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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243 불교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38권

by Kay/케이 2023.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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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38

 

대방광불화엄경 제38권


동진 천축삼장 불타발타라 한역
이운허 번역


33. 이세간품 ③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공교한 방편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열 가지란 이른바 일체 부처 세계에 들어가는 공교한 방편을 분별하는 지혜와 일체 중생들 사는 곳에 들어가는 공교한 방편을 분별하는 지혜와, 일체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의 활동에 들어가는 공교한 방편을 분별하는 지혜와 일체 중생들 근기에 들어가는 공교한 방편을 분별하는 지혜와 일체 중생들의 모든 행과 업보에 들어가는 공교한 방편을 분별하는 지혜와 일체 성문의 행에 들어가는 공교한 방편을 분별하는 지혜와 일체 연각의 행에 들어가는 공교한 방편을 분별하는 지혜와 일체 보살의 행에 들어가는 공교한 방편을 분별하는 지혜와 일체 세간법에 들어가는 공교한 방편을 분별하는 지혜와 일체 불법에 들어가는 공교한 방편을 분별하는 지혜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공교한 방편을 분별하는 지혜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편히 머물면 그는 곧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공교한 방편을 분별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정수삼매(正受三昧)가 있습니다. 열 가지란 이른바 일체 세계의 정수삼매와 일체 중생들 몸의 정수삼매와 일체 법의 정수삼매와 일체 부처를 보는 정수삼매와 일체 겁에 잘 머무르는 정수삼매와 공교한 방편으로 불가사의한 몸을 내는 정수삼매와 일체 여래의 몸에 대한 정수삼매와 공교하게 일체 중생에게 순응해 깨우치는 평등한 정수삼매와 한 찰나 사이에 걸림없는 지혜로 일체 보살행을 완전히 갖추어, 큰 서원을 버리지 않는 선교한 지혜의 정수삼매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정수삼매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삼매에 편히 머무르면, 그는 곧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공교한 방편 지혜의 정수삼매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일체처(一切處)가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일체 중생의 처소와 일체 부처 세계의 처소, 일체 중생 성품의 처소, 일체 화재(火災)의 처소, 일체 수재(水災)의 처소, 일체 부처의 처소, 일체의 장엄을 내는 처소, 일체 여래의 무량의 공덕이 있는 처소, 일체의 분별하여 설법하는 처소, 일체 여래를 갖가지로 공양하는 처소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일체 처소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런 곳에 머무르면, 그는 곧 여래의 위없는 일체 큰 지혜의 처소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법문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한 몸이 일체 세계에 가득하는 법문과 일체 세계의 갖가지 무량한 빛깔을 나타내 보이는 법문, 일체 세계가 한 부처 세계에 들어가는 법문, 일체 중생을 맡아 지니는 법문, 여래의 장엄한 몸이 일체 세계에 가득 차는 법문, 일체 세계에 두루 이르는 법문, 한 찰나 사이에 일체 세계에 노니는 법문, 한 부처 세계에 일체 여래가 세간에 나오심을 나타내 보이는 법문, 한 몸이 일체 법계에 가득 차는 법문, 한 찰나 사이에 일체 부처의 신력을 나타내 보이는 법문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법문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문에 편히 머무르면 그는 곧 여래의 위없는 법문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신통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숙명을 생각해 내는 방편 지혜의 신통과 걸림없는 하늘 귀를 내는 방편 지혜의 신통, 일체 중생의 불가사의한 마음과 심수법(心數法)을 알아내는 방편 지혜의 신통, 걸림없는 하늘눈을 내어 중생을 관찰하는 방편 지혜의 신통, 불가사의한 자재한 신력을 내어 중생을 나타내 보이는 방편 지혜의 신통, 한 몸에 불가사의한 세계를 나타내 보이는 방편 지혜의 신통, 한 찰나 사이에 말할 수 없는 세계로 나아가는
방편 지혜의 신통, 불가사의한 장엄구를 내어 일체 세계를 장엄하는 방편 지혜의 신통,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화신(化身)을 내어 중생에게 나타내 보이는 방편 지혜의 신통, 말할 수 없는 세계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불가사의함을 이루어 중생들에게 나타내 보이는 방편 지혜의 신통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신통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신통에 편히 머무르면, 그는 곧 위없는 큰 방편 지혜의 신통을 얻어 모든 부처의 자재한 신력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밝음[明]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일체 중생의 업보를 아는 방편 지혜의 밝음과 일체 중생이 경계에서 해탈하여 적멸하고 깨끗한 마음을 아는 방편 지혜의 밝음, 일체의 경계와 일체 중생의 갖가지 결정과 일체의 법이 공한 데 들어가는 금강 같은 방편 지혜의 밝음, 불가사의한 깨끗하고 묘한 음성이 한량없는 세계의 어디에나 다 들리는 방편 지혜의 밝음, 지혜로 일체의 해침과 집착을 없애는 방편 지혜의 밝음, 태어나는 방편과 태어나지 않는 방편을 가진 방편 지혜의 밝음, 일체 경계에서 온갖 감각과 상상을 굴리는 방편 지혜의 밝음 등입니다.
