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247 불교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42권

by Kay/케이 2023. 11. 7.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42

 

대방광불화엄경 제42권


동진 천축삼장 불타발타라 한역
이운허 번역

33.이세간품⑦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깨끗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보리심을 내는 깨끗한 기쁨이요, 일체의 소유를 버리는 깨끗한 기쁨이며, 계율을 범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그를 교화하여 성취시키는 깨끗한 기쁨이며, 서로 다투는 중생들을 화합시켜 위없는 지혜를 얻게 하는 깨끗한 기쁨이요, 신명을 아끼지 않고 정법을 수호하는 깨끗한 기쁨이며, 오욕(五欲)을 아주 떠나 항상 정법을 즐거워하는 깨끗한 기쁨입니다.
또 중생들로 하여금 살림살이에 집착하지 않고 항상 정법을 즐기게 하는 깨끗한 기쁨이요, 모든 부처님을 뵈옵고는 공경하고 공양하되 만족할 줄 모르며 법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깨끗한 기쁨이며, 중생들로 하여금 항상 선정ㆍ해탈ㆍ삼매 등이 계속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는 깨끗한 기쁨이요, 중생들로 하여금 오로지 고요함을 구하여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위없는 슬기를 얻어 사견을 멀리 떠나고 모든 원을 원만히 이루어 보살의 고행을 성취하기를 즐기게 하는 깨끗한 기쁨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깨끗한 기쁨이나,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기쁨에 굳건히 머무르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위없이 청정한 큰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깨끗한 버림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모든 중생이 공경하고 공양해도 거기에 애착하지 않고, 모든 중생이 경멸하고 헐뜯어도 그에 대해 성내지 않는 깨끗한 버림과 항상 세간에 다니면서도 여덟 가지 법[八法]에 더럽히지 않는 깨끗한 버림, 알맞은 인물이면 자주 사귀고 알맞은 인물이 아니더라도 성내지 않는 깨끗한 버림, 성문ㆍ연각ㆍ유학(有學)ㆍ무학(無學) 등을 바라지 않는 깨끗한 버림 등입니다.
또 오욕과 번뇌를 멀리 떠나 내지 한 생각에도 나쁜 마음을 내지 않는 깨끗한 버림과, 이승의 수행을 한탄하거나 또 생사마저 싫어하지 않는 깨끗한 버림, 세간의 말ㆍ열반이 아닌 말ㆍ욕심을 떠나지 않은 말ㆍ실없는 말ㆍ남을 괴롭히는 말ㆍ성문ㆍ연각의 말과 내지 보리를 장애하는 말 등을 멀리 떠난 깨끗한 버림과 어떤 중생은 때를 기다려 교화를 받게 하는
보살의 깨끗한 버림, 어떤 중생은 부처님의 교화를 받게 하는 보살의 깨끗한 버림이며, 보살마하살은 두 가지 법을 멀리 떠나 위도 없고 밑도 없으며,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으며, 진실도 없고 허망도 없어, 평등을 관찰하고 진실에 굳게 머물러 인(忍)을 얻는 깨끗한 버림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깨끗한 버림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버림에 굳게 머무르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청정한 큰 버림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이치가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많이 듣는 이치니 말대로 수행하기 때문이요, 법의 이치니 묘한 방편으로 분별해 알기 때문이며, 공(空)의 이치니 제일의 공을 알기 때문이요, 적멸의 이치니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를 떠나게 하기 때문이며, 말할 수 없는 이치니 어떤 말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요, 여여(如如)한 이치니 일체 삼세를 평등하게 관찰하기 때문이며, 법에 들어가는 이치니 모두 한 맛이기 때문이요, 여래의 이치니 여래를 따르기 때문이며, 실제의 이치니 진실을 깨닫기 때문이요, 큰 열반의 이치니 모든 괴로움을 없애고 보살행을 끊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이치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이치에 굳게 머물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일체지의 이치를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 열 가지 법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진실한 법이니 말대로 수행하기 때문이요, 해치지 않는 법이니 성냄을 멀리 떠났기 때문이며, 다투지 않는 법이니 모든 번뇌를 없애기 때문이요, 적멸한 법이니 불 붙임을 떠났기 때문이며, 욕심을 떠난 법이니 더러운 탐욕 등 모든 번뇌를 아주 떠났기 때문이요, 헛되지 않은 법이니 허망함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또 생기지 않는 법이니 모든 법은 다 허공이기 때문이요, 함이 없는 법[無爲法]이니 세 가지 모양을 떠났기 때문이며, 그 성품이 깨끗한 법이니, 저절로 청정하기 때문이요, 보신(報身)의 번뇌가 모조리 없어진 열반의 법[無餘涅槃法]이니, 보살행을 행하고 그것을 받들어 지녀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법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굳건히 머무른다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법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 열 가지 공덕거리[功德具]가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중생들에게 권해 보리심을 내게 하는 것이 바로 공덕거리니,
삼보를 끊이지 않게 하기 때문이요, 열 가지 회향을 따르는 것이 바로 공덕거리니, 모든 불선법(不善法)을 끊고 일체의 선법을 모으기 때문이며, 지혜의 바른 가르침이 바로 공덕거리니, 삼계에서 가장 뛰어난 공덕이기 때문이요, 싫증을 내지 않는 것이 바로 공덕거리니, 중생들을 구제하여 저 언덕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안팎의 소유를 모두 버리는 것이 바로 공덕거리니,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요, 상호를 완전히 갖추고 정진하여 물러나지 않는 것이 바로 공덕거리니, 내달리는 마음을 붙들기 때문이며, 삼품(三品)의 선근을 가벼이하지 않는 것이 바로 공덕거리니, 선교한 방편을 보리에 회향하기 때문이요, 사정취(邪定聚)로서 계율을 범한 중생에 대해 업신여기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대비를 증장시키는 것이 바로 공덕거리니, 대인(大人)의 법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또 일체 여래를 공경하고 공양하며, 모든 보살에 대해 여래라는 생각을 내고, 중생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바로 공덕거리니, 정직한 마음을 길러 수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살마하살은 아승기겁 동안 일체의 선근을 원만히 닦아 익히고, 그것을 다 한 중생에게 주고서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으며, 한 중생에 대해서처럼 일체 중생에 대해서도 그와 같이 하나니, 이것이 열째 허공계와 같은 큰 공덕거리니, 광대한 지혜를 원만히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공덕거리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굳게 머무르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큰 공덕거리를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 열 가지 지혜거리[智具]가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진실하고 많이 들은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그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예배하고 공양하며 받들어 모시면서 그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순종하나니, 이것이 첫째의 지혜거리로서 아첨과 간사함을 멀리 떠났기 때문입니다.
