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보자] #4142 불교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 6권

 

 

통합대장경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 6권

 

 

도행반야경 제6권

후한 월지국 삼장 지루가참 한역

15. 아유월치품(阿惟越致品)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은 어떻게 비교하고 어떻게 행함을 보고 어떻게 그 모양에 의해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인 줄 알아볼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은 선정을 얻은 사람과 같이 아무런 흔들림도 없다. 여기에서는 아라한과 벽지불과 부처의 지위가 서로 다르지 않으며 이들의 경지는 본래 없어서 끝내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다.
수보리여, 부처님께서는 본래 없는 것은 옳다거나 그르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공(空) 안에서는 모든 대상이 본래 없는 것으로 들어가서 본래 없는 것이 그대로 본래 없는 것으로 머무른다고 설하셨으니, 이 보살 역시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분별하지 않고 이와 같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이것이 본래 없는 것임을 분명히 깨닫는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만약에 다른 법을 듣더라도 끝내 마음에 의심이 없어서 옳다고도 말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않으니 이 보살은 이와 같이 본래 없는 것이 그대로 본래 없는 것인 자리에 머무른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그 말이 가볍지 않고 남의 일을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오직 옳은 것만을 말하고 남이 하는 일을 돌아보지 않으니 이와 같이 비교해서 이와 같은 모양이거든 반드시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인 줄 알아야 한다.
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은 사문이나 바라문의 모양을 하고 있지 않고 꿇어앉아 절을 하며 하늘에 제사지내지 않고 하늘에 꽃이나 향을 바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지 않는다.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은 결코 지옥과 아귀와 축생의 세계에는 태어나지 않고 여인의 몸으로 태어나지도 않는다.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은 항상 10계(戒)를 지키니 산목숨을 죽이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음행하지 않고, 이간질하지 않고, 술 마시지 않고, 욕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발림말을 하지 않으며, 질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헐뜯지 않고, 의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짓을 하라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이 보살은 10계를 잘 지켜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10계를 잘 지키도록 가르친다.
심지어 꿈속에서도 10계를 보고 스스로 보호한다.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은 널리 법을 배우면서 마음속으로 세상 사람들을 두루 평안하게 하기 위해 이 경전을 설할 것이니, 부디 이 깊은 경전을 나누어 가져 공덕을 함께 하고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라고 생각한다.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은 심오한 법을 들어도 끝내 의심이 없어서 믿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그 말이 부드럽고 미묘하여 비밀한 곳에 이르며, 적게 자고 적게 눕고 적게 나다니며, 마음을 고요히 살펴서 흐트러짐이 없고, 걸을 때는 느리고 편하게 발을 내딛으면서 편안한 눈길로 주변을 바라본다.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은 옷가지가 청결하여 때가 묻지 않고, 범부에게 있는 80종류의 벌레도 없다. 왜냐하면 이 보살이 공덕을 점점 불리어 가득 채우고자 할 때, 더없이 청정한 마음으로 이것을 모두 얻어서 세간의 공덕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보살의 마음이 청정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이 보살이 지은 공덕이 점차 불어나면 그 마음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서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로우며, 마침내 모든 공덕을 얻게 되면 마음이 더없이 청정해져서 아라한과 벽지불의 지위를 벗어나게 된다.
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은 공양을 올리고자 해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일에도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을 즐기며, 이 깊은 경전을 들을 때 한번도 이것을 싫어한 적이 없고 바로 그 지혜 안에 머물러 깊이 들어간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혹시 다른 곳에서 이 깊은 경전을 묻는 사람이 있으면 이들을 위해 반야바라밀을 설해주고 다른 가르침에 빠져 바르게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깊은 반야바라밀로 바르게 이끌어주니 이 경전에서 한결같이 말하는 무상(無常)의 가르침을 전해주며 세상의 여러 가지 경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깊은 반야바라밀로 바르게 풀이해준다.

