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22권
대보적경 제22권
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송성수 번역
7. 피갑장엄회 ②
“다시 무변혜야, 내가 생각건대 지나간 세상에 보살행을 닦을 때에 이러한 갑주를 입고 이러한 대승을 타고 모든 변제(邊際)를 뛰어넘어서, 능히 어둠을 없애고 능히 두려움을 제하며, 큰 정진력으로 한량없는 부처님 처소에서 이 보살의 갑주 장엄과 대승 장엄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이 법을 관할 때에 부처님을 공경하고 존중하면서 ‘내가 이러한 갑주를 입었다. 내가 이러한 갑주가 있다, 내가 이러한 법을 얻었다. 내가 이러한 법이 있다. 내가 이런 갖가지의 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니라.
내가 그때에 ‘나’라는 생각이 없으며 신견(身見)을 멀리 여의고, 아만(我慢)을 멀리 여의며, 마음에 차별을 두지 않고 또한 분별이 없으며, 모든 중생을 거두어 잡아들이고자 모든 부처님의 법장을 호지(護持)하며, 한량없는 중생을 성취하되 일찍이 한 생각이라도 지쳤다는 마음이 없었느니라.
내가 그때에 갑주를 버리지 아니하고 끝없는 대승법(大乘法)을 타고 나는 세상마다 능히 마군을 항복받아 마군의 권속이 패망하여 없어지고 마군의 사자도 떨며 도망갔으며, 차라가(遮羅迦)․로가야타(路伽耶陀)․파리바라차가(波利婆羅遮伽) 등 일체 외도와, 이 외도와 서로 부응하는 무리를 내가 다 항복받아 안온함을 얻게 하며, 일체의 사견[異論]을 다 꺾어 없애고 일체 외도를 다 항복받으며,
비뚤어진 길에 빠진 중생으로 이 대승에 의하며 온갖 선법의 멍에를 메어 주며, 모든 중생을 위하여 갑주법과 갑주 장엄을 열어 보이며,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종류의 법을 연설하여 대승에 머물러 즐기게 하며, 이 대승에 머무른 자는 곧 일체 안락한 자구(資具)를 얻게 하였나니, 말하자면 유위(有爲)의 안락 자구며, 전륜성왕의 안락 자구며, 제석천왕․범왕의 안락 자구며, 무위(無爲)의 안락 자구를 얻게 함이니라.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이 법을 설할 때에 모든 중생으로 이 법 가운데 들어가서 성종성(聖種性)에 나서 큰 법의 당기를 세우고 사자후를 지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달려 나아가게 하였느니라.
무변혜야, 모든 보살이 이러한 큰 갑주를 입고 이치와 같이 관찰하여 선택하되 마땅히 어떤 법에 향하여 나아갈까 하여 온갖 법을 다 능히 알고 보되 분별함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보살이 바른 도에 머물러서 이치답게 아는 까닭이며, 정도에 향하여 나아가되 이치답게 본 까닭이니라. 이치답게 청정하면 분별이 아니며, 분별 아님도 아니니 저 분별이니 분별이 아니니 하는 가운데 평등치 못함이라. 이치다운 청정지견에 머물지 못함이니라.
분별이 없되 분별 아님이 없음으로써 저 분별과 분별 아님을 멀리 여의나니 이 도 가운데 집착함이 없으며, 집착 없음으로써 분별과 분별 아님을 멀리 여의나니 이 도 가운데 집착함이 없으며, 집착 없음으로써 분별과 분별 아님을 멀리 여의나니 이 도 가운데는 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김도 없고 중생을 위하여 베풀어 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증익(增益)할 것도 없고 가지고 버릴 것도 없으며, 평정(平定)한 길에 머물러서 또한 분별함이 없이 과거․현재․미래에 다 능히 일체 분별로 인연한 온갖 번뇌를 깨달아 알며, 온갖 법의 평등한 데 머물러서
뒤바뀐 뜻이 없는 것을 이 도에 머무른 자라 말하느니라.
무변혜야, 어떤 것을 도와 도의 청정이라 하느냐? 말하자면 팔지성도(八支聖道)니 바른 소견․바른 사유[正思惟]․바른 말․바른 행위․바른 생활[正命]․바른 정진[正精進]․바른 생각[正念]․바른 선정[正定]이 그것이니라.
바른 소견이라 함은 능히 살가야(薩迦耶) 견해를 끊어 버리고 일체 사견의 반연하는 경계를 뛰어넘어서, 일체 견해가 어떤 처소에서든지 다 청정하며,
능히 모든 하는 경계를 뛰어넘어서, 일체 견해가 어떤 처소에서든지 다 청정하며, 능히 모든 분별에 혹 진리[勝義]의 분별이거나 함부로 생각[遍計]하는 분별을 다 깨달아 알되, 곧 분별이 없어서 진리의 분별도 없으며 함부로 생각하는 분별도 없어서 비뚤어진 생각에 머물지 아니하며, 비뚤어진 사유를 끊고 능히 바른 생활의 도를 보며 바른 생활을 본 생각으로 생활 봄이 청정하여 생활에 머무느니라.
