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신모희수경(佛說身毛喜豎經) 하권
불설신모희수경 하권
유정 한역
김성구 번역
“또 사리자야, 어떤 것이 그들과 같게 가장 높이 괴로움으로 몸을 핍박했다고 말하느냐. 그것은 나의 몸에 티끌이며 흙이며 쓰레기나 더러운 것이 처음에는 적다가 점점 더한 것이니라. 비유하자면 정눌가(鼎訥迦)나무의 가지와 잎이 티끌과 먼지가 적은 데서부터 점점 쌓여 뒤에는 크게 되는 것처럼 나의 몸도 그러하였느니라. 사리자야, 나에게는 비록 그러한 티끌이며 때며 먼지나 더러운 것이 점점 쌓였지만 밤낮 한 번도 ‘슬프구나. 무엇 때문에 지금 내 몸에 이러한 티끌과 때가 덮였는가. 누가 나를 위하여 떨어 줄 것인가?’ 하고 생각하지 못하였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이 그들과 같이 가장 높이 괴로움으로 몸을 핍박한 것이니라.또 사리자야, 어떤 것이 그들과 같게 가장 높이 고요하게[寂靜] 한 것이겠느냐. 그것은 넓은 들 고요한 곳에서 앉거나 누워 지내면서 번화한 온갖 시끄러움을 멀리하고, 수용하여야 할 기구도 모두 버리고, 홀로 한가히 머무를 만한 곳에 있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나는 그때 이와 같이 그들과 함께 실천하였나니 소 먹이는 사람이나 짐승을 기르는 사람이나, 나무를 하는 사람이나 산을 지키는 사람이나 길을 가는 사람이나 이러한 이들을 보면 나는 즉시 지극히 깊이 숨을 곳으로 달아나서 다시는 보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비유하자면 들 사슴이 위와 같은 사람들을 보면 숨을 곳으로 달려가서 멀리 피하고, 그들이 볼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나도 넓은 들에 살면서 시끄러움을 멀리한 것도 그러하였느니라. 이것이 그들이 실천하는 바와 같이 하는데 가장 높이 고요하게 한 것이니라.사리자야, 비록 이렇게 실천하여 조금이라도 구하였지만, 인간 가운데서 높은 법도 얻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성스러운 지견으로 가장 뛰어나게 증득하는 것이겠느냐? 무슨 까닭인가 하면 그들은 성스러운 지혜를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였나니, 성스러운 지혜를 깨닫지 못했거늘 어떻게 벗어나서 괴로움의 살피를 다하겠느냐. 사리자야, 만일 성스러운 지혜를 여실히 깨달으면 즉시 삼계의 문을 닫고 생사의 길을 다하여 뒤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니라.또, 사리자야, 세상의 어떤 종류의 바라문은 말하기를 ‘나는 겨울 달 초여드렛날 밤에 눈이 내리면 넓은 들의 외딴 곳이나 강이 가까운 곳에서 옷을 벗고 알몸이 되어 깊은 눈 속에 한결같이 누워서 밤을 지내나니, 이렇게 실천하는 것을 맑고 깨끗하다고 여기노라’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나도 이 일을 알고 또 그렇게 실천하여, 겨울 달 초여드렛날 밤에 눈이 내리기에 넓은 들 외딴 곳이나 강물이 가까운 곳에서 옷을 벗고 알몸이 되어 한결같이 누워서 밤을 지냈느니라.사리자야, 비록 이렇게 실천하여 조금이라도 구하였지만, 인간 가운데서 높은 법도 얻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성스러운 지견(知見)으로 가장 뛰어나게 깨닫는 것이겠느냐? 무슨 까닭인가 하면 그들은 성스러운 지혜를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였느니라. 성스러운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거늘 어떻게 벗어나서 괴로움의 살피를 다하겠는가. 