또 일체의 법은 성품도 없고 성품 아닌 것도 없으며 모양도 없고 모양 아닌 것도 없고 한 성품이거나 성품이 없는 까닭에 무량겁에 갖가지로 설법하고 선근을 닦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룸을 아는 방편 지혜의 밝음입니다.
또 일체 중생의 생(生)을 알고 그 생이 없음도 알며, 일체 중생의 멸(滅)을 알고 그 멸이 없음도 알며, 인(因)도 알고 연(緣)도 알며, 일도 알고 경계도 알고 행도 알며, 생도 알고 멸도 알며, 중생의 말함도 알며, 우치(愚癡)도 알고 그 우치를 떠남도 알며, 뒤바뀜[顚倒]도 알고 뒤바뀜 아님도 알며, 더러움도 알고 깨끗함도 알며, 생사도 알고 열반도 알며, 있음도 알고 없음도 알며, 집착함도 알고 집착하지 않음도 알며, 견고함도 알고 떠남도 알며, 변함도 알고 변하지 않음도 알며, 일어남도 알고 일어나지 않음도 알며, 무너짐도 알고 도도 알며, 성취함도 알고 근기도 알며 또 교화를 받을 수 있는 중생을 아는데 그것은 그 그릇을 따라 응해 주기 위해서며, 중생을 교화하되
보살행을 잊지 않으니,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항상 중생을 교화하되, 보살행을 버리지 않고 고달파하는 마음이 없어, 일체 중생을 어기지 않고 연기를 관찰하는 방편 지혜의 밝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국토에도 집착하지 않아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어떤 부처님에게도 집착하지 않아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어떤 법에도 집착하지 않아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어떤 세계에도 집착하지 않아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어떤 중생에게도 집착하지 않아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중생을 보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지 않으며 중생을 다스리지 않고 중생을 위해 설법하지 않으면서도 보살의 행원을 버리지 않고 대비를 기릅니다. 일체 부처님을 뵈옵고는 그 바른 법을 들어 받들고는 잊어버리지 않고 부처의 의과(依果)를 얻습니다. 그리하여 갖가지 선근을 심으며,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며 공경하고 공양하는 마음을 기릅니다.
법계와 같은 마음을 원만히 성취하고 자재한 신력으로 불가사의한 한량없는 세계를 여섯 가지로 진동시킵니다. 갖가지로 설법할 줄 알고 중생들의 수를 알며 갖가지 중생들을 압니다. 고통의 일어남을 알고 고통의 멸함을 알며, 일체의 행고(行苦)를 알고 일체의 행은 다 번갯불 같음을 알면서도 보살행을 행하여 일체 생사의 근본을 아주 끊고 일체 중생을 다 잘 구호합니다.
또 보살행을 행하되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일체 여래의 종성을 끊지 않으며, 수미산왕 같은 마음을 내어 흔들리지 않고 갖가지 착각을 모두 없애어 일체 지혜의 문이 다 앞에 나타나며,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 정각을 이루고는, 생사 바다에서 일체 중생을 다 구제하는 등 이런 방편 지혜의 밝음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밝음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런 밝음에 편히 머물면 그는 곧 여래의 위없는 공교한 방편 지혜의 밝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해탈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번뇌에서의 해탈과 사견(邪見)에서의 해탈, 치연(熾然)에서의 해탈, 음(陰)ㆍ계(界)ㆍ입(入)에서의 해탈, 성문ㆍ연각의 지위를 뛰어나는 해탈, 생멸 없는 법인(法忍)의 해탈과
일체의 부처 세계와 일체의 중생과 일체 법에 집착하지 않고 무량무변한 모든 보살의 지위에 머물면서도 일체의 보살행을 떠나 여래의 자리에 머무는 해탈, 한 찰나 사이에 일체 삼세의 모든 법을 다 아는 해탈 등 이런 해탈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해탈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해탈에 머무르면 그는 곧 일체 중생을 모두 위해 위없는 불사를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원림(園林)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생사의 원림이니 보살행을 행하여 고뇌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요, 중생을 교화하는 원림이니 중생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며, 일체 겁의 원림이니 보살의 모든 큰 행을 섭취하기 때문이요, 청정한 세계의 원림이니 그 성품에 집착이 없기 때문이며, 일체 악마 궁전의 원림이니 악마의 경계를 항복 받기 때문이요, 일체 바른 법을 듣는 원림이니 바른 생각으로 관찰하기 때문입니다.
또 육바라밀과 사섭법(四攝法)과 삼십칠도품의 원림이니 자부(慈父)의 경계를 닦아 익히기 때문이요, 십력(十力)과 사무소외(四無所畏)와 내지 일체 불법의 원림이니 다른 법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며, 보살이 온갖 무량무변한 공덕의 신력을 나타내는 원림이니 깨끗한 법륜을 굴려 중생을 제어하기 때문이요, 찰나마다 일체 중생을 위해 정각 이룸을 나타내는 원림이니 법신이 허공과 같아 일체 세계에 가득하여 평등하게 깨닫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원림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원림에 머무르면 그는 곧 여래의 위없는 즐거움의 원림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궁전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보리심을 내는 궁전이니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이요, 십선업(十善業)의 공덕과 지혜의 궁전이니 욕심 세계[欲界] 중생들을 교화하여 성숙시키기 때문이며, 네 가지 범주처(梵住處)의 궁전이니 형상 세계[色界] 중생들을 교화해 성숙시키기 때문이요, 정거천(淨居天)에 태어나는 궁전이니 어떤 번뇌도 그를 물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며, 무형 세계[無色界天]에 태어나는 궁전이니
중생들의 장애와 어려움을 없애 버리기 때문입니다.
