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17권
법원주림 제17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7. 경법편(敬法篇) ①
1) 보현의 영험을 밝힘[普賢驗][지금은 말법(末法) 세상이라 관(觀)을 행하는 이가 드물기 때문에 경은 기록하지 않고 우선 네 가지 증험만 적는다.]
감응연(感應緣)
송(宋)나라 노소 태후(路昭太后)
송나라 사문 석도온(釋道溫)
송나라 사문 석도경(釋道璟)
제(齊)나라 사문 석보명(釋普明)
① 송(宋)나라 노소 태후(路昭太后)
송나라 노소 태후(路昭太后)는 대명(大明) 4년에 보현보살상(普賢菩薩像)을 만들고 흰 코끼리 수레에 태워 중흥선방(中興禪房)에 안치하고, 그로 인해 그 절에서 강(講)을 베풀었다. 그 해 10월 8일에 재계를 마치고 해제(解制)하니, 모인 스님은 2백 명이었다.
그 때 그 절을 처음 짓기 시작하였는데, 황제가 깊은 관심을 갖고 열흘에 나흘은 반드시 거기 왔으므로 스님들은 부지런히 정돈하고 금위(禁衛)는 엄숙하였다. 어느 날 유정(有定)이라는 스님이 자리에 나아가자, 한참 만에 갑자기 어떤 스님이 그 다음 자리에 와서 앉았다. 그 풍모가 아주 빼어났으므로 모든 사람들은 다 놀라면서 바라보았다. 재주(齋主)는 그와 더불어 백여 마디의 말을 주고받았는데 그는 갑자기 사라졌다. 모든 사람들은 다 그를 보고 신인(神人)임을 알았다.
② 송나라 사문 석도온(釋道溫)
송나라 대명(大明) 연중에 절을 통솔하는 법사의 이름은 도온(道溫)이었다. 그는 말릉현(秣陵縣)에 있으면서 황태후(皇太后)가 지혜가 깊고 밝으며 계획이 그윽하고 두루하며 생각이 맑고 도량을 깨끗이 하며 마음을 닦고 경계에 이르렀으며, 아름다운 이름은 중국에 떨쳤고 사업은 서역(西域)에까지 감통함을 보았다. 이에 불상 만들기를 원하고 아주 신묘한 여러 불상을 본떠 보현보살의 내의성상(來儀盛像)을 만들었는데, 천상의 보배와 묘한 장식을 다 썼다. 강재(講齋)를 베풀어 마친 그 달 8일에
보시 모임의 시한과 명부를 다 정하고 차례를 따라 자리에 앉으니 그 수는 남고 모자람이 없었다.
경을 반쯤 읽을 때 해는 한낮이 되었다. 갑자기 어떤 이상한 스님이 자리에 끼여 들었는데 얼굴이 단엄하고 기상이 빼어났다. 모두들 바라보았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재주(齋主)가 그에게 물었다.
“상인(上人)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는 답했다.
“내 이름은 혜명(慧明)입니다.”
“어느 절에 사십니까?”
“천안(天安)서 왔습니다.”
이렇게 문답하는 동안에 그는 갑자기 사라졌다. 온 방안이 다 놀라고 온 자리가 다 숙연해졌다. 이것은 밝은 징조가 나타남이며 그윽한 감응이 드러난 것이니, 자산(紫山)을 볼 수 있고 화대(華臺)가 멀지 않음이다. 대개 듣건대 지극한 정성이 감응하면 볕이 위도(緯道)로 옮기고 맑은 마음이 구하면 돌 속에서 샘물이 열린다 하거늘, 하물며 제왕의 덕이 가득히 움직이고 황제의 공이 널리 퍼지며 인(仁)이 하늘 멀리 통하고 이치가 저승 밖에 이름이겠는가?
그러므로 상왕(上王)의 융성한 선비는 대명(大明)의 아침에 잘 나타나고 묘한 몸을 힘써 나타내면 용이 나는 방을 몸소 보는 것이다.
생각건대 또 폐하(陛下)의 슬기는 바다와 육지를 밝히고 그 밝음은 해와 달처럼 빛난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름을 혜명(慧明:슬기와 밝음)이라 하니, 하늘을 이어 나라를 일으키고 그 법을 영원히 전하였다. 그러므로 절 이름을 천안(天安)이라 하니, 신령스런 터전은 더욱 길고 도의 정사는 바야흐로 굳어졌다. 9복(服)1)은 태평함을 알고 만민은 모두 기뻐한다. 삼가 말을 늘어놓아 고을에 부침으로써 하늘의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③ 송나라 사문 석도경(釋道璟)
송(宋)나라 사문 석도경(釋道璟)은 부풍(扶風) 호치(好畤) 사람으로 본성은 마씨(馬氏)다. 학업이 순수하고 젊어서 명성이 있었다. 원가(元嘉) 2년 9월에 낙양(雒陽)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위해 보현재(普賢齋)를 올릴 때 도인과 속인이 40여 인이었다. 7일을 지나 한낮에 갑자기 어떤 사람이 사마치옷에 말을 타고 들어와 불당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부처님께 예배했다. 도경은 보통 사람이라 생각하고 별달리 대우하지 않았다. 그는 말에 올라 채찍을 휘두르며 어느새 어디로 사라지고, 붉은 광명이 하늘 끝에 빛나다가 한참 만에 사라졌다.
그 뒤 3년 12월에 도경은 어떤 신도 집에서 다시 보현재를 지냈다. 재를 마치는 날, 어떤 두 사문이 평범한 모습을 하고 와서 부처님께 예배했다. 대중은 그들을 범인(凡人)이라 생각하고 그다지 예우하지 않고, 예사로 어디 사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이 앞마을에 삽니다.”
그 때 신도로서 장도(張道)라는 사람이 있어 그 둘을 이상하다 생각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했다. 그들이 문을 나가 수십 보를 갔을 때 갑자기 먼지가 일어 위로 올라가며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모두 그곳을 바라보았으나 그들은 간 곳이 없었다.
그 7년에 도경은 동학과 함께 경사(京師)에 유학했다. 그 때 사공(司空) 하상지(何尙之)가 처음으로 남간정사(南澗精舍)를 지었으므로 도경은 거기 우거(寓居)했다. 밤중에 갑자기 어떤 네 사람이 새 수레를 타고 네 사람의 시종을 데리고 절 안에 와서 도경을 불러 함께 수레를 타라 했다. 도경은 놀랍고 의심스러워 그 밤에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인해 눈이 어두워지면서 모르는 사이에 수레를 타고 한참 만에 그 고을 뒤에 침교(沈橋)에 이르렀다. 어떤 귀인(貴人)이 두건을 쓰고 홑베옷을 입고 평상에 앉아 일산을 들었는데 얼굴은 꽃 일산과 같았다. 노부(蓾簿)의 시종꾼은 수백 명에 달하였는데 다 누른 옷을 입었다. 그는 도경을 보고 놀라면서 말하였다.
“반주 도인(般舟道人) 정심(精心)을 멀리 보낸 것은 다만 처소를 알고자 함인데 왜 데리고 왔느냐?”
곧 사람을 시켜 보내라 했다. 도경은 정사로 돌아왔다. 그 문 밖에서 전송하던 사람은 간 곳이 없었다. 정사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으므로 문을 두드리며 오랫동안 불러서야 절 안의 스님들이 모두 놀라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 거처하는 방을 보았으나 방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이상 세 가지 증험은 『명상기』에 나온다.]
④ 제(齊)나라 사문 석보명(釋普明)
제(齊)나라 상정림사(上定林寺)에 있는 석보명(釋普明)의 성은 장씨(張氏)요 임위(臨渭) 사람이다. 젊어서 출가하였는데 성품이 청순하여 나물밥을 먹고 베옷을 입었다. 참회와 송경(誦經)으로 업을 삼아 『법화경』과 『유마경』을 외웠다.
그것을 외울 때는 항상 옷을 갈아입고 딴 자리에 앉았는데 조금도 더러움이 없었다. 「권발품(勸發品)」에
이를 때마다 보현보살이 코끼리를 타고 와서 그 앞에 서 있고, 『유마경』을 외울 때에는 공중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또 신주(神呪)를 잘하여 구원하는 병은 다 나았다. 그 고을 사람 왕도진(王道眞)의 아내가 병으로 앓자 보명에게 와서 주문 외우기를 청했다. 보명이 그 문에 들어가자 그녀는 곧 까무러쳤다. 이윽고 그 몸 길이가 두어 자 되는 삵 같은 것이 구두(狗竇)로 나왔다. 그 때문에 병은 곧 나았다.
보명이 일찍이 물가의 어떤 사당에 들어가 주문을 외웠더니 귀신들이 이것을 보고 다 달아났다.
송(宋)나라 효건(孝建) 연중에 죽으니 나이는 85세였다. [위의 한 가지 증험은 『당고승전』에 나온다.]
2) 관음의 영험을 밝힘[觀音驗][스무 가지 증험을 간추려 인용한다.]
진(秦)나라 상서(尙書) 서의(徐義)
진(秦)나라 거사(居士) 필람(畢覽)
진(晋)나라 사문 축법의(竺法義)
진(晋)나라 사문 축법순(竺法純)
진(晋)나라 사문 석개달(釋開達)
진나라 거사 곽선지(郭宣之)
진나라 거사 반도수(潘道秀)
진나라 거사 난순(欒荀)
진나라 사문 석법지(釋法智)
진나라 남공자(南公子)
진나라 사문 도태(道泰)
진나라 거사 손도덕(孫道德)
진나라 거사 유도(劉度)
진나라 거사 두전(竇傳)
진나라 사문 축법순(竺法純)
송(宋)나라 거사 장흥(張興)
송나라 거사 송염(宋琰)
위(魏)나라 사문 석도태(釋道泰)
위나라 거사 손경덕(孫敬德)
위나라 사문 석법력(釋法力)
ⓛ 진(秦)나라 상서(尙書) 서의(徐義)
진(秦)나라 서의(徐義)는 고륙(高陸) 사람으로서 젊어서 불법을 받들었고 부견(苻堅)의 상서(尙書)가 되었다. 부견의 말년에 전쟁이 일어나 적은 서의를 붙잡아 장차 죽이려고 그 두 발을 땅에 묻고 머리털을 나무에 매었다. 밤중에 오로지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면서 어느새 잠이 들었다. 꿈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지금 일이 급하거늘, 무슨 겨를에 잠을 자느냐?”