이렇게 이치답게 능히 청정한 몸의 업[淸淨身業]․청정한 말의 업[淸淨語業]․청정한 뜻의 업[淸淨意業]을 보고 정업(正業)에 머물러서 저 말의 업과 말하는 자에 다 능히 정진의 견해로 정진을 잘 거두어 잡아서 바른 정진에 머무르며, 바른 견해로 바른 정진의 견해로 정진을 잘 거두어 잡아서 바른 정진에 머무르며, 바른 견해로 억념(憶念)하되 생각함이 없으며 또한 일부러 생각을 없애려 함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이 청정한 생각으로 바른 생각에 머무느니라.
바른 소견의 삼매(三昧)로 저 삼매에 의지하는 일 없이 능히 삼매의 소견을 청정하게 바른 선정에 머무느니라.
무변혜야, 모든 보살이 이렇게 볼 때에 일체처에 청정한 바른 소견을 얻어서 청정한 도에 머무나니, 이 청정한 도가 선장부가 닦을 행이 되나니 슬기로운 이가 존중히 여김이요, 성인들이 기뻐하시고 여래가 칭찬하심이라. 일체 마와 마의 무리․마의 사자와 마의 하늘 대중이 행할 곳이 아니며, 또한 일체의 외도에 집착하여 쟁론에 의지하여 행과 견의 비좁은 숲을 모든 도 아닌 데로 나아가는 로가야 등의 행하는 곳이 아니며,
모든 열반에 애착하는 자의 행하는 곳이 아니리라.
왜냐하면 함 없는 데 머무르면 곧 열반에 분별함이 없나니 열반에 분별하면 곧 모든 행에 분별함이니라. 왜냐하면 열 반의 경계에는 모든 생각으로 분별함을 뛰어넘어서, 오히려 함 없음도 없거니 하물며 함 있음이 있겠느냐? 이 도는 능히 일체의 분별을 깨끗이 하여 곧 조금도 함이 없다는 분별도 없거니 어찌 일체 함이 있는 법의 분별이 있겠느냐? 만일 정도에 분별을 끊으면 곧 성도에 머무르며, 두려움 없는 도에 머무르며, 안온한 도에 머무르며, 안락의 도에 머무른다 말하나니
이 도는 능히 늙고 앓고 죽는 근심․괴로움이 없는 곳에 이르며, 이 도는 능히 자성이 없이 자성을 뛰어넘은 곳에 이르며, 이 도는 능히 일체의 성(性)과 성 아님을 멀리 여읜 곳에 이르며, 이 도는 나타내어 보일 형상이 없으며, 색상(色相)이 아닌 곳에 이르며, 이 도는 허공과 같이 일체에 두루하여 능히 위없는 큰 궁전에 이르나니, 이렇게 간 자는 다 물러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곧 안은 쾌락을 얻으리라. 저 큰 궁전은 가히 나타내어 보이지 못하며 모든 사상(事相)이 없고 함 있음도 없고 함 없음도 없어서 이 함 있음을 없애고 이미 함 없음을 버리어서 중생에게 함 있음의 안락이나 함 없음의 안락을 줄 것도 없느니라.
무변혜야, 저 함 있는 열반을 좋아하면 오히려 함이 있는 안락도 구하지 않거니 하물며 능히 큰 궁전에 머무르겠는가. 큰 궁정 속에는 모든 베풀어 하는 일이 없고 시원하고 고요한 까닭에 열반이라 이름하나니, 탐냄․성냄․어리석음을 없애 버리고 모든 번뇌를 끊으며 애견[愛見]의 그물을 찢고 무명(無明)의 흐름을 말리며 뭇 독의 화살을 뽑고 불선법을 다하였으므로 열반이라 말하며,
일체의 교만과 질병, 뭇 괴로움의 핍박을 멀리 여의므로 열반이라 말하며, 마음과 의지와 의식[識]과 심소법(心所法)의 소행이 아니므로 열반이라 말하며, 모든 쟁론과 일체의 번뇌와 번뇌의 심부름꾼과 법의 생각을 쉬므로 열반이라 말하며, 모든 뜻으로 좋아함과 그 구하는 것을 끊고 또한 분별할 바의 대상이 없으므로 열반이라 말하느니라.
무변혜야, 이것이 큰 열반의 체성이 되나니 열반은 가장자리가 없나니 말로 선설할 수 없느니라. 만일 나아갈 것이 있으면 곧 도가 아니니라. 도는 본디 말이 없는지라 가히 선설할 수 없느니라. 모든 보살이 만일 이 도로써 열반의 큰 궁전에 나아갈 때에 또한 한량없는 중생으로 이 도에 머무르게 하느니라.
무변혜야, 모든 보살이 이 도에 향하여 나아갈 때에 지치거나 권태증이 없으며, 또한 근심․번민이 없으며, 하고 싶은 대로 장엄되며, 장엄하는 곳을 따라서 낱낱 장엄에 중생을 거두어 잡아들여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여 중생들로 다 기쁘게 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도는 견줄 데 없으며, 능히 모든 허물을 깨끗이 하여 할 일을 끝내니 모든 부처님과 성문․연각이 다 이 도에 향하여 나아가되 서로 어긋나지 아니하며 그 땅에 이르지 못하며 그 원과 같지 못하여서는 끝내 서로 여의지 않느니라.
