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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249 불교 묘법성염처경(妙法聖念處經) 6권

by Kay/케이 202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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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묘법성염처경(妙法聖念處經) 6

 

 

묘법성념처경 제6권


법천 한역
김성구 번역


죄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지혜가 없으니
뒤에 목숨을 마칠 때에
괴로움이 항상 불태우리라.

하늘세계를 두루 하더라도
윤회에 떨어짐을 누가 볼 수 있으리오.
그는 항상 음란한 즐거움을 탐내어
이를 알 수 없다네.

음욕(婬慾)에서 헛되고 거짓됨이 생겨나
유정을 미혹시켜
이끌어 3도(途)에 떨어뜨리니
마치 밧줄로 묶는 것과 같네.

나고 죽음이 항상 이러하니
유정들은 반드시 스스로 영리해서
몸ㆍ입ㆍ뜻을 조복하여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하라.

법의 경계 등을 반드시 쉬어야 하니
일체 음행에 집착하는 이는
어리석음을 더하여 무상(無常)에 떨어져서
욕심의 불에 타는 줄을 깨닫지 못하리라.

친한 권속과 벗과 선지식과 형제와
그리고 권속들 멀리 여의라.
크게 괴로운 죽음이 올 때에
파타(波吒)1)를 어찌 능히 말하리.

처음 무상(無常)의 자리에 이르면
마치 산이 갑자기 무너지듯이
잠시도 머물지 못하고
찰나에 소멸되어 사라지네.

만일 일체지(一切智)에 처하면
죄도 없고 윤회도 없어서
구경에는 괴로움의 근원에서 벗어나
모든 하늘에서 항상 사랑하고 즐거워하리라.

애욕의 바다는 깊어 밑이 없으니
어찌 능히 만족할 때가 있으리오.
사랑하고 탐내는 마음을 더욱 더하니
연유기름[酥油]을 불에 부은 듯하네.

갖가지로 장엄한 모습은
세상에서 벗어날 인(因)을 파괴하여
네 가지 갈래에서 윤회하니
인간과 축생과 지옥과 아귀라.

나고 죽음이 항상 끊어짐이 없고
가고 옴이 도공의 녹로(轆轤)2)와 같은데
중생들은 크게 어리석어서
번뇌의 본성을 알지 못하네.

만약 저 모든 유정들이
영원히 탐애(貪愛)를 여읜다면
반드시 가장 높은 인(因)을 얻어
해탈하여 얽매임이 없으리라.

지혜로운 이는 번뇌를 제거하여
모든 병고(病苦)가 침해하지 못하고
탐냄과 성냄을 항복하여
길이 안락한 도를 얻으리니

생의 고통[生苦]이 물들이지 못하고
오랏줄이 능히 속박하지 못하며
지혜가 점점 뚜렷이 밝아서
일체의 일을 비추어 알리라.

만약 둥글고 고요한 진리[理]에서
무상(無相)한 마음을 일으키면
때를 여의고 시끄러운 세속을 끊어

마침내 저 언덕에 이르리라.

저 괴로움과 즐거움의 경계에서
환하여 얻을 바가 없다면
큰 해탈에 들어가
항상 공적한 집[空寂舍]에 머무르다가

다시 자비한 마음을 일으켜
유정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고지(苦智)3)와 진여(眞如)를 보여
오랏줄을 멀리 여의며

뜻에 의심하는 생각을 끊게 해서
영원히 탐애(貪愛)를 제거하면
괴로움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최상의 지혜를 획득하여
저 모였다 흩어짐의 공(空)함을 깨치리라.

설령 수명이 8만 겁이라도
또한 다시 무상(無常)에 떨어지리니
여기에 항상 머무를 수 있다면
하늘세계를 영원히 잃지 않으리라.

악(惡)을 보고서 아만심(我慢心)을 내고
죄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며
어리석고 미혹하여 방편이 없어서
항상 쾌락을 구하여도
비유컨대 모래더미 속에서
기름을 찾으나 끝내 얻지 못함과 같네.

만약 죄업(罪業)의 행을 지으면
언제나 핍박을 당하며
괴로움의 나무는 죄의 뿌리가 깊어서
일체의 악(惡)이 자라나니

나는 이 진여를 말하여
반드시 법도 되고 비법(非法)도 되겠지만
저의 뜻에 죄 지음을 부끄러워하고
뒤에 다시 번뇌가 없다면
이익(利益)이 넓고 가없으며
진여의 경계에 이름을 얻으리라.

