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594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57권

by Kay/케이 2024. 1. 15.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57

 

대보적경 제57권


대당 삼장 의정(義淨) 한역
송성수 번역


14. 불설입태장회 ②

그때 세존께서 다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태 속에서의 고통과 태어날 때의 고통을 이미 알았으니, 마땅히 범인의 태를 받아 나는 것은 극히 괴로운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리고 처음 태어날 때에 남자이건 여인이건 남의 손에 들어가면 옷에 싸여 있기도 하고 혹은 햇볕에 있기도 하고 혹은 그늘진 곳에 있기도 하고, 혹은 흔들리는 수레에 놓이기도 하고 혹은 평상이나 품에 안겨 있기도 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모지고 독한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난타야, 마치 가죽을 벗긴 소를 담에다 바짝 붙여서 매놓았을 때에 담의 벌레에 뜯기는 것과도 같고 또 나무나 풀에 가까이 두면 나무나 풀의 벌레가 뜯어먹으며, 빈곳에 놓아두어도 다른 벌레들이 쪼아먹어서 이 모든 고통을 받게 되는 것처럼 처음 태어난 때에도 그러하느니라.
따뜻한 물로 씻을 때에도 큰 고통을 받게 되나니, 마치 문둥이의 피부가 문드러지고 피와 고름이 줄줄 흐르는데 게다가 몽둥이로 맞아 모진 고통을 받는 것과 같으니라. 그리고 태어난 뒤에는 어머니 피 찌꺼기[血垢]를 마시면서 자라게 되나니, 피 찌꺼기라 함은 거룩한 법률 속의 젖즙이 바로 그것이니라.
난타야, 이미 이와 같은 갖가지 고통이 있어서 하나도 즐거워할 만한 것이 없거늘 지혜 있는 이라면 어느 누가 이런 고통의 바다를 좋아하며 그리워하겠느냐? 언제나 유전(流轉)하면서 휴식함이 없느니라. 그리고 태어나 7일이 된 뒤에는 몸 안에 8만 마리의 벌레가 생겨나서 뜯어먹게 되느니라.
난타야, 식발(食髮)이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머리 뿌리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항상 머리 뿌리를 뜯어먹고 복장(伏藏)이라는 벌레와 추두(麤頭)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머리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항상 그 머리를 뜯어먹으며, 요안(繞眼)이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눈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항상 눈을 뜯어먹고 구축(驅逐)이라는 벌레와 분주(奔走)라는 벌레와 옥택(屋宅)이라는 벌레와 원만(圓滿)이라는 이 네 마리의 벌레는 뇌(腦)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항상 뇌를 뜯어먹느니라.
또 도엽(稻葉)이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귀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귀를 뜯어먹고 장구(藏口)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코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코를 뜯어먹으며, 요척(遙擲)이라는 벌레와 변척(遍擲)이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입술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입술을 뜯어먹고 밀엽(蜜葉)이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이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이를 뜯어먹으며, 목구(木口)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이 뿌리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이 뿌리를 뜯어먹느니라.
또 침구(針口)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혀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혀를 뜯어먹고 이구(利口)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혀의 뿌리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혀의 뿌리를 뜯어먹으며, 수원(手圓)이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턱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턱을 뜯어먹고 또 수망(手網)이라는 벌레와 반굴(半屈)이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손바닥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손바닥을 뜯어먹느니라.
또 단현(短懸)이라는 벌레와 장현(長懸)이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팔뚝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팔뚝을 뜯어먹고 원비(遠臂)라는 벌레와 근비(近臂)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팔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팔을 뜯어먹으며, 욕탄(欲呑)이라는 벌레와 이탄(已呑)이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목구멍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목구멍을 뜯어먹고 유원(有怨)이라는 벌레와 대원(大怨)이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가슴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가슴을 뜯어먹느니라.
또 나패(螺貝)라는 벌레와 나구(螺口)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살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살을 뜯어먹고 유색(有色)이라는 벌레와 유력(有力)이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피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피를 빨아먹으며, 용건(勇健)이라는 벌레와 향구(香口)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힘줄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힘줄을 뜯어먹고 불고(不高)라는 벌레와 하구(下口)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등골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등골을 뜯어먹느니라.
똑같은 이름의 지색(脂色)이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비계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비계를 뜯어먹고 황색(黃色)이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황(黃)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황을 뜯어먹으며, 진주(眞珠)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콩팥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콩팥을 뜯어먹고
대진주(大眞珠)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허리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허리를 뜯어먹느니라.
또 미지(未至)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지라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지라를 뜯어먹고 수명(水命)이라는 벌레와 대수명(大水命)이라는 벌레와 침구(針口)라는 벌레와 도구(刀口)라는 네 마리의 벌레는 장(腸)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장을 뜯어먹으며, 월만(月滿)이라는 벌레와 월면(月面)이라는 벌레와 휘요(暉曜)라는 벌레와 휘면(暉面)이라는 벌레와 별주(別住)라는 다섯 마리의 벌레는 오른쪽 겨드랑이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오른쪽 겨드랑이를 뜯어먹느니라.
