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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462 법원주림(法苑珠林) 19권

by Kay/케이 2024.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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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19

 

법원주림 제19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8. 경승편(敬僧篇)[여기에 4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경익부(敬益部)
위손부(違孫部)

(1) 술의부(述意部)
승보(僧寶)를 논하면, 계율로 진실을 지키고 위의가 세속을 뛰어나며 방외(方外)를 도모함으로써 마음을 내고 세간을 버림으로써 법을 세우며 벼슬의 영화에도 그 뜻을 움직임이 없고, 친한 존속에도 그 생각을 더럽힘이 없으며 도를 폄으로써 4은(恩)을 갚고 덕을 기름으로써 3유(有)를 도우며, 높기는 인천(人天)을 초월하고 중함은 금옥(金玉)보다 더하나니, 이것을 승(僧)이라 한다. 그래서 승보의 이익이란 헤아릴 수 없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 말하였다.
“계를 지키거나 계를 깨뜨리더라도 그들이 어른이거나 어린이거나 다 그들을 깊이 공경하여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만일 이 뜻을 어기면 큰 죄를 지을 것이다. 만일 태공(太公)만을 대접해 경상(卿相)이라 한다면 천 년을 지내도 태공이 없을 것이요, 꼭 라집(羅什)을 만나야 스승으로 삼겠다면 만 대를 지내도 라집은 없을 것이다. 어찌 한 스님의 행의 허물을 보고 위로 불종(佛宗)을 더럽히겠으며 한 사람의 계율의 이지러짐을 보고 최상의 법을 가벼이 여기겠는가? 도로써 사람을 폐하지 말라. 사람이 도를 폄이 아니기 때문이요, 사람으로써 도를 폐하지 말라. 도가 사람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불 등이 참 불이요, 금구(金口)로 말씀하신 이치와 행과 가르침과 과(果)가 참 법보이며, 과(果)를 얻은 사문이 참 승보이다. 가령 한 번 우러르고 한 번 예하더라도 모든 걱정이 얼음처럼 녹고 한 번 찬탄하고 한 번 찬양하더라도 모든 재앙이 안개처럼 걷힐 것이다. 복이 엷다고 스스로 생각하면
바른 교를 만나지 못할 것이요, 끼친 자취를 믿고 의뢰하면 다행히 넉넉한 은혜를 받을 것이다.
금단(金檀)과 동소(銅素)와 칠저(漆紵)와 단청(丹靑)으로 성용(聖容)을 그린 것을 불보라 하고, 지견(紙絹)과 죽백(竹帛)에 현언(玄言)을 쓴 것을 법보라 하며,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응기(應器)를 가진 이를 승보라 한다. 이 세가지는 체상(體相)은 비록 가짜이나 그로써 진용(眞容)을 나타내는 것이니, 그것을 공경하면 긴 윤회를 영영 끊을 것이요, 그것을 업신여기면 괴로움의 과보를 항상 받을 것이다. 나무가 친모(親母)가 아니지만 그를 예배하면 메아리가 천년에 뛰어나고, 범부가 성승(聖僧)이 아니지만 그를 공경하면 광택이 만대에 초월하는 것과 같다. 이로써 이 바람이 한 번 떨치면 멀거나 가까운 사람이 다 따르고, 가만히 중생을 도와 신령스런 공이 헤아릴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여기 이지러짐이 있으면 그 받는 죄가 더욱 클 것이다.
이미 허락을 받아 출가했으면 마땅히 풍속을 고침이 이치일 것이다. 마치 저 송(宋)나라 조정이 무식하여 처음에 사혹(邪惑)을 믿어 물정(物情)을 움직여 놀라게 함으로써 도속(道俗)이 괴상히 여기게 하다가, 뒤에 큰 허물을 깨닫고 도리어 예배하고 공경한 것과 같다. 그러나 송나라 때는 오랑캐들이 악착하고 지세가 기구하니 어찌 큰 나라 금륜(金輪)의 성인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또한 저 『예기(禮記)』에 “갑옷 입은 사람은 절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허물과 세속을 버린 사람이 몸에 인욕의 갑옷을 입는 것과 어찌 같으랴? 속인에게 절을 하는 것은 이치에 옳지 않다. 삼보란 그 뜻이 같은 것이니 부디 다 같이 공경해야 하며, 치우치게 불보와 법보만 따르고 승니(僧尼)를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은 스스로 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펴는 것이 사람에 있고 사람이 법을 펼 수 있으므로 모름지기 똑같이 공경해야 하는 것이다.

(2) 인증부(引證部)
『범망경(梵網經)』에서 말하였다.
“출가한 사람의 법은 국왕과 부모와 육친(六親)에게 예배해서는 안 되며 또한 귀신을 섬겨서도 안 된다.”
또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출가한 사람은 속인에게 예경하지 않는다.”
또 『사분율(四分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장유(長幼)의
차례를 따라 예배하고 일체 속인들에게는 예배하지 못하게 하셨다.”
또 『불본행경』에서 말하였다.
“수두단왕(輸頭檀王)과 그 권속과 백관(百官)들은 차례로 부처님께 예배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왕은 지금 우파리 비구 등 모든 비구들에게 예배하십시오.’
왕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5백 비구에게 정례(頂禮)하고 모든 출가자에게도 차례로 예배했다.”
또 『살차니건경』에서 말하였다.
“만일 성문(聲聞)과 벽지불(辟支佛)의 법을 비방하고 대승법(大乘法)을 헐뜯거나 힐난하면 그것은 근본죄(根本罪)를 범하는 것이다. [대ㆍ소승의 불전에 의하여 스님으로 하여금 임금과 부모에게 예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불교를 받드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불교를 어겨 속인들에게 예배하게 하니, 이것은 부처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근본죄를 범하는 것이다.]
또 『순정리론(順正理論)』에서 말하였다.
“모든 천신(天神)들은 5계(戒)를 받은 이의 예배를 감히 바라지 않는다. 또 국왕도 비구의 예배를 감히 바라지 않나니, 그것은 공덕과 수명의 손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또 『열반경』에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맹세하고 정법을 호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청은 따라야 하며 또 신명을 버려 공양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내가 이 대승경(大乘經)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법을 아는 자가 있으면
그가 늙었거나 젊었거나
그 때문에 공양하고
공경하고 예배하라.
마치 불을 섬기는
저 바라문처럼

법을 아는 자가 있으면
그가 늙었거나 젊었거나
그 때문에 공양하고
공경하고 예배하라.
마치 저 하늘들이
제석천왕을 섬기는 것처럼.”

가섭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계율을 호지하는 노인이 젊은이에게서 듣지 못하던 법을 들었으면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 사람에게 예경해야겠습니까? 만일 예경한다면 이것은 계율을 지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또 계율을 호지하는 젊은이가 파계하는 노인에게서 듣지 못했던 법을 들었으면 그렇다고 해서 예경해야겠습니까? 또 출가인이 재가인에게 듣지 못했던 법을 들었으면 그 때도 예경해야겠습니까? 출가인은 재가인에게 예경해서는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또 불법에는 연소한 사람은 노인에게 예경해야 합니다. 그것은 노인은 먼저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위의를 성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공경하고 공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중아함경』에서 말하였다.
“아는 사람이 훌륭하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른바 비구로서 아는 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니, 믿는 사람은 훌륭하고 믿지 않는 사람은 그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믿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다. 자주 가서 비구를 보는 사람과 비구를 자주 가서 보지 않는 사람이니, 자주 가서 비구를 보는 사람은 훌륭하고, 비구를 자주 보지 않는 사람은 저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자주 가서 비구를 보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다. 비구에게 예경하는 사람과 비구에게 예경하지 않는 사람이니, 비구에게 예경하는 사람은 훌륭하고, 비구에게 예경하지 않는 사람은 저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비구에게 예경하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다. 경을 묻는 사람과 경을 묻지 않는 사람이니, 경을 묻는 사람은 훌륭하고, 경을 묻지 않는 사람은 저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또 『구잡비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국왕은 유람하다가 사문을 볼 때마다 곧 수레에서 내려 예배했다. 도인(사문)은 말하였다.
‘대왕은 수레에서 내려서는 안 됩니다.’
왕은 말하였다.
‘나는 오르는 것이요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르는 것이요 내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까닭은 나는 지금 도인에게 예배함으로써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르는 것이요 내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선견율(善見律)』에 수두단나왕(輸頭檀那王)이 부처님께 예배하고 아뢰었다.

