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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181 불교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19권

by Kay/케이 2024.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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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19

 

 

 

마하반야바라밀경 제19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최봉수 번역
김형준 개역


62. 마수품(魔愁品)거란본에는 동학품(同學品)으로 되어 있음

그때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심오해서 보기 어렵고 모든 기억과 생각과 분별이 없으니, 끝내 떠난 것인 까닭입니다. 세존이시여, 중생으로서 이 반야바라밀을 듣고서 능히 지니고 독송하며 설하고 바르게 억념하고 가까이하고 설한 대로 실천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를 때까지 다른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에 섞이지 않는 자는 작은 공덕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듣고서 나아가 다른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에 섞이지 않는 자는 작은 공덕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니라. 교시가야, 그대는 어찌 생각하느냐? 가령 염부제 중생이 모두 10선도ㆍ4선ㆍ4무량심ㆍ4무색정을 성취한다고 하자. 그리고 다시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가까이하고 바르게 억념하여 설한 대로 행한다면, 염부제 중생이 10선도 내지 4무색정을 성취하는 것보다 뛰어나니라. 곧 백 배ㆍ천 배ㆍ천만억 배나 되니, 나아가 산수나 비유로는 능히 미칠 수 없느니라.”
그때 어떤 한 비구가 석제환인에게 말했다.
“교시가여,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공덕이 그대 보다 뛰어납니다.”
석제환인이 말했다.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한 번만 발심해도 나보다 뛰어난데, 하물며 어찌 이 반야바라밀을 듣고 서사해 지니고 독송하고
바르게 억념하며 설한 대로 실천한 것이겠습니까?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향하면 단지 나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또한 일체세간의 하늘과 인간 또는 아수라보다 뛰어납니다. 단지 일체세간의 하늘과 인간 또는 아수라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모든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 그리고 벽지불보다 뛰어납니다.
단지 이 수다원 내지 벽지불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반야바라밀은 멀리 떠난 채, 다섯 가지 바라밀만을 행하는 보살보다 뛰어납니다. 단지 반야바라밀을 멀리 떠나고 다섯 가지 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또한 반야바라밀을 행하되 방편의 힘이 없는 보살보다 뛰어납니다.
이 보살마하살은 설한 대로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부처님의 씨앗을 단절하지 않고, 언제나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여 신속히 마지막 도량에 다가서는 것입니다. 보살이 그와 같이 실천하는 것은 기나긴 물결에 침몰하는 자를 벗어나게 하고자 함입니다.
이 보살의 그와 같이 배우는 것이 성문이나 벽지불의 배움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보살이 그와 같이 배우면 사천왕천이 보살이 있는 곳에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선남자여, 힘써 신속히 배워야 합니다. 마지막 도량에 앉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때에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네 개의 발우를 받으신 것처럼, 제가 또한 마땅히 가지고 올 것이니 보살께서는 제가 올리는 발우를 받으셔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모든 다른 하늘인 사천왕천ㆍ삼십삼천ㆍ야마천ㆍ도솔천ㆍ화락천ㆍ타화자재천ㆍ범천 내지 수다회천(首陀會天)도 또한 공양합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또한 언제나 이 보살마하살이 설한 대로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 보살에게는 세간의 모든 위험과 어려움 또는 괴로움이라는 것이 영원히
다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일체의 세간에는 사백네 가지 질병이 있지만, 이보살의 몸에는 이러한 모든 질병이 없습니다.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까닭에 이러한 현세의 공덕을 얻는 것입니다.”
그때 아난이 생각하기를 ‘석제환인은 스스로의 힘으로써 말하는가? 아니면 부처님의 위신력으로써 말하는가?’라고 했다.
석제환인이 아난이 마음속에 생각하는 바를 알고 아난에게 말했다.
“제가 말하는 것은 모두 부처님의 위신력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석제환인이 설한 것들은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력이니라. 아난아, 이 보살마하살이 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배울 때에 삼천대천국토에 있는 모든 악마는 모두 여우 같이 의심을 일으켜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지금 이 보살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인가? 중도에서 실제를 증득하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질 것인가?’
또한 아난아, 가령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떠나지 않을 때에는 악마가 크게 근심하고 괴로워하니, 그것은 화살이 심장에 꽂힌 것과 같으니라. 이때 악마는 다시 큰 불을 놓아 사방에서 바람과 함께 일어나게 하여 보살의 마음을 위축시키고 두렵게 하며, 살바야 가운데서 게으르게 하고 나아가 한 가지 혼란스러운 사념을 일으키고자 하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악마는 모든 보살을 모두 혼란스럽게 하는지요? 혼란스럽게 하지 못하는 자도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혼란스럽게 하는 자도 있고, 혼란스럽게 하지 못하는 자도 있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보살이 악마에게 혼란스럽게 된 자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보살마하살은 지난 세상에서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듣고 마음으로 믿고 이해하지 않았다. 악마는 이러한 보살에게서 혼란스럽게 하는 기회를 얻느니라.
또한 아난아, 보살이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이 설해지는 것을 들었을 때에 마음으로 이 반야바라밀이
진실로 있는 것인가, 진실로 없는 것인가를 의심했다. 악마는 이러한 보살에게서 혼란스럽게 하는 기회를 얻느니라.
또한 아난아, 어떤 보살은 선지식을 멀리 떠나고 악지식에게 포섭된 까닭에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듣지 않았느니라. 듣지 않은 까닭에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향해야 하고,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닦아야 하는가를 알지 못하며 보지 못하고 묻지 않느니라. 악마는 이 보살에게서 혼란스럽게 하는 기회를 얻느니라.