또 이름이 위의 것과 같은 다섯 마리의 벌레가 역시 왼쪽 겨드랑이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왼쪽 겨드랑이를 뜯어먹고, 또 천전(穿前)이라는 벌레와 천후(穿後)라는 벌레와 천견(穿堅)이라는 벌레와 천주(穿住)라는 네 마리의 벌레는 뼈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뼈를 뜯어먹으며, 대백(大白)이라는 벌레와 소백(小白)이라는 벌레와 중운(重雲)이라는 벌레와 취기(臭氣)라는 네 마리의 벌레는 맥(脈)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맥을 뜯어먹느니라.
또 사자(師子)라는 벌레와 비력(備力)이라는 벌레와 급전(急箭)이라는 벌레와 연화(蓮花)라는 네 마리의 벌레는 생장(生藏)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생장을 뜯어먹고, 안지(安志)라는 벌레와 근지(近志)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숙장(熟藏)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숙장을 뜯어먹으며, 염구(鹽口)라는 벌레와 온구(蘊口)라는 벌레와 망구(網口)라는 벌레와 작구(雀口)라는 네 마리의 벌레는 소변보는 곳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오줌을 먹고사느니라.
또 응작(應作)이라는 벌레와 대작(大作)이라는 벌레와 소형(小形)이라는 벌레와 소속(小束)이라는 네 마리의 벌레는 대변보는 곳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똥을 먹고살고, 흑구(黑口)라는 벌레와 대구(大口)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넓적다리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넓적다리를 뜯어먹고, 나(癩)라는 벌레와 소라(小癩)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무릎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무릎을 뜯어먹으며, 우근(愚根)이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종아리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종아리를 뜯어먹고, 흑항(黑項)이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다리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다리를 뜯어먹느니라.
난타야, 이와 같이 몸은 몹시 싫증나고 근심되는 이러한 종류를 지니고서 항상 8만 마리의 벌레들이 밤낮으로 뜯어먹고 있으므로 이로 말미암아 몸이 몹시 시달리고
파리해지고 피곤하고 배고프고 목마르게 되는 것이요, 또 마음에는 갖가지 고뇌가 있어서 근심 걱정과 기절하는 등의 많은 병이 나타나게 되나니, 좋은 의사로서 이런 병을 고칠 수 있는 이는 없느니라.
난타야, 큰 존재[有]의 나고 죽는 바다 가운데서는 이러한 고통이 있는 것이거늘 어떻게 여기에서 좋아하는 마음을 내겠느냐?
또 모든 신(神)의 병에 붙들리기도 하느니라. 이른바 천신(天神)․용신(龍神)의 8부신(部神)에게 붙들리기도 하고 모든 귀신과 나아가 갈타포단나(羯吒布單那)와 그 밖의 모든 길짐승․날짐승이며 모든 도깨비에게 붙들리기도 하며, 혹은 해와 달과 별에서 액(厄)을 주는 등 이러한 귀신들이 모든 병환을 주기도 하며 몸과 마음을 핍박하고 괴롭히는 것이니, 이루 다 설명하기조차 어려우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그 누가 나고 죽는 어머니의 태 속으로 들어가 극심한 고통을 받기 좋아하겠느냐? 이와 같이 태어나서 자랄 때에 어머니의 피젖을 마시고 모든 음식을 먹으면서도 허망하게 맛있다는 생각을 내면서 점차로 장성하기에 이르는 것이니,
가령 이 몸이 안락하고 병이 없으며 옷과 밥이 족하여 100살 동안을 산다 해도 이 사는 동안에 잠을 자면서 그 반은 지나가고, 처음은 젖먹이였고 다음에는 어린 아이였다가 점차로 성장하기에 이르기까지 근심과 슬픔과 환난과 많은 병에 핍박을 받고 한량없는 모든 고통이 그 몸을 괴롭히는 것들은 말로는 다하기 어려우니라. 몸 안의 모든 고난을 참고 받을 때에도 더 살고 싶지 않고 죽기를 바라게 되나니, 이와 같은 몸은 고통만 많고 쾌락은 적은 것이라 비록 또 잠시 동안 있다고 해도 반드시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이니라.
난타야, 나는 것은 모두 죽고 항상하지 못하나니, 가령 약과 음식[藥食]으로 보양하면서 수명을 늘려 오래 살고자 해도 마침내는 죽는 것이어서 사왕(死王)의 죽임을 면치 못하며 빈 밭[空田]으로 보내지느니라.
그러므로 산다는 것이 즐거울 수 없음을 알아야 하리니, 오는 세상의 양식을 부지런히 쌓으면서 방일(放逸)하지 말고 범행을 힘써 닦으면서 게으르지 말지니라. 모든 이로운 행과 법다운 행과
공덕이 되는 행과 순전히 착한 행을 항상 즐거이 닦아 익히고 한결같이 자기 몸의 선과 악의 두 업을 관찰하여 마음에 매어 두어 뒷날 크게 후회함이 없게 할 것이니, 모든 가지고 있는 사랑스럽고 즐거운 일들은 다 이별하여 선업과 악업에 따라 다음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느니라.
난타야, 100년 동안 수명에는 열 가지의 자리[位]가 있느니라. 처음은 젖먹이의 자리로서 포대기에 누워 있을 때요, 두 번째는 어린 아이로서 아이들과 장난을 즐기는 때며, 세 번째는 소년으로서 모든 욕락(欲樂)을 느끼는 때요, 네 번째는 젊어서 의기가 왕성하고 힘이 많을 때며, 다섯 번째는 한창의 나이로서 지혜가 있고 담론(談論)하는 때요,
여섯 번째는 모든 일을 성취하고 잘 생각하면서 교묘히 계책(計策)을 내는 때며, 일곱 번째는 점점 쇠퇴하면서 법식(法式)을 잘 아는 때요, 여덟 번째는 허물어지면서 모든 일이 쇠약해지는 때며, 아홉 번째는 극히 늙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때요, 열 번째는 100살이 되어 죽게 될 자리이니라.
난타야, 대강 자리를 이렇게 간략히 설명하였지만, 4개월씩을 한 철[時]로 친다면 100년 동안에는 300개의 철이 있어서 봄․여름․겨울에 각각 100씩 있고, 일 년은 12달이라 모두 1,200개의 달이 있으며, 만일 반 달[半月]씩으로 치면 총 2,400개의 반 달이 있고, 세 철[三時] 동안에는 각각 800씩의 반 달이 있으며, 통틀어 말하면 3만 6천의 밤과 낮이 있느니라.
하루에 두 번씩 먹는다 하면, 총 7만 2천 번의 끼니가 되며, 비록 일이 있어서 먹지 않는다 하더라도 역시 그 수(數)에 포함되느니라. 먹지 않게 되는 일이란 성을 내어서 먹지 않고 고통을 만나서 먹지 않으며, 혹은 구하여도 얻을 수 없어서 또는 잠을 자다가 재(齋)를 지내며 들떠 놀다가 먹지 않기도 하고 일에 힘쓰다가 먹지 않기도 하는 따위이니, 먹거나 먹지 않거나 모두 합치면 그만큼의 숫자가 되며 아울러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까지도 포함되느니라. 사람이 사는 100년 동안을 내가 이미 해와 달과 밤과 낮과 그리고 음식 먹는 끼니 수로 자세히 설명하였나니, 너는 마땅히 싫증을 내야 하느니라.
난타야, 이와 같이 태어나서 장대해지기까지 몸에는 많은 병이 있나니
이른바 머리․눈․귀․코․혀․이․목구멍․가슴․배 및 손발에 옴이 오르고 문둥이가 되며, 간질․미치광이․수종(水腫)․기침․풍(風)․황(黃)․열(熱)․음의 여러 가지 병과 학질이며 뼈마디가 쑤시는 등의 고통들이 그것이니라.
난타야, 사람의 몸에는 이와 같은 병이 있지만 또 다른 101가지의 풍병(風病)과 101가지의 황병(黃病)과 101가지의 담음병(痰廕病)과 101가지 합병증(合倂症)의 병이 있어서 모두 404가지의 병이 있나니, 그것은 속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니라.
난타야, 몸은 마치 종기와 같고 화살과 같아서 많은 병으로 이루어져서 잠시도 멈추지 않고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나니, 몸은 곧 덧없고[無常]․괴롭고[苦], 공(空)하고, 나 없는[無我] 것이어서 죽음에 이르는, 부서지고 무너지는 법이라 보존하며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니라.
난타야, 중생이면 모두 다시 이렇게 태어나서 고통을 받게 되나니 이를테면 손과 발․눈․귀․코․혀와 몸뚱이를 잘리기도 하고 또는 옥에 갇히고 칼․쇠사슬․쇠고랑․차꼬를 차고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고달프고 춥고 덥고 비와 눈을 맞으며, 모기․등에․개미에게 뜯기고 바람과 먼지를 뒤집어쓰며 사나운 짐승과 모든 나쁜 접촉을 당하는 등 갖가지의 모든 괴로움은 한량없고 끝이 없어서 자세히 다 말하기 어려우니라.
