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21권
법원주림 제21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10. 복전편(福田篇)[여기에 3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우열부(優劣部) 평등부(平等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각(大覺)께서 열반하심으로부터 복은 여러 성인에게로 돌아갔으며, 개사(開士)1)와 응진(應眞)2)은 말법(末法)의 가르침을 크게 떨치고 또 여러 세계에 교화를 날려 인연을 따라 껴잡고 인도하니, 느낌이 다르면 같은 방에 있어도 하늘처럼 멀다. 그러나 응함이 합치되 경계는 다르나 얼굴을 대한 듯 하다. 그러므로 한 스님에게라도 공경하면 5안(眼)이 깨끗하게 열리고, 한 털만큼이라도 보시하면 6바라밀[六度]이 끝이 없을 것이다.
(2) 우열부(優劣部)
『우바새계경(優婆寒戒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복전(福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은전(報恩田)이고, 둘째는 공덕전(功德田)이며, 셋째는 빈궁전(貧窮田)이다. 보은전은 이른바 부모와 사장(師長)과 화상(和上)이다. 공덕전은 난법(暖法)으로부터 아뇩보리에 이르기까지이다. 빈궁전은 일체 빈궁하고 곤란하고 괴로움에 처한 사람들이다.
세존은 두 가지의 복전이니, 첫째는 보은전이고, 둘째는 공덕전이며, 법도 또한 이와 같다. 승가는 세 가지의 복전이니, 첫째는 보은전이요, 둘째는 공덕전이며, 셋째는 빈궁전이다.
이런 이유로 이미 계(戒)를 받은 이는 마땅히 지극한 마음으로 3보께 공양해야만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재물과 복전을 함께 보시하는데,
보시하는 마음이 모두다 평등하면, 이 두 가지의 복덕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재물과 마음이 함께 평등하여 복전이 훌륭하면 얻는 과보도 훌륭하다. 어떤 이의 복전과 마음이 모두 하열해도 재물이 훌륭하면 얻는 과보는 훌륭하다. 어떤 이의 복전과 재물이 모두 하열해도 보시하는 마음이 훌륭하면 얻는 과보는 훌륭하다. 어떤 이의 재물과 마음이 모두 훌륭하지만 보시하는 마음이 하열하면 얻는 과보는 그렇지 못하다.
선남자여, 지혜로운 사람은 보시할 때에 과보를 바라지 않는데, 왜냐 하면 이 인(因)이 반드시 그 과(果)를 얻을 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 『승가타경(僧伽吒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일체용(一切勇)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삼천대천세계를 깨로 가득 채우고, 그 깨와 같은 수의 전륜성왕에게 어떤 사람이 보시한다면, 그 보시공덕은 한 수다원에게 보시하는 것만 못하고, 삼천세계의 모든 수다원에게 보시하는 공덕도 한 사다함에게 보시하는 것만 못하며, 삼천세계의 모든 사다함에게 보시하는 공덕도 한 아나함에게 보시하는 것만 못하고, 삼천세계의 모든 아나함에게 보시하는 공덕도 한 아라한에게 보시하는 것만 못하며, 삼천세계의 모든 아라한에게 보시하는 공덕도 한 벽지불에게 보시하는 것만 못하고, 삼천세계의 모든 벽지불에게 보시하는 공덕도 한 보살에게 보시하는 것만 못하며, 삼천세계의 모든 보살에게 보시하여도 한 여래 앞에서 청정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보다 못하고, 삼천세계의 모든 여래 앞에서 청정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도 범부가 이 법문을 듣는 공덕보다 못하거늘, 하물며 이 경을 서사(書寫)하고 수지 독송하는 데 비하겠는가.’
그 때 일체 대중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한 부처님의 복덕은 얼마나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대지의 티끌과 같고 항하(恒河)의 모래와 같은 중생이 모두
십지(十地) 보살이 된다면, 그런 모든 십지 보살이 가진 공덕도 한 부처님 복덕의 힘보다도 못하다고 말씀하셨다.”
또『아비담감로미경(阿毘曇甘露味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복전이 좋다는 것[田好]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대덕전(大德田)이고, 둘째는 빈고전(貧苦田)이며, 셋째는 대덕빈고전(大德貧苦田)이다. 대덕전은 이른바 부처님과 벽지불과 4과(果)를 얻은 사문 등이다. 빈고전은 이른바 축생과 늙고 병든 이 등이다. 대덕빈고전은 이른바 성인과 늙고 병든 이 등이다. 만약 대덕전에 공경하는 마음으로 보시한다면 큰 과보를 얻을 것이고, 만약 빈고전에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보시한다면 큰 과보를 얻을 것이며, 만약 대덕빈고전에 공경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보시한다면 큰 과보를 얻을 것이다. 이것을 복전이 좋은 것이라 한다.
재물이 좋은 것[物好]이란 어떤 것인가. 살생이나 도둑질이나 빼앗거나 속여서 얻은 것이 아닌 물건으로 깨끗한 물건 얼마 정도를 보시하면 이것을 재물이 좋은 것이라 한다.
만약 부처님께 보시한다면 곧 일체의 복을 얻을 것이고, 만약 승가[衆僧]에 보시하여 받아 쓰게 한다면 일체의 복을 얻을 것이며, 아직 받아 쓰지 못하여 일체의 복을 얻지 못하였더라도, 공양법 때문에 큰 과보를 얻게 된다.
만약 학인(學人)이 총명하여 크게 지혜로워서 법으로써 공양하면 이것을 공양이라 한다. 법을 보시하면 부(富)를 얻고, 보시를 받으면 마침내 즐거움과 힘과 목숨 등을 얻는다.
공덕이 수승(殊勝)하면 큰 과보를 얻는데, 만약 축생에게 보시한다면 백 세(世)의 과보를 받을 것이고, 만약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천세의 과보를 받을 것이며, 만약 선한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천만 세의 과보를 받을 것이고, 만약 욕심을 떠난 범부에게 보시한다면 천만억 세의 과보를 받을 것이며, 만약 도를 얻은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무수세(無數世)의 과보를 받을 것이며, 만약 부처님께 보시한다면 열반에 이르는 과보를 받게 된다.
또 보시에는 6난(難)이 있는데, 첫째는 교만한 보시이고, 둘째는 이름을 구하는 보시이며, 셋째는 세력을 얻기 위한 보시이고, 넷째는 억지로 주는 보시이며, 다섯째는 인연을 따라서 하는 보시이고, 여섯째는 갚음을 구하는 보시이다.”
또 『불설화취다라니경(佛說華聚陀羅尼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 수미산과 같은 7보(寶)를 가지고 1겁 동안 성문과 벽지불에 보시하는 복덕이 출가인이나 재가인이 1전(錢)을 가지고 처음 보리심을 일으킨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만 못하다. 얻은 복덕의 다소를 비교하면 앞의 복덕은 뒤의 것의 백분 천분 만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내지 산수와 비유로도 미치지 못한다.’”
『보량경(寶梁經)』3)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나는 지금 말하노라. 세상에는 보시를 받을 수 있는 두 가지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이냐 하면, 첫째는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는 사람이고, 둘째는 해탈한 사람이다. 이 시주(施主)들로 하여금 큰 이익을 얻게 하는 세 가지의 보시가 있는데, 첫째는 항상 음식을 보시하는 것이고, 둘째는 방사(房舍)를 보시하는 것이며, 셋째는 자비심을 행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복(福) 가운데 자비심이 가장 뛰어나다.”
또 『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수달은 가세가 빈궁하여 재산이 없었다. 그러나 도덕(道德)을 지극히 믿었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보시를 가르쳤을 때 그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많이 보시할까요, 적게 보시할까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시하는 것이 많다 하더라도 얻는 과보는 적을 수가 있고, 보시하는 것이 적다 하더라도 얻는 과보는 많을 수가 있다. 즉, 보시는 많이 하더라도 지극한 마음이 없어서 스스로 교만하고 삿된 견해를 믿는 경우에는 최상이 되지 못하며, 보시하는 것이 비록 많다 하더라도 얻는 과보가 적은 것은 마치 땅이 메말라 씨는 많이 뿌렸지만 수확이 매우 적은 것과 같다. 어떤 것을, 보시는 적지만 큰 복을 얻는다고 하는가 하면, 마치 보시는 적다 하더라도 기뻐하고 공경하며, 보시하고도 과보를 바라지 않으며, 부처님과 벽지불과 4과(果)를 얻은 사문 등에게 보시하는 것과 같다. 보시하는 것은 적다 하더라도 얻은 과보는 넓고도 큰 것은 마치 좋은 밭에 씨는 적게 뿌렸지만 거두어들인 것은 매우 많은 것과 같다.’”
또 『지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큰 자비심으로 보시하라. 보시하는 물건은 비록 같지만
복덕이 많고 적은 것은 마음의 우열(優劣)을 따르는 것이다. 사리불이 한 발우의 밥을 부처님께 올렸는데, 부처님께서는 곧 그것을 개에게 돌려주면서 사리불에게 물으신 것과 같다.
‘그대는 밥을 내게 주었고, 나는 그것을 개에게 주었다. 누가 더 많은 복을 얻겠느냐?’
사리불이 답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제가 이해하기로는 부처님께서 개에게 주신 복이 더 많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복전의 제일이지만, 그것도 개에게 주는 것보다는 못합니다.’
이것으로써 알 수 있다. 즉, 큰 복은 마음에 있지 밭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마치 사리불의 천만억 배도 부처님의 마음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왜냐 하면 마음은 안의 주인이요, 밭은 마음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혹 때로는 보시의 복은 복전에 달려 있으니, 이것은 마치 저 억이(億耳) 아라한의 경우와 같다. 그는 옛날 꽃 한 송이를 불탑에 공양하여 91겁 동안 인간과 천상에서 즐거움을 누리고, 남은 복덕의 힘으로 아라한이 되었던 것이다. 또 마치 아수가왕(阿輸迦王)과 같이 그가 어린아이였을 때에 흙을 부처님께 보시하여 염부제의 왕이 되어 8만의 탑을 세우고 최후에는 도를 얻었던 것이다. 보시하는 물건은 지극히 미천하고 어린아이는 마음이 얇았지만 다만 복전이 오묘하기 때문에 큰 과보를 얻었던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큰 복은 좋은 복전으로부터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대(大)ㆍ중(中)의 상(上)은 세 가지 것을 모두 갖추면 마음과 물건과 복전이 다 오묘하게 된 것이니, 이것은 마치 부처님께서 좋은 꽃으로 시방의 부처님께 흩뿌리며 공양한 경우와 같은 것이다.”
【문】 이 보시의 복은 어떻게 증장되는 것인가?
【답】 때 맞추어 보시하기 때문에 복이 증장되는 것이니, 이것은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이 굶주릴 때 보시하면 얻는 복이 증장된다. 혹은 먼 길을 가고 올 때나, 혹은 넓은 들이나 험한 길에서 보시하거나, 만약 늘 보시해 끊이지 않거나, 혹은 항상 보시하기를 생각했다면 그 복은 증장되는 것이다.”
또 『증일아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축생에게 먹을 것을 보시하면 백 배의 복을 얻고, 계를 범한 사람에게 음식을 보시하면 천 배의 복을 얻으며, 계를 지키는 사람에게 음식을 보시하면 만 배의 복을 얻고, 욕심을 끊은 선인(仙人)에게 음식을 보시하면 천만 배의 복을 얻으며,
수다원(須陀洹)을 향하는 자에게 음식을 주면 그 얻는 복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인데, 하물며 수다원을 이룬 자이겠는가. 또 하물며 사다함(斯陀含)을 향하는 자와 사다함의 도를 얻은 자와, 나아가 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ㆍ여래 등이겠는가. 그 복의 공덕은 헤아릴 수 없다.”
또 『지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마치 대월지국(大月氏國)의 불가라성(弗迦羅城)에 한 화가가 있었는데, 이름을 천나(千那)라고 하였다. 그는 동방의 여러 나라로 다니다가 시라국(施羅國)의 손이 되어 12년 동안 그림을 그려 30냥[兩]의 돈[金]을 벌어서 그 돈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불가라성 안에서 북을 쳐서 큰 모임을 알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거기 가서 여러 스님들을 보자 신심이 청정해서 곧 유나(維那)에게 물었다.
‘얼마 정도의 물건을 가지면 이 대중들에게 하루 음식을 공양 올릴 수 있겠습니까?’
유나는 대답하였다.
‘돈 30냥 정도면 하루 음식을 충분히 공양할 수 있습니다.’
그는 곧 가지고 있던 돈 30냥을 유나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저를 위해 하루 음식 공양을 준비하십시오. 저는 내일 오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 아내는 물었다.
‘12년 동안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답하였다.
‘나는 돈 30냥을 벌었소.’
곧 부인이 물었다.
‘그 돈은 어디 있습니까?’
‘복전에 종자를 뿌렸소.’
부인이 말하였다.
‘어떤 복전입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여러 스님들에게 보시했소.’
부인은 곧 그를 결박해 관청에 보내어 죄를 묻게 했다. 재판하는 대관(大官)이 그 부인에게 물었다.
‘무슨 일 때문인가?’
그 부인이 대답했다.
‘저희 남편은 미쳤습니다. 12년 동안 번 30냥의 돈으로 처자식은 돌보지 않고, 모두 남에게 주었습니다. 관제(官制)에 의해 결박해 데리고 왔습니다.
대관은 다시 남편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처자식은 돌보지 않고 그것을 모두 남에게 주었는가?’
