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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182 불교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20권

by Kay/케이 2024.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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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20

 

 

마하반야바라밀경 제20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최봉수 번역
김형준 개역


66. 누교품(累敎品)거란본에는 촉루품(囑累品)으로 되어 있음

그때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의 그와 같은 말과 그와 같은 대답은 법을 따르는 것인지요? 바른 대답인지요?”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여, 그대가 설한 대답은 실로 모두가 법을 따르느니라.”
석제환인이 말씀드렸다.
“희유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가 즐겨 설하는 것은 모두 공으로 행위한 것이고 무상으로 행위한 것이며, 무작으로 행위한 것이고 4념처로 행위한 것이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행위한 것이 됩니다.”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수보리 비구가 공을 행할 때는 단나바라밀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단나바라밀을 행하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내지 반야바라밀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4념처를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4념처를 닦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내지 8성도분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8성도분을 닦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선(禪)과 해탈과 삼매와 정(定)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선과 해탈과 삼매와 정을 닦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부처님의 10력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부처님의 10력을 닦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4무소외를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4무소외를 일으키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4무애지를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4무애지를 닦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대자와 대비를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대자와 대비를 닦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18불공법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18불공법을 일으키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일체종지를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일체종지를 얻을 수 있겠느냐? 여래를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여래가 되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무생법(無生法)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무생법을 얻어서 증득하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32상을 얻을 수 없는데 어찌 하물며 32상을 얻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80수형호(隨形好)를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80수형호를 얻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왜냐하면 교시가여, 비구 수보리는 온갖 법이 떠남을 행하고 온갖 법이 얻을 수가 없음을 행하며, 온갖 법이 공을 행하고 온갖 법이 무상을 행하고 온갖 법이 무작을 행하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이것을 수보리 비구가 행하는 것이라 하지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에 비교하고자 하면, 백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 또는 천만억분 내지 산수나 비유로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부처님의 행을 제외하고는 보살마하살이 행하는 반야바라밀이야말로 성문이나 벽지불의 모든 행 가운데서 가장 존귀하고 가장 묘하고 가장 높기 때문이니라.
그러한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일체 중생들 가운데서 가장 높이 되고자 하면 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하느니라. 왜냐하면 교시가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지나서 보살의 지위에 들어 능히 부처님의 법을 구족하고 일체지를 얻고 일체 번뇌의 습기를 끊어서 부처님이 되기 때문이니라.”
이때 회중에 있던 모든 삼십삼천이 천상의 만다라화(曼陀羅華)를 가지고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흩뿌렸다.
이때 8백 명의 비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꽃을 가지고 부처님께 흩뿌리고는
오른 무릎을 꿇어 땅에 대고는 합장한 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행으로는 미칠 수 없는 위없는 행을 반드시 행하겠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이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아시고 곧 미소를 머금으셨다. 모든 부처님의 법과 같이 가지가지 색깔의 광명인 푸르고 노랗고 붉고 희고 빨간 표식이 입 속에서 나와 널리 삼천대천국토를 비추고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는 다시 머리로 들어갔다.
그때 아난이 오른쪽 어깨에 옷을 벗어 메고 오른 무릎을 꿇어 땅에 대고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께서는 까닭 없이 미소를 머금지 않으시는데, 무슨 까닭으로 미소 지으시는지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8백 명의 비구들은 성숙겁(星宿劫) 가운데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니, 모두가 부처님의 명호를 동일하게 산화(散華)라고 하리라. 비구들의 국토와 수명도 모두 같고 각각 10만 세가 지나 출가하여 부처님이 되리라. 이때 모든 국토에는 다섯 가지 색깔의 하늘 꽃이 내릴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아난아, 보살마하살이 최상의 행을 행하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이 보살은 인간으로 있다가 죽어서 이 세간에 태어났거나 혹은 도솔천 위에서 죽어 이 세간에 태어난 것이니라. 그리고 인간으로 있었거나 혹은 도솔천 위에 있었을 때에, 널리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아난아, 나는 이 보살마하살이 능히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보느니라.
아난아, 만약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듣고서 수지(受持)하고 독송하고 가까이하고 바르게 억념하거나 더하여 다시 반야바라밀로써 보살도를 행하는 것을 가르친다고 하면, 이 보살은 면전에서 부처님을 따라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듣고, 나아가 가까이하였고, 또한 모든 부처님을 따라서 선근을 심었다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 선남자ㆍ선여인은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우리들은 성문에게 선근을 심은 것이 아니고 또한 성문을 따라서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들은 것이 아니다.
아난아, 만약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수지하고 독송하며 가까이하고 이치에 따르고 법에 따라서 행하면,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곧 면전에서 부처님을 뵙게 된다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아난아, 만약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듣고 믿는 마음이 청정하여 무너지지 않으면,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일찍이 부처님께 공양하여 선근을 심었고 선지식과 만났다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아난아, 모든 부처님의 복전에 선근을 심으면 허광(虛誑)하지 않아 틀림없이 성문이나 벽지불을 얻지만 그러나 비록 해탈을 얻는다고 해도 반야바라밀을 깊이 요달해 마치고, 나아가 일체종지를 행해야 하느니라. 아난아, 만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깊이 요달해 마치고, 나아가 일체종지를 행해도, 이 사람이 성문이나 벽지불에 머물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는 그러한 경우는 있을 수 없느니라.
