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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1권
대반열반경 제31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11. 사자후보살품 ⑤
사자후보살이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경에서 말한 바와 같이, 비파사나(毗婆舍那)가 능히 번뇌를 깨뜨린다면 어찌하여 다시 사마타(奢摩他)를 닦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가 말한 비파사나가 번뇌를 깨뜨린다고 함은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지혜가 있을 때에는 번뇌가 없고, 번뇌가 있을 때에는 지혜가 없는데, 어떻게 비파사나가 번뇌를 깨뜨린다고 하겠는가? 선남자야, 마치 밝을 때에는 어둠이 없고, 어두울 때에는 밝음이 없는 것과 같다. 밝음이 능히 어둠을 깨뜨린다고 한다면 옳지 않다. 선남자야, 누구에게 지혜가 있고 누구에게 번뇌가 있어서 지혜가 번뇌를 깨뜨린다고 말하는가? 만일 없다면 깨뜨릴 것이 없다.
선남자야, 만일 지혜가 번뇌를 깨뜨린다고 하면, 이르렀기 때문에 깨뜨리는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깨뜨리는가? 만일 이르지 않고 깨뜨린다면 범부 중생도 능히 깨뜨릴 것이며, 이르렀기 때문에 깨뜨린다면, 첫 생각에 깨뜨릴 것이다. 만일 첫 생각에 깨뜨리지 못한다면, 뒷생각으로도 깨뜨리지 못할 것이다. 만일 처음 이르러서 문득 깨뜨린다면 이는 이르지 못한 것이거늘 어떻게 지혜가 깨뜨린다고 말하겠는가? 만일 이르거나 이르지 못하거나 능히 깨뜨린다고 한다면 의미가 그렇지 않다.
또 비파사나가 번뇌를 혼자서 깨뜨리는가, 동무가 있어서 깨뜨리는가? 혼자서 깨뜨린다면 무슨 까닭에 보살이 8정도(正道)를 닦겠는가? 만일 동무가 있어서 깨뜨린다면, 혼자서는 깨뜨리지 못할 것을 알아야 하며 만일 혼자서 깨뜨리지 못하면 동무들도 깨뜨리지 못할 것이다. 마치 한 소경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여러 동무 소경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비파사나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땅은 굳은 성품이고, 불은 뜨거운 성품이며, 물은 젖는 성품이고, 바람은 동하는 성품인데, 땅의 굳은 성품과 나아가 바람의 동하는 성품이 인연으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며 성품이 스스로 그런 것이다. 4대의 성품과 같이 번뇌도 그러하여 성품이 스스로 끊는 것이니, 만일 성품이 끊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지혜가 끊는다고 하겠는가? 이런 뜻으로 비파사나는 반드시 번뇌를 깨뜨리지 못한다.
선남자야, 마치 소금의 성질이 짜므로 다른 물건을 짜게 하고, 꿀의 성질이 달므로 다른 물건을 달게 하고, 물의 성질이 축축하므로 다른 물건을 젖게 하듯이, 지혜의 성품이 멸한 것이므로 다른 법을 멸한다 고 함은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법이 멸함이 없다면 어떻게 지혜가 억지로 멸하게 하겠는가? 만일 소금이 짜서 다른 물건을 짜게 하듯이, 지혜의 멸함도 그와 같아서 다른 법을 멸하게 한다면 그것도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지혜의 성품은 시시각각 멸해 가기 때문이다. 만일 시시각각 멸한다면 어떻게 다른 법을 멸한다고 말하겠는가? 이런 뜻으로 지혜의 성품이 번뇌를 깨뜨리지 못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모든 법이 두 가지 멸함이 있다. 첫째는 성품의 멸함이며, 둘째는 필경까지 멸함이다. 만일 성품이 멸한다면, 어찌하여 지혜가 능히 멸한다고 말하겠는가? 만일 지혜가 능히 번뇌를 멸함이 불이 물건을 태움과 같다고 하면,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불이 물건을 태움에는 남은 불똥이 있기 때문이니, 지혜도 그렇다면 남은 불똥이 있어야 하고, 도끼로 나무를 찍는 것에는 찍은 흔적을 볼 수 있으니
지혜도 그렇다면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지혜가 번뇌를 떠나게 한다면, 떠난 번뇌가 다른 곳에 나타날 것이니, 마치 외도들이 6대성에서 떠나서 구시나성에 나타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만일 번뇌가 다른 곳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지혜가
번뇌를 떠나게 하지 못하는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모든 법의 성품이 스스로 공하다면, 누가 나게 하며 누가 멸하게 하겠는가? 남[生]이 다르고 멸함이 달라서 짓는 이가 없다.
선남자야, 만일 선정을 닦으면 이러한 바른 지혜와 바른 소견을 얻는다. 이런 뜻으로 나의 경에 말하기를 ‘만일 비구가 선정을 닦으면 5음의 생멸하는 모양을 본다’고 하였다. 선남자야, 선정을 닦지 않고는 세간의 일도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출세간의 일이겠는가?
만일 선정의 힘이 없으면 평지에서 엎어지며, 마음으로 다른 법을 반연하고 입으로 다른 말을 이야기하고 귀로 다른 소리를 듣고 마음으로 다른 이치를 이해할 것이며, 다른 글자를 만들려고 하고 손으로 다른 글을 쓰며, 다른 길로 다니려고 몸이 딴 갈래에 간다. 만일 삼매의 선정을 닦는 이는 크게 이익하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두 가지 법을 구족하면 크게 이익 될 것이다. 첫째는 선정이며 둘째는 지혜이다. 선남자야, 왕골[菅草]을 벨 때에 급히 서두르면 끊어지는 것과 같으니,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는 일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굳게 박힌 나무를 뽑을 때에 먼저 손으로 흔들면 뒤에 뽑기가 쉽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아서 먼저 선정으로 흔들고 나중에 지혜로 뽑아야 한다.
선남자야, 때 묻은 옷을 빨 때에 먼저 잿물에 담그고 뒤에 맑은 물로 씻으면 옷이 깨끗해지는 것처럼,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먼저 게송을 읽은 후에야 뜻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이와 같다. 선남자야, 마치 용맹한 사람이 먼저 갑옷으로 몸을 단속한 뒤에 진중에 나아가면 대적을 파하게 되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마치 공교로운 장인이 도가니에 금을 담고 마음대로
저어서 녹이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밝은 거울로 얼굴을 비치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먼저 땅을 고르고 뒤에 씨를 심으며, 먼저 스승에게 배우고 뒤에 뜻을 생각하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다. 이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으면 크게 이익 되게 한다고 한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두 가지 법을 닦으면 5근을 조섭하여 모든 괴로움을 견딘다. 이른바 기갈과 차고 더움, 매 맞고 욕설함, 나쁜 짐승에게 물리는 일과 모기 따위에 물리는 일들이다. 항상 마음을 거두어들여 방일하지 못하게 하며, 이양을 위하여 법답지 못한 일을 행하지 않으며, 객진번뇌에 더럽히지 않고, 사특한 소견에 의혹되지 않으며, 모든 나쁜 관념[覺觀]을 멀리 여의어 오래지 않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것이니, 중생들을 성취시켜 이익 되게 하려는 까닭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으면 네 가지 뒤바뀐 폭풍도 흔들지 못하는 것이, 마치 수미산을 네 가지 바람으로도 동요하지 못하는 듯하다. 또한 삿된 외도들에게 동요되지 않음이, 마치 제석천왕의 짐대를 이전할 수 없는 듯하며, 여러 가지 요술로도 의혹하지 못하고 항상 미묘하고 제일가는 안락을 받으며, 여래의 깊고 비밀한 도리를 이해하여 낙을 받아도 기뻐하지 않고, 괴로움을 만나도 슬퍼하지 않으며, 천상 사람 세상 사람들이 공경하고 찬탄하며, 생사와 생사 아닌 것을 분명하게 보고 법계와 법의 성품을 잘 알며, 몸에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법이 있다. 이것을 이름하여 대반열반의 낙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선정의 모양은 공삼매(空三昧)라 하고, 지혜의 모양은
무원(無願)삼매라 하고, 버리는[捨] 모양은 무상(無相)삼매라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보살마하살이 선정의 때와 지혜의 때와 버리는 때를 잘 알고 때 아닌 것도 알면, 이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보리의 도를 행한다고 한다.”
사자후가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고 하십니까?”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쾌락을 받는다고 하여 교만을 내거나, 법을 연설한다고 하여 교만을 내거나, 정근하노라 하여 교만을 내거나, 이치를 알고 문답을 잘한다고 하여 교만을 내거나, 나쁜 동무를 가까이 하면서 교만을 내거나, 소중한 물건을 보시하면서 교만을 내거나, 세간의 선한 공덕을 짓노라 하여 교만을 내거나, 세상의 지위 높은 사람에게 공경을 받노라 하여 교만을 내게 되는데, 이때에는 지혜를 닦지 말고 선정을 닦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고 한다.
만일 보살이 부지런히 정진하면서도 이익 되는 열반의 낙을 얻지 못하거나, 얻지 못한 까닭에 후회하는 마음을 내거나, 근성이 둔하여서 5근을 조복하지 못하는 것은 모든 번뇌의 세력이 치성하기 때문이며, 계율이 이로울까 해로울까 의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는 선정을 닦지 말고 지혜를 닦아야 한다고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보살이 선정과 지혜의 두 가지가 평등하지 못할 때에는 사(捨)를 닦지 않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하며, 두 가지가 평등하면 닦아야 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보살이 선정과 지혜를 닦다가 번뇌가 일어나면 그럴 때에는 사를 닦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12부경을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고 사(捨)를 생각하여야 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사를 닦는다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보살이 이렇게 세 가지 법을 닦으면 이 인연으로 무상(無相)열반을 얻는다.”