보리여, 이러한 까닭에 설령 악마가 이 보살에게 찾아와서 요술로 여덟 곳의 큰 니리(泥犁：지옥)를 꾸며 놓고, 다시 각각의 니리마다 백천만억의 보살들을 만들어 놓은 다음 이것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이 보살들은 모두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들로서 부처님으로부터 성불(成佛)하리라는 예언을 받고 지금은 모두 니리(지옥)에 떨어졌으니 부처가 준 것은 단지 니리뿐이다. 만약에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 장차 부처가 되리라는 예언을 받은 보살이 스스로 후회하면서 나는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이 보살은 다시는 니리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하늘 나라에 태어날 것이다’ 라고 하더라도 이 보살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약에 악마가 다시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다고 하는 보살에게 찾아와서 요술로 그 스승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속여 말하기를 ‘나는 전에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이제 이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 이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다. 만약에 스스로 뉘우쳐서 나의 말을 따른다면 나는 매일 찾아와서 그대와 함께 묻고 답하겠지만 나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다시는 그대를 만나러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누가 뭐래도 반야바라밀을 다시 듣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결코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고 외도의 가르침일 뿐이다. 그대는 이제 다시 나의 말을 따라야 하니 나의 말만이 부처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라고 할 때 이 보살의 마음이 흔들린다면 이 보살은 과거의 부처님에게서 장차 부처가 되리라는 예언을 받지 못하고 아직도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다.
수보리여, 반대로 이러한 말을 듣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이 보살은 이 깊은 경전에서 공(空)의 이치를 깨닫고 마음속으로 이를 되새겨서 끝내 다른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이것은 마치 아라한의 가르침을 깨달은 비구가 다시는 다른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고 모든 것을 경전에 비추어 스스로 깨닫는 것과 같으니 이 보살이 이렇게 하여 공(空)의 이치를 얻으면 끝내 흔들리지 않는다.

수보리여, 이와 같이 보살이 아라한과 벽지불의 도를 염두에 두고 있으면 끝내 악마에게 붙잡히는 일이 없으니 이 보살은 아유월치의 지위에 머물러서 바로 불문(佛門)을 향해 나아가니 다시는 이로부터 물러서는 일이 없다.
수보리여, 비교해서 이와 같은 모양이거든 반드시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인 줄 알아야 한다.
또 수보리여, 만약 악마가 다시 요술을 부려 이상한 사람으로 변장하고 어떤 보살에게 와서 말하기를 ‘그대가 구하고자 하는 것은 힘들고 괴로울 뿐이니 이제 그만 불법을 구하도록 하라. 설령 공(空)하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짐이 되면 힘들고 괴로우며 구하는 것도 힘들고 괴롭다. 그대가 악도(惡道)에 빠져 헤맨 지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 비로소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그대가 반야바라밀이니 공(空)이니 하는 것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는 것은 온당치 않으며 스스로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그대가 다시 어느 곳에서 이 육신을 얻을 것이며 왜 서둘러서 아라한의 가르침을 얻으려 하지 않는가？’ 라고 말하더라도 이 보살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수보리여, 비교해서 이와 같은 모양이거든 반드시 물러남이 없는 지위에 있는 보살인 줄 알아야 한다.
또 수보리여, 악마가 이 보살을 이길 수가 없어서 떠나갔다가 다시 방편을 부려 요술로 많은 보살을 만들어 내어 그 주변에 머물게 하고 이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그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이 보살들은 모두 항하의 모래알처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세월동안 옷가지와 음식과 침구와 의약품으로 항하의 모래알처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부처님을 공양하면서 불법을 닦고 지혜를 물었으니 이를 행함에 법답게 머무르고 법답게 구했다. 그러나 모두 이와 같이 배우고 이와 같이 받아들이고 이와 같이 행했지만 아직도 부처가 되지 못하고 겨우 이 정도이니 ‘이제 그대가 어찌 불법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더라도 이 보살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수보리여, 여기에서 악마는 조금 물러섰다가 다시 요술로 비구들을 만들어 놓고 이들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이들은 모두 아라한으로서 과거세부터 이미 보살도를 구했지만 불법을 얻지 못하고,
이제 겨우 아라한에 올랐을 뿐이니 이제 그대가 어찌 불법을 얻을 수 있겠는가？’ 라고 하더라도 이 보살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고 이것이 악마의 장난임을 알아차린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이와 같이 배우고 이와 같이 받아들이고 이와 같이 행하면서 깊은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며 마음에 흔들림이 없으니 이와 같이 비교해서 모양과 행동에 갖추어 만족하거든 반드시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인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이와 같이 배우고 이와 같이 구하고 이와 같이 가르침을 보호해서 불법을 받아들여 마음 깊이 새겨두니, 혹시 다른 곳에 가서 악마의 이러한 말을 듣더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마음이 떠나지 않고 이것이 악마의 장난임을 알아차린다.
수보리여, 보살이 설령 이와 같이 배워서 불법을 얻지 못하더라도 부처님의 말씀은 반드시 특별함이 있고 부처님의 말씀은 속이는 법이 없다.