유정들은 항상 이렇게 굳고 단단한 고통 속에 있으면서 침몰(沈沒)하기를 좋아하며, 모든 하고자 하는 것이 괴로움의 근본인데도 그것을 버릴 줄 모르고 다시 또 추구(追求)하며 밤낮으로 볶여 몸과 마음에 시달림을 당하나니, 이렇게 안에서 일어나는 불길은 한시도 휴식함이 없느니라.
이와 같은 나는 괴로움[生苦]과 늙는 괴로움[老苦]과 병드는 괴로움[病苦]과 죽는 괴로움[死苦]과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괴로움[愛別離苦]과 원수끼리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과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과 다섯 가지 쌓임의 괴로움[五取蘊苦]이며 네 가지 위의 중 가고 서고 앉고 눕는 것 등도 모두가 괴로운 것이니라.
만일 항상 다닌다면 서고 앉고 눕지 못하게 되므로 곧 고통을 받으면서 안락이 없는 것이요, 항상 서 있기만 하면 가고 앉고 눕지 못해서요, 항상 앉아 있기만 하면 가고 서고 눕지 못해서 이며, 누워 있기만 하면 가고 서고 앉지 못하게 되므로 모두가 극심한 고통을 받는 것이어서 안락함이 없느니라.
난타야, 이들 모두는 괴로움을 버리면서 또 다른 괴로움을 구하는 것이어서 오직
괴로움이 생길 뿐이요 그와 다른 괴로움만 없어질 뿐이니, 모든 지어감[行]의 인연은 계속 일어나는 것이니라. 여래는 이를 분명히 알기 때문에 유정의 나고 죽는 법을 말하는 것이니, 모든 지어감은 일정함이 없어서 진실한 마지막[究竟]이 아닌 것이요 이것은 변하고 무너지는 법이라 보전하여 지킬 수 없는 것이니라. 마땅히 만족할 줄 알고 깊이 싫증을 내면서 부지런히 해탈을 구해야 하느니라.
난타야, 착한 세계[善趣] 속에서의 유정의 무리도 태어나는 곳이 깨끗하지 못하고 고통의 극심함이 이러하며 갖가지의 것이 거짓이어서 말로는 다할 수가 없거늘 하물며 세 가지 나쁜 세계[三惡趣]인 아귀(餓鬼)․방생(傍生)․지옥(地獄)의 유정들이 받게 되는 모진 쓰라림과 참기 어려운 괴로움이야 어찌 말로 설명하겠느냐?
또 난타야, 어머니의 태 속에 들어가는 데에는 네 가지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처음은 유정이 바른 기억[正念]으로 들어가고[入] 바른 기억으로 머무르며[住] 바른 기억으로 나오는[出] 것이요, 두 번째는 바른 기억으로 들어가고 바른 기억으로 머무르며 바르지 않은 기억[不正念]으로 나오는 것이며, 세 번째는 바른 기억으로 들어가고 바르지 않은 기억으로 머무르며 나오는 것이요, 네 번째는 모두가 다 바르지 않은 기억인 것이니라.
그 무엇이 바른 기억으로 들어가고 머무르며 나온다 하는가? 마치 어느 한 무리의 범부 유정의 성품이 계율 지니기를 좋아하고 착한 일을 자주 익히며 훌륭한 일을 하기 좋아하여 모든 복된 일을 짓고 극히 잘 방호하여 항상 정직하고 방일하지 않으며, 큰 지혜가 있어서 죽으려 할 때도 후회함이 없이 곧 생(生)을 받나니, 혹 그는 일곱 번을 오가면서 생을 받는 예류(預流)이기도 하고 혹은 가가(家家)로서 혹은 일래(一來)이기도 하고 혹은 일간(一間)이기도 한 이이니라.
이 사람은 먼저 착한 행을 닦았기 때문에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비록 괴로움이 와서 핍박하고 모든 시달림을 받는다 하더라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은 바른 기억에서 마치며, 또 다시 바른 기억으로 어머니의 태 속에 들어가는 것이니, 모든 법은 업을 좇아 나고 모두가 인연(因緣)을 따라 생기며 항상 모든 악마가 머무르는 곳이 되어 준다는 것을 분명하게 아느니라.
난타야,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이 몸은 한결같이 깨끗하지 못한 굴집이요 바탕은 항상 머무르는 것이 아닌데 이
어리석은 물건이 유혹하여 사람을 미혹되게 하여 이 몸에 뼈로써 기관(機關)을 만들고 힘줄과 맥이 서로 연결되어 모든 구멍을 트이게 하였고, 비계와 살과 골수가 함께 서로 얽어맨 데다 가죽으로 그 위를 덮었으므로 그 허물들을 볼 수 없느니라.
뜨거운 굴 속에 깨끗하지 못한 것이 가득히 차있고 머리칼과 털과 손․발톱이 서로 다르게 나누어져 있는데도 나와 내 것을 고집하기 때문에 항상 구속되어 이끌리면서 자재하지 못하며, 언제나 눈물과 침 등 더러운 것이 땀으로 흘러내리고 황수(黃水)와 담음(痰陰)으로 문드러지며 비계․기름․콩팥․쓸개․간․지라․폐․대장․소장과 똥․오줌 등의 미워할 만한 것과 모든 벌레들이 온통 가득히 차 있어서 위아래의 모든 구멍에서 항상 더러운 것이 흐르고 있고 생장(生藏)과 숙장(熟藏)이 얇은 가죽으로 덮여 있으니 이것을 다니는 뒷간[行廁]이라 하는 것이다. 너는 자세히 살필지니라.
무릇 음식을 먹을 때에도 이로 씹고 축축하게 침을 발라서 목구멍으로 삼키며 골수와 뇌가 서로 어울려 진액(津液)을 뱃속으로 흐르게 함이 마치 개가 마른 뼈를 깨물면서 망령되어 맛있다는 생각을 내는 것과 같나니, 음식은 배꼽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도로 다시 삼키는 것이니라.
난타야, 이 몸은 원래 갈라람(羯羅藍)과 알부타(頞部吒)와 폐시(閉尸)와 건남(健南)과 발라사거(鉢羅奢佉)의 부정하고 더러운 물건에서부터 자란 것이요, 젖먹이로 유전(流轉)하여 나아가 늙어 죽음의 윤회(輪廻)에 얽매인 것은 마치 검고 어두운 구덩이와 같고 마치 냄새나고 무너진 우물과 같은데 항상 짜고 싱겁고 쓰고 맵고 신 음식의 맛으로써 돕고 기르고 있느니라.
또 어머니 배 안에서 몸을 태우고 볶이며, 더러운 똥 속에다 항상 뜨거운 고통이 가(加)해지며, 어머니가 가고 서고 앉고 누울 때에는 마치 다섯 개의 줄로 묶인 것과 같고 또한 불로 지지는 것과 같아서 참고 견디기 어려움은 비유조차 할 수 없느니라.
난타야, 저 태 안에서 비록 이러한 똥 찌꺼기의 구덩이 속에 수많은 고통이 절박하다 하더라도 예리한 근기이기 때문에 마음이 산란하지 않은 것이니라.
또 어느 한 무리의 박복(薄福)한 유정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혹은 가로로 혹은 거꾸로 있게 됨은 그가 전생에 지은 업의 인연의 힘 때문이요,
혹은 어머니가 먹은 차고 덥고 짜고 시고 달고 맵고 쓴 음식이 잘 조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며, 혹은 음료수를 너무 많이 마셨거나 혹은 음행을 많이 하였거나 혹은 질병이 많거나 혹은 수심을 풀었거나 혹은 때로 땅에 넘어졌거나 혹은 타박을 당해서이니, 이러한 일들로 말미암아 어머니의 몸에 심한 열이 나고 몸의 열 때문에 태 속도 불이 타게 되며 불이 타기 때문에 모든 고뇌를 받고 이런 고뇌 때문에 곧 움직이게 되며 움직였기 때문에 혹 몸이 가로놓여져 나올 수 없게 되느니라.
이렇게 되면 잘 아는 어떤 여인이 소유(蘇油)를 손에 바르고는 어머니의 뱃속에다 넣어 천천히 태를 만지면서 본래 있던 자리로 놓이게 하나 그 손이 닿을 때에 태 속의 아이는 곧 큰 괴로움을 받게 되느니라.
난타야, 비유하면 마치 어린 사내아이나 계집아이가 날카로운 칼로써 살을 베어 놓고 그 위에다 재를 뿌리면 이로 말미암아 곧 큰 고통이 생기는 것처럼 태 속의 아이의 모진 고통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비록 이런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예리한 근기이기 때문에 바른 기억이 흩어지지 않느니라.
난타야, 이 태아(胎兒)는 이와 같이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에 이러한 고통을 받게 되지만, 또 해산(解産)하려 할 때에도 모진 고통을 받으면서 나오는 것이니, 그 업의 바람[業風]으로 말미암아 손이 합쳐지고 팔다리를 오므리게 되며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또 어머니의 태에서 나오려 할 때에 몸에 푸른 어혈이 있어서 마치 처음에 난 종기를 따기 어려운 것과 같으며, 배고픔과 목마름이 핍박하여 마음은 뜨겁게 시달리고 있는데 업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바람에 밀려나오게 하느니라. 그리하여 태에서 나온 뒤에는 바깥바람과 접촉하여 마치 깎아 놓은 살에 재를 바른 것과 같으며 손이나 옷이 닿을 때에도 모두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비록 이러한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예리한 상근(上根)이기 때문에 바른 기억이 산란하지 않으며, 어머니의 태 속에 알면서 들어가고 머무르며 나오는 것이지만 모두가 다 고통인 것이니, 난타야, 그 누가 이러한 태 속으로 들기 좋아하겠느냐?
난타야, 그 누가 어머니의 태 속에 바른 기억으로 들어가서 머무르다가 바르지 않은 기억으로 나오느냐 하면, 난타야, 마치 어느 한 무리의 범부 유정이 그 성품이 계율 지니기를 좋아하고
착한 일들을 닦아 익히며 항상 훌륭한 일을 하여 복된 일들을 짓고 그 마음이 질박․정직하여 방일하지 않으며 지혜는 적어도 죽으려 할 때에 후회함이 없나니, 혹 그는 일곱 번 오가면서 생(生)을 받는 예류이기도 하고 혹은 가가(家家)로서 혹은 일래(一來)이기도 하고 혹은 일간(一間)이기도 하느니라.