또한 아난아,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멀리 떠나고 나쁜 법을 받아들이면, 악마는 이 보살에게서 혼란스럽게 하는 기회를 얻느니라. 악마는 생각하기를, 곧 ‘이 사람들은 나의 동료이다. 반드시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
이러한 보살은 스스로 두 가지 경지에 떨어지고, 또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두 가지 경지에 떨어지게 하느니라.
또한 아난아, 보살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이 설해지는 것을 들을 때에 타인에게 말하느니라.
‘이 반야바라밀은 심오해서 나도 오히려 이것을 얻을 수 없는데 그대가 이 반야바라밀을 듣고 배움으로써 무엇하겠느냐?’
악마는 이렇게 말하는 보살에게서 혼란스럽게 하는 기회를 얻느니라.
또한 아난아, 보살이 다른 보살을 가벼이 여겨 말하느니라.
‘나는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멀리 떠남과 공을 실천하지만, 그대는 이 공덕이 없느니라.’
이렇게 말할 때 악마는 크게 기뻐하여 뛸 듯이 즐거워하느니라. 가령 어떤 보살은 스스로 가문이 고귀하고 권속이 많은 것을 뽐내어 다른 선한 일을 실천하는 보살을 가벼이 여기느니라. 이 사람은 참된 불퇴전지의 행상과 종류와 특징의 공덕이 없고, 이 공덕이 없는 까닭에 모든 번뇌를 일으키고, 단지 헛된 이름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을 가벼이 여겨 ‘그대는 내가 얻은 법 가운데 있지 않다’라고 말하느니라.
이때 악마는 ‘나의 경계와 궁전을 비우지 않고 3악도를 더욱 늘리게 되었다’라고 생각하느니라.
악마는 그의 위력을 도와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말을 믿어 받아들이게 하느니라. 그 말을 믿고 받아들이는 까닭에,
그의 다스림을 받아 실천하고 설하는 대로 닦아 배운다. 그렇게 닦아 배우는 때에 모든 번뇌를 더욱 늘리느니라.
이러한 모든 사람은 마음이 뒤바뀐 까닭에 몸과 말과 뜻의 업으로 지은 것에 말미암은 모든 나쁜 과보를 받느니라. 이러한 인연으로서 3악도는 더욱 늘어나고 악마의 권속과 궁전은 점점 많아지느니라. 아난아, 악마는 이러한 이익을 보는 까닭에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느니라.
아난아, 만약 보살도를 실천하는 자와 성문도를 구하는 집안이 서로 싸운다면 악마는 생각하기를 ‘이것은 살바야를 멀리 떠나는 것이다’라고 하느니라.
아난아, 만약 보살과 보살이 서로 싸우고 화내고 욕한다면 이때 악마는 바로 크게 기뻐하여 뛸 듯이 즐거워하면서 말하느니라.
‘두 보살이 살바야를 떠나고 멀리한다.’
또한 아난아, 만약 아직 수기를 받지 못한 보살이 수기를 받은 보살을 향하여 나쁜 마음을 내어 싸우고 욕한다면 그 마음을 일으킨 많고 적은 겁에 따라서 약간 겁의 숫자 동안 미혹에 헤매게 되고, 만약 일체종지를 버리지 않으면 그러한 뒤에는 거기에 상응하는 겁을 보충한 뒤에야 크게 장엄하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나쁜 마음은 거기에 상응하는 겁이 숫자를 지나는 그 중간에 있어서도 면제되어 벗어날 수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만일 보살도를 구하는 자와 성문인이 면제되어 벗어나는 것을 얻는다고 설한다 하더라도 아난아, 만약 보살도를 구하는 사람이 서로 싸우고 화내며 욕하고 원한을 품어 뉘우치지 않고 버리지 않는다면, 나는 벗어남이 있다고 설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틀림없이 거기에 상응하는 겁의 숫자를 더해야 하느니라. 만약 일체종지를 버리지 않는다면, 그러한 뒤에는 곧 크게 장엄하느니라.
아난아, 만약 이 보살이 싸우고 화내며 욕했다면, 바로 스스로 고치고 뉘우친 뒤, 곧 ‘나는 큰 손실을 지었다. 나는 마땅히 온갖 중생들을 위하여 마음을 낮추고 금세와 후세의 모두를 화해시켜야 하느니라. 나는 마땅히 온갖 중생들이 밟고 지나가는 것을 참아야 하되, 다리[橋梁]와 같이 하며 귀머거리와 같이 하고 벙어리와 같이 해야 하느니라. 어찌 하물며 악한 말로서
사람들을 대할 것인가? 나는 마땅히 매우 깊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아야 하고,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 마땅히 이 일체 고뇌의 중생들을 제도해야 하느니라. 어찌 하물며 화냄을 일으키겠느냐?’라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과 보살은 어떻게 함께 머물러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보살과 보살은 함께 머물고 서로 보기를 마땅히 세존과 같이 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니라.
‘이 분은 나의 진실한 도반이니 한 배를 타고 있다. 그가 배우고 내가 배우는 것은 이른바 단나바라밀이고 나아가 일체종지이다. 만약 이 보살이 난잡하게 실천하여 살바야의 마음을 떠나게 되면, 나는 그와 같이 배우지 않아야 하느니라. 만약 이 보살이 난잡하게 실천하지 않고 살바야의 마음을 떠나지 않으면, 나는 또한 마땅히 그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배우는 것을 함께 배운다고 하느니라.”