“만약 또 어리석고 미혹되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지 않으면, 뒤에 무상(無常)에 이르러 스스로가 괴로움을 얻어 무수한 백천 구지 나유타 아몰나(阿沒那)를 지나면서 인천(人天)을 파괴하고, 무상(無常)의 죄의 불길이 반드시 태워버리되, 이것이 겁(劫)에 다 끝나지 않는다.”
구담(瞿曇)4)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에 다시 어떻게 오래 머무를 수 있는가? 마치 물거품이나 파초와 같아서 털끝만한 진실도 없으며, 허깨비 같아서 오래가지 않으니, 만약 항상 이 쾌락을 사랑한다면 결코 오래 머물 수 없다.”
이때 저 부처님께서 저 하늘 무리에게 물으셨다.
“이 뜻을 아는가?”
하늘들이 마음으로 환희하여 마치 다섯 가지 음악을 듣고 많은 쾌락을 얻으며 다섯 가지 공덕을 얻은 것 같았다. 이에 다시 말씀하셨다.
“그 하늘에 나는 새가 있으니, 이름이 희희(嬉戱)다. 능히 법을 잘 말하였으므로 그 하늘 무리를 위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욕심이 있으면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인(因)이 없으면 사람의 마음은 만족하니
부족한 마음을 일으킨다면
이와 같이 죽음을 모르리라.

일체의 중생계에는
형류(形類)가 여러 가지 있으니
길고 오랜 시간 가운데
능히 방편을 닦지 못한다면

영원히 안락을 받지 못하고
반드시 윤회에 떨어져
항상 지옥에 있어서
날 때마다 또한 이러하리라.

“만약 진실하게 말한다면, 제석의 경계는 부귀함이 수승하여 모든 하늘들과는 다르지만 이 윤회를 또한 면할 수 없으니 반드시 무상(無常)하며, 하늘 위에 두루 하여 어떤 미묘한 곳도 무상을 피할 수 없으니 모두 떨어지게 된다.
이때 천제가 법상(法相)을 잘 이해하였으니, 이름이 교시가(憍尸迦)였는데, 그 천부(天父)를 위하여 갖가지로 정진하고 많은 인행(因行)을 말하였지만 모든 하늘 무리들은 오히려 깨닫지 못하였으니, 누가 능히 즐겨 고요한 행을 닦아서 죄의 때를 멀리 여의겠는가?
오직 어리석고 미혹됨을 마음대로 하여 마음이 방일(放逸)함에 집착해서 이 가르침을 받아 지니지 않으니, 이렇게 하기를 오래도록 가없이 하면서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는가?
저 모든 어리석은 사람이 악한 인(因)을 즐겨 지어서, 저의 뒤의 몸에 죄악을 입어 갖가지로 파괴하니, 어찌 악한 업이 잠[眠]을 따라 얽매임을 알겠는가?”
그때 비구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만약 깨달음의 이익[善利]을 행한다면
눕는 기구와
음식과 의복 등으로
공양하고 공급하기를
높고 낮은 무리에게 하되
자신을 위하여
복과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혹은 자기 몸을 관찰하되
‘누가 주인[主宰]이 되어
악한 경계를 만났으며
죄를 짓고 원수를 만나며
짐짓 와서 속이는가’하여
진실을 일으켜
모습을 여의고 인욕하라.

지혜로운 이가 자세히 관찰하면
도무지 병듦의 고통과
괴로워할 어려움이 없는데
오직 현재의
고요하지 못한 물건이
이와 같은 몸을 이루었으되
다시 이 몸은

찰나도 머물지 않고
성대하고 장대함도 또한 그러하니
어느 몸을 파괴하겠는가?

중생이 미혹되고 취하여서
자기의 재물에 대하여
이익을 짓지 않고
죄업을 더하여
가르침을 받지 않으며
또한 보시를 행하지 않아서
일체의 처소에서
마음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면
도적들이 엿보고 무너뜨릴 것이니
어떻게 보호하여 지니겠는가?