또 더러운 세계에 내려와 태어나는 궁전이니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 번뇌를 끊게 하기 위해서요, 깊은 궁중에서 채녀(采女)와 처자들의 재미를 봄을 나타내는 궁전이니 전생에 함께 수행한 중생들을 교화하여 성숙시키기 위해서며 사천하의 왕과 사대천왕과 제석천왕ㆍ범천왕들을 위해 나타내는 궁전이니 자재한 중생들의 마음을 굴복시키기 위해서요, 일체 보살의 자재한 신력으로 명령을 내리는 궁전이니 일체의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지혜가 자재하기 때문이며, 부처님에게서 위없이 자재한 일체지(一切智) 왕의 수기를 받는 궁전이니, 십력의 장엄으로 일체 법에 자재한 법왕의 일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궁전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편히 머물면, 그는 곧 일체 법왕에게서 수기를 받는 자재한 법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적정(寂靜)을 즐거워하나니 산란하지 않기 때문이요, 밝은 지혜를 즐거워하나니 법을 잘 분별하기 때문이며, 일체 부처님께 나아가기를 즐거워하나니 그 앞에서 법을 듣고 받들어 지니기 때문이요, 일체 부처를 즐거워하나니 시방에 가득하기 때문이며, 보살의 자재한 신력을 즐거워하나니 무량한 법문을 중생의 몸에 나타내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삼매를 즐거워하나니 한 삼매의 문에서 일체 삼매의 문을 내기 때문이요, 다라니문을 즐거워하나니 일체의 법으로 중생을 교화하면서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며, 변재를 즐거워하나니 한 글귀의 뜻을 말할 수 없는 동안 끝없이 말하기 때문이요, 보리를 즐거워하나니 무량한 법문을 중생들 몸에 나타내어 정각을 이루게 하기 때문이며, 법륜 굴리기를 즐거워하나니 일체 외도를 항복 받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즐거움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즐거움에 편히 머물면 그는 곧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법의 즐거움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장엄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힘의 장엄이니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이요, 두려움 없는 장엄이니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이며, 뜻의 장엄이니 말할 수 없는 뜻의 법을 설명해 끝이 없기 때문이요, 법의 장엄이니 팔만 사천의 법장을 말해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며, 원의
장엄이니 모든 보살의 원하는 일에서 물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행의 장엄이니 보현보살의 행을 성취하기 때문이요, 부처 국토의 장엄이니 일체 부처 국토를 받들어 지녀 한 부처 국토로 만들기 때문이며, 묘한 음성의 장엄이니 큰 감로의 법을 내려 일체 부처 국토에 가득히 차게 하기 때문이요, 받들어 지니는 장엄이니 일체 겁에 끊이지 않고 보살행을 행하기 때문이며, 변화하는 장엄이니 한 중생의 몸에 일체 중생과 같은 몸을 나타내 보여 일체 중생들이 다 보고 오로지 부처님의 일체지를 구하여 물러나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장엄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편히 머물면 그는 곧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장엄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부동심(不動心)을 냅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일체 소유를 모두 버리어 부동심을 내고, 모든 부처의 바른 법을 내어 부동심을 내며,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여 부동심을 내고 평등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관찰하여 부동심을 내며, 일체 중생을 포섭하여 부동심을 내고, 한결같이 일체 불법을 쉬지 않고 오로지 구하여 부동심을 냅니다.
일체 중생 수와 같은 겁 동안 보살행을 닦아서 부동심을 내고, 뿌리가 있는 믿음과 흐리지 않은 믿음ㆍ번뇌를 떠난 믿음ㆍ밝고 깨끗한 믿음ㆍ일체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는 믿음ㆍ물러나지 않는 믿음ㆍ무너지지 않는 믿음 등을 성취하여 부동심을 내며, 구경의 일체지를 원만히 성취하여 부동심을 내고 일체 보살의 모든 행을 성취하여 부동심을 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내는 열 가지 부동심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편히 머무르면 그는 곧 위없는 일체지의 부동심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의 버리지 않는 깊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일체 부처의 보리를 깨달으려는 버리지 않는 깊은 마음과, 일체 중생을 교화해 성숙시키려는 버리지 않는 깊은 마음, 일체 부처의 종성을 끊어지지 않게 하려는 버리지 않는 깊은 마음, 선지식을 친근하려는 버리지 않는 깊은 마음, 일체 부처 국토에서 일체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려는 버리지 않는 깊은 마음 등입니다.