“나는 지금 세 번째로 부처님 발에 예배합니다. 첫 번째는 부처님께서 처음 나셨을 때 아시타 선인이 부처님의 상을 보고 말하였습니다.
‘집에 있으면 전륜왕이 될 것이요, 출가하여 도를 배우면 반드시 성불할 것이다.’
이때 땅이 진동했습니다. 나는 그런 신력(神力)을 보고 곧 예배했습니다. 두 번째는 내가 밭가는 것을 보러 나갔을 때 보살(부처님)은 염부나무 밑에 있었습니다. 그 때 해는 오후였는데 나무 그늘은 그대로 보살 몸을 덮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신력을 보고 곧 예배했습니다. 세 번째는 지금 부처님께서는 우리 나라에 오시어 허공에 올라 열여덟 가지의 변화를 부려, 마치 외도를 항복받는 신력과 같습니다. 나는 이것을 보고 곧 예배했습니다.”
또 『중아함경』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에 석제환인은 동산 구경을 나가려고 어자(御者)에게 명령하여 천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준비하라 하였다. 어자는 준비를 마치고, 준비가 다 되었다고 했다. 천제석(석제환인)은 곧 상승전(常勝殿)에서 내려와 동쪽을 향해 합장하고 예배했다. 어자는 그것을 보고 매우 놀라 몸의 털이 다 일어서고 말채찍을 땅에 떨어뜨렸다.
제석은 그것을 보고 게송으로 물었다.

귀신아, 너는 무엇을 두려워하기에
말채찍을 땅에 떨어뜨리느냐?

어자는 게송으로 제석에게 아뢰었다.

사지의 남편, 하늘의 왕인
제석천왕을 보고
그 때문에 두려워하여
말채찍을 땅에 떨어뜨렸네.

항상 보았네. 제석천왕에게
일체의 대지와
인간과 하늘의 크고 작은 왕과
호세(護世)의 사천왕과
삼십삼천들
그 모두가 공경하고 예배하였네.

제석천왕보다 더 높은 이
어디에 또 있기에

지금 동쪽을 향해
합장하고 경례하는가?

제석천은 게송으로 답하였다.

나는 실로 일체의
세간의 크고 작은 왕과
호세(護世)의 사천왕과
삼십삼천 중에서 가장 높은 왕이네.
그러므로 다 와서 공경하네.

그러나 이 세간에는
수순하는 등정각 계시어
그 이름 만대사(滿大師)이네.
그래서 나는 예배하옵네.

어자는 다시 아뢰었다.

그이는 반드시 세간에서 훌륭하리.
그래서 제석천왕으로 하여금
공경하고 합장하고
동쪽을 향해 예배하게 하는 것이네.

그러므로 나도 지금 예배해야 하리.
천왕이 예배하는 그 어른에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저 제석천왕은 자재한 왕이면서도 부처님을 공경하였으므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너희 비구들도 그와 같이 부처님을 공경해야 한다. 또 사지의 남편 제석천왕은 법과 승에게 경례하고 또 법과 승을 찬탄하였으므로, 바른 믿음으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너희들도 법과 승을 찬탄하고 경례해야 하느니라.’
그 때 제석천왕은 상승전에서 내려와 사방을 두루 향해 합장하고 공경하였다. 그리고 어자는 제석천왕이 상승전에서 내려와 뜰 가운데 서서 사방을 두루 향해 합장하고 공경하는 것을 보고는 매우 놀라 또 말채찍을 땅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게송으로 물었다.

무엇 때문에 교시가(憍尸迦)님,
출가인을 존중하는가?
그 의미를 말씀하시라.
나는 간절히 듣기 원하네.


제석천왕은 게송으로 답하였다.

나는 참으로 공경하나
저들은 출가한 사람으로서
모든 곳을 자재로이 노닐어
그 행지(行止)를 헤아릴 수 없네.

성읍(城邑)도 국토도 빛깔도
그 마음을 더럽힐 수 없고
살림 기구를 쌓아 두지 않고
오로지 무욕정(無欲定)을 닦네.

나아가도 구할 것 없어
오직 무위(無爲)로 즐거움 삼고
말하면 반드시 선한 말이며
말하지 않으면 적정을 닦네.

모든 하늘과 아수라들은
제각기 서로 어기고
사람은 스스로 다투면서
서로 어김도 또한 그렇네.

오직 출가자만은
모든 다툼에서 다툼이 없고
일체의 중생에 대하여
칼이나 막대기를 모두 버렸네.

모든 재물과 색(色)을 버리고
취하지도 또 황폐하지도 않으며
일체의 악을 길이 떠났거니
그러므로 그를 예배하는 것이네.

이때 어자는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천왕의 존경함을 보면
그는 반드시 세간에서 훌륭하리.
그러므로 나는 오늘부터는
출가인에게 예배해야 하리.”

또 『보달왕경(普達王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부연국(夫延國)의 보달왕(普達王)은 모든 나라를 맡아 다스리므로 사방에서 조공(朝貢)을 바쳤다. 왕은 몸소 불법을 받들고 공정하지 않은 일이 없었으며 항상 자비심을 가지고 삼존(三尊)을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가엾이 여겼다. 항상 재계하고 높은 전각에 오르면 향을 피우며 다시 머리를 땅에 대고 머리를 조아려 예배했다. 나라의 신민들은 왕의 이러한 일을 보고 괴상히 여겨 저희끼리 이야기했다.
‘왕은 만민의 위에 있어 모두 공경하고 엎드린다. 말만 하면 누구나 따르거늘, 무슨 희망이 있어 위의를 욕되게 하여 머리를 땅에 대는가?’

신하들은 자주 이렇게 이야기하면서도 감히 간하지 못하고 지냈다. 왕은 신하에게 명령하였다.
‘수레를 준비하라. 나는 유람 나가리라.’
그리하여 관리와 백성 수천 명과 함께 궁성을 나섰다. 얼마 안 가서 갑자기 어떤 도인을 보고는 곧 수레에서 내려 일산을 물리치고 종자들을 세우고는 머리를 땅에 대어 그 도인에게 예배했다. 그리고 다시 음식을 차리느라고 가지를 못했다. 신하들은 이에 곧 간했다.
‘대왕님은 지존(至尊)이신데 어찌하여 길에서 저 거지도인을 보고 머리를 땅에 대십니까? 천하에 존귀한 것은 오직 머리뿐입니다. 더구나 국왕은 다른 이와 다릅니다.’
왕은 곧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죽은 사람의 머리와 소ㆍ말ㆍ돼지ㆍ염소 등의 머리를 구해 오라 했다. 신하들은 여러 날 동안 두루 다니면서 구해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서 아뢰었다.
‘명령을 받고 죽은 사람의 머리와 여섯 짐승의 머리를 다 구해 왔습니다.’
왕은 그것을 시장에 가서 팔라고 했다. 신하는 사람을 시켜 그것을 팔았다. 소 등 짐승 머리는 다 팔았으나 사람 머리만은 팔지 못했다.
‘싸거나 비싸건 다 팔아서 모두 사게 하라. 만일 사지 않거든 거지에게라도 주어라.’
그리하여 여러 날을 지냈으나 아무도 사지 않았고 거지도 가지지 않았다. 머리는 다 썩어 문드러지고 냄새 때문에 가까이할 수 없었다. 왕은 크게 화를 내어 신하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전에 내게 사람의 머리는 가장 고귀하기 때문에 함부로 욕되게 하여 머리를 땅에 대고 도인에게 예배해서는 안 된다고 간했다. 그런데 여섯 짐승 머리는 다 사는데 왜 사람 머리는 사지 않으며 거지도 그것을 가지지 않는가?’
왕은 곧 신하들에게 명령하였다.
‘수레를 장엄하게 하라. 나는 성밖 광야의 늪으로 가리라.’
왕이 무엇이나 물으면 신하들은 모두 송구해 하는 것이다. 왕은 신하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과연 내 선왕(先王) 때에 항상 일산을 들던 아이를 아는가?’