어떤 것을 땅이라 하는가. 열반의 경지와 큰 궁전의 경지를 말하나니 마치 허공과 같아서 무엇으로 비유할 수 없나니 오직 허공으로써 허공에 견줄 뿐이니 끝없이 넓고 크고 비고 고요한 것을 허공이라 이름하나니, 열반의 궁전도 또한 그와 같이 크게 비고 고요하여 주재자가 없으며, 또한 ‘나의 것’이라는 것이 없고 일체 중생이 그 가운데 들어가되 능히 털끝만한 분량도 차지하지 못하나니 끝없이 넓고 비고 고요하며, 한량없는 것을 큰 열반이라 말하며 큰 궁전이라 말하느니라.
무변혜야, 모든 보살의 이 거룩한 도는 모든 성문․연각이 지닐 것이니라. 이 도에 머무르는 자는 일체의 공덕 자량의 불퇴전을 성취하여 모든 중생을 위하여 큰 이익을 지으며, 거룩한 행으로 큰 장엄을 삼아서 이 도로써 향하여 나아가나니 이러한 장엄은 또한 성문․연각이 지닐 바가 아니니라.
모든 보살이 이 도에 머무를 때에 혹은 전륜성왕이 되더라도 무엇을 돌아보고 아낌이 없고 큰 위덕과 신통이 있어 능히 세간․출세간을 환히 알며, 혹은 제석천왕이나 대범천왕이 되더라도 탐착함이 없고 멀리 교만을 여의며, 모든 부처님 뵙기를 즐기고 바른 법 듣기를 즐기며, 한량없는 모든 하늘을 성취시키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나아가게 하느니라.”
그리고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살의 거룩한 도는
세간에 다시 위가 없나니
여러 성자와 이승(乘)은
다 이 도에 나아가도다.
과거․미래 모든 보살이
큰 보리에 향해 나아가서
도로써 장엄함을 얻어서
이 도로써 열어 보이도다.
그 누구나 이 도에
이미 나아가거나 지금 나아가는 이는
그는 다 바른 소견으로
이 도에 편히 머무르나니
과거․미래 모든 보살이
만일 평등한 견해에 머물러서
이 도 가운데 행하면
안락하게 보리에 나아가리라.
이 도가 가장 거룩하며
이 도가 가장 위가 없나니
실답게 능히 인도하여 나아가서
그 가운데 집착함 없을지니라.
그 누구도 이 도에 머무르며
이 도로 말미암아 행하는
모든 슬기로운 이로는
그 뜻이 흔들리며 움직이지 않으리.
이 도가 조금도
흔들려 움직임 있다 말하지 않는 이라면
이 움직임 없음으로 말미암아
저 움직임에 항상 멀리 여의리로다.
나는 이 도가 움직임도 없고
베풀어 함도 없으며
또한 또 보탤 것 없다 말하나니
이런 도이므로 가장 높다 하노라.
일체의 보살들은
착실히 이 도에 머무르라.
이 도는 애착함도 없고
또한 미워함도 없느니라.
이 도는 과거도 아니요
이 도는 미래도 아니며
그곳엔 분별할 수 없나니
이렇게 닦아 익힐지니라.
이 도는 번뇌가 없으며
이 도는 분별이 없으며
저 도리에 어그러지지 않나니
이렇게 편히 머무를지니라.
가장 거룩한 도에 머물러서
머무름 없음으로 머무름 삼나니
이 도에 머무는 이는
능히 청정한 성품을 얻으리라.
나는 여덟 가지의 성도가
모든 성자의 밟던 길이라 말하노라.
이 도에 머무는 이는
보리를 얻기 어려움 아니리라.
보살은 중생들의 부모라
이렇게 이 도에 머무르므로
능히 청정한 도를 얻거든
낱낱이 향하여 나아갈지니라.
이 최상의 도는
착한 장부가 밟아갈 길이라
여래가 칭찬한 까닭은
이 슬기로움이 위없음 됨이니
마왕과 마의 무리며
마에게 휩쓸린 자와
외도와 나머지 중생은
밟아 나아갈 길이 아니로다.
열반을 분별하는 이는
이 거룩한 길에 머물지 못하나니
어리석은 이는 분별로 상처를 입고
열반에 나아가지 못하도다.
모든 분별 뛰어넘어서
생각도 없고 분별도 없어야
그가 능히 이 큰 도에
향하여 나아가게 되리라.
여러 성인의 거룩한 도는
어리석은 사람은 멀리 여의나니
이 법을 닦아 행하는 자여
이 도가 위없음 되도다.
이 가장 거룩한 도는
능히 위없는 곳에 이르나니
그 가운데 고뇌가 없고
두려움도 재난도 없도다.
이 위없는 도는
빛깔도 없고 형상도 없나니
빛깔이나 형상으로써
나타내어 보이지 못하리로다.
이 안온한 도는
바르고 곧아 두려움 없나니
끝내 이 도로써
큰 열반에 나아가리라.
이 가장 청정한 도는
마치 저 태허공 같나니
일체에 걸릴 것 없어야
언제나 열반에 나아가리.
만일 열반에 이르면
한 번 가면 다시 물러감 없나니
이러한 큰 열반마이
가장 높은 거룩한 안락일세.
열반의 큰 궁전은
비고 고요하여 헤아릴 수 없나니
이것을 열반이라 하며
큰 궁전이라 말하도다.
이러한 큰 열반 속에는
3독의 번뇌가 멸했나니
만일 그 가운데 이르면
물러감 없고 태어남 없으리.