사리자야, 만일 성스러운 지혜를 여실히 깨달으면 즉시에 삼계의 문을 닫고 생사의 길을 다하고 뒤에는 다시 나지 않게 되느니라.또 사리자야, 세상에 있는 어떤 바라문은 말하기를 ‘나는 겨울 달 초여드렛날 밤에 눈이 내리면 깊은 물속 깊이가 목까지 차는 데 가서 물속에 서서 밤을 지냈나니, 이렇게 실천하는 것을 맑고 깨끗하다고 여긴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내가 이 일을 알고 그와 같이 실천하여 겨울 달 초여드렛날 밤에 눈이 내리기에 깊은 물속 깊이가 목까지 차는 곳에 가서 물속에 서서 밤을 지냈느니라. 사리자야, 비록 이렇게 실천하면서 조금이라도 구하였지만, 인간 가운데서 높은 법도 얻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성스러운 지견으로 가장 뛰어나게 증득하는 것이겠는가. 넓게 말하자면 생사의 길을 다하고 뒤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니라.또 사리자야, 세상의 어떤 바라문은 말하기를 ‘나는 한여름 무더운 날에 찌는 듯한 더위가 놀랍고 해는 바야흐로 하늘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모래 가운데 섰는데 모래가 쌓인 것이 무릎을 넘도록 하느니라. 나는 그때 벌거벗은 몸으로 한 발을 들고 서서 햇빛이 비치는 대로 해를 따라 도느니라. 이렇게 실천하는 것을 맑고 깨끗한 것이라 여기느니라’고 하였느니라. 사리자야, 내가 그 일을 알고 그와 같이 실천하여 한여름 무더운 날에 찌는 듯한 더위가 놀랍고, 해는 바야흐로 하늘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무릎을 넘는 모래 속에 벌거벗은 몸으로 한 발을 들고 서서 해가 비치는 대로 해를 따라서 돌았느니라.사리자야, 이때 남자와 여자들, 온갖 사람이 이 일을 알고 모두가 잇달아 달려와 빽빽이 모여서 나를 보려 하였고, 무리들은 이런저런 공론을 주고받았느니라. 나는 스스로 내 마음을 조절하여 즐거움을 얻었기 때문에 번거롭다고 생각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았느니라. 사리자야, 비록 이렇게 실천하면서 조금이라도 구하였지만, 인간 가운데서 높은 법도 얻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성스러운 지견으로 가장 뛰어나게 증득하는 것이겠느냐. 넓게 말하자면 생사의 길을 다하고, 뒤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으리라.또 사리자야, 세간의 어떤 바라문은 말하기를 ‘나는 고행하여 얻기 어려운 음식을 구하는 것으로써 맑고 깨끗하다고 여긴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나도 이 일을 알고 그와 같이 실천하였나니, 어떤 것이 구하기 어려운 음식인가. 나는 오로지 광야에 소떼가 모인 곳에 가서 송아지의 젖을 구걸하여 얻는 대로 마셨으니 이것이 구하기 어려운 음식이니라. 사리자야, 비록 이렇게 실천하면서 조금이라도 구하였지만, 인간 가운데서 높은 법도 얻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성스러운 지혜로 가장 뛰어나게 증득하는 일이겠느냐. 널리 말하건대 생사의 길을 다하고, 뒤에는 다시는 태어나지 않으리라.또 사리자야, 세간의 어떤 바라문은 다만 보리[麥]를 먹는 것이 맑고 깨끗하다고 여기면서 말하기를 ‘다만 보리를 먹을지니, 이렇게 실천하면 맑고 깨끗함을 얻으리라’고 하느니라. 그들은 보리를 구해다가 찧어 가루를 만들거나 물에 일거나, 또는 여러 방법으로 다스려서 양식을 삼느니라. 사리자야, 나도 그 일을 알고 그들과 같이 실천하였나니, 어떻게 내가 보리를 먹었겠느냐? 