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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217 불교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12권

by Kay/케이 2023.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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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12

 

대방광불화엄경 제12권

동진 천축삼장 불타발타라 한역
이운허 번역

17. 공덕화취보살십행품 ②

그때 부처님 신력으로 시방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으니, 여래 위신의 법이 으레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꽃구름과 하늘 향 구름, 하늘 가루향 구름, 하늘 화만 구름, 하늘 옷 구름, 하늘 보배 구름, 하늘 장엄 구름 등이 비처럼 내리고 또 하늘 음악이 저절로 소리를 내며, 하늘의 묘한 광명은 일체를 두루 비추어 모든 하늘의 미묘한 음성을 내었다. 이 사천하의 야마천궁에서 십행법(十行法)을 연설하는 것처럼, 부처님의 신력으로 시방세계에서도 그와 같았다.
그때 시방으로 각각 십만 부처 세계 티끌 수 같은 세계를 지나, 십만 부처 세계 티끌 수 같은 보살이 시방에 가득히 이 국토에 와서 공덕림보살에게 말했다.
“장합니다. 불자여, 당신은 보살의 온갖 행을 잘 연설했습니다. 여기 온 보살들도 다 당신 이름과 같이 공덕림(功德林)이요, 우리가 사는 세계 이름도 공덕당(功德幢)이며, 거기 계신 부처님 명호도 모두 같아서 보공덕(普功德)이라 합니다. 우리 부처님 계신 데서도 모두 십행을 연설하시는데, 그 이름과 맛과 글귀와 차례와 대중 권속 등도 다 여기와 같아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불자여, 우리는 부처님 신력을 받들고 여기 와서 당신을 위해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천하의 야마천궁 보장엄전에 십행법을 연설할 때, 우리가 와서 증명하는 것처럼 저 시방세계에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그때 공덕림보살은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의 모든 법계와 권속들을 두루 관찰하였다. 그리하여 부처 종자를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고 보살의 종성(種性)을 청정하게 하며, 보살의 서원의 종자를 물러나지 않게 하고 행의 종자를 끊어지지 않게 하며, 삼세의 부처 종자를 다 섭취하고 중생들의 선근 종자를 분별해 말하며, 일체 중생의 때와 근성과 욕망과 더럽고 깨끗함과 마음의 활동 종자 등을 다 관찰하고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종자를 두루 비추기 위해
게송을 외웠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예배하나니
번뇌 떠나 청정하고 지혜 걸림없으며
경계는 깊고 멀어 짝할 이 없고
그 도는 청정하여 허공과 같네.

인간 중에 최상으로 장애가 없고
공덕이 한량없고 두려움이 없으며
지혜는 둘이 없어 다시 그 짝 없나니
일체의 모든 행은 맑고도 깨끗하네.

시방세계 현재의 길잡이로서
진실한 이치 알아 두려움 없고
최상의 공덕으로 온갖 악 떠났나니
그는 끝내 위없는 도 빨리 이루리.

여래는 사람 중의 대장부신데
대자대비하신 마음 이미 냈나니
청정한 법계 안에 마음을 놀리면서
그 행은 모든 중생 이롭게 하네.

시방과 삼세에 짝 없는 어른
스스로 정각 이뤄 어리석음 없애고
모든 부처님 법에 다 평등하나니
그 공덕은 견고해 부술 수 없네.

시방의 일체 세계 가운데에서
거기 계신 여래 모두 뵈옵고
그 여래에 대해 거짓 없나니
그 사람의 행하는 바 안 물러나네.

맑고도 또 깨끗한 참 법계와
매우 깊고 미묘한 최상의 이치 보면
어떤 우치 망상에도 미혹 되지 않으리니
그의 행은 공덕 창고 능히 이루리.

방편으로 중생들을 잘 분별해 알고
진실하고 미묘한 법계에 들어
남을 의지 안하고 스스로 깨쳤나니
그 사람의 행은 허공과 같네.

한량없고 끝없는 모든 세계를
끝까지 관찰하여 다 적멸하고
일체의 모든 법에 장애 없나니
그 사람의 행은 모니보다 훌륭하네.

원만하고 견고하여 안 물러나고
가장 좋고 존귀한 법 다 성취하고
청정한 서원 이뤄 저 언덕에 가나니
이런 온갖 보살의 행 자세히 들어라.

한량없고 끝이 없는 일체 지위를
지혜로 밝게 알아 장애가 없고
매우 깊고 미묘함을 경계 삼나니
그야말로 두려움 없는 논사행(論師行)이네.

글귀 글귀를 자세히 분별하고
미묘한 그 지혜에 깊이 들어가
진실로 갖가지의 법을 아나니
그는 큰 고요한 행[大牟尼]을 닦도다.


갖가지 악을 멀리 떠나고
언제나 중생들을 이롭게 하나니
그 사람의 갖가지 공덕 창고는
저 부처님과 다름이 없네.

언제나 모든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음을 두루 보시하면서
청정하여 거기에 집착 없나니
그 사람의 행은 짝할 이 없네.

마음은 깨끗하여 집착이 없고
입은 고요해 허물없으며
묘한 공덕을 다 갖추었나니
그는 가장 훌륭한 행을 닦네.

끝끝내 깊은 이치에 들고
공덕과 선정이 끝이 없으며
그는 죽지 않는 행을 닦나니
부처님이 언제나 돌봐 주시네.

아만과 분노를 멀리 떠나고
묘한 음성은 시방에 가득하며
바른 법의 가르침에 머무르나니
그 행은 아무 데도 견줄 수 없네.

보시 행하여 저 언덕에 이르고
갖가지 복으로 스스로 장엄하고
그의 지혜는 가장 뛰어나
중생들을 모두 기쁘게 하네.

깊은 지혜 자리에 잘 들어가
편히 머무른 마음 흔들리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의 행 금강과 같아
견고하여 도저히 부술 수 없네.

모든 법계마다 다 들어가고
따르는 방편으로 저 언덕에 이르러
마지막에 가서는 자재 얻나니
그것은 법의 광명 가진 이뿐이네.

다시 짝할 이 없는 큰 모니는
둘이 아닌 그 법을 닦아 익히어
마음은 항상 고요함을 즐기고
지혜는 아무 데도 걸림이 없네.

아주 작은 세계 그 가운데에
아주 큰 세계를 받아들이는
그러한 경계들을 모두 아나니
큰 지혜 가진 사람 그의 행이네.
이 세간의 아무것에 대해서도
마음이 깨끗하여 집착이 없고
계율을 지켜 저 언덕에 이르나니
행이 깨끗한 사람 그의 행이네.

그 지혜는 헤아릴 수가 없어
저 허공계와 법계와 같아
원만한 지혜에 깊이 들어가나니
그것은 뛰어난 금강 같은 행이네.

삼세의 저 모든 법계에
그 지혜는 가득 차 있고
마음은 언제나 게으름 없어
가장 뛰어난 경계에 드네.

그가 가야 할 일체의 길과
열 가지 힘의 법을 잘 분별하고
몸으로 행하는 일 장애 없나니
뛰어난 지혜 가진 그의 행이네.