열반은 길이 비고 고요하여
마치 저 태허공처럼
넓고도 비고 고요할세라.
그 속에 무엇이 걸리리.
열반의 큰 궁전은
길이 괴로움․근심․시끄러움 여읜
끝없는 경계의 그것
이것을 열반이라 이름하네.
열반은 수량(數量)이 없나니
수량으로 얻을 수 없도다.
고요히 멸해 버린 시원한 성질
이것을 이름 지어 열반이라 하네.
열반은 시설이 없으며
도에 나아감 또 위가 없고
한량이 없고 또한 분별이 없나니
분별을 얻을 수 없도다.
내 이제 보살을 위하여
이 도를 열어 보이나니
만일 이 도에 머무르면
그는 곧 열반에 가까우리.
만일 이 도에 머무르면
세간의 거룩한 안락
모든 것을 다 얻게 되나니
두려움 없는 자라 이름하리.
착실히 이 도에 머물러서
그 마음 물듦 없이
이 청정한 도로 말미암아
두려움 없는 자라 이름하리.
평등하고 바른 도를 봄으로 말미암아
일체를 능히 다 깨달으므로
일체의 자구(資具) 가운데
하나도 탐착하지 않도다.
보살은 중생의 부모라
거룩하고 진실한 도로써
중생을 요익케 하려고
용맹스레 정진하나니
만일 최상의 도 얻으면
이 도의 장엄한 공덕으로
세상 중생을 기쁘게 하여
이 도에 향하여 나아가게 하리.
이 도는 가장 뛰어난 것
뜻이 청정하게 하여
그 즐겨 구하는 대로
중생들 향하여 나아가게 하리.
혹은 성왕의 자리를 얻어
4천하 백성을 거느릴지라도
능히 대왕의 자리를 버리고
집을 떠나 도를 닦아 배우며
혹은 천제석의 지위와
대범천왕 자리에 오를지라도
그것에 탐착함 없나니
이것이 도를 따름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학문과 지식
모두 다 사무쳐 깨닫고
이 도 가운데 머무르면
이것이 실다운 말하는 이 되도다.
“다시 무변혜야, 모든 보살이 이 도를 향하여 나아갈 때에 정도(正道)를 거두어 가지기 위하여 한 가지의 법을 닦아 행하느니, 말하자면 모든 불선법을 짓지 않음이니라.
또 8정도를 거두어 가지기 위하여 두 가지의 법을 닦아 행하나니, 첫째는 안으로 어떤 선법에 따라서 이치대로 사유함이요, 둘째는 밖으로 어떤 선법에 따라서 이치대로 청하여 물음이니라. 또 8정도를 거두어 가지기 위하여 두 가지 법을 닦아 행하나니 첫째는 일과 같이 모든 법을 깨달아 앎이요, 둘째는 일도 없고 머무름도 없고 분별할 것 없음을 깨달아 앎이니라.
또 8정도를 거두어 가지기 위하여 두 가지의 법을 닦아 행하나니 첫째는 안으로 깨달아 앎에 수순함이요, 둘째는 밖으로 집착이 없음이니라. 또 8정도를 거두어 가지기 위하여 두 가지의 법을 닦아 행하나니 첫째는 스스로 분별할 것 없는 법을 믿음이요, 둘째는 중생이 만일 믿지 않거든 내가 그를 이 도에 편히 머물게 하는 것이니라.
또 8정도를 거두어 가지기 위하여 두 가지 법을 닦아 행하나니 첫째는 능히 하는 법을 여실히 알고 가지기 위하여 세 가지 법을 행하나니, 첫째는 모든 고취온(苦趣蘊:苦諦)을 낱낱이 깨달아 앎이요, 둘째는 모두 무(無) 고취온에 부지런히 낙(樂)을 구할 것이요, 셋째는 모든 인연으로 화합한 법에서 일심으로 멀리 여의기를 닦을지니라.
또 8정도를 거두어 가지기 위하여 세 가지의 법을 닦아 행하나니 첫째는 최상법을 연설하되 말이 어그러짐이 없고 법의(法義)를 따라 말하되 마음에 쟁론이 없는 것이며, 둘째는 일체 문자에 집착하지 아니함이요, 셋째는 온갖 법에 집착하지 않음이니라. 또 8정도를 거두어 가지기 위하여 네 가지 법을 닦아 행하나니 첫째는 법의 뜻을 잘 이해하는 올바른 방편이요, 둘째는 뜻에 따라 생각하는 올바른 방편이요,
셋째는 법을 따라 관찰하는 올바른 방편이요, 넷째는 일체 집착을 일으키지 아니하는 바른 방편이니라.
또 8정도를 거두어 가지기 위하여 네 가지의 법을 닦아 행하나니, 첫째는 능히 굳은 맹세로 스스로 지키어 말과 같이 행함이요, 둘째는 능히 여섯 감관[六根]을 잘 다루는 방편으로 도에 향하여 나아감이요, 셋째는 능히 도를 즐기는 뜻으로 청정케 함이요, 넷째는 능히 방일하지 않는 행에 머무름이니라.
