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556 불설여래부사의비밀대승경(佛說如來不思議秘密大乘經) 7권

by Kay/케이 2025. 2. 11.
728x90
반응형

 

 

 

불설여래부사의비밀대승경(佛說如來不思議秘密大乘經) 7

 

 

불설여래부사의비밀대승경 제7권

서천 법호 등 한역
김영덕 번역

7. 여래신밀부사의품 ②
“다시 적혜여, 여래의 신상은 한 대중의 모임에서도 어떤 이는 볼 수 있고 어떤 이는 보지 못하나니, 볼 수 있는 이는 기뻐하고 우러러보며, 보지 못하는 이는 묵연히 멍청하게 눈을 뜨고 바라봅니다.적혜여,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래는 한 그릇 밥으로 자양하지 않건마는 혹 어떤 중생은 부처님께서도 세간의 음식을 받으신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위력이 구족되어 있어서 보리행을 닦는 것입니다. 모든 현성의 대중은 항상 부처님의 뒤를 따른 후 식기 속에서 음식을 받아먹으며, 중생은 부처님 여래께서 자주자주 음식을 들어 식기 속에 두시는 것을 봅니다.저 모든 현성이 이미 음식을 받고 나서는, 만일 불법 가운데 제도를 받아야 할 중생으로서 숙세에 선근을 심어 업장이 다한 사람이 태어나는 곳마다 음식을 얻지 못하여 배고프고 목이 말라 파리하고 수척하지만, 숙세의 선력이 있기 때문에 저들 중생은 부처님 여래께서 남기신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습니다. 음식을 먹고 나서는 배가 가득 부르고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지며, 몸과 팔ㆍ다리가 윤택해지고 몸과 마음이 청정해져서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냅니다.
만일 모든 중생이 지옥과 아귀 등 모든 악취에 떨어져 있으면 대보리심을 발할 수 없으며, 이러한 까닭으로 나아가서 열반계까지 다합니다.적혜여, 그러므로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래께서는 세간의 음식을 받지 않나니, 여래의 자양은 이른바 법식입니다. 부처님 몸은 견고하여 나라연천과 같으며, 진실하고 무너지지 않으니 금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적혜여, 여래의 몸은 생장(生藏)과 숙장(熟藏)으로 이루어지고 자양된 것도 아니며, 또 눈물ㆍ콧물이나 여러 가지 더럽고 부정한 것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여래의 몸은 염부단금과 같아서 이지러짐도 없고 끊어짐도 없고 모든 과실을 여의었습니다. 여래의 몸은 대위력을 구족하여 신체가 견고하고 무겁기 때문에 마치 금강과 같으며, 매우 부드럽고 연하기 때문에 가좌린나(迦左鄰那) 옷과 같아서 몸에 닿을 때마다 모두 묘한 즐거움을 얻습니다.적혜여,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한때 모든 대위력을 구족한 어떤 천자ㆍ천녀가 부처님의 발에 예경하였으며, 예경할 때 손이 부처님 발에 닿자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래께서는 잡염을 따라서 생한 것이 아닙니다.다시 적혜여, 세간의 모든 탐욕을 행하는 중생이 잠시라도 여래의 몸을 보고 나면 자신에게서 탐하는 생각을 여의며, 성냄을 짓는 중생이 잠시라도 여래의 몸을 보고 나면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키며, 어리석게 행하는 중생이 잠시라도 여래의 몸을 보고 나면 지혜의 광명에 밝게 비추어지게 됩니다. 