사자후가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열 가지 모양이 없기 때문에 대열반을 이름하여 무상(無相)이라고 한다면, 또 무슨 인연으로 남이 없다[無生], 냄이 없다[無出], 지음이 없다[無作], 집이다[屋宅], 섬이다[洲], 귀의할 데다, 편안하다, 멸도(滅度)다, 열반이다, 고요하다[寂靜], 병고가 없다[無諸病苦], 있는 것이 없다[無所有]고 이름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선남자야, 인연이 없으므로 남이 없다 하고, 함이 없으므로 냄이 없다 하고, 짓는 일이 없으므로 지음이 없다 하고, 다섯 가지 소견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집이라 하고, 4폭류를 여의었으므로 섬이라 하고, 중생을 조복하므로 귀의할 데라 하고, 번뇌의 도적을 깨뜨렸으므로 편안하다 하고, 번뇌의 불이 꺼졌으므로 멸도라 하고, 각관(覺觀)을 여의었으므로 열반이라 하고, 시끄러운 것을 멀리하였으므로 고요하다 하고, 죽는 일을 아주 끊었으므로 병고가 없다 하고, 온갖 것이 없으므로 있는 것이 없다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런 관찰을 할 때에는 불성을 분명히 보게 된다.”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몇 가지 법을 성취하면 이러한 무상열반과 나아가 있는 것이 없음을 보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무상열반과 나아가 있는 것이 없음을 분명히 본다. 무엇이 열 가지 인가? 첫째는 믿는 마음이 구족한 것이니, 어떤 것을 이름하여 믿는 마음이 구족하다고 하는가? 부처님과 법과 승가는 항상하지만 시방의 부처님께서 방편으로써 모든 중생과 일천제들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보이신 줄을 믿고, 여래께서 나고 늙고 병나고 죽는 것과
고행을 하심과, 제바달다가 참으로 화합승을 파하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낸 것과, 여래가 필경에 열반에 들어서 바른 법이 없어진다는 일을 믿지 않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믿는 마음이 구족하다고 한다.
둘째는 깨끗한 계행이 구족한 것이니, 어떤 것을 이름하여 깨끗한 계행이 구족하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어떤 보살이 계행이 깨끗하다고 말하면서 여인과 어울리지 않더라도 여인을 볼 때에 조롱하고 어울리며 웃고 지껄이고 희롱하면, 이런 보살은 애욕을 이루어 깨끗한 계율을 파하며,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문란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깨끗한 계율이 구족하다고 이름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어떤 보살이 계행이 깨끗하다고 말하면서 여인과 더불어 어울리지 않으며 조롱하고 웃고 희롱하지 않더라도, 담 밖에서 나는 여인의 영락 가락지ㆍ팔찌 따위의 소리를 듣고 마음에 애착을 낸다면, 이런 보살은 애욕을 이루어 깨끗한 계행을 파하며,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문란하게 하는 것이므로 깨끗한 계행이 구족하다고 이를 수 없다.
또 어떤 보살이 계행이 깨끗하다고 말하면서, 여인과 더불어 어울리거나 조롱하고 지껄이고 모든 소리를 듣지 않더라도, 다른 남자가 여인을 따라가거나 여인이 남자를 따라가는 것을 보고는 문득 탐욕을 낸다면, 이런 보살은 애욕을 이루어 깨끗한 계율을 파하며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문란하게 하는 것이므로 깨끗한 계행이 구족하다고 이를 수 없다.
또 어떤 보살이 계행이 깨끗하다고 말하면서 여인과 더불어 어울리거나 지껄이고 모든 소리를 듣거나 남자와 여인이 서로 따라감을 보지 않더라도, 천상에 태어나서 5욕락을 받는다면, 이런 보살은 애욕을 이루어 깨끗한 계율을 파하며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문란케 하는 것이라, 깨끗한 계행이 구족하다고 이를 수 없다.
선남자야, 만일 보살이 청정하게
계율을 지니되, 계율을 위하지 않고 시바라밀을 위하지 않으며 중생을 위하지 않고, 이양을 위하지 않고, 보리를 위하지 않고, 열반을 위하지 않고, 성문과 벽지불을 위하지 않고, 오직 가장 훌륭한 제일의[最上第一義]를 위하여, 금하는 계율을 보호하여 가진다면 선남자야, 이것은 보살의 깨끗한 계율이 구족하다고 이른다.
셋째는 선지식을 친근히 하는 것이다. 선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과 계율과 많이 아는 것과 보시와 지혜를 말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받아 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선지식이라고 한다.
넷째는 고요함을 좋아하는 것이다. 고요하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고요하여 모든 법의 깊고 깊은 법계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 고요하다고 한다.
다섯째는 정진이다. 정진이라고 함은 마음을 두어 네 가지 바른 법[四正諦]을 관찰하되, 머리에 불이 붙더라도 놓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이름하여 정진이라고 한다.
여섯째는 생각함이 구족함[念具足]이다. 생각이 구족하다는 것은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고 사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 생각함이 구족하다고 한다.
일곱째는 부드러운 말[軟語]이다. 부드러운 말이라고 함은 진실한 말과 미묘한 말과 먼저 문안하는 말과 때맞추어 하는 말과 참된 말 등이다. 이런 것을 이름하여 부드러운 말이라고 한다.
여덟째는 법을 보호함[護法]이다. 법을 보호한다는 것은 바른 법을 사랑하여 항상 연설하기를 좋아하며, 읽고 외우고 쓰고 뜻을 생각하고, 널리 선전하여 멀리 퍼지게 하며, 만일 다른 이가 쓰고 해설하고 읽고 외우고 찬탄하고 뜻을 생각하는 것을 보면,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하여 공양하되 의복과 음식과 와구와 의약으로 이바지하며, 법을 보호하기 위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것을 일러 법을 보호한다고 한다.
아홉째는 보살마하살이 함께 배우고 함께 계를 받은 이가 부족한 것이 있는 것을 보면, 발우나 물든 옷이나 간병에 필요한 의복과 음식과 와구와 방 같은 것을 다른 데서 빌어서라도 공급하는 것이다.
열째는 지혜를 구족하는 것이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과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음을 관찰하며, 법의 두 가지 모양을 관찰하는 것이니, 이른바 공함과 공하지 않은 것, 항상함과 무상한 것, 즐거움과 즐겁지 않은 것, 내가 있고 내가 없는 것, 깨끗함과 부정한 것, 이법(異法)의 끊을 것과 끊지 못할 것, 이법의 인연으로 나는 것과 이법을 인연으로 보는 것, 이법의 인연으로 생긴 과보와 이법의 인연으로 생기지 않는 과보이다. 이런 것을 일러 지혜를 구족한다고 한다.
선남자야, 이것을 일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열반의 무상(無相)함을 분명하게 본다고 한다.”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먼저 순타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미 불성을 보았으니, 대열반을 얻을 것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세존이시여, 경에 말씀하시기를 ‘축생에게 보시하면 100배의 과보를 받고, 일천제에게 보시하면 천 배의 과보를 받고, 계행 가지는 이에게 보시하면 백천 배의 과보를 받고,
번뇌를 끊은 외도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과보를 받고, 4향(向)과 4과와 벽지불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과보를 받고, 불퇴(不退) 보살이나 최후신(最後身) 보살이나 여래 세존께 보시하면 받는 과보의 복덕이 한량없고 가없고 헤아릴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순타 대사(大士)가 이렇게 한량없는 과보를 받는다면 과보가 한량없는데 어느 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습니까?
세존이시여, 경에 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중대한 마음으로 좋은 업이나 나쁜 업을 지으면 반드시 과보를 받는데, 이 세상에서 받기도 하고 다음 세상에서 받기도 하고 뒷세상에서 받기도 한다’고 하셨습니다. 순타는 중대한 마음으로 선한 업을 지었으니 그 업으로 반드시 과보를 받을 것입니다. 만일 반드시 과보를 받으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며, 어떻게 불성을 보겠습니까?
세존이시여, 경에 또 말씀하시기를 ‘세 종류 사람에게 보시하면 과보가 그지없다. 첫째는 병을 앓는 사람이고 둘째는 부모이며 셋째는 여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또 경에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길 〈모든 중생에게 욕계의 업이 없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 색계와 무색계의 업도 그러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법구게에는 ‘허공도 아니며 바다 속도 아니며, 산 속도 바위 속도 아니며, 어느 곳에서도 벗어나서 업보를 받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또 아니루타는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제가 생각하니 지난 옛적에 밥 한 그릇을 보시하고 8만 겁 동안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밥 한 그릇을 보시한 과보도 그러한데, 하물며 순타가 신심으로 부처님께 보시하고 단바라밀을 구족하게 성취한 것이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선한 과보가 끝이 없다면 방등경을 비방하고 5역죄를 범하고 4중금을 깨뜨린 일천체의 죄보가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만일 끝이 없으면 어떻게 불성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야, 오직 두 종류의 사람만이 한량없고 가없는 공덕을 얻어서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능히 생사에 표류하는 큰 강물을 마르게 하고 마군과 원수를 항복받으며 마군이 이겼다는 짐대를 꺾고, 여래의 위없는 법의 수레를 운전할 것이니, 첫째는 묻기를 잘하는 것이며 둘째는 대답을 잘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부처님의 10력 중에 업의 힘이 가장 깊다고 하였는데, 선남자야, 어떤 중생들이 업의 인연에 대하여 업신여기고 믿지 않기에 그런 자를 제도하려고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선남자야, 온갖 업이 가벼운 것이 있고
무거운 것이 있으며, 가벼운 업과 무거운 업이 또 각각 둘이 있다. 첫째는 결정된 것이며, 둘째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악한 업이 과보가 없다. 만일 악한 업이 반드시 과보가 있다면, 어찌하여 기허전타라(氣噓旃陀羅)가 천상에 태어나고, 앙굴마라가 해탈의 과보를 얻었겠는가? 이런 이치로 보아 지은 업으로 과보를 얻기도 하고, 과보를 얻지 않기도 하는 줄을 알겠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런 잘못된 소견을 없애기 위하여 경에서 ‘모든 지은 업은 과보를 받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하였다.
선남자야, 혹은 무거운 업을 가볍게 받을 수도 있고, 혹은 가벼운 업을 무겁게 받을 수도 있는데 모든 사람이 다 그러한 것이 아니라, 오직 어리석고 지혜 있는 데에 달렸다. 그러므로 모든 업이 모두 결정한 과보를 얻는 것이 아니며, 비록 얻는 것이 아니나 얻지 않는 것도 아니다.
선남자야, 중생이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지혜 있는 사람이며, 둘째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지혜 있는 사람은 지혜의 힘으로써 지옥에서 받을 중대한 업을 이 세상에서 가볍게 받기도 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받을 가벼운 업을 지옥에서 무겁게 받기도 하는 것이다.”
사자후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면 청정한 범행도, 해탈의 과보도 구할 것이 아니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일 모든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는다면, 범행과 해탈을 구할 것이 없지만, 결정되지 않았기에 범행과 해탈의 과보를 닦는다. 선남자야, 만일 모든 악한 업을 멀리 여의면 선한 과보를 얻고, 선한 업을 멀리 여의면 악한 과보를 얻는다. 만일 모든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는다면 성인의 도를 닦아 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만일 도를 닦지 않으면 해탈이 없을 것이다.
