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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121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22권

by Kay/케이 2023.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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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22

 

 

대반열반경 제22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②

“선남자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수행하여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고 하는가? 12부 경전[十二部經]은 뜻이 매우 깊어서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인데, 이제 이 경 때문에 구족하게 들으며, 먼저 들었다 하더라도 이름만 듣다가 이제 이 『대열반경』에서 뜻을 들었으며, 성문ㆍ연각도 12부 경전의 이름만 듣고 뜻을 듣지 못하였다가 이 경에서 갖춰 들었으니, 이것을 일러서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고 한다. 선남자야, 모든 성문ㆍ연각의 경에서는 부처님에게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는 것과 필경에 멸하지 않는다는 것과 삼보의 불성에 차별이 없다는 것과 4중금을 범하였거나, 방등경을 비방하였거나, 5역죄를 지었거나, 일천제들이 모두 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다가 지금 이 경에서 듣는 것을 일러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고 한다.”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중대한 계율을 범하였거나 방등경을 비방하거나 5역죄(逆罪)를 짓거나 일천제(一闡提)나 이런 이들이 모두 불성이 있으면 어찌하여 지옥에 떨어집니까? 세존이시여, 이런 이들도 불성이 있을 것인데 어찌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다고 합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선근을 끊은 이를 일천제라고 한다면 선근을 끊을 때에 불성은 어찌하여 끊어지지 않으며, 불성이 끊어졌다면 어떻게 다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말하며 만일 끊어지지 않았으면 무슨 까닭으로 일천제라고 합니까?

세존이시여, 4중금(重禁)을 범하는 것을 일러 결정되지 않았다[不定]고 하면, 방등경전을 비방하고 5역죄를 지은 이나 일천제를 모두 결정하지 않았다고 할 것입니다. 이런 무리들이 만일 결정되었다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합니까? 수다원으로부터 벽지불에 이르기까지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할 것이며, 수다원으로부터 벽지불에 이르기까지도 결정되었다면 역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4중금을 범하는 것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면 수다원으로부터 벽지불까지도 결정된 것이 아닐 것이며, 이런 것이 결정된 것이 아니면 부처님 여래도 결정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부처님이 결정된 것이 아니면 열반의 성품도 결정된 것이 아닐 것이며, 온갖 법들도 결정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어찌하여 결정이 아니겠는가 하면, 만일 일천제가 일천제를 없애고 불도(佛道)를 이룬다면, 부처님 여래도 그와 같아서 열반에 들었다가도 도로 나와서 열반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열반의 성품이 결정된 것이 아닐 것이며, 결정된 것이 아니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을 것인데, 어찌하여 일천제들이 마땅히 열반을 얻을 것이라고 하십니까?”
그때 세존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야, 한량없는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을 얻게 하기 위하여 모든 세간을 가엾이 여기고 인자하게 염려하며, 보리심을 낸 보살들을 더욱 자라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 묻는구나. 선남자야, 그대는 지나간 세상을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 세존을 가까이 모시고, 여러 부처님 계신 데서 선근(善根)을 심었으며, 오래전부터 보리의 공덕을 성취하였고, 모든 마군들을 항복받아 물러가게 하였다. 또한 이미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을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게 하였으며 벌써부터 부처님 여래의 깊고 깊은 비밀한 법장[藏]을 통달하였으며, 지나간 세상 한량없고 그지없는 항하사 수만큼 많은 부처님께 이렇게 깊고 비밀한 이치를 이미 물었다.
나는 모든 세간의 사람이나 하늘이나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마군이나 범천이 여래에게 이러한 이치를 묻는 이를 보지 못하였다. 이제 정성스런 마음으로 자세히 들어라. 그대를 위하여 분별하여 연설하겠다.
선남자야, 일천제는 결정된 것이 아니다. 만일 결정되었다면 일천제는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겠지만 결정되지 않았으므로 얻는 것이다. 그대는 말하기를, ‘불성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일천제를 일컬어 선근을 끊은 이라고 합니까?’라고 하였다. 선남자야, 선근은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안의 것이며, 둘째는 밖의 것이다. 불성은 안의 것도 아니며 바깥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불성은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유루(有漏)이며, 둘째는 무루이다. 불성은 유루도 아니고 무루도 아니므로 끊어지지 않는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항상한 것이고, 둘째는 무상한 것이다. 불성은 항상한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니므로 끊어지지 않는다. 만일 끊어진다면 도로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만일 도로 얻을 수 없다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만일 끊어졌다가 얻는 것을 일천제라고 한다면 4중죄를 범한 이도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결정된다면 4중죄를 범하고 나서는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할 것이며, 방등경전을 비방한 이도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결정된다면 바른 법을 비방하고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할 것이며, 5역죄를 지은 이도 결정되지 않을 것이고, 만일 결정된다면 5
역죄를 지은 사람은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색[色]과 색의 형상[色相]이 두 가지가 모두 결정되지 않으며, 향기와 맛과 감촉하는 모양과 나는 모양으로부터 무명의 모양에 이르기까지와 5음(陰)ㆍ12입(入)ㆍ18계(界)의 모양과 25유(有)의 모양과 4생(生)과 나아가 모든 법들도 모두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선남자야, 마치 환술쟁이가 여러 사람 가운데 있으면서 차병(車兵)ㆍ보병(步兵)ㆍ상병(象兵)ㆍ마병(馬兵)의 네 가지 군대를 환술로 만들었거나 모든 영락과 몸을 꾸미는 기구를 만들었거나, 도시ㆍ촌락ㆍ산림ㆍ숲ㆍ우물ㆍ못ㆍ강 등을 만들었을 때, 그 사람들 중에서 어린아이들은 지혜가 없어서, 그런 것을 볼 때에 참말이라 하지만 지혜 있는 사람들은 모두 허황한 것으로서 환술로 사람의 눈을 홀리는 줄을 안다. 선남자야, 온갖 범부로부터 성문이나 벽지불에 이르기까지 모든 법에 대하여 일정한 모양이 있다고 보는 것도 그와 같다. 그러나 부처님과 보살들은 모든 법에 대하여 일정한 모양을 보지 않으신다.
