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14권
대보적경 제14권
서진 삼장 축법호 한역
송성수 번역
3. 밀적금강역사회 ⑦
그때에 밀적금강역사가 현자 대목련에게 말하였다.
“장로 목련아, 세존께서 칭찬하시기를 신통이 제일이라 하시니 당신은 또한 땅에서 이 금강저를 들어 보시오.”
그러자 대목련은 앞에 나와 금강저를 들려고 무한한 힘으로 4대해(大海) 물을 위로는 해[日]에 대게 하고 그 세력으로 또 끌어 야마천에 이르게 하여 도력이 마치는 데까지 그 신통력을 뽐내어 옮기고자 하매 삼천대천세계가 위 아래로 진동하여도 능히 이 금강저를 털끝만큼도 움직일 수 없었다.
대목련은 그 희유함을 괴이하게 여겨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성께옵서 저를 성문 가운데 제일의 신통이라 칭찬하셨나이다. 스스로 신통을 시험하여 이 삼천대천세계를 움직이기를 작은 발우를 집어 다른 부처님 나라에 던지듯 하였으며, 저의 몸이 변화하와 난두화난(難頭和難) 용왕이 능히 수미산 같은 큰 통나무를 집어삼키는 것을 항복 받았거늘 이제 이 작은 금강저를 움직이지 못함은 무엇 때문이옵니까? 한생각 사이에 해와 달을 잡아끌어서 머물게 하고 손으로 만지기도 하거늘 능히 이 작은 금강저를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못함은 무슨 뜻이 있나이까? 장차 저의 몸이 신통의 힘을 잃어버림이 아닙니까?”
“목련아, 신통을 잃음이 아니니라. 또 목련아, 보살 신통의 위신력의 감응이란 일체 성문․연각이 미칠 바가 아니니라. 가령 항하 모래처럼 많은 수의 모든 부처님세계의
모든 수미산을 합쳐서 한 수미산을 이룰지라도 오히려 진동할 수 있지만 이 금강저는 움직일 수 없느니라. 보살의 위력으로 성취된 덕행은 불가사의하여 기특하기가 이러하니라,”
그때에 현자 대목련은 희유함을 느끼고 입으로 ‘도저히 따를 수 없도다’라고 선언하고 아뢰었다.
“대성이시여, 보살대사의 위신력의 소치로 이 밀적금강역사가 금강저를 받들어 가짐이여, 이 밀적이 지금 지닌 힘이 부모에게 받아 난 육체의 힘입니까, 신통의 힘입니까?”
“부모에게 받아 난 육체의 힘이니라. 가령 보살이 신통력을 다 나타내어 보인다면 천상과 인간에 다 사무치게 되리라.”
부처님께서는 밀적금강역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스스로 이 금강저를 들어보아라.”
그때에 밀적이 삼천대천세계를 움직이면서 자기의 오른손으로 금강저를 들어 허공에 던지니 허공에서 일곱 번 빙빙 돌고는 도로 밀적금강역사의 오른손에 머물러 섰다. 그때에 모여 있던 일체 회중이 희유함을 느끼고 다 합장하고 귀의하며 이구동성으로 각기 말하였다.
“따를 수 없도다. 밀적금강역사의 그 힘이 매우 기묘하기 위와 같구려.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이러한 무궁한 힘을 얻게 하여 주시오.”
이때에 아사세왕(阿闍世王)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보살이 몇 가지 법으로 이러한 힘의 다함없는 기운을 얻게 되나이까?”
“보살이 열 가지의 큰 법이 있어서 이러한 다함없는 큰 힘을 얻느니라. 어떤 것이 열인가? 첫째는 차라리 신명을 버릴지언정 부지런히 바른 법을 받아 지니느니라. 둘째는 일찍이 잘난 체하지 않고 겸손하고 조심스레 뜻을 낮추어 중생을 예경하느니라. 셋째는 억세고 사나워 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보고
인욕행을 세우느니라.
넷째는 굶주린 사람을 보거든 좋은 음식을 베풀어 충족시키느니라. 다섯째는 모든 공포에 떠는 중생을 보거든 권고하여 위안시키느니라. 여섯째는 만일 중생이 무거운 병에 걸렸거든 좋은 약으로 치료하느니라. 일곱째는 약하고 못난 사람이 남의 업신여김을 당하거든 공경하는 생각으로 불쌍히 여겨 소홀하게 여기는 자가 없게 하느니라. 여덟째는 깨끗한 진흙과 물로 여래의 법당을 발라서 그 헐고 이지러짐을 보수하느니라. 아홉째는 외롭고 괴로운 사람이 빈궁하고 곤액한 것을 보거든 항상 무거운 짐을 져서 그 어렵고 무거운 재앙을 덜어 주느니라. 열째는 만일 보호할 자가 없고 귀의할 곳이 없거든 항상 마땅히 건져 주되 그 말과 같이하여 변하여 잃지 않느니라. 이것이 열 가지니라.”
왕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이 인화(仁和)한 덕을 닦는 데 몇 가지 법이 있어서 언제나 유화한 마음으로 거친 마음을 일으키지 않나이까?”
“보살이 인화한 것이 여덟 가지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여덟이냐? 첫째는 성품이 순직하여 아첨함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성행이 화아(和雅)하여 간사하고 거짓됨이 없음이요, 셋째는 마음이 진실하여 길이 허망함이 없는 것이요, 넷째는 심행(心行)이 견고하여 급하거나 비열함이 없음이요, 다섯째는 미혹함 없이 뜻을 늘 인화하는 데 두는 것이요, 여섯째는 세상의 중우(衆祐)가 되어 특이한 덕행을 받아 닦는 것이요, 일곱째는 심행이 사무쳐 통달하여 집착한 바가 없음이요, 여덟째는 죄와 복을 생각하되 마음에 생각하는 바가 없음이니라. 이것이 여덟이니라.