분별을 행하는 중생이 잠시라도 여래의 몸을 보고 나면 자기 자신에게서 모든 번뇌를 털어버리며, 인색한 중생이 잠시라도 여래의 몸을 보고 나면 보시의 법을 신해(信解)할 수 있으며, 파계한 중생이 잠시라도 여래의 몸을 보고 나면 계법을 신해하여 청정하게 됩니다.마음으로 화를 내는 중생이 잠시라도 여래의 몸을 보고 나면 인내하는 법을 얻으며, 게으른 중생이 잠시라도 여래의 몸을 보고 나면 정진을 일으키며, 마음이 산란한 중생이 잠시라도 여래의 몸을 보고 나면 적정을 얻으며, 어리석은 중생이 잠시라도 여래의 몸을 보고 나면 뛰어난 지혜를 얻습니다.선남자여, 요컨대 만일 모든 중생이 잠시라도 여래의 몸을 보게 되면 일체의 선법을 모두 버리거나 여의지 않으며, 모든 착하지 못한 의심 등의 염법이 다 소멸되어 없어져 착한 마음을 안립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여래께서는 항상 분별함이 없는 사(捨)에 안주하시니, 이것을 여래신밀이라고 말합니다.또 적혜여, 여래께서 교화하시고 교화 받은 사람이 모든 불사를 짓는 것과 같이 여래의 마음은 가행(加行)도 없고 깨달았다는 생각도 없으며, 일부러 한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내가 그를 교화하였고, 교화 받은 사람이다’라는 등의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화 받은 중생은 제도될 만한 사람입니다. 이 세계거나 다른 세계거나 나아가 아승기 백천 세계의 모든 중생을 성숙하게 하기 위한 까닭에 모든 이익을 짓나니, 이것을 여래신밀이라고 말합니다.다시 적혜여, 여래의 몸은 광대한 광명을 놓으시는데 헤아릴 수 없는 백천 가지의 색을 갖추고 있으며, 그 광명은 시방의 모든 긍가의 모래알만큼 많은 불국토를 널리 비추어서 모든 중생을 널리 성숙하게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여래께서는 깨달았다는 생각도 없고 가행(加行)도 없으며 일부러 한다는 생각도 없나니, 이러한 것을 여래의 신밀과 신업의 청정이라고 합니다.적혜여,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것들은 모두 여래의 신밀ㆍ신업의 청정을 간략하게 약간만 말한 것입니다. 만일 자세하게 말하면 비록 1겁이 지나고 다시 1겁이 지나더라도 그 끝까지 다할 수가 없습니다.”금강수보살대비밀주가 여래신밀의 부사의법을 말할 때 회중의 1만 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였으며, 8천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그때 모임 가운데에 있던 모든 천인이 온갖 묘한 꽃을 부처님께 뿌렸으며, 금강수보살대비밀주에게 공양하였다.이때 세존께서 오른쪽 금색 팔을 펴시어 금강수보살대비밀주의 정수리 위에 놓으시고 이런 찬탄하는 말씀을 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비밀주여, 그대는 여래의 신밀부사의법을 잘 말하여서 우리가 모두 알았도다. 그대가 말한 법을 나도 지금 따라 기뻐하노라.”
8. 여래어밀부사의품(如來語密不思議品) ①
다시 금강수보살대비밀주가 적혜 보살마하살에게 말하였다.
“또 무엇을 여래의 어밀(語密)과 어업(語業)의 청정이라고 하는가 하면, 이른바 여래께서는 밤낮 가운데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를 성취하시고, 밤낮 가운데서 대열반에 들어가셨지만 그 사이 여래께서 일찍이 한 글자도 말씀하신 적이 없으며, 또한 설명하여 나타내신 적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항상 삼마희다(三摩呬多)1)에 계시기 때문입니다.여래께서는 숨을 내쉴 때와 들이쉴 때 찾아 구하거나 살피지 않나니, 심사(尋伺)하지 않기 때문에 말씀하신 언어가 모든 삿됨과 허망함을 여의었습니다. 