그러한 까닭에 아난아, 나는 반야바라밀을 너에게 부촉하고 당부하노니, 그대가 만약 온갖 법을 받아 지님에 있어서 반야바라밀을 제외하고는 잊어버리거나 혹은 잃어버리더라도 그 죄가 적어서 큰 죄가 되지 않지만 아난아, 그대가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녀서 만일 한 구절이라도 잊어버린다면 그 죄는 매우 큰 것이다. 아난아, 그대가 만약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녀서 도리어 망실하면 그 죄는 매우 많은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아난아, 나는 너에게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부촉하고 당부하니, 그대가 잘
수지하고 독송하여 이롭게 해야 하느니라.
아난아, 만약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수지하면 곧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수지하는 것이 되느니라. 아난다,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현재 나를 꽃향ㆍ장신구ㆍ바르는 향ㆍ향수ㆍ의복ㆍ깃발 그리고 일산을 가지고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며 찬탄하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수지하고 독송하며 설하고 가까이하며 꽃향 내지 깃발과 일산을 가지고 공양하며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해야 하느니라. 아난아, 반야바라밀을 공양하면 바로 나를 공양하고, 또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여 마치는 것이 되느니라.
만약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이 설해지는 것을 듣고서 신심(信心)이 청정하여져서 공경하고 즐겨 사랑한다면, 그것은 심신이 청정하여져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즐겨 사랑하여 마치는 것이 되느니라.
아난아, 그대가 부처님을 즐겨 사랑하며 떠나지 않으려면 반야바라밀을 즐겨 사랑하여 떠나지 말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심오한 반야바라밀은 한 구절이라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내가 부촉하여 당부하는 이유를 더 많이 설할 수 있지만 지금은 단지 간략하게 설할 뿐이니라. 내가 세존인 것처럼 반야바라밀도 또한 세존이니라. 그러한 까닭에 아난아, 모든 인연으로써 너에게 반야바라밀을 부촉하여 당부하느니라.
아난아, 내가 이제 일체 세간의 하늘ㆍ인간ㆍ아수라 가운데서 너에게 부촉하여 당부하노니, 모든 부처님을 버리지 않고 법을 버리지 않으며 승가를 버리지 않고,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버리지 않고자 하는 자는 삼가 반야바라밀을 버리지 말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이것이 내가 제자들을 교화하는 법이니라.
아난아, 만약 선
남자ㆍ선여인이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수지하고 독송하고 해설하고 바르게 억념하며,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 의미를 널리 설하고 열어 보이며 베풀고 분명히 하여 알기 쉽게 한다면,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신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신속히 일체지에 다가가느니라. 왜냐하면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생하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과거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생하고 지금 현재의 동방ㆍ남방ㆍ서방ㆍ북방 가운데 네 방향 그리고 상ㆍ하의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또한 반야바라밀에서 생하느니라. 그러한 까닭에 아난아, 모든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하면 6바라밀을 배워야만 하느니라. 왜냐하면 아난아, 6바라밀은 보살마하살의 어머니여서 모든 보살을 탄생시키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이 6바라밀을 배우면 모두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그러한 까닭에 6바라밀을 더하여 다시 그대에게 부촉하여 당부하노니, 아난아, 이 6바라밀은 모든 부처님의 다함없는 법의 곳간[法藏]이니라.
아난아, 현재 시방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의 설법은 모두 6바라밀의 곳간 속에서 나온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또한 6바라밀 가운데서 배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또한 6바라밀 가운데서 배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고,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제자들도 모두
6바라밀 가운데서 배워 멸도를 얻으니, 이미 얻었고 지금 얻고 앞으로 멸도를 얻을 것이다.
아난아, 그대가 성문인들을 위해 법을 설하여 삼천대천국토에 있는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아라한의 과위를 증득하게 해도 역시 아직은 내 제자로서의 일을 한 것이 아니지만, 그대가 만약 반야바라밀에 상응하는 한 구절의 의미를 보살마하살에게 가르친다면 곧 내 제자로서의 일을 한 것이니 나 또한 환희하느니라. 그것은 실로 삼천대천국토에 있는 중생들을 가르쳐서 아라한이 되게 하는 것보다 뛰어난 것이니라.
또한 아난아, 이 삼천대천국토에 있는 중생들이 앞뒤의 구별 없이 일시에 모두 아라한의 과위를 증득하고 이 모든 아라한들이 모두 보시의 공덕과 지계 및 선정의 공덕을 행한다면 이 공덕이 많겠느냐?”
아난이 말씀드렸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의 제자가 반야바라밀에 상응하는 법으로써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하루만이라도 설하는 복의 매우 많은 것에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하루는 차치하고라도 단지 반나절만이라도 그와 같으니라. 반나절은 차치하고라도 단지 한 끼 밥 먹는 시간만이라도 그와 같으며, 한 끼 밥 먹는 시간은 차치하고라도 단지 한 순간만 설한다 해도 그 복은 매우 많으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의 선근은 일체의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니, 보살마하살은 스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또한 타인을 가르쳐 이롭고 기쁘게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도록 하느니라.
아난아, 이와 같은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고 4념처를 행하고, 나아가 일체종지를 행하여 선근을 더욱 늘리니, 만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느니라.”