서의는 놀라 깨어나 파수꾼을 보았다.
그도 피곤해 자고 있었다. 이에 서의는 시험삼아 움직였는데, 머리털은 이미 풀려 있었고 발도 빠져 있었다. 인해 곧 달아나 백여 보쯤 가다가 조그만 풀덤불 속에 숨었다. 자기를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고 횃불이 줄을 지어 그 풀덤불까지 왔다가 끝내 찾지 못하고 새벽이 되어 다 돌아갔다. 서의는 업사(鄴寺)로 돌아와 화를 면하게 되었다.
② 진(秦)나라 거사(居士) 필람(畢覽)
진(秦)나라 필람(畢覽)은 동평(東平) 사람으로서 젊어서부터 불법을 받들었다. 모용수(慕容垂)를 따라 북방의 오랑캐를 치다가 혼자서 말을 타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오랑캐 군사가 급히 추격해 왔다. 필람은 진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생각하였다. 적을 벗어나게 된 필람은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어 또 진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생각했다.
밤중에 한 도인이 법복을 입고 지팡이를 들고 길을 가리켜 주었다. 그는 길을 찾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③ 진(晋)나라 사문 축법의(竺法義)
진(晋)나라 시녕산(始寧山)의 축법의(竺法義)는 진나라 흥녕(興寧) 때 사문이다. 여러 경전을 두루 열람했으나 『법화경』에 더욱 밝아 수업하는 제자가 항상 백여 명이었다.
함안(咸安) 2년에 갑자기 심장병을 앓아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했다. 어느 날 밤 꿈에 한 사람이 와서 배를 가르고 창자를 씻어 주었는데, 깨어나자 곧 병이 나았다. 부량(傅亮)은 늘 말하였다.
“내 선군(先君)은 법의 스님과 친해 관세음보살의 신령스러움을 들으시고 크거나 작거나 그 일에 늘 숙연(肅然)하셨다.”
④ 진(晋)나라 사문 축법순(竺法純)
진(晋)나라 사문 축법순(竺法純)은 산음(山陰)의 현의사(顯義寺) 주지다. 원흥(元興) 연중에 절을 짓고 담을 치기 위해 재료를 사려고 상란저(上蘭渚)로 가는데, 도중에 호도(湖道)를 지나게 되었다. 재료 주인은 여자로서 재료 있는 곳으로 같이 가야 했다. 값을 정하고 드디어 한배를 타고 같이 출발하여 큰 호수에 들어갔다. 해는 저물고 폭풍으로 파도가 산과 같이 일었다. 법순의 배는 작고 물이 새어 목숨이 찰나에 있었다.
그는 ‘가는 길에 복이 없어 이런 재앙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또 여자와 함께 타고 있는 것으로써 다소 두려움이 가셨다. 이에 일심으로 『관음경』을 외웠다. 이윽고 큰 배가 법순에게로 흘러왔다. 그 때는 마침 깊은 밤이라 나룻배가 다 끊어졌으므로 법순은 생각했다.
‘저렇게 떠도는 배가 있을 리 없다. 저것은 신(神)의 힘이리라.’
그리하여 둘이 같이 그 배로 옮겨 타자 이 작은 배는 곧 가라앉았다. 큰 배는 물결을 따라 나아가 조금 뒤에 언덕에 닿았다.
⑤ 진(晋)나라 사문 석개달(釋開達)
진(晋)나라 사문 석개달(釋開達)은 융안(隆安) 2년에 언덕에 올라가 감초를 캐다가 오랑캐[羌]에게 붙들렸다. 그 때는 크게 흉년이 들어 오랑캐들은 서로 잡아먹고 살았으므로 개달을 우리 안에 가두어 두고 잡아먹으려 했다. 개달보다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자는 10여 인이었다. 오랑캐는 날마다 저녁에 그들을 삶아 먹고 개달만이 남아 있었다. 개달은 붙잡히던 때부터 가만히 『관음경』 외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내일이면 잡아먹힐 날이었다.
이튿날 새벽이 되었는데 갑자기 큰 호랑이가 나타나 오랑캐들에게 달려들면서 성을 내어 부르짖어 오랑캐들은 놀라 각각 흩어져 달아났다. 호랑이는 먼저 우리의 책목을 물어 뜯고 작은 구멍을 내어 사람이 통할 만큼 만들고는 천천히 물러갔다. 개달은 처음에 호랑이가 우리의 책목을 물어 뜯는 것을 보고 꼭 죽는 줄 알았다가, 책목만 뜯고 들어오지 않고 가는 것을 보고는 이상히 여겨 그것은 관음보살의 신력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오랑캐들이 오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곧 우리를 나와 도망쳐, 밤에는 걷고 낮에는 숨어 드디어 화를 면하게 되었다.
⑥ 진나라 거사 곽선지(郭宣之)
진(晋)나라 곽선지(郭宣之)는 태원(太原) 사람이다. 의희(義熙) 4년에 양사평(楊思平)을 위해 양주부(梁州府)의 사마(司馬)가 되었다. 양사평이 범원지(范元之) 등을 해칠 때 그 법에 의해 선지도 붙들려 옥에 갇혔다.
그리하여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에게 귀향했다. 그 뒤 어느 날 밤에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보살의 광명이 옥을 비추는 것을 보았다. 선지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예배하고 기원했다.
한참 만에 그 광명은 사라지고 이윽고 선지 혼자만이 은혜를 입고 방면되었다. 풀려나서는 그가 본 형상에 의해 보살상을 만들고 또 절을 세웠다. 뒤에 영릉형양(零陵衡陽)의 졸관(卒官)이 되었다.
⑦ 진나라 거사 반도수(潘道秀)
진(晋)나라 반도수(潘道秀)는 오군(吳郡) 사람이다. 나이 20여 세에 군난주(軍亂主)가 되어 북방의 고(固)를 치다가 군사가 적어 패했다. 반도수는 도망가다가 붙들려 여러 곳을 다니면서 종으로 부림을 당했다. 타국에서 포로가 되었으니 돌아가고자 했으나 그 길이 없었다.
젊어서부터 불법을 믿어 항상 지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생각했다. 그래서 꿈꿀 때마다 관음상을 보았다. 뒤에 남방으로 달아나다가 길을 잃고 깊은 산중에서 갑자기 진형(眞形)을 보았는데 지금 유행하는 상과 같았다. 인해 예배하고, 예배를 마치자 곧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에 돌아갈 길을 발견하고 드디어 본국으로 돌아온 뒤로는 더욱 정진했다. 나이 60세가 가까워 죽었다.
⑧ 진나라 거사 난순(欒荀)
진(晋)나라 난순(欒荀)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젊어서 불법을 받들었다. 일찍이 복부평(福富平)의 수령[令]이 되어 먼저 오랑캐 정벌에 따라 나갔다가 군사가 적어 싸움에 패하였다. 배는 불을 만나 거의 다 타는데 적병마저 번갈아 핍박하였다. 강 한복판에서 풍랑은 눈을 놀라게 했다. 난순은 두려워 어쩔 줄 모르면서도 오직 관세음보살만 생각했다. 이윽고 어떤 사람이 강 복판에 우뚝 섰는데, 물이 허리밖에 차지 않는 것을 보았다. 난순은 이것이 기도의 영험임을 알았다. 쫓아오는 화적이 급박하자 물에 뛰어들었다. 몸은 물에 떠서 솟았다가 이내 발이 땅에 닿았고 대군(大軍)이 배를 보내 패잔병을 영접하였으므로 구제되었다.
⑨ 진나라 사문 석법지(釋法智)
진(晋)나라 사문 석법지(釋法智)는 속인으로 있을 때 큰 늪 속을 가다가 사방에서 일어나는 큰 불을 만나 달아날 길이 막혀 지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생각했다. 이윽고 불길이 지나가고 온 늪의 풀은 하나도 남은 것이 없었으나 법지가 있는 곳만은
불에 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불법을 공경하고 받들게 되었다.
그 뒤에 요흥(姚興)의 장군이 되어 오랑캐를 치다가 물러나면서 말에서 떨어져 적에게 포위되었다. 곧 개울가 가시덤불 속에 숨어 머리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다시 지성으로 관세음보살을 생각했다. 개울가의 사람이 뒤처진 군사를 멀리서 불러 그를 죽이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수색하다가 발견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는 구제되었다. 그 뒤에 그는 출가했다.
진나라 남공자(南公子)
진(晋)나라 남공(南公) 자오(子敖)는 시평(始平) 사람이다. 신평성(新平城)을 지키다가 오랑캐 장락공(長樂公)에게 패하여 항복하고 성내의 수천 명이 다 죽었다. 자오는 반드시 죽을 지경에 이르자 지성으로 관세음보살만 생각했다. 자오가 죽을 차례가 되어 여러 칼날이 혹은 높게 혹은 낮게 내려쳤으나 칼은 잡은 사람들이 다 지쳐 사지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에 장락공이 놀라 친히 칼을 잡고 물었다. 자오는 대답하였다.
“말 안장을 만들 수 있다.”
그리하여 용서를 받았으나 자오 역시 그 까닭을 모르고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그 후에 그는 도망쳐서 조그만 관음상을 만들어 향함(香函)에 넣고 다닐 때에 머리에 이고 다녔다고 한다.
진나라 사문 도태(道泰)
진(晋)나라 사문 석도태(釋道泰)는 상산(常山) 형당정사(衡唐精舍)의 스님이다. 의희(義熙) 연중에 꿈에 어떤 사람이 말했다.
“그대는 나이 42세에 죽을 것이다.”
그 때 도태의 나이 42세로서 병에 걸려 위독했다. 그는 반드시 죽으리라 생각하고 그의 옷과 발우 등을 다 보시하고 또 정성을 다해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생각하면서 밤낮으로 정진하여 쉬지 않았다.