모든 성인이 도를 닦는 것은 결정된 업을 깨뜨려 가벼운 과보를 얻으려는 것이니, 결정되지 않은 업은 과보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온갖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는다면 성인의 도를 닦아 구할 것이 없으며, 사람들이 성인의 도를 닦는 일을 여의고 해탈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고, 해탈을 얻지 않고 열반을 얻는다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
선남자야, 만일 온갖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는다면 한평생 동안 지은 선한 업으로는 마땅히 영원히 안락을 받을 것이며, 한평생 동안 지은 악한 업으로는 마땅히 영원히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 업의 과보가 만일 그렇다면 도를 닦음과 해탈과 열반이 없을 것이며, 사람이 지은 것은 사람이 받고 바라문이 지은 것은 바라문이 받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하천한 종성[下姓]과 하천한 존재가 없어서, 사람은 항상 사람이며 바라문은 항상 바라문일 것이다. 그리고 젊어서 지은 업은 마땅히 젊어서 받고, 중년(中年)에나 늙어서는 받지 않을 것이다. 늙어서 나쁜 업을 짓고 지옥에 태어나면 지옥의 초년[初身]에는 받지 않을 것이며 늙어서야 받을 것이며,
만일 늙어서 살생을 않는다면 마땅히 장년(壯年)에는 장수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장년에 장수하지 않고 어떻게 노년(老年)에 이를 수 있겠는가? 업이 없어지지 않은 까닭이며, 업이 만일 없어지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도를 닦는 일과 열반이 있겠는가?
선남자야, 업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결정된 것이고, 둘째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또 결정된 업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과보가 결정된[報定] 것이며, 둘째는 시기가 결정된[時定] 것이다. 혹 과보는 결정되었으나 시기가 결정되지 않은 것은 인연이 합하면 받으며, 혹은 세 때에 받는데 현생에 받는 것, 다음 생에 받는 것, 후생에 받는 것이다.
선남자야, 만일 결정한 마음으로 선한 업이나 악한 업을 짓고, 지은 뒤에 신심으로 기뻐하고 원을 세워 삼보에 공양하면, 이것을 결정한 업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사람은 선근이 견고하여 동요하기 어려우므로 무거운 업을 가볍게 하며,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이 두터우므로 가벼운 업으로 무거운 과보를 얻게 된다. 이런 뜻으로
모든 업이 결정되었다고 이르지 않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지옥에 갈 업이 없지만, 중생을 위하여 서원을 세우고 지옥에 난다. 선남자야, 지나간 옛적 중생의 수명이 100세이던 때에,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중생들이 지옥의 업보를 받았으므로, 내가 그것을 보고 큰 서원을 세우고 지옥의 몸을 받았다.
보살이 그때 그런 업이 없었지만 중생을 위하여 지옥의 과보를 받은 것이다. 내가 그때 지옥에서 한량없는 세월을 지내면서 죄인들을 위하여 12부경을 널리 분별하여 말하였더니, 여러 사람들이 경을 듣고 악한 과보를 깨뜨려서 지옥이 비게 되었는데, 일천체들은 제외하였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다고 한다.
또 선남자야, 이 현겁(賢劫) 중에 한량없는 중생들이 축생에 떨어져서 나쁜 과보를 받았으므로, 내가 그것을 보고 다시 큰 서원을 내고 법을 연설하여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혹은 노루ㆍ사슴ㆍ곰ㆍ원숭이ㆍ용ㆍ뱀ㆍ금시조(金翅鳥)ㆍ비둘기ㆍ물고기ㆍ자라ㆍ여우ㆍ토끼ㆍ소ㆍ말 따위의 몸을 받았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실로 이런 축생의 업보가 없었지만, 큰 원력으로 중생을 위하여 이런 몸을 받은 것이다. 이것을 일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이 현겁 중에 다시 한량없고 가없는 중생들이 아귀에 태어나서 국물ㆍ비계ㆍ고름ㆍ피ㆍ똥ㆍ오줌ㆍ콧물ㆍ침 따위를 먹었다 뱉었다 하면서, 수명이 한량없어 백천만 년을 지내도 장이나 물이라는 이름도 듣지 못하는데, 어찌 눈으로 보고 먹을 수 있을 것인가?
만일 멀리 있는 물을 보고 먹을 욕심으로 가서 보면, 불더미나 고름으로 변하기도 하고, 혹시 변하지 않을 때에는 여러 사람들이 창을 들고 붙잡고 가지
못하게 한다. 혹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몸에 닿으면 불이 되는데, 이것은 나쁜 업의 과보라고 한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이런 악업이 없지만 중생을 교화하여 해탈을 얻게 하려고 서원을 세우고 이런 몸을 받는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다고 한다.
선남자야, 내가 현겁 중에 백정의 집에 태어나서, 닭ㆍ돼지ㆍ소ㆍ양 따위를 기르기도 하고, 사냥하고 고기 잡는 일도 하였으며, 전타라의 집에서 도둑질도 하였으니 보살이 실제로는 이런 나쁜 업이 없었지만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려고 큰 원력으로 이런 몸을 받은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이 현겁 중에 또 변방에 태어나서, 흔히 욕심 많고 성 잘 내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며, 법답지 않은 일을 행하고 삼보와 후세의 과보를 믿지 않으며, 부모ㆍ천척ㆍ늙은이ㆍ장로를 공경하지 않았다. 선남자야, 보살이 실제로는 이런 업이 없었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큰 원력으로 그 가운데 난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이 현겁 동안에 여인의 몸ㆍ나쁜 몸ㆍ탐욕의 몸ㆍ성내는 몸ㆍ어리석은 몸ㆍ질투하는 몸ㆍ간탐하는 몸ㆍ어린 몸ㆍ속이는 몸ㆍ속박하는 몸을 받았다. 선남자야, 보살은 이런 업이 없지만 중생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큰 원력으로 그 가운데 나기를 원한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이런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내가 현겁 동안에 내시의 몸ㆍ근이 없는 몸ㆍ근이 둘인 몸ㆍ근이 일정하지 않은 몸을 받았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실제로
이런 나쁜 몸을 받을 업이 없었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큰 원력으로 그 가운데 나기를 원하였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이런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나는 또 현겁에서 외도 니건자의 법을 익히고 그 법을 믿었으므로, 보시도 없고 사당[祠]도 없고 보시와 사당의 과보도 없으며, 선한 업도 없고 악한 업도 없고 선한 업 악한 업의 과보도 없으며, 현재의 세상도 없고 미래의 세상도 없고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으며, 성인도 없고 변화하는 몸도 없고 도와 열반도 없었다.
선남자야, 보살이 실로 이런 나쁜 업이 없었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큰 원력으로 이런 삿된 법을 받은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이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내가 생각하니 지난 옛적에 제바달다와 함께 장사치의 우두머리가 되어 각각 500의 장사꾼이 있었다. 그런데 이익을 위하여 바다에 나아가 보배를 따다가, 나쁜 인연으로 폭풍을 만나서 배가 파선되고 동무들이 모두 죽었다. 그러나 나와 제바달다만은 살생하지 않은 과보로 장수할 팔자가 되어 바람에 불려서 함께 육지에 이르렀다. 그때 제바달다는 보물을 탐하는 마음으로 크게 고통하면서 소리를 높여 통곡하였다. 나는 제바달다에게 통곡하지 말라고 일렀더니,
제바달다는 이렇게 말했다. ‘내 말을 들어보시오. 어떤 가난뱅이가 하도 빈궁하고 곤고(困苦)하여 무덤들이 있는 데 가서 송장을 붙들고 말하기를, 〈그대가 나에게 죽음의 낙을 준다면, 나는 그대에게 가난한 목숨을 주겠다〉고 하였소. 그때 송장이 일어나 앉아서 가난뱅이에게 하는 말이 〈선남자야, 가난한 목숨은 그대나 가지시오. 나는 이
죽음의 낙이 매우 좋아서, 그대의 빈궁하게 사는 목숨이 반갑지 않다〉라고 하였소. 그런데 나는 지금 죽는 낙도 없고 겸하여 빈궁하기까지 하니, 어떻게 울지 않겠소?’
나는 다시 위로하기를 ‘그대는 너무 근심하지 말라. 나에게 지금 두 개의 보배 구슬이 있으니 값이 한량이 없다. 한 개를 그대에게 나누어 주리라’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한 개를 주고 말하기를 ‘생명이 있는 사람이니까 이런 보배를 가지는 것이지, 생명이 없으면 어떻게 가지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는 피곤하여 나무 아래 누워서 쉬면서 잠이 들었는데, 제바달다는 탐욕이 불같이 일어나 나머지 한 개의 보배 구슬을 마저 빼앗으려고 나쁜 마음으로 나의 눈을 찌르고 구슬을 빼앗았다. 나는 그때 눈이 아파서 앓는 소리를 내었더니, 어떤 여인이 나에게 와서 묻기를 ‘당신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가?’하고 물었다. 그에게 사실대로 말하였더니, 여인이 듣고는 또 묻기를 ‘당신의 이름은 누구요?’ 하기에
‘나의 이름은 참된 말을 하는 이[實語]요’ 하였다. 여인이 또 말하기를 ‘무엇으로 당신이 참된 말을 하는 것을 증명하겠는가?’ 하기에 나는 이렇게 맹세하였다. ‘내가 만일 제바달다에게 원통한 마음이 있으면 내 눈이 지금 모양으로 영원히 소경이 될 것이고, 원통한 마음이 없으면 눈이 도로 온전하게 될 것이오’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말을 마치기도 전에 눈이 예전과 같이 되었다.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세의 과보로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내가 지나간 옛적에 남천축 부단나(富單那)1)성의 바라문 집에 태어났었다. 그때 가라부(迦羅富)2)라는 임금이 있었는데, 성질이 포악하고 교만이 많으며 나이 젊었고 얼굴이 잘생겨 5욕락에 탐착하였다. 나는 그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그 성 밖에서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들었다. 그 임금이 때마침 봄놀이를 하느라고 권속과 채녀(婇女)들을 데리고 성에서 나와 구경을 다니다가 나무숲 아래서
욕락을 즐기고 있었다.
채녀들이 왕의 곁을 떠나서 구경 다니다가 나에게 왔으므로, 나는 그들의 탐욕을 끊기 위하여 법을 말하였다.
왕이 따라와서 나를 보고는 좋지 않은 마음으로 나에게 묻기를 ‘그대는 아라한과를 얻었는가?’ 하기에,
나는 ‘얻지 못하였다’고 대답하였다.