불세존께서는 심사하지 않으시고 분별하시는 바도 없으며, 널리 분별함도 없고 말씀하심도 없으며, 보이심도 없고 설명하여 나타내심도 없으시지만, 모든 중생은 여래께서 선설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이때 여래께서는 필경 정에 들어 계시며, 모든 종(種)과 모든 때에 문자로 설명하여 나타내시지만 또한 나타내신 바도 없습니다.만일 어떤 중생이 문자로 인하여 믿고 존중하는 마음을 내면 저 중생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여래께서 나를 위하여 법을 설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여래의 마음은 항상 분별함이 없는 평등한 마음에 안주합니다.다시 적혜여, 여래께서는 또 입술ㆍ이ㆍ혀ㆍ목구멍과 입으로 모든 음성을 내어서 듣는 바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래께서 내시는 음성은 허공을 쫓아나오지만, 중생은 부처님 여래의 모든 음성이 입에서 나왔다고 여깁니다.적혜여,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래의 언어에는 예순네 가지 뛰어난 상2) 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무엇이 예순네 가지인가 하면, 첫 번째는 유택성(流澤聲, snigdhā)이고, 두 번째는 유연성(柔軟聲, mṛdukā)이며, 세 번째는 열의성(悅意聲, manojñā)이고, 네 번째는 가락성(可樂聲, manoramā)이며, 다섯 번째는 청정성(淸淨聲, śuddha)이고, 여섯 번째는 이구성(離垢聲, vimalā)이며, 일곱 번째는 명량성(明亮聲, prabhāsvarā)이고, 여덟 번째는 감미성(甘美聲, valgu)이며, 아홉 번째는 낙문성(樂聞聲, śravaṇīyā)이고, 열 번째는 무열성(無劣聲, anelā)이며,열한 번째는 원구성(圓具聲, kālā)이고, 열두 번째는 조순성(調順聲, vinītā)이며, 열세 번째는 무삽성(無澀聲, akarkaśā)이고, 열네 번째는 무악성(無惡聲, apaṣā)이며, 열다섯 번째는 선유성(善柔聲, savinītā)이고, 열여섯 번째는 열이성(悅耳聲, karṇasukhā)이며, 열일곱 번째는 적신성(適身聲, kāyaprahlādanakarī)이고, 열여덟 번째는 심생용예성(心生勇銳聲, cittodvilyakarī)이며, 열아홉 번째는 심희성(心喜聲, hṛdayasaṃtuṣṭikarī)이고, 스무 번째는 열락성(悅樂聲, prītisukhajānani)입니다.스물한 번째는 무열뇌성(無熱惱聲, niṣpaaridāhā)이고, 스물두 번째는 여교령성(如敎令聲, ājñeyā)이며, 스물세 번째는 선료지성(善了知聲, vijñeyā)이고, 스물네 번째는 분명성(分明聲, vispaṣtā)이며, 스물다섯 번째는 선애성(善愛聲, premaṇīyā)이고, 스물여섯 번째는 영생환희성(令生歡喜聲, abhinandanīyā)이며, 스물일곱 번째는 사타여교령성(使他如敎令聲, ājñāpanīyā)이고, 스물여덟 번째는 영타선료지성(令他善了知聲, vijñāpanīyā)이며, 스물아홉 번째는 여리성(如理聲, yuktā)이고, 서른 번째는 이익성(利益聲)이며,서른한 번째는 이중복과실성(離重復過失聲)이고, 서른두 번째는 여사자음성(如師子音聲)이며, 서른세 번째는 여용음성(如龍音聲)이고, 서른네 번째는 여운뢰후성(如雲雷吼聲)이며, 서른다섯 번째는 여용왕성(如龍王聲)이고, 서른여섯 번째는 여긴나라묘가성(如緊那羅妙歌聲)이며, 서른일곱 번째는 여가릉빈가성(如迦陵頻伽聲)이고, 서른여덟 번째는 여범왕성(如梵王聲)이며, 서른아홉 번째는 여공명조성(如共命鳥聲)이고, 마흔 번째는 여제석미묘성(如帝釋美妙聲)이며,마흔한 번째는 진고성(振鼓聲)이고, 마흔두 번째는 불고성(不高聲)이며, 마흔세 번째는 불하성(不下聲)이고, 마흔네 번째는 수입일체음성(隨入一切音聲)이며, 마흔다섯 번째는 무결감성(無缺減聲)이고, 마흔여섯 