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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674 불교 (대비경/大悲經) 3권

by Kay/케이 2024.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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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비경(大悲經) 3

 

 

대비경 제3권


천축삼장 나련제야사 한역
홍승균 번역


8. 예배품(禮拜品)

세존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의 이름을 듣는다고 한다면, 이런 사람은 마땅히 정(定)을 마친 뒤 열반에 들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아난아, 만약 누가 ‘나무불(南無佛)’이라고 말을 한다면 여기에 무슨 뜻이 들어 있겠는가?”
아난이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의 근본이며, 부처님께서는 눈으로 인도하는 분이며,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을 풀어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부디 비구들을 위해서 이 뜻을 풀이해 주십시오. 제가 지금 직접 듣고 받아 지니겠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부디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보라. 내 마땅히 너를 위해 분별해서 풀어 말하겠다.”
아난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진정 즐겁게 듣길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른바 ‘나무불’이라고 하는 말은 이것은 바로 결정코 모든 불세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이다. 아난아 이것이 결정코 모든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의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나무제불(南無諸佛)’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아난아, 내 이와 같은 의미를 위해서 비유를 들어 말하겠다.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이 법에 대하여 믿는 마음을 늘리게 하고, 다시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으로 하여금 불세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깊이 공경하여 믿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겠다.
아난아, 일찍이 과거에 대상주(大商主)가 있었다. 그는 많은 상인(商人)들을 데리고 큰 바다를 건너게 되었는데, 바다를 건널 때에 마갈대어(摩竭大魚)가 선원들을 집어삼키려 하였다.
아난아, 이때 저 상주(商主)와 상인들은 놀라서 털이 곤두서고 근심 걱정으로
괴로워하며 목숨을 구할 길이 없을까 두려웠다. 구할 수도 없고 보호할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어서 모두들 슬피 울면서 온갖 비탄에 젖어 울부짖었다.
‘아, 마음 아프구나. 이 염부제는 얼마나 즐겁고 귀한 곳인가? 이 세상에 사람의 육신이 얼마나 얻기 어렵고 소중한 것인가? 그런데 나는 지금 부모와 헤어지고, 형제자매와 아내와 자식들, 친척과 친구들과 헤어져서 다시는 볼 수 없겠구나. 그리고 또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너무나 슬퍼 통곡하며 모두들 높은 신과 하늘에 기도하여 구제되길 바라였다.
아난아, 이때 상주는 바른 견해로 멀리 밝게 내다보고 부처님과 법과 스님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의 마음을 내어 다시는 여러 다른 하늘이나 귀신을 믿고 섬기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상주는 상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만약 살아남아서 이 위기를 면하여 벗어나고자 한다면, 그대들은 마땅히 같은 목소리로 동시에 내가 말하는 것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설사 우리들이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해도 뒤에 좋은 곳에 태어날 것입니다.’
그러자 상인들은 이 말을 듣고는 각기 모두 상주에게 말하였다.
‘저희들은 마땅히 가르침을 따를 테니 어서 속히 말씀하소서.’
아난아, 이때 상주는 오른쪽 어깨를 벗은 뒤 오른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는, 배 위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처님을 염(念)하면서 합장하여 예배하였다. 그리고는 높은 소리로 외치기를 ‘모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크게 두려움이 없으신 분이시여, 크게 자비하신 분이시여, 모든 중생을 가엾게 여기는 분이시여’라고 이와 같이 세 번을 말하였다.
이때 모든 상인들도 또한 마찬가지로 동시에 합장하고 예배하고는, 이구동성으로 ‘모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두려움 없음을 베푸시는 분이시여, 크게 자비하신 분이시여, 모든 중생을 가엾어 하시는 분이시여’를 세 번 외쳤다.
그러자 저 마갈어는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배하는 소리를 듣고는 크게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서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래서 이 마갈어는 이런 소리를 듣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난아, 그리하여 저들 상주와 상인들이 모두 편안하게 물고기의 재난에서 벗어났으며, 배와 상인들이 소원이 이루어져서 편안하게 염부제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갈어는 부처님의 목소리를 듣고는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서 다시는 어떤 중생들도 잡아먹지 않았으며 그렇게 살다가 목숨을 마쳤다. 목숨을 마친 뒤 사람으로 태어났으며, 사람으로 태어난 뒤에는 부처님으로부터 법과 비니(毘尼:律)를 듣고 깊이 청정한 믿음을 얻어서 집을 버리고 출가하였다. 출가한 뒤에는 선지식을 가까이 하고 겸손히 공양하여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어서 6통(通)을 구족하여 무여(無餘)열반의 경계에서 열반하였다.
아난아, 너는 저 물고기를 보라. 그는 축생의 길에 태어나서 부처님의 이름을 들었으며, 부처님의 이름을 듣고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곧장 출가하였으며, 출가한 뒤에는 바로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아라한의 과보를 얻자 드디어 열반하였다.
아난아, 너는 모든 부처님의 신력(神力)이 이와 같다는 것을 보라. 저 물고기는 이를 듣고 신통을 얻었으며, 이름을 부르고 찬양하자 반드시 이익을 얻었다. 하물며 사람으로서 부처님의 이름을 듣고 그 바른 법을 들어서 부처님을 가까이 하여 모든 선근을 심고도 이익을 얻지 못할 수가 있겠는가?
아난아, 내가 전에 말한 것과 같이 적은 선근을 짓는 자는 적은 분량의 과보를 얻고, 가득 찬 분량의 선근을 짓는 자는 가득 찬 분량의 과보를 얻는다.
아난아, 적은 분량의 선근을 짓는 이란, 그가 빨리 성숙하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성문의 종자를 심어서 성문승(聲聞乘)을 짓고 이러한 선근으로 해서 성문의 지위에 만족하며, 연각의 종자를 심는 이는 연각승을 짓고 이러한 선근으로 해서 연각의 지위에 만족한다. 아난아, 이러한 인연으로 해서 나는 이를 적은 분량의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난아, 그런데 가득 찬 분량의 수행을 하는 이를 말한다면 그런 자는 무시(無始) 이래로 모든 부처님에 대하여
부처의 종자를 심어서 모든 선근을 오랫동안 수행하였다. 그래서 이러한 선근 인연의 힘으로 해서 모든 부처님을 만나게 되고, 모든 부처님들을 만나 만족한 보리의 모든 선근을 쌓으려고 하며, 이처럼 만족한 보리의 모든 선근을 쌓아서 부처의 도를 이루는 것이다. 이른바 여래ㆍ응공ㆍ정변지의 소리가 세상에 진동하는 것을 이름하여 만분행(滿分行)이라 한다.
아난아, 이 만분행은 내가 이미 예전에 여러 경(經)에서 널리 설하였으니, 이러한 순서를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소분행(少分行)은 소분(少分)의 과보를 얻으며 만분행은 만분(滿分)의 과보를 얻는다.
아난아, 내가 이미 경 속에서도 설하였으며, 그리고 수지(受持)한 네 구 게송 등에서도 그렇게 설하였다. 나는 둔한 근기이고 덕이 얇고 지혜가 부족한 모든 중생들 때문에 각기 응함을 따라서 설하는 것이다.
아난아, 나는 모든 돌아갈 곳이 없는 중생들을 위해 돌아갈 곳을 만들어 주며, 집이 없는 중생을 위해 집을 만들어 주며, 보호가 없는 중생을 위해 그들을 구호해 주며, 어두운 중생을 위해 등불을 만들어 주며, 눈이 없는 소경을 위해 눈을 만들어 준다.
아난아, 모든 외도(外道)는 어둡고 어리석고 무지해서 자신도 구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구제하여 돌아갈 곳을 만들어 주겠는가?
아난아, 나는 모든 하늘과 사람들의 스승으로서 모든 중생들을 가엾게 여긴다. 그런데 오는 세상에서 법이 멸하려고 할 때 마땅히 비구와 비구니가 있어서 나의 법 가운데 출가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놀러 다니며, 술집을 찾아 술집에 가며, 나의 법에 대하여 청정하지 못한 행을 짓는다고 하자. 그러나 저들이 비록 이런 술과 같은 인연을 가진다 해도 이러한 현겁(賢劫)에서는 모두가 마땅히 반열반을 얻는다.
아난아, 어째서 이름을 현겁이라 하는가? 아난아, 이 삼천대천세계에 겁이 이루어지려고 할 때
다 하나의 물로 된다.
이때 정거천(淨居天)이 그의 천안(天眼)으로 온통 물뿐인 이 세계를 보니 천 개의 여러 연꽃들이 있고 그들 연꽃은 하나하나에 모두 천 개의 잎이 있어서 이것이 모두 금색과 금빛으로 크게 밝아 두루 비추고 향내가 물씬 풍겨서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즐거워할 만하다. 저 정거천은 이런 광경을 보고는 마음이 한량없이 뛸 듯이 기뻐서 다음과 같이 찬탄한다.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드문 일이로다. 지금 이 겁(劫)에서 마땅히 일천의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올 것이며, 이런 인연으로 해서 드디어 이 겁의 이름을 현겁이라고 할 것이다.’
아난아, 내가 멸도한 뒤 이 현겁 중에서 마땅히 996인의 부처가 세상에 나오게 되는데, 구류손(拘留孫)여래가 그 첫 번째가 되고 내가 네 번째가 될 것이며, 그 뒤 미륵불이 마땅히 나의 자리를 메울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노자(盧遮)여래에 이를 것이다. 이런 차례를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아난아, 나의 법 중에서 단지 성(性)만 사문일 뿐 사문의 행을 더럽히고, 자칭 사문이라 하면서 모양만 사문인 채 가사를 걸친 자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현겁에는 미륵이 그 첫머리가 되고 나아가 마지막에 노자여래에 이를 것이니 저들 모든 사문들은 이러한 부처님들의 무여열반의 경계에서 마땅히 열반에 들어 남는 자가 없을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아난아, 이와 같은 모든 사문들로서 심지어 한 번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한 번 믿는 마음을 낸 자라도 그들이 지은 공덕은 결코 헛된 것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난아, 나는 부처의 지혜로써 법계(法界)를 헤아려서 알며, 이를 헤아려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아난아, 백업(白業:善業)을 가진 자는 흰 과보를 얻고, 흑업(黑業:惡業)을 가진 자는 검은 과보를 얻는다.
그런데 만약 마음이 청정한 중생들이 ‘나무불’을 일컫는다면 아난아, 그들은 이와 같은 선근으로 해서 반드시 열반에 정(定)하며
열반에 가까이 할 것이니, 서로 흘러 연속하여 열반의 경계에 들게 될 것이다. 하물며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신 때를 만나 직접 받들어 공경하고, 겸손히 맞고 보내고 존중하여 공양한 이는 어떻겠으며 또한 부처님께서 멸도한 뒤에 그 사리에 공양하는 이는 어떻겠는가?
아난아, 저 사문의 성(性)으로서 사문을 욕되게 하며 자칭 사문이라 하면서 모양만 사문인 자들도 그들이 마땅히 한 번만 부처님의 이름을 일컫기만 하면 되는데, 하물며 마음에 믿고 공경함을 내어 갖가지 선근을 심은 나머지 자들은 어떻겠는가?
아난아, 내 이 이치를 위해서 다음과 같이 게송을 설하겠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처럼 부사의(不思議)하니
부처님의 바른 법도 또한 그러하다네.
이 부사의를 공경하여 믿는다면
반드시 부사의한 과보를 얻으리라.

