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방편불보은경(大方便佛報恩經) 2권
대방편불보은경 제2권
실역인명
김달진 번역
3. 다스리는 품[對治品]
그때 세존께서 대중들과 함께 계셨는데 마치 해의 광명이 밝게 빛나서 뭇 별들을 숨겨 가린 것 같았고, 마치 큰 용이 난초와 참죽나무 둘레에 서려 있어서 산뜻하고 찬란하여 보면 눈이 아찔하고 생각하면 뜻이 어지러운 것과 같으며, 거룩한 빛이 빛나고 빛깔이 견줄 데 없음이 마치 반딧불 빛은 해가 나오면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았다.
해와 달에 비록 백천의 광명이 있다 하더라도 제석의 것에 견주면 마치 먹(墨)을 모아놓은 것과 같고, 제석에게 비록 희고 깨끗하고 미묘한 광명이 있다 하더라도 대범왕이 지닌 광명에 견준다면 마치 기와와 조약돌을 밤에 빛나는 마니보배 구슬에 견주는 것과 같으며, 대범천왕에게 비록 깨끗하고 미묘한 백천의 광명이 있다 하더라도 여래께서 지니신 광명에 견준다면 역시 먹을 모아놓은 것과 같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여래의 일곱 자[尺] 원광(圓光)은 시방세계를 멀리 비출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중생으로서 이 광명을 만나는 이는 소경이면 보게 되고 곱사등이면 펴지며 곰배팔이거나 앉은뱅이 중생이면 손발을 얻고 삿되고 미혹한 중생이면 참된 말을 들어볼 수 있으리니, 요약하여 말하자면 뜻에 맞지 않던 모든 것들을 다 소원대로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때 모임 가운데 70명의 큰 보살마하살들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땅에 엎드려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백천 번을 돌고서 물러나 한 쪽에 서서 소리를 같이하여 백천의 게송으로써 여래를 찬탄하였다.
그 이름은 부사의(不思議) 보살ㆍ이각음(離覺音) 보살ㆍ유념안(惟念安) 보살ㆍ이구칭(離垢稱) 보살ㆍ무량음(無量音) 보살ㆍ
대명문(大名聞) 보살ㆍ명보계(明寶髻) 보살ㆍ견사자(堅師子) 보살ㆍ독보서(獨步逝) 보살ㆍ사소념(捨所念) 보살ㆍ급지적(及智積) 보살ㆍ의선주(意善住) 보살ㆍ무극상(無極相) 보살ㆍ혜광요(慧光曜) 보살ㆍ소강의(消强意) 보살ㆍ능옹호(能擁護) 보살ㆍ지성영(至誠英) 보살ㆍ연화계(蓮花界) 보살ㆍ중제안(衆諸安) 보살ㆍ성혜업(聖慧業) 보살ㆍ장공훈(將功勳) 보살이며, 무사의(無思議) 보살ㆍ정범시(淨梵施) 보살ㆍ보사업(寶事業) 보살ㆍ처대화(處大花) 보살ㆍ선사유(善思惟) 보살ㆍ무법한(無限法) 보살ㆍ명문의(名聞意) 보살ㆍ이변적(已辯積) 보살ㆍ자재문(自在聞) 보살ㆍ십종력(十種力) 보살ㆍ유십력(有十力) 보살ㆍ대성민(大聖愍) 보살ㆍ무소월(無所越) 보살ㆍ유적연(遊寂然) 보살ㆍ
재어피(在於彼) 보살ㆍ무수천(無數天) 보살ㆍ수미광(須彌光) 보살이며, 극중장(極重藏) 보살ㆍ인초월(因超越) 보살ㆍ이독보(而獨步) 보살ㆍ위신승(威神勝) 보살ㆍ대부계(大部界) 보살ㆍ이산호(以山護) 보살ㆍ지삼세(持三世) 보살ㆍ유공훈(有功勳) 보살ㆍ선명칭(宣名稱) 보살ㆍ일광명(日光明) 보살ㆍ사자영(獅子英) 보살ㆍ시절왕(時節王) 보살ㆍ사자장(師子藏) 보살ㆍ시현유(示現有) 보살ㆍ광원조(光遠照) 보살ㆍ산사자(山師子) 보살ㆍ유취시(有取施) 보살ㆍ막능승(莫能勝) 보살이며, 위최당(爲最幢) 보살ㆍ희열칭(喜悅稱) 보살ㆍ견정진(堅精進) 보살ㆍ무손감(無損減) 보살ㆍ유명칭(有名稱) 보살ㆍ무공포(無恐怖) 보살ㆍ무착천(無着天) 보살ㆍ대명등(大明燈) 보살ㆍ세광요(世光曜) 보살ㆍ미묘음(微妙音) 보살ㆍ집공훈(執功勳) 보살ㆍ제암명(除闇暝) 보살과 무등륜(無等倫) 보살 등이다.
저마다
부처님의 앞에서 서원을 세웠다.
“저희들은 세존께서 열반하신 후에, 부처님 법을 보호하고 지녀서 시방세계에 널리 유포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저희들은 이제 미래의 헤아릴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미묘한 빛깔의 광명을 보았으며, 광명 가운데서 모두가 헤아릴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부처님의 법을 듣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법을 듣고 나서 마음의 장애를 떠났고, 쌓여있던 번뇌가 영원히 스러져서 몸과 마음이 깨끗해졌으며 빛남은 마치 하늘의 금이 만 가지를 비춤과 같습니다.
저희들은 이와 같은 공덕과 이익을 생각하였기 때문에 여래에게 큰 스승이라는 생각을 내고 인자한 아버지라는 생각을 내어 언제나 부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부처님의 은혜를 갚아야 하겠나이다.
왜냐 하면, 바른 법을 듣게 되었으므로 오래지 않아 도량에 앉아서 바른 법의 바퀴를 굴리어 일체 중생들을 제도 해탈해야 하기 때문이니, 모두가 법을 들었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 보리를 얻도록 하겠나이다.”
그때 석가여래께서 일체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70의 큰 보살마하살은 오랜 과거의 한량없는 백천 만억 미세한 티끌 수와 같은 아승기겁 동안에 이미 일찍이 한량없는 백천 만억 황하의 모래만큼 많은 세계의 미세한 티끌 수만큼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였고, 그 부처님 처소에서 항상 범행(梵行)을 닦았으며, 그 부처님들을 공양하는데 마음에 고달파하거나 게으르지 아니하였느니라.
자비로 몸을 닦아 부처님 법을 잘 보호하고 큰 동정심을 버리지 아니하여 언제나 시방에서 일체를 이롭게 하였느니라.
만약 어떤 중생이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한 보살의 이름을 듣거나 두 분ㆍ세 분ㆍ네 분 내지 일흔 분에 이르기까지 듣고 이름을 부르며 귀의한다면, 목숨을 마치고 곧 부처님이 계신 국토에 가서 태어나 연꽃에 화하여 나서 음욕을 멀리 여의고 태(胎) 안에 들지 않으며, 모든 더러움을 떠나서 그 몸이 깨끗하여
미묘한 향기가 있어 대중들이 공경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스럽게 여김을 받느니라.
사람들에게 공경과 사랑스럽게 여김을 받기 때문에 그 마음은 기쁘고, 기쁜 마음 때문에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냄으로써 일체 중생들에게 큰 자비심을 낼 수 있고, 자비심을 낸 뒤에는 다음으로 또한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마음을 내며,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마음을 낸 뒤에는 다시 중생을 버리지 않는 마음과 중생을 이롭게 하는 마음과 자신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마음과 장애를 없애는 마음과 번뇌를 고요히 하는 마음을 낼 수 있고, 착한 벗을 가까이 하여 언제나 공경하는 마음과 뜻을 오로지하여 법을 듣는 마음과 기억하여 잊어버리지 않고 미묘한 뜻을 생각하는 마음과 적게 듣고도 뜻을 많이 알기를 원하는 마음과 많이 듣고도 뜻을 모르는 것은 원하지 않는 마음을 낼 수 있느니라.
