 열어 보여 연설하며,
능히 모든 지혜 업과 원하는 것을 청정하게 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평등한 깨달음[等覺]을 나타내고는 솟아오르는 의욕이 끝내 물러가지 않으며, 또한 능히 생각하는 대로 청정한 원과 같이 온갖 법에 속히 자재를 얻어 모든 여래의 대자대비를 익혀 행하므로 모든 여래의 미묘한 법의 광이 다 앞에 나타나며, 또한 능히 한량없는 큰 법의 광명을 나타내어 보이고 몸이 항상 모든 부처님 지혜 경계에 머무느니라.
무변장엄아, 이 한량없는 법문은 누구의 말이냐? 무변장엄아, 한량이 없다는 것은 말하자면 모든 법, 곧 지계(地界)․수계(水界)․화계(火界)․풍계(風界)․허공계(虛空界)․식계(識界)가 다 한량없는 까닭이며 욕계(欲界)․색계(色界) 및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중생계가 한량이 없느니라. 그러나 조금도 모든 중생계에 사무쳐 알 것이 없나니 중생이 없는 까닭이니라.
이와 같이 이 중생계를 얻을 수 없으며, 사무쳐 알 수 없나니 계(界)가 없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법이 열반계와 같나니 열반계에 몰려 들어가고 보면, 온갖 법은 다 같은 말할 수 없는 경지[不可說處]에 들어가게 되나니 열반계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열반계에는 장애가 없고 또한 번뇌의 덮임이 없나니 장애와 번뇌 덮임의 길이 깨끗해진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열반계는 깨끗하고도 가장 깨끗하니라.
이 열반계라는 계도 계가 아니니 계를 멀리 여읜 까닭이며, 계가 없는 까닭은 계를 뛰어넘은 까닭이니라. 그러나 계와 비슷한 방편으로 나타내어 말하나니 말한 바 계라는 것은 계 아님과 계 아님도 아닌 데 머무느니라.
언설 가운데 또한 계가 없건만
다만 언어로 모든 법을 나타내어 말하나니, 그 언설과 말하는 자도 다 얻을 수 없으며 깨달아 알 수 없나니 일체의 언설이 곧 언설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일체 언설이 마치 허공 자체가 똑같이 허공에 들어가듯 허공 자체와 허공이라는 말을 다 얻을 수 없나니 이런 이치로 말미암아 지계(地界)를 능히 말하지 못하며 능히 말할 재주[才]가 없으며 내지 공계를 능히 말하지 못하나니 능히 말할 재주가 없기 때문이니라. 식계(識界)라고 말하는 자는 이것은 다만 말로 모든 법을 나타내어 말하지만 저 식계라는 계는 또한 계가 아니라 모든 계에 들어가지 않나니, 계와 서로 응함도 아니요, 서로 응하지 않음도 아니니라. 허공으로 좇아 나와서 허공에 들어가나니
이와 같이 식계가 안에 있는 것도 아니요, 밖에 있는 것도 아니요,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나, 공의 성분으로 허공에 따라 들어갈 뿐 내세울 것이 없으며 볼 수도 없느니라. 만일 내세울 것이 없다면 그는 지은 바도 없나니 다만 인연이 서로 응하므로 식계가 있다고 말할 뿐이니라.
이것이 보살이 들어갈 바의 문이라 온갖 법의 본성이 허공과 같나니 법계에 의지하여 열어 보여 연설하지만 또한 모든 법의 계라고 할 것도 없으며, 계가 계 아닌 까닭에 온갖 법이 허공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온갖 법이 모두 허공과 같다고 말하나니 헤아려 얻기 어려운 까닭이며 온갖 법이 다 허공성임을 나타내며 모든 법의 본성이 허공과 같은 까닭이니, 다만 말로 열어 보여 연설할 뿐이니라.
무변장엄아, 내가 여래지(如來智)로써 연설한 것이 저렇게 청정한 줄을 관하라. 법은 생(生)할 것이 없으며 또한 법을 맡겨 줄 것이 없나니 이러한 청정 법교는 이것이 모든 보살의 똑바른 지혜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이 마땅히 원할지니라. 다른 인연에 말미암지 말고 지혜에 분별을 내지 말고 분별을 보태지 말고 청정하여 헤아릴 수 없는 이취법문을 얻을지니,
일체 법지(法智)가 청정한 까닭이니라.