수보리여, 악마가 다시 보살에게 와서 말하기를 ‘불법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이 경전의 끝과 폭은 얻을 수 없고 그 바닥도 알 수가 없다. 내가 이 경전을 통하여 알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것뿐이다. 이 고통과 괴로움은 그대가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지 이것을 악마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이 경전은 정작 악마가 지은 것이니 어찌 이로부터 불법을 구할 수 있겠느냐？’ 라고 하더라도 이 보살은 곧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고 악마의 장난임을 알아차린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제1의 선정과 제2의 선정과 제3의 선정과 제4의 선정에 들어 삼매를 얻지만 정작 제4의 선정에 머무르지 않고, 이것을 뛰어넘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르고자 하니 이 보살은 끝내 선정의 가르침에 빠지는 일이 없어서 그 공덕이 선정을 훨씬 뛰어넘는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한다고 기뻐하지도 않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슬퍼하지도 않아서 마음이 끝내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 보살은 항상 세상 사람들이 무고하기만을 염원하고 나가고 들어가고 걷고 앉고 일어설 때마다 항상 마음을 단정히 하고 뜻을 바르게 갖는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음심(婬心)이 거의 없어서 혹시 속가에서 여자를 마주하더라도 즐거워하지 않고 늘 조심하는 마음을 품으니 여자와 관계하는 것은 냄새나고 깨끗하지 않은 이슬방울과 같아서 나의 법에 어긋나며 나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결코 이러한 것을 가까이 하지 않고 반드시 이로부터 벗어나려고 생각한다.
수보리여, 비유하자면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넓고 황량한 벌판을 지날 때 무서운 도둑을 만나면 ‘나는 언제나 이 험한 길에서 벗어날까？’ 하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니 이 보살은 이와 같이 넓고 황량한 벌판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음심을 멀리 떨쳐버린다.
또 수보리여, 이 보살은 결코 다른 사람을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간의 모든 중생들을 평안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이와 같이 이 보살은 복과 덕에 모자람이 없으니 이것은 모두 깊은 반야바라밀의 위신력 덕분이다.
또 수보리여, 이 보살은 화이라원(和夷羅洹：금강저)을 든 귀신들이 따라다니면서 보호해주니 이 보살은 끝내 바른 뜻을 잃지 않고 마음에 망령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며 신체가 완전하여 아무런 질병도 없고 더없이 용맹하며 다른 여자들을 유혹하지도 않는다. 설령 이 보살이 푸닥거리와 부적과 주문을 즐겨 행하더라도 이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 남이 하는 것을 보더라도 기뻐하지 않고 여자를 낳을 것인 지 남자를 낳을 것인 지도 말하지 않으니 결코 법에 어긋나는 것은 설하지 않는다.
수보리여, 이와 같이 비교해서 이와 같은 모양이거든 반드시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인 줄 알아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무슨 까닭에 이 보살은 반드시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이라고 부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국왕과 세속과 성읍과 마을과 사람들의 모임에 관한 일에도 간섭하지 않고 도적과 군대와 무기에 관한 일에도 간섭하지 않고 남자를 낳을 지 여자를 낳을 지 점치는 일에도 간섭하지 않고, 다른 가르침을 좇는 무리들이 여러 귀신들에게 술과 고기와 곡식으로 제사를 올리는 일에도 간섭하지 않고 여러 가지 향과 비단 등을 팔아 이익을 얻기를 즐기는 일에도 간섭하지 않고,
바다에 관한 갖가지 일에도 간섭하지 않고 악한 성품을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싸우기를 좋아하는 일에도 간섭하지 않고 오직 깊은 반야바라밀에 관한 일에만 관여하여 끝내 살운야를 여의지 않는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헛되이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행동이 늘 바르며 밖으로 나다니지 않을 때는 항상 현명하고 선량한 보살들을 칭송하며 늘 훌륭한 스승을 따르고 악한 스승을 따르지 않으며 언제나 불법을 구하여 죽어서도 다른 부처님의 나라에 태어나 부처님을 직접 뵙고 공양을 올리게 되기를 원한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를 윤회하다가 인도의 중심지에 태어나니 언제나 밝은 지혜를 가진 훌륭한 사람들 사이에 태어나고 말씨가 뛰어나고 경전을 잘 아는 가문에 태어나서 세속의 일을 예언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사는 동안 법을 어기지 않으며 항상 큰 나라에 태어나고 변방에는 태어나지 않는다.
수보리여, 이러한 까닭에 이 보살을 가리켜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이라고 한다.
또 수보리여, 이 보살은 끝내 자신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이라고 말하지도 않고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이 아니라고 말하지도 않고 자신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임을 의심하지도 않고 자신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수보리여, 비유하자면 이것은 마치 수다원의 가르침을 깨달은 이가 이것을 악마의 장난이라고 의심하지 않기에 혹시 그러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를 바로 알아차리는 것과 같으니, 이 보살은 설령 악마가 다가오더라도 이것을 따르지 않고 아유월치의 지위에 머물러서 이를 의심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는다.
