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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536 불교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 37권

by Kay/케이 202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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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 37

대반야바라밀다경 제37권

삼장법사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9. 무주품 ②

“세존이시여, 저는 5안과 6신통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5안이요, 이것이 6신통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5안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5안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5안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나와 유정과 내지 아는 것ㆍ보는 것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나와 유정이요, 내지 이것이 아는 것ㆍ보는 것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나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나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나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을 따라서 생각함[佛隨念]과 법을 따라서 생각함[法隨念]과 승가를 따라서 생각함[僧隨念]과 계율을 따라서 생각함[戒隨念]과 평정을 따라서 생각함[捨隨念]과 하늘을 따라서 생각함[天隨念]과 숨을 따라서 생각함[息隨念]과 싫어함을 따라서 생각함[厭隨念]과 죽음을 따라서 생각함[死隨念]과 몸을 따라서 생각함[身隨念]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부처님을 따라서 생각함이요, 내지 이것이 몸을 따라서 생각함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부처님을 따라서 생각함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을 따라서 생각함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부처님을 따라서 생각함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덧없다는 생각[無常想]과 괴롭다는 생각[苦想]과 나 없다는 생각[無我想]과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不淨想]과 죽는다는 생각[死想]과 온갖
세간은 즐거울 수가 없다는 생각[一切世間不可樂想]과 밥을 싫어한다는 생각[厭食想]과 끊어진다는 생각[斷想]과 여읜다는 생각[離想]과 사라진다는 생각[滅想]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덧없다는 생각이요, 내지 이것이 사라진다는 생각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덧없다는 생각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덧없다는 생각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덧없다는 생각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공ㆍ무상ㆍ무원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공이요, 내지 이것이 무원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공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공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공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보시ㆍ정계ㆍ안인ㆍ정진ㆍ정려ㆍ반야 바라밀다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보시바라밀다요, 내지 이것이 반야바라밀다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옵니까. 세존이시여, 이 보시 바라밀다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보시바라밀다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보시바라밀다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4념주ㆍ4정단ㆍ4신족ㆍ5근ㆍ5력ㆍ7등각지ㆍ8성도지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4념주요, 내지 이것이 8성도지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4념주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4념주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4념주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해와 대자ㆍ대비ㆍ대희ㆍ대사와 18불불공법과 일체지와 도상지와 일체상지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부처님의 10력이요, 내지 이것이 일체상지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부처님의 10력 등의 이름은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의 10력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부처님의 10력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허깨비같고 꿈같고 형상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광명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허공의 꽃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신기루[尋香域]와 같고 변화로 된 일과 같은 것과 5취온(五取蘊) 등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허깨비와 같은 것 등이요, 5취온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허깨비와 같은 것 등과 5취온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허깨비와 같은 것 등과 5취온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허깨비와 같은 것 등과 5취온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고요함과 멀리 여읨과 생김이 없음과 소멸이 없음과 물듦이 없음과 청정함이 없음과 모든 쓸모 없는 이론이 끊어진 것과 진여와 법계와 법성(法性)과 실제(實際)와 평등성(平等性)과 이생성(離生性) 등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고요함이요, 내지 이것이 