다음으로 진여(眞如)를 믿는 마음과 실다운 이치를 믿는 마음을 내고, 실다운 이치 믿는 마음을 낸 뒤에는 다음으로 말씀대로 수행하는 마음을 내며, 말씀대로 수행하는 마음을 낸 뒤에는 다음으로 물러나지 않는 마음을 내고, 물러나지 않는 마음을 낸 뒤에는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동등하게 상대하여 다스리는 마음을 내느니라.
내가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일체 삼계의 25유(有)로서 형상이 있는 것과 형상이 없는 것과 네 발 달린 것과 여러 발 달린 것과 개미들에 이르기까지 목숨이 있는 것이면 역시 그와 같나니, 그러므로 보살은 스스로 몸과 목숨을 잃을지언정 마침내 다른 것의 생명을 빼앗지는 않는 것이다.
내가 돈ㆍ곡식ㆍ비단ㆍ옷ㆍ음식ㆍ코끼리ㆍ말ㆍ탈것ㆍ나라ㆍ성ㆍ아내ㆍ아들이며 몸과 손발을 지니어 공양하고 부축하며 보호하는데 다른 사람이 멋대로 와서 침해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일체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으니,
그러므로 보살은 스스로 몸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마침내 중생들의 옷과 재물과 음식에 대하여 겁탈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속고 업신여겨져서 나의 아름다운 누이와 아내며 첩이 결단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일체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으니, 그러므로 보살은 몸이 없어지고 목숨을 잃을지언정 다른 이의 아름다운 얼굴에 삿된 생각과 음욕의 마음도 내지 않거늘, 하물며 간악한 짓을 하겠느냐.
내가 눈앞에서 헐뜯기고 이간질하며 욕설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일체 중생들도 역시 그와 같나니, 그러므로 보살은 몸과 목숨을 잃을지언정 끝내 거짓말과 이간질로 피차간에 싸우게 하거나 어지럽히지 않느니라.
내가 몸뚱이를 돌로 맞고 매질하며 고문 받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일체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으니, 그러므로 보살은 몸과 목숨을 잃을지언정 끝내 몽둥이와 돌로써 혹독하게 중생을 고문하지 않느니라.
내가 손발에 고랑과 사슬을 차고 갇히며 결박되는 여러 가지 괴로운 것들을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일체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으니, 그러므로 보살은 몸과 목숨을 잃을지언정 끝내 중생에게 고랑과 사슬을 채우거나 묶어 가두지 않느니라.
내가 남들에게 업신여겨져서 강제로 협박을 당하며 위엄과 짜증으로 괴롭게 굴고 세력을 믿고 뽐내면서 억누르고 때리고 금하며 면전에서 자기의 정당한 말을 못하게 하고 자기만 깨끗한 체하는 이를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일체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으니, 그러므로 보살은 몸과 목숨을 잃을지언정 끝내 도리가 아니면 중생에게 베풀지 않느니라.
내가 남에게 공양과 존중과 찬탄을 받아서 나를 기쁘게 하는 이처럼 나도 언제나 중생들에게 옷과 음식과 침구며 의약 등 일체의 안락한 도구를 보시하여야 하느니라.
내가 큰일을 짓거나 부처님 일ㆍ가르침의 일ㆍ승가의 일이거나 간에 지혜와 힘이 한계가 있어서 그것을 이룩할 수 없는지라 근심 걱정하며 괴로워할 적에 어떤 지혜로운 이가 내가 이렇게 근심하고 짜증내며 괴로워하면서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보고 곧 나에게 말하기를, ‘선남자여, 근심하지 마십시오. 내가 이바지를 마련해서 구하는 바를 뜻에 맞도록 하고 그대가 이를 이루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한다면, 나는 이 말을 듣고 마음에 기쁨을 내나니, 그러므로 나도 언제나 중생들을 권하고 교화하며 중생들을 이롭게 해야 하느니라.
내가 왕과 도둑ㆍ물ㆍ불이며 벼슬아치 등에게 핍박을 받아서 결박되었거나 갇혔거나 하여 마음에 몹시 근심 할 적에 다시 어떤 지혜로운 이가 내가 이렇게 뭇 고통과 재난을 만났음을 보고 곧 나에게로 와서 좋은 말로 위로하며 말하기를,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당신을 위하여 국왕 또는 대신에게 사정을 하거나 혹은 뇌물을 주고 딴 방편을 써서라도 당신이 풀려나게 하여 괴로움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한다면, 나는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기쁨을 낼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늘 부지런히 재주와 많은 솜씨며 음악ㆍ광대ㆍ역수(歷數)ㆍ산술ㆍ주술(呪術)과 선약(仙藥)을 닦으며 코끼리와 말을 타고 투구를 쓰며 창과 화살을 지니고 진지를 드나들면서 큰 무공이 있어야 하니, 나에게 이와 같은 뭇 미묘한 재주가 있다면 일체의 인민들과 왕이며 대신들이 감히 나의 뜻을 거스르지 못할 것이며, 겸하여 나에게 또 옷과 음식ㆍ구슬ㆍ가락지ㆍ비녀ㆍ팔찌ㆍ금ㆍ은ㆍ유리ㆍ산호ㆍ호박ㆍ자거ㆍ마노ㆍ진주ㆍ매괴ㆍ마니보주ㆍ코끼리ㆍ말ㆍ수레ㆍ종ㆍ사환ㆍ궁인(宮人)ㆍ미녀와 흐르는 샘이며 목욕하는 못과 칠보의 망루 등 이와 같이 갖가지의 미묘하고 한량없는 백천 가지가 있을 적에, 보살은 비록 이러한 위엄과 무력이 뜻대로요, 재주가 백천 가지며, 보배 창고와
코끼리와 말과 탈것이 한량없고, 미녀와 훌륭하고 묘한 망루며 흐르는 샘과 목욕하는 못과 온갖 다섯 가지 욕심의 안락 도구가 있다 손치더라도 마음에 탐착하지 않으며, 언제나 욕심을 적게 하여 만족한 줄 알며, 한가하고 고요함을 즐기며, 산과 숲의 나무 아래서 편안히 선정을 닦아 고요하며 잠잠하니라.
비록 대중들 가운데 처하여 대화를 하고 논쟁을 하더라도 마음은 언제나 마주 대하여 다스리는 문 안에 들며, 비록 중생들과 함께 하여 빛을 감추고 세속에 섞여 있으면서 재산과 생업에 이자를 주고받더라도 마침내 악하게 하지 아니하고 중생들을 이롭게 하며, 만약 가난한 이거나 여러 가지 괴로움이 있는 이가 와서 보살에게 바라고 구하면 보살은 뜻을 따라 마음에 맞도록 주느니라.
보살이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 법을 좋아하여 와서 친근히 하고 공양하며 섬기고 받들면서 발을 씻고 안마를 하며 빨래하고 말리며 이쑤시개와 세숫물을 주고 평상과 깔개를 털고 닦으며 속옷과 이불과 베개를 개고 초저녁과 새벽녘에 등불과 촛불을 주며 먼저 먹고 뒤에 먹는 달발나식(怛鉢那食)1)ㆍ포사니식(蒲闍尼食)2)ㆍ카타니식(佉陀尼食)3)과 여러 가지 마실 음료인 여리사장(與利師漿)ㆍ복륵사과장(馥勒奢果漿)ㆍ포도장(蒲萄漿)ㆍ사탕과 꿀물 등 이와 같은 것들로 받들어 섬기기를 7일에서 90일 동안까지 이르면서 보살에게 청하여 부처님 법을 들으려 한다면, 보살은 그때에 비록 이 사람의 이와 같은 공급을 받는다 하더라도 마음으로는 기뻐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은 오랜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부처님 법을 구하였기 때문이요, 일체 중생을 위해서 마음에 더하거나 덜함이 없기 때문이요, 인자함과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요, 평등한 마음에 머무르기 때문이니라.