또 오로지 대승과 일체 공덕을 구하려는 버리지 않은 깊은 마음, 일체 부처님 처소에서 범행(梵行)을 닦으면서 계율을 지키려는 버리지 않는 깊은 마음, 일체 보살을 포섭하려는 버리지 않는 깊은 마음, 일체 불법을 들어 가지려는 버리지 않는 깊음 마음, 일체 보살의 행과 원을 닦아 익히고 일체 불법을 한결같이 구하려는 버리지 않는 깊음 마음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버리지 않는 깊은 마음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편히 머무르면 그는 곧 일체 부처님의 버리지 않는 깊은 마음의 바른 법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지혜의 관찰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지혜로 관찰하여 일체의 법을 잘 분별하고 지혜로 삼세의 일체 선근을 관찰하며, 지혜로 일체 보살행의 자재한 신력을 관찰하고 지혜로 모든 법의 교묘한 방편문을 관찰하며, 지혜로 일체 부처님의 가짐[持]을 관찰하고 지혜로 일체 다라니문을 관찰합니다.
또 지혜로 일체 세계에서 항상 바른 법을 연설함을 관찰하고 지혜로 일체 법계에 깊이 들어감을 관찰하며, 지혜로 시방 일체 세계의 불가사의함을 관찰하고 지혜로 일체 불법을 관찰하며, 지혜로 장애 없는 지혜를 관찰합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지혜의 관찰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편히 머무르면 그는 곧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관찰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법을 분별하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일체의 법이 다 인연을 따라 일어남을 분별하고 일체 법이 다 꼭두각시 같음을 분별하며, 일체 법이 다 다툼이 없음을 분별하고 일체 법이 다 무량무변함을 분별하며, 일체 법이 다 의지함이 없음을 분별하고, 일체 법이 다 금강 같음을 분별하며, 일체 법이 다 바로 여래임을 분별하고, 일체 법이 다 고요함을 분별하며, 일체 법이 다 바른 도임을 분별하고 일체 법이 다 한 모양 한 뜻임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분별하는 열 가지 법이니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법에 편히 머무르면 그는 곧 교묘한 방편으로 일체 모든 법을 다 잘 분별할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때 없음[無垢]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깊은 마음이 때가 없고 모든 의혹을 없애어 때가 없으며, 사견(邪見)을 멀리 떠나 때가 없고 경계가 때가 없으며, 일체지를 얻으려 함이 때가 없고 모든 변재가 때가 없으며, 두려움 없음이 때가 없고 일체 보살의 머무는 쯤이 때가 없으며, 일체 보살이 바로 받는 삼매가 때가 없고 삽십이상과 백 가지 복으로 일체 깨끗한 법[自淨法]을 성취하여 끝내는 위없는 보리를 얻음에 때가 없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때 없음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편히 머무르면 그는 곧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때 없는 법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지인(智印)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보살마하살은 고고(苦苦)를 알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보살행을 닦되 한결같이 위없는 보리를 구하며,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으면서 보리를 구하려는 큰 원을 버리지 않고 굳세게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나니 이것이 첫째 지인입니다.
일체 범부들은 다 번뇌와 착각으로 의혹에 어지러워 있습니다. 그들이 보살을 해칠 때 야비하고 거친 욕설로 보살을 꾸짖고 혹은 칼이나 막대기나 기와며 돌로 해치더라도 보살은 조금도 걱정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보살행을 닦아 오로지 보리를 구하며, 참는 법을 닦아 익히면서 생멸을 떠나는 법인을 증득하나니 이것이 둘째 지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매우 깊은 불법을 듣고 일체지를 찬탄하며, 그 법을 듣고는 한결같이 믿고 이해하나니, 이것이 셋째 지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생각하기를 ‘나는 보리심을 내어 끝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리라. 그리하여 다섯 갈래[五道]에 흘려 다니면서 무량한 고통을 받는 저 중생들을 기쁘게 하고, 또 부지런히 정진하여 선근을 닦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영원히 안락을 얻게 하리라’ 하는데, 이것이 넷째 지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여래의
지혜가 무량무변함을 알면서도 여래와 더불어 평등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여래에게서 무량무변의 지혜라는 말을 듣고는, 문자에서 여래와 평등한 줄을 분별해 아나니 이것이 다섯째 지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좋은 욕심, 무너뜨릴 수 없는 욕심, 매우 깊은 욕심, 훌륭한 욕심, 공덕을 지으려는 욕심, 장엄하려는 욕심, 견줄 데 없는 욕심, 위없는 욕심, 견고한 욕심, 끝내 위없는 보리를 바로 구할 때 일체 악마와 외도 및 그 권속들이 깨뜨릴 수 없는 욕심과 위없는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려는 욕심 등을 성취하나니, 이것이 여섯째 지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신명을 아끼지 않고 두려움이 없이 보살행을 닦고 보리심을 내어 일체지에 나아가 모든 부처님의 지혜의 광명을 얻으며, 부처의 보리를 버리지 않고 또 선지식을 버리지 않나니 이것이 일곱째 지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만일 선남자 선여인으로서 대승을 배우는 이가 있으면, 그들로 하여금 부처의 선근을 기르고 그 선근에 편히 머무르며, 일체 지혜를 섭취하여 그 마음이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나니 이것이 여덟째 지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평등한 마음에 머물러 일체지를 닦게 하고는 중생들을 위해 설법하여 모두 위없는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려는 대비심을 기르나니 이것이 아홉째 지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삼세 모든 부처님의 온갖 선근을 따라 부처 종자를 이르려고 일체지를 내나니 이것이 열째의 지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지인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지인을 성취하면 그는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여래의 위없는 지인을 원만히 갖출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지혜 광명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결정하는 지혜 광명과 일체 부처를 보는 지혜 광명, 일체 중생이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는 것을 보는 지혜 광명, 일체 중생을 깨우쳐 다 수다라법(修多羅法)을 구하게 하는 지혜 광명, 선지식에 의해 보리심을 내고는 선근을 기르는 지혜 광명 등입니다.