선남자야, 어린아이들은 더운 여름에 아지랑이를 보고는 물인 줄 알지만, 지혜 있는 사람들은 이 아지랑이를 진짜 물이라 생각하지 않고, 모두 허황한 것으로 사람의 눈을 홀리는 것이며 진짜 물이 아니라고 한다. 범부들과 성문과 연각들이 모든 법을 볼 때에도 그와 같아서 실재라고 하지만, 부처님과 보살들은 모든 법을 일정한 모양이라고 보지 않는다. 선남자야, 마치 산골짜기에서 소리에 울려서 나는 메아리를 아이들이 듣고 진짜 소리라고 하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일정한 소리가 아니고, 소리인 듯한 것이 귀를 속이는 것인 줄을 안다.
선남자야, 모든 범부와 성문과 연각들이 모든 법에 대하여서도 그와 같아서 일정한 모양이 있다고 보지만, 보살들은 모든 법이 일정한 모양이 없는 줄을 이해하여 무상한 모양과
공적(空寂)한 모양과 생멸이 없는 모양으로 본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을 다 무상한 모양으로 본다.
선남자야, 일정한 모양도 있으니, 어떤 것을 일정하다고 하는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다. 어디 있는가? 이른바 열반이다. 선남자야, 수다원과도 결정되지 않았으니, 결정되지 않았으므로 8만 겁을 지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는다. 사다함과도 결정되지 않았으니, 결정되지 않았으므로 6만 겁을 지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는다. 아나함과도 결정되지 않았으니, 결정되지 않았으므로 4만 겁을 지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는다. 아라한과도 결정되지 않았으니, 결정되지 않았으므로 2만 겁을 지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는다. 벽지불도 결정되지 않았으니, 결정되지 않았으므로 10천 겁을 지나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는다.
선남자야, 여래가 지금 구시나성(拘尸那城)의 사라쌍수 사이에서 일부러 사자상(師子牀)에 누워서 열반에 들어가려는 것을 보여 아라한과를 얻지 못한 제자들과 모든 역사(力士)들로 하여금 크게 근심하게 하며, 하늘ㆍ사람ㆍ아수라(阿修羅)ㆍ건달바(乾達婆)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들로 하여금 공양을 베풀게 하며,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1천 필의 천[布]으로 몸을 염습하고, 7보로 관을 만들고 향유를 담고 향나무 장작을 쌓아서 불로 태우게 하지만 두 가지는 태울 수 없다. 첫째는 속몸[儭身]1)이며, 또 하나는 겉몸[最在外]2)이다. 그리고 중생들이 사리(舍利)를 나누어 여덟 몫을 내게 하며, 모든 성문
제자들은 모두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겠지만, 여래는 반드시 열반에 들지 않으시는 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여래는 항상 머물러 변역(變易)하지 않는 까닭이다. 이런 뜻으로 여래의 열반도 결정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여래도 결정되지 않은 줄을 알아야 한다. 여래는 하늘이 아니다. 왜냐하면 네 가지 하늘이 있는데, 첫째는 세간의 하늘[世間天]과 태어나는 하늘[生天]과 깨끗한 하늘[淨天]과 뜻의 하늘[義天]이다. 세간의 하늘은 국왕들이며, 태어나는 하늘은 사천왕천으로부터 비유상비무상천(非有想非無想天)까지이며, 깨끗한 하늘은 수다원으로부터 벽지불까지이며, 뜻의 하늘은 10주(住)보살마하살 등이다. 무슨 뜻으로 10주 보살을 뜻의 하늘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의 뜻을 잘 아는 까닭이다. 무엇을 뜻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이 공한 뜻을 보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여래는 국왕도 아니며 사천왕도 아니며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천도 아니며 수다원으로부터 나아가 벽지불이나 10주 보살도 아니다. 이런 뜻으로 여래는 하늘이 아니지만, 그래도 중생들은 부처님을 일컬어 천중천(天中天)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여래는 하늘도 아니고 하늘 아님도 아니며, 사람도 아니고 사람 아님도 아니며, 귀신도 아니고 귀신 아님도 아니며, 지옥ㆍ축생ㆍ아귀도 아니고 지옥ㆍ축생ㆍ아귀 아님도 아니며, 중생도 아니고 중생 아님도 아니며, 법도 아니고 법 아님도 아니며, 색도 아니고 색 아님도 아니며, 긴 것도 아니고 길지 않음도 아니며, 짧은 것도 아니고 짧지 않음도 아니며,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님도 아니며, 마음도 아니고 마음 아님도 아니며, 유루도 아니고 무루도 아니며, 함이 있음도 아니고 함이 없음도 아니며,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도 아니며, 환술도 아니고 환술 아님도 아니며, 이름도 아니고 이름 아님도 아니며, 결정됨도 아니고 결정되지 않음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말함도 아니고
말하지 않음도 아니며, 여래도 아니고 여래 아님도 아니다. 이런 뜻으로 여래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무슨 까닭으로 여래는 세간의 하늘이 아니라고 하는가? 세간의 하늘은 여러 국왕이니, 여래는 오랜 옛적 한량없는 겁 동안에 이미 임금의 자리를 버렸으므로 국왕이 아니다. 국왕 아님도 아니라 함은 여래는 가비라성 정반왕(淨飯王)의 가문에 났으므로 국왕 아님도 아니다. 태어나는 하늘이 아니라고 함은, 여래는 오래전부터 모든 생사[有]를 여의었으므로 태어나는 하늘이 아니다. 태어나는 하늘이 아님도 아니라 함은 무슨 까닭인가? 도솔천에 올라갔다가 염부제(閻浮提)에 내려왔으므로 여래는 태어나는 하늘이 아님도 아니다. 또 깨끗한 하늘도 아니다.