수보리여, 비유하자면 이것은 마치 다섯 가지 큰 죄를 지은 어떤 사람이 죽을 때까지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설령 이 사람으로 하여금 착한 일만을 생각하고 악한 일은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더라도 이 사람의 죄책감은 죽을 때까지 떨쳐버릴 수가 없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항상 아유월치의 지위에 머무르는 까닭에 아무도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아무도 그 마음을 뒤집을 수 없으며 스스로 도를 닦으면서 끝내 아라한과 벽지불이 없다고 의심하지 않고 불법은 얻기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보리여, 이 보살의 마음은 그 크기가 끝이 없어서 아유월치의 지위에 평안하고 견고하게 머무르니 아무도 이 보살을 항복시킬 수 없고 아무도 그 지혜보다 뛰어날 수 없다. 이러한 까닭에 악마는 분을 못 참고 ‘이 보살은 강철과 같아서 뒤집어 놓을 수가 없다’ 라고 말한다.
수보리여, 여기에서 다시 악마가 요술을 부려 부처님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보살에게 와서 말하기를 ‘그대는 왜 아라한의 가르침을 얻지 않는가？ 그대는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으리라는 예언을 아직 받지 못했으니 여기에 견주어 볼 만한 점도 없고 그러한 모양도 없다. 보살이 이와 같이 비교하여 이와 같은 모양이거든 아직 불법을 얻을 수 없으니 그대가 어찌 이것을 얻으려 하는가？’ 라고 하더라도 이 보살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다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약에 어떤 보살이 악마로부터 이러한 말을 듣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이 보살은 과거세에 달살아갈로부터 이미 부처님이 되리라는 예언을 받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은 까닭에 지금 악마가 부처님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나타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것은 부처님이 아니고 악마이다. 나의 마음을 되돌리고자 하지만 나의 마음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라고 생각한다.
수보리여, 이 보살의 마음은 결코 흔들리지 않으니 이 보살은 과거세에 달살아갈로부터 이미 부처가 되리라는 예언을 받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비교하여 이와 같이 모양과 행동에 모자람이 없기 때문이니 이야말로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인 줄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모든 법을 얻어서 그 행동이 바르다. 이 보살은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법을 얻고 이것을 수호한다. 이러한 까닭에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으며 이것을 싫어하지도 않으니 달살아갈과 그 제자들이 이 경전을 설할 때 끝내 이를 의심하지 않고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말하지도 않으며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도 끝내 의심하지 않고 이것은 깊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이 보살은 이렇게 하여 마침내 어떤 것에도 의지하여 생겨나지 않는 가르침을 얻고 즐거움 가운데에 서며 모자람이 없는 공덕을 쌓으니 이와 같이 비교하여 이와 같이 모양과 행동에 모자람이 없는 까닭에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이라고 한다.”

16. 달갈우바이품(怛竭優婆夷品)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은 큰 공덕을 바탕으로 일어나서 항상 보살들을 위해 이 깊은 가르침을 설하여 여기에 깊이 들어가도록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옳고도 옳은 말이다. 수보리여, 그런데 보살들로 하여금 깊이 들어가도록 한다고 하니 어떤 것을 깊다고 하느냐？
수보리여, 깊다는 것은 곧 공(空)을 말함이고 분별과 바람이 없는 것이고 정신 작용이 없음이고 의지하여 생겨나거나 멸하는 것이 없다. 없음이 마침내 니원(泥洹：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니원만이 깊고 다른 모든 대상은 그렇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모든 대상이 깊으니 색(色)도 깊고 통상(痛庠：受)과 사상(思想：想)과 생사(生死：行)와 식(識)도 깊다. 무슨 까닭에 색과 통상과 사상과 생사와 식을 깊다고 하겠느냐？
어떤 것도 본래 없기 때문이니 색도 본래 없고 통상과 사상과 생사와 식도 본래 없다. 이러한 까닭에 깊다고 한다.”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참으로 어렵습니다. 색과 통상과 사상과 생사와 식을 떨쳐버린 것이 곧 니원이라니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보살은 이 깊은 반야바라밀에 대하여 반드시 반야바라밀이 가르치는 대로 배우고 머무르리라고 생각해야 하니 만약에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생각하여 하루동안이라도 남을 가르치고 자신도 그렇게 행한다면 이 보살은 여러 겁(劫) 동안 계속 나고 죽는 일에서 벗어난다.