번째는 무파괴성(無破壞聲)이며, 마흔일곱 번째는 무염오성(無染污聲)이고, 마흔여덟 번째는 무희취성(無希取聲, adīnā)이며, 마흔아홉 번째는 구족성(具足聲, prasṛtā)이고, 쉰 번째는 장엄성(莊嚴聲, saritā)이며,쉰한 번째는 현시성(顯示聲, lalitā)이고, 쉰두 번째는 원만일체음성(圓滿一切音聲, sarvasvarapūraṇī)이며, 쉰세 번째는 제근적열성(諸根適悅聲, sarvendriyasaṃtoṣaṇī)이고, 쉰네 번째는 무기훼성(無譏毁聲, aninditā)이며, 쉰다섯 번째는 무경전성(無輕轉聲, acañcalā)이고, 쉰여섯 번째는 무동요성(無動搖聲, acapalā)이며, 쉰일곱 번째는 수입일체중회성(隨入一切衆會聲, sarvaparṣadanuravitā)이고, 쉰여덟 번째는 제상구족성(諸相具足聲, sarvākāravaropetā)입니다.다시 적혜여, 쉰아홉 번째 여래께서 내시는 언사는 널리 시방의 모든 세계 모든 중생의 마음을 기쁘게[令衆生心意歡喜聲, pramuditā]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다. 즉, 내가 능히 모든 법을 펴서 말하겠으니, 이른바 계경(契經)ㆍ응송(應頌)ㆍ기별(記別)ㆍ풍송(諷誦)ㆍ자설(自說)ㆍ연기(緣起)ㆍ본사(本事)ㆍ본생(本生)ㆍ방광(方廣)ㆍ희법(希法)ㆍ논의(論議)ㆍ비유(譬喩)ㆍ비밀선행법(秘密先行法)ㆍ본연법(本緣法)을 말하는 것ㆍ석인법(昔因法)을 말하는 것ㆍ근설(近說)ㆍ다설(多說)ㆍ광설(廣說)ㆍ교시(敎示)ㆍ안립(安立)ㆍ분위(分位)ㆍ분별(分別)ㆍ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를 해석하고 열어 밝히는 것입니다.이와 같은 법을 저 모든 대중의 모임 가운데서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대중의 모임이거나 천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의 모든 대중의 모임이거나 간에 부처님께서는 각각 그 근기에 정진하는 분량에 따라 응하는 바대로 법시(法施)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저들 대중들의 모임이 여래께서 법을 설하시는 것을 들을 때 모두 설하신 것이 여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여기지만 설하신 법은 또한 서로 중복되는 말이 없어서 모든 대중들의 모임이 각각 음성을 따라 모든 법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적혜여, 이것을 여래의 어밀이라고 합니다.다시 적혜여, 예순 번째로 모든 중생은 그 수가 헤아릴 수 없고 모든 중생의 행도 헤아릴 수 없는데, 여래께서 말씀하신 중생의 심행[說衆生心行聲, sakhilā]이 간략하게 8만 4천 가지가 있는 것은, 다만 근성이 하열한 중생을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기 위함입니다.적혜여,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중생의 심행은 한량없어서 세간의 모든 탐욕을 행하는 중생ㆍ성냄을 행하는 중생ㆍ어리석음을 행하는 중생ㆍ탐진치를 골고루 행하는 중생 등 저마다의 중생은 각각 심행이 차별됩니다.
만일 부처님 여래께서 1겁 중에서나 1겁을 지나거나 나아가 여래께서 세간에 머무신 지 백천 겁이 지나도록 얼마 정도의 수명의 양과 지극한 수명의 분한(分限)에 따르더라도 또한 모든 중생의 심행의 끝을 말씀하실 수 없습니다.만일 부처님께서 다만 중생의 심행이 끝없는 것만을 말씀하시면 모든 중생이 깨달아 들어가지 못하고 도리어 어리석음과 미혹함을 냅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훌륭한 방편으로 모든 중생의 한량없는 행 가운데 간략하게 몇 가지를 말씀하셨으니, 8만 4천 가지가 있습니다.
