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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461 불설손다야치경(佛說孫多耶致經)

by Kay/케이 2025.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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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손다야치경(佛說孫多耶致經)

 

불설손다야치경(佛說孫多耶致經)


오(吳) 월지국(月支國) 지겸(支謙) 한역(漢譯)
김철수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祈樹給孤獨園)에 머물고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법에 대한 대중들의 심각한 배고픔을 제거하기 위하여 경전을 설하고 계셨다.
그때 손다야치(孫多耶致)라는 바라문[梵志]이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다가 지팡이를 짚은 채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저는 날마다 세 번 목욕하고, 과일을 먹고 물을 마시지만 다른 사람들의 보시는 받지 않으며, 저는 뛰어난 사문의 행을 행합니다.
선생의 무리들은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과 따뜻한 자리를 공양받고 현인(賢人)들인 것처럼 거짓말을 해서 진실되지 못하니, 저의 도(道)만 같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의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 여러 사문들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인간의 행에는 스물한 가지 악행이 있으니 그런 행을 하는 이들은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을 받을 수 없다.
첫 번째는 음행과 방탕함에 뜻을 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성냄[瞋恚]에 뜻을 두는 것이며, 세 번째는 어리석음에 뜻을 두는 것이고, 네 번째는 누워 자는 데 뜻을 두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의혹의 번뇌에 뜻을 두어 법도[儀]에 상응하지 않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자신을 높이는데 뜻을 두는 것이며, 일곱 번째는 교만함에 뜻을 두는 것이고, 여덟 번째는 질투에 뜻을 두는 것이며, 아홉 번째는 인색함에 뜻을 두는 것이고, 열 번째는 흉악함에 뜻을 두어 측은한 마음이 없는 것이다.
열한 번째는 허위(虛僞)에 뜻을 두어 안과 밖이 서로 어긋나는 것이고, 열두 번째는 참회하지 않는데 뜻을 두어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며, 열세 번째 더러운 행에 뜻을 두어 스스로 수치스럽고 비루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고, 열네 번째는 다른 사람을 나쁘다고 여기고 자신은 그렇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며, 열다섯 번째는 음란하고 방탕함에 뜻을 두어 정조를 지키는 일을 칭찬하지 않는 것이고, 열여섯 번째는 말을 비교하는 데 뜻을 두어 헐뜯어서 두 가지 악을 이루는 것이며, 열일곱 번째는 모여서 다투는 데 뜻을 두어 다투는 양쪽을 풀어주지 않는 것이고, 열여덟 번째는 무례한데 뜻을 두어 스스로 겸손하지 않는 것이며, 열아홉 번째는 잘못을 완성하는데 뜻을 두어 현명한 이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고, 스무 번째는 불효하는데 뜻을 두어 자애로운 마음을 없애고 거스르기를 좋아하는 것이며, 스물한 번째는 사도(邪道)를 좋아하는데 뜻을 두어 요사스러운 이를 공양하여 받들어서 가산을 탕진하고 부모를 곤궁하게 만드는 것이니 항상함[常]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3존(尊)에 귀의하지 않으며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을 바라고 욕심을 좇아 사치하는 것이다.
이 스물한 가지 악은 마음을 더럽히고 어지럽게 만드니 마치 청결한 것이 더러움에 물들어 색(色)이 되는 것과 같아서 만 가지 중에 한 가지도 이익이 없으며, 이 갖가지 악을 품으면 죽어서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에 들어갈 것이니 그 고통은 헤아리기 어렵다.
사문은 부처님의 밝은 계(戒)를 주시하여 악을 버리고 스스로 새로워져 악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이겨내고 욕심을 없애면 안과 밖이 다 깨끗해진다.
또한 정결한 것이 물들어 색(色)을 이루면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듯이 사문이 확실하게 높은 덕을 행하고 지혜를 갖춘 모습이 보이면 천하의 사람들이 의복과 음식과 전각(殿閣)을 공양하여 바칠 것이니, 그것들을 받아도 허물이 없으며 보시한 이들의 복이 아주 크다.
나아가 선정을 행하여 얻으면 세상의 거리를 자주 지나다녀도 다시는 그들의 습속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니, 사람들도 또한 그러한 사실에 대해 들을 것이다.