그 때 앉아 있던 책상 앞의 휘장이 내려지면서 그 휘장 밑에서 어떤 사람이 창 문턱을 걸터타고 들어오는데, 그 발 뒤꿈치의 금색 광명이 집을 두루 비추었다. 도태는 휘장을 걷고 바라보았다. 빛은 갑자기 사라졌다. 도태는 놀람과 기쁨이 어울렸고, 이로 인해 크게 땀을 흘렸다. 그는 꿈을 깨자 곧 몸이 가뿐해지면서 앓던 병이 나았다.
진나라 거사 손도덕(孫道德)
진(晋)나라 손도덕(孫道德)은 익주(益州) 사람으로서 도교(道敎)의 좨주(祭酒)로 봉직했다. 나이가 50이 지나도록 자식을 두지 못하였는데 절 가까이 살고 있었다. 경평(景平) 때에 사문(沙門)이 도덕에게 말했다.
“아이 두기를 꼭 원하거든 지성으로 『관음경』에 예배하고 외우시오. 반드시 소원을 성취할 것이오.”
도덕은 이에 도교를 섬기지 않고 오직 정성을 쏟아 관세음보살에 귀의했다. 얼마 안 되어 꿈의 감응을 받아 그 부인은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진나라 거사 유도(劉度)
진(晋)나라 유도(劉度)는 평원(平原) 요성(遼城) 사람이다. 그 고향 1천여의 집은 다 불법을 받들어 불상을 만들어 세우고 승니(僧尼)를 공양했다. 오랑캐의 괴수 목미(木未)의 때를 만나, 이 고을에서는 일찍이 죄를 짓고 달아난 사람이 있었으므로 목미는 크게 분노하여 온 성(城)을 멸하려 했다. 대중은 모두 두려워하여 반드시 다 죽으리라 생각했다. 유도는 재계하고 정성을 다해 대중을 거느리고 관세음보살에게 귀명했다. 조금 있다가 목미는 어떤 물건이 공중에서 내려와 그가 있는 집 기둥을 도는 것을 보고 놀랐으니, 그것은 곧 『관음경』이었다. 사람을 시켜 그것을 읽게 하고는 목미는 크게 기뻐하여 유도의 형(刑)을 감면하였다. 그리고 이 성(城)도 화를 면하게 되었다.
진나라 거사 두전(竇傳)
진(晋)나라 두전(竇傳)은 하내(河內) 사람이다. 영화(永和) 때에 병주 자사(幷州刺史) 고창(高昌)과 기주 자사(冀州刺史) 여호(呂護)는 각각 부곡(部曲)2)을 다투어 서로가 불화하였다. 두전은 고창에게 기용되어 궁장(宮長)이 되었다. 여호는 군사를 보내어 고창을 침략하고 두전은 그의 포로가 되어 친구 6,7인과 함께 한 옥에 갇히었는데, 사슬과 차꼬가 매우 엄하고 그날로 죽이려 했다.
그 때 사문 지도산(支道山)이 여호의 진영에 있었다.
그는 이전부터 두전과 서로 아는 사이였는데, 두전이 붙들려 옥에 있다는 말을 듣고 옥으로 가서 엿보다가 문을 사이로 두고 서로 말하게 되었다. 두전이 도산에게 말하였다.
“오늘 죽게 되어 목숨이 경각에 있다. 무슨 방법으로 구해 주겠는가?”
도산은 말하였다.
“만일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감응이 있을 것이다.”
두전은 전에도 관세음보살의 영험에 대해 자주 들었고, 또 도산의 말을 들었으므로 마음을 오로지하고 생각을 모아 밤낮 사흘 동안 지성으로 귀의했다. 그리고 사슬과 차꼬를 관찰하였다. 조금 느슨하여 평소와 달라진 것 같아서 시험삼아 밀어 보았더니 어느새 몸이 벗어났다. 두전은 이 뒤에도 지심으로 귀의하니 날마다 자비심을 입었다. 그는 이미 질곡에서 벗어났으나 동행이 아직 많으므로 혼자 갈 마음은 없었다. 그리하여 “관세음보살님은 신력으로 두루 구제하시어 우리 모두 벗어나게 하소서” 하였다. 이렇게 말하고 다시 다른 사람들을 당기니 모두 차례로 풀려났다. 혹 베인 사람이 있었지만 모두 문을 열고 잠깐 동안에 다 달려 나가느라 아무도 느끼지 못했다. 곧 성을 넘어 지름길로 갈 때 밤은 벌써 새벽이 되려 하여 4,5리를 갔을 때 날이 다 밝았다. 그러나 더 갈 수 없어 함께 도망쳐 어떤 가시덤불 속에 숨었다. 저들은 잠깐 사이에 죄수를 잃어버렸으므로 사람과 말이 길에 이어 사방에서 찾아 나와 풀에 불을 지르고 숲 속을 뒤지면서 두루 돌아다녔다. 그러나 두전이 숨은 한 이랑쯤에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두전은 그곳을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험을 공경하고 믿으면서 다 함께 불법을 받들었다. 도산은 그 뒤에 강을 건너와서 사거사(謝居士)를 위해 위의 사실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이상 열네 가지 증험은 다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진나라 사문 축법순(竺法純)
진(晋)나라 산음(山陰) 현의사(顯義寺)의 축법순(竺法純)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젊어서 출가하여 산음의 현의사에 머물면서 고행을 행하고 덕이 있으며 『유마경』을 잘 외웠다.
원흥(元興) 연중에 절을 짓기 위해 난저(蘭渚)에 올라가 옛 집을 샀다. 날이 저물어 호수 가운데 이르러 바람을 만나 작은 배가 침몰하게 되었다. 법순은 일심으로 관세음보살 부르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윽고 떠도는 큰 배 한 척을 만나 그것을 타고 죽음을 면했다. 언덕에 오르자 어느새 배는 간 곳이 없었다. 도인과 속인들은 모두 그 신기함을 감탄했다. 그 뒤에 법순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이 한 가지 증험은 『양고승전』에 나온다.]
송(宋)나라 거사 장흥(張興)
송(宋)나라 장흥(張興)은 신흥(新興) 사람이다. 불법을 독실히 믿어 일찍이 사문 승융(僧融)과 담익(曇翼)을 따라 8계(戒)를 받았다. 장흥은 일찍이 도적에게 붙들려 자신은 도망칠 수 있었으나 그 아내가 옥에 갇혀 여러 날 매를 맞았다. 그 때 그 고을에 화재가 나서 죄수들을 길가에 나왔다. 마침 승융과 담익은 동행하여 죄수들 곁을 지났다. 아내는 놀랐다.
“아사리님, 어떻게 나를 구해 주시렵니까?”
승융은 말하였다.
“빈도(貧道)는 힘이 약해 구할 길이 없습니다. 관세음보살을 부지런히 생각하시면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밤낮으로 기원했다. 10일쯤 지나 어느 날 밤 꿈에 어떤 사문이 발로 밟으면서 말하였다.
“빨리 일어나라.”
그녀는 놀라 일어났다. 결박이 어느새 풀려 곧 문쪽으로 달려갔다. 문은 여전히 닫혀 있고 지킴은 더욱 엄해 나갈 수가 없었다. 발각될까 하여 도로 차꼬를 차고 다시 잠이 들었다.
또 아까 그 사문이 말하였다.
“문이 열렸다.”
그녀는 깨어나 달려갔다. 파수꾼은 다 잠이 들어 있었으므로 그녀는 무사히 빠져 나왔다. 때는 밤이 깊었는데 몇 리를 가다가 갑자기 어떤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놀라 땅에 쓰러졌다. 이윽고 다시 보니 그는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다. 서로 붙들고 기뻐하며 슬퍼했다. 그 밤으로 승융과 담익이 그들을 숨겨 주어 그들은 화를 면했다. 때는 원가(元嘉) 초년이었다.
송나라 거사 송염(宋琰)
송염(宋琰)은 어릴 때 교지(交阯)에 있었다. 그 나라의 현(賢) 법사는 도덕이 높은 스님이다. 염은 그에게서 5계(戒)를 받고 관세음보살 금상 1구(軀)을 얻어서 공양하였다. 그 상을 만든 법은 지금 것과 다르나 그다지 오랜 것도 아니었다. 원가(元嘉) 때의 작품으로서 그 솜씨가 뛰어나 진형(眞形)과 같았다. 염이 그것을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오니 그 때 나이는 8,9세였다. 그는 두 아우와 지성으로 섬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뒤에 집을 고치느라고 그 상을 안치할 곳이 없어
경사(京師)의 남간사(南澗寺)에 기탁해 두었다.
그 때 백성들은 다투어 돈을 주조(鑄造)하였으므로 불상을 훔쳐 부수어 주전에 충당하는 자가 많았다. 때에 이 상이 그 절에서 몇 달을 지냈는데, 어느 날 염이 낮잠을 잘 때 꿈에 그 상이 자리 모퉁이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매우 이상히 여겼다. 날은 이미 저물었으나 곧 달려가 그 절의 상을 모시고 돌아왔다. 그날 밤에 남간사에 있는 10여 구(軀)의 상을 모두 도둑 맞았다. 오랜 뒤에 이 보살상은 저녁에 광명을 놓아 석 자 가량의 땅을 환히 비추니 금빛이 빼어나게 일어 사람의 눈을 부시게 했다. 염의 형제와 그 종들 10여 인이 다 함께 보았다. 그러나 염은 아직 그 때 나이가 어렸으므로 곧 기록해 두지 못했다가 요즈음에 기록하면서 그 달과 날을 잊어버렸으니, 그 때는 송(宋)나라 대명(大明) 7년 가을이었다.
태시(泰始) 말년에 염이 오의(烏衣)로 이사할 때 주선한 스님이 그 상을 임시로 다보사(多寶寺)에 두었다. 그리고 염은 잠깐 동안 강도(江都)로 옮겨 있었고 그 스님도 인해 형초(荊楚)로 갔었다. 그래서 그 상이 있는 곳을 잊은 지 10년이 가까웠으면서, 항상 그 보배상과 그 인(因)이 다 두절될까 두려워했었다. 송나라 승명(升明) 말년에 염은 협표(峽表)를 유람하는 길에 강릉(江陵)을 지나다가 그 스님을 만나 비로소 그 상이 있는 곳을 알았다. 그 해에 염은 경사로 돌아와 곧 다보사로 가서 물었다.
