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 하권
보살영락본업경 하권
축불념 한역
노혜능 번역
4. 석의품(釋義品)
부처님께서 경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앞에서 뜻[義]과 모습[相]이 무엇이냐고 말한 것은, 이른바 십주(十住)ㆍ십행(十行)ㆍ십회향(十廻向)ㆍ십지(十地)ㆍ무구지(無垢地)ㆍ묘각지(妙覺地)의 뜻과 모습이니 이제 마땅히 설하리라.불자여, 이 금강해장영락경(金剛海藏瓔珞經) 중에서 현성(賢聖)의 모습과 뜻을 해석하리라. 뜻은 체(體)로부터 나오는데 체는 보살의 체와 의이며 이것을 공덕이라 이름 하느니라. 이와 같은 두 가지 법은 일체 보살로 체와 의를 삼기 때문에 체의(體義)라고 이름 하느니라.불자여, 발심주(發心住)란 이 사람이 처음엔 완전히 속박된 범부 상태로부터 아직 삼보와 성인(聖人)을 알지 못하고, 아직 좋고 나쁜 인(因)과 과(果)도 알지 못하며, 일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느니라.불자여, 알지 못하는 범부의 처음 경지로부터 불보살의 교법을 만나 그 속에서 일념의 믿음을 일으켜 문득 보리심을 일으키면, 이 사람은 그때 주전(住前)으로써 신상(信想)보살 또는 가명(假名)보살 또는 명자(名字)보살이라고 이름 하느니라.그 사람은 간략히 십심(十心)을 행하나니, 이른바 신심(信心)ㆍ진심(進心)ㆍ염심(念心)ㆍ혜심(慧心)ㆍ정심(定心)ㆍ계심(戒心)ㆍ회향심(廻向心)ㆍ호법심(護法心)ㆍ사심(捨心)ㆍ원심(願心)이니라.다시 십심(十心)을 행하나니, 이른바 십선법(十善法)ㆍ오계(五戒)ㆍ팔계(八戒)ㆍ십계(十戒)ㆍ육바라밀계(六波羅蜜戒)이니라. 이 사람이 다시 십선(十善)을 행하면서 일 겁(劫)ㆍ이 겁ㆍ삼 겁 동안에 십신(十信)을 닦으면 육천(六天)의 과보를 얻느니라.십선에 삼품(三品)이 있나니, 상품(上品)은 철륜왕(鐵輪王)으로서 일체를 교화하고, 중품은 속산왕(粟散王)이요, 하품은 인중왕(人中王)이니 일체 번뇌를 구족하면서 한량없는 선업을 지어 모으며, 물러가기도 하고 나아가기도 하지만 만약 선지식을 만나서 불법을 배우되 혹은 일 겁ㆍ이 겁 동안 하게 되면 바야흐로 발심주의 지위에 들어가느니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항상 삼계에 빠져 나올 수 없나니, 퇴분(退分)에 머무는 선근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불자여, 발심주란 이것이 뛰어난 진분선근(進分善根)의 사람이니라. 만약 일 겁ㆍ이 겁ㆍ일 항(一恒)ㆍ이 항ㆍ삼 항의 부처님 처소에서 십신심(十信心)을 행하고 삼보를 믿으며, 항상 팔만 사천의 반야바라밀에 머물러 일체의 행과 일체의 법문을 다 익히고 받아들여 행하느니라.항상 신심을 일으켜 사견(邪見)과 십중(十重)과 오역(五逆)과 팔도(八倒)를 짓지 않으면, 난처(難處)에 태어나지 않고 항상 불법을 만나 문혜(聞慧)를 많이 넓히고 방편을 많이 구하며 비로소 공계(空界)에 들어가 공성(空性)의 지위에 머물게 되므로 이름 하여 주(住)라고 하느니라.공(空)의 이치에 대해 지혜의 마음으로써 옛 부처님의 법 가운데서 일체 공덕을 배우되 스스로의 마음으로 짓지 않고 또한 일체 공덕을 생하지 않기 때문에 지(智)라고 할 수 없고 다만 주(住)라고 할 수 있느니라.불자여, 치지주(治地住)란 항상 공(空)의 마음을 따라 팔만 사천의 법문을 청정케 해 깨끗하므로 치지주라 이름 하느니라. 불자여, 일체 행을 장양(長養)하기 때문에 수행주(修行住)라고 이름 하느니라. 불자여, 부처님 가문에 태어나게 되면 종성(種性)이 청정하기 때문에 생귀주(生貴住)라고 하느니라.불자여, 무량한 선근을 많이 배우기 때문에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라고 이름 하느니라. 불자여, 여섯 번째 반야를 성취하기 때문에 정심주(正心住)라고 하느니라. 불자여, 무생필경공계(無生畢竟空界)에 들어가 마음 마음마다 항상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행하기 때문에 불퇴주(不退住)라고 하느니라.불자여, 발심해서부터 전도된 생각을 내지 않고 삿된 마군의 마음을 일으켜 보리심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에 동진주(童眞住)라고 이름 하느니라. 불자여, 불왕(佛王)의 가르침을 따라서 그 가운데에서 깨달음[解]을 내고 마땅히 불위(佛位)를 이어야 하기 때문에 법왕자주(法王子住)라고 하느니라. 불자여, 위의 아홉 가지에서 공을 관하고 무생심(無生心)에 최상을 얻기 때문에 관정주(灌頂住)라고 하느니라.그러므로 불자여, 관정심(灌頂心)에서 더욱 나아가 오음의 법성공위(法性空位)에 들어가 다시 팔만 사천의 반야바라밀을 행하기 때문에 십행(十行)이라고 하느니라. 불자여, 여기에서 비로소 법공(法空)에 들어가 외도의 삿된 논리에 전도되지 않고 정위(正位)에 들어가므로 환희행(歡喜行)이라고 하느니라.불자여, 항상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모든 중생을 법으로써 이익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요익행(饒益行)이라고 하느니라. 불자여, 법의 실성(實性)으로 법인심(法忍心)을 얻어서 아(我)가 없고 아소(我所)가 없으므로 무진한행(無瞋恨行)이라고 이름 하느니라.불자여, 항상 공덕에 머물러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나타내므로 무진행(無盡行)이라고 하느니라. 불자여, 목숨을 마칠 때에 무명(無明)의 귀신에게 어지럽히거나 혼탁하게 되지 않으며 바른 생각[正念]을 잃어버리지 않으므로 이치란행(離癡亂行)이라고 이름 하느니라.불자여, 태어날 때마다 항상 불국토 가운데에 태어나므로 선현행(善現行)이라고 하느니라. 불자여, 아(我)에 있어 아가 없고[無我] 나아가 일체법이 공하므로 무착행(無箚行)이라고 하느니라. 불자여, 삼세의 불법 중에서 항상 공경하여 수순하므로 존중행(尊重行)이라고 하느니라.불자여, 법을 설하여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변화시키면 사물의 법도가 되므로 선법행(善法行)이라 하느니라. 불자여, 이제(二諦)는 같은 것[如]도 아니고 상(相)이 아니고 비상(非相)도 아니므로 진실행(眞實行)이라 하느니라.그러므로 불자여, 진실한 마음에서 중생공(衆生空:인공(人空))과 무아공(無我空:법공(法空))에 들어가지만 이공(二空)이 평등하여 다름이 없느니라.일관상(一觀相) 일합상(一合相)으로써 백만 억의 반야바라밀의 공관을 학습하므로 앞뒤의 온갖 마음을 회향시켜 바꿔놓고, 관(觀)이 오로지 밝고 밝아 적멸하며 상지명관법(上智明觀法)을 장양하므로 인을 돌려서 과로 향하게 하느니라. 또 무량한 마음을 버리지도 않고 받지도 않나니 십회향법(十廻向法)이 이와 같으니라.불자여, 항상 무상심(無相心) 가운데서 육도(六道)를 행하여 과보에 들어가되 받음이 없이[不受] 온갖 받음을 받아 회향시켜 바꿔놓고 전변하여 교화시키기 때문에 구호일체중생이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이라고 하느니라.불자여, 일체법을 관하더라도 다만 수(受)가 있고 다만 용(用)이 있고 다만 이름[名]만 있어서 생각 생각에 머물지 않으므로 불괴회향(不壞廻向)이라고 이름 하느니라.불자여, 삼세제불의 법을 모든 때에 언제나 행하므로 등일체불회향(等一切佛廻向)이라고 하느니라. 