또 묻기를 ‘아나함과를 얻었는가?’ 하기에,
‘얻지 못하였다’고 대답하였다.
왕이 또 말하였다.
‘그대가 만일 두 가지 도과를 얻지 못하였으면 탐욕과 번뇌가 구족하였을 터인데, 어찌하여 방자하게 나의 채녀들을 보는가?’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나는 지금 탐욕의 결박을 끊지는 못하였으나, 마음에는 진실로 애착이 없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이구나. 세상에 있는 신선들이 기운을 삼키고 과실만을 먹으면서도 여색을 보면 탐심이 생긴다. 그대는 한창 나이가 젊었고 탐욕을 끊지 못하였는데, 어찌하여 여색을 보고 애착이 없겠는가?’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여색을 보고 애착하지 않음은 기운을 삼키고 과실을 먹는 데 달린 것이 아니며 무상하고 부정한 것으로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왕은 또 말했다.
‘남을 업신여기고 비방을 한다면 어떻게 청정한 계율을 지킨다고 말하겠는가?’
나는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만일 질투하는 마음이 있으면 비방도 하겠지만, 나는 질투하는 마음이 없는데 왜 비방한다고 말합니까?’
왕은 또 말했다.
‘대덕이여, 어떤 것을 계행이라고 하는가?’
‘대왕이여, 참는 것을 계행이라고 합니다.’
왕은 또 말하였다.
‘참는 것이 계행이라면, 내가 그대의 귀를 벨 것이니 만일 참으면 그대가 계행을 가지는 것을 믿겠다.’
그러면서 귀를 베었으나 나는 귀를 잘리면서도 얼굴빛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때 왕의 신하들은 이 광경을 보고 왕에게 간하기를 ‘이와 같은 대사(大士)를 해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왕은 신하들에게 ‘너희들은 이 사람이 대사인 것을 어떻게 아느냐?’라고 했다.
신하들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고통을 받으면서 얼굴빛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왕은 ‘내가 다시 시험하여 얼굴이 변하는지 않는지를 보겠다’라고 하면서, 코를 베고 손발을 끊었다.
그때 보살은 벌써부터 한량없고 그지없는 세상에서 자비를 닦았으므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가엾이 여겼다.
그때 사천왕은 분노한 마음을 품고 모래와 자갈 비를 내렸다.
왕은 그것을 보고 심하게 두려워 내 앞에 와서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아 말하였다.
‘바라건대 불쌍히 여기셔서 나의 참회를 허락하십시오.’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나의 마음에 성내지 않음 또한 애욕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대덕이여, 성내는 마음이 없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나는 곧 맹세하기를 ‘내가 참으로 성내는 마음이 없다면, 나의 몸이 예전과 같아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서원함에 따라서 몸이 예전과 같이 되었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세의 과보를 말한다고 한다.
선남자야, 선한 업으로 다음 생에 받는 과보와 후생에 받는 과보와 나쁜 업의 과보도 이와 같다.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는 모든 업이 현세에 과보를 얻게 된다. 나쁜 업으로 받는 현세의 과보는 왕이 나쁜 업을 지어서 하늘에서 나쁜 비를 내리는 것과 같고, 또 어떤 사람이 사냥꾼에게 곰이 있는 곳과 보배빛 사슴을 가리켜 주고 손이 떨어진 것과 같다. 이런 것을 이름하여 나쁜 업으로 현세에 받는 과보라고 하는 것이다.
다음 생에 받는 과보는 일천제가 4중금이나 5역죄를 범한 것과 같고, 그 이후의 생에 받는 과보는 마치 계행을 지니는 사람이 서원을 세우고 ‘미래의 세상에도 항상 이와 같은 깨끗한 계율을 지키는 몸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하였다가, 중생의 수명이 100년이나 80년 되는 때에 전륜성왕이 되어서 중생을 교화한 것과 같다.
선남자야, 만일 업이 반드시 현세의 과보를 얻는다면 다음 생의 과보나 그 이후 생의 과보는 얻지 못할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32대인상(大人相)의 업을 닦는다고 하여도 현세의 과보는 얻지 못하는 것이다. 업이 만일 세 가지의 과보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을 결정되지 않은 업보라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모든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는 것이라면 범행과 해탈과 열반을 닦는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며 마의 권속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일 말하기를 ‘모든 업은 결정된 것과 결정되지 않은 것이 있다. 결정된 것은 현세에 받는 것과 다음 생에 받는 것과 후생에 받는 것이며, 결정되지 않은 것은 인연이 합하면 받고 합하지 않으면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범행과 해탈과 열반을 닦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참으로 나의 제자이며 마의 권속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은 결정되지 않은 업이 많고 결정된 업은 적다. 그런 뜻으로 도를 닦는 일이 있고, 도를 닦으므로 결정된 중대한 업을 가볍게 받을 수 있으며, 결정되지 않은 업은 과보를 받지 않는다.
선남자야, 두 가지 사람이 있으니, 첫째는 결정되지 않은 과보를 결정된 과보로 만들며, 현생에 받을 과보를 다음 생에 받을 과보로 만들며, 가벼운 과보를 중한 과보로 만들어서 인간에서 받을 과보를 지옥에서 받는 것이다. 둘째는 결정된 과보를 결정되지 않은 과보로 만들며, 다음 생에 받을 것을 현생에 받게 하며, 중한 과보를 가볍게 만들어서 지옥에서 받을 것을 인간에서 가볍게 받는 것이다. 이러한 두 사람이 하나는 어리석고 하나는 지혜로우며, 지혜 있는 이는 가볍게 하고 어리석은 이는 무겁게 한다.
선남자야, 두 사람이 왕에게 죄를 지었을 때에 권속이 많은 이는 죄가 가벼워지고, 권속이 적은 이는 가벼운 죄도 무거워진다. 어리석고 지혜로운 사람도 그와 같아서 지혜로운 이는 선한 업이 많으므로 중한 업도 가볍게 받고, 어리석은 이는 선한 업이 적으므로 가벼운 업도 무겁게 받는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살이 쪄서 건장하고 한 사람은 여위었다. 함께 수렁에 빠졌을 때 건장한 이는 나올 수 있으나 여윈 이는 점점 빠지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두 사람이 함께 독약을 먹었을 때에 한 사람에게는 주문의 힘과 아가타(阿伽陀)약3)이 있고 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면, 주문과 약이 있는 이는 독약이 해치지 못하고 없는 이는 먹고 나서
곧 죽는다.
선남자야, 두 사람이 모두 즙[漿]을 많이 먹었을 때에, 한 사람은 화기가 성하고 한 사람은 화기가 미약하다면, 화기가 성한 이는 능히 소화하지만 화기가 미약한 이는 병이 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두 사람이 함께 임금의 옥에 갇혔을 때에 한 사람은 지혜가 있고 한 사람은 어리석다면, 지혜 있는 이는 놓여날 수 있지만 어리석은 자는 놓여날 기약이 없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두 사람이 함께 위험한 길을 갈 때에 한 사람은 눈이 잘 보이고 한 사람은 소경이라면, 눈이 잘 보이는 사람은 걱정 없이 잘 가지만 소경은 구렁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두 사람이 함께 술을 먹을 때에 한 사람은 양이 크고 한 사람은 양이 적다면, 양이 큰 사람은 먹어도 근심이 없지만 양이 적은 사람은 먹는 대로 걱정이 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두 사람이 함께 원수와 싸울 때에 한 사람은 갑주로 몸을 무장하고 한 사람은 맨몸이라면, 갑주로 무장한 이는 원수를 파하지만, 맨몸인 이는 면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또 두 사람이 함께 더러운 것이 옷에 묻었을 때에, 한 사람은 알고 곧 빨았으나 한 사람은 알고도 빨지 않는다면, 빤 사람은 옷이 깨끗하지만 빨지 않은 사람은 옷이 점점 더러워지는 것과 같다.
또 두 사람이 모두 수레를 탔을 때에, 하나는 바퀴가 있고 하나는 바퀴가 없다면, 바퀴가 있는 것은 마음대로 가지만, 바퀴가 없는 것은 한 발자국도 가지 못한다.
또 두 사람이 모두 먼 길을 떠날 때에 한 사람은 양식이 있고 한 사람은 그냥 간다면 양식이 있는 이는 무사하게 지나갈 수 있지만, 그냥 가는 이는 지나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또 두 사람이 함께 도적에게 겁탈을 당하였을 때에, 한 사람은 보배 광이 있고 한 사람은 광이 없다면, 보배 광이 있는 이는 근심이 없지만 광이 없는 이는 근심이 되는 것과 같다. 어리석은 이와 지혜 있는 이도 그와 같아서, 선한 광이 있는 이는
무거운 업도 가볍게 받고 선한 광이 없는 이는 가벼운 업도 무겁게 받는다.”
사자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모든 업이 모두 결정된 과보를 얻는 것도 아니며, 모든 중생이 반드시 받는 것도 아니라면 세존이시여, 어떻게 중생이 현세에서 받을 가벼운 업보를 지옥에서 무겁게 받으며, 지옥의 무거운 업보를 현세에 가볍게 받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온갖 중생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혜 있는 이며, 둘째는 어리석은 자이다. 만일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으면 지혜가 있다고 할 것이며, 몸도 계율도 마음도 지혜도 닦지 않으면 어리석다고 한다.
어떤 것을 말하여 몸을 닦지 않는다고 하는가? 만일 5정(情)의 감관을 거두어들이지 못하면 몸을 닦지 못한다 하고, 일곱 가지 깨끗한 계율[淨戒]을 받아 지니지 못하면 계행을 닦지 못한다고 한다. 마음을 조복하지 못하므로 마음을 닦지 못한다 하고, 성인의 행을 익히지 못하므로 지혜를 닦지 못한다고 한다.
또 몸을 닦지 못한다고 함은 청정한 계율의 자체를 구족하지 못한 것이며, 계율을 닦지 못한다고 함은 여덟 가지 부정한 물건을 받아 두는 것이다. 마음을 닦지 못한다고 함은 세 가지 모양[三相]4)을 닦지 못하는 것이며, 지혜를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범행을 닦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몸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몸을 관찰하지 못하고 빛을 관찰하지 못하고 색상(色相)을 관찰하지 못하고 몸의 모습을 관찰하지 못하고 몸에 딸린 것[身數]5)을 알지 못하며, 이 몸이 여기로부터 저기에 이르는 것을 알지 못하여 몸이 아닌 데서 몸이라는 상(相)을 내고 색이 아닌 데에 색이라는 상을 짓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몸과 몸에 딸린 것에 탐착함을 이름하여 몸을 닦지 못한다고 한다.