이생성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고요함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고요함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고요함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항상함과 덧없음, 즐거움과 괴로움, 나와 나 없음, 깨끗함과 깨끗하지 않음, 공과 공하지 않음, 모양 없음과 모양 있음, 원 없음과 원 있음, 고요함과 고요하지 않음, 멀리함과 멀리하지 않음, 물듦과 청정함, 생김과 소멸함, 함이 있음과 함이 없음, 샘이 있음과 샘이 없음, 착함과 착하지 않음, 죄 있음과 죄 없음, 세간과 출세간, 생사에 속함과 열반에 속함 등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항상함이요, 내지 이것이 열반에 속한 법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항상함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항상함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항상함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과거ㆍ미래ㆍ현재와 착함ㆍ착하지 않음ㆍ무기(無記)와 욕계의 매임[繫]ㆍ색계의 매임ㆍ무색계의 매임과 배울 것이 있음ㆍ배울 것이 없음ㆍ배울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울 것이 없음도 아닌 것과 견도(見道)에서 끊을 바ㆍ수도(修道)에서 끊을 바ㆍ끊을 바가 아닌 것과 안에 있음ㆍ바깥에 있음ㆍ두 중간에 있는 법 등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과거요, 내지 이것이 두 중간에 있는 법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과거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과거 등의 이치는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과거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시방의 긍가(殑伽:항하)의 모래 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의 온갖 여래ㆍ
응공ㆍ정등각(應正等覺)과 모든 보살과 성문승들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시방의 세계요, 내지 이것이 성문승들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시방세계 등의 이름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시방세계 등의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시방세계 등의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모든 법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것이 보살마하살이요, 내지 이것이 반야 바라밀다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저는 이 보살마하살과 반야바라밀다에서 이미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저로 하여금 반야 바라밀다와 상응한 법으로써 모든 보살마하살을 경계하고 가르치라 하시나이까. 그러므로, 만일 이 법으로써 모든 보살마하살을 경계하고 가르친다면 반드시 후회함이 있으리이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인연(因緣)이 화합해서 임시로 보살마하살과 반야바라밀다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이 두 가지 임시적인 이름은 5온(蘊)에서 말할 수 없고, 12처(處)ㆍ18계(界)ㆍ6계(界)ㆍ4성제(聖諦)ㆍ12연기(緣起)에서 말할 수도 없고,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과 온갖 전(纏)ㆍ결(結)ㆍ수면(隨眠)ㆍ견취(見趣)ㆍ불선근(不善根) 등에서 말할 수도 없고, 4정려ㆍ4무량ㆍ4무색정에서 말할 수도 없고, 5안과 6신통에서 말할 수도 없고, 나와 유정 내지 아는 것과 보는 것에서 말할 수도 없고, 열 가지 따라서 생각함[十隨念]과 열 가지 생각[十想]에서 말할 수도 없고, 공ㆍ무상ㆍ무원ㆍ
6바라밀다에서 말할 수도 없고, 4념주 내지 8성도지에서 말할 수 없고, 부처님의 10력 내지 일체상지에서 말할 수도 없고, 허깨비 같은 것 내지 변화로 된 일 같은 것과 5취온 등에서 말할 수도 없고, 고요함과 멀리 여읨과 생김이 없음과 소멸이 없음과 물듦이 없음과 청정함이 없음과 모든 쓸모 없는 의론이 끊어진 것과 진여와 법계와 법성과 실제와 평등성과 이생성에서 말할 수도 없고, 항상함과 덧없음 내지 생사와 열반에 속한 법에서 말할 수도 없고, 과거ㆍ미래ㆍ현재 내지 안에 있거나 바깥에 있거나 두 중간에 있는 법에서 말할 수도 없고, 시방의 긍가의 모래 같이 많은 세계의 부처님과 보살과 성문들에서 말할 수도 없나니, 왜냐 하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모든 법의 모임과 흩어짐은 모두가 얻을 수 없고 볼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위에서 설명한 5온 등의 이름은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처럼 이 보살마하살과 반야바라밀다의 이름도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사오며,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解脫)ㆍ해탈지견(解脫知見)의 이름은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처럼 이 보살마하살과 반야바라밀다의 이름도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사오며, 예류ㆍ일래ㆍ불환ㆍ아라한ㆍ독각ㆍ여래와 그 모든 법의 이름은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처럼 이 보살마하살과 반야 바라밀다의 이름도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온갖 이름이 있고 이름이 없는 것은 모두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처럼, 이 보살마하살과 반야바라밀다의 이름도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사옵니다. 왜냐 하면 이러한 모든 이름은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왜냐 하면 이
모든 이름의 대상은 이미 없는 것이므로 이 모든 이름도 다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런 이치에 의하여 모든 법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 이름이 보살마하살이요, 이 이름이 반야 바라밀다이다’ 라고 할 수 있사오리까. 세존이시여, 저는 이 두 가지에서 대상과 이름을 이미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저로 하여금 반야바라밀다와 상응한 법으로써 모든 보살마하살을 경계하고 가르치게 하시옵니까. 그러므로 만일 이 법으로 모든 보살마하살을 경계하고 가르친다면 반드시 후회함이 있으리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모습으로 반야 바라밀다를 설명한 것을 들었을 때에 마음이 잠기지도 않고 근심하거나 뉘우치지도 않으며 그 마음이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는다면, 이 보살마하살이야말로 결정코 이미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머물러서 머무름이 없는 방편으로써 머무는 줄을 알겠사옵니다.”