무변장엄아, 모든 나는 새가 어디로 다니더냐?”
“세존이시여, 허공으로 다니나이다.”
“허공은 다시 어디로 다니더냐?”
“세존이시여, 허공은 다니는 데가 없습니다.”
“그러하다. 온갖 법이 허공과 같아서 행함이 없느니라. 행의 행할 데가 없으므로 모든 법의 본성은 행할 것이 없고 말할 것도 없으며, 이 법문은 보살이 허공지(虛空智)의 청정함을 얻으므로 구르게 되느니라. 이것이 끝없는 광명법문이라, 두루 한량없는 세계에 비치되 마치 허공과 같으며, 그 광명의 두루 비치는 것도 볼 수 없느니라. 보살이 이 문을 얻고는 능히 두루 시방 세계를 관찰하며, 또한 능히 일체 세간을 관찰하느니라.
무변장엄아, 이것이 보살 지혜의 아는 바 경지이며 사무친 지혜의 경지라 모든 다른 논자(論者)의 경지가 아니니 그는 능히 말하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이것은 불가설법인(不可說法人)이라 언어로 나타내어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온갖 법은 인(印)이 아니며 또한 인을 붙일 수 없나니, 인 아닌 줄을 깨달아 알고 선교를 닦아 익힘으로써 허공인으로 온갖 법을 인정하며, 무상인(無常印)으로 능히 저 허공의 형상 없음을 나타내어 보이나니 함 있는 모양이 없으며 언어상(言語相)이 없고 비어 없는 까닭에 허공이라 말하느니라.
허공이라 말함은 저것이 실체가 없으므로 비었다 말하나니 가장 깊은 이치로써 마땅히 모든 법의 말 없는 저 언덕에 갈지니라.
무변장엄아, 내가 이에 다라니인의 능히
청정한 구(句)를 말하여 허공의 구를 삼고 또 지혜가 청정한 까닭에 공과 같이 구도 없으며 구의 청정도 없나니 이와 같이 마땅히 모든 구를 잘 알지니라. 그 구는 어떠한가?”
곧 다라니를 설하셨다.
비바례 비바라 누사혜뎨 바라 누니 니산나 미바라니 아비야 바
毘筏黎一毘筏囉引弩娑呬啼二鉢囉二合弩儞三儞珊那上尾筏囉尼上四阿毘夜二合筏
가 샤산나샤니 바라 바례 바라 바 라미슈다니 나비가베 아 가
伽引賖珊㮈設儞五鉢囉二合皤黎六鉢囉二合皤去囉弭輸達儞七涅毘羯鞞八阿引迦去
샤삼마바사라니 니싱야 싱 가 바아뎨 싱 가 비모절니 아 나
賖三摩筏娑囉尼上九儞省霓十省上伽上波揭底十一省上去伽去毘牟折儞十二阿引娜
다니 아 다 나비아뎨 강 가사 체 나바리갈마 가체 니
上駄儞十三阿引駄去曩毘揭帝十四薑去乞沙二合掣去那鉢唎羯麽十五遏掣去泥十六
아누바체니 아삼 몌 디비야 아나아 아라녜 바라 양자추비
阿弩鉢掣泥十七阿三去冥十八地毘耶二合十九若曩阿引呵囉寧二十鉢囉二合攘斫芻毘
슈다니 샤례아 바나야니 디잉 아오다라니 아유계
輸駄儞二十一設黎耶二合引播那耶儞二十二地孕二合祇烏怛囉尼上二十三阿喩雞二十四
아비유계 아삼바라 유계 아비바라 유계 아하라 바다나
阿毘喩雞二十五阿三鉢囉二合喩雞二十六阿毘鉢囉二合喩雞二十七阿紇囉二合鉢駄涅
하례 나디샤바다비슈다니 아뎨다 나아다바라 뎨사 바나비슈
賀黎二十八涅提賖鉢駄毘輸達儞二十九阿底多引那揭多鉢囉二合底逾二合般那毘輸
다니 가리 다바리 가마비니뎨 나다 라타 누아뎨 아싱가
達儞三十訖唎二合多鉢唎二合羯麽毘儞諦三十一曩多引囉他二合弩揭諦三十二阿僧羯