만약에 마음을 돌려
스승들에게 보시하되
그 재물이 빼어나게 좋더라도
도리어 버리기를
풀이나 나무같이 하여
마음에 애착하지 않으며
가난하고 못난 유정을
항상 구제하여 준다면
때를 여의고 집착이 없어서
지금의 세상과 뒤의 세상에서
7중계(衆戒)를 얻어
구제하고 제도함이 가장 높으리니
계가 사람을 보호해서
반드시 하늘에 태어나리라.

지혜가 광대하면
그는 능히
일체의 번뇌와
병(病) 등의 칼날과 쇠사슬을 끊고
크고 험악한
윤회의 다리를 지나
저 견고한
열반의 언덕에 이르리라.

마음이 맑고 때가 없으면
무생인(無生忍)을 얻으리니
마치 짐을 지되
그 물건이 가볍고 적어서
먼 길을 가더라도
피로하지 않은 것처럼
만약 사람이 짐을 지더라도
악한 업이 가벼우면
멀리 세간을 지나가서
빠져 가라앉지 않으리라.

또 마치 나는 새가
두 날개가 건장하면
높이 허공에 올라
먼 곳에 빨리 이르는 것처럼
만약 사람이 계를 지니되
수호함이 견고하면
가고자 해서 하늘에 태어남도
또한 그러하리라.

다시 나는 새가 있으니, 이름이 현진여(現眞如)였다. 그 흰 산에 머물며 능히 관찰해서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의 형색(形色)이
찰나도 머물지 않는 것처럼
쾌락도 또한 그러하거늘
어리석고 미혹되어 깨닫지 못하네.

만약 일체의 종류가
좋은 모습이 여러 가지라도
윤회하여 생길 때는
반드시 파괴됨을 따르니

저 복이 파괴되면

한 번 태어남도 또한 그러하며
죽음의 왕이 짬을 얻으면
죄지은 마음을 어찌 면하리오.

항상 쾌락을 행하면
무재아귀(無財餓鬼)와 흑승지옥(黑繩地獄)이
유정을 꺾어 무너뜨리며
병(病)에 강한 힘이 없어서
안락함을 멀리 여의고
죽음의 왕이 가까이 오리니
가까워지면 마음이 미혹되어
중생의 목숨이 무너져서
죄업이 파괴되어도 오래도록
하늘과 인간에 윤회하리라.

근본(根本)의 미혹을 깨닫지 못해
안락함을 멀리 여의고
염라의 세계에 떨어져서야
비로소 업과(業果)를 아네.

쾌락은 찰나이며
몸도 늙고 썩으니
모든 티끌 같은 경계를 기뻐하여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탐착(貪着)하되
쾌락을 받기를 다하면
늙음과 죽음의 왕이 침해하리라.

모든 근(根)이 경계를 대하여
연모하고 집착해서 만족하지 않으면
그는 나중에 무상(無常)하여
저절로 번뇌가 생기리라.

만일 지혜의 등불로
티끌 같은 경계와
수(受)와 행(行)의 경계를
비추어 보지 않으면
나[我]에 집착해서 분별하고
즐겨 허망한 것에 집착하여
욕심의 불이 항상 생겨나고
경계의 힘이 바람처럼
욕심의 불을 불어 성하게 하리라.

지혜는 진여(眞如)를 깨닫지만
생각은 허망함을 이루거늘
일체의 어리석고 미혹한 이들은
즐겁게 희롱하여 깨닫지 못해서
항상 경계를 행하여
욕심의 불을 불어 일으키네.

하늘 사람이 욕심을 행하면
저 하늘세계에서 떨어지리니
그가 하늘의 덕을 구족하여
진실로 하늘의 즐거움을 갖추었더라도
쇠퇴하는 모습이 나타나면
무너지지 않고 어찌 머무르리오.

찰나도 머물지 않고
생각마다 나고 죽어서
잠시 머물러 오래가지 않으니
그의 목숨 이와 같아라.

이 경계는 남에게 속하니
한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5덕(德)의 하늘의 즐거움을
무너지는 괴로움[壞苦]이 빨리 여의게 하리라.

제석천왕이여,
번뇌를 떨어버리면
3장(障)의 때[垢]가 고요해지며
3보(寶)에 귀의하면
3업(業)이 텅 비어서
가장 높은 삼불보리(三佛菩提)를
깨달으리니
비록 죄의 땅에 태어나더라도
죄의 때에 물들지 않고
마음이 선행을 짓는데 머무르리라.