교만을 버리고 뜻을 낮추어 방종하는 마음이 없으며, 몸과 입과 뜻이 다 유연하고 경솔하지 않으며 항상 기쁜 마음으로 깨끗한 계율을 호지(護持)하며 부드러운 얼굴과 다정한 말로 먼저 알고 문안하며 사특함과 거짓을 멀리 떠나니, 이것이 둘째의 지혜거리로서 저절로 불법의 그릇이 되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지혜에 편히 머물러 바른 깨달음을 버리지 않고,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어 육념(六念)을 닦아 익히고 육화경(六和敬)을 행하되 그 과보를 구하지 않나니,
이것이 셋째의 지혜거리로서 열 가지 지혜를 내어 기르기 때문입니다.
법과 이치를 즐거워하고 바른 법을 부지런히 닦으며 아무리 배워도 만족할 줄 모르고, 세간의 이야기와 세간의 말을 멀리 떠나 세간을 벗어난 말을 즐겨 들으며, 소승을 멀리 떠나 대승을 즐겨 하나니, 이것이 넷째의 지혜거리로서 닦아 익힌 바른 생각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입니다.
육바라밀을 바로 구해 받들어 지녀 닦아 익히고, 네 가지 범주(梵住)를 원만히 성취하여, 모든 법의 밝음을 따라 지혜로운 사람에게 잘 물으며 나쁜 갈래를 멀리 떠나 좋은 갈래로 오로지 향하면서, 인자한 마음으로 악을 항복 받고 욕설과 비방을 떠나 남의 마음을 보호하나니, 이것이 다섯째의 지혜거리로서 모든 부처님의 진실한 법을 말과 같이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또 항상 출가를 좋아하고 삼계를 좋아하지 않으며, 제 마음을 잘 수호하고 삼각(三覺)을 멀리 떠나 나쁜 마음을 내지 않고 몸과 입과 뜻이 모두 부드러우며 그 심정을 잘 아나니, 이것이 여섯째의 지혜거리로서 자타(自他)의 마음을 모두 청정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오음은 요술과 같고 십팔계는 독사와 같으며 십이입은 무더기와 같다고 관찰하고, 모든 법은 허깨비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으며, 물 속의 달과 같고 거울 속의 형상과 같으며, 꿈과 같고 번개와 같으며, 부르는 소리의 메아리와 같고 돌리는 불 바퀴와 같으며, 허공의 글자와 같고 인다라(因陀羅)의 진(陣)과 같으며, 일월의 빛과 같아서, 상(常)도 아니요 단(斷)도 아니며, 가거나 오거나 머무르지도 않는다고 관찰하고는, 깊은 마음으로 믿고 이해하여 비방하지 않나니, 이것이 나거나 머물거나 멸하지도 않는 일곱째의 지혜거리로서, 모든 법이 비고 깨끗하다는 지혜를 원만히 성취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복가라(福伽羅)도 없고, 생각도 없고 이치도 없으며, 탐욕ㆍ분노ㆍ우치도 없고 소유도 없으며, 헐뜯음도 없고 기림도 없으며,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주인도 없고 행도 없어서 끝내 열반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깊은 법을 듣고는 능히 믿고 이해하여 의혹이 없으면 이것은 여덟째의 지혜거리니 끝내 깊은 해탈을 원만히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또 바른 방편으로 지관(止觀)을 생각하고 모든 감관을 항복 받아 일체의 법에 짓는 것이 없어서, 생멸이 없고 함도 없어 모두 적멸한 것인데, 중생들이 나가 있다고 헤아리지만 끝내 소유가 없고, 얽맴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몸도 입도 마음도 없고 또 정진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일체 중생과 모든 법과 일체의 마음과 모든 행을 관찰할 때, 앞도 없고 뒤도 없어서 모두 평등하다고 하나니, 이것이 아홉째의 지혜거리로서 일체의 모양을 멀리 떠나
끝내 저 언덕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은 연기(緣起)를 잘 알기 때문에 법의 청정함을 보고 법의 청정함을 보기 때문에 세계의 청정함을 보며, 세계의 청정함을 보기 때문에 허공의 청정함을 보며, 허공의 청정함을 보기 때문에 법계의 청정함을 보고 법계의 청정함을 보기 때문에 지혜를 보는 것이니 이것이 열째의 지혜거리로서, 일체지를 쌓아 모았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지혜거리로서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법에 굳게 머무르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법 가운데서 최상인 걸림없는 청정한 큰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의 명족(明足)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불법을 깊이 아는 명족이요, 모든 법에서 우치의 어둠을 없애는 명족이며, 사견(邪見)을 멀리 떠난 명족이요, 슬기의 광명이 청정하여 모든 근성을 두루 비추는 명족이며, 바른 방편으로 부지런히 정진을 닦는 명족이요, 보살의 진리와 정취(正趣)와 생멸을 떠난 데에 깊이 들어가는 명족입니다.