또 모든 부처님을 나타내 보이는 지혜
광명과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모두 성숙시켜 부처 자리에 편히 머무르게 하는 지혜 광명, 부사의 한 법을 분별해 해설하는 지혜 광명, 모든 부처님의 신력을 주지(住持)하는 좋은 방편의 지혜 광명, 일체 바라밀을 원만히 성취하는 지혜 광명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지혜 광명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편히 머무르면, 그는 곧 일체 불법에 대한 위없는 지혜 광명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헤아릴 수 없는 열 가지 머무름이 있어서 그것은 일체의 중생과 성문이나 연각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보살마하살은 실제의 자리에 머물면서도 증명을 받지 않는데 그것은 일체의 소원을 완전히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머무름이 헤아릴 수 없는 첫째 자리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법계와 같은 청정한 선근을 심고도 그 선근에 집착하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머무름이 헤아릴 수 없는 둘째 자리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보살의 행이 마치 허깨비와 같고 모든 법이 다 적멸한 줄을 알아 모든 불법에 대해 의혹을 내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머무름이 헤아릴 수 없는 셋째 자리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생사의 마음을 떠나 말할 수 없는 겁 동안에 보살행을 닦되, 일체의 큰 서원에 있어서 중간에 싫증을 내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의 머무름이 헤아릴 수 없는 넷째 자리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일체 법에 머무르되 의지하는 바가 없어 모두 적멸하지만 열반을 증득하지 않는데, 그것은 일체지의 도를 원만히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니, 이것이 보살의 머무름이 헤아릴 수 없는 다섯째 자리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모든 겁이 겁이 아닌 줄을 알면서도, 실로 일체 겁을 말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머무름이 헤아릴 수 없는 여섯째 자리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일체의 법이 행이 아닌 줄을 알면서도 그 행을 버리지 않고 바로 불법을 구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머무름이 헤아릴 수 없는 일곱째 자리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마음이 곧 삼계요 마음이 곧 삼세임을 알고, 그 마음이 무량무변한 것임을 아나니 이것이 보살의 머무름이 헤아릴 수 없는 여덟째 자리입니다.

보살마하살은 한 중생을 위해서도 말할 수 없는 겁 동안 보살행을 닦아, 그로 하여금 일체지에 편히 머물게 하며, 중생에서와 같이 일체 중생에 대해서도 또한 그와 같아서 싫증을 내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의 머무름이 헤아릴 수 없는 아홉째 자리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비록 보살의 모든 행을 원만히 성취했더라도 정각을 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나는 정각을 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보살행을 행하여 한량없는 겁 동안에 한량없는 중생들을 모두 위없는 보리에 편히 머무르게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머무름이 헤아릴 수 없는 열째 자리입니다.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편히 머무르면 그는 곧 일체 불법에서 헤아릴 수 없는 위없는 큰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게으르지 않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보살마하살은 생각합니다. 즉 ‘나는 일체 악마와 그 권속을 항복 받기 위해 게으르지 않은 마음을 내고 일체 외도를 법대로 항복 받기 위해 게으르지 않은 마음을 내며, 깊고 묘한 법으로 일체 중생을 기쁘게 하기 위해 게으르지 않은 마음을 내고, 일체 법계와 같은 온갖 바라밀을 원만히 성취하기 위해 게으르지 않은 마음을 내리라.
또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 공덕 창고를 쌓아 원만히 성취시키기 위해 게으르지 않은 마음을 내고, 일체 여래의 위없는 보리는 매우 넓고 큰 일이라 원만히 성취하기 어려우므로 나는 보살행을 닦아 그것을 원만히 성취하기 위해 게으르지 않은 마음을 내리라. 위없는 법으로 일체 중생을 다스려 다 성숙시키기 위해 게으르지 않은 마음을 내며, 일체 세계의 갖가지 다른 빛깔의 한량없는 장엄으로 정각을 이루기 위해 게으르지 않은 마음을 내리라.’
또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즉 ‘내가 보살행을 닦을 때 만일 어떤 중생이 와서 내 몸이나 혹은 손ㆍ발ㆍ귀ㆍ코ㆍ피ㆍ살ㆍ골수나 또 처자ㆍ코끼리ㆍ말ㆍ국토 등 이런 것을 구하면 나는 그것을 다 주되, 내지 한 생각에도 뉘우치지 않고 다 보시하여 그들을 다 이롭고 안락하게 하고도 그 과보를 구하지 않고, 대자비심을
으뜸으로 하여 게으르지 않은 마음을 내리라.’