불자여, 대원력으로써 일체 불국토에 들어가서 일체불을 공양하므로 지일체처회향(至一切處廻向)이라고 하느니라.불자여, 상주(常住)하는 삼보로써 앞의 사람에게 수여하기 때문에 무진공덕장회향(無盡功德藏廻向)이라고 하느니라. 불자여, 상선(相善)과 무루선(無漏善)을 학습하여 행하되 둘이 아니므로 수순평등선근회향(隨順平等善根廻向)이라고 하느니라.불자여, 선악의 부모에는 둘이 없어 일상일합상(一相一合相)임을 관하기 때문에 수순등관일체중생회향(隨順等觀一切衆生廻向)이라고 하느니라. 불자여, 항상 유(有)와 무(無)의 이제(二諦)가 일체법과 일합상임을 비추므로 여상회향(如相廻向)이라고 하느니라.불자여, 제법이 둘이 아니며, 반야는 무생(無生)이며, 이제가 평등하여 과거(過去) 일합상이며, 현재(現在) 일합상이며 미래(未來) 일합상이므로 무박해탈회향(無縛解脫廻向)이라고 하느니라.불자여, 일체법은 제일의제중도무상(第一義諦中道無相)이어서 일체법이 모두 한결같이 비추는 상(相)임을 깨닫기 때문에 법계무량회향(法界無量廻向)이라고 이름 하느니라. 불자여, 이 서른 가지 마음의 뜻과 해석이 무량무변하나니, 일체 범부의 지혜로는 능히 헤아릴 수 없으며, 오직 시방의 제불(諸佛)과 일체 보살만이 그 길에서 노니시느니라.불자여, 그대는 앞에서 어떤 것을 지(地)라고 이름 하느냐고 물었느니라. 불자여, 지(地)는 지닌다[持]고 이름 하나니 일체 백만 아승기 공덕을 지니느니라. 또는 생(生)이라고 이름 하나니, 일체 인과를 이루기 때문에 지라고 이름 하느니라.불자여, 범부의 행을 버리고 부처님의 가문에 태어나서 보살위(菩薩位)를 잇고 성중(聖衆) 속에 들어감에 사마(四魔)가 무너뜨리지 못하고, 유ㆍ무의 양 끝을 평등하게 서로 비추고 큰 믿음이 비로소 만족하며, 무생중도제일의제관(無生中道第一義諦觀)을 배워 익히느니라.그 위로 이지(二地)ㆍ삼지 나아가 십일지에 이르러 밝게 법문을 관하고 마음 마음마다 적멸하는 법류(法流)의 물속에서 일상(一相) 무상(無相)의 이신(二身)이 거스름이 없어 불토(佛土)에 동등하게 통하므로 환희지(歡喜地)라고 이름 하느니라.불자여, 정무상선(正無相善)으로써 중생공(衆生空)에 들어가 만불(萬佛)의 세계에 여섯 가지로 신통 변화를 나타내고, 공으로써 무위(無爲)와 동등하므로 이구지(離垢地)라 하느니라.불자여, 광혜신인(光慧信忍)하여 옛 부처님의 도(道)를 수습하나니, 이른바 십이부경(十二部經)이니라. 수다라(修多羅)ㆍ기야(祇夜)ㆍ비가라나(毘伽羅那)ㆍ가타(伽陀)ㆍ우다나(憂陀那)ㆍ니다나(尼陀那)ㆍ아바다나(阿波陀那)ㆍ이제목다가(伊帝目多伽)ㆍ사타가(闍陀伽)ㆍ비불략(毘佛略)ㆍ아부타달마(阿浮陀達摩)ㆍ우바제사(憂波提舍) 등 이러한 법으로써 중생을 제도하고 신통 변화의 광명이 빛나므로 명지(明地)라 이름 하느니라.불자여, 크게 무생(無生)에 수순하여 인(忍)을 일으키고, 일체법과 이제(二諦)의 상을 관하여 위로 부처님의 공덕을 관하고 아래로 육도 중생을 관하여 대자(大慈) 관법으로 법을 설하여 기쁨을 주고, 대비(大悲)의 관법으로써 삼고(三苦)의 중생을 구제하고, 대희(大喜)의 관법으로써 전인(前人)이 기쁨 얻는 것을 기뻐하고, 대사(大捨)의 관법으로써 일체 중생을 모두 평등에 들어가게 하는 일곱 가지 관법에 들어가므로 염지(焰地)라고 하느니라.불자여, 수순하고 인내하며 도를 닦으면 삼계의 무명(無明)ㆍ의(疑)ㆍ견(見) 등의 일체가 모두 공 아님이 없기에 팔변(八辯)의 공덕과 오명론(五明論)에 들어가느니라. 이른바 팔변이란 사변(四辯)과 인(因)ㆍ과(果)ㆍ내도(內道)ㆍ외도변(外道辯)이며, 오명론(五明論)이란 내(內)ㆍ외(外:工巧明)ㆍ방도(方道:醫明)ㆍ인과(因果:因明)ㆍ귀사(鬼師:聲明)이니 이 모두를 통달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난승지(難勝地)라고 이름 하느니라.불자여, 위로 제법에 수순하여 과거의 일체법과 일합상이며, 현재의 일체법과 일합상이며, 미래의 일체법과 일합상이어서 법계 인연의 적멸이 둘이 아님을 관하기 때문에 현전지(現前地)라고 이름 하느니라.불자여, 무생인(無生忍)의 제법관(諸法觀)은 번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번뇌가 없는 것도 아니며, 일생(一生)ㆍ일멸(一滅)ㆍ일과(一果)와 삼계 최후의 일신(一身)이라도 한 번 들고 한 번 나옴[一入一出]에 무량 공덕을 모으고, 항상 상지(上地)를 향하면서도 생각 생각이 적멸하기 때문에 원행지(遠行地)라고 이름 하느니라.불자여, 이러한 까닭에 보살은 무생관(無生觀)으로써 삼계의 과보를 버리고 변화된 과가 작용하는 가운데 인무상(忍無相)의 지혜에 들어가며, 유에서 나와 무에 들어가 무상(無相)을 화현(化現)하고 스스로의 몸에서 당과(當果)를 보느니라. 이때 모든 부처님께서 이마를 만지며 설법해 주시면 몸과 마음이 따로 행해져서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부동지(不動地)라 하느니라.불자여, 다시 위와 같은 관으로써 불화(佛化)를 온갖 빛으로 드러내고 무생인(無生忍)의 도에 들어가 일체 불신(佛身)을 나 투기 때문에 묘혜지(妙慧地)라고 이름 하느니라.불자여, 보살이 이때 중도제일의제와 대적인하품(大寂忍下品) 속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행처(行處)를 행하고 천보상(千寶相)의 연꽃 위에 앉아 부처님의 수기를 받고 부처님께서 행하신 교화의 공덕을 배우고, 두 가지 습기를 끊고 조복하여 큰 믿음을 성취하느니라.진제(眞際)와 한가지로 법계에 평등하고 이제(二諦) 일상(一相)의 일체 공덕을 갖추고 중생의 근(根)에 들어가 무량한 영락의 공덕을 일시에 평등하게 일체 형상을 나 투기 때문에 법운지(法雲地)라고 이름 하느니라.불자여, 보살이 그때 대적문중품인관(大寂門中品忍觀)에 머물러 공행(功行)이 만족하고, 큰 산의 누대[大山臺]에 올라 백천 삼매에 들어가 부처님의 의용(儀用)을 모으지만, 다만 누적된 과[累果]의 무상한 생멸만은 있느니라.온갖 마음의 무위행이 십지를 지나고, 요해(了解)하는 것이 부처님과 마찬가지라 부처의 자리에 앉느니라. 그 지혜는 두 가지의 상(常)ㆍ무상(無常)과 일체의 법의 경계를 보나니,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부처님과 같이 됨을 이름 하여 부처님을 배운다고 하느니라.하지(下地)의 일체의 보살은 이 보살에 대해 따로 알 수가 없나니, 부처에 있어서는 보살이라고 이름하고, 하지의 보살에게 있어서는 부처라고 이름 하느니라.왜냐 하면 이 보살이 대변력(大變力)으로써 목숨이 백 겁, 만 겁을 머무는 동안에 부처님의 교화를 지어 나타내되, 한 번 태어나고, 도를 얻고, 법륜을 전하고, 무여멸도(無餘滅度)에 들어가고, 팔법륜(八法輪)을 설하는 것이 부처를 닮았으되 부처가 아니며, 모든 것이 부처와 같기 때문에 나아가고 멈추는 위의가 일체법과 같으니라.이 백천 삼매 중에 머물러 이와 같이 부처의 행을 하기 때문에 금강삼매에 들어가며, 일상무상(一相無相)하고 적멸무위(寂滅無爲)가 되기 때문에 무구지(無垢地)라고 이름 하느니라.불자여, 묘관상인(妙觀上忍)은 매우 적정하고 무상(無相)인데 다만 일체 중생의 연으로 선법(善法)을 생하기 때문에 또한 스스로 일체 공덕을 가지기 때문에 불장(佛藏)이라고 이름 하느니라. 또한 일체법을 고요히 비추되[寂照] 부처로부터 이하의 일체 보살은 조적(照寂)하느니라.이런 까닭에 불자여, 내가 옛날에 제사선(第四禪) 중에서 팔억의 범천왕을 위하여 여래는 무심무색(無心無色)으로서 또한 일체법을 적조(寂照)한다고 설하였느니라.불자여, 내 이제 간략히 뜻을 설하고 이 대중을 위하여 선법행(善法行)을 여노라.”