과거의 모든 여래들은
광명을 내어 가엾게 여기셨다네.
또한 일찍이 대세불(大勢佛)에 공양하여
뛰어난 보리를 깨침이 셀 수가 없어라.

전에 나는 언제나 보시와 서로 응하여
여러 중생에게 보시하여 구제했다네.
청정한 믿음의 뿌리가 깊고 부지런히 정진(精進)해서
부지런한 정진으로 모든 것을 바꾸었다네.

마치 부모나 형제와 친척과 모든 스승처럼
중생들을 사랑하고 중히 여기며
여러 친척들에 성내거나 원한이 없으니
뛰어난 보리를 깨침이 셀 수가 없어라.

내가 안락한 보리를 구할 때에
무량한 겁을 두고 보리를 행했다네.
슬픈 마음으로 중생을 가엾게 여기어
몸과 머리와 눈과 살과 피를 버렸다네.

한량없이 중한 왕위도 버리고
사랑하는 처첩과 자녀들도 버리고
한량없는 보배수레와 코끼리나 말이 끄는 수레도 버렸으니
가장 뛰어난 보리를 구하기 위함이었다네.

한량없는 천만억의 겁을 통해서
늘 부지런하게 뛰어 달렸고
청정한 마음으로 한없이 보시해서
이처럼 뛰어난 보리를 구하였다네.

한없는 온갖 고통을 참아내면서
춥고 덥고 배고프고 목이 말라도
부지런히 정진하여 죽어서도 버리지 않았는데
가장 훌륭한 보리를 구하기 위해서였네.


내가 만일 백 년이나 한 겁을 두고
행한 일을 설해도 다할 수가 없으리라.
모든 중생들을 슬퍼하며 가엾게 여겼는데
안락하고 뛰어난 보리를 구하기 위함이어라.

죽고 삶을 돌고 돌며 언제나 만나는 것은
백천억의 무수한 여래였다네.
저들 모든 여래의 큰 세력에게
언제나 황금꽃을 받들어 바쳤다네.

반찬과 음식과 그리고 의복과
바르는 향, 가루향, 온갖 꽃다발과
무수한 보배 깃발과 좋은 가리개를
이러한 여래들께 공양했어라.