때에 전륜성왕이 되어 언제나 열 가지 선행으로써 중생들을 인도하고 교화하였지마는 자기의 뜻을 위하여 기뻐하고 받들어 행한 것이니, 목숨을 마친 뒤에는 인간과 천상에 태어나느니라.
미묘한 다섯 가지 욕심과 쾌락을 받으며 존엄하고 뛰어나고 귀한지라 마음대로 뜻에 맞추어
눕고 일어나고 궁중에 들고 안장 지운 말을 타고 동산에서 재미있게 놀며 풍악으로 스스로 즐기고 기뻐하면서 마시고 먹고 하다가도, 무상함이 갑자기 들이닥쳐서 늙고 병들고 죽으면, 집안의 남녀들이 몹시 근심하고 괴로워하면서 소리 내어 크게 울며 손으로 가슴을 치고 혹 때로는 머리칼을 쥐어뜯기도 하며 재와 흙을 먹기도 하고 기절하여 땅에 쓰러지기도 하며 만장(挽章)을 잡고 상여에 태워 통곡하면서 보내며 파묻은 뒤에는 집안 남녀들이 서로가 손을 붙들어 잡고 본가로 돌아와서 몹시 근심하고 기절하여 한참 동안 땅에 쓰러져 있으며, 혹 때로는 병이 나기도 하고 혹 때로는 미치기도 하며 혹 때로는 죽기도 하나니, 살아있는 이에게는 큰 손해요, 죽은 이에게도 이익이 없느니라.
이때 전륜성왕이 앞뒤에서 인도하고 따르며 나라 안을 순찰하다가 중생들이 이런 고통을 받음을 보고 불쌍히 여겨서 말하기를, ‘왕이란 국토를 거느리고 중생들을 거두는 것인데 비록 열 가지 선행으로 인도하고 교화하여 결과적으로 이와 같이 미묘한 다섯 가지 욕심을 얻게 된다하더라도 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서 무상하여 없어지고 무너지는 것은 면하지 못하는구나. 내가 비록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 하더라도 만물에는 이익이 없는 줄 알겠도다. 만약 만물에 이익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대전륜왕이라 하겠으며, 어떻게 또 큰 인자한 아버지라 하겠으며, 어떻게 또 큰 의왕(醫王)이라 하겠으며 어떻게 또 큰 길잡이라 하겠느냐.
큰 길잡이라 하는 것은 바른 길로 인도하여 열반의 길을 보이며 함이 없음[無爲]을 얻어서 언제나 편안하고 즐겁게 하여야 할 것이지만, 나는 지금 이름과 행이 걸맞지 않다.
마치 어떤 사람이 목이 말라서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 이리저리 달려 다니며 찬 물을 찾다가 멀리서 빈 우물을 발견하고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생각하기를, ‘이제야 나의 몸은 다시 살아나게 되었구나. 왜냐하면, 만약 물을 얻지 못하면 머지않아 죽을 것이지만 이제 좋은 우물을 발견하였으니 반드시 그 바라던 깨끗한 찬 물을 얻게 되어 나의 갈증으로 다급했던 목숨을 살리리라’ 하고는,
마구 달려 나가서 우물가에 이르러 입었던 옷을 벗어 한곳에 올려놓고 우물에 물을 뜨려고 들어갔으나 물은 얻을 수가 없고 오직 독사가 우물을 지키고 있었으며 살모사와 전갈과 지네들의 무리며 기와ㆍ조약돌 가시덤불과 잡초며 쓰레기만을 보았느니라.
그때 목마른 사람은 본래의 바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미 물을 얻지 못했을 뿐더러 여러 가지 독이 몸을 쏘는지라 곧 우물에서 나오려고 하였는데, 그 우물은 헐어 있었으므로 험한 바위가 굴러 떨어졌느니라.
헐었기 때문에 우물의 깊이가 한 화살 길 정도였지만 사닥다리와 줄이며 나무때기도 없었고 또 몸을 솟구치며 뛰어 올라보기도 하였으나 힘이 그 높이까지 갈 수도 없었거니와 기력이 점차로 없어져서 도리어 우물 밑으로 떨어졌으므로 여러 독사들에게 쪼아 먹혔느니라.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을 적에 말하기를, ‘내가 만약 먼저 이 우물에 물이 없는 줄 알았더라면 오히려 눈으로 보지도 않았을 터인데 하물며 가서 마시려고 했겠는가. 오늘의 심한 괴로움은 우물을 잘못 보았기 때문이로다’라고 함과 같으니라.
그때 전륜성왕은 여러 인민들과 집안 남녀가 은혜와 사랑을 여의고서 괴로움을 받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이제 나의 몸은 마치 빈 우물과 같으니 비록 우물이라는 이름은 있지만 물이 없으므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얻는 것은 없고 몸과 목숨을 잃는 고통만이 이와 같구나.
내가 이제 비록 전륜성왕의 지위에 있으면서 칠보를 두루 갖추고 열 가지 선행으로 인도 교화하며 바른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려 여러 중생들을 인간과 천상에 나게 하며 그 미묘한 다섯 가지 욕심의 쾌락을 받게 한다하더라도 아직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음과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원수와 만나며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서 서로가 통곡하는 것을 면할 수가 없도다.
그러나 이는 나의 허물이요 중생들의 허물이 아니니, 왜 그러냐 하면, 내가 세간을 벗어나는 법으로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함이 없으므로 비록 나에게 선한 법을 묻고 받아서 안락함을 얻는다하더라도 실제로는
괴로움의 바다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느니라.
그때 전륜성왕이 다시 생각하기를, ‘나의 몸은 이제 마치 지혜가 없고 크게 어리석은 시주(施主)와 같다’라고 하였다.
어느 땐가 한 시주가 큰 가뭄을 만나 7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으므로 나무까지 바짝 말랐는데 세상은 흉년으로 곡식과 쌀이 폭등하여 귀해져서 인민들은 굶주렸는지라 서로가 잡아먹었나니, 피를 마시고 살을 먹으며 서로 해치면서 아무 죄 없는 이를 함부로 죽이고 혹은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기도 하고 혹은 아들이 아버지를 잡아먹기도 하여 부모 형제 처자인 남녀 간에 서로 서로 잡아먹었느니라.
그때 큰 시주가 놀러 다니면서 구경하다가 여러 중생들이 굶주려서 여위어 벌벌 떨며 기력이 없고 얼굴 모습이 파리하며 머리칼이 흐트러지고 형체가 말라 검은 것을 보았다.
그 어깨 위에서 혹 메고 걸머진 것을 보았는데 순전히 이는 죽은 사람의 머리와 손마디ㆍ팔목ㆍ팔꿈치ㆍ등골뼈ㆍ겨드랑이ㆍ어깨ㆍ종지뼈와 발가락 등이었으며, 혹은 간ㆍ쓸개ㆍ장ㆍ밥통 등이었다.