왜냐하면 여래는 수다원도 아니고, 나아가 벽지불도 아니므로 여래는 깨끗한 하늘이 아니다. 또 깨끗한 하늘이 아님도 아니다. 왜냐하면 세간의 여덟 가지 법으로 물들일 수 없음이 마치 연꽃이 티끌과 물이 묻지 않는 것과 같으므로 여래는 깨끗한 하늘 아님이 아니다. 또 이치의 하늘도 아니다. 왜냐하면 여래는 10주 보살이 아니므로 여래는 이치의 하늘이 아니다. 또 이치의 하늘이 아님도 아니다. 왜냐하면 여래는 18공(空)의 이치들을 항상 닦았으므로 여래는 이치의 하늘 아님도 아니다.
여래는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랜 옛적 한량없는 겁 동안에 인간을 영원히 떠난 까닭으로 사람이 아니다. 또 사람이 아님도 아니다. 왜냐하면 가비라성에 태어난 까닭으로 사람이 아님도 아니다. 여래는 귀신이 아니다. 왜냐하면 온갖 중생을 해치지 않으므로 귀신이 아니다. 또 귀신 아님도 아니다. 왜냐하면 귀신의 형상으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귀신이 아님도 아니다. 여래는 지옥ㆍ축생ㆍ아귀가 아니다. 왜냐하면 여래는 오래전부터 모든 악업(惡業)을 여의었
으므로 지옥ㆍ축생ㆍ아귀가 아니다. 또 지옥ㆍ축생ㆍ아귀가 아님도 아니다. 왜냐하면 여래는 일부러 3악취(惡趣)의 몸을 받아 중생을 교화하므로 지옥ㆍ축생ㆍ아귀가 아님도 아니다.
또 중생도 아니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중생의 성품을 여의었으므로 여래는 중생이 아니다. 또 중생이 아님도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때에는 중생의 모양을 연설하므로 여래는 중생이 아님도 아니다.
여래는 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각각 다른 모양이 있는데, 여래는 그렇지 않아 오직 한 가지 모양이므로 법이 아니다. 또 법이 아님도 아니다. 왜냐하면 여래가 곧 법계이므로 법이 아님도 아니다. 여래는 색이 아니다. 왜냐하면 열 가지 색입(色入)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므로 색이 아니다. 또 색이 아님도 아니다. 왜냐하면 몸에 32상(相)과 80종호(種好)가 있으므로 색 아님도 아니다. 또 여래는 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빛을 끊었으므로 긴 것이 아니다. 또 길지 않음도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세간에서 정수리의 육계[頂髻]를 본 사람이 없으므로 길지 않음도 아니다. 여래는 짧지 않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교만의 속박을 여의었으므로 짧은 것이 아니다. 또 짧지 않음도 아니다. 왜냐하면 구사라(瞿師羅)3) 장자를 위하여 3척(尺)의 몸을 나타내었으므로 짧지 않음도 아니다. 여래는 모양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여러 가지 모양을 떠났으므로 모양이 아니다. 또 모양이 아님도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모양을 잘 알므로 모양이 아님도 아니다.
여래는 마음이 아니다. 왜냐하면 허공의 모양이므로 마음이 아니다. 또 마음이 아님도 아니다. 왜냐하면 10력(力)이란
마음법이 있으며, 또한 다른 중생의 마음을 알므로 마음이 아님도 아니다. 여래는 함이 있음이 아니다. 왜냐 하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므로 함이 있음이 아니다. 또 함이 없음도 아니다. 왜냐하면 오고 가고 앉고 누움이 있으며, 열반을 나타내므로 함이 없음도 아니다.
여래는 항상함이 아니다. 왜냐하면 몸이 분한(分限)이 있으므로 항상함이 아니다. 어찌하여 항상함이 아닌가? 앎이 있는 까닭이다. 항상한 법은 앎이 없어 허공과 같은데, 여래는 앎이 있으므로 항상하지 않다. 어찌하여 항상하지 않은가? 말이 있는 까닭이다. 항상한 법은 말이 없으며 허공과 같은데, 여래는 말이 있으므로 항상함이 없다.
성씨(姓氏)가 있는 것을 무상이라 하고, 성씨가 없는 법을 항상하다고 한다. 허공은 항상하므로 성씨가 없는데 여래는 성씨가 있으니 구담씨(瞿曇氏)4)이다. 그러므로 무상하다. 부모가 있는 것을 무상하다 하고 부모가 없는 것을 항상하다고 한다. 허공은 항상하므로 부모가 없는데, 부처에게는 부모가 있다. 그러므로 무상하다. 4위의(威儀)가 있음을 무상하다 하고 4위의가 없음을 항상하다고 한다. 허공은 항상하므로 4위의가 없는데, 부처는 4위의가 있으므로 무상하다. 항상 머무는 법은 방소(方所)가 없다. 허공은 항상하므로 방소가 없는데 여래는 동천축(東天竺)에 나서 사바제(舍婆提)나 왕사성(王舍城)에 머물기 때문에 무상하다. 이런 뜻으로 여래는 항상하지 않다.
또 항상하지 않음도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生] 일을 영원히 끊은 까닭이다. 나는 일이 있는 법을 무상하다 하고 나는 일이 없는 법을 항상하다고 하니, 여래는 나는 일이 없으므로 항상하다. 항상한 법은 성품이 없으니 성품이 있는 법은 무상하다고 한다. 여래는 나는 일도 없고 성품도 없으니, 나는 일도 없고 성품도 없으므로 항상하다.