보살마하살은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한 찰나 사이에 삼세의 모든 부처와 일체 불법ㆍ일체 중생ㆍ일체 국토ㆍ일체 세계ㆍ일체 허공계ㆍ일체 법계ㆍ일체의 시설한 언어세계, 일체 적멸한 열반계 등 이런 모든 법을, 한 생각에 상응한 지혜로 모두 그 상을 분별해 알고, 명료히 닦고 분별해 닦아 지단(智斷)으로 증득함을 알며, 어떤 법도 허망하게 취하지 않아서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데 대해 아무 분별도 없고 아무 수행도 없으며 경계도 없고 소유도 없으리라.’
그리하여 둘이 없는 지혜로 일체의 둘이 없음을 알고 모양이 없는 지혜로 일체의 모양을 알며, 겁(劫)이 없는 지혜로 일체의 겁을 알고 다름이 없는 지혜로 일체의 다름을 알며, 광명의 지혜로 일체 세간지 광명계를 알고 갈래[趣]의 지혜로 일체 세계를 알며, 세계가 아닌 지혜로 일체 세계를 알고 중생 자리의 지혜로 일체 중생계를 알며, 집착이 없는 행을 성취하고 견고하지 않는 지혜로 일체의 견고함을 압니다.
또 물들지 않는 지혜로 일체의 번뇌를 알고 다함이 없는 지혜로 일체의 다함이 없음을 알며, 법계와 같은 지혜로 일체 세계를 그 몸에 나타내고 일체의 말을 떠난 지혜로 일체의 미묘한 말소리를 내며, 한 성품의 지혜로 성품이 없는 법을 말하고 한 경계의 지혜로 갖가지 다른 경계를 나타내 보이며, 말할 수 없는 모든 법을 깨닫는 지혜로 한량없는 자재한 신변(神變)을 나타내 보이고 일체의 지위를 깨닫는 지혜로 크게 자재한 신변과 일체지의 자재한 신변을 나타내어,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성숙시키기 위해 게으르지 않는 마음을 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내는 열 가지 게으르지 않은 마음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마음에 편히 머무르며, 그는 곧 일체 부처님의 최상의 게으름 없는 법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수미산왕과 같은 정직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보살마하살은 항상 바른 생각으로 일체지의 법을 닦나니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결정하는 수미산왕과 같은 정직한 마음의 그 첫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일체 법의 공함과 일체 법의 아무것도 없음을 관찰하나니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결정하는 수미산왕과 같은 정직한 마음의 그 둘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한량없는 겁 동안 보살행을 행하여, 모두 완전히 갖춘 깨끗한 법으로 결정코 발심하고는, 여래의 한량없는 지혜의 법을 알고 깨끗한 법을 향해 나아가 그것을 모아 쌓나니,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결정하는 수미산왕과 같은 정직한 마음의 그 셋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일체 불법을 위하는 평등한 마음으로 모든 선지식을 공경하고 공양하면서, 의심을 일으키지 않고 이끗을 구하지도 않으며, 또 법을 훔치려는 마음을 멀리 떠나고 다만 위없이 공경하고 공양하면서 일체를 보시할 마음만을 일으키나니,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결정하는 수미산왕과 같은 정직한 마음의 그 넷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어떤 중생이 꾸짖고 욕하면서 고통을 주고 나아가서는 목숨을 빼앗더라도, 그는 그 때문에 보리심을 버리거나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또 성도 내지 않으며, 그들에 대한 대비의 장엄을 버리지 않고 더욱 그것을 기릅니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일체 법이 여여하여 평등한 것임을 성취하고 또 여래의 큰 참는 법을 결정코 알기 때문이니,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결정하는 수미산왕과 같은 정직한 마음의 그 다섯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뛰어난 공덕, 즉 천상의 뛰어난 공덕과 인간의 뛰어난 공덕과 색이 뛰어난 공덕, 힘이 뛰어난 공덕, 권속이 뛰어난 공덕, 욕심이 뛰어난 공덕, 왕법(王法)이 뛰어난 공덕, 신통이 뛰어난 공덕, 지혜가 뛰어난 공덕 등 이런 공덕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보살은 맛의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으며, 재물의 즐거움에도 침착하지 않고 권속의 즐거움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만 바른 법을 오로지 구하고 바른 법을 분명히 채우며, 바른 법을 분명히 설명하고 바른 법을 분명히 성취합니다. 그리고 바른 법의 등불을 향하고 바른 법의 구호를 향하며, 바른 법에의 귀의로 향하고 바른 법의 길을 향하며, 바른 법의 뜻에 향하고 즐겨 바른 법을 구하며,
고요한 법에 즐겨 머무릅니다.