다시 네 가지의 법이 있어서 심성이 순화하여 두루 자재하느니라. 어떤 것이 넷이냐? 첫째는 인간에 있어서 전륜성왕이 되어서 모든 부처님을 만나 뵙고 도심을 버리지 않음이니라. 둘째는 천상에 있어서는 천제석으로서 모든 하늘 가운데 하늘이 되어 항상 모든 부처님을 뵙고 도법을 준봉하는 것이니라. 셋째는 만일 범천상에 있으면서 자재를 얻어
도업을 심어서 도심을 헐지 않음이니라. 넷째는 항상 청정불토에 있어서 친히 모든 부처님이 설법하는 것을 만나 뵘이니라. 이것이 넷이니라.“
아사세왕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을 믿음의 안좌처[信坐]라 하나이까?”
“대왕이여, 선지식으로 안좌처를 삼느니라.”
“보시는 무엇으로 안좌처를 삼나이까?”
“대왕이여, 보시의 안좌처는 큰 부자로 재물이 넉넉하고 보배가 많으니라. 그 계를 지니는 자는 천상의 안좌처에 얻어 앉으며, 그 인욕을 하는 자는 얼굴빛이 깨끗하고 즐거우며 항상 단정함을 얻게 되며, 그 정진하는 자는 부지런히 닦아 도에 통달하고 즐거우며 항상 단정함을 얻게 되며, 그 정진하는 자는 부지런히 닦아 도에 통달하여 무리에 뛰어나게 되며 그 선정을 닦는 자는 항상 적정(寂靜)을 얻어서 모든 감관[根]이 어지럽지 않음이요, 그 지혜를 닦는 이는 모든 번뇌 때의 걱정을 끊게 되며, 널리 들은 자는 큰 지혜가 생겨 무슨 일을 묻든지 온갖 의심을 결단하여 나머지 맺음이 없게 하며, 부지런히 배우는 자는 끝내 위없는 정진의 도에 들게 되며, 그 항상됨 없는 나[我]가 없으며, 적연(寂然)한 곳에 있는 이치를 관찰하는 자는 이르는바 안좌처에 뒤바뀐 소견을 녹여 버리게 되나니 이것을 믿음의 안좌처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때를 따르는 생각은 어떤 것이 안좌처가 되나이까?”
“대왕이여, 항상됨 없으며 괴로움[苦]이며 적멸함을 관하는 것이 바른 견해에 편히 머물러서 삿된 짓에 따르지 아니하고 신심이 청정하며 선정에 안좌하면 신통을 일으키느니라.”
또 물었다.
“도가 어느 곳에 있나이까?”
“벗어날 것 없는 곳에 편히 머물러서 도과를 이루어 삼계의 어려움이 없는 데에 있느니라.”
“벗어날 것 없다는 것은 어느 곳에 편히 머물러서 있나이까?”
“그 벗어날 것 없다는 것은 나고 죽음의 모든 걱정을 해탈한 데에 머물러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셔서 어디에 안좌하여 계시나이까?”
“익힌 바 37도품의 법에 편히 머물러 있어 파괴할 바 없이 법바퀴를 굴리어 3보의 가르침을 끊지 않느니라.”
누가 능히 부처님을 출현하게 하나이까?“
“대왕이여, 능히 독실한 믿음으로 본디 없는 이치를 깨달은 자이니라.”
“누가 능히 독실한 믿음을 일으키리까?”
“능히 보살심을 발하는 자이니라.”
“누가 능히 보살심을 발하나이까?”
“그 심정이 안정되어 어지럽지 않은 자이니라.”
“누가 능히 심성이 안정되어 어지럽지 아니하리까?”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닦아서 일찍이 끊임이 없는 자이니라.”
“누가 능히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끊지 않으리까?”
“그 일체 중생을 놓아 버리지 않는 자이니라.”
“누가 능히 중생을 놓지 않으리까?”
“자기도 편안히 하고 일체를 편안히 할 자이니라.”
“누가 능히 제 몸과 아울러 일체 중생을 편안하게 하리까?”
“능히 그 도를 일으켜서 3보를 끊지 아니할 자이니라.”
“누가 능히 3보를 끊지 아니하리까?”
“세속 번뇌를 버리는 것이 3보를 끊이지 않게 함이니라.”
아사세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참으로 희유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법률에 들어가는 일을 선포하심이여, 여래께서 마땅히 선포할 만한 법을 펴 가르치심은 유순인(柔順忍)에 이르게 하여 단멸(斷滅)이나 항상됨 있다는 업을 버리게 하고 보응의 과(果)를 잃지 않고 닦아 얻은바 행이 어지러움 없는 데 들어가서 근본 선도 없고 악도 없지만 정업과 부정업에 부지런히 허물을 닦아 어그러지고 잃어버림이 없나이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누가 이 원에 들어와서 온갖 의혹을 끊고 여래 정진의 법교를 수순하며 누가 이 법을 듣고 의혹 하리까? 오직 숙세에 덕의 종자를 심지 않은 자로서는 나쁜 벗을 따라 믿지 아니하고 비방하리다. 세존이시여, 우리는 일찍이 덕의 종자를 심어서 복덕이 없지 않으므로 이제 바른 법을 듣게 되며 은덕을 갚고자 하오나 능히 뜻대로 못할 뿐이옵니다.
모든 부처님이나 문수사리(文殊師利)와 같으신 자비의 덕으로써 이에 우리들을 위하여 온갖 의혹을 끊고 큰 광명을 나타내시리다. 세존의 좋은 말씀은 범행을 갖추신 지극한 선지식으로써
대인의 자비와 상선(上善)의 반려(伴侶)가 되는 까닭입니다.“
그때에 적의보살이 밀적금강역사에게 물었다.
“인자는 이 경전을 내세워서 오는 세상에 일체에 유포하려 하는가?”
“이 경전을 내세워서 저 말세의 여래가 멸도하신 뒤에 널리 염부제에 유포하여 모든 법사와 정사들로 하여금 빛을 입지 않음이 없게 하려 하노라.”
밀적금강역사는 다시 말했다.
“이제 선남자여, 부처님께서 이러한 경전의 비밀을 내세우심을 모든 부처님께서 다 보호하시나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 능히 보호하시면 곧 법을 잘 배우게 되며 문자에 집착하지 아니하되 언사가 다함이 없으며 능히 중단함이 없도다.