그때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물질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물질은 물질의 성품이 공하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물질은 물질의 공이 아니요 이 물질의 공은 물질이 아니로되 물질은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물질을 여의지 않은지라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며, 느낌ㆍ생각ㆍ의식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물질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눈의 영역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영역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눈의 영역은 눈의 영역의 성품이 공하며, 내지 뜻의 영역은 뜻의 영역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눈의 영역은 눈의 영역의 공이 아니요 이 눈의 영역의 공은 눈의 영역이 아니로되 눈의 영역은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눈의 영역을 여의지 않는지라 눈의 영역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눈의 영역이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영역도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눈의 영역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뜻의 영역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빛깔의 영역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의 영역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빛깔의 영역은 빛깔의 영역의 성품이 공하며, 내지 법의 영역은 법의 영역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빛깔의 영역은 빛깔의 영역의 공이 아니요 이 빛깔의 영역의 공은 빛깔의 영역이 아니로되 빛깔의 영역은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빛깔의 영역을 여의지 않는지라 빛깔의 영역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빛깔의 영역이며,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의 영역도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빛깔의 영역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법의 영역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눈의 경계ㆍ빛깔의 경계ㆍ안식의 경계와 눈의 접촉과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눈의 경계는 눈의 경계의 성품이 공하며, 내지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은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눈의 경계는 눈의 경계의 공이 아니요 이 눈의 경계의 공은
눈의 경계가 아니로되 눈의 경계는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눈의 경계를 여의지 않은 지라 눈의 경계가 곧 공이요 공이 곧 눈의 경계이며, 빛깔의 경계 내지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눈의 경계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귀의 경계와 소리의 경계와 이식의 경계와 귀의 접촉과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귀의 경계는 귀의 경계의 성품이 공하며, 내지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은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귀의 경계는 귀의 경계의 공이 아니요 이 귀의 경계의 공은 귀의 경계가 아니로되 귀의 경계는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귀의 경계를 여의지 않는지라 귀의 경계가 곧 공이요 공이 곧 귀의 경계이며, 소리의 경계 내지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귀의 경계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코의 경계ㆍ냄새의 경계ㆍ비식의 경계와 코의 접촉과 코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코의 경계는 코의 경계의 성품이 공하며, 내지 코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은 코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코의 경계는 코의 경계의 공이 아니요 이 코의 경계의 공은 코의 경계가 아니로되 코의 경계는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코의 경계를 여의지 않는지라 코의 경계가 곧 공이요 공이 곧 코의 경계이며, 냄새의 경계 내지 코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코의 경계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코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혀의 경계ㆍ맛의 경계ㆍ설식의 경계와 혀의 접촉과 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혀의 경계는 혀의 경계의 성품이 공하며, 내지 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은 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혀의 경계는 혀의 경계의 공이 아니요 이 혀의 경계의 공은 혀의 경계가 아니로되 혀의 경계는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혀의 경계를 여의지 않는지라 혀의 경계가 곧 공이요 공이 곧 혀의 경계이며, 맛의 경계 내지 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혀의 경계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몸의 경계ㆍ감촉의 경계ㆍ신식의 경계와 몸의 접촉과 몸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몸의 경계는 몸의 경계의 성품이 공하며, 몸의 경계는 몸의 경계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몸의 경계는 몸의 경계의 공이 아니요 이 몸의 경계의 공은 몸의 경계가 아니로되 몸의 경계는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몸의 경계를 여의지 않는지라 몸의 경계가 곧 공이요 공이 곧