일체 시방의 세계에 있는
한량없는 그 중생 무리를
보살은 그들을 다 구호하나니
우치를 떠난 사람 그의 행이네.

부처님 법을 닦아 익히되
부지런하여 게으름 없고
세간을 모두 깨끗하게 하나니
그것은 큰 용왕 그의 행이네.
중생들 근성을 모두 다 알고
갖가지 그들 욕망 끝까지 알며
한량없는 성품을 밝게 아나니
평등하게 보는 사람 그의 행이네.

시방세계를 돌아다니며
한량없는 고통을 언제나 받되
그 마음에 조금도 고뇌 없나니
기뻐하는 사람 그의 행이네.

온갖 광명의 그물을 놓아
세간의 어둠을 두루 비추고
지혜의 광명을 갖추었나니
지혜를 잘 닦은 이 그의 행이네.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세계들
그것을 모두 다 진동시키되
언제나 일체를 이롭게 하고
그들을 조금도 놀라게 하지 않네.

변론하는 갖가지 법을 잘 알고
그것을 분별하여 저 언덕에 이르러
번뇌를 떠난 지혜 밝나니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의 행이네.

엎어지고 자빠진 모든 국토를
분별해 알고 저 언덕에 이르러
끝이 없는 지위를 성취하나니
최상의 지혜 가진 그의 행이네.
한량이 없는 갖가지 공덕으로
언제나 힘써 보리 구하고
공덕의 저 언덕에 이르렀나니
무궁한 명예 가진 그의 행이네.

이 세상에 다시없는 큰 논사(論師)로서
가장 뛰어나게 사자후하여
중생들을 모두 청정하게 하나니
번뇌를 떠난 사람 그의 행이네.


부처님이 정수리에 감로를 쏟아
그에게 법왕이라 기별을 주어
갖가지 방편법을 모두 아나니
큰 마음 가진 사람 그의 행이네.

일체의 중생들을 다 분별하되
그 마음에 아무런 집착이 없고
결정코 법의 창고 수호하나니
그것이 법의 왕인 그의 행이네.

하나하나의 말 가운데
한량없는 음성을 잘 낼 줄 알아
중생들이 제각기 이해하나니
걸림없는 지혜 가진 그의 행이네.

가지가지의 말하는 법을
끝까지 분별해 다 잘 알고
갖가지 허망함을 다 떠났나니
진실한 소견 가진 그의 행이네.
바다 같은 법인[法海印]에 편히 머물러
일체의 모든 법을 잘 인정하고
법의 실상 없음을 깨달았나니
방편의 몸을 가진 그의 행이네.

하나하나 세계에 모두 나아가
한량없고 수없는 겁을 지내며
모든 겁의 끝까지 수행하면서
그 마음엔 조금도 싫증이 없네.

헤아릴 수없는 여래의
그 명호 갖가지로 같지 않는데
한 터럭 구멍에서 모두 보나니
잘 수행하는 사람 그의 행이네.

한량이 없는 모든 부처님을
한 터럭 끝에서 다 보는 것처럼
일체의 모든 그 세계에서
부처님 보는 것도 그러하니라.

한량이 없고 수없는 겁을
한 찰나 사이로 능히 만들되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나니
해탈한 사람 그의 행이네.

그를 보는 이는 헛되지 않아
그 닦는 행이 다 진실하여
그의 짓는 업 깨뜨릴 수 없나니
가장 뛰어난 사람 그의 행이네.
한량이 없고 수없는 겁 동안
부처님을 보아도 싫증이 없고
중생들을 모두 기뻐하게 하나니
장애 없는 지혜 가진 그의 행이네.

한량이 없는 수없는 겁 동안
중생 세계를 관찰하여도
그 중생들 다 중생이 아니니
견고한 사람 그의 행이네.

완전히 갖춘 지혜 창고와
맑고 시원한 공덕 못으로
중생을 다 이롭게 하나니
가장 으뜸 되는 사람 그의 행이네.

모든 법계는 그 끝이 없고
또 한량이 없어 허공 같은데
그 말에 아무런 집착 없나니
두려움 없는 논사 그의 행이네.

하나하나의 그 삼매 가운데서
한량없는 삼매에 잘 들어가
저 다시없는 전당에 오르나니
밝은 달 같은 논사 그의 행이네.

끝내 인욕의 저 언덕에 이르러
아주 고요한 법 참고 견디며
성내는 마음을 멀리 떠났나니
한량없는 지혜 가진 그의 행이네.
하나의 세계를 떠나지 않고
한 앉은 곳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저 시방세계에 모두 나타나나니
한량없는 몸 가진 이 그의 행이네.

한량이 없는 모든 부처 세계를
한 세계 가운데 모두 넣어도
부처 세계에는 아무 증감 없나니
불가사의한 사람 그의 행이네.

옳은 것 그른 것을 잘 분별하여
갖가지 모든 힘에 두루 들어가
위없는 그 힘을 성취했나니
제일의 힘을 가진 그의 행이네.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의 세상
일체의 모든 업과 과보에 대해
그 지혜는 조금도 안 어둡나니
밝은 지혜 가진 사람 그의 행이네.

알맞고 맞지 않는 때를 잘 알아
일체 중생을 모두 잘 다스리고
그들 교화할 때를 잃지 않나니
때를 잘 아는 사람 그의 행이네.

몸으로 행하는 일 다 선하고
입과 뜻의 행도 또한 그러해
모든 것에 아무런 집착 없나니
깨끗한 지혜 가진 그의 행이네.
지혜로 모든 것을 잘 분별하고
법다운 그 변재는 끝이 없으며
그 경계는 평등해 실상 같나니
그것은 여래의 행하심이네.

걸림이 없는 공덕 창고와
기쁘고 즐거운 다라니의 문으로
온갖 법계에 깊이 들어가나니
따라 들어가는 사람 그의 행이네.


삼세의 저 모든 부처님들과
그 마음 평등하여 다름이 없고
다 같은 모양으로 차별 없나니
걸림없는 경계 가진 그의 행이네.

지혜의 바다에 깊이 들어가
우치의 어둠을 모두 없애고
청정한 그 눈을 잘 주나니
깨끗한 눈 가진 사람 그의 행이네.

이 세간의 모든 길잡이
둘이 아닌 법 항상 행하고
신통의 힘이 자재하나니
원만한 행 가진 사람 그의 행이네.

시방의 모든 부처 세계에
미묘한 법의 비를 두루 내리어
중생들을 진실한 뜻 알게 하나니
법 구름 가진 사람 그의 행이네.
모든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견고한 믿는 마음 굳건히 얻고
일체의 지혜로 잘 해탈해
배우는 것 모두 다 깨달아 아네.

그는 한 찰나에 모든 중생의
갖가지 그 마음을 모두 다 알고
끝까지 그 심성을 모두 아나니
성품 없는 성품 가진 그의 행이네.

헤아릴 수없는 모든 세계에
한량없는 그 몸을 모두 변화해
두루 돌아다닐 때 짝이 없나니
어떤 행도 그 행과 비길 수 없네.