이 반야바라밀품을 설하실 때에 부처님께서는 사부대중 가운데 계셨는데 천상ㆍ인간ㆍ용ㆍ귀신ㆍ긴나라
및 마후라가 등의 대중 앞에서 신통으로 변화를 나타내시니, 일체의 대중들이 모두 비구 승가에게 둘러싸인 아촉불께서 대중들에게 설법하시는 것을 보았다. 비유하건대 마치 큰 바닷물과 같았다. 그 비구 승가는 모두 아라한으로 치솟는 번뇌를 이미 다하여 다시 번뇌가 없고 모두 지계를 얻었고 구해탈(俱解脫)과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얻어서 그 마음이 조화롭고 부드러워서 마치 큰 코끼리와 같았다. 할 일을 이미 마쳤고 자신의 이익을 얻었고, 모든 결박을 다하여 바른 지혜로써 해탈을 얻었고, 일체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心所法) 가운데서 자재를 얻었다. 그리고 모든 보살마하살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신통을 거두셨고 일체 대중들은 다시 아촉불의 성문인과 보살마하살 및 그 국토를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눈과 마주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신통을 거두셨기 때문이다.
그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아난아, 온갖 법은 눈과 마주할 수 없으니, 법은 법의 모습을 볼 수 없고 법은 법의 모습을 알 수 없느니라. 아난아, 아촉불의 제자들과 보살과 국토를 눈과 마주할 수 없듯이 아난아, 온갖 법은 눈과 마주할 수 없으니 법은 법의 모습을 볼 수 없고 법은 법의 모습을 알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온갖 법은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지을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으며, 얻을 수도 없는 불가사의한 것이니라.
환인처럼 감각도 없고 느낌도 없어서 진실로 없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행하는 것을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하고, 또한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느니라.
아난아,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배우는 것을 일컬어 반야바라밀을 배운다고 하느니라. 모든 바라밀을 배우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하느니라. 왜냐하면 그와 같이 배우는 것을 일컬어 제일의 배움 또는 최상의 배움 또는 미묘한 배움이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그와 같이 배워서 일체 세간을 안락하게 하고 이롭게 하니, 수호처가 없는 자를 위하여 수호처가 되느니라. 그와 같이 배움이 모든 부처님을 배우느니라. 모든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배움 속에 머물러 능히 오른손으로 삼천대천국토를 들어서는 다시 제자리에 두지만 그러한 것을 중생들로서는 아는 자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아난아,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법 가운데서 걸림 없는 지견을 얻었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반야바라밀은 모든 배움 가운데서 가장 존귀하여 제일이고 가장 묘하여 위없느니라.
아난아, 어떤 사람이 반야바라밀의 끝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허공의 끝을 얻고자 하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아난아, 반야바라밀은 한량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처음부터 반야바라밀의 양을 설하지 않았으니, 모든 이름이나 모든 구절이나 모든 이름은 한량이 있지만 반야바라밀은 한량이 있을 수 없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무슨 까닭에 한량이 없는지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은 다할 수 없는 까닭에 한량이 있을 수 없고, 반야바라밀은 떠남인 까닭에 한량이 있을 수 없느니라. 아난아,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가 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득도(得度)하셨으니, 그러한 까닭에 이 반야바라밀은 다함이 없느니라.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모두가 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득도하실 것이니, 그러한 까닭에 이 반야바라밀은 다함이 없느니라. 현재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가 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득도하시니, 그러한 까닭에 이 반야바라밀은 다함이 없느니라. 이미 다함이 없었고 지금 다함이 없고 앞으로 다함이 없을 것이다.
아난아, 반야바라밀을 다하고자 한다면 허공을 다하고자 하느니라. 반야바라밀은 다할 수가 없으니, 이미 다함이 없었고 지금 다함이 없고 앞으로 다함이 없을 것이다. 선나바라밀
내지 단나바라밀도 다할 수가 없으니, 이미 다함이 없었고 지금 다함이 없고 앞으로도 다함이 없을 것이다. 나아가 일체종지도 그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온갖 법은 모두가 생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만약 법이 생하는 것이 없다면 어찌 다함이 있겠느냐.”
그때 부처님께서 다시 면전에서 설상(舌相)을 보이시며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오늘부터 사부대중 속에서 반야바라밀을 널리 펴고 열어 보이며 분별하여 분명하고 알기 쉽도록 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널리 모든 법상을 설하고, 이 가운데서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며 부처님을 구하는 자는 모두가 이 가운데서 배워야 하고, 배운 뒤에 각자가 성취함을 얻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은 곧 일체 문자의 체계이니라.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능히 다라니문에 들고 이 다라니를 배워서 모든 보살들은 일체의 요설변재(樂說辯才)를 얻느니라.
아난아, 반야바라밀은 3세 제불의 묘법(妙法)이니, 그러한 까닭에 아난아, 내가 그대에게 명료하게 설하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수지하고 독송하며 가까이한다면, 이 사람은 곧 능히 3세 제불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지니게 되느니라.
아난아, 나는 반야바라밀이 수행자의 발이라고 말하나니, 그대가 이 반야바라밀을 지녀서 다라니를 얻으면 바로 능히 온갖 법을 지니게 되리라.”

67. 무진품(無盡品)

그때 수보리가 이렇게 생각했다.