5. 불모품(佛母品)
이때 경수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와 보살, 둘은 최초에 비추는 지혜가 무엇으로부터 생깁니까? 적조(寂照)와 조적(照寂)의 뜻은 어떠한 것입니까? 이제(二諦)의 법성(法性)은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유(有)입니까, 무(無)입니까? 제일의제는 어떤 것입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자여, 유제(有諦)ㆍ무제(無諦)ㆍ중도제일의제(中道第一義諦)란 이것이 모든 불보살의 지혜의 어머니이니라. 나아가 일체법도 또한 모든 불보살의 지혜의 어머니이니라. 그 까닭은 모든 불보살은 법에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니라.불자여, 이제(二諦)에서 세제(世諦)는 유(有)이므로 불공(不空)이며, 무제(無諦)는 공(空)이므로 불유(不有)이니라. 이제는 항상 그러하기 때문에 불일(不一)이며, 성스럽게 비추면 공이므로 불이(不二)이니라.부처가 있거나 부처가 없어도 법계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불공이며, 제일(第一)은 둘이 아니므로 불유이며, 부처가 없음과 부처가 있음이 법계의 두 가지 모습이므로 불일이며, 제법은 항상 청정하므로 불이이며, 제불은 도리어 범부를 위하여 존재하므로 불공이며, 무가 없기 때문에 불유이니라.공은 실재하기 때문에 불일이며, 본제(本際)가 불생(不生)이기 때문에 불이이며, 제법의 모습은 거짓 이름[假名]에 불과해 파괴되지 않으므로 불공이며, 제법은 곧 제법이 아니므로 불유이며, 법이 법이 아니므로 불이이며, 비법이 아니므로 불일이니라.불자여, 이제(二諦)의 뜻은 하나가 아니면서 또한 둘도 아니며, 항상 하지도 않고 또한 단멸하지도 않으며, 오는 것도 아니고 또한 가는 것도 아니며,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이러한 두 가지 모습은 곧 성스러운 지혜란 둘이 없다는 것이니, 둘이 없기 때문에 모든 불보살의 지혜의 어머니가 되느니라.불자여, 시방의 무극찰토(無極刹土)에 있는 모든 부처님께서도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나니, 내 이제 이 대중을 위하여 간략히 명월영락경(明月瓔珞經) 가운데 이제(二諦)의 중요한 뜻을 설하리라.”그때 경수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불보살의 대방편과 평등한 지혜로써 모든 법계를 비추는 것은 돈등각(頓等覺)입니까? 점점각(漸漸覺)입니까? 무명장(無明藏)과 마음은 하나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겁량(劫量)의 멀고 가까움은 다시 어떤 것입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자여, 그대는 과거 칠불(七佛)의 법 중에서 이미 하나하나 물었기 때문에, 이제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다만 이 대중 십사억 사람을 위하여 이들이 이 법 중에서 다시금 결정요의(決定了義)를 습득하기를 원하는 까닭에 이와 같이 물었느니라.불자여, 내가 이제 십사억 대중을 위하여 금강의 입으로써 결정요의를 설하리라. 불자여, 나의 옛날 모임 중에 일억 팔천의 무구(無垢) 대사가 있었느니라.앉은 자리에서 곧 법성의 근원을 통달하고 당장에 둘이 없는 일체법의 일합상(一合相)을 깨닫고, 법회에서 나와서 각각 시방 세계에 앉아 보살영락대장(菩薩瓔珞大藏)을 설하였느니라. 그때에 앉아 있던 대중 일억 팔천은 세존을 뵈었는데 돈각여래(頓覺如來)라고 이름 했느니라.각각 백보(百寶)로 장엄한 사자후(獅子吼)의 자리에 앉으시니, 그때 무량한 대중들도 또한 한 자리에 앉아서 등각여래(等覺如來)께서 영락법장(瓔珞法藏)을 설하심을 들었느니라. 따라서 점각(漸覺)의 세존은 없고 다만 돈각여래만이 있나니, 삼세의 제불이 설하시는 바와 다름이 없이 지금 나도 또한 그와 같이 설하느니라.불자여, 그대가 앞에서 ‘무명과 마음이 하나인가?’라고 말한 그것은 그렇지 않느니라. 만약 명료히 이해하는 것과 무명의 모든 견해가 하나의 모습[一相]이라면 마땅히 얽매임이나 풀려남이 없고, 범부와 부처가 둘이 아니리라. 왜냐 하면 번뇌가 동일한 체상(體相)이기 때문이며, 한 마음에서 공동으로 생하고 멸하는 것은 동시로서 별개가 아니고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니라.불자여, 만약 얽매임과 풀려남이 하나의 모습이라면 사대(四大)가 하나일 것이고, 육미(六味)가 마땅히 다르지 않을 것이니라. 그러나 크기가 다르고 맛이 다르기 때문에 얽매임과 풀려남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니라.불자여, 일체 보살이 범부일 때에 일체의 번뇌를 갖고 있었으나, 끊을 때는 거친 부분이 먼저 없어지고 미세한 부분이 뒤에 없어지느니라.만약 일심과 번뇌가 하나라면 응당 밝고 어두움에 둘이 있을 수 없나니, 불자여, 다시 가까운 것으로써 먼 것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범부의 착한 마음속에도 오히려 불선(不善)이 없거늘, 하물며 무상(無相)한 마음 가운데 무명이 있겠느냐?불자여, 또한 선악이 일심이라고 하는 이것은 병사왕(沙王)의 나라에 있던 외도(外道) 안타사(安陀師)1)의 게송에서 ‘밝음과 어둠은 하나의 모습이며, 선과 악이 일심이다’라고 한 것을 두고 한 말일 뿐이니라.불자여, 내 법의 바른 뜻은 ‘선악을 동일하게 행하면 속박이 있고 해탈이 있으며, 범부가 있고 부처가 있다’고 말할 수가 있느니라. 억 겁 동안에 상속하고 동일하게 행하더라도 선악이 동일한 마음이 될 수 없느니라.옛 부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무상(無相)의 지화(智火)가 무명의 어둠을 소멸한다’고 하셨느니라. 또한 선악의 둘은 별개인데 동일한 과보를 말하는 것 역시 근거가 없는 것이니라. 일체의 선은 불과(佛果)를 받고, 무명은 유위 생멸의 과를 받느니라.그러므로 선과(善果)는 선인(善因)에서 생기고 악과(惡果)는 악인(惡因)에서 생기므로, 선은 생멸의 과를 받지 않고 오직 항상 부처님의 과를 받는다고 이름 하느니라.불자여, 만약 범부와 성인의 일체 선(善)은 모두 무루(無漏)라고 이름 한다면 누과(漏果)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누과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하여 선을 행하고 악을 등지게 하기 위한 것이니라. 원인[因]을 연하여 유위의 과보를 일으키는 것이지 무루가 되는 것이 아니니라.인(因)이란 무명과 업의 과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삼수삼고(三受三苦)라 하나니, 고고(苦苦)ㆍ행고(行苦)ㆍ괴고(壞苦)와 고수(苦受)ㆍ낙수(樂受)ㆍ사수(捨受)이니라. 