이 절 주지 애공(愛公)은 말하였다.
“상을 맡은 일이 없습니다.”
염은 물러나와 ‘이 중은 맹랑하다. 그만 그 상을 잃어버렸구나’ 생각하고 매우 슬퍼했다. 그날 밤 꿈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그 상은 다보사에 있다. 애공이 잊었을 뿐이니 장차 찾게 될 것이다. 곧 절에 가서 손수 불전을 열면 상을 볼 것이다. 그 상은 불전 동쪽의 여러 조그만 불상 속에 분명히 그대로 있다.”
이튿날 아침에 그는 절에 가서 꿈에 본 것을 애공에게 자세히 이야기했다. 애공이 그 말대로 불전을 열자 과연 그 상이 불전 동쪽에 있음이 꿈에서 본 것과 같았다. 그는 상을 모시고 돌아왔으니, 때는 건원(建元) 원년 7월 13일이었다.
그는 지금도 그 상을 스스로 공양하고 있으니, 반드시 영원히 그 진량(津梁)이 될 것이다. 다시 그 일을 다스리자 깊은 감회가 있으므로 이 증험을 들추어내어 이렇게 기록하는 것이다.
대개 가까운 정에 거울처럼 대하려면 형상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상서로운 징험은 대개 여기서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에 말하였다.
“녹이고, 새기고, 그리고 수놓아 형상과 같으면 잘 행동하고 광명을 놓는다.”
지금 서역(西域)의 석가와 미륵의 두 상이 빛나는 작용이 그와 같다. 그것은 상을 얻었기 때문인가? 지금의 중국의 경개(景揩)가 신령스런 감응이 극히 현저한 것도 중생이 만남으로 인해 느끼는 것이며, 목석(木石)에 의지해 그윽한 영험을 보이는 것이지, 반드시 그 좋은 형상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가라앉은 돌이 깊은 데서 뜨는 것은 실로 민오(閩吳)의 교화를 나타낸 것이요, 티끌의 금이 액(液)을 쏟는 것은 팽송(彭宋)의 화를 나타낸 것이다. 그 외에 나타낸 많은 방법은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대강을 따르면 진실로 직접 보기에 있는 것이다. 만일 저 경탑(經塔)이 나타내는 효험이라면 그 증득하는 것도 또한 같다. 일이란 특히 일관(一貫)하는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그 끝을 잇는 것이다. [이상 두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위(魏)나라 사문 석도태(釋道泰)
위(魏)나라 상산(常山) 형당정사(衡唐精舍)의 석도태(釋道泰)는 원위(元魏) 말년 사람이다.
꿈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그대는 아무 해 42세 때에는 죽을 것이다.”
도태는 깨어나 두려워했다. 그 해가 되어 병을 만나 매우 걱정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다 풀어 복을 지었다. 어떤 친구가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62억 보살께 공양하는 것과 관세음보살을 한 번 부르는 그 복이 같다 한다. 그대는 왜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께 귀의하지 않는가? 그렇게 하면 그대 수명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도태는 이에 깨닫고 나흘 동안 정진을 계속했다. 앉아 있는 휘장 밑에서 갑자기 광명이 문 밖에서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관세음보살 복사뼈에서 금빛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도태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느냐?”
그래서 도태가 휘장을 걷자 그 사이에 광명은 사라졌다. 곧 몸이 가뿐해지면서 병이 나았으니,
그것은 신성한 힘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오래 살았다.
위나라 거사 손경덕(孫敬德)
위(魏)나라 천평(天平) 연중에 정주(定州)의 빼어난 선비 손경덕(孫敬德)은 관음상을 만들어 늘 예배했다. 그 뒤에 도적으로 몰려 끌려가서 고문을 견디지 못해, 망령되게 죽음을 불러 장차 목을 베이게 되었다. 꿈에 어떤 사문이 와서 『구생(救生)관세음경』을 천 번 외우면 벗어나리라고 했다. 그래서 유사(有司)에게 결박되어 장터로 끌려나가면서 계속 그것을 외워 형장(刑場)에 갈 때까지 천 번을 채웠다. 베려던 칼이 저절로 부러져 세 동강이 나면서 살갗 하나 다치지 않았다. 세 번이나 칼을 바꾸었으나 여전히 세 동강이 나고, 관음상의 목에 세 개의 칼자국이 있었다. 이 소문이 퍼져 승상(丞相) 고환(高歡)이 나라에 글을 올려 그는 죽음을 면했다. 왕의 명령으로 그 경전에 베껴 세상에 널리 퍼졌으니, 지금의 이른바 『고왕관세음경(高王觀世音經)』이라는 것이다.
진(晋)ㆍ송(宋)ㆍ양(梁)ㆍ진(陳)ㆍ진(秦)ㆍ조(趙) 나라로부터 나라는 16으로 나뉘었고, 때는 4백 년이 지나도록 관음ㆍ지장ㆍ미륵ㆍ미타 등을 생각하고 이름을 불러 구원을 얻은 자는 이루 다 적을 수 없다. 그것은 여러 전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기 다 싣지 못하는 것이다.
위나라 사문 석법력(釋法力)
위(魏)나라 말년에 노군(魯郡)의 석법력(釋法力)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알 수 없다. 힘써 정진하고 뜻을 두어 부지런히 절을 경영하였다. 노군에 정사(精舍)를 세우려 했으나 재료가 부족하여 사미 명심(明琛)을 데리고 윗골짜기로 올라가 삼[麻]을 빌어 수레에 하나 가득 싣고 돌아오다가 빈 늪을 지나게 되었는데, 갑자기 들불을 만났다. 수레가 바람 맞이에 있었으므로 불을 면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법력은 피곤해 자고 있었는데, 깨어나니 불은 이미 미쳐 와 있었다. 관음을 소리 높여 불렀다. 부르자마자 소리를 따라 바람은 방향을 바꾸고 불꽃은 사라져 그는 무사히 돌아왔다.
또 법지(法智)라는 사문은 본래 속인으로서, 큰 늪을 혼자 가다가 사나운 불이 사면에서 일시에 일어나 꼭 죽을 줄 알았다. 이에 얼굴을 땅에 대고 오로지 관세음만을 부르다가
불길이 없음을 이상히 여겨 머리를 들어 살펴보았다. 온 늪의 풀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탔으나 오직 법지가 엎드린 자리만은 겨우 몸을 용납할 수 있을 만하였다. 그래서 그는 느낀 바 있어 속가를 버리고 출가했다.
또 도집(道集)이라는 사문은 수양(壽陽)의 서산(西山)에 여행하다가 두 도적에게 붙잡혀 나무에 결박되어 곧 죽게 되었다. 그는 오직 관세음만 생각하면서 죽기로 각오하고 쉬지 않았다. 도적이 칼을 빼어 여러 번 쳤으나 조금도 다치지 않았으므로, 도적은 겁을 내어 달아나고 그는 거기서 벗어났다.
또 법선(法禪)이라는 사문은 산을 가다가 도적을 만나 죽게 되었다. 그는 오직 관세음만 생각했다. 도적은 활을 당겨 쏘려 했으나 화살이 나아가지 않았다. 도적은 드디어 정성으로 귀의하고 활을 땅에 던졌다. 그리고 그가 신인(神人)임을 알고 겁을 내어 달아났다.[이상 세 가지 증험은 『당고승전』에 나온다.]
게송으로 말한다.
석(釋)씨는 능인(能仁)으로 변화하시어
중생을 관찰하고 하늘에서 내리시니
뭇 성인 가운데 최상이요
실로 상제(上帝)보다 먼저시네.
기쁨과 부드러움 모두를 길러
깨끗하고 순수하며 비고 깊으며
사랑으로 중생을 가르치시어
심원한 가르침 속으로 잘 인도하시네.
은혜로이 슬기의 횃불을 들어
어두운 길의 나그네인 우리를 비추시며
근기를 따라 변화하거니
누가 그 나이를 안다고 하리.
바라보면 놀처럼 일어나더니
다가가도 또한 구름의 나루이네.
몸으로 우리들에게 친절하시고
정신으로 우리들을 슬퍼하시네.
삼승(三乘)을 이미 널리 펴시고
쌍림(雙林)에 그 몸을 남기시며
임시로 열반에 드신다 하나
언제나 바른 법 연설하시네.
7. 경법편 ②[여기에 6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청법부(聽法部) 구법부(求法部)
감복부(感福部) 법사부(法師部) 방죄부(謗罪部)
(1) 술의부(述意部)
듣건대 적멸(寂滅)하여 움직이지 않는 이것은 말도 없고 형상도 없으나 느끼면 드디어 통하나니, 이름이 있고 가르침이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한 사구게(四句偈)는 듣기 어려우나 삼천세계의 불에는 들어가기 쉬운 것이다. 바라건대 심한 추위의 고요한 밤이 되게 하라.
밝은 달 긴 밤에 한적한 곳에 혼자 있으면서 경전을 외우고 궁상(宮商)을 읊조리며 문자는 분명하고 말의 뜻은 유창하고 아름다우며 시운(詩韻)이 서로 어울리면 여러 사람의 마음에 맞을 것이다.
그리하여 삶을 이롭게 하고 사물을 좋게 하면 그윽한 영(靈)을 기쁘게 하고 정신을 즐겁게 할 것이며, 오래 익혀 순수히 익으면 글의 뜻이 환히 트이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꾸 외우면 지극한 정성에 가만히 감동할 것이다. 받아 지니는 한 게송의 복과 이익은 크고 깊으며 쓰고 베끼는 한마디 말의 공덕은 여러 겁을 뛰어넘을 것을 진실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가섭은 머리로 받들어 받되 가죽 벗기기를 아까워하지 않았고, 살타(薩埵)3)는 마음으로 즐거이 피를 뿌리기를 사양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바로 감로(甘露)의 첫 문이요, 도에 들어가는 마지막 덕인 것이다.