사리자야, 나는 오직 한 알씩 먹었고, 둘도 더하지 않았느니라. 그 뒤 다른 때에 보리를 먹어 몸이 살찌거나 윤택해진다 하여도 나는 다시 분량을 더하여 보리를 먹겠다는 생각을 않고, 또한 오직 한 알씩 먹고 둘을 더하지 않았느니라.사리자야, 나는 보리를 한 알씩만 먹었기 때문에 아주 파리해져서 몸의 위아래가 가라가(迦羅迦)새와 아사다(阿娑多)새와 같이 되었고, 또 발과 뺨이 여위고 가늘어져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였으며, 낙타와 염소의 발과 다름없게 되었었느니라. 또 목과 등에는 뼈가 드러나서 울퉁불퉁하니 마치 무더기가 쌓여 높고 낮음이 다른 것 같았느니라. 또 빈 터에 한가로이 있는 초막[草舍]이 양쪽은 헐어버렸고, 서까래는 성글며, 중간도 텅 비면 서로 엿볼 수 있는 것같이 나의 두 겨드랑이도 뼈마디가 성글고 중간이 텅 비어 마주 볼 수 있었느니라.또 더운 날 햇볕이 뜨겁게 비치던 물을 저녁때가 되어 어떤 사람이 물속을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별이 지극히 깊고 지극히 먼 곳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것처럼 나의 두 눈도 여위어서 지극히 멀고 깊어 보일 듯 말듯 한 것이 그 별과 같았느니라. 또 쓴 박[苦瓠]이 아직 익지 않아 푸를 때 사람들이 잘라내면 가지와 잎이 바로 시들어 점점 말라 들어가 나중에는 말라붙는 것처럼 나의 몸도 머리에서 발까지가 이러하여서 처음에는 시들다가 점점 여위어서 나중에는 바짝 여위어 가죽과 뼈가 서로 닿았느니라.사리자야, 내가 처음에는 몸을 억지로 거두어 지니는데 가시 덩굴에 붙어 의지를 삼았었는데 힘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일어나려 하다가 도로 주저앉아, 팔다리가 흩어져서 머리와 목이 아래로 처지고, 힘이 없어 말을 못하니 마치 벙어리 염소[啞羊]와 같았느니라. 내가 비록 이러하였지만 더욱 견고하게 안으로 마음을 거두고 밖으로 몸을 부축하여 숨을 잘 조절한 뒤 다시 몸을 일으키려 하였지만 도리어 진흙더미에 쓰러졌는데, 그곳이 쓰레기가 쌓인 곳이었기 때문에 나의 몸에 난 터럭도 모두 갈려서 다 닳아버렸느니라.사리자야, 그때 둘레에 있는 성과 읍과 마을의 남자 여자들이 모두 달려와서 다투어 나를 보면서 말하기를 ‘애처롭구나. 사문 구담은 몹시 여위었고 더구나 푸르고 검으니, 옛날의 묘하게 좋고 단엄(端嚴)하시며 광채까지 나던 모습은 지금 어디로 숨었는가? 너무 애를 써 수련(修練)하시니, 몰골이 이렇게 되시었구나’라고 하였느니라.
사리자야, 비록 이렇게 실천하면서 조금이라도 구하였지만, 인간 가운데서 높은 법도 얻을 수 없었거늘 하물며 성스러운 지견으로 가장 뛰어나게 증득하는 일이겠는가. 넓게 말하자면 생사의 길을 다하고, 뒤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니라.또 사리자야, 세간에 있는 한 무리의 바라문은 다만 쌀을 먹는 것이 맑고 깨끗하다고 여기면서 말하기를 ‘다만 쌀만을 먹으라. 이렇게 수행하면 맑고 깨끗함을 얻으리라’고 하느니라. 그들은 쌀을 구해다가 찧어 가루를 만들거나 물에 씻거나 다른 방법으로 끓여 먹으면서 양식을 삼느니라. 사리자야, 나도 이 일을 알고 오직 한 알만 먹으면서 둘도 더하지 않았느니라. 그 뒤 다른 때에 쌀을 먹는 까닭에 몸이 살찌거나 윤택해질지라도 나는 또한 분량을 더하여 쌀을 먹으려고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한 알씩 먹고 다시는 둘도 더하지 않았느니라.사리자야, 내가 이렇게 고행(苦行)을 닦을 때 모든 백성들이 와서 말하기를 ‘옛날에는 묘하시고 단엄하시며 광채까지 있으시더니 지금은 그 모습이 어디에 숨었는가. 고생스럽게 수련하시니 몰골이 이러하시구나’ 하였느니라. 