두 가지 수는 선의 원인을 조건으로 하는 과이고, 고수는 악의 원인을 조건으로 하는 과이니 일체개고(一切皆苦)이며, 무명을 근본으로 하느니라.불자여, 그대가 앞에서 ‘일체 보살이 도를 행하는 겁 수에 멀고 가까움’이라고 말한 것은, 비유하면 일 리(里)ㆍ가 리 나아가 십 리까지의 돌에 방광(方廣)도 또한 그러하니라. 범천(梵天)의 옷의 무게가 삼 수(銖)인데 인간계의 일월의 햇수로 삼 년에 한 번씩 스쳐서 이 돌이 곧 다 없어지는 것을 일 소겁(小劫)이라고 이름 하느니라.또는 일 리, 이 리 나아가 사십 리까지도 소겁이라 하느니라. 팔십 리의 돌에 방광도 또한 그와 같은데 범천의 옷의 무게가 삼 수인 것을 가지고 곧 범천계의 백보광명주(百寶光明珠)를 일월의 햇수로 하여 삼 년에 한 번 스치는데 이 돌이 곧 없어지는 것을 중겁(中劫)이라 하느니라.또 팔백 리의 돌에 방광도 또한 그와 같은데, 정거천(淨居天)의 옷의 무게가 삼 수인 것을 가지고 곧 정거천의 천보광명(千寶光明)의 거울을 일월의 햇수로 하여 삼 년에 한 번 스쳐서 이 돌이 곧 없어지는 것을 일대아승기겁(一大阿僧祇劫)이라 하느니라.불자여, 겁 수(數)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일 리, 이 리 나아가 십 리까지의 돌이 다함을 일 리 겁(劫), 이 리 겁이라 하고, 오십 리의 돌이 다함을 오십 리 겁이라 하고, 백 리의 돌이 다함을 백 리 겁이라 하느니라. 천 리의 돌이 다함을 천 리 겁이라 하고, 만 리의 돌이 다함을 이름 하여 만 리 겁이라 하느니라.불자여, 일체 현성이 이 수량에 들어가 일체 법문을 닦고 시간이 오래고 가까움에 따라 불과(佛果)를 얻고 그 수가 백 겁이 되면 곧 등각(等覺)을 얻느니라. 만약 일체 중생이 이 수에 들어간다면 불과를 얻는 것이 멀지 않을 것이며, 만약 들어가지 않은 이는 보살이라 이름 하지 않느니라.불자여, 법문이란 이른바 십신심(十信心)이니, 이것이 일체 행의 근본이니라. 그러므로 십신심 중에 하나의 신심에 십품(十品)의 신심이 있으면 백법명문(百法明門)이 되며, 또 이 백법명심(百法明心) 중에서 일심에 백심이 있으므로 천법 명문이 되고, 또 천법 명심 중에서 일심에 천심이 있으므로 만법 명문이 되느니라.이와 같이 늘여 나가다 보면 무량한 명(明)에 이르며, 더욱 전전하여 상상(上上)의 법에 승진(勝進)하므로 명명법문(明明法門)이 되느니라. 백만 아승기 공덕과 일체 행은 다 이 명문(明門)에 들어가느니라.”
6. 인과품(因果品)
경수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현성의 정법(正法)은 이미 충분히 설하여졌습니다. 그렇지만 인과의 두 가지 모습은 마땅히 어떠한 것입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자여,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행하시는 인(因)은 이른바 십반야바라밀이니 이것이 백만 아승기 공덕의 근본이니라. 부처님과 보살이 또한 그 중에 포함되어 내재해 계시느니라. 그러므로 십법(十法)을 금강지혜해장(金剛智慧海藏)이라고 하나니 일체광명공덕(一切光明功德)의 행을 출생하느니라.불자여, 십반야바라밀이란 보시를 행하는 것에 따라 세 가지 연이 있나니, 첫째는 재물이고, 둘째는 법이고, 셋째는 중생에게 무외(無畏)를 보시하는 것이니라.계(戒)에는 세 가지 연이 있나니, 하나는 자성계(自性戒)이고, 둘째는 수선법계(受善法戒)이고, 셋째는 이익중생계(利益衆生戒)이니라.인(忍)에도 세 가지 연이 있나니, 첫째는 고행을 참고, 둘째는 외악(外惡)을 참고, 셋째는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참는 것이니라.정진(精進)에 세 가지 연이 있나니, 첫째는 큰 서원의 마음을 일으키고, 둘째는 방편으로 나아가며, 셋째는 중생을 권고하여 교화시키는 것이니라.선정(禪定)에 세 가지 연이 있나니, 첫째 선정은 어지러운 모습을 일으키지 않으며, 둘째 선정은 모든 공덕을 낳으며, 셋째 선정은 중생을 이롭게 하느니라.지혜에 세 가지 연이 있나니, 첫째는 유제(有諦)를 비추고, 둘째는 무제(無諦)를 비추고, 셋째는 중도제일의제(中道第一義諦)를 비추느니라.서원[願]에 세 가지 연이 있나니, 첫째는 자행(自行)의 서원이고, 둘째는 신통의 서원이고, 셋째는 바깥을 교화하는 서원이니라.방편에 세 가지 연이 있나니, 첫째는 향과(向果)에 나아가고, 둘째는 유무를 교회(巧會)하며, 셋째는 일체법을 버리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것이니라.신통력(神通力)에 세 가지 연이 있나니, 첫째는 보통(報通)이고, 둘째는 수정통(修定通)이고, 셋째는 변화통(變化通)이니라.무구혜(無垢慧)에 세 가지 연이 있나니, 첫째는 무상지(無相智)이고, 둘째는 일체종지(一切種智)이고, 셋째는 변화지(變化智)이니라.불자여, 십지(十智)에서 일체의 공덕행을 낳느니라. 일곱 가지 재물[七財]은 신(信)ㆍ시(施)ㆍ계(戒)ㆍ문(聞)ㆍ혜(慧)ㆍ참(慚)ㆍ괴(愧)인데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잘 쓰면 성불할 수 있기 때문에 재물이라고 하느니라.사섭(四攝)은 이익(利益)ㆍ유어(濡語)ㆍ시법(施法)ㆍ동사(同事)를 말하며, 사무애변(四無碍辯)은 법변(法辯)ㆍ의변(義辯)ㆍ어변(語辯)ㆍ요설변(樂說辯)인데 이 네 가지 변재의 법 가운데 걸림이 없고 막힘이 없기 때문에 무애(無礙)라고 이름 하느니라.걸림이 없는 지혜[無礙智]에서 지혜를 내기 때문에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않으며,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으며,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으며, 지혜에 의지하고 아는 것[識]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이름 하는 것이니라.지혜에서 십력(十力)ㆍ사무외(四無畏)ㆍ육통(六通)ㆍ삼명(三明)의 백만 억 아승기의 공덕을 내며 순서대로 지혜를 낳느니라. 능히 여덟 가지 세제(世諦)의 일체법을 연하는데, 사제(四諦)와 이제(二諦)와 십이연(十二緣)의 제법은 인연에 의해 성립된 임시의 법[假法]이므로 아(我)가 없고 법만이 있을 뿐이니라.상대(相待)하여도 일체상은 공허하고 상속하므로 한결같이 공하다고 이름 하느니라. 그리고 불가득이므로 인이 생기면 그것이 모여서 일어나는 즉, 법은 사실[實]을 인연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들이 모여서 유(有)를 생성하여 법이라고 이름 하느니라. 법은 임시로 만들어진 법이며, 수(受)는 기용(起用)이라고도 하고 취법(聚法)이라고도 하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여덟 가지 유위법과 일체법은 본지(本智)가 비추는 곳[所照處]이니라.