한량없이 많은 모든 중생들은
죽고 삶을 돌고 돌며 끝이 없어라.
내가 항상 거기 가서 이들을 편안히 위로하니
좋은 보시로 널리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주네.

지계(持戒)하고 인욕(忍辱)하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선정(禪定)삼매와 지혜의 방편을 닦네.
몸은 평등하게 4념처(念處)와 4정근(正勤)과
4신족(神足)을 잘 닦고 익숙히 행하여라.

그리고 또 5근(根)과 5력(力)을 닦으며
7보리분(菩提分)과 8성도(聖道)를 닦아라.
37조도품(助道品)을 내가 닦고 익혀
이러한 훌륭한 보리를 희망하여 찾아라.

나는 바른 지혜로 모든 업을 닦아서
어떠한 착하지 않음도 없다네.
언제나 수행을 닦아 방일함이 없으니
털끝만한 잘못도 없다네.

9. 선근품(善根品)

세존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중생이 모든 부처님에 대하여 한 번이라도 믿는 마음을 낸다면 이와 같은 선근은 결코 사라져 없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그 밖의 여러 선근들을 짓는 경우는 어떻겠는가?
아난아, 나는 중생들이 저러한 이치를 알게 하기 위해서 비유를 들겠다. 모든 지혜로운 자들은 비유를 통해서 이해를 얻기 때문이다.
아난아, 비유하면 이는 어떤 자가 한 올의 털을 쪼개어 백 개로 나누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그가 그 중의 한 개를 가지고 한 방울의 물에 적셔서 나한테 가지고 와서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구담(瞿曇)이시여, 제가 이 물을 구담께 드립니다. 구담께서는 이 물을 늘거나 줄게도 마시고, 또한 이 물이 바람이나 햇볕에 마르거나
날아가게도 마시고, 새나 짐승이 마셔서 없어지게도 마시고, 다른 물이 여기에 섞이게도 마시고, 그릇에 담아 땅에 놓아두지도 마소서.’
그러면 여래는 곧 그 부탁을 받고는 항하(恒河)의 물에다 놓아두는 것이다. 그렇게 하되 강물 속으로 섞여들지도 않고 또한 다른 물건들과 부딪치지도 않도록 한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큰 강물 속에 방울물로 남아서 물살을 따라 흐르면서도 다시 막히거나 걸리는 일이 없도록 하니, 또한 여러 새나 짐승들도 이를 마시어 없애지 않는다. 이처럼 이 방울의 물이 늘거나 줄거나 하는 일이 없이 처음 그대로 저들 큰 강물과 함께 모여서 차츰 큰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물방울이 만약 비람풍(毘嵐風)이 일어서 세계를 무너뜨릴 때, 가령 이 사람이 이 세상에 한 겁을 머문다고 한다면 나도 그와 마찬가지로 한 겁을 머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겁이 끝날 때에 저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구담이시여, 내가 전에 물방울을 맡겼는데 지금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난아, 그러면 이때 여래는 저 물방울이 큰 바다 가운데서 다른 물들과 서로 섞이지 않은 채 조금도 줄거나 늘거나 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가져다가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여래ㆍ응공ㆍ정변지는 큰 신통력과 큰 위력이 있어서, 많은 것을 이겨낼 청정한 큰 지혜가 있으며,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막힘없는 지견(知見)을 가지고 있어서 이러한 일들이 명료하여 막힘이 없으니 이런 부탁을 받는 자 중에서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다. 그래서 이처럼 부처님께 이와 같이 작은 물방울을 맡기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아무런 손상함이 없는 것이니, 이런 이치를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아난아, 여기서 가는 털의 끝은 심의식(心意識)에 비유한 것이고 항하는 생사류(生死流)에 비유한 것이며, 한 개의 방울물은 한 번 마음을 낸 작은 선근에 비유한 것이고, 큰 바다는 부처님인 여래ㆍ응공ㆍ정변지에 비유한 것이며, 이를 부탁한 사람은 저 청신(淸信)이나 바라문이나
장자거나 거사를 비유한 것이다.
한 겁을 머문다고 한 것은 불ㆍ여래가 저처럼 방울물을 부탁받고 끝내 이를 털거나 이지러뜨리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저 사람이 방울물을 부탁하여 맡긴 뒤 오랜 세월을 경과하고도 털끝 하나도 손상을 입지 않았음을 비유한 것이다.
이와 같이 아난아, 만일 부처님에 대하여 한 번이라도 믿는 마음을 내면 그 선근(善根)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그 나머지 뛰어나게 묘한 선근이야 어떻겠는가? 이런 사람들은 모두들 하나같이 열반의 과보에 나아가며, 그리고 열반의 경계를 다할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아난아, 또 어떤 사람이 여래의 처소에서 한 번 마음을 내고 한 번이라도 공경하여 믿는다면, 설사 그가 그 밖의 다른 착하지 못한 악업의 장애로 해서 지옥ㆍ축생ㆍ아귀에 떨어져서 본래 지은 업으로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다고 하더라도, 만일 크게 자비하신 여러 불세존이 이 세상에 나온다면, 그 분은 장애가 없는 지혜로써 이 중생은 본래 선근을 지었는데도 그 밖의 착하지 못한 악업의 장애로 해서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아신다.
부처님께서 이를 알고는 저 지옥으로부터 그를 건져내어 지상의 아무 두려움이 없는 곳에 그를 편히 둘 것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 그 중생으로 하여금 지난날에 지었던 좋은 일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선남자야, 너희들은 마땅히 지난날에 심은 선근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선근은 어느 때 어느 세계에 있을 때 아무개 부처님 처소에서 수행하여 심은 것이다.’
그러면 저 사람들은 부처님의 위력에 힘입어서 곧 이를 떠올리게 될 것이며, 이를 생각해 내고 나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바가바시여. 그렇습니다, 수가타시여.’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선남자야, 너희들은 예전에 여러 여래의 처소에서 적은 선근을 심고 이를 훼손하지 않았기에 저러한 이익을 얻었으니, 이른바 모든 괴로움을 없애고 모든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이다.
선남자야, 너희들이 지금 여기 부처님의 경계에 이르렀으나 그간에 너희들은 긴 밤을 잘못된 경계를 헤매면서 오랜 옛날부터
생사의 세계를 떠돌았다. 그러나 너희들이 본래 부처님의 처소에서 적은 선근을 심어서 이를 끝내 훼손하지 않았으니, 이는 마치 왕자나 왕의 대신(大臣)들이 설사 다른 잘못이 있어서 감옥에 유폐시킨다고 해도 본래의 사연을 말하고 뉘우치게 한 다음 그들을 풀어주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난아, 저 중생들은 본래 여래의 처소에서 선근을 심었으나, 가령 다른 선하지 못한 악업 때문에 지옥ㆍ축생ㆍ아귀 등의 온갖 악도(惡道)에 떨어져 고생한다 하더라도, 만일 크게 자비하신 여러 불세존께서 이 세상에 나온다면, 본래 마음을 낸 선근의 인연을 지닌 자에 대해서는 부처님께서 이들을 모두 보시고 지옥 속에서 이들을 끌어내어서 열반의 맑고 시원한 언덕, 두려움이 없는 곳에 편히 두실 것이다.
그리고 그런 뒤에는 그들의 기억을 되살려서 이렇게 가르칠 것이다.
‘선남자야, 너희는 마땅히 본래 지은 선근의 인연으로 해서 이와 같은 과보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여러 중생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바가바시여. 그렇습니다, 수가타시여. 저희들은 부처님의 위력과 신력의 가호를 받았다는 것을 기억을 되살려 알게 되었습니다.’”