그는 대답했다.
‘저는 전생에 공덕을 짓지 못했으므로 금생에 빈궁하여 온갖 쓰라린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금생에 복전을 만났는데도 복의 종자를 심지 않으면 후생에 또 가난할 것입니다. 그렇게 가난하고 또 가난해 계속되면 다시는 벗어날 때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이
빈궁을 단박에 다 버리고 싶습니다. 그 때문에 그 돈을 모두 스님들에게 보시한 것입니다.’
대관은 원래 우바새로서 신심이 청정했었는데, 이 말을 듣자 곧 찬탄하여 말하였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애써 갖은 고생으로 모은 이 적은 돈을 모두 스님들에게 보시했구나. 당신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다.’
곧 몸의 오랏줄을 풀어 주고 타는 말과 한 마을[聚落]을 모두 그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당신은 처음 스님들에게 보시할 때 스님들이 아직 공양을 받지 않았지만, 이것은 종자를 아직 심지 않았지만 싹은 이미 생겨난 것이다. 큰 열매가 반드시 나중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얻기 어려운 물건을 모두 보시하면 그 복이 가장 많다고 한 것이다.”
(3) 평등부(平等部)
『대장엄론(大莊嚴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개 복전을 취하려면 마땅히 그 덕을 취하고 젊음이나 늙음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일찍이 들으니, 어떤 단월이 자기가 아는 도인(道人)을 보내어 승가람(僧伽藍)에 가서 여러 스님들을 청하면서 다만 나이 든 장로[老大]에게만 쓰고 나이 어린 이에게는 쓰지 말라고 했다. 그 뒤에 그가 아는 도인은 여러 스님들을 청하고, 그 다음에 사미(沙彌)에게 갔으나 그에게는 쓰지 않았다. 사미는 물었다.
‘왜 우리들에게는 쓰지 않습니까?’
그는 답하였다.
‘단월이 쓰지 않는 것이지 제가 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 도인은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이 많은 숙덕(宿德)이
머리는 희고 얼굴은 주름지고
눈썹은 빼어나게 길고 이는 빠져 있고
등은 굽고 사지는 늘어져 있구나.
단월은 이 같은 사람만 좋아하고
어리고 젊은이 좋아하지 않는구나.
그 때 그 절에 있는 모든 사미들은 다 아라한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이렇게 말하였다.
‘저 단월은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덕행이 있는 이는 좋아하지 않고, 다만 늙은 노인들만 탐한다.’
그리고 곧 게송을 말하였다.
이른바 장로(長老)라 하는 이가
반드시 백발에만 있는 것 아니라네.
얼굴은 주름지고 이는 빠져서
어리석고 지혜가 없구나.
귀한 것은, 복을 잘 닦고
모든 악을 없애 버리고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는 이
이런 사람을 장로라 이름하네.
우리는 비방과 칭찬을 깨뜨리고
좋다 싫다는 마음 내지 않지만,
다만 저 단월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것 마음에 걸리네.
저이는 또 스님 복전을
비방하면서 좋다 나쁘다 하네.
우리는 이제 빨리 가서
저 단월을 일깨워 주세.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말게 하려고
그리하여 저 사미들은
곧 신통의 힘으로
노인의 모습으로 변화했다네.
머리는 희고 얼굴은 주름지고
눈썹은 길고 이는 빠지고
등은 굽은데 지팡이 짚고
저 단월의 집으로 갔다네.
단월은 그들을 보고서는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향을 사르고 꽃을 흩뿌리며
빨리 자리에 앉으라 청하네.
그들이 앉고서는 잠깐 사이에
사미의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단월은 몹시 놀랐으니
변화란 바로 이와 같네.
천상의 감로(甘露)를 마시기 위해
그 얼굴색이 갑자기 변한 것이네.
그 때 사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야차도 아니요 나찰도 아닙니다. 먼저 단월께서 노인만을 선택하여서 스님들의 복전에 높고 낮음이 있다는 생각을 하여 그대의 선근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았으므로, 이렇게 변화하여 당신의 마음을 바꿔 참회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비유하면 모기가 그 주둥이로
바다 밑에까지 닿으려 하는 것과 같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스님들의 공덕을 헤아릴 자 없다네.
아무도 저 스님네의
그 공덕을 헤아릴 수 없거늘
하물며 홀로 당신 혼자만이
그것을 헤아리려 하는가.
‘당신은 어째서 여래께서 얕잡아 볼 수 없는 네 가지를 말씀하신 것을 듣지 못했습니까? 그것은 즉, 왕자와 뱀과 불과 사미입니다. 저 암라(菴羅) 열매가 속은 설익었으면서 겉은 익고 겉은 설익었으면서 속은 익은 것처럼, 함부로 사람의 장단(長短)을 말하지 마십시오. 한 찰나 사이에도 도를 얻을 수 있으니, 부디 스님 복전에 대해서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마십시오.’
그리고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스님들의 그 공덕의 바다는
측량할 사람 아무도 없네.
부처님도 그들을 기꺼이 공경하는 마음 내시고
스스로 온갖 게송으로 찬탄하시는데,
하물며 다른 모든 사람들
어찌 그들을 찬탄하지 않으리.
드넓고도 큰 좋은 복전은
조금만 씨 뿌려도 큰 수확 얻네.
그러므로 저 스님네들
늙었거나 또 젊었거나
평등한 마음으로 공양하고
부디 거기에 분별심 내지 말라.
그 때 단월은 이 말을 듣고 두려움으로 온몸의 털이 일어섰다. 그리고 5체(體)를 땅에 던져 가엾이 여겨 주시길 구하면서 참회하였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4과(果)를 통달하고
6정(情)을 환희 알아
깊은 뜻을 찾아 깨닫고
이치 증득해 상서로움을 품었네.
늙은이 젊은이 화목하여
두루 공경하여 정성 들여서
인연을 따라 공양을 올리면
깜깜한 어둠에 빠진 자 감싸안아 인도하리라.”
11. 귀신편(歸信篇)[여기에 3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소성부(小誠部) 대성부(大誠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이며, 지혜는 세상을 벗어나는 해탈의 기초이다. 믿음이 없으면 가벼운 배에 오를 수 없고, 지혜가 없으면
미세한 의혹을 끊을 수 없다. 이 도는 환히 드러나 오르고 잠김을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리석은 범부들은 업인이 과보를 일으키는 줄을 믿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자주 본다.
“빈부(貧富)는 자연이요 고락(苦樂)은 천성(天性)이다. 좋고 추함은 참음과 성냄에 의하지 않으며, 귀하고 천함은 공경함과 게으름과는 관계가 없다. 중생이 스스로 느끼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초목의 좋고 나쁨이 자연인 것과 같은데, 어떻게 인(因)으로 말미암아 얻어지겠는가.”
그러나 지금 불경에 의하면 외도(外道)의 말과 같지 않다. 대개 빈부를 논한다면 모두 업연(業緣)에 의한 것이고, 귀천도 운명과는 관계가 없으며, 어리석음과 지혜로움도 생각을 바꿀 수 없고, 곱고 추함도 몸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보의 좋고 추함은 업으로 결정된다.”
『서전(書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명상(命相)의 길흉(吉凶)은 하늘에 달렸다.”
이것으로써 말하자면 군민(軍民)으로서 업이 가난한 자는 물건을 주어도 얻지 못하고, 그 상이 반드시 부유할 자는 그대로 두어도 항상 풍족하다. 그러므로 한(漢)나라 문제(文帝)가 꿈속에서 등통(鄧通)을 사랑했을 때, 관상가가 등통의 상을 보고 가난해 굶어 죽을 것이라고 하자, 문제가 말하였다.
“내가 부유하게 할 수 있는데 어째서 가난할 것이라 하는가?”
그리고 동산(銅山)을 주어 그 주조[冶鑄]를 그에게 맡겼다. 훗날 그는 난리를 만나 피난을 갔다가 어떤 사람 집에서 굶어 죽었다.
또 영품리왕(寧禀離王)의 시비(侍婢)가 임신을 했는데, 관상을 보는 이가 점을 쳐 보고 왕이 될 귀상(貴相)이라고 하자, 왕이 말하였다.
“이는 내 자식이 아니다.”
그리고 곧 죽이려 했다. 시비가 말하였다.
“어떤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와 제가 아이를 가진 것입니다.”
아들을 낳자 왕은 상서롭지 못하다 하고, 곧 아이를 우리에 버리자 돼지가 입김을 불어 주었고, 마구간에 버리자 말이 젖을 주어서 죽지 않다가 마침내 부여(夫餘)의 왕이 되었다. 그러므로 업연(業緣)의 명운(命運)은 명부[冥非]에서 결정되어 끝내 고칠 수 없고, 주거나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지으면 재앙을 받으니, 업과 보가 어긋나지 않는 이 이치를 환하게 알 수 있는데, 어찌하여 어리석음을 지키고 미혹을 안고 있으면서 깨닫지를 못하는가.
또 옛날 무정(武丁) 때에 뽕나무와 벼가 조정에 함께 나자 태사(太史)가 점을 치고는 말하였다.
“들풀이 조정에 났으니 이 조정은 망할 것이다.”
무정이 두려워하여 몸을 삼가해 선을 닦았더니 뽕나무와 벼가 말라 죽었다. 상(商)나라 도의 중흥(中興)이 어찌 선을 행하여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또 제신(帝辛) 때에 참새가 까마귀를 낳아 성(城) 모퉁이에 있었다. 태사가 점을 치고는 말하였다.
“작은 것이 큰 것을 낳았으니 나라가 반드시 번창할 것이다.”
제신은 교만하고 포악하여 선정(善政)을 닦지 않았는데 상나라가 드디어 망했으니, 이것은 어찌 악을 행하여 재앙을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와 같이 역사의 사실을 모두 인용하려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어찌하여 완고하여 우둔하게 경전과 역사를 어기는가.
세상 사람들이 다 보듯이 봄에 씨를 뿌리면 가을에 거두어들이니, 마치 보시한 그대로 갚음이 오는 것은 간직한 천을 손에 돈을 쥔 이에게 주는 것과 같고, 덕에는 반드시 갚음이 이르러 오는 것은 입에 문 구슬을 사슴을 짊어진 이에게 주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 옛날 어떤 사람은 한 바가지의 물을 주린 사람에게 주고도 바퀴만큼의 갚음을 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 한 그릇의 재밥을 대중에게 공양하고도 어찌 복록(福祿)의 갚음이 없겠는가.
(2) 소성부(小誠部)
『열반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두 가지의 중생이 있는데, 하나는 믿음이 있는 자이고, 또 하나는 믿음이 없는 자이다. 믿음이 있는 자는 다스릴 수 있는 자[可治]라 이름하며, 그들은 반드시 열반을 얻을 것이니, 부스럼과 혹이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는 자를 일천제(一闡提) 또는 다스릴 수 없는 자[不可治]라 이름한다.’”
또 『잡아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존께서 바라문을 위해 밭 가는 게송[耕田]을 말씀하셨다.
신심(信心)을 종자로 하고
고행(苦行)을 때 맞춰 오는 비로 하며
지혜를 수레의 멍에로 하고
부끄러움을 수레의 끌채로 하여서
바른 생각으로 스스로 수호하면
이를 훌륭한 운전자라 하네.
몸과 입의 업을 잘 감싸고 간직해
먹을 때를 알아 깊이 간직하여라.
바로 타기 위해 진실하고
느긋하게 쉬기 위해 즐겁게 머물며
황폐할까 걱정해 정진하고
빨리 가기 위해 안온한다네.
곧장 나아가 물러서지 않으면
근심 없는 곳에 이르게 되리니
이렇게 밭을 가는 자
감로(甘露)의 열매 편안히 얻으리.
이렇게 밭을 가는 자
다시는 어떤 생[有]도 받지 않으리.
그 때 바라문은 이 게송을 듣고는 발심하고 출가하여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또 『보성론(寶性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섯 가지의 사람을 위해서 3보(寶)를 말하니, 3보는 첫째는 조어사(調御師)이고, 둘째는 조어사의 법이며, 셋째는 조어사의 제자이다.
어떤 것들이 여섯 가지의 사람인가. 첫째는 대승(大乘)이고, 둘째는 중승(中乘)이며, 셋째는 소승(小乘)이고, 넷째는 부처님을 믿는 이이며, 다섯째는 법을 믿는 이이고, 여섯째는 승가[僧]를 믿는 이이다.”
또 『승가타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때 일체용(一切勇)보리살타(菩提薩埵)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 때문에 여기 모인 중생들이 보리심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용이여, 과거 무수 아승기겁 전에 부처님께서 계셨는데, 보덕(寶德)이라고 불렸다. 그 때 나는 마납(摩納)의 아들이었다. 여기 모인 중생들은 부처님의 지혜에 머무르는 사람으로서 옛날에는 다 사슴들이었다. 나는 그 때 발원하였다.
≺나는 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다 부처님의 지혜 안에서 머무르게 하리라.≻
그 때 사슴들은 모두 내 말을 듣고 이들도 그렇게 발원하였다. 일체용이여, 여기 모인 중생들은 그 선근으로 인해 장차 아뇩보리를 얻게 될 것이다.’”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어떤 중생이 선을 닦고 청정한 마음으로 불ㆍ법ㆍ승에 귀의하여 열 번 손뼉을 치는 사이에 다른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목숨을 마치고는 백마니천(白摩尼天)에 태어나서 마음껏 5욕락(欲樂)을 누리면서 기뻐하고, 3귀의의 공덕의 과보가 다하면 미래 세상에 열반에 이르게 될 것이다.”