이 사람은 먼저 착한 행을 닦은지라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비록 괴로움이 와서 핍박하고 여러 시달림을 받는다 하더라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며 또 바른 기억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태 속으로 들어가며, 모든 법은 업으로부터 나고 모두가 인연을 따라 생기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아나니(이외의 자세한 설명은 위와 같으므로 생략한다) 나아가 태에서부터 나오느니라.
비록 이와 같이 모든 극심한 고초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는 중근(中根)이기 때문에 들어가고 머무를 때는 바른 기억이지만, 바르지 않은 기억으로 나오게 되나니(이하의 자세한 설명은 위에서와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 누가 이와 같은 태 속으로 들어가기 좋아하겠느냐?
난타야, 어떤 것이 바른 기억으로 태 속으로 들어가고 바르지 않은 기억으로 머무르다가 나오느냐 하면, 난타야, 마치 어느 한 무리의 범부 유정이 성품이 계율 지니기를 좋아하고 착한 일들을 닦아 익히며 항상 훌륭한 일을 하여 모든 복된 일을 지으며(이하의 자세한 설명은 위와 같으므로 생략한다) 목숨을 마칠 적에는 후회함이 없나니, 혹 그는 일곱 번 오가면서 생을 받는 예류 등이니라.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갖가지 고통이 핍박하지만 비록 이런 시달림을 받는다 하더라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며 다시 바른 기억이 돌아와 어머니의 태 속으로 들어가나니, 그는 하근(下根)이기 때문에 태로 들어갈 때는 알지만 머무르다가 나오는 것은 모르느니라(이하의 자세한 설명은 위에서와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 누가 이와 같은 태 속을 들어가기 좋아하겠느냐?
난타야, 어떤 것이 들어가고 머무르다가 나오는 것이 모두 바르지 않은 기억인가 하면, 마치 어느 한 무리의 범부 유정이 깨끗한 계율을 헐뜯기 좋아하고 착한 일들을 닦지 않으며 항상 나쁜 일을 하면서 모든 악행을 짓고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고 방일한 행을 많이 하며,
지혜가 없어서 재물에 간탐을 부려 손을 항상 오므리고 펴지 못하며 구제하고 베풀어야 할 사람에게 늘 바라는 것은 있으면서도 마음이 순조롭지 못하여 견해와 행실이 뒤바뀌다가 목숨이 마치려 할 때에는 후회하게 되며, 모든 착하지 않은 업이 모두 다
앞에 나타나 죽게 될 때에는 맹렬한 고통과 시달림에 핍박되므로 그 마음이 산란하여지고 모든 고뇌로 말미암아 스스로 ‘나는 어떠한 사람이며 어디서 와서 지금은 어디로 가는가’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난타야, 이것이 세 때의 바른 기억이 없다는 것이니, 자세한 설명은 위에서와 같으니라.
난타야, 이 모든 유정들이 인간 세계에 태어난다면 비록 이러한 한량없는 고뇌는 있으나 그러나 여기는 훌륭한 곳이니, 한량없는 백천 구지(俱胝) 겁 동안에 사람 몸을 얻기는 어려운 것이니라. 만일 천상에 나게 되면 항상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끼리 이별하는 고통이 있으므로 그가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다른 하늘이 말하기를 ‘당신은 장차 세간의 착한 세계[善趣]에 나기를 원하시오’라고 하느니라.
어떤 곳을 세간의 착한 세계라 하는가 하면, 이는 곧 인간과 천상을 말하는 것이니라. 사람의 세계[人趣]는 얻기 어려우므로 이 어려운 곳을 멀리 여의게 되면 또다시 그것은 어렵게 되느니라.
어떤 곳을 나쁜 세계[惡趣]라 하는가 하면, 곧 세 가지 나쁜 길[三惡道]이니라. 지옥의 세계에서는 항상 모진 고통과 극히 뜻대로 되지 않은 맹렬한 고초를 받는 것이니, 비유하기조차 어렵느니라.
아귀의 세계란 성을 많이 내고 부드러운 마음이 없으며 아첨을 내고 부드러운 마음이 없으며, 아첨하고 속이고 살해하며 피를 손에 바르고 자비가 없으며 형용이 누추하여 보는 이들이 두려워하나니, 설령 사람을 가까이 하였다 해도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을 받아 항상 장애를 입느니라.
방생(傍生)의 세계란 한량없고 끝이 없나니, 의리[義] 없는 행동과 복이 없는 행동과 법이 없는 행동과 선(善)이 없는 행동과 순박(淳朴)함이 없는 행동을 지어 서로서로 잡아먹으며 강한 것이 약자를 업신여기느니라.
어떤 방생들은 나고 자라고 죽고 하는 것이 모두 부정하고 똥․오줌이 있는 더러운 곳에 있고 혹은 때로는 잠시 동안 밝은 데로 나오기도 하나니, 이른바 벌과 나비․모기․개미․이․벼룩 및 구더기의 무리들이며 그밖에도 한량없고 끝없이 나고 자라고 하는 항상 어두운 곳에 있는 것들도 있느니라.
그들은 전생에 어리석은 사람으로서 경법(經法)을 듣지 않고
몸과 말과 뜻을 멋대로 하여 5욕(欲)에 탐착하고 많은 악한 일을 지었기 때문에 이런 무리 속에 태어나서 어리석고 미혹한 고통을 받고 있느니라.
난타야, 또 한량없고 끝없는 방생의 유정으로서 나고 자라고 죽는 동안 물 속에만 있는 것들도 있나니, 이른바 고기․자라․악어․드렁허리․거머리․조개 및 개구리 등의 무리이니라. 전생에 지은 몸․말․뜻의 악업으로 말미암아(위와 같이 자세히 설명한다) 이런 어리석고 미혹한 고통을 받고 있느니라.
난타야, 또 한량없고 끝없는 방생의 유정으로서 똥․오줌의 냄새만 맡으면 재빨리 그곳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하는 것들이 있나니, 이른바 돼지․양․닭․개․여우․담비․수리․까마귀․파리 및 쇠똥구리 등의 길짐승․날짐승의 무리이니라. 모두가 전생의 악업으로 말미암아 불러서 이런 과보를 받고 있느니라.
난타야, 또 한량없고 끝없는 방생의 무리로서 항상 풀과 나무와 모든 부정한 것을 음식으로 충당하는 것들이 있나니, 이른바 코끼리․말․낙타․소․나귀 및 노새 등의 족속이니라. 이러다가 목숨을 마치는 것이니, 전생의 악업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과보를 받고 있느니라.
또 난타야, 나고 죽고 하는 존재의 바다[生死有海]는 괴롭고도 쓰라린 것이니, 맹렬한 불길에 타는 아주 큰 뜨거운 열은 어느 한 중생도 타고 삶기지 않는 자가 없느니라. 이들은 모두가 눈․귀․코․혀․몸․뜻의 왕성하게 타는 맹렬한 불이 앞 경계인 빛깔․소리․냄새․맛․접촉․법을 탐하고 구하는 까닭이니라.
난타야, 어떤 것을 왕성하게 타는 맹렬한 불이라 하느냐 하면, 바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의 불이요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의 불이며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독해(毒害)의 불이니, 항상 스스로 타고 있으므로 면할 수 있는 이는 하나도 없느니라.
난타야, 게으름을 피는 사람은 많은 고통을 받고 번뇌에 얽히어 착하지 않은 법을 지으며 윤회(輪廻)가 쉬지 않아 나고 죽음을 마침이 없지만, 부지런히 경책하는 사람은 안락을 많이 받고 용맹스런 마음을 내어 번뇌를 끊어 없애며 착한 법을 닦아 익히고 착한 멍에를 버리지 않으면서 쉬는 때가 없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이제 이 몸의 가죽과 살과 힘줄과 뼈와
피와 맥이며 그리고 골수가 오래지 않아 흩어지고 무너질 것이라고 관찰해야 하며, 언제나 한 마음으로 게으르지 말고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이면 힘써 증득하려고 해야 하리니, 이와 같이 마땅히 배워야 할 것이니라.
난타야, 나는 세간과 함께 모든 논쟁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그러나 세간이 나에게 억지로 논쟁을 하려 하나니, 그 까닭은 모든 법을 아는 사람은 다른 이와는 다투지 않기 때문이니라. 나와 내 것을 떠났거늘 누구와 함께 다투겠는가마는 바른 견해(見解)가 없으면서 허망한 고집을 일으키는 까닭이니, 나는 정각(正覺)을 증득하고서 ‘나는 모든 법을 환히 알지 않음이 없다’고 말하였느니라.
난타야, 내가 하는 말에 차이가 있느냐?”
난타가 말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말씀에는 차이가 없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난타야, 여래가 하는 말은 필연코 차이가 없느니라. 여래는 곧 진실한 말만을 하는 이요, 실상만을 말하는 이요 법에 계합한 말을 하는 이요 다르지 않은 말을 하는 이요, 속이지 않는 말을 하는 이이니라. 세간을 오랫동안 안락하게 하고 크게 뛰어난 이익을 얻게 하기 위함이니, 이는 도(道)를 아는 이요 이는 도를 인식하는 이며 이는 도를 말하는 이요 이는 도를 여는 이며 이는 큰 길잡이로서 여래․응공․정등각․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기 때문이니라.