보살마하살은 비록 그런 모든 즐거움을 얻었다 하더라도 온갖 악마의 경계를 모두 떠납니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과거 세상에 그런 마음을 내어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갖가지 악마의 경계를 멀리 떠나 부처의 경계에 머물게 했기 때문이니,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결정하는 수미산왕과 같은 정직한 마음의 그 여섯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부지런히 정진을 닦아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려 합니다. 그리하여 아승기겁 동안 보살행을 닦으면서도 그래도 말하기를 ‘나는 지금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다’ 하고는,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고 보살행을 행하여, 비록 정각을 빨리 이룰 수 있지만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 한량없는 겁 동안 보살행을 닦나니,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결정하는 수미산왕과 같은 정직한 마음의 그 일곱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일체 중생들이 항복 받기 어렵고 구제하기 어려우며, 은혜도 모르고 은혜 갚을 줄도 모름을 잘 압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위해 큰 장엄으로 스스로 장엄하고는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마음이 자재를 얻어 뜻대로 되는 경계에서도 나쁜 마음을 내지 않고 다른 데서 번뇌를 내지 않게 하나니,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결정하는 수미산왕과 같은 정직한 마음의 그 여덟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생각하기를 ‘나는 남을 의지해 보리심을 내어 보살행을 닦는 것이 아니다. 나를 도와 보살행을 닦게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다만 내 한 몸이 미래겁이 다하도록 보살행을 닦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쌓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는, 내 몸도 청정하고 일체 중생도 청정하게 하며, 스스로의 경계도 알고 남의 경계도 알아, 삼세 부처님의 경계와 같이 되리라’ 하나니,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결정하는 수미산왕과 같은 정직한 마음의 그 아홉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알고 보기를 ‘보살행을 닦는다는 한 법도 없고 보살행을 완성한다는 한 법도 없으며,
중생을 다스린다는 한 법도 없고 중생을 교화한다는 한 법도 없다.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한다는 한 법도 보지 못하고 과거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다는 한 법도 보지 못하며, 미래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리라는 한 법도 보지 못하고 현재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는 한 법도 보지 못한다. 과거에 설법하였고 미래에 설법할 것이며 현재에 설법한다는 한 법도 없고 한 법도 능히 설법하는 사람이 없고 또 말해야 할 법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 큰 서원을 버리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보살마하살이 이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내어 일체의 매우 깊은 법행에 깊이 들어가면서도 아무 행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보살마하살이 선업과 선근을 닦아 모아서는 일체의 다스리는 법을 청정하게 하고 지혜를 원만히 이루어 찰나찰나에 일체 선근의 법을 쌓고 기릅니다. 그리하여 만일 일체의 법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면 나는 무슨 뜻으로 위없는 도를 구하겠는가 합니다. 그러므로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습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결정하는 수미산왕 같은 정직한 마음의 그 열째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마음에 편히 머물면, 그는 곧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지혜의 수미산왕과 같은 정직한 마음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지혜의 큰 바다에 깊이 들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한량없는 일체 중생계에 들어가는 것이니, 이것이 지혜의 큰 바다에 깊이 들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그 첫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일체 세계에 들어가도 허망함을 취하지 않나니 이것이 지혜의 큰 바다에 깊이 들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그 둘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일체가 허공계와 같음을 알아 시방의
일체 세계에 들어가도 아무 장애가 없나니 이것이 지혜의 큰 바다에 깊이 들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그 셋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법계에 잘 들어가되 걸림없는 데 들어가고 끊이지 않음에 들어가며, 덧없음에 들어가고 한량없음에 들어가며, 나지 않는 데에 들어가고 멸하지 않는 데에 들어가며 일체를 아는 데에 들어가나니 이것이 지혜의 큰 바다에 들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그 넷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와 보살ㆍ법사ㆍ성문ㆍ연각 및 일체 중생들의 심은 선근과, 과거 부처님들이 이미 이룬 위없는 보리의 선근과 미래 부처님들이 장차 이룰 위없는 보리의 선근과 현재 부처님들이 지금 이루는 위없는 보리의 선근과, 과거 부처님들이 설법하여 중생들을 교화하고 항복 받아 성숙시킨 선근과 미래 부처님들이 설벌하여 중생들을 교화하고 항복 받아 성숙시킬 선근과 현재 부처님들이 설법하여 중생들을 교화하고 항복 받아 성숙시키는 선근 등을 보살마하살들이 모두 따라 기뻐하면서 그와 같은 선근을 기르고 모으지만 충분하다는 마음이 없나니, 이것이 지혜의 큰 바다에 깊이 들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그 다섯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찰나찰나에 과거 세상에 들어가 말할 수 없는 겁을 관찰합니다. 즉 한 겁 동안에 백억 부처가 세상에 나온 것과 혹은 천억 부처ㆍ백천억 부처ㆍ한량없는 부처ㆍ아승기 부처ㆍ불가사의의 부처ㆍ말할 수 없는 부처ㆍ한계가 없는 부처ㆍ끝이 없는 부처ㆍ말할 수도 없고 말할 수 없는 부처ㆍ산수나 비유로도 미칠 수 없는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것과, 그 모든 부처님이 그 권속과 보살 대중과 여러 성문들에게 설법하여 교화하신 것과, 그 수명이 어떠한 것과, 갖가지 법의 머무르는 것 등을 다 관찰하되 한 겁에서와 같이 모든 겁에 대해서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없는 겁에서도 모든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해 심은 선근도 다 알며, 또 중생들이 부처님을 뵈옵고 심은 선근과 미래의 한량없는 부처님들을 만날 것까지도 다 봅니다. 이
렇게 과거의 모든 겁을 관찰하면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없나니, 이것이 지혜의 큰 바다에 깊이 들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그 여섯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미래 세상에 들어가 일체 겁을 모두 관찰하고는, 부처가 있는 겁도 알며, 그 각 겁을 몇 부처가 세상에 나왔는데, 그 세계와 여래의 이름은 무엇인 것을 알고 또 제도한 중생이 얼마인 것을 알며, 또 그 여래 수명의 길고 짧은 것을 다 압니다. 이렇게 미래 세상에 들어가 그 모든 겁을 다 분별해 알면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없나니, 이것이 지혜의 큰 바다에 들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그 일곱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현재 세계에 들어가 시방의 일체 세계를 관찰합니다. 무량무변하여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모든 세계에서 일체 여래가 집을 떠나 도를 배우려고 도량으로 나아가, 보리수 밑에 보리초(菩提草)를 펴고 가부하고 앉아서는, 악마의 권속들을 항복 받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룹니다. 그리고는 성 안에 들어갔다가 다시 천상의 궁전에 올라가 미묘한 법을 말해 바른 법륜을 굴려 무량한 중생을 항복 받고 교화하고는, 여래의 한량없는 자재한 신력을 나타내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부촉하고 나아가서는 목숨을 버리고 무여열반에 들어갑니다.