또 번뇌의 업을 없애고 지극한 지혜와 생멸이 없는 지혜를 성취하는 명족이요, 깨끗한 슬기와 청정한 하늘눈을 생각하는 명족이며, 청정한 기억으로 전생 일을 생각하는 명족이요, 청정한 자리와 청정한 모든 밝음을 두루 갖추어, 모든 번뇌를 없애고 번뇌가 다한 지혜의 명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명족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굳게 머무르면 그는 모든 부처와 모든 법 가운데서 위없는 큰 명족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법을 구하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곧은 마음으로는 법을 구함이니, 아첨과 간사와 거짓의 마음을 떠났기 때문이요, 부지런히 법을 구함이니, 게으름을 떠났기 때문이며, 한결같이 법을 구함이니, 신명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요, 중생들의 번뇌를 끊기 위해 법을 구함이니, 살림거리를 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 법을 구함이니, 자기 이익을 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지혜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 법을 구함이니, 남을 경멸하지 않기 때문이요, 언제나 바른 법을 견고히 하기 위해 법을 구함이니, 세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며,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법을 구함이니, 보리심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요, 중생들의 질문에 다 답하기 위해 법을 구함이니, 모든 의문을 다 없애기 때문이며, 불법을 원만히 갖추기 위해 법을 구함이니,
다른 교법[乘]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법을 구함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굳게 머무르면 그는 모든 불법 가운데서 위없는 걸림없는 지혜를 얻어 남을 의지하지 않고 깨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 열 가지 명료한 법[明了法]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세간을 따르는 명료한 법이니 세간 범부들의 선근을 기르기 때문이요, 걸림없고 믿음을 깨뜨리지 않는 명료한 법이니, 법의 진성(眞性)을 알고 수행하는 사람을 믿기 때문이며, 법계에 편히 머무르는 명료한 법이니, 법을 행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또 팔사(八邪)를 멀리 떠나 팔정도(八正道)로 향하는 명료한 법이니, 팔인(八人)을 알기 때문이요, 모든 맺음을 없애고 생사의 번뇌를 끊고 진실한 이치를 보는 명료한 법이니, 수다원(須陀洹)을 알기 때문이며, 맛이 바로 허물이라고 관찰하여 도로 와서 태어나는 명료한 법이니 사다함(斯陀含)을 알기 때문이요, 나아가서는 잠깐도 삼계를 좋아하지 않고 태어남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번뇌를 없애려 하는 명료한 법이니, 아나함(阿那含)을 알기 때문이요, 여섯 가지 신통[六通]에 자재하고, 팔해탈(八解脫)에 놀며 구차제정(九次第定)과 모든 변재를 바로 가지는 명료한 법이니 아라한(阿羅漢)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 항상 고요함을 즐거워하고 바깥 인연을 의지하되 조그만 일에도 만족할 줄을 알며, 남을 의지하지 않고 깨달아 지혜를 성취하는 명료한 법이니, 연각을 알기 때문이요, 훌륭한 지혜를 성취하고 모든 감관이 밝고 예리하며, 마음은 언제나 해탈하여 무량한 공덕과 지혜를 기르며 부처님의 십력과 사무소외(四無所畏) 등 모든 불법을 두루 갖추는 명료한 법이니 그것은 보살을 알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명료한 법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굳게 머무르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큰 지혜와 명료한 법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 열 가지 향하는 법[向法]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선지식을 따르고 공경하는 향하는 법이요, 모든 하늘을 깨우치는 향하는 법이며, 일체 부처님에 대해 항상 부끄러워하는 향하는 법이요,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생사를 끊지 않는 향하는 법이며, 모든 일을 이루어서는 허망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향하는 법이요, 다른 교법을 멀리 떠나 오로지 보살의 대승법을 닦는 향하는 법입니다.
또 그릇된 도[邪道]를 멀리 떠나 오로지 바른 도를 구하는 향하는 법이요, 모든 악마를 항복 받고
번뇌를 멸하는 향하는 법이며, 부처의 자리에 편히 머물면서 모든 중생의 근기를 알고는 그들이 법을 들으려 하면 자세히 설명해 주는 향하는 법이요, 무량무변하고 청정한 법계에 편히 머무는 향하는 법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향하는 법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편히 머무르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향하는 법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악마가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오음(五陰)의 악마니, 오음에 탐착하기 때문이요, 번뇌의 악마니 번뇌에 물들기 때문이며, 업의 악마니 장애가 되기 때문이요, 마음의 악마니 스스로 교만하기 때문이며, 죽음의 악마니 받은 생을 떠나기 때문이요, 하늘의 악마니 교만과 방종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선근을 잃는 악마니 마음에 참회하지 않기 때문이요, 삼매의 악마니 맛을 붙이기 때문이며, 선지식의 악마니 그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을 내기 때문이요, 보리의 정법을 모르는 악마니 큰 서원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악마니, 응당 빨리 방편을 써서 그것을 멀리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 열 가지 마업(魔業)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보리심을 잃고 선근을 닦으면 그것이 마업이요, 나쁜 마음으로 보시하고 성내면서 계율을 지키면 그것이 마업이며, 성질이 나쁘고 게으른 중생을 버려 경멸하며, 마음이 어지럽고 무지한 중생을 싫어하면 그것이 마업이요, 바른 법을 아끼고 법기(法器)의 중생을 나무라며 이익을 탐해 사람들에게 설법하거나 법기가 아닌 사람에게 심묘한 법을 말하면 그것이 마업입니다.
또 바라밀을 듣지 않건 또 듣더라도 수행하지 않고, 게으른 마음으로 심묘하고 위없는 보리를 구하지 않으면 그것이 마업이요, 선지식을 멀리 떠나고 악지식을 가까이하며, 이승을 즐겨 구하면서 태어나는 곳에서 욕심을 떠난 고요함을 없애려는 마음을 일으키면 그것이 마업이며, 보살에 대해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 그 허물을 말하고 그의 이익을 방해하면서 항상 그 흠을 찾아 미워하는 눈으로 보면 그것이 마업입니다.
또 바른 법을 비방하여 경을 들으려 하지 않거나 혹 듣더라도 찬탄하지 않으며, 어떤 법사가 설법하면 스스로 겸손하여 그를 공경하지 않으면서
‘내 말은 옳고 그의 말은 그르다’ 하면 그것이 마업이요, 세간의 학문을 배워 문자에 능하고 문구를 잘 해석하며 글씨를 잘 쓰고 잘 외우며, 이승을 즐겨 말하고 깊은 법은 덮어 두면서 잡된 말을 잘하며, 법기가 아닌 사람에게 매우 깊은 법을 연설하며, 보리를 멀리 떠나 그릇된 도에 편히 머무르면 그것이 마업입니다.