무변혜야, 모든 보살이 이 법행(法行)으로 도를 거두어 가지므로 이에 도에 수순하는 자라고 이름하며 일체 법성이 빈 줄을 관한 까닭이며, 이름이 없는 까닭이며, 상이 없는 까닭이며, 원이 없는 까닭이며, 남이 없는 까닭이며, 지음[作]이 없는 까닭이며, 싫증낸 까닭이며, 여읜 까닭이며, 멸(滅)한 까닭이며, 벗어난[出] 까닭으로 법의 광명을 얻어서 남이 다함을 관할 때에 남의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그때에 남을 여읜 경계에 뛰어 올라서 법 아닌 데 지나가 도의 청정을 얻어서 무생법인을 얻나니 도가 청정하므로 일체 생각을 지나가서 생각 아닌 데도 머물지 않고 도라는 생각을 없애며, 법이란 생각도 여의어서 무명의 그물을 벗어나서 밝음을 닦아 익히어 마땅히 얻을 법을 다 얻느니라.
밝음을 닦아 익힘으로써 어떤 법을 얻는가? 말하자면 밖으로 닦아 익혀 생각의 감수(感受) 작용의 멸함을 얻으며, 온갖 법의 결정선교를 얻으며, 비밀에 따라서 법성에 순함을 얻느니라. 모든 보살이 이 도를 행할 때에 어느 곳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어떤 상에 덮임이 되지 아니하고 온갖 법이 허공과 같은 줄을 알아서 남[生]도 허공의 남과 같고 성(性)도 허공의 성과 같아서 작은 상에도 걸림이 없으며, 이 도가 청정하여 재난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큰 갑주를 입되 그 갑주에 잡아 얽매임 되지 아니하며, 대승을 타고 미혹됨이 없으며 모든 장애를 여의되 허공과 같으며 이 도에 향하여 나아가서 중생을 위하여 큰 광명이 되느니라. 무변혜야, 이것이 모든 보살의 거룩한 도가 되나니
성문․연각이 행할 것이 아니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팔정도를 거두어 가지기 위하여
모든 범행을 연설하였나니
만일 이 도 가운데 머무르면
이것이 큰 정진이 되리로다.
착한 법을 닦아 행하는 이는
능히 어느 때에나
불선법을 짓지 않으면
이 행이 정도를 거두어 지니리라.
보살이 닦아 익힐 때에
안으론 이치답게 생각하고
밖으론 청하여 묻기를 구하면
이 행이 정도를 거두어 지니리라.
보살이 법을 관찰할 때에
사실과 같이 바로 깨달아 알며
이치대로 법대로 머무르면
이 행이 정도를 거두어 지니리라.
보살은 중생의 부모라
안으론 깨달아 앎에 따르고
밖으론 집착이 없으면
이 행이 정도를 거두어 지니리라.
보살은 두려움 없는 이
스스로 분별없는 법을 믿고
남도 깨끗한 믿음에 머물게 하면
이 행이 정도를 거두어 지니리라.
보살은 잘 사유하는 이
모든 하는 일을 깨끗하게 하고
그 하는 일에 집착 없으면
이 행이 정도를 거두어 지니리라.
보살은 얽매임 없는 이
항상 괴로움의 법이 무엇임을 알고
괴로움 없는 법을 구하면
이 행이 정도를 거두어 지니리라.
보살은 착하고 슬기로운 이
화합 인연 여의는 행을 닦아
능히 화합의 인연을 여의면
이 행이 정도를 거두어 지니리라.
보살은 법의 뜻을 생각하는 이
뜻에 따라 능히 깨달아 알고
연설하되 어긋나고 다툼 없으면
이 행이 정도를 거두어 지니리라.
보살은 슬기를 갖춘 이
문자에 집착함 없이
모든 법을 거두어 지니면
이 행이 정도를 거두어 지니리라.
보살은 법을 닦아 행하는 이
능히 법으로 응하며
또한 뜻과 서로 응하면
이 행이 정도를 거두어 지니리라.
보살은 도에 따르는 이
굳은 맹세에 바로 머물러
말과 같이 닦아 행하면
이 행이 정도를 거두어 지니리라.
보살의 도는 청정한 것
뜻으로 즐겨함에 깨끗하여
법 방일함 없음에 잘 머무르면
이 행이 정도를 거두어 지니리라.
보살이 어느 때든지
부지런히 온갖 행 닦아서
몸과 마음이 안락을 얻으면
이 행이 정도를 거두어 지니리라.
보살은 바로 생각하는 이
청정한 도에 머물러
모든 법이 본디 비어서
형상 없는 줄을 깨달아 알라.
보살은 잘 관찰하는 이
능히 원으로 청정케 하며
또한 원 없는 데 머물지 않고
모든 상을 멀리 여의느니라.
보살은 이치대로 관하여
이치의 평등함에 나아가
모든 법의 나지 않는 이치에
조금도 의혹함 없도다.
보살은 미묘한 슬기를 지닌 이
능히 온갖 법을 관하여
싫증내어 여의고 적멸한 까닭에
맑게 보고 향하여 나아가도다.
보살은 법을 관하는 이
이치대로 법의 나는 것을 보아서
남[生]에서 남을 보지 않으며
다함에서 다함 보지 않도다.
보살은 정진하는 이
이렇게 관찰할 때에
법 아닌 것 벗어나 여의고
보살의 바른 지위에 뛰어 오르도다.
보살은 묘한 슬기를 지닌 이
이 도가 청정하므로
속히 큰 안온에 이르러서
위없는 지혜를 성취하도다.
