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방편불보은경(大方便佛報恩經) 6권
대방편불보은경 제6권
실역인명
김달진 번역
8. 우파리품(優波離品)
그때에 여래께서는 대중들이 둘러싸고 공양하고 공경하며 존중하고 찬탄하였다.
아난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대중의 마음을 자세히 살폈더니 모두가 다 의심하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여래 세존이시여, 어떻게 우파리는 낮고 천한 사람이온데,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는 것을 허락하셨나이까? 그의 출가를 허락하셨기 때문에 모든 왕과 찰리(刹利)성바지들을 헐뜯고 욕보여서 공경하지 않는 마음을 더하고, 믿는 마음을 더럽혔기 때문에 영원히 복밭을 잃어버리며, 이에 백정왕(白淨王)의 아들 난다(難陀)비구에게 업신여기는 마음을 내도록 하였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잘 들어라.
너희들은 여래에게 평등과 크게 가엾이 여김[大悲]과 3념처(念處)와 5지(智)며 삼매(三昧)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우파리비구가 진실로 낮고 천한 사람으로서 하천한 행과 하천한 서원과 하천한 정진을 닦아 익힌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너희들은 여래의 번뇌와 무상함과 변천함을 말할 수 있을지언정 우파리가 낮고 천한 이로서 출가하였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여래는 바르게 두루 아는 것으로 진실한 말을 널리 말하리니, 너희들은 응당 부처님의 말을 믿어서 받아야할 것이니라.
여래는 나고 죽음과 허물과 근심이며 홀로 깨달음과 부처가 된 이들을 알아보니, 우파리 또한 따라 출가하여 3명(明)ㆍ6통(通)과 8해탈을 갖추어서 천상과 인간의 대중들이 더욱 존경하고, 바른 법을 보호하며 계율을 지니는 데에 첫째이므로 공양 받을 만하여 중생들에게 세 가지 미묘한 과보인 현보(現報)1)와 생보(生報)2)와 후보(後報)3)를 성취하게 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알아야 하리라, 우파리는
기특하고 미묘한 행으로 두루 대비보살(大悲菩薩)이 되었으니, 이미 과거 한량없는 백천 만억의 부처님 처소에서 뭇 덕의 근본을 심었고, 또한 그 부처님 법 가운데서 계율을 지니는데 첫째였으며, 또한 석가모니부처님 법 중에서도 계율을 지니는데 첫째이니라.”
그때에 난타(難陀)비구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땅에 엎드려 대교진여(大憍陳如)의 발에 예를 올리고, 차례대로 하여 우파리 앞에 이르렀는데, 고개만 숙이고 쳐다보며 서서 합장하고 마치니, 여래께서 곧 난타를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난타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너는 가난하다고 업신여기지 말고
또한 부하고 귀하다고 높이지 말지니
출가자의 법은 응당 그러하니라.
난타는 부처님께서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는 갖가지 설법을 듣고, 마음으로 기뻐하며 곧 의복을 바르게 하고 땅에 엎드려 우파리의 발에 예를 올리자 바로 그때에 하늘과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몸과 마음이 부드러워지며 자기의 이익을 얻어서 할 일을 다 마쳤다.
부처님께서 우파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빨리 삼보(三寶)와 4제(諦)며 집에 있거나 집을 떠나거나 한 일곱 가지 대중[七衆]들에게 차별 있는 3귀(歸)ㆍ5계(戒)와 내지 온갖 계율인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계율[利益衆生戒]ㆍ번뇌를 깨끗이 하는 계율[淨煩惱戒]ㆍ위의를 조화롭게 다스리는 계율[調御威儀戒]ㆍ선정의 계율[禪戒]과 샘이 없는 계율[蕪漏戒]을 사자처럼 외쳐서 삼보를 매우 번성하게 할지니라.”
우파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거룩한 신력으로써 이끌어 도와주시면, 저는 조금 여쭈며 물을 수가 있겠습니다.
무엇을 삼보라고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ㆍ가르침ㆍ승가이니, 삼보에 만약 성품[性]이 없다면 어떻게 가르침이니 승가니 하는 차별된 이름으로 분별하여 말씀하시오며, 삼보에 귀의하는 이는 어떻게 받들어 행하여야 합니까?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 만약 하나라고 한다면 삼보라고 말하는 것은 마땅한 말씀이 아니오며, 만약 삼귀(歸)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일곱 가지 대중이라고 이름할 수 있습니까?”
이어서
우파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디에 귀의하는 것을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때에 여래께서 하나하나 알맞게 풀이하면서 대답하셨다.
“붓다[佛陀]라 함은 깨달았다[覺]는 것이니, 온갖 법의 모양을 깨달아 환히 알기 때문이며, 또 일체 중생들이 삼계(三界)에서 긴 잠을 자는지라 부처님은 도의 눈[道眼]을 이미 뜨시어 스스로 깨달았고 남도 깨닫게 하시기 때문에 ‘깨달았다’라고 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온갖 법에서 온갖 것을 얻었고 온갖 것을 말씀할 수 있느니라.”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온갖 것을 말씀하십니까? 때에 맞추어 모임에 맞게 마땅함을 따라 말씀하시나이까, 무리에 합당하게 서로 따르면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셨다.
“부처님은 만물을 따르면서 때에 맞게 온갖 법을 말하나니, 뒤에 여러 제자들은 법장(法藏)을 결집(結集)하되 같은 것끼리 기록하라.
부처님이 때로는 여러 제자들을 위하여 계율의 가볍고 무거움과 해독이 있는 것 해독이 없는 것을 제정하면 기록하여 율장(律藏)을 만들 것이며, 때로는 인과의 형상과 여러 번뇌의 생김이며 업의 모양을 말하면 모아서 아비담장(陀毘曇臧)을 만들라.
여러 하늘과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때를 따라 법을 말한 것은 모아서 증일(增一)을 만들 것이니, 이를 사람들에게 권유하고 교화하여 익히도록 할 것이며, 영리한 근기를 지닌 중생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 깊은 이치를 말한 것은 중아함(中阿含)이라 하여 이를 학문하는 이가 익히도록 할 것이며, 갖가지 선정의 법을 따라 말한 것은 바로 잡아함(雜阿含)이니 좌선하는 사람이 익힐 것이며, 모든 외도를 깨뜨리는 것은 바로 장아함(長阿含)이니라.”
물었다.
“부처님께서 만약 온갖 것을 말씀한다 하시면, 경전에서 말씀하시되 ‘부처님께서 한 그루 나무 아래 앉아 한 나뭇가지의 잎을 붙잡고 제자에게 묻기를, 〈이 가지의 잎이 많으냐, 나무 위의 잎이 많으냐?〉하시자, 대답하기를, 〈나무 위의 잎이 많습니다〉라고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알고 있는 법은 나무 위의 잎과 같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법은 손바닥 안의 잎사귀와 같으니라〉라고 하셨다’라고 했으니, 어떻게 부처님께서 온갖 것을 말씀하신다 하시옵니까?”
대답하셨다.
“다른 모양[別相]의 온갖 것과 통하는 모양[總相]온갖 것이 있는데, 지금 말하는 것은 다른 모양의 온갖 것이니라.
말하자면, 부처님은 온갖 것을 말할 수 있지만 다만 중생들이 다 받아들일 수가 없을 뿐이지 부처님이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또 말하자면, 온갖 아는 것을 곧이곧대로 말해야 마땅하나 말로 온갖 것을 다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물었다.
“만약 부처님께서 알고 계시는 것을 말할 수 있다면, 성문ㆍ연각도 아는 것에 의지하여 말할 수 있거늘, 왜 부처님이라 부르지 않나이까?”
대답하셨다.
“그렇지 않느니라.
부처님의 앎과 말함은 두루 다하나 2승(乘)의 앎과 말함은 법에 대하여 다하지 못하는 바가 있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부처님은 일체 법을 이해하므로 다 이름 지을 수 있지만 2승은 할 수가 없으며, 또 부처님은 그지없는 법을 얻었으므로 그지없는 말을 할 수 있지만 2승은 할 수가 없으며, 또 함께 할 수 있는 것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2승이 얻은 것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부처님이 얻은 것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니라.
성문이 얻은 것은 3승(乘)이 같이 알고, 중승(中乘)이 얻은 것은 2승이 함께 알지만, 오직 부처님이 얻은 것은 2승이 모르며 부처님 자신만 아느니라.
또 상자가 크면 덮개도 크며 법이 크면 법의 모양도 그지없나니, 부처님은 그지없는 지혜의 힘으로써 그지없는 법을 알고 말하지만, 2승의 지혜는 끝이 있기 때문에 법의 모양을 일컫지 못하느니라.
다시 또 뿌리[根]와 뜻[義]에 있어서, 뿌리란 슬기의 뿌리요, 뜻이란 법을 반연한 슬기이니, 부처님은 뿌리와 뜻이 모두 원만하여 법을 반연한 슬기를 다하지 않음이 없지만 2승은 뿌리와 뜻이 둘 다 원만하지 않느니라.
또 부처님은 사실과 똑같이 아는 지혜[如實智]라는 이름을 얻었나니 일체 법의 모양을 사실과 꼭 같이 훤히 알기 때문이요, 2승이 아는 법은 근원과 밑바닥을 다하지 못할뿐더러 두루 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므로 사실과 똑같이 아는 지혜라고 일컬을 수 없나니, 이런 갖가지 뜻 때문에 2승은 부처님이라 부를 수 없느니라.
바가바(婆伽婆)란 음성으로 전할 수 없고 뜻으로 풀이할 수도 없으니, 어떻게 세존을 온갖 다스리는 법으로써 알 수 있겠느냐.
또 세상의 법과 말과 소리는 같지 않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서로가 알지 못하지만, 부처님은 모두 알기 때문에 세존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에게 당부하나니 무릇 2승 범부는 스스로 법을 얻었다 말하고 혹은 고요함과 잠잠함을 좋아하며 혹은 선정에 들기도 하고
혹은 남은 인연을 숨기고 아껴서 말하지 않기도 하지만, 부처님께서 얻으신 법은 사랑과 가엾이 여기시는 힘 때문에 즐거이 남을 위하여 말하느니라.