또 이미 구제되어 편안한 사람에게는 친근하고 공경하면서 공양하고, 구제되지 못하고 편해지지 못한 이에게는 길이 친근하거나 공경하거나 공양하지 않고 또 그를 교화하지 않으면 그것이 마업이며, 증상만(增上慢)에 떨어져 온갖 교만을 키워서는 중생을 경멸하며, 바른 법과 진실한 지혜를 구하지 않고 모든 감관이 어지러워 교화해 제도하기 어려우면 그것이 마업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마업이니, 보살마하살은 부디 빨리 그것을 멀리 떠나 부처의 업을 바로 구해야 할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 마업을 버리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마업을 버리고, 스스로 잘난 체하지 않고 스스로 찬탄하지 않아 마업을 버리며, 깊은 불법을 믿어 비방하지 않아서 마업을 버리고, 일체지의 마음을 잃지 않아 마업을 버리며, 방종하지 않는 데에 편히 머물면서 깊은 법을 닦아 익혀 마업을 버립니다.
또 보살 창고에 편히 머무르면서 모든 법을 바로 구해 마업을 버리고, 시방의 일체 부처님께 귀의하여 마업을 버리며, 믿는 마음으로 일체 부처님의 보리수를 바로 생각해 마업을 버리고, 일체 보살이 둘이 아닌 모든 선근을 내어 마업을 버립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마업을 버리는 열 가지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업에 굳게 머무르면, 그는 일체 마업의 길을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부처를 보는 일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집착하지 않는 부처니 세간에 편히 머무르면서 정각(正覺)을 이루기 때문이요, 원하는 부처니 세상에 나오기 때문이며, 업보(業報)의 부처니 믿기 때문이요, 지니는 부처니 따르기 때문이며, 열반의 부처니 언제나 구제하기 때문이요, 법계의 부처니 이르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부처니 편히 머무르기 때문이요, 삼매의 부처니 한량없고 집착이 없기 때문이며,
성품의 부처니 결정코 있기 때문이요, 뜻대로 되는 부처니 어디에나 두루 덮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부처를 보는 것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편히 머무르면, 그는 위없는 여래를 볼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불업(佛業)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중생을 교화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첫째 불업이니, 모든 불법을 따라 기르기 때문이요, 꿈속에서 부처를 보는 것으로서 이것이 둘째 불업이니, 과거의 모든 선근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많이 듣는 것으로서 이것이 그 셋째 불업이니, 의심이 없는 결정지(決定智)를 얻기 때문이요, 후회에 얽매인 이를 위하여 묘한 방편으로 허물을 뉘우치는 법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넷째 불업이니, 일체의 뉘우침과 의심을 없애기 때문입니다.
또 만일 어떤 중생이 아끼는 마음ㆍ무지(無智)한 마음ㆍ성문의 마음ㆍ연각의 마음ㆍ해치려는 마음ㆍ의심하는 마음ㆍ교만한 마음 등을 일으키면ㆍ 여래의 장엄한 상호를 나타내어 그들을 교화하니, 이것이 다섯째 불업으로서 과거의 온갖 선근을 내어 기르기 때문입니다.
또 바른 법의 어려움을 겪는 때에 널리 중생들을 위해 그 깨끗하고 묘한 법을 말하여, 중생들이 그것을 듣고는 곧 다라니를 원만히 얻고, 또 지혜와 신통을 알맞게 따라 나타내어 중생들을 이롭게 하나니, 이것이 여섯째 불업으로서 마음의 힘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또 만일 악마의 일이 생기면 갖가지 방편으로 빨리 그것을 멀리 떠나고, 허공과 같은 미묘한 음성으로도 남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일체의 마업(魔業)을 없애어 인욕을 원만히 갖추나니 이것이 일곱째 불업으로서 공덕이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또 한량이 없는 행을 행하면서도 성문이나 연각의 생멸을 떠난 성인의 행은 증득하지 않고, 아직 근기가 성숙하지 못한 이에게는 해탈의 결과를 말하지 않으며 다만 애욕의 근본을 끊게 하나니, 이것이 여덟째의 불업으로서 본래의 서원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또 일체 생사의 번뇌와 일체의 결박을 다 끊어 버리고 보살의 행을 내며, 일체 중생에 대해 큰 슬픔을 기르고 깊은 마음으로 보살의 행을 믿고 이해하며 끝내 열반을 성취하나니, 이것이 아홉째의 불업으로서 보살의 행을 끊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은 자타(自他)를 위해 해탈의 도를 구하여 만족할 줄 모르고, 일체의 행과 모든 법을 떠나 여래의 육신에 대해 집착하지 않으며, 정진하여 오로지 걸림없는 지혜를 구하되
남을 의지하지 않고 깨달으며, 일체의 부처 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면서 모두 허공과 같음을 분명히 알고, 일체 중생을 교화해 성숙시키면서도 나가 없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며, 법계에 편히 머물러 그 온갖 신통이 자재합니다.
또 일체종지를 완전히 성취하였으면서도 보살의 행을 버리지 않고, 깨끗한 법륜을 굴려 일체 중생을 모두 기쁘게 하며, 널리 중생을 위해 매우 깊은 법을 말하고 여래의 무량한 신통을 나타내 보이면서도 보살의 몸을 버리지 않으며, 큰 열반을 나타내면서도 어디서고 태어나기를 버리지 않습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이런 불업과 내지 번복 삼매(飜覆三昧)를 내는데 이것이 열째 불업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불업(佛業)이니, 보살마하살로서 이 업에 굳게 머무르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위없고 스승 없는 큰 업을 얻어 남의 깨우침을 의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 열 가지 만업(慢業)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존귀한 복전(福田)인 화상ㆍ아사리ㆍ부모ㆍ사문ㆍ바라문 등에 대하여 존중하고 공경하며 공양하지 않으면 그것은 만업이요, 어떤 법사가 훌륭하고 묘한 법을 얻고는 대승법을 타고 생사를 벗어나는 길을 잘 알며, 다라니를 얻고 많이 들어 지혜 창고를 갖추고 잘 설법하는데, 그를 믿어 받들고 공경하며 공양하지 않으면 그것은 만업입니다.
설법을 들을 때 깊은 법을 듣고는 욕심을 떠나고 한량없이 기뻐하면서도 그 법사를 찬탄하지 않고 대중으로 하여금 기쁘게 하면 그것은 만업이요, 교만한 마음을 일으켜 잘난 체하고 남을 깔보며, 자기 허물을 반성하지 않고 제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면 그것은 만업이며, 나라는 생각을 일으켜 공덕이 있는 사람을 보고도 그 아름다움을 칭찬하지 않고, 덕이 없는 사람을 보면 도리어 그 선(善)을 찬탄하며, 만일 누가 남을 찬탄하면 그 사람에 대해 질투심을 일으키나니 그것은 만업입니다.