큰 시주가 조그마한 소리로 묻기를, ‘그대가 걸머진 것은 어떤 물건인가’ 하자, 대답하기를 ‘제가 걸머진 것은 바로 죽은 사람의 머리와 손과 팔 등입니다’ 하므로, 묻기를 ‘그대가 걸머진 죽은 사람의 팔과 팔꿈치며 팔목은 무엇 하려는 것인가’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당신은 모르시오. 날이 가물고 세상에 흉년이 들어서 곡식과 쌀이 폭등하여 귀하므로 인민들이 굶주려서 서로가 잡아먹고 있습니다. 제가 걸머진 것은 바로 저의 음식입니다’라고 하였느니라.
그때 시주는 이 말을 듣고 나서 마음이 놀라고 털이 곤두서며 기절하여 땅에 쓰러졌는데, 찬 물을 얼굴에 뿌리자 한참 만에 깨어나 다시 묻기를, ‘그것이 바로 그대의 식량이라면 이는 어떤 사람의 고기인가’라고 하자, 굶주린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소리 내어 크게 통곡하며 근심하고 성을 내며 애닮아 하면서 시주에게 말하기를,
‘말 할 수 없습니다. 쓰리고 아프고 괴상망측합니다. 큰 시주여, 내가 이제 사실대로 말하리다. 내가 걸머진 것이 혹은 이가 아버지라 하기도 하고 혹은 이가 어머니라 하기도 하며 혹은 이가 아내요, 아들이라 하기도 하며 혹은 형제요, 종친들의 뼈와 살이기도 합니다.’
그때 여러 굶주린 사람들이 저마다 사실대로 스스로 인연을 말하면서, ‘큰 시주여, 다시 다른 일이란 없습니다. 저희들이 배가 고픈지라 서로가 잡아먹었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느니라.
그때 큰 시주는 이 말을 듣고서 기가 막혀 탄식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은 이제 다시는 서로가 같이 잡아먹거나 살을 먹지 말라. 만약 필요한 의복ㆍ음식과 여러 가지 탕약이며 필요한 물건들이 있으면 지금으로부터 7일 후에 그대들 대중들은 모두 나의 집으로 모여라. 나는 그대들의 필요한 바에 따라서 옷과 음식이며 아프고 야윈데 쓰는 탕약 등을 뜻에 맞게 주겠노라’고 하자, 여러 사람들이 듣고서 마음으로 기쁨을 내며 찬탄하기를, ‘장하고 장하십니다. 전에 없던 일입니다’라고 하였느니라.
시주가 곧 그의 집에 이르러서 그의 부인과 그의 아들들이며 종과 부리는 사람들을 불러 모두가 다 모이자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온화한 얼굴과 기쁜 빛으로 부드러운 말로써 처자며 여러 부리는 사람들에게 타이르기를, ‘그대들은 지극한 마음으로 내가 말하는 것을 들어야 하리라. 그대들은 알고 있는가. 날이 가물고 세상에 흉년이 들어서 인민들이 굶주려 죽는 이가 수도 없으나, 우리들의 집에 있는 창고에는 곡식과 쌀이 가득 차서 한량없으니, 같이 알맞은 때에 복밭[福田]을 심어야겠도다’라고 하자, 처자들은 듣고서, ‘장하고도 장하십니다. 한량없이 반갑고 좋은 일이십니다. 저희들의 몸과 목숨까지도 시주를 따를 것인데 하물며 큰 광의 돈과 재물이며 음식이겠습니까’라고 하였느니라.
시주는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그대들은 이제 참으로
나의 위없는 도반(道伴)이로다. 장하고 장하구나. 그대들은 응당 저마다 스스로 맡은 곳에서 지어야 할 바를 따르고 해야 할 바를 따르되 지어야 할 것은 곧 짓고 해야 할 것은 속히 행하여 지금부터 7일 뒤에는 반드시 이루어 마쳐야한다’라고 하였느니라.
시주는 하나하나 나누어 맡긴 뒤에 곧바로 자신은 밖으로 나가 곳곳을 살피되, ‘어느 곳의 땅이 평편하고 넓어서 보시의 단을 차리기에 적당할까’라고 하면서 즉시 깨끗한 곳에 무사히 도착하여 소금기 있는 모래와 나무줄기와 등걸이며 가시덤불을 없앴더니 그 땅이 깨끗하므로 평상을 놓고 담요를 깔았다.
즉시 대중들이 있을 곳을 마련한 뒤에 5백 마리의 큰 코끼리에게 음식을 실어서 운반하고 단을 마련하였는데, 음식이 산과 같고 젖과 타락은 못과 같았으며 기름과 떡이며 포육 등 갖가지 좋은 음식들이 백 가지 맛을 구족하였느니라.
겸하여 갖가지 의복과 구슬ㆍ가락지ㆍ비녀와 팔찌며 코끼리ㆍ말ㆍ칠보 등 갖가지를 두루 갖추어서 장엄하고 그 후 7일 동안 밝은 모습으로 때를 기다리다 7일째 아침이 되자 종을 치고 북을 울리며 큰 소라를 불면서 높은 소리로 부르짖기를, ‘일체 대중들은 모두가 와서 큰 시주의 단에 모이라’고 하였느니라.
그때 여러 사람들이 이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는 성현의 소리를 들은 것처럼 마음으로 기뻐하였으며, 이 말을 듣고는 소리를 찾아 가서 보시하는 단에 크게 모여 뜻대로 가졌으니, 의복ㆍ음식ㆍ구슬ㆍ가락지ㆍ비녀ㆍ팔찌와 갖가지 탕약이며 코끼리ㆍ말ㆍ칠보 등 좋아하는 바에 따라 마음대로 골라가졌느니라.
시주가 보시한 물건을 여러 사람들이 가지고 가서 이미 다하였는지라 그때에 시주는 마음으로 기뻐한 뒤에 곧 집으로 돌아와 집안의 처자들과 기뻐하며 즐거움을 받았으며 다섯 가지 욕심을 스스로 즐겼느니라.
그 후 7일이 지나
외부인의 말을 들으니, ‘먼저 보시하였던 의복과 음식을 받은 이는 모두 약기가 번져 죽었다 합니다. 혹 아직 죽지 않은 이들은 모두가 말하되, 〈괴상야릇하구나. 이 큰 시주가 비록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으로 필요한 의복과 음식을 주었다하더라도, 또 당시에는 배가 부르고 목마름이 풀리어 몸과 목숨을 구제하였다 하더라도 지난 뒤 며칠 만에 약기가 번져서 목숨을 잃는구나〉라고 한답니다’라고 하였다.
큰 시주는 근심하고 성을 내며 괴로워하면서 그의 처자들에게 묻기를, ‘너희들은 어떻게 음식을 장만하였기에 악한 독약이 음식 안에 떨어졌단 말이냐’라고 하였으나, 처자와 부리는 사람이며 여러 종들이 모두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므로, ‘만약 그렇지 않다면 독이 어디서 온 것이냐’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느니라.
시주가 거듭 스스로 조사하며 곧 집 안으로 들어가서 차례대로 살피며 다니다가 한 우물에 덮개가 씌워 있는 것을 보고 여러 사람들에게 묻기를, ‘이것이 어떤 우물이냐’라고 하자, 집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이것은 바로 시주께서 어린아이일적에 세 마리의 독사를 기르던 곳이니, 이 우물을 하나 파고서 그 안에 넣어 두었습니다. 이 우물은 바로 독사가 사는 곳이므로 물 또한 독이 있어서 마시면 사람이 죽습니다’라고 하였느니라.
시주가 보고 나서 부리는 사람들에게 묻기를, ‘너희들이 먼저 밥을 지을 때에 이 우물의 물을 사용하여 밥을 지은 것은 아니냐’라고 하자, 부리는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음식이 너무 많았으므로 당시에 이 물을 길어다가 음식을 만들었습니다’라고 하므로, 큰 시주가 말하기를, ‘괴상야릇하구나. 내가 이제 어리석고 지혜가 없었도다. 어떻게 이런 독사를 길러서 이 독우물을 만들어 놓았더란 말이냐’ 하고, 처자들에게 말하기를, ‘빨리 가서 메워버려라. 그 안의 세 마리 독사는 내가 태워죽이겠다’라고 하니, 이때에 부리는 사람들이 급히 가서 없애버렸느니라.