또 선남자여, 여래 지진께서는 모든 법을 폐하지 아니하시나니 무슨 까닭인가. 법은 본디 난 바가 없나니 그 난 것이 없으면 곧 무너짐이 없나니 그러므로 여래가 말씀하시기를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였다’함은 실로 난 바가 없도다. 여래가 머무른 곳은 법계(法界)에 있나니 법은 진여(眞如)의 법에 머무름이니 부처가 있거나 없거나 불법은 항상 그대로인 까닭이니라.
이와 같이 머무르므로 십이연기가 그릇 일어나지 않으며 연기를 어지럽히지 못하여 바른 법을 어지럽히지 못하느니라. 또 그 법을 관찰하건대 항상 언설이 없나니 그러므로 정법은 언설이 없다고 하느니라.“
적의보살이 또 물었다.
“밀적금강역사여, 그 바른 법을 수호하려고 넓은 서원의 갑주를 입음은 이것을 위하여서인가?”
“적의여, 넓은 서원의 갑주를 입고 장차 바른 법을 수호한다 함은 모든 법을 어지럽지 않게 하려 함이요, 이 법으로써 함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이 바른 법이란 것은 일체 모든 법이 다 어지러울 것이 없나니 그것이 정법을 수호함이니라.”
“어떤 것을 바른 법을 어지럽히는 것이라 하는가?”
“공포심이 있으므로 산란한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또 선남자여, 끝내 어지러움이 없는 것을 어지러움이 없다 하나니 이것이 바른 법을 수호함이니라.”
“밀적금강역사여, 어떤 방편으로 세상이 어지럽더라도 바른 법을 수호하겠는가?”
“선남자여, 세상이 어지럽기 때문에 바른 법을 수호하느니라. 왜냐하면 그 세상에서 삿된 62견이 유행하는 까닭이다. 보살의 소행은 공(空)으로 근본을 삼나니 그러므로 세상이 모두 어지럽더라도 능히 건너가느니라.
선남자여, 그 세속이란 것은 항상됨 있다고 계교하므로 ‘나’와 ‘나의 것’을 세우고 의지하여 안위를 삼나니 보살은 늘 항상됨 없고 고(苦)이며 공(空)이며 몸이 아닌 법을 깨달을새, 그러므로 세상과 같이 다투어 세상과 한 타령으로 살아가지만 보살은 방편으로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그 근원을 다하며 나고 죽음의 흐름을 뒤집어 미래제가 다하도록 보살은 공덕 쌓기를 게을리 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세상과 더불어 쟁론하여 싸워 나가느니라.
세인은 5온․여섯 감관․18계에 의존하거늘 보살업을 닦는 이는 그에 집착함이 없나니 그러므로 세상과 쟁론하여 싸우듯 하도다. 왜냐하면 티끌 속에서 티끌과 같이하지 않는 까닭이로다.
그러므로 적의여, 보살이 장차 온갖 바른 법을 수호하기 위하여서는 곧 세상과 쟁론하여 싸우느니라.”
“밀적이여, 행자가 어떻게 바른 법을 수호하는가?”
“선남자여, 바른 법을 받아 지님으로써 그 몸을 수호하며 또한 중생과 사람의 수명과 형체를 보호하나니 온갖 법을 수호함은 수호함 없는 것이 되느니라.”
“어떻게 받아 지니는가?”
“‘나’와 ‘나의 것’이 적연하며 중생상도 깨끗하여 중생상이 이미 고요하면 3세의 모습이 곧 고요하며, 3세가 이미 고요하면 불법이 곧 고요하며, 불법이 이미 고요하면 불토가 곧 고요하며, 불토가 이미 고요하면 모든 법이 곧 고요하나니, 그 모든 법에 들어갈 곳 없는 것을 곧 바른 법을 수호한다 말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밀적금강역사를 찬탄하셨다.
“착하다. 이것이 바른 법을 수호함이니라.
그 모든 법을 수호한다 함은 수호할 것 없으며 잃어버릴 것도 없음이니라.
또 바른 법을 수호한다는 것은 모든 경계와 접촉하지만 그 모든 생각들에 망상이 없나니 이미 생각함이 없을진대 그 모든 망상에 게으름을 행함이 없으리라. 이것을 곧 온갖 법에 게으름 없음이라 말하며 아울러 도법이라 말하느니라.”
그때에 회중에서 현왕(賢王)이라는 한 천자가 앞에 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의 언사가 매우 적연합니다. 그 내보이는 것은 어떤 것이 옳은 것입니까?”
“언사로써 바로 가르친 적연의 뜻은 일체 좋아하는 법에 적연을 행할 뿐이니라. 그가 법의 지혜로 더불어 이미 능히 인(忍)을 더하므로 능히 지혜의 불꽃이 치연하며, 이미 능히 치연하므로 ‘밝게 빛난다[晃曜]’말하며, 이미 능히 밝게 빛나므로 적연이며, 이것을 곧 모든 여래중(如來衆)의 총지(摠持)라 이르니라. 불도의 지니는 바가 이러하니라. 만일 법을 지니지도 아니하고 또한 법을 버리지도 아니하고 이러한 행을 펴며 이러한 말을 설할지니라.”
이 현왕 천자에게 대답하실 때에 일천 비구는 번뇌가 다하고 마음이 열렸으며 일천 천자가 세속 번뇌의 때를 멀리 여의고 법의 눈을 떴다.
그때에 적의보살이 현황 천자에게 일렀다.
“어디서 이런 변재를 얻었는가?”
“만일 능히 일체의 장애를 끊어 버리어 모두 얻을 것이 없으며 제일의를 얻은 자는 바로 의지할 데가 없나니 이것을 변재라 이르며, 스스로 깨달아 알되 신식(神識)이 변하지 않고 남을 거쳐 아는 것도 아니며 또한 설 데가 없는 것을 변재라 이르도다. 그 뜻이 방일하지 않고도 모든 경계에 노니나니 만일 능히 집착할 것이 없는 법을 받들어 행하면 곧 이러한 변재를 얻게 되리라. 만일 온갖 법을 사유하고 반복하여 시현하고
모두 알아 신식이 쉰다면 변재를 얻느니라. 선남자여, 이와 같이 행자가 변재를 얻으려면 아무 데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경계에 따르는 행도 없이 흐르는 물결, 네 하수(四瀆)의 어려움을 건너서 태어나는 것도 없으며 일어남도 없으며 또한 없어짐도 없고 능히 없앨 자도 없는 것, 이것을 건넘[度]이라 하여 변재를 얻게 되느니라.”