또 만일 어떤 법사가 ‘이것은 법이요 이것은 계율이며, 이것은 진실이요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다’ 하면, 그를 미워하고 질투하기 때문에 ‘그것은 법이 아니요 계율이 아니며, 진실이 아니요 부처님 말씀이 아니다’라고 하나니 남의 신심을 깨뜨리려 하기 때문에 그것은 만업입니다.
또 높은 자리에 앉아 ‘나는 법사이므로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존경하거나 공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범행(梵行)을 닦는 존장(尊長)이나 덕이 있는 사람들도 다 나를 공경하고 공경해야 한다’ 하면 그것은 만업입니다. 그러나 남을 미워하여 상을 찌푸리거나 사나운 눈으로 보지 않고 온화한 얼굴로 평등하게 중생들을 보며, 말은 언제나 부드러워 거칠지 않고, 성내지 않는 마음으로 그 법사에게 자기 허물을 말해 달라 하면 그것은 만업이 아닙니다.
아만(我慢)으로 많이 아는 이에게 나아가 공경하지도 않고, 법을 듣고는 어렵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것이 선이며 어떤 것이 악인가? 어떤 일은 해야 하고, 어떤 일은 하지 않아야 하는가? 어떤 업을 지으면 오랫동안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어떤 일을 하면 중생들에게 이롭지 않은가? 어떤 일을 해야 밝음에서 밝음으로 들어가고, 어떤 일을 하면 어둠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가?’ 라고 물어 보지 않습니다. 이런 무리는 아만 때문에 아만에 빠져서 해탈의 바른 길을 발견하지 못하나니, 그것은 만업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얻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지 못하여 전생에 심은 선근을 모두 녹여 버리고, 말하지 않을 것을 말함으로써 서로 꾸짖고 비방하는 것이니, 그런 법에 머무르면 반드시 사도(邪道)에 들어갈 것입니다. 다만 보리심의 힘이 있기 때문에 보살행을 아주 버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보살행을 버리지는 않더라도 한량없는 백천만겁을 지내도록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그 법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만업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만업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만업을 떠나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열 가지 위없는 청정한 의업(意業)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 열 가지 지업(智業)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인연을 믿고 이해하여 인과(因果)를 깨뜨리지 않으면 그것이 지업이요, 보리심을 버리지 않고 항상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면 그것이 지업이며, 모든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공경하고 공양하면서 게으르지 않으면 그것이 지업이요, 법과 이치를 즐거워하고 싫어함이 없이 많이 배우며, 오로지 바른 법을 구해 삿된 생각을 멀리 떠나고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그것이 지업입니다.
또 중생들에 대해선 나라는 생각을 내지 않고 보살에 대해서는 여래라는 생각을 일으키며, 보살을 사랑하여 내 몸처럼 여기고 바른 법을 존중하여 내 목숨처럼 아끼며, 여래를 존경하여 내 눈처럼 보호하고
계율을 지키는 이를 부처님처럼 생각하면 그것이 지업이요, 나쁜 신ㆍ구ㆍ의업을 떠나 청정한 신ㆍ구ㆍ의업을 수행하며, 성현을 찬탄하고 보리에 순응하면 그것이 지업입니다.
또 연기(緣起)의 법을 어기지 않고 온갖 그릇된 견해를 떠나, 어리석음의 어둠을 없애고 모든 법을 두루 비추면 그것이 지업이요, 십회향(十迴向)에 대해서는 인자한 어머니라 생각하고, 모든 바라밀에 대해서는 인자한 아버지라 생각하며, 선교한 방편에 대해서는 보리(菩提)라 생각하면 그것이 지업이며, 보시와 깨끗한 계율과 많이 들음에 있어서 오로지 지관(止觀)을 구하고, 공덕과 지혜에 대해 고달파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것이 지업입니다.
만일 부처님의 칭찬을 받는 모든 업을 지으면, 그것은 능히 온갖 악마를 항복 받고 모든 번뇌와 결박과 장애를 없애어 중생들을 교화하며, 지혜의 계율을 따르고 바른 법을 취하며, 부처 국토를 장엄하고 여섯 가지 신통과 세 가지 밝음으로 바로 향하면 그것이 지업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지업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업에 굳게 머무르면, 그는 모든 부처님이 내는 묘한 방편과 위없는 지업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악마에 포섭[魔所攝持]되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게으른 마음이니 그것이 악마에 포섭되고, 바른 불법을 버림이니 그것이 악마에 포섭되며, 만족할 줄 모르는 탐구(貪求)니 그것이 악마에 포섭되고, 오로지 자기 구제만 생각하니 그것이 악마에 포섭되며, 큰 서원을 내지 않음이니 그것이 악마에 포섭됩니다.