또 『무상처경(無上處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의 무상처(無上處)가 있는데, 첫째는 부처의 무상처이고, 둘째는 법의 무상처이며,
셋째는 승(僧)의 무상처이다. 만약 모든 중생으로서 두 발이거나 네 발이거나 발이 없거나 많은 발이거나, 형체[色]가 있거나 형체가 없거나 생각이 있거나 생각이 없거나 생각이 있지도 않고 생각이 없지도 않거나, 그들 속에서 여래가 무상처를 설명할 때, 만약 어떤 중생이 그 무상처에 대해 믿고 향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는 천상과 인간에서 무상(無上)의 과보를 얻을 것이다.’”
(3) 대성부(大誠部)
『출생보리심경(出生菩提心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때에 가섭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리심을 일으킨 사람은 얼마만큼의 복을 거두게 됩니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이 부처님 나라의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믿는 마음에 머물고 또 계율을 지키게 한다면
그와 같은 최상의 큰 복 무더기도
이 도(道)의 마음에는 16분의 1에도 미치지를 못하리.
만일 이 부처님 나라의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믿는 마음에 머무르고 법을 행하게 한다면
그와 같은 최상의 큰 복 무더기도
이 도의 마음에는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
만일 항하(恒河)의 모래알과 같은 모든 부처님 나라에
모두 절을 짓고 복을 구하기 위해
다시 모든 탑을 수미산처럼 만든다 해도
그것도 도의 마음에는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
만일 어떤 이가 항하의 모래알 같은 부처님 나라에
모두 7보를 두루 보시한다면
그와 같은 최상의 큰 복무더기도
이 도의 마음에는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
마치 철위산(鐵圍山)처럼 높고 넓고도 크게
모든 부처님을 위해 한량없이 탑을 만드는데
이같이 복을 구하는 저 중생들도
이 도의 마음에는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
만일 모든 중생들이 온 겁(劫)이 다 차도록
혹은 머리에 혹은 어깨에 항상 짐을 이고 메면
그 같은 가장 훌륭한 큰 복 무더기도
이 도의 마음에는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
이 같은 사람들이 훌륭한 법을 얻되
만약 보리를 구하여 중생들을 이롭게 한다면
그들 중생들은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서
이들은 견줄 데도 없겠거니와 하물며 그 위겠는가.
그러므로 이런 모든 법을 들고서
지혜로운 사람이 늘 법을 즐기는 마음을 내면
그는 그 끝이 없는 큰 복의 무더기를 얻어
위없는 도를 빨리 증득하게 되리라.”
또 『열반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가섭을 찬탄하셨다.
‘만일 어떤 중생이 희련강의 모래알과 같은 부처님 처소에서 보리심을 일으킨다면, 그는 이 악한 세상에서 이 경전을 수지하고 비방하지 않게 되리라. 선남자야, 만일 어떤 중생이 1항하(恒河)의 모래알과 같은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보리심을 일으킨다면, 그런 뒤에는 악한 세상에서 이 경전을 비방하지 않고 이를 사랑하고 즐거워하게 되리라. 그러나 남을 위해 널리 분별하여 설하지는 못하리라. 만일 어떤 중생이 2항하의 모래와 같은 부처님 처소에서 보리심을 일으킨다면, 그는 그런 뒤에는 악한 세상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이것을 바로 믿어 즐거워하며 수지하고 독송할 것이다. 그러나 그도 남을 위해 널리 설하지는 못하리라.
또 만일 어떤 중생이 3항하의 모래알과 같은 부처님 처소에서 보리심을 일으킨다면, 그는 그런 뒤에는 악할 세상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이 경전을 수지하고 독송하며 베껴 쓸 것이다. 그러나 남을 위해 설하면서도 깊은 뜻은 이해하지 못하리라.
또 만일 어떤 중생이 4항하의 모래알과 같은 부처님 처소에서 보리심을 일으킨다면, 그는 그 뒤에는 악한 세상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이 경전을 수지하고 독송하며 베껴 쓸 것이며, 남들을 위하여 16분의 1만큼의 뜻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도 남을 위해 완전히 설하지는 못하리라. 또 만일 어떤 중생이 5항하의 모래알과 같은 부처님 처소에서 보리심을 일으킨다면, 그는 그 뒤에는 악한 세상에서 이 경을 비방하지 않고 수지 독송할 것이다. 그리고 남을 위해서는 16분의 8의 뜻을 설명하리라.
또 만일 어떤 사람이 6항하의 모래알과 같은 부처님 처소에서 보리심을 일으킨다면, 그는 그 뒤에는 악한 세상에서
이 경을 비방하지 않고 수지 독송할 것이다. 그리고 남을 위해서는 16분의 12의 뜻을 설명하리라. 또 만일 어떤 중생이 7항하의 모래알과 같은 부처님 처소에서 보리심을 일으킨다면, 그는 그 뒤에는 악한 세상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수지 독송하며, 남을 위해서는 16분의 14의 뜻을 설명하리라.
또 만일 어떤 사람이 8항하의 모래알과 같은 부처님 처소에서 보리심을 일으킨다면 그는 그 뒤에는 악한 세상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수지 독송하며, 또한 남을 권해 쓰고 베껴 쓰게 하며, 스스로도 받아 듣고 남도 받아 듣게 하리라.’”
또 『대비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중생이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한 번만이라도 신심을 일으킨다면, 이 같은 선근은 끝내 없어지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다른 모든 선근이겠는가.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한 털을 1백 갈래로 쪼개어 그 한쪽 털로 한 물방울을 찍어 가지고 내게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이 물을 구담(瞿曇)에게 드립니다. 이 물을 불어나거나 줄어들게 하지 마시고, 또한 이 물을 바람이나 햇볕에 쪼여 날리거나 마르게도 하지 마시고, 새나 짐승들이 이것을 다 마셔 버리게도 하지 마시고, 다른 물에 섞이게 하지도 마시고, 그릇에 담아 땅에 두지도 마십시오.>
여래는 그 때 그것을 받아 항하에 넣어 소용돌이에 빠지게 하지도 않고, 또 다른 물건과 부딪치게 하지도 않았다. 이와 같이 그 물방울이 큰 강물 속에서 흐름을 따라 가면서도 소용돌이에 빠져들지도 않고 아무 장애도 없으며, 모든 새나 짐승들이 마셔 버리지도 않는다면 이렇게 이 물방울은 불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아 한결같아 예전과 같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큰 물과 뭉쳐서 함께 점점 큰 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만일 이 물방울이 비람풍(毘嵐風)4)이 일어나 세계가 무너질 때, 가령 이 사람이 1겁 동안 세상에 살고,
나도 이와 같이 1겁 동안 세상에 산다면, 그 때 그 사람은 겁이 다할 때에 내게 와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구담이시여, 내가 전에 당신에게 준 물이 지금은 어디 있습니까?≻
여래는 그 때 그 물방울이 큰 바다 속에 있음을 알고, 그것이 있는 곳에서 다른 물에 섞이지도 않았으며, 불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고 예전과 똑같음을 알고 봄으로 그것을 가지고 와서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여래ㆍ응공ㆍ정변지는 큰 신통력과 무량한 지견(知見)으로 걸림이 없이 분명히 알아 주고받는 사람들 중에서 최상이요 최고이다. 만일 부처에게 그런 미세한 물방울을 주어 그것이 오랜 겁을 지나도록 아무 손상이 없다면 이러한 이치를 알아야만 할 것이다.
아난아, 그 가는 털 끝은 심의식(心意識)을 비유한 것이고, 항하는 생사의 흐름을 비유한 것이며, 한 물방울은 한 번 발심한 미세하고 조그만 선근을 비유한 것이고, 큰 바다는 부처ㆍ여래ㆍ응공ㆍ정변지를 비유한 것이며, 준 사람은 저 청정하게 믿는 바라문ㆍ장자ㆍ거사 등을 비유한 것이고, 1겁 동안의 삶은 여래가 저것을 받아 물에 둔 것이 마침내 손상되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며, 또한 그가 준 물방울이 오랜 겁을 지나도록 한 털만큼도 없어지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이와 같이 아난아, 만일 부처님에 대해 한 번만이라도 발심한다면 그 선근을 잃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훌륭하고 묘한 다른 선근이겠는가. 나는 말하노니, 이 사람들은 모두 다 열반으로 나아갈 것이다. 비록 다른 불선으로 지옥ㆍ아귀ㆍ축생의 3도(塗)에 떨어져 있더라도 본래의 선근으로써 부처님은 그것을 아시고 거기서 건져내시어 무외(無畏)의 언덕에 두어 그로 하여금 식(識)이 심은 선근을 기억하여 그를 일체의 고통이 그치고 일체의 즐거움을 얻게 하실 것이다.’”
또 『무외녀경(無畏女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때 아사세왕(阿闍世王)의 딸 무외덕(無畏德)은 단정하기 비할 데 없고 가장 훌륭하고 오묘한
공덕을 성취하였다. 나이가 열두 살이 되자 그 부왕(父王)의 당각(堂閣)에서 금보(金寶)로 된 신을 신고 앉아 있었다. 그 때 무외덕은 모든 성문들을 보고도 일어나 맞이하지 않고 잠자코 있으면서 함께 안부를 묻지도 않고 맞이하여 예배도 하지 않으며, 자리를 사양하지도 않았다. 아사세왕은 그녀가 잠자코 있는 것을 보고 곧 말했다.
‘너는 어찌 모르는가? 이들은 다 석가여래의 상족(上足) 제자로서 큰 법을 성취하지 않았느냐. 또한 세간의 복전(福田)이 아니시더냐. 모든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걸식하며 다니는 것이다. 너는 이제 그들을 보았는데도 왜 일어나지도 않고 달려가 예배하지도 않으며, 서로 안부를 묻지도 않고 또 자리를 양보하지도 않는가? 너는 지금 무엇을 보았기에 일어서 맞이하지 않는가?’
그 때 무외덕은 부왕에게 말하였다.
‘알 수 없습니다, 대왕님. 대왕님은 과연 저 전륜성왕이 모든 소왕(小王)을 보고 일어나 맞이하는 것을 보셨거나 또 그런 말을 들으셨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니다.’
무외덕이 또 말하였다.
‘또 과연 짐승의 왕인 사자가 여우를 보고 일어나 맞이하는 것을 보셨거나 또 그런 말을 들으셨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니다.’
무외덕이 또 말하였다.
‘제석천왕이 다른 천인들을 맞이하는 것을 보셨거나 들으셨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니다.’
무외덕이 또 말하였다.
‘또 과연 저 큰 바다의 신(神)이 강의 신에게 예배하는 것을 보셨거나 또 그런 말을 들으셨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니다.’
딸이 말하였다.
‘대왕님, 그와 같이 보살은 발심하여 아뇩보리로 나아가고, 전륜성왕은 큰 자비심으로 처음 발심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큰 자비가 없는 소왕과 성문들에게 예경하겠습니까? 대왕님, 과연 이미 위없는 정각의 도를 구하는 짐승의 왕인 사자가 소승인 여우에게 예경할 수 있겠습니까? 또 과연 큰 지혜의 바다로 이르러 가고자 하고, 큰 법의 무더기를 잘 알고 구하고자 하면서 소 발자국의 물을 구하는 성문의 사람에게 예배할 수 있겠습니까? 대왕님, 만약 어떤 사람이
성문의 사람을 친근히 하는 사람은 곧 성문의 마음을 내고, 연각의 사람을 친근히 하는 사람은 곧 연각의 마음을 내며, 정진(正眞) 정각(正覺)의 사람을 친근히 하는 사람은 곧 아뇩보리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 때 왕이 다시 그녀에게 말하였다.
‘너는 큰 아만심을 가지고 있구나. 어떻게 이같이 모든 성문들을 보고도 맞이하지 않는가?’
딸이 말하였다.
‘대왕님,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대왕도 아만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왜 이 왕사성(王舍城) 안의 저 모든 빈궁한 자들을 맞이하시지 않습니까?’
왕이 딸에게 말하였다.
‘저들은 우리 종성이 아닌데 내가 어떻게 맞이하겠는가?’
딸이 말하였다.
‘대왕님, 처음 발심한 보살도 이와 같아서 일체 성문이나 연각 또한 내 종성이 아닙니다.’
왕이 딸에게 말하였다.
‘너는 어찌 보지 못하는가. 모든 보살들은 다 일체 중생에게 예경하느니라.’
딸이 말하였다.
‘대왕님, 보살은 교만하고 성 잘 내는 중생들을 제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회향(廻向)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기 위해서 일체 중생에게 예경하는 것이고, 중생들의 선근을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 예경하는 것입니다.’
그 때 무외덕보살의 어머니가 있었는데, 이름을 월광(月光)이라고 하였다. 이 월광녀는 그 몸을 버리고 도솔천에 태어났는데, 이름을 광명증상천자(光明增上天子)라고 했다. 만약 미륵이 보리를 얻는다면 그 때에 곧 출가하여 이 현겁(賢劫)의 모든 부처님을 차례로 만나 뵙고 그 모든 부처님께 공양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저 이구(離垢)부처님 때에 대왕이 되어 7보를 다 갖추고 이름을 지지(地持)라 하며, 그 부처님께 공양한 뒤에는 아뇩보리를 이루어 이름을 변광(遍光)여래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미혹에 싸인 어두운 사람 오랫동안
꿈속의 창고를 배회하면서
마음의 번뇌를 아직 씻어 내지 못하여
감로(甘露)의 물에 젖을까 두려워하네.