항상한 법은 온갖 처소에 두루하여 마치 허공이 있지 않은 데가 없는 것과 같다. 여래도 그러하여 온갖 처소에 두루하므로 항상하다. 무상한 법은 여기는 있다고 하고 저기는 없다고도 하는데, 여래는 그렇지 않아 여기는 있고 저기는 없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항상하다. 무상한 법은 어떤 때는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없기도 하지만, 여래는 그렇지 않아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없으므로 항상하다. 항상 머무는 법은 이름도 없고 빛도 없다. 허공은 항상하므로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데, 여래도 그러하여 이름도 없고 빛도 없으므로 항상하다. 항상 머무는 법은 인도 없고 과도 없다. 허공은 항상한 것이므로 인도 없고 과도 없는데, 여래도 그러하여 인도 없고 과도 없으므로 항상하다. 항상 머무는 법은 3세(世)에 잡히지 않는다. 여래도 그러하여 3세에 잡히지 않으므로 항상하다.
여래는 환술이 아니다. 왜냐하면 온갖 허황한 마음을 영원히 끊었으므로 환술이 아니다. 또 환술이 아님도 아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어떤 때에는 한 몸을 나누어서 한량없는 몸이 되기도 하고, 한량없는 몸이 다시 한 몸이 되기도 하며, 벽을 곧장 뚫고 지나가서 걸림이 없기도 하고, 물을 밟고 다니기를 땅과 같이 하신다. 또 땅에 들어가기를 물과 같이 하고, 허공에 다니기를 땅과 같이 하며, 몸에서 불길을 내기를 불더미같이 하고, 구름과 우레가 진동하여 그 소리가 놀랄 만하며, 혹은 도시와 촌락과 집과 산과 물과 나무가 되며, 혹은 큰 몸이 되고 혹은 작은 몸이 되며,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이 되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여래는 환술이 아님도 아니다.
여래는 결정된[定]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래가 이 구시나성의 사라쌍수 사이에서 일부러 반열반에 드심을 보이시므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또 결정되지 않음도 아니다. 왜냐하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므로 여래는 결정되지 않음이 아니다. 여래는 유루가 아니다. 왜냐하면 3루(漏)를 끊었으므로 유루가 아니다. 3루란 욕계의 온갖 번뇌에서 무명을 제외한 것을 욕루(欲漏)라 하고, 색계와 무색계의 온갖 번뇌에서 무명을 제외한 것을 유루(有漏)라 하고, 삼계의 무명을 무명루(無明漏)라 하지만 여래는 아주 끊었으므로 비루(非漏)라고 한다.
또 모든 범부는 유루를 보지 못한다. 어찌하여 범부는 유루를 보지 못한다 고 하는가? 모든 범부는 오는 세상에 대하여 여러 의심이 있다. 오는 세상에 몸을 얻게 되는가, 몸을 얻지 못하겠는가? 지나간 세상에 몸이 본래 있었는가, 본래 없었는가? 지금 세상에 이 몸이 있는가, 이 몸이 없는가? 만일 내가 있다면 색인가 색이 아닌가, 색이기도 하고 색이 아니기도 한가, 색도 아니고 색 아님도 아닌가? 생각인가 생각이 아닌가, 생각이기도 하고 생각 아니기도 한가,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님도 아닌가? 이 몸이 다른 이에게 달렸는가, 다른 이에게 달리지 않았는가, 달리기도 하고 달리지 않기도 하는가, 달린 것도 아니고 달리지 않음도 아닌가? 목숨이 있고 몸은 없는가, 몸이 있고 목숨은 없는가, 몸도 있고 목숨도 있는가, 몸도 없고 목숨도 없는가? 몸과 목숨이 항상한가, 무상한가,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한가,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닌가?
몸과 목숨을 자재천[自在]5)이 지었는가, 시절(時節)6)이 지었는가, 인이 없이 지어졌는가, 세상 성품[世性]7)이 지었는가, 티끌이 지었는가, 법과 법 아닌 것이 지었는가, 사람이 지었는가, 번뇌가 지었는가, 부모가 지었는가? 내가 마음에 머무는가, 눈에 머무는가, 몸에 가득하였는가, 어디로부터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누가 났으며 누가 죽는가? 내가 지난 세상에는 바라문이었던가, 찰리(刹利)였던가, 비사(毗舍)였던가,
수다라(首陀羅)였던가, 오는 세상에는 어떤 성이 되겠는가? 나의 이 몸이 지난 세상에는 남자의 몸이었던가, 여자의 몸이었던가, 축생의 몸이었던가? 내가 만일 산 생명을 죽인다면 죄가 있겠는가, 죄가 없겠는가? 나아가 술을 마시면 죄가 있겠는가, 죄가 없겠는가? 내가 스스로 지었는가, 다른 이가 지었는가? 내가 과보를 받는가, 몸이 과보를 받는가?
이렇게 의혹하는 소견인 한량없는 번뇌가 중생의 마음을 덮었고, 이런 의혹하는 소견으로 인하여 여섯 가지 마음을 내되, 반드시 내가 있는가, 반드시 내가 없는가? 그리하여 나에게서 나를 보는가, 나에게서 내가 없음을 보는가, 내가 없는 데서 나를 보는가? 내가 짓는가, 내가 받는가? 내가 아는가? 하는 따위를 삿된 소견이라고 한다. 여래는 이렇게 한량없는 견루(見漏)의 근본을 뽑아 버렸으므로 누(漏)가 아니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에 대하여 성인의 행을 닦는 이는 영원히 이런 누를 끊는 것이니, 부처님 여래는 항상 성인의 행을 닦으므로 누가 없다.