10. 보시복덕품(布施福德品)

그때 세존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였다.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무리들이 적은 선근을 심는 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한 번 마음을 내어 한결같은 믿음을 가진다면 이런 사람은 모두 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한다고 나는 말하겠거니와, 이런 이유로 해서 비유를 든다면, 모든 청정하게 믿는[淸信] 남자와 여인들로 하여금 깊이 청정한 믿음을 내고, 그리하여 다시 공경하고 소중하게 큰 사랑과 기쁨을 일으켜서 뛸 듯이 즐겁게 하겠다.
아난아, 이는 어부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큰 못 속에다 미끼를 설치하고 물고기가 물도록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면 아무리 못 속에 있다 하더라도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나와야 할 것이다.
어째서인가?
이처럼 물고기가 견고하게 낚시 바늘에 물렸으니, 비록 아직 못 속에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땅 위로 끌려나올 것이란 것은 당연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이 낚싯줄이 못 둑의 나무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이때 어부는 이리로 와서 고기가 물렸다는 것을 알고는 바로 낚싯줄을 당겨서 당장 못 기슭의 적당한 곳으로 끌어내어 잘 둘 것이다.
이와 같이 아난아, 모든 중생들이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공경하고 믿는 마음을 내어 모든 선근을 심고 보시를 수행하여 드디어 마음을 내어 한결같이 생각하고 믿게 된다면, 비록 다른 선하지 못한 악업이 방해를 놓아 지옥ㆍ축생ㆍ아귀와 기타 모든 곤란한 곳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만일 불세존이 이 세상에 나온다면 그 부처님의 눈으로 모든 중생들을 볼 것이니, 이 중생들이 보살승을 행하였는가, 연각승을 행하였는가, 성문승을 행하였는가를 볼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 모든 중생들은 여러 선근을 심었고 이들 모든 중생들은 여러 선근을 끊었으며, 이들 모든 중생들은 물러나는 분(分)에 떨어졌고 이들 모든 중생들은 좋은 나아가는 분에 있으며, 이들 모든 중생들은 여러 종자를 성현의 지위에 심어 두어서 부처님의 복전에 드디어 마음을 내어 한결같이 믿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서 보시를 수행하였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근으로 해서 모든 불세존이 그 부처님의 눈으로 이들 중생들의 마음을 내 훌륭함을 보시기 때문에 지옥으로부터 이들을 끌어내며, 끌어낸 뒤에는 열반의 언덕에 이들을 둘 것인 바, 열반의 경계에 둔 뒤에는 그들의 기억을 되살려서 본래 여러 부처님의 처소에서 선근을 심었다는 것을 깨닫게 할 것이다.
이처럼 생각해 내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바가바시여. 그렇습니다, 수가타시여.’
그러면 부처님께서 말씀할 것이다.
‘선남자야, 너희들은 이와 같은 선근으로 해서 큰 과보를 얻고 큰 이익을 얻었으니, 부처님에게 보시를 수행하여 선근을 심었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이처럼 기탁한 것을 끝내 훼손하지 않는다면, 가령 그 오래가기가 심지어
백천억 나유타 겁을 지난다 하더라도 저 하나의 선근은 반드시 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하는 것이다.’
아난아, 여기서 말한 물고기는 여러 범부(凡夫)에 비유한 것이며, 못은 생사(生死)의 바다를 말한 것이며, 낚시 바늘은 부처님의 처소에서 하나의 선근을 심는 것을 말한 것이며, 낚싯줄은 4섭(攝)을 말한 것이며, 고기잡이는 불ㆍ여래를 말한 것이며, 뜻에 따라 물고기를 사용한 것은 모든 여래가 중생들을 열반의 과보에 편히 두는 것을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은 차례를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일 부처님의 복전(福田)을 베풀어서 설사 오래 되어도 끝까지 이를 망가뜨려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마침내 다함이 없고 끝남이 없어서 반드시 열반의 과보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아난아, 내가 지금 다시 비유를 들어 불전을 베풀어 제일(第一)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하는 것이다.
아난아, 만약 중생들이 세간의 과보를 탐내어 세간의 행을 행하고 세간을 사랑하여 세간을 바란다 해도 여러 부처님의 처소에서 보시를 행한다면 이러한 선근으로 해서 인천(人天)의 선도(善道)를 바라는 것으로 되돌려 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중생이 모든 부처님에 대하여 모든 선근을 심으면서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이 선근을 인하여 제가 세세(世世)로 열반에 들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아난아, 그러나 이들 중생들이 이러한 선근을 가지고도 열반에 들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째서 그런가? 아난아, 이와 같은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복전(福田)은 황폐하지도 않고 잡초가 나지도 않나니 욕심과 때[垢]와 허물을 여의어서 지극히 청정하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밭에다 적은 선근과 복덕의 종자를 심는다면 나머지 밭에서 생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 종류의 보리 종자를 만들 수 있으니 위없는 보리와 연각의 보리와 성문의 보리이다.
저들 모든 선근들이 끝내 어긋나거나 잃게 되지 않으니 이러한 보시로 해서 마음에는 믿고 존경함이 생겨서 인연을 늘리게 되는 것이며, 이로 하여 선도(善道)에 나아가 청정한 법을 얻어서 반드시 열반에 들게 되는 것이다.