또 번뇌를 멀리 떠나고 언제나 고요함만을 즐김이니 그것이 악마에 포섭되고, 생사의 번뇌를 끊음이니 그것이 악마에 포섭되며, 보살행을 버림이니 그것이 악마에 포섭되고, 중생들을 교화해 성숙시킬 마음을 버림이니 그것이 악마에 포섭되며, 바른 법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불법을 비방함이니 그것이 악마에 포섭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악마에 포섭되는 열 가지니, 부디 그것을 빨리 버려야 합니다.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그것을 버리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열 가지 포섭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부처님께 포섭되는 그 열 가지란 무엇인가? 이른바 부처님께 포섭되기 때문에 처음으로 보리심을 내고, 부처님께 포섭되기 때문에 어디서 태어나든지 언제나 보리심을 잃지 않으며, 부처님께 포섭되기 때문에 일체 악마의 일을 깨닫고 그것을 멀리 떠날 수 있고, 부처님께 포섭되기 때문에 육바라밀을 듣고는 말대로 수행하며,
부처님께 포섭되기 때문에 생사의 괴로움을 알면서도 그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또 부처님께 포섭되기 때문에 매우 깊은 법을 관찰하여 해탈의 결과를 얻고, 부처님께 포섭되기 때문에 중생들을 위해 성문과 연각의 해탈을 말하면서도 그 교법을 좋아하지 않으며, 부처님께 포섭되기 때문에 무위(無爲)의 법을 관찰하고도 거기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고 유위(有爲)의 법에 대해서도 두 가지 생각을 내지 않고, 부처님께 포섭되기 때문에 계속되는 적멸(寂滅)을 얻어도 계속되지 않게 하며, 부처님께 포섭되기 때문에 일체지의 자재함을 얻고도 중생들의 종성(種姓)과 그 행을 버리지 않습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포섭되는 열 가지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포섭에 굳게 머무르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열 가지 힘의 포섭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법에 포섭되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모든 행의 덧없음이 법에 포섭되고, 모든 행의 괴로움이 법에 포섭되며, 모든 법의 나 없음이 법에 포섭되고, 적멸한 열반이 법에 포섭되며, 법은 연기(緣起)를 따르는 것인데 연기가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법에 포섭되고, 바르지 않은 생각 때문에 무명과 내지 노사(老死)가 일어나고, 바르지 않은 생각이 멸하기 때문에 무명이 멸하고,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내지 노사가 멸하는 것이 법에 포섭됩니다.
또 세 가지 해탈문[三解脫門]이 성문의 법을 내면 결정코 다툼이 없는 법[無諍法]이 연각의 법을 내는 것이 법에 포섭되고, 육바라밀과 사섭법이 대승을 내는 것이 법에 포섭되며, 모든 국토ㆍ모든 법ㆍ모든 중생ㆍ모든 세간이 다 부처의 경계임을 아는 것이 법에 포섭되고, 일체의 생각을 끊고 일체의 집착을 버리며, 과거와 미래를 떠나 열반을 따르는 것이 법에 포섭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법에 포섭되는 열 가지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포섭에 굳게 머무르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법의 포섭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도솔천(兜率天)에 있을 때는 열 가지 사업[業]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보살마하살은 욕심 세계의 여러 천인(天人)을 위해 욕심을 떠나는 법을 말하되, 방종과 자재는 다 덧없는 것이요, 일체의 쾌락은 다 고뇌라 하여
그 천자들을 권하고 깨우쳐 보리심을 내게 하나니, 이것이 도솔천에 머물 때의 첫째 사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형상 세계[色界]의 천자들을 위해 계속해 일어나는 선정ㆍ해탈ㆍ삼매를 말하면, 그 때문에 그들은 그 선정에 맛을 붙여 신견(身見) 등 그릇된 견해와 무명 번뇌를 일으킵니다. 그 때는 그들을 위해 진실한 지혜를 말하며, 또 모든 아름다운 빛깔에 대해 그들이 착각과 망상으로 그것을 깨끗한 것이라 집착하면, 보살은 그것을 더러운 것이라 말하여 덧없음을 관찰하여 그들을 권하고 깨우쳐 보리심을 내게 하나니, 이것이 도솔천에 머물 때에 둘째 사업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은 도솔천에 머물 때 광명장엄(光明莊嚴)이라는 삼매에 바로 들어서는 그 몸에서 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고, 그 상대를 따라 갖가지 음성으로 설법합니다. 중생들은 그 설법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목숨을 마친 뒤에 도솔천에 나면 그들에게 다시 설법하여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하나니, 이것이 도솔천에 머물 때의 셋째 사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은 걸림이 없는 청정한 눈으로 시방의 일체 도솔천에 있는 보살마하살을 보고, 거기 있는 보살도 또 이 보살마하살을 봅니다. 이렇게 서로 보고는 저 보살을 위해 바른 법을 자세히 말합니다. 이른바 천상에서 내려와 어머니 태 안에 들었다가 세간에 나와서는 집을 버리고 도를 구하여 도량에 나아가 큰 장엄으로 스스로 장엄하고, 과거의 행을 일으키고 과거의 행을 기억하여 공덕을 성취하되,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이런 모든 일을 나타내나니, 이것이 도솔천에 머물 때의 넷째 사업입니다.
이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머물 때, 시방의 모든 도솔천의 보살들이 이 보살마하살을 뵈옵고 공경하고 예배하려고 모두 여기 옵니다. 그때 이 보살마하살은 저들을 기뻐하게 하고 그 원을 성취시키기 위해 큰 법문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머무는 곳에서의 행과 끊음과 닦음과 증득한 것 등을 자세히 말합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기뻐하면서 각기 본국에 살던 궁전으로 돌아가나니, 이것이 도솔천에 머물 때의 다섯째 사업입니다.
이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바른 법을 강설할 때 욕심 세계의 주인인 천마 파순(天魔波旬)은 그 권속들을 데리고 보살에게 와서 설법을 방해하려 합니다. 그때 보살은 금강지(金剛智)에 속하는 반야바라밀의 묘한 방편에 머물면서 지혜의 문에 깊이 들어가 감로의 법을 연설하고,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여래의 법을 설명하여 그들을 모두 항복 받습니다. 그때 그 천마들은 보살의 이렇게 자재한 신력을 보고 또 그 설법을 듣고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나니, 이것이 도솔천에 머물 때의 여섯째 사업입니다.
이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머물 때에, 욕심 세계[欲界]의 천자들이 괴로움을 모르기 때문에 설법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을 압니다. 그리하여 이 보살은 큰 소리로 그 천자들에게 고합니다.
‘오늘 나는 내 안 권속을 나오게 하리니 그들을 보고 싶어 하는 이는 다 이리로 오너라.’
무량억 나유타 천자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보살에게로 갑니다. 그때 이 보살마하살은 궁내(宮內)에 있는 일체 권속들을 모두 나타내 보입니다. 그 천자들은 처음 보는 일이라 모두 못내 기뻐합니다. 이 보살 권속들은 음악 소리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천자들아, 일체의 행은 모두 덧없다. 일체의 행은 모두 괴롭다. 일체 법에는 나가 없나니, 모두 적멸이요 열반이니라.’
그리고 또 그들에게 말합니다.
‘그대들은 다 보살행을 닦아 보리를 성취하고 일체지를 갖추어야 한다.’