사리자야 비록 이렇게 수행하여 조금이라도 구하였지만, 인간 가운데의 높은 법도 구하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성스러운 지견으로 가장 뛰어나게 증득하는 일이겠는가. 넓게 말하자면 생사의 길을 다하고 뒤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니라.또 사리자야, 세상의 어떤 바라문은 다만 삼씨[麻]를 먹는 것이 맑고 깨끗하다고 여기면서 말하기를 ‘만일 삼씨만을 먹으면서 수행하면 맑고 깨끗함을 얻으리라’ 하느니라. 그들은 삼씨를 구하여 가루를 만들거나 물에 일거나 다른 방법으로 요리해 먹으면서 양식을 삼느니라. 사리자야, 나는 그 일을 알고 그와 같이 실천하였나니, 어떻게 내가 삼씨를 구하여 먹었겠느냐. 사리자야, 나는 오직 한 알씩만 구해 먹었고 둘을 더하지도 않았느니라. 그 뒤 다른 때 삼씨를 먹은 까닭에 몸이 살찌거나 윤택할지라도 나는 생각하기를 다시 그 분량을 더하여 먹으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씩만 먹으면서 둘을 더하지도 않았느니라.내가 이렇게 고행할 때에 모든 사람들이 와서 말하기를 ‘옛날에는 묘하시고 단엄하시며 광채까지 있으시더니, 이제 그 모습은 어디로 숨었는가. 고달프게 수련하시니 몰골이 이러하시구나’ 하였느니라. 사리자야, 비록 이렇게 실천하여 조금이라도 구하였지만, 인간 가운데의 높은 법도 얻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성스러운 지혜로 가장 뛰어나게 증득하는 일이겠는가. 넓게 말하자면 생사의 길을 끊고 뒤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니라.또 사리자야, 세간의 어떤 바라문은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이 맑고 깨끗하다고 여기면서 말하기를 ‘만일 모든 먹을 것을 전혀 먹지 않고 수행하면 맑고 깨끗함을 얻으리라’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나도 그 일을 알고 그와 같이 실천하여 일체 먹는 것을 먹지 않았느니라. 먹지 않았기 때문에 몸이 지극히 여위었나니, 이것을 넓게 말한다면 고행을 닦은 것이니라. 이때 사람들이 와서 말하기를 ‘괴롭구나. 사문 구담은 외형이 여위어서 망우새[芥虞鳥]와 같이 되었구나. 옛날에는 묘하게 단엄하시고 위엄스러운 광채까지 있으시더니 이제는 그 모습이 어느 곳으로 숨었는가. 고달프게 수련(修練)하시니, 몰골이 이러하시구나’ 하였느니라.사리자야, 나는 그때에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세간의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온갖 지극한 고통을 다 겪어보고 더욱 잔인한 박해를 가하여 몸을 핍박하면서 자기의 실천이라 주장하면서 맑고 깨끗함을 구하기에 나도 그 안에서 그를 따라 실천하여 바야흐로 몸을 부수어 티끌과 가루처럼 만들었지만 도무지 뛰어난 이로움이 없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문과 바라문이 갖가지 지극한 고통을 다하고 더욱 잔인한 박해를 가하여 몸을 핍박하면서 모두 자기의 실천이라 여기면서 맑고 깨끗함을 구하면, 나도 그 가운데서 모두 따라서 실천하여 바야흐로 몸을 부수어 티끌과 가루처럼 만들었지만 도무지 뛰어난 이로움이 없었다. 나는 다시는 이러한 괴로움으로 몸을 핍박하지 않으리니, 저들이 인간 가운데의 높은 법을 구하여도 얻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성스러운 지견(知見)으로 가장 뛰어나게 증득하는 일이겠는가. 그러므로 이 도는 바른 깨달음의 도[正覺道]가 아닌 것을 알겠으니, 나는 다시는 닦지 않으리라’ 하였느니라.