계율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만일 하열한 계를 받으면 계율을 닦는다 고 하지 못하니 한쪽으로 치우친 계율[邊戒]이나 자기의 이익을 위한 계율이나 자기만 조율하는 계율[自調戒]을 받아 가지면 중생들을 널리 안락하게 하지 못하며, 위없이 바른 법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고 천상에 나서 5욕락을 받기 위한 것은 계율을 닦는다고 하지 못한다.
마음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산란하여
자기의 경계를 전일하게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의 경계란 것은 4념처(念處)이며 다른 경계는 5욕락이니, 4념처를 닦지 못하면 마음을 닦지 못한다고 하며, 나쁜 업 가운데서 마음을 잘 보호하지 못하면 지혜를 닦지 못한다고 한다.
또 몸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이 몸이란 것이 무상하고 머물러 있지 않고 위태하고 연약하고 시시각각 멸하는 것이어서 마군의 경계인 것을 깊이 관찰하지 못하는 것이다. 계율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시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며, 마음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선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지혜를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반야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하는 것이며,
몸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나의 몸과 나의 몸에 딸린 것을 탐착하여 나의 몸은 항상하여 변함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계율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몸을 위하여 10악업을 짓는 것이다. 마음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나쁜 업 가운데서 마음을 거두지 못한 것이며, 지혜를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마음을 거두지 못하므로 선한 법 악한 법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몸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나라는 소견을 끊지 못한 것이며, 계율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계율에 집착함[戒取]을 끊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탐욕과 성내는 업을 지어서 지옥으로 향하는 것이며, 지혜를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마음을 끊지 못하는 것이다.
또 몸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몸이 비록 허물은 없더라도 항상 원수가 되는 줄을 관찰하지 못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남자에게 원수가 항상 따라다니면서 짬을 엿보면 지혜 있는 이는 알아차리고 마음을 두어 방비하니, 방비하지 않으면 해를 받는 것과 같다.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항상 음식과 차고 더움을 따라 보호하여 기르는데, 그렇게 보호하여 기르지 않으면 곧 무너진다.
선남자야, 저 바라문이 불을 섬길 때에 매번 향과 꽃으로 공양하고 찬탄하고 예배하며 100년 동안을 섬기는데, 만일 한 번만
닿아도 곧 사람의 손을 데이고 만다. 이 불을 그렇게 공양하지만 조금도 섬기는 이의 은혜를 갚을 생각이 없는 것과 같다.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여러 해를 두고 좋은 향과 꽃과 영락과 의복과 음식과 와구와, 병나면 의약으로 공급하더라도 어쩌다가 안으로나 밖으로나 나쁜 인연을 만나기만 하면 곧 파멸하여 버리고 지난날 의복과 음식으로 이바지한 은혜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어떤 임금이 네 마리 독사를 기를 때에 한 궤짝에 넣어서 어떤 사람에게 맡겨 기르게 하면, 네 마리 중에서 한 마리가 성을 내어도 사람을 해치므로 이 사람이 항상 무서워서 먹을 것을 구하여 때에 맞춰 수호하는 것과 같다.
모든 중생의 4대라는 독사도 그와 같아서 1대만 성을 내어도 곧 몸을 망가뜨린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오래도록 병이 들었으면 마땅히 지성으로 의원을 구하여 치료하여야 한다. 만일 부지런히 구원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의심 할 나위가 없다.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항상 마음을 거두어서 방일하지 않게 하여야 하며 만일 방일하면 곧 소멸하고 무너진다.
선남자야, 마치 굽지 않은 그릇[坏甁]은 비바람을 맞거나 때리고 던지거나 밟고 누르는 것을 견디지 못하듯이,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기갈과 더위와 추위와 비와 바람과 때리고 얽어매고 심하게 꾸짖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선남자야, 부스럼이 곪지 않았을 때에는 잘 감싸서 사람이 건드리지 못하게 하여야 하며 만일 건드리면 매우 고통스러운 것처럼 중생들의 몸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노새가 새끼를 배면 제 몸을 해롭게 하는데, 중생들의 몸도 그와 같아서 속에 풍(風)이나 냉(冷)이 있으면 고통을 받는다. 선남자야, 파초가 열매를 맺으면 말라죽듯이 중생들의 몸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또 파초는 속에 굳은 고갱이가 없듯이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뱀과 쥐와 이리가 각각 서로 원수라는 마음을 내듯이 중생의 4대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거위가 무덤을 좋아하지 않듯이 보살도 그러하여 몸이라는 무덤에 탐착을 내지 않는다. 선남자야, 전다라가 7대를 계속하여 그 업을 버리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듯이,
이 몸의 종자도 그러하여 종자와 정혈(精血)이 궁극적으로 부정한 것이며 부정한 까닭에 부처님과 보살들이 천하게 꾸짖는다. 선남자야, 이 몸은 마라야(摩羅耶)산6)에서 전단을 내는 것과 같지 않으며 우발라꽃[優鉢羅花]ㆍ분다리꽃[芬陀利花]ㆍ첨파꽃[瞻婆花]ㆍ마리가꽃[摩利迦花]ㆍ바사가꽃[婆師迦花]을 내지 못하고 아홉 구멍에서는 농혈과 부정한 것이 항상 흐르며 난 곳은 더럽고 추하고 누추하여 싫어할 만하며 항상 벌레들과 함께 있다.
선남자야, 세간에서 아무리 훌륭하고 정결한 숲 동산이라도 송장이 그 가운데 이르면 부정해져서 여러 사람이 모두 버리고 좋아하지 않는다. 색계(色界)도 그와 같아서 비록 깨끗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몸이 있는 까닭에 부처님과 보살들이 모두 버리신다. 선남자야, 만일 이런 관찰을 하지 못하면 몸을 닦지 않는다고 이름한다.
계율을 닦지 않는다고 함은, 선남자야, 계율은 모든 선한 법의 사다리이며 모든 선한 법의 근본이니 마치 땅이 모든 나무들이 나는 근본인 것과 같으며, 계율은 모든 선근을 인도하는 우두머리이니 장사치의 두목이 여러 장사꾼을 인도하는 것과 같다.
계율은 모든 선한 법의 승리의 깃발이니 제석천왕이 세우는 승리의 깃발과 같으며, 계율은 능히 일체의 악한 업과 세 가지 나쁜 세계를 영원히 단절하고 능히 나쁜 병을 치료하는 약 나무와 같으며, 계율은 생사의 험한 길을 걸어가는
양식이며 계율은 번뇌의 도둑을 쳐부수는 병장기이며 계율은 번뇌의 독사를 없애는 주문이며 계율은 나쁜 업을 건네는 다리라고 관찰해야 한다. 만일 이렇게 관찰하지 못하면 계율을 닦는다고 이르지 못한다.
마음을 닦지 않는다 함은, 마음은 경솔하고 조급하고 요동하는 것이어서 붙잡기 어렵고 조복하기 어려우며, 멋대로 달아나기는 사나운 코끼리 같고, 잠깐잠깐 신속하기는 번갯불 같고, 경망하여 가만있지 못함은 원숭이 같다. 요술 같고 아지랑이 같아서 모든 악의 근본이 되며 5욕락으로도 만족하지 못함은 불이 땔나무를 얻은 것 같고, 바다가 여러 강물을 삼키는 것 같고, 만다(曼陀)산에 초목이 무성한 것 같고,
생사의 허망함은 관찰하지 못하고 탐을 내다가 환난에 부딪치는 것은 고기가 미끼를 삼키는 것 같으며, 항상 앞서서 인도하면 모든 업이 따라오는 것은 마치 어미조개 [貝母]가 새끼들을 인도하는 것과 같다. 5욕을 탐하고 열반을 좋아하지 않음은 마치 낙타가 꿀을 먹고 죽음에 이르도록 꼴[芻草]을 돌아보지 않는 것과 같고, 현재의 욕락만 탐착하고 뒷날의 허물을 관찰하지 못함은 소가 여린 싹을 먹느라고 채찍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과 같으며, 25유(有)로 두루 돌아다니는 것은 강한 바람이 도라(兜羅)솜을 날리는 것과 같다.
구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만족함을 모르는 것은 지각없는 사람이 뜨겁지 않은 불을 구하는 것 같고, 매양 생사를 좋아하고 해탈을 좋아하지 않음은 임바(紝婆)벌레가 임바나무를 좋아하듯 하며, 미혹하여 생사의 더러움에 애착함은 옥중의 죄수가 옥졸 여인을 좋아하는 것 같고 뒷간에 기르는 돼지가 부정한 데 있기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이렇게 관찰하지 못하는 것을 일러 마음을 닦지 않는다고 한다.
지혜를 닦지 않는다고 함은, 지혜는 큰 세력을 가진 것이 금시조와 같아서 악한 업을 깨뜨리며 무명의 어둠을 파함이 햇빛과 같으며, 5음의 나무를 뽑는 것은 홍수가 물건을 떠내려 보내듯 하고, 나쁜 소견을 불사름은 맹렬한 불과 같다. 지혜는 온갖 선한 법의 근본이며 부처님과 보살의 어머니가 되는
종자이니 이렇게 관찰하지 못하면 지혜를 닦는다고 이르지 않는다.
선남자야, 제일의(第一義) 중에서 만일 몸[身]ㆍ몸의 모양[身相]ㆍ몸의 인[身因]ㆍ 몸의 과[身果]ㆍ몸의 모임[身聚]ㆍ몸이 하나임[身一]ㆍ몸이 둘임[身二]ㆍ이 몸ㆍ저 몸ㆍ몸이 멸함ㆍ몸이 평등함[身等]ㆍ몸으로 닦음[身修]ㆍ닦는 이[修者]를 본다면 이렇게 보는 이는 몸을 닦지 않는다고 이른다.
선남자야, 만일 계율ㆍ계율의 모양ㆍ계율의 인ㆍ계율의 과ㆍ상계(上戒)ㆍ 하계ㆍ계율의 모임ㆍ계율이 하나임ㆍ계율이 둘임ㆍ이 계율ㆍ저 계율ㆍ계율이 멸함ㆍ계율이 평등함ㆍ계율로 닦음ㆍ닦는 이ㆍ계바라밀을 본다면 이렇게 보는 이는 계율을 닦지 않는다고 이른다.