(2) 청법부(聽法部)
예컨대 『부법장경(付法藏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이 삼계(三界)의 생사의 큰 바다를 건너고자 하면 반드시 법의 배를 타야 비로소 건널 수 있는 것이다. 법은 청량제가 되어 번뇌의 뜨거움을 제거한다. 법은 선지식으로서 큰 이익을 지어 모든 고뇌를 구제한다. 왜냐 하면 일체 중생의 지성(志性)은 일정함이 없어서 그 염습(染習)을 따르는 것이라 선을 가까이하면 선해지고 악을 가까이하면 악해지는 것이다. 만일 나쁜 벗을 가까이하면 곧 악업을 지어 생사에 흘러 돌면서 그 끝이 없으며, 만일 좋은 벗을 가까이하면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묘한 법을 듣고 반드시 삼도(三途)의 고뇌를 떠나나니, 이 공덕으로 최상의 즐거움을 얻느니라.
화씨(華氏) 국왕의 흰 코끼리는 적을 잘 멸하였으므로 누가 죄를 범하면 그 코끼리를 시켜 밟아 죽이게 했다. 뒷날 그 코끼리 집이 화재를 만나 그 코끼리를 절 가까운 곳에 옮겨 두었다. 코끼리는 비구가 외우는 『법구경(法句經)』의 게송을 들었다.
선을 행하면 천상에 나고
악을 행하면 웅덩이에 빠진다.
코끼리는 이 법구를 듣고
곧 마음이 부드러워져 자비심을 일으켰다. 그 뒤로는 죄인을 데려다 주어도 다만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핥기만 하고는 물러나 전혀 죽이려 하지 않았다. 왕은 이것을 보고 매우 당황하여 곧 신하들을 불러 이 일을 의논했다. 지혜로운 신하는 왕에게 아뢰었다.
‘이 코끼리가 절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반드시 묘한 법을 듣고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푸줏간 가까운 곳에 매어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왕은 그 말대로 했다. 코끼리는 짐승 죽이는 것을 보고 사나운 마음이 성하게 일어나 해침이 더욱 더했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일체 중생의 지성(志性)은 일정함이 없는 것이다. 축생도 그러하여 법을 들으면 자비심이 생기지만 살생을 보면 해칠 마음이 더해지거늘, 하물며 사람이 물들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줄을 알아, 악을 보거든 그것을 버리고 선을 보거든 가까이하여 부지런히 법을 들어야 하느니라.
또 옛날 어떤 바라문은 많은 사람의 해골을 가지고 화씨성(華氏城)으로 가서 성내를 돌아다니면서 그것을 팔았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나도록 사는 사람이 도무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크게 분노하여 높은 소리로 외치며 꾸짖었다.
‘이 성중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고 미련하다. 만일 내게 와서 이 해골을 사지 않으면 나는 그들의 나쁜 소문을 퍼뜨리리라.’
그 때 성중의 모든 우바새들은 이 말을 듣고 그의 비방을 두려워하여 돈을 가지고 가서 사려 했다. 우선 구리쇠 젓가락으로 그 귀를 뚫어 보아 완전히 뚫리는 것에는 많은 것을 주고 반쯤 뚫리는 것에는 좀 적게 주고 전연 뚫리지 않는 것은 값을 주지 않았다. 바라문은 물었다.
‘이 해골은 다 같은 것인데 왜 값에 차이가 있는가?’
우바새는 답하였다.
‘완전히 뚫리는 것은 그 사람이 생시에 묘한 법을 듣고 지혜가 최상이어서 그처럼 귀중하므로 많은 값을 주는 것이요, 반쯤 뚫리는 것은 그 사람이 생시에 법을 듣기는 했으나 잘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값을 적게 주는 것이며, 전연 뚫리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이 전에
법을 전연 듣지 않았기 때문에 값을 전연 주지 않는 것이오.’
그리고 우바새는 이 해골을 가지고 성 밖으로 가서 탑을 세워 공양하니 목숨을 마친 뒤에는 항상 천상에 났다. 이 인연으로 묘한 법은 큰 공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우바새는 법을 들은 사람의 해골을 위해 탑을 세워 공양하고도 천상에 났거늘, 하물며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듣고, 또 경을 수지하는 사람에게 공양하고 공경함이겠는가? 이 사람의 복의 과보는 실로 무궁 무진하여 미래에는 반드시 성불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 최상의 안락을 얻으려면 지심으로 법을 부지런히 들어야 하느니라.”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사위국(舍衛國)의 수달(須達) 장자는 불법을 믿고 공경하며 스님들의 단월(檀越)이 되어 여러 스님의 필요한 일체를 다 공급했다.
수달 장자 집에 앵무새 두 마리가 있었다. 한 마리의 이름은 율제(律提)요 다른 한 마리의 이름은 사율제(賖律提)였다. 그들은 성질이 영리하여 사람 말을 잘 알아 들었다. 비구가 오는 것을 보면 먼저 그 집에 알려 나가서 영접하게 했다. 뒤에 아난이 장자 집에 가서 그 새들의 영리한 것을 보고 그들에게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의 4제(諦)를 설명했다. 그 집 문앞에 나무가 있었다. 그들은 그날 밤에 나무에서 자다가 삵에게 잡아먹혔다. 이 선근으로 그들은 사천왕천(四天王天)에 나고 거기서 목숨이 다해 도리천에 났으며, 거기서 목숨이 다해서는 야마천에 나고 거기서 목숨이 다해서는 도솔천에 났으며, 거기서 목숨이 다해서는 화락천에 나고, 거기서 목숨이 다해서는 타화자재천에 났으며, 거기서 목숨이 다해서는 화락천에 났다. 이렇게 차례로 다시 사천왕천으로 내려오고 거기서 목숨이 다해서는
다시 타화자재천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일곱 번 오르내리다가 6욕천(欲天)에 나서는 마음대로 쾌락을 누리면서 하늘의 천명을 다하는 동안 중도에 일찍 죽는 일이 없었다. 마지막에 목숨을 마치고는 인간에 태어나 출가 수도하여 벽지불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담마(曇摩)요 둘째의 이름은 수담마(修曇摩)였다.”
『현우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어떤 비구가 숲 속에서 경을 외우는데, 그 음성이 매우 우아하고 좋았다. 그 때 새 한 마리가 그 법을 듣고 즐거워하면서 듣다가 사냥꾼의 화살을 맞고 거기서 죽었다. 이 선근으로 그 새는 도리천에 났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광명이 빛나기가 그 짝이 없었다. 그 새는 제가 비구의 경법 외우는 것을 듣고 거기 나게 된 숙명을 알고, 곧 천상의 꽃을 가지고 비구에게로 가서 예경하며 문안하고 천상의 향과 꽃으로 그 비구에게 공양했다. 비구는 그 사정을 자세히 물어 알고 곧 앉게 하여 설법하여, 새는 수다원을 얻었다. 그리고 다시 천상으로 돌아갔다. 새도 법을 듣고 무한한 복의 과보를 받거늘, 어찌 사람이 믿는 마음으로 법을 들으면 좋은 과보가 없겠는가?”
『선견율론(善見律論)』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첨바라국(瞻婆羅國)의 가라못[迦羅池] 가에 가서 대중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 때 못에 있던 대합조개 한 마리가 부처님께서 못 가에서 설법하시는 소리를 듣고 못에서 나와 풀 속으로 들어가 법을 듣고 있었다. 그 때 또 어떤 사람이 지팡이를 들고 소를 놓아 먹이고 있었다. 그는 부처님께서 앉아 대중을 위해 설법하시는 것을 보고 곧 부처님에게로 나아가 설법을 들으려고 지팡이를 땅에 꽂다가 잘못해 조개의 머리를 찔렀다. 조개는 곧 그 자리에서 죽어 도리천에 났다. 그 복의 과보로 그 궁전의 가로 세로가 12유순이 되었다. 그는 여러 천녀들과 향락하다가,
곧 궁전을 타고 부처님께로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했다. 부처님께서는 아시면서 짐짓 물으셨다.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갑자기 와서 내 발에 예배하며 신통과 광명과 상호가 비할 데 없어 이 세간을 환히 비추느냐?”
조개였던 하늘 사람은 게송으로 대답했다.
저는 지난 세상에 대합조개로서
물 속에서 먹이 찾고 살다가
부처님 설법하는 소리를 듣고
못에서 나와 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를 먹이는 어떤 사람이
지팡이 들고 법을 들었는데
지팡이 꽂다 저의 머리 찔러
저는 죽어서 천상에 났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조개였던 하늘 사람의 게송으로 사중(四衆)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 때 대중 가운데 8만 4천 인은 다 도의 자취를 보았으며, 그 조개였던 하늘 사람은 수다원과(須陁洹果)를 얻어 합장하고 떠났다.”
(3) 구법부(求法部)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여자는 총명하고 지혜로워 삼보(三寶)를 깊이 믿었다. 항상 스님의 차례를 따라 비구 두 명씩을 집으로 청해 공양했다. 그 뒤에 차례가 되어 어떤 늙은 비구가 그 집에 갔다. 나이 늙어 감관이 둔할 뿐 아니라 본래 무식하였다. 공양을 마치고 그녀는 지심으로 설법을 청하고는 그 앞에서 눈을 감고 고요히 앉아 있었다. 비구는 자신이 설법할 수 없음을 알므로 그 눈 감은 틈을 타서 달아나 절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여자는 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의 유위(有爲)의 법을 지심으로 생각했으나 자재를 얻지 못했다가 다시 깊은 마음으로 관찰하여 수다원과를 얻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절에 가서 이 비구를 찾아 은혜를 갚으려 했다. 그러나 그 비구는 제가 무식하여 그녀를 버리고 도망쳐 왔으므로 더욱 부끄러워하여 계속 피해 숨었다. 그러나 여인이 더욱 간절히 청했으므로 그제야 나아갔다. 그녀는 이 비구를 보고
도과(道果)를 얻게 된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공양을 베풀어 은혜를 갚으려 했다. 비구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부끄러워하여 깊이 참회하고 또 수다원과를 얻었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자는 지심으로 법을 구해야 한다. 지심으로 법을 구하면 반드시 얻을 것이다.”
『열반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옛날 바라문으로서 설산(雪山)에서 보살행을 닦고 있었다. 그 때는 세상에 부처도 없고 경법(經法)도 없었다. 그런데 제석천왕은 보살이 혼자 산중에서 온갖 고행을 닦는 것을 보고 곧 내려와 나를 시험하려고, 매우 무서운 나찰상으로 변하여 보살 앞에 서서 반게(半偈)를 외웠다.