그곳에 염마(閻魔)의 옥졸이 있었는데, 그 중생들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마음에 탐욕을 품고
선한 인연을 싫어하여 버리면
윤회를 여의지 못하고
이 괴로운 과보를 얻으리라.

하늘의 행을 의지하지 않고
죄의 인(因)을 지으면
그 뒤에 무상(無常)하여
도리어 악을 지은 것을 한탄하리라.

날카로운 칼이 몸을 베고
사나운 불길이 몸을 태워도
오히려 손상되지 않으련마는
다섯 근(根)으로 죄를 얻으면
괴로움을 참을 수 없으리라.

눈으로 아름다운 색(色)을 보면
실제로 즐거움을 얻은 것 같으니
어찌 항상 괴로움을 알리오.
소리를 듣고 맛을 탐내면
그 허물도 또한 그러하니
죄를 짓고 원수를 만드느니라.
그러므로 저 세 가지
원수를 버려야 하니
죄인을 얽어매어
사람들의 안락함을 여의게 하느니라.

탐냄과 어리석음이 화합하여
계품(戒品)을 멀리 여의게 해서
그 까닭에 지옥에 떨어지니
만약 계율을 행한다면
뒤에 복되고 선함을 얻으려니와
만약 계율을 어긴다면
뒤에 번뇌를 얻으리라.

술을 마시고 생명을 죽이며
다른 부녀(婦女)들을 이간하여
삿된 소견으로 두 말을 하며
위의(威儀)를 지키지 않고
감정대로 방일(放逸)함을 일삼아
유정(有情)을 파괴하면
그 까닭에 나쁜 갈래에 떨어지리라.

삿된 행을 탐내어 집착하고
또 나쁜 말을 하면
지금 세상과 뒤의 세상에서
저 안락함이 없으리니
악한 사람을 멀리하고
어진 벗을 가까이하면
이 죄의 근본이 소멸되겠지만
믿지 않아서, 이 업(業)은
업과(業果)가 없으며
뭇 안락함도 없다고 한다면
악한 과보의 근본인
번뇌가 뒤에 불타오르리라.

만약 거짓말을 한다면
본래 법사(法師)가 아니니
‘내가 깊은 법을 안다’고 해도
그 뒤에는 무상(無常)해지며
마군[魔羅]의 업과(業果)를 얻어
이 사람 몸에서 굴러 떨어져
나쁜 갈래에 태어나리라.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이를 무명(無明)이라 말씀하셨으니
일체의 탐욕으로
어찌 쾌락을 얻을 수 있으리오.

족함을 알아 탐냄이 없으면
몸이 번뇌를 여의어
쾌락을 내고자 하니
이것이 쾌락이니라.

해탈과 서로 응하면
가장 높은 즐거움을 얻거니와
만약 쾌락을 탐낸다면
독약을 물에 섞은 것과 같으리니
해탈하면 쾌락한 것이

마치 우유를 물에 섞은 것 같거늘
욕심의 불길이 태우고 해쳐서
어리석음에 눈멀어 깨닫지 못하네.

또 탐내고 사랑하여
재물의 이익을 따지고 헤아리며
술과 고기를 팔고 사면서
무수한 재물을 얻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만족하지 못하고
무상(無常)한 죽음의 귀신이
속히 와서 끌어가리니
만일에 욕락(欲樂)을 탐내어
즐겨 경계에 머물면
쾌락하지 않음을 얻으리라.

여래는 이것을 말씀하시어
꿈을 깨는 법의 비유라고 하셨으니
마치 건달바의 성(城)과 같고
허공과 같아 실답지 않으며
물 위에 거품과 같고
파초의 견고하지 못함과 같으며
저 불의 독(毒)과 같아서
욕심의 경계도 또한 그러하네.

만약 인과(因果)를 맛보고
욕심의 허물과 죄를 알면
진여(眞如)를 미혹하지 않고
지혜를 성취하여
고요한 생각을 얻으며
탐애(貪愛)를 버려
괴로움이 생기지 않으니
욕심을 무너뜨림도 또한 그러하니라.