다시 이 지(智)에서 능히 오개(五蓋)인 탐(貪)ㆍ진(瞋)ㆍ수(睡)ㆍ도(掉)ㆍ의(疑)와 사식(四食)인 촉(觸)ㆍ식(識)ㆍ사(思)ㆍ단식(段食)과 사생(四生)인 난생ㆍ태생ㆍ습생ㆍ화생과 십악(十惡)ㆍ오역(五逆)ㆍ팔도(八倒)ㆍ삼장(三障)ㆍ팔난(八難)ㆍ십삼번뇌(十三煩惱)ㆍ육도(六道)ㆍ삼계(三界)ㆍ육십이견(六十二見)ㆍ사류(四流)ㆍ사박(四縛)ㆍ사취(四取)ㆍ구번뇌(九煩惱)ㆍ칠식주(七識住)ㆍ사결(四結)을 모두 없애는데, 제거되는 모든 것을 다 불선(不善)이라 이름 하느니라.불자여, 십지경(十智境)이 없어지게 되는 일체 공덕을 다 불인(佛因)이라고 이름 하나니, 그대는 마땅히 받고 마땅히 행하여야 하느니라.불자여, 그대가 앞에서 말한 과(果)라고 하는 것은, 오현(五賢)의 보살이 모든 도법을 수행하여 일대과(一大果)를 증득하므로 법성체(法性體)라고도 하느니라.그 법성체는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며, 대(大)도 아니고 소(小)도 아니며, 신(身)도 아니고 심(心)도 아니며, 상(相)도 아니고 삼세(三世)도 아니며, 하늘[天]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며, 이름[名字]도 아니고 상(常)ㆍ락(樂)ㆍ아(我)ㆍ정(淨)도 아니며, 육도(六道)도 아니고 육식(六識)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수량(數量)의 법도 아니고 일체의 법상(法相)을 지나며, 복전(福田)도 아니고 귀신(鬼神)도 아니며, 동정(動靜)도 아니고 생멸(生滅)도 아니며, 제일(第一)도 아니고 오색(五色)도 아니며, 육대(六大)도 아니고 토전(土田)도 아니며, 법계도 아니고 삼계도 아니며, 박해(縛解)도 아니고 명암(明暗)도 아니며, 득법(得法)도 아니어서 적연(寂然)하여 무위(無爲)이니라.일체 법의 밖이라서 마음으로 헤아릴 길이 없으므로 이곳을 측량하기 어려우니라. 유제(有諦) 중에 있어서는 겁량(劫量)의 행을 수행함에 또한 과보가 있느니라.불자여, 두 가지 법신이 있나니, 하나는 과극(果極) 법신이고, 다른 하나는 응화(應化) 법신이니라. 그 응화 법신은 그림자가 형상을 따름과 같이 과신(果身)이 항상 하므로 응신도 또한 항상 그러하니라.불자여, 옛날의 모든 부처님은 두 가지 몸의 길[道]이 하나였느니라. 불자여, 일체 보살에게는 두 가지 몸이 다 무상(無常)한 몸이니라.불자여, 일체 범부들에게도 또한 두 가지 몸이 있나니, 첫째는 보신(報身)이고, 둘째는 방편신(方便身)이니라. 보신은 함께 있는 것이 아니고, 방편신은 함께 일체 중생에게 있는 것이니라. 불자여, 일체 보살과 일체 중생에게는 모두 두 가지 몸이 있다고 모든 여래께서 항상 이와 같이 말씀하시므로 결정요의(決定了義)라고 이름 하느니라.불자여, 부처님의 의공덕신(義功德身)은 모든 부처님의 길이 같아서 과법(果法)도 다르지 않나니, 이른바 십호(十號)이니라.첫째는 여래(如來), 둘째는 응공(應供), 셋째는 정변지(正遍知), 넷째는 명행족(明行足), 다섯째는 선서(善逝), 여섯째는 세간해(世間解), 일곱째는 무상사(無上士), 여덟째는 조어장부(調御丈夫), 아홉째는 천인사(天人師), 열째는 불타(佛陀)인데 함께 십덕(十德)을 향하므로 일체 중생이 공양하는 바가 되느니라.다시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이 있나니, 이른바 몸에 잘못이 없고, 생각에 잘못이 없고, 입에 잘못이 없고, 다른 생각이 없고, 정함 없는[不定] 마음이 없고, 다 알고서 버리지 않음이 없으며, 심념(心念)이 줄어듦이 없고, 의욕[欲]이 줄어듦이 없고, 정진이 줄어듦이 없고, 지혜가 줄어듦이 없고, 해탈이 줄어듦이 없고, 해탈지견이 줄어듦이 없느니라.신업이 지혜를 따라 행하고, 구업이 지혜를 따라 행하고, 의업이 지혜를 따라서 행하고, 지혜가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아는 데에 걸림이 없느니라.다시 십력(十力)이 있나니, 이른바 처비처력(處非處力)ㆍ업력(業力)ㆍ정력(定力)ㆍ근력(根力)ㆍ욕력(欲力)ㆍ성력(性力)ㆍ과력(果力)ㆍ천안력(天眼力)ㆍ숙명력(宿命力)ㆍ결진력(結盡力)이니라.그리고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가 있으며, 나는 일체지인(一切智人)이며, 나는 이미 번뇌가 다하여 무루(無漏)이며, 번뇌도(煩惱道)와 번뇌장도(煩惱障道)를 벗어났으며, 천신(天身)ㆍ천안(天眼)ㆍ천이(天耳)ㆍ누진(漏盡)ㆍ숙명(宿命)ㆍ타심(他心)의 여섯 가지 신통력이 있느니라.오안(五眼)ㆍ오분법신(五分法身)ㆍ무죄삼업(無罪三業)ㆍ불보법승(佛寶法僧)ㆍ멸제해탈(滅諦解脫)ㆍ영지일승(靈智一乘)ㆍ금강보장(金剛寶藏)ㆍ법신장(法身藏)ㆍ자성청묘장(自性淸妙藏)ㆍ삼달(三達)ㆍ삼무위(三無爲)ㆍ삼명(三明)ㆍ일제(一諦)ㆍ일도(一道)ㆍ독법(獨法)ㆍ대락무위(大樂無爲)이니라.불자여, 모든 성과무량공덕장(聖果無量功德藏) 가운데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의 과(果)가 있나니 이 과는 하나의 길[一道]이니라. 불자여, 과의 체성[果體]이 원만하여 덕을 갖추지 않음이 없고, 이치가 두루 머물지 않음이 없으며, 중도제일의제의 청정국토에 있어 다함이 없고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느니라.일체 법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체(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체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그것은 일조상(一照相)ㆍ일합상(一合相)ㆍ일체상(一體相)ㆍ일각상(一覺相)이며 밝고 청정하여 둘이 없느니라.불자여, 이 과(果)는 독법원만(獨法圓滿)하여 항상 머무나니, 일과(一果)의 체상에 헤아릴 수 없는 뜻이 있고, 그 낱낱의 뜻에 헤아릴 수 없는 덕이 있으며, 그 낱낱의 덕에 헤아릴 수 없는 이름이 있느니라. 의과(義果)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멸제(滅諦)의 상ㆍ락ㆍ아ㆍ정과 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일체 공덕을 모두 의과라고 이름 하기 때문에 과과(果果)라 하기도 하느니라.불자여, 뜻과 덕과 이름의 세 가지는 모두 교화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세 구(句)의 뜻이 있느니라. 만약 현인과 일체 중생이 이 세 구를 명료히 이해할 수만 있다면 이 사람은 이미 삼세제불에게 부처님의 직위(職位)를 받은 것이니라.불자여, 그 과는 말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으나, 이름과 형상[名相]의 법 가운데에서 이름과 형상의 법으로 설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일과(一果)를 체(體)라 이름하고 의(義)를 과과(果果)라 이름 하는데, 이 의과(義果)는 원과(圓果)를 출생하므로 과과라 하느니라.불자여, 내가 이러한 인과를 백천 겁 동안 설한다 하더라도 다할 수 없나니, 너희들 모든 대중은 스스로 잘 수지할지니라.”