선남자야, 범부는 5근을 잘 거두어 잡지 못하므로 3루(漏)가 있어서 나쁜 짓에 끌려 선하지 못한 곳에 이른다. 선남자야, 마치 사나운 말이 성질이 고약하여 말 탄 이를 끌고 험악한 곳으로 가듯이, 이 5근을 잘 거두어 잡지 못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사람으로 하여금 열반의 선한 길을 떠나 나쁜 갈래로 가게 하는 것이다. 마음을 길들이지 못한 사나운 코끼리를 타면 뜻대로 가지 않고 도시나 촌락을 떠나서 빈 벌판으로 가게 되듯이, 이 5근을 잘 거두어 잡지 못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사람으로 하여금 열반의 도시를 떠나서 나고 죽는 넓은 벌판으로 가게 한다.
선남자야, 마치 아첨하는 신하가 임금으로 하여금 나쁜 짓을 하게 하듯이, 5근이란 나쁜 신하도 그와 같아서 중생
으로 하여금 한량없는 나쁜 짓을 짓게 한다. 선남자야, 마치 고약한 자식은 스승과 부모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여러 가지 나쁜 짓을 짓듯이, 조복되지 못한 5근도 그와 같아서 스승이 좋은 말로 가르치는 것을 받지 않고 온갖 나쁜 짓을 모두 짓는다.
선남자야, 범부들은 5근을 거두어 잡지 못하여서 항상 지옥ㆍ축생ㆍ아귀가 해치게 된다. 마치 원수가 선한 사람을 해치는 듯하다. 선남자야, 범부들은 5근을 거두어 잡지 못하여 5진(塵)으로 달아난다. 마치 소 먹이는 사람이 잘 수호하지 못하면 소가 남의 곡식을 먹게 되듯이 범부가 5근을 거두어 잡지 못하면 항상 여러 세계에 있어 고통을 많이 받게 되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아 성인의 행을 행할 때에 항상 5근을 잘 거두어 수호하여 탐욕ㆍ성내는 일ㆍ어리석음ㆍ교만ㆍ질투를 두려워한다. 모든 선한 법을 얻기 위함이다. 선남자야, 만일 이 5근을 잘 수호하면 마음을 거두어 잡을 것이며, 마음을 거두어 잡으면 5근을 거두어 잡을 것이다. 마치 사람이 임금을 옹호하면 나라를 옹호하고, 나라를 옹호하면 임금을 옹호하는 것과 같다.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만일 『대열반경』을 들으면 지혜를 얻고 지혜를 얻으므로 생각을 오로지 할 수 있는데 만일 5근이 산란하면 생각함이 그치게 된다. 왜냐하면 이것이 생각하는 지혜[念慧]이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소를 잘 기르는 사람은 설사 소가 동서로 남의 곡식을 먹더라도 곧 제지하여 범하지 못하게 한다.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생각하는 지혜의 인연으로 5근을 거두어 잡아 산란하지 못하게 한다.
보살마하살로서 생각하는 지혜가 있는 이는 나라는 모양을 보지 않고, 내 것이라는 모양도 보지 않으며, 중생도 보지 않고 수용(受用)할 것도 보지 않아서,
모든 법이 법의 성품과 같음을 보아 흙이나 돌이나 기왓장이라는 모습을 낸다. 마치 집이 여러 가지 인연으로 생겨서 일정한 성품이 없는 것과 같이 모든 중생들이 4대(大)와 5음(陰)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일정한 성품이 없음을 추측할 것이니, 일정한 성품이 없으므로 보살은 그 가운데 탐착(貪着)을 내지 않는다. 모든 범부들은 중생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번뇌를 일으키지만 보살마하살은 대열반을 닦아서 생각하는 지혜가 있으므로 모든 중생에게 탐착을 내지 않는다.
또 보살마하살로서 『대열반경』을 닦는 이는 중생의 모양에 집착하여 가지가지 법의 모양을 짓지 않는다. 선남자야, 비유하자면 환쟁이가 여러 가지 채색으로 남자ㆍ여자ㆍ소ㆍ말의 형상을 그린 것을, 범부는 지견(知見)이 없으므로 보고 나서 남자ㆍ여자 등이라고 생각하지만, 환쟁이는 남녀의 모습이 없는 줄을 안다.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법의 다른 모양에 대하여 한 모양으로 관찰하고 마침내 중생이란 생각을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로서 대열반을 닦는 이는 혹시 단정한 여자를 보더라도 탐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양을 잘 관찰하는 까닭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5욕락이 즐거울 것이 없으며, 잠깐도 머물러 있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마치 개가 썩은 뼈를 깨무는 것 같으며, 사람이 불을 들고 바람을 거슬러 가는 것 같으며, 상자에 든 독사를 꿈에 얻은 것 같고, 길가에 있는 과일 나무에서 과일을 여러 사람이 따는 것 같으며, 한 조각 고기를 많은 새가 따라가는 것 같으며, 물 위에 뜬 거품이나 물에 그린 자취와 같으며, 날실[經]만을 끝까지 짠 것과 같으며, 죄수가 거리에 나아가는 것 같으며, 빌려 가진 세력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으며, 탐욕이 이렇게 허물이 많다는 것을 관찰한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들이
색ㆍ향기ㆍ맛ㆍ감촉의 인연을 위하여 지난 세상 한량없고 수없는 겁으로부터 오면서 항상 괴로움을 받는 것을 관찰해보니, 한 겁 동안에 쌓인 낱낱 중생의 뼈가 왕사성의 비부라산(毘富羅山)8)과 같고, 먹은 젖은 4해(海)의 물과 같고, 몸에서 난 피는 4해의 물보다도 많으며, 부모ㆍ형제ㆍ처자ㆍ권속이 죽었을 때에 울어 흘린 눈물도 4해의 물보다 많았다.