63. 등학품(等學品)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동등한 법이이서 보살이 마땅히 배워야 할 것인지요?”
“수보리야, 내공이 보살의 동등한 법이고, 외공 내지 무법유법공이 보살의 동등한 법이니라.
수보리야, 물질은 물질의 모습에 있어서 공이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식의 모습에 있어서 공이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모습에 있어서 공이다.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동등한 법이라 말하니, 이 동등한 법에 머물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물질을 멸진하기 위하여 배우는 것을 살바야를 배운다고 합니다. 물질을 떠나기 위하여 배우고 물질을
없애기 위하여 배우는 것을 살바야를 배운다고 합니다. 물질이 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배우는 것을 살바야를 배운다고 합니다.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그와 같습니다.
4념처 내지 18불공법을 수행하여 멸진하고 떠나고 없애며 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배우는 것을 살바야를 배운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수보리가 말한 것처럼 물질을 멸진하고 떠나며 없애고 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배우는 것을 살바야를 배운다고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내지 열여덟 가지 부처님만이 갖는 특성을 멸진하고 떠나며 없애고 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배우는 것을 살바야를 배운다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질의 여(如),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여,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여, 부처님의 여 등 이러한 여는 모두 멸진하고 소멸하고 단절되는 것이더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여를 배우는 것을 살바야를 배운다고 하느니라. 이러한 여는 작증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단절되지도 않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여를 배우는 것을 살바야를 배운다고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배우는 것을 6바라밀을 배운다고 하고, 4념처 내지 18불공법을 배운다고 하느니라. 혹은 6바라밀 내지 18불공법을 배우는 것을 살바야를 배운다고 하느니라.
수보리야, 그와 같이 배우는 것을 모든 배움의 끝을 다했다고 하고, 그와 같이 배우면 악마나 혹은 마천(摩天)이 파괴할 수가 없느니라. 그리고 그와 같이 배우면 바로 아유월치의 경지에 이르느니라.
또한 그와 같이 배우는 것을 부처님이 실천하신 길을 배운다고 하고, 그와 같이 배우는 것을 옹호의 법을 얻었다고 하느니라. 그리고 대자대비를 배운다고 하고, 부처님의 국토를 정화하고 중생의 이익을 성취하는 것을 배운다고 하느니라.
수보리야, 그와 같이 배우는 것을 세 가지로 전개되는 열두 가지 행상(行相)의 법륜을 배운다고 하고, 그와 같이 배우는 것을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을 배운다고 하느니라. 그리고 그와 같이 배우는 것을 부처님의 종자를 끊지 않는 것을 배운다고 하고, 그와 같이 배우는 것을 감로문1)을 여는 것을 배운다고 하며, 그와 같이 배우는 것을 무위성을 보이고자 하는 것을 배운다고 하느니라.
수보리야, 하열한 사람은 이렇게 배울 수가 없으니, 그와 같이 배운다는 것은 생사에 침몰한 중생들을 건져내고자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배우면 결코 지옥ㆍ아귀ㆍ축생의 길에 떨어지지 않고, 결코 변방의 땅에서 태어나지 않으며, 결코 천민의 집안에 태어나지 않고, 결코 귀머거리와 소경과 벙어리로 태어나지 않느니라. 고질병을 지니지 않고 모든 감각기관에 결함이 없으며 권속을 성취하여 결코 외롭고 빈궁하게 되지 않느니라.
보살이 그와 같이 배우면 결코 살생하지 않고, 나아가 결코 사견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그와 같이 배우면 사명(邪命)으로 생활하지 않고 나쁜 사람이나 파계자를 포섭하지 않느니라.
그와 같이 배우면 방편의 힘을 가지는 까닭에 장수천(長壽天)에 태어나지 않느니라. 무엇이 방편의 힘인가? 그것은 반야바라밀의 품(品) 가운데서 설한 것과 같은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방편이 힘을 가지는 까닭에 4선과 4무량심과 4무색정에 따라서 태어나지 않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이 그와 같이 배우면 온갖 법 가운데서 청정하게 되니, 이른바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을 정화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온갖 법은 본래 성품이 청정한데 어찌하여 보살이 온갖 법 가운데서 청정을 얻는다고 말씀하시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온갖 법은 본래 성품이 청정하니라.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 법 가운데 있어서 마음이 통달하여 위축되지 않으면, 이것이 곧 반야바라밀이니라. 그와 같은 모든 법은 일체의 범부들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니,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중생들을 위하여 단나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4념처에서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 실천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이 그와 같이 배우면 온갖 법 가운데서 지력과 무소외를 얻느니라. 그와 같이 배우는 것을 일체 중생들의 마음이 달리는 곳을 요달하여 안다고 하느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대지의 적은 부분에서 금과 은과 진귀한 보배가 나는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야,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아 적은 수의 사람만이 능히 반야바라밀을 배우고, 대부분의 사람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지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적은 사람이 전륜성왕의 업을 받아 실천하고 많은 사람은 소왕의 업을 받아 실천하는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적은 중생들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살바야를 구하고, 많은 중생들은 성문이나 벽지불도를 행하느니라.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마음을 일으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가운데서 설한 대로 실천하는 이는 적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머무는 이는 많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있지만 방편의 힘이 없는 까닭에 적은 사람이 아유월치의 경지에 머무느니라. 