‘모든 부처님의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매우 심오한 것이다. 나는 부처님께 여쭈어야겠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나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다할 수 없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허공이 다할 수 없는 것처럼 반야바라밀은 다할 수 없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질이 다할 수 없는 것에 의하여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다할 수 없는 것에 의하여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이 다할 수 없는 것에 의하여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나아가 일체종지가 다할 수 없는 것에 의하여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어리석음[癡]은 공이어서 다할 수 없는 것에 의하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행(行)은 공이어서 다할 수 없는 것에 의하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식(識)은 공이어서 다할 수 없는 것에 의하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명색(名色)은 공이어서 다할 수 없는 것에 의하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6처(處)는 공이어서 다할 수 없는 것에 의하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6촉(觸)은 공이어서 다할 수 없는 것에 의하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느낌[受]은 공이어서 다할 수 없는 것에 의하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갈애(渴愛)는 공이어서 다할 수 없는 것에 의하여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취(取)는 공이어서 다할 수 없는 것에 의하여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유(有)는 공이어서 다할 수 없는 것에 의하여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태어남은 공이어서 다할 수 없는 것에 의하여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고통ㆍ번뇌는 공이어서 다할 수 없는 것에 의하여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 12연기는 오직 보살만의 법이어서 능히 모든 뒤바뀜을 없애느니라. 도량에 앉을 때에 반드시 그와 같이 관찰하여 일체종지를 얻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허공이 다할 수가 없는 법인 것처럼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12연기를 관찰하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지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되느니라.
수보리야, 가령 보살도를 구하면서 물러서는 자는 모두 반야바라밀에의 염(念)을 떠난 자이니라. 그러한 까닭에 그 사람은 허공이 다할 수가 없는 법인 것처럼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12연기를 관찰할 것인가를 알지 못하느니라. 수보리야, 가령 보살도를 구하면서 물러서는 자는 모두가 이러한 방편의 힘을 얻지 못하는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있어서 물러서게 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하여 물러서지 않는 자는 모두 이러한 방편의 힘을 얻었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허공이 다할 수가 없는 법인 것처럼 반야바라밀을 관찰하고, 허공이 다할 수가 없는 법인 것처럼 반야바라밀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12연기를 관찰할 때에 인연 없이 생하는 법을 보지 않고, 항상하여 멸하지 않는 법을 보지 않느니라. 그리고 나ㆍ사람ㆍ영혼ㆍ목숨ㆍ중생 내지 아는 자와 보는 자가 있는 법을 보지 않느니라.
그러면서도 무상인 법을 보지 않고 괴로움인 법을 보지 않으며 무아인 법을 보지 않느니라. 그리고 적멸인 법 또는 적멸 아닌 법을 보지 않느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그와 같이 12연기를 관찰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이때 물질의 항상함과 무상함 또는 괴로움과 즐거움 또는 나라는 것이 있음과 나라는 것이 없음 또는 적멸과 적멸 아닌 것을 보지 않느니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때 또한 반야바라밀도 보지 않고, 또한 어떤 법이 있어 반야바라밀과 선나바라밀 내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보게 하는 법도 보지 않느니라.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보지 않고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보게 하는 법도 보지 않느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온갖 법은 얻을 수가 없는 까닭에 이것을 반야바라밀에 상응하는 행이라고 하느니라.
보살이 얻을 수가 없는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악마가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화살이 심장에 꽂힌 것과 같아서 마치 사람이 새삼 부모를 잃은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이 악마가 보살이 얻을 수가 없는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볼 때에는 크게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마치 화살이 심장에 꽂힌 것과 같은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단지 한 악마만이 근심하고 괴로워하는지요? 삼천대천국토에 있는 다른 악마도 또한 근심하고 괴로워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삼천대천국토에 있는 모든 악마가 모두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화살이 심장에 꽂힌 것과 같아 각자는 그 자리에 있어서 스스로 편안할 수가 없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능히 그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이때 일체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들이 보살로 하여금 근심하고 번뇌롭게 만들 기회를 얻을 수가 없느니라. 수보리야, 이러한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단나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의 수행을 구족하며,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다른 모든 바라밀을 구족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어찌하여 단나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을 구족하게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온갖 보시를 모두 살바야에 회향하느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가 단나바라밀을 구족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온갖 지계를 모두 살바야에 회향하느니라. 이것을 시라바라밀을 구족한다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온갖 인욕을 모두 살바야에 회향하느니라. 이것을 찬제바라밀을 구족한다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온갖 정진을 모두 살바야에 회향하느니라. 이것을 비리야바라밀을 구족한다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온갖 선정을 모두 살바야에 회향하느니라. 이것을 선나바라밀을 구족한다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온갖 지혜를 모두 살바야에 회향하느니라. 이것을 반야바라밀을 구족한다고 하느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6바라밀을 구족하느니라.”

68. 섭오품(攝五品)거란본에는 육도상섭품(六度相攝品)으로 되어 있음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단나바라밀에 머물면서 시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보시를 할 때에 이 보시로써 살바야에 회향하고, 중생들 가운데서 자애어린[慈]의 몸과 말과 뜻의 업에 머문다. 이것을 보살은 단나바라밀에 머물면서 시라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단나바라밀에 머물면서 찬제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보시를 할 때에 받는 자가 화내고 욕하고 나쁜 말로 그에게 대하더라도 이때 보살은 인욕하여 화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단나바라밀에 머물면서 찬제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이 단나바라밀에 머물면서 비리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보시를 할 때에 받는 자가 화내고 욕하고 나쁜 말로 그에게 대하더라도, 보살은 보시의 마음을 더욱 늘리어서 ‘나는 베풀어야 하니 아끼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하느니라. 이때 몸의 정진과 마음의 정진이 생기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단나바라밀에 머물면서 비리야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이 단나바라밀에 머물면서 선나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보시를 할 때에 살바야에 회향하여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나가지 않고, 다만 일심으로 살바야를 생각할 뿐이다. 이것을 보살은 단나바라밀에 머물면서
선나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이 단나바라밀에 머물면서 반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보시를 할 때에 보시는 공이어서 환영과 같음을 안다. 그리고 중생들을 위한 보시에서 이익이 있고 이익이 없음을 보지 않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단나바라밀에 머물면서 반야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에 머물면서 단나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 가운데 머물면서 몸과 말과 뜻으로 보시의 복덕을 일으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돕고 이 공덕으로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취하지 않느니라.