욕심은 죄의 주인이 되니
세상의 독약과 같으며
그의 뜻에 만족하지 않아서
하늘세계에서 떨어져
다시 지옥에 드느니라.

욕심은 어리석고 미혹됨을 속이니
비유컨대 폭포와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며
세간 독(毒)의 힘은
여색(女色)보다 더함이 없거늘
욕심을 생각함이 더하니
마치 불처럼 타오르느니라.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욕심을 여의고 고요하여
앞도 없고 뒤도 없으며
또한 중간도 없이
여여(如如)하게 행하니
자라나는 것도 또한 그러해서
그는 욕망의 고통을 얻으면
큰 불꽃에 닿은 것과 같게 여기고
이와 같은 허물을 아느니라.

지혜로운 이는 멀리 여의어
속히 욕심을 여의는 까닭에
반드시 안락을 얻지만
무수한 백천의
나유타 하늘들은
욕심을 행하기 때문에
맹렬한 불의 지옥에 떨어져
형벌하는 기구로 벌을 다스리니
그 독함이 불과 같으니라.

쾌락을 멀리 여의고
욕심의 인(因)을 행하지 않으면
위와 같은 지옥을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으리니
만약 탐욕스런 사람이
그 탐욕을 끊는다면
또한 괴로움이 없으리라.

그러므로 때[垢]가 없어
뜻이 청정함을 얻으면
일체의 처소에서

욕심의 불꽃을 소멸하고
저 갖가지로
가장 높은 선한 업에 들어가
그 행에 물들음이 없으리라.

그때 제석은 새가 장엄한 나무에 앉았는데 빛이 단금(檀金)과 같고 저 법의 인과(因果)가 바른 소견과 선한 업임을 관찰하고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바른 소견과 선한 업은
마치 저 큰 나무가
울창하고 무성하게 금빛으로
갖가지로 장엄한 것과 같도다.

지혜로운 이가 말한 것은
선한 과보와 같으니
곳곳마다 태어날 적에
선하지 않거나 선하거나 간에
저 사람의 몸을 얻었거든
다시 선한 업을 행하면
천상에 태어나며
선하지 않음도 또한 그러하여
아래로 지옥에 떨어지리라.

욕심이 선한 뜻을 미혹하면
다시는 가장 높은
양약(良藥)을 얻지 못하리니
만약 과보를 안다면
뜻으로 사랑하거나 욕심내지 않으리라.

중생의 경계에서
미혹되어 취하고 맛 들여 집착해서
만약 언제나 탐욕을 행한다면
악함이 반드시 함께 생기리라.

여인이 번뇌를 일으키면
마치 세간의 불과 같으며
만약 이 불이 일어난다면
번뇌도 이와 같아서
여인의 번뇌는
중생의 마음을 일으켜
세간을 파괴하고
일체의 법을 소멸하여
지옥의 인(因)이 되느니라.

큰 신선께서 말씀하시길
여인의 간사한 아첨은
입에는 달지만 마음에는 독이니
진정으로 사랑함이 항상하지 않고
사랑하여 사모함도 잠깐이며
버리고 등짐도 또한 그러하고

그의 성품 들뜨고 시끄러워
번쩍이는 번개에 비유할 만하고
유정을 속여서
거짓으로 은애(恩愛)를 행하니
천인(天人)과 용과 귀신과
나찰 권속들의
경계도 또한 그러하네.

여인은 비루하고 악하니
비유컨대 저 검은 독[黑毒]이
종족과 성씨를 가리지 않고
형세와 힘을 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사랑하고 미워함이 항상하지 않으며
성품은 바람과 불 같고
오직 재물만을 모아
처음과 끝이 없으며
험난한 일이 있으면
싫어하고 버려서 멀리 여의며
만일 부귀한 사람이면
그는 곧 사랑하고
만약 빈천에 머무르게 되면

서둘러 이별하네.

비유컨대 날아다니는 벌은
꽃들이 향기로우면
다투어 와서 따 먹다가
나무가 말라버리면
모두 멀리 여의는 것처럼
재물이 없음도 또한 그러하여
여인들이 멀리 여의네.