수보리야, 이러한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불퇴전지에 머물고자 하고 불퇴전지의 범주 중에 들고자 하면, 마땅히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때에 아끼고 탐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파계와 화냄과 게으름과 산란함과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다른 많은 허물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물질의 모습에 집착하는 마음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마음에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모습에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행하지만 법에는 얻을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얻을 수가 없기 때문에 모든 법에 있어서 모습에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그와 같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모든 바라밀을 모두 포섭하고, 모든 바라밀로 하여금 늘어나게 하며, 모든 바라밀을 모두 따르게 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은 모든 바라밀을 모두 가운데에 들여놓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나라는 견해 가운데에 예순두 가지 견해를 모두 포섭하는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은 모든 바라밀을 모두 포섭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사람이 죽으면 명근이 없어지는 까닭에 다른 감각기관이 모두 따라서 없어지는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향하여 갈 때에 모든 바라밀이 모두 따르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모든 바라밀로 하여금 피안으로 건네주고자 하면 마땅히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배우는 보살마하살은 일체 중생들의 위에 나서니,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천대천국토 안에는 중생이 많더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한 염부제 안에 있는 중생도 오히려 많은데, 어찌 하물며 삼천대천국토이겠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삼천대천국토 안에 있는 중생들이 일시에 모두 사람 몸을 얻어서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데, 만약 어떤 보살이 목숨을 다하여 거기 계시는 부처님께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ㆍ생활필수품을 공양한다고 하자.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이러한 인연으로서 복덕을 얻는다면 많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매우 많을 것입니다. 매우
많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배우고 설한 대로 실천하며 바르게 억념하여 얻는 많은 복에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세력이 있어서 능히 단나바라밀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이러한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일체 중생들의 위에 나서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하느니라. 구호처가 없는 중생을 위하여 구호처가 되고자 하고, 귀의처가 없는 중생을 위하여 귀의처가 되고자 하고, 구경도(究竟道)가 없는 중생을 위하여 구경도가 되고자 하고, 눈 먼 자를 위하여 눈이 되고자 한다면 역시 그와 같으니라.
부처님의 공덕을 얻고자 하고 모든 부처님이 자재롭게 노니시는 것을 얻고자 하고, 모든 부처님의 사자후를 이루고자 하고 부처님의 종과 북을 치고자 하고, 부처님의 피리를 불고자 하고 부처님의 높은 자리에 앉아서 법을 설하고자 한다면 역시 그와 같으니라. 또한 온갖 중생들이 의심을 끊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만약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모든 착한 공덕이 일로서 얻지 못하는 것이 없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오히려 다시 성문이나 벽지불의 공덕을 얻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문이나 벽지불의 공덕도 모두 얻지만 단지 그 가운데 머물지 않을 뿐이다. 지혜로서 관찰하고 나서 바로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넘어 보살의 지위에 드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배우면 살바야에 다가가서 신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배우면 일체 세간의 하늘ㆍ인간ㆍ아수라를 위하여 복전을 짓는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배우면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의 복전 위를 지나서 신속히 살바야에 다가서니,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배우는 것을 반야바라밀을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으며, 항상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것이 불퇴전의 보살이고 신속히 살바야에 다가서고 성문이나 벽지불을 멀리 떠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다가가느니라.
수보리야, 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만일 ‘이것은 반야바라밀이다. 나는 이 반야바라밀로써 일체종지를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생각을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하지는 않느니라.
그러나 수보리야, 만일 ‘이것이 반야바라밀이고 이 사람에게는 반야바라밀이 있다. 이것이 반야바라밀의 법이고 이 사람은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말하느니라.
그리고 수보리야, 보살이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이러한 반야바라밀은 없고 사람에게 이러한 반야바라밀이 있을 리 없으며, 이러한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자도 있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온갖 법의 여와 법성과 실제는 상주하기 때문이니라.’
만일 이렇게 생각하여 실천한다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말하느니라.”

64. 정원품(淨願品)거란본에는 수희품(隨喜品)으로 되어 있음

그때 석제환인이 이렇게 생각했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
단나바라밀 내지 18불공법을 행할 때에 온갖 중생들의 위에 나서는데, 어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이겠는가.
이 온갖 중생들로서 이 살바야를 듣고 믿고 이해하는 자는 사람들 가운데서 좋은 이익과 수명 중에 최상의 것을 얻는데, 어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겠는가. 이 중생들이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면 그 나머지 중생들은 그것을 원하고 즐거워해야 하리라.’
그때 석제환인은 천상의 만다라꽃을 가지고 부처님 위에 흩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복덕으로서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이가 있다면 이 사람은 불법을 구족하게 되고 살바야를 구족하게 되며 자연법을 구족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성문의 법을 구하는 자는 성문의 법을 구족하게 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면 저는 끝까지 일념을 일으켜서 그로 하여금 전향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저는 또한 일념을 일으켜서 그로 하여금 오로지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모든 보살들이 더욱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있어서 정진할 것을 원합니다. 그리고 중생들이 생사 가운데서 여러 가지로 고뇌하는 것을 보고 일체 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를 이익되게 하고자 원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이렇게 원을 세웁니다.
‘나는 이미 스스로 건넜으니, 아직 건너지 못한 자를 건너게 해야 한다. 나는 이미 스스로 해탈했으니, 아직 해탈하지 못한 자를 해탈하게 해야 한다. 나는 이미 안온함을 얻었으니, 아직 안온하지 못한 자를 안온하게 해야 한다. 나는 이미 멸도에 들었으니, 아직 멸도에 들지 못한 이가 멸도를 얻게 해야 한다.’