인자한 얼굴은 환한 빛을 내어
아침 햇볕을 보듯이 나를 비추어
갑자기 좋은 친한 벗 만나
나를 이끌어 신광(神光) 더하네.
조금씩 깨달아 마음 맑고 고요해
비로소 세속의 아득함 싫어하게 되었네.
먹물 옷 입은 무리[緇徒]는 이미 숙연하나니
법려(法侶)도 또한 성대[鏘鏘]하구나.
보는 사람들 기뻐하면서
정성을 기울여 도량으로 향하나니
만약 잘못된 사견을 믿고 있다면
오는 고통의 재앙을 어찌하리.”
감응연(感應緣)[대략 세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진(晋)나라 사문 축법사(竺法師)
송(宋)나라 거사 원병(袁炳)
수(隋)나라 사문 석도선(釋道仙).
① 진(晋)나라 사문 축법사(竺法師)
진(晋)나라 사문(沙門) 축법사(竺法師)는 회계(會稽)에 살았다. 북중(北中)의 왕긍지(王亘之)와 정의가 매우 두터워 생사와 죄복(罪福)의 그 보응(報應)의 일을 함께 이야기하였으나 마음이 어둡고 밝히기 어려워 아직 유무(有無)의 인(因)을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만약 누가 먼저 죽으면 반드시 그 사실을 와서 알려 주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 뒤에 왕긍지가 서울에 있으면서 사당에서 갑자기 법사가 오는 것을 보았다. 왕긍지는 놀라서 물었다.
“화상께서는 어디서 오십니까?”
법사는 말하였다.
“빈도(貧道)는 아무 달 아무 날에 운명을 달리하였습니다. 죄와 복은 모두 허망하지 않아 마치 물체의 그림자와 소리의 메아리와 같은 것입니다. 단월님은 그저 부지런히 도를 닦아 그 신명(神明)을 구제하십시오. 전에 당신과 약속했기 때문에 지금 와서 알려 주는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이내 사라졌다.[위의 한 증험은 『속수신기(續搜神記)』에 나온다.]
② 송(宋)나라 거사 원병(袁炳)
송(宋)나라 원병(袁炳)의 자(字)는 숙환(叔煥)이며, 진군(陳郡) 사람이다. 그는 태시(泰始) 말년에 임상령(臨湘令)이 되었다. 원병이 죽은 지 여러 해가 지나서 그 친구 사마손(司馬遜)이
새벽 무렵에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원병이 와서 오랫동안 걸음이 뜸했다면서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사마손에게 말했다.
“우리는 평생 동안 뜻을 세우고 의논을 하면서 항상 말하기를 ‘삶은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요, 죽으면 푹 쉬는 것이다’고 하였는데, 지금 그렇지 않은 것을 비로소 알았네. 세상에 있을 때 항상 사람들이 돈과 재물을 애써 구하는 데 매달려 서로 주고받음을 늘 걱정했는데, 이 저승에서도 또한 그렇다네.”
사마손이 물었다.
“죄와 복의 응보가 확실하다는데 그것은 어떤가?”
원병이 말하였다.
“나는 옛날, 경전에서 가르친 말은 다 맞지 않는 것으로서, 그것은 성인들이 제지하고 인도하는 말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네. 그러나 지금 보니, 선악의 큰 등급은 대략 다르지 않네. 더구나 살생은 예로부터 가장 무거운 금물이니 삼가 범해서는 안 될 것이네.”
사마손이 말하였다.
“자네가 지금 보인 이 증험은 진실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니, 이 말을 상서(商書)에게 아뢸 것이네.”
원병이 말하였다.
“아주 좋네. 또 자네가 상서께 아뢸 때, 사공(司空) 간목왕공(簡穆王公)을 이부상서(吏部尙書)로 삼고, 원병과 사마손을 그 유빈(遊賓)으로 삼기를 청하게. 그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네.”
이렇게 수백 마디의 말을 주고받다가 원병은 떠나려 했다. 사마손은 말했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으면서 항상 모이기를 생각했고, 또 만나기는 매우 어려운데 왜 좀더 있다가 가지 않으려는가?”
원병은 말하였다.
“잠깐 왔을 뿐이네. 오래 머물 수 없네. 그리고 내 말을 어찌 다 자세히 이야기하겠는가.”
그리고 그는 떠났다.
처음에 원병이 왔을 때는 어두운 밤이었고, 사마손도 그가 있는 곳을 몰랐었는데, 밝아서야 볼 수 있었다. 원병이 떠나려 하자 사마손은 침상에서 내려와 그를 전송했다. 그가 신을 신자 다시 어두워지면서 원병의 두 다리 사이에 한 자 가량의 빛이 나타나 그 두 발을 비출 뿐이요, 다른 땅은 다 그대로 어두웠다.[이 한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③ 수(隋)나라 사문 석도선(釋道仙)
수(隋)나라 촉부(蜀部)의 관구산(灌口山) 죽림사(竹林寺)의 석도선(釋道仙)은 본래 강거국(康居國) 사람이다. 그는 해외 무역을 업으로 삼아 오(吳)ㆍ촉(蜀)을 오가면서
주옥(珠玉)을 사들여 거의 10만 관에 이르렀다.
그 뒤에 재주(梓州) 우두산(牛頭山)으로 가서 어떤 스님을 만나 설법을 듣고는 재물이 누(累)가 됨을 깊이 깨닫고, 그것을 모두 강물에 바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관구산 죽림사로 가서 출가하여 처음 머리를 깎던 날에 대중에게 맹세하며 말하였다.
“나는 도를 얻지 못한다면 맹세코 이 산을 나가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결심한 뒤로는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고 산에서 날짐승, 길짐승과 함께 살았다. 한 번 앉아 선정에 들면 5일을 기약하였다. 누가 찾아와 문 앞에 가만히 기척을 하면 곧 선정에서 깨어 일어나 함께 이야기하고, 만약 사람이 없을 때는 단정히 앉아 있었으므로 고요한 방은 허공처럼 적적했다. 때로는 예고하기를, 내일은 손님이 오는데 사람 수는 얼마이고, 얼굴과 옷은 이러이러하리라고 하였다. 이튿날이 되면 그 사람 수와 복색이 모두 꼭 들어맞았다.
그 때 마침 심한 가뭄이 들어 백성들은 농사일을 매우 걱정하여 얼굴빛이 달라져 모두 와서 비를 내리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도선은 곧 용혈(龍穴)에 가서 지팡이로 그 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말하였다.
“이 중생아, 왜 잠에 빠져 있느냐?”
이 말이 떨어지자 용은 곧 잠을 깨었다. 그리고 곧 검은 구름이 사방에서 모여 큰비가 내려 두루 적셨다. 백성들은 이 은택을 입고 귀천에 상관 없이 모두 제사를 올려 천신(天神)처럼 공경하였다.
수(隋)나라 촉(蜀) 왕 수(秀)가 민락(岷絡)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사람을 보내어 도선을 불렀으나, 도선은 이 명령을 듣지 않았다. 왕은 불끈 화를 내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그를 사로잡으려 했다. 그리고 만약 끝내 고집하면 곧 죽이려 했다. 도선은 군사가 온다는 말을 들었으나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승가리(僧伽梨)를 입고 단정히 앉아 좌선하고 경을 외웠다. 왕이 산 밑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비에 우박과 눈이 섞여 내리고 천둥이 치고 물이 솟아 잠깐 사이에 냇물이 가득 찼다. 군사들은 피할 길이 없어 모두 빠져 죽을까 걱정했다. 일이 이처럼 급박해지자 이에 참회하고 귀의하여 멀리서 도선의 덕에 예배했다. 그러자 드리운 구름이 갑자기 흩어지고 산길이 깨끗하게 평탄해져 도선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었다. 왕은 몸소 공경을 다해 일심으로 귀의하고 참회하였다. 도선이 그들에게 설법을 하자, 그들은 거듭 신심을 내어 이에 간절히 청해 성도(成都)로 모시고 돌아왔다. 정중사(靜衆寺)에 이르러 더욱 후한 예를 더하고 온 성안 사람들이
다 공경하여 그를 도선 아사리(阿闍梨)라 불렀다. 그는 인수년(仁壽年)에 다시 절에 돌아와 거기서 죽어 장사 지냈다.[위의 한 증험은 『당고승전(唐高僧傳)』에 나온다.]
12. 사녀편(士女篇)[여기에 2부가 있다.]
속남부(俗男部) 속녀부(俗女部)
1) 속남부(俗男部)[여기에 3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계속부(誡俗部) 권도부(勸導部)
(1) 술의부(述意部)
재가(在家) 남자[丈夫]의 존비(尊卑)에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첫째는 귀(貴)요 둘째는 천(賤)이며, 또 하나는, 첫째는 부(富)요 둘째는 빈(貧)이다. 부귀한 사람은 대부분 방일(放逸)하며, 오만하고 뽐내며 깔보고 욕보이며 하천한 사람을 업신여긴다. 혹은 위엄과 세력을 빙자해 자기를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며, 혹은 박식하고 총명하여 재주를 믿고 남을 업신여기며, 혹은 말재주가 좋고 문장이 예리하며 유창한 언설로 남을 업신여기고, 혹은 호사와 사치를 자랑하고 거만함으로써 남을 업신여기며, 혹은 아름다운 얼굴과 예쁜 자태로 미색을 믿고 업신여기고, 혹은 뛰어난 말을 탐으로써 타는 것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며, 혹은 재물과 노비를 가짐으로써 부를 믿고 남을 업신여기나니, 이 같이 많은 것은 다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중생들은, 어리석고 참으로 가여워서 무상(無常)함이 닥쳐오는 줄은 알지 못하고 허망하게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다가 장차 올 과보에 삶기고 볶이기를 기다리며, 옥졸(獄卒)들은 창[叉]을 들고 오래도록 망보고 있는데도, 이런 일은 걱정하지 않고 부질없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이것이 저 돼지나 양같이 죽음이 닥칠 줄을 모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으며, 파리가 죽은 시체를 탐하고 즐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고금을 생각해 보면, 부귀는 한결같지 않고, 생멸은 번갈아 들며, 귀천은 티끌과도 같다. 부귀한 자도 오직 황량한 무덤만을 남기게 되고, 빈천한 자도 이미 재와 흙과 같구나. 이미 귀천이 다 재와 같음을 알았으면 부디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친소(親疎)는 일정함이 없고 귀천은 항상하지 않으며, 고락은 자리를 바꾸고
승침(昇沈)은 서로 번갈아 드는 것이다.
(2) 계속부(誡俗部)
『화엄경』에서 한 말과 같다.
“열 종류의 만업(慢業)이 있으니, 마땅히 이런 것을 피해야만 한다. 첫째는 존중해야 할 복전(福田)인 화상(和上)ㆍ아사리(阿闍梨)ㆍ부모ㆍ사문ㆍ바라문 등에게 존중하고 공경하며 공양하지 않는다면, 이를 만업이라 한다. 둘째는 모든 법사로부터 아주 오묘한 법을 얻고, 대승의 깊은 법에서 생사의 길을 벗어날 줄 알며, 다라니를 얻어 다문(多聞)을 성취하고, 지혜의 곳간을 갖추어 잘 설법하는 것이니, 그런데도 그것을 믿고 받아 공경하고 공양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만업이라 한다. 셋째는 법을 듣고 받을 때에 만약 깊은 법을 들으면 마땅히 욕심을 떠날 마음을 일으키고 마음에 기쁨이 한량없어야 할 것인데도 법사를 찬탄하지 않고 대중을 기쁘게 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만업이라 한다. 넷째 교만한 마음을 일으켜 스스로를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며 자기의 실정을 살피지 않고 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이것을 만업이라 한다.
다섯째는 나라고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켜 공덕과 지혜가 있는 이를 보고도 그 아름다움을 찬탄하지 않고, 덕이 없는 자를 보면 도리어 그 선을 말하며, 만약 남을 찬탄하는 말을 듣고는 그 사람에게 질투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이것을 만업이라 한다. 여섯째는 만약 어떤 법사가 ‘이것은 법이다, 이것은 율(律)이다, 이것은 진실이다,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다’고 하는 것을 알고는 질투심 때문에 ‘그것은 법이 아니다, 그것은 율이 아니다’고 한다면, 남의 신심을 깨뜨리기 때문에 이것을 만업이라 한다. 일곱째는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아 ‘나는 법사이니 나는 집사(執事)할 수 없다. 다른 범행(梵行)을 닦는 사람들을 공경하고 공양할 수 없다. 존장과 덕이 있는 이는 모두 나를 공경하고 공양해야 한다’고 하면, 이것을 만업이라 한다.
여덟째는 얼굴을 찌푸리거나 사나운 눈으로 남을 보는 것을 멀리 떠나면서 항상 유화한 얼굴로 중생들을 평등하게 보며, 말은 항상 부드럽고 거친 말이 없고 성내거나 한을 품는 마음이 없는
이런 법사에 대해 그의 허물과 악을 찾는다면, 이것을 만업이라 한다. 아홉째는 아만스러운 마음으로써 많이 아는 이를 찾아가 공경하여 일어나 그 법을 듣지 않고 어려운 것을 남겨 두고도 묻지 않는다. ‘어떤 것들이 선이고 어떤 것들이 불선이며, 어떤 것들을 해야 하고 어떤 것들을 해서는 안 되는가. 어떤 업은 긴 밤 동안에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고, 어떤 행은 중생을 이롭게 하지 않는가. 어떤 행은 밝음에서 밝음으로 들어가고, 어떤 행은 어두움에서 어두움으로 들어가는가’ 같은 무리들은, 나라는 마음에 빠져들어서 거기서 벗어나 바른 길을 발견하지 못하니, 이것을 만업이라 한다.