또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든 법은 모든 중생의 심행을 따라 차별되어서 그 응하는 바대로 모두 깨닫게 합니다. 적혜여, 이것을 여래의 어밀이라고 합니다.다시 적혜여, 예순한 번째는 여래의 어밀의 지혜가 모든 중생의 심의(心意)에 따라 들어가지만[入衆生心意聲] 그 말씀은 여래의 입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만 허공을 쫓아서 나옵니다.만일 어떤 중생이 부처님 여래의 모든 말씀은 입 속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이런 견해를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혹 어떤 중생은 부처님의 말씀이 오슬니사(烏瑟膩沙)3) 의 모습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혹 정수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혹 머리카락 끝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어깨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이마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미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호상(毫相)4)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귀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코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뺨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목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손가락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양 옆구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가슴 앞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등 뒤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배꼽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음장(陰藏)5)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무릎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발꿈치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복사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발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모든 상호 가운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모든 털구멍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나니, 이와 같이 중생들이 알고 이해하는 데 다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적혜여, 이것을 곧 여래의 어밀이라고 합니다.다시 적혜여, 예순두 번째는, 여래께서 하신 말씀은 모든 중생의 갖가지 믿어 아는 것을 따르고[隨衆生信解聲], 모든 중생의 심ㆍ의ㆍ식이 성숙됨을 따라서 널리 응하는 바에 따라 분명히 알게 하지만, 여래께서는 항상 분별함이 없는 평등한 마음에 머무십니다. 비유하면 마치 세간의 가법(假法)으로 이루어진 모든 악기가 저 만들어진 바에 따라서 다 교묘하여 손을 가까이 대거나 사람의 힘에 의하지 않는데도 가벼운 바람이 불자 아름다운 묘한 소리를 내며, 나온 소리는 모두 과거의 업으로 차별되어서 바람이 불어 연주한 것과 같습니다.여래의 말씀도 이와 같아서 일체 중생의 모든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지혜의 바람이 불어 연주한 것이지 여래께서 애쓰시는 노력으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여래께서는 모든 중생이 선세에 지은 업의 차별과 중생의 경계를 따라서 응하는 대로 말씀하십니다.적혜여, 비유하면 마치 메아리 소리가 울리는 곳을 따라 그 소리가 나온 곳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또한 중간도 아닌 것과 같습니다.
여래의 말씀도 또한 이와 같아서 나온 바를 따라 중생의 심의를 아셨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일 뿐, 여래의 음성은 안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밖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또한 중간에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또 예컨대 큰 바다에 보배 여의주가 있는데, 그것을 모든 의요(意樂)를 원만하게 하는 것이라 이름합니다. 그것을 높은 당(幢) 위에 걸어두면 자연히 소리를 내므로 이 구슬은 모든 중생의 의요를 원만히 한다고 말하지만, 이 보배 구슬에는 또한 분별이 없습니다.
여래께서도 또한 이와 같아서 언어의 묘한 보배가 마음 깊이 청정하여 대비의 당 위에 걸어 놓으면 일체 중생의 모든 의요를 따라 여래의 미묘한 말씀을 내셔서 다 깨달아 알게 하시지만, 여래께서는 항상 분별함이 없는 평등한 마음에 머무시나니, 적혜여, 이것을 곧 여래의 어밀이라고 이름합니다.다시 적혜여, 예순세 번째는 모든 여래의 일체 음성은 그 분량이 없는 것[聞者無分量聲]입니다.
나는 세간의 모든 천ㆍ인ㆍ마왕ㆍ범천ㆍ사문ㆍ바라문 등이 여래의 음성의 변제(邊際)와 분량을 아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해 보건대,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대성의 취봉산(鷲峰山)에 계셨는데, 모든 보살 대중에게 빙 둘러싸여 음성을 선설하고 청정한 법문을 굴리셔서 널리 중생을 위하여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셨습니다.그 후 한때 자씨 보살마하살의 가지력으로 대목건련 존자는 곧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청정하게 울리는 여래 음성의 분량은 얼마나 멀리 갈까?’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곧 앉은 자리에서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으며, 자기의 신통력으로 수미산 꼭대기에 올라가 여래의 음성이 먼 데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를 들었습니다.다시 신통력을 움직여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가서 다시 수미산 서쪽을 지나고, 다시 사대주계(四大洲界)를 지나고, 또 철위산(鐵圍山)과 대철위산(大鐵圍山)을 지나서 세계의 끝에 이르렀다가 도로 철위산 꼭대기에 머물러서 여래 음성의 분량을 자세히 들었는데, 그 음성은 평등하여 늘어나고 줄어듦이 없었습니다.그때 세존께서 이 일을 아시고 곧 이런 생각을 하셨습니다.
‘대목건련은 나의 음성의 모든 분량을 재보려고 하는구나. 나는 지금 신통력을 거두어야겠다.’