세존이시여, 선남자ㆍ선여인은 처음으로 뜻을 일으킨 보살의 공덕을 수희(隨喜)하는 마음에 의하여 얼마만큼의 복덕을 얻는지요? 구발의(久發意)
보살의 공덕을 수희하는 마음에 의하여 얼마만큼의 복덕을 얻는지요? 불퇴전지 보살의 공덕을 수희하는 마음에 의하여 얼마만큼의 복덕을 얻는지요? 일생보처 보살의 공덕을 수희하는 마음에 의하여 얼마만큼의 복덕을 얻는지요?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사천하 국토는 무게를 달아서 알 수 있어도 이 수희하는 복덕은 헤아릴 수가 없느니라.
또한 교시가야, 삼천대천국토는 모두 무게를 달아서 알 수 있어도 이 수희하는 마음의 복덕은 헤아릴 수가 없느니라.
또한 교시가야, 삼천대천국토 가운데에 가득한 바닷물이 있는데, 한 터럭을 가지고 그것을 나누어 백 조각으로 만드느니라. 그리고 그 한 조각 터럭으로서 모든 바닷물을 다 찍어내어 그 찍어낸 방울의 수효는 알 수 있어도 이 수희하는 마음의 복덕은 수효를 알 수가 없느니라.”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중생 중에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수희하지 않는 자는 모두가 악마의 권속입니다. 마음으로 수희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악마 가운데에 있다가 여기에 태어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수희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모든 보살은 악마의 국토를 파괴하기 위하여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삼존(三尊)을 사랑하고 존경하고자 하는 자는 수희하는 마음을 내어야 하고, 수희하고 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하니,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교시가야, 만일 어떤 사람이 보살의 공덕에 대하여 마음으로 능히 그와 같이 수희하고 회향하면 항상 모든 부처님을 뵙고 결코 나쁜 물질을 보지 않고, 결코 나쁜 소리를 듣지 않으며, 결코 나쁜 냄새를 맡지 않고, 결코 나쁜 맛을 맛보지 않으며, 결코 나쁜 촉감에 닿지 않고, 결코 나쁜 사념에 따르지 않느니라.
그리하여 줄곧 모든 부처님을 멀리 떠나지 않고 한 부처님 나라에서 다른 한 부처님 나라에 이르러 모든 부처님을 가까이하고 선근을 심는다. 왜냐하면
선남자ㆍ선여인은 한량없는 아승기의 처음으로 뜻을 일으킨 보살들을 위하여 모든 선근을 수희하여 회향하였고, 나아가 한량없는 아승기의 둘째 경지, 셋째 경지 내지 열 번째 경지 및 일생보처(一生補處)의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선근을 수희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했기 때문이니라. 이러한 선근의 인연으로 신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다가가고, 이 모든 보살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나서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의 중생들을 제도하느니라.
교시가야, 이러한 인연으로 선남자ㆍ선여인은 처음으로 뜻을 일으킨 보살의 선근에 대하여 수희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하지만, 마음에서도 아니고 마음을 떠난 것에서도 아닌 것이다. 나아가 구발의 보살과 불퇴전지 보살과 일생보처 보살의 선근에 대하여 수희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하지만 마음에서도 아니고 마음을 떠난 것에서도 아닌 것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마음은 환영과 같은데, 어찌하여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대는 이 마음이 환영 같음을 보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환영을 보지 못하며, 또한 마음이 환영 같음을 보지 못합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환영이 없고 마음의 환영 같음이 없다면 그대는 이 마음을 보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환영을 떠나고 마음의 환영 같음을 떠나고서도 그대는 오히려 법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 있다고 보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환영을 떠나고 마음의 환영 같음을 떠나고서는 결코 법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 있다고 보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히려 법이 있음을 보지 못하는데, 무슨 법을 두고 있다거나 혹은 없다고 말하는지요? 이 법이 모습은 필경 여의는 까닭에 있음에도 떨어지지 않고 없음에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법이 필경에 여읜다고 한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으니, 무소유법이란 결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일체법은 있는 바가 없어서 이러한 가운데에 더러움이란 것도 없고 청정함이란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까닭에 반야바라밀은 필경에는 여의는 것입니다. 선나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단나바라밀도 필경에 여의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또한 필경에 여읩니다. 만일 법이 필경에 여읜다면 곧 닦을 수도 없고 파괴할 수도 없습니다.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해도 법으로 얻을 것이 있을 수 없으니 필경에 여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반야바라밀이 필경리라면 어떻게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지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또한 필경에 여의니, 두 가지 떠난 것 가운데서 어떻게 능히 얻을 바가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이 반야바라밀은 필경에 여의고 선나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단나바라밀도 필경리이고, 나아가 일체종지도 필경에 여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반야바라밀이 필경에
여의고 나아가 일체종지도 필경에 여읜다면, 오히려 그러한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반야바라밀이 필경에 여의지 않고, 나아가 일체종지도 필경에 여의지 않는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이라고 말하지 않고 선나바라밀 내지 일체종지라고 말하지 않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반야바라밀이 필경에 여의고, 나아가 일체종지도 필경에 여읜다면, 그러한 까닭에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에 의하지도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도 아니니라. 또한 떠난 것으로서 떠난 것을 얻지는 못하지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은 반야바라밀에 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행하는 의미는 매우 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행하는 의미는 심오하니라.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능히 어려운 일을 하니, 이른바 이 깊은 의미를 행하되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증득하지는 않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을 따라서 들은 의미대로라면 보살마하살이 행하는 것을 어렵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이런 의미를 얻어서 증득하지 못하고, 또한 반야바라밀을 얻어서 증득하지도 못하며, 또한 증득하는 이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온갖 법을 얻을 수 없다면, 무엇이 이런 이치이기에 증득할 수 있고, 무엇이 반야바라밀이기에 증득하게 되며, 누가 증득하는 이이기에 증득한 뒤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지요? 세존이시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얻을 수 없는 행[無所得行]이라고 말합니다. 보살은 이것을 행하여 온갖 법의 어느 것에 대해서도 명료함을 얻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법을 듣고서도 그 마음이 놀라지 않고 위축되지도 않으며 겁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이것을 일컬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합니다. 