열째는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얻기 어려운 법을 만나지 못하고, 전생에 심은 선근을 다 녹여 없애 버리며, 하지 않아야 될 말을 하고 나무라는 마음을 일으켜 곧 서로 비방한다. 다 이 같은 법에 머무르면 사도(邪道)에 들어갈 것이지만, 다만 보리심의 힘 때문에 보살행을 영원히 버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록 보살도를 버리지는 않더라도 무량 백천만겁 동안에도 오히려 부처를 만나지 못하는데, 하물며 그 법을 들음이겠는가. 이것을 만업이라 하느니라.”
또 『출요경』에서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중생들은 교만에 휩싸이고
또 교만에 물들어서
그 소견에 미혹되어
생사를 없애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알아야만 한다. 즉, 범부들이 행하는 악은 비록 적지만 후세에는 깊은 고통의 끝없는 과보를 받는다. 마치 독이 마음에 있으면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는 것처럼, 재가자[白衣]가 삶을 영위하느라고 죽음을 돌아볼 줄을 모른다. 그러나 목숨은 영원히 보전할 수 없어 죽음은 반드시 갑자기 닥쳐오니, 이 위급한 목숨을 생각하면 아침이다가 곧 저녁이 된다. 잠깐 사이에 흉변(凶變)은 무상한데도 헛되이 전택(田宅)을 수리하고 처자에 애착하는구나.
『법구비유경[法句喩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실 때에 그 성안에 어떤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나이 80을 바라보면서 재산은 무수하였으나 그 사람됨이 교화시키기 어려웠다. 도덕을 알지 못하고
무상(無常)을 생각하지 않고, 거듭 집짓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앞의 아(庌)와 뒤의 당(堂)을 지으면서 양대(凉臺)와 온실(溫室)을 짓고, 동서로 양 행랑채 수십 채를 짓는데 뒤채[後堂]에 아직 해막이를 마치지 못했다.
그 때 그는 항상 스스로 경영하면서 온갖 일을 지휘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도안(道眼)으로 이 늙은이의 목숨이 그 날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거라는 것을 보셨다. 그러나 그는 그런 줄은 모르고 한창 바쁘게 일을 했다. 그 정신에 복이 없음을 매우 가엾이 여기신 부처님께서는 아난을 데리고 그 집으로 가서 늙은이를 위문하셨다.
‘너무 괴로워하지 마시오. 지금 이런 집을 지어 누가 살려는가?’
그는 말하였다.
‘전아(前庌)에서는 손님을 대접하고, 뒤채에서는 내가 거처하며, 동서의 두 행랑채에는 아이들과 재물과 종들을 두며, 여름에는 시원한 대에 오르고, 겨울에는 따뜻한 방에 들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오래전에 들으니, 그대는 생각이 말보다 느리다고 하더구나. 내게 요긴한 게송이 있어 살고 죽기에 유익할 것인데, 그 게송을 주고자 하는데 어떻겠소? 원컨대 잠깐 일을 그만두고 같이 앉아 이야기나 하지 않겠는가’.
그는 답하였다.
‘지금 매우 바빠서 앉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뒷날 다시 오시면 서로 잘 이야기하지요. 그 요긴한 게송이나 곧 말해 주시지요’.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자식 있고 재물 있으나
어리석어 허덕일 뿐이구나.
나도 또한 나가 아닌데
자식과 재물 어디 있겠는가.
더우면 여기 머물고
추우면 여기 머무르리.
어리석어 미리 염려함은 많건만
다가올 변(變)을 알지 못하네.
어리석고도 미련하면서
나는 지혜롭다 스스로 말하지만
어리석으면서 지혜롭다 자칭하니
이를 지극한 어리석음이라 하네.
바라문이 말하였다.
‘그 게송은 잘 들었습니다. 지금은 참으로 바쁩니다. 뒤에 다시 와서 이야기하시지요.’
이리하여 세존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기면서 거기를 떠나셨다. 그 뒤에 바라문은 스스로 서까래를 집어 올려 주다가 서까래가 떨어져 그의 머리가 깨져서 그 자리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온 집안 사람들이 슬프게 울고 이웃이 다 놀랐다. 부처님께서 떠나셔서 멀리 가기 전에 이런 변이 있었다.
마을 어귀에서 범지(梵志) 수십 인을 만났다. 그들은 부처님께 물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마침 저 죽은 노인의 집에 갔다가 그를 위해 설법했지만 그는 부처의 말을 믿지 않고 무상(無常)도 알지 못했다. 지금 그 노인은 갑자기 죽어 저승에 갔다.’
그리고 모든 범지들을 위해서 앞의 게송의 뜻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들은 기뻐하면서 곧 도의 자취를 얻었다. 이에 세존께서는 그들을 위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이 지혜로운 이 가까이함은
마치 바가지가 맛을 보는 것 같아
아무리 오래도록 친하여도
그래도 법을 알지 못하네.
깨친 이가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함은
마치 혀가 맛을 보는 것과 같아
비록 잠깐 동안 친하여도
도의 요체를 곧 안다네.
어리석은 사람이 행을 짓는 것
그 몸의 화를 부르네.
즐기는 마음으로 악을 짓다가
저절로 무거운 재앙이 닥쳐오네.
불선을 행하였기 때문에
물러서서 후회하면서
그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게 되니
과보는 지은 업 때문이라네.
그 때에 범지들은 이 게송을 듣고 더욱 독실한 믿음을 품고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기쁘게 받들어 행하였다.”
(3) 권도부(勸導部)
생각하면 이 교만한 마음은 재가와 출가에 다 통하여 지혜롭거나 어리석거나 면하지 못하고 귀천(貴賤)에 다 같이 있다. 다만 가벼움을 버리고 무거움을 따지는 것은 재가자들이 더 심하다. 또한 어떤 이는 부질없이 제가 잘났다 하면서 현량(賢良)을 꾸짖고, 성덕(聖德)을 헐뜯는다. 일체 재가자[白衣]들은 종일토록 이런 짓을 행하면서도 일찍이 단 하루도 부끄러워하거나 드러내는 일이 없다. 마음으로 훌륭한 도를 구하고 물러나 자기 몸소 행한 일을 반성하라. 그러므로 외서(外書)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힘써 선도(善道)를 사모하면 그로써 몸을 편하게 할 수 있고, 힘써 효제(孝悌)를 사모하면 그로써 친족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
또한 어떤 군자(君子)는 불교[釋敎]를 높이 사모하여 받들어 행을 닦아 곧고 어질며, 물러서고 사양하며 청렴하고 삼가며 믿고 순종한다. 이것은 모두 전생에 심은 품성(稟性)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니,
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 어떤 출가한 사람은 성인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계율을 어기고 범하며 배우지 않고 앎이 없어 비열한 속인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승속[道俗]은 그 외모가 다르고 계를 범함에는 드물고 잦음이 있지만, 마음에는 밝고 어두움이 있고 허물에는 가볍고 무거움이 있다. 그러므로 출가한 사람은 아직 범하기 전에 찰나찰나에 도에 들어가면 선한 업이 익혀지고 복의 터전이 두터워질 것인데, 비록 조그만 악이 있더라도 조금이나마 부끄러워하여 고치면 아무도 그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이며, 만약 조그마한 부끄러움이 있으면 곧 다시 청백(淸白)해질 것이다.
만약 속가에 있는 사람을 논한다면 몸은 부끄러워함이 없는 자리에 살고 마음은 부끄러워함이 없는 정에 있으며, 아내와 자식을 기르면서 재색(財色)의 5욕(欲)은 집안에 가득하고, 오신채[葷辛]와 술과 고기는 구하는 대로 얻을 수 있다. 애욕에 물든 마음이 깊어 잠깐도 버릴 때가 없고, 악한 인연과 함께 사는데, 어찌 그것을 면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곧 밝고 어두운 길이 나뉘고 승속[黑白]이 현격히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알 수 있다. 즉, 밝음은 어둠을 없애 버릴 수 있지만 어둠은 밝음을 없애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조그만 등불의 밝음도 방안을 환히 밝히는 것이니, 출가한 사람은 비록 조그만 허물을 범하더라도 과거의 밝음을 이미 이루어 놓았으므로, 바로 그 광명이 빛을 더하지는 않더라도 본래의 밝음은 항상 비출 수 있는 것이니, 마치 그릇에 심지를 두고 밭에서 농사를 지어 그 업을 영원히 편히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또 출가하여 악을 짓기 지극히 어려운 것은 마치 육지로 배가 다니는 것과 같고, 재가로 있으면서 허물을 일으키기가 쉬운 것은 마치 바다 가운데 배를 띄우는 것과 같다. 또 출가하여 도를 닦기 쉬운 것은 마치 바다 가운데 배를 띄우는 것과 같고, 재가로 있으면서 복을 닦기 매우 어려운 것은 마치 육지로 배가 다니는 것과 같다. 배는 비록 같으나 그 말미암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더디고 빠르기가 같지 않고, 닦고 범하기가 어렵고 쉬운 것이다. 이로써 생사는 물들기가 쉽고 선한 법은 이루기 어려운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니, 일찍이 스스로 제도하기를 구하고 힘써 세속을 벗어나기를 생각하라.
또 『현우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출가의 공덕은 그 복이 매우 많다. 만약 남녀의 종들을 놓아주었거나, 인민들의 고충을 들어주었거나, 만약 스스로 출가하여 도에 들어가면 그 공덕은 한량없어 어떤 비유로도 비할 수가 없다. 출가한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큰 바다보다 깊고 허공보다 드넓다. 왜냐 하면 출가하였기 때문에 필경에는 불도를 이루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왕사성에 한 장자가 있었는데, 이름을 복증(福增)5)이라고 하였다. 그는 나이 1백 세가 넘어 온 집안의 노소들이 모두 다 그를 싫어하고 천대했다. 그는 출가의 공덕이 한량없다는 말을 듣고 곧 부처님께 가서 출가하기를 청하고자 했다. 때마침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아 바로 사리불의 처소로 갔다. 그러나 사리불은 그가 늙은 것을 보고 득도[度]시키려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5백의 대아라한들도 모두 그를 득도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절 문을 나오다가 문지방에 서서 큰 소리를 내어 울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돌아오셔서 갖가지로 그를 달래신 뒤에 곧 목건련에게 그를 출가시키라고 하시자, 목건련은 곧 출가시키고 그에게 계를 주었다.
그러나 그는 또 항상 젊은 비구들의 핍박을 받아서 강물에 몸을 던져 빠져 죽으려 했다. 목건련이 그것을 보고 신통력으로 그를 건져 강둑에 올려놓고 그 까닭을 물어 알자, 목건련은 가만히 생각했다.
‘이 사람은 생사를 두려워해서가 아니고, 도를 얻을 길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곧 그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자기의 옷자락을 꼭 잡으라고 하고, 허공으로 날아올라 큰 바닷가로 갔다. 거기서 어떤 갓 죽은 단정한 여자를 보았다. 벌레 한 마리가 그 입에서 나와 코로 들어갔다가 다시 눈에서 나와 귀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목건련은 그것을 보고도 그대로 두고 거기서 떠나려 했다. 제자 복증이 물었다.
‘저것은 어떤 여자입니까?’
목건련이 대답했다.
‘저 여자는 이 사위성 안의 대살박(大薩薄)의 아내이다. 그녀는 용모가 단정하여 세상에 짝할 이가 드물었다. 그녀는 늘 3기목(奇木) 위에 거울을 올려놓고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제 얼굴의 단정한 것을 보고 곧 교만한 마음을 일으켜 깊게 애착했다.
그 남편은 그녀를 매우 사랑하여 그녀를 데리고 바다에 들어갔는데, 풍랑에 배가 부서져 물에 빠져 죽어서 물에 떠밀려 해안에 나와 있는 것이다. 이 대살박의 아내는 자신의 몸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죽은 뒤에 그 영혼이 다시 옛 몸 속에 태어나서 이 벌레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벌레의 몸을 버리고는 큰 지옥에 떨어져
무량한 고통을 받을 것이다.’
다시 조금 더 앞으로 가다가 또 어떤 여자를 보았는데, 그녀는 구리쇠 가마솥을 짊어지고 와서 거기에 물을 부어 불로 끓이고는 옷을 벗고 가마솥으로 들어갔다. 살은 익어 뼈에서 떨어지고 끓는 물에 뼈가 밀려 밖으로 나오면 바람이 불어 다시 사람의 제 모습이 되는데, 제 살을 먹고 있었다. 복증이 물었다.
‘이것은 어떤 여자입니까?’
그 스승인 목건련이 대답했다.
‘사위국에 어떤 우바이가 있었는데 3보를 공경하고 믿으면서 어떤 비구를 청해 한 여름철 동안 공양하였다. 어떤 언덕 위에 방을 만들어 거기 있게 하고는, 스스로 갖가지 향기롭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여종을 시켜 보내었다. 여종은 거기 가서는 그윽한 곳에서 좋은 것은 먼저 가려 먹고 나머지를 비구에게 주었다. 우바이는 그것을 알고 물었다.