또 땅 위의 초목을 모두 베어 4촌(寸)의 산가지를 만들어서 부모를 세어도 다할 수 없으며, 한량없는 겁 동안에 지옥ㆍ축생ㆍ아귀에서 받은 고통도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땅덩이를 부수어서 대추만큼씩 빚어서 다하기는 쉽지만 나고 죽는 것은 다하기는 어렵다.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이 애욕의 인연으로 받은 고통이 한량없음을 깊이 관찰한다. 보살은 나고 죽는 고통이 이러함을 관찰하므로 생각하는 지혜를 잃지 않는다.
선남자야, 비유하자면 세간에 대중들이 25리에 가득한데, 왕이 한 신하를 시켜 기름 그릇을 받들고 그 속으로 지나가면서 엎지르지 못하게 하며, 만일 한 방울만 엎질러도 목숨을 끊을 것이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칼을 빼어 들고 뒤에서 따라가면서 위협하게 한다. 신하는 왕의 명령을 받고 지극한 마음으로 기름 그릇을 붙잡고, 그 대중 속으로 지나가면서 비록 마음에 드는 다섯 가지 삿된 욕락을 보더라도 항상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방일하여 저 삿된 욕락을 탐하면 이 기름을 엎지르고 목숨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여, 이 사람이 이렇게 조심하는 인연으로 나아가 한 방울의 기름도 엎지르지 않는다.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나고 죽는 가운데서 생각하는 지혜를 잃지 않으므로 비록 5욕락을 보더라도 마음에 탐착하지 않는다.
만일 깨끗한 빛을 보면 빛이란 모습을 내지 않고 다만 고통인 줄만 관하며, 나아가 이 모양도
그와 같아서 나는 모양도 짓지 않고 멸하는 모양도 짓지 않으며, 인이란 모양도 짓지 않고 화합한 모양을 관하면 보살이 그때 5근이 청정해진다. 근이 청정하므로 근을 수호하는 계행이 구족한다. 그러나 모든 범부는 5근이 깨끗하지 못하여 잘 호지하지 못하므로 근이 샌다[根漏] 하고, 보살은 영원히 끊었으므로 누가 없으며[無漏], 여래는 뽑아 버리고 근본까지 아주 끊었으므로 누가 아니라고[非漏] 한다.
또 선남자야, 다시 누를 여의는 일이 있다. 보살마하살은 위없는 감로인 부처님의 과보를 위하여 나쁜 누를 끊으려고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끊는 것인가? 만일 『대열반경』을 수행하여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고 뜻을 생각한다면 그것을 떠난다고 한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나는 12부 경전에서 나쁜 누를 여읠 수 있는 것이, 이 방등의 『대열반경』과 같은 것을 보지 못하였다.
선남자야, 비유하자면 어진 스승이 제자를 가르칠 때에 제자들 중에서 가르침을 잘 받는 이는 마음에 나쁜 짓을 짓지 않는다. 보살마하살로서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는 이도 그와 같아서 마음에 나쁜 짓을 짓지 않는다.
선남자야, 마치 세간에 있는 훌륭한 주문을 한 번 듣기만 하여도 그 뒤부터 7년 동안은 모든 독약이 해롭게 하지 못하고 독사도 물지 못하며, 만일 외우는 이는 목숨을 마칠 때까지 모든 나쁜 일이 없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대열반도 그와 같아서 어떤 중생이 귀에 한 번 듣기만 하여도 그 뒤부터 7겁 동안은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않고, 만일 쓰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해설하거나 뜻을 생각하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분명하게 불성 보기를 저 성왕이 감로 맛을 얻는 것같이 할 것이다. 선남자야, 이 대열반은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
선남자야,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쓰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해설하거나 다른 이에게 말하거나 뜻을 생각하면, 이 사람은 진정한 나의 제자로서 나의 가르침을 잘 받는 이며, 내가 보는 바이며 내가 생각하는 바이며, 이 사람은 내가 열반에 들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있는 데는 도시거나 촌락이거나 산이거나 들이거나 집이거나 밭이거나 누각이거나 전당이거나 간에, 내가 그 가운데서 항상 머물고 옮겨가지 않으며, 내가 이 사람에게서 항상 보시를 받되, 혹은 비구ㆍ비구니가 되며, 우바새ㆍ우바이가 되며, 바라문ㆍ범지ㆍ빈궁한 걸인이 된다. 어떻게 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보시하는 것을 여래께서 받는 줄을 알게 하는가?
선남자야, 이 사람이 혹은 꿈에 부처님 형상을 보며, 혹은 천인의 형상이나 사문의 형상을 보며, 국왕과 전륜성왕과 사자왕의 형상을 보기도 하고, 연꽃 형상ㆍ우담바라꽃 형상을 보기도 하며, 큰 산이나 바닷물을 보기도 하고, 해와 달을 보기도 하며, 혹은 흰 코끼리나 흰 말의 형상을 보기도 하고, 부모를 보기도 하며, 꽃이나 과실이나 금ㆍ은ㆍ유리(琉璃)ㆍ파리(頗梨) 따위의 보배를 얻기도 하고, 다섯 가지 우유를 얻기도 할 때에 여래가 그의 보시를 받는 줄을 알 것이다.
깨어서는 즐거우며 가지가지 필요한 물건을 얻게 되어 나쁜 일은 생각도 않고, 선한 법을 닦기를 좋아할 것이다. 선남자야, 이 『대열반경』은 이렇게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 공덕을 성취하게 한다.