또 3독(毒)을 깨뜨렸으므로 세존이라 부르는 것이니라.”
물었다.
“2승 또한 3독을 깨뜨렸거늘 왜 세존이라 부르지 않나이까?”
대답하셨다.
“그렇지 않느니라.
2승은 물러남이 있지만, 부처님은 물러남이 없기 때문이니라.
물러남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과위에서 물러남[果退]과 과위 아닌 데서 물러남[不果退]과 쓰는 데에서 물러남[所用退]이니, 과위에서 물러남이란 성문이 세 가지 과위에서 물러나는 것이요, 아래 과위에서는 물러나지 않느니라.
중승에는 두 가지이니, 만약 백 겁 동안 익히고 행하여 벽지불의 과위를 이루었으면 물러나지 않거니와, 만약 본시 하승(下乘)의 세 가지 과위에서 벽지불이 되었다면 과위에서 물러남이 있느니라.
부처님은 과위에서 물러나지 않느니라.
과위 아닌 데서 물러난다는 것은, 만약 3승을 향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얻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이요, 만약 비구로서 세 가지 업을 닦으면서 게을러 나아가지 못한다면 무릇 닦고 익히는 것에서 물러나 부지런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과위 아닌 데서 물러난다고 하는 것이니라.
쓰는 데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얻은 바의 법을 바로 앞에서 다 쓰지 못하는 것이니, 마치 부처님의 10력과 소승의 열 가지 지혜는 하나를 쓰면 나머지는 곧 쓰지 않는 것과 같으며, 마치 10만 말씀의 경전을 외면서 만약 때 맞춰 다 외지 못한다면 이것을 쓰는 데에서 물러난다고 하는 것이니라.
하승은 과위 아닌 데서 물러나고, 중승도 과위 아닌데서 물러남이 있거니와 부처님은 과위 아닌 데서 물러남이 없으니, 일체의 행 가운데서 부지런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니라.
2승은 쓰는 데에서 물러남이 있거니와 부처님은 곧 일정하지 않느니라.
또 말하자면 10력(力) 가운데서 한 가지를 쓰게 되면 아홉 가지는 쓰지 않기 때문에 물러난다고 하는 것이니라.
또 말하자면 쓰지 못하여 물러남은 없으니, 마치 20만 말씀의 경전을 외울 적에 범부는 힘이 열약하기 때문에 혹 하루나 이틀 만에 외워 마치거니와 부처님은 즉시 외워 마칠 수 있는 것처럼 10력도 그러하여 쓰려고 하면 곧 쓸 수가 있어서 장애됨이 없기 때문에 쓰지 못하여 물러남이란 없는 것이니라.
또 말하자면, 부처님은 쓰지 못하여 물러남이 없다는 것은 마치 열반승(涅槃僧)4)을 곧바로 입지 않는 것과 같아서, 마치 범부들의 법은 모두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한 까닭에 쓰는 법에 이익이 있으면 쓰고 이익이 없으면 쓰지 않는 것과 같나니,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로되 일부러 쓸 필요는 없으면 물러나는 것이므로, 비록 각각 아는 바가 있다하더라도, 정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부처님의 뜻이야말로 헤아릴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느니라.”
물었다.
“성문은 어째서 세 과위에서는 물러나고 아래의 과위에서는 물러나지 않나이까?”
대답하셨다.
“세 과위는 일찍이 얻었기 때문에 물러나거니와 아래의 과위는 아직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물러나지 않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굶주리다가 좋은 음식을 먹으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것처럼 이 뜻도 또한 그러하니라.
또 말하자면, 아래 과위에서는 인(忍)은 걸림 없는 도[無礙道]를 짓고 지(智)는 해탈의 도를 짓는 것인데, 세 과위에서는 지가 걸림 없는 도도 짓고 지가 해탈의 도도 짓기 때문에 물러나는 것이니라.
또 말하자면, 견제도(見諦道)에는 물러남이 없지만 사유도(思惟道)에는 물러남이 있나니, 깨끗하지 못한 것을 깨끗하게 하려는 생각으로 번뇌를 끊기 때문에 사유도에는 핍박함이 있고 견제도에는 핍박함이 없으며, 견제도에 핍박함이 없다는 것은 견제의 번뇌에서 이치를 보는 것이요, 사유도는 미미하게 생기기 때문에 핍박하여 물러남이 없느니라.
또 말하자면 견제도의 지혜의 힘은 강하여 마치 큰 들보로 물건을 누르는 것과 같지만, 사유도의 지혜는 약하기 때문에 물러나느니라.
또 말하자면, 견제는 욕계(欲界)에서 인(忍)과 지(智)의 두 마음으로 9품(品)을 끊을 수 있고 위의 세계[上界]에서 인과 지의 두 마음으로 72품(品)을 끊어서 번뇌가 다한 무색계(無色界)이기 때문에 물러나지 않는 것이니, 이런 뜻 때문에 홀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世尊]’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또 부처님은 습기(習氣)가 끊어졌고 2승은 습기를 다하지 못하였나니, 마치 우시비구(牛呞比丘)와 같이 언제나 소 풀 먹는 시늉을 하는 것은 세세생생 소였다가 왔기 때문이며, 어느 비구처럼 비록 번뇌가 다하였지만 항상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는 것은 세세생생 음녀(婬女)였다가 왔기 때문이며, 어느 비구처럼 그네뛰기를 하는 것은 세세생생 원숭이였다가 왔기 때문이니, 세존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들었다[如是我聞]’고 말하는 것은 부처님이 계실 때 말씀하신 것이요, ‘내가 들었다[我聞]’고 하는 것은 열반하신 후이니, 법장을 기록하는 이가 ‘내가 들었다’고 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20년 동안 법을 말씀하실 적에 아난은 듣지 못했거늘, 어찌 ‘내가 들었다’고 말할 수 있나이까?”
대답하셨다.
“여러 하늘이 아난에게 말하여 준 것이며, 또 부처님이 세속의 마음에 들어서 아난에게 알게 하시며, 또 여러 비구들 곁에서 들으며, 또 아난이 부처님께 청하여 원하길 ‘원하옵나니, 부처님께서는 저에게 헌 옷을 주시지도 말고 남들이 저를 청하여 밥을 먹게도 하지 마시옵소서. 저는 법을 구하고 부처님을 공경하기 위함 때문에 부처님을 모실 필요가 있는 것이지 옷과 밥 때문이 아니오며, 여러 비구들은 아침 저녁 두 때에 세존을 만나 뵐 수 있으나 저만은 그렇지 않게 하시어 뵙고 싶으면 곧 뵈올 수 있으며, 또 부처님께서 20년 동안 말씀하신 법을 다 저에게 말씀하여 주소서’라고 하였느니라.”
물었다.
“20년 동안에 말씀하신 법 구절을 어떻게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까?”
대답하셨다.
“부처님은 교묘한 방편으로 하나의 법 구절 안에서도 한량없는 법을 펴며, 한량없는 법을 한 구절의 의미로도 만들 수 있으므로, 부처님께서 대략 그 단서를 보이시면 아난이 다 이미 알게 되었나니, 빠르고 영리하고 잘 기억하는 힘 때문이었느니라.
8만의 법이란 또 말하자면 마치 나무의 뿌리ㆍ줄기ㆍ가지ㆍ잎을 하나의 나무라고 하듯이 부처님도 중생들을 위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법을 말씀하였으되 이름은 하나의 갈무리[一藏]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은 8만에는 또 부처님이 한 자리에서 말씀한 법을 하나의 갈무리라고 하기도 하며, 이와 같은 8만에는 또 열여섯 글자로 반 구절의 게송이 되고 서른두 글자로 한 구의 게송이 되기도 하며, 이와 같은 8만에는 또 길고 짧은 게송으로 마흔 두 글자가 하나의 게송이 되기도 하느니라.
이와 같은 8만에는 또 반달마다 말한 계율이 하나의 갈무리로 되기도 하고, 이와 같은 8만에는 또 부처님 스스로가 말한 6만 6천의 게송이 하나의 갈무리로 되기도 하며, 이와 같은 8만에는 또 부처님이 말한 번뇌에 8만이 있고 법의 약에도 또한 8만이 있으므로, 8만의 법장이라고 하느니라.”
물었다.
“계경(契經)과 아비달마에는 ‘부처님께서’라고 처음이 되어 있지 아니하고, 율송(律誦)에서만이 ‘부처님께서’라고 처음에 되어 있나이다.”
대답하셨다.
“뛰어나기 때문이며,
부처님 홀로 제정하였기 때문이니라.
계경(契經)5)과 같은 것은 여러 제자들이 말한 법이니, 때로는 석제환인이 스스로 보시가 첫째라고 말하면서 ‘무엇 때문이냐 하면, 나는 보시하였기 때문에 천왕이 되어 원한 바를 뜻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으니라.
‘부처님 말씀이 이와 같다[佛言如是]’라 함은, 때로 부처님은 변화로 화신불(化身佛)이 되어서 화신불로써 법을 말하였지만, 계율은 그렇지 않아서 모두가 부처님의 말씀인지라, 그 때문에 ‘부처님께서’라고 함이 처음에 있느니라.
또 저 계경은 처소마다 결정한 것을 따랐지만 계율은 그렇지 않으니, 만약 집 안에서 일이 있었으면 곧바로 제정하지 못하고 반드시 바깥으로 나가야 했으며, 만약 속인 곁에서 일이 있었다면 반드시 대중들 가운데서 제정하였으며, 만약 마을에서 일이 있었으면 역시 대중들 가운데서 제정하였으며, 만약 다섯 대중[五衆] 곁에서 일이 있었으면 반드시 비구ㆍ비구니 곁에서 제정하였으니, 그 때문에 ‘부처님께서’라고 함이 처음에 있느니라.
비야리(毘耶離)라 함은, 혹은 어떤 나라 왕의 이름으로 삼기도 하고, 혹은 땅을 일컫기도 하며, 혹은 성(城)으로 부르기도 하니, 이 나라에서는 용(龍)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니라.