이때 적의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현왕 천자는 어디로부터 이 국토에 이르렀기에 이러한 변재가 있나이까?”
“아촉불국으로부터 왔느니라. 그곳에서 멸해 이 묘락(妙樂)세계에 난 것은 여래께서 연설하신 비밀경전을 얻어 보고 듣고자 함이니라.
적의여, 마땅히 알라. 이 현왕 천자 법실총지(法室摠持)의 마음에 들어갔나니 만일 한 겁이나 다시 한 겁을 지내면서 그 공덕을 찬양할지라도 그 변재의 끝을 다하지 못하리라.”
“어떤 것을 법실총지라 하옵기에 이 천자가 그 법을 따라 행하게 되었나이까?”
“선남자여, 이른바 법실총지를 얻어 이르게 되면 총혜․문자(文字)의 다함이 없는 데로 들게 되나니 온갖 법이 다 이 집에 들어가되 법에 조작하는 바가 없나니 법실을 알아 사무치며, 법실을 받들어 행하여 모든 문자에 음향으로써 연설하여 입으로 설하는 바에 법의 집[屋]을 짓되 집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나니 이것을 곧 법실총지의 업에 들어간다고 이르느니라.
또 적의여, 법의 가히 들어간다는 것은 또한 모든 법이 가히 얻을 것이 없으므로 그 들어간다는 것은 오직 지혜에서 나온 것이며, 그 문자가 좇아온 데 없이 내실(內室:法室)에 들어가더라도 그 또한 문자가 내실에 나타남이 아니며,
어디로 지향코자 할 방향이 없으며, 또 그 문자가 널리 퍼져서 나아가되 머물러 닿는 곳에 또한 생각함이 아니며, 문자가 법을 따르는 것도 아니지만 또한 법 아닌 것도 아니요, 생각함도 없나니 그 문자는 모두 말이 없되 또한 말 아닌 것도 아니며, 늘고 줄지도 않느니라.
또 문자는 일어난 것도 보지 못하고 없어진 것도 없으며 문자를 짓지도 않고 잃어버리지도 않느니라.
또 적의여, 저 문자에는 문자가 있는 만큼 심수(心數)도 있으며 일체가 이처럼 모든 법의 수가 그 돌아갈 바 있나니 저 모든 법의 수라는 것은 곧 수가 없음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법은 수에 돌아감이 아니기에 수가 있다 할 수 없나니 이것을 법수라 하느니라. 법수에 이렇게 따르는 것을 곧 법실에 들어간다 하나니 과거에 들어가지 않으며 나지 않으면 들어가 일어나는 법이 없으리니 그 낳은 것이 없으면 일어날 것도 없으리니 어떻게 들어가겠느냐? 들어갈 것이 없으므로 모든 법수에 든다 함이 다 이러하니라. 이와 같이 능히 법문을 체득하여 스스로 본디 없는 이치를 보아 곧 안주(安住)를 얻어 법실총지의 업에 들어가 중생심에 들어가나니 중생심에 들어감으로써 중생심에 따라 제도할 만한 자를 위하여 마땅히 설법하여 총지를 받는다면 이것을 적의(寂意)라 이르느니라.
적의여, 보살이 마음으로 때를 여의어 그 마음이 청정하고 유화하여 그 슬기는 매우 밝고 성행이 뛰어나 머무르는 바가 안상(安詳)해서 지혜에 잃음이 없고 원하는바 견고하여 마땅히 제도할 만 한 자는 마군이 능히 방해하지 못할 것 없으며, 번뇌를 항복 받아 없애고 모든 원적을 제거하며, 그 힘이 왕성하여 마음에 겁약하지 않고 변재가 다하지 않고 말하는 바가 한량없으며, 귀의하는 바가 한량없고 지혜에 걸림이 없어 깨달음에로 들어가며, 그 밝음은 매우 멀고 길어 묘한 듯 진정한 말을 선포하며, 그 넓게 들음은 강과 바다 같다.
이 삼매의 선정은 수미산이 바다에 처한 듯하며, 대중에 있되 사자와 같고 세속법에 의지하지 않음은 마치 연꽃이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듯하며, 마음에 사랑하고 미워함 없기는 마치 백곡․초목이 땅으로부터 솟아 자라 만민을 편안하게 하는 듯하며, 번뇌의 때를 씻되 맑은 물과 같으며, 중생을 개화하여 온갖 고독(苦毒)과 재난을 불살라 버리되 치열하게 타는 불이 모든 초목을 살라 버리듯 하며, 두루 중생을 가르쳐도 마치 큰바람이 땅 위를 스쳐가듯 하며, 평등한 마음을 행하되 보름달이 뭇 별들에 빛나듯 하며, 음욕․성냄․어리석음을 녹이되 햇빛이 어둠을 쳐 없애듯 하며 마음․뜻․의식을 항복 받되 마치 용장이 강적을 꺾어 베듯 하느니라.
그 마음을 잘 다루기 마치 용왕과 같고 때를 따라 중생을 교화․성취시키기 마치 두터운 구름이 우레를 떨치고 비를 퍼붓듯 하면, 보살이 그 마음을 잘 다루어 법의 비를 뿌려 삼계를 윤택하게 하며, 감로수를 뿌려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되 마치 하늘의 비가 바람이며 티끌을 씻어내듯 하며, 음욕․성냄․어리석음의 병을 치료하되 마치 양의(良醫)가 여러 사람의 병을 다스리듯 하며, 뜻을 세우되 없는 데에 두어 바른 법을 받들어 행하나니 곧 이 법왕의 시방을 가르침이 또한 국왕이 만민을 다스리듯 하며,
일체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살피어 교화하되 마치 사천왕이 4천하를 맡아 다스리듯 하며, 마치 천제석이 도리천궁에 처하여 모든 하늘 사람을 인도하여 교화하듯이 보살도 이와 같이 욕계에 있어서 중생을 교화하되 빛깔․소리․향기․맛․부드러움의 부딪침이 깨끗하고 밝은 구슬과 같으며, 그 행동을 조용하게 다루되 마치 사슴의 무리를 따르듯 하며,
법의 가르침을 공손하게 이어받아 참된 행을 사랑하되 마치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여 안온을 얻게 하듯 하며,
모든 기술을 깨우쳐 주되 마치 아비가 그 자식을 가르치듯 하며, 모든 법을 듣고 따라 나아가게 하되 식의왕(息意王)이 스스로 덕으로 장엄하듯 하며, 32의 복덕상으로 사귀어 꾸미고 80종 좋은 모습으로 장엄하여 일체 세간과 같이 우러러 받드는 바이니라.