선남자야, 그대는 나의 말을 잘 믿어라.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으로서 나를 보고자 하는 이, 나를 공경하려는 이, 법의 성품과 같이 나를 보려는 이, 공한 선정을 얻으려는 이, 실상을 보려는 이, 수릉엄정(首楞嚴定)이나 사자왕정(師子王定)을 닦으려는 이와 4마(魔)ㆍ무상(無常)ㆍ무락(無樂)ㆍ무아(無我)ㆍ무정(無淨)의 여덟 가지 마군을 깨뜨리려는
이와 인간과 천상의 즐거움을 얻으려는 이는, 『대열반경』을 받아 지니거나 쓰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다른 이에게 해설하거나 뜻을 생각하는 이를 보면 마땅히 나아가서 친근하고 의지하여 물으며,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며, 손과 발을 씻어 주고 평상과 자리를 깔아 주며, 네 가지로 이바지하여 모자람이 없게 해야 한다. 만일 멀리서 오면 10유순까지 걸어가서 맞으며, 이 경을 위하여 소중한 물품을 받들어 드리되, 만일 없거든 몸이라도 팔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경을 만나기 어려움이 우담바라꽃보다 더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내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적 한량없고 그지없는 나유타 겁 전에 그때의 세계는 이름이 사바(娑婆)이며, 부처님 세존의 명호는 석가모니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이셨는데, 대중을 위하여 이『대열반경』을 연설하셨다. 나는 그때 선지식에게서 그 부처님께서 대중을 위하여 『대열반경』을 설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듣고 나서 마음으로 환희하며 공양을 차리려 하였으나 가난하여 차릴 것이 없었다. 몸을 팔려고 했지만 박복하여 팔리지 않아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 어떤 사람을 보고 말하였다.
‘내가 몸을 팔고자 하니 그대가 사지 않겠소?’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나의 집에서 할 일이 있는데 감당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 그대가 할 수 있다면 내가 그대의 몸을 사겠소.’
나는 또 물었다.
‘무슨 일을 할 터인데 감당할 사람이 없다고 하시오?’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내가 악질(惡疾)이 있어 의원에게 처방하였더니, 날마다 사람의 고기 세 냥을 먹으라고 하였소. 그대가 만일 날마다 살을 세 냥씩 베어 줄 수 있다면 그대에게 금전 다섯 개를
주겠소.’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뻐서 말하였다.
‘그대가 먼저 돈을 주고 7일 동안 여유를 주면 내가 볼일을 다 보고 다시 오겠소.’
그 사람이 말하였다.
‘7일까지는 기다릴 수 없으나, 그대의 사정을 보아서 하루 동안만 허락하겠소.’
선남자야, 나는 그때 그 돈을 가지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가진 것을 모두 받들어 드리고 나서 정성으로 이 경을 들었다. 나는 성품이 암둔하여 경을 듣기는 하였으나, 다만 한 게송만을 받아 지녔다.

여래는 열반을 증득하시고
생사를 영원히 끊으셨으니
지극한 맘으로 듣기만 하면
끝없는 즐거움 얻게 되리.

이런 게송을 받고 나서 그 병난 이의 집으로 돌아갔다. 선남자야, 나는 그때 날마다 살 세 냥을 베어 주었으나 게송을 외우는 인연으로 아프지 않았으며, 하루도 빼지 않고 한 달을 채웠다. 선남자야, 이 인연으로 그의 병은 완전하게 나았고 내 몸도 회복되어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나는 그때 몸이 완전해 진 것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으니,
한 게송의 힘도 이런데 하물며 구족하게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것이겠느냐? 나는 이 경이 이런 이익이 있음을 보고 다시 갑절이나 마음을 분발하여 오는 세상에 부처를 이루어 이름을 석가모니라고 하기를 원하였다. 선남자야, 이 한 게송의 인연으로 내가 지금 대중 가운데서 여러 천상 사람과 세간 사람들에게 구족하게 말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런 인연으로 이 『대열반경』은 헤아릴 수 없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며, 이것은 여러 부처님 여래의 깊고 비밀한 법장이다. 이런 이치로 받아 지니는 이는 나쁜
누(漏)를 여의게 된다. 나쁘다는 것은 사나운 코끼리ㆍ사나운 말ㆍ사나운 소ㆍ사나운 개ㆍ독사 따위가 있는 곳이나, 황무지ㆍ절벽ㆍ험준한 구릉ㆍ홍수ㆍ소용돌이ㆍ나쁜 사람ㆍ나쁜 나라ㆍ나쁜 성ㆍ나쁜 집ㆍ나쁜 동무 등이다. 만일 누(漏)가 될 것은 보살이 즉시 여의고 누가 되지 않으면 여의지 않으며, 유루를 증장하면 여의고 증장하지 않으면 여의지 않으며, 나쁜 법을 지으면 여의고 선한 일을 지으면 여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여의는가? 칼이나 작대기를 가지지 않고 바른 지혜의 방편으로 멀리 여읜다. 그러므로 바른 지혜로 멀리 여읜다고 한다. 선한 법을 내기 위하여 나쁜 법을 여의는데, 보살마하살이 그 몸을 관찰하되, 병과 같고 헌 데와 같고 등창과 같고 원수와 같고 화살이 몸에 박히는 것같이 하며, 이 큰 고통 덩어리는 모든 선과 악의 근본이라고 한다.
