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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323 불교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58권

by Kay/케이 2023.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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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58

 

대방광불화엄경 제58권

우전국(于闐國) 삼장(三藏) 실차난타(實叉難陀) 한역
이운허 번역

38. 이세간품 ⑥

7) 인이 원만하고 과가 만족함을 답함 ②“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청정한 보시[施]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평등한 보시니 중생을 가리지 않는 연고며, 뜻을 따르는 보시니 그들의 소원을 채우는 연고며, 난잡하지 않은 보시니 이익을 얻게 하는 연고며, 마땅함을 따르는 보시니 상ㆍ중ㆍ하를 아는 연고며, 무주상[不住]보시니 과보를 구하지 않는 연고며, 터놓은 보시니 마음에 연연하지[戀] 않는 연고며, 온통 하는 보시니 끝까지 청정한 연고며, 보리에 회향하는 보시니 함이 있고 함이 없음을 멀리 여읜 연고며, 중생을 교화하는 보시니 도량에 이르도록 버리지 않는 연고며, 세 바퀴[三輪]가 청정한 보시니 주는 이ㆍ받는 이ㆍ물건을 바른 생각으로 관찰하매 허공과 같은 연고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청정하고 광대한 보시를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청정한 계율[戒]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몸이 청정한 계율이니 몸의 세 가지 악한 것을 보호하는 연고며, 말이 청정한 계율이니 말의 네 가지 허물을 여읜 연고며, 마음이 청정한 계율이니 탐욕과 성내는 일과 삿된 소견을 여읜 연고며, 온갖 것 배울 곳을 파하지 않는 청정한 계율이니 모든 인간 천상에 높은 이가 되는 연고며, 보리심을 수호하는 청정한 계율이니 소승을 좋아하지 않는 연고며, 여래께서 제정하신 것을 보호하는 계율이니 작은 죄에도 큰 두려움을 내는 연고며, 은밀하게 보호하는 청정한 계율이니 파계한 중생을 잘 빼내는 연고며, 모든 악을 짓지 않는 계율이니 모든 선한 법을 닦는 연고며, 모든 있다는 소견을 멀리 여읜 청정한 계율이니 계율에 집착이 없는 연고며, 일체 중생을 수호하는 청정한 계율이니 크게 가엾이 여김을 내는 연고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고 허물 없는 청정한 계율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청정한 참음[忍]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욕되는 비방을 잘 받는 청정한 참음이니 여러 중생을 보호하는 연고며, 칼과 작대기를 잘 받는
청정한 참음이니 나와 남을 잘 두호하는 연고며, 성을 내지 않는 청정한 참음이니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연고며, 미천한 이를 책하지 않는 청정한 참음이니 윗사람이 되어 능히 너그러운 연고며, 귀의하는 이를 다 구해 주는 청정한 참음이니 자기의 신명을 버리는 연고며, ‘나’란 교만을 여의는 청정한 참음이니 나중 배우는 이를 업신여기지 않는 연고며, 훼방함을 성내지 않는 청정한 참음이니 눈어리 같은 줄로 관찰하는 연고며, 침범하여도 갚지 않는 청정한 참음이니 나와 남을 보지 않는 연고며, 번뇌를 따르지 않는 청정한 참음이니 모든 경계를 여의는 연고며, 보살의 진실한 지혜를 따라 모든 법이 생멸이 없음을 아는 청정한 참음이니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온갖 지혜의 경계에 들어가는 연고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모든 부처님이 다른 이를 말미암지 않고 깨닫는 위없는 법의 참음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청정한 정진(精進)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몸의 청정한 정진이니 부처님과 보살과 스승과 어른을 섬기고 공양하며, 복밭[福田]을 존중하여 물러가지 않는 연고며, 말의 청정한 정진이니 들은 법대로 다른 이에게 자세히 말하며,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여 게으름이 없는 연고며, 뜻의 청정한 정진이니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고 기뻐하고, 버림과 선정과 해탈과 삼매에 잘 들고 나면서 쉬지 아니하는 연고며, 정직한 마음의 청정한 정진이니 속이지 않고 아첨하지 않고 사곡하지 않고 거짓이 없으며, 모든 것을 부지런히 닦아 물러감이 없는 연고며, 더 나아지는 마음의 청정한 정진이니 상상(上上)의 지혜를 항상 구하며 모든 희고 깨끗한 법을 갖추기를 원하는 연고입니다.
헛되지 않은 청정한 정진이니 보시ㆍ계율ㆍ많이 들음ㆍ방일(放逸)하지 않음을 거두어 지니며 보리에 이르도록 중간에 쉬지 않는 연고며, 모든 마를 굴복하는 청정한 정진이니 탐욕ㆍ성내는 일ㆍ어리석음ㆍ삿된 소견ㆍ모든 번뇌ㆍ감김[纏]ㆍ덮임[蓋] 따위를 모두 멸하는 연고며, 지혜의 빛을 만족하게 이루는 청정한 정진이니 모든 하는 일을 잘 관찰하여 끝까지 이르러 후회하지 않게 하며, 모든 부처님의 불공법(不共法)을 얻는 연고며, 옴도 없고 감도 없는 청정한 정진이니 실다운 지혜를 얻고 법계의 문에 들어가 몸과 말과 뜻이 다 평등하며, 형상과 형상 아님을 알아 집착이 없는 연고며, 법의 광명을 성취하는 청정한
정진이니 모든 지위를 초월하여 부처님의 정수리에 물 부음을 얻고, 샘이 없는[無漏] 몸으로써 죽고 태어나서 출가하여 도를 이루고 법을 말하다가 열반함을 보이며, 이러한 보현(普賢)의 일을 구족하는 연고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크게 청정한 정진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청정한 선정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항상 출가함을 좋아하는 선정이니 모든 가진 것을 버리는 연고며, 진정한 선지식을 얻는 청정한 선정이니 바른 도를 보이고 가르치는 연고며, 아란야(阿蘭若)에 있으면서 비ㆍ바람 따위를 참는 청정한 선정이니 나와 내 것을 여의는 연고며, 번잡한 중생을 여의는 청정한 선정이니 고요한 데를 항상 좋아하는 연고며, 마음의 업이 조화하여 청정한 선정이니 모든 근을 수호하는 연고며, 마음과 지혜가 고요한 선정이니 모든 음성인 선정의 병통이 시끄럽게 하지 못하는 연고며, 도를 깨닫는 방편의 청정한 선정이니 모든 것을 관찰하여 현재에 증득하는 연고며, 맛들임[味著]을 여의는 청정한 선정이니 욕심 세계를 버리지 않는 연고며, 신통과 밝음을 발기하는 선정이니 모든 중생의 근기와 성품을 아는 연고며, 마음대로 유희하는 청정한 선정이니 부처의 삼매에 들어가 내가 없음을 아는 연고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크게 청정한 선정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청정한 지혜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인을 아는 청정한 지혜니 과보를 깨뜨리지 않는 연고며, 모든 연(緣)을 아는 청정한 지혜니 화합(和合)을 어기지 않는 연고며, 아주 없지도 않고 항상하지도 않음을 아는 청정한 지혜니 연기가 다 사실과 같음을 통달하는 연고며, 모든 소견을 빼내는 청정한 지혜니 중생의 형상에 취하고 버림이 없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마음과 행을 관찰하는 청정한 지혜니 눈어리와 같음을 분명히 아는 연고입니다.