보살은 묘한 슬기를 지닌 이
수순하여 모든 법을 관찰하고는
일체의 생각을 뛰어넘어서
항상 생각 없는 데 머무르도다.
보살은 묘한 슬기를 지닌 이
이 도를 깨끗이 다스려
도라는 생각도 멀리 여의고
또한 법이란 생각에도 머물지 않도다.
보살은 묘한 슬기를 지닌 이
이 도를 깨끗이 다스리므로
무명의 그물을 벗어나
큰 법의 광명을 얻으리로다.
보살은 묘한 슬기를 지닌 이
능히 밝은 법을 닦아 행하며
모든 중생을 교화하므로
이로 인하여 도에 나가게 하도다.
보살이 밝은 법을 닦아 익힘은
모든 법을 얻어
결정된 깊은 뜻과
교묘한 방편을 얻기 위함이로다.
보살이 밝은 법 닦아 익혀
방편으로 모든 생각 여의고
비밀법에 수순하므로
능히 결정된 뜻을 알게 되도다.
보살은 묘한 슬기를 지닌 이
큰 법의 광명으로써
능히 생각과 느낌을 없애나니
이로 인하여 도에 나아가게 하도다.
보살은 묘한 슬기를 지닌 이
이 도에도 머물지 않나니
이 도에 머물지 않으므로
도에 달려 나아가도다.
보살은 두려움 없는 이
능히 온갖 법 자성이
마치 깨끗한 허공 같은 줄을 알므로
모든 형상에 덮인 바 없나니
보살은 모든 법 자성이
허공과 같은 줄을 아나니
모든 법이 허공과 같으므로
청정하여 때[垢] 끼임 없도다.
보살이 이렇게 머물러
형상에 걸린 바 없이
재빨리 중생들 위하여
연설하여 교화하도다.
보살은 묘한 슬기를 지닌 이
일체의 도에 청정하며
저 도에 재환(災患)이 없어
걸림 없이 그 도에 나아가도다.
이렇게 청정한 도로
재빨리 보리에 이르러
함 없는 법을 증득하므로
평등한 그 도에 나아가도다.
보살의 큰 갑주와
대승과 대도는
허공처럼 걸림이 없이
청정한 도에 나아가도다.
이 승(乘)과 도에 나아감은
마치 허공에 나아가는 듯
온갖 형상을 멀리 여의고
상 없이 도에 나아가도다.
대승의 평등한 수레는
넓고 크기 허공 같나니
이 청정한 도에
이 수레로 마땅히 나아가리라.
과거․미래의 모든 보살은
이러한 도법을 존중히 여겨
모든 중생을 위한 까닭에
용맹스럽게 나아가도다.
만일 큰 보리에 나아가려면
이 거룩한 도에 머물라.
모든 성문․연각 따위는
이 법을 향하여 나아가지 못하리.
보살의 올바른 한 생각으로
능히 도를 청정케 하나니
이 청정한 도로써
최상의 도에 나아가도다.
“다시 무변혜야, 모든 보살이 이렇게 도를 향하여 나아갈 때에 능히 선교방편으로 바로 염처(念處)와 정단(正斷)과 감관과 역(力)과 각분(覺分)과 해탈과 등지(等持)와 등지(等至)와 신통과 지(止)․관(觀)의 한량없는 공덕․수승한 장엄을 깨달아 알고는 모든 세간을 항복받고자 하므로 큰 갑주를 입으며, 삼계를 벗어나려고 대승을 타며 천상․인간․아수라를 거두어들이려고 이 도에 편히 머물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향하여 나아가느니라.
무변혜야, 모든 보살이 큰 갑주를 입고 대승을 타고 이 도에 머물 때에 자(慈)․비(悲)․희(喜)․사(捨)로써 두루 중생을 싸주지 못하거나 모든 중생을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아니한다면 이러한 갑주와 대승․대도는 보살의 큰 지위를 감당하지 못하리니 일체 중생을 친근하지 못하리라. 만일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이익되게 함으로써 큰 갑주를 입고 대승을 타고 이 도에 편히 머무르면
이러한 갑주와 대승․대도는 일체 세간․천상․인간․아수라들이 능히 행할 바가 아니며 어리석은 범부는 세간에 탐착하여 세간 법에 머무르나니 또한 능히 보지도 못하리라.
또 모든 보살이 일체 중생을 불쌍히 여기므로 큰 갑주를 입고 능히 갑주로써 지계(地界)․수계(水界)․화계(火界)․풍계(風界)를 가지(加持)하여 이 지계가 기울어지거나 움직이지 않게 하므로 모든 중생이 공포를 내지 않게 되며 능히 수계․화계․풍계로 하여 그 할 일을 하게 하느니라.
또 보살이 처음 발심할 때부터 갑주를 입기에 이르러 큰 갑주를 입고 대승을 타고 청정한 도로써 일생보처에 나아가기 위하여 보리수에 나아가 도량에 앉을 때에, 이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금강으로 이룩된 견고한 땅이 만일 도와주지 않을 때에, 이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금강으로 이룩된 견고한 땅이 만일 도와주지 않으면, 뛰놀고 꺼지고 기울어지고 엎어지고 하여 비록 견고한 금강으로 이룩되었을지라도 이 큰 갑주와 대승․대도를 감당하여 짊어지지 못하리라.