수보리여, 비유하자면 이것은 마치 음욕이 강한 어떤 사람이 아주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기로 한 것과 같으니 이 여인이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제때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이 사람이 이 여자를 간절히 생각하겠느냐, 생각하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그 사람은 이 여인이 와서 서로 보며 앉고 일어서고 잠자면서 이야기하기를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이 사람은 이 여인이 도착할 때까지 얼마만큼 이 여인을 생각하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이 사람은 아주 많이 생각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보살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만약에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생각하면서 하루동안이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이 보살은 여러 겁 동안 계속 나고 죽는 일에서 벗어나며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면서 그 가르침과 말씀을 이와 같이 생각하여 하루라도 그대로 따라 행한다면 모든 죄업이 없어진다.
또 수보리여, 만약에 어떤 보살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읜다면 설령 항하(恒河)의 모래알처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세월동안 보시를 행하더라도 어떤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따르면서 하루동안 쌓은 공덕이 훨씬 더 크다.
또 수보리여, 만약 항하의 모래알처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명을 가진 어떤 보살이 지금까지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 벽지불과 부처님께 보시한 것을 모두 합하더라도 정작 깊은 반야바라밀을 얻지 못하면 어떤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따르면서 그 가르침과 말씀을 생각하여 하루라도 그대로 따라 행하는 공덕이 훨씬 더 크다.
또 수보리여, 만약에 항하의 모래알처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명을 가진 어떤 보살이 지금까지 계율을 지키면서 보시를 행해온 것을 모두 합하더라도 정작 반야바라밀을 얻지 못하면 어떤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구하면서 단 하루만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 경전을 설해주는 공덕이 훨씬 더 크다.
또 수보리여, 만약에 어떤 보살이 이 경전을 보시하면 그 공덕으로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지만 이 보살이 경전을 보시하면서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다면 그 공덕이 훨씬 더 크다.
또 수보리여, 어떤 보살은 이 경전을 보시하면서 정작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아 공덕이 보잘것없지만 어떤 보살이 이 경전을 보시하면서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 언제라도 여의지 않으면
이 보살은 반야바라밀의 보호를 받아 그 공덕이 아주 크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보살이 통상과 사상과 생사와 인식함을 일으킨다면 이 역시 집착이니, 보살이 정작 큰 공덕을 얻는 것은 어떤 까닭에서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비록 보살이 통상과 사상과 생사와 인식함을 일으키더라도 다행히 깊은 반야바라밀을 얻으면 공(空)을 즐기고, 있는 것이 없음을 즐기고, 다함을 즐기고, 무상함을 즐기게 되니, 보살이 이와 같이 염두에 두고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는다면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阿僧祇)의 공덕이 있다.”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헤아릴 수 없다는 말과 아승기라는 말은 어떻게 다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아승기란 그 수가 끝이 없는 것이고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한량없어서 끝내 알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까닭에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라고 한다.”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의 말씀도 헤아릴 수 없고 색과 통상과 사상과 생사와 인식함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떤 까닭에 부처님의 말씀도 헤아릴 수 없고 한량없으며 색과 통상과 사상과 생사와 인식함도 헤아릴 수 없고 한량없다고 말하느냐？”
수보리가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한량없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허공 안에서 이것을 헤아리는 것을 한량없다고 하니 아무런 분별도 없고 바람도 없이 이것을 헤아리기에 이와 같이 한량없다.”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허공을 헤아리는 것만을 한량없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내가 늘 모든 대상이 공(空)하다고 하지 않더냐？”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달살아갈께서는 모든 것이 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모든 대상은 공하여 다함이 없고 헤아릴 수 없다. 이러한 까닭에 이 경전에는 처음부터 각각 다른 지혜가 있지 않으니 단지 달살아갈께서 따로 분별하여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해 놓으셨을 뿐이다.
수보리여, 공은 다함이 없는 것이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고 분별이 없는 것이고 바람이 없는 것이고 정신 작용이 없는 것이고 생겨남이 없는 것이고 욕심이 없는 것이고 멸함이 없는 것이며 곧 니원이다. 달살아갈은 기꺼이 이와 같이 설하고 이와 같이 보여주고 이와 같이 가르친다.
달살아갈이 설하는 것은 이와 같다.”
수보리가 말했다.