사견(邪見)에 얽매인 바가 되지 않고 일곱 가지 재보(財寶)가 갖추어져 빈궁한 업이 없고 시방 부처님의 옹호한바 되고 모든 지혜로운 자의 찬탄하는바 되며 여러 회중이 다 가리고 위로 모든 하늘이 수호하여 공양하며, 모든 선지식을 거두어 잡아 주고 법을 강하여 회상에 제일의 상수(上首)가 되며, 6신통을 갖추어 자재하며, 또 두루 중생의 성행에 들어가서 일체의 근기를 두루 관찰하여 법을 연설하되 일찍이 권태로움이 없으며, 길이 이익을 탐내지 않고 법 펴기를 즐겨하되 아끼지 아니하며,
그 뜻이 청정하여 범하거나 저버리는 일이 없으며, 인욕으로 그 욕된 바를 풀어 밝히되 넘치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하는 사업이 능히 그 끝을 맺으며, 언제나 청정하고 정진하되 심정이 안정되고 유화하며, 한 마음 청정하여 모든 때를 덜어 버리고 깨달음의 마음이 탄연하여 지혜가 청정하며, 4범행을 닦되 게으름이 없으며, 세간을 건너려고 선정․삼매로 정수(正受)에 이르며, 위없는 보살도와 불도에 이르기까지 두루 능히 성취하여 마땅히 행할 업은 중간에 방일하여 쉼이 없이 불퇴전에 이르나니 이것을 적의라 하느니라.
보살대사가 법실에 들어가서 총지를 얻으면 그 공덕이 장엄하기 이러하니라. 적의여, 마땅히 알라. 가령 보살이 세간에 머물러 있으면서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백천세를 찬탄할지라도 그 총지행은 선설하기 어렵나니
모든 보살대중도 능히 총지행의 모든 보살덕을 마르게 하지 못하느니라.”
그때에 적의보살이 현왕천자에게 일렀다.
“인자여, 큰 이익이 다함없는 경사로다. 이제 여래께서 서로 그 덕을 찬탄하신 광채가 이러함이여.”
천자는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이 모든 법에 참으로 얻을 것이 끝내 없는 것, 이것이 공덕을 찬탄함이로다.
선남자여, 그 색(色)도 없고 형상도 없고 모양도 없는 행자에게 공덕을 찬탄하되 능히 사무쳐 다할 수 없으리로다.”
그리고 현왕천자는 부처님께서 아뢰었다.
“온갖 법을 받아 가질 수 없으며, 또한 ‘나’와 ‘나의 것’이 없으며, 어디나 속한 데가 없나니 그러므로 사람에게 맡길 수 없으며, 또한 빼앗을 수도 없나이다. 대성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법을 좋아하여 수행한다면 마땅히 평등을 행할 것이고 만일 부지런히 받들어 행하여 평등이란 가르침을 닦는다면 그 얻을 법문은 마치 현재의 이 대지(大地)가 물 위에 있고 물은 바람 위에 있는데,
가령 어떤 사람이 땅을 파서 흙을 내되 그 힘을 다하면 반드시 물을 얻게 되나니 이렇게 어디서나 물을 얻어서 목마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듯이 여래의 성혜(聖慧)도 일체 중생의 성품에 두루 들어가 있나니 여래의 해탈을 구하는 자가 부처님의 법대로 정진을 닦는다면 그 방편으로 큰 지혜의 빛을 얻어서 그 정진한 공이 헛되지 않나니 마치 땅을 파서 깊이 들어가면 반드시 물을 얻는 것과 같나이다.
다시 어떤 사람이 여래 처소에서 정진을 받들어 행하면 큰 지혜의 광명을 일으키나니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불도를 구하고자 할진대 항상 정진을 행할 것입니다.
어떻게 정진하는가 하면, 마땅히 이 모든 법문으로써 할 것이니 마치 나면서 장님인 사람이 처음부터 빛깔을 보지 못하듯이 사람이 정진하지 않으면 곧 어리석고 캄캄한 장님의 무리와 같이 모든 법의 시종을 보지 못합니다. 또한 눈이 있는 사람이라도 빛을 빌려야 보나니 빛이 없는 어두운 밤에는 보지 못하듯 외도․선인(仙人)의 하늘 눈[天眼]도 이와 같이 착한 벗을 여의면 개화(開花)할 수가 없어서 모든 관(觀)을 깨달아 받아들인 법을 보지 못하나이다.
하늘 눈과 같이 만일 남자가 자연의 지혜가 있다면 광명을 쓰지 않고 눈을 성취하리니 큰 지혜가 있으므로 그 행이 그러하나이다. 마치 넓은 들에 나는 새가 넓은 땅에 노닐 때에 허공이나 들판이 늘고 주는 것을 보지 못함과 같이 일체 보살의 정진행도 이와 같이 불도의 늘고 주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일체 보살이 도품법에 들어가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설산(雪山)이 비와 이슬로 말미암아 수목이 생장하여 바람의 재해를 보지 않듯이 보살도 이와 같이 때를 따라 행할 것을 행하므로 지혜 광명을 내어 일체를 비추되 중생에게 수를 헤아리는 바 없이 노닐어 머무르는 곳에 잊어버리는 일이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전륜성왕이 왕족의 집에 나자 7보가 곧 나타났나니 어떤 것이 일곱인가? 첫째는 붉은 금수레 바퀴가 천 폭이 있는 것이요, 둘째는 흰 코끼리가 여섯 마리 있는 것이요, 셋째는 감청빛의 신마(神馬)가 까마귀 머리에 붉은 갈기요, 넷째는 여덟모가 난 명월주(明月珠)요, 다섯째는 옥녀의 왕후가 입에선 연꽃향기․몸에선 전단 향기를 풍기는 것이요, 여섯째는 창고를 맡은 거룩한 대신이요, 일곱째는 군사를 맡은 대장군으로 4천하의 군사를 거느림이니 이와 같이 대성이시여, 보살대사도
7보로 세상에 나타날 때에 저절로 도의 보배가 세상에 나타나나니 어떤 것이 일곱인가?