7. 대중수학품(大衆受學品)
이때 경수보살이 모든 부처님께 경례하고 대중의 가르침을 받들고 간략히 요의칠회(了義七會)에서 말씀하신 바를 묻고, 삼보장(三寶藏)을 믿고 따르며, 법법이 끊어짐이 없게 하고, 세상의 명리(名利)를 위하지 않고 법이 오래도록 머물게 하려고 부처님께 아뢰었다.“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위에서 이미 인(因)ㆍ과(果)ㆍ현(賢)ㆍ성(聖)의 일체 공덕장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대중에 십사 나유타의 사람이 있사오나, 누가 능히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서도 수학(受學)하고 수도(修道)하되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실행하고 차례로 보살위에 들어가는 자이겠습니까?”그때에 석가모니불께서는 정수리의 상투[頂髻]에서 일체 부처님의 광명과 일체 보살의 광명을 놓으시고, 다시 시방으로 각각 백억 불국토에 계신 부처님과 보살들을 모으셨다. 모두 다 모이고 나자 곧 이 대중 속에 있는 문수사리(文殊師利)보살ㆍ보현(普賢)보살ㆍ법혜(法慧)보살ㆍ공덕림(功德林)보살ㆍ금강당(金剛幢)보살ㆍ금강장(金剛藏)보살ㆍ선재동자(善才童子)보살에게 말씀하셨다.“너희들은 이 대중 가운데 경수(敬首)보살이 능히 삼관법계(三觀法界)와 제불의 자성청정도(自性淸淨道)와 일체 보살이 닦는 바의 명관법문(明觀法門)을 묻는 것을 보았느냐? 너희들 일곱 보살은 각각 백만의 대중을 거느리고 마땅히 이 같은 법문을 받아서 관하고 배워야 하느니라.불자여, 내가 이제 다시 거듭 이 같은 명관법(明觀法)을 설하나니, 이른바 육입차제(六入次第)의 도이니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 모든 도를 닦으며 대중에게 경계하고 타일러 수용케 하고 조복하여 행하도록 할지니라.불자여, 만약 일체 중생이 처음으로 삼보의 바다로 들어감에는 믿음으로써 근본으로 삼고, 부처님 가문에 머물러 사는 데 있어서는 계(戒)로써 근본을 삼느니라.불자여, 처음 수행하는 보살은 혹은 믿음이 있는 남자[信男]나 믿음이 있는 여자[信女] 가운데 모든 근이 갖추어지지 않은 황문(黃門)ㆍ음남(婬男)ㆍ음녀(婬女)ㆍ노비(奴婢)ㆍ변화(變化)의 사람이라도 계를 받게 해야 하나니, 모두 마음이 있어서 진리의 길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니라. 처음으로 발심 출가하여 보살의 위(位)를 잇기를 원하는 이는 마땅히 먼저 정법계(正法戒)를 받을지니라.계는 일체행의 공덕장의 근본이며, 바로 불과(佛果)의 길을 향하는 일체행의 근본이니라. 이 계는 능히 모든 대악(大惡), 이른바 일곱 가지 견해와 여섯 가지 집착을 없애서 정법(正法)을 밝히는 거울이니라.불자여, 이제 모든 보살을 위하여 모든 계의 근본에 대해 결론을 내리자면 이른바 삼수문(三受門)이니라. 섭선법계(攝善法戒)는 팔만사천법문이며, 섭중생계(攝衆生戒)는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이니, 이러한 교화가 일체 중생에 미치어 모두 안락을 얻게 하느니라. 섭율의계(攝律儀戒)는 십바라이(十波羅夷)이니라.불자여, 계를 받는 것[受戒]에 세 가지의 믿음이 있나니, 첫째는 모든 불보살이 현재하시는 앞에서 받으면 진실상품(眞實上品)의 계를 얻느니라.둘째는 모든 불보살이 멸도한 후 천 리 안에 먼저 계를 받은 보살이 있으면 법사로 삼아 나의 스승이 되어 주실 것을 청하고서 내가 계를 받기에 앞서 발에 절을 하고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니라. ‘대존자(大尊者)를 청하여 스승으로 모시오니, 저에게 계를 내리소서’라고 하면, 그 제자는 정법계(正法戒)를 얻나니 이것이 중품(中品)의 계이니라.셋째는 부처님 멸도 후 천 리 안에 법사가 없을 때에는 마땅히 모든 불보살의 형상 앞에서 두 무릎을 땅에 대고 두 다리를 세워 합장(合掌)하며 스스로 서원하여 계를 받을지니,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하느니라. ‘저 아무개가 시방의 부처님 및 대지(大地)의 보살들께 아룁니다. 제가 일체 보살의 계를 배우겠습니다’라고 하면, 이것이 하품(下品)의 계이니라. 두 번째와 세 번째도 또한 이와 같이 설하느니라.불자여, 이 세 가지는 세 종류의 수계를 섭수하나니, 과거불이 이미 설하셨고, 미래불이 마땅히 설할 것이며, 현재불이 지금 설하시느니라.과거 모든 보살이 이미 배웠고 미래의 모든 보살이 마땅히 배울 것이며, 현재의 모든 보살이 지금 배우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정법계이니라. 만약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이 이 법계의 문에 들어가지 않고 무상도과(無上道果)와 허공평등지(虛空平等地)를 얻는다고 한다면 그런 이치는 없느니라.”부처님께서 모든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바로 정계(正戒)를 설하리라. 선남자와 선여인이 마땅히 계를 받으려고 할 때에는 먼저 과거세진과거제(過去世盡過去際)의 모든 부처님께 예경 드리고, 미래세진미래제(未來世盡未來際)의 모든 부처님께 예경 드리고, 현재세진현재제(現在世盡現在際)의 모든 부처님께 예경할지니라. 이와 같이 세 번 예경 드리되, 법과 승에도 또한 그렇게 해야 하느니라.불자여, 다시 공손히 네 가지 무너지지 않는 믿음[四不壞信]을 받고, 사의법(四依法)에 의지하여 ‘지금으로부터 미래제가 다할 때까지 이 몸으로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현성승(賢聖僧)에게 귀의하고 법계(法戒)에 귀의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세 번 말해야 하느니라.불자여, 다음에는 마땅히 삼세의 죄에 대해 잘못을 참회[悔過]해야 하느니라. ‘만약 현재의 신ㆍ구ㆍ의에 대한 십악죄(十惡罪)는 원하옵건대 끝끝내 미래제가 다하도록 일으키지 않으며, 만약 미래의 신ㆍ구ㆍ의에 대한 십악죄는 끝끝내 미래제가 다하도록 일으키지 않기를 원하오며, 만약 과거의 신ㆍ구ㆍ의에 대한 십악죄는 끝끝내 미래제가 다하도록 다시 일으키지 않기를 원하옵니다’라고 해야 하느니라.이와 같이 잘못을 참회하여 삼업이 청정하기가 깨끗한 유리(琉璃)의 안팎이 서로 밝게 비치는 것처럼 되면 곧 십무진계(十無盡戒)가 주어지나니, 너희들은 잘 들어야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일부러 살생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四十二賢聖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일부러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되느니라.‘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일부러 음행을 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일부러 남의 것을 훔쳐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일부러 술을 팔아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고의로 재가(在家)나 출가(出家) 보살의 허물을 말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일부러 인색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짐짓 화를 내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고의로 자기를 칭찬하면서 남을 헐뜯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고의로 삼보장(三寶藏)을 비방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불자여, 이 열 가지 무진계(無盡戒)를 다 받으면 그 계를 받은 사람은 사마(四魔)를 다 지나 건너며, 삼계의 고통을 초월하고 세세생생에 이 계를 잃지 않으며, 항상 수행하는 사람을 따라서 나아가 곧 성불(成佛)하게 되리라.불자여, 만약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일체 중생 가운데 이 보살계를 받지 않는 이는 지각이 있는 이라고 하지 않으며, 축생과 다를 바가 없으며, 사람이라고도 하지 않으며, 항상 삼보(三寶)의 바다를 여의게 되나니 보살이 아니고, 남자가 아니며, 여자가 아니고, 귀신이 아니며 사람이 아니니라. 이름 하여 축생이라고 하고, 사견(邪見)이라고 하고, 외도(外道)라 하나니, 인정(人情)에 가깝지 않기 때문이니라.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보살계에는 미래제가 다하도록 수법(受法)은 있으나 사법(捨法)은 없느니라. 그러니 범하는 일이 있더라도 잃어버리지는 말지니라.만약 사람이 있어서 와서 받고자 원하면 보살과 법사는 먼저 그를 위하여 해설하고 독송하여 이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열리고 생각으로 이해하여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게 하고 그런 후에 받게 할지니라.다시 법사가 능히 일체 국토 가운데서 한 사람을 교화하고 출가시켜 보살계를 받게 한다면 이 법사의 그 복은 팔만 사천의 탑을 만드는 것보다 뛰어나니라. 하물며 다시 두 사람, 세 사람 나아가 백천 사람에 이르기까지이겠는가? 그 복덕의 과보는 헤아릴 수 없으리라.그 스승은 부부(夫婦)와 육친(六親)이 서로 스승이 되어 줄 수가 있으며, 그 계를 받는 이는 모든 부처님 국토의 보살의 수 속에 들어가 삼 겁의 생사 고통을 뛰어넘으리라.