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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313 불설분별보시경(佛說分別布施經)

by Kay/케이 2024.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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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분별보시경(佛說分別布施經)

 

대송신역삼장성교서(大宋新譯三藏聖教序)1)

태종신공성덕문무황제(太宗神功聖德文武皇帝) 지음


위대하구나,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여. 헤매는 중생들을 교화해 인도하시고, 으뜸가는 성품을 널리 드날리셨도다. 넓고 크고 성대한 언변이여, 뛰어나고 훌륭한 자도 그 뜻을 궁구하지 못하는구나. 정밀하고 은미하고 아름다운 말씀이여, 용렬하고 우둔한 자가 어찌 그 근원을 헤아릴 수 있으랴. 뜻과 이치가 그윽하고 현묘한 진공(眞空)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으며, 만상(萬象)을 포괄하는 비유는 끝이 없네. 법 그물[法網]의 벼릿줄을 모아 끝이 없는 바른 가르침을 펴셨고, 사생(四生)을 고해에서 건지고자 삼장(三藏)의 비밀스러운 말씀을 풀어주셨다. 하늘과 땅이 변화하여 음과 양을 이루고, 해와 달이 차고 기울며 추위와 더위를 이뤘으니, 크게는 선과 악을 말씀하셨고, 세밀하게는 항하의 모래알에 빗대야 할 정도네. 다 서술할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의 온갖 일들을 마치 상법(像法)2)을 엿보듯이 하고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이 하였다. 이는 육정(六情)3)을 벗어나 길이 존재하고 천겁이 지나도록 오래갈 만한 것이며, 마치 수미산이 겨자씨에 담기 듯 여래께서 끝없는 세계에서 걸림이 없으신 것이다.달마(達磨)께서 서쪽에서 오시자 법이 동토에 전해졌고, 오묘한 이치를 선양하시자 대중이 돌아갈 길을 순순히 따랐으니, 피안(彼岸)은 보리요 애욕의 강은 생멸이라, 오탁의 악취(惡趣)에서 보살행을 실천하고, 삼업(三業)의 길에서 빠진 자들을 건지셨다. 세상에 드리운 경은 궁구하기 어렵지만 도는 사사로움이 없어 영원히 태평하도다. 설산(雪山)의 패엽(貝葉)4)이 눈부신 은대(銀臺)와 같고, 세월의 연라(煙蘿)5)가 저 멀리 향계(香界)6)를 일으켰지만 높고 우뚝하여 측량하는 자가 드물고, 멀고 아득하여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이런 까닭에 도(道)를 깨달은 십성(十聖)7)과 덕(德)을 갖춘 삼현(三賢)8)께서 지극한 도를 건원(乾元)9)에서 일으키고 온갖 오묘함을 태역(太易)10)에서 낳아 무성한 생명체들을 총괄해 어둠을 뚫고 한 가닥 빛을 비추었으며, 저 시시비비를 단절하고 이 몽매함을 깨우쳤던 것이다.서역의 법사 천식재(天息災) 등11)은 항상 사인(四忍)12)을 지니며 삼승(三乘)을 일찌감치 깨달은 분들이니, 불경의 참된 말씀을 번역하여 인간과 천상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이었다. 이는 꽃다운 지혜가 거듭 열린 것이요, 국운이 창성할 때를 만난 것이니, 문장(文章)에서 오성(五聲)13)을 윤택하게 하였고, 풍율(風律)14)에서 사시(四始)15)를 드러냈다. 당당한 행동거지에 온화하고 아름답도다. 광대한 세월 어둠에 빠졌던 세계가 다시 밝아 현묘한 문이 환하게 드러났으며, 궤범이자 두루한 광명인 오묘한 법이 청정한 세계에서 이름을 드날렸다. 유정을 이롭게 하여 함께 깨달음의 언덕에 오르고, 장애를 만드는 일 없이 병들고 지친 자들을 모두 구제하였으며, 드러내지 않고 자비를 행하며 만물 밖으로 광대하게 노닐고, 부드러움으로 탐학한 자들을 조복해 어리석음을 씻고 깨우쳐 주었다. 소승의 성문(聲聞)을 연설하여 그 위의에 합하고 대승의 정각(正覺)을 논하여 그 성품을 정립하자, 모든 생명체들이 깨달아 복을 받았고, 삼장의 교법에서 결락된 것들이 다시 흥성하였다.허깨비에 홀려 길을 잃은 것이니, 화택(火宅)16)은 심오한 비유로다. 부처님께서 비록 이런 가르침을 시설하셨지만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이에 “선념(善念)이 생기면 한량없는 복이 남몰래 찾아오고, 악업(惡業)이 일어나면 인연 따라 모두 타락한다”17)는 말씀으로 사부대중을 길들이고 시방세계에서 보살행을 쌓았다. 금륜왕[金輪]18)에게 꽃비를 쏟아 붓고 대궐에서 항하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를 보호하였으니, 유정천(有頂天)에 부는 바람19)도 파괴하지 못할 것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홍수도 휩쓸지 못하리라. 맑고 고요해 담담한 것이 원만하고 밝으며 청정한 지혜요, 성품이 공하여 물듦이 없는 것이 망상으로부터 해탈하는 인연이니, 이로써 마음의 밭에서 번뇌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이로써 우주에서 청량을 얻을 수 있으리라.짐은 부끄럽게도 박학하지도 못하고 석전(釋典)20)에 능통하지도 못하니, 어찌 감히 서문을 써서 후인에게 보일 수 있는 자이겠는가? 반딧불이나 횃불과 같아 찬란한 태양과 견주기에 턱없이 부족하니, 작은 소라로 바다를 측량하려다 그 깊은 연원을 끝내 밝히지 못하는 자일 따름이로다!