첫째는 보시바라밀의 다함없는 보배요, 둘째는 계를 지님이요, 셋째는 욕됨을 참음이요, 넷째는 정진이며, 다섯째는 일심 선정이요, 여섯째는 지혜요, 일곱째는 선교방편 바라밀의 다함없는 보배인데 이것들이 세상에 출현하여 일체를 제도하나니 마치 전륜성왕이 4천하에 두루 노닐면서 한량없는 인민의 갖가지 생각하는 바를 관찰하듯이 보살이 네 가지 은혜로 중생을 구호하되 중생의 갖가지 종류를 생각하지 않고 본래 없는 이치를 알아 사무치나이다.
마치 전륜성왕이 하는 사업이 바른 좌석에 앉으면 싸우며 다투는 이가 없고, 시비곡직을 가리지 않고도 뭇 백성들이 절로 그의 명령에 순하여 따르듯 보살도 이와 마찬가지로 불법의 자리에 처하면 감히 투쟁하는 자 없으며, 어디로 왔던 마군의 권속들이 비록 악한 뜻을 품었더라도 저절로 항복하고 마나이다.
마치 삼천대천세계의 앞에 철위산․대철위산․수미산왕이 서 있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이 먼저 대승을 세우고 다음에 대비심을 세워서 성품이 인화하여 가장 다함이 없는 데에 머무나이다.
마치 해가 처음 떠오를 때에 큰 광명이 먼저 철위산․대철위산․수미산에 비추고 나서 그 나머지에 비추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이 지혜의 햇빛을 연출하여 삼계를 두루 비추되 인화심(仁和心)으로 먼저 중생에게 대승 광명을 비추어 3독의 어둠을 제거하고 모두 신통을 얻게 하나이다.
마치 모든 나라(國)․읍(邑)․군(郡)․현(縣)이 땅에 의지하며, 일체의 초목, 백곡이 땅에 의탁하여 나듯 보살의 온갖 덕의 종자 또한 모두 도심에 의해 성혜(聖慧)를 길러 내어 정각을 이루나이다.”
그때에 세존은 현왕천자를 찬탄하셨다.
“착하구나 선남자여, 비유를 끌어 공덕을 설하기 이러함이여.
선남자여, 저 중생계와 법계와 같이 총지를 체득한 보살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아서 온갖 것이 다 항상됨 없는 데로 돌아간다는 것을 비유를 끌어 말하되 이치에 맞도록 하느니라. 요컨대 일찍이 생사를 걱정하여 싫증내지 않는 것도 이러하므로 능히 그 말할 것을 부연하나니 모두 입으로 말하지도 않고 또 말할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만일 보살이 총지를 얻지 못하면 언교로 지을 인연이 있을 수 없으리라. 또 그 보살이 걸림 없는 변재를 얻어서 일으킴이 아니니 그 나머지 성문이 이러한 변재 없음의 근본을 관할 생각은 않고 이에 설법하려 하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이 보살들은 걸림 없는 변재를 얻어서 말이 다하지 않고 가려 덮는 것이 없으며, 끊임이 없고 쉼이 없이 분별하는 변재로써 모든 부처님 앞에서 법을 설하여 겁내지 않고 약하지 않나니 보살이 이렇게 부처님께서 건립하신 총지문을 얻으므로 법을 설해 열등한 마음을 품지 않느니라.
보살은 이와 같이 세 가지의 걸림 없는 변재를 얻나니, 첫째는 총지에 걸리는 바 없는 것이요, 둘째는 변재에 걸리는 바 없는 것이요, 셋째는 도법에 걸리는 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세 가지니라. 다시 세 가지 일로 청정업에 들어가나니 어떤 것이 셋이냐? 첫째는 자연의 청정이요, 둘째는 본무의 청정이요, 셋째는 본제(本際)의 청정이니, 이것이 세 가지니라.
또한 세 가지의 다함없는 곳에 들어가나니 어떤 것이 셋이냐? 첫째는 경법의 다함없음이고, 둘째는 문자의 뜻이 다함없음이고, 셋째는 가르침을 베푸는 곳이 다함없음이니, 이것이 세 가지니라.
또한 세 가지의 머무름 없는 곳에 들어가나니 어떤 것이 셋이냐? 첫째는 성혜의 머무름이 없는 곳이고, 둘째는 언사․문자가 또한 머무름이 없는 곳이고, 셋째는 닦는바 방편이 또한 머무름이 없는 곳이니라. 또 세 가지의 응구첩대(應口輒對:三卒決對)가 있으니 어떤 것이 셋인가? 첫째는 근거에 응하여 민첩한 슬기를 베푸는 것이요, 둘째는 묻는 일에 곧 답변하는 것이요, 셋째는 그때에 응하여 슬기롭게 답변하는 것이니라. 다시 세 가지의 귀결을 빨리 지어 주는 슬기가 있으니 무엇이 그 셋인가? 첫째는 의심된 것을 결단하여 남을 맺음이 없게 함이요, 둘째는 망설임을 끊어주어 이런지 저런지 하는 생각을 잃게 함이요, 셋째는 모든 중생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셋이니라.”
이런 말씀을 하실 때에 8천 보살들이 총지를 얻었다.
그때에 밀적금강역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 세워 놓으신 경전을 다음 여래께서 멸도하신 뒤, 최후 말세에 천하에 선포하여 염부제에 오래도록 머물러 멸해 없어짐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그때에 세존께서 두루 4방을 관찰하시고는 게송으로 설하였다.
여섯 감관[六根] 항복 받아 저절로 거룩하거니
고요한 감관을 해칠 것이 무엇이랴.
근본 없는 그 없음도 끊어 버리어
마군의 도당을 엎어 버렸네.