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저는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보지 않으며, 또한 이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고, 또한 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얻는 것을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는 나와 거리가 멀고, 살바야는 나와 거리가 가깝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건대 마치 허공이 ‘어떤 것이 나와 거리가 멀고, 나와 거리가 가깝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허공은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도 또한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는 나와 거리가 멀고, 살바야는 나와 거리가 가깝다’라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 가운데는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건대 마치 환인이 ‘환술사[幻師]는 나와 거리가 가깝고, 관중[觀人]들은 나와 거리가 멀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환인은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도 또한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는 나와 거리가 멀고, 살바야는 나와 거리가 가깝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 가운데는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건대 마치 거울 속의 상[鏡中像]이 ‘나를 비쳐주는 것은 나와 거리가 가깝고, 다른 것은 나와 거리가 멀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림자는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도 또한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는 나와 거리가 멀고, 살바야는 나와 거리가 가깝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 가운데는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사랑도 없고 증오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자기 성품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건대 마치 부처님께서는 사랑도 없고 증오도 없는 것과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이 사랑도 없고
증오도 없는 것이 또한 그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 가운데는 사랑도 없고 증오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건대 마치 부처님께서 일체의 분별과 생각을 끊은 것과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도 또한 그와 같이 일체의 분별과 생각을 끊었으니 필경공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건대 마치 부처님께서 화작해 낸 사람은 ‘성문이나 벽지불은 나와 거리가 멀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나와 거리가 가깝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화작해 낸 사람은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도 또한 ‘성문이나 벽지불은 나와 거리가 멀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나와 거리가 가깝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건대 마치 하고자 함이 있는 까닭에 화작해 내지만 화작해 낸 일은 분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도 또한 그와 같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어서 이 일을 닦아 구족하지만 반야바라밀은 또한 분별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건대 마치 대장장이나 혹은 그의 제자들이 하고자 함이 있는 까닭에, 나무로 남자나 여자, 또는 코끼리ㆍ말ㆍ소ㆍ양을 만들고 이 만들어진 것들이 능히 작용하지만 이 소나 말도 또한 분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도 또한 그와 같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어서 이 일을 설하여 구족하지만 반야바라밀은 또한 분별이 없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단지 반야바라밀만이 분별이 없는지요? 선나바라밀 내지 단나바라밀도 또한 분별이 없는지요?”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선나바라밀도 분별이 없고, 나아가 단나바라밀도 또한 분별이 없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물질이 분별이 없고, 나아가 식도 또한 분별이 없고, 눈 내지 의지도 분별이 없고, 색 내지 법도 분별이 없습니다.
안식 내지
의식도 분별이 없고 안촉 내지 의촉, 안촉에서 생한 느낌 내지 의촉에서 생한 느낌, 그리고 4선ㆍ4무량심ㆍ4무색정 그리고 4념처 내지 8성도분도 분별이 없습니다.
공과 무상과 무작 그리고 부처님의 10력ㆍ4무소외ㆍ4무애지, 그리고 대자대비와 18불공법도 분별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무위성도 또한 분별이 없습니다.”
“수보리여, 만일 물질이 없고, 나아가 무위성이 분별이 없다면 그래서 온갖 법에 분별이 없다면 어찌하여 6도에서 생사하는 분별이 있는지요? 이것은 지옥, 이것은 아귀, 이것은 축생, 이것은 천상, 이것은 인간, 이것은 아수라라고 하는지요? 어찌하여 이것은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 그리고 모든 부처님이라고 분별하는지요?”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대답했다.
“중생들은 전도된 여인으로 말미암아 몸과 말과 뜻으로 업을 짓고 본래의 업보에 따라서 6도에서 받는 몸인 지옥ㆍ아귀ㆍ축생ㆍ천상ㆍ인간ㆍ아수라의 몸을 받는 것입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라면 어찌하여 수다원 내지 불도의 분별이 있는지요?”
“사리불이여, 수다원은 이것이 곧 분별이 없는 까닭에 있고, 수다원의 과위도 또한 분별이 없는 까닭에 있고, 나아가 아라한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ㆍ벽지불도ㆍ부처님ㆍ불도도 또한 분별이 없는 까닭에 있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또한 이렇게 분별이 없고 분별을 끊은 까닭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사리불이여, 온갖 법은 분별이 있을 수 없다고 알아야 하니 무너지지 않는 모습이고 모든 것이 진실 된 모습, 진실의 본성, 참된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그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분별이 없는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분별이 없는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나서 곧 분별이 없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입니다.”

65. 도공품(度空品)거란본에는 칭양품(稱揚品)으로 되어 있음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진실로 있는 법을 행한다고 하는지요? 아니면 진실로 없는 법을 행한다고 하는지요?”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대답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실로 없는 법을 행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은 진실이 없고, 나아가 일체종지는 진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도 진실로 없어서 얻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어찌 실로 있는 것이겠습니까. 나아가 일체종지를 행함도 진실로 없는 법이어서 얻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어찌 실로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때 욕계의 많은 천자들이 이렇게 생각했다.