시주가 독우물을 없애고 나서 밖으로 나와 살펴보다가 보시들 받은 이들이 약기가 번져 죽는 것을 보았는데, 똑같은 소리로 모두가 말하기를,
‘이 시주가 우리에게 독이 있는 음식을 주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일찍 몸과 목숨을 잃는구나. 우리가 만약 먼저 이 음식에 독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끝내 먹지 않았으리라’고 하였느니라.
그때에 시주는 이런 말을 듣고서 마음이 괴로워하였으니, 마치 저 전륜성왕이 비록 다시 열 가지 선행으로 인도하고 교화하여 여러 중생들이 인간과 천상에 날 수 있게 하고, 또 이와 같이 미묘한 다섯 가지 욕심과 미묘한 쾌락을 받게 한다하더라도 오히려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은 면할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때에 전륜성왕이 이윽고 서원을 세우기를, ‘나는 이제 마땅히 위없는 부처님 법인 세간을 벗어나는 법을 구하여 여러 중생들에게 읽고 외우며 익히게 해서 나고 죽음을 멀리 떠나 열반(涅槃)에 이르도록 해야겠다’라고 하였느니라.
그때 전륜성왕은 부처님 법을 구하기 위하여 염부제의 온 곳에 널리 명을 내리되 ‘누가 부처님의 법을 아느냐. 대전륜왕이 익히고자 하느니라’라고 하며 곳곳에 널리 명을 내렸으나, 모두가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한 변두리의 작은 나라에 이르니 어느 한 바라문이 부처님의 법을 알고 있다고 하므로, 그때 사자(使者)가 곧장 그리로 나아가 바라문의 처소에 이르러 묻기를, ‘대덕께서 부처님의 법을 알고 계십니까’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압니다’라고 하였다.
사자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를 올리고 말하기를, ‘큰 스승이시여, 대전륜왕이 간절히 부탁하려 하십니다. 오직 바라건대 큰 스승께서는 거룩한 덕을 굽히시어 오소서’라고 하였다.
그 전륜왕의 처소에 이르니, 때에 전륜왕이 멀리까지 나와 받들어 영접하며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를 올리고 기거(起居)를 문안하되, ‘고생을 무릅쓰고 길을 오시느라 고달프지 않으셨습니까’ 하고는, 곧 청하여 궁중에 들이어 정전(正殿) 위에 왕과 대신들 자리를 펴고 앞으로 큰 스승을 청하여 그 자리에 앉기를 원하자 때에 바라문은 바로 미묘한 자리에 올라서 가부하고 앉았느니라.
대왕은 큰 스승이 단정하게 자리에 이미 좌정한 것을 보고 필요한 것을 드려
편안함을 베푼 뒤에 합장하고 바라문에게 아뢰기를, ‘큰 스승이시여, 부처님 법을 아십니까?’라고 하자, 바라문이 대답하기를, ‘나는 부처님의 법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왕이 말하기를, ‘큰 스승이시여, 저에게 풀어서 말씀하여 주십시오’라고 하니, 바라문이 말하기를, ‘왕은 크게 어리석습니다. 나는 이 부처님 법을 배우느라 오랜 동안 애쓰고 고행을 하고서야 비로소 이룩할 수 있었거늘, 이제 대왕은 어찌하여 곧바로 듣고자하십니까’라고 하였느니라.
대왕이 큰 스승에게 아뢰기를, ‘무슨 물건을 필요로 하십니까?’라고 하자 바라문이 말하기를, ‘나에게 공양을 하십시오’라고 하므로, 왕이 말하기를 ‘필요로 하는 공양이란 어떤 물건입니까? 옷입니까, 음식입니까, 금은의 값진 보물입니까?’라고 하였다.
바라문이 말하기를, ‘나는 그와 같은 공양은 바라지 않습니다’라고 하므로, 왕이 말하기를, ‘만약 그와 같은 공양을 바라지 않으신다면 코끼리와 말이며 탈것입니까, 나라와 성과 아내며 아들이십니까, 풍악과 광대입니까?’라고 하였다.
바라문이 말하기를, ‘나는 도무지 그와 같은 공양은 소용이 없습니다. 만약 왕의 몸 위에 나아가 천 개의 상처를 오려서 기름을 가득히 부어 심지를 놓고 불을 켜서 공양한다면 나는 마땅히 당신을 위하여 부처님 법을 해설하겠거니와,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나는 일어나 가겠습니다’라고 하고, 왕이 아직 대답도 하기 전에 곧바로 높은 자리에서 내려왔느니라.
대왕이 나아가 붙잡고 말하기를, ‘큰 스승이시여, 잠시만 멈추어주십시오. 지금 저의 지혜가 미천하고 공덕이 보잘 것 없으므로 잠시 동안 스스로 생각하여 받들어 공양하겠습니다’라고 하였느니라.
그때에 전륜성왕은 스스로 생각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비롯됨이 없는 세계로부터 온 이래로 몸을 잃은 것이 셀 수가 없으나 일찍이 법을 닦지 못하였다. 이제 나의 이 몸도 마땅히 돌아가 무너져 없어질 것이므로 도무지 쓸데가 없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 때로구나’ 하고서, 우러러 큰 스승에게 말하기를, ‘바라시는
공양을 급히 마련하겠습니다’라고 하였느니라.
대왕은 곧 궁중으로 들어가서 여러 부인들에게 알리기를, ‘나는 이제 당신들과 이별하겠소’라고 하니, 그 부인들은 왕의 말을 듣고서 마음에 놀라고 털이 곤두서며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작은 소리로 왕에게 묻기를, ‘왕은 어디로 가려고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이제 나는 몸을 오려내어 천 개의 등을 만들어서 큰 스승에게 공양하려 하오’라고 하는지라, 부인들은 왕의 말을 듣고 뒹굴어 땅에 쓰러져서 소리 내어 크게 통곡하며 기절하고 토하다가 한참 만에 다시 깨어나서 대왕에게 말하기를, ‘천하에 소중하기로 내 몸만한 것이 없습니다. 공경하고 존중하여 때때로 보호하고 기르며 탈날 것을 두려워해야 하거늘, 이제 어찌하여 헐고 해치며 버리려 하십니까. 왕은 바로 지혜로운 분이시지만 오늘은 마치 미쳤거나 귀신에게 잡힌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느니라.
왕이 ‘그렇지 않다’고 하니,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무슨 인연으로 이런 고통을 지으려하십니까. 이 바라문에게 공양하여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 겁니까?’라고 하였느니라.,
왕이 부인들에게 말하기를, ‘부처님 법을 구하여 일체 중생들을 위하고자 하오’라고 하니, ‘만약 일체 중생들을 위해서라면 이제 어떻게 저희들을 버리신단 말입니까’라고 하였느니라.
왕이 여러 부인들에게 말하기를, ‘천하의 은혜와 사랑도 모두가 이별하여야 하니, 그러므로 나는 이제 몸으로써 공양하여 그대들과 일체 중생들을 위하려 하오. 아주 캄캄한 방에 큰 지혜의 등불을 켜서 그대들의 나고 죽음의 어두운 무명(無明)을 비추어 뭇 번뇌와 나고 죽음의 환난을 끊으며 뭇 재난을 뛰어넘어 건져서 열반에 이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인데, 그대들은 이제 어떻게 나의 마음을 어기고 거스른단 말이오’라고 하였느니라.