세존께서 신통력을 거두자 대목건련은 부처님께서 위신력으로 가피해 주신 바를 받았기 때문에 자기의 신통력으로 이 세계 서쪽 지방의 아흔아홉 개의 긍가의 모래알만큼 많은 부처님 나라를 지나서 한 세계에 갔습니다. 나라의 이름은 광명당(光明幢)이라고 하였고, 그곳에 계시는 여래의 이름은 광명왕(光明王)이라고 하였는데, 현재에 머물러 법을 설하시며 중생을 교화하고 계셨습니다.이때 존자 대목건련이 저 국토에 도착하고 나서 세존 석가모니여래 음성의 분량을 자세히 들으니, 비유하면 마치 10주(肘) 정도 되는 지방에서 저 사람이 말하는 음성을 듣는 것과 같았습니다. 대목건련이 저 세계에서 부처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이와 같아서 그 소리는 평등하여 늘어나고 줄어듦이 없었습니다.
저 광명왕여래의 몸 높이는 백 유순(由旬)이며, 모든 보살의 몸 높이는 50유순이었습니다.이때 대목건련이 자신의 신통력으로 저 모든 보살 대중이 사용하고 있는 발우 속을 계속 빙빙 돌아다니자, 모든 보살이 이러한 모습을 보고 업신여겨 비웃으며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지금 사문의 모습이 조그마한 벌레와 같이 되어 이 발우 속에 들어와 빙빙 돌아다닙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선남자여, 그대들은 업신여기는 마음을 내지 말아라. 왜냐하면 지금 이 발우 속의 행자는 저곳 세존이신 석가모니여래의 상수 성문 제자인데 대성문(大聲聞) 대중 가운데 신통이 제일이니라.’그때 존자 대목건련이 광명왕여래의 처소 앞에 나아가 머리 숙여 부처님 발에 예배드리고 오른쪽으로 일곱 바퀴 돌고 부처님의 앞에 머물러 섰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존자 대목건련이여, 여기의 모든 보살이 가볍게 여겨서 비웃었도다. 그대는 지금 마땅히 저 세존ㆍ석가모니ㆍ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의 가피하신 바를 받았으니, 자신의 신통력으로 모든 신통변화를 나타내야 하느니라.’존자 대목건련이 저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저는 지금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가부하고 앉아 이 보주(寶洲)에서 신통변화를 보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니라.’존자 대목건련이 즉시 몸을 공중에 솟구치자 높이가 7구지의 다라나무[多羅樹] 정도 되었습니다. 또 변화를 지어서 그 앉은 가운데서 백천억 나유다의 진주와 영락을 변화로 나타내어 광대하게 장엄하였는데, 저 유리가 각각 백천억 광명을 놓았습니다. 또한 낱낱의 광명문에서 모두 연꽃을 내었는데, 이 모든 연화대 가운데 모두 세존 석가모니여래의 형상이 그 위에 편안하게 머물러 계셨으며, 저 여래의 상은 모두 다 묘한 음성을 선설하여 청정한 정법을 굴리고 계셨습니다.대목건련이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가부좌하고 앉아서 이 사대주의 일체 세계에서 모든 신통 변화를 지을 수 있으며, 나아가 이 소천세계ㆍ중천세계ㆍ삼천대천세계에서도 다 신통 변화를 지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니라.’이때 존자 대목건련이 그 응하는 바대로 신통 변화를 나타내고 나서 신통력을 거두어들이고 다시 부처님 앞에 머물렀습니다.
그때 저 모든 보살 대중이 희유하다는 마음을 내고 부처님 앞에서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존자 대목건련은 무엇 때문에 이 세계에 도착하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선남자여, 이 대목건련은 저곳의 세존이신 석가모니여래의 음성이 울려 퍼지는 분량을 재보고자 이곳에 이르렀느니라.’그때에 저 세존 광명왕여래께서 존자 대목건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이제 돌아가서 다시는 이런 마음을 일으켜서 여래의 음성이 울려 퍼지는 분량을 재려고 하지 말라. 말하자면 여래의 청정한 음성은 그 분량이 없어서 잴 수가 없기[衆生不能思惟稱量聲] 때문이다. 가령 그대의 위세신통력으로 온 서방의 긍가의 모래알만큼 많은 겁을 지나더라도 마침내 저 세존이신 석가모니여래의 음성이 미묘하게 울려 퍼지는 분량의 끝을 얻을 수 없나니, 여래 음성의 묘한 음향은 한량없기 때문이니라.”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