‘모든 선남자ㆍ선여인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켜서 심오한 반야바라밀에서 설한 의미처럼 행하여, 동등한 법에 대하여 실제를 증득하지 않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지지 않으면 그들에게 경례해야 한다.’
수보리가 모든 천자들에게 말했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동등한 법에 대하여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증득하지 않는 것을 어렵다고 하지 않으니, 모든 보살마하살은 크게 장엄하여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의 중생들을 제도해야 한다. 중생들이 끝내 얻을 수가 없는 것임을 알지만 그러나 중생들을 제도하니 이것이 곧 어려운 것이다.’
모든 천자들이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켜서 ‘나는
온갖 중생들을 제도해야겠다’라는 원을 세웁니다.
중생들은 진실로 얻을 수가 없으니, 이 사람이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하는 것은 허공을 제도하고자 함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허공은 떠남인 까닭이니, 중생도 떠남이라고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허공은 공인 까닭이니, 중생도 공이라고 알아야만 합니다. 허공에 견고함이 없으니, 중생에도 또한 견고함이 없다고 알아야만 합니다. 허공이 허광(虛誑)하니, 중생도 또한 허광하다고 알아야만 합니다.
모든 천자들이여, 이러한 인연을 가진 까닭에 알아야 하니, 보살이 행하는 것을 어렵다고 합니다. 무소유의 중생들을 위하여 크게 장엄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중생들을 위하여 서원을 세워서 허공과 더불어 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보살은 서원을 세우고 나서도 또한 중생들을 얻지 않지만, 중생들을 위하여 서원을 세운다. 왜냐하면 중생이 떠남인 까닭이니, 큰 서원도 또한 떠남이라고 알아야만 합니다. 중생이 허광한 까닭이니, 큰 서원도 또한 허광하다고 알아야만 합니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깊은 법을 듣고서 마음에 놀라지도 않고 위축되지도 않으며 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왜냐하면 물질을 떠남이 바로 중생을 떠남이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떠남이 바로 중생을 떠남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을 떠남이 바로 6바라밀을 떠남이고, 나아가 일체종지를 떠남이 바로 6바라밀을 떠남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온갖 법의 떠난 모습에 관해 듣고서 마음에 놀라지도 않고 위축되지도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는다면 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인연에 의하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마음이 위축되지 않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무소유인 까닭에 위축되지 않고, 반야바라밀은
떠남인 까닭에 위축되지 않고, 반야바라밀은 적멸인 까닭에 위축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인연으로 보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마음이 위축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보살은 위축되는 자를 얻지 않고 위축되는 일을 얻지 않으며 위축되는 장소를 얻지 않으니, 이러한 온갖 법은 모두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 법을 듣고서 마음에 놀라지도 않고 위축되지도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는다면 알아야 하니, 이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위축되는 자와 위축되는 일과 위축되는 장소, 이러한 것은 모두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모든 하늘 및 석제환인의 하늘들과 범천왕의 하늘들과 세계주(世界主)의 하늘들이 모두 경례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단지 석제환인이 모든 하늘과 범왕 등의 모든 하늘과 세계주 등의 모든 하늘만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이 보살마하살을 경례할 뿐만 아니라, 이 위를 초과하여 광음천ㆍ변정천ㆍ광과천ㆍ정거천이 모두 이 보살마하살을 경례하느니라.
수보리야, 지금 현재 시방에 계시는 무량한 모든 부처님도 또한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마하살을 사념하시느니라. 알아야 하니, 이 보살을 부처님처럼 여기시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국토에 있는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악마가 되고, 그 하나하나의 악마가 다시 악마들을 화작하여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악마가 된다고 해도, 그러한 모든 악마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에 장애를 남길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두 가지 법을 성취하면 악마가 파괴할 수 없느니라. 무엇이 두 가지인가? 온갖 법의 공을 관찰함과 온갖 중생들을 버리지 않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이 이 두 가지 법을 성취하면 악마가 파괴할 수 없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다시 두 가지 법을 성취하면 악마가 파괴할 수 없느니라. 무엇이 두 가지인가? 말한 대로 행하는 것과 모든 부처님이 사념하는 자가 되느니라. 보살이 이 두 가지 법을 성취하면 악마가 파괴할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그와 같이 행하면 이러한 모든 하늘들이 모두 보살이 있는 곳에 찾아와서 가까이하여 자문하고 권유하며, 안정시키고 위로하면서 이렇게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선남자여, 그대는 항상 공과 무상과 무작의 수행을 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남자여, 그대가 이러한 수행을 행하면 수호받지 못하는 중생을 위하여 그대는 수호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지처가 없는 중생을 위하여 그대는 의지처가 되고, 구호받지 못하는 중생을 위하여 구호처가 되며, 구경도(究竟道)가 없는 중생을 위하여 구경도가 되고, 귀의처가 없는 중생을 위하여 귀의처가 되며, 섬이 없는 중생을 위하여 섬이 되고, 어두운 자를 위하여 밝음이 되며, 눈먼 자를 위하여 눈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시방에 계시는 현재의 한량없는 아승기의 모든 부처님께서 대중 속에서 법을 설하실 때에 스스로 이 보살마하살의 이름과 성씨를 찬탄하고 칭찬하여 ‘이러이러한 보살은 반야바라밀의 공덕을 성취한다’고 말씀하시느니라. 그것은 수보리야, 내가 지금 법을 설할 때에 스스로 보상(寶相)보살과 시기(尸棄)2)보살을 칭찬하고 있으니, 그와 같은 것이다.