여러 부인들이 왕의 말을 듣고서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면서 마음으로 슬퍼하며 흐느끼다가 소리 내어 크게 울면서 손수 머리카락을 뽑고 얼굴과 눈을 할퀴고 긁으며 다시 소리 내어 말하기를, ‘우리들은 박복한 상이라 살아서 남편이 죽는구나’라고 하였느니라.
천왕에게는 5백 명의 태자가 있었는데,
모두가 다 단정하고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상호가 완전히 갖추어져 있었으므로 그의 아버지가 사랑하고 생각하기를 마치 눈[眼]과 같이 여겼느니라.
그때 대왕이 여러 아들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오늘 공양을 베풀고자 하는데, 아마도 몸과 목숨이 살아나지 못하여 너희들과 이별하게 되리라. 국토와 인민이며 온갖 왕의 법들은 나이 많은 이를 좇아서 다스리도록 하여라’라고 하자, 여러 태자들은 이 말을 듣고 몸의 뼈마디와 힘줄이며 맥이 빠지고 끊어지듯 함이 마치 사람이 목에 걸린 것을 삼킬 수도 없을뿐더러 다시 뱉을 수도 없는 것과 같으므로 작은 소리로 부왕에게 말하기를, ‘이제 어떻게 영원히 버리고 혼자 돌아가려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태자들이 나와서 왕의 목을 끌안고 혹은 손발을 붙잡기도 하며 소리 내어 슬피 울면서, ‘괴이하고 괴이하십니다. 오늘 어떻게 영영 아버님을 잃게 하십니까’라고 하였느니라.
대왕이 여러 아들들을 달래고 깨우치며 곧 그들을 위하여 널리 말하기를, ‘천하에 은혜롭고 사랑하는 것에도 모두 이별이 있느니라’라고 하자, 여러 아들들이 대답하기를, ‘비록 부왕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하더라도 심정(心情)이 그리워서 버리거나 떠날 수는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오늘 하나의 소원을 들어 주소서. 아들들이 이 몸과 목숨을 가지고 대왕에게 받들어 올려서 왕을 위하여 바라문 스승에게 공양하게 하소서’라고 하였느니라.
왕이 말하기를, ‘여러 아들들은 어려서 아직 아는 바도 없고 아직은 이와 같은 공양을 감당해 낼 수도 없다. 내가 이제 멀리서 큰 스승을 청하여 공양할 것을 허락하였으므로 어기거나 그르칠 수 없느니라. 효자라고 한다면 아버지의 뜻을 어기지 말아야하거늘 너희들은 이제 어찌하여 나의 마음을 어기고 거스르는가’라고 하자, 태자들이 이 말을 듣고서 소리 내어 울부짖으므로 천신(天神)과 지기(地祇)가 놀라 감동하였고, 온몸을 땅에 던지니 마치 태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느니라.
대왕이 다시 여러 작은 나라 왕들과 하직하고 도로 전각 위에 이르러 큰 스승에게 나아가서 몸의 영락과 훌륭한 의복을 벗어 한 쪽에 올려 두고 몸을 단정히 하여 똑바로 앉아서 여러 대신들과
여러 작은 나라의 왕들과 5백의 태자들이며 2만의 부인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들 가운데 이제 누가 나의 몸을 오려서 천 개의 상처를 낼 수 있소’라고 하자, 부인과 태자들이며 여러 신하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저희들은 이제 차라리 날카로운 칼로 자기의 두 눈을 오릴지언정 끝내 손으로 왕의 몸을 오릴 수는 없나이다’라고 하는지라, 대왕은 마음으로 근심하고 괴로워하면서, ‘나는 이제 외톨이로구나. 대중들 가운데서 도와 줄 이가 한 사람도 없구나’라고 하였느니라.
그때 대왕에게는 한 전타라(旃陀羅)가 있었는데 그 성질이 모질고 악독하였는지라 사람들이 두려워하였다. 소리를 찾아 나아가서 여러 태자들에게 말하기를, ‘우선 근심하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나에게 방편이 있으니 대왕께서 일을 성취할 수 없도록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일을 성취하지 못하면 도로 왕은 나라를 다스리어 본래와 같이 다름이 없으시리다’라고 하자, 여러 태자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였다.
전타라가 왕 앞에 나아가서 대왕에게 말하기를, ‘대왕이시여,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라고 하니, ‘몸을 오려 천 개의 등으로 큰 스승에게 공양할 것이니라’라고 하므로, 전타라가 말하기를, ‘몸을 오리려고 하신다면 제가 잘 할 수 있겠나이다’라고 하는지라, 왕이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기뻐하며 전타라에게 말하기를, ‘너야말로 이제 참으로 나의 위없는 도반이로다’라고 하였느니라.
전타라는 즉시 왕 앞에서 입을 다물고 숨을 들이 쉬더니 높은 소리로 부르짖기를, ‘대왕이시여, 마땅히 아셔야만 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법에는 머리를 끊고 목을 베며 손발을 끊어 버리면 힘줄이 당기고 맥이 뽑혀져 고통이 이와 같을 것인데, 대왕께서는 이제 견뎌 낼 수 있겠나이까’라고 하자,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 속으로 기뻐하였다.
전타라는 소의 혀 같이 생긴 칼을 가지고 왕의 몸으로 가서 눈 깜짝할 사이에 온몸을 오려 꼭 천 개의 상처를 만들었으니, 때에 전타라는 왕의 뜻이 물러날 줄 여겼으나 도리어 움직이지 않는지라 칼을 땅에 던지고
달아나버렸느니라.
그때에 대왕이 몸의 여러 상처에 기름을 가득히 붓고 나서 가장 좋고 가는 솜털을 비벼서 심지를 만드니, 바라문인 큰 스승이 대왕의 이런 일을 보고나서 생각하기를, ‘내가 이제 응당 먼저 대왕을 위하여 부처님 법을 널리 말해야겠구나. 왜냐하면, 대왕이 이제 몸의 여러 등에 불을 켜면 아마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니,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다면 누가 법을 들을 것이냐’라고 하였느니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대왕에게 말하기를, ‘정진하기를 이와 같이 한다면 하기 어려운 일도 능히 할 수 있을 것이니, 이런 고행을 닦아야 부처님 법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하십시오. 내가 왕을 위하여 부처님 법을 말하겠습니다’라고 하니, 왕은 이 말을 듣고서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였는데 마치 효자가 새로 부모를 잃었으므로 그 아들이 몹시 괴로워함이 말할 수조차 없다가 그 부모가 도로 살아나자 그 아들이 기뻐하는 것처럼 왕도 이 말을 듣고서 역시 그와 같았느니라.
바라문이 곧 왕을 위하여 반 구절의 게송으로써 흥하고 쇠멸하는 법을 말하였느니라.
태어나면 어느새 죽나니
이것이 다하면 즐거움이 되리라.
왕은 법을 듣고서 마음에 기쁨이 생겨나 여러 태자와 대신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들 중에서 만약 나를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이가 있다면 마땅히 나를 위해 이 법을 기억하고 지녀서 모든 국토와 곳곳의 마을마다 인민들이 살고 있는 도시나 시골에 왕의 도타운 명령을 널리 말할지니라. 여러분들은 알아야만 한다. 대전륜왕은 모든 인민과 일체 중생들이 괴로움의 바다에 빠지고 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중생들에게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몸을 오려내 천 개의 등을 켜서 반 구절의 게송을 구한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제 대왕의 크게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감격하여 응당 이 게송을 쓰고 베껴서
읽고 외우며 익혀야 할 것이며, 그 이치를 생각하여 말씀대로 닦고 행할지니라’고 하였느니라.