이 몸이 이렇게 부정하지만 보살은 잘 돌보아 기른다. 왜냐하면 몸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법을 하기 위함이며 열반을 위함이며 생사를 위함이 아니며,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위함이다.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부정함을 위함이 아니며, 보리도(菩提道)를 위함이며 유루도를 위함이 아니며, 1승(乘)을 위함이며 3승을 위함이 아니다. 32상과 80종호의 미묘한 몸을 위함이며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의 몸을 위함이 아니며, 법륜왕(法輪王)을 위함이며 전륜왕(轉輪王)을 위함이 아니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항상 몸을 보호한다. 왜냐하면 몸을 보호하지 않으면 생명이 온전하지 못하고, 생명이 온전하지 못하면 이 경전을 쓰거나 받아 지니거나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연설하고 그 뜻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마땅히 몸을 잘 보호하여야 하며 그런 뜻으로 보살이 온갖
나쁜 유루를 여읠 수 있다. 선남자야, 물을 건너고자 하는 이라면 배나 뗏목을 잘 보호하고, 길을 떠나려는 사람은 말을 잘 보호하고, 농사하는 사람은 거름을 잘 보호하고, 독을 치료하기 위해는 독사를 잘 보호하고, 재물을 위해서는 전타라를 보호하고, 적을 부수기 위해는 힘센 장사를 보호하여 기르고, 추운 사람은 불을 보호하고, 문둥병 걸린 이는 독약을 구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러하여 비록 이 몸에 한량없이 부정한 것이 가득 찬 줄을 알지만 『대열반경』을 받아 지니기 위해서 잘 보호하여 모자람이 없게 한다.
보살마하살은 사나운 코끼리나 나쁜 동무 등을 볼 때에 달리 여기지 않고 평등하게 본다. 왜냐하면 모두 몸을 망치게 하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사나운 코끼리 등에게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지만 나쁜 동무에게는 두려운 마음을 낸다. 왜냐하면 사나운 코끼리 등은 몸만 망치고 마음은 망치지 못하지만 나쁜 동무는 두 가지를 모두 망치기 때문이며, 사나운 코끼리는 한 몸만을 망치지만 나쁜 동무는 한량없는 선한 몸과 한량없는 선한 마음을 망치기 때문이다. 또한 사나운 코끼리 등은 부정한 몸만 망치지만 나쁜 동무는 깨끗한 몸과 깨끗한 마음을 망치기 때문이며,
사나운 코끼리 등은 육신만을 망치지만 나쁜 동무는 법신(法身)까지 망치기 때문이다. 사나운 코끼리에게 죽으면 3악취에는 이르지 않지만 나쁜 동무에게 죽으면 3악취에 가게 되기 때문이며, 사나운 코끼리 등은 몸의 원수가 되지만 나쁜 동무는 선한 법의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항상 나쁜 동무를 멀리 떠나야 한다. 이러한 누(漏)를 범부는 여의지 못하므로 누가 생기지만 보살은 이런 것을 여의므로 누가 생기지 않는다. 보살도 이렇게 누가 없는 것인데 더구나 여래이겠느냐? 그러므로 누가 아니라고 한다.
어떤 것을 친근히 하는 누(漏)라고 하는가?
모든 범부들은 의복과 음식과 와구(臥具)와 의약을 받을 때에 몸과 마음의 쾌락을 위하여 이런 것을 구하며, 가지각색 나쁜 짓을 지으면서도 허물되는 줄을 알지 못하고 3악취에 윤회하므로 누라 하지만, 보살마하살은 이런 허물을 보았으므로 멀리 떠나는 것이다. 만일 의복이 필요할 때에는 의복을 받지만 몸을 위함이 아니라 법을 위하는 것이며, 교만을 기르지 않고 마음을 항상 낮게 가지며, 찬란하게 꾸미지 않고 다만 부끄러움을 위함이며, 차고 더움과 심한 비바람과 독벌레ㆍ모기ㆍ등에ㆍ파리ㆍ벼룩ㆍ살무사ㆍ전갈 등을 막기 위해서이다.
음식을 받는 것도 탐내는 마음이 없으니, 몸을 위함이 아니며 바른 법을 위함이고, 나의 살을 위함이 아니며 중생을 위함이고, 교만을 위함이 아니며 몸의 기운을 위함이고, 해롭게 하기 위함이 아니며 기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비록 훌륭한 음식을 얻더라도 탐하는 마음이 없다. 집을 가지는 것도 그와 같아서 탐욕과 교만한 번뇌를 마음에 두지 않고 보리의 집을 삼아서 번뇌의 도둑을 막으며, 심한 비바람을 막기 위하여 집을 받는 것이며, 의약을 구하는 것은 탐하거나 교만한 마음이 없고 다만 바른 법을 위할 뿐이며, 오래 살기를 위함이 아니고 보통의 수명을 위함이다.
선남자야, 마치 사람이 종기가 생기면 소구(蘇糗)9)을 붙이고 헝겊으로 싸는 것과 같이 농혈이 흐르게 하려고 밀가루 반죽을 붙이고, 종기가 낫게 하려고 약을 바르고, 바람을 쏘이지 않으려고 방안에 앉아 있는 것이다.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몸을 종기와 같이 생각하므로 옷으로 덮고, 아홉 구멍으로 흘리느라고 음식을 구하고, 사나운 비와 바람을 막기 위하여 집을 가지며, 네 가지 독이 발생함을 막기 위하여 의약을 찾는다. 보살이 네 가지 공양을 받는 것은 보리도를 위함이며 장수하기 위함이 아니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이 네 가지 공양을 받지 않으면 몸이 마멸(磨滅)하여 견고하지 못할 것이고,
몸이
견고하지 못하면 고통을 참지 못할 것이고, 고통을 참지 못하면 선한 법을 닦지 못하겠지만 만일 고통을 참으면 한량없는 선법을 닦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일 모든 고통을 견디지 못하면 고통스러운 것에는 성을 내고, 즐거운 것에는 탐심을 낼 것이며, 만일 즐거움을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번뇌를 내게 될 것이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범부들은 네 가지 공양에 유루(有漏)를 내지만 보살마하살은 깊이 관찰하고 유루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 보살을 무루(無漏)라고 이름하는데 어찌하여 여래를 유루라고 이름하겠는가? 그러므로 여래를 유루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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