그러므로 마땅히 받아야 하나니, 있으면서 범하는 것은 없으면서 범하지 않는 것보다 수승하나니, 범하는 일이 있어도 계를 받은 이는 보살이라 이름하고, 범하는 일이 없어도 계를 받지 않은 이는 외도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하나의 계를 받은 것이 있어도 보살이라 하고, 나아가 둘ㆍ셋ㆍ넷ㆍ열 가지를 구족하면 계를 받는다고 이름 하느니라.그러므로 보살에게는 십중계(十重戒)와 팔만위의계(八萬威儀戒)가 있느니라. 십중계는 범하는 일이 있으면 참회할 수가 없으나 거듭 계를 받게 할 수는 있느니라. 팔만위의계는 모두 경계(輕戒)라고 하며, 범하는 일이 있으면 상좌 스님 앞에서 잘못을 참회하여 잘못을 소멸시킬 수 있느니라.모든 보살의 범성계(凡聖戒)는 모두 마음을 체(體)로 하느니라. 그러므로 마음이 다하면 계도 또한 다하고, 마음이 다하지 않으면 계도 다하는 일이 없으므로 육도 중생이 계를 받아 얻을 수 있으며, 다만 법사의 말을 요해할 줄만 알면 계를 잃지 않느니라.불자여, 삼세의 겁 가운데에서 모든 부처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나도 지금 이 나무 아래에서 십사억 사람을 위하여 주전(住前)의 신상(信想)보살이 처음 계를 받는 법을 설하리라.불자여, 이 신상보살은 십 천 겁 동안에 십계법(十戒法)을 행하고 마땅히 십주심(十住心)에 들어가느니라. 그러므로 불자여, 마땅히 먼저 모든 대중을 위하여 보살계를 받게 하고, 그러한 후에 영락경(瓔珞經)을 설하여 함께 보고 함께 실행하게 해야 하느니라.”이때 대중 가운데 백억 사람이 있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율을 받아 지녔으니, 그 이름은 범타수왕(梵陀首王)이며 무수한 천자와 함께 십계를 수행하여 만족하고, 초주위(初住位)에 들어갔다.“불자여, 다시 이 주(住)에서 백법관문(百法觀門)을 수행하나니, 이른바 십신(十信)ㆍ십진(十進)ㆍ십발취(十發趣)ㆍ십승(十乘)ㆍ십금강(十金剛)ㆍ십수희(十隨喜)ㆍ십계(十戒)ㆍ십원(十願)ㆍ십호(十護)ㆍ십회향(十廻向)이니라.이 백법관으로써 삼계는 공하고 거짓 이름일 뿐이니 모두가 공하기에 일체법은 나[我]와 남[人]이 없고 수(受)가 없고 인(因)이 없어서 모두 정해진 성품이 없다는 것을 관하여 통달하면 곧 열세 가지 결박을 소멸하게 되나니, 이른바 일곱 가지 견해[七見]와 여섯 가지 집착[六箚]이니라. 이것들은 실상(實相)과 같아서 초행위(初行位)에 들어가느니라.불자여, 다시 이 행에서 천법명문(千法明門)을 관하여 닦게 되나니, 이른바 십신(十信)에서부터 십향(十向)에 이르기까지 전전하여 법에 들어가느니라. 법의 무아(無我)ㆍ법의 집(集)ㆍ법의 기(起)ㆍ법의 도(道)ㆍ법의 멸(滅)에 있어서 모두 법을 받는 사람이란 없나니, 온갖 법은 허공과 같고 환(幻)과 같고 건달바성(乾達婆城)과 같고, 불꽃과 같아서 일체법이 무상(無相)하여 백천 생멸(生滅)이 다 불가득이므로 초회향위(初廻向位)에 들어가느니라.불자여, 다시 이 향(向)에서 밝고 밝게 서로 비추는 지혜로써 상사평등관(相似平等觀)을 배우느니라. 관(觀)은 무득(無得)이라 이름 하는데 무득은 거짓으로 얻는 것[假得]이니라.비유하면 연등(然燈)에 심지가 타고 있는 것은 처음의 불꽃이 아니고, 처음의 불꽃이 있는 속에 타는 것도 아니며, 또한 처음 불꽃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며, 처음 불꽃이 없을 때 그 속에 타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 다음도 또한 이와 같듯이, 바로 유위(有爲)의 모든 법은 이제(二諦)가 모두 서로 옮기므로 거짓[假]으로 짐짓 탄다[燒]고 이름 하느니라.그러므로 알아야 하나니, 처음 불꽃은 지금에 있는 것이 아니며, 지금 타는 것은 처음이 아니니라. 지금 타는 것이 처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에 바야흐로 있는 것이니라. 처음의 불꽃은 지금이 아닌 까닭에 지금 타는 것은 없느니라. 지금 타는 것이 없다면 지금 타는 것은 거짓으로 타는 것[假燒]이니라. 평등관을 얻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초심(初心)이 있는 가운데 얻음이 있는 것이 아니며, 역시 초심이 없는 가운데 얻음이 있는 것도 아니니, 뒤의 마음도 또한 그러하니라.그러므로 처음 마음은 지금 마음이 아니며, 지금 일어남은 처음 일어남이 아니니라. 지금 일어남은 처음 일어남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바야흐로 있는 것이며, 처음 마음이 지금의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얻을 수가 없느니라. 지금 얻을 수 없으므로 지금 얻는다는 것은 거짓으로 얻는 것[假得]이니라.중도제일의제(中道第一義諦)의 마음은 생각 생각마다 적멸하여 만법명문(萬法明門)에 드느니라. 십신(十信)에서부터 십향(十向)에 이르기까지 자연히 평등의 도(道)에 흘러들지만, 일상(一相)을 얻는 것은 아니고 진실하게 일조상(一照相)을 관하여 초지(初地)의 도에 들어가느니라.불자여, 다시 이 지(地)에서 바르게 일조지(一照智)를 관하는 가운데 백만 아승기의 공덕문에 들어가느니라. 일상관 중에서 일시에 행하여 나아가 제십지(第十地)에 이르기까지 온갖 마음이 적멸하여 자연히 무구지(無垢地)에 흘러드느니라.불자여, 다시 이 지에서 일조지로써 일체의 업인업과(業因業果)를 명료히 이해하되 법계를 하나로 관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그것은 지혜로써 일체 중생의 식(識)이 처음 일상(一相)을 일으켜 연(緣)에 머무는 것을 아는 것이니라.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따라서 일어남을 선(善)이라 하고 제일의제를 등지고 일어남을 번뇌라고 이름 하느니라.이 두 가지를 가지고 주지(住地)로 하기 때문에 생득(生得)의 선(善), 생득의 번뇌라고 하고, 이 두 가지 선과 번뇌를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후의 일체 선악을 일으키느니라. 일체법의 연(緣)에 따라서 선과 번뇌의 이름이 생기고, 행위 함으로써 선을 얻고 행위 함으로써 번뇌를 얻지만 마음은 선도 아니고 번뇌도 아니니라.이 두 가지를 따라 이름을 얻기 때문에 선과 번뇌의 두 가지 마음이 있느니라. 욕계의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욕계주지(欲界住地)라고 이름하고, 색계의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색계주지(色界住地)라고 이름 하며, 마음[心]의 번뇌를 일으키므로 무색계주지(無色界住地)라고 이름 하느니라.이 네 가지 주지(住地)로써 일지(一地)의 번뇌를 일으키므로 처음 일어나는[始起] 것을 사주지(四住地)라고 하고, 이 사주지 앞에 다시 법이 일어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무시(無始)의 무명주지(無明住地)라고 하느니라.금강지(金剛智)로써 이 처음으로 일어나는 일상(一相)은 끝이 있음을 아느니라. 그러나 또한 그 최초의 앞에 법이 있는지 법이 없는지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지만, 선천적으로 얻는 일주지(一住地)와 행위 함으로써 얻는 삼주지(三住地)를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시작을 알고 끝을 알 수가 있느니라.이 무구(無垢)보살은 일체지로써 가지런히 자지(自地)를 알고 항상 제일의제 속에 머물면서 자연히 묘각해지(妙覺海地)로 흘러 들어가느니라.불자여, 이 묘각지(妙覺地) 중에 머물러 오직 화(化)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것을 나타내자면 헤아릴 수 없는 뜻이 있고 헤아릴 수 없는 이름이 있느니라. 그 가운데 일체(一體)를 출생하면 이른바 묘과(妙果)가 항상 청정하게 머무는 것이 허공과 같아서 생각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이름으로 헤아릴 수 없고 이름으로 들어갈 수 없으나 과분(果分)은 얻을 수 있느니라.불자여, 나는 보살의 차제에 육입법문(六入法門)의 무량 공덕을 설하였노라. 이와 같은 육입법문에는 일체 보살로서 들어가지 않는 이가 없나니,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십사억의 사람이 있음을 보지만 모두 본래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이 육입법문에 들어갔느니라.불자여, 내가 지금 처음으로 득도했을 때에 이 나무 사이에서 십세계해(十世界海)의 법문을 설하자 구십억의 사람이 있어서 역시 이 육입명문에 들어갔느니라. 또 보광당(普光堂)에 이르러 십 불국토를 설하자 백만 억의 사람이 있어 이 육입명문에 들어갔느니라.또 제석당(帝釋堂)에 이르러 십주(十住)를 설하자 오백만의 사람이 있어서 이 육입명문에 들어갔느니라. 또 염보당(焰寶堂)에 이르러 십행(十行)을 설하자 천만의 사람이 있어서 이 육입명문에 들어갔느니라.다시 제사천법광당(第四天法光堂)에 들어가 십회향(十廻向)을 설하자 십 항하사만큼의 사람이 있어서 이 육입명문에 들어갔느니라. 또 제육마니당(第六摩尼堂)에 이르러 십지(十地)를 설하자 백만 항하사만큼의 사람이 있어 이 육입명문에 들어갔느니라.또 기원림(祇洹林)에 이르러 입법계품(入法界品)을 설하자 십이 항하사만큼의 사람이 있어서 이 육입명문에 들어갔느니라. 또 이 여덟 번째 회좌(會座)에 이르러서는 시방의 끝없는 대중과 경수보살의 모든 대중을 위하여 육입명문을 설하였는데 모든 대중이 받아 지니는 것이 하나이어서 둘도 없고 다름도 없었느니라.”