신하들은 대답했다.
‘아이가 있었던 일을 잘 압니다.’
왕은 물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 있는가?’
신하들은 대답했다.
‘죽은 지 이미 오래되어 17년이 지났습니다.’
왕은 물었다.
‘그 아이의 사람됨에 있어서 그 선악이 어떠했던가?’
신하들은 대답했다.
‘신 등은 늘 보았습니다. 그는 선왕을 섬길 때에 재계하고 공손하며 성실하여 스스로를 지키며 법이 아니면 말하지 않았습니다.’
왕은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지금 만일 그 아이가 생전에 입었던 옷을 보면 알 수 있겠는가?’
신하들은 대답했다.
‘비록 오래 되었지만 신들은 옛부터 알고 있습니다.’
왕은 시종을 돌아보고, 빨리 안 창고에 가서 그 아이 옷을 가져오라고 했다. 조금 있다가 옷을 가져 왔다. 왕은 물었다.
‘이것이 그것인가?’
그들은 대답하였다.
‘예, 바로 그것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지금 만일 그 아이를 보면 알아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말하였다.
‘신들은 원래 우둔하여 갑자기 보면 분별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왕은 비로소 그 내력을 말하고 싶었다. 전에 본 그 도인이 왕에게로 왔다. 왕은 매우 기뻐하며 곧 일어나 머리를 땅에 대고 도인에게 예배했다. 신하들도 모두 기뻐했다. 도인이 자리에 앉자, 왕은 또 합장하고 과거의 인연을 자세히 아뢰었다.
‘지금 삼가 나오시게 한 것은 그 내력을 보이자고 한 것입니다. 바라건대 이 나라 신민들을 위해 그 우둔함을 깨우쳐 참 법을 알게 하십시오.’
도인은 곧 신하들을 위해 왕의 내력을 이야기했다.
‘이 왕을 알고 싶어합니까? 이 왕은 본래 선왕의 일산을 받았던 그 아이입니다. 그는 항상 선왕을 모시면서 늘 재계하고 하루도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 과거 세상의 혼신(魂神)이 다시 나서 선왕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존귀하게 된 것은 다 전생의 수행 때문입니다.’
대소의 신하들은 모두 말하였다.
‘우리는 다행히 도인을 뵙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저희를 가엾이 여겨 제자로 만들어 주십시오.’
도인은 말하였다.
‘내 스승님은 이름은 부처[佛]입니다. 그는 상호(相好)를 구족하고 삼계(三界)에서 뛰어났으며 그 가르침은 거짓이 아닙니다. 그 부처님은 여기서 6천 리 밖에 계십니다.’
이렇게 말하고 어느새 도인은 사위국으로 날아가
부처님께 그 동안의 일을 아뢰었다.
‘저 국민들은 매우 가여워할 만합니다. 저들은 지금 다 부처님을 진심으로 뵙고자 합니다. 자비를 베풀어 참 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곧 허락하시고 이튿날 부연국으로 가셨다.
부처님께서는 그 왕과 신민들을 위해 설법하시고 말씀하셨다.
‘보달왕(普達王)과 이 도인의 내력을 알고 싶어하는가?’
아난은 말하였다.
‘그 사실을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과거 마하문불(摩訶文佛) 때에 이 왕은 큰 성바지[姓家]의 아들이었다. 그 아버지는 삼존(三尊)께 공양하려고 그 아들에게 명령하여 향을 전하라 했다. 그 때 어떤 시자가 마음 속으로 가볍게 생각하고는 향을 전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죄와 복은 메아리처럼 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재앙을 받았다. 비록 잠깐 동안의 심부름꾼이었으나 법을 받듦이 헛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왕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도인은 본래 그 시자로서 향을 주지 못한 사람이었다. 향을 주지 못했으나 그 마음에 원한은 없었고 ≺만일 내가 도를 얻으면 반드시 이 사람을 구제하리라고≺ 맹세하였다. 그 원과 과보가 일치하여 지금 와서 왕과 인민들을 제도하는 것이다.’
왕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내력을 듣고 뜻이 풀려 수다원을 얻었다. 그리고 국내의 신민들은 이 법을 들은 뒤에 다 5계(戒)와 10선(善)을 받고 그것으로 일상의 법을 삼았다.”
또 『아육왕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아서가왕(阿恕伽王)은 17세 된 어떤 사미를 보고는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예배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에게 예배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
그 때 사미 앞에 물병이 있었다. 사미는 그 병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말하였다.
‘대왕님은 부디 내가 물병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더라는 얘기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왕은 사미에게 말하였다.
‘나는 미래나 현재나 남에게 다 이야기하고 숨기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모든 경전에 말하였다.
“사미가 어리다 하여 경시하지 말고 왕자가 어리다 하여 경시하지 말며,
용의 새끼가 어리다 하여 경시하지 말라. 사미가 어리지만 능히 사람을 제도하고 왕자가 어리지만 능히 사람을 죽이며, 용의 새끼가 어리지만 능히 구름을 일으키고 구름을 일으키기 때문에 비를 내리고 번개를 치며 천둥을 울리는 것이다. 그것이 어리다 하여 경시하지 말지니라.”
또 『부법장경(付法藏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지 1백 년 뒤에 아육왕이 있었다. 그는 삼보(三寶)를 믿고 공경하며 항상 반차우슬(般遮于瑟) 대회를 열었다. 그 날이 되면 왕은 향탕(香湯)에 목욕한 뒤에 깨끗한 새 옷을 입고 높은 누각에 올라 사방에 정례하였다. 그리고 여러 스님을 청하면 20만의 성중(聖衆)이 날아왔다. 왕의 신심은 깊고 크기가 한량이 없어, 모든 사문으로서 늙었거나 젊었거나 범부이거나 성인이거나 다 맞이하여 문안하고 공경 예배하였다.
그 때 야사(夜奢)라는 신하는 사견(邪見)이 왕성하여 불법을 믿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어, 왕이 예배하는 것을 보고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님은 참으로 무지하십니다. 왜 귀함과 덕을 스스로 굽혀 어린이들에게 예배하십니까?’
왕은 이 말을 듣고 모든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각기 가서 좋은 짐승의 머리 하나씩을 구해 오라 하고, 오직 야사에게 만은 사람의 머리를 구해 오라 하였다. 그들이 그것들을 구해 오자 다시 시장에 나가 그것을 팔라고 했다. 그러나 다른 머리는 다 사면서 야사가 가진 사람 머리는 흉칙하다 하여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것은 썩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다 욕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너는 전타라나, 야차나, 혹은 나찰이 아니면서 어떻게 죽은 사람 머리를 팔려고 하느냐?’
그 때 야사는 이런 욕설을 듣고는 왕에게 와서 아뢰었다.
‘신은 사람 머리를 팔려다가 도리어 욕만 먹었습니다. 아무도 보려고도 않는데 더구나 사려고 하겠습니까?’
왕은 다시 말하였다.
‘만일 사는 사람이 없거든 그냥 주어라.’
야사는 분부를 받고는 다시 그것을 가지고 시장으로 들어가 외쳤다.

‘값을 주고 살 사람이 없으면 거저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더욱 꾸짖기만 하고 가지려는 사람은 없었다. 야사는 창피만 당하고 다시 돌아와 합장하고 왕에게 아뢰었다.
‘이것은 팔기 어렵습니다. 거저 준다 해도 가지지 않고 도리어 욕설만 퍼붓는데 더구나 사려 하겠습니까?’
왕은 야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가장 고귀한가?’
야사는 답하였다.
‘사람의 삶이 가장 고귀하고 죽으면 비천합니다.’
왕은 물었다.
‘내 머리도 죽은 것이면 그것처럼 천하겠는가?’
야사는 송구하여 감히 답하지 못하였다. 왕은 곧 그에게 말하였다.
‘너에게 무외(無畏)를 보시하리니 너는 사실대로 대답하라.’
야사는 황공하여 부앙(俯仰)하면서 왕에게 답하였다.
‘왕의 머리도 죽은 것이면 이것처럼 천할 것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내 머리도 죽은 것이면 이것처럼 천할 것이라 한다면 너는 왜 내가 여러 스님들에게 예배하는 것을 괴상하다 했는가? 만일 그대가 나의 참 선지식이라면 마땅히 내게 권해, 이 연약한 내 머리로 견고한 머리와 바꾸게 해야 했을 것이거늘, 어째서 오늘 내게 예배를 그만두라 하였는가?’
그 때 야사는 왕의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스스로 뉘우치고 꾸짖으면서 사견(邪見)을 버리고 정견으로 돌아가,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공경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삼보를 보는 중생들은 지심으로 공경하고 예배해야 하느니라.”
또 『사분율』에서 말하였다.
“빈두로(賓頭盧) 아라한은 본래 우전왕(優塡王)의 신하로서 부지런한 고행으로 말미암아 왕의 허락을 받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 뒤에 왕은 늘 성을 나가 절에 가서 참배했다. 절은 성에서 20리 밖에 있었다. 아첨하는 신하들은 빈두로가 일어나 왕을 맞이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악의로 왕에게 간하였다. 왕은 그들의 말을 받아들여 빈두로를 죽이려 했다. 빈두로는 왕이 뒤에 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평상에서 내려와 일곱 걸음을 걸어 영접했다. 왕은 화를 내어 말하였다.
‘대덕(大德)은 원래 움직이기 어려운데 지금은 어떻게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는가?’