몸의 경계이며, 감촉의 경계 내지 몸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몸의 경계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몸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뜻의 경계ㆍ법의 경계ㆍ의식의 경계와 뜻의 접촉과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오면, 세존이시여, 뜻의 경계는 뜻의 경계의 성품이 공하며, 내지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은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뜻의 경계는 뜻의 경계의 공이 아니요 이 뜻의 경계의 공은 뜻의 경계가 아니로되 뜻의 경계는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뜻의 경계를 여의지 않은지라 뜻의 경계가 곧 공이요 공이 곧 뜻의 경계이며, 법의 경계 내지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 또한 그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뜻의 경계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지계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수계ㆍ화계ㆍ풍계ㆍ공계ㆍ식계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지계는 지계의 성품이 공하며, 수계ㆍ화계ㆍ풍계ㆍ공계ㆍ식계는 수계ㆍ화계ㆍ풍계ㆍ공계ㆍ식계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지계는 지계의 공이 아니요 이 지계의 공은 지계가 아니로되 지계는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지계를 여의지 않는지라 지계가 곧 공이요 공이 곧 지계이며, 수계ㆍ화계ㆍ풍계ㆍ공계ㆍ식계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지계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수계ㆍ화계ㆍ풍계ㆍ공계ㆍ식계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성품이 공하며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공이 아니요 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공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로되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여의지 않은지라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가 곧 공이요 공이 곧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이며,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무명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지어감ㆍ의식ㆍ이름과 물질ㆍ여섯 감관ㆍ접촉ㆍ느낌ㆍ애욕ㆍ취함ㆍ존재ㆍ태어남ㆍ늙음과 죽음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무명은 무명의 성품이 공하며, 내지 늙음과 죽음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은 늙음과 죽음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무명은 무명의 공이 아니요 이 무명의 공은 무명이 아니로되 무명은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무명을 여의지 않은지라 무명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무명이며, 지어감 내지 늙음과 죽음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무명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늙음과 죽음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4정려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4무량과 4무색정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4정려는 4정려의 성품이 공하며, 4무량과 4무색정은 4무량과 4무색정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4정려는 4정려의 공이 아니고 4정려의 공은 4정려가 아니로되 4정려는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4정려를 여의지 않은지라 4정려가 곧 공이요 공이 곧 4정려이며, 4무량과 4무색정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4정려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4무량과 4무색정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5안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6신통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5안은 5안의 성품이 공하며, 6신통은 6신통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5안은 5안의 공이 아니요 이 5안의 공은 5안이 아니로되 5안은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5안을 여의지 않은지라 5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5안이며, 6신통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5안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6신통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보시바라밀다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정계ㆍ안인ㆍ정진ㆍ정려ㆍ반야 바라밀다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보시바라밀다는 보시바라밀다의 성품이 공하며, 내지 반야바라밀다는 반야바라밀다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보시바라밀다는