사리자야, 내가 또 생각하기를 ‘처음 집을 떠나 석가(釋迦) 종족의 동산으로 가서 염부나무[閻浮樹]1) 밑에 앉았더니, 해 그림자가 움직이지 않고 그늘이 덮이어 서늘하였느니라. 나는 그때 애욕에 물든 착하지 못한 모든 법을 버리고, 찾음[尋]과 살핌[伺]이 있어 생멸을 떠난 즐거움[離生喜樂]을 얻어 첫 선정[初禪定]을 증득하였으니, 이것이 바른 길이니라. 여실히 깨닫고 곳곳에서 온갖 도를 부지런히 닦되 이 바른 도 이외에는 다시 다른 도를 진실하다고 여기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렇게 온갖 것을 먹지 않아서 몸이 여위고 더구나 피로가 겹쳐 자신을 학대함으로써 도를 구하는 것보다는 이제부터 먹을 것을 먹으리라’ 하였느니라.이렇게 생각할 때에 한 외도가 있었으니 고행을 받들어 실천하는 신선의 성자[仙聖]로서 나의 생각을 알았느니라.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성스러운 이 구담이여, 그대의 고행을 멈추지 말라. 내가 몸의 터럭 구멍으로 광채를 놓아서 그대를 도와 그대의 몸이 자연히 불어나게 하리라’ 하였느니라.사리자야, 그때 나는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온갖 음식을 먹지 않는 줄 나라와 읍과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다 듣고서 사문 구담은 고행을 닦아서 온갖 것을 먹지 않아 몸이 바싹 여위었다 하거늘, 지금 어떤 사람이 말을 퍼뜨려 고행하는 신선의 성인이 몸에서 광채를 놓아 몸이 살찌도록 도와 주었다고 하면, 그 사람들이 듣고 어찌 나를 거짓말하는 사람이라 하지 않겠는가’ 하였느니라. 나는 그들의 거짓말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신선의 말을 싫다고 나무라며 듣지 않았느니라.사리자야, 나는 그때 점점 골고루 먹을 것을 수용하리라 생각하고 녹두즙(綠豆汁)이나 황두즙(黃豆汁)이나 팥즙[赤豆汁]으로 목숨을 보양하였느니라. 이렇게 점점 골고루 먹은 까닭에 몸의 힘이 점차로 솟아나고, 힘이 점점 솟은 뒤에는 먼저 용하(龍河)에 갔었고, 다음엔 니련하(泥連河)2)에 가서 천천히 몸을 씻어 깨끗하고 서늘함을 얻었느니라. 점차 걸어 한 마을에 이르니, 한 여인이 있는데 이름이 선생(善生)이라 하였느니라. 곧 우유 미음[乳糜]을 나에게 바치기에 나는 받아마셨고, 이어 사부실가(邪嚩悉迦:삽싯가) 선인이 머무는 곳으로 가서 길상초(吉祥草)3)를 구하였느니라. 그것을 얻어 가지고는 점차로 큰 보리나무 밑으로 갔느니라. 오른쪽으로 그 나무를 세 번 돌고, 그 나무 밑에 안팎으로 두루두루 길상초를 깔아서 자리를 만들었느니라.사리자야, 나는 그때 그 위에서 가부좌를 맺고 앉아서, 몸을 단정히 하고 바른 기억으로 온갖 탐욕과 착하지 못한 법에 물드는 일을 여의고 찾음이 있고 살핌이 있어 생사를 떠난 즐거움[離生喜樂]을 얻어 첫째의 선정을 증득하였느니라. 다음은 찾음과 살핌을 그치고 속마음[內心]이 맑고 깨끗하여 한 경계의 성품에 머물러 찾음도 없고 살핌도 없이 선정이 생기는 즐거움[定生喜樂]을 얻어 둘째의 선정을 증득하였느니라. 다음은 즐거움과 탐욕을 여의어 생각을 버리는 실천에 머물고, 여실히 바르게 알아서 몸으로 묘한 즐거움을 받아 성인이 관찰하는 생각을 버리는 실천과 같이 하여 즐거움을 떠난 묘한 즐거움[離喜妙樂]을 얻어 셋째의 선정을 증득하였느니라. 다음은 괴롭고 즐거움을 모두 끊어서 먼저 일으켰던 기꺼운 뜻과 번거로운 뜻에 모두 집착하지 않고, 괴롭지 않고, 즐겁지 않아서 생각을 버리는 청정[捨念淸淨]을 얻어 넷째의 선정을 증득하였느니라.사리자야, 나는 그때 더욱 삼매[三摩呬多]의 마음에 머물러서 맑고 깨끗하며 결백하게 하여 수번뇌(隨煩惱)의 부드러운 업을 버리고, 편안하게 머물러 움직이지 않았더니, 초저녁에 여실히 하늘눈[天眼]의 지혜가 밝아지는 것을 얻어서 마음이 잘 열리었느니라.