계작성교서(繼作聖教序)21)
어제(御製)
높고 밝은 것이 처음으로 나뉘자 삼진(三辰)22)이 비로소 차례로 나타났고, 두텁게 실어주는 것이 비로소 안정되자, 만물이 이로써 실마리를 일으켰으니, 맑음과 탁함의 본체가 이미 밝혀진 것이요, 선과 악의 근원이 여기서 드러난 것이다. 이런 다음에 문물(文物)로 그 가르침을 세우고 바른 법전[正典]으로 그 세속을 교화하는 것이니, 이익의 공은 모두 이치로 돌아간다. 이렇게 상법(像法)이 서쪽 나라에서 와 진제(眞諦)가 중국에 유포되었지만 천고의 세월을 관통하는 진실한 이치는 궁구할 방법이 없고, 구위(九圍)23)를 포괄하는 현묘한 문은 궁구할 수가 없다. 허망한 생각으로 말하자면 오온(五蘊)이 모두 공하고, 참된 모습을 나타내자면 터럭 하나에도 원만하니, 광대한 그 가르침을 어찌 기술할 수 있겠는가!삼가 살피건대, 태종신공성덕문무황제께서는 법성이 두루 원만하시어 인자함을 널리 베푸셨다. 오랑캐들을 교화하시자 만방(萬邦)이 바큇살처럼 몰려들어 온 백성을 인수(仁壽)의 영역에 올려놓으셨고, 교법을 숭상하시자 사해(四海)가 구름처럼 뒤따라 창생에게 풍요로운 땅을 베푸셨다. 존귀한 경전이 방대함을 보시고는 방편을 시설해 물에 빠진 자들을 구제하셨고, 법계가 광활함을 알시고는 정진을 행하여 나태한 자들을 거두셨다. 이에 아늑한 절을 선택해 저 참된 문서24)들을 교열하고는 천축의 고승들에게 명령하여 패다라(貝多羅)의 부처님 말씀을 번역하게 하셨다.25) 상아 붓대가 휘날리며 황금의 글자를 완성하고, 구슬을 엮어 다시 낭함(琅函)에 안치하자26) 용궁(龍宮)의 성스러운 문장27)이 새롭게 탈바꿈하였으니, 취령(鷲嶺)의 필추(苾芻)28)들마저 우러러 감탄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삼승(三乘)이 모두 하나로 꿰뚫어지고 사제(四諦)가 함께 원만해졌으니, 고(苦)가 공하다는 참되고 바른 말씀을 완전히 밝히고, 정밀히 연구한 비밀스러운 뜻을 환히 드러냈다. 상(相)을 찬탄하는 상이 바로 진실한 상이고, 공(空)을 논하는 것도 공하여 모조리 공이라 하였으니, 화엄(華嚴)의 이치와 궤도를 같이하고, 금상(金像)29)의 가르침과 규구(規矩)30)가 동일하였다.짐은 대업(大業)을 계승하여 삼가 황위에 임했기에 항상 조심하면서 만백성을 어루만지고 매일 긍긍하면서 선황의 훈계를 지켜왔다. 불교경전[釋典]에 대해서는 더구나 정밀하지도 상세하지도 못하니, 진실로 그 그윽하고 심오한 뜻을 어찌 탐색하고 측량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역경원(譯經院)31)의 서역 승려 법현(法賢)32)이 간절한 글을 올리고 그 뜻을 너무도 열심히 피력하였다. “선황제께서는 참된 교화의 바람을 크게 펼치고 부처님의 뜻을 높이 전하셨으며, 전대의 왕들이 빠뜨린 전적을 흥성시키고 각로(覺路)33)의 무너진 기강을 다시 떨치셨다”고 하면서, 하늘이 이룬 공로를 높이 휘날리고 성황의 글34)을 널리 알리고 싶다며 나에게 서문을 지어 성인의 가르침을 계승해달라고 청하였다.성고(聖考)35)께서 승하하시고 추호(追號)36)가 아직 잊히지도 않았는데 정사 밖에 마음을 둘 겨를 어디 있었겠는가? 담제(禫祭)37)를 마치고 이제야 생각이 은미하고 오묘한 곳에 미치게 된 것이다. 어려서 자비로운 가르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능통한 재주가 본래 부족한 걸 어쩌랴. 법해(法海)의 나루터와 언덕을 어찌 궁구하리오! 공문(空門)의 문턱으로 나아가질 못하니, 대략 대의나마 서술하여 이로써 사람들의 마음에 부응할 따름이다. 소발자국에 고인 빗물이라 태양을 씻는 파도에 빗대기에는 부족하니, 한척짜리 채찍이 어찌 드넓은 하늘의 그림자를 측량할 수 있으랴! 이렇게나마 짧은 서문을 지어 이로써 성인들의 공로를 기록할 따름이다.
불설분별보시경(佛說分別布施經)