모든 행이란 영원함이 없나니
이것이 곧 생멸하는 법이라.
그는 이 게송을 외우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보살은 이 게송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곧 자리에서 일어나 손으로 머리털을 들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고 나찰만이 보였다. 나는 곧 가서 물었다.
‘대사(大士)님, 어디서 그 반게를 얻었습니까? 그 반게의 뜻은 삼세(三世) 부처님의 바른 도입니다.’
나찰은 답하였다.
‘당신은 물을 것 없습니다. 나는 여러 날을 굶고 먹을 것을 찾았으나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내가 기갈의 고통으로 마음이 어지러워 잘못 말한 것이지, 내 본심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보살은 다시 말했다.
‘만일 나를 위해 그 게송 전부를 말해 주시면 나는 평생토록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나찰이 답하였다.
‘당신은 지혜가 너무 많습니다. 다만 당신 자신만 사랑하고 남의 생각은 전연 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배가 몹시 고파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보살은 다시 물었다.
‘당신이 먹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찰이 답하였다.
‘내가 먹는 것은 사람의 따뜻한 살뿐이요, 내가 마시는 것은 사람의 뜨거운 피뿐입니다.’
보살은 이 말을 듣고 나찰에게 말하였다.
‘다만 그 게송 전부만 말해 준다면 나는 내 몸을 주어 공양하겠습니다.’
나찰이 답하였다.
‘누가 당신 말을 믿겠습니까? 다만 여덟 글자를 위해 사랑하는 그 몸을 버린다는 말을.’
보살은 답하였다.
‘내게는 지금 증인이 있습니다. 범천과 제석천과 사천왕과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나를 위해 증인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나찰은 허락하였다. 보살은 기뻐하면서 곧 가죽 옷을 벗어 깔아 법좌를 만들고 아뢰었다.
‘화상(和上)님은 이 자리에 앉아 나를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나찰은 남은 게송을 외웠다.
생멸의 법 없어지면
적멸(寂滅)하여 즐거우리라.
보살은 이 게송을 듣고 깊이 생각한 뒤에 곳곳의 석벽과 나무에 이 게송을 써 두었다. 그리고 곧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밑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공중에서 갖가지 소리가 났다. 그 때 나찰은 제석천왕의 몸으로 돌아와 보살을 받아 땅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참회하고 감사하며 예배하고 떠났다. 보살은 이 반게를 위해 몸을 버린 인연으로 12겁을 뛰어넘어 미륵불 앞에서 위없는 도를 이루었다.”
『열반경』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기억하기로 과거 무량 무변 나유타겁에 이 사바세계에는 석가모니라는 부처님이 나와 중생들을 위해 대열반경을 연설하셨다. 나는 그 때 선지식에게서 그 부처님이 말씀하신 대열반경을 전해 듣고 매우 기뻐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양하고자 하여 드디어 내 몸을 팔려고 했으나, 박복하여 팔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그에게 또 말했다.
‘나는 내 몸을 팔고 싶은데 그대는 살 수 없는가?’
그 사람은 답하였다.
‘우리 집의 일은 아무도 견디지 못한다. 나는 나쁜 병이 있는데 좋은 의사의 처방에 따라 하루에 사람의 고기 석 냥쭝씩 먹어야 한다.
그대는 그대의 살 석 냥쭝씩을 날마다 대줄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하면 나는 그대에게 돈 다섯 닢을 주리라.’
나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내게 이레 동안 여유를 주면 나는 내 일을 다 마치고 다시 오리라.’
그는 내게 말했다.
‘하루 동안 여유를 주리라.’
나는 그 돈을 받아 가지고 부처님께로 가서 예배하고 그것을 바쳤다. 그리고 지심으로 경을 설하는 법문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때 우둔하여 한 게송밖에 얻지 못했다.
여래께서는 열반을 증득하시어
영원히 생사를 끊어버렸네.
만일 지성으로 이 법 들으면
무량한 즐거움을 항상 얻으리.
이 게송을 듣고 그 병자의 집으로 가서 날마다 살 석 냥쭝씩 주었으나, 이 게송을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도 고통이 없었다. 날마다 거르지 않고 한 달을 채우자, 그 사람의 병은 낫고 부스럼도 회복되었으며 또 내 몸도 완전히 회복 되었다. 나는 보리에 대해 발원하고, 오는 세상에 성불했을 때는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고도 발원했다. 이 인연으로 지금 성불하게 된 것이니라.”
또 『집일체복덕삼매경(集一切福德三昧經)』에서 말하였다.
“오랜 옛날 아승기겁 전에 최승(最勝)이라는 선인(仙人)이 있었다. 그는 산중에 살면서 5신통을 갖추고 항상 자비심을 행했었다. 그 뒤에 그는 생각했다.
‘다만 인자한 마음만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많이 들음만이 중생들의 번뇌와 사견(邪見)을 멸하고 정견(正見)을 갖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는 도시와 촌락 등 곳곳을 다니면서 설법하는 스승을 찾았다. 그 때 어떤 천마(天魔)가 와서 이 선인에게 말하였다.
‘내게 지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한 게송이 있다. 그대가 지금 만일 가죽을 벗겨 종이로 삼고 피를 내어 먹으로 하며 뼈를 깎아 붓으로 하여 이 게송을 쓸 수 있다면 나는 그대를 위해 말해 주리라.’
최승 선인은
이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나는 무량 백천겁 동안 항상 이유 없이 남을 위해 내 몸을 해쳐 무량한 고통을 받았으나 아무 이익이 없었다. 나는 지금 견실하지 못한 이 몸을 버려 견실한 법과 바꾸리라.’
그리하여 못내 기뻐하면서 곧 예리한 칼로 가죽을 벗겨 종이로 삼고 피를 내어 먹으로 삼고 뼈를 끊어 붓으로 삼은 뒤에, 합장하고 천마를 향해 부처님의 게송을 말해 달라 했다. 그러자 천마는 이것을 보고는 근심하고 풀이 죽어 곧 간 곳이 없었다. 선인은 이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지금 법을 위해 신명을 아끼지 않고, 가죽을 벗겨 종이로 삼고 피를 내어 먹으로 삼으며 뼈를 끊어 붓으로 삼은 것은 중생들을 위한 것이니, 이 지성이 헛되지 않다면 다른 세계의 자비스런 사람으로서 설법할 수 있는 이가 내 앞에 나타나소서.’
이렇게 말했을 때, 여기서 동방으로 32국토를 지나 보무구(普無垢)라는 국토에 계시는 정명왕(淨名王)이라는 부처님이 갑자기 그 앞에 나타나 큰 광명을 놓아 이 선인의 몸을 비추었다. 그리하여 이 선인은 고통이 없어지고 그 몸이 전과 같이 회복되었다. 그 부처님은 그를 위해 일체 복덕을 모으는 삼매를 말씀하셨다. 최승은 이 법을 듣고 막힘이 없는 변재를 얻었다. 그리고 부처님은 이 설법을 마치고는 어디로 사라졌다.
최승은 그 변재를 얻고 모든 중생을 위해 묘한 법을 널리 설명하여 무량한 중생들로 하여금 삼승(三乘)의 도에 머물게 했다. 천 년을 지낸 뒤에 목숨을 마치고 그는 정명왕불의 보무구국에 태어났다. 그리고 법을 공경했기 때문에 지금 성불하게 된 것이다.”
부처님께서 정위(淨威)에게 말씀하셨다.
“옛날의 최승이란 선인은 바로 지금의 나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만일 누구나 법을 공경하여 구하면 부처님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열반에 드시지 않고 법도 멸하지 않는다 . 비록 다른 나라에 있더라도 그는 늘 부처님을 직접 볼 수 있고 바른 법도 들을 수 있는 것이니라.”
(4) 감복부(感福部)
『보요경(普曜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현인(賢人)이 이 경전을 듣고는 합장하고 귀의하면 그는 곧 여덟 가지 게으름의 근본을 버리고 여덟 가지 공덕을 성취할 것이다. 그 여덟 가지란, 첫째 몸이 단정하고 색상(色相)이 좋으며, 둘째 힘이 왕성하고, 셋째 권속이 번성하며, 넷째 무량한 변재를 얻고, 다섯째 공부를 빨리 성취하여 출가하며, 여섯째 그 행이 청정하고, 일곱째 삼매를 얻으며, 여덟째 지혜의 밝음을 얻어 비추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또 어떤 법사(法師)가 자리를 펴고 이 경을 외우면 그는 복된 여덟 자리를 얻을 것이다. 그 여덟 자리란, 첫째 장자(長者)의 자리를 얻고, 둘째 전륜성왕의 자리를 얻으며, 셋째 천제(天帝)의 자리를 얻고, 넷째 자재천왕의 자리를 얻으며, 다섯째 아라한의 자리를 얻고, 여섯째 보살의 자리를 얻으며, 일곱째 여래의 자리를 얻고, 여덟째 법륜을 굴려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자리를 얻는 것이다.
또 어떤 법사가 이 법을 선포할 때 그를 잘한다고 찬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여덟 가지 청정한 행을 얻을 것이다. 그 여덟 가지란, 첫째는 말과 행이 일치하여 어긋나지 않고, 둘째 그 말이 지성스러워 거짓이 없으며, 셋째 대중에게 진실하여 속임이 없고, 넷째 사람들이 그 말을 믿고 그를 버리지 않으며, 다섯째 그 말이 온화하여 조금도 거칠지 않고, 여섯째 그 말소리가 슬프고 부드러워 난새 소리와 같으며, 일곱째 몸과 마음이 때를 따르고 음성이 범(梵)의 소리와 같아서 대중이 다 잘 들으며, 여덟째 그 음향이 부처님과 같아서 중생들의 마음에 드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쓰면 그는 여덟 가지 큰 창고를 얻을 것이다. 그 여덟 가지란, 첫째 뜻의 창고를 얻어 잊어버리는 일이 없고, 둘째 얻는 바 마음의 창고로서 무엇이나 알아 경의 법을 분별하며, 셋째 가고 오는 창고를 얻어 일체 부처님의 경법을 두루 알고, 넷째 총지(摠持)의 창고를 얻어 들은 일체의 것을 다 잘 기억하며, 다섯째 변재의 창고를 얻어
중생들을 위해 경전을 강설하여 다 기꺼이 받들게 하고, 여섯째 매우 깊은 법의 창고를 얻어 바른 법을 수호하며, 일곱째 도의(道意)의 법의 창고를 얻어 삼보의 법교를 끊어지지 않게 하고, 여덟째 법의 창고를 봉행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 것이다.”