아난아, 비유하자면 이는 장자가 논밭을 경영함에 있어, 그 땅이 거칠지 않고 잡초나 자갈 등도 없는데다 더욱 거름을 주어 기름지게 하고, 갈아주고 김매어서 부드럽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상하지 않은 싱싱한 새 종자를 좋은 그릇에 담아 와서 제철에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때에 따라 물을 주고 김을 매어 가꾸어서 모든 시기를 언제나 잘 보살피는 것이다.
아난아, 그런데 만일 이 장자가 농사를 짓는 농부이면서 여유가 생긴 시간에 그 논밭에 나가서 밭둑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쯧쯧, 이 종자들이여, 너희들은 싹이 트지 말고 나서 자라지도 말라. 나는 아무런 이익도 구하지 않고 보답도 바라지 않는다.’
아난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농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과연 씨앗이 싹트지 않고 나서 자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아난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바가바시여. 아닙니다, 수가타시여. 저 곡식들은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이고 열매가 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 그렇다, 아난아. 이와 마찬가지로 설사 중생들이 즐겨 생사에 집착하여 삼계(三界)에 애착하는 과보를 가져서 부처님의 복전에 선근을 심고는, ‘부디 바라건대 이 선근으로 해서 제가 열반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소서’ 한다 해도 이 사람이 열반하지 못하는 이치는 없는 것이다.
아난아, 이 사람이 비록 열반을 즐겨 구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러나 부처님 처소에서 선근들을 심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사람은 반드시 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처소에서 한 번이라도 마음을 내어 한결같이 공경하여 믿는 마음이 생겨서 선근을 심은 자라면 모두 마땅히 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하는 것이다.
아난아, 오는 세상에 변지(邊地)의 왕이 있어서 그가 비록 불법(佛法)의 공덕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정사(精舍)나 형상을 보고 마음에 믿음을 내니, 내가 옛날에 다섯 가지의 길[五道]의 곳곳에서 생(生)을 받아서 모든 보살행을 닦을 때에 4섭법(攝法)인 보시ㆍ
애어(愛語)ㆍ이행(利行)ㆍ동사(同事)를 가지고 이미 저 변지의 왕을 포섭했기 때문이다.
아난아, 따라서 저 변지의 왕이 만일 나의 정사와 형상을 보고 공경하여 믿는 마음을 낸다면 이러한 선근으로 해서 그는 반드시 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하게 될 것이다.
아난아, 저 변지의 왕은 마땅히 여러 신하가 있고 왕자들과 대신들이 있어서 도울 것이며, 친척과 동기와 여러 반려(伴侶)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내가 멸도(滅度)한 뒤에 나의 정사(精舍)와 형상을 보고 비록 모든 부처의 공덕이나 부처의 바른 법은 이해하여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조금이나마 선근을 닦아서 믿는 마음을 낸다고 한다면, 내가 본래 보살행을 닦을 때에 또한 4섭법으로 저들을 포섭해 보호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선근을 지닌 그들은 마땅히 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하게 될 것이다.
아난아, 나는 긴긴 밤에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4섭법으로 밤중 내내 그들을 거두어들이고 모든 불법으로써 이들을 이롭게 하고 양육하는 것이다.
아난아, 너는 보아라. 여래가 길을 갈 때에 크고 높은 곳을 낮게 하고, 낮은 곳을 높게 하여 높고 낮은 여러 곳들을 모두 평평하고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래가 지나가고 나면 땅은 금방 전과 같이 된다.
그리고 모든 나무들이 부처님을 향하여 몸을 기울이고, 나무의 신이 몸을 나타내어 머리를 굽혀 예배를 드리지만, 여래가 지나가고 나면 나무들은 곧장 본래대로 돌아간다. 언덕이나 구덩이, 냄새나는 오물, 가시덤불과 무성한 수풀과 모든 기와나 돌자갈 등이 모두 말끔히 사라지고 편안하고 깨끗한 길에 꽃다운 향기가 짙어서 무척이나 즐겁다. 온갖 꽃들이 아름답게 수놓은 찬란한 길을 여래가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아난아, 여래가 본래 수행한 온갖 선한 공덕으로 해서 길을 갈 때에 중생으로서 몸을 굽혀 머리를 조아리고 예를 올리지 않는 자가 없다는 것을 너는 보았을 것이다. 감정이 없는 모든 사물이나 대지와 산하, 나무와 풀들 또한 지나가는 부처님을 향해 몸을 굽히지 않는 자가 없다.