가란타(迦蘭陀) 마을이라 함은 새 때문에 이름 지어진 것이며, 또 마을의 우두머리 이름이 수제나(須提那)인 것은 부모가 천신과 지기에게 청하여 얻었다 하여 그 때문에 이름이 ‘구하여 얻음[求提]’인 것이니라.
부귀(富貴)라 함은, 부자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중생들이요, 둘째는 중생 아닌 것이니라. 중생 아닌 것이란 금과 은과 칠보와 창고의 재물과 비단이며 밭과 집이 많이 있는 것이요, 중생들이라 함은 종ㆍ코끼리ㆍ말ㆍ소ㆍ양ㆍ마을과 봉읍(封邑)들이니, 그러므로 부자라고 하느니라.
귀하다 함은 혹은 봉읍의 주인이 되었거나 혹은 아름다운 덕을 지녀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니, 그 때문에 귀하다고 하느니라.”
물었다.
“스스로 삼보에 귀의하여 삼귀법(三歸法)을 받는다.
삼귀는 무엇으로 본성을 삼습니까?”
“어떤 논자(論者)는 말하기를, ‘삼귀는 바로 가르침[敎]과 가르침이 없음[無敎]을 본성으로 삼는다 하나니, 삼귀를 받을 때에 길게 꿇어앉아 합장하고 입으로 삼귀를 말하는 것이 바로 몸과 입으로 가르침이라 하고, 만약 순수하게 마음으로만 지니면
몸과 입으로 가르치는 것은 없으니, 이것을 일러 가르침ㆍ가르침이 없음이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느니라.
또 삼귀는 바로 3업(業)의 성품이니, 몸과 입과 뜻의 업이니라.
또 삼귀는 바로 5음(陰)을 착하게 하나니, 중생이 5음을 착하게 함으로써 삼귀를 하여 삼보께 돌아가게 되며, 돌아간다는 것은 구제하여 보호된다는 뜻이니라.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왕에게 죄를 지어 다른 나라로 가서 구호를 청할적에 다른 나라 왕이 말하기를, ‘당신이 두려움 없기를 구한다면 나의 국경에서 나가지 말고 나의 가르침을 어기지 마시오. 반드시 구제하여 보호 하리다’라고 하는 것처럼, 중생들도 역시 그러하여 마군에 얽매어서 나고 죽는 허물이 있을 적에 삼보에 귀의하여 구호를 청하되, 만약에 마음이 삼보께만 정성을 다하고 다시 다른 데로 향함이 없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는다면 마왕의 사악함으로도 어찌할 수 없으리라.
옛날 어느 한 비둘기가 매에게 쫓기다가 사리불의 그림자로 들어갔으나 벌벌 떨며 풀리지 않으므로 부처님 그림자로 옮아갔더니 태연하여져서 두려움이 없어졌으니, 큰 바다는 옮길 수 있을지언정 이 비둘기는 움직이지 못하리라.
왜 그러냐 하면, 부처님에게는 큰 사랑과 큰 가엾이 여김이 있지만 사리불에게는 큰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이 없었으며, 부처님은 습기가 다하였지만 사리불은 습기가 아직 다하지 못했으며, 부처님은 세 아승기겁 동안 보살의 행을 닦았지만 사리불은 60겁 동안 고행을 닦고 익혔기 때문이니, 이런 인연으로 비둘기가 사리불의 그림자로 들어가서는 오히려 두려움이 있었지마는 부처님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자 두려움이 없어진 것이니라.”
물었다.
“만약 삼보에 귀의하여야 죄와 허물이 없어지고 두려움이 쉬어질 수 있다고 하면, 제바달다 역시 삼보에 귀의하여 믿음으로써 집을 떠나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지만, 3역(逆)을 범하고서 아비지옥에 떨어졌나이다.”
대답하셨다.
“구제하여 보호한다는 것은 구호될 수 있는 이를 구호하는 것이니라. 제바달다야말로 죄질이 나쁘고 깊고 컸을 뿐더러 이는 정하여진 업보였으니, 그러므로 구하기 어려웠느니라.”
물었다.
“만약 큰 죄가 있었으므로 부처님께서 구할 수 없으셨다면, 죄 없는 이는 부처님의 구제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 어떻게 삼보가
구호할 수 있습니까?”
대답하셨다.
“제바달다는 삼보에 귀의하였으나, 마음이 진실하지 않아서 삼귀가 만족스럽지 않았으며, 언제나 이끗과 이름나길 구하여서 스스로 일체지(一切智)를 지닌 사람이라 부르며 부처님과 다투었으니, 이런 인연으로 삼보가 비록 큰 힘을 지녔다하나 구호할 수가 없었느니라.
저 아사세왕은 비록 역죄(逆罪)가 있어 아비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했으나 지성스런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향하였기 때문에 아비지옥의 죄가 없어지고 흑승(黑繩)지옥에 들어간 것과 같이, 혹 사람들 가운데 죄가 중하여도 7일이면 모두 없어지나니, 이를 일러 삼보가 구호하는 힘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물었다.
“만약 제바달다의 죄를 구호할 수 없다 하시면,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만약 사람이 부처님께 귀의하면 3악취에 떨어지지 않느니라’고 하신 그 뜻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제바달다는 삼보에게 귀의하였기 때문에 비록 아비지옥에 들어갔더라도 고통을 받는 것이 가볍고 적었으며, 또 때로는 잠시 쉴 수도 있었느니라.
또 어떤 사람이 산과 숲이며 넓은 들판의 두려운 곳에 있을 적에, 만약 부처님을 생각하면 그 공덕으로 두려움이 곧 없어지리니, 그러므로 삼보에 귀의하여 구호 받음이 헛되지 않느니라.
삼보는 4제 가운데 어느 진리에 딸려 있으며, 22근(根) 중에 어느 근에 딸려 있으며, 18계(界) 중에 어느 계에 딸려 있으며, 12입(入) 중에 어느 입에 딸려 있으며, 5음(陰) 중에 어느 쌓임에 딸려 있는가?
삼보는 4제 가운데 사라짐의 진리[盡諦]에 딸려 있으며 도의 진리[道諦]에는 조금 들어 있으며, 근 중에서는 세 가지 근인 미지근(未知根)ㆍ이지근(已知根)ㆍ무지근(無智根)에 딸려 있으며, 18계에서는 의계(意界)ㆍ의식계(意識界)ㆍ법계(法界)에 딸려 있으며, 12입에서는 의입(意入)ㆍ법입(法入)에 딸려 있으며, 5음 중에서는 무루(無漏)의 5음에 딸려 있느니라.
불보(佛寶)는 4제 중에서 도의 진리에 조금 들어 있으며, 법보(法寶)는 4제 중에서 사라짐의 진리에 딸려 있으며, 승보(僧寶)는 4제 중에서 도의 진리에 조금 들어 있느니라.
불보는 22근 중에서 무지근에 딸려 있으며,
법보는 바로 사라짐의 진리를 일삼음이 없기 때문에 근에 딸려 있지 않으며, 승보는 22근 중에 세 가지 무루근(無漏根)에 딸려 있느니라.
불보는 18계 중에서 의계ㆍ의식계ㆍ법계에 조금 들어 있고, 12입 중에는 의입ㆍ법입에 조금 들어 있으며, 5음(陰) 중에는 무루의 5음에 조금 들어 있느니라.
법보는 18계 중에서 법계에 조금 들어 있고, 12입 중에서는 법입에 조금 들어 있으나, 법보는 5음에는 딸려 있지 않으니, 음(陰)은 바로 함이 있음[有爲]이기 때문이니라.
승보는 18계 중에서 의계ㆍ의식계ㆍ법계에 조금 들어 있고, 12입 중에서 의입ㆍ법입에 조금 들어 있으며, 5음 중에는 무루의 5음에 조금 들어 있느니라.”
물었다.
“부처님께 귀의한다 함은 석가모니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입니까, 삼세(三世)의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삼세의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니 부처님의 법신(法身)은 같기 때문이다. 한 부처님께 귀의하여도 곧 이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니, 부처님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니라.
어떤 이는 말하되, ‘만약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 귀의한다면, 어떤 하늘들은 스스로 말하되, 〈나는 가섭부처님[迦葉佛]의 제자요, 나는 구루손부처님[拘留孫佛]의 제자다〉라고 하여 이렇게 일곱 분의 부처님 중에서 각기 〈나는 아무 부처님의 제자다〉라고 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바로 한 분의 부처님께만 귀의하여야지 삼세는 안 된다’라고 하였으며, 또 말하되,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비사문경(毘沙門經)』에서 말한 바와 같이 〈비사문왕(毘沙門王)은 삼보께 귀의하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니, 이런 의미 때문에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물었다.
“만약 그렇다 하시면, 여러 하늘들이 저마다 아무 부처님의 제자라고 칭하는 그 뜻은 어떠합니까?”
대답하셨다.
“여러 하늘들이 말한 것에 어찌 일정한 뜻이 있겠느냐. 여러 하늘들이 저마다 한 분의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았다 칭하였지만 역시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 귀의한 것이요, 바로 한 부처님을
증거로 삼았을 뿐이니라.”
물었다.
“어디에 귀의하는 것을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귀의한다 함은 일체지와 배울 것 없는 이[無學]의 공덕에 돌아가 의지한다는 말이니라.”
“색신(色身)에 귀의하는 것입니까, 법신(法身)에 귀의하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법신에 귀의하는 것이지 색신에 귀의하는 것이 아니니 색(色)으로 부처님을 삼지 않기 때문이니라.”
물었다.
“만약 색신이 부처님이 아니라면, 어째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면 역죄(逆罪)를 얻게 되나이까?”
대답하셨다.
“색신이란 바로 법신의 그릇이기 때문이요, 법신이 의지한 곳이기 때문이니, 만약 색신을 해친다면 곧 역죄를 얻는다. 색신은 아니로되 바로 부처님이기 때문에 역죄를 얻느니라.”
“가르침[法]에 귀의한다 함은 어디에 귀의하여야 가르침에 귀의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귀의는 욕심이 끊어지고 욕심이 없어져 다한 곳인 열반으로 돌아가 의지한다는 말이니, 이것을 가르침에 귀의한다고 하느니라.”
물었다.
“귀의할 곳은 자기 몸이 다한 곳입니까, 다른 몸이 다한 곳입니까?”