또 『화엄경』에서 말하였다.
“선남자야, 가령 어떤 사람이 큰 바다와 같은 먹과 수미산과 같은 붓으로 쓰더라도, 이 경전의 낱낱 품(品)의 뜻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또 『대승장엄론』에서 말하였다.
“모든 보살은 대승법에 있어서 열 가지 종류의 바른 행이 있다. 즉 첫째 글을 베끼고, 둘째 공양하며, 셋째 널리 펴고, 넷째 잘 들으며, 다섯째 다 읽고, 여섯째 남을 가르치며, 일곱째 익혀 외우고, 여덟째 해설하며, 아홉째 생각해 가리고, 열째 닦아 익히는 것이니, 이 열 가지 정행은 무량한 공덕을 내느니라.”
또 『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에서 말하였다.
“대승의 수행에 열 가지가 있다. 첫째 베껴 쓰고, 둘째 공양하며, 셋째 남에게 보시하고, 넷째 남과 같이 읽고 외우며, 다섯째 스스로 읽고, 여섯째 이치대로 이름과 맛과 글귀와 뜻을 취하며, 일곱째 도리대로 이름과 글귀와 맛을 설명하고, 여덟째 바른 마음으로 듣고 외우며, 아홉째 공처(空處)를 이치대로 생각하고, 열째 그 뜻에 들어가서는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또 『보살장경(菩薩藏經)』에서 말하였다.
“또 사리자야,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경을 수지하여 소중히 듣고 읽고 외우며 뜻을 해석하고, 내지 남을 위해 자세히 분별해 해설하면 이 사람은 열 가지 공덕의 칭찬과 이익을 얻는다. 즉 첫째 예민하고 빠른 슬기를 성취하고, 둘째 민첩한 변재의 슬기를 성취하고, 셋째 용맹하고 예리한 슬기를 성취하고, 넷째 신속한 슬기를 성취하며,
다섯째 넓은 슬기를 성취하고, 여섯째 매우 깊은 슬기를 성취하며, 일곱째 통달한 슬기를 성취하고, 여덟째 집착 없는 지혜를 성취하며, 아홉째 항상 앞에 나타나는 일체 여래를 보고는 맑고 아름다운 게송으로 찬탄하고, 열째 이치답게 여래에게 잘 묻고 또 이치답게 의심을 풀어주는 것이니, 사리자야, 이것이 열 가지 공덕의 칭찬과 이익을 얻는 것이다.
또 사리자야, 이 선남자ㆍ선여인 등이 이 경을 수지하여 독송하고 해석하며, 내지 남을 위해 자세히 분별 해설하면, 이 사람은 다시 열 가지 공덕의 칭찬과 이익을 얻을 것이다. 그 열 가지란, 첫째 항상 즐겨 악지식을 멀리 떠나고, 둘째 항상 즐겨 선지식을 친근하며, 셋째 모든 악마의 결박을 잘 느슨하게 하고, 넷째 모든 악마의 군사를 잘 무찌르며, 다섯째 일체 번뇌를 잘 꾸짖고, 여섯째 일체의 움직이는 마음을 잘 버리며, 일곱째 일체 악취의 길을 등지고, 여덟째 일체 열반의 길로 향하며, 아홉째 생사를 뛰어넘는 청정한 보시를 잘 설명하고, 열째 일체 보살이 행하는 궤도와 법칙을 잘 배우며, 또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봉행하는 것이니, 이것이 열 가지 공덕의 칭찬과 이익이니라.”
또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법이 부처의 어머니이니 부처는 법에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세 여래는 다 법을 공양하느니라.”
또 『도무극집경(度無極集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비구는 부지런히 법을 지켜,
그가 외우는 이 반야바라밀을 듣는 사람은 모두 기뻐하였다. 어떤 아이가 있었는데 나이는 7세로서, 성밖에서 염소를 먹이다가 비구가 경을 외우는 소리를 멀리서 듣고, 곧 정사로 가서 그 비구에게 예배하고 그 경의 법을 들었다.
그 비구는 색(色)과 공(空)을 설명하고 아이는 그것을 듣고 곧 깨쳤다. 그리하여 비구에게 물었으나 그 답이 옳지 않았으므로 아이가 도리어 비구를 위해 그 뜻을 해석해 주었다. 그것은 일찍이 듣지 못했던 것이었으므로 비구는 이 아이의 지혜가 비범하다 하여 이상히 여겼다.
그 때 아이는 거기서 떠나 소를 쫓아 산에 갔다가 호랑이를 만나 잡아먹혔다. 이 아이는 목숨을 마친 뒤에 어떤 장자의 집에 태어나게 되었다. 그 부인은 임신중에 반야바라밀을 잘 이야기하면서 아침에서 밤까지 조금도 쉬지 않았다. 장자의 집에서는 이 부인을 괴상히 여겨 호귀병(呼鬼病)이라 했다. 그 비구는 그 집에 가서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이것은 귀신들린 병이 아니요, 다만 경전을 설명할 뿐입니다.’
부인은 비구에게 나아가 예배하고 다시 그에게 설법하되, 어떤 어려운 것이나 남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다 해설하였으므로 대중은 다 기뻐하였다. 달이 차서 부인은 사내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나자마자 합장하고 꿇어앉아 반야바라밀을 설명하였고, 그 부인은 아이를 낳은 뒤에 전처럼 회복되었다. 비구는 말하였다.
‘이 아이는 참불자입니다. 잘 기르십시오. 이 아이는 커서 일체 중생의 스승이 될 것이니, 우리는 다 그 가르침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아이는 일곱 살이 되자 도법을 다 갖추어 대중에서 뛰어나고 지혜는 끝없어서 경전의 잘못된 것을 다 바로잡았다. 아이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교화시키고 장자 집의 어른 아이들 5백 인은 다 이 아이에게서 배웠다. 8만 4천 사람들은 다 위없는 보리심을 내었고, 5백 비구들은 아이의 설법을 듣고는 번뇌가 다하고 뜻이 풀려 대승을 구하고
법안이 깨끗해졌다.
그 때의 그 아이는 바로 지금의 나요, 그 비구는 바로 지금의 가섭불이니라.”
또 『사리불처태경(舍利弗處胎經)』에서 말하였다.
“어머니가 사리불을 배었을 때 어머니도 총명해졌다.”
『고승전(高僧傳)』에서 말하였다.
“어머니가 라집(羅什)을 배게 되자 어머니는 총명해져서 하루 천 게(偈)를 외웠고, 임신한 뒤에는 2천 게를 얻어, 처음에는 수다원과를 이루고 나중에는 사다함과를 얻었다.”
(5) 법사부(法師部)
『승천왕경(勝天王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어떤 법사가 이 경을 펴면 그 땅은 곧 여래가 다니시는 땅이니, 그 법사가 대해서는 선지식이라는 마음을 내고, 존중하는 마음은 마치 부처님을 존중하는 마음처럼 하며, 법사를 보거든 공경하고 기뻐하며 존중하고 감탄하라.”
또 말하였다.
“내가 세상에 1겁이나 혹은 1겁이 못 되도록 살면서 이 경을 펴는 법사의 공덕을 말하더라도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법사가 다니는 곳이면 선남자ㆍ선여인은 그 피를 내어 땅에 뿌려 먼지가 일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공양해도 오히려 부족하나니 여래의 법은 실로 지니기 어렵기 때문이니라.”
또 『화엄경』에서 말하였다.
“비유하면 금시조왕(金翅鳥王)과 같다. 즉 그것은 허공을 날아다니다가 허공에 머물러
청정한 눈으로 대해(大海)에 있는 용왕의 궁전을 관찰하고, 용맹스런 힘을 떨쳐 좌우의 날개로 바닷물을 쳐서 양쪽으로 갈라, 숫용이나 암용이 죽게 될 것을 미리 알고서 곧 잡아 취한다. 여래ㆍ응공ㆍ등정각도 금시조왕과 같아서, 걸림없는 허공에 머무르면서 청정한 눈으로 법계의 모든 궁전에 사는 일체의 중생을 관찰하여 선근이 이미 성숙한 자가 있으면, 용맹스런 10력(力)을 떨치고 지(止)ㆍ관(觀)이라는 두 날개로 생사의 큰 애욕의 바닷물을 쳐서 갈라, 생사의 바다를 벗어날 수 있는 근기를 따라 일체 망상의 전도(顚倒)를 제거하고 여래의 걸림없는 행에 편히 서게 하느니라.”
또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경의 이름을 듣고 4악취(惡趣)에 나는 이가 있다면 그럴 리가 없다. 만일 어떤 중생이라도 이 경의 이름을 한 번만 들으면 일체의 악과 무간(無間)의 죄업(罪業)을 다 멸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말하였다.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경 이름을 한 번만이라도 들으면 그는 지금부터 7겁 동안 악취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또 말하였다.
“만일 여래께서 항상 머물러 조금도 변함이 없음을 알거나 혹은 항상 머무는[常住] 두 자(字)의 음성을 한 번만이라도 들으면 그는 곧 천상에 나고, 뒤에 해탈할 때에는 여래께서 항상 머물러 변함이 없음을 확실히 알 것이다.”
또 『화엄경』에서 말하였다.
“만일 일찍이 없었던 한 글귀의 법을 들으면 그것은 삼천대천세계의 보배를 다 얻는 것보다 낫고, 이 보살이 한 게송의 바른 법을 듣고 그것을 최상의 재물이라 생각하면 그는 전륜성왕의 지위를 얻음보다 나을 것이다.”
또 『법화경』에서 말하였다.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법화경을 수지하여 읽거나 외우거나 해설하거나 베껴 쓰면 이 사람은 8백의 눈의 공덕과 1,200의 귀의 공덕과 8백의 코의 공덕과 1,200의 혀의 공덕과 8백의 몸의 공덕과 1,200의 뜻의 공덕을 얻을 것이다.”