빈두로는 대답하였다.
‘대왕이 전에는 좋은 마음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일어나 맞이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악한 마음을 품고 오셨기 때문에, 만일 일어나 맞이하지 않으면 죽일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왕은 찬탄하였다.
‘장하십니다. 제자가 미련하여 망령되게 아첨하는 말을 듣고 범부와 성인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참회한 왕은 지옥은 면했지만, 빈두로는 예언했다.
‘스님이 일어나 맞이하게 하였기 때문에, 7일 뒤에는 반드시 왕위를 잃을 것이다.’
과연 이 예언이 들어맞아, 왕은 이웃나라에서 일으킨 전쟁에서 군사에게 붙잡혀 12년 동안 발에 사슬을 차고 감금 당했다.
이런 이치로 특히 공경하고 삼가해야 한다. 함부로 잘난 체하지 말고 미래의 과보를 손상시킬까 두려워하라. 요즈음 속인들을 보면 하찮은 벼슬자리에 있다고 하여 신심을 내지 않고 망령되게 교만한 마음으로 승니(僧尼)들을 꾸짖으며 갖가지로 비방하고 모욕한다. 혹은 청사 앞에 세우고 자기는 높은 자리에 앉아 사람을 보내 끌고 와서는 비리로 창피를 주고 때리는 등, 선을 무너뜨리고 악을 조장하는 것이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 비록 왕의 법을 범했더라도 이치대로 다스려야 한다. 바깥으로 법이 행하더라도 안으로는 반성하고 부끄러워해야 하나니, 도인과 속인이 다 같이 삼계(三界)에 살면서 성인의 경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으로 그 누가 허물이 없겠는가?
그러나 출가한 사람은 안으로는 진실한 행이 없더라도 밖으로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었으니, 그 모양을 보고는 선심을 내고 또한 공경하는 마음을 내야 한다. 계율을 깨뜨린 승니(僧尼)라 하더라도 법좌에 올라 갖가지로 설법하여 중생을 이롭게 한다. 앞사람에게서 보고 들으며 6도(度)를 닦아 지니고는 차례차례로 서로 교화한다. 선행을 닦음으로 인해 미래에 나는 곳은 가까이는 인간이나 천상에 나고 멀리는 성인의 열매를 맺는다. 이 성인의 열매를 얻고는 다시 계속해 중생을 이롭게 함이 그 끝이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한 등불이 백천 등불에 불을 붙여 밝은 것이 마침내 그 끝이 없는 것과 같다. 이런 이익은 다 전에 파계한 승니들이 설법하여 교화한 공덕으로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이익을 얻었으면 각각 스스로 삼가해야 하는 것이다.
비록 백천만의 출가한 사람을 속이더라도 현재에서 털 끝만한 이익도 얻을 수 없을 것이요, 그뿐 아니라 오직 나쁜 이름만 더해 천하에 퍼질 것이며, 미래에 나는 곳에서는 여러 겁 동안 재앙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에 ‘한 생각의 악이 다섯 가지 악의 문을 열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뒤에 서술한 것과 같다.
또 『잡보장경』에서 말하였다.
“월지국왕(月支國王) 전단계니타(旃檀罽尼吒)는 계빈국의 존자 아라한인 기야다(祇夜多)가 큰 명예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만나기 위해 여러 신하들과 함께 그 나라로 떠났다. 도중에 가만히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왕으로서 천하의 모든 인민이 다 내게 공경하고 항복한다. 만일 그가 덕이 없다면 어떻게 내 공양을 받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길을 계속 갔다. 그 나라의 어떤 사람이 존자에게 말하였다.
‘월지국의 왕이 존자를 만나기 위해 여러 신하들과 함께 멀리서 온다고 합니다. 바라건대 옷을 정돈하고 또 잘 대접하십시오.’
존자는 답하였다.
‘나는 듣건대 부처님 말씀에, 출가한 사람은 도가 세속 위에 뛰어나서 오직 덕에 힘쓸 뿐이거늘, 어찌 옷 장식으로 나가 영접하겠는가?’
그리고 잠자코 단정히 앉아 있으면서 마중하러 나가지 않았다. 월지왕은 와서 존자 기야다를 보았다. 그 위덕을 보자 공경과 믿음이 더욱 생겨 곧 그 앞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에 섰다. 그 때 존자는 침을 뱉으려 했다. 왕은 얼떨결에 앞으로 가서 타기(唾器)를 바쳤다. 그러자 존자는 왕에게 말하였다.
‘빈도(貧道)는 지금 왕의 복밭이 될 만한 재목이 못 됩니다. 그런데 어찌 몸소 여기까지 왕림하셨습니까?’
왕은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나는 아까 혼자 가만히 생각했다. 내 마음을 벌써 다 아신다. 신령스런 덕이 아니면 어찌 이럴 수가 있겠는가?’
존자는 곧 왕을 위해 설법하였다.
‘왕이 오실 때 길이 좋은 것처럼 가실 때도 그렇게 되십시오.’
왕은 이 설법을 듣고 곧 출발했다.
도중에서 여러 신하들은 원망하듯 말하였다.
‘저희들은 대왕님을 따라 저 나라로 갔었지만 끝내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옵니다.’
왕은 말하였다.
‘아까 존자가 나를 위하여 ≺올 때의 길도 좋았으니 갈 때도 올 때와 같아야 한다≻고 하였거늘, 너희들은 그 뜻을 모르는가? 나는 과거에 계율을 지니고 보시를 행하면서 공덕을 지어 왕의 종자를 심었기 때문에 이 자리를 누리는 것이다. 다시 선을 닦아 쌓으면 오는 세상에도 반드시 거듭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존자는 나를 훈계하여 ≺왕이 오실 때에 길이 좋았던 것처럼 가실 때도 길이 좋으십시오라고 한 것이다.’
신하들도 이 말을 듣고 머리를 조아려 사과했다.
‘신들은 우둔하여 가만히 망령된 생각을 내었습니다. 대왕님의 신령스런 덕은 미묘한 뜻에 꼭 맞습니다. 덕을 쌓아 심었기 때문에 이런 자리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하들은 기뻐하면서 물러갔다.”
또 『십송율』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전생의 인연으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지난 세상에 설산(雪山) 가까이 세 마리의 새와 짐승이 함께 살고 있었으니, 첫째는 비둘기요 둘째는 원숭이요 셋째는 코끼리였다. 이 세 금수는 처음에는 서로 멸시하면서 공경하는 행이 없었다. 그들은 생각했다.
≺우리는 왜 서로 공경하지 않는가? 먼저 난 이에게 공양하고 존중하면 그는 우리를 교화할 것이다.≻
그리하여 비둘기와 원숭이는 코끼리에게 물었다.
≺너는 과거의 어떤 일을 기억하는가? 그 때에도 이 큰 필발라나무[蓽茇樹]가 있었던가?≻
코끼리는 말하였다.
≺내가 어릴 때에 다니면 이 나무는 내 배 바로 밑에 있었다.≻
코끼리와 비둘기는 원숭이에게 물었다.
≺너는 어떤 일을 기억하는가?≻
원숭이는 대답하였다.
≺나는 어릴 때 땅에 앉아 이 나무 꼭대기를 잡아 눌러 땅에 닿게 했다.≻
코끼리는 원숭이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 나는 너를 공경할 것이니 너는 나를 위해 설법하여라.≻
코끼리와 원숭이는 비둘기에게 물었다.
≺너는 어떤 일을 기억하는가?≻
비둘기는 대답하였다.
≺나는 필발라나무 씨를 먹고 여기서
대변을 보아 그 자리에서 이 필발라나무가 나서 이렇게 컸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것이다.≻
원숭이는 비둘기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 나는 너를 공경할 것이니 너는 나를 위해 설법하여라.≻
이리하여 코끼리는 원숭이를 공경하여 설법을 듣고는 다른 코끼리들을 위해 설법하였다. 또 원숭이는 비둘기를 공경하여 설법을 듣고는 다른 원숭이들을 위해 설법하였다. 그리고 비둘기는 다른 비둘기들을 위해 설법하였다. [『사분율』에 의하면, “비둘기는 원숭이를 타고 원숭이는 코끼리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설법 교화하였다”고 했다.]
이 세 마리 금수는 전에는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과 거짓말 등을 좋아했으나 그 뒤로는 서로 경계하여 그런 것을 고치고, 여기서 목숨을 마치고는 다른 천상에 났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도 이 짐승들이 선행을 널리 행하여 사람과 곡식을 침범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각각 서로 경계하였다.
≺짐승들도 서로 공경하거늘, 하물며 우리들이겠는가?≻
이렇게 서로 공경하면서 5계(戒)를 받들어 행하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다 천상에 났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비둘기는 바로 나요, 원숭이는 저 사리불이며, 코끼리는 저 목건련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저 무지한 짐승도 서로 공경함으로써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거늘, 하물며 너희들은 믿음으로 출가하여 서로 존경하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그리고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누구나 부처님과
부처 제자를 공경하지 않으면
현세에서는 사람의 꾸중 받고
후세에서는 악도에 떨어지리.