보시바라밀다의 공이 아니요 이 보시바라밀다의 공은 보시바라밀다가 아니로되 보시바라밀다는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보시바라밀다를 여의지 않는지라 보시바라밀다가 곧 공이요 공이 곧 보시바라밀다이며, 정계 내지 반야바라밀다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보시바라밀다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반야바라밀다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4념주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4정단ㆍ4신족ㆍ5근ㆍ5력ㆍ7등각지ㆍ8성도지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4념주는 4념주의 성품이 공하며, 내지 8성도지는 8성도지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4념주는 4념주의 공이 아니요 이 4념주의 공은 4념주가 아니로되 4념주는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4념주를 여의지 않는지라 4념주가 곧 공이요 공이 곧 4념주이며, 4정단 내지 8성도지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4념주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8성도지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10력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4무소외와 4무애해와 대자ㆍ대비ㆍ대희ㆍ대사와 18불불공법과 일체지와 도상지와 일체상지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10력은 부처님의 10력의 성품이 공하며, 내지 일체상지는 일체상지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부처님의 10력은 부처님의 10력의 공이 아니요 이 부처님의 10력의 공은 부처님의 10력이 아니로되 부처님의 10력은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부처님의 10력을 여의지 않는지라 부처님의 10력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부처님의 10력이며, 4무소외 내지 일체상지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10력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일체상지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모든 글자[字]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인용된 모든 글자로서 한 마디 말을 인용한 것이나 두 마디 말을 인용한 것이나 여러 마디 말을 인용한 것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모든 글자는 모든 글자의 성품이 공하며, 인용된 모든 글자는 인용된 모든 글자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글자는 모든 글자의 공이 아니요 이 모든 글자의 공은 모든 글자가 아니로되 모든 글자는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모든 글자를 여의지 않는지라 모든 글자가 곧 공이요 공이 곧 모든 글자이며, 인용된 모든 글자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모든 글자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인용된 모든 글자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의 항상함과 덧없음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모든 법의 즐거움과 괴로움과 나와 나없음과 깨끗함과 깨끗하지 않음과 고요함과 고요하지 않음과 멀리 여읨과 멀리 여의지 않음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모든 법의 항상함과 덧없음은 모든 법의 항상함과 덧없음의 성품이 공하며, 내지 모든 법의 멀리 여읨과 멀리 여의지 않음은 모든 법의 멀리 여읨과 멀리 여의지 않음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법의 항상함과 덧없음은 모든 법의 항상함과 덧없음의 공이 아니요 이 모든 법의 항상함과 덧없음의 공은 모든 법의 항상함과 덧없음이 아니로되 모든 법의 항상함과 덧없음은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모든 법의 항상함과 덧없음을 여의지 않는지라 모든 법의 항상함과 덧없음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모든 법의 항상함과 덧없음이며, 모든 즐거움과 괴로움과 내지 멀리 여읨과 멀리 여의지 않음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의 항상함과 덧없음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모든 법의 멀리 여읨과 멀리 여의지 않음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진여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법계와 법성ㆍ실제ㆍ평등성ㆍ이생성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진여는 진여의 성품이 공하며, 내지 이생성은 이생성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진여는 진여의 공이 아니요 이 진여의 공은 진여가 아니로되 진여는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진여를 여의지 않는지라 진여가 곧 공이요 공이 곧 진여이며, 법계 내지 이생성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진여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내지 이생성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온갖 다라니문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온갖 삼마지문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온갖 다라니문은 온갖 다라니문의 성품이 공하며, 온갖 삼마지문은 온갖 삼마지문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온갖 다라니문은 온갖 다라니문의 공이 아니요 이 온갖 다라니문의 공은 온갖 다라니문이 아니로되 온갖 다라니문은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온갖 다라니문을 여의지 않는지라 온갖 다라니문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온갖 다라니문이며, 온갖 삼마지문 또한 그와 같사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온갖 다라니문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고, 온갖 삼마지문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하나이다.