광대한 변재의 청정한 지혜니 모든 법을 분별하여 묻고 대답함에 걸림이 없는 연고며, 모든 마와 외도와 성문과 독각이 알지 못하는 청정한 지혜니 모든 여래의 지혜에 깊이 들어가는 연고며, 모든 부처님의 미묘한 법의 몸을 보고 모든 중생의 본 성품이 청정함을 보고 모든 법이 다 고요함을 보고 모든 세계가 허공과 같음을 보는 청정한 지혜니 모든 모양이
다 걸림없음을 아는 연고며, 모든 다라니[愡持]와 변재와 방편과 바라밀이 청정한 지혜니 모든 가장 훌륭한 지혜를 얻게 하는 연고며, 한 생각과 서로 응하는 금강 지혜로 모든 법이 평등함을 아는 지혜니 모든 법에 가장 높은 지혜를 얻는 연고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장애가 없는 큰 지혜를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청정한 인자함[慈]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평등한 마음의 청정한 인자함이니 중생을 널리 포섭하여 가림이 없는 연고며, 이익케 하는 청정한 인자함이니 하는 일이 모두 기쁘게 하는 연고며, 물건을 거두어 나와 같이 하는 청정한 인자함이니 필경에 다 생사에서 나오게 하는 연고며, 세간을 버리지 않는 청정한 인자함이니 마음에 항상 선근 모음을 생각하는 연고며, 해탈에 이르는 청정한 인자함이니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번뇌를 두루 멸하게 하는 연고며, 보리를 내는 청정한 인자함이니 중생들로 하여금 온갖 지혜 구하는 마음을 내게 하는 연고며, 세간에 걸림없는 청정한 인자함이니 큰 광명을 놓아 평등하게 널리 비추는 연고며, 허공에 가득한 청정한 인자함이니 중생을 구호하여 안 가는 데가 없는 연고며, 법 반연의 청정한 인자함이니 진여와 같은 진실한 법을 증득하는 연고며, 연이 없는 청정한 인자함이니 보살의 생사를 여읜 성품에 들어가는 연고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넓고 크고 청정한 인자함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청정한 가엾이 여김[悲]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짝할 이 없이 청정한 가엾이 여김이니 혼자 그 마음을 내는 연고며, 고달픈 줄 모르는 청정한 가엾이 여김이니 일체 중생을 대신하여 괴로움을 받아도 피로하지 않는 연고며, 어려운 곳에 태어나는 청정한 가엾이 여김이니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연고며, 좋은 곳에 태어나는 청정한 가엾이 여김이니 덧없음을 보이는 연고며, 잘못 결정된 중생을 위하는 청정한 가엾이 여김이니 오랜 겁을 지나도 큰 서원을 버리지 않는 연고며, 자기의 낙(樂)에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가엾이 여김이니 중생에게 쾌락을 두루 주는 연고며, 은혜 갚음을 구하지 않는 청정한 가엾이 여김이니 마음을 깨끗하게 닦는 연고며, 뒤바뀜[顚倒]을 능히 제하는 청정한 가엾이 여김이니 실다운 법을 말하는 연고며,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이 본 성품이 청정하여 물들지도 않고
시끄러움도 없지만, 객진번뇌(客塵煩惱)로 말미암아 여러 괴로움을 받는 줄을 알며, 이렇게 알고는 여러 중생을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나니, 이름이 본 성품이 청정함[本性淸淨]인데, 때 없이 청정하고 광명한 법을 말하는 연고며,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이 공중에 새의 발자국 같건만 중생들이 어리석어 밝게 비치어 관찰하지 못함을 알고, 그들에게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나니, 이름이 진실한 지혜[眞實智]로 그들을 위하여 열반의 법을 열어 보이는 연고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광대하고 청정한 가엾이 여김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청정한 기쁨[喜]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리심을 내는 청정한 기쁨과, 가진 것을 모두 버리는 청정한 기쁨과, 파계한 중생을 버리지 않고 교화하여 성취하는 청정한 기쁨과, 나쁜 짓하는 중생을 받아들여 서원코 제도하려는 청정한 기쁨과, 몸을 버려서 법을 구하여도 후회하지 않는 청정한 기쁨과, 자기의 욕망과 즐거움을 버리고 법의 즐거움을 좋아하는 청정한 기쁨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살림하는 즐거움을 버리고 법의 즐거움을 좋아하게 하는 청정한 기쁨과, 모든 부처님을 보고 공경하고 공양하기를 만족한 줄 모르며 법계가 평등한 청정한 기쁨과,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선정ㆍ해탈ㆍ삼매를 사랑하여 유희하고 드나들게 하는 청정한 기쁨과, 보살의 도를 따르는 모든 고행을 갖추어 행하여 모니(牟尼)의 고요하고 동하지 않는 위없는 선정과 지혜를 증득하기를 좋아하는 청정한 기쁨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위없는 광대하고 청정한 기쁨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청정한 버림[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중생이 공경하고 공양하되 애착을 내지 않는 청정한 버림과, 모든 중생이 업신여기고 헐뜯어도 성을 내지 않는 청정한 버림과, 세간에 항상 다녀도 세간의 여덟 가지 법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버림과, 법 그릇[法器] 될 만한 중생은 시기를 따라 교화하고, 법 그릇이 되지 못하는 이에게도 혐의하지 않는 청정한 버림과, 이승(二乘)의 배우는 이ㆍ배울 것 없는 이의 법을 구하지 않는 청정한 버림과, 모든 욕락(欲樂)과 번뇌를 따르는 법을 항상 마음에 멀리 여의는 청정한 버림과, 이승의 생사 여의는 것을 찬탄하지 않는