대답하셨다.
“자기 몸이 다한 곳과 다른 몸이 다한 곳에 귀의함을 바로 가르침에 귀의한다고 하느니라.”
“만약 승가[僧]에 귀의하려면 어디에 귀의해야 합니까?”
대답하셨다.
“귀의란 말은, 어진 복밭인 성문의 배울 것 있는 이와 배울 것 없는 이의 공덕에 돌아가 의지한다는 말이니, 이것을 승가에 귀의한다고 하느니라.”
“속제(俗諦)의 승가에게 귀의하옵니까, 제일의제(第一義諦)의 승가에게 귀의하옵니까? 만약 제일의제의 승가에게 귀의한다 하오면, 부처님은 제위파리(提謂波利)에게 삼자귀(三自歸)6)를 주시면서 ‘미래에 어떤 승가가 있으리니, 너는 귀의하여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으셔야 했으니, 제일의제 승가는 언제나 세상에 있나이까?”
대답하셨다.
“속제의 승가는 바로 제일의제 승가가 의지할 곳이기 때문에 말하기를, ‘미래에 어떤 승가가 있으리니, 너는 귀의하여야 한다’라고 하였으며, 또 속제의 승가를 존중하게 하려고 이와 같이 말하였느니라.
부처님은 스스로 온갖 대중들 가운데서 부처님의 대중들이 첫째라고 말하나니, 마치 우유로부터 타락[酪]이 나오고 타락으로부터 소(酥)가 나오고 소로부터 제호(醍醐)가 나오며, 제호야말로 그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미묘한 것처럼, 부처님의 제자들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만약 뭇 승가들이 모여 있으면 이 가운데는 4향(向)과 4득(得)7)의 위없는 복밭이 있나니, 일체 96종(種)의 무리 가운데서 가장 높고 맨 위며 미칠 수 있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미래에 어떤 승가가 있으리니, 너는 귀의하여야 하느니라’고 말하여도 바른 이치에 해될 것은 없느니라.”
물었다.
“부처님 또한 바로 법이요, 가르침 또한 바로 법이요, 승가 또한 바로 법이어서, 바로 하나의 법이거늘 어떠한 차별이 있나이까?”
대답하셨다.
“비록 하나의 법이라 하더라도, 뜻으로 말하면 스스로 차별이 있느니라.
삼보로써 말하건대, 스승이 없는 큰 지혜와 배울 것이 없는 자리의 일체 공덕을 바로 불보라 하며, 사라짐의 진리와 함이 없음을 바로 법보라 하며, 성문으로서 배울 것 있는 이와 배울 것 없는 이의 공덕과 지혜를 바로 승보라고 하느니라.
법으로써 말하건대, 스승이 없고 배울 것이 없는 법이 바로 불보요, 사라짐의 진리와 함이 없고 배움도 아니고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닌 법이 바로 법보며, 성문의 배울 것이 있음과 배울 것이 없음의 법을 바로 승보라고 하느니라.
근(根)으로써 말하건대, 부처님은 바로 무지근(無知根)이니라.
진리로써 말하건대, 부처님은 바로 도의 진리에 조금 들었고, 법보는 바로 사라짐의 진리이며, 승가는 바로 도의 진리에 조금 들었느니라.
사문의 과보[果]로써 말하건대, 부처님이 바로 사문이요, 법보는 바로 사문의 과보이며, 승가가 바로 사문이요, 법보는 바로 사문의 과보이니라.
바라문으로써 말하건대, 부처님이 바로 바라문이요, 법보는 바라문의 과보며, 승가가 바로 바라문이요, 법보는 바로 바라문의 과보이니라.
맑은 행[梵行]으로써 말하건대, 부처님이 바로 맑은 행이요, 법보는 바로 맑은 행의 결과이며, 승가가 바로 맑은 행이요, 법보는 바로 맑은 행의 결과이니라.
인과(因果)로써 말하건대, 부처님이 바로 원인이요, 법보는 바로 결과이며, 승가가 바로 원인이요, 법보는 바로 결과이니라.
도와 과위[道果]로써 말하건대, 부처님이 바로 도요, 법보는 바로 과위이며, 승가가 바로 도요, 법보는
바로 과위이니라.
부처님은 가르침[法]으로 스승을 삼고, 부처님은 가르침으로부터 태어나므로, 가르침이 바로 부처님의 어머니요, 부처님은 가르침에 의지하여 머무느니라.”
물었다.
“부처님께서 만약 가르침으로 스승을 삼는다면, 삼보 중에서 어찌하여 가르침을 처음으로 삼지 않나이까?”
대답하셨다.
“가르침이 비록 부처님의 스승이라 하더라도, 가르침은 부처님이 아니면 넓어지지 않나니, 이른바 도[道]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넓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처음에 있느니라.”
그때 우파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삼귀계(三歸戒)를 받을 때에, 먼저 법보를 일컬은 뒤에 부처님을 일컬어도 삼귀의가 성립되나이까?”
대답하셨다.
“분명하게 몰라서 차례 아닌 것으로 말했다면 스스로 죄가 되지도 않고 삼귀의가 성립되지만, 만약 알면서도 일부러 거꾸로 말했다면 죄도 되고 삼귀의도 성립되지 않느니라.”
물었다.
“만약 부처님과 가르침만을 일컫고 승가를 일컫지 아니하면, 삼귀의가 성립되나이까? 만약 가르침과 승가만을 일컫고 부처님을 일컫지 아니하면, 삼귀의가 성립되나이까? 만약 부처님과 승가만을 일컫고 가르침을 일컫지 아니하면, 삼귀의가 성립되나이까?”
대답하셨다.
“성립되지 않느니라.”
물었다,
“삼귀계를 받지 않고도 5계(戒)를 받을 수 있나이까? 삼귀계를 받지 않고도 8계(戒)를 받을 수 있나이까? 삼귀계를 받지 않고도 10계(戒)를 받을 수 있나이까? 백사갈마(白四羯磨)8)를 하지 않고도 구족계(具足戒)를 받을 수 있나이까?”
대답하셨다.
“모두 받지 못하느니라.
만약 5계를 받으려면, 먼저 삼귀계를 받고 삼귀계를 마친 뒤에야 비로소 5계를 받을 수 있으니, 5계의 이름을 말하는 까닭은 앞에 있는 사람이 계율의 이름을 알게 하려는 것이니라.
백사갈마도 마친 뒤에야 곧 구족계를 받을 수 있으며, 4의(依)와 4타(墮)와 13승잔(僧殘)을 말하는 까닭은 다만 알게 하기 위하여 말하는 것이니라.
또 말하되, ‘삼귀의를 받은 뒤에 살생하지 않는 계율을 말하면, 그때에 계율이 성립됩니까’라고 한다면, 하나의 계율을 말하여도 5계를 얻는 것이니, 만약 하나의 계율을 지닐 수 있으면 다섯 가지를 다 지닐 수 있기 때문이며, 또 5계의 형세와 분한이 서로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며,
본래의 뜻에 ‘5계를 맹세코 받으리다’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또 5계를 받아 마친 연후에야 계율이 성립된다고 말하나, 여러 해설 가운데서 ‘삼귀계를 받고 나면 5계가 성립된다’라고 한 것은 바른 이치이니라.
백사갈마는 8계를 받거나 10계를 받거나 간에 5계 때와 같이 말하느니라.”
“만약 먼저 삼귀계를 받아서 우바새가 되었다가 뒤에 5계를 받거나 8계를 받거나 10계를 받거나 하면, 다시 삼귀계를 받아야 합니까?”
대답하셨다.
“삼귀계를 받지 않아도 모든 계율을 받을 수 있나니, 먼저 삼귀계를 받았기 때문이니라.”
“만약 먼저 삼귀계를 받지 않고 바로 백사갈마를 하면 계율을 받을 수 있나이까?”
대답하셨다.
“5계와 8계와 10계를 받을 때는 다만 삼귀계만 받았으면 곧 계율을 받을 수 있지마는, 만약 구족계를 받는다면 반드시 백사갈마를 해야 구족계를 받을 수 있으며 삼귀계는 필요하지 않다.
무릇 구족계란 공덕이 깊고 무거운지라 많은 인연과 많은 힘을 쓰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삼귀계와 10승잔과 백사갈마를 한 뒤에야 받을 수 있느니라.
5계와 8계와 10계는 공덕의 힘이 적나니, 그러므로 만약 삼귀계만 받으면 곧 계율을 받게 되며 많은 인연과 많은 힘이 필요 없느니라.
구족계를 받은 뒤에 무엇 때문에 4타(墮)와 13승잔(僧殘)만을 말하고 다른 편(篇)은 말하지 않습니까.
이 두 편의 계율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니, 하나의 계율을 범하면 영영 재차 일으키지 못하며 비록 일으킨다 하더라도 일으키기가 어렵느니라.
또 파리바사(婆利婆沙)와 마나타(那摩埵)는 20중(衆) 가운데서 나중에 죄에서 벗어나니, 만약 지니기 어려운 것을 지닐 수 있다면 다른 편의 것은 쉽게 계율을 지닐 것이므로 말할 필요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다만 두 편의 것만 말하고 다른 편은 말하지 않느니라.”
물었다.
“이는 바라제목차계(波羅提木叉戒)이며, 이는 샘이 없는 계율이며, 이는 선정의 계율입니까?”
대답하셨다.
“샘이 없는 계율도 아니고 선정의 계율도 아니며, 이는 바로 바라제목차계니라. 만약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면
이 계율이 있을 것이고,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면 이 계율은 없을 것이지만, 선정의 계율과 샘이 없는 계율은 부처님이 계시거나 세상에 계시지 않거나 간에 언제나 있느니라.
바라제목차계는 가르침에서부터 얻어지거니와 선정의 계율과 샘이 없는 계율은 가르침에서부터 얻어진 것이 아니며, 바라제목차계는 다른 이로부터 얻어지거니와 선정의 계율과 샘이 없는 계율은 다른 이로부터 얻어진 것이 아니니라.