그때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方便善巧)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我所]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물질[色]에 머무르고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의식[識]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물질에서 더하는 행[加行]을 일으키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도 없고 일체상지(一切相智)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눈의 영역[眼處]에 머무르고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영역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눈의 영역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뜻의 영역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도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빛깔의 영역[色處]에 머무르고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의 영역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빛깔의 영역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법의 영역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눈의 경계[眼界]에 머무르고 빛깔의 경계[色界]ㆍ안식의 경계[眼識界]와 눈의 접촉[眼觸]과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眼觸爲緣所生諸受]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눈의 경계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귀의 경계[耳界]에 머무르고 소리의 경계[聲界]ㆍ이식의 경계[耳識界]와 귀의 접촉[耳觸]과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耳觸爲緣所生諸受]]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귀의 경계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코의 경계[鼻界]에 머무르고 냄새의 경계[香界]ㆍ비식의 경계[鼻識界]와 코의 접촉[鼻觸]과 코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鼻觸爲緣所生諸受]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코의 경계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코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혀의 경계[舌界]에 머무르고 맛의 경계[味界]ㆍ설식의 경계[舌識界]와 혀의 접촉[舌觸]과 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舌觸爲緣所生諸受]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혀의 경계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몸의 경계[身界]에 머무르고 감촉의 경계[觸界]ㆍ신식의 경계[身識界]와 몸의 접촉[身觸]과 몸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身觸爲緣所生諸受]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몸의 경계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몸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뜻의 경계[意界]에 머무르고 법의 경계[法界]ㆍ의식의 경계[意識界]와 뜻의 접촉[意觸]과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意觸爲緣所生諸受]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뜻의 경계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지계(地界)에 머무르고 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지계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식계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에 머무르고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集滅道諦]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무명[無明]에 머무르고 지어감[行]ㆍ의식[識]ㆍ이름과 물질[名色]ㆍ여섯 감관[六處]ㆍ접촉[觸]ㆍ느낌[受]ㆍ애욕[愛]ㆍ취함[取]ㆍ존재[有]ㆍ태어남[生]ㆍ늙음과 죽음[老死]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愁歎苦憂惱]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무명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늙음과 죽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4정려(靜慮)에 머무르고 4무량(無量)과 4무색정(無色定)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4정려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4무량과 4무색정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5안(眼)에 머무르고 6신통(神通)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5안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6신통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보시(布施)바라밀다에 머무르고 정계(淨戒)ㆍ안인(安忍)ㆍ정진(精進)ㆍ정려(靜慮)ㆍ반야(般若) 바라밀다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보시바라밀다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반야바라밀다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4념주(念住)에 머무르고 4정단(正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등각지(等覺支)ㆍ8성도지(聖道支)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4념주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8성도지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부처님의 10력(力)에 머무르고 4무소외(無所畏)와 4무애해(無碍解)와 대자(大慈)ㆍ대비(大悲)ㆍ대희(大喜)ㆍ대사(大捨)와 18불불공법(佛不共法)과 일체지(一切智)와 도상지(道相支)와 일체상지(一切相智)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부처님의 10력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일체상지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모든 글자에 머무르고 인용된 모든 글자로서 한 마디 말을 인용한 것이나 두 마디 말을 인용한 것이나 여러 마디 말을 인용한 것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모든 글자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인용된 모든 글자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모든 법의 항상함과 덧없음에 머무르고 모든 법의 즐거움과 괴로움ㆍ나와 나 없음ㆍ깨끗함과 깨끗하지 않음ㆍ고요함과 고요하지 않음ㆍ멀리 여읨과 멀리 여의지 않음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모든 법의 항상함과 덧없음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내지 모든 법의 멀리 여읨과 멀리 여의지 않음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선교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나와 내 것이란 집착에 얽히므로 마음이 곧 온갖 다라니문[一切陀羅尼門]에 머무르고 온갖 삼마지문[一切三摩地門]에 머무르리이다. 이렇게 머무르는 까닭에 온갖 다라니문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고 온갖 삼마지문에서 더하는 행을 일으키며, 이 더하는 행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수도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가 없고 일체상지를 이룩할 수도 없나이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물질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며, 물질은 이미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곧 물질이 아니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은 이미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곧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아니기 때문이니, 왜냐 하면 본 성품[本性]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나아가 온갖 다라니문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고 온갖 삼마지문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며, 다라니문은 이미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다라니문이 아니요 삼마지문은 이미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삼마지문이 아니기 때문이니,
왜냐 하면 본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그 받아들이고 수행하고 원만하게 할 반야바라밀다 역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며,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다는 이미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반야바라밀다가 아니리니, 왜냐 하면 본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이렇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본 성품의 공으로써 온갖 법을 관찰해야 하나니, 이렇게 관찰할 때에 온갖 법에서 마음이 가는 곳이 없는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받아들임이 없는 삼마지라 하나이다. 이 삼마지야말로 미묘하고 수승하고 광대하고 한량없어서 그지없고 걸림 없는 작용(作用)을 쌓으므로 온갖 성문ㆍ독각과는 함께할 수 없는 것이옵니다.