사문은 비록 아직 도를 얻지 못했더라도 부처님께서 설한 경전의 뜻을 밝히고 마음을 단정하게 지니며, 경전의 가르침을 잘 받들어 따르고, 커다란 사랑으로 중생들을 널리 교육시켜 그 혜택을 받도록 하며, 관대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하고, 원수를 마치 자식처럼 보며, 여인이 오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녀를 누이처럼 대하고, 만약 지극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마땅히 지옥ㆍ아귀ㆍ축생에 관해 생각하여 중생의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기쁘기를 바라며, 삼보를 만나서 더러운 번뇌를 제거하고 무명의 어둠을 없애면 마음이 청정해져 밝음(明)을 보고 다시 본래의 없음[本無]으로 돌아가 영원히 편안할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을 행하는 데 마음을 두면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을 받아 입더라도 끝내 죄가 되지 않는다.
중생들의 본성은 탐냄ㆍ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ㆍ질투에 의해 흐린 가운데 더 흐려지고 어두운 가운데 더 어두워지지만, 사문은 마음을 열고 밝음[明]을 받아들여 어리석음의 번뇌[垢]가 모두 고요해지니, 비록 더러운 세간에 있더라도 마치 연꽃이 진흙 속에 있어도 진흙이 꽃을 더럽힐 수 없는 것과 같아서, 보시를 받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
3독(毒)과 10악(惡)1)을 품어 제멋대로 구는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고 욕심을 좇아 아첨하고 속여서 혜택을 구하고 부처님의 계(戒)를 받들지 않는 것은 차라리 뜨거운 쇠붙이를 삼키거나 펄펄 끓는 구리물을 마시고 죽을지언정, 잠시라도 더럽게 물든 흐린 마음으로 보시를 받는다면 죽어서 태산(太山)에 들어가 펄펄 끓는 구리물을 마시고 숯을 먹을 것이니, 그 세월을 헤아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바라문이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목욕하러 가고 싶습니다. 호수(好首)라는 시내가 있는데, 그 안에 들어가 목욕하면 마음속의 더러운 티끌이 물을 따라 씻겨내려 갑니다. 저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고 날마다 세 번 목욕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이 땅에는 많은 시내가 있으니,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가 목욕을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천 번 목욕한 사람은 몸의 때는 제거할 수 있을지언정 마음의 때는 어찌하겠는가?
우리 사문들은 마음속의 욕구를 끊어 생각이 공(空)하여 3계(戒)에 몸을 받아 나는 것을 바라지 않고, 마음의 때[垢]를 고요히 멸하여 청정한 도를 얻는데, 그대는 어떤 스승으로부터 법을 받았기에 물속에서 목욕하면 마음속의 때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하느냐?”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저의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부친은 도를 얻었느냐?”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도는 마음으로부터 나오니, 마음이 단정하고 뜻이 깨끗하면 도를 얻을 뿐이다.”
바라문이 무릎을 꿇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제가 지팡이를 짚고 감히 혀를 놀려댄 것은 미치고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지금 부처님께서 경전을 설하시는 것을 듣고 마음이 비로소 잠에서 깨어나니, 마치 어둠 속에 등불이 있는 것과 같아서 이제야 제대로 된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문이 되고 싶으니, 바라건대 부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받아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부모가 있거든 알리도록 하여라.”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부모님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문이여, 어서 오너라.”
곧 사문이 되어서는 나무 아래에 앉아 스물한 가지 일을 생각하고 온갖 마음의 욕구를 제거하니 갑자기 그런 상념(想念)이 없어져서 법도에 맞는 도를 얻게 되었다.
그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대고 아뢰었다.
“지금 저는 소경이 볼 수 있고, 미친병이 나은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도가 훌륭한가, 아니면 그대의 도가 훌륭한가?”
그가 대답하였다.
“온갖 도는 다 그릇되고 오직 부처님의 도만이 바릅니다.”
부처님께서 사문들에게 말씀하셨다.
“스물한 가지 일에 대하여 심사숙고하도록 하여라.
그러면 도를 얻을 수 있다.”
사문들은 부처님께서 경전을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서 예를 올리고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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