세간 사람들은 아는 것도 없고 믿는 것도 없이 항상 모든 감관[根]에 종이 되어 오직 손바닥 안만을 보고 큰 이익은 관찰하지 않으며 쉬운 일은 닦지 않고 어려운 것만 항상 짓고 있느니라.
난타야, 우선 이런 지혜의 경계는 그치고 너는 이제 육안(肉眼)을 보는 것으로써 관찰해야 하리니, 보이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임을 알면 그것을 곧 해탈이라 하느니라.
난타야, 너는 나를 믿지도 말고 나를 따라 하려고도 말며 나의 말을 의지하지도 말고 나의 모습을 보지도 말며, 사문의 모든 견해를 따르지도 말고 사문에게 공경심을 내지도 말며 ‘사문 교답마(喬答摩)가 곧
나의 큰 스승이다’라는 말도 하지 말지니라.
그러나 다만 내가 스스로 증득하여 얻은 법에 대해서만은 혼자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헤아리고 관찰하여야 하며, 언제나 쓰는 마음을 따라 관찰한 법을 많이 닦아 익히면 곧 그 법에 대하여 관찰하는 생각이 성취되어 곧 바른 생각에 머무르면서 스스로 섬[洲渚]이 되고 스스로 돌아갈 곳[歸處]이 되며, 법이 섬이 되고 법이 돌아갈 곳이 되며 따로 섬이 없고 따로 돌아갈 곳이 없느니라.
난타야, 어떻게 비구가 스스로 섬이 되고 스스로 돌아갈 곳이 되며, 법이 섬이 되고 법이 돌아갈 곳이 되며 따로 섬이 없고 따로 돌아갈 곳이 없는가 하면, 그렇다. 난타야, 만일 어떤 비구가 자기의 안 몸[內身]을 따라 관찰하면서 머무르되 부지런하고 용감하게 생각을 내어 바른 이해[正解]를 얻어 마치고는 모든 세간에 있는 성내는 괴로움을 항상 조복하려고 생각하면 이것이 안의 몸은 곧 괴로운 것이라고 따라 관찰하는 것이니, 바깥 몸[外身]과 안팎의 몸을 관찰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난타야, 다음에는 쌓임의 법[集法]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사라짐[滅]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또 쌓임과 사라짐의 두 법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면, 곧 이 몸에 대하여 바른 기억이 되어 혹은 지혜만이 있게 되고 혹은 보는 것[見]만이 있게 되고 혹은 기억만이 있게 되며, 의지함이 없이 머무르게 되어 이 세간에 대하여 취할 만한 것이 없음을 알게 되느니라.
이와 같아서 난타야, 이것이 비구가 자기 안 몸을 따라 관찰하며 머무르는 것이니, 바깥 몸과 안팎의 몸도 그렇게 관찰하는 것이니라. 다음에는 안의 느낌[受]과 바깥 느낌과 안팎의 느낌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거나 안의 마음[心]과 바깥의 마음과 안팎의 마음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거나 안의 법(法)과 바깥 법과 안팎의 법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되
부지런하고 용감하게 생각을 내어 바른 이해를 얻어 마치고는 모든 세간에서 있게 되는 성내는 괴로움을 항상 조복하려고 생각하면서 쌓임의 법을 관찰하여 머무르고 사라짐의 법을 관찰하여 머무르고 또 쌓임과 사라짐의 두 법을 관찰하여 머무르면, 곧 이 몸에 대하여 바른 기억이 되어 혹은 지혜만이 있게 되고
혹은 보는 것만 있게 되고 혹은 기억만 있게 되어 이 세간에 대하여 취할 만한 것이 없음을 알게 되느니라.
이와 같아서 난타야, 이것이 비구가 스스로의 섬이 되고 스스로 돌아갈 데가 되며 법이 섬이 되고 법이 돌아갈 데가 되며 따로 섬이 없고 따로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이니라.
난타야, 만일 어떤 장부로서 품성(品性)이 질박․정직하고 아첨과 속임수를 멀리 여읜 이가 이른 아침에 나에게로 왔을 때에 내가 착한 법으로써 근기를 따라 가르쳐 보여주면 그가 저녁때에 와서 스스로 얻은 것을 진술할 것이요, 저녁때에 법으로써 가르쳐 주면 다음날 아침에 얻은 것을 진술할 것이니라.
난타야, 나의 착한 법을 실제로 증득하면 뜨거운 번뇌를 없애고 때로 일어나는 기미를 잘 맞추어 쉽게 방편이 되리니 이것이 스스로 깨달을 법이요, 잘 가리고 수호하면서 몸소 나의 앞에서 내가 말한 법을 듣고 고요함을 따라 보리에 나아가면 이것이 내가 아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는 이제 자기에게 이익이 있음을 보고 다른 이의 이익과 양쪽 다 이익이 있음을 보면 이와 같은 법을 항상 닦고 배워야 하느니라.
그리고 출가의 법을 삼가 행하면서 헛되이 지나감이 없게 하고 마땅히 훌륭한 과위와 무위(無爲)의 안락을 획득하여 다른 이가 공급한 옷과 음식과 침구와 병에 쓰는 약 등의 물건을 받고는 그 시주(施主)로 하여금 큰 복의 이익을 얻고 훌륭한 과보를 얻어서 존귀해지고 광대해져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난타야, 마땅히 이렇게 닦고 배울지니라.
또 난타야, 아직 한 물질[色]도 좋아하고 즐길 만한 것이 없고 뒷날에 변하거나 무너지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근심과 슬픔이 일어나지 않고 번뇌가 생기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없느니라.
난타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물질은 항상한[常] 것이냐, 항상함이 없는[無常] 것이냐?”
“대덕이시여, 본체는 곧 항상함이 없는 것이옵니다.”
“난타야, 본체가 이미 항상함이 없다면 그것은 괴로운[苦]것이냐, 아니냐.”
“대덕이시여, 그것은 괴로운 것이옵니다.”
“만일 항상함도 없고 오직 괴로운 것이라면 곧 변하고 무너지는 법인데 모든 견문이 많은 나의 성인 제자들이 ‘물질은 바로 나[我]요 나에는 모든 물질이 있고 물질은
나에 속하며 나는 물질 안에 있다’고 헤아리는 것이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은 곧 항상한 것이냐, 항상함이 없는 것이냐?”
“대덕이시여, 그것은 모두가 항상함이 없는 것이옵니다.”
“난타야, 본체가 이미 항상함이 없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이냐?”
“대덕이시여, 그것은 괴로운 것이옵니다.”
“만일 항상함도 없고 오직 괴로운 것이라면 곧 변하고 무너지는 법인데 모든 견문이 많은 나의 성인 제자들이 ‘느낌 등은 곧 나요 나에는 느낌 등이 있고 느낌 등은 나에 속하며 나는 느낌 등에 있다’고 헤아리는 것이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알아야 하느니라. 무릇 이 모든 물질에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안이거나 바깥이거나 거친 것이거나 미세한 것이거나 훌륭하거나 하열하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이 모든 물질은 모두가 나가 아니요 나는 물질에 있지 않고 물질은 나에 속하지도 않으며 나는 물질 안에 있지 않다’고 이와 같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써 자세히 관찰하여야 하며,
느낌․생각․지어감․의식도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안이거나 바깥이거나 거칠거나 미세하거나 훌륭하거나 하열하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이들도 나가 아니요 나에게도 이들이 있지 않으며 나 또한 이들 안에 있지도 않다’고 이와 같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써 자세히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만일 견문이 많은 나의 성인 제자들이 이와 같이 관찰하면 물질에 대하여 싫증을 낼 것이요. 또 느낌․생각․지어감․의식에 대하여도 싫증을 낼 것이나, 만일 싫증을 내면 곧 염착(染著)하지 않을 것이요 이미 염착함이 없으면 곧 해탈하게 될 것이며, 이미 해탈하고 나면 스스로 해탈을 깨달아서 말하기를 ‘나의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이 성립되었으며 할 일을 다 마치고 뒤의 존재[後有]를 받지 않으리라’고 할 것이니라.”
그때 세존께서 이 법을 말씀하여 마치려 하실 때에 구수 난타가 티끌을 멀리하고 때[垢]를 여의어 법안(法眼)의 깨끗함을 얻었으며 500의 비구들은 모든 유루(有漏)에서 마음에 해탈을 얻었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써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사람에게 선정[定]의 마음이 없으면
곧 깨끗한 지혜가 없으며
모든 번뇌를 끊을 수도 없나니
그러므로 너는 부지런히 닦아라.