그 이룩할 바 일체상지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며, 이와 같은 일체상지는 이미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일체상지가 아니리니, 왜냐 하면 내공(內空)이기 때문이요 외공(外空)이기 때문이요 내외공(內外空)이기 때문이요 공공(空空)이기 때문이요 대공(大空)이기 때문이요 승의공(勝義空)이기 때문이요 유위공(有爲空)이기 때문이요 무위공(無爲空)이기 때문이요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이요 무제공(無際空)이기 때문이요 산공(散空)이기 때문이요 무변이공(無變異空)이기 때문이요 본성공(本性空)이기 때문이요 자상공(自相空)이기 때문이요 공상공(共相空)이기 때문이요 일체법공(一切法空)이기 때문이요 불가득공(不可得空)이기 때문이요 무성공(無性空)이기 때문이요 자성공(自性空)이기 때문이요 무성자성공(無性自性空)이기 때문이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이 일체상지는 모양을 취하여 닦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모양을 취하는 모든 것은 다 그것이 번뇌이기 때문이옵니다.
어떤 것이 모양이냐 하오면, 이른바 물질의 모양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모양이며, 내지 온갖 다라니문의 모양과 온갖 삼마지문의 모양이니, 이 모든 모양에서 집착하는 것을 번뇌라 하옵니다.
만일 모양을 취하여
일체상지를 닦아 얻었다면, 승군범지(勝軍梵志)는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신해(信解)하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어떤 것을 그의 신해한 모양이라 하느냐 하면 반야바라밀다에 깨끗한 믿음을 깊이 낸 것이며, 이 훌륭한 신해의 힘으로 일체지지를 생각하고 관찰하되 모양으로써 방편을 삼지 아니하고 모양 아닌 것으로 방편을 삼지도 않았나니, 모양이나 모양 아닌 것을 모두 취할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이 승군범지는 비록 신해의 힘에 의하여 불법에 들었으므로 믿음을 따라 수행[隨信行]한 이이기는 하나 본 성품의 공으로써 일체지지에 깨쳐 들어갔으며, 깨쳐 들어간 뒤에는 물질의 모양을 취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모양도 취하지 않았으며, 내지 온갖 다라니문의 모양도 취하지 않고 온갖 삼마지문의 모양도 취하지 않았나니, 왜냐 하면 온갖 법은 제 모양이 다 공한지라 취하는 이와 취할 것을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이들 범지는, 안에서 현관(現觀)을 얻은 것으로 일체지지를 관찰하지 않았고 밖에서 현관을 얻은 것으로 일체지지를 관찰하지 않았으며, 안팎에서 현관을 얻은 것으로 일체지지를 관찰하지 않았고 지혜 없이 현관을 얻은 것으로 일체지지를 관찰하지 않았으며, 그 밖에 것으로 현관을 얻어 일체지지를 관찰하지 않았고 현관을 얻지 못한 것으로 일체지지를 관찰하지도 않았나니,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오며, 이 승군범지는 관찰할 바 일체지지를 보지 않았고 관찰하는 반야도 보지 않았으며 관찰하는 이와 관찰할 것도 보지 않았기 때문이옵니다.