바라제목차계는 잠을 자거나 잠을 자지 않거나 선과 악과 무기(無記)의 마음이거나를 묻지 않고 언제나 있거니와, 선정의 계율과 샘이 없는 계율은 반드시 선정과 샘이 없는 마음 가운데에 계율이 있으며 다른 온갖 마음 가운데에는 없느니라.
바라제목차계는 다만 인간 중에만 있거니와 선정의 계율과 샘이 없는 계율은 인간과 천상에 모두 있으며, 바라제목차계는 다만 욕계의 안에만 있거니와 선정의 계율과 샘이 없는 계율은 욕계와 색계에서 이룩되며, 샘이 없는 계율과 바라제목차계는 다만 부처님의 제자에게만 있거니와 선정의 계율은 외도에게도 모두 있느니라.”
물었다.
“우바새 5계에 몇이 실죄(實罪)9)이며, 몇이 차죄(遮罪)10)이옵니까?”
대답하셨다.
“네 가지가 바로 실죄요, 술 마시는 한 가지 계율이 바로 차죄이니라.
술 마시는 것을 네 가지 죄와 함께 같은 종류로 제정하여 5계로 만든 까닭은 이 술 마시는 것은 바로 방탕하게 되는 근본이요, 네 가지 계율을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니라.
저 가섭부처님 당시에 어떤 우바새가 술을 마셨기 때문에 남의 아내에게 음행을 하고 남의 닭을 훔쳐다 죽였는데, 다른 사람이 묻기를, ‘무엇 때문에 그랬느냐’고 하자, 대답하기를, ‘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나니, 술에 취하였기 때문에 한꺼번에 네 가지 계율을 범하게 된 것이니라.
술을 마셨기 때문에 4역(逆)을 지을 수 있으나, 오직 승가만은 깨뜨릴 수 없느니라.
비록 전생의 업에 미치광이 과보가 있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술을 마셨기 때문에 헷갈리고 뒤바뀌어서 마치 미치광이와 같게 되며, 또 술이 취하였기 때문에 바른 일과 좌선과 경전을 외우는 일이며 도와야 할 여러 일들을 폐지하거나 상실하게 되나니, 비록 실죄는 아니라하더라도 이런 일 때문에 실죄와 같이 되느니라.”
우파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우바새의 계율은 다만 중생들 위에서만 계율이 성립되옵니까. 중생이 아닌 것 위에서도 계율이 성립 될 수 있습니까? 다만 죽일 수 있고 훔칠 수 있고 음행할 수 있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중생들 위에서만 계율이 성립되옵니까, 죽일 수가 없고 훔칠 수가 없고 음행할 수가 없고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중생들 위에서도 역시 계율이 성립되옵니까?”
대답하셨다.
“중생에게는 네 가지 계율이 성립되고, 중생 아닌 것 위에서는 술 마시지 말라는 계율이 성립되느니라.
만약 중생이면 죽일 수가 있거나 죽일 수가 없거나 음행할 수 있거나 음행할 수 없거나 훔칠 수 있거나 훔칠 수가 없거나 거짓말할 수 있거나 거짓말할 수 없거나 간에 모두 계율이 성립되며, 아래로 아비지옥까지 이르고 위로 비비상처(非非想處)와 삼천세계의 여래와 온갖 목숨이 있는 종류에 이르기까지 이 네 가지 계율은 성립되느니라.
처음 계율을 받을 때에, 온갖 것을 죽이지 않고 온갖 것을 훔치지 않고 온갖 것에 음행하지 않고 온갖 것에 거짓말 하지 않겠다고 하여 제한이 없었으니, 그러므로 일체의 중생들 위에서 계율이 성립되지 않음이 없느니라.
무릇 계율을 받을 때에, 먼저 그에게 법을 말하고 인도하며 깨우쳐 알리어 일체 중생들 위에서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였으므로, 이미 훌륭한 마음[增上心]을 얻었고 훌륭한 계율을 얻었나니, 계율 받는 법에는 일체 중생들 위에서 저마다 네 가지 계율이 성립되느니라.
네 가지 계율을 차별하면 열두 가지 계율이 있나니, 중생들 위에서 죽이지 않고 훔치지 않고 음행하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는 이 네 가지 악을 일으킴에 세 가지의 인연이 있다.
첫째는 탐내기 때문에 일으키고, 둘째는 성내기 때문에 일으키고, 셋째는 어리석기 때문에 일으키는 것인데, 일체의 중생들 위에는 열두 가지 악이 있으며 악을 돌이키면 열두 가지 선한 계색(戒色)이 되나니, 일체의 그지없는 중생(衆生)들 위에도 역시 그러하느니라.
가령 백만 천만의 아라한이 열반에 들었다 하여도 먼저 이 아라한 위에서
얻은 바의 계율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성취해야 하는 것이지, 아라한이 열반하였기 때문에 이 계율 또한 상실되는 것이 아니니라.
술 마시지 말라는 계율을 얻었을 때에, 이 한 몸은 처음서부터 끝까지 삼천세계 가운데 일체의 술에 대해서 먹기만 하면 계색(戒色)이 성립되니, 계율을 받을 때에 일체의 술이 다 없어진다 해도 마시지 않겠다고 하였기 때문이며, 설령 술이 다 없어진다 해도 계율을 항상 성취하여야 상실하지 않는 것이니라.”
“먼저 계율을 받을 때에, 일체의 여인에 대해 세 가지 문 안에 음행하지 말라는 계율을 받고서 뒤에 장가를 들면 이 계율을 범한 것이옵니까?”
대답하셨다.
“범한 것이 아니니라. 왜 그러냐 하면 본래 여인에 대한 삿된 음행을 하는 계율을 받은 것이므로, 지금 이는 자신의 아내요, 삿된 음행이 아니기 때문이니, 이 계율을 범한 것이 아니니라.
이 이치로써 미루건대, 일체가 다 같아서 8계와 10계며 중생과 중생 아닌 것들 위에서 얻은 계율도 이와 같으며, 또한 250계도 같으니라.
일체 중생들 위에는 각각 일곱 가지 계율이 성립되나니, 이치로써 분별하면 스물한 가지 계율이 있느니라.
만일 한 중생 위에서 몸과 입으로 일곱 가지 악을 일으킨다고 하면, 이 악을 일으키는 데에는 세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탐냄 때문에 일으키고, 둘째는 성냄 때문에 일으키고, 셋째는 어리석음 때문에 일으키어, 이 세 가지 인연으로써 이 일곱 가지 악을 일으키어 3ㆍ7은 스물한 가지의 악이 일어나지만, 악을 돌이키면 계율이 성립되어 한 중생 위에서 스물한 가지의 계색(戒色)을 얻게 되며, 일체 중생들 역시 그와 같으니라.
이 이치로써 미루건대, 한꺼번에 한량없는 계율을 얻을 수는 있지만 한꺼번에 다 범할 수는 없으며, 한꺼번에 계율을 버릴[捨戒]수는 있느니라.
계율을 깨뜨리는 법에는, 만약 중한 계율을 깨뜨리면 다시 수승하게 나아갈 수 없고, 설령 계를 버리고 뒤에 다시 받는다 하여도 다시 계율을 얻지 못하느니라.
만일 8재(齋)11) 중에서 중한 계율을 깨뜨리면, 뒤에 다시 8계를 받거나 5계를 받거나 10계를 받거나 구족계를 받거나 선정의 계율과 샘이 없는 계율이거나 간에 모두 성립되지 않느니라.
또 5계 중에서 중한 계율을 깨뜨린 뒤에는, 8계를 받거나 10계 구족계ㆍ선정의 계율ㆍ샘이 없는 계율을 받거나 간에 성립되지 않느니라.
또 5계를 깨뜨린 뒤에 5계를 버리고 다시 10계를 받으려 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는 이치가 없으며, 만약 계율을 버린 뒤에 다시 5계를 받거나 8계ㆍ10계ㆍ구족계와 아울러 선정의 계율이며 샘이 없는 계율을 받거나 간에 모두 성립되지 않느니라.
또 10계와 구족계 중에서 중한 계율을 깨뜨린 이가 수승하게 나아가려 하거나 계율을 버리고 도로 계율을 받으려 하는 것은, 5계 중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물었다.
“선정의 계율과 샘이 없는 계율과 바라목차계의 세 계율 중에서, 어느 계율이 수승합니까?”
대답하셨다.
“선정의 계율이 수승하니라.
어떤 이는 바라목차계라고 하는 이도 있으니, 무엇 때문에 그러냐 하면, 만약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면 이 계율을 얻을 수 있지만, 선정의 계율과 샘이 없는 계율은 언제나 있기 때문이며, 일체의 중생이거나 중생 아닌 것들에게도 바라목차계는 성립되거니와 선정의 계율과 샘이 없는 계율은 다만 중생들의 위에서만 성립되기 때문이며, 일체의 중생들에 대한 인자한 마음에서 바라목차계는 성립되거니와 선정의 계율과 샘이 없는 계율은 인자한 마음이 아니어도 성립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의 법이 유지되고 일곱 대중들이 세간에 있으며 3승의 도과(道果)가 서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으면 모두 바라목차가 근본이 될 수 있거니와 선정의 계율과 샘이 없는 계율은 그렇지 않나니, 그러므로 삼계 중에서 가장 높고 수승하니라.
처음 계율을 받을 때에 백사갈마를 하여 마치면 계율은 이미 성취되며, 처음 한 생각의 계색(戒色)을 업(業)이라 하고 업도(業道)라고도 하는데, 두 번째의 생각 이후에 생기는 계색은 다만 업이라 할 뿐 업도는 아니니라.
왜 그러냐 하면, 처음 한 생각의 계색은 생각과 소원이 만족하여 생각을 꿰뚫기 때문에 사업도(思業道)라 하며, 앞의 계율을 원인으로 삼기 때문에 뒤의 계색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저절로 나게 하니,
그러므로 다만 업이라 할 뿐 업도라고 하지는 않느니라.
처음 한 생각의 계율은 있음을 가르치기도 하고 없음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뒤에 차례대로 생기는 계율은 다만 없음의 가르침만 있고 있음의 가르침은 있지 않으며, 처음 한 생각의 계율은 또한 계율이라 이름하고 선행(善行)이라 이름하기도 하며 또한 율의(律儀)라 이름하기도 하니, 뒤에 차례대로 계속하여 생기는 계율에도 또한 이런 뜻이 있느니라.”