어째서 그런가? 아난아, 내가 본래 보살행을 닦을 때에 모든 스승에 대하여 몸을 굽혀 예배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에 대하여 최고로 존중하고 몸을 굽혀 예배하였으며, 늙은이ㆍ나이 많은 분ㆍ중년(中年)인 자ㆍ소년인 자ㆍ친구ㆍ형제들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몸을 굽혔고, 부처님과 보살 및 선지식(善知識)ㆍ성문ㆍ연각 및 외도(外道)와 5통(通)의 모든 선인(仙人)들, 사문ㆍ바라문 등 모든 공양을 받아야 될 자들에 대하여 그렇게 하였다.
이처럼 모든 부처님과 보살ㆍ선지식ㆍ성문ㆍ연각ㆍ외도 모든 선인들, 사문과 바라문, 부모ㆍ형제ㆍ친구ㆍ형제, 및 기타 나이 많은 사람ㆍ중년인 사람ㆍ나이 어린 사람ㆍ같은 스승을 모시는 벗들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모두 몸을 굽히고 겸손히 낮추어서 예배하여 공경하였던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와 같은 선업(善業)의 과보로 해서 위없는 보리를 얻어 성불하였기 때문에 저들 모든 사물(事物)과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이 모두 여래가 갈 때에 몸을 굽히고 머리를 숙여 예배하는 것이다.
아난아, 내가 본래 청정하고 미묘한 마음에 맞는 자산을 가지고 지극한 마음으로 손수 모든 스승과 어른과 다른 중생에게 보시하였다. 아난아, 이러한 업보(業報)로 해서 여래가 다닐 때에, 대지가 고르고 바르게 되고 깨끗이 청소되어 청정하여 티끌이 없으며, 또 자갈이나 기와조각 같은 것들이 없는 것이다.
아난아, 나는 옛날에 한량없는 모든 여래의 처소에서 보살ㆍ선지식ㆍ성문ㆍ연각 및 외도의 모든 선인(仙人)들이 길을 갈 때에 그 길을 청소하고 방사(房舍)를 손질하였으며, 만약 길을 가거나 부처님께서 정사(精舍)에 머물게 되면 나는 자애롭고 평등한 마음, 위아래가 없는 마음과 아첨이 없는 마음과 청정한 마음으로, 이를 청소하여 깨끗이 하였다.
나는 모든 시간을 통해서 언제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여 모든 중생을 위하고 모든 중생을 안락하게 하며, 모든 중생을 가엾게 여기고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려고 했었다.
아난아, 이와 같은 선근으로 해서 불ㆍ여래가 어떤 곳에서든, 길을 가든, 서든 앉든 간에, 길거리에 나서려는 생각을 하기만 하면 자연히 길거리가 깨끗해지고 땅이 손바닥처럼 고르게 되는 것이다.
아난아, 여래가 가진 신업(身業)의 공덕은 훌륭해서 알기가 어려우며, 그 끝을 얻을 수가 없다. 아난아, 지금 내가 이러한 이치를 충만하게 하니 나중에 청정하게 믿는[淸信] 선남자와 선여인이 있어 전에 없이 여래의 처소에서 깊이 공경하고 믿는 마음을 일으킬 것이다.
아난아, 수미산왕(須彌山王)은 높이가 8만 4천 유순이며, 바다 속으로도 역시 8만 4천 유순이다.
아난아, 그런데 내가 멸도할 때는 설사 이처럼 견고하고 높고 큰 산왕(山王)이라 해도 몸을 굽히지 않음이 없다. 하물며 다른 흑산(黑山)이나 그 풀과 나무들은 어떻겠느냐? 몸을 굽히지 않는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아난아, 견고한 수미산왕은 그만두고라도 저 철위산(鐵圍山)으로 말하면 높이가 16만 8천 유순인데 저들 또한 금강(金剛)처럼 견고하다. 그러나 부처님이 열반할 때는 이들이 모두 하나같이 몸을 굽히고 머리를 숙여 공경히 예배한다. 그러니 만일 멀리 이를 피하여 몸을 굽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 역시 이치에 맞지 않는다.
어째서 그런가? 아난아, 내가 본래 보살행을 닦을 때에 모든 중생들이 짓는 일과 업에서 끝내 떠나지 않았으며, 만일 어떤 중생이 화를 내고 어그러졌으면 내가 이들을 화합시키되, 예전에 화합하지 않던 자라도 이를 화합시켜 견고하고 편히 머물러 허물어짐이 없이 다들 자애롭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아난아, 이와 같은 선근의 인연의 힘으로 해서 여래는 허물 수가 없는 몸을 얻는 것이며 또한 그 권속들로 하여금 견고하여 허물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아난아, 여래와 또한 그 권속들이 견고하여 허물 수 없는 법을 얻으니 이른바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
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분(覺分)ㆍ8성도(聖道)가 그것이다.
아난아, 이 서른일곱 가지 보리를 돕는 법은 바로 불ㆍ여래의 큰 권속으로 모든 세계의 부처님과 성문과 연각이 그 가운데 안주하게 되니 모든 세간의 하늘과 사람의 무리들이 이를 허물 수가 없다.
어째서 그런가? 아난아, 부처님께서는 바로 이 법으로 해서, 모든 세간의 하늘들과 마천(魔天)ㆍ범천(梵天)ㆍ사문ㆍ바라문 및 여러 권속들,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와 수미산과 대철위산과 넓은 땅의 풀과 나무들이 부처님께서 열반할 때에 머리를 숙이고 몸을 굽혀 향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이를 깨뜨려 허물겠는가? 만약 이를 허물 수가 있다 한다면 그런 이치는 없다.
어째서 그런가? 아난아, 여래의 몸은 깨뜨릴 수가 없는 것이며 부처의 사리도 깨뜨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난아, 그러나 여래는 모든 중생을 가엾게 여긴다. 그래서 이와 같은 본래의 염원으로 해서 자신의 사리를 겨자씨처럼 부수어서 이를 통해 불법을 더욱 널리 유포하는 것이다.
아난아, 여래는 본래 보살행을 닦을 때에 이렇게 발원하였다.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정각(正覺)을 이루어서 열반에 든 뒤, 나의 사리가 더욱 널리 유포되도록 하소서.’
아난아, 이와 같은 본래의 염원으로 해서 내가 멸도한 뒤에 이 사리가 더욱 널리 유포되게 되니 저들 모든 중생들은 불ㆍ여래가 열반하는 것을 보고 성도(聖道)의 과보를 얻으며 부처님께서는 저들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어 이 사리를 마치 겨자씨처럼 조금씩 나누어 주는 것이다.
아난아, 여래ㆍ응공ㆍ정변지가 열반함에 임하여 세간의 모든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기 때문에 이처럼 삼매에 들 때에 이들 사리를 겨자씨처럼 조금씩 나누어 준다. 그러나 여래의 몸은 어떤 고통도 받지 않으며, 모든 지절(支節)이 나뉘어 흩어져서 그 사리가 겨자씨처럼 되지만
그럼에도 불ㆍ여래께서는 아무런 고통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저들 중생들을 가엾게 여겨 포섭하고 미래의 모든 중생들을 포섭하여 이들로 하여금 모든 선한 길[善道]에서 편안함을 얻게 하기 때문에 사리를 공양하고 소중하게 맞이하고 보내며 겸손히 낮추어 공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갖가지로 장엄하되, 온갖 꽃과 향, 바르는 향ㆍ가루향ㆍ의복ㆍ깃발ㆍ무수한 보배가리개와 노래와 춤과 음악으로 장엄한다. 그러면 나는 저들이 마땅히 열반의 과보를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난아, 내가 멸도한 뒤 일백 년 안에 바리불(波離弗)성에 아수가(阿輸迦)라는 국왕이 있어서 공작호(孔雀戶)의 종성(種姓)의 가문에 태어나서 법으로써 세상을 다스릴 것이니, 그는 나의 법에 대해 마땅히 공경해 믿을 것이며, 공경해 믿고서는 나의 사리를 더욱 널리 유포하되 같은 날의 같은 시간에 8만 4천의 탑을 세워서 나의 사리를 편히 둘 것이다.
아난아, 너는 근심하고 걱정하지 말라. 나의 사리를 마땅히 하늘과 사람들에게 널리 유포하여야 한다.
아난아, 현재에 여래에 대하여 공양하는 일이나 내가 멸도한 뒤에 그 겨자씨 같은 사리에 공양하는 일은 그만두고라도 아난아, 만일 꿈에 부처님의 정사(精舍)를 보고 이를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낸다면 나는 그런 사람은 이러한 선근으로 해서 마땅히 열반을 얻으며, 제일의 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난아, 미래의 세상에 있을 모든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온다면 이들 모든 여래들은 한결같이 나의 공덕의 행을 칭송할 것이니 내가 지금 과거의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칭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미래의 부처님들도 역시 그처럼 나의 이름을 일컫게 될 것이다.
아난아, 내가 법을 설할 때면 모든 중생들은 먼지와 때[번뇌]를 멀리 여의고 법의 눈을 얻을 것이다.
아난아, 저들 중생들은 내가 본래 보살행을 닦을 때에 모두가 다 이미 [근기가]
성숙(成熟)하였다.
아난아, 스님들 복전에 베푼 공덕은 다함이 있으며, 사방승(四方僧)에 베푼 공덕도 다함이 있지만, 벽지불에 베풀어서 지은 공덕은 다함이 없으니, 만일 부처님 처소에서 공덕을 짓는다면 이는 다하여 끝낼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아난아, 내가 전에 말한 것처럼 모든 복전을 지은 공덕은 모두 다 같이 열반의 과보를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하는 것이다.
아난아, 나를 직접 받들어 공양한 자나, 내가 멸도한 뒤에 나의 사리에 공양한 자는 그만두고라도 아난아, 만일 부처님을 염(念)하고 한 송이의 꽃이라도 공중에 뿌린다면 말이다. 나는 나의 깨달은 지혜로써 그 자의 선근이 가히 헤아릴 수가 없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아난아, 저들 중생들이 선근을 짓되 부처님을 마음으로 염하고 한 송이 꽃이라도 공중에 뿌린다면 설사 이 겁이 다하도록 윤회하고 달리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를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윤회하는 가운데 여래의 처소에서 한 송이의 꽃을 뿌리기만 한다면, 그가 얻는 과보는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어서 더러는 범천왕(梵天王)이 되고 더러는 석천왕(釋天王)이 되고 더러는 전륜성왕이 되리니 그 선근은 다할 수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할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아난아, 이와 같이 크게 신통한 여러 부처님들께 한 송이의 꽃을 바치면 이러한 한량이 없는 복덕의 과보인 광대한 이익과 큰 공덕의 모임을 얻게 되니 일컬어 헤아릴 수가 없으며 그 끝이 없으며 반드시 열반의 경계에 나아가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부처님께 공덕을 지으면 마땅히 이와 같이 이루 헤아릴 수가 없고 끝이 없는 복덕의 과보를 얻게 되니 그리하여 부처님께 한 번이라도 발심하여 한결같이 믿는 마음을 낸다면 나는 그가 청정한 행을 다하고 안온함을 끝까지 얻어 궁극의 경계를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아난아, 만일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범천왕ㆍ
전륜성왕ㆍ호세사천왕ㆍ삼십삼천ㆍ야마천(夜摩天)ㆍ도솔타천(兜率陀天)ㆍ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및 나머지 모든 하늘과 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인비인(人非人) 등 모든 세간의 주인으로 자재함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모든 불세존을 소중히 맞고 보내며 공경하게 공양하여야 한다.
그리고 만약 성문의 지위와 벽지불의 지위를 바라거나 또는 위없는 삼먁삼보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선남자와 선여인은 또한 마땅히 이처럼 공경하고 존중하여 겸손히 낮추어서 공양하여야 한다.
아난아, 내가 전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할 때에, 한량없는 부처님, 한량없는 백의 부처님, 한량없는 백천의 부처님과 내지 한량없는 억 나유타의 백천 부처님의 처소에서 공경하여 존중하고 겸손히 공양하였다. 의복과 음식과 침상과 자리, 와구(臥具)와 병들고 여윈 데 필요한 탕약 등을 다니시든 머무시든 앉든 눕든 간에 공양하였으며, 여러 꽃다발ㆍ바르는 향ㆍ가루향ㆍ전단향ㆍ침수향(沈水香)과 깃발과 보배 가리개를 부처님께 공양했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는 탑묘(塔廟)를 세워서 갖가지로 장엄(莊嚴)했으니 온갖 꽃ㆍ향ㆍ바르는 향ㆍ가루향과ㆍ노래ㆍ춤ㆍ놀이와 백천의 기악(伎樂)으로 공경하여 존중하고 겸손히 공양하였다. 세간의 모든 중생들을 가엾어 하시며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안온하고 이롭게 하기 위해서이며, 득도(得度)하지 못한 자를 득도케 하기 위해서이며, 해탈하지 못한 자를 해탈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안온하지 못한 자가 안온함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열반하지 못한 자가 열반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아난아, 내가 다섯 줄기의 우바라화(優波羅華)를 연등불(然燈佛)에게 뿌린 뒤 거기서 즉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달았으니
이와 같은 선근은 바로 작은 과보인 것이다.
아난아, 내가 연등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 뿌린 다섯 줄기의 꽃과 다른 선근의 작은 복덕의 과보에 대하여 너는 알고 싶으냐?”
아난이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즐겁게 듣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바가바시여. 그렇습니다, 수가타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 부디 연등불께 자그만 선근을 심어서 얻은 과보에 대하여 분별해서 보여 주소서.”
그러자 세존께서 금빛의 오른쪽 팔을 펴서 새끼손가락으로 하늘에다 우바라화꽃을 피우니 그 향기가 삼천대천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가득 찼다. 그리하여 백억의 해와 달이 운행하는 모든 곳이 어디나 두루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때 세존은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들 속에서 이와 같은 일찍이 없던 기특함을 나타내 보였으니,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작은 선근을 심어서 그 얻는 복덕의 과보가 허망하지 않음을 보인 것으로서, 이지러지거나 덜어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존께서 다음과 같이 게송을 설하였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부사의하니
여래의 법이 또한 그러해라.
부사의를 믿는 자는
부사의한 과보를 얻으리라.