서천(西天) 역경삼장(譯經三藏) 조봉대부(朝奉大夫) 시홍려경(試鴻臚卿) 전법대사(傳法大師) 신(臣) 시호(施護)가 어명을 받들어 한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석종(釋種)들이 사는 곳인 가비라성(迦毗羅城)의 니구다(尼拘陀)나무 동산에서 필추(苾芻: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때 필추니(苾芻尼:비구니) 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堤)는 새로 지은 비단 옷을 가지고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비단 옷은 세존께 드리려고 제가 손수 만든 것입니다. 원컨대 받아 주시어, 저로 하여금 긴 세월 동안에 큰 이익과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그때 부처님께서 마하파사파제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그 비단 옷을 가지고 대중들에게 보시하시오. 거기서 얻는 훌륭한 이익은 내게 공양한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오.”그러자 마하파사파제 필추니는 거듭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오직 부처님을 위하여 마음을 내어 이 옷을 지은 것입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받아 주시어, 저로 하여금 긴 세월 동안 큰 이익과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
이렇게 세 번을 간절히 청하였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도 또한 다음과 같이 세 번을 대답하셨다.
“그대는 다만 골고루 대중에게 보시하시오. 거기서 얻는 훌륭한 이익은 내게 보시한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오.”그때 존자 아난이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가, 이 광경을 보고 부처님 앞으로 나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마하파사파제 필추니는 부처님의 친족이시고 또 부처님에게 큰 은덕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선 그것을 아시고 그가 바치는 옷을 받아 주소서.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그리하여 마하파사제로 하여금 긴 세월 동안에 큰 이익과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이 마하파사파제는 내 친족이요 또 내게 큰 은덕이 있는 줄을 나도 잘 안다. 지금 그가 손수 옷을 지어 나를 찾아와 보시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무엇 때문인가? 아난아, 알아야 한다. 중생[補特伽羅]으로서 능히 깨끗한 신심을 내어 부처와 법과 승가에 귀의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니라.
또 중생으로서 살생하지 않기ㆍ도둑질하지 않기ㆍ음행하지 않기ㆍ거짓말하지 않기ㆍ술 마시지 않기 등 신도의 계법[近事戒法]을 지킨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하물며 불세존께 합장하여 공경하고 보시를 행한 뒤에 부처님을 깨끗이 믿어 의심이 없고 법과 승가(僧伽)에 대해서도 의혹이 없으며, 나아가서는 괴로움[苦]과 그 원인[集]과 그 사라짐[滅]과 그 사라지는 길[道]의 4성제에 대하여 의심하는 소견을 아주 끊은 사람이야 어떠하겠느냐?
아난아, 지금 이 마하파사파제 필추니는 능히 깨끗한 신심을 일으켜 부처와 법과 승가에 귀의하고 살생하지 않기ㆍ도둑질하지 않기ㆍ음행하지 않기ㆍ거짓말하지 않기ㆍ술 마시지 않기 등, 신도의 계법을 받아 지키며, 부처와 법과 승가와 나아가서는 괴로움과 그 원인과 그 사라짐과 그 사라지는 길의 4성제에 대해서 이미 의혹을 끊었다. 이 필추니는 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한다는 것을 나도 잘 아느니라.아난아, 열네 가지 비교되는 보시가 있다. 열네 가지란, 첫째는 병으로 고생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계율을 범한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셋째는 계율을 지키는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넷째는 더러움을 떠난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수다원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수다원의 결과를 얻은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다.
일곱째는 사다함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사다함의 결과를 얻은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아나함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열째는 아나함의 결과를 얻은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열한째는 아라한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열두째는 아라한의 결과를 얻은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열셋째는 여러 연각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열넷째는 여래ㆍ응공ㆍ등정각에게 보시하는 것이니라.아난아, 너는 이제 알라. 병으로 고생하는 이에게 보시하면 두 배의 복을 얻고, 계율을 범한 이에게 보시하면 백 배의 복을 얻으며, 계율을 지키는 이에게 보시하면 천 배의 복을 얻고, 더러움을 떠난 이에게 보시하면 백천 배의 복을 얻으며, 수다원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복을 얻거늘, 하물며 수다원의 결과를 얻은 이에게야 어떠하겠느냐?