그때 천자들은 이 소리를 듣고 모두 크게 두려워하여 한결같이 위없는 보리를 구하나니, 이것이 도솔천에 머물 때의 일곱째 사업입니다.
이 보살마하살은 도솔천에 있을 때 도솔천에서 앉아 있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모든 부처님께 나아가 그 여래들을 다 뵈옵고는 공경하여 예배하며 공양하여 설법을 듣습니다. 그때 부처님들은 이 보살을 위해 감로수를 정수리에 쏟아 수기하는 법과 선명한 보살행의 자리를 설명하여,
이 보살로 하여금 한 생각에 상응하는 지혜로 일체의 가지와 일체의 종자를 원만히 갖추어 일체지에 깊이 들어가게 하나니, 이것이 도솔천에 머물 때의 여덟째 사업입니다.
이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머물 때 법계와 허공계와 같은 온갖 공양으로, 모든 세계의 여러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합니다. 그때 그것을 본 무량무변한 중생들이 다 보리심을 내나니, 이것이 도솔천에 머물 때의 아홉째 사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머물 때는 무량무변한 법문을 말하고, 모든 세계의 갖가지 빛깔ㆍ갖가지 형상ㆍ갖가지 위의ㆍ갖가지 방편 등을 나타내어, 그 근기를 따라 설법합니다. 그것은 일체의 중생을 기쁘게 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도솔천에 머물 때의 열째의 사업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머물 때의 열 가지 사업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사업을 모두 갖추면 그는 능히 인간 세상에 하생(下生)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 도솔천에서 목숨을 마칠 때는 열 가지 현상(現象)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보살이 도솔천에서 목숨을 마칠 때는 발바닥의 무늬에서 안락장엄(安樂莊嚴)이라는 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니, 나쁜 갈래에 있는 중생들로서 광명을 받는 이는 일체 고통이 없어지고 모두 안락하게 됩니다. 그때 중생들은 모두 생각하기를, ‘오늘 갑자기 기이하고 특이한 대인(大人)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 하나니, 이것이 첫째 현상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목숨을 마칠 때는 두 눈썹 사이에서 각오(覺悟)라는 백호상(白毫相)의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니, 전생에 보살행을 함께 수행한 보살로서 그 광명을 받는 이는 모두 ‘저 보살마하살이 지금 목숨을 마치려 한다’라고 하고, 그때 보살들은 무량무변한 공양거리를 변화로 만들어서는 빨리 이 보살마하살에게로 가나니, 이것이 둘째 현상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이 목숨을 마칠 때는
오른 손바닥에서 정경계(淨境界)라는 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다 장엄하는데, 만일 벽지불(辟支佛)로서 번뇌가 없는 이가 이 광명을 깨달으면 그는 곧 목숨을 마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는 광명의 힘으로 다른 세계에 옮겨지며, 또 악마와 외도 등 그것을 보는 중생도 또 다른 세계에 옮겨집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교화를 받는 중생은 거기서 제외되나니 이것이 셋째 현상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은 두 무릎에서 이구청정장엄(離垢淸淨莊嚴)이라는 큰 광명을 놓아 최하의 여러 천궁(天宮)을 두루 비추고 위로는 정거천(淨居天)의 여러 궁전을 모두 환히 비춥니다. 그때 그 천자들은 모두 ‘지금 저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목숨을 버리려 한다’ 하고, 곧 향ㆍ꽃ㆍ영락ㆍ바르는 향ㆍ가루향ㆍ옷ㆍ일산ㆍ당기ㆍ번기 및 갖가지 음악 등 공양거리를 마련해 가지고 그 보살에게 가서 공경하고 공양하면서 말하기를, ‘우리는 이 보살이 여기서 목숨을 마치거나 내지 큰 열반에 들 때까지 모시고 수호하리라’ 하나니, 이것이 넷째 현상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목숨을 마치려 할 때는 그 심장에서 금강정묘장엄(金剛淨妙莊嚴)이라는 큰 광명을 놓아 일체 세계의 금강역사(金剛力士)를 두루 비춥니다. 그때 백억 금강역사들은 다 ‘저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목숨을 마치려 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다 저 보살이 큰 열반에 들 때까지 따라 모시고 수호하리라’ 하나니, 이것이 다섯째 현상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목숨을 마치려 할 때는 모든 털구멍에서 분별일체중생(分別一切衆生)이라는 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고, 모든 보살 몸에 다 부딪치고는 다시 천상 인간 사람들에게 부딪칩니다. 그때 그 보살들은, ‘우리는 저기 가서 여래를 공경 공양하고 다시 저 중생들을 교화하리라’ 하나니, 이것이 여섯째 현상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목숨을 마치려 할 때는 마니보장(摩尼寶藏)의 정법당(正法堂)에서 선조복(善調伏)이라는 큰 광명을 놓아 그 보살이 태어날 왕궁을 두루 비추면, 그 여러 보살들은 모두 ‘이 보살이 태어날 곳이라면 그것이 집이건 촌락이건 도시건, 혹은 염부제 안의 어디라도 우리는 거기 가서 날 것이니, 그것은 그가 중생들을 교화하기 때문이다’ 하나니, 이것이 일곱째 현상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목숨을 마치려 할 때는 천루(天樓)에서 정장엄일체궁전(淨莊嚴一切宮殿)이라는 큰 광명을 놓아, 장차 태어날 그 어머니를 비추면, 그 어머니는 편하고 즐거워 모든 공덕을 원만히 갖춥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 몸 안에는 칠보로 장엄한 누각이 저절로 생기는데, 그것은 보살의 몸을 편히 있게 하기 위해서니, 이것이 여덟째 현상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목숨을 마치려 할 때는 발밑에서 안주(安住)라는 광명을 놓습니다. 만일 천자나 범천으로서 목숨을 마칠 때 이 광명을 받으면 모두 수명을 연장하여 보살을 공양하는데 거기서 목숨을 마치어 내지 큰 반열반(般涅槃)을 보이나니, 이것이 아홉째 현상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은 도솔천에 있으면서 그 작은 상[小相]에서 엄정일안(嚴淨日眼)이라는 큰 광명을 놓아 그의 갖가지 업을 나타내 보입니다. 그때 인간이나 천상 사람들로서, 혹은 보살이 도솔천에 있는 것을 보고 혹은 거기서 목숨을 마치는 것을 보며, 혹은 태에 있는 것을 보고 혹은 세상에 나는 것을 보며, 혹은 집을 떠나는 것을 보고 혹은 성불하는 것을 보며, 혹은 법륜을 굴리는 것을 보고 혹은 큰 열반에 드는 것을 보나니, 이것이 열째 현상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앉아 있는 곳에서나 누각에서나 혹은 궁전에서 이런 백만 아승기 광명을 놓고, 그 광명을 놓을 때는 한량없는 보살들의 그 업을 나타내 보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이런 깨끗한 업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에 도솔천에서 인간에 하생(下生)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일이 있기 때문에
천상에서 내려와 그 어머니 태에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마음이 용렬한 중생들을 교화하여 성숙시키기 위해 태에 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요, 또 마음이 용렬한 중생들로 하여금 ‘보살은 자연히 화생(化生)한 것이며, 그 선근과 지혜는 수행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생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니, 이것이 태 안에 든 것을 나타내 보인 첫째 일입니다.