생각이 있는 것이든 생각이 없는 것이든
모든 중생들이
한량이 없는 백억의 겁 동안
모두 다 공양해라.

세상에 계시는 벽지불과
번뇌가 없는 아라한을
부사의한 겁을 통해서
그들 모두에게 공양해라.

정각(正覺)이 세상에 계시거나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이거나
한 번의 합장이라도 하기만 한다면
앞의 것보다 이 복덕이 나으리라.

부처님의 계율을 빠뜨리지 않으면
자재하게 삼매(三昧)를 얻으리.
법에 대해 의혹이 없으니
부처님의 눈이 환하지 않음이 없어라.

낮이든 밤이든 적은 시간이라도
만일 선서(善逝)께 자애로운 마음을 닦는다면
이런 공양의 복은 끝이 없으리니
삼계(三界)에 같은 이 없고 짝이 없으리라.

지나간 아승기의 겁 동안
모든 세간의 도사(導師)께

모든 천인(天人) 가운데 광명을 내어
닦으신 착한 업은 셀 수가 없어라.

아승기의 겁을 윤회할 때에
저 받을 복의 과보는 끝이 없어라.
나는 저 복의 인연으로 해서
이 같은 훌륭한 보리를 얻을 수 있었네.

내가 옛날에 중생을 가엾게 여겨
한량없는 백천억의 부처님 앞에
세세생생 늘 훌륭한 공양을 닦았는데
부처님께서는 내게 기별(記別)을 주시지 않았네.

부처님 세존은 사람 중에 높아라.
나의 선근이 순일하게 익지 않음을 아셨다네.
아무리 여러 선을 행해도 기별을 못 얻으니
뛰어난 인(忍)이 나에게 없는 까닭이어라.

그래서 내가 또 연등불(然燈佛)을 뵙고
다섯 줄기의 우바라(優波羅)를 뿌리고
진창을 머리로 덮어 부처님께서 밟고 가니
무생(無生)의 훌륭한 법인(法忍)을 바로 깨달았네.

이때 저 도사(導師)이신 연등불께서
기별을 주시어 허공에 올랐다네.
너는 미래의 아승기의 세상에서
마땅히 성불(成佛)해서 석가라고 부르리라.

이처럼 죽고 삶에 흐르고 돌면서
한량없는 선업(善業)들을 닦아라.
중생을 가엾게 여겨 여러 고통을 받으며
이 같은 훌륭한 보리를 구하라.