우파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삼세 가운데 어느 세상에서 계율을 얻나이까?”
대답하셨다.
“현재의 한 생각에서 계율을 얻나니, 과거ㆍ미래는 바로 법이요 중생이 아니기 때문에 계율을 얻을 수 없으며, 현재의 한 생각이 바로 중생이기 때문에 계율을 얻느니라.”
물었다.
“착한 마음 가운데서 계율을 얻나이까? 착하지 않는 가운데서, 혹은 무기(無記)의 마음 가운데서, 혹은 무심(無心)한 가운데서 계율을 얻나이까?”
대답하셨다.
“일체에서 다 얻느니라.
먼저 착한 마음으로 승가의 발에 예를 올린 뒤 옷과 발우를 받고 화상에게 청하여 물으며, 힘써 나아가 계율을 빌면서 길게 꿇어앉아 합장하고, 백사갈마를 한 뒤에 착한 마음을 서로 이어서 계색이 성취되면, 이를 착한 마음 중에서 계율을 얻는다 하느니라.
만약 먼저 차례대로 법 가운데서 언제나 착한 마음을 내어 모든 가르침의 업을 일으키다가, 백사갈마를 할 때에 탐냄과 성냄 등의 여러 착하지 못한 생각을 일으켜서 이 마음 가운데서 계색을 성취하면, 이를 착하지 못한 마음 가운데서 계율을 얻는다고 하니, 본래의 선한 마음과 선한 가르침의 힘 때문에 이 계율을 얻은 것이지 착하지 않은 마음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니라.
먼저 착한 마음으로서 가르침의 업을 일으키다가 백사갈마를 할 때에 혹은 졸기도 하고 혹은 잠을 자기도 해서 잠자는 마음 가운데서 계색을 내면, 이를 무기 중에 계율을 얻는다고 하느니라.
먼저 착한 마음으로 가르침의 업을 일으키다가 백사갈마를 할 때에 멸진정(滅盡定)에 들었는데, 곧 그때에 계색을 성취하면 무심 가운데서 계율을 얻었다고 하느니라.”
우파리가 다시 부처님께 사뢰었다.
“만약 속인이 5계를 받지 않고 바로 10계를 받으면 계율이 성립되나이까?”
대답하셨다.
“한꺼번에 두 가지의 계율을 얻으니, 우바새의 계율을 얻고 사미계를 얻느니라. 만약 5계와 10계를 받지 아니하고 바로 구족계를 받으면, 한꺼번에 세 가지 계율을 얻느니라.”
아파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구족계를 받는 것이 한꺼번에 세 가지 계율을 받는 것이라면, 어찌 차례대로 먼저 5계를 받고 다음에 10계를 받고 뒤에 구족계를 받을 필요가 있나이까?”
대답하셨다.
“비록 한꺼번에 세 가지 계율을 얻는다하더라도, 부처님의 법에 물들며 익혀야 하므로, 반드시 차례가 필요하니라.
먼저 5계를 받아서 스스로 조복하여 믿음과 즐거움이 점차로 늘어나면, 다음으로 10계를 받으니, 이미 10계를 받았으므로 착함의 뿌리가 더욱 깊어지며, 다음으로 구족계를 받으니, 이렇게 하여 차례로 부처님 법의 맛을 얻어 즐거움이 깊어져서 단단해지면 물러나거나 헐기가 어렵느니라.
마치 큰 바다에 노닐면서 점차로 깊은 데 들어가는 것처럼 부처님의 법 바다에 들어감도 그와 같나니, 만약 한 번에 구족계를 받는다면 곧 차례를 잃어버리거나 또 위의를 깨뜨리게 되느니라.
또 어떤 중생은 5계를 받고서 도의 과위를 증득하기도 하고, 혹 어떤 중생은 10계를 받음으로 인하여 도의 과위를 얻기도 하나니, 이런 갖가지 인연 때문에 여래께서 이 차례를 말씀하셨느니라.
만약 먼저 5계를 받고 다음에 10계를 받으면, 10계를 받을 때에 또한 두 가지 계율인 5계와 10계를 성취하며, 10계를 받은 뒤에 다음으로 구족계를 받으면, 구족계를 받을 때에 5계와 10계와 구족계의 세 가지 계율을 성취하느니라.
일곱 가지를 받는 중에 오직 백사갈마계는 차례대로 세 때에 걸쳐 얻으며, 나머지 여섯 가지는 계를 받을 때 다만 한꺼번에 얻고 세 때의 차례가 없으므로 한꺼번에 한다 해도 세 가지 계율을 얻느니라.
만약 버리려고 할 때에는, ‘나는 바로 사미요, 비구가 아닙니다’라고 하면, 곧 구족계는 상실되고 두 가지 계율인 5계와 10계만이 있게 되며, 만약 ‘나는 바로 우바새요, 사미가 아닙니다’라고 하면, 곧
10계를 상실하고 나머지 5계만 있게 되느니라.
만약 ‘집에 있거나 집을 떠났거나 간에 일체를 모두 버리고 나는 바로 우바새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하면, 세 가지를 한꺼번에 모두 잃어버리고 삼귀계만 상실하지 않느니라.
또 차례대로 세 가지 계율을 얻는 것과 버리는 법의 차례는, 한꺼번에 계율을 얻는 것 가운데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만약 먼저 우바새였던 이가 출가하여 10계를 받게 되면, 5계는 버려야 합니까?”
대답하셨다.
“버리지 않느니라.
다만 이름을 잃어버리고 차례를 잃어버렸을 뿐이지 계율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니, 우바새라는 이름을 잃고 사미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속인의 차례를 잃고 집을 떠난 차례를 얻었느니라.”
“만약 사미가 구족계를 받으면, 그때 10계와 5계는 잃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잃지 않느니라.
다만 이름을 잃고 차례를 잃었을 뿐이지 계율을 잃은 것은 아니며, 사미라는 이름을 잃고 비구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며, 사미의 차례를 잃고 비구의 차례를 얻은 것이니라.
끝이나 처음이나 항상 이 계율이지만 때를 따라 이름을 붙인 것이니, 마치 나무의 잎이 봄과 여름에는 푸르고 가을이면 누르고 겨울에는 앙상해져서 철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나무의 잎은 곧 다르다고 하겠지만 그 처음과 끝은 원래 이 하나의 잎인 것처럼, 계율도 이와 같아서 항상 이 하나의 계일뿐인데 때를 따라 다름이 있는 것이니라.
또 우유도 타락과 소와 제호의 네 가지 차별이 있어서 비록 때에 따라 다름이 있다하더라도 원래에 하나였던 것처럼, 계율 또한 그와 같아서 비록 세 때의 다름이 있다하더라도 계만은 다름이 없느니라.”
우파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우바새의 계율을 받되, 힘이 5계를 갖추어 받을 수가 없는지라 만약 한 가지 계율이나 두 가지 계율 내지 네 가지 계율만 받는다고 하면, 계율을 받았다 할 수 있나이까?”
대답하셨다.
“안 되느니라.”
“만약 안 된다 하시면, 경전에 말씀하시되, ‘분한이 적은 우바새, 분한이 많은 우바새, 분한이 만족한 우바새’라고 하신 그 이치는 어떤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이 말을 하게 된 까닭은 계율을 지닌 공덕의 많고 적음을 밝히려 한 것이지, 이와 같이 계율을 받는 것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니라.”
우파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하루 이틀 내지 열흘 동안 5계를 받는다면 이와 같이 받는 것도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대답하셨다.
“안되느니라. 부처님은 본래 계율을 제정함에 있어 각각 한계를 두었나니, 만약 5계를 받으면 반드시 형상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이며, 만약 8계를 받는다면 반드시 하루 낮 하루 밤에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안 되느니라.
백사갈마계에는 상ㆍ중ㆍ하가 있나니, 5계는 바로 하품(下品)의 계율이요, 10계는 바로 중품(中品)의 계율이며, 구족계는 바로 상품(上品)의 계율이니라.
5계 중에 들어가도 역시 3품(品)이 있나니, 만약 조그마한 마음으로 계율을 받으면 미품계(微品戒)가 되고, 중간의 마음으로 계율을 받으면 중품계(中品戒)가 되며, 만약 위의 마음으로 계율을 받으면 상품계(上品戒)가 되느니라.
10계와 구족계에도 역시 각기 세 가지가 있어서 5계에서 말한 것과 같은데, 만약 조그마한 마음으로 계율을 받은 이후에 상ㆍ중의 마음으로 10계를 받는다면 먼저 얻은 5계는 다시 더함도 없고 훌륭함도 없으니, 5계 외에 때 아니면 먹지 말라는 등의 나머지 다섯 가지 계율은 더 나아진 5계가 되지만 먼저 얻은 5계는 본래의 미품[微品]이 되느니라.
곧 먼저는 미품의 5계였다가 중ㆍ상품의 마음으로 구족계를 받으면 먼저 얻은 5계는 다시 더함도 없고 훌륭함도 없는 그대로의 본래 5계이지만, 5계 이외의 일체 계율들은 구족계를 받을 때에 마음이 더 나아졌기 때문에 더 나아진 계율이 되나니, 이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바라목차계는 거듭 얻음이 없느니라.
차례대로 말하면 5계는 바로 미품이요, 10계는 바로 중품이요, 구족계는 바로 상품이니, 뜻으로 미루어 보면 역시 상품의 마음으로 5계를 얻으면 이것이 바로 상품계요, 중품의 마음으로 10계를 얻으면 이것이 바로 중품계요, 하품의 마음으로 구족계를 얻는다면 이것이 바로 하품계이니라.
이런 이치 때문에 마음에 있는 상ㆍ중ㆍ하를 따라 계율을 얻음이 같지 않은 것이지 정해진 한계는 없느니라.
만약 화상에게 청하여 10계를 받을 때에 화상이 앞에 나타나지 않아도 역시 10계를 얻으며, 10계를 받을 때에 화상이 죽은 경우에는 만약 죽었다는 것을 들어서 알았다면 받은 계율이 성립되지 않거니와 죽었다는 것을 듣지 못하고 계율을 받았다면 이 계율은 성립 되느니라.