이 승군범지는 안의 물질에서 일체지지를 관찰한 것이 아니요 안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서 일체지지를 관찰한 것이 아니며, 밖의 물질에서 일체지지를 관찰한 것이 아니요 밖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서 일체지지를 관찰한 것이 아니며, 안팎의 물질에서
일체지지를 관찰한 것이 아니요 안팎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서 일체지지를 관찰한 것이 아니며, 물질을 여의고서 일체지지를 관찰한 것도 아니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여의고서 일체지지를 관찰한 것도 아니며, 내지 안의 온갖 다라니문에서 일체지지를 관찰한 것이 아니요 안의 온갖 삼마지문에서 일체지지를 관찰한 것이 아니며, 밖의 온갖 다라니문에서 일체지지를 관찰한 것이 아니요 밖의 온갖 삼마지문에서 일체지지를 관찰한 것이 아니며, 안팎의 온갖 다라니문에서 일체지지를 관찰한 것이 아니요 안팎의 온갖 삼마지문에서 일체지지를 관찰한 것이 아니며, 온갖 다라니문을 여의고서 일체지지를 관찰한 것도 아니요 온갖 삼마지문을 여의고서 일체지지를 관찰한 것도 아니니, 왜냐 하면 안과 밖과 안팎과 안팎을 여의는 것 모두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이 승군범지는 이러한 모든 모양을 여읜 법문으로써 일체지지에서 신해를 깊이 내었으며, 이 신해로 말미암아 온갖 법에서 모두 집착이 없었나니, 모든 법의 실상(實相)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이와 같이, 범지는 모양을 여읜 법문으로써 일체지지에서 신해를 얻은 뒤에는 온갖 법에서 모두 모양을 취하지 않았고 모양 없는 모든 법을 생각하지도 않았나니, 모양이거나 모양이 없는 법을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이와 같이, 범지는 훌륭한 신해의 힘에 의하여 온갖 법에서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았나니, 실상의 법 가운데는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때에 그 범지는 스스로의 신해 내지 열반까지도 집착하지 않았나니,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오면, 온갖 법의 본 성품은 모두가 공하여 취할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다도 역시 그와 같아서 온갖 법에 집착함이 없나니, 이 언덕에서 저 언덕에 이르기 때문이옵니다.
만일 모든 법에서 조금이라도 집착함이 있으면 저 언덕에 이르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온갖 물질을 취하지 않고 온갖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취하지도 않나니 온갖 법은 취할 것이 없기 때문이며, 내지 온갖 다라니문을 취하지 않고 온갖 삼마지문을 취하지도 않음은 역시 온갖 법은 취할 것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이 보살마하살은 비록 온갖 물질과 온갖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며 내지 온갖 다라니문과 온갖 삼마지문에서 한꺼번이거나 따로따로거나 모두 취하는 것이 없다손 치더라도, 본래의 소원으로 행하는 4념주 내지 8성도지가 아직 원만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본래 소원으로 깨달을 바 부처님의 10력 내지 일체상지가 아직 원만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중간에서 끝내 온갖 모양을 취하지 않으면서 열반에 들지는 못하옵니다.
이 보살마하살은 비록 4념주 내지 8성도지가 원만하고 그리고 부처님의 10력 내지 일체상지를 이룩했다 하더라도, 4념주 내지 8성도지를 보지 못하며 그리고 부처님의 10력과 일체상지를 보지 못하옵니다. 왜냐 하면 이 4념주는 곧 4념주가 아니요 내지 8성도지는 곧 8성도지가 아니며, 그리고 부처님의 10력은 곧 부처님의 10력이 아니요 내지 일체상지는 곧 일체상지가 아니오니, 온갖 법은 법도 아니요 법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온갖 법에서 비록 취하는 것은 없다 하더라도 온갖 사업을 능히 이룩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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