만일 마음ㆍ마음의 모양ㆍ마음의 인ㆍ마음의 과ㆍ마음의 모임ㆍ마음[心王]ㆍ마음의 헤아림[心數]ㆍ마음이 하나임ㆍ마음이 둘임ㆍ이 마음ㆍ저 마음ㆍ마음이 멸함ㆍ마음이 평등함ㆍ마음으로 닦음ㆍ닦는 이ㆍ상심(上心)ㆍ중심ㆍ하심ㆍ선한 마음ㆍ악한 마음을 본다면 이렇게 보는 이는 마음을 닦지 않는다고 이른다.
선남자야, 만일 지혜ㆍ지혜의 모양ㆍ지혜의 인ㆍ지혜의 과ㆍ지혜의 모임ㆍ지혜가 하나임ㆍ지혜가 둘임ㆍ이 지혜ㆍ저 지혜ㆍ지혜의 멸함ㆍ지혜의 평등함ㆍ상품 지혜ㆍ중품 지혜ㆍ하품 지혜ㆍ둔한 지혜ㆍ예리한 지혜ㆍ지혜로 닦음ㆍ닦는 이를 본다면 이런 소견이 있는 이는 지혜를 닦지 않는다고 이른다.
선남자야, 만일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지 않으면 이런 사람은 작은 악업에도 크게 나쁜 과보를 받으며 공포에 떨기 때문에 항상 ‘나는 지옥에 속하니 지옥으로 갈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지혜 있는 이가 지옥의 고통을 말하는 것을 듣고도 ‘쇠로는 쇠를 치고 돌로는 돌을 치고 나무는 나무를 치고 불에 있는 벌레는 불을 좋아하듯이 지옥에 가는 몸은 지옥과 같을 것이며 설사 지옥과 같다 한들 괴로울 것이 무엇이겠는가?’하고 생각한다.
마치 파리가 가래침에 붙어 벗어나지 못하듯이 이 사람도 그러하여 조그만 죄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며, 처음부터 뉘우치는 마음도 없고 선한 일을 닦지도 못하며 있는 허물을 숨기기만 하므로
비록 지난 세상에 지었던 선한 업이 있어도 이 죄에 더럽혀져 이 사람의 현세에 받을 가벼운 업보도 지옥의 중대한 나쁜 과보로 변한다.
선남자야, 적은 물에 소금 한 되를 넣으면 너무 짜서 마실 수 없듯이 이 사람의 죄업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남에게 빚 1전(錢)을 지고도 갚지 않으면 몸이 속박을 당하고 많은 고통을 받듯이 이 사람의 죄업도 그와 같다.”
사자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무슨 까닭에 현세에서 받을 가벼운 업보를 지옥에서 받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들이 다섯 가지 일을 갖추면 현세에 받을 가벼운 업보를 지옥에서 받게 된다. 무엇이 다섯 가지 일인가? 첫째는 어리석은 탓이며, 둘째는 선근이 적은 탓이며, 셋째는 악한 업이 무거운 탓이며, 넷째는 참회하지 않은 탓이며, 다섯째는 근본 선업을 닦지 못한 탓이다.
또 다섯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나쁜 업을 닦아 익힌 탓이며, 둘째는 계율의 재산이 없는 탓이며, 셋째는 모든 선근을 멀리 여읜 탓이며, 넷째는 몸의 계행과 마음의 지혜를 닦지 않은 탓이며, 다섯째는 나쁜 동무를 가까이 한 탓이다. 선남자야, 이런 까닭에 현세에서 받을 가벼운 업보를 지옥에서 무겁게 받는 것이다.”
사자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지옥에서 받을 과보를 바꾸어 이 세상에서 가볍게 받습니까?”
“선남자야, 만일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아 익히되 앞서 말한 바와 같이하며, 모든 법이 허공과 같은 줄을 관찰하면서 지혜도 보지 않고 지혜로운 이도 보지 않고 어리석음도 보지 않고 어리석은 자도 보지 않고 닦음도 보지 않고 닦는 이도 보지 않으면, 그런 이는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능히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을 것이며 이런 사람은 지옥에서 받을 업보를 현세에서 가볍게 받는다.
이런 사람은 설사
중대한 나쁜 업을 지었더라도 생각하고 관찰하여 가볍게 하며, ‘나의 업이 비록 무겁더라도 선한 업만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마치 목화가 100근이라도 순금 한 냥을 대적하지 못하며 항하수에 소금 한 되를 넣더라도 짠맛이 없어서 마시는 이가 알지 못하며 억만 부자가 비록 남의 빚을 천냥 만냥을 졌더라도 그를 속박하여 괴로움을 받게 하지 못할 것이며
큰 코끼리가 쇠사슬을 끊고 자재하게 달아나듯이, 지혜 있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항상 ‘나의 선근은 크고 나쁜 업은 미약하니 내가 능히 모두 드러내어 참회하여 나쁜 업을 없애고 지혜를 닦으면 지혜의 힘은 커지고 무명의 힘은 적어질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선지식을 친근하여 바른 지견을 닦으며, 12부경을 배우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경전을 배우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는 이를 보면 공경하는 마음을 내고 겸하여 의복과 음식과 방과 가구와 약과 꽃과 향으로 공양하고 찬탄하고 존중하며,
이르는 곳마다 그의 선한 일을 칭찬하고 잘못을 말하지 않으며 삼보께 공양하고 방등대승의 대반열반경을 공경하며 여래는 항상하여 변함이 없고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는 줄을 믿으면, 이런 사람은 능히 지옥의 중한 업보를 현세에서 가볍게 받는다.
선남자야, 이런 이치로 온갖 업이 모두 결정된 과보가 있는 것이 아니며 모든 중생이 반드시 받는 것도 아니다.”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11. 사자후보살품 ⑤
사자후보살이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경에서 말한 바와 같이, 비파사나(毗婆舍那)가 능히 번뇌를 깨뜨린다면 어찌하여 다시 사마타(奢摩他)를 닦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가 말한 비파사나가 번뇌를 깨뜨린다고 함은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지혜가 있을 때에는 번뇌가 없고, 번뇌가 있을 때에는 지혜가 없는데, 어떻게 비파사나가 번뇌를 깨뜨린다고 하겠는가? 선남자야, 마치 밝을 때에는 어둠이 없고, 어두울 때에는 밝음이 없는 것과 같다. 밝음이 능히 어둠을 깨뜨린다고 한다면 옳지 않다. 선남자야, 누구에게 지혜가 있고 누구에게 번뇌가 있어서 지혜가 번뇌를 깨뜨린다고 말하는가? 만일 없다면 깨뜨릴 것이 없다.
선남자야, 만일 지혜가 번뇌를 깨뜨린다고 하면, 이르렀기 때문에 깨뜨리는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깨뜨리는가? 만일 이르지 않고 깨뜨린다면 범부 중생도 능히 깨뜨릴 것이며, 이르렀기 때문에 깨뜨린다면, 첫 생각에 깨뜨릴 것이다. 만일 첫 생각에 깨뜨리지 못한다면, 뒷생각으로도 깨뜨리지 못할 것이다. 만일 처음 이르러서 문득 깨뜨린다면 이는 이르지 못한 것이거늘 어떻게 지혜가 깨뜨린다고 말하겠는가? 만일 이르거나 이르지 못하거나 능히 깨뜨린다고 한다면 의미가 그렇지 않다.
또 비파사나가 번뇌를 혼자서 깨뜨리는가, 동무가 있어서 깨뜨리는가? 혼자서 깨뜨린다면 무슨 까닭에 보살이 8정도(正道)를 닦겠는가? 만일 동무가 있어서 깨뜨린다면, 혼자서는 깨뜨리지 못할 것을 알아야 하며 만일 혼자서 깨뜨리지 못하면 동무들도 깨뜨리지 못할 것이다. 마치 한 소경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여러 동무 소경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비파사나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땅은 굳은 성품이고, 불은 뜨거운 성품이며, 물은 젖는 성품이고, 바람은 동하는 성품인데, 땅의 굳은 성품과 나아가 바람의 동하는 성품이 인연으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며 성품이 스스로 그런 것이다. 4대의 성품과 같이 번뇌도 그러하여 성품이 스스로 끊는 것이니, 만일 성품이 끊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지혜가 끊는다고 하겠는가? 이런 뜻으로 비파사나는 반드시 번뇌를 깨뜨리지 못한다.
선남자야, 마치 소금의 성질이 짜므로 다른 물건을 짜게 하고, 꿀의 성질이 달므로 다른 물건을 달게 하고, 물의 성질이 축축하므로 다른 물건을 젖게 하듯이, 지혜의 성품이 멸한 것이므로 다른 법을 멸한다 고 함은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법이 멸함이 없다면 어떻게 지혜가 억지로 멸하게 하겠는가? 만일 소금이 짜서 다른 물건을 짜게 하듯이, 지혜의 멸함도 그와 같아서 다른 법을 멸하게 한다면 그것도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지혜의 성품은 시시각각 멸해 가기 때문이다. 만일 시시각각 멸한다면 어떻게 다른 법을 멸한다고 말하겠는가? 이런 뜻으로 지혜의 성품이 번뇌를 깨뜨리지 못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모든 법이 두 가지 멸함이 있다. 첫째는 성품의 멸함이며, 둘째는 필경까지 멸함이다. 만일 성품이 멸한다면, 어찌하여 지혜가 능히 멸한다고 말하겠는가? 만일 지혜가 능히 번뇌를 멸함이 불이 물건을 태움과 같다고 하면,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불이 물건을 태움에는 남은 불똥이 있기 때문이니, 지혜도 그렇다면 남은 불똥이 있어야 하고, 도끼로 나무를 찍는 것에는 찍은 흔적을 볼 수 있으니
지혜도 그렇다면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지혜가 번뇌를 떠나게 한다면, 떠난 번뇌가 다른 곳에 나타날 것이니, 마치 외도들이 6대성에서 떠나서 구시나성에 나타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만일 번뇌가 다른 곳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지혜가
번뇌를 떠나게 하지 못하는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모든 법의 성품이 스스로 공하다면, 누가 나게 하며 누가 멸하게 하겠는가? 남[生]이 다르고 멸함이 달라서 짓는 이가 없다.
선남자야, 만일 선정을 닦으면 이러한 바른 지혜와 바른 소견을 얻는다. 이런 뜻으로 나의 경에 말하기를 ‘만일 비구가 선정을 닦으면 5음의 생멸하는 모양을 본다’고 하였다. 선남자야, 선정을 닦지 않고는 세간의 일도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출세간의 일이겠는가?