여인은 검고 어두우며
마음을 뒤바뀌고 미치게 하여
수승한 인(因)을 파괴하고
어질고 선함을 알지 못하니
여인의 얽매임과 같이
하늘의 얽매임도 또한 그러하여
만약 여인의 얽매임을 만난다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이며
만일 여색(女色)을 탐한다면
탐심 가운데 제일이리라.

만약 어떤 중생이
비록 욕심의 업을 깨달았더라도
오히려 탐내고 집착한다면
그 까닭에 무지(無知)하리니
미혹한 사람은 깨닫지 못하리라.

또 여인들은
거짓으로 정성을 드러내어
남을 속여 자기를 믿게 하니
몸은 비록 함께 있으나
마음은 어긋나서
유정을 해치고 무너뜨림이
독하기가 뱀이나 전갈 같네.

방편으로 많이 구하여
일체를 양육함은
여인이 행하는 덕으로는
능히 할 수 없으니
이러한 자성(自性)을
자못 헤아리는 이 없거늘
지혜로운 이는 집착하지 않아서
마음이 항상 결정되리라.

도리천궁 안에 선법당(善法堂)이 있었으니, 그때 모든 하늘이 선법당에 모였는데, 이와 같이 산란한 이가 있었다.
나는 새들이 그들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비유컨대 나는 새가
그의 자성(自性)을 따라
즐거워하고 싫어함이 같지 않아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연꽃을 보면
도리어 즐거워하고 집착하지만
만일에 숲이나 들을 보면
스스로 싫어하여 여의는 것이며
둘째는 숲과 들을 보면

뜻으로 즐겨 머물고자 하지만
만일 연꽃을 보면
도리어 멀리 여읠 것을 생각하는 것처럼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
숲은 고요한 선행과 같고
꽃은 욕심과 탐심 같아서
지혜로운 이는 숲을 즐겨
깊이 뜻에 맞지만
하늘 사람은 뒤바뀌어서
도리어 연꽃을 사모하네.

따사로운 해가 나오면
큰 추위를 물리칠 수 있는 것처럼

해탈의 즐거움도
또한 이와 같으니
탐내는 가운데 괴로움이 생기거늘
즐거움이 떠나면 어찌 편안하리오.
지혜로운 이는 미혹되지 않아
해탈을 구하므로
일체의 처소에서
가장 높은 즐거움을 누리리라.

모니의 숲에 머물러서
능히 잘 관찰하여
뜻을 머무르게 해서 탐냄이 없으면
하늘 사람이 가장 높겠지만
이러한 욕탐(欲貪)에 머무르면
오래가지 못하리니
만약 행함에 탐냄이 없으면
즐거움 가운데 가장 높고
숲에 머물러 고요하면
행 가운데 제일이어서
일체의 괴로움이 끊어지리라.

악행(惡行)을 달게 받아
유정을 속인다면
뜻에 맞는 숲 속에서
마땅히 잘 관찰해야 하니
마음으로 잘 관찰하면
항상 안락함에 처하고
마음으로 행함에 탐냄이 없으면
즐겨 숲 속에 머무르리라.

그 사람이 숲을 즐거워하면
마음이 항상 순수하고 선하며
욕심을 여의어 탐냄이 없어서
고요한 즐거움을 얻으리라.

만일 어떤 사람이 번뇌하면
숲 사이를 보기 두려워하고
탐애(貪愛)가 곱으로 더하여
자신을 불태우리니
탐애를 버리고 등져
때[垢]가 없이 청정하면
마음이 결정되어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안락함을 얻으리라.

부귀를 갖추었더라도
복이 다하면 공(空)을 이루고
왕성한 소년시절이라도
늙음이 침입하여 문득 바뀌며
일체의 은혜로운 사랑도
반드시 이별함이 있으니
모든 유위(有爲)는
화합하여 잠시 그럴 뿐이네.

이 세간법(世間法)을
바르게 깨달아 바르게 말하니
만약 어리석어 미혹됨을 깨달으면
사랑을 버리고 만족함을 알아서
고요한 숲에 들어가
가장 높은 즐거움을 얻겠지만
자기의 준수하고 영리함을 믿어
생각하고 사랑하기를 여러 면으로 하면
선(善)의 숲을 멀리 여의어서
이로움과 즐거움을 영원히 잃으리라.

숲 사이에서 묵묵히 관(觀)하면
고요함이 서로 응하여
뜻에 맞아 탐냄이 없으니
선한 마음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리라.