한량이 없는 모든 세계에
모든 여래 현재 계신데
저 보살마하살은
그 부처들 앞에 언제나 나타나네.

보살이 그 삼매에 들 때는
중생들은 다만 그 한 몸 보지만
보살이 그 삼매에서 나올 때는
중생들은 한량없는 그 몸을 보네.

그의 행하는 일은 깊고 미묘해
입의 허물이 조금도 없고
즐거워하는 마음 한량이 없어
중생들을 모두 다 기쁘게 하네.
아무 데도 집착 않는 지혜를 얻어
중생들의 근성을 분별해 아나
그 마음에 물들지 않나니
위없는 조복하는 그의 행이네.

방편으로 온갖 법을 다 분별하여
그 모든 법에 자재함 얻어
모든 세계의 어디에서나
언제나 갖가지 불사를 짓네.

보살의 그 행은 아주 미묘해
그 설법은 마치 저 허공 같나니
어떤 사람이 그 법문 듣고
어떻게 그 마음 즐겁지 않으랴.

그의 지혜는 짝할 이 없어
지혜의 눈으로 모든 것 보고
방편도 또한 짝이 없나니
최상의 지혜 가진 그의 행이네.

끝없이 미묘한 그 공덕으로
일체의 악을 모두 멸하고
청정한 저 언덕에 이르렀나니
견줄 데 없는 사람 그의 행이네.

갖가지 장엄한 법 모두 이루고
편히 머물러 물러나지 않으며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지만
중생이란 생각은 조금도 없네.
닦은바 다툼이 없는 그 행과
일체를 아는 지혜 또한 미묘해
바른 법으로 중생 교화하나니
깨끗한 눈 가진 이 그의 행이네.

모든 부처님을 다 공경하고
최상의 지혜를 모두 갖추고
두려움 없음을 성취했나니
방편 지혜 가진 이 그의 행이네.

일체의 세계와 또 모든 법
그 어디에고 두루 다 들어가며
또한 중생들의 그 속에도 들어가
한량없는 그들을 다 구제하네.

시방의 모든 세계 두루 들어가
위없는 법의 북을 항상 울리어
한량없는 그 법을 널리 펴나니
죽지 않는 그 사람 그의 행이네.

한 몸이 가부하고 앉아 있을 때
한량없는 세계에 가득하지만
중생들은 줄어들지 않나니
그것은 청정한 법신 힘이네.

한 글귀와 한 이치 가운데서도
한량없는 이치를 다 분별하여
그 연설은 무궁하고 무진하나니
끝없는 지혜 가진 그의 행이네.
부처님의 해탈을 닦아 익히어
그 지혜는 아무런 장애가 없고
두려워함 없음을 성취했나니
한량없는 방편의 그 공덕이네.

갖가지의 모든 세계 바다와
일체 부처님의 세계 바다와
법의 바다 지혜 바다 모두 다 알아
중생들의 바다를 다 제도하네.


혹은 보면 어떤 보살은
태에 들었다 처음 나오고
혹은 보면 정각을 성취하나니
그것은 한량없는 공덕행이네.

혹은 모든 부처 세계 가운데에서
열반에 드는 것을 나타내지만
실로는 열반이란 없는 것으로
두려움 없는 이는 거기 항상 머무네.

금강과 같은 몸은 차별이 없이
중생들 근성 따라 나타나지만
실로 거기 아무 차별 없나니
한 몸으로 행하는 그의 행이네.

법계는 평등하여 하나이지만
한량없는 이치를 모두 갖추고
항상 삼세 관찰하기 좋아하나니
그것은 한 모양의 모양 없는 법이네.
보호하는 저 언덕에 그는 이르러
정법으로 중생들 편하게 하고
부처님의 보호를 모두 얻나니
가장 뛰어난 사람 그의 행이네.

더러움 없는 묘한 법신과
지혜의 눈과 청정한 귀
그것은 모두 아무 장애 없나니
장애가 없는 사람 그의 행이네.

갖가지 신통을 모두 다 얻고
또 깊은 지혜를 두루 갖추어
그 지혜는 가장 뛰어났나니
방편 지혜 가진 이 그의 행이네.

마음은 고요하여 산란치 않고
그 지혜는 어떻게 헤아릴 수가 없어
어디고 비추지 않는 경계 없나니
모든 것을 다 보는 그의 행이네.

갖가지 공덕의 저 언덕에 이르러
한량없는 중생을 다 교화하되
조금도 싫어하는 마음 없나니
항상 수행하는 이 그의 행이네.

모든 것을 다 알고 보는 그 사람
어디고 부처님 계신 곳에 있나니
그는 저 삼세의 부처님의
그 법으로부터 화생(化生)하였네.
말하는 법을 모두 성취하고는
모든 논사 의론을 꺾어 버리고
한량이 없는 중생을 모두 이루어
부처님 보리 따라 거기에 드네.

그는 하나의 광명을 놓아
한량없는 세계를 다 비추나니
이 세간의 그 큰 광명은
일체의 어둠을 모두 없애네.

보아야 할 그런 중생 있으면
그들 위해 여래의 몸을 나투어
중생들을 모두 다 잘 다스리고
일체 모든 세계를 깨끗이 하네.

보살의 하는 일 한량이 없어
아무도 그것을 모르지마는
일체의 행을 나타내 보이나니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이네.

한량이 없고 셀 수도 없는
법계와 같은 모든 중생들
무수한 겁 동안에 찬탄하여도
보살의 그 공덕은 그 끝이 없네.

보살의 공덕은 한량이 없어
일체의 공덕을 다 갖추었나니
부처님이 한량없는 겁 동안에
그것을 찬탄해도 다할 수 없네.
그런데 하물며 세간 사람과
저 성문들과 또 저 연각들
한량없는 겁 동안 찬탄한 데서
어떻게 그것을 다할 수 있으랴.

18. 보살십무진장품(菩薩十無盡藏品)