여래께서 멸도하신 뒤에는 대중이 모두 모여 경장(經藏)을 결집(結集)하고 바른 법을 호지하여 그것이 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무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사리를 위해서 한량없는 탑을 세우고는 갖가지 장엄으로 공경하고 공양하며, 또 중생들을 교화하여 부처님을 뵈옵고 바른 법을 들어 기억하고 보호하며, 지혜로 관찰하여 매우 깊은 마음을 일으키고 길러, 무량한 법계에 그득 채우되 일체 불법에 있어서는 조금도 틀림이 없게 합니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일체 여래가 모두 꿈과 같음을 알므로, 일체 부처님께 나아가 공경하고 공양하지만, 자신에도 집착하지 않고 부처님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으며, 세계에도 집착하지 않고 대중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법을 듣는 데도 집착하지 않고 어떤 겁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을 뵈옵고 법을 들으며 세계를 관찰하고 일체의 겁을 모두 알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나니, 이것이 지혜의 큰 바다에 깊이 들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여덟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겁 동안 한량없는 부처님들을 공경 공양하고, 그 낱낱 겁 동안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부처님들을 공경 공양하며,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남을 나타내어 삼계를 벗어나서는 갖가지 공양거리로 부처님들과 보살 대중과 성문승들에게 공양하고, 부처님들이 멸도하신 뒤에는 위없는 공양거리로 그 사리에 공양하며, 큰 보시를 널리 행하여 일체 중생들의 소원을 만족시켜 줄 때, 그 큰 보시는 불가사의하지만 과보를 구하지 않나니 그것은 다만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이롭게 하고 포섭하기 위해서입니다.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겁 동안 모든 부처님들을 공경 공양하고 바른 법을 보호해 가져 중생들을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지혜의 큰 바다에 깊이 들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그 아홉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일체 부처님들과 일체 보살들과 일체 법사들에게서 오로지 보살의 법과 보살의 위의(威儀), 보살의 수순하는 법, 보살의 청정한 법, 보살의 기르는 법, 보살의 다스리는 법, 보살의 평등한 법, 보살의 내는 도 등을 가르치기를 구하여서는, 보살의 다라니문을 받들어 가져 일체 중생을 섭취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위해 설법하여 교화하고 항복 받고 성취시켜,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지를 얻으려는 마음을 내어 물러나지 않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무르면서 일체 불법을 그대로 따라 닦아 익혀 중생들을 교화하지만, 충분하다는 생각을 내지 않나니 이것이 지혜의 큰 바다에 깊이 들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그 열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지혜의 큰 바다에 깊이 들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열 가지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편히 머물면 그는 곧 모든 부처님들의 위없는 지혜의 큰 바다에 들어갈 것입니다.”


화재(火烖) : 뒷글자는 음이 재(哉)이고, 또한 재(災)로 쓰기도 한다.
훼해(毀害) : 앞글자는 허(許)와 위(委)의 반절이다.
경동(傾動) : 앞글자는 거(去)와 영(營)의 반절이다.
쾌락(快樂) : 앞글자는 고(苦)와 쾌(夬)의 반절이다.
추비(麁鄙) : 앞글자는 창(倉)과 호(胡)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방(方)과 미(美)의 반절이다.
도장(刀杖) : 뒷글자는 직(直)과 량(兩)의 반절이다.
와석(瓦石) : 앞글자는 오(五)와 화(化)의 반절이다.
도법(盜法) : 앞글자는 음이 도(導)이다.
가책(訶責) : 앞글자는 호(虎)와 하(何)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측(側)과 혁(革)의 반절이다.
매욕(罵辱) : 앞글자는 막(莫)과 가(駕)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이(而)와 촉(蜀)의 반절이다.
탈명(奪命) : 앞글자는 도(徒)와 활(活)의 반절이다.
에심(恚心) : 앞글자는 어(於)와 피(避)의 반절이다.
하자(下藉) : 뒷글자는 자(慈)와 야(夜)의 반절이다.
착류(錯謬) : 앞글자는 창(倉)과 각(各)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미(靡)와 유(幼)의 반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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