너는 항상 묘한 관(觀)을 닦아서
모든 쌓임[蘊]의 나고 없어짐을 알며
깨끗해지고 또한 원만해지면
모든 하늘이 다 기뻐하게 되느니라.

친한 벗들이 함께 기뻐하면서
오가며 서로가 사랑하리니
이름을 탐내고 이익에 집착하는 일을
난타야, 너는 버려야 하느니라.

집에 있는 이[在家]를 친근하지 말고
집을 떠난 이[出家]도 친근하지 말며
나고 죽음의 바다를 뛰어넘어
괴로움의 맨 끝[苦邊際]까지 다 끊어야 한다.

맨 처음은 갈라람(羯羅藍)으로부터
다음에는 물집[疱]같은 살덩이가 생기고
그 살덩이에서는 폐시(閉尸)가 생기며
폐시에서는 건남(健南)이 생기느니라.

건남이 순식간에 바뀌고 변하여
머리와 네 개의 팔다리가 생기고
뭇 뼈가 모여 몸을 이루나니
모두가 업인(業因)으로부터 생기느니라.

정수리 뼈는 합하여 아홉 조각으로 되고
턱과 잇몸은 양쪽 뼈로 이어지며
이[齒]는 서른두 개가 있고
그 뿌리 또한 그러하느니라.

귀와 그리고 목의 뼈와
턱 뼈와 아울러 코의 등성이며
가슴과 또한 목구멍에는
총 열두 개의 뼈가 있느니라.

눈언저리에는 네 개의 뼈가 있고
어깨에 둘씩 짝을 이루며
두 개의 팔과 손가락 끝에는
총 쉰 개의 뼈가 있느니라.

목 뒤에는 여덟 개의 뼈가 있고
등골 마루에는 서른두 개가 있으며
이들도 저마다 근본이 있고
그 수(數)도 네 개씩 나뉘어지느니라.

오른쪽 겨드랑이에 있는 늑골(肋骨)은
서로 연결되어 열세 개가 있고
왼편 겨드랑이에도 서로 연결되어
역시 열세 개의 뼈가 있느니라.

이들의 모든 뼈는 서로를 잡아매듯
삼삼(三三)으로 서로 이어져 있고
둘둘[二二]로 서로 끌어당기거니와
그 밖의 것은 서로 이어지지 않느니라.

좌우에 두 개의 다리와 발에는
합하여 쉰 개의 뼈가 있으며
총 3백 열여섯 개의 뼈들이
몸과 살을 버티는 기둥이니라.

뼈마디가 갈고리처럼 서로 연결되어
중생의 몸을 만든 것을
진실한 말 하는 이가 기억하여 말하나니
바르게 깨달은 이[正覺]가 알 바이니라.

발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뒤섞인 찌꺼기라 견고하지 않으며
이런 것을 같이하여 몸이 되었으므로
무르고 위태하기 갈대집 같으니라.

곁가지가 없이 뼈만으로 세워져서
피와 살을 두루하게 발랐으므로
기관(機關)과도 같은 나무 사람이요
또한 환술로 된 형상과 같으니라.

이 몸은 힘줄과 맥으로 얽어매고

축축한 가죽으로 싸서 덮은 데에
아홉 개의 상처난 구멍이 있다고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하느니라.

거기에서 똥․오줌의 부정한 것들이
두루하게 항상 넘쳐흐르는 것은
비유하면 곳집과 둥구미 안에
모든 곡맥(穀麥) 등을 담은 것 같으니라.

이 몸 또한 이와 같아서
뒤섞인 찌꺼기가 그 안에 가득 찼고
뼈로 된 기관이 운동하는 것이므로
위태하고 무르며 견실(堅實)하지 않느니라.

어리석은 범부는 항상 좋아하지마는
지혜로운 이는 염착(染著)함이 없나니
눈물과 침과 땀이 언제나 흐르고
고름과 피가 항상 가득 차 있느니라.

누런 지방에 섞여 젖즙이 나오고
뇌(腦)는 해골 속에 가득 차 있으며
흉격(胸融)에서는 담음(痰陰)이 흐르고
그 속에는 생장(生藏)과 숙장(熟藏)이 있느니라.

비계의 기름과 가죽의 꺼풀이며
5장(藏)과 모든 장(腸)․위(胃)며
이와 같이 냄새나고 문드러진 것들의
모든 부정한 것이 같이 있느니라.

죄업으로 이룬 몸이라 몹시 두려울 만하여
이것이 바로 원수인데
무식(無識)하고 욕심에 빠진 사람은
어리석게도 항상 보호하느니라.

이와 같이 냄새나는 더러운 몸은
마치 썩은 성곽(城郭)과 같은데
밤낮으로 번뇌에 핍박당하면서
천류(遷流)하며 잠시도 멈춤이 없느니라.

몸의 성(城)과 뼈로 된 담장의 벽에
피와 살을 이겨서 바른 것에다
탐냄․성냄․어리석음으로 그림 그리며
곳마다 치장하고 꾸몄느니라.

미워할 만한 뼈와 몸의 성(城)에는
피와 살로 서로가 연결하여 모였는데
항상 나쁜 벗의 해를 입으며
안팎의 고통으로 졸여지느니라.

난타야, 너는 알아야 한다.
내가 말한 것과 같다는 것을
밤낮으로 언제나 염두에 두고
음욕의 경계를 생각하지 말지니라.

만일 멀리 여의고자 하면
언제나 이와 같은 관(觀)을 지으면서
부지런히 해탈하는 곳을 구하여
나고 죽는 바다를 속히 초월할지니라.

그때 세존께서 이 입태경(入胎經)을 말씀하여 마치시니, 구수 난타와 500의 비구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며 믿고 받아 받들어 행하였다.
난타 비구는 나고 죽는 바다의 험난한 곳을 초월하여 안온하게 마지막 열반에 이르러서 아라한의 과위를 얻고는 스스로 경하하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공경한 마음으로 받들어 목욕하고
깨끗한 물과 바르는 향으로
모든 복전(福田) 한꺼번에 수행한지라
이러한 훌륭한 과보를 얻었도다.


이때 모든 대중들은 이 말을 듣고 나서 모두 다 의심스러웠으므로 이 의심을 풀기 위하여 큰 스승께 청하여 물었다.
“대덕이시여, 난타 비구는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었기에 그 과보로 금빛의 몸을 얻었고 서른 가지의 상호(相好)로써 스스로 장엄하게 꾸몄으며, 세존보다 키가 네 손가락 마디만큼만 작고 음욕의 경계에서 극히 애착을 내다가 큰 스승께서 가엾이 여기시어 나고 죽는 바다에서 억지로 나오게 하여 방편으로써 마지막 열반에 안전하게 들게 하셨나이까? 원하옵건대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난타 비구는 전생에 지었던 업의 과보가 성숙되어 모두 다 그 앞에 나타났나니, 자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으니라. 게송으로 말하였다.