청정한 버림과, 모든 세간의 말과 열반이 아닌 말과 욕심을 여의지 아니한 말과 이치에 순하지 않는 말과 남을 시끄럽게 하는 말을 멀리 여의며, 성문의 말ㆍ독각의 말과 간략히 말하여 보살의 도를 장애하는 모든 말을 모두 멀리 여의는 청정한 버림과, 어떤 중생은 근기가 이미 성숙하여 생각하는 지혜를 내고서도, 최상법을 알지 못하거든 때에 맞추어 교화하는 청정한 버림과, 어떤 중생은 보살이 예전에 교화하였으므로, 부처 지위에 이르러 조복할 수 있거든, 그도 또한 때를 기다리는 청정한 버림과, 보살마하살이 저 두 사람에게 높은 것도 없고 낮은 것도 없으며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아서, 모든 가지가지 분별을 멀리 여의고, 항상 바른 선정에 머물러 실다운 법에 들어가서 마음에 견딜 수 있는 청정한 버림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광대하고 청정한 버림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뜻[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많이 듣는 뜻이니 견고하게 수행하는 연고며, 법의 뜻이니 교묘하게 생각하여 가리는 연고입니다. 공한 뜻이니 첫째가는 공(空)인 연고며, 고요한 뜻이니 중생들의 시끄러움을 여읜 연고며, 말할 수 없는 뜻이니 온갖 말에 집착하지 않는 연고며, 실제와 같은 뜻이니 삼세가 평등함을 통달하는 연고며, 법계(法界)의 뜻이니 모든 법이 한맛인 연고며, 진여의 뜻이니 모든 여래를 따라 들어가는 연고며, 실제의 뜻이니 필경에 실제와 같음을 아는 연고며, 대반열반(大般涅槃)의 뜻이니 모든 괴로움을 멸하고 보살의 여러 행을 닦는 연고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온갖 지혜의 위없는 뜻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진실한 법이니 말한 대로 수행하는 연고며, 취함을 여의는 법이니 능히 취함과 취할 바를 다 여의는 연고며, 다툼이 없는 법[無請法]이니 모든 의혹과 다툼이 없는 연고며, 고요한 법이니 모든 뜨거운 번뇌를 멸한 연고며, 욕심을 여의는 법이니 모든 탐욕을 다 끊은 연고며, 분별이 없는 법이니 반연하는 분별이 아주 쉬는 연고며, 생사가 없는 법이니 허공같이 동하지 않는 연고며, 함이 없는 법[無爲法]이니 나고 머물고 멸하는 여러 모양을 여읜 연고며, 본 성품의 법이니 제 성품[自性]이 물들지 않고
청정한 연고며, 모든 오파제열반(烏波提涅槃)을 버리는 법이니 모든 보살의 행을 내어 닦아 익히고 끊어지지 않는 연고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광대한 법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복덕의 도를 돕는 거리[福德助道具]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중생을 권하여 보리심을 일으킴이 보살이 복덕의 도를 돕는 거리니 삼보의 종자를 끊지 않는 연고며, 열 가지 회향을 순종함이 보살의 복덕의 도를 돕는 거리니 모든 착하지 못한 법을 끊고 모든 착한 법을 모으는 연고며, 지혜로 달래어 가르침이 보살이 복덕의 도를 돕는 거리니 삼계의 복덕을 초과하는 연고며, 고달픈 마음이 없는 것이 보살의 복덕의 도를 돕는 거리니 필경에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연고입니다.
안팎에 가진 것을 다 버림이 보살이 복덕의 도를 돕는 거리니 모든 물건에 집착이 없는 연고며, 잘 생긴 모양을 만족하고 정진하여 물러가지 않음이 보살이 복덕의 도를 돕는 거리니 문을 열어 놓고 보시하여 제한이 없는 연고며, 상ㆍ중ㆍ하 삼품의 선근을 위없는 보리에 회향하되 마음에 경쾌한 생각 없음이 보살이 복덕의 도를 돕는 거리니 교묘한 방편과 서로 응하는 연고며, 잘못 결정되고 용렬하고 선하지 못한 중생에게 큰 자비를 내고 천히 여기지 아니함이 보살이 복덕의 도를 돕는 거리니 항상 큰 사람의 깊은 서원을 일으키는 연고입니다.
모든 여래를 공경하고 공양하며, 모든 보살에게 여래라는 생각을 일으키며, 일체 중생에게 기쁜 생각을 내게 함이 보살이 복덕의 도를 돕는 거리니 본래의 소원이 매우 견고한 연고입니다. 보살마하살이 아승기겁 동안에 선근을 쌓았으므로 위없는 보리를 스스로 증득함이 수중에 있는 듯하지만, 모두 일체 중생에게 주면서도 걱정도 없고 뉘우침도 없으며, 마음이 광대하기 허공계와 같음이 보살이 복덕의 도를 돕는 거리니, 큰 지혜를 일으키어 큰 법을 증득하는 연고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고 광대한 복[福德聚]을 구족합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지혜의 도를 돕는 거리[智慧助道具]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많이 들은 진정한 선지식을 친근하여 공경하고 공양하고 존중하여 예배하며, 갖가지로 순종하고 가르침을 어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이니, 온갖 것이 정직하고 거짓이 없는 연고입니다.
영원히 교만을 여의고 항상 겸손하고 공경하며, 몸과 말과 뜻의 업이 거칠지 아니하고 부드럽고 순하여 속이지 않고 간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둘이니, 그 몸이 법 그릇이 될 만한 연고입니다.
생각하는 지혜가 깨달음을 따르고 산란하지 않으며 부끄러워하고 부드러우며, 마음이 안정하여 동하지 않고 항상 여섯 가지 생각함[六念]을 기억하며 여섯 가지 공경함[六敬]을 행하고 여섯 가지 견고한 법[六堅固法]을 따라 머뭅니다. 이것이 셋이니, 열 가지 지혜로 방편을 삼는 연고입니다.
법을 좋아하고 이치를 좋아하여 법으로 낙을 삼으며, 듣기를 항상 좋아하여 싫어함이 없으며, 세상 언론과 세상 이야기를 버리고 전심(專心)으로 출세간 말을 들으며, 소승을 멀리 떠나고 대승의 지혜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넷이니, 일심으로 생각하고 산란하지 않는 연고며, 육바라밀을 전심으로 짊어지고 네 가지 범천에 머무는 행을 성취하였으며, 밝은 법을 따라서 잘 수행하고 총명하고 지혜 있는 이에게 부지런히 물으며, 악한 길을 떠나고 선한 길에 나아가며, 마음으로는 바른 생각[正念]으로 관찰함을 좋아하며, 자기의 마음을 조복하고 다른 이의 뜻을 수호합니다. 이것이 다섯이니, 진실한 행을 견고하게 닦는 연고며, 항상 뛰어남을 좋아하고 삼계에 집착하지 않으며, 자기 마음을 항상 깨달아 나쁜 생각이 없으며, 세 가지 감각[三覺]이 끊어지고 세 가지 업[三業]이 모두 착하여 마음의 성품을 결정코 압니다. 이것이 여섯이니, 나와 남의 마음을 다 청정케 하는 연고입니다.
오온(五蘊)은 눈어리 같고 계(界)는 독사와 같고 처(處)는 빈 마을과 같음을 관찰하며, 모든 법이 요술 같고 아지랑이 같고 물 속의 달과 같고 꿈과 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고 영상 같고 허공중의 그림과 같고 불 돌리는 바퀴와 같고 무지개 빛과 같고 해와 달의 광명과 같아서, 모양도 없고 형상도 없고 항상하지도 않고 아주 없지도 않고 온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고 머무는 데도 없나니, 이렇게 관찰하고 모든 법이 나는 일도 없고 멸하는 일도 없음을 압니다. 이것이 일곱이니, 모든 법의 성품이 공하고 고요함을 아는 연고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이 나도 없고 중생도 없고 오래 사는 것도 없고 보특가라[補伽羅]도 없으며, 마음도 없고 대상도 없고, 탐욕ㆍ성내는 일ㆍ어리석음도 없고, 몸도 없고
물건도 없고 주인도 없고 상대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고 행할 것도 없으며, 모든 것이 아무것도 없어 고요한 데로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는 확실히 믿고 의심하지 않고 비방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여덟이니, 원만한 지해[解]를 성취하는 연고입니다.