또 그 부모와 친척들로 하여금 전생에 선근을 함께 닦은 것을 알게 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태 안에 있음을 나타내 보인 둘째 일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은 처음으로 태를 받을 때 어리석음을 멀리 떠나 바른 생각으로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고, 생각하는 슬기를 이루어 그 마음이 산란한 적이 없었나니 이것이 태 안에 있음을 나타내 보인 셋째 일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은 어머니 태 안에 있을 때 항상 설법하였으므로, 시방세계의 보살들과 제석ㆍ범천ㆍ사천왕 등이 모두 거기 오면, 보살은 곧 그들을 위해 널리 설법하여, 보살의 자재한 신력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는 무량무변한 온갖 지혜를 모두 성취하였기 때문에 이런 신기한 일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것이 태 안에 있음을 나타내 보인 넷째 일입니다.
보살마하살이 그 모태에 든 것은 중생들을 교화하기 때문이요, 또 그 중생들의 본래 서원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니, 이것이 태 안에 있음을 나타내 보인 다섯째 일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이 인간으로서 성도(成道)한 것은 인간의 법을 갖추어 태어나기 위해서니, 이것이 태 안에 있음을 나타내 보인 여섯째 일입니다.
보살마하살이 어머니 태 안에 있을 때 삼천대천세계 중생들이 모두 거울 속의 형상을 보듯 보살의 모태 안에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하여 마음이 큰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것들이 모두 와서 공경하고 공양하나니, 이것이 태 안에 있음을 나타내 보인 일곱째 일입니다.
보살마하살이 그 어머니 태 안에 있을 때 다른 세계의 일생보처(一生補處)로서 그 모태에 있는 이들이 모태 안에 있음을 나타내 보인 여덟째 일입니다.
보살마하살이 처음으로 태를 받았을 때 이구삼매(離垢三昧)에 들어 있었는데, 도솔천궁이 온갖 공양과 장엄거리를 가지고
모두 그 모태에 들어갔지만, 보살은 삼매의 힘으로 그 어머니를 아무 고통이 없게 하였나니 이것이 태 안에 있음을 나타내 보인 아홉째 일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그 어머니 태 안에 있을 때는 무량무변한 공덕 창고를 모두 갖추었으므로, 시방세계에서는 온갖 공양거리를 가지고 와서 일체 여래께 공양하고, 그 부처님들은 이 보살을 위해 무량무변한 법계의 법문을 연설하나니, 이것이 태 안에 있음을 나타내 보인 열째 일입니다.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문에 머무르면 그는 능히 보살의 열 가지 미세한 뜻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보살마하살이 어머니 태 안에 있을 때 처음으로 보리심을 낸 때부터 감로수를 정수리에 쏟아 수기를 받을 때까지를 나타내 보이고, 또 어머니 태 안에 있으면서 도솔타천에 있음을 나타내 보이며, 또 어머니 태 안에 있으면서 세상에 나오는 것을 나타내 보입니다.
또 어머니 태 안에 있으면서 궁중의 온갖 빛깔과 맛 속에 있음을 나타내 보이고 또 어머니 태 안에 있으면서 집 떠나는 것을 나타내 보이며, 또 어머니 태 안에 있으면서 고행하면서 도량에 나아가 등정각을 이루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또 어머니 태 안에 있으면서 법륜 굴리는 것을 나타내 보이며, 또 어머니 태 안에 있으면서 큰 열반에 드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또 어머니 태 안에 있으면서 미세한 모든 법과 일체의 보살행과 여래들의 자재한 신력과 무량한 행문(行門) 등을 나타내 보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미세한 뜻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뜻에 굳게 머물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지혜의 큰 미세한 뜻을 얻을 것입니다.”

쟁송(諍訟) : 앞글자는 측(側)과 병(迸)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음이 송(頌)이다.
훼욕(毀辱) : 앞글자는 허(許)와 위(委)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이(而)와 촉(蜀)의 반절이다.
치빙(馳騁) : 뒷글자는 음이 령(逞)이다.
경조(輕躁) : 뒷글자는 칙(則)와 도(到)의 반절이다.
가책(訶責) : 뒷글자는 측(側)과 혁(革)의 반절이다.
민도(愍悼) : 뒷글자는 음이 도(道)이다.
죄흔(罪釁) : 뒷글자는 허(許)와 근(覲)의 반절이다.
경멸(輕蔑) : 뒷글자는 막(莫)과 결(結)의 반절이다.
질투(嫉妒) : 앞글자는 음이 질(疾)이고, 뒷글자는 당(當)과 고(故)의 반절이다.

빈축(嚬蹙) : 앞글자는 부(符)와 진(眞)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자(子)와 륙(六)의 반절이다.
진광(塵獷) : 뒷글자는 고(古)와 맹(猛)의 반절이다.
자문(諮問) : 앞글자는 음이 자(資)이다.
기신(己身) : 앞글자는 거(居)와 리(理)의 반절이다.
종일(縱逸) : 앞글자는 자(子)와 용(用)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이(夷)와 질(質)의 반절이다.
권발(勸發) : 앞글자는 거(去)와 원(願)의 반절이다.
사치(徙置) : 앞글자는 사(斯)와 씨(氏)의 반절이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