그때 공덕림보살마하살은 다시 여러 보살에게 말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창고가 있으니, 그것은 삼세 부처님께서 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열 가지 창고란 이른바 믿음의 창고, 계율의 창고, 제 부끄러움의 창고, 남 부끄러움의 창고, 들음의 창고, 보시의 창고, 지혜의 창고, 바른 생각의 창고, 지님의 창고, 변론의 창고니, 이것이 그 열 가지입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믿음의 창고인가. 그 보살은 모든 법은 공(空)해 실체가 없음을 믿고 모든 법은 모양이 없음[無相]을 믿으며, 모든 법에는 원이 없음[無願]을 믿고 모든 법은 지은 자가 없음[無作者]을 믿으며,
모든 법은 진실이 아님을 믿고 모든 법은 견고하지 않음을 믿으며, 모든 법은 한량이 없음을 믿고 모든 법은 최상임을 믿으며, 모든 법은 헤아릴 수 없음을 믿고 모든 법은 나지 않음을 믿는 것입니다.
보살이 만일 이런 깨끗한 믿음을 성취하면 불법이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일체 부처님이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중생이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법계가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허공계가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열반계가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삼세가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듣거나 일체 겁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부처님에 대해 한결같이 굳게 믿어 부술 수가 없고 부처님의 지혜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방 일체 세계의 낱낱 세계 가운데 계시는 삼세의 무량 무수한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어 불사를 행하시다가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러나 그 부처님 지혜는 늘지도 줄지도 않았고 나거나 멸하지도 않았으며, 다하거나 가지도 않았고 가깝거나 멀지도 않았으며, 지혜롭거나 산란하지도 않았습니다.
보살이 이런 무변 무진한 믿음 창고를 성취하면 그는 곧 여래승(如來乘)을 탈 것이요, 또 그 보살이 그런 무량무변한 믿음과 물러나지 않는 믿음, 산란하지 않는 믿음, 무너지지 않는 믿음, 집착하지 않는 믿음, 근본이 있는 믿음, 성인을 따르는 믿음, 여래 집에 대한 믿음 등을 성취하면 일체 불법을 호지하고 일체 보살의 선근을 기르며, 일체 여래의 선근을 따르고 일체 부처님의 좋은 방편을 좇아 날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무진한 믿음 창고입니다.
보살이 이 믿음 창고에 머물면 여래의 법을 들어 지니고 일체 중생을 위해 널리 연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계율 창고인가. 이른바 그 보살이 이롭게 하는 계율, 받지 않는 계율, 집착하지 않는 계율, 편히 머무는 계율, 다투지 않는 계율, 해치지 않는 계율, 난잡하지 않은
계율, 삿된 생활을 떠나는 계율, 악을 버리는 계율, 청정한 계율 등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이롭게 하는 계율인가. 보살이 먼저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받지 않는 계율인가. 보살이 외도의 계율을 받지 않고 삼세 부처님의 평등하고 청정한 계율을 원만히 받들어 지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집착하지 않는 계율인가. 보살이 욕심 세계의 계율과 형상 세계의 계율과 무형 세계의 계율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니, 그것은 회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편히 머무는 계율인가. 보살이 청정하여 의심이나 뉘우침이 없는 계율을 성취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그 보살은 오무간죄(五無間罪)를 짓지 않고 영원히 일체 계율을 일부러 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다투지 않는 계율인가. 보살은 먼저 제정한 것을 그르다 하지 않고 다시 만들지도 않으며, 마음은 항상 열반으로 향하는 계율을 따르되 완전히 지녀 헐거나 범하지 않고 그 계율로 말미암아 중생들을 괴롭히거나 서로 다투게 하지 않습니다. 보살이 계율을 지키는 것은 다만 중생들을 이롭고 기쁘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해치지 않는 계율인가. 보살은 계율을 지킴으로써 주술이나 약초 쓰는 법을 배워 중생들을 해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들을 구호하기 위해 청정한 계율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난잡하지 않는 계율인가. 그 보살은 단(斷)ㆍ상(常)의 견해를 떠나 난잡한 계율을 지니지 않고 다만 십이연기(十二緣起)를 관찰하여 청정한 계율을 지닙니다.
어떤 것이 삿된 생활을 떠난 계율인가. 그 보살은 깨끗한 계율을 지니는 체하여 남에게 알리려 하거나 안에는 진실한 덕이 없으면서 진실한 덕이 있는 체 나타내는 일을 하지 않으며, 다만 깨끗한 계율을 지니고 한결같이 법을 구해 일체의 지혜를 이룹니다.
어떤 것이 악을 떠나는 계율인가. 보살은 스스로 잘난 체하여 나는 계율을 지닌다고 말하지 않고 계율을 범한 사람을 보고도 그를 경멸하거나 나무라서 그를 괴롭히지 않으며, 다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닙니다.
어떤 것이 청정한 계율인가. 보살은 살생과 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ㆍ나쁜 말ㆍ추한 말ㆍ두 가지 말ㆍ잡된 말ㆍ탐욕ㆍ분노ㆍ우치 등을 버리고 열 가지 선한 일을 완전히 지닙니다. 그 보살은 이런 청정한 계율을 지니면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중생들이 깨끗한 계율을 범하는 것은 다 뒤바뀐 번뇌 때문이다. 부처님은 중생들이 뒤바뀐 생각으로
깨끗한 계율을 범한다는 것을 분별해 아신다. 그러므로 나는 오로지 불도를 구해 위없는 보리를 다 이루고 중생들을 위해 진실한 법을 설명해 그들로 하여금 뒤바뀐 생각을 버리고 깨끗한 계율을 지녀 모두 위없는 보리를 얻게 하리라.’
이것이 이른바 보살마하살의 둘째의 다함없는 계율 창고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제 부끄럼[慚]의 창고인가. 그 보살은 스스로 그 전생 일을 생각합니다.
‘무수한 세상을 지내오면서 육친(六親)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짓을 행했으니, 혹시 멸시해 무례하였고 음란하여 절조가 없었으며, 잔인하게 해처 친함이 없었고 군사를 일으켜 서로 치는 등 미혹하고 뒤바뀌어 갖은 악을 다 지었으니, 그것은 다 세 가지 독과 삿된 의심과 번뇌의 결박과 거짓과 아첨 등 모든 나쁜 짓 때문이다.
또 중생들도 다 갖가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행을 익히고 쌓았으니 그것도 다 무지와 내지 아첨과 나쁜 짓 때문이니, 그러므로 높은 이든 낮은 이든 질서를 잃어 서로 공경하거나 순종하지 않고 또 겸허하게 어진 이를 따라 받들지 않으면서 항상 독한 생각을 품어 원수만 늘어나 서로 해치면서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생각이 없었다.
또 생각하면 나와 중생들은 과거 미래 현재에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법을 행하여 삼세 부처님이 그것을 알고 보시는데, 내가 어찌 그대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법을 행하겠는가. 그것은 아주 잘못이다. 그러므로 나는 부끄러워하는 법을 닦아 보리를 얻고는 중생들을 위해 진실한 법을 자세히 설명해 그들로 하여금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법을 아주 버리고 보리를 성취하게 하리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셋째의 다함없는 제 부끄럼의 창고라고 합니다.
불자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남 부끄럼[愧]의 창고인가. 그 보살은 스스로 부끄러워하기를 ‘나는 예로부터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ㆍ처자ㆍ권속ㆍ재물ㆍ보물ㆍ하인ㆍ수레 등을 만족하는 마음이 없었으니, 나는 이런 나쁜 짓은 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것 때문에 탐욕ㆍ분노ㆍ우치와 내지 아첨과 속임 등이 자라난 것이다.’
그는 또 생각합니다.
‘중생들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은 다 무지와 아첨과 속임 등 온갖 악법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순종하지 않고 존경 공양하지 않으며, 항상 독한 마음을 품고 서로 해치는 것입니다.
나와 중생들은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서 이런 법을 좋아하고 탐하고 행하는데 이 법 때문에 태 속에 드나들며 나고 죽는 무량한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삼세 부처님은 다 그것을 알고 보시는데