또한 어떤 모든 보살마하살은 아촉불(阿閦佛)의 국토에서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범행을 청정하게 수행하니, 내가 또한 이 보살의 이름과 성시를 칭찬하느니라. 수보리야, 또한 동방에 계시는 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실 때에 이 가운데서 어떤 보살마하살이 범행을 청정하게 수행하면, 부처님께서도
또한 환희하여 스스로 이 보살을 찬탄하고 칭송하며 고무시키고 있으니, 그와 같이 남ㆍ서ㆍ북 방과 그 사이 네 방향과 상하에 있어서도 찬탄하고 칭송하며 고무시키느니라.
또한 어떤 보살은 처음으로 뜻을 일으킨 때부터 불도를 구족하고, 나아가 일체종지를 얻고자 하니, 모든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실 때에 또한 환희하여 스스로 이 보살을 찬탄하고 칭송하며 고무시키신다. 왜냐하면 이 모든 보살마하살이 행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고 부처님의 씨앗과 행을 끊지 않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실 때에 어떤 보살마하살을 스스로 칭송하고 찬탄하고 고무시키시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아유월치의 보살을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실 때에 스스로 찬탄하고 칭송하고 고무시키느니라.”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불퇴전지에 있는 어떤 보살이 부처님의 칭송과 찬탄을 받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촉불이 보살이었을 때에 행하고 배웠던 것처럼 모든 보살이 또한 그와 같이 배우면 이 모든 아유월치의 보살들을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실 때에 환희하여 찬탄하시느니라.
또 수보리야, 어떤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온갖 법이 본래 생함이 없다는 것을 신해(信解)하지만 아직 무생법인을 얻지 못했고, 온갖 법이 공임을 신해하지만 아직 무생법인을 얻지 못했으며, 온갖 법이 허광하고 부실하고 무소유이고 견고하지 않음을 신해하지만 아직 무생법인을 얻지 못했느니라. 수보리야, 이러한 모든 보살마하살을 모든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실 때에 환희하여 스스로 그 이름을 칭송하고 찬탄하고 고무시키신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모든 보살마하살을 모든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실 때에 환희하여 스스로 칭송하고 찬탄하신다면, 이 보살들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없애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을 모든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실 때에
환희하시면, 이 보살은 아유월치의 경지에 머물게 되리라. 이 경지에 머물고 나서 반드시 살바야를 얻을 것이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들을 때에 그 마음이 명료하고 예리해져 의심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으며 생각하기를 ‘이 일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고 한다면 이 보살도 또한 아촉불과 모든 보살의 처소에서 널리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듣고서 또한 신해하리라. 신해하고 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유월치의 경지에 머물 것이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단지 반야바라밀을 듣는 것만으로도 큰 이익을 얻는다. 그런데 신해하고, 신해하고 나서 설한 대로 머물며, 설한 대로 행하느니라. 그리고 설한 대로 머물고, 설한 대로 행하고 나서 일체종지에 머무는 것은, 그 이익을 말할 필요가 없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가령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보살마하살이 말씀대로 머물고 말씀대로 행하여 살바야에 머문다고 해도, 만약 보살마하살이 얻을 법이 없다면 어떻게 살바야 머무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의 여(如) 가운데에 머물러서 살바야에 머무느니라.”
렸다.
“세존이시여, 여를 제하고 다시 얻을 법이 없는데, 누가 여 가운데 머물고 여 가운데에 머물고 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지요? 누가 여 가운데서 머물러서 법을 설하는지요? 여도 역시 얻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어찌 여에 머물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지요? 누군가 여 가운데 머물러서 법을 설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말하기를 ‘여를 제하고 다시 법이 없는데, 누가 여 가운데에 머물고 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지요? 누가 여 가운데서 머물러서 법을 설하는지요? 여도 역시 얻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어찌 여에 머물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지요? 누군가 여 가운데 머물러서 법을 설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구나.”
다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여를 제하고 다시 얻을 법이 있을 수 없고, 누가 여 가운데서 머물고, 여 가운데 머물고 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느냐? 누가 여 가운데 머물러서 법을 설하겠느냐? 여도 역시 얻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어찌 여에 머물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느냐? 누가 여 가운데 머물러서 법을 설하겠느냐?
왜냐하면 이 여는 생함을 얻을 수가 없고 멸함을 얻을 수가 없으며, 머물렀다가 달라짐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만약 법에 생함과 멸함, 머묾과 달라짐을 얻을 수가 없다면 이 가운데서 누가 여에 머물고, 누가 여에 머물고 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누가 여에 머물러서 법을 설하겠느냐? 그러한 경우는 결코 있을 수가 없느니라.”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참으로 어려운 일을 행하고자 하며, 심오한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여 가운데 머무는 자도 있을 수 없고,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자도 없으며, 또한 법을 설하는 자도 없지만, 보살마하살은 이곳에서 마음으로 놀라지도 않고 위축되지도 않으며, 무서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의심하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말했다.
“교시가여, 그대는 보살마하살이 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서 이 심오한 법 가운데서 마음으로 놀라지도 않고 위축되지도 않으며 무서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의심하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교시가여, 모든 법이 공인 가운데서 누가 놀라고 누가 위축되며, 누가 무서워하고 누가 두려워하며, 누가 의심하고 누가 후회하는지요?”
이때 석제환인이 수보리에 말했다.
“수보리께서 설하는 것은 공의 도리로서 하나 걸림이 없으십니다.
비유하건대 마치 공중을 향하여 화살을 쏘아 올리니 화살이 걸림이 없는 것과 같으니, 수보리께서 설하시는 법에 걸림이 없음도 실로 그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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