시라바라밀 가운데 머물면서 다른 생명을 빼앗지 않고 다른 자의 물건을 겁탈하지 않고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느니라.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험담을 하지 않으며, 욕을 하지 않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느니라. 그리고 탐내지 않고 화내지 않으며 사견 없이 모두를 보시하느니라.
굶주린 자에게는 밥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는 물을 주며, 탈것이 필요한 자에게는 탈것을 주고 옷이 필요한 자에게는 옷을 준다. 향이 필요한 자에게는 향을 주고 영락이 필요한 자에게는 영락을 주며, 향수와 침구와 방사와 등불과 생활필수품 등을 남김없이 베풀어 준다.
이 보시를 가지고 중생과 함께 그것을 공유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느니라. 이와 같이 회향하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에 머물면서 단나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에 머물면서 찬제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에 머물러 만일 어떤 중생이 찾아와서 몸을 마디마디 해체하더라도 보살은 이 가운데서 화내는 마음 내지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 이렇게 말하느니라.
‘나는 큰 이익을 얻었다. 중생이 찾아와서 내 몸의 마디마디를 가졌지만 나는 한 생각도 화내는 것이 없었다.’
이것을 보살은 시라바라밀 가운데 머물면서 찬제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에 머물면서 비리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몸으로 정진하고 마음으로 정진하여 항상 버리지 않고 생각하기를 ‘온갖 중생들이 생사 가운데 있으니 내가 뽑아 올려 감로의 땅에 안착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면 이것을 보살은 시라바라밀 가운데 머물면서 비리야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에 머물면서 선나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초선과 제2선ㆍ제3선ㆍ제4선에 들어가되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탐내지 않고 생각하기를 ‘나는 선나바라밀 가운데 머물러 일체 중생들을 생사로부터 제도해야 한다’라고 하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시라바라밀 가운데 머물면서 선나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에 머물면서 반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시라바라밀 가운데 머물면서 법 가운데 지은 법과 지음이 없는 법, 또는 수량의 법 또는 모습의 법, 또는 있다거나 없다고 볼 수 있는 법이 있을 수 없느니라. 단지 모든 법은 떠나 모습에 지나지 않고 반야바라밀의 방편의 힘을 가지는 까닭에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시라바라밀 가운데 머물면서 반야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찬제바라밀에 머물면서 단나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보살은 최초의 뜻을 일으키고 나서부터 도량에 이를 때까지 그 중간에서 온갖 중생들이 찾아와서 화내고 욕하거나 또는 몸을 마디마디 해체하더라도 보살은 인욕에 머물면서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내가 온갖 중생들에게 보시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고, 주지 않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니니라.’
이 중생이 밥을 구하면 밥을 주고, 물을 구하면 물을 주며, 나아가 생활필수품 등을 남김없이 모두 주고, 이 공덕을 가지고 온갖 중생들과 함께 그것을 공유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느니라. 이 보살은 회향할 때에 ‘누가 회향하는 자이고 어디가 회향할 곳인가?’라는 두 가지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찬제바라밀에 머물면서 단나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찬제바라밀에 머물면서 시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최초의 뜻을 일으키고 나서부터 도량에 이를 때까지 그 중간에서 결코 다른 생명을 빼앗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취하지 않으며, 나아가 사견을 일으키지 않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이 공덕을 가지고 온갖 중생들과 함께 그것을 공유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느니라. 이 보살은 회향할 때에 ‘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고, 무슨 법으로 회향하며, 어디가 회향할 곳인가’라는 세 가지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찬제바라밀에 머물면서 시라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찬제바라밀에 머물면서 비리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찬제바라밀에 머물면서 정진을 일으키고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나는 일 유순 도는 십 유순 또는 백천만억 유순을 가서 한 국토를 지나고, 나아가 백천만억 국토를 지나서 한 사람이라도 가르쳐서 다섯 가지 계율을 가지게 해야 하거늘 하물며 수다원의 과위 내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도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는 것이겠는가.’
이 공덕을 가지고 온갖 중생들과 함께 그것을 공유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찬제바라밀에 머물면서 비리야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찬제바라밀에 머물면서 선나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찬제바라밀에 머물면서 애욕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고, 거친 생각[覺]도 있고 미세한 생각[觀]도 있으면서 애욕을 떠난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어 초선에 들고, 나아가 제4선에 들며, 이 모든 선정 속의 청정한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으로써 모두 살바야에 회향하느니라. 회향할 때에 이 보살은 모든 선정과 선정의 요소를 결코 얻을 수 없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찬제바라밀에 머물면서 선나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찬제바라밀에 머물면서 반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찬제바라밀에 머물면서 모든 것의 떠남의 모습이나 적멸의 모습, 또는 다함이 없는 모습을 관찰하되 적멸의 모습을 증득하지 않느니라. 나아가 도량에 앉아서 일체종지를 얻고, 도량에서 일어나서 바로 법륜을 굴리니, 이것을 보살은 찬제바라밀에 머물면서 반야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취하는 것도 아니고 버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비리야바라밀에 머물면서 단나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비리야바라밀에 머물러 몸과 마음으로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쉬지 않고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나는 꼭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야만 한다.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보살은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일 유순 또는 백천만억 유순을 가고 또는 한 국토를 지나거나 백천만억 국토를 지나서 비리야바라밀 가운데 머문다. 그런데 만일 한 사람에게 가르쳐 불도 가운데 또는 성문도 가운데 또는 벽지불도 가운데에 들게 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만일 한 사람에게 가르쳐 10선도를 행하게 할 수 있다면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느니라.
