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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1957 불교(고승전 12권 6편/ 高僧傳)

by Kay/케이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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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고승전(高僧傳) 126

 

11) 석담홍(釋曇弘)

담홍은 황룡(黃龍)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계율 있는 행실을 닦아, 오로지 율부에 정진하였다.

전송(前宋)의 영초(永初) 연간(420422) 남쪽 번우(番禺)에 노닐다가, 대사(臺寺)에 머물렀다. 만년에 다시 교지(交趾)의 선산사(仙山寺)로 가서 무량수경관음경을 외웠다. 그러면서 마음에 서원하여, 안양정토에 태어나기를 희구하였다.

효건(孝建) 2(455)에 산 위에 섶을 모아놓고, 비밀히 장작더미 속에 가서 스스로를 불태웠다. 제자들이 뒤쫓아가서 안고 돌아왔다. 그러나 반신은 이미 문드러졌다. 한 달이 지나자 조금 차도가 생겼다.

그 후 가까운 마을에서 모임을 마련하여, 온 절의 승려가 모두 그곳을 찾아갔다. 담홍은 이 날 다시 골짜기에 들어가 몸을 불태웠다. 마을 사람들이 뒤쫓아가서 찾아보니, 목숨이 이미 끊어졌다. 이에 땔감을 더하여 불길을 지피니, 이튿날에야 불길이 다하였다.

그 날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보았다.

담홍의 몸이 황금빛을 내면서 금빛 나는 한 마리 사슴을 타고 서쪽으로 매우 빠르게 가는 것을.’

안부를 여쭐 겨를도 없었다. 이에 도인과 속인들이 비로소 그의 신이함을 깨달았다. 함께 재와 뼈를 거두어서 탑을 세웠다.

 

무릇 형상이 있는 존재가 귀중히 여기는 것은 몸이며, 감정이 있는 존재가 보배로 삼는 것은 목숨이다. 그런 까닭에 기름기를 먹고, 피를 마시고,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옷을 입는 것은, 느긋하고 기쁜 마음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삽주[蒼朮]를 먹고, 단사[]를 머금어 생명을 지키고 본성을 기르는 것은, 오래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심지어 털 하나를 꺾어서 천하를 이롭게 한다 하더라도

 

아껴서 하지 않는다거나, 한 끼의 밥을 거두어서 남은 목숨을 이어가겠다고 하여도 아까워 주지 않거나 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그 폐단이 너무 지나친 것이다.

그 가운데는 나름대로 굉장한 지식과 달관한 견해를 지닌 사람이 있어서, 자기 몸을 버려 다른 사람을 아름답게 하려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삼계가 긴 어둠 속의 세계임을 체득하고, 사생(四生)이 꿈과 허깨비의 경계임을 깨달아서, 정신을 나는 짐승보다 더 한가로이 하고, 겉 몸뚱이를 알곡을 담는 단지보다 더 단단히 한, 사람들이다.

그런 까닭에 정수리를 쓰다듬어 발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몸에 개의한 일이 없고, 나라와 성과 처자까지도 지푸라기와 같이 버린다. 지금 여기서 논한 사람들은 모두가 그런 사람들이다.

승군(僧群)의 마음은 한 마리의 오리를 위하여, 물 마시기를 끊고 그것으로써 몸을 버렸다. 승부(僧富)는 오직 한 아이를 구제하기 위하여, 배를 갈라 아이의 목숨을 보전하였다. 법진(法進)은 살을 도려내어, 사람들에게 먹였다. 담칭(曇稱)은 스스로 호랑이 먹이가 되었다. 이들은 모두가 나와 함께 남을 아울러 구제하는 길[兼濟之道]을 숭상하여, 자신의 몸을 잊고 중생들을 이롭게 한 이들이다.

예전에 임금의 아들이 몸을 던져 호랑이 먹이가 된 공덕은, 9()의 세월 동안 쌓은 공덕을 넘어선 것이다. 살갗을 도려내서 새와 바꾼 것은, 삼천세계를 진동시킬 만큼 놀라운 일이다. 생각건대 무릇 이런 사람은, 참으로 인품이 보통보다 아주 높이 뛰어나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법우(法羽)에서 담홍(曇弘)에 이르기까지는, 모두가 몸을 불살라 재가 되게 함으로써, 보배와 같이 사랑하던 것을 버린 사람들이다. 혹 심정으로 안양정토에 태어나기를 기도한 사람도 있고,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서원한 사람도 있다. 그런 까닭에 한 쌍의 오동나무가 방 한가운데서 표출하기도 하고, 한 도관(道館)이 저절로 공중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니 아름답고 빛나게 상서로움과 부합한 일이, 시대와 더불어 간간이 나온다고 하겠다.

그러나 성인의 가르침은 같지 않아, 허용하고 차단하는 것 역시 다르다. 만약 큰 방편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시절에 알맞게 행동한다면, 그 이익은 1만 가지 실마리로 나타날 것이다. 이는 가르침으로 제약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경전에서는 말한다.

하나의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태우는 것이 나라와 성으로 보시하는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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