보살마하살이 여러 감관[根]을 잘 조복하여 이치대로 수행하며, 항상 집중하여[止] 살핌[觀]에 머물러 마음이 고요하여 모든 흔들리는 생각이 나지 아니하며, 나도 없고 사람도 없고 지을 것도 없고 행할 것도 없으며, 내라 하는 생각도 없고 내라 할 업도 없으며, 헌 데도 없고 헌 데 자국도 없고, 이것을 인식하는 알음알이도 없으며, 몸과 말과 뜻의 업이 오는 일도 없고, 가는 일도 없고, 정진도 없고 용맹도 없으며, 모든 중생과 모든 법을 관찰하는 데 마음이 평등하여 머무는 데가 없으며, 이 언덕도 아니고 저 언덕도 아니어서 이것 저것의 성품을 떠났으며 온 데도 없고 간 데도 없으며, 항상 지극한 지혜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아홉이니, 분별하는 모양[分別相]의 저 언덕에 이르는 연고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연기하는 법[緣起法]을 보았으므로 법이 청정함을 보고, 법이 청정함을 보았으므로 국토가 청정함을 보고, 국토가 청정함을 보았으므로 허공이 청정함을 보고, 허공이 청정함을 보았으므로 법계가 청정함을 보고, 법계가 청정함을 보았으므로 지혜가 청정함을 봅니다.
이것이 열이니, 행을 닦아 온갖 지혜를 모으는 연고입니다.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지혜의 도를 돕는 거리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모든 법에 장애가 없이 청정하고 미묘한 지혜 덩이[智慧聚]를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밝고 만족함[明足]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법을 잘 분별하는 밝고 만족함과,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밝고 만족함과, 뒤바뀐 소견을 여읜 밝고 만족함과, 지혜의 빛이 여러 감관을 비추는 밝고 만족함과, 바른 정진을 교묘하게 발기하는 밝고 만족함과, 참 이치의 지혜에 깊이 들어가는 밝고 만족함과, 번뇌의 업을 멸하고 끝나는 지혜ㆍ남이 없는 지혜를 성취하는 밝고 만족함과, 하늘 눈[天眼]의 지혜로 널리 관찰하는 밝고 만족함과, 전생 일 아는 생각으로 지난 세상[前際]이 청정함을 아는 밝고 만족함과, 생사가 없어진 신통한 지혜로 중생의 번뇌를 끊는 밝고 만족함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모든 불법에서
위없는 큰 광명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을 구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곧은 마음으로 법을 구함이니, 속이는 일이 없는 연고며, 정진하여 법을 구함이니, 게으름을 여읜 연고며, 한결같이 법을 구함이니, 신명을 아끼지 않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번뇌를 제하기 위하여 법을 구함이니, 명예와 이끗과 공경함을 위하지 않는 연고며, 나와 남의 모든 중생을 이익하기 위하여 법을 구함이니, 자기의 이익만이 아닌 연고며, 지혜에 들어가려고 법을 구함이니, 문자를 좋아하지 않는 연고며, 죽살이에서 벗어나기[出] 위하여 법을 구함이니, 세간의 낙을 탐하지 않는 연고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법을 구함이니, 보리심을 내는 연고며, 모든 중생의 의심을 끊으려고 법을 구함이니, 망설임이 없게 하려는 연고며, 불법을 만족하려고 법을 구함이니, 다른 승(乘)을 좋아하지 않는 연고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다른 이의 가르침을 의지하지 않고 모든 불법의 큰 지혜를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밝게 아는 법[明了法]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세속을 따라서 선근을 생장함이니, 아이같은 범부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걸림없고 깨뜨릴 수 없는 신심을 얻어 법의 성품을 깨달음이니, 신심을 따라 행하는 사람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부지런히 법을 닦고 법을 따라 머묾이니, 법을 따라 행하는 사람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여덟 가지 삿됨[八邪向]을 여의고 팔정도(八正道)를 향함이니, 제8지[第八] 사람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여러 결박을 없애고 생사의 번뇌를 끊고 참된 이치를 보는 것이니, 수다원(須陀洹)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맛[味]이 바로 걱정임을 보고 가고 옴이 없음을 아나니 사다함(斯陀含)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삼계를 좋아하지 않고 생사가 다함을 구하여 태어나는 일에는 잠깐도 애착하지 않나니, 아나함(呵羅漢)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육신통을 얻고 팔 해탈을 얻어 구차제정과 네 가지 변재를 다 성취하나니, 아라한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한결같은 연기하는 법을 관찰하기를 좋아하여 마음이 항상 고요하고 만족함을 알아 일이 없으며, 아는 것을 스스로 얻었고 다른 이를 말미암지 않았으며, 가지가지 신통과 지혜를 성취하나니, 벽지불(辟支佛)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지혜가 광대하고 근성이 총명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를 좋아하며 복덕과 지혜의 도를 돕는 법을 닦아서 여래의 십력(十力)과
두려움 없음[無畏]과 모든 공덕을 원만히 구족하니, 보살들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로 밝게 아는 법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수행법(修行法)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선지식들을 공경하고 존중하는 수행법과, 항상 여러 하늘의 각오(覺悟)하는 바가 되는 수행법과, 부처님 처소에서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는 수행법과, 중생을 딱하게 여기어 생사를 버리지 않는 수행법과, 일은 반드시 끝까지 이르고 마음에 변동이 없는 수행법과, 대승 마음을 낸 보살 대중을 전심으로 따라다니며 부지런히 배우는 수행법과, 삿된 소견을 멀리 여의고 바른 도를 부지런히 구하는 수행법과, 여러 마와 번뇌의 업을 꺾어 버리는 수행법과, 중생들의 근성이 낫고 못함을 알고 법을 말하여 부처의 지위에 머물게 하는 수행법과, 그지없이 광대한 법계에 머물러 번뇌를 멸하고 몸이 청정케 하는 수행법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수행법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마(魔)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오온의 마니 여러 가지 집착을 내는 연고며, 번뇌의 마니 항상 물드는 연고며, 업의 마니 능히 가리는 연고며, 마음의 마니 고만(高慢)을 일으키는 연고며, 죽음의 마니 난 곳을 버리는 연고며, 하늘의 마니 교만하고 방종하는 연고며, 선근의 마니 항상 집착하는 연고며, 삼매의 마니 오래 맛들이는 연고며, 선지식의 마니 집착하는 마음을 내는 연고며, 보리법을 아는 지혜의 마니 버리려 하지 않는 연고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보살마하살이 방편을 내어 빨리 여의기를 구해야 합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마의 업[魔業]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리심을 잊고 선근을 닦음이 마의 업입니다. 나쁜 마음으로 보시하고 성난 마음으로 계율을 지니며, 나쁜 성품 가진 사람을 버리고 게으른 이를 멀리하며, 산란한 뜻을 업신여기고 나쁜 지혜 있는 이를 싫어함이 마의 업입니다. 깊은 법에 대하여 인색한 마음을 내고 교화 받을 사람에게 법을 말하지 않으며, 만일 이끗으로 공경하고 공양하면 법 그릇이 아니라도 구태여 법을 말함이 마의 업입니다.