가령 100겁(劫)을 지난다 해도
지었던 업은 없어지지 않나니
인연이 서로 만날 때에
과보가 돌아와서 받게 된다네.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과거 세상의 91겁에는 사람의 수명이 8만 세에 비바시(毘鉢尸) 여래․응공․정등각․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께서 세간에 출현하시어 6만 2천의 비구들과 함께 인간 세상을 돌아다니시다가 왕이 도읍한 곳인 친혜성(親慧城)의 친혜림(親慧林)으로 가셔서 그곳에 머무르고 계셨느니라.
그때 그 세존은 이복 동생이 있었는데 음욕의 경계에 지극히 애착하였으므로 그 비바시 여래․응공․정등각께서는 그를 나고 죽는 바다[生死海]로부터 출가하게 하고 방편으로써 마지막 열반에 편히 들게 하였느니라.
그때 그 나라 왕의 이름은 유친(有親)이었는데 법으로써 세상을 교화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치성하고 풍요하였으며 안온하여 모든 거짓과 도둑과 질병이 없었고 소와 양과 벼며 사탕풀 등이 곳곳마다 가득 찼으며, 그 왕에게도 이복 동생이 있어 극히 음욕에 빠져 있었느니라.
왕은
부처님과 그 대중이 친혜림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모든 왕자와 곁의 대신들을 거느리고 내궁이며 백성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부처님께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있었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그 왕과 대중들을 위하여 묘한 법을 널리 드러내 보여주고 가르쳐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였으므로 그들은 뛰어난 견해를 얻었으나, 그 왕의 동생만은 음욕에 빠져 끝없이 즐기면서 그 문을 나오려고 하지 않았느니라.
그때 대신의 아들과 그밖에 그와 같이 어울리던 벗들이 그에게로 가서 말하기를 ‘착한 벗이여, 알지 못하십니까? 왕과 왕자며 모든 내궁․대신․백성들이 비바시 부처님께로 가서 몸소 예배 공경하고 묘한 법을 듣고 받아 뛰어난 견해를 얻었답니다. 사람의 몸은 얻기 어려운 것인데 당신은 이미 얻으셨거늘 어찌하여 지금 음욕만을 즐기면서 문을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그는 그런 책망을 듣고 나서 부끄러워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그들을 따라 같이 갔느니라.
그때 부처님의 아우 되는 비구가 그 동료들이 같이 가는 것을 보고 묻되, ‘무엇 때문에 그대들은 이 한 사람과 짝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느니라. 그때 같이 가고 있는 이들이 그 일을 자세히 말해 주자, 비구는 말하기를 ‘나는 곧 부처님의 아우입니다. 나도 옛날 집에 있을 적에 모든 음욕의 경계에 극히 탐착하고 있었으나 다행이 큰 스승께서 억지로 출가하게 하시어 안온하게 마지막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나와 비슷한 어리석은 무리가 있었군요. 당신들은 자비로 억지로 함께 데리고 가시는데 진실로 잘한 일입니다. 지금 위없는 큰 스승께로 나아가십시오. 부처님께로 가시게 되면 반드시 깊은 믿음을 낼 것입니다’라고 하였느니라.
그때 그 동반자들이 함께 부처님께 이르자,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관찰하시어 근기와 하고자 하는 성품에 맞추어 설법을 하셨고 그는 설법을 듣고 나서 깊은 신심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큰 스승과 모든 성인들께서는 내일 저의 집으로 오셔서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시옵소서’라고 하였으므로, 부처님께서 잠자코
수락하시자 그는 허락하셨음을 알고 부처님의 두 발에 예배하고 하직한 뒤에 떠나갔느니라.
그리고 왕에게로 와서 공경하여 예를 드린 뒤에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저는 부처님께 나아가서 설법을 듣고 신심을 내었으며 음욕의 경계를 싫어하고 여의려는 마음을 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과 스님들께 내일 저의 집으로 오셔서 따뜻한 물에 목욕하시기를 받들어 청하자, 여래․큰 스승께서는 자비로 수락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곧 인간과 하늘이 공양해야 될 어른이시므로 왕께서는 이제 거리를 소제하시고 성곽(城郭)을 엄숙하게 장식하셔야 합니다’라고 하였으므로,
왕은 생각하기를 ‘부처님께서 성으로 들어오신다 하니 나는 엄숙하게 장식해야겠구나. 그런데 나의 아우는 음욕에 빠져서 간(諫)하기조차 어려웠는데 부처님께서 이제 조복해 주셨으니, 진실로 어려운 일이로다’ 하고 대답하되 ‘아주 잘한 일이다. 너는 이제 가서 목욕에 필요한 물건들을 마련하도록 하라. 나는 힘껏 성곽을 엄숙하게 장식하겠노라’고 하자, 그 아우는 크게 기뻐하면서 왕께 하직하고 떠났느니라.
그리고 왕은 모든 신하들에게 ‘널리 모든 백성들에게 알리도록 하라. 내일 세존께서 성안으로 들어오신다 하니 이전부터 살고 있는 이들과 먼 곳에서 와 있는 이들은 모두가 함께 힘닿는 대로 성곽을 엄숙하게 장식하고 거리를 소제한 뒤에 모든 향과 꽃을 가지고 나와 큰 스승을 맞아들이도록 하라’고 알렸느니라.
이리하여 신하들은 왕의 명을 받들어 널리 알리고 왕의 칙명을 자세히 전했으므로, 그 때의 모든 백성들은 그 성안에 있는 깨진 기와조각과 자갈들을 모두 제거하고 향수를 두루 뿌린 뒤에 모든 묘한 향을 사르고 많은 번기와 일산을 달고 꽃을 뿌려 놓고 공양하였으므로 마치 하늘 제석(帝釋)의 환희원(歡喜園)과 같았느니라.
그때 그 왕의 아우는 모든 향탕(香湯)과 향유(香油) 등을 마련하고 욕실을 장엄한 뒤에 자리를 펴놓았으며, 비바시 부처님께서 점차로 오시어 성에 닿으시자 왕과 모든 신하와 태자․후비․궁인․채녀(婇女)와 모든 백성들이 다 함께 나와서 영접하며 멀리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그 뒤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갔느니라.
그때에 그 왕의 아우는 부처님 세존을 인도하여 따뜻한 욕실 안으로 모신 뒤에 향수 등을 드리면서 목욕하게 하였고, 부처님 세존의
몸이 금빛 같고 32상과 80종호로 두루 장엄하신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깊은 신심을 내었으며, 목욕을 마치고 옷을 입으시자 곧 세존의 두 발에 머리 조아리고 원을 세웠느니라.
‘저는 이제 다행이 위없는 복전(福田)을 만나 미약하나마 공양을 하게 되었나이다. 원컨대, 이 좋은 인[善因]으로 미래의 세상에 몸이 금빛이 되어 부처님과 다름이 없게 하옵시며, 세존의 아우께서 음욕의 경계에 깊이 탐착할 때에 억지로 뽑아내시어 안온한 마지막 열반에 나아가게 하신 것처럼, 저도 장차 오는 세상에 부처님의 아우가 되고 금빛 몸을 얻는 것도 그와 같게 하옵시고, 제가 음욕의 경계에 탐착하여 있을 때에도 억지로 그 애욕의 깊은 강물에서 건져내시어 열반의 안온한 곳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느니라.
너희 비구들은 달리 생각하지 말라. 그 음욕에 빠졌던 친혜왕의 아우가 바로 지금의 난타이니라. 그가 옛날 비바시 부처님을 청하여 욕실에 모시어 향탕으로 목욕하게 하였고 깨끗한 마음으로 원을 세운 좋은 인연으로 지금 부처님의 아우가 되고 몸이 금빛이 되었으며, 내가 음욕의 경계에 빠져서 마음껏 즐기는 그를 억지로 불러내어 세속을 버리고 출가하게 하여 마지막 열반의 안온한 곳에 이르게 한 것이니라.”
그때 모든 대중은 또 의심이 있었으므로 세존께 물었다.
“대덕이시여, 난타 비구는 일찍이 무슨 업을 지었기에 지금의 몸에 서른 가지의 대장부의 몸[相]을 얻게 되었나이까?”
부처님께서 모든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그가 지었던 모든 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거니와, 또 지나간 세상에 어떤 마을에 한 부자가 있었는데 재물이 많아서 살림에 모자람이 없었으며, 꽃과 열매가 무성하고 흐르는 샘과 목욕하는 못이 있었고 나무와 숲이 빽빽하고 높이 솟아서 출가한 사람이 숨어있을 만한 동산이 있었느니라.
그때에 독각(獨覺)이 세간에 출현하여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면서 고요한 곳에 살고 있었으며 세간에는 부처님이 없었으므로 그가 복전(福田)일 뿐이었느니라. 그때 어느 한 독각의 존자(尊者)가 돌아다니다가 그 마을에 이르러 이리저리 두루 관찰한 뒤에 그 동산에 왔으므로 그 동산지기는 그 존자를 보고 말하기를 ‘어서 오십시오. 고달픔을 풀기 위해서라면 존자께서는 여기에 와 계십시오’라고 하였으므로, 그는 곧 그곳에 머물면서 한밤중에 화광정(火光定)에 들어갔느니라.
동산지기는 그것을 보고 생각하기를 ‘이 대덕께서는 이러한 뛰어난 행을 이루셨구나’ 하고, 즉시 그 밤에 일어나 상전에게로 가서 말하였다.
‘주인님, 이제 기쁜 마음을 내십시오. 동산에 한 대덕이 와서 주무시는데 묘한 행을 성취하고 신통을 구족하여 큰 광명을 놓으시면서 동산을 두루 비추고 있습니다’라고 하였으므로, 장자는 그 말을 듣고 동산으로 급히 가서 두 발에 예배하고 말하기를 ‘성인께서는 인자하시어 음식을 구걸하고 계신데 제가 복(福)의 인(因)을 짓겠습니다. 이 동산에 머물러 계시면 제가 늘 식사를 올리겠습니다’라고 하였느니라
. 그는 태도가 겸손하고 은근함을 보고 즉시 수락하고 이 동산에 머무르면서 뛰어나고 묘한 선정과 해탈의 즐거움에 들어 있다가 다시 생각하기를 ‘나의 이 악취가 나는 몸은 바퀴 돌 듯 나고 죽고 하는데 이제는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원적(圓寂)에 들어가 영원히 생멸이 없음[無生]을 증득해야겠다’고 하고, 이런 생각을 한 뒤에 즉시 허공으로 올라가 화광정에 들어가서 모든 신통 변화를 나타내며 큰 광명을 놓고 위로는 빛을 번쩍거리고 아래로는 맑은 물을 흐르게 하면서 그 몸을 버린 뒤에 신식(神識)은 태어나지 않고 영원히 남음이 없는 묘한 열반의 경계를 증득하였느니라.
그때에 그 장자는 그 시체를 취하여 향나무로 태우고 다시 젖을 가져다 그 불을 끈 뒤에 남은 신골(身骨)을 거두어 새 병에 넣고 탑[率堵波]을 조성하고는 모든 번기와 일산을 달고 깊이 공경과 믿음으로 서른 가지의 여러 묘한 향수를 뿌린 뒤에 큰 원을 세우면서 모든 상호(相好)를 구하였느니라.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딴 생각을 내지 말라. 옛날
그 장자가 바로 지금의 난타이니라. 뛰어나고 묘한 공양과 공경히 믿은 업 때문에 지금은 그 과보를 받아서 서른 가지의 뛰어나고 묘한 상호를 얻은 것이니라.”
그때 모든 대중은 다시금 의심이 있었으므로 거듭 세존께 청하였다.
“대덕이시여, 난타 비구는 일찍이 무슨 업을 지었나이까? 만일 출가하지 않고 세속을 버리지 않았다면 필연코 철륜왕(鐵輪王)의 왕위를 계승하였을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난타가 전생에 지었던 업으로 그 과보가 성숙할 때에는 반드시 저절로 받게 되었으리라. 자세한 것은 위의 설명과 같다.
과거 세상의 이 현겁(賢劫) 동안에 사람의 수명이 2만 살일 때에 가섭파(迦葉波)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셔서 10호(號)가 구족하셨으며 바라날사 선인이 떨어진 곳[仙人墮處]인 시록림(施鹿林)에 머물러 계셨느니라. 그때에 그 성의 왕의 이름은 흘율지(訖栗枳)라 하였는데 법으로써 세상을 교화하였는지라 대법왕(大法王)이 되었으며(자세한 것은 위의 설명과 같다) 왕에게는 아들 3형제가 있었느니라.
그 가섭파 부처님께서 교화하실 일을 다 마치고 마치 불이 다한 것처럼 큰 열반에 드시자 그 왕은 믿음과 공경으로 부처님의 유신(遺身)을 모셔다 전단(旃檀)․침수(沈水)․해안(海岸)․우두(牛頭)․천목(天木) 등의 여러 향나무로 화장하고 향과 젖으로 불을 끈 뒤에 그 사리(舍利)를 거두어서 금으로 된 보배 병에다 넣고 큰 탑을 조성하여 모두 네 가지 보배를 써서 높이와 넓이는 꼭 1유순[踰繕那]이요 높이는 반(半) 유순이나 되게 상륜(相輪)을 장식해 놓았다.
그때에 왕의 가운데 아들이 몸소 그 가운데다 일산을 올렸느니라. 너희 비구들은 딴 생각을 내지 말라. 그때에 왕의 가운데 아들이 곧 지금의 난타이니라. 옛날 공경하는 마음으로 공양하면서 가운데다 일산을 올려놓은 그 착한 업으로 말미암아 2,500생(生) 동안 항상 천륜왕이 되어서 1주(洲) 안을 교화하였었고 지금 이생 동안에서도 만일 출가하지 않았다면 도로 천륜왕이 되어서 크게 자재했을 것이니라.”