사리자야, 내가 얻은 하늘눈의 맑고 깨끗함은 사람들의 눈을 넘으니, 세간의 온갖 중생들이 나고 죽으며, 예쁘고 추하며, 귀하고 천한 업에 따라 받는 것을 모두 여실히 아느니라. 만일 모든 중생들이 몸과 입과 뜻으로 착하지 못한 업을 지어 성현을 비방하거나 사악한 소견의 업을 쌓았기 때문에 몸과 목숨이 마친 뒤에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태어나고, 만일 모든 중생이 몸과 입과 뜻으로 여러 가지 착한 업을 지어 성현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소견을 일으키면, 바른 소견의 업을 쌓았기 때문에 몸과 목숨이 마친 뒤에 좋은 갈래인 하늘에 태어나나니, 나는 이러한 일을 깨끗한 하늘눈으로써 모두 보고 아느니라.사리자야, 나는 그때 더욱 삼매의 마음에 머물러서 맑고 깨끗하며 결백하게 하고, 수번뇌의 부드러운 업을 여의어 편안하게 머물러 움직이지 않았으니, 밤중에 여실히 전생일 아는 트임[宿命通]의 지혜가 밝아짐을 얻어 마음이 잘 열리었느니라.사리자야, 내가 증득한 전생일 아는 트임의 지혜는 능히 지난 세상의 여러 가지 일을 아나니, 이른바 한 생과 두 생과 세 생과 네 생과 다섯 생과 또는 열 생, 스무 생, 백 생과 천 생과 백천 생과 무수한 백천 생이니, 이렇듯 무수한 생 가운데 이루고 머물고 무너지는 겁[成住壞劫]의 일과 옛날의 이러한 성(姓), 이러한 이름, 이러한 종족, 이러한 빛깔과 모습[色相], 이러한 음식, 이러한 목숨과 괴롭고 즐겁던 일과 여기에서 멸하여 저기에 태어나며, 저기에서 멸하여 여기에 태어나는, 이렇듯 여러 가지 무수한 일을 나는 전생일을 아는 트임의 지혜로써 여실히 아느니라.사리자야, 나는 그때 더욱 삼매의 마음에 머물러서 맑고 깨끗하며 결백하게 하고, 수번뇌의 부드러운 업을 여의어 편안하게 움직이지 않으니, 새벽녘에 여실히 번뇌가 다한 지혜[漏盡智]가 밝아짐을 얻어서 마음이 잘 열리었느니라. 더욱이 샛별이 나타날 때에는 상서롭게 기뻤으니, 인간에서 큰 용이고, 인간에서 큰 스승이며, 인간에서 큰 선인이고, 인간에서 용맹하며, 인간에서 여러 빛의 연꽃이고, 인간에서 흰 연꽃이며, 인간에서 가장 높고, 인간에서 더할 나위 없는 말[馬]을 잘 부리는 사람[善調御者]이며, 인간에서 말을 부리는 사람이니라. 어느 곳에서든 알아야 할 것을 알았고, 얻어야 할 것을 얻었으며, 깨달아야 할 것을 깨달았고, 증득하여야 할 것을 증득하였으니, 이러한 모든 것을 잠깐 사이에 상응하는 마음[相應心]을 일으켜 여실한 지혜로써 바른 깨달음의 도[正覺道]를 이루었느니라.또 사리자야, 내가 알기로 세간의 사문과 바라문이 말하기를 ‘사람이 어릴 때에는 얼굴이 윤택하고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검으며, 뜻과 기운이 장대하고 마음과 힘이 모두 온전하여 나이가 바야흐로 스물에 이르거나 스물을 지나면 이 사람은 능히 바른 지혜를 마음대로 닦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이 나이가 늙어서 마음과 힘이 쇠퇴하여 장차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는 바른 지혜를 마음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하느니라.사리자야, 나는 지금 늙었노라. 나이는 곧 여든이어서 세상 떠나기를 기다리니, 비유하자면 썩고 낡은 수레를 갖가지 밧줄로 얽어매어 억지로 부리는 것처럼 나도 그러하니라. 사리자야, 너는 두루두루 나라에서 나라로 읍에서 읍으로 다니면서 모든 성문 제자들이 여래의 몸과 신통력과 거룩한 지혜[勝慧]와 말재주와 이러한 다섯 가지 일을 모두 감소시키고 있는 것을 관찰하여라. 사리자야, 어떤 사람이 정수리에 불 동이[火盆]를 이고 나라에서 나라로 읍에서 읍으로 두루 다니기는 어렵지 않거니와 거룩한 지혜와 말재주가 감소하지 않게 하기는 어려우니라.