만일 누구나 부처님과
부처 제자를 공경할 줄 알면
현세에서는 사람의 칭찬 받고
후세에서는 천상에 나리.”

(3) 경익부(敬益部)

『성실론(成實論)』에서 말하였다.
“삼보(三寶)에 6의(義)가 있으니 그러므로 공경해야 한다. 첫째는 희유(希有)의 뜻이니, 빈궁한 사람은 세상의 보물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삼보도 그와 같아서 박복한 중생들은 백천만 세상을 지내도 만날 수 없다. 그러므로 보배라 한다. 둘째는 더러움을 떠났다는 뜻이니, 세상의 진실의 본체는 더러움이 없는 것처럼 삼보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를 떠났다. 그러므로 보배라 한다. 셋째는 세력이 있다는 뜻이니, 세상의 보배는 가난과 독(毒)을 제거하는 큰 세력이 있는 것처럼 삼보도 이와 같아서 불가사의한 여섯 신통의 힘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보배라 한다. 넷째는 장엄의 뜻이니 세상의 보배는 몸을 장엄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처럼 삼보도 이와 같아서 수행하는 사람을 장엄하여 그 몸을 청정하게 한다. 그러므로 보배라 한다. 다섯째는 가장 훌륭하다는 뜻이니, 세상의 보배가 다른 물건에 비해 가장 훌륭한 것처럼 삼보도 이와 같아서 일체 세간에서 가장 뛰어나고 훌륭하다. 그러므로 보배라 한다. 여섯째는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세상의 참 금은 태우고 두드리고 갈고 단련해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삼보도 이와 같아서, 세간의 8법(法) 때문에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배라 하는 것이다.
또 6의(意)가 있다. 그러므로 공경해야 한다. 첫째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이 법은 좋은 약이요, 스님은 잘 전하여 우리를 이롭게 한다. 그러므로 은혜를 갚기 위해 공경해야 한다. 둘째는 말세의 악한 때에 법을 전하기 쉽지 않은데 그 위엄의 가호(加護)를 청한다. 그러므로 공경해야 한다. 셋째는 세상을 위해 믿음을 내고 받든다. 그러므로 공경해야 한다. 넷째는 승니(僧尼)에게 공경하고 섬기는 의식을 가르친다. 다섯째는 승니들로 하여금 법을 공양하고 그것을 오래 머무르게 한다. 그러므로 공경해야 한다. 여섯째는 그 때문에 훌륭한 상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공경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실론(成實論)』에서 말하였다.
“삼보는 가장 길상(吉祥)한 것이기 때문에 내 경전의 첫머리에 두느니라.”

(4) 위손부(違損部)

『상법결의경(像法決疑經)』에서 말하였다.
“내지 일체의 속인은 귀천을 불문하고 삼보의 노비(奴婢)와 축생을 때릴 수 없고 또 삼보의 노비들의 예배를 받으면 다 재앙을 입을 것이다.”
그러므로 『살차니건경』에 말하였다.
“절의 탑을 부수고 부처의 물건을 취하며 혹은 그리하도록 시키고는 기뻐하거나 또는 법복을 입은 사문으로서 계율을 지키거나 깨뜨린 이를 결박하거나 가두거나 때리거나 속가(俗家)로 보내거나 혹은 죽이는 등 이런 근본 중죄를 범하면, 그는 결정코 지옥에 떨어져 끊임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 또 왕으로서 국내에서 이런 불선(不善)을 행하면 모든 신선과 성인들이 그 나라를 떠날 것이요, 큰 힘을 가진 모든 신(神)이 그 나라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며, 대신들의 싸움은 사방에서 일어나고, 홍수와 가뭄이 고르지 못하며, 바람과 비가 그 때를 잃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도적들이 마구 돌아다니며 몹쓸 병이 유행하여 무수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자기가 지은 것인 줄 알지 못하고 도리어 하늘을 원망하느니라.”
또 『인왕경(仁王經)』에서 말하였다.
“국왕과 대신은 스스로의 고귀함을 믿고 우리 법을 파괴한다. 즉 법과 제도를 만들고 우리 제자들을 제약하여 출가하기를 허가하지 않고 불상의 조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통솔하는 관제(官制) 등을 만들어 호적을 두어 승려들의 일을 기재하며 비구는 땅에 세우고 속인은 높은 자리에 앉는다. 또 국왕과 태자는 함부로 법을 만들되 불교의 인연에 의하지 않고 승려의 인연을 깨뜨리며 관리를 다스리고 승려를 포섭하며 승적을 도맡아 괴롭게 간섭한다. 그리하여 불법은 오래 가지 못한다.”
또 『대집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모든 중생은 현재나 미래에 부처와 법과 승을 깊이 믿어야 한다. 그리하면 그 중생들은 인간과 천상에서 항상 훌륭하고 묘한 과보를 받을 것이요, 오래지 않아 무외(無畏)의 성(城)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내지
한 사람을 공양하면, 또 나 때문에 출가하고 또 나에 의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은(계는 받지 않았더라도), 이런 사람을 공양하면 그 도는 공덕을 얻어 내지는 무외(無畏)의 성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이 나 때문에 출가하여 계율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는데, 이런 사람을 비법으로 괴롭히거나 해치면 그는 3세 모든 부처님의 법신(法身)과 보신(報身)을 파괴하는 것이니 그것은 내지 3종의 악도를 가득히 채우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중생이 나 때문에 출가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으면 설령 계를 지키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다 이미 열반의 도장이 찍힌 것이다. 또 누가 출가하여 계율은 지키지 못하더라도, 만일 누가 그를 비법으로 괴롭히고 어지럽히며 비방하고 꾸짖으며 손이나 칼로 때리고 결박하고 베며 혹은 그의 옷과 발우와 갖가지 살림 도구를 빼앗으면 그는 삼세 부처님의 진실한 보신을 깨뜨리고 일체 사람과 하늘의 눈을 빼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모든 부처님의 정법과 삼보의 종자를 없애려는 것이기 때문이요, 하늘 사람들로 하여금 이익을 얻지 못하고 악도에 떨어지게 하기 때문이며 3종의 악도를 더욱 늘리고 채우기 때문이다.’
그 때 사바세계의 주인인 대범천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부처님 때문에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계율을 받지 않고 계율을 범했을 때, 그 찰제리왕이 그를 괴롭히고 꾸짖고 때리고 결박하면 그 죄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범천왕아, 나는 그대를 위해 우선 간단히 말하리라. 만일 어떤 사람이 억만 부처님 몸의 피를 내었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죄가 많겠는가?’
대범천왕은 답하였다.
‘만일 한 부처님 몸만이 피를 내었더라도
그 무간(無間)의 죄가 무량하여 셀 수 없는 수보다도 많아 아비지옥에 떨어지겠거늘, 하물며 만억 부처님 몸의 피를 냄이겠습니까? 부처님 이외에는 아무도 그 죄업의 과보를 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범천왕아, 만일 어떤 이가 나 때문에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 조각을 입고 계율을 받지 않았거나 받고도 범한 이를 괴롭히고 꾸짖고 때리고 결박한다면 이 죄는 앞의 죄보다 많느니라. 왜냐 하면 이 사람은 그래도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위해 열반의 길을 보일 수 있고, 이 사람은 삼보를 마음으로 공경하고 믿어 일체의 90외도보다 훌륭하며 이 사람은 반드시 빨리 열반에 들어가며 인욕(忍辱)을 얻은 재가(在家) 이외의 일체 재가 속인보다 훌륭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사람들은 다 그를 공양해야 하거늘, 하물며 계율을 두루 잘 가져 3업(業)에 상응한 이겠는가?
모든 일을 끊은 어떤 일체의 국왕 및 신하들이, 내 법 안에서 출가한 사람의 큰 죄업, 즉 큰 살생과 큰 도둑질과 큰 음행과 큰 거짓말 및 다른 불선을 보고, 다만 나라에서 축출하거나 절에 있어서 승려들과 함께 사업함을 허락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때리거나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거나 그 몸에 죄를 더해서는 안 되며, 혹은 고의로 법을 어겨가면서 그를 꾸짖거나 벌을 주면, 이 사람은 해탈에서 타락하여 미천한 무리에 태어나 일체 인간과 천상의 선도를 멀리 떠나 반드시 아비지옥으로 달려가겠거늘, 하물며 부처님 때문에 출가하여 계율을 두루 가지는 이를 때림이겠는가?’”
『십륜경(十輪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족성자(族姓子)야, 네 종류의 승(僧)이 있다. 그 네 종류란, 첫째는 제일의(第一義)의 승이요, 둘째는 깨끗한 승이며, 셋째는 아양승(瘂羊僧)이요, 넷째는 부끄럼이 없는 승이다.
어떤 것이 제일의의 승인가?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벽지불과 4과(果)를 얻은 사문 등이니, 이런 7종의 승을 제일의 승이라 하며, 또 집에 있으면서 성과(成果)를 얻은 이도 제일의의 승이라 한다. 어떤 것을 깨끗한 승이라 하는가? 구족계(具足戒)를 잘 지키는 이를 깨끗한 승이라 한다. 어떤 것을 아양승이라 하는가? 범하고 범하지 않음과 가볍거나 무겁거나 미세한 죄라도 참회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며 우치하고 무지하여 선지식을 가까이하지 않고, 선인가 선이 아닌가의 깊은 이치를 묻지 못하면 이런 모습을 아양승이라 한다. 어떤 것을 부끄럼을 모르는 승이라 하는가? 만일 생활을 위해 불법에 들어오면 그것은 다 파계하는 것이요, 화합하는 승을 파괴하면서 후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6정(情)으로 방종하고 5욕(欲)에 탐착하면 이런 이를 다 부끄럼이 없는 승이라 하느니라.’”[이런 네 종류의 승이라도 다 공경해야 한다.]
또 『대비경(大悲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 법 안에서 그 모습만이 사문이면서 사문의 행을 더럽히고 스스로 사문이라 일컬으며, 형상은 사문과 같이 가사를 입는 자들이 있어 그들을 이 현겁(賢劫)에서 미륵을 우두머리로 하여 최후로 비로자나여래까지 섬길 것이다. 저 사문들은 이렇게 천 불을 섬기면서 무여(無餘)열반의 세계에서 차례로 열반에 들어 남음이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와 같이 일체의 이 사문들 중에서, 내지 한 번만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한 번만 믿음을 내더라도 그의 짓는 공덕은 마침내 헛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난아, 나는 부처의 지혜로 법계를 헤아려 알고 모르는 것이 없다. 아난아, 모든 깨끗한 업은 깨끗한 과보를 얻고 더러운 업은 더러운 과보를 얻는 것이다. 만일 깨끗한 중생이 나무불(南無佛) 하고 이렇게 부르더라도 그는 이 선근으로 반드시 열반에 가까워질 수 있겠거늘,
하물며 부처님을 만나 직접 공양함이겠는가?’”
또 『십륜경(十輪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들이 나에 의해 출가했으면 일체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들은 다 그를 공양해야 한다. 만일 그가 계를 지키면 그를 귀양보내거나 가두거나 그 손발을 자르거나 내지 죽여서는 안 되나니 그것은 다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 파계(破戒)한 비구가 종기 터진 것처럼 범행(梵行)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 하여 성도(聖道)의 과증(果證)에서 타락하고 번뇌에 파괴되었더라도, 그는 나와 용과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에게 무량한 공덕의 보배 창고를 열어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나에 의해 출가한 사람이면 그가 계율을 지키거나 계율을 깨뜨리거나, 나는 저 전륜왕이나 그 대신이나 재상들이 그들을 벌주거나 가두거나 때리거나 그 손발을 자르거나 내지 죽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물며 조그만 위의를 범한 사람이겠는가?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죽더라도 그 남은 계율의 힘은 마치 우황(牛黃)과 같아 그 소는 죽었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는 것과 같다. 또 사슴은 죽었더라도 사향(麝香)은 그 쓰임새가 있어 일체 중생을 크게 이롭게 하는 것처럼, 악행 비구는 계율을 범했더라도 그 계율의 힘은 무량한 하늘과 사람들을 이롭게 할 수 있느니라.
비유하면 사르는 향과 같다. 즉 그 향은 그 몸은 비록 파기되었더라도 냄새는 다른 것을 향기롭게 하는 것처럼, 파계한 비구도 그와 같아서 자신은 악도에 떨어지더라도 중생들의 선근을 증장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일체의 속인들은 파계한 비구를 비방하고 경멸할 것이 아니라, 다 수호하고 존중하고 공양하여, 그를 벌하거나 가두거나 내지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곧 게송을 외우셨다.
첨복꽃은 시들었더라도
다른 꽃보다 훌륭한 것처럼