8. 집산품(集散品)
부처님께서 경수보살과 이 모임의 십사억 나유타(那由他)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위에서 사십이현성의 인과명관법문(因果明觀法門)을 들었노라. 그러니 일체 대중이 다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킬지니라.”이와 같이 세 번 불자에게 “마땅히 받아 지니고, 마땅히 발심하라”고 말씀하셨다.그때에 모든 대중 가운데 백천의 천자가 있었는데, 이 법문을 듣고 초주심(初住心)을 일으켜 범부의 법을 버리고 조복하고 인내하는 법을 수행하여 십주명관(十住明觀)의 법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다시 만 명의 신심 있는 남녀가 있었는데 모두 청정십행법문(淸淨十行法門)에 들어갔다.그리고 팔만 대범천왕(大梵天王)이 있었는데 초지(初地)의 명관법(明觀法)을 얻었다. 또 팔부(八部) 아수륜왕(阿須輪王)이 있었는데 각각 본래의 모습을 버리고 십신심(十信心)에 들어가 십선행(十善行)을 행하였다. 또 팔만의 제십지(第十地)의 사람이 있어 정각(正覺)을 이룸을 나타내었다.“불자여, 이때 시방무극의 불국토에 있는 일체 대중은 부처님께서 영락 가운데에서 육입(六入)의 법문, 이른바 십주(十住)ㆍ십행(十行)ㆍ십향(十向)ㆍ십지(十地)ㆍ무구지(無垢地)ㆍ묘각지(妙覺地)를 설하심을 듣고 각각 무상보리심을 일으키고 본래의 국토로 돌아갔느니라.또 색계ㆍ무색계의 사람이 있었는데 각각 돌아가 신통을 닦았다. 그리고 본래 머무는 곳으로 돌아가 전하여 보살영락법문을 펴며 천인을 교화해 주었다. 다시 육욕천(六欲天)의 사람이 있었는데 본천(本天)으로 돌아가 널리 모든 천인을 위하여 본행을 헤아릴 수 없이 설하였느니라.그때에 모든 대중들도 각각 받아 지니고 독송하고 그 의미를 명료하게 이해하여 본래의 국토로 돌아가 보살본행을 설하고 제불본업(諸佛本業)을 받아 지니기를 이미 마쳤느니라.”이때에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ㆍ혜해(慧海)ㆍ금강장(金剛藏)ㆍ도화(道華) 등의 팔천 보살이 모든 시방 세계의 여러 불국토 중에서 으뜸가는 제자였으므로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시방의 무명 중생을 위하여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그 의미를 명료히 이해하고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중생을 위하여 공혜도(空慧道)와 입법명문(入法明門)을 열어라.”이때 오천만 명의 대보살이 있었는데, 모두 일생보처(一生補處)보살이었다. 그들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 지니되 겁이 지나도록 소멸되지 않았다.또 헤아릴 수 없는 천녀(天女)가 있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 지녔다. 이때 다른 곳의 무극찰(無極刹)보살과 이 나라의 보살들이 변화 신통으로써 여환삼매(如幻三昧)에 들어가 허공에서 뛸 듯이 춤추며 환희하는 것이 헤아릴 수 없었으니, 영락공덕경(瓔珞功德經)을 듣고 수지하여 마음마다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수행하여 온갖 현성문(賢聖門)을 버리지 않았다.그때에 부처님께서 다시 백만의 변화 신통과 한량없는 광명과 한량없는 청정신(淸淨身)을 나타내시며 거듭 이 금강장해영락경(金剛藏海瓔珞經)을 부촉하셨다.
“너희들 모든 대중은 이 경법을 받아 지녀야 하느니라. 이 경은 과거 한량없는 백천의 부처님께서 마음속으로 행하신 법이므로 너희들은 받아 지니고 공양해야 하느니라.”그때에 일체 대중이 일시에 자리에서 천 가지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비추고 환희하며 보살불가사의영락경(菩薩不可思議瓔珞經)을 받아 지니고 이마로 받들어 공양하며 부처님께 절하고 물러갔다.또 육욕천자(六欲天子)와 십천(十千)의 국왕이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법좌에서 해산하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일시에 눈물을 흘리며 큰소리로 슬피 우니 그 소리가 삼천세계에 가득 찼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울면서 가지 않는 이가 없었다.또 팔십억의 대보살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사무량심으로써 유(有)와 무(無)는 동등한 것이며 무위(無爲)이고 무상(無相)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받들어 지니고 각각 무진법화삼매(無盡法化三昧)에 들어가 환희하며 물러갔다.또 십천의 시행현자(始行賢者)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구관정(九觀定)의 사선(四禪)과 사공정(四空定)ㆍ진멸정(盡滅定)ㆍ칠정(七淨)의 십계(十戒)ㆍ심입정(心入定)ㆍ견도(見道)ㆍ도의(度疑)ㆍ정도(正道)ㆍ행지견(行知見)ㆍ행단지견(行斷知見)으로써 법에 들어갈 수가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께 절하고 물러갔다.이때 좌중에 팔천 보살이 있어서 각각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금강화(金剛華)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미래세에 경을 설하는 보살이 법륜 아래에서 그 법을 듣는 이가 교화를 받아 받들어 행한다면 법용(法用)을 다시 어떻게 해야 합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자여, 잘 물었도다. 불자여, 먼저 마땅히 법을 듣는 자를 위하여 보살의 법계를 수여(授與)하고 그런 후에 보살의 본행인 육입법문(六入法門)을 설할지니라.불자여, 그를 위하여 차례로 사귀법(四歸法)을 수여하여라. 그리고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僧)에 귀의하고, 계(戒)에 귀의하는 사불괴심(四不壞心)을 얻게 한 후에 십계(十戒)를 주어야 하느니라.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거짓말하지 않고, 음행하지 않으며, 술을 팔지 않고, 재가와 출가 보살의 허물을 말하지 않으며, 인색하지 않고, 화내지 않으며,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헐뜯지 않으며, 삼보를 비방하지 않는 이것이 십바라이(十波羅夷)로서 참회할 수 없는 법이니라.불자여, 십계를 받고 나서 또 듣는 자를 위하여 법사를 공양하고 항상 천상의 헤아릴 수 없는 꽃과 향과 백천 가지 등불과 백천 가지 하늘 옷과 영락, 그리고 백천 가지의 기악과 백 가지 맛의 음식ㆍ집ㆍ경서(經書)와 모든 필수품으로 다 공양해야 할 것을 가르쳐야 하느니라.홍통(弘通)의 법사는, 마땅히 부처님을 공경함과 같이, 부모를 모시는 것과 같이, 사화바라문법(事火婆羅門法)에서 제석(帝釋)을 모시는 것과 같이, 부모와 스승과 스님에게 날마다 세 때에 예경하고, 법을 위하여 몸을 버리고 목숨을 다하여야 하느니라. 이에 불자여, 이와 같이 법을 구하는 사람에게 곧 보살의 본행(本行)과 백천만 부처님께서 전수하신 영락법문(瓔珞法門)을 설해야 하느니라.”그때 십억 대중이 찬탄하여 말하였다.
“미래세 중에 법이 없고 삼보가 없고 현인이 없을 때에 겁은 악세(惡世)를 따라서 일어나므로 그 법을 설하거나 그 법을 듣는 것이 매우 드물고 어려울 것입니다.”그리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각각 슬피 울고 통곡하니 땅이 바다와 파도로 변했고 삼천세계가 뒤집히고 엎어졌으며 스물여덟 가지 별자리와 해와 달이 나타나지 않았다.이때에 대중은 “도리어 신통력을 거두고 모두 다 공경하며 수지하고 독송하며, 문구의 뜻[義句]을 해설하면 십 겁에도 소멸하지 않고 무궁무진하리라”고 하니, 각각 기뻐하고 받들어 행하며 예를 올리고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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