세간의 고독한 괴로움을 보고는
슬프고 가엾게 여겨 언제나 보시했네.
저 복은 한이 없어 헤아릴 수 없으니
도사(導師)가 널리 말해도 다할 수가 없어라.

보살의 수행을 내가 닦을 때에
모든 부처님과 선서(善逝)와 세웅(世雄)께
밤낮으로 부르며 드린 공양이
한량없는 억겁으로도 셀 수가 없어라.

한 번ㆍ두 번ㆍ세 번ㆍ네 번ㆍ다섯 번ㆍ열 번
스무 번ㆍ서른 번 이름만을 불렀다네.
중생들이 불쌍해서 수행을 닦아
가장 훌륭한 부처님께 공양했네.

내가 본래 고행을 닦던 시절에
한량없는 고통들을 참고 받았다네.
세세생생 보리심을 버리지 않았으니
모든 부처님께서는 비할 데가 없어라.

세세생생 내가 유전(流轉)할 때에
백천만억의 머리를 수없이 버렸다네.
보배도 나라도 왕위도 버리고
많은 착한 말과 법 듣기를 구하였다네.


위없는 바른 법을 내가 구했을 때
마음으로 깊이 즐거워하며 구함이 헤아릴 수 없었네.
보시와 지계(持戒)와 그리고 인욕(忍辱)과
정진(精進)으로 훌륭한 보리를 깨달았네.

모든 부처님들 세력은 생각할 수 없어라.
모든 공덕들이 세운 것이어라.
생각할 수 없는 바른 법을 풀어 설하시며
훌륭한 보리도 나타내어 보이시네.

11. 식선근품(殖善根品)

세존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연등불 이후로 다시 연화상(蓮華上)부처님을 만나 그 부처님께 금으로 된 꽃을 받들어 뿌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였으며, 다시 일체세간최승자재(一切世間最勝自在)라 하는 부처님을 만나 그 부처님께 은으로 된 꽃을 받들어 뿌리고 이와 같은 모든 지혜의 종자를 구하였으며,
그리고 다시 이름을 극고행(極高行)이라 하는 부처님을 만나 그 부처님께 보배로운 돈을 받들어 올리고 이와 같은 알 수 없는 지혜를 구하였으며, 그리고 다시 이름을 상예(上譽)라 하는 부처님을 만나 그 부처님께 온갖 보배를 받들어 올리고 이와 같은 장애가 없는 지혜를 구하였으며, 그리고 다시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는 부처님을 만나 그 부처님 위에 여러 가지 꽃을 뿌리고 이와 같이 위없는 보리를 구하였으며,
그리고 다시 제사(帝沙)라 하는 부처님을 만나 그 부처님께 붉은 전단향과 가루향과 바르는 향을 뿌리고 역시 장애가 없는 지혜를 구하였으며, 그리고 다시 불사(弗沙)라 하는 부처님을 만나 깊은 믿음으로 칠 일 낮과 밤 동안을 눈 한번 감지 않은 채 한량없는 게송으로 그 세존을 찬탄하였으며,
그리고 다시 비바시(毘婆尸)라 하는 부처님을 만나 그 세존께 다시 콩을 뿌렸으며, 그리고 다시 시기(尸棄)라 하는 부처님을 만나 그 부처님께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 옷을 받들어 올렸으며, 그리고 다시 비사부(毘舍浮)라 하는 부처님을 만나 나는 그 불세존께 맛있는 반찬과 음식을 공양하였다.

아난아, 이 현겁(賢劫)의 처음에 나오신 부처님께서 계시니 이름을 구류손(拘留孫)이라 한다. 나는 그 부처님 처소에서 청정하게 범행(梵行)을 닦아 이와 같은 자연스런 지혜[自然智]를 구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다음에 이름을 구나함모니(拘那含牟尼)라 하는 부처님을 만나 그 부처님 처소에서 청정한 행을 닦았으며 그리고 다음에는 가섭이라 하는 부처님이 있었는데 이때 나는 이 부처님에 대해서도 또한 청정한 행을 닦았다.
이처럼 나는 이들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여 이를 통해 스스로 득도하고 또한 득도하지 못한 자를 득도시켰으며, 스스로 해탈을 얻고 또한 해탈하지 못한 자들을 해탈하게 하였으며, 스스로 열반을 얻고 또한 열반하지 못한 자를 위해 열반하게 하였다.
지금 너는 보아라. 내가 이처럼 한량없는 아승기겁을 통해 모든 불세존께 공양을 올리고 공경하여 존중하고 겸손히 낮추어 공양해서 한량없는 모든 선한 공덕을 갖추고는 이와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게 된 것을 말이다.
아난아, 이와 같은 절차를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비록 부처님 처소에서 적은 선근을 심기만 해도 마땅히 이와 같이 크게 신통하고 크게 이로운 광대한 공덕을 얻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난아, 내가 부처님께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보리의 선근을 심고 지금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과보를 얻게 되어 나와 대등(對等)한 것이 없고 서로 맞설 것이 없으며 끝이 없다는 것을 너는 마땅히 믿어야 한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을 설하였다.

나는 연등불 양족존(兩足尊)을 만나
보살의 수행을 닦았다네.
다섯 줄기 푸른 연꽃을 부처님께 뿌리니
위없는 도리(道理)를 당장에 전해 주셨다네.

그 다음 부처님께서는 연화상인데
나는 또한 그때 그 분을 만나
그 부처님께 금보화(金寶華)를 뿌리니
가장 좋은 보리를 구하였기 때문이라네.

그리고 다음의 큰 도사(導師)인 부처님께서는
모든 세간에서 가장 자재 하다고 이름했다네.

극고상행(極高上行)부처님ㆍ상예(上譽)부처님
석가모니부처님ㆍ제사부처님ㆍ불사부처님

비바시ㆍ시기ㆍ비사부 부처님과
구류손부처님과 구나함부처님과
가섭부처님께 모두 공양을 드리고
가장 높고 훌륭한 보리를 구했다네.

이들 부처님과 나머지 과거 부처님들께
나는 모두 수행하고 훌륭하게 공양했다네.
모든 중생을 슬퍼하고 가엾어 하기에
위없는 훌륭한 보리를 구했다네.

천억의 부처님들을 모두 다 공양하여
선근을 쌓아 모아서 이미 만족하고
악마의 세력과 권속들을 항복받아
근심 걱정이 없는 편안한 도리를 얻었다네.

나는 위없는 큰 법의 바퀴를 굴려
중생들을 위해 바른 법을 보였다네.
하늘ㆍ사람ㆍ용ㆍ긴나라들을
보리의 그릇에 따라 모두 건네주었네.

내가 이미 편안한 도리를 보였으니
미래의 모든 부처님과 성문들은
고통 받는 자들을 구제하고 싶다면
마땅히 나의 덕행을 익숙하게 닦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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