법을 베풀고 재물을 베풂에 의하여 구족하게 하고 이러한 공덕을 가지고 중생들과 함께 그것을 공유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회향하지 않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비리야바라밀에 머물면서 단나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비리야바라밀에 머물면서 시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비리야바라밀에 머물러 최초의 뜻을 일으키고 나서부터 도량에 앉을 때까지 스스로 살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시켜 살생하게 하지 않고, 살생하지 않는 법을 찬탄하며 살생하지 않는 자를 환희하고 찬탄하느니라. 나아가 스스로 사견을 멀리 떠나고 타인을 시켜 사견을 멀리 떠나게 하고, 삿되지 않은 견해의 법을 찬탄하고 삿되지 않은 견해를 가진 자를 환희하고 찬탄하느니라.
이 보살은 시라바라밀을 행하는 인연으로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복을 구하지 않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구하지 않느니라.
이러한 공덕을 가지고 중생들과 함께 그것을 공유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느니라. 이때 세 가지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니 회향하는 자를 보지 않고, 회향법을 보지 않고, 회향처를 보지 않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비리야바라밀에 머물면서 시라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비리야바라밀에 머물면서 찬제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비리야바라밀에 머물러 최초의 뜻을 일으키고 나서부터 도량에 앉을 때까지 그 중간에 있어서 사람이나 또는 사람이 아닌 것이 찾아와서 몸을 마디마디 해체하더라도 보살은 ‘나를 찢는 자는 누구인가? 나를 베는 자는 누구인가? 나를 빼앗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생각하느니라.
다시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나는 큰 이익을 얻었다. 나는 중생들을 위해서 몸을 받았는데 중생이 스스로 찾아와서 가져가는구나.’
이때 보살은 모든 법의 실상을 바르게 억념하느니라. 이러한 공덕을 가지고 중생들과 함께 그것을 공유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회향하지 않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비리야바라밀에 머물면서 찬제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비리야바라밀에 머물면서 선나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비리야바라밀에 머물러 애욕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고, 거친 생각도 있고 미세한 생각도 있으면서 애욕을 떠난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켜, 초선과 제2선과 제3선과 제4선에 드느니라.
그리고 자ㆍ비ㆍ희ㆍ사의 4무량심에 들고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처에 들며, 이러한 선정과 무량심과 무색정을 가지고서도 과보를 받으려 하지 않느니라.
오히려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곳에 태어나 6바라밀로써 중생의 이익을 성취시키니, 이른바 단나바라밀 내지 반야바라밀이니라. 그와 같이 하며
한 부처님 국토에서 다른 한 부처님 국토에 도달하여 모든 부처님을 가까이하고 공양하고 선근을 심으니, 이것을 비리야바라밀에 머물면서 선나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비리야바라밀에 머물면서 반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비리야바라밀에 머물면서 단나바라밀 법을 보지 않고 단나바라밀의 모습도 보지 않느니라. 나아가 선나바라밀의 법까지도 보지 않고 선나바라밀의 모습도 보지 않느니라. 4념처 내지 일체종지에 있어서도 또한 법을 보지 않고 모습도 보지 않으며, 일체 모든 법도 아니고 법 아님도 보아 법 가운데에 있어서 집착하는 바가 없느니라. 이 보살이 짓는 것은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이것을 비리야바라밀에 머물면서 반야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에 머물면서 단나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선나바라밀에 머물면서 모든 애욕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며, 거친 생각도 있고 미세한 생각도 있으면서 애욕을 떠난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켜, 초선과 제2선과 제3선과 제4선에 들고, 자ㆍ비ㆍ희ㆍ사의 4무량심 내지 비유상비무상처에 드느니라. 선나바라밀에 머물면서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두 가지 보시를 행함으로써 중생들에게 베푸니 법의 보시와 재물의 보시이니라.
스스로 두 가지 보시를 행하고 다른 사람을 가르쳐서 두 가지 보시를 행하게 하고, 두 가지 보시를 행하는 법을 찬탄하며 두 가지 보시를 행하는 자를 환희하고 찬탄하느니라. 이러한 공덕을 가지고 중생들과 함께 그것을 공유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회향하지 않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선나바라밀에 머물면서 단나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에 머물면서 시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선나바라밀에 머물면서 음욕과 화냄과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타인을 번뇌롭게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단지 살바야에 상응하는 마음으로 수행할 뿐이니라. 이러한 공덕을 가지고 중생들과 함께 그것을 공유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회향하지 않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선나바라밀에 머물면서 시라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에 머물면서 찬제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선나바라밀에 머물면서 물질[色]을 볼 때는 거품 덩어리 같고, 늘낌[受]을 볼 때는 큰 거품 같으며, 생각[想]을 볼 때는 아지랑이 같고, 지어감[行]을 볼 때는 파초 같으며, 분별[識]을 볼 때는 허깨비 같다고 여긴다. 이렇게 관찰하여 5중은 견고한 모습이 없음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곧 ‘나를 찢는 자는 누구인가? 나를 베는 자는 누구인가? 누가 감각을 느끼고, 누가 생각하며, 누가 행동하고 누가 식별하는가? 누가 욕하는 사람인가? 누가 욕을 듣는 사람인가? 누가 화를 일으키는가?’