모든 바라밀을 들으려 하지 않고, 듣더라도 수행하지 않으며, 비록 수행하더라도 게으른 생각을 내고 게으름으로 뜻이 용렬하여 위없는 큰 보리의 법을 구하지 아니함이 마의 업입니다. 선지식은 멀리하고 나쁜 동무를 가까이하며, 이승(二乘)을 좋아하여 태어나기를 즐기지 않고 열반을 숭상하여 욕심을 여의고 고요하려 함이 마의 업입니다. 보살들에게 성내는 마음을 내어 사나운 눈으로 흘겨보고 허물을 찾아내어 잘못을 말하며, 그들에게 재물로 공양함을 끊으려 함이 마의 업입니다. 바른 법을 비방하여 듣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비록 듣더라도 문득 훼방하며, 법을 말하는 사람을 보고 존중한 마음을 내지 않으며, 제 말이 옳고 다른 말은 그르다 함이 마의 업입니다.
세상의 언론을 배워 글짓기를 좋아하며, 이승을 선전하고 깊은 법은 덮어 두며, 혹은 미묘한 이치를 자격이 없는 이에게 일러주며, 보리를 멀리 떠나고 삿된 길에 머무름이 마의 업입니다. 해탈을 얻어 이미 편안하게 된 이를 항상 가까이하고, 해탈을 얻지 못하여 편안하지 못한 이는 가까이하지도 않고 교화하지도 아니함이 마의 업입니다. 교만이 늘어서 공경하는 마음이 없고, 중생들을 시끄럽게 하며, 바른 법과 진실한 지혜를 구하지 않고 마음이 악하여 깨우치기 어려운 것이 마의 업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멀리 여의고 부처의 업을 부지런히 구해야 합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마의 업을 버림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선지식을 가까이 모시고 공경하고 공양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스스로 높은 체하지 않고 스스로 칭찬하지 않음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부처님의 깊은 법을 믿고 비방하지 않음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온갖 지혜의 마음을 잠깐도 잊지 아니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묘한 행을 부지런히 닦고 방일하지 아니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모든 보살장[藏]의 법을 항상 구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항상 법을 연설하여도 고달프지 아니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여 구호하려는 생각을 일으킴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모든 부처님이 신통한 힘으로 가지(加持)하심을 믿고 생각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모든 보살들과 선근을 함께 심어
평등하고 둘이 없음이 마의 업을 버림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능히 모든 마의 길에서 뛰어나게 됩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부처를 봄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세간에 머물러서 바른 깨달음을 이룬 부처는 집착이 없음을 보며, 서원의 부처는 태어나심을 보며, 업보의 부처는 깊이 믿음을 보며, 머물러 유지하는[住持] 부처는 수순(隨順)함을 보며, 열반하는 부처는 깊이 들어감을 보며, 법계의 부처는 두루 이르심을 보며, 마음 부처는 편히 머무심을 보며, 삼매의 부처는 한량없고 의지 없음을 보며, 본 성품의 부처는 분명히 아심을 보며, 즐김을 따르는 부처는 널리 받으심을 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항상 위없는 여래를 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부처의 업[佛業]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때를 따라 인도함이 부처의 업이니, 바른 수행을 하게 하는 연고며, 꿈 속에서 보게 함이 부처의 업이니, 지난 세상의 선근을 깨닫는 연고며, 다른 이에게 듣지 못하던 경을 연설함이 부처의 업이니, 지혜가 생겨 의심을 끊게 하는 연고며, 뉘우침에 얽힌 이에게 벗어나는 법을 말함이 부처의 업이니, 의심을 여의게 하는 연고며, 어떤 중생이 아끼는 마음과 내지 나쁜 꾀의 마음ㆍ이승의 마음ㆍ해하려는 마음ㆍ의혹하는 마음ㆍ흔들리는 마음ㆍ교만한 마음을 일으키거든, 여래의 여러 가지 상호(相好)로 장엄한 몸을 나타냄이 부처의 업이니, 과거의 선근을 자라게 하는 연고입니다.
바른 법을 만나기 어려울 때에 법을 자세히 말하여 그들이 듣고는 다라니의 지혜와 신통한 지혜를 얻게 하여 한량없는 중생을 두루 이익케 함이 부처의 업이니, 훌륭한 지혜가 청정한 연고입니다. 마의 장난이 일어나거든 방편으로 허공계 따위의 소리를 내며 남을 해롭게 하지 않는 법을 말하여 다스려서 깨닫게 하면 모든 마가 듣고는 위엄과 빛이 소멸함이 부처의 업이니, 훌륭한 것을 좋아하여 위덕이 커지는 연고입니다. 마음에 간단함이 없이 항상 수호하여 이승의 바른 지위에 들어가지 않게 하며, 중생의 근성이 성숙하지 못하였거든 끝까지 해탈하는 경계를 말하지 않음이 부처의 업이니, 본래의 서원으로 짓는 연고입니다.
생사의 결박된 번뇌를 모두 여의고 보살의 행을 닦아 계속하여[相續] 끊어지지 않게 하며, 크게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을 거두어서 행을 일으키고 필경에 해탈케 함이 부처의 업이니, 보살의 행을 닦아 끊지 않는 연고입니다.
보살마하살이 자신과 중생들이 본래 고요함을 알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복과 지혜를 부지런히 닦아 만족함이 없으며, 모든 법이 지음이 없음을 알지만 여러 법의 제 모양을 버리지 않으며, 모든 경계에 탐욕을 여의었지만 부처의 육신[色身]을 뵈옵기 좋아하며, 다른 이의 깨우침을 말미암지 않고 법에 들어감을 알지만 갖가지 방편으로 온갖 지혜를 구하며, 모든 국토가 다 허공과 같음을 알지만 항상 모든 부처님 세계를 장엄하기를 좋아하며, 사람도 없고 나도 없음을 관찰하지만 중생을 교화하여 고달픔을 모르며, 법계는 본래부터 동하지 않지만 신통과 지혜의 힘으로 여러 가지 변화를 나타내며, 온갖 지혜의 지혜를 성취하였지만 보살의 행 닦기를 쉬지 아니하며, 모든 법이 말로 할 수 없음을 알지만 청정한 법륜을 굴리어 여럿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부처님들의 신통한 힘을 나타내지만 보살의 몸을 싫어하지 아니하며, 큰 열반에 들어감을 나투지만 여러 곳에서 태어나나니, 이렇게 방편과 실상을 함께 행하는 법을 짓는 것이 부처의 업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남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는 위가 없고 스승이 없는 광대한 업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교만한 업[慢業]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스님이나 부모나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바른 도에 머무르고 바른 도에 향하는 이들의 존중한 복밭[福田]에 공경하지 아니함이 교만한 업입니다. 어떤 법사가 가장 좋은 법을 얻었고, 대승을 의지하여 벗어나는 중요한 길을 알며, 다라니를 얻고 광대한 경전의 법을 연설하여 쉬지 아니하거든, 그에게 교만한 마음을 내거나 그 말하는 법을 공경하지 아니함이 교만한 업입니다. 대중이 모인 곳에서 묘한 법을 듣고도 찬탄하지 아니하여 다른 이들로 하여금 믿게 하지 않음이 교만한 업입니다.