만일 내가 그래도 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법을 행한다면 삼세 부처님은 모두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부끄러워하는 법을 닦아 보리를 이루고 중생들을 위해 이 법을 자세히 설명하여, 그들로 하여금 부끄러워할 줄 알고 불도를 이루게 하리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넷째의 다함없는 남부끄럼의 창고라고 합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많이 들음 창고인가. 그 보살의 많이 들음이란 이른바 이 일이 있으므로 이 일이 있고 이 일이 없으므로 이 일이 없으며, 이 일이 일어나므로 이 일이 일어나고 이 일이 멸하므로 이 일이 멸하며, 이것은 세간법(世間法)이요 이것은 출세간법(出世間法)이며, 이것은 유위법(有爲法)이요 이것은 무위법(無爲法)이며, 이것은 유기법(有記法)이요, 이것은 무기법(無記法)이라는 것 등을 다 압니다.
이 일이 있으므로 이 일이 있다는 것은 이른바 무명(無明)이 있으므로 행(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없으므로 이 일이 없다는 것은 식(識)이 없으므로 명색(名色)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일어나므로 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란 이른바 애(愛)가 일어나므로 고통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멸하므로 이 일이 멸한다는 것이란 이른바 유(有)가 멸하므로 생사(生死)가 멸한다는 것입니다.
세간법이란 이른바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 등이요, 출세간법이란 이른바 계신(戒身)ㆍ정신(定身)ㆍ혜신(慧身)ㆍ해탈신(解脫身)ㆍ해탈지견신(解脫知見身) 등입니다. 유위법이란 이른바 욕심 세계[欲界], 형상 세계[色界], 무형 세계[無色界], 중생 세계[衆生界] 등이며, 무위법이란 이른바 허공ㆍ열반ㆍ수연멸(數緣滅)ㆍ비수연멸(非數緣滅)과 십이연기(十二緣起)와 법계(法界) 등입니다.
유기법이란 이른바 사진제(四眞諦)ㆍ사사문과(四沙門果)ㆍ사변(四辯)ㆍ사무소외(四無所畏)ㆍ사념처(四念處)ㆍ사정근(四正勤)ㆍ사여의족(四如意足)ㆍ오근(五根)ㆍ오력(五力)ㆍ칠각지(七覺支)ㆍ팔성도분(八聖道分) 등입니다.
무기법이란 이른바 세간은 끝이 있다, 세간은 끝이 없다, 세간은 끝이 있기도 끝이 없기도 하다, 세간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세간은 항상하다, 세간은 항상하지 않다, 세간은 항상하기도 하고 항상하지 않기도 하다, 세간은 항상한 것도 아니고 항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여래는 열반한 뒤에는 여여하게 가서 뒷몸[後有]을 받지 않는다,
여래는 열반한 뒤에도 여여하게 가지 않고 또 받지 않는다, 여래는 열반한 뒤에도 여여하게 가면서 동시에 여여하게 가지 않기도 하며 또 받지 않는다, 여래는 열반한 뒤에 여여하게 가는 것도 아니고 동시에 여여하게 가지 않는 것도 아니며 또 받지 않는다.
나도 있고 중생도 있다, 나도 없고 중생도 없다, 나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중생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나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중생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과거에는 몇 여래가 열반에 들었고 몇 성문과 연각이 열반에 들었다. 미래에는 몇 여래와 몇 성문ㆍ연각과 몇 중생이 날 것이다. 현재에는 몇 부처님과 몇 성문ㆍ연각이 있다.
어떤 여래가 최초로 세상에 나왔고 어떤 성문ㆍ연각이 최초로 세상에 나왔으며 어떤 중생이 최초로 세상에 나왔다, 어떤 여래가 최후로 세상에 나오고 어떤 성문ㆍ연각이 최후로 세상에 나오며 어떤 중생이 최후로 세상에 나오는가, 어떤 법이 최초에 있었고 어떤 법이 최후에 있는가.
세간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간다, 몇 세계가 이루어졌고 몇 세계가 무너졌다, 세계는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간다, 어떤 것이 생사의 최초요 어떤 것이 생사의 다하는 것이다 하는 등이니 이것을 무기법이라 합니다.
보살마하살은 생각하기를 ‘중생들은 오랫동안 생사에 흘러 다니고, 우치한 범부들은 도를 닦을 줄 모른다. 나는 밤낮 부지런히 공부하되 모든 부처님의 법장을 받들어 지니고 끝내는 위없는 보리를 성취하여 중생들에게 진실한 법을 널리 설명하여 그들로 하여금 위없는 도를 이루게 하리라.’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다섯째의 무진한 많이 들음 창고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보시 창고인가. 그 보살은 열 가지 보시를 수행합니다. 이른바 닦아 익히는 보시하는 법, 최후의 어려운 보시하는 법, 안으로 보시하는 법, 밖으로 보시하는 법, 안팎으로 보시하는 법, 일체를 보시하는 법, 과거를 보시하는 법, 미래를 보시하는 법, 현재를 보시하는 법, 끝까지 보시하는 법 등입니다.
어떤 것이 닦아 익히는 보시하는 법인가. 그 보살은 과거로부터 평등한 보시를 닦아 익힙니다. 그리하여 맛있는 음식이 있을 때, 자기만이 탐착하지 않고 일체 중생에게 보시하며, 그 밖의 다른 물건도 그와 같이 합니다. 음식은 남에게 보시한 뒤에 자기가 먹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이 음식을 내 몸에 있는 팔만 호충(戶虫)을 위해 먹는다. 내 몸이 안락하면 저들도 안락(安樂)할 것이요, 내 목이 굶주려 괴로우면 저들도 굶주려 괴로울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음식을 먹을 때에도 그것은 그 벌레들을 안락하게 하려 하고 그 맛에 탐착하지 않습니다. 그는 또 생각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몸이 음식을 탐했으니 이제는 부지런히 정진해 빨리 이 몸을 버리리라’ 하나니, 이것이 보살(菩薩)마하살의 닦아 익히는 보시하는 법입니다.
어떤 것이 마하살의 최후의 어려운 보시하는 법인가. 그 보살이 갖가지 맛있는 음식과 향ㆍ꽃ㆍ의복 등 생활거리를 얻었을 때 그것을 자기가 수용하면 안락하고 오래 살 수 있을 것이요, 그것을 남에게 다 보시하면 곤궁하고 일찍 죽을 것인데, 마침 걸인이 와서 모든 것을 요구하면 보살은 생각하기를 ‘나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무수히 내 몸을 죽였지만, 아직 한 번도 내가 손해봄으로써 한 중생이나마 이롭게 하여 그로 하여금 큰 이익과 희유한 경사를 얻게 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내 신명을 죽이더라도 일체를 보시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고 큰 보시를 성취하리라.’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최후의 어려운 보시하는 법입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안으로 보시하는 법인가. 그 보살이 젊었을 때 몸이 단정하고 얼굴이 아름다우며, 깨끗이 목욕하고 아름다운 옷과 장엄거리로 장식하고 관정식을 행하고 전륜왕의 자리에 앉아 칠보를 갖추고 사천하의 왕이 되었을 때 마침 어떤 걸인이 그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대왕님, 나는 지금 노쇠하고 또 중병이 들어 고독하고 고통하지만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갈 길이 막혀 반드시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쓰임에 따라 지금 대왕님의 수족이나 피ㆍ살ㆍ머리ㆍ눈ㆍ골수ㆍ머리골 등 왕의 몸이 필요합니다. 만일 대왕님이 늙고 곤궁한 몸을 가엾이 여기시고 그 사랑하는 몸을 버려 나를 구해 주시면 나는 대왕님의 은혜로 이 목숨을 이어갈 수 있겠습니다.’
그때 그 보살은 곧 생각하기를, ‘내 이 몸도 저이와 같이 필경에는 죽고 말 것이니 그때는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지금 적당한 이때에 이 몸을 버려 저이를 구제하리라’ 하고는 기뻐하면서 그 몸을 그 중생에게 보시하나니, 이것이 그 보살의 안을 보시하는 법입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밖으로 보시하는 법인가. 그 보살이 젊었을 때 몸이 단정하고 얼굴은 아름다우며, 깨끗이 목욕하고 아름다운 옷과 장식하는 도구로 장엄하고 관정식을 행한 뒤 전륜왕의 자리에 나아가 칠보를 모두 갖추고 사천하를 통치할 때 마침 어떤 걸인이
그에게 가서 말합니다.
‘대왕님, 나는 지금 노쇠하고 또 병에 걸려 남은 목숨이 얼마 안 되는데 이런 곤궁으로 마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대왕님은 일체 쾌락을 모두 누리고 있습니다. 원컨대 대왕님은 나를 가엾이 여겨 그 왕위를 내게 주시면 나는 이 천하를 통치하면서 왕의 복락을 누리겠습니다.’
그때 보살은 곧 생각하기를 ‘부귀는 무상하여 반드시 빈천으로 돌아가는 것이요, 만일 빈천에 살면 아무 이익이 없어 중생들의 소원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적당한 때에 이 왕위를 버려 그 마음을 기쁘게 하리라’ 하고는 기뻐하면서 그 왕위를 그에게 주니, 이것을 보살의 밖으로 보시하는 법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안팎으로 보시하는 법인가. 그 보살이 젊었을 때, 몸은 단정하고 얼굴은 아름다우며 목욕해 깨끗하고 아름다운 옷과 몸을 꾸미는 도구로 장엄하고 관정하여 전륜왕의 자리를 받고는 칠보를 모두 갖추고 사천하를 다스릴 때에 어떤 걸인이 그에게 가서 말합니다.
‘대왕님, 나는 노쇠하고 또 병에 걸려 아름다운 이름을 바랄 수 없습니다. 원컨대 대왕님은 왕의 몸과 칠보가 가득한 천하와 그 전륜왕의 자리를 내게 주소서.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왕의 즐거움을 모두 누리게 하소서.’