백사갈마계는 계를 받을 화상이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계율을 받을 수 없나니 승가의 수가 차지 않았기 때문이며, 만약 상가의 수가 찼다면 설령 화상이 없다 하더라도 역시 계율을 받음이 성립 되느니라.”
아파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5계의 우바새가 판매를 할 수 있나이까?”
대답하셨다.
“판매를 허락하되, 다만 다섯 가지 일만은 할 수가 없느니라.
첫째, 짐승을 판매하는 이러한 업은 할 수가 없나니, 만약 스스로 짐승을 기르다가 바로 파는 것은 허락하나, 백정에게만은 팔 수 없느니라.
둘째, 활ㆍ화살과 칼ㆍ몽둥이 등을 판매하는 이러한 업은 할 수가 없나니, 만약 스스로 지녔던 것을 바로 파는 것은 허락하느니라.
셋째, 술을 파는 업은 할 수가 없나니, 만약 스스로 지녔던 것이면 역시 바로 파는 것은 허락하느니라.
넷째, 기름을 짤 수 없나니, 벌레를 많이 죽이기 때문이다. 천축(天竺)의 법은 그러하나 계빈(罽賓)12)이래로 깨 안의 일체에 만약 벌레가 없으면 기름을 짜도 허물이 없느니라.
다섯째, 다섯 가지 큰 빛깔의 염색하는 업을 할 수 없나니 벌레를 많이 죽이기 때문인데, 낙사(落沙)등 외국의 염색하는 법은 여러 벌레를 많이 죽이기 때문에 허락되지 않으며, 진(秦)나라 땅의 청색으로 염색하는 법도 또한 벌레를 많이 죽이므로 다섯 가지 염색하는 수에 떨어지느니라.”
우파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8재법(齋法)에 한낮이 지나면 먹지 말라는 것을 합치면 아홉 가지 법이 되는데, 어찌하여 여덟 가지 일로써 이름을 얻었나이까?”
대답하셨다.
“재법에 한낮이 지나면 먹지 말라는 것이 바탕이 되어있고, 여덟 가지의 일은 재계(齋戒)의 바탕을 도와 이루어서 함께 서로가 뒷받침이 되므로 여덟 가지 재법이라 이름한 것이니, 그러므로 8재라고 하지 9재라고 하지 않느니라.
만약 ‘여덟 가지 계율을 받은 사람은 7중(衆)에서 어느 무리에 있게 되는가’
비록 종신 동안의 계율을 받은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하루 낮 하룻밤의 계율을 지녔기 때문에 우바새라고 이름하여야 하리라.
또 말하되, ‘만약 우바새라고 한다면 종신 동안의 계율이 없고, 만약 우바새가 아니라 한다면 하루 낮 하룻밤 동안의 계율을 지녔으므로, 다만 중간 사람이라고 하리라’고 하였는데, 경전에 있는 말이니라.”
우파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7중(衆) 밖이라면, 바라목차계가 있지 않습니까?”
대답하셨다.
“바로 8재계가 있느니라.
이 뜻으로 미루어 보건데, 만약 8재계를 받는다면 7중 가운데 있지 않나니, 8재계를 받으면 응당 하루 낮 하룻밤 동안 살생하지 않겠다고 말해서 말로써 결정코 끊어, 종신의 계율과 서로 어지럽지 않게 할지니라.”
물었다.
“8계의 법을 받으면서 이틀ㆍ사흘 내지 열흘을 한 때로 하여 받을 수 있나이까?”
대답하셨다.
“부처님은 본래 하루 낮 하룻밤의 계율로써 제정한 것이므로 기한을 지날 수 없느니라.
만약 힘이 있으면 하루에 받을 수 있지만 지난 뒤에는 차례대로 다시 받나니, 이와 같이 힘의 많고 적음을 따르지 날 수[日數]는 계산하지 않느니라.
재계를 받는 법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곁에서 받나니, 어떤 사람 곁에서 받느냐 하면 다섯 대중[五衆]들 곁에서 받느니라.
이미 8계를 받고서 만약 중생을 매로 때린다면 재는 깨끗하지 않나니, 비록 바로 그 날 매를 때리지 않고 다음 날을 기다려서 중생들을 때리더라도 깨끗하지 않느니라.
요약하여 말하면, 몸과 입으로 지은 것이 위의가 있는 일이 아니라면 비록 재법을 깨뜨리지 않았다하더라도 깨끗한 법이 없으며, 설령 몸과 입이 깨끗하다하더라도 만약 탐내는 생각ㆍ성내는 생각ㆍ괴롭히려는 생각을 일으켰다면 역시 재는 깨끗하지 않다고 할 것이며, 만약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업은 깨끗하지만 6념(念)을 닦지 않았다면 역시 재는 깨끗하지 않다고 할 것이니, 8계를 받고 나서 6념을 힘써 닦으면, 이것이야말로 재가 깨끗하다고 할 것이니라.
경전에서 말하되, 만약 염부제의 왕이 되어 염부제 가운데서 일체의 인민들과 금ㆍ은이며 재보를 그 안에서 자재로이 하는 이러한 공덕이 있다하더라도
이 염부제왕의 공덕은 맨 끝까지 8재를 깨끗이 한 이와 견준다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어떤 사람이 8재를 받으려 하면서 먼저 색정(色情)을 마음대로 하고 혹은 음악을 하기도 하며 혹은 고기를 탐내 먹기도 하고 갖가지로 희롱하며 웃는 등 이와 같은 방종한 일들을 마음대로 한 뒤에 재를 받는다면, 그로부터 앞인지 뒤인지를 묻지 않고 모두 재가 될 수 없으며, 만약 본래 마음 없이 재를 받아서 갖가지 방종한 일을 하다가 뒤에 착한 벗을 만나서 곧 재를 받게 되면, 그로부터 앞인지 뒤인지를 묻지 않고 모두 재가 되느니라.
만약 재를 받으려고 하는데, 일이 어려워지고 스스로 거리껴서 자재롭지 못하다가 일의 어려움이 풀린 뒤에 재를 받는다면, 그로부터 앞인지 뒤인지를 묻지 않고 모두가 재가 되느니라.”
물었다.
“만약 한정하여 낮의 재법만 받고 밤의 재법은 받지 않는다면 8계가 성립되나이까, 만약 밤의 재법만 받고 낮의 재법은 받지 않는다면 8계가 성립되나이까?”
대답하셨다.
“성립되지 않느니라.
왜 그러느냐 하면, 부처님은 본래 하루 낮과 하룻밤의 재법을 받을 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니, 한정을 두거나 어길 수가 없느니라.”
우파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성립되지 않는다 하시면, 피혁(皮革)13)중에 말한 바와 같이, ‘억이(億耳)가 너른 들판에 있으면서 여러 아귀들이 갖가지로 죄를 받는 것을 보았더니, 혹은 낮에는 복을 받고 밤이면 죄를 받기도 하며 혹은 밤에는 복을 받고 낮이면 죄를 받기도 하였는데, 왜 그러느냐 하면 본래 인간이었을 때 낮에 계법(戒法)을 받고 밤에는 나쁜 짓을 행하기도 하였고 혹은 밤에 계법을 받고 낮에는 나쁜 짓을 하였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같지 않은 것이다’고 하였사온데, 이 이치는 어떤 것이옵니까?”
대답하셨다.
“이는 본생(本生)의 인연이므로 의지할 것이 못되니, 이 안의 말들은 바로 수다라(修多羅)도 아니고 비니(毘尼)도 아니므로 정하여진 진실한 이치라 할 수 없느니라.
또 말하기를, ‘이는 바로 가전연이 억이(億耳)를 제도하려고 이런 변화를 지어서
그의 마음을 느껴 깨닫게 한 것이다’라고도 하니, 이는 진실된 이야기가 아니니라.
만약 재를 받은 뒤에 재를 버리려고 한다면, 반드시 다섯 대중을 쫓아서 버릴 필요는 없고, 밥 먹으려 할 때에 나아가 한 사람에게라도 말하면 재는 즉시 버려지느니라.
바라목차계를 얻는 것은, 5도(道)로 말하자면 오직 사람만이 계를 얻고 나머지 네 갈래에서는 얻지 못하나니, 하늘에서는 안락함에 집착하는 것이 깊고 무거우므로 계율을 얻을 수 없느니라.
저 옛날 어느 때에 마하목건련이 제자가 병이 들었으므로 도리천(忉利天)에 올라가서 기바(耆婆)14)에게 물으려는데, 마침 여러 하늘들이 환희원(歡喜園)에 들어감을 만났느니라.
그때 목건련은 길 곁에 서 있었는데, 여러 하늘들은 돌아보는 이가 없다가 기바가 뒤에서 오다 목건련을 돌아보면서 한 손을 들어 보이고 수레를 타고 곧장 지나가 버렸으므로 ,목건련이 생각하기를, ‘이는 본래 인간 세상에서 바로 나의 제자였는데, 이제 하늘의 복을 받으면서 하늘 안락에만 집착하여 도무지 본심을 잃었구나’ 하고, 곧 신통력으로 수레를 제지하여 서게 하였더니, 기바가 수레에서 내려와 목건련의 발에 예를 올리는지라, 목건련이 갖가지 인연으로 그의 옳지 못하였음을 꾸짖었느니라.
기바가 목건련에게 대답하기를, ‘저는 인간 세상에서 대덕의 제자였는지라, 그 때문에 손을 들어 문안이나 하였지마는 여러 하늘들로서 그렇게 하는 이를 보기나 하셨습니까. 하늘에 나면 즐거움에 집착하는 마음이 깊어져서 자재롭지 못하므로 이는 그렇게 되었을 뿐입니다’라고 하므로, 목건련이 기바에게 말하기를, ‘제자가 병이 들었는데, 어떻게 다스려야 하겠는가’라고 하였더니, 기바가 대답하기를, ‘오직 음식을 끓는 것으로 근본을 삼으십시오’라고 하였느니라.