만일 선정의 힘이 없으면 평지에서 엎어지며, 마음으로 다른 법을 반연하고 입으로 다른 말을 이야기하고 귀로 다른 소리를 듣고 마음으로 다른 이치를 이해할 것이며, 다른 글자를 만들려고 하고 손으로 다른 글을 쓰며, 다른 길로 다니려고 몸이 딴 갈래에 간다. 만일 삼매의 선정을 닦는 이는 크게 이익하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두 가지 법을 구족하면 크게 이익 될 것이다. 첫째는 선정이며 둘째는 지혜이다. 선남자야, 왕골[菅草]을 벨 때에 급히 서두르면 끊어지는 것과 같으니,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는 일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굳게 박힌 나무를 뽑을 때에 먼저 손으로 흔들면 뒤에 뽑기가 쉽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아서 먼저 선정으로 흔들고 나중에 지혜로 뽑아야 한다.
선남자야, 때 묻은 옷을 빨 때에 먼저 잿물에 담그고 뒤에 맑은 물로 씻으면 옷이 깨끗해지는 것처럼,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먼저 게송을 읽은 후에야 뜻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이와 같다. 선남자야, 마치 용맹한 사람이 먼저 갑옷으로 몸을 단속한 뒤에 진중에 나아가면 대적을 파하게 되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마치 공교로운 장인이 도가니에 금을 담고 마음대로
저어서 녹이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밝은 거울로 얼굴을 비치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먼저 땅을 고르고 뒤에 씨를 심으며, 먼저 스승에게 배우고 뒤에 뜻을 생각하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다. 이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으면 크게 이익 되게 한다고 한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두 가지 법을 닦으면 5근을 조섭하여 모든 괴로움을 견딘다. 이른바 기갈과 차고 더움, 매 맞고 욕설함, 나쁜 짐승에게 물리는 일과 모기 따위에 물리는 일들이다. 항상 마음을 거두어들여 방일하지 못하게 하며, 이양을 위하여 법답지 못한 일을 행하지 않으며, 객진번뇌에 더럽히지 않고, 사특한 소견에 의혹되지 않으며, 모든 나쁜 관념[覺觀]을 멀리 여의어 오래지 않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것이니, 중생들을 성취시켜 이익 되게 하려는 까닭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으면 네 가지 뒤바뀐 폭풍도 흔들지 못하는 것이, 마치 수미산을 네 가지 바람으로도 동요하지 못하는 듯하다. 또한 삿된 외도들에게 동요되지 않음이, 마치 제석천왕의 짐대를 이전할 수 없는 듯하며, 여러 가지 요술로도 의혹하지 못하고 항상 미묘하고 제일가는 안락을 받으며, 여래의 깊고 비밀한 도리를 이해하여 낙을 받아도 기뻐하지 않고, 괴로움을 만나도 슬퍼하지 않으며, 천상 사람 세상 사람들이 공경하고 찬탄하며, 생사와 생사 아닌 것을 분명하게 보고 법계와 법의 성품을 잘 알며, 몸에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법이 있다. 이것을 이름하여 대반열반의 낙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선정의 모양은 공삼매(空三昧)라 하고, 지혜의 모양은
무원(無願)삼매라 하고, 버리는[捨] 모양은 무상(無相)삼매라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보살마하살이 선정의 때와 지혜의 때와 버리는 때를 잘 알고 때 아닌 것도 알면, 이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보리의 도를 행한다고 한다.”
사자후가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고 하십니까?”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쾌락을 받는다고 하여 교만을 내거나, 법을 연설한다고 하여 교만을 내거나, 정근하노라 하여 교만을 내거나, 이치를 알고 문답을 잘한다고 하여 교만을 내거나, 나쁜 동무를 가까이 하면서 교만을 내거나, 소중한 물건을 보시하면서 교만을 내거나, 세간의 선한 공덕을 짓노라 하여 교만을 내거나, 세상의 지위 높은 사람에게 공경을 받노라 하여 교만을 내게 되는데, 이때에는 지혜를 닦지 말고 선정을 닦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고 한다.
만일 보살이 부지런히 정진하면서도 이익 되는 열반의 낙을 얻지 못하거나, 얻지 못한 까닭에 후회하는 마음을 내거나, 근성이 둔하여서 5근을 조복하지 못하는 것은 모든 번뇌의 세력이 치성하기 때문이며, 계율이 이로울까 해로울까 의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는 선정을 닦지 말고 지혜를 닦아야 한다고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보살이 선정과 지혜의 두 가지가 평등하지 못할 때에는 사(捨)를 닦지 않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하며, 두 가지가 평등하면 닦아야 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보살이 선정과 지혜를 닦다가 번뇌가 일어나면 그럴 때에는 사를 닦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12부경을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고 사(捨)를 생각하여야 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사를 닦는다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보살이 이렇게 세 가지 법을 닦으면 이 인연으로 무상(無相)열반을 얻는다.”
사자후가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열 가지 모양이 없기 때문에 대열반을 이름하여 무상(無相)이라고 한다면, 또 무슨 인연으로 남이 없다[無生], 냄이 없다[無出], 지음이 없다[無作], 집이다[屋宅], 섬이다[洲], 귀의할 데다, 편안하다, 멸도(滅度)다, 열반이다, 고요하다[寂靜], 병고가 없다[無諸病苦], 있는 것이 없다[無所有]고 이름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선남자야, 인연이 없으므로 남이 없다 하고, 함이 없으므로 냄이 없다 하고, 짓는 일이 없으므로 지음이 없다 하고, 다섯 가지 소견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집이라 하고, 4폭류를 여의었으므로 섬이라 하고, 중생을 조복하므로 귀의할 데라 하고, 번뇌의 도적을 깨뜨렸으므로 편안하다 하고, 번뇌의 불이 꺼졌으므로 멸도라 하고, 각관(覺觀)을 여의었으므로 열반이라 하고, 시끄러운 것을 멀리하였으므로 고요하다 하고, 죽는 일을 아주 끊었으므로 병고가 없다 하고, 온갖 것이 없으므로 있는 것이 없다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런 관찰을 할 때에는 불성을 분명히 보게 된다.”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몇 가지 법을 성취하면 이러한 무상열반과 나아가 있는 것이 없음을 보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무상열반과 나아가 있는 것이 없음을 분명히 본다. 무엇이 열 가지 인가? 첫째는 믿는 마음이 구족한 것이니, 어떤 것을 이름하여 믿는 마음이 구족하다고 하는가? 부처님과 법과 승가는 항상하지만 시방의 부처님께서 방편으로써 모든 중생과 일천제들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보이신 줄을 믿고, 여래께서 나고 늙고 병나고 죽는 것과
고행을 하심과, 제바달다가 참으로 화합승을 파하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낸 것과, 여래가 필경에 열반에 들어서 바른 법이 없어진다는 일을 믿지 않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믿는 마음이 구족하다고 한다.
둘째는 깨끗한 계행이 구족한 것이니, 어떤 것을 이름하여 깨끗한 계행이 구족하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어떤 보살이 계행이 깨끗하다고 말하면서 여인과 어울리지 않더라도 여인을 볼 때에 조롱하고 어울리며 웃고 지껄이고 희롱하면, 이런 보살은 애욕을 이루어 깨끗한 계율을 파하며,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문란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깨끗한 계율이 구족하다고 이름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어떤 보살이 계행이 깨끗하다고 말하면서 여인과 더불어 어울리지 않으며 조롱하고 웃고 희롱하지 않더라도, 담 밖에서 나는 여인의 영락 가락지ㆍ팔찌 따위의 소리를 듣고 마음에 애착을 낸다면, 이런 보살은 애욕을 이루어 깨끗한 계행을 파하며,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문란하게 하는 것이므로 깨끗한 계행이 구족하다고 이를 수 없다.
또 어떤 보살이 계행이 깨끗하다고 말하면서, 여인과 더불어 어울리거나 조롱하고 지껄이고 모든 소리를 듣지 않더라도, 다른 남자가 여인을 따라가거나 여인이 남자를 따라가는 것을 보고는 문득 탐욕을 낸다면, 이런 보살은 애욕을 이루어 깨끗한 계율을 파하며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문란하게 하는 것이므로 깨끗한 계행이 구족하다고 이를 수 없다.
또 어떤 보살이 계행이 깨끗하다고 말하면서 여인과 더불어 어울리거나 지껄이고 모든 소리를 듣거나 남자와 여인이 서로 따라감을 보지 않더라도, 천상에 태어나서 5욕락을 받는다면, 이런 보살은 애욕을 이루어 깨끗한 계율을 파하며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문란케 하는 것이라, 깨끗한 계행이 구족하다고 이를 수 없다.
선남자야, 만일 보살이 청정하게
계율을 지니되, 계율을 위하지 않고 시바라밀을 위하지 않으며 중생을 위하지 않고, 이양을 위하지 않고, 보리를 위하지 않고, 열반을 위하지 않고, 성문과 벽지불을 위하지 않고, 오직 가장 훌륭한 제일의[最上第一義]를 위하여, 금하는 계율을 보호하여 가진다면 선남자야, 이것은 보살의 깨끗한 계율이 구족하다고 이른다.
셋째는 선지식을 친근히 하는 것이다. 선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과 계율과 많이 아는 것과 보시와 지혜를 말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받아 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선지식이라고 한다.
넷째는 고요함을 좋아하는 것이다. 고요하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고요하여 모든 법의 깊고 깊은 법계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 고요하다고 한다.
다섯째는 정진이다. 정진이라고 함은 마음을 두어 네 가지 바른 법[四正諦]을 관찰하되, 머리에 불이 붙더라도 놓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이름하여 정진이라고 한다.
여섯째는 생각함이 구족함[念具足]이다. 생각이 구족하다는 것은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고 사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 생각함이 구족하다고 한다.
일곱째는 부드러운 말[軟語]이다. 부드러운 말이라고 함은 진실한 말과 미묘한 말과 먼저 문안하는 말과 때맞추어 하는 말과 참된 말 등이다. 이런 것을 이름하여 부드러운 말이라고 한다.
여덟째는 법을 보호함[護法]이다. 법을 보호한다는 것은 바른 법을 사랑하여 항상 연설하기를 좋아하며, 읽고 외우고 쓰고 뜻을 생각하고, 널리 선전하여 멀리 퍼지게 하며, 만일 다른 이가 쓰고 해설하고 읽고 외우고 찬탄하고 뜻을 생각하는 것을 보면,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하여 공양하되 의복과 음식과 와구와 의약으로 이바지하며, 법을 보호하기 위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것을 일러 법을 보호한다고 한다.
아홉째는 보살마하살이 함께 배우고 함께 계를 받은 이가 부족한 것이 있는 것을 보면, 발우나 물든 옷이나 간병에 필요한 의복과 음식과 와구와 방 같은 것을 다른 데서 빌어서라도 공급하는 것이다.