또 사다함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복을 얻거늘, 하물며 사다함의 결과를 얻은 이에게야 어떠하겠으며, 아나함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복을 얻거늘, 하물며 아나함의 결과를 얻은 이에게야 어떠하겠으며, 아라한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복을 얻거늘, 하물며 아라한의 결과를 얻은 이에게야 어떠하겠으며, 여러 연각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복을 얻거늘 하물며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에게야 어떠하겠느냐?
이것이 이른바 열네 가지 보시 공덕의 비교이니라.다시 아난아, 알아야 한다. 대중에게 보시하는 데에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처님이 계신 현재의 여러 필추들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에 여러 필추들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셋째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에 여러 필추니들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넷째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에 필추ㆍ필추니의 두 대중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에 각처로 다니면서 교화하는 필추들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에 각처로 다니면서 교화하는 필추니들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에 각처로 다니면서 교화하는 필추ㆍ필추니의 두 대중에게 보시하는 것이다.이것이 이른바 일곱 가지 대중이니, 이들에게 마땅히 보시하여야 하느니라.
다시 아난아, 알아야 한다. 네 가지 보시의 청정이 있다. 네 가지란, 첫째는 보시하는 이가 청정하면 받는 이가 없다는 것이요, 둘째는 보시하는 물건이 청정하면 받는 이가 없다는 것이며, 셋째는 받는 이가 청정하면 보시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요, 넷째는 받는 물건이 청정하면 보시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니라.
아난아, 어떤 것이 ‘보시하는 이가 청정하면 받는 이가 없다’는 것인가? 이른바 보시하는 이가 그 상(相)을 취하지 않는 것이니, 즉 몸의 업이 청정하고 입의 업이 청정하며 뜻의 업이 청정하고 바른 생활이 청정하며 그 소견도 청정한 것이다. 이런 것을 완전히 갖추면 곧 보시한다는 상(相)이 없게 되고 보시한다는 상이 없으므로 곧 받는 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보시하는 이가 어떤 상을 가지고 있으면 곧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업이 청정하지 않고 생활도 청정하지 않으며 소견도 또한 청정하지 않게 된다. 만일 이런 상을 떠나면 곧 보시하는 이와 받는 이가 둘 다 청정하니라.또 어떤 것이 ‘보시하는 물건이 청정하면 받는 이가 없다’는 것인가? 만일 받는 이가 몸의 업이 청정하지 않고 입의 업이 청정하지 않으며, 뜻의 업이 청정하지 않고 생활이 청정하지 않으며, 소견이 청정하지 않으면 곧 보시를 받는다는 상이 있게 되느니라.
그러나 만일 받는 이가 세 가지 업이 청정하고 생활이 청정하며 소견이 청정하여 이런 것을 완전히 갖춘다면, 곧 보시를 받는다는 상이 없게 되며 그 상을 떠났으므로 곧 보시받는 물건이 청정하니라.또 어떤 것이 ‘받는 이가 청정하면 보시하는 이가 없다’는 것인가? 만일 받는 이가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업이 청정하지 않고 생활이 청정하지 않으며 소견이 청정하지 않으면 곧 받는다는 상이 있게 되지만, 만일 그 상을 떠나면 곧 보시하는 이가 없게 되느니라.또 어떤 것이 ‘받는 물건이 청정하면 보시하는 이가 없다’는 것인가? 이른바 보시하는 이가 세 가지 업이 청정하고 생활이 청정하며 소견이 청정하면 곧 보시하는 물건이 없게 되고, 보시한다는 상을 떠났기 때문에 받는 물건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받는 물건이 청정하게 되느니라.
아난아, 만일 이런 줄을 밝게 알면 곧 네 가지 보시의 청정을 얻느니라.”그때 마하파사파제 필추니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갖가지 보시법을 듣고 곧 그 옷을 여러 대중들에게 보시하였다. 그러자 필추들은 그를 위해 그것을 받아 주었다.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미래 세상에 어떤 신심이 있는 선남자 등이 대중에게 깨끗한 신심을 일으켜 보시를 행한다면, 마땅히 알라, 그 사람은 한량없는 복을 얻을 것이다. 하물며 현재에서 보시를 행함이야 어떠하겠느냐?”그때 존자 아난과 마하파사파제 필추니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 뛰면서 믿어 지니고 받들어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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