어느 땐가 목건련이 석제환인에게 권고하기를, ‘부처님 세상은 만나기 어렵거늘, 어찌하여 자주자주 친근히 하여 바른 법을 물어 받지 아니하오’라고 하였더니, 제석은 목건련의 뜻을 풀어 주려고 심부름을 보내어 한 천자를 오게 하였는데, 되풀이하며 세 번을 불러도 일부러 오지 않았느니라.
이 한 천자에게는 한 명의 아내가 있었고 한 명의 음악 하는 여인이 있었는데, 정욕에 깊이 물들어 있었는지라 비록 또 천왕의 명령이 지중하기는 하였으나
스스로 떨어질 수가 없다가 뒤에 마지못해서 오니, 제석이 묻기를,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라고 하자, 곧 사실대로 대답을 하는지라 제석이 목건련에게 아뢰기를, ‘이 천자에게는 오직 하나의 천녀와 하나의 음악 하는 여인이 있을 뿐인데도 스스로 재미있게 즐기면서 몸소 떨어질 수가 없었거든, 하물며 천왕이겠습니까. 갖가지 궁전 누각에 수없는 천녀들과 하늘의 수타식(須陀食)이 저절로 된 백 가지의 맛이며 백천 가지 풍악으로 저절로 재미있게 즐기노라면 동쪽을 보면서 서쪽은 잊어버립니다. 비록 부처님 세상이 만나기 어렵고 바른 법을 듣기 어려운 것인 줄 알고는 있다하더라도 즐거움에 물들고 얽매어서 자재롭지 못하거니, 옳은 줄 안들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느니라.
무릇 계율을 받는 법은 용맹스런 마음으로써 스스로 맹세하고 결단한 연후라야 계율을 얻는 것인데, 여러 하늘들은 즐거움에 집착하는 마음이 많고 선한 마음의 힘이 약하거늘 어떻게 계율을 얻을 수 있겠느냐.
아귀는 배고프고 목마르는 고통에 몸과 마음이 훨훨 타며, 지옥은 한량없는 괴로움과 갖가지 혹독함에 마음과 뜻이 아픔에 집착되었으므로 계율을 얻을 인연조차 없느니라.
축생에서는 업장 때문에 아는 바가 없고 계율 받는 법이 없으며, 비록 곳곳의 경전 중에 용이 재법(齋法)을 받는다고 말하고는 있으나, 선한 마음 때문에 8계를 받고 하루 낮 하룻밤의 선한 마음의 공덕은 얻지만 계율은 얻지 못하나니, 업장 때문이니라.
사천하(四天下)로 말하자면, 오직 세 천하인 염부제와 구야니(拘耶尼)와 불파제(弗婆提)와 세 천하의 중간인 바다 섬 위의 사람들만이 모두 계율을 얻느니라.
구야니 같은 경우에는 부처님께서 빈두로(賓頭盧)를 거기에 파견하여 크게 부처님 일을 지어서 4부 대중들이 있으며, 동방에도 또한 비구가 거기에 있으면서 부처님 일을 짓거니와, 다만 울단월(鬱單越)15)만은 부처님 법이 없고 또한 계율도 얻지 못하니, 복의 과보가 오히려 장애가 되기 때문이며 어리석기 때문에 성인의 법을 받지 못하느니라.
네 가지 사람이 있으니, 첫째는 남자요, 둘째는 여자요, 셋째는 고자요, 넷째는 어지자지이니, 네 가지 사람 가운데서는 남자와 여자만이
계율을 얻고 나머지 두 가지 사람은 계율을 얻지 못하느니라.
남자와 여자 중에서도 부모와 아라한을 죽였거나 부처님 몸에 피를 내었거나 법 바퀴인 승가를 무너뜨렸거나 비구니를 더럽혔거나 적주(賊住)로서 차례를 건너뛰어 선한 뿌리를 끊는 사람 등, 이와 같은 사람들은 모두 계율을 얻지 못하느니라.
크게 살펴보면, 부처님의 법에 물들음을 받은 이라면 대개 말할 거리가 안 되거니와, 하늘이거나 용과 귀신이거나 울단월이거나 고자와 어지자지와 갖가지 죄인들도 모두 3귀계는 받을 수 있느니라.”
물었다.
“삼계의 모든 부처님에게 얻는 계율은 평등하나이까?”
대답하셨다.
“평등하지 않느니라. 계율을 얻는 이들은 중생의 무리거나 중생이 아닌 무리들 위에서 계율을 얻게 되니, 한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면 수없는 아승기 중생들을 제도하여 남음 없는 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시나, 뒤에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면 이 중생들에게 모두 계율을 얻게 하지는 못하시니,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에게 앞과 뒤에 계율을 얻음이 각각 평등하지 않느니라.
마치 가섭부처님은 수없는 아승기 중생들을 제도하여 남은 없는 열반에 들게 하셨으므로, 가섭부처님은 이 중생들에게 모두 다 계율을 얻게 하셨지만, 석가모니부처님은 이 중생들에게 모두 계율을 얻게 하지 못한 것과 같으니라.
모든 부처님에게는 세 가지 평등한 일이 있으니, 첫째는 쌓은 행이 평등하고, 둘째는 법신(法身)이 평등하고, 셋째는 중생을 제도함이 평등하니라.
모든 부처님들은 3아승기겁이 다하도록 보살행을 닦았고, 5분법신(分法身)16)과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과 18불공법(不共法)을 다 두루 갖추셨으며, 수없는 아승기 중생들을 다 제도하여 열반에 들게 하셨느니라.”
물었다.
“경전의 말씀에, ‘한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면 90나유타(那由他) 중생들을 제도하여 열반에 들게 하느니라’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수없는 아승기 중생이라 말씀하시옵니까?”
대답하셨다.
“이 경전에서 말한 ‘한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면 90나유타 중생들을 제도하느니라’고 함은, 다만 부처님으로부터 제도를 받은 이가
그렇게 많은 중생들이 있다는 말이거니와 중생들은 혹 부처님으로부터 제도를 받기도 하고 혹은 제자들로부터, 혹은 끼친 법 안에서 제도를 받기도 하므로, 90나유타 중생이라 한 말은 바로 부처님의 곁에서 제도 받는 이들이니, 통틀어 말하건대, 수없는 아승기 중생들을 남음이 없는 열반에 들게 하느니라.
삼세의 부처님들은 세 가지의 평등함은 모두 평등하되, 얻는 계율만은 평등하지 않느니라.”
물었다.
“악율의계(惡律儀戒)17)는 중생의 무리와 중생 아닌 무리 위에서 얻나이까? 할 수 있거나 할 수 없거나 간에 모두 계율을 얻게 되나이까?”
대답하셨다.
“다만 중생의 위에서만 악율의계를 얻게 되며, 중생이 아닌 것들 위에서는 악계(惡戒)를 얻지 못하느니라.
어떤 이는 말하기를, ‘다만 죽일 수 있는 중생의 위에서만 악계를 얻고 죽일 수 없는 중생의 위에서는 악계를 얻지 못한다’고도 하며, 또 말하기를, ‘죽일 수 있는 것과 죽일 수 없는 중생 위에서 모두 악계를 얻느니라’고 하나, 마치 백정이 양을 죽이는 것과 같아서 항상 죽이려는 마음을 품고 있다가 뜻을 지어 양을 죽임에 제한이 없나니, 설령 인간과 하늘 중에 있으면 그때는 죽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태어남을 받아 전전하면서 양 가운데로 떨어지는 이치가 있으므로, 일체 중생들 위에서 모두 악계를 얻느니라.
열두 가지 악율의계 역시 그와 같나니, 열두 가지의 악율의라 함은 첫째는 백정이요, 둘째는 사형을 집행하는 일이요, 셋째는 돼지를 기름이요, 넷째는 닭을 기름이요, 다섯째는 물고기를 잡음이요, 여섯째는 사냥꾼이요, 일곱째는 그물을 쳐 새를 잡음이요, 여덟째는 이무기를 잡음이요, 아홉째는 용에게 재앙 내리기를 빔이요, 열째는 옥의 죄수를 감시하는 벼슬아치요, 열한째는 도둑이 되는 것이요, 열두째는 왕가에서 늘 차출되어 도둑을 잡는 것이다. 이것이 열두 가지의 악율의를 행하는 사람이며, 누에를 치는 일도 말하자면 모두 악율의를 여의지 못한 것이니라.
악율의계는 세 때에 버리게 되나니, 죽는 이가 욕심과 사랑이 다할 때요, 율의계(律儀戒)를 받을 때요, 삼귀계를 받는 것과 같은 때이니라.
처음 시작한 말은 곧 악계를 버리는 것이요, 두 번째와 세 번째로
말할 때는 곧 착한 계율을 얻는 것이니라.”
“사람이 악한 계율을 지을 때에, 언제 선한 계율을 버리고 악한 계율을 얻는 것이옵니까?”
대답하셨다.
“처음에 말하기를, ‘나는 백정이 되겠다’고 하면, 곧 선한 계율을 버리는 것이요, 두 번째와 세 번째로 말하기를, ‘나는 백정이 되겠다’고 하면, 곧 악한 계율을 얻는 것이니라.
또 말하기를, ‘언제 선한 계율을 버리고 곧 악한 계율을 얻게 되느냐 하면, 만약 선한 계율을 지닌 사람이 아직 자신이 백정이 되겠다고 맹세하지 않고 다만 이끗을 탐하여 백정과 함께 죽이고 해치는 일을 하였다면 그때에 선한 계율을 범하였다고 이름하며, 선한 계율을 버리려 하고 악한 계율을 얻으려고 하여 반드시 자신이 백정이 되겠다고 맹세하면 악한 계율을 얻게 된다’라고 하니, 만약 악한 계율을 받겠다고 스스로가 명세하면 곧 얻어지는 것이요, 다른 데서부터 받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 하루ㆍ이틀ㆍ내지 열흘이며, 1년ㆍ2년 동안 악율의계를 받고자 하면, 맹세하는 마음이 오래 되었는지 잠시인지를 따라서 뜻을 따라 곧 얻어지느니라.
그 까닭은 이 악한 법으로써 나고 죽음의 흐름을 따르게 되어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이치가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일을 따라서 즉시 얻어지며, 선율의계(善律儀戒)와는 같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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