그때 보살은 생각하기를 ‘내 몸과 재물은 다 견고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상하고 연약해 망그러지는 법이다. 나는 지금 젊었고 천하의 부를 가졌다. 지금 걸인이 앞에 나타나 세 가지 일이 다 갖추어졌다. 그러므로 나는 이 견고하지 못한 것으로 견고한 것을 구하리라’하고 더욱 기뻐하여 곧 안팎을 모두 버려 그에게 주니, 이것을 보살의 안팎으로 보시하는 법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를 보시하는 법인가. 그 보살이 젊었을 때 몸은 단정하고 얼굴은 아름다우며 향탕(香湯)에 목욕한 뒤에 아름다운 옷과 장식거리로 그 몸을 장엄하고 관정해 전륜왕의 자리를 받아 칠보를 모두 갖추고 사천하를 다스릴 때 어떤 걸인들이 그에게 가서 말합니다.
‘대왕님, 대왕님의 큰 이름은 시방에 두루 퍼졌사온데 우리가 저 나라에서 대왕님의 명성을 듣고 여기까지 멀리 온 것은 청이 있어서입니다. 원컨대 대왕님은 우리 청을 따라 우리 마음을 만족시켜 주십시오.’
그때 그 걸인들은
혹은 나라를 요구하고 혹이 처자ㆍ권속을 요구하며, 혹은 팔 다리ㆍ피ㆍ살ㆍ머리ㆍ눈ㆍ골수ㆍ머리골 등을 요구합니다.
그때 보살은 생각하기를 ‘모든 은애(恩愛)는 모이면 반드시 떠나는 것이요, 아무 이익이 없어 중생들의 갖가지 소원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나는 지금 탐애 등 일체를 빨리 버려 중생들을 이롭게 하리라’ 하고 더욱 기뻐하여 일체를 버려 중생에게 보시하니, 이것을 보살의 일체를 보시하는 법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과거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히는 것인가. 그 보살은 과거의 부처님과 보살이 행한 원만한 공덕을 듣고도 그것은 없는 것임을 깨달아 알고는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망상을 일으키지 않으며 탐하거나 맛들이지 않고, 모든 법을 관찰하나 거기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모든 법은 꿈과 같아 견고하지 않음을 알고는 온갖 선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거기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다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그 몸을 나타내어 불도를 자세히 설명할 뿐이니, 그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불법을 성취하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또 과거의 모든 법은 시방에 두루 찾아보아도 전연 얻을 수 없음을 관찰합니다. 그는 이렇게 관찰하고는 다시 생각하기를 ‘지나간 모든 법은 다 버리자’ 하나니 이것이 보살이 과거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보살이 미래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히는 것이라 하는가. 그 보살은 미래의 부처님과 보살이 행할 선근과 그 원만한 공덕을 듣고도 그 모양에 집착하지 않아 마음에 두지 않고 그 부처 세계에 가서 나기를 바라지 않으며, 구하는 생각이 없고 또 발원하지도 않습니다. 마음을 걷잡아 산란하지 않고 맛들이거나 싫어하지도 않으며, 선근으로써 거기에 회향하지도 않고 거기 나기 위해 오로지 선근을 닦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그것을 버리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 경계로써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불법을 구족하게 하려 할 뿐입니다.
진실한 법을 관찰하지만 그 진실한 법이란 처소가 있는 것도 아니요 처소가 없는 것도 아니며, 안도 아니요 바깥도 아니며, 먼 것도 아니요 가까운 것도 아님을 압니다. 그리하여 다시 생각하기를 ‘만일 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미래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보살이 현재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히는 것이라 하는가. 그 보살은 사천왕천(四天王天)과 삼십삼천(三十三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솔타천(兜率陀天)ㆍ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ㆍ범천(梵天)ㆍ
범신천(梵身天)ㆍ범보천(梵輔天)ㆍ범권속천(梵眷屬天)ㆍ대범천(大梵天)ㆍ광천(光天)ㆍ소광천(少光天)ㆍ무량광천(無量光天)ㆍ광음천(光音天)ㆍ정천(淨天)ㆍ소정천(少淨天)ㆍ무량정천(無量淨天)ㆍ변정천(遍淨天)ㆍ밀신천(密身天)ㆍ소밀신천(少密身天)ㆍ무량밀신천(無量密身天)ㆍ밀과천(密果天)ㆍ불번천(不煩天)ㆍ불열천(不熱天)ㆍ선현천(善現天)ㆍ선견천(善見天)ㆍ색구경천(色究竟天)에 대한 일을 듣거나 또 성문ㆍ연각의 원만한 공덕에 대한 일을 듣거나 또 성문ㆍ연각의 원만한 공덕에 대한 일을 듣고도 그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바른 생각으로 그것을 잊거나 거기에 게으르거나 가라앉거나 또 근심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고요하여 아무 집착이 없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모든 행은 다 꿈과 같고 모두 진실이 아니다. 중생들은 그런 줄을 모르기 때문에 나쁜 길[惡道]을 흘러 다닌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보살은 그들을 위해 널리 설법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든 악을 멀리 떠나 불법을 성취하게 하면서도 보살도를 닦아 그 마음에는 어지러움이 없나니, 이것을 보살이 현재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보살의 끝까지 보시하는 법이라 하는가. 그 형상들이 같지 않은 한량없는 중생들이 그 보살에게 가서 말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주십시오. 우리 마음이 만족한다면 당신 서원도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보살은 이 말을 듣고 기뻐 뛰면서 그들의 요구를 따라 보시하여 모두 만족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몸을 관찰합니다.
‘이 몸은 처음 태에 들 때부터 부정하고 보잘것없는 것으로서 모든 감관을 형성하여 나고 늙지 않고 죽는 것입니다’하고, 또 자세히 관찰하기를 ‘이 몸은 진실하지 않고 가진 모양이 없으며,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성현들이 버리는 것이며, 오로(惡露)의 냄새는 썩는 송장 같다. 뼈마디가 서로 얽혀 피와 살이 싸고 있으며, 아홉 구멍에서는 더러운 것이 항상 흘러나오고 있다.’
보살은 이렇게 이 몸이 한량없는 우환덩어리임을 관찰하고는 잠깐도 몸을 탐하거나 아끼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또 생각합니다.
‘이 몸은 연약하고 위태로운 것입니다. 나는 이미 이 몸은 한량없는 우환덩어리임을 보았는데 왜 거기에 연연하랴. 나는 이것을 버려 중생들에게 주어 그들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리라. 나는 이 견고하지 않은 법 가운데서 견고한 법을 구해 그들의 소원을 모두 만족시켜 주고, 또 그들을 깨우쳐 인도해 모두 청정한 법신을 얻어 머무름이 없는 데 머무르고 몸과 마음에 대한 애착을 떠나게 하리라.’
이것이 보살의 끝까지 보시하는 것이나,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여섯째의 다함없는 보시 창고라고 합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다함없는 지혜 창고인가. 그 보살은 색(色)의 고통[苦]을 여실히 알고 색의 집(集)을 여실히 알며, 색의 멸함[滅]을 여실히 알고 색의 멸하는 길[道]을 여실히 압니다. 그리고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 등의 고통을 여실히 알고 그것들의 집(集)을 여실히 알며, 그것들의 멸함[滅]을 여실히 알고 그것이 멸하는 길[道]을 여실히 압니다.
또 무명(無明)의 고통을 알고 무명의 집을 알며, 무명의 멸함을 알고 무명이 멸하는 길을 압니다. 또 애(愛)의 고통을 알고 애의 집을 알며, 애의 멸함을 알고 애의 멸하는 길을 압니다.
또 성문(聲聞)을 알고 성문의 법을 알며, 성문의 집(集)을 알고 성문의 열반(涅槃)을 알며, 연각(緣覺)을 알고 연각의 법을 알며 연각의 집을 알고 연각의 열반을 알며, 보살을 알고 보살의 법을 알며 보살의 집을 알고 보살의 열반을 압니다.
어떻게 그것들을 아는가. 그것은 업보의 인연으로 지어진 것으로서 모든 행은 나[我]가 아니요, 견고한 것이 아니며 진실한 것이 아니요, 아무것도 없는 공(空)인 것을 압니다. 그리하여 모든 법을 견고한 것이라 집착하지도 않고 모든 법을 있는 것이라 집착하지도 않아서 일체 법이란 아무것도 없음을 압니다.
그리하여 모든 중생을 위해 진실한 법을 말합니다. 어떻게 말하는가. 모든 법의 파괴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어떤 것이 파괴할 수 없는가. ‘색은 파괴할 수 없고 수ㆍ상ㆍ행ㆍ식 등은 파괴할 수 없으며, 무명은 파괴할 수 없고 성문법ㆍ연각법ㆍ보살법은 파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법은 스스로 된 것[自作]도 아니요 남이 지은 것[他作]도 아니며, 말할 수도 없고 처소(處所)도 없으며, 나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으며 줄 것도 아니요 받을 것도 아니며, 어떤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이런 다함없는 지혜 창고를 성취한 뒤에는 조그만 방편으로 모든 법에 대한 묘한 방편을 다 얻어 온갖 이치를 알지만 그것은 스스로 밝게 아는 것이요, 남을 의지해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그 지혜 창고에는 그 끝이 없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열 가지란 이른바 많이 들어 훌륭한 방편이 끝이 없고 선지식을 친근하는 것이 끝이 없으며, 한 글귀의 법을 연설함이 끝이 없고 깊은 법계에 들어가는 것이 끝이 없으며, 무한한 지혜의 장엄에 들어감이 끝이 없고 온갖 공덕을 길러 근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끝이 없으며, 모든 다라니문에 들어가는 것이 끝이 없고 일체 중생들의 말과 음성을 분별해 아는 것이 끝이 없으며,