≺네가 훔쳐먹지 않았느냐?≻
여종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비구 스님이 다 드시고 나머지를 제게 주셔서 제가 그것을 먹은 것입니다. 만일 제가 먼저 먹었다면 저는 세세생생에 제 살을 제가 먹을 것입니다.≻
이런 인연으로 먼저 화보(華報)를 받고, 뒤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조금 더 가다가 어떤 살나무[肉樹]를 보았다. 많은 벌레들이 그것을 둘러싸고 그 살을 뜯어먹는데 빈자리가 없었다. 그 나무의 울부짖는 소리는 마치 지옥에 있는 자의 소리와 같았다.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나무입니까?’
목건련은 대답했다.
‘이것은 뢰리타(瀨利吒)라는 영사(營事) 비구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스님네 물건을 마구 쓰면서 꽃ㆍ과일ㆍ음식 등을 속인들에게 보내었다. 이 인연으로 이 화보(華報)를 받는 것이고, 뒤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나무를 뜯어먹는 모든 벌레들은 그 때에 그 물건을 얻은 사람들이다.’
또 조금 더 가다가 어떤 남자를 보았다. 그 주위에는 짐승의 머리에 사람 몸을 한 여러 사나운 귀신들이 손에 큰 활을 들었는데, 세 짝의 독화살은 다 불이 붙어 있었다. 그들이 그것을 다투어 쏘자 이 남자의 온몸은 불에 탔다. 복증이 스승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떤 사람입니까?’
목건련은 대답하였다.
‘이 사람은 전생에 사냥꾼으로서 금수들을 많이 죽였기 때문에 지금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이고, 이 뒤에 목숨을 마치면 큰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조금 더 가다가 어떤 큰 산을 보았다. 그 밑에는 칼이 있고, 어떤 사람이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면 그 칼은 그의 온몸을 찔러댔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 예전처럼 하기를 쉬지 않았다. 복증이 스승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떤 사람입니까?’
스승 목건련이 또 대답하였다.
‘이것은 왕사성왕의 대장군으로서 그 용맹 때문에 몸소 선봉장이 되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상하였으므로 먼저 이 고통을 받는 것이고, 뒤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조금 더 가다가 어떤 뼈로 된 산을 보았다. 그 산의 높이는 7백 유순으로서 능히 해를 가리고 바다를 어둡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때 목건련은 이 뼈산의 어떤 큰 갈비뼈 위를 왔다갔다하며 거닐었다. 제자 복증이 물었다.
‘이것은 어떤 뼈산입니까?’
스승 목건련이 복증에게 답하였다.
‘그대는 알고 싶은가? 이것은 곧 그대의 옛 몸의 뼈이다.’
복증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몸의 털이 곤두서며 두려움에 식은 땀이 흘렀다. 그리고 목건련 화상(和尙)에게 아뢰었다.
‘이 말을 들은 제가 지금 심장이 찢어지기 전에 원컨대 빨리 그 본말의 인연을 말씀해 주십시오.’
목건련이 말하였다.
‘생사의 수레바퀴는 끝없이 돌아가고 있다. 선업이나 악업을 지으면 그것은 끝내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그 과보를 받는 것이다.
옛날 이 염부제에 한 국왕이 있었는데, 이름을 법증(法增)이라고 하였다. 그는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계율을 잘 지키며, 법을 듣고 자비심으로 중생을 대하여 그 목숨을 해치지 않고 올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면서 20년이 지났다. 그 동안에 한가하면 사람들과 쌍륙놀이를 했다. 어느 때 어떤 사람이 법을 어겨 사람을 죽였으므로 신하가 그 왕에게 아뢰었다. 왕은 놀이에 열중하여 예사로 답하였다.
≺나라의 법에 따라 다스리라.≻
그래서 율법에 의해 사람을 죽인 자는 마땅이 죽어야 한다 하고 죄를 물어 곧 죽여 버렸다. 왕은 놀이를 마치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그 죄인은 어디 있는가?≻
신하가 대답했다.
≺이미 죽여 버렸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땅에 쓰러져 까무러쳤다가 물을 뿌려서야 깨어나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궁녀들과 기녀(伎女)들과 코끼리ㆍ말ㆍ7보 등은 다 여기 있는데,
오직 나만 혼자서 지옥에 들어가겠구나. 나는 지금 사람을 죽였다. 마땅히 알아라. 내가 바로 전타라(栴陀羅) 왕이니라. 나는 세세생생토록 어디로 갈지를 알지 못하겠구나. 나는 지금부터 왕 노릇을 하지 않으리라.>
곧 왕위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지켰다. 그 뒤에 목숨을 마치고는 큰 바다 가운데 마갈어(摩竭魚)로 태어나 몸이 장대하여 7백 유순이었다.
모든 왕과 대신들은 그 세력을 믿고 억울하게 백성들을 끝없이 죽이고 목숨을 마치고는 대개는 큰 마갈어가 되어 온갖 벌레에게 그 몸을 뜯어 먹히고, 몸이 가려워 산에 문지르면 벌레를 죽여 바다를 더럽히며 피가 1백 리까지 흘러갔다. 그 고기는 한 번 자면 1백 년이 흐르고, 굶주리고 목말라 물을 빨아들이면 물이 흘러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큰 강물이 쏟아져 흘러드는 것과 같았다.
그 때 마침 5백 상인(商人)들이 바다에 들어가 보배를 캐다가 입을 벌린 이 고기를 만나 배가 어느새 그 입으로 빨려 들어가자 상인들은 놀라고 두려워하여 큰 소리로 울었다. 고기 입으로 들어가려 할 때 그들은 한꺼번에 같은 소리로 ≺나무불(南無佛)하고 외쳤다. 고기가 부처라는 말을 듣고 곧 입을 다물자 물이 멎어 상인들은 살아나게 되었다. 그 고기가 죽은 뒤에는 야차와 나찰들이 그것을 끌어내어 바닷가에 두었다. 살은 녹고 뼈만 남아서 이 뼈산이 되었다. 그리고 그 법증왕이란 바로 그대였는데,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바다에 떨어져 고기가 된 것이다.’
복증은 이 말을 듣고 생사를 매우 두려워하면서 그 옛 몸을 보고는 법의 무상을 알아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2) 속녀부(俗女部)[여기에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간위부(姦僞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재가(在家)의 속녀(俗女)는 환란과 독이 너무 많다. 부처님께서는 간사하고 아첨함이 남자보다 더하다고 말씀하셨다. 혹은 갖가지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고 머리를 온갖 장식으로 꾸미며,
혹은 꽃같이 아름다운 비단옷을 두르고, 어리석은 남자를 유혹하며, 혹은 예쁜 입과 입술을 놀리며 삿된 눈길로 노래하고 웃으며, 혹은 한숨 짓고 읊조리면서 사람을 쳐다보며, 혹은 가슴을 드러내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머리를 싸매며, 혹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천천히 걸으면서 몸을 흔들어 그림자로 희롱하며, 혹은 눈을 떴다 감았다 하고 금새 슬퍼했다가 금새 기뻐하며 어리석은 사내를 유혹하고, 그 마음을 허망하게 집착하게 한다. 이 같은 요망스런 거짓은 끝내 이루 다 말하기 어렵다.
범부들의 미혹하고 취함은 모두 유혹에 빠지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간사한 도적이 갖가지 속임수가 많은 것과 같고, 또한 마치 그림 그린 아름다운 병에 똥을 넣어 사람을 속이는 것과도 같으며, 또한 마치 높이 친 그물로 모든 새를 떨어뜨리는 것과도 같고, 또한 마치 촘촘한 그물로 온갖 물고기를 잡는 것과도 같으며, 또한 마치 어두운 구덩이가 장님을 빠뜨리는 것과도 같고, 또한 마치 불나방이 불을 보고 뛰어드는 것과도 같으며, 또한 쇠파리가 송장을 탐해 즐기는 것과도 같다. 가까이하면 나라를 잃고 집안을 망치며, 몸에 닿는 것은 독사를 잡는 것과 같다. 겉말은 꿀과 같지만 속마음은 짐새[鴆]6)와도 같다.
집이 가난해 괴로워하는 것도 다 여자 때문이고, 밖에 나가 몸을 망치는 것도 다 여자 때문이며, 집안이 화목하지 않는 것도 다 여자 때문이고, 자녀가 반역하는 것도 다 여자 때문이며, 형제가 헤어져 흩어지는 것도 다 여자 때문이고, 친족끼리 소원해 멀어지는 것도 다 여자 때문이며, 악도에 떨어지는 것도 다 여자 때문이고, 인간과 천상에 나지 못하는 것도 다 여자 때문이며, 선업의 길을 막는 것도 다 여자 때문이고, 성과(聖果)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다 여자 때문이니, 이 같은 허물과 환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중생은 이 같은 것이라 참으로 가여운 것이다. 항상 애욕의 불에 타면서도 그것을 떠나 버리지 못하고, 재앙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계속 이어져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2) 간위부(姦僞部)
『출요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옛날 사위성에 어떤 여인이 아기를 안고 물병을 가지고 우물에 나가 물을 길었다. 어떤 남자가 얼굴이
단정한데 우물의 오른편 가에 앉아서[어떤 경전에는 아난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사랑을 구해 부부가 되었다고 했는데, 그 일은 다른 경전에 실려 있다.] 거문고를 타면서 즐기고 있었다. 그 때에 여인은 애욕이 특히 많아 그 남자에게 빠졌고, 그 남자도 또한 애욕의 불길이 치솟아 그 여인에게 빠져 탐착했다. 그 여인은 애욕에 정신을 잃고는 새끼줄로 어린 아기의 목을 매어 우물에 매달아 두었다. 아이를 찾아 그 새끼줄을 잡아당기자 아이는 곧 죽어 버렸다. 그녀는 애통해 하면서 하늘을 보며 울부짖고 눈물을 떨어뜨렸다.[이 밖에는 생략한다.]
또 부처님께서 구섬미국(拘★彌國)에 계셨는데, 국왕의 이름을 우전(優塡)이라 했다. 구류국(拘留國)에 바라문[逝心]이 있었는데, 마인제(摩因提)라고 했다. 그녀가 낳은 딸은 단정하고 아름다워 세상에 짝할 이가 드물었다. 아버지는, 그 딸의 얼굴이 한 나라에 희유한 것을 보고, 그 이름을 무비(無比)라고 했다. 이웃 나라의 모든 왕과 대신들과 호족(豪族)들은 모두 다 그 딸을 며느리로 삼고자 했으나 바라문은 답하여 말하였다.
‘만일 당신의 아들 얼굴이 내 딸과 똑같이 아름답다면 나는 혼사에 응하리라.’
그 때 부처님께서 그 나라로 가셨다. 바라문은 부처님의 32상(相)과 80종호(種好)의 자금(紫金) 빛 몸이 우뚝하고 당당하고 그 광의(光儀)가 위없음을 보고 마음속으로 못내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내 딸의 짝을 얻었다.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 그 아내에게 말했다.
‘나는 우리 무비를 위해 사윗감을 얻었소. 빨리 몸단장을 시키시오. 곧 데리고 가리라.’
그 부부는 함께 딸에게 몸단장을 시켰다. 딸이 걸어갈 때 그 걸음걸이는 빛나는 구슬을 흔들었으며, 보배 영락의 장엄은 온 나라를 빛내었다. 부부는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갔다. 그 아내는 길에서 부처님 발자국의 상호(相好)의 무늬와 광채의 빛깔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가 아님을 보고서 그가 천존(天尊)임을 알아차리고는 그 남편에게 말했다.
‘이 사람 발자국의 무늬는 세상에서 들어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는 범인이 아닙니다. 그는 반드시 청정하여 음욕이 없을 것이니, 우리를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질없이 욕되게 하지는 마십시다.’
남편이 말했다.
‘어찌 그런 줄 아는가?’
아내는 곧 게송으로 말했다.
음탕한 사람은 발꿈치를 끌면서 걷고
성내는 사람은 발가락을 오므리고 걸으며
어리석은 사람은 발로 땅을 밟는데
이 발자국은 천상과 인간 가운데 존귀한 분[天人尊]이시네.
바라문은 말하였다.
‘여인의 알 바가 아니다. 그대가 좋아하지 않거든 곧 돌아가라.’
그리고 그는 딸을 데리고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아뢰었다.
‘대인(大仁)이시여, 수고로이 가르치시면서 공양이 없으십니다. 제게 못난 딸이 있습니다. 키질이나 비질을 시키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딸을 좋다 하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이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얼굴이 좋아서 실로 세간에 그 짝이 없습니다. 모든 국왕과 호족들이 많이들 구혼을 하지만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당신께서는 광색(光色)이 아주 훌륭해 이 세간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공양을 얻으려 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찾아뵌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딸의 어디가 좋은가?’