라 몌 아가라바다비슈다니 바다바라볘다양나비슈다니 나바
囉二合冥三十三阿訖囉鉢駄毘輸達儞三十四鉢駄鉢囉陛駄攮那毘輸達儞三十五涅皤
시 아 바 바비슈다니 삼만다나샤디샤비야 바로가녜 미라
斯三十六
阿去皤去婆毘輸達儞三十七三漫多㮈賖地賖毘耶二合筏盧羯寧三十八弭囉
야 바다나하례 바라 아미슈디 오 바 사아바라 몌가라니
引瘧上鉢駄涅訶黎三十九鉢囉二合若弭輸地四十嗚上皤去娑阿鉢囉二合冥迦囉尼四十
아구라바 달마나리샤나미슈다니 보다 가라다 산나리샤니
一訶矩羅波二合達摩㮈唎設那弭輸達儞四十二步多去遏囉他二合珊㮈唎設儞四十三
아노모다가타 미슈단니 사갈라아다누바라볘세 몌로바리싱사타
阿怒耄駄遏他二合弭輸達儞四十四娑羯囉質多弩鉢囉吠世四十五謎嚧鉢唎僧薩他
녜 라새미 바라 다바니 살바로가 디바뎨야양나미슈단니
二合引寧四十六囉濕弭二合鉢囉二合多鉢儞四十七薩婆路迦引地鉢帝耶攮曩尾輸誕儞
아바라 뎨가다 아싱가양나나리 샤녜
四十八阿鉢囉二合底褐多四十九阿僧伽攮那㮈唎二合設寧五十
“무변장엄아, 이것이 모든 다라니인을 능히 청정하게 하는 구이라, 허공은 연설하는 분단(分段)의 구로서 실로 분단이 없으며 두루 분단이 없고, 분단이 없는 까닭에 그 가운데 구도 없고 구의 청정도 없고, 일체 구가 청정한 까닭이니라. 저 대승을 닦아 나아가는 이와, 가장 깊은 청정 법을 희구하는 이를 위하여 여래의 힘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주구(呪句)를 유포하게 되느니라.
무변장엄아, 만일 선남자로서 큰 보리를 바로 증득하기를 좋아하는 이와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이는 이 주문을 비록 전에 듣지 못하였더라도 능히 깨쳐 알리라. 만일 사람 아닌 것[非人], 혹 정거천(淨居天)이 이 주문을 지녔거든 마땅히 그에게 맡겨 줄지니라. 만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닦아 가는 이가 있거든
모든 하늘이 또한 이 주문을 맡겨 줄지니라.”
오바싱하례 사하례 하리 시리 디리 뎨미슈단니 가랴나가다
烏波僧荷黎一婆荷黎二紇唎二合三室唎二合地唎二合底弭輸達儞四羯量曩遏他二合
나뎨섬바라 뎨바뎨 아다마누미양나미슈단니 아 디야 다마 마혜
涅弟閃鉢囉二合底皤底五質多末弩弭攮那弭輸誕儞六阿引地弭二合怛麽二合麽呬
가다바리슈단니 아뎨시마리 뎨마뎨 아 가라니기다바뎨 사례 사라
遏駄鉢囉輸誕儞七揭底枲蜜里二合底末底八阿引褐囉儞岌多鉢底十薩黎十一薩囉
바뎨
筏底十二
“무변장엄아, 모든 천신이 설산(雪山)에 머무르는 자는 그들이 여래 힘의 힘입은 이라면 능히 설법하는 이에게 법의 광명을 맡겨 주리라.”
곧 다라니를 설하셨다.
마뎨미슈단니 소유다마리예 아갈라 혜다바다나하리 아기라 시니
末底弭輸達儞一蘇育多寐唎曳二合二阿羯囉二引呬多鉢駄涅荷唎三阿枳邏引枲儞
아미라시니 우타 나삼반녀 미니다삼마 나바뎨 마뎨아아라 노아뎨
四阿弭邏枲儞五鬱他引曩三半寧六弭儞多三麽引那鉢底七末底阿揭羅二合怒蘗諦
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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