해탈로 청정한 경계 알고 보면
두려움 없이 두려움에서 풀려지나니
번뇌의 무거운 짐 놓아 버리고
의술이나 주술(呪術)에 용한 스승으로서
온갖 외도와 사견을 물리쳐
바른 법으로 거두어 주어 구호하며
바른 법 행하는 이 보호하나니
신비로운 주술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
무아(無我)로써 아(我)를 제거하나니
그 뜻이 마땅히 건질 만한 것
저 사천왕에게
무택(無澤)의 장구(章句)를 설하리니
용맹스레 장구를 지닌 공훈이여,
깨끗하고 또 깨끗한 정등각의 법이라고
범천과 제석천도
그 하는 행이 이러한 법이었나니
자씨(慈氏)도 이 법의 지혜[法忍] 통달하여서
자비의 관으로 이것을 관찰하므로
사랑스런 마음으로 범천을 보되
이것은 범한 일 없다고 본다.
광야에서 텅 비었다는 생각 여의어
근본이 없는 법을 정(淨)이라 하나니
마군의 권속을 항복 받기에
그러므로 이 신주(神呪)를 설하였도다.
사람 가운데 높은 이의 말씀하신 것
이 경의 뜻을 잘 이해하여서
그때에 두루 유포하되
받아들일 만한 그릇에 따라서 한다.
이 주술을 연설할 때에
이 땅도 크게 흔들리면서
마군들 다 같이 나와서
각기 입으로 이렇게 말하였나니
말로써 머리되는 이를 보호하는
이것을 법사라고 이르나니
만일 손으로 이 경을 얻는다면
‘부처님의 말씀하신 뜻을 얻겠다’고 한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밀적금강역사에게 이르셨다.
“이 경전을 건립하기를 마치었도다. 이제 이것을 건립하매 능히 어지럽힐 자가 없으리라. 왜냐하면 내가 생각건대 지나간 세상에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이름은 보월(寶月)이라 세상에 출현하셨다. 세계는 무열(無悅)이라. 그 부처님 때에 두 비구가 있어서 법사가 되었으니 하나는 지적(智寂)이라 불리고 하나는 지지성(持至誠)이라 불렸다. 위신․변화와 높은 덕이 다함없으며 매우 거룩하였다. 그 여래께 이 경전의 주문을 받아 받들어 지니다가 여래가 멸도한 뒤에 반 겁 동안 법을 지니면서 삼천대천세계 백․만․억․마군을 다 개화하여 위없는 정진의 도를 받들게 하였느니라.
밀적아, 알겠는가? 그때의 두 비구의 법사된 자가 어찌 다른 사람이냐? 그 지적이란 이는 곧 나의 몸이요, 지지성 법사는 곧 밀적금강역사니라. 그 모든 장구(章句)는 이제 이 경전이라, 요익할 것이 많고 바른 법을 수호함이 되느니라.”
그때에 세존이 4방으로 일체 회중을 관찰하시고
선언하셨다.
“너희들 정사(正士)는 능히 이것을 감당하겠느냐? 여래가 무수한 겁으로부터 공을 쌓고 덕을 포개어 위없는 정진의 도를 모두 지니고 옹호하되 걸리는 일이 없었나니 이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도를 입은 것은 과거․현재․미래의 부처님을 말미암아 난 바이니라.”
이에 보살은 회중 가운데 3만2이천 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서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게송으로 설하셨다.
그 몸과 목숨도 내어버리고
고요히 생각하여 적연(寂然)을 좋아하며
이 경전을 받아 지니나니
세존의 찬탄하시는 바이로다.
이 경은 좋은 약과 같아서
일체의 난치병을 치료하나니
말씀하신 가르침을 받아 지니면
부처님의 참된 뜻을 발견하리라.
그때에 현왕천자 등 500천자가 게송을 설하였다.
모든 중생에게 베풀어 쓰려고
그래서 공덕 쌓기를 생각하오며
이 경전을 받아 지니나니
훌륭하고도 미묘하여라.
이에 밀적금강역사가 게송을 설하였다.
이 경의 뜻은 문자가 없건만
어떻게 도리어 문자를 베푸셨나?
사람 가운데 가장 높은 이께서 하신 일이니
베푸신 것을 내 마땅히 받아 지니리.
그때에 세존께서 석씨(釋氏) 범천에게 이르셨다.
“여래가 세 가지 가히 한량없는 최상 공양을 가졌으니 덕이 다함이 없도다. 어떤 것이 셋이냐? 첫째는 지극한 마음이 인화하여 그 도심을 발함이요, 둘째는 도심을 발하여 바른 법을 수호함이요, 셋째는 그 들은 바 법과 같이 사람을 위하여 해설함이니라. 몸으로 이렇게 행하면 이것이 가히 헤아릴 수 없는 덕에 이르게 되느니라.
범천아, 마땅히 알라. 여래가 이 세 가지의 일로 공덕을 쌓은 것은
가령 그 수명이 1겁을 세상에 머물며 널리 분별하여 말하더라도 다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범천아, 마땅히 수순․공경하여 여래 지진을 받들어 모실지니라. 이것이 세 가지의 일이니라. 범천아, 여래를 공양하고 4구송(句頌)을 받으라. 이것이 과거․현재․미래 부처님께서 설한 바 법이니 받아 옹호하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다 이 법으로부터 나므로 마땅히 법을 공양할지니라. 법을 공양함은 의식으로 공양함이 아니니라. 법 공양은 모든 공양 가운데 높은 것이니 위가 되고 어른이 되며, 짝이 없고 비교할 데 없으리라. 그러므로 범천아, 마땅히 바른 법으로써 서로 공양할지니 이 진제(眞諦)를 공양함은 의식으로 함이 없느니라.
내가 기억하건대 범천왕이 과거에 일찍이 왕태자로 태어났으니, 이름은 의행(意行)이라. 왕가에 나서 진제의 가르침을 받고 도법을 즐기더니 어느 때 꿈속에 이 4구송을 들었다.”
본행(本行)이 방일하여 벗어날 길 없더니
중생을 위하므로 도에 뜻하셨네.
조용한 데 머물러서 바른 생각 따르며
탐욕심 버리자 마음 절로 편하네.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에 이 게송을 듣고 꿈에서 깨자 그 기억이 분명하여 크게 기뻐하며 마음이 시원하여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통쾌하도다. 위없는 즐거움이여.