여러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나서 마음으로 기뻐하며 소리를 같이하여 대왕을 찬탄하기를, ‘장하고 장하시옵니다. 대왕이시여, 참으로 이는 크게 자비하신 아버지시인지라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이런 고행을 닦으셨으니, 저희들은 속히 가서 쓰고 베끼겠으며, 혹은 종이에 혹은 비단에 혹은 돌 위에 혹은 나무ㆍ기와ㆍ조약돌ㆍ풀잎ㆍ좁은 길과 중요한 길이며 많은 사람이 다니는 곳에 까지도 모두 쓰고 베낄 것입니다. 그 보고 듣는 이들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낼 것입니다’라고 하였느니라.
대왕이 곧 천개의 등을 켜서 스승에게 공양하자, 그 광명은 시방세계에 멀리까지 비쳤고, 그 등의 광명 속에서 또한 음성을 내어 이 반 구절의 게송을 말하였으므로, 그 법을 듣는 이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였으며, 그 광명이 위로 비추어서 도리천궁(忉利天宮)에까지 이르러 그 등의 광명으로 여러 하늘의 광명을 모두 가리워버렸느니라.
때에 도리천왕은 이 광명이 멀리 천궁(天宮)까지 비추는 것을 보고 생각하기를, ‘어떠한 인연으로 이런 광명이 있을까’ 하고, 곧 하늘눈[天眼]으로 세간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이 대전륜왕이 큰 자비로써 그 마음을 닦고 일체 중생들을 위해 몸을 오려 천 개의 등으로 큰 스승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고는, ‘일체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이구나.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제 세간에 가서 권하고 경계하고 도와서 마음을 기쁘게 하여야겠다’라고 하였느니라.
곧 세간으로 내려와 변화하여 범인이 되어서 왕에게 나아가 대왕에게 묻기를, ‘몸을 오려 천 개의 등으로 이런 고행을 닦으시니, 반 구절의 게송을 구하여 무엇을 하시렵니까’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선남자야, 나는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하려는 것이니라’라고 하였느니라.
그때 변화한 사람이 곧 다시 제석의 몸으로 돌아가 광명이 빛나서 환히 나타났는데, 때에 하늘 제석은 대왕에게 말하기를 ‘이런 공양을 하여 천왕(天王)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마왕(魔王)이나 법왕(法王)이 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하자, 전륜성왕이 하늘 제석에게 대답하기를, ‘나는 또한 사람과 하늘에서 높고 귀하기를 구한 것이 아니요,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여 일체 중생을 위하려 함입니다. 편안하지 못한 이는 편안하게 하고, 알지 못하는 이는 알게 하고, 아직 제도되지 못한 이는 제도되게 하고, 아직 도를 얻지 못한 이는 도를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느니라.
하늘 제석이 말하기를, ‘대왕은 이제 어찌 어리석지 않으리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한다는 것은 오랜 동안 애쓰고 고생을 해야만 비로소 이룰 수 있거늘 그대는 이제 어떻게 위없는 도를 구한다 하시오’라고 하자, 하늘 제석에게 대답하기를, ‘설령 뜨거운 쇠수레 바퀴를 저의 정수리 위에 놓고 돌아가게 한다 하더라도 끝내 이런 고통 때문에 위없는 도에서 물러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니, ‘그대가 이제 이런 말을 한다하더라도 나는 믿지 못하겠소’라고 하므로, 전륜성왕은 곧 천왕 제석의 앞에서 서원을 세우되 ‘내가 만약 진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한 것이 아니고 천왕 제석을 속인 것이라면 나의 천 개의 상처가 끝끝내 나을 때가 없게 하시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피가 당연히 젖이 되고 천 개의 상처가 평소대로 회복하게 하소서’라고 하자, 이 말을 할 때에 즉시 회복되어 예전과 같이 되었느니라.
천왕 제석이 말하기를, ‘장하십니다. 대왕이시여, 참으로 이것이 바로 크게 가엾게 여김입니다. 크게 가엾이 여김을 닦는 이는 이와 같은 고행을 하니, 오래지 않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입니다. 삼보리를 얻으셨을 때에는 반드시 저를 먼저 제도하여주십시오’라고 하였느니라.
하늘 제석이 광명을 놓아 왕의 몸을 두루 비추고, 백천의 여러 하늘과 함께 동시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느니라.
5백의 태자들은 그 아버지 왕의 몸의 상처가 평상대로 회복됨을 보고 한량없이 기뻐하면서 곧 나아가 땅에 엎드려 발에 예를 올리고 물러나 한 쪽에 서서 함께 말하기를, ‘전에 없던 일이시옵니다. 이제 아버지 왕께서는 참으로 이 큰 자비로 일체를 가엾이 여기셨나이다’라고 하므로, 왕이 태자에게 대답하기를 ‘너희들이 만약 효자라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어야 하리라’라고 하자, 이 여러 태자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아버지 왕의 무거운 은혜에 감동하여 말이 끝나자마자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며, 2만의 부인과 백천의 채녀(婇女)들도 역시 그와 같았느니라.”
그때 대중 가운데 있던 70 항하(恒河)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중생들이 모두 성문과 벽지불의 마음을 내었고, 또 한량없는 하늘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와 사람인 듯 아닌 듯한 것들이 이를 보고 들은 뒤에 모두 도의 마음을 내고 기뻐하며 떠나갔다.
4. 보리의 마음을 내는 품[發菩提心品]
그때 모임 가운데 희왕(喜王)이라는 한 보살마하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어 합장하고 우러러 여래께 아뢰었다.
“보살은 어떻게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습니까?”
부처님께서 희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보살 마하살로서 은혜를 아는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어야 하며, 은혜를 갚는 이도 또한 일체 중생들을 가르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하여야 하느니라.
만약 보리의 마음을 내려면 어떻게 내어야 하며
보살이 어떠한 일로 인하여 낼 수 있느냐 하면,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처음에 삼보리의 마음을 낼 때에 큰 서원을 세우되, ‘만약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면 크게 일체 중생을 의롭게 해야만 하고, 반드시 일체 중생을 큰 열반 가운데 편안히 놓아두어야 하며, 다시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모두가 반야바라밀다(船若波羅密)를 완전히 갖추도록 해야 하리라’라고 하나니, 이것이 곧 자기를 이롭게 하고 또한 남도 이롭게 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처음 보리의 마음을 내는 이는 곧 보리의 인연ㆍ중생의 인연ㆍ바른 이치[正義]의 인연ㆍ37조도법(助道法)4)의 인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며, 일체 선한 법의 근본을 껴잡았으므로 그 때문에 보살을 크게 선함[大善]이라 하고 또한 일체 중생의 선한 뿌리라고도 하니, 일체 중생들의 몸과 입과 뜻 등의 세 가지 업의 모든 악을 깨뜨릴 수 있느니라.
일체 세간의 모든 서원과 세간을 뛰어넘는 모든 서원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보다 나을 수 없으므로, 이와 같은 서원(誓願)이야말로 더 이상 수승한 것이 없고 위[上]가 없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처음 삼보리의 마음을 낼 때에 다섯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성(性)이요, 둘째는 행(行)이요, 셋째는 경계(境界)요, 넷째는 공덕(功德)이며, 다섯째는 늘어남[增長]이니라.
보살이 만약 보리의 마음을 낼 수 있다면, 곧 보살마하살이라는 이름을 얻고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대승(大乘)의 행을 닦을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으로 보리의 마음을 내면 곧 온갖 선한 법을 껴잡을 수 있고, 보살마하살이 보리의 마음을 내어 수행하면 점차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만약 마음을 내지 못한다면 끝내 얻을 수 없을 것이니,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내어야만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근본을 얻을 것이니라.