파계하는 비구라도
외도들보다 훌륭하니라.”

또 『대집경』에서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으면
계를 지니거나 깨뜨리거나
하늘과 사람들은 그를 공양해
언제나 모자람 없게 할지니
이렇게 그를 공양하는 것
그것은 곧 내게 공양함이네.

만일 이 법을 공경하려고
여기에 귀의해 머리를 깎고
그 몸에 가사를 입었으면
그들은 바로 내 아들이네.

가령 계율을 깨뜨렸어도
그래도 자리에서 안 물러날 때
누가 그를 때리면
그것은 곧 나를 때림이며
누가 그를 욕하면
그것은 곧 나를 욕함이네.

이 사람은 바른 법의
큰 등불을 끄려 함으로써
재물을 위해 싸우면서
세상마다 서로 원한 품으리.”

또 『십륜경(十輪經)』에서 말하였다.
“비유하면, 옛날 복덕(福德)이라는 왕은 죄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결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왕은 직접 죽이고 싶지는 않아 죄인을 미친 코끼리에게 맡겼다. 그 때 코끼리는 그의 두 발을 잡고 땅에 내리치려 하다가 그가 가사 입은 것을 보고는 곧 조용히 땅에 내려 놓고 해치지 않았다. 그리고 마주 쭈그리고 앉아 코로 그의 발을 핥아 주면서 인자한 마음을 내었다.
족성자(族姓子)야, 코끼리는 축생이지만 가사 입은 사람을 보고는 해치려는 마음을 내지 않았다. 그리고 오는 세상에 전타라왕이 있어서, 내 법 안에서 출가한 사람으로서 그가 법의 그릇이 될 만하거나 또 법의 그릇이 되지 못하더라도, 일부러 그를 괴롭히거나 혹은 그 목숨을 빼앗으면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나무 밑에서 경행(經行)하면서
도를 구하는 뜻이 견고할 때는
이미 신통의 힘이 있어서
지팡이 날려 연기를 타고 가네.

한 등불에 네 가지 서원
그보다 먼저 도에 이를 이 없네.
오랜 겁의 수명을 탐하지 않거니
수명의 길고 짧음 어찌 말하랴.”

감응연(感應緣)[대략 열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위(魏)나라 사문 석담시(釋曇始)
진(晋)나라 사문 석도개(釋道開)
진나라 사공(司空) 하충약(何充弱)
진나라 여산(廬山) 7령(嶺)의 성승(聖僧)
진나라 사문 석승랑(釋僧朗)
진나라 사문 석법상(釋法相)
진나라 사문 석법안(釋法安)
송(宋)나라 사문 석혜전(釋慧全)
제(齊)나라 사문 석혜명(釋慧明)
신주(神州) 모든 산의 성승(聖僧)

① 위(魏)나라 사문 석담시(釋曇始)
전위(前魏) 태무(太武) 때의 사문 담시(曇始)는 매우 신이(神異)하고 50년 동안 항상 앉아 있으면서 눕지 않았다. 언제나 신을 신지 않고 맨발로 진창을 다니다 발을 들면 곧 얼굴처럼 희어졌으므로 세속에서는 이름을 백족아련(白足阿練)이라 했다.
혁연창(赫連昌)이 장안(長安)을 파괴했다. 그는 불법을 믿지 않았으므로 승니(僧尼)들을 해칠 때, 처음 담시를 칼로 쳤으나 담시는 다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죽음을 면한 승니들이 많았다. 태무제(太武帝)는 그를 공경하고 존중했다. 그가 죽고서 10여 년이 지났으나 그 형색은 변하지 않았다.