또 모든 보살이 지나간 세상의 서원력으로 모든 중생에게 자비를 일으킨 까닭이며 시방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함께 청청한 까닭이니라.
설사 금강 큰 윤위산(輪圍山)과 수미산과 일체 보배 산이며 나머지 산왕도 만일 도와주지 않으면 또한 이 큰 갑주와 대승․대도를 감당하여 짊어지지 못하리라.
또 모든 불보살의 본원력인 까닭에, 모든 중생을 시끄럽게 하지 않는 까닭에, 해치지 않으며 훼손하지 않는 까닭에, 원망하거나 원수 삼지 않는 까닭에, 중생으로 안락을 얻게 하기 위한 까닭에, 큰 갑주를 입고 대승을 타고
이 도에 머물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향하여 나아가느니라.
무변혜야, 보살이 갑주를 입을 때에 지혜의 갑주를 입고 지혜의 무기를 가지고 머물러서 지혜의 밝은 눈으로 모든 법을 관찰하고 온갖 지혜의 지혜에 향하여 나아가나니 온갖 지혜의 지혜를 거두어 가지고자 중생을 위하여 반야바라밀․보시바라밀․지계바라밀 내지 선정바라밀을 닦아 행하되 일체를 다 지혜로 앞잡이를 삼고 지혜로 닦아 익힘을 삼고 지혜로 거두어 지님을 삼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느니라.”
그때에 무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의 지혜가 일체처에 두루하여 능히 일체 공덕을 거두어 가지므로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법을 성취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무변혜보살에게 이르셨다.
“무변혜야, 그렇다. 네 말과 같도다. 보살의 온갖 지혜가 일체처에 두루 있어 온갖 법을 거두어 가지고 큰 갑주를 입고 대승을 타고 이 대도에 머무르되 낱낱이 다 지혜로 앞잡이를 삼아서 큰 도에 향하여 나아가느니라.
무변혜야, 설사 지혜가 있더라도 지혜로 앞을 인도함이 없으면 이 도에 능히 향하여 나아가지 못하느니라. 만일 지혜가 있고 지혜로 방어한다면 그때에 곧 갑주를 입고 대승을 타고 대도에 머물러서
안온한 법으로 세간을 요익케 하며 능히 지혜의 눈을 열어서 눈으로써 관찰하여 지혜의 몸이 밝게 비추어 큰 광명을 놓아 ‘아뇩다라삼막샴보리’에 향하여 나아가느니라.
무변혜야, 이것이 모든 보살이 입은 갑주와 갑주의 장엄이며, 보살이 탄 대승과 대승의 장엄이며 보살이 행하는 대도와 대도의 장엄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향하여 나아가느니라.
무변혜야, 갑주의 장엄과 대승의 장엄과 대도의 갑주의 장엄과 일체 공덕의 갖가지 장엄을 내가 만일 갖추어 말하면 한량없는 겁에도 다하지 못하리라. 너희들을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한 까닭에 또한 미래 모든 선장부의 갑주장엄․대승장엄․대도장엄․끝없는 공덕 자량의 장엄을 위하여 내가 이제 조금 말하였노라. 저 선장부가 만일 나의 법을 들으면 또한 마땅히 큰 갑주를 입고 대승을 타고 이 대도에 머물러 공덕을 장엄하여 보리에 향하여 나아갈지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일체의 끊음[斷]을 말하였고
또한 사념주(四念住)와
일체의 선교방편을 말하였나니
이것은 방일치 않음에 말미암음이로다.
바른 생각을 갖추어서
법의 선교(善巧)와 서로 응하여
용맹스레 정진하여야 벗어나나니
이것은 방일치 않음에 말미암음이로다.
다섯 감관․5력과 7보리분으로
갑주를 입고 대승을 타고
이것으로 시위(侍衛)를 삼아
보살이 보리에 나아가도다.
선정과 거룩한 해탈이며
등지(等持)와 또는 등지(等至)로
이것으로 시위를 삼아
보살이 보리에 나아가도다.
큰 사랑․슬픔․기뻐함․놓아 버림으로
갑주 입고 대승을 타고
이것으로 시위를 삼아
보살이 보리에 나아가도다.
지(止)와 관(觀)과 신통
자재한 신변(神變)을 성취하여
이것으로 시위를 삼아
보살이 보리에 나아가도다.
한량없는 모든 공덕으로
갑주 입고 대승을 타고
도 닦음에 지침이 없이
보살이 보리에 나아가도다.
언제나 부지런히 방일함 없이
갑주 입고 대승을 타고
저 염처(念處)를 깨달아 알고서
보살이 보리에 나아가도다.
광명의 큰 갑주로
모든 세간을 항복받나니
이러한 갑주를 입은 이는
이것을 지자(智者)라 이름하도다.
바로 온갖 지혜에 향해 나아가
삼계 가운데 뛰어나나니
이러한 대승 탄 이는
이것을 지자라 이름하도다.
큰 도여, 청청한 도여
천상․인간․아수라
모든 세간을 가리어 덮나니
이것을 ‘널리 들은 이[遍聞者]’라 이름하도다.
이처럼 모든 보살들은
모든 중생을 두루 다 위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부지런히 닦으며 갑주를 입도다.
보살이 만일 큰 사랑과 슬픔
큰 기쁨과 놓아 버림
이것을 닦아 익히지 않으면
보살의 지위를 감당치 못하리.