바라문은 말하였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두루 보아도 모두 다 좋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미혹하구나, 그 육안(肉眼)이여. 내가 지금 보건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하나도 좋은 것이 없다. 그대는 보아라. 그 머리에는 머리털이 있는데, 그대가 보는 머리의 머리털은 다만 털[毛]일 뿐인데, 코끼리나 말꼬리도 다 이것이다. 머리털 밑에는 해골이 있는데, 해골은 바로 뼈로 백정 집의 돼지 머리뼈도 다 그것이다. 해골 속에는 뇌가 있는데, 뇌는 진흙과 같은 것으로 비린 냄새가 코를 찌르고 그것을 땅에 두면 밟는 사람이 없다. 눈은 연못[池]인데 그것은 쪼개면 순전한 즙(汁)이다. 코 속에는 콧물이 있고, 입에는 단지 침이 있을 뿐이다. 배는 창자와 간과 폐를 간직해 모두 비린내가 나고, 창자와 위와 방광은 단지 오줌과 똥을 담고 있을 뿐이어서 그 썩는 냄새는 말하기도 어렵다. 배는 가죽 주머니로서 온갖 더러운 것을 담고 있다. 사지의 손발은 뼈와 뼈가 서로 버티고 있고, 힘줄이 걸리고 가죽이 오그라지면서 단지 기식(氣息)을 의지함으로써 움직인다.
비유하자면 나무로 사람을 만들 때는 기계 장치를 해서 만든다. 다 만든 뒤에 그 몸을 풀어 헤쳐 버리면 마디와 마디가 서로 떨어져 손발이 다 흩어지고 마는 것처럼, 사람도 이와 같은데 거기 무슨 좋은 것이 있기에 그 짝이 거의 없다고 하는가.
나는 옛날 패다(貝多)나무 밑에 있었는데,
제6 마천왕(魔天王)은 세 딸을 장엄하고 얼굴을 예쁘게 꾸며서 천상에서 비할 데가 없었다. 이 무리들은 부질없이 나의 도의(道意)를 깨뜨리려 하였다. 나는 곧 그들에게 몸의 더러움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을 모두 늙은 할머니로 변화시켰는데, 그들은 무너진 몸을 회복시키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면서 떠났었다. 그런데 지금 이 오줌 주머니는 무슨 변을 지으려 하는가. 빨리 데리고 돌아가라. 나는 취하지 않으리라.’
바라문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부끄러워 말이 없다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당신이 취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제 딸을 우전왕의 아내로 주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답하지 않으셨다. 바라문은 곧 그 딸을 우전왕에게로 보냈다. 왕은 딸을 얻고 매우 기뻐하고 그 아버지에게 절하고서 태부(太傅)로 삼고 딸을 위해서는 궁전을 짓고 악사[伎樂] 천 명을 시켜 모시게 했다.
그런데 왕의 정후(正后)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섬겨 수다원의 도를 얻었다. 이 딸은 왕에게 정후를 모함했는데, 왕은 이 말에 미혹해 1백 개의 화살로 정후를 쏘려 했다. 정후는 그 화살을 보았으나 두려워하지도 않고 조금도 성내지도 않고 일심으로 부처님의 자비심을 생각하면서 왕을 향해 꿇어앉아 있었다. 화살은 모두 정후를 세 번 돌고 다시 왕의 앞으로 돌아갔는데, 1백 개의 화살이 모두 그러했다. 왕은 이에 스스로 깨닫고 한탄하면서 두려워하여 곧 흰 코끼리가 끄는 금수레를 타고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달려갔다. 도착하기 전에 수레에서 내려 합장하고,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꿇어앉아 아뢰었다.
‘저는 무거운 죄가 있어서 삼존(三尊)님 앞에 있기도 부끄럽습니다. 태부의 딸이 음탕하여 애욕을 도모하고 삿된 마음을 일으켜 부처님 성중(聖衆)에 대해 악독한 생각을 품었고, 또 1백 개의 화살로 부처님 제자를 쏘게 하였습니다. 사실대로 다 말하자면 보기에도 마음이 두렵습니다. 생각하건대 지극히 높으신 부처님께서는 자비가 한량없으십니다. 백의(白衣) 제자의 자비의 힘도 그러하옵거늘 하물며 위없는 정진(正眞)이신 부처님이시겠습니까. 저는 지금 허물을 자백하고 삼존께 귀명하나이다. 오직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큰 자비로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찬탄하셨다.
‘장하십니다. 대왕은 악을 깨닫고 허물을 뉘우쳤으니,
이것은 밝은 사람의 행실입니다. 나는 왕의 선의를 받아들입니다.’
왕은 세 번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도 세 번 그것을 받아들였다. 왕은 또 머리를 땅에 대고 물러났다가 다시 자리로 나와 아뢰었다.
‘타고난 기운이 흉악하고 완고하여 마음대로 성을 내면서 인욕하는 마음이 없으며, 3독(毒)을 버리지 못하고 즐겨 악을 행했습니다. 여자란 요망스럽고 홀리면서도 그 악을 알지 못합니다. 저도 죽은 뒤에는 반드시 지옥에 들어가리라 생각됩니다.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 더욱 가엾이 여기시고 여자의 악과 도깨비 같은 태도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그 그물 속에 빠져들더라도 조금이나마 스스로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 화를 들으면 반드시 스스로 경계할 것이며, 온 나라 사람들도 노소가 다 그 행실을 고칠 수 있을 겁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때문에 묻는 것인가? 다만 다른 뜻만 설명하리라.’
왕이 말하였다.
‘다른 뜻은 이 다음에 들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여자의 재난으로서 마음을 미혹시키는 그 흉악한 화는 큰 것이오니, 그 화를 듣지 않으면 어찌 그것을 멀리할 수 있겠습니까? 원하옵나니 부처님께서는 저를 위해 지옥의 변과 여자의 더러움을 설명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선 들으라. 남자들은 미치고 어리석은 악이 있으면서 도리어 여자의 화를 보느니라.’
왕이 말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환히 가르쳐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남자에게 4악(惡)이 있으니 우선 중요한 것부터 알아야 한다. 세상의 음탕한 사내들은 항상 여자 보기를 생각하고, 요사스런 소리 듣기를 생각하면서 바른 법을 멀리 버려 둔다. 진실을 의심하고 삿됨을 믿고, 애욕의 그물에 휩싸여 어두움 속에 빠져 있으면서 애욕의 부림을 받는 것이 종이 상전을 겁내는 것과 같다. 여색(女色)을 탐하고 즐거워하여 아홉 구멍에서 나오는 오로(惡露)의 더러움을 생각하지 않고, 애욕 속에 뒹구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돼지와 같아서, 그 냄새는 깨닫지 못하고 유쾌함으로써 편하다 하면서 나중에 반드시 무택(無擇)지옥에서 무한한 고통 받을 것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음욕에 마음을 두어 그 콧물과 침을 빨며, 고름과 피를 사랑하여 마치 옥처럼 보배롭게 여기고 꿀처럼 달게 여긴다. 그러므로 애욕의 종이라 하나니, 이것이 그 첫째 악의 모습이다.
또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먼저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기르는데 크게 성장하도록 힘들이는 고통은 이루 말하기가 어렵다.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 집을 이리저리 옮기고 재물을 없앤다.
무릎으로 다니고 팔꿈치로 걷다가 장성하면 중매쟁이에 의해 정을 표하고 여자를 데려와 아내를 삼는다. 만약에 그녀가 다른 지역에 있으면 찾아갈 때는 멀고 가까움을 묻지 않고 고생을 피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자식은 마음을 쏟아 음욕에 두고는 부모의 늙음도 잊어버리고, 이미 아내를 얻고는 보배같이 소중히 여기며 사욕으로 서로 즐기면서 부모 보기를 싫어하고, 그 요사스런 말을 믿어 혹은 싸움을 일으키기도 한다. 제 몸이 어디서 생긴지는 생각하지 않고, 부모의 무량한 은혜를 저버리니, 이것이 그 둘째 악의 모습이니라.
또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부지런히 일하여 재물을 모은다. 본래는 정성스런 믿음이 있어서 도를 공경하는 뜻으로 사문과 범지(梵志)의 마음을 높이 받들면서 세상의 덧없음을 깨닫고 보시로 복을 짓는다. 그러나 장가간 뒤에는 그 마음이 음욕에 홀리고 어리석음으로 마음이 가려서 진실을 등지고 삿됨으로 향하는데, 이것은 오로지 여자의 계책 때문이다. 혹 보시할 뜻이 있어 말을 하려고 하면, 아름답게 꾸민 여색(女色)은 청정한 행을 끊고 그를 결박해 소인(小人)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그는 불경의 무거운 화와 복의 돌아가는 곳에 대한 경계를 알지 못하고, 구차이 음욕의 종이 되어 그물에 몸을 던져서 반드시 악도에 떨어지게 되지만 끝내 회개하지 않으니, 이것이 그 셋째 악의 모습이다.
또 선으로 사람의 자식이 되었으면서도 기른 은혜는 생각하지 않고, 살림을 잘 살아 재물을 모았으면서도 그것으로 부모를 봉양하지도 않으며, 다만 동서로 널리 음탕한 길만 찾고, 보물을 품고 가서 남의 부인을 부른다. 혹은 6축(畜)7)을 죽여 난잡하게 귀신에 제사 지내고, 술을 마시며 노래와 춤으로 남녀가 어울려 환락에 빠져 해 가는 줄 모른다. 겉으로 복을 빈다고 빙자하지만, 속으로는 정부를 불러 취한 뒤에는 방편을 마련했다가 다시 서로 불러서는 드디어 정을 통하며, 그 짝을 만날 때에는 그 즐거움이 비할 데 없다. 그리하여 음욕에 결박되고 집착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 때를 당해서는 오직 이것만을 즐겁다 하여 오로(惡露)의 더러움과 지옥의 고통을 깨닫지 못하나니, 첫째는 가소롭고 둘째는 가엾은 일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미쳐 날뛰면서도 그 잘못을 모르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그 넷째 악의 모습이다.
남자는 이 네 가지 악으로 지옥ㆍ아귀ㆍ축생의 3도(塗)에 떨어진다. 반드시 반성하고, 이것을 멀리하면 곧 고통을 면할 것이다.
또 여자의 악을 이야기할 것이니 잘 들으라.
방편으로 게송을 말하였다.
욕망의 노예가 됨으로써
제멋대로 해서 편하지 못하고
법 아님을 가까이하니
장차 어떻게 어진 이가 되리오.
애욕으로 짐승이 할 짓을 하고
애욕으로 제 몸을 해치며
냄새나는 우리의 벌레 속에 있으면서도
그 극심한 재난 모르네.
벌레가 우리 속에 있는 것처럼
동서남북을 알지 못하고
음욕에 얽매여 집착하거니
대개 이 또한 벌레 무리네.
음욕으로 이미 도를 보지 못하여
밤낮으로 죄의 뿌리를 심으며
현재에 임금과 신하가 어지럽고
위아래가 그 때문에 혼미하다네.
왕의 법이 그 때문에 어지럽고
정치 또한 그 때문에 번잡하며
농부의 떳떳한 업을 버리니
상인들은 그 때문에 보배가 잇따르네.
현세에서는 곧 옥에 갇히고
죽어서는 또 태산(太山)에 들어서
온갖 종류의 고초를 받을 것이니
그 고통을 말하기도 어렵네.
구리쇠 녹인 물을 그 입에 쏟고
산거(山車)8)는 그 몸에 닥쳐오리니
그 무리는 수백이라,
한두 가지로 다 말하기 어렵네.
언제나 저 3악도(惡道)에 있으면서
수레바퀴처럼 굴러다니니
혹 어떤 세상에선 부처님께서 계시지만
그저 그럴 뿐, 법은 듣지 못하네.
여자란 가장 악한 것이라
그것과는 인연을 맺기 어려워
은애(恩愛)에 한 번 결박당하면
사람을 끌고 죄의 문에 들어간다네.
여자에게 좋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다만 그것 온갖 더러움뿐인 것을
왜 이 말을 굳게 믿지 않고서
그것 때문에 미쳐서 날뛰는가.
그 속은 매우 더러운 냄새가 나면서
겉은 화장하여 얼굴 꾸미고
더구나 또 독을 쏘나니
그 심하기는 뱀이나 용과 같다네.
마치 비단에 창을 감추고
또 명주 속에 칼날을 싼 것 같아
어리석은 이는 그 겉만 보고서
사랑하여 가지려고 한다네.
지혜로운 이는 그것을 알고 버리며
어리석은 이는 몸을 상하고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음욕도 또한 이와 같아서
그 칼을 안고 스스로 죽네.
새 것을 보면 헌 것을 싫어하여
즐거워하는 것도 덧없거늘
그 말은 칼이나 도끼가 되고
그 웃음은 가시나 창이 되네.
그 속에 더러움과 독을 품고서
꽃과 향으로 그 겉을 꾸밀 때
어리석은 이는 그것 보고 기뻐하면서
뒤에 받을 재앙을 생각도 않네.
비유하자면 저 짐새의 독을
감로(甘露)의 물에 탄 것 같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맛을 탐하여
그것 마시고 다 죽는 것 같네.
또한 저 섶나무가 불을 만나고
초목이 매서운 서리 맞는 것처럼
가는 곳마다 모두 망가지나니
이것은 가장 좋지 못한 것이네.
여자의 독은 이보다 더 심하여
아무도 그 형체 보지 못하여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하나니
그 때문에 음욕이 일어나는 것이네.
그 정체는 매우 보기 쉬운데
애석하게도 미련한 이 끊이지 않아
음욕을 끊고 도를 구하여
도로 향하는 길이 실이나 털과 같다네.
사람은 본래 청정한 종자로
깊은 못에 사는 고기 같은데
사방에 그물을 쳐 놓을 때
걸리는 자는 돌아가지 못하네.
음욕의 그물은 이보다 극심해
묶고 붙잡음이 매우 견고하나니
지혜로운 이 이를 잘 깨달으면
그 인연을 벗어날 수 있으리.