보다 난 체하는 교만을 내어 자기가 높다 하여 남을 업신여기며, 제 허물을 보지 않고 자기의 잘못을 알지 못함이 교만한 업입니다. 더 보다 난 체하는 교만을 내어 도덕이 있는 이를 보고도
찬탄해야 할 것을 찬탄하지 않으며, 다른 이가 찬탄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음이 교만한 업입니다. 어떤 법사가 사람들에게 법을 말함을 보고 그것이 옳은 법이고 옳은 계율이며, 진실하고 부처님 말씀인 줄을 알면서도 그 사람을 미워하고 법까지 미워하여 스스로 비방하고, 다른 이도 비방케 함이 교만한 업입니다. 스스로 높은 자리를 구하여 법사라 하면서 공양을 받아야 하고 손수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하며, 오랫동안 수행한 큰 스님을 보고도 일어나서 영접하지도 않고 받들어 섬기지도 아니함이 교만한 업입니다. 유덕(有德)한 이를 보고는 얼굴을 찌푸리고 좋아하지 않으며, 말이 거칠고 그의 허물만 찾는 것이 교만한 업입니다.
총명하고 지혜 있고 법을 아는 사람을 보고도 친근하여 공경하고 공양하려 하지 않으며,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이며, 어떤 것은 할 것이고 어떤 것은 아니할 것이며, 무슨 업을 지으면 긴긴 밤에 가지가지 이익과 안락을 얻는가를 묻지 아니하고 우치하고 패려하고 교만한 연고로 마침내 벗어날 중요한 길을 보지 못함이 교만한 업입니다. 어떤 중생은 교만에 가리워져서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도 친근하여 공경하고 공양하지 못하며 새로 선한 일은 생기지 못하고 예전 선한 일은 소멸하며, 말하지 않을 것을 말하고 다투지 않을 것을 다투며, 오는 세상에는 반드시 험난한 구렁에 빠져서 백천 겁 동안에 부처님을 만나지도 못하거늘, 어떻게 법을 들을 수 있으리요. 다만 일찍이 보리심을 내었으므로 필경에는 스스로 깨달음이 교만한 업이니, 이것이 열입니다.
만일 보살들이 이 교만한 업을 여의면 열 가지 지혜의 업[智業]을 얻으리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업과 과보를 믿어 알아서 인(因)과 과(果)를 무너뜨리지 않음이 지혜의 업입니다. 보리심을 버리지 않고 부처님을 항상 생각함이 지혜의 업입니다. 선지식을 친근하여 공경하고 공양하며 마음으로 존중하게 여기어 게으르지 아니함이 지혜의 업입니다. 법을 좋아하고 이치를 좋아하여 만족함이 없으며 삿된 생각을 멀리 여의고 바른 생각을 부지런히 닦음이 지혜의 업입니다. 일체 중생에게 교만함을 여의고 보살들에게 여래라는 생각을 내며 바른 법을 사랑하기를 내 몸을 아끼듯 하고 여래를 받들기 내 목숨을 보호하듯 하며 수행하는 이에게 부처님이란 생각을 내는 것이 지혜의 업입니다. 몸과 말과 뜻의 업에 착하지 못함이 없고, 성현들을 찬탄하고 보리를 순종함이 지혜의 업입니다.
연기를 파괴하지 않고 삿된 소견을 여의며 어둠을 깨뜨리고
밝음을 얻어 모든 법을 비춤이 지혜의 업입니다. 열 가지 회향을 따라 수행하며 바라밀에는 어머니란 생각을 내고 교묘한 방편에는 아버지란 생각을 내어 깊고 깨끗한 마음으로 보리의 집에 들어감이 지혜의 업입니다. 보시ㆍ계율ㆍ많이 듣는 것ㆍ집중하고 관하고[止觀] 복과 지혜의 온갖 도를 돕는 법을 부지런히 모아 게으르지 아니함이 지혜의 업입니다. 한 가지 업이라도 부처님이 찬탄하고 모든 마와 번뇌와 투쟁을 깨뜨리며, 모든 장애와 덮음과 결박과 얽힘을 여의며,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조복하며 지혜를 따라서 바른 법을 거두어 가지며, 부처님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며 신통과 밝음을 발기하여 부지런히 닦고 물러가지 않음이 지혜의 업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온갖 교묘한 방편과 위없는 큰 지혜의 업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마에 붙들림[魔所攝持]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게으른 마음의 마에 붙들리고, 뜻이 옹졸하고 못난 마에 붙들리고, 조금 행하고 만족하다는 마에 붙들리고, 하나를 받아들이고 다른 것은 아니라 하는 마에 붙들리고, 큰 서원을 내지 못하는 마에 붙들리고, 고요함을 좋아하여 번뇌를 끊는 마에 붙들리고, 죽살이를 아주 끊는 마에 붙들리고, 보살의 행을 버리는 마에 붙들리고, 중생을 교화하지 않는 마에 붙들리고, 바른 법을 비방하는 마에 붙들리나니, 이것이 열입니다.