② 진(晋)나라 사문 석도개(釋道開)
서진(西晋)의 사문 석도개(釋道開)는 돈황(燉煌) 사람이다. 그는 출가하여 산에 살면서 30년 동안 솔과 잣만 먹었고 뒤에는 오직 소석자(小石子)만 삼키면서 걸음은 나는 것 같았다. 시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고요함을 즐기면서 여러 해 동안 포복산(抱腹山)에서 살았다.
가끔 석호(石虎)가 서평(西平)에서 올 때에는 하루 7백 리를 걸어 업(鄴)에 이르러 도시와 촌으로 두루 다니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했다. 재물이 생기면 다 나누어주고
빈 몸으로 다닐 뿐이었다. 석씨의 난리가 끝나려 할 때에는 제자와 함께 서울로 와서 남라부(南羅浮)의 절에 들어가 죽었다. 원언백(袁彦伯)이 흥녕(興寧) 때 그 산에 올라가 그 마른 뼈에 예배했다 한다.

③ 진나라 사공(司空) 하충약(何充弱)
동진(東晋)의 사공(司空) 하충약(何充弱)은 불법을 믿고 재(齋)에 참석한 지 여러 해였다. 신령을 대접하기 위해 그 집에서 재를 베풀어 승속들이 많이 모였다. 그 자리에 어떤 스님이 있었는데, 얼굴과 옷은 누추하고 품위가 비천했다. 대중 속에서 자리에 올라와 두 손을 마주 잡고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온 자리가 모두 괴상히 여겨 어떤 촌뜨기 중이라 생각하고 충약도 불평스러운 표정을 나타내었다. 점심 때가 되어 스님들에게 밥을 돌리고 공양이 끝나자, 그는 방에서 나오면서 충약을 돌아보고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부질없이 정진하는가?”
그리고 곧 발우를 공중에 던지고는 허공 속으로 날아갔다. 충약과 승속들은 멀리 하늘 끝을 바라보면서 모두 한탄하고 수십 일 동안 후회했다. [이상 세 가지 증험은 『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④ 진나라 여산(廬山) 7령(嶺)의 성승(聖僧)
진(晋)나라 여산(廬山)의 7령(嶺)은 모두 동쪽에서 모여 다 함께 봉우리를 이루었다. 그 벼랑은 험하고 끊어져 아무도 오르지 못했다. 태원(太元) 때 예장태수(豫章太守) 범녕(范寗)이 거기에 학관을 세우려고 사람을 보내어 나무를 치게 했다. 사람들은 그 산에서 승복을 입은 어떤 스님을 보았다. 그는 허공을 뚫고 바로 올라와서는 그 봉우리에 걸터앉아 한참 있다가 구름과 함께 사라졌다. 그 때 약을 캐던 여러 사람들도 다 함께 보았다. 그 때 문사들은 다 그것을 두고 시를 지었고, 사문 석담제(釋曇諦)는 그의 여산부(廬山賦)에서 “응진(應眞)이 구름을 뚫고 봉우리에 걸터앉아 아득히 빛을 가리고 어둠 속으로 들어갔네” 하였다.

⑤ 진나라 사문 석승랑(釋僧朗)
진(晋)나라 사문 축승랑(竺僧朗)은 계행이 밝고 엄해 화융(華戎)이 모두 공경하고 기이하게 여겼다. 그는 일찍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법을 청하러 갔다. 도중에서 갑자기 그 친구들에게 말하였다.
“자네들이 절에 둔 옷을 도둑 맞은 것 같다.”

친구들은 곧 돌아가 보았더니 과연 다 도둑 맞았다.
진(晋)나라 태원 때에 석승랑은 봉고현(奉高縣) 금여산(金與山) 골짜기에 절을 짓고 불상(佛像)을 모셨다. 부견(符堅)은 말년에 도인들을 배척했으나 승랑의 무리만은 공경하여 감히 비방하지 못했다.
그 때 스님이나 속인들이 그를 믿고 받들어 찾아올 때 그는 그 사람들의 수를 하루 전에 미리 알고 알려 주었다. 제자들이 그것을 알아 보았더니 반드시 그 말대로 그날 왔다.
그 골짜기에는 옛부터 호랑이가 많아 항상 사람들을 해쳤으나, 거기에 절을 세운 뒤로는 그것들은 마치 가축(家畜)처럼 되었다. 그리고 선비(鮮卑) 모용덕(慕容德)은 두 고을의 조세(租稅)로 그 절의 아침과 점심에 충당했다. 지금도 그 골짜기를 낭공곡(郎公谷)이라 한다.

⑥ 진나라 사문 석법상(釋法相)
진(晋)나라 사문 석법상(釋法相)은 하동(河東) 사람이다. 그는 항상 산에 홀로 살면서 괴로운 정진으로 업을 삼았으며 새와 짐승들이 그 좌우에 모여 마치 집에서 기르는 것과 같았다.
태산사(太山祠)의 돌함에는 재보가 가득 들어 있었다. 법상이 산을 다닐 때에는 그 사당에서 잤다. 어느 때 검은 옷에 무관(武冠)을 쓴 사람이 법상에게 말하였다.
“그 돌함을 여십시오.”
이 말을 마치자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 함의 돌 뚜껑은 천균(千鈞)보다 더 무거웠다. 법상이 시험삼아 들어 보았더니 그것은 거뜬히 열렸다. 법상은 그 재보를 취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보시했다.
그 뒤에 강남으로 가서 월성사(越成寺)에 있을 때는 광대짓과 익살로 방탕하게 놀기도 하고 혹은 웃통을 벗고 조정의 귀인들을 모욕도 하였다. 진북장군(鎭北將軍) 사마염(司馬恬)은 그의 불손함을 미워하여 그를 불러 짐독(鴆毒)을 주었다. 그는 3종(鐘)이나 마셨는데도, 신기(神氣)가 맑고 편안하여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이 89세로 원흥(元興) 말년에 죽었다.

⑦ 진나라 사문 석법안(釋法安)
진(晋)나라 사문 석법안(釋法安)은 여산(廬山)의 혜원(慧遠) 법사 제자이다. 의희(義熙) 말년에 양신현(陽新縣)에 호랑이의 사나움이 매우 성행했다. 그 현의 큰 사당 나무 밑에 신묘(神廟)를 짓고 그 좌우에
1백여 명의 백성들이 살고 있었다. 밤이면 반드시 한두 명씩 호랑이에게 먹혀 죽었다.
법안이 일찍이 그 고을에서 놀다가 날이 저물어 그 마을에서 자게 되었다. 사람들은 호랑이를 두려워해 일찍 문을 닫았고, 또 법안을 모르기 때문에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법안은 마을을 질러 어느 나무 밑으로 가서 밤새도록 좌선하고 있었다. 새벽이 되어 호랑이가 어떤 사람을 업고 와서 나무 북쪽에 던져 두고는, 법안을 보고 기쁜 듯 뛰면서 그 앞에 와서 엎드렸다. 법안은 설법하고 호랑이에게 계를 주었다. 호랑이는 꼼짝 않고 땅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한참 뒤에 가버렸다. 아침이 되어 마을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찾아왔다가 나무 밑에서 도안을 보고 크게 놀라, 그가 신인(神人)이기 때문에 해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뒤로는 호랑이 걱정은 없어지고 사람들은 더욱 그를 존경했으며 온 고을의 관리와 백성들이 다 불법을 받들었다.
그 뒤에 그 산 석벽에 불상을 그리려 했으나 공청(空靑)을 얻을 수 없어서 동청(銅靑)을 쓰려 했으나 또한 없었다. 어느 날 밤 꿈에 어떤 사람이 그 평상 앞에 와서 말하였다.
“이 밑에 두 개의 동종(銅鐘)이 있으니 그것으로 써라.”
이튿날 법안은 평상 밑을 파고 동종을 얻어 그것으로 불상을 만들었다.
그 뒤에 혜원 법사가 불상을 만들려 하였으므로 법안은 동종 하나를 보내어 그 일을 도왔고, 남은 하나는 무창태수(武昌太守) 웅무환(熊無患)이 그것을 빌려 보다가 그대로 두고 돌려 주지 않았다.
송(宋)나라 효명제(孝明帝) 때의 강릉(江陵) 장사사(長沙寺)의 사문 혜원(慧遠)은 그 본명은 황천(黃遷)이니 혜인(慧人) 선사의 제자이다. 혜인 선사는 선정에 들 때마다 혜원이 바로 자기의 선사(先師)임을 보고, 그가 비록 창두(蒼頭)이나 제도하여 제자로 삼으려 했다. 그리하여 항상 강릉의 양(楊)씨 집에서 기숙하면서 반주삼매(般州三昧)를 닦아 1년 동안 정진한 끝에 자못 감변(感變)이 있었다. 하루 열 번씩 혜원의 몸을 환히 보고 여전히 반주삼매를 계속해 하루에 마치기를 기약했다.
때가 되자 과연 그는 죽었다.
오랜만에 다보사(多寶寺)의 스님 담순(曇珣)에게 형상을 나타내어 말하였다.
“명년 2월 23일에 하늘 사람과 함께 마중하러 오리라.”
말을 마치자 이내 보이지 않았다. 담순은 이 날로
큰 법회를 열고 사신제(捨身齋)를 베풀었다. 담순은 이 날 기식의 고통을 느끼면서 스스로 죽을 것을 알았다. 3경(更)이 되자 하늘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고 향 연기가 매우 이상했다. 담순은 “혜원의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하고, 이내 죽었다.