보살이 만일 저 중생에게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
이것을 닦아 익히지 않으면
보살의 지위를 감당치 못하리.
큰 자비로 대승을 타고
산과 바다 도와주는 일
이것을 닦아 익히지 않으면
보살의 지위를 감당치 못하리.
보살이 만일 저 중생에게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
이것을 닦아 익히지 않으면
보살의 지위를 감당치 못하리.
큰 자비로 대승을 타고
산과 바다 도와주는 일
이것을 닦아 익히지 않으면
보살의 지위를 감당치 못하리.
모든 중생들 사랑하기에
이러한 대승을 타는 일
이것을 닦아 익히지 않으면
중생은 친근치 않으리로다.
설사 이 갑주 입었더라도
사랑의 빛 비추어 밝히지 못한다면
그는 큰 갑주 입었다 하지만
중생은 친근치 않으리로다.
보살이 이 갑주 입으면
공덕의 바다 끝이 없어도
4대의 세계를 거두어 가져
그는 곧 큰 짐을 감당하리라.
중생을 거두어 가지는 까닭에
자비의 빛 널리 비추며
4대의 세계를 거두어 가지면
그는 곧 큰 짐을 감당하리.
중생들 흉보거나 시끄럽게 아니하고
이 큰 갑주를 입고서
대승으로 삼계를 벗어나나니
이것을 지자라 이름하도다.
미묘한 큰 방편으로
일체를 다 힘 입히어
위없는 도를 벗어나나니
이것을 지자라 이름하도다.
이것으로 인연하여 대지가
멸하지 않고 기울지 않으며
수계․화계․풍계 그것이
제각기 할 일을 하게 되도다.
그러므로 저 큰 보살들은
갑주 입은 그 공덕 끝 간 데 없이
이 보살의 대승을 타고
보리의 큰 도에 나아가도다.
일생보처 지위를 성취하고
최후의 보살의 몸 받아 나와서
보리수나무 아래 나아가
견고한 금강좌에 앉게 되나니,
이 도량에 조용히 앉아
편안히 머물기 금강좌같이
몸과 마음에 싫증냄 없이
일체의 지혜를 증득하나니
보살․두려움 없는 이
가지의 위신력 아니었다면
그 땅이 기울어 엎어져 버려
무너지곤 다시 이루지 못하리.
일체의 대지의 경계를
가지의 위신력 아니었다면
가령 그 바탕 금강으로 이룩되었더라도
기울어 엎어지지 않음이 없으리.
보살이 지나간 그 옛날에
큰 서원의 갑주로 장엄하고
저 모든 중생 세계에
이미 큰 자비심 일으켰도다.
현재의 시방 세계
모든 부처님 국토에
두루 아시는 사람 중 높은 이께서
일체를 다 보시고 호념하시나니
설사 나머지 돌산이나
수미의 보배 산이나
금강으로 이룩된 윤위산(輪圍山)
단단하고도 끄떡없나니
보살의 슬기로운 이
가지(加持)의 위신력 아니었다면
이 큰 갑주만도
견디어 짊어지지 못하리로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신력의 힘 입힘으로
중생과 대지를
친근하고 짊어지도다.
이러한 큰 갑주 입음은
중생을 괴롭히지 않기 위함이니
이 갑주는 더위가 없나니
이것을 타고 보리에 나아가도다.
이러한 큰 갑주 입음은
중생을 해치지 않기 위함이니
이 갑주는 부사의한 것
이것을 타고 보리에 나아가도다.
이러한 큰 갑주 입음은
중생과 원수지지 않기 위함이며
중생의 병을 제하기 위함이니
이것을 타고 보리에 나아가도다.
거룩한 보살도를 구족하여서
위업이 깨끗이 닦아 나아감은
괴롭지 않고 원망치 않고
해치지 않고 안주(安住)하기를.
지혜의 큰 갑주 입고
지혜로운 회향의 수레를 타나니
이 갑주는 깨뜨릴 수 없으며
회향도 이 위에 지날 리 없어라.
보살은 중생의 부모
도와 지혜의 광명에 머물러
지혜로 모든 법을 관하고
위없는 보리에 나아가도다.
보살의 거룩한 도인
갑주와 대승은
지혜의 빛에서 일어나니
그러므로 그 마음 청정하도다.
모든 바라밀을 타고
부처님 큰 보리에 나아가니
지혜로 거두어 지닌 지혜의 청정한 공덕
그는 다 지혜로 앞을 삼도다.
일체의 바라밀은
이 지혜로 앞을 삼아
지혜로 거두어 지닌 지혜의 청정한 공덕으로
능히 위없는 지혜를 맡겨 주도다.
보살은 곧 부사의
능히 지혜의 광명을 일으키며
능히 큰 지혜의 등불을 밝히어
안락한 법으로 나아가도다.
지혜의 광명을 일으키므로
지혜의 눈이 따라서 열리며
부처님 위없는 지혜에
밝게 보고 나아가도다.
보살은 용맹스러운 이
갑주가 끝이 없으며
끝없이 장엄한 까닭에
큰 갑주라 이름하도다.
보살은 크게 슬기로운 이
큰 수레를 장엄하여서
부처님의 지혜에
물듦 없이 나아가도다.
보살은 크게 슬기로운 이
큰 도를 장엄하여서
거룩한 저 부사의 법에
청정한 행으로 나아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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