“천중천이시여,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 경전에는 오직 공만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부처님이시여, 그런데 공 안에서 어떻게 이 경전을 설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 경전은 미칠 수 없으니, 제가 알기로는 어떤 대상도 미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옳고도 옳은 말이다. 어떤 대상도 미칠 수 없고 오직 공할 뿐이니 이것은 미칠 수 없다.”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본래 없는 것은 결코 미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미칠 수 없는 지혜는 불어나거나 줄어드는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없다.”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실제로 이 미칠 수 없는 지혜가 불어나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다면 단바라밀(보시바라밀)과 시바라밀(지계바라밀)과 찬제바라밀(인욕바라밀)과 유체바라밀(정진바라밀)과 선바라밀(선정바라밀)과 반야바라밀도 불어나거나 줄어들지 않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만약에 바라밀이 불어나지 않는다면 보살은 정작 무엇을 바탕으로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겠으며, 무엇에 의지하여 아유삼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또 부처님이시여, 만약에 바라밀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보살은 정작 무엇을 바탕으로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겠으며, 무엇에 의지하여 아유삼불의 자리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이것은 미칠 수 없으며 불어나거나 줄어들지도 않으니 만약에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구하고 이것을 잘 지켜서 구화구사라를 얻게 되면 예를 들어 ‘단바라밀은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고 단지 그 이름이 단바라밀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생각하여 쌓은 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데에 바친다.
수보리여, 시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유체바라밀과 선바라밀도 보시바라밀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니 만약에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구하고 이것을 잘 지켜서 구화구사라를 얻게 되면 반야바라밀은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고
단지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생각하여 쌓은 공덕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데에 바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어떤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본래 없는 것이니 이것은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항상 마음속에 두고 여의지 않으면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까워진다. 어떤 법도 미칠 수 없고 어떤 지혜로도 미칠 수 없으니 설령 반야바라밀이 불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더라도 보살이 이것을 염두에 두고 멀리 여의지 않으면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까워진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보살은 앞의 마음으로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까이 다가섭니까, 뒤의 마음으로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까이 다가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앞의 마음이라느니 뒤의 마음이라느니 하는 말은 서로 맞서지 않는다.”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앞의 마음이라느니 뒤의 마음이라느니 하는 말이 서로 맞서지 않는다면 어떻게 공덕이 생겨나거나 불어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비유하자면 이것은 마치 등불이 타오르는 것과 같으니 수보리 그대 생각에 앞의 불꽃이 심지를 타오르게 하겠느냐, 뒤의 불꽃이 심지를 타오르게 하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앞의 불꽃이 심지를 타오르게 하는 것도 아니지만 정작 앞의 불꽃을 여의면 심지는 타오르지 않으며, 뒤의 불꽃이 심지를 타오르게 하는 것도 아니지만 정작 뒤의 불꽃을 여의면 심지는 타오르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물었다.
“수보리여, 그렇겠느냐, 그렇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천중천이시여, 그럴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보살은 앞의 마음으로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수 없지만 정작 앞의 마음을 여의어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수 없으며, 또 보살은 뒤의 마음으로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수 없지만 정작 뒤의 마음을 여의어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수 없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째서 아유삼불을 얻지 못하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아유삼불을 가져다 주는 인연은 참으로 깊어서 보살은 처음의 마음으로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수 없지만 정작 처음의 마음을 여의어도 이를 얻을 수 없습니다. 뒤의 마음으로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수 없지만 정작 뒤의 마음을 여의어도 이를 얻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약 앞의 마음이 멸하였다면 그대 생각에 뒤의 마음이 생겨나겠느냐, 생겨나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생겨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약 마음이 생겨난다면 그대 생각엔 이것은 모양이 멸한 것이겠느냐, 아니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이것은 모양이 멸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에 이렇게 모양이 멸한 대상은 멸하겠느냐, 멸하지 않겠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멸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에 본래 없는 것은 그 모양대로 머무르겠느냐, 머무르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원래 없는 것은 그 모양대로 머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약에 본래 없는 것이 그 모양대로 머무른다면 곧 항상 됨에 집착한다는 말이냐？”