또 사리자야, 어떤 사람은 비록 여래 대사(大師)께서 세상에 나오시어 괴로움의 법[苦法]과 즐거움의 법[樂法]과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법[非苦樂法]을 모두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바른 법을 말씀하시는 것을 만날지라도, 이 사람은 도리어 허망한 법[忘失法]으로 여기느니라. 사리자야, 부처님의 바른 말씀을 허망한 법이라 여기지 말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하면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어 괴로움과 즐거움의 법과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법을 모두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바르게 말씀을 하신 것이지 허망한 법이 아니니라.사리자야, 현겁(賢劫) 동안에 네 부처님이 세간에 나타나시니, 이들 네 부처님의 성문 제자들이 차례차례 지금에 이르도록 목숨이 1백 살이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실천과 지혜와 목숨은 모두가 온전하게 갖추어져서 마치 역사(力士)가 굳은 활을 당겼다가 바로 쏘면 모두 과녁에 맞는 것과 같으니라. 사리자야, 앞의 세 부처님의 성문 제자들은 이렇게 생각과 실천과 지혜와 목숨을 모두 갖추어 서로서로가 모두 날마다 모든 법의 뜻을 가까이 물었느니라.사리자야, 지금 나의 법 가운데 성문 제자들은 한 번쯤은 묻지만 옮기는 사람은 없고, 또 내 말을 한 번은 들어도 그 가운데서 말의 뜻을 살피지 못하나니, 하물며 말세(末世)의 모든 제자이겠느냐? 만일 음식을 먹을 때 그 맛에 집착하면 피곤할 때 잠자는 일과 움직인 뒤에 쉬는 것[憩]과 대소변을 보는 일 등 모든 활동을 폐지할 것이니라.사리자야, 앞의 세 부처님의 성문 제자들은 목숨이 길었거니와 지금의 목숨은 1백 살이어서 지극히 빠르니라. 사리자야, 1백 살의 시간이 지나면 거룩한 지혜와 말재주가 모두 줄어들 것이니, 사리자야, 그때 성문 제자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올바른 말씀을 허망한 법이라 여길 것이니라.
사리자야, 그들은 부처님의 올바른 말씀을 허망하다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하면 괴로움과 즐거움의 법과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법을 모두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말씀하신 올바른 말씀이기 때문에 허망함이 없는 법이니라.”그때 모인 대중 가운데 한 존자(尊者)가 있었으니, 이름을 용호(龍護)라 하였다. 부처님과 멀지 않은 곳에서 공작 부채[孔雀扇]를 가지고, 부처님의 곁을 모시고 있었다. 그때 부채를 놓고 부처님 앞으로 가서 합장하고 정례(頂禮)한 뒤 부처님께 여쭈었다.
“제가 지금 이 바른 법을 들으니, 몸의 터럭이 놀라움에 일어서고, 큰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은 무엇이라 하오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용호야, 지금 이 바른 법은 『신모희수(身毛喜竪)』라 하나니, 이 이름으로써 너희들은 받들어 지녀야 하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니, 비사리 나라의 가장 뛰어나고 큰 성안에 있는 가장 뛰어난 숲의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꺼이 받들어 지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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