⑧ 송(宋)나라 사문 석혜전(釋慧全)
송(宋)나라 사문 석혜전(釋慧全)은 양주(涼州) 사람이니, 제자들을 널리 가르쳐 그 문도(門徒)가 5백 명이었다. 어떤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성질이 사납고 거칠어 혜전은 항상 상대하지 않았다. 그는 뒤에 갑자기 3과(果)를 얻었다고 자처했다. 그러나 혜전은 그가 수행이 없다 하여 전혀 신임하지 않았다. 그 뒤에 혜전이 병이 났을 때 이 제자는 밤에 문병하러 왔다. 그러나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혜전은 자못 놀라 다시 시험해 보려고 하였다.
“내일 밤에 다시 오너라.”
이렇게 말하고는 문을 더욱 굳게 닫고 빗장까지 걸었다. 그는 밤중에 와서 바로 침대 앞에서 말하였다.
“스님 부탁으로 다시 왔습니다.”
그리고는 이어 말하였다.
“스님은 이 세상을 버리면 바라문 집에 태어나실 것입니다.”
혜전은 말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참선하였는데 어찌 그런 곳에 나겠는가?”
그는 말하였다.
“스님은 도를 독실히 믿지 않고 또 외학(外學)을 끊지 못하니 아무리 복업이 있더라도 생사를 뛰어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일 훌륭한 보시회를 열어 한 성인에게 공양하면 도과(道果)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혜전은 보시회를 베풀었다.
그는 또 말하였다.
“그 승가리를 보시하되 만일 요구하는 이가 있거든 어른 아이를 가리지 마십시오.”
보시회를 마치고 승가리를 보시하려 할 때 어떤 사미가 그것을 요구했다. 혜전은 이 사미가 그 제자라 생각하고 “나는 성승(聖僧)에게 이것을 드리려는데 어찌 너에게 주겠는가?” 하다가, 사람을 가리지 말라는 혜전의 그 말을 생각하고는 곧 기꺼이 주었다. 그 뒤에 혜전은 이 사미를 보고 물었다.
“전날 준 그 옷이 몸에 크지 않던가?”
사미는 말하였다.
“옷을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또한 까닭이 있어서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습니다.”
혜전은 비로소 먼저의 그 사미가 성인의 화신임을 깨달았다. 이 제자는 오랜 뒤에 세상을 떠났으나
떠날 때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고, 오직 그 무덤 사면에 때때로 흰 광명이 있을 뿐이었다. 혜전은 원가(元嘉) 20년까지 주천(酒泉)에 살고 있었다.[이상 여섯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⑨ 제(齊)나라 사문 석혜명(釋慧明)
제(齊)나라 시풍현(始豊縣) 적성산(赤城山)의 석혜명(釋慧明)의 성은 강씨(康氏)로서 강거(康居) 사람이다. 조부 때에 동오(東吳)로 피난해 적성산 석실(石室)에서 살았다. 그리하여 참선과 독경에 마음을 두어 일생 동안 속세를 버리고 은거하였다. 뒤에 선정에 들어 있을 때 어떤 여신(女神)이 늙은 할멈이라 자칭하면서 항상 호위하겠다고 하였다. 때로는 흰 원숭이와 흰 사슴과 흰 뱀과 흰 범 등이 뜰 앞에 와서 놀면서 마치 길들여진 듯 사람을 두렵게 하지 않았다.
제나라 경릉(景陵) 문선왕(文宣王)이 이 풍도를 듣고 하경하여 자주 3사(使)를 보내어 간절히 청하였다. 그리하여 잠깐 동안 산을 떠나 서울로 가서 궁중으로 들어갔다. 왕은 존경하여 스승으로 대우하였으나 얼마 안 되어 하직하고 산으로 돌아가려 했다. 왕은 굳이 만류했으나 머물지 않았으므로 부득이 일생 동안의 생활을 돌보았다. 건무(建武) 말년에 산에서 죽으니 나이는 70세였다.

신주(神州) 모든 산의 성승(聖僧)
진단(震旦)의 해곡(海曲)을 우러러 찾아보면 신주(神州) 모든 산의 가람과 천암(泉岩)과 석실(石室)에는 도를 닦는 사람들이 살던 성사(聖寺)가 있어서, 때로는 수행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님을 본다. 우선 35가지를 적어 실록(實錄)으로 삼고, 그 이외의 많은 것은 이루 다 이야기하지 못한다.
진(晋)나라 태원(太元) 초년에 돈황(燉煌)의 사문 축담유(竺曇猷)는 걸식하고 좌선(坐禪)하면서 뜻은 굳고 업을 부지런히 닦았다. 회계(會稽) 염현(剡縣)의 적성(赤城山)에 있을 때 호랑이떼가 앞에 왔다. 담유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는데 한 범이 졸고 있었으므로 여의장(如意杖)으로 그 머리를 때렸으며 열 아름 되는 뱀이 그를 감았으나 조금도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또 산신(山神)은 그 집을 주어 절을 만들게 했다.
그는 또 적성산에 가서 좌선하였다. 이 산과 천태(天台) 폭포는 4명(明)과 연속했다.
노인은 말하였다.
“이 산에 성사(聖寺)가 있어서 담유가 그것을 찾아갈 때 돌다리가 골짜기에 걸쳐 있고 푸른 물이 건너기 어려운데 횡석(橫石)이 길을 끊어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10여 일 동안 다리끝에서 자는데 저 행도(行道)가 포살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곧 재계하고 분발하였다. 그 때 갑자기 횡석의 시내가 트였다. 그는 곧 건너가서 그 절을 두루 보았다. 신승(神僧)이 향을 사르고 점심을 먹은 뒤에 말하였다.
“지금부터 10년 뒤에 다시 여기 올 것이다.”
제(齊)나라 서울 변두리의 대장사(大莊寺)의 사문 원통(圓通)에게 어떤 신승(神僧)이 여름 안거(安居) 동안에 와서 청강을 하다가 안거를 마치고 자자(自恣)하는 날에 하직하면서 말하였다.
“죽림사(竹林寺)에서 원통을 맞이하여 지내리라.”
원통은 그 길을 자세히 물어 두었다가 이듬해에 찾아갔더니, 그 산 동쪽이요, 서울의 서북에 있는 신승이 영접했다. 그가 보았더니, 절의 방마다 문은 열렸으며 방사가 화려하고 숲은 하늘을 찔렀다. 거기서 하룻밤을 묵고 돌아다닐 때 마음과 도가 모두 걸맞아, 그곳에서 일생을 마칠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신승이 대화상(大和上)에게 물었으나 화상은 허락하지 않았다. 옛 길을 따라 돌아오다가 3리쯤 밖에서 돌아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뒤에 거기 가는 사람도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근등주(近鄧州)의 사문 도근(道勤)은 등주 북쪽에 우뚝 선 산의 바위를 찾아가서 두루 다니면서 자세히 보았다. 실로 절에 사는 모든 기구가 다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내려와서 다시 찾아갔다가 그만 길을 잃고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집을 지었다. 그리고 분주(汾州)의 동남쪽 개산(介山)의 포복암(抱腹岩)이라는 사람을 찾으려 하였다. 그 산에 사는 스님이 말하였다.
“어떤 사문이 허공을 타고 오가는 것을 자주 보았다.”
또 양주(涼州) 남쪽의 큰 벼랑의 굴에 저거 몽손(沮渠蒙遜)이 세운 절이 지금도 있는데, 소(素)라는 성승(聖僧)이 항상 길을 다니고 있다가, 사람이 오면 곧 멈추고 사람이 가고 나면 이내 다닌다.
그러므로 그 곁에 발자국이 분명히 나타나 있지만 그 무리들은 보지 못한다.[『명승전(名僧傳)』 30권과 『양고승전(梁高僧傳)』 15권과 『당고승전(唐高僧傳)』 40권 및 『백가사전(百家史傳)』 등에는 성인과 석덕(碩德)과 수천여 스님들의 뛰어난 공덕을 승속(僧俗)들이 다 공경하는 것이다. 그러니 혹은 여러 편에 흩어져 있고 혹은 그 글이 너무 많아 다 적지 못하고 우선 얼마를 적어 보여 스님들의 공덕을 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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