수보리가 말했다.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에 본래 없는 것은 마음이 있겠느냐, 없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에 본래 없는 것을 여의면 마음이 있겠느냐, 없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없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대는 본래 없는 것을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보지 못합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약에 이와 같이 구한다면 그대 생각엔 이것은 깊이 구하는 것이겠느냐, 아니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만약에 이와 같이 구한다면 곧 구함이 없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법은 끝내 붙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은 무엇을 구하기 위해서이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공(空)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약에 공(空)이 아니라면 다시 무엇을 구하기 위해서이겠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모양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엔 보살은 모든 모양을 버리겠느냐, 버리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렇다면 그대 생각엔 보살은 어떻게 모양을 버리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보살은 어떤 모양도 버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양이 다한 것을 구하거나 모양이 멸한 것을 구하면 불법을 성취하지 못하고 문득 아라한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보살은 구화구사라에 의해 어떤 모양도 버리지 않고 깨달음을 얻되 끝내 모양이 없음을 향함으로써 이 가르침을 어기지 않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수보리여, 만약에 보살이 세 가지 삼매문인 공(空)과 어떤 모양도 없음[無有相]과 어떤 바람도 없음[無有願]을 지킨다면 반야바라밀에 이익이 있으니, 낮뿐만 아니라 밤에 꿈속에서라도 그렇게 하면 이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낮의 일과 꿈속의 일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사리불이여, 만약 낮에도 그렇게 반야바라밀에 이익이 있다면 꿈속에서도 반드시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수보리여, 꿈속에서 지은 일에도 과연 과보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정작 모든 것이 꿈과 같다고 하셨으니 말입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사리불이여, 만약 꿈속에서 착한 일을 행하면 즐거움과 함께 이익이 있겠지만 반대로 악한 일을 행하면 기쁨이 줄어들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수보리여, 만약에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고 문득 깨어나서 ‘잘 죽였다’ 라고 말한다면 그 과보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사리불이여, 인연이 있으면 마음을 비울 수 없고 마음을 비울 수 없으면 다시 인연을 짓게 됩니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을 인연이라 하고 이로부터 모든 대상을 분별하게 되니 사람들이 대상에 집착하거나 대상을 여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합니다. 사리불이여, 대상을 여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다시 인연으로 작용합니다.”
사리불이 물었다.
“수보리여, 모든 행(行)이 공(空)하거늘 무슨 까닭에 다시 마음이 인연을 짓겠습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사리불이여, 분별에 의해 인연이 생겨나니 이러한 까닭에 마음이 인연을 짓는다고 합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수보리여, 만약에 보살이 꿈속에서 보시를 베풀고 이와 더불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고자 한다면 과연 여기에 보시의 공덕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사리불이여, 머지않아 부처님이 되리라는 예언을 받은 미륵보살이 바로 앞에 계시니 이를 여쭙는다면 곧 답을 주실 것입니다.”
사리불이 미륵보살에게 말했다.
“수보리의 말이 ‘이 일은 미륵보살께서 답을 주실 것입니다’ 라고 합니다.”
미륵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했다.
“사리불이여, 만약 미륵보살이 대답을 한다면 미륵이라는 그 이름이 대답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색이 대답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통상과 사상과 생사와 인식함이 대답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육신이 대답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만약에 색이나 통상과 사상과 생사와 인식함이 대답하는 것이라면 색과 통상과 사상과 생사와 인식함은 허공과 같아서 아무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 법에 대한 답을 보지도 않고, 이 법에 대해 답하는 이도 보지 않으니 이 법은 끝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것을 보지 않습니다.”
사리불이 미륵보살에게 말했다.
“보살께서 설하신 것은 법의 깨달음에서 오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미륵보살이 말했다.
“내가 말한 것은 법의 깨달음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사리불은 문득 마음속으로 ‘미륵보살의 지혜는 아주 깊구나. 오랫동안 반야바라밀을 닦아온 덕분일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물었다.
“사리불이여, 그대는 이 법을 보고 아라한과를 얻겠느냐, 얻지 못하겠느냐？”
사리불이 말했다.