비유하자면 굶주린 저 원숭이
잘 익어 맛난 과일 바라보고서
가시덤불 무릅쓰고 몸을 던져서
이들이 사방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네.
또한 물고기가 낚시를 물고
불나방이 등불에 날아들 때에
불을 찾아 위태한 욕심에 내맡기면서
뒤에 받을 재앙을 생각하지 않음과 같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우전왕은 못내 기뻐하면서 머리를 땅에 대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실로 이 세상에 태어난 뒤로 지금까지 여자의 그런 악한 모습을 듣지 못했습니다. 남자들이 난잡하게 그것을 따르다가 악도에 떨어지는 것은 다만 그런 줄을 알지 못하고 제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는 목숨이 마치도록 참회하고 삼존(三尊)께 목숨 바쳐 귀의하여 감히 다시는 범하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 예배하고 기쁨에 넘쳐서 물러갔다.”
옛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중니(仲尼)는 ‘소인(小人)과 여자는 기르기 어려우니, 가까이하면 공손하지 않고 멀리하면 원망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요염하여 홀리는 여자에게는 여든네 가지 모습이 있고, 크게는 여덟 가지 모습이 있어서 지혜로운 사람이 미워하는 것이다. 첫째는 질투함이고, 둘째는 거짓과 성냄이며, 셋째는 헐뜯고 욕함이고, 넷째는 저주함이며, 다섯째는 억누름[鎭壓]이고, 여섯째는 아끼고 탐함이며, 일곱째는 꾸미기를 좋아함이며, 여덟째는 독을 품음이니, 이런 것을 여덟 가지 큰 모습[大態]이라 한다. 그러므로 여자는 온갖 아리따움이 많은 것이니, 바라건대 아첨과 삿됨을 버리고 바른 법을 구하기 위해 일찍이 출가할 수 있으면 스스로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할 것이다.”
또 『지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자의 상(相)이란, 만약 공손한 대우를 받으면 그 남편에게 뻐기는 마음을 내고, 공손히 대우하고 정을 버리면 그 남편의 마음을 두렵게 한다. 여자는 이같이 항상 사람에게 번뇌와 근심과 두려움을 주는데, 어떻게 친하고 좋아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이야기와 같다. 즉, 어떤 국왕에게 구모두(拘牟頭)라는 딸이 있었다. 술파가(術波伽)라는 고기잡이가 길을 가다가 그 왕녀가 높은 누각 위에 있는 것을 멀리서 보았다. 창 안에 있는 그 얼굴을 보고 상상하고 집착하여 마음에서 잠시도 버리지 못하여 여러 날과 여러 달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였다.
그 어머니가 까닭을 물었더니, 그는 사실대로 말하였다.
‘저는 왕녀를 보고 마음에 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타일렀다.
‘너는 소인이고 왕녀는 존귀하니, 너는 왕녀를 얻을 수 없다.’
아들은 말하였다.
‘저는 마음으로 원하고 좋아하여 잠깐이라도 잊을 수 없습니다. 만일 뜻대로 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그 아들을 위하여서 왕궁에 들어가 살찐 생선과 새고기를 항상 왕녀에게 보냈지만 값을 받지 않았다. 왕녀가 괴상히 여겨서 물었다.
‘무슨 소원이 있는가?’
그 어머니가 왕녀에게 아뢰었다.
‘좌우를 물리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실대로 아뢰겠습니다. 제게는 외아들이 있사온데, 그가 왕녀님을 공경하고 사모하여 마음에 맺혀 병이 되어 목숨이 멀지 않다 합니다. 원하옵건대 왕녀님은 가엾이 여기시어 그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왕녀가 말하였다.
‘너는 우선 돌아가거라. 다음 달 15일에 아무 천사(天祠)의 그 천상(天像) 뒤에 서서 기다리라 하라.’
어머니가 돌아와 그 아들에게 말하였다.
‘네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아들은 목욕한 뒤에 새 옷으로 갈아입고 그 천상 뒤에 서 있었다. 왕녀는 때가 되어 그 부왕(父王)에게 아뢰었다.
‘제게 불길(不吉)한 일이 있어 저 천사(天祠)에 가서 길복(吉福)을 구해야겠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아주 잘하는 일이다.’
그리고 곧 수레 5백 대를 장엄하여 천사로 나가게 했다. 왕녀가 천사에 이르러 모든 종자(從者)들은 문 밖에 서 있게 하고, 혼자 천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천신(天神)은 생각했다.
‘이것은 안 될 일이다. 왕은 내 시주(施主)로, 이 소인으로 하여금 왕녀를 더럽히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사람을 가위눌리게 해서 잠이 들어 깨지 못하게 했다. 왕녀는 들어가 그가 잠이 깊이 든 것을 보고 아무리 흔들었으나 깨지 않았다. 곧 금 10만 냥의 값어치 있는 영락을 끌러 거기에 두고 떠났다.
뒤에 이 사람이 깨어 영락을 보고 또 사람들에게 물어 왕녀가 온 것을 알았다. 그는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한하고 괴로워하다가 음욕의 불이 속에서 일어나 스스로 타서 죽었다. 이를 증거로 해서 알 수 있다. 여자의 마음이란 귀천을 가리지 않고 오직 그 욕심대로만 따른다는 것을.”
또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차라리 몸의 한 부분을 독사 아가리 속에 넣을지언정 여자를 범하지 말라. 독사는 세 가지로 사람을 해친다. 봄으로써 사람을 해치고, 닿음으로써 사람을 해치며, 깨물음으로써 사람을 해친다. 여자에게도 세 가지 해침이 있다. 만약 여자를 보고 욕정을 내면 사람의 선법을 멸하고, 여자의 몸에 닿아 중죄(重罪)를 범하면 사람의 선법을 멸하며, 여자와 교접하여 중죄(重罪)를 범하면 사람의 선법을 멸한다.
첫째는 만일 독사의 해침을 받으면 이 한 몸을 해칠 뿐이지만, 만약 여자의 해침을 받으면 무수한 몸을 해치게 된다. 둘째는 만약 독사의 해침을 받으면 해의 갚음으로 무기(無記)의 몸을 얻지만, 만약 여자의 해침을 받으면 선법(善法)의 몸을 해치게 된다. 셋째는 만약 독사의 해침을 받으면 5식(識)의 몸을 해치지만, 만약 여자의 해침을 받으면 6식(識)의 몸을 해치게 된다. 넷째는 만약 독사의 해침을 받으면 청정한 대중 속에 들어갈 수 있지만, 만약 여자의 해침을 받으면 승(僧)과 같이 있을 수 없다. 다섯째는 만약 독사의 해침을 받으면 천상에 날 수 있고 인간에서는 성현을 만날 수 없지만, 만일 여자의 해침을 받으면 3악도(惡道)에 들어간다.
여섯째는 만약 독사의 해침을 받으면 그 때문에 네 종류의 사문과(沙門果)를 얻지만, 만약 여자의 해침을 받으면 8정도(正道)에서 이룰 이익이 없다. 일곱째는 만약 독사의 해침을 받으면 사람들이 가엾이 여겨 구호해 주지만, 만약 여자의 해침을 받으면 대중이 그를 버리고 좋아하는 마음이 없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차라리 몸의 한 부분을 독사 아가리 속에 넣을지언정 끝내 그것으로 여자를 접촉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또 『증일아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자에게 다섯 가지 힘이 있어서 남편을 업신여긴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색(色)의 힘이고, 둘째는 친족의 힘이며, 셋째는 살림[田業]의 힘이고, 넷째는 아이의 힘이며, 다섯째는 스스로 지키는 힘이다.
이것을 여자가 다섯 가지 힘으로 그 남편을 업신여김이라 한다. 남편에게는 한 가지 힘이 있어서 그 여자를 보호하나니, 이른바 부귀의 힘이다.
지금 악마 파순에게도 다섯 가지 힘이 있으니, 이른바 빛깔[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촉감[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 5법(法)에 집착하여 제도되지 못한다. 만일 성인의 제자로서 한 가지의 방일하지 않는 힘을 성취하면 그것에 구속되지 않는다. 즉, 생로병사의 법을 잘 분별하여 악마의 다섯 가지 힘을 이겨 악마의 경계에 떨어지지 않고, 무위(無爲)의 경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곧 이 게송을 외우셨다.
계율은 감로(甘露)로 가는 길이요
방일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니
탐하지 않으면 죽지 않을 것이지만
도를 잃으면 스스로 죽을 것이네.
그 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에게는 다섯 가지 욕심내는 생각[欲想]이 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부귀한 집에 태어나는 것이고, 둘째는 부귀한 집에 시집가는 것이며, 셋째는 남편으로 하여금 자기 말을 따르게 하는 것이고, 넷째는 아이가 많은 것이며, 다섯째는 집에서 자유로운 것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 욕심내는 생각이다.”
또 『대위덕다라니경(大威德陀羅尼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큰 모래 무더기를 물방울 하나로 모두 적셔 스며서 뚫고 지나가게 하는 것은 마치 여자가 수천 명의 남자로부터 음행의 과보를 받으면서도 만족할 줄 모르는 것과 같다.
그 여자에게는 세 가지 법이 있어서 만족할 줄 모른다. 첫째는 스스로 장엄하는 것이고, 둘째는 남자 편에게서 받는 쾌락이며, 셋째는 슬프고 아름다운 말씨이니라.
아난이여, 그 여자에게는 다섯 가지 벌레집이 있지만, 남자에게는 이것이 없다. 그 다섯 가지 벌레집은 음도(陰道) 속에 있으며, 그 한 벌레집에 8천 마리 벌레가 있고, 그 벌레는 두 개의 머리에
입이 있는데, 모두 바늘과 같다. 그 벌레는 항상 그녀를 파먹어 괴롭혀 그녀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여 행동하게 한다. 그녀를 움직이게 하기 때문에 그것을 번뇌라 한다. 이것이 음탕한 여자로서 남과는 함께하지 않는 법[不共法]이다. 업의 과보로 욕행(欲行)을 일으킴으로써 남자를 탐하여 만족할 줄 모른다.
그 여자는 남자를 보면, 곧 아름다운 말을 걸며 바라보고 자세히 보며, 보고 또 보며 우러러보고 관찰하면서 욕사(欲事)를 생각한다. 마주 보고 삿되게 보며, 남의 얼굴을 취하려 한다. 이빨로 아래 입술을 물며 얼굴은 푸르죽죽해지며 그 욕정 때문에 이마에서 땀이 흐른다. 만약 앉아 있을 때는 일어나려 하지 않고, 만약 서 있을 때는 다시 앉으려 하지 않는다. 나뭇가지로 땅에 그림을 그리며 두 손을 흔들며 놀린다. 혹은 세 걸음을 걷다가 네 걸음에 이르러 좌우를 바라보기도 하고, 혹은 문 곁에서 하품을 하고 찡그리면서 숨을 내쉬기도 한다. 빙빙 돌면서 몸을 이리저리 구부리고, 왼손으로 옷자락을 들고 오른손으로 넓적다리를 두드린다.
또 손톱으로 이빨을 긁고, 풀 가지로 이빨을 쑤시며, 손으로 뒤통수를 긁으며, 다리를 드러내고 남의 아이의 입을 울리고, 편편한 땅에서 넘어지고는 얼른 사방을 둘러본다. 이런 모양은 여자의 정욕으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그리하여 그들을 싫어하고 버려 생사의 큰 어두움 속에 태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늘새가 모든 천인들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자는 떳떳한 벗이 아니어서
등불의 불꽃이 가만히 있지 않는 것과 같고
그들은 바로 항상된 원수로서
마치 돌에 그린 무늬와 같네.
비록 부자와 친하다가도
재물 없으면 그 사람을 싫어하고
재물 있으면 여자가 친하다가
재물 없으면 여자가 버린다네.
재물을 주고 공양을 일으키어
갖가지의 공덕을 짓지만
그 마음은 불꽃과도 같아서
가까이 붙잡을 수 없다네.
남자는 이와 같이 잘 순종해
그 마음이 원하는 대로 다해 주지만
저 여자들은 이와 같아서
언제나 남자들 속여 먹나니.
뱀이 꽃에 덮인 것과 같고
재가 불씨를 덮은 것처럼
이와 같이 색(色)은 독을 덮었고
여자도 또한 그러하니라.
마치 독을 품은 나무를 볼 때
눈을 기쁘게 하나 좋지 않은 것처럼
여자는 독의 꽃과 같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버려야 한다네.”
또 『아함구해십이인연경(阿含口解十二因緣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떤 아라한이 천안(天眼)으로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들 가운데 여자들이 매우 많은 것을 보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가지 이유 때문이니, 첫째는 보물과 의복을 탐하는 욕심이 많기 때문이고, 둘째는 서로 질투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말씨가 많기 때문이고, 넷째는 아리따운 자태를 꾸미고 음탕한 뜻이 많기 때문이니, 이런 인연으로 지옥에 많이들 떨어지는 것이다.’
게송으로 읊노라.
5욕(欲)은 정신을 혼돈시키는 원인이요
6적(賊)은 마음을 어지럽히는 색(色)이다.
환(幻)의 불꽃은 정(情)을 따라 나부끼고
애욕의 그물은 마음을 따라 짜여진다네.
녹여서 만든 쇠가 비록 해가 바뀌어도
쪼개 만드는 산대는 아직 끝나지 않으니
비둘기를 보니 이제 말이 없는데
나무를 붙잡는 원숭이는 여기서 그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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