다함없는 법장을 얻음이여.
마땅히 빈궁한 중생들
인간․천상․백성에게 만족하게 하리라.
부처님께서는 선안(善安) 대범천에게 이르셨다.
“그때에 왕태자는 진제의 법에 안심됨을 얻고 문자 없는 이치를 깨닫고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이 게송의 뜻으로 중생의 빈궁한 사람을 만족시키리라’하고 가서 부모에게 말하였느니라.
‘어찌 금․은․유리․수정․자거․마노․명주의 창고가 있지 않습니까?
궁핍한 백성을 건져 주어 기쁘게 해주려 합니다.’
그 부모는 말했느니라.
‘일체 재산은 참된 보배가 아니로다. 수(水)․화(火)․도적․원가(怨家)․채주(債主)․현관(懸官)․악자(惡子)에게 알려져 나누게 될 뿐이로다. 널리 듣는 지혜는 재산으로 구할 수 없는 매우 얻기 어려운 것이니 너의 뜻대로 있는 재물을 널리 베풀어 모든 궁핍한 자에게 주라. 삼계가 공한 줄을 깨닫고, 이르기 어려우며 다함이 없는 지혜를 얻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범천이 4구게를 듣고 8천 인을 교화하여 도에 들게 하며 무수한 중생을 장차 하늘에 낳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범천아, 이렇게 깊고 묘한 법을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며, 사람을 위하여 널리 말하여 듣고 이를 기쁘게 해주며, 혹 받들어 행하면 그 덕은 헤아릴 수 없이 다함없는 법장(法藏)을 얻게 될 것이니라.
가령 범천이 대승업을 행함에 세 가지 법으로 보살을 이익 되게 하나니, 어떤 것이 셋이냐? 첫째는 행법(行法)을 듣고서 그 행에 서서 행법 받아들이기 싫어함 없는 것이며, 둘째는 도법을 성취하는데 행으로 요(要)를 삼되 입 지키는 것을 제일로 하며, 해칠 마음으로 중생을 대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놓지 않음이니라. 이것이 셋이니라. 그러므로 범천아, 중생을 이익 되게 하되 마땅히 이 경전을 권하여 인도할 것이니라.
다시 두 가지 일로 짓는바 행원에 잃어버림이 없나니 어떤 것이 둘이냐? 첫째는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도를 이루심에 여래께 권청하여 법바퀴를 굴리게 하며, 출가 대중을 교화하여 보살행을 닦게 하기를 부처님 세존께서 자재한 법왕이 되어 잘 가르쳐 훈계하되 능히 미칠 이 적게 하듯이, 따라가기 어려움이 이러하니라.
그러므로 범천아, 이와 같은 방편으로 성취시킴이 많으며 일체 중생으로 생․노․병․사를 덜어
함이 없는 업에 이르게 하여, 저 색에 집착이 없으며, 이것을 알고 깨치므로 능히 온갖 고통을 참고 구하는 일이 없으며, 모든 인간․천상을 맡아 3인(忍)을 성취하며, 바른 법을 잡아 지니고 읽고 외우나니 이것이 매우 어려우니라. 이 경을 받드는 자는 마땅히 이렇게 관할지니라.
‘내 몸 받기를 억․천․만 겁에 청정행을 닦아 불토를 장엄하고 바른 법을 옹호하여 빨리 정각을 이루리라.’”
부처님께서는 현자 아난에게 이르셨다.
“이 경전을 받아서 지니고 읽고 외우며 남을 위하여 말할지니라.”
아난은 대답하였다.
“예, 그러하오리다. 마땅히 받아 지니기를 굳게 하오리다.”
“아난아, 이 법을 가져서 법 아닌 그릇에 맡기지 말며, 모든 악지식에게 맡겨 주지 말며, 착한 벗으로 마땅히 배우기를 사모하는 자에 베풀어 이 경법을 수호하게 할 것이니라.
아난아, 이 경은 법 아닌 데 돌아가지 아니하고 마땅히 그 그릇으로서 능히 법을 받들어 행하며, 항상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무리에게 돌아가게 되리라.
또 이 경은 망상이 있을 수 없으며 서응(瑞鷹)이 앞에 나타나니 정진의 소치로 이 경전을 지닌다면 이러한 복보(福報)가 있으리라.”
“마땅히 이경을 받아서 부처님이 위신을 이어 항상 널리 유포하리다. 만일 이 법을 받으면 부처님의 위신을 이어 그 빛이 멀리 비치리니 이들은 그릇되지 않을 업에 따르리다. 또 이 경은 그 이름을 무엇이라 하며 어떻게 받들어 행하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경은 ‘부처님께서 훈회(訓誨)한 바라’ 이름하라. 또 아난아, ‘밀적금강역사의 선포한 교의’라 이름하리니, 마땅히 받들어 행할지니라.
또 ‘여래의 공덕 보응’이라 이름하나니, 마땅히 받들어 지닐지니라. 또 ‘여래비밀경법품’이라 이름하나니 남을 위하여 분별하되 이익을 바라는 마음 없고 무량 공덕에 돌아가 법률을 수순하여 받들어 지닐지니라 그 까닭은 만일 이 경을 받들어 지니는 자가 있으면 이제 부처 눈[佛眼]으로 두루
불국토와 시방국을 보나니 땅으로부터 위로 삼십이천 사상천(思想天)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가득찬 7보와 백가지 음식으로 여래께 받들어 베푸는 이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받들어 행하되 이익을 바라는 마음이 없이 남을 위하여 말한다면 그 덕이 가장 많으리라. 또는 의식으로 공양하는 것보다 이 경전의 요긴함으로써 여래의 덕을 선양한다면 복 얻는 것이 한량없어 가히 비유하지 못하리라.”
이 경을 말할 때에 한량없는 중생이 큰 도심을 발하며, 헤아릴 수 없는 보살이 법인을 얻었으며, 다시 무수한 보살이 일생보처에 이르렀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현자 아난과 밀적금강역사와 적의보살과 큰 성문 일체 회중과 모든 하늘 사람과 아수라․건달바와 세간 사람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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