만일 보살들이 이 마에 붙들림을 버리면 열 가지 부처님의 붙들어 주심을 얻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처음에 보리심을 내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나고 나는 가운데 보리심을 지니고 잊지 않게 되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마의 일을 깨달아 멀리 여의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바라밀을 듣고 말한 대로 수행하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생사의 고통을 알고 싫어하지 않으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깊고 깊은 법을 관찰하여 한량없는 과보를 얻으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중생들에게 이승의 법을 말하면서도 그 법으로 해탈함을 증하지 않으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함이 없는 법[無爲法]을 관찰하여 그 가운데 머물지 않으며, 함이 있고[有爲] 함이 없는[無爲] 데
둘이란 생각을 내지 않으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남이 없는 처지[無生處]에 이르고도 일부러 태어나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온갖 지혜를 증득하고도 보살의 행을 일으키어 보살의 종자를 끊지 않으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부처님의 위없는 붙들어 주는 힘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에 붙들림[法所攝持]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행이 무상함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모든 행이 괴로움임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모든 행이 나가 없음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모든 법이 고요하여 열반인 줄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모든 법이 인연으로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음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옳지 못하게 생각하므로 무명이 일어나고 무명(無明)이 일어나므로 내지 늙고 죽음이 생기며, 옳지 못하게 생각함이 멸하므로 무명이 멸하고 무명이 멸하므로 내지 늙고 죽음이 멸함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삼해탈문(三解脫門)으로 성문법[聲聞乘]이 생기고 다툼이 없는 법을 증하여 독각법[獨覺乘]이 생김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육바라밀(六波羅蜜)과 사섭법(四攝法)으로 대승이 나는 줄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모든 세계ㆍ모든 법ㆍ모든 중생ㆍ모든 세상이 부처 지혜의 경계임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모든 생각을 끊고 모든 집착을 버리고 앞뒤 짬[際]을 여의어 열반을 따름을 알면 법에 붙들립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법에 붙들림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도솔천(兜率天)에 머무는 데 열 가지 짓는 업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욕심 세계[欲界]의 천자들을 위하여 싫어하여 여읠 법을 말하되 모든 자유자재함이 다 무상하고 모든 쾌락은 마침내 쇠퇴한다 하여, 저 천자들을 권하여 보리심을 내게 하나니, 이것이 첫째 짓는 업입니다.
형상 세계[色界]의 천인들을 위하여 여러 선정과 해탈과 삼매에 드나듦을 말하되, 만일 거기에 애착을 내거나, 애착을 인하여 다시 몸이란 소견[身見]ㆍ삿된 소견ㆍ무명들을 내거든 그들에게 실다운 지혜를 말하고, 만일 모든 빛[色]과 빛 아닌 법에 뒤바뀐 생각을 일으켜
청정하나 한편 그들에게 부정하고 무상(無常)한 것이라 말하며, 그들을 권하여 보리심을 내게 하나니, 이것이 둘째 짓는 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머물러 삼매에 드나니 이름이 광명장엄(光明莊嚴)이며 몸에서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두루 비추고 중생의 마음을 따라 가지가지 음성으로 법을 말하거든 중생들이 듣고는 신심이 청정하며, 목숨을 마치고 도솔천에 태어나면 그들을 권하여 보리심을 내게 하나니 이것이 셋째 짓는 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있어서는 걸림없는 눈으로 시방의 도솔천에 있는 모든 보살을 보고, 저 보살들도 여기를 보며, 서로 보고는 미묘한 법을 토론하나니, 이른바 도솔천에서 내려오고 어머니 태에 들고 탄생하고 출가하고 도량에 나아가 큰 장엄을 갖추며, 그리고 옛적부터 행하던 일을 나타내며, 그 행을 말미암아 이 큰 지혜와 가진 공덕을 이루었거든, 본 고장[本處]을 떠나지 않고 이런 일을 능히 나타내나니, 이것이 넷째 짓는 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머물면 시방의 모든 도솔천궁에 있는 보살들이 다 모여 와서 공경하며 둘러앉습니다. 그때에 보살마하살이 저 보살들의 소원을 만족하며 환희심을 내게 하려고 그 보살들의 머무른 곳에서 행할 것과 끊을 것과 닦을 것과 증득할 것을 따라서 법문을 말합니다. 저 보살들이 법을 듣고는 매우 환희하여 처음 보는 일을 얻고 제각기 본국에 살던 궁전으로 돌아가나니, 이것이 다섯째 짓는 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머물 적에 욕심 세계의 주인인 천마(天魔) 파순(波旬)이 보살의 업을 파괴하려고 권속에게 둘러싸여 보살의 처소에 이르거든, 그때 보살은 마의 군대[魔軍]를 꺾으려고 금강도(金剛道)에 소속한 반야바라밀의 방편과 교묘한 지혜의 문에 머물러 있으면서 부드럽고 거친 두 가지 말로써 법을 말하여, 마왕 파순으로 하여금 짬을 얻지 못하게 합니다. 마(魔)는 보살의 마음대로 하는 위력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나니, 이것이 여섯째 짓는
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 궁전에 있으면서 욕심 세계의 천자들이 법문 듣기를 좋아하지 않음을 알고는, 그때 보살이 큰 소리를 내어 말하기를 ‘오늘 보살이 궁중에서 희유한 일을 나타내리니, 보려고 하는 이는 빨리 모이라’ 합니다. 이때 천자들이 이 말을 듣고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那由他) 대중이 모두 와서 모이니 그때 보살은 하늘 무리가 모인 것을 보고 궁중에서 희유한 일을 나타내었습니다.
그 천자들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는 매우 환희하여 마음이 매우 취하였는데, 또 음악 속에서 소리 있어 말하되 ‘여러분이여, 모든 행은 무상한 것이고, 모든 행은 괴로운 것이고, 모든 법은 나가 없고 열반은 고요한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그대들은 다 보살의 행을 닦으면 마땅히 온갖 지혜의 지혜를 원만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저 모든 천자들이 이 법문을 듣고 걱정하고 찬탄하면서 싫은 생각을 내고 모두들 보리심을 내나니, 이것이 일곱째 짓는 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궁에 있으면서 본래 있는 곳을 떠나지 않고도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들이 계신 데 나아가 여러 여래를 뵈옵고 친근하여 예배하고 공손히 법을 듣거든, 그때 부처님들이 보살로 하여금 가장 높은 정수리에 물 붓는 법[最上灌頂法]을 얻게 하려고 보살의 지위[菩薩地]를 말하니, 이름이 일체 신통입니다. 한 생각과 서로 응하는 지혜로 모든 것에 가장 나은 공덕을 구족하고 온갖 지혜의 지혜인 자리에 들어가게 하나니, 이것이 여덟째 짓는 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궁에 있으면서 모든 여래에게 공양하기 위하여 큰 신통의 힘으로 가지가지 공양거리를 일으키니, 이름이 수승가락(殊勝可樂)입니다. 온 법계 허공계의 모든 세계에서 부처님께 공양하거든, 그 세계에 있는 한량없는 중생들이 이렇게 공양함을 보고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나니, 이것이 아홉째 짓는 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있으면서 한량없고 그지없는 눈어리 같고 그림자 같은 법문을 내어 시방의 모든 세계에 두루 퍼져서, 갖가지 빛ㆍ갖가지 모양ㆍ