또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내가 열반한 뒤에 만일 누가 이와 같은 대승의 미묘한 경전을 듣고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면 이들은
오는 세상의 백천억겁 동안 악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또 말하였다.
“만일 한 항하의 모래 같은 부처님 처소에서 발심하면, 그 뒤에는 악한 세상에서도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이 경전을 즐길 것이다. 비록 남을 위해서는 분별해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만일 두 항하의 모래 같은 부처님 처소에서 발심하면, 그 뒤에는 악한 세상에서도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바로 알고 믿고 즐기며 수지하고 독송할 것이다. 남을 위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만일 세 항하의 모래같이 수많은 부처님 처소에서 발심하면, 그 뒤에는 악한 세상에서도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내지 경전을 베껴 쓸 것이다. 비록 남을 위해서는 그 깊은 뜻을 해설하지 못하더라도. 만일 네 항하의 모래 같은 부처님 처소에서 발심하면 그 뒤에는 악한 세상에서도 이 경전을 비방하지 않고, 내지 경전을 베껴 쓰며 남을 위해 16분의 1의 뜻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다섯 항하의 모래 같은 부처님 처소에서 발심하면 내지 악한 세상에서도 남을 위해 16분의 8의 뜻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여섯 항하의 모래 같은 부처님 처소에서 발심하면, 내지 악한 세상에서도 남을 위해 16분의 12의 뜻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일곱 항하의 모래 같은 부처님 처소에서 발심하면, 내지 악한 세상에서도 남을 위해 16분의 14의 뜻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여덟 항하의 모래 같은 부처님 처소에서 발심하면, 내지 악한 세상에서도 경전을 베껴 쓰고 남을 권해 듣게도 하며 들은 대로 이해하며, 그대로 수행하게 하며 능히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6) 방죄부(謗罪部)
생각하면 지금은 말세라, 사람을 따라 법이 잘못되었다. 도인과 속인이 서로 침범하며 잘못된 것을 전하고 참[眞]을 등지면서
한데 뒤섞여 같이 유행한다. 내전(內典)은 닦지 않고 오로지 속서(俗書)를 섬기면서 비록 내전을 뽑아 베껴도 마음이 정성스럽지 않다. 깨끗함을 지키지 않을 뿐 아니라 더구나 틀림이 많아 공동으로 간직하되 혹은 문이나 처마 끝에 두고도 바람과 비와 벌레들을 전연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경전으로 하여금 영험의 공이 없게 하고 외워도 고통을 구제하는 이익이 없게 되리니, 이것은 실로 정중하지 않기 때문이요, 또한 아인(我人)이 너무 교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복경(敬福經)』에서 말하였다.
“선남자야, 생(生)을 경영하는 법으로 전도(顚倒)되어서는 안 된다. 한 글자에 두 점을 찍더라도 5백 세상 동안 미혹한 도에 떨어져 바른 법을 듣지 못할 것이다.”
또 『대집경(大集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어떤 중생이 지난 세상에서 온갖 악업을 지어, 법을 헐거나 성인을 비방하거나 설법하는 이의 장애가 되거나 경을 뽑아 베낄 때 문자를 빠뜨리거나 남의 법을 헐거나 다른 경전을 숨겨 두면 이런 업연으로 말미암아 그는 장님의 과보를 받을 것이다.”
또 『대반야경』[제 440권]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선남자ㆍ선여인 등이 반야바라밀의 매우 깊은 경전을 베껴 쓸 때, 얼굴을 찌푸리거나 하품을 하거나 실없이 시시덕거리거나 서로 침범하거나 심신이 조급하고 분주하여 문구가 거꾸로 뒤섞이고 뜻을 미혹하며 재미가 없게 하거나 뜻밖의 일이 갑자기 일어나 베껴 쓰기를 마치지 못하면 그것은 보살에 대한 악마의 장애니라.’”
또 『대승연화장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의 금계(禁戒)를 받고도 장래를 단속하지 않으면서 각각 ‘이 대승법은 캄캄한 밤 같아서 알 수 없다’ 하거나, ‘나는 불법을 얻었다’고 자칭하면, 그는 철창(鐵槍)지옥에 떨어지고, 받는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지옥에서 나와서는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장님이 되어 바른 법을 보지 못한다.”
『아난청계율론(阿難請戒律論)』에서 말하였다.
“승니(僧尼)와 속인 등이 경ㆍ율ㆍ논 등을 읽을 때 말하거나 손으로 잡거나 하면서 책을 뒤적거리면 그는 도리천의 해[歲]의 수만큼 중한 돌길라(突吉羅)4)를 범하는 것이며, 축생의 과보로는 2억 년 동안 노루 사슴 무리 속에 떨어져 항상 등을 맞아 그 고통이 참기 어려울 것이다. 뜻 없는 농담으로 경ㆍ율ㆍ논을 잡아도 앞의 과보를 받는다. 혹은 경이나 불상을 처마 앞에 두면 도리천의 햇수로 8백 년 동안 중한 돌길라를 범하고, 축생의 과보로 2억 년 동안 돼지나 개들 세계에 떨어지며, 사람의 몸으로 나면 1억 년 동안 항상 나그네로 떠돌면서 자재를 얻지 못할 것이다.”
또 『대품경』에서 말하였다.
“이 사람은 삼세(三世) 부처님의 일체 지혜를 비방하고, 법을 파괴한 업의 인연이 모이기 때문에 무량 백천만억 년 동안 대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법을 파괴한 이들은 대지옥에서 다른 대지옥으로 가고 거기서 화겁(火劫)이 일어날 때에는 다시 다른 대지옥으로 가며, 거기 나서도 한 대지옥에서 다른 한 대지옥으로 간다. 거기서 화겁이 일어날 때에는 다시 다른 대지옥으로 가며, 거기 나서는 한 대지옥에서 다른 한 대지옥으로 간다. 이렇게 시방 지옥으로 두루 돌아다닌다. 거기서 화겁이 일어나기 때문에 거기서 죽는다.
법을 파괴한 업의 인연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다시 이 지옥으로 돌아오며, 여기 나서도 한 대지옥에서 다른 한 대지옥으로 가서 무량한 고통을 받는다. 여기서도 화겁이 일어나기 때문에 다시 시방의 다른 국토로 가서 축생들 속에 나며, 법을 파괴한 죄업의 고통은 지옥에서 말한 것과 같다.
중한 죄가 차츰 엷어지면 혹 사람의 몸을 얻더라도 장님의 집이나
전타라의 집의 측간을 치거나 송장을 메는 사람의 집 등 갖가지 하천한 집에 난다. 나서도 눈이 없거나 외눈이거나 혀가 없거나 귀가 없거나 손이 없으며, 나는 곳은 부처도 없고 법도 없고 부처 제자도 없다. 왜냐 하면 법을 파괴하는 업을 심어 두텁게 쌓았기 때문이다.”
또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이 경전을 믿지 않는 자가 현세에서 무량한 병의 고뇌를 받고 중생들의 모욕을 많이 받는다. 목숨을 마친 뒤에는 사람의 천대를 받고 얼굴이 누추하며 생활이 곤란해 항상 가난하고, 비록 조금 얻더라도 그것은 추하고 악한 것이며 항상 하천하고 빈궁하며 정법을 비방하는 사견의 집에 산다. 임종 때에는 난리를 만나 전쟁이 일어나고 임금이 포악하며 원수나 적의 핍박을 받는다. 선지식이 있더라도 만나지 못하며, 생활 필수품을 구해도 얻지 못하고 비록 조그만 이익을 얻더라도 항상 주리고 목마르다. 오직 하천한 사람만 친해지고 국왕이나 대신들은 다 봐주지도 않는다. 혹 누구의 설법을 들어 그것이 이치에 맞더라도 끝내 믿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날개 부러진 새가 날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 사람도 그러하여 오는 세상에 인간이나 천상의 좋은 곳에 가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이 대승 경전을 믿으면 본래 추한 얼굴도 이 경의 공덕으로 곧 단정해지며 위엄스런 안색과 힘이 날로 증대해져서 항상 사람과 하늘이 반가워하여 공경하고 사모하는 정으로 그를 버리지 않는다. 국왕과 대신과 친척들이 그의 말을 들으면 다 공경하고 믿는다. 만일 내 성문(聲聞) 제자로서 제일 희유한 일을 행하고자 하면
세상을 위해 이런 대승 경전을 널리 펴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비유하면 놀이나 이슬이 그대로 있고자 해도 해가 날 때까지 밖에 있지 못해, 해가 나면 사라져 남음이 없는 것처럼, 선남자야, 이 중생들의 모든 악업도 그와 같아서, 세상에 있는 힘이 대열반의 해를 볼 때까지 밖에 있지 못해, 그 해가 나면 일체 악업이 다 사라져 없어지느니라.”
또 『법화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시거나 멸도하신 뒤에 누가 이런 경전을 비방하여 이 경전을 수지 독송하는 이를 보면 그를 천시하고 미워하며 원한을 품는다. 이 사람의 죄의 과보를 너는 지금 다시 들으라.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는 아비지옥에 들어가 한 겁을 채우고, 이 겁이 끝나면 다시 거기 난다. 이렇게 전전하여 무수한 겁에 이르며, 지옥에서 나오면 축생 세계에 떨어질 것이다. 또 무수한 겁 동안 세상에 나면 곧 귀머거리나 벙어리 등 불구자가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을 비방하는 자의 그 죄는 겁이 다하도록 말해도 다하지 않을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삼장(三藏)을 가르쳐 전하고
팔인(八因)을 자비로 훈계하니
중생들은 두루 은혜를 입고
근기는 현진(玄津)을 깨닫는다.
위엄스런 볕은 뜨거운 여름
온유함은 따뜻한 봄이다.
오랫동안 말랐던 것이
광택이 나고 정신이 시원하다.
감으면 곧 복을 들이고
펴면 곧 슬기가 뻗는다.
생각하기를 쉬지 않음은
더해지고 새로워진다.
진실한 일컬음은 인자한 아버지요
정교한 호는 능인(能仁)이시다.
주공(周公)ㆍ공자(孔子)ㆍ노자(老子)의 가르침
누구의 교화가 이것만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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