이것을 보살은 선나바라밀에 머물면서 찬제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에 머물면서 비리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선나바라밀에 머물면서 애욕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며, 거친 생각도 있고 미세한 생각도 있으면서 애욕을 떠난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켜 초선과 제2선과 제3선과 제4선에 드느니라. 이 모든 선정과 그 구성 요소에 있어 모양을 취하지 않느니라.
모든 신통을 일으키되 물 위를 땅처럼 다니고, 땅 속으로 들어가되 물처럼 하는 것이 앞에서 설한 것과 같으니라. 모든 소리를 듣는 귀는, 두 가지 소리인 하늘이나 또는 인간의 소리를 듣는다.
타인의 마음을 모두 아는 마음은
거두어들인 마음이나 또는 산란한 마음, 나아가 위가 있는 마음이나 위가 없는 마음임을 안다. 그리고 모든 전생의 일을 모두 알아서 기억하는 신통도 앞에서 설한 것과 같으니라. 모든 것을 다 보는 눈을 갖추었으니, 그것은 사람의 눈을 능가하느니라. 그것으로 중생들이 지은 업대로 과보를 받는 것을 보되 앞에서 설한 것과 같으니라.
보살은 이러한 5신통에 머물면서 한 부처님 국토에서 다른 한 부처님 국토에 도달하고, 모든 부처님을 가까이하고 공양하며, 선근을 심고 중생의 이익을 성취하고, 부처님의 국토를 정화하느니라. 이러한 공덕을 가지고 중생들과 함께 그것을 공유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선나바라밀에 머물면서 비리야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선나바라밀에 머물면서 반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선나바라밀에 머물면서 물질을 얻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얻지 않느니라.
단나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을 얻지 않고 반야바라밀을 얻지 않느니라.
4념처를 얻지 않고, 나아가 일체종지를 얻지 않느니라.
모든 법의 유위성을 얻지 않고, 모든 법의 무위성을 얻지 않느니라. 얻지 않는 까닭에 짓지 않고, 짓지 않는 까닭에 생하지 않으며, 생하지 않는 까닭에 없어지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부처님이 계시거나 부처님이 계시지 않거나, 이러한 여와 법상과 법성은 항상 머무는 것이어서 생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언제나 일심으로 살바야에 어울리게 행하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선나바라밀에 머물면서 반야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물면서 단나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물면서 내공에 있어서는 내공을
얻을 수가 없고, 외공에 있어서는 외공을 얻을 수가 없느니라. 내외공에 있어서는 내외공을 얻을 수가 없고, 공공에 있어서는 공공을 얻을 수가 없느니라. 나아가 온갖 법공에 있어서는 온갖 법공을 얻을 수가 없느니라.
보살은 이러한 열네 가지 공 가운데 머물면서 물질의 모습에 있어서 공 또는 공 아닌 것을 얻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모습에 있어서 공 또는 공 아닌 것을 얻지 않느니라.
4념처에 있어서 공 또는 공 아닌 것을 얻지 않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있어서 공 또는 공 아닌 것을 얻지 않느니라. 그리고 유위성과 무위성에 있어서 공 또는 공 아닌 것을 얻지 않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그와 같이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물면서 모든 것을 보시하느니라. 만일 음식과 의복과 모든 생활필수품을 가지고 보시하되, 이 보시가 공인 것을 관찰하느니라. 어떤 것들이 공인가? 베푸는 자와 받는 자 그리고 재물이 공이어서 아끼고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해 최초의 뜻을 일으키고 나서부터 도량에 앉을 때까지 망상과 분별이 없고 모든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실 때에 아끼고 집착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또한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아끼고 집착하는 마음이 없느니라. 이 보살이 존중히 여기는 것은 반야바라밀인 것이니라. 이것을 반야바라밀에 머물면서 단나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물면서 시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물면서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보살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얻을 수가 없고, 성문이나 벽지불에 나아가는 마음도 또한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최초의 뜻을 일으키고 나서부터 도량에 앉을 때까지 그 중간에 있어서 스스로 살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시켜 살생하게 하지 않으며, 살생하지 않는 법을 찬탄하고, 살생하지 않는 자를 환희하고 찬탄하느니라.
내지 스스로 사견을 일으키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시켜 사견을 일으키지 않게 하고, 삿되지 않은 견해의 법을 찬탄하며, 삿되지 않은 견해를 가진 자를 환희하고 찬탄하느니라. 이러한 계를 지닌 인연으로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로써 법을 취하지 않느니라. 어찌 하물며 나머지 법이겠느냐? 이것을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물면서 시라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물면서 찬제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물면서 수순법인(隨順法忍)을 일으켜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모든 법 가운데는 일어난다거나 멸한다거나 또는 생한다거나 죽는다거나 또는 비난을 받는다거나 저주의 말을 듣고 찢긴다거나 또는 베이고 파괴된다거나 혹은 묶이고 얻어맞는다거나 또는 살해되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이 보살은 최초의 뜻을 일으키고 나서부터 도량에 앉을 때까지 만일 온갖 중생들이 찾아와서 비난하고 저주하거나 또는 몽둥이나 기와조각 및 돌로써 찢고 베고 상처를 입히더라도 마음으로 동요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다. 이 법 가운데는 비난하고 저주하고 찢고 베고 상처를 받을 자가 있을 수 없는 데도 중생들은 이러한 고뇌를 받는구나.’