중생들로 하여금 온갖 의혹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 끝이 없고 모든 부처님의 신통을 나타내어 중생들을 교화해 그 행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 끝이 없으니, 이것이 그 끝이 없는 열 가지 법입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일곱째의 다함없는 지혜 창고라고 하나니, 보살은 이 다함없는 지혜 창고에 머물러 위없는 등정각을 빨리 이루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다함없는 생각 창고인가. 그 보살은 우치의 어둠을 떠나 과거의 한 생ㆍ열 생ㆍ백 생ㆍ천 생ㆍ만 생 내지 한없는 불가사의한 아승기의 생과 말할 수 없는 나유타의 생을 기억하고, 또 이뤄지는 겁과 무너지는 겁과 이뤄지고 무너지는 겁을 기억하되, 한 이뤄지는 겁이나 한 무너지는 겁이나 한 이뤄지고 무너지는 겁만이 아니라 백 겁ㆍ천 겁ㆍ백천억 나유타 겁ㆍ내지 한없고 불가사의한 아승기겁과 말할 수 없는 억 나유타겁을 모두 기억합니다.
또 한 부처님의 명호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명호를 기억하고, 한 부처님의 수기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의 수기를 다 기억하며, 또 한 부처님의 세상에 나오심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의 세상에 나오심을 다 기억합니다. 또 한 부처님에게서 배운 한 수다라(修多羅)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에게서 배운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수다라를 다 기억하고 기야(祇夜)ㆍ수기(授記)ㆍ가타(伽陀)ㆍ인연(因緣)ㆍ우다나(憂陀那)ㆍ본사(本事)ㆍ본생(本生)ㆍ방광(方廣)ㆍ미증유(未曾有)ㆍ비유(譬諭)ㆍ우파제사(憂波提舍) 등도 다 기억합니다.
또한 법회와 한 번의 설법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법회와 한 번의 설법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법회와 설법을 다 기억하고, 한 중생의 근기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중생들 근기를 다 기억하며, 한 가지 번뇌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온갖 번뇌를 기억하고, 한 삼매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모든 삼매를 기억합니다.
또 보살은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 이른바 묘한 기억, 흐리지 않은 기억, 두루 깨끗한 기억, 번뇌를 떠난 기억, 갖가지 번뇌를 떠난 기억, 더러움을 떠난 기억, 빛나는 기억, 즐거운 기억, 장애 없는 기억 등입니다.
그 보살이 이런 기억에 머무를 때에는 어떤 세간도 그를 어지럽히지 못하고
깨끗한 감관은 다시 물들지 않으며, 모든 세간의 온갖 악마와 외도들도 파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불법을 잘 기억하고 그것을 분명히 알아 조금도 착란하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여덟째의 다함없는 기억 창고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다함없는 들어 지니[聞持]는 창고인가. 그 보살은 부처님으로부터 한 품(品)의 수다라를 들어 지니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수라다를 들어 지니되 한 글자 한 글귀도 잊지 않고, 한 생에만 잊지 않을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생까지 그 한 글자 한 글귀도 잊지 않습니다. 한 부처님 명호만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까지도 들어 지닙니다.
또 한 세계의 이름만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의 이름까지도 들어 지니고, 한 겁의 이름만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의 이름까지도 들어 지니며, 한 여래의 수기만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여래의 수기까지도 들어 지니고, 한 수다라만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수다라까지도 들어 지니며, 한 법회의 이름만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법회 이름까지도 들어 지닙니다.
또 한 때의 설법만을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때의 설법까지도 들어 지니고, 한 중생의 근기만을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중생의 근기까지도 들어 지니며, 한 번뇌만을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번뇌까지도 들어 지니고, 한 삼매만을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삼매까지도 들어 지닙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아홉째의 매우 깊어 다함없는 들어 지니는 창고라고 하나니, 이 들어 지니는 창고는 부처님만의 경계요, 다른 이는 아무도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다함없는 변재 창고인가. 그 보살은 매우 깊은 지혜를 성취하고 중생들을 위해 온갖 법을 연설하되 모든 부처님 경전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한 품(品)의 법을 말하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품의 법을 말하며, 한 부처님 명호를 말하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명호를 말하며,
한 세계의 이름을 말하고, 한 부처님의 수기와 한 수다라, 한 모임, 한 때, 법(法), 한 근기, 한 번뇌, 한 삼매 등을 말하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삼매(三昧)를 말합니다.
그리하여 하루 동안에 한 글귀 한 뜻의 법을 말하여 끝이 없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 동안 한 글귀 한 뜻의 법을 말하되 그 끝이 없나니, 일체의 겁은 그 끝이 있어도 한 글귀 한 뜻의 법은 그 끝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열 가지 다함없는 창고를 모두 성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다함없는 창고를 성취(成就)하였기 때문에 그는 모든 법의 다라니문을 거두어 눈앞에 있으며 백만 아승기 다라니로 그 권속을 삼았습니다. 그는 백만 아승기 다라니를 성취하여 권속을 삼고는 법의 광명인 변재로 중생들을 위해 깊은 법을 연설할 때, 넓고 긴 혀로 묘한 음성을 내어 시방세계에 가득하고 중생들의 근기를 따라 번뇌를 없애어 모두 기쁘게 하며, 일체의 음성에 잘 들어가고 일체의 문자에서 변재가 끊어지지 않으며, 두루 비추는 법문에 들어가 일체 중생에게 연설하나니, 그것은 여래의 종자가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그는 보살의 모든 행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고달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보살은 허공계와 법계에 가득한 청정한 법신을 성취했기 때문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열째의 다함없는 변재 창고라고 합니다. 이 창고는 한량이 없고 한계가 없으며 간단이 없어 부술 수 없고 끊어지지 않아 끊을 수 없으며, 물러나지 않고 매우 깊어 밑이 없으며 일체의 법문으로써 일체 불법에 잘 들어가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다함없는 창고로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위없는 보리를 끝까지 성취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창고에는 열 가지 다함없는 깊은 법이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며, 잘 회향하며, 본래의 서원을 끊지 않아 모든 겁에서 행하며, 무량무변한 마음으로 허공처럼 평등하게 관찰하며, 일체 법은 다함이 없으나 찰나마다 경계를 알며, 유위(有爲)로 회향하되 무위(無爲)에 집착하지 않으며, 큰 서원을 부술 수 없으며, 다라니 행의 모든 힘을 다 이루며,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며, 일체 법이 환화(幻化) 같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열 가지 다함없는 법으로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다함없는 창고를 얻게 하는 것입니다.”