그러므로 마을에서는
산란함이 항상 생기지만
만일 숲 속에서 살면
모든 탐애를 여의리니
그대들 뜻으로 빨리
어리석고 미혹됨을 싫어하여 여의고
가장 높고 고요한 숲에서
상응(相應)하여 머물러라.


마음의 움직임이 고요하다면
영원히 번뇌를 여의고
행(行)이 서로 응하면
선근이 더욱 늘어나 성하리라.

설사 어떤 사람이
천 번 제석을 얻을지라도
과보의 수명이 다하면
또한 생멸로 돌아가리니
항상 탐욕을 행하여
일체를 보지 못하면
욕심에 항복당하여
모든 괴로움을 내리라.

욕애(欲愛)의 즐거움은
잠시 동안 머물다가
오래지 않아 곧 소멸되니
마음은 원수와 같아
능히 저 즐거움을 여의며
그 욕심은 얻을 것이 없되
번뇌의 괴로운 과보는
모두 욕심에서 생겨나느니라.

해탈은 즐거움을 낳으니
그 즐거움은 진실하며
선서(善逝)5)의 행에
마음대로 상응하리라.

욕심을 여의고 탐심이 없으면
즐거움을 얻음이 다함이 없으리니
5욕(欲)의 즐거움은
먼저는 달고 뒤에는 쓰니
즐거움의 모습이 무너질 때는
지옥에 빠지리라.

탐냄이 없는 선(善)은
처음이나 뒤나 중간이나
때를 여의어 청정해서
즐거움을 받음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진실로 선(善)함의 어머니네.

어리석어 미혹됨과 욕락(欲樂)을
어떻게 여의리오.
허물이 항상 생겨
중간과 뒤가 깊이 괴롭다네.

죄행(罪行)은 어찌하여
쾌락을 보지 못하는가?
비유컨대 세간에서
독이 있는 꽃은
그 빛이 곱고 아름다우나
그 몸에는 독이 있어서
사람이 꽃을 건드리면
독이 몸을 해치는 것과 같으니
죄행과 욕락(欲樂)도
그 독이 또한 그러하니라.

또 바람을 맞으며
횃불을 잡음과 같고
또 날아다니는 나비가
등불에 달려드는 것과 같이
욕락의 불길로
불태워 해침도 또한 그러하네.

그러므로 욕락의 독은
항상 멀리 여의어야 하니
하늘이 욕락에 집착한 까닭에
악을 쌓아 헛되이 살고
사람은 애탐(愛貪)을 모아
어리석음이 가득하여 죄를 행하느니라.

그러므로 욕락의 불은
선근(善根)을 불태우고
하늘 사람을 속이고 잃어버려
나쁜 갈래에 빠지게 하느니라.

만약 아직 목숨이 떠나지 않았다면
속히 마음을 돌려
일체의 선근을
닦아서 자라게 하라.


탐심 등이 미혹되어 어지러우면
세 가지 허물이 티끌을 내며
3독(毒) 가운데 하나를 지어
죄의 그물이 더욱 크리라.

만일에 세 가지 미혹을 일으켜
상속하여 다하지 않으면
노래하고 춤추는 기생에
귀와 눈이 감정을 따르리니

하늘의 뜻이 돌과 같아도
끌려가 움직여서
일체 욕락의 경계가
고요한 마음을 뒤덮으리라.

사랑의 강물에 빠져
벗어날 때가 없으니
하늘은 어찌하여 어리석고 미혹되어
욕심의 속임을 깨닫지 못하는가?

비유컨대 독이 있는 나무가
독이 있는 꽃을 피우면
벌과 나비가 따 먹다가
독에 그 목숨을 잃는 것과 같이
탐욕의 독으로
손해(損害)함도 또한 그러하여
세 갈래에 떨어져
불이 나무를 태움과 같으리라.

하늘 사람 깨닫지 못해
이 죄의 땅[罪地]에 태어나서
받을 괴로움이 다하여야
비로소 니려(泥黎)6)를 여읠 것이니

하늘 사람이 어리석고 미혹되어
선한 일을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죄악의 경계에서
그들은 하나의 믿음도 없네.