이것을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물면서 찬제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물면서 비리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물면서 중생들을 위해서 법을 설하여 단나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
반야바라밀을 행하게 하느니라. 그리고 가르쳐서 4념처 내지 8성도분을 행하게 하고,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도를 얻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느니라.
그리고 유위성 가운데에 머물게 하지 않고, 무위성 가운데에 머물게 하지 않느니라. 이것을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물면서 비리야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물면서 선나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물면서 모든 부처님의 삼매를 제외하고 다른 모든 삼매인 성문의 삼매와 벽지불의 삼매와 보살의 삼매에 드니, 그 모든 것을 행하고 그 모든 것에 드느니라. 이 보살은 모든 삼매에 머물면서 8배사(背捨)에 역과 순으로 출입하느니라.
무엇을 여덟 가지라고 하는가? 안에 물질의 모습이 있어서 밖의 물질을 관찰하는 이것이 첫째 배사이니라. 안으로 물질의 모습은 없지만 밖으로 물질을 관찰하는 이것이 둘째 배사이니라. 청정한 배사를 증득하는 것이 셋째 배사이니라. 일체 물질의 모습을 지나 걸림이 있다는 모습을 없애고, 가지가지 모습을 생각하지 않는 까닭에 무량 허공처에 드는 것이 넷째 배사이니라. 일체의 허공처를 벗어나 무변식처(無邊識處)에 드는 것이 다섯째 배사이니라. 일체의 식처를 벗어나 무소유처에 드는 것이 여섯째 배사이니라. 일체의 무소유처를 벗어나 비유상비무상처에 드는 것이 일곱째 배사이니라. 일체의 비유상비무상처를 벗어나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드는 것이 여덟째 배사이니라.
이 여덟 가지 배사에 입각하여 9차제정(次第定)에 역과 순으로 출입하느니라. 무엇을 아홉 가지라고 하는가? 모든 애욕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고, 거친 생각도 있고 미세한 생각도 있으면서 애욕을 떠나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켜 초선에 들고,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처를 벗어나
멸수상정에 드는 이것을 9차제정을 역과 순으로 출입한다고 말하느니라.
이 보살은 8배사와 9차제정에 의해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에 드는데 무엇을 사자분신삼매라 하는가?
수보리야, 보살은 애욕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고, 거친 생각도 있고 미세한 생각도 있으면서 애욕을 떠난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켜 초선에 들고, 나아가 멸수상정에 들며, 멸수상정에서 일어나 다시 비유상비무상처에 들고, 비유상비무상처에서 일어나 내지 다시 초선에 들며, 이 보살은 사자분신삼매에 의하여 초월삼매(超越三昧)에 드느니라.
무엇을 초월삼매라고 하는가? 수보리야, 보살은 애욕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고 거친 생각도 있고 미세한 생각도 있으면서 애욕을 떠난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켜 초선에 들고, 나아가 멸수상정에 들며, 멸수상정에서 일어나 다시 비유상비무상처에 들고, 비유상비무상처에서 일어나 내지 다시 멸수상정에 들며, 멸수상정에서 일어나 제2선에 드느니라. 제2선에서 일어나 멸수상정에 들고, 멸수사정에서 일어나 제3선에 드느니라. 제3선에서 일어나 멸수상정에 들고, 멸수상정에서 일어나 제4선에 드느니라.
제4선에서 일어나 멸수상정에 들고, 멸수상정에서 일어나 공처에 드느니라. 공처에서 일어나 멸수상정에 들고, 멸수상정에서 일어나 식처에 드느니라. 식처에서 일어나 멸수상정에 들고, 멸수상정에서 일어나 무소유처에 드느니라. 무소유처에서 일어나 멸수상정에 들고, 멸수상정에서 일어나 비유상비무상처에 드느니라. 비유상비무상처에서 일어나 멸수상정에 들고, 멸수상정에서 일어나
산란한 마음 가운데 드느니라. 산란한 마음 가운데에서 일어나 멸수상정에 들고, 멸수상정에서 일어나 다시 산란한 마음 가운데 드느니라.
산란한 마음 가운데에서 일어나 비유상비무상처에 들고, 비유상비무상처에서 일어나 다시 산란한 마음 가운데 드느니라. 산란한 마음 가운데에서 일어나 무소유처에 들고, 무소유처에서 일어나 다시 산란한 마음 가운데 드느니라. 산란한 마음 가운데에서 일어나 식처에 들고, 식처에서 일어나 다시 산란한 마음 가운데 드느니라. 산란한 마음 가운데에서 일어나 공처에 들고, 공처에서 일어나 다시 산란한 마음 가운데 드느니라.
산란한 마음 가운데에서 일어나 제4선에 들고, 제4선에서 일어나 다시 산란한 마음 가운데 드느니라. 산란한 마음 가운데에서 일어나 제3선에 들며, 제3선에서 일어나 다시 산란한 마음 가운데 드느니라. 산란한 마음 가운데에서 일어나 제2선에 들고, 제2선에서 일어나 다시 산란한 마음 가운데 드느니라. 산란한 마음 가운데에서 일어나 초선에 들고, 초선에서 일어나 다시 산란한 마음 가운데 드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초월삼매에 머물면서 모든 법의 동등한 모습을 얻는다. 이것을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물면서 선나바라밀을 취한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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