“얻지 못하겠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보살도 이와 마찬가지이니 보살은 마음속으로 ‘나는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으리라는 예언을 받을 것이다’ 라거나 ‘이 법 안에서 반드시 아유삼불을 얻을 것이다’ 라거나 또한 ‘얻지 못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반야바라밀을 얻으면 끝내 아유삼불을 얻지 못할까 두려워하지 않으며 또 이 법의 가르침을 따라 반야바라밀을 얻으면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어서 설령 호랑이와 이리가 들끓는 무서운 곳에 가더라도 끝내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살은 으레 마음속으로 설령 내가 사나운 짐승들에게 잡혀 먹히더라도, 이것은 단바라밀을 성취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까이 다가선 것이니 이 다음에 내가 부처가 되면 부디 세상에서 축생의 고통이 모두 사라지기 바란다고 기원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보살은 설령 무서운 도적들 가운데에 있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살은 으레 마음속으로 설령 도적들이 나의 목숨을 빼앗고자 해도 내가 이에 대해 성내지 않고 참으면 곧 인욕행인 찬제바라밀을 성취하여 아유삼불에 가까이 다가선 것이니, 이 다음에 내가 부처가 되면 세상에서 무서운 도적들이 모두 사라지기 바란다고 기원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보살은 설령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곳에 있더라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살은 으레 마음속으로 혹시 중생들이 복덕이 없는 까닭에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곳에 처하더라도 이 다음에 내가 아유삼불을 얻은 뒤로 내가 사는 국토에 물이 생겨나 모든 사람들이 여덟 가지 맛을 지닌 살운야의 물을 얻을 수 있기 바란다고 기원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보살은 설령 먹을 곡식이 귀할 때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살은 으레 마음속으로 ‘내가 반드시 정진하여 아유삼불을 얻게 되면 내가 사는 국토는 먹을 곡식이 모자라는 일이 없어서 마치 도리천에서 그러한 것처럼 마음만 먹으면 모든 음식이 바로 앞에 놓일 수 있기 바란다’고 기원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보살은 설령 병이 들끓는 곳에 있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살은 으레 마음속으로 ‘설령 이 가운데에서 내가 죽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으니 내가 반드시 이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여 아유삼불을 얻게 되면 내가 사는 국토는 나쁜 질병은 모두 사라지고 악마의 부하들도 모두 항복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은 설령 까마득히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을 얻어서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살은 으레 세상이 시작되고 불법을 배우고자 마음을 낸 이래 별로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니 비유하자면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생각을 한 번 바꾸는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은 시작된 때가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설하실 때 우바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린 다음에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이 일을 듣고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반드시 두려움의 근원을 항복 받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여 아유삼불을 얻은 다음 중생들을 위해 이 경을 널리 설하겠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니 그 입 안에서 금색 광명이 쏟아져 나왔다. 그 우바이가 금색 꽃을 부처님 머리 위에 흩뿌리자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꽃이 땅바닥에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팔의 옷자락을 걷어올린 다음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한 채 부처님을 향하여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어떤 부처님도 부질없이 미소를 짓지는 않으셨으며 미소를 보이신 뒤에는 반드시 법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달갈(怛竭)이라는 이름의 이 우바이는 장차 성수겁(星宿劫) 때에 이르러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니 이름은 금화불(金華佛)이다. 그때 이 우바이는 여자의 몸을 버리고 남자의 몸을 얻어 아촉불(阿閦佛)의 국토에 태어날 것이며 그곳에서 목숨이 다하면 한 부처님의 국토에서 다시 다른 부처님의 국토에 태어나기를 한없이 되풀이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것은 차가월왕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유람을 다니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땅에 발을 딛지 않는 것과 같다.
아난아, 이 우바이도 그러해서 한 부처님의 국토에서 다른 부처님의 국토에 이를 때마다 부처님을 뵙지 못하는 일이 없다.”
그때 아난은 마음속으로 장차 아촉불의 나라에서 이 보살을 따르는 무리들은 마치 부처님을 따르는 무리와 같겠구나, 라고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바로 아난의 마음을 꿰뚫어 아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아촉불의 나라에서 이 보살을 따르는 무리들은 모두 삶과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난다.
아난아, 이 우바이(優婆夷)가 금화불(金華佛)을 이루면 성문으로써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는 이가 이루 헤아릴 수 없고, 그 국토는 사나운 짐승과 도적을 만나는 재난이 없으며, 또한 물이 말라붙거나 먹을 곡식이 다하거나 질병에 걸리거나 그 밖의 어떤 나쁜 일도 없을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우바이는 처음에 어떤 부처님께 공덕을 쌓았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 우바이는 처음에 제화갈라불(提和竭羅佛：연등불)께 공덕을 쌓고 비로소 불법을 구하려는 마음을 내었으니 지금 내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제화갈라불의 머리 위에 금빛 꽃을 흩뿌리고 나서 부처님께 기원의 말씀을 올리기를 ‘이 공덕으로 부디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도록 해주소서’라고 하였다.”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당시 나는 다섯 송이의 꽃을 제화갈라불의 머리 위에 흩뿌려 공양하고 즉시 어떤 것에도 의지하여 생겨남이 없는 법락(法樂)을 얻었으며, 장차 헤아릴 수 없는 겁(劫)이 지난 뒤에 석가모니부처가 되리라는 예언을 받았다. 이 우바이는 마침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예언을 받는 것을 보고 자신도 반드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으리라는 예언을 받으리라고 기원하였던 것이니
이제 비로소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으리라는 예언을 받은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아난아, 이 달갈이라는 우바이는 처음에 제화갈라불의 처소에서 공덕을 쌓고 비로소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을 구하리라는 마음을 내었다.”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이 달갈이라는 우바이는 원하던 대로 이미 제도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아난아, 이 달갈이라는 우바이는 이미 제도되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