그때 모든 대중은 다시 또 의심이 있었으므로 세존께 청하여 물었다.
“대덕이시여, 난타 비구는 일찍이 무슨 업을 지었기에 부처님의 제자로서 감관의 문[根門]을 잘 지키는 데에 맨 첫째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서원의 힘 때문이니라. 난타비구가 가섭파 부처님 때에 세속을 버리고 출가하였을 때에 그의 친교사(親敎師)가 그 부처님의 법 중에서 감관의 문을 잘 지키는 이로는 첫째라고 하였으며, 그가 목숨을 다하도록 범행(梵行)을 스스로 지녔으나 그 몸으로는 끝내 깨침이 없었으므로 그가 목숨을 마칠 때에 서원을 세우기를
‘저는 부처님 처소에서 이 몸이 다하도록 범행을 스스로 지녔사오나 이 몸은 끝내 깨친 바가 없었사오니, 원하옵건대 저는 이 수행한 선근(善根)으로써 이 부처님 세존께서 미래 세상에 어느 마납바(摩納婆)가 마땅히 정각(正覺)을 이루어 명호를 석가모니라 하리라고 수기(授記)하신 데서 저는 그 부처님의 교법 가운데 출가하여 세속을 여의고 모든 번뇌를 끊고는 아라한을 얻게 하옵시며, 마치 친교사가 이 부처님 처소에서 감관의 문을 잘 지키는 데에 맨 첫째인 것처럼 저도 역시 그와 같아서 그 교법 가운데서 감관의 문을 지키는 것에 맨 첫째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느니라.
그의 원력(願力)으로 말미암아 지금 나의 처소에서 모든 제자들 중에서 감관의 문을 잘 지키는 데에 맨 첫째이니라.
이와 같아서 비구들아, 만일 순수한 검은 업[純黑業]을 지으면 순수한 검은 보[純黑報]를 얻고 만일 순수한 흰업[純白業]을 지으면 순수한 흰 보[純白報]를 받으며, 만일 뒤섞인 업[雜業]을 지으면 마땅히 뒤섞인 보[雜報]를 받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순수한 검은 업과 뒤섞인 업은 여의고 순수한 흰 업만을 닦을 것이니, 이와 같이 마땅히 닦아야 하느니라.”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