가저(可沮) : 뒷글자는 자(慈)와 려(呂)의 반절이다.
염경(念頃) : 뒷글자는 거(去)와 영(穎)의 반절이다.
치암(癡闇) : 앞글자는 축(丑)과 지(之)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오(烏)와 감(紺)의 반절이다.
격무(擊無) : 앞글자는 고(古)와 력(歷)의 반절이다.
법고(法鼓) : 뒷글자는 공(公)과 호(戶)의 반절이다.
살도(殺盜) : 앞글자는 소(所)와 팔(八)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도(徒)와 도(到)의 반절이다.
모만(侮慢) : 앞글자는 문(文)과 보(甫)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모(謨)와 안(晏)의 반절이다.
상벌(相伐) : 뒷글자는 방(房)과 월(越)의 반절이다.
실서(失序) : 뒷글자는 서(徐)와 려(呂)의 반절이다.
도해(屠害) : 앞글자는 동(同)과 도(都)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호(胡)와 개(蓋)의 반절이다.
치구(恥懼) : 앞글자는 칙(敕)과 리(里)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기(其)와 우(遇)의 반절이다.
질상(迭相) : 앞글자는 도(徒)와 결(結)의 반절이다.
구색(求索) : 뒷글자는 산(山)과 책(責)의 반절이다.
조욕(澡浴) : 앞글자는 음이 조(早)이다.
신영(身嬰) : 뒷글자는 어(於)와 영(盈)의 반절이다.
경독(煢獨) : 앞글자는 거(渠)와 영(營)의 반절이다.
첨구(瞻救) : 앞글자는 음이 첨(詹)이다.
인긍(仁矜) : 뒷글자는 거(居)와 릉(陵)의 반절이다.
무기(無幾) : 뒷글자는 거(居)와 희(狶)의 반절이다.
위취(危脃) : 뒷글자는 차(此)와 예(芮)의 반절이고, 속자는 취(脆)로 쓴다.
소의(所猗) : 뒷글자는 어(於)와 리(離)의 반절이다.
포단(胞段) : 앞글자는 포(布)와 교(交)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도(徒)와 완(玩)의 반절이다.
취처(臭處) : 앞글자는 척(尺)과 구(救)의 반절이다.
이도(泥塗) : 앞글자는 노(奴)와 저(低)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동(同)과 도(都)의 반절이다.
구규(九竅) : 뒷글자는 고(苦)와 조(弔)의 반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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