지혜로운 이는
진여(眞如)와 꿈을 관찰하지만
어리석은 이는 꿈이 아니라고 여겨서
지옥의 인(因)을 만드네.

그러므로 욕심을 여의면
해탈을 얻는 선행이며
악행을 버리고 등지면
이익이 되는 선한 인(因)이니
그 이익을 만약 행한다면
영원히 모든 갈래 여의고
하늘에는 검은 행[黑行]이 없으리라.

저 지혜 있는 이가
바른 소견이 결정되어서
산란함을 즐기지 않으면
갖가지 복을 얻으리라.

그때 세존께서 천자(天子)들에게 산란하지 않은 행을 가르쳐 주시며,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하늘 사람의 궁전은
산란함의 근본이라
미혹되어 취해서 즐거움에 집착하여
윤회에 떨어지니
만일에 산란함을 여의면
윤회도 또한 벗어나리라.

저 산란함의 근본은
바로 무명(無明)이니
자성(自性)이 검고 어두워서
마치 사람이 눈이 없는 것 같으며
내가 그 허물을 관찰하건대
미혹의 불을 분별하지 못하여
어리석음이 깊고 넓으며
산란함도 또한 그러하니라.

중생이 어리석고 미혹되어

재물과 보배를 모으고
스스로 양육하여
또다시 산란해져
나쁜 갈래에 떨어지느니라.

하늘도 또한 어리석어서
여색(女色)을 사랑하고 집착하며
본래는 괴로움을 여의려 했으나
마음에 쾌락함을 기뻐하니
어찌 목숨을 마치면
큰 괴로움을 얻을 줄 알겠는가.

욕심으로 모인 즐거움은
오래지 않아 곧 흩어지며
일체의 중생들은
업과 수명에 한계가 있고
젊음은 찰나이어서
곧 쇠퇴하고 늙으니
선하고 악한 업의 얽매임에
뉘라서 자재함을 얻으리오.

비유컨대 풍각쟁이가
허수아비를 움직여 놀려면
반드시 실에 의지해야만
비로소 작용을 성취하리니
유정도 또한 그러하여
모름지기 흑업(惑業)을 빌려야
비로소 윤회에 처하려니와
만일에 탐애(貪愛)를 여읜다면
곧 작용이 없으리라.

오래되지 않은 업행(業行)을
지혜로운 이는 믿지 않아서
일체의 산란함과
방편을 멀리 여의니라.

만일 산란함을 여의면
삼계(三界)에 태어나지 않으니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깊은 구덩이에 떨어졌어도
그 가운데서 오히려
목숨을 잃지 않는 이가 있는 것과 같으며
만일 어떤 사람이 산란하면
삼계의 낭떠러지에 떨어져
그 가운데서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일체의 혹업(惑業)은
산란함이 가장 높아서
밤이나 낮이나
항상 안락하지 않으며

만약 세간의 사람들이
터럭만큼이라도 산란하다면
유정들의 세간을 벗어나려는 뜻을
파괴하리니
그러므로 멀리 여의라.

저 세존께서 자리에서 여실하게 말씀하시고 나니, 천주 제석이 존중하는 마음을 내어 앉는 도구를 펴고 머리 숙여 부처님의 발에 절하였으며, 일어나서 합장하고 게송 책을 보고는 두려운 마음을 내어 게송으로 말하였다.

만일 산란하지 않으면
저 감로와 같지만
만일 산란함을 행하면
무상(無常)에 떨어지리니
산란하지 않은 이는
하늘 가운데서 가장 높도다.

산란한 행은
윤회의 근본이며
청정한 행은

안락의 근본이니
그러므로 바른 선정은
일체의 처소에서
가장 높은 즐거움을 얻으리니
욕락(欲樂)에 대해서는
지극한 괴로움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하라.

산란함의 큰 독(毒)은
모든 선행을 함께 무너뜨리며
미혹됨의 독으로 산란해져서
사람이 악작(惡作)을 행하니
산란함을 좇지 않으면
능히 안락함을 얻으리라.

만약 저 지혜로운 이라면
평등하게 널리 말하기를
덕이 있거나 덕이 없거나
일체의 아집(我執)이
괴로움과 즐거움의 근본이라 하리라.
우리 세존의
게송 책에서처럼
욕심을 여의어 청정하면
이익과 안락함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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