보살마하살은 괴로워하는 중생을 보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나니, 그러므로 보살은 인자함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낼 수 있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냄으로 말미암아서 곧 37가지[品]를 익힐 수 있으며, 37가지로 말미암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나니, 그러므로 마음을 내는 것이 근본이 된다고 하는 것이니라.
보리의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보살의 계율[尸羅]을 행하나니, 그러므로 마음을 내는 것을 뿌리라 하고 원인이라 하고 가지라 하고 잎이라 하고 또한 꽃이라 하고 열매라 하고 또한 씨라고 하느니라.
보살이 마음을 내되, 마지막[畢竟]과 마지막 아님[不畢竟]이 있나니, 마지막 이라 함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까지 끝끝내 물러나거나 잃지 않는 것이요, 마지막이 아님이라 함은 물러남이 있고 잃음이 있는 것이니라.
물러남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마지막에 물러남[畢竟退]과 마지막에도 물러나지 않음[不畢竟退]이니, 마지막에 물러남이란 끝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낼 수가 없고 그 법을 추구하거나 닦아 익힐 수 없는 것이요, 마지막에도 물러나지 않음이란 보리의 마음을 구하고 그 법을 닦아 익히는 것이니라.
이 보리의 마음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선남자나 선여인이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의 헤아릴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을 보고 듣는 것이니, 그때에 곧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생각하기를, ‘부처님과 보살의 일이란 헤아릴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니, 만약 부처님과 보살의 헤아릴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을 얻을 수 있다면 나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라고 하여, 그 때문에 지극한 마음으로 보리를 생각하여 보리의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또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헤아릴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비밀한 갈무리[藏]를 들음으로써 들은 뒤에 곧바로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고, 믿는 마음을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마하반야를 닦나니, 그러므로 보리의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또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헤아릴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법을 듣지도 못하였지마는, 법이 없어지는 때를 보고 다시 생각하기를, ‘위없는 부처님 법은 중생들의 한량없는 괴로움을 없앨 수 있고 큰 이익을 짓게 되며, 오직 부처님과 보살들이라야 부처님 법이 오래 머물러서 없어지지 않게 할 수 있다. 나도 이제 또한 보리의 마음을 내어서 모든 중생들이 번뇌를 멀리 떠나게 하여야겠구나. 원컨대 나의 이 몸이 크게 고통스러운 일을 받더라도 부처님 법을 보호하고 지니어 오랫동안 세상에 머무르게 하리라’고 하기 때문에 보리의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또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법이 없어지는 때를 보지 못하고 오직 악한 세상의 중생들이 무거운 번뇌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과, 제 부끄럼이 없고 남 부끄럼이 없어서 인색함과, 시새우고 성내고 어리석어서 괴로워함과, 믿지 않고 삿되게 의심하여 게으른 것 등만이 갖추어져 있음을 보고, 이런 일을 보고 나서 곧 생각하기를, ‘크게 악한 세상에서 중생들은 선행을 닦을 수 없고 이렇게 악할 때에는 오히려 2승(乘)의 마음도 낼 수가 없거늘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이겠느냐. 내가 이제 보리의 마음을 내어야겠다. 보리의 마음을 낸 뒤에야 비로소 일체 중생들을 가르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할 수 있으리라’라고 하는 것이니라.”
그때 희왕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이 은혜를 아는 것은 스스로 보리의 마음을 내는 것이요 보살이 은혜를 갚는 것은 일체 중생들을 가르쳐서 보리의 마음을 내게 하는 것이라면, 여래 세존께서는 나고 죽는 동안에 처음 보리의 마음을 내셨던 것은 어떠한 일로 말미암아 내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과거의 오랜 헤아릴 수 없는 겁에 나고 죽는 동안, 무거운 번뇌로써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일으켰기 때문에 여덟 가지 큰 지옥에 떨어졌나니,
이른바 아하하(阿訶訶) 지옥ㆍ아바바(阿婆婆) 지옥ㆍ아달다(阿達多) 지옥ㆍ동부(銅釜) 지옥ㆍ대동부(大銅釜) 지옥ㆍ흑석(黑石) 지옥ㆍ대흑석(大黑石) 지옥과 내지 화거(火車) 지옥이니라.
나는 그때에 화거 지옥에 떨어져 있으면서 함께 두 사람이 나란히 불수레를 끌었는데, 우두 아방(牛頭阿傍)5)이 수레 위에 앉아서 입을 다물고 이를 갈며 눈을 부릅뜨고 불을 불면 입ㆍ눈ㆍ귀ㆍ코에서 연기와 불꽃이 함께 일어났으며, 몸은 아주 크고 팔과 다리는 서리서리 얽혀서 그 빛깔은 검붉었으며, 손에는 쇠몽둥이를 잡고 따르면서 때렸느니라.
나는 때에 괴롭고 아팠지마는 힘을 쓰며 수레를 끌었는지라 힘에 따라 앞으로 나아갔지만 내 곁의 짝은 허약하여 힘도 없었으므로 힘이 빠져 뒤에 처졌는데, 이때에 우두 아방이 쇠작살로 배를 찌르고 쇠몽둥이로 등을 후려치니 피가 나와 목욕하듯이 몸뚱이를 따라 흘렀으므로, 그 사람은 괴롭고 아파서 높은 소리고 크게 부르짖으면서 ‘고통을 참기 어렵도다’라고 하며 혹은 부모님을 부르기도 하고, 혹은 아내야, 아들아를 부르기도 하였지만, 비록 이와 같이 부르짖는다 하더라도 자기에게는 이익이 없었느니라.
나는 때에 이 큰 고통 받음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내었고, 인자한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므로, 이 뭇 죄인들을 위하여 우두아방에게 청하기를, ‘이 죄인들은 매우 불쌍합니다. 조금만 더 안타까이 여기셔서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소서’라고 하였더니, 우두 아방은 듣자마자 성을 내면서 곧 쇠 작살로 앞에서 나의 목을 찔렀고, 바로 그때에 목숨이 끝나서 곧 화거 지옥에서의 백 겁 동안의 죄를 벗어날 수 있었느니라.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곧 화거 지옥의 죄에서 벗어났느니라.”
부처님께서 희왕에게 말씀하셨다.
“불 수레를 끌었던 이가 바로 지금 나의 몸이니, 보리의 마음을 냄으로 말미암아 빨리 부처를 이룰 수 있었느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일체 중생이 보리의 마음을 내는 데는 그 일이 하나가 아니니, 혹은 인자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내기도 하고,
혹은 성내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내기도 하고, 혹은 보시하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내기도 하고, 혹은 인색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내기도 하고, 혹은 기쁨으로 말미암아 내기도 하고, 혹은 번뇌로 말미암아 내기도 하고, 혹은 은혜하고 사랑하는 것과 이별함으로 말미암아 내기도 하고, 혹은 원수와 미운 이가 함께 삶으로 말미암아 내기도 하고, 혹은 좋은 벗을 친근함으로 말미암아 내기도 하고, 혹은 나쁜 벗으로 말미암아 내기도 하고, 혹은 부처님을 친견함으로 말미암아 내기도 하고, 혹은 법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내기도 하느니라.
그러므로 알아야만 한다. 일체 중생이 보리의 마음을 내는 것은 저마다 같지 않으니, 희왕이여, 보살마하살이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그 일이 이와 같은 줄 알지니라.”
이 법을 말씀할 때에 만 8천의 사람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일체 대중들 가운데서는 수다원에서 아라한에 이르기까지를 얻었으며, 때에 하늘ㆍ용ㆍ귀신ㆍ사람과 사람 아닌 것 등도 또한 성문과 벽지불의 마음을 내었으니, 법을 듣고 기뻐하며 땅에 엎드려 예를 올리고 오른 편으로 돈 뒤에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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