갖가지 형체ㆍ갖가지 위의(威儀)ㆍ갖가지 사업ㆍ갖가지 방편ㆍ갖가지 비유ㆍ갖가지 말을 나타내되 중생의 마음을 따라 환희케 하나니, 이것이 열째 짓는 업입니다.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머물면서 열 가지 짓는 업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을 성취하면 나중에 인간에 태어납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태어날 때에 열 가지 일을 나타내나니 무엇이 열인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태어날 때에 발바닥으로써 큰 광명을 놓나니, 이름이 안락장엄(安樂莊嚴)이며,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나쁜 곳[惡趣]에 두루 비추거든 여러 나쁜 곳 중생들이 이 광명에 부딪히면 모두 괴로움을 여의고 안락을 얻습니다. 안락을 얻고는 장차 신기한 어른이 세상에 나실 줄을 아나니, 이것이 첫째로 나타내는 일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태어날 때에 미간의 흰 털[白亳]로써 큰 광명을 놓나니, 이름이 밝게 깨우침[日覺悟]이며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비추어 지난 세상[宿世]에서 함께 수행하던 여러 보살의 몸에 비춥니다. 저 보살들이 광명의 비춤을 받고는 보살이 장차 내려와 나실 줄을 알고 각각 한량없는 공양거리를 일으켜 보살이 있는 데 나아가 공양하나니, 이것이 둘째로 나타내는 일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태어나려 할 적에 바른 손바닥으로써 큰 광명을 놓나니, 이름이 청정한 경계[淸淨境界]이며, 모든 삼천대천세계를 모두 깨끗이 장엄합니다. 그 가운데 이미 무루(無漏)를 얻은 벽지불(辟支佛)로서 이 광명을 깨달은 이는 곧 목숨을 버리고, 만일 깨닫지 못한 이는 광명의 힘으로 타방의 다른 세계로 옮기며, 모두 마와 외도와 소견 가진 중생도 타방세계에 옮겨 두거니와, 부처님의 신력으로 가지하는 교화받을 중생은 제하나니, 이것이 셋째로 나타내는 일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태어나려 할 때에 두 무릎으로써 큰 광명을 놓나니, 이름이
청정한 장엄[淸淨莊嚴]이며 모든 하늘의 궁전들을 두루 비추며 아래로는 사천왕천과 위로 정거천(淨居天)에 이르기까지 두루 퍼지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저 하늘들은 모두 보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오실 줄을 알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슬피 탄식하며 걱정하면서 가지가지 화만(華鬘)ㆍ의복(衣服)ㆍ바르는 향[塗香]ㆍ가루향[末香]ㆍ번기[幡]ㆍ일산[蓋]ㆍ풍류[妓樂]를 가지고 보살에게 나아가 공경하고 공양하며, 따라 내려와서 열반에 이르나니, 이것이 넷째로 나타내는 일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태어나려 할 때에 만(卍)자인 금강으로 장엄한 심장(心藏) 가운데로 큰 광명을 놓나니, 이름이 이길 이 없는 당기[無能勝幢]입니다. 시방 모든 세계의 금강역사(金剛力士)에게 비출 때에 백억 금강역사들이 와서 모시고 따라다니면서 내려올 적부터 열반에까지 이르나니, 이것이 다섯째로 나타내는 일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태어나려 할 때에 몸에 있는 모든 털구멍으로 큰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중생을 분별함[分別衆生]이며, 모든 대천세계(大千世界)에 두루 비추면서 모든 보살의 몸에 닿고, 또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에게 닿거든 보살들은 생각하기를 ‘내가 여기 있으면서 여래께 공양하고 중생을 교화하리라’ 하나니, 이것이 여섯째로 나타내는 일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태어나려 할 때에 큰 마니보배광[摩尼寶藏] 궁전에서 큰 광명을 놓나니, 이름이 잘 머물러 관찰함[善住觀察]이며 이 보살이 태어날 왕궁에 비춥니다. 이 광명이 비추면 다른 보살들이 따라서 염부제(閻浮提)에 내려와서 그 집에나 마을에나 도시에 태어나나니, 중생들을 교화하려 함입니다. 이것이 일곱째로 나타내는 일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태어나려 할 때에 하늘 궁전과 큰 누각의 모든 장엄거리에서 큰 광명을 놓나니, 이름이 모든 궁전의 청정한 장엄[一切官殿淸淨莊嚴]이며 태어날 어머니의 배를 비춥니다. 광명이 비추면 보살의 어머니는 편안하고 쾌락하여 모든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하며, 어머니
복(腹)중에 자연히 광대한 누각이 있어 큰 마니보배로 장엄하나니, 보살의 몸을 편안히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덟째로 나타내는 일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태어나려 할 때에 두 발바닥으로 큰 광명을 놓나니, 이름이 잘 머무름[爲善住]이며, 만일 여러 천자나 범천들이 목숨이 마치려 할 적에 이 광명에 비추이면 다 오래 살면서 보살께 공양하며, 처음 내려올 때부터 열반할 때에 이르나니, 이것이 아홉째로 나타내는 일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태어나려 할 때에 잘 생긴 모습으로 큰 광명을 놓나니, 이름이 일안(日眼)장엄이며, 보살의 가지가지 업을 나타낼 적에 모두 천인들은 보살이 도솔천에 있음을 보기도 하고 태(胎)에 들어감을 보기도 하고 처음 탄생함을 보기도 하고 출가함을 보기도 하고 성도(成道)함을 보기도 하고 마를 항복 받음을 보기도 하고 법륜을 굴림을 보기도 하고 열반에 드심을 보기도 하나니, 이것이 열째로 나타내는 일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몸에서와 자리에서와 궁전에서와 누각에서 이렇게 백만 아승기 광명을 놓아 가지가지 보살의 업을 나타내며, 이 업을 나타내고는 모든 공덕의 법을 구족하나니, 그러므로 도솔천으로부터 인간에 내려옵니다.”
궤뇨(憒)1) : 앞글자는 고(古)와 대(對)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노(奴)와 교(教)의 반절이다.간택(揀擇) : 앞글자는 고(古)와 한(限)의 반절이다.
주반(儔伴) : 앞글자는 직(直)과 유(由)의 반절이다.
훤궤(諠憒) : 앞글자는 황(况)과 원(袁)의 반절이다.
허교(虛矯) : 뒷글자는 거(居)와 요(夭)의 반절이다.
추광(麁獷) : 뒷글자는 고(古)와 맹(猛)의 반절이다.
총민(聦敏) : 앞글자는 창(倉)과 홍(紅)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음이 민(閔)이다.
중화(中畫) : 뒷글자는 호(胡)와 괘(卦)의 반절이다.
홍예(虹霓) : 앞글자는 호(戶)와 공(公)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오(五)와 계(稽)의 반절이다.
창우(瘡疣) : 앞글자는 초(初)와 량(良)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월(月)과 구(求)의 반절이다.
반흔(瘢痕) : 앞글자는 음이 반(般)이고, 뒷글자는 호(戶)와 은(恩)의 반절이다.
유예(猶豫) : 뒷글자는 음이 예(譽)이다.
죄흔(罪釁) : 뒷글자는 허(許)와 관(觀)의 반절이다.
빈축(嚬蹙) : 앞글자는 배(背)와 진(眞)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자(子)와 육(六)의 반절이다.
완흔(頑很) : 앞글자는 오(五)와 환(還)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호(胡)와 간(懇)의 반절이다.
성오(醒悟) : 앞글자는 선(先)과 정(頂)의 반절이다.
사치(徙置) : 앞글자는 사(斯)와 씨(氏)의 반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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