열째는 지혜를 구족하는 것이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과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음을 관찰하며, 법의 두 가지 모양을 관찰하는 것이니, 이른바 공함과 공하지 않은 것, 항상함과 무상한 것, 즐거움과 즐겁지 않은 것, 내가 있고 내가 없는 것, 깨끗함과 부정한 것, 이법(異法)의 끊을 것과 끊지 못할 것, 이법의 인연으로 나는 것과 이법을 인연으로 보는 것, 이법의 인연으로 생긴 과보와 이법의 인연으로 생기지 않는 과보이다. 이런 것을 일러 지혜를 구족한다고 한다.
선남자야, 이것을 일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열반의 무상(無相)함을 분명하게 본다고 한다.”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먼저 순타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미 불성을 보았으니, 대열반을 얻을 것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세존이시여, 경에 말씀하시기를 ‘축생에게 보시하면 100배의 과보를 받고, 일천제에게 보시하면 천 배의 과보를 받고, 계행 가지는 이에게 보시하면 백천 배의 과보를 받고,
번뇌를 끊은 외도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과보를 받고, 4향(向)과 4과와 벽지불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과보를 받고, 불퇴(不退) 보살이나 최후신(最後身) 보살이나 여래 세존께 보시하면 받는 과보의 복덕이 한량없고 가없고 헤아릴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순타 대사(大士)가 이렇게 한량없는 과보를 받는다면 과보가 한량없는데 어느 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습니까?
세존이시여, 경에 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중대한 마음으로 좋은 업이나 나쁜 업을 지으면 반드시 과보를 받는데, 이 세상에서 받기도 하고 다음 세상에서 받기도 하고 뒷세상에서 받기도 한다’고 하셨습니다. 순타는 중대한 마음으로 선한 업을 지었으니 그 업으로 반드시 과보를 받을 것입니다. 만일 반드시 과보를 받으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며, 어떻게 불성을 보겠습니까?
세존이시여, 경에 또 말씀하시기를 ‘세 종류 사람에게 보시하면 과보가 그지없다. 첫째는 병을 앓는 사람이고 둘째는 부모이며 셋째는 여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또 경에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길 〈모든 중생에게 욕계의 업이 없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 색계와 무색계의 업도 그러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법구게에는 ‘허공도 아니며 바다 속도 아니며, 산 속도 바위 속도 아니며, 어느 곳에서도 벗어나서 업보를 받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또 아니루타는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제가 생각하니 지난 옛적에 밥 한 그릇을 보시하고 8만 겁 동안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밥 한 그릇을 보시한 과보도 그러한데, 하물며 순타가 신심으로 부처님께 보시하고 단바라밀을 구족하게 성취한 것이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선한 과보가 끝이 없다면 방등경을 비방하고 5역죄를 범하고 4중금을 깨뜨린 일천체의 죄보가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만일 끝이 없으면 어떻게 불성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야, 오직 두 종류의 사람만이 한량없고 가없는 공덕을 얻어서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능히 생사에 표류하는 큰 강물을 마르게 하고 마군과 원수를 항복받으며 마군이 이겼다는 짐대를 꺾고, 여래의 위없는 법의 수레를 운전할 것이니, 첫째는 묻기를 잘하는 것이며 둘째는 대답을 잘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부처님의 10력 중에 업의 힘이 가장 깊다고 하였는데, 선남자야, 어떤 중생들이 업의 인연에 대하여 업신여기고 믿지 않기에 그런 자를 제도하려고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선남자야, 온갖 업이 가벼운 것이 있고
무거운 것이 있으며, 가벼운 업과 무거운 업이 또 각각 둘이 있다. 첫째는 결정된 것이며, 둘째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악한 업이 과보가 없다. 만일 악한 업이 반드시 과보가 있다면, 어찌하여 기허전타라(氣噓旃陀羅)가 천상에 태어나고, 앙굴마라가 해탈의 과보를 얻었겠는가? 이런 이치로 보아 지은 업으로 과보를 얻기도 하고, 과보를 얻지 않기도 하는 줄을 알겠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런 잘못된 소견을 없애기 위하여 경에서 ‘모든 지은 업은 과보를 받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하였다.
선남자야, 혹은 무거운 업을 가볍게 받을 수도 있고, 혹은 가벼운 업을 무겁게 받을 수도 있는데 모든 사람이 다 그러한 것이 아니라, 오직 어리석고 지혜 있는 데에 달렸다. 그러므로 모든 업이 모두 결정한 과보를 얻는 것이 아니며, 비록 얻는 것이 아니나 얻지 않는 것도 아니다.
선남자야, 중생이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지혜 있는 사람이며, 둘째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지혜 있는 사람은 지혜의 힘으로써 지옥에서 받을 중대한 업을 이 세상에서 가볍게 받기도 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받을 가벼운 업을 지옥에서 무겁게 받기도 하는 것이다.”
사자후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면 청정한 범행도, 해탈의 과보도 구할 것이 아니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일 모든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는다면, 범행과 해탈을 구할 것이 없지만, 결정되지 않았기에 범행과 해탈의 과보를 닦는다. 선남자야, 만일 모든 악한 업을 멀리 여의면 선한 과보를 얻고, 선한 업을 멀리 여의면 악한 과보를 얻는다. 만일 모든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는다면 성인의 도를 닦아 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만일 도를 닦지 않으면 해탈이 없을 것이다.
모든 성인이 도를 닦는 것은 결정된 업을 깨뜨려 가벼운 과보를 얻으려는 것이니, 결정되지 않은 업은 과보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온갖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는다면 성인의 도를 닦아 구할 것이 없으며, 사람들이 성인의 도를 닦는 일을 여의고 해탈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고, 해탈을 얻지 않고 열반을 얻는다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
선남자야, 만일 온갖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는다면 한평생 동안 지은 선한 업으로는 마땅히 영원히 안락을 받을 것이며, 한평생 동안 지은 악한 업으로는 마땅히 영원히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 업의 과보가 만일 그렇다면 도를 닦음과 해탈과 열반이 없을 것이며, 사람이 지은 것은 사람이 받고 바라문이 지은 것은 바라문이 받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하천한 종성[下姓]과 하천한 존재가 없어서, 사람은 항상 사람이며 바라문은 항상 바라문일 것이다. 그리고 젊어서 지은 업은 마땅히 젊어서 받고, 중년(中年)에나 늙어서는 받지 않을 것이다. 늙어서 나쁜 업을 짓고 지옥에 태어나면 지옥의 초년[初身]에는 받지 않을 것이며 늙어서야 받을 것이며,
만일 늙어서 살생을 않는다면 마땅히 장년(壯年)에는 장수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장년에 장수하지 않고 어떻게 노년(老年)에 이를 수 있겠는가? 업이 없어지지 않은 까닭이며, 업이 만일 없어지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도를 닦는 일과 열반이 있겠는가?
선남자야, 업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결정된 것이고, 둘째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또 결정된 업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과보가 결정된[報定] 것이며, 둘째는 시기가 결정된[時定] 것이다. 혹 과보는 결정되었으나 시기가 결정되지 않은 것은 인연이 합하면 받으며, 혹은 세 때에 받는데 현생에 받는 것, 다음 생에 받는 것, 후생에 받는 것이다.
선남자야, 만일 결정한 마음으로 선한 업이나 악한 업을 짓고, 지은 뒤에 신심으로 기뻐하고 원을 세워 삼보에 공양하면, 이것을 결정한 업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사람은 선근이 견고하여 동요하기 어려우므로 무거운 업을 가볍게 하며,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이 두터우므로 가벼운 업으로 무거운 과보를 얻게 된다. 이런 뜻으로
모든 업이 결정되었다고 이르지 않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지옥에 갈 업이 없지만, 중생을 위하여 서원을 세우고 지옥에 난다. 선남자야, 지나간 옛적 중생의 수명이 100세이던 때에,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중생들이 지옥의 업보를 받았으므로, 내가 그것을 보고 큰 서원을 세우고 지옥의 몸을 받았다.
보살이 그때 그런 업이 없었지만 중생을 위하여 지옥의 과보를 받은 것이다. 내가 그때 지옥에서 한량없는 세월을 지내면서 죄인들을 위하여 12부경을 널리 분별하여 말하였더니, 여러 사람들이 경을 듣고 악한 과보를 깨뜨려서 지옥이 비게 되었는데, 일천체들은 제외하였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다고 한다.
또 선남자야, 이 현겁(賢劫) 중에 한량없는 중생들이 축생에 떨어져서 나쁜 과보를 받았으므로, 내가 그것을 보고 다시 큰 서원을 내고 법을 연설하여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혹은 노루ㆍ사슴ㆍ곰ㆍ원숭이ㆍ용ㆍ뱀ㆍ금시조(金翅鳥)ㆍ비둘기ㆍ물고기ㆍ자라ㆍ여우ㆍ토끼ㆍ소ㆍ말 따위의 몸을 받았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실로 이런 축생의 업보가 없었지만, 큰 원력으로 중생을 위하여 이런 몸을 받은 것이다. 이것을 일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이 현겁 중에 다시 한량없고 가없는 중생들이 아귀에 태어나서 국물ㆍ비계ㆍ고름ㆍ피ㆍ똥ㆍ오줌ㆍ콧물ㆍ침 따위를 먹었다 뱉었다 하면서, 수명이 한량없어 백천만 년을 지내도 장이나 물이라는 이름도 듣지 못하는데, 어찌 눈으로 보고 먹을 수 있을 것인가?
만일 멀리 있는 물을 보고 먹을 욕심으로 가서 보면, 불더미나 고름으로 변하기도 하고, 혹시 변하지 않을 때에는 여러 사람들이 창을 들고 붙잡고 가지
못하게 한다. 혹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몸에 닿으면 불이 되는데, 이것은 나쁜 업의 과보라고 한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이런 악업이 없지만 중생을 교화하여 해탈을 얻게 하려고 서원을 세우고 이런 몸을 받는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다고 한다.
선남자야, 내가 현겁 중에 백정의 집에 태어나서, 닭ㆍ돼지ㆍ소ㆍ양 따위를 기르기도 하고, 사냥하고 고기 잡는 일도 하였으며, 전타라의 집에서 도둑질도 하였으니 보살이 실제로는 이런 나쁜 업이 없었지만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려고 큰 원력으로 이런 몸을 받은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이 현겁 중에 또 변방에 태어나서, 흔히 욕심 많고 성 잘 내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며, 법답지 않은 일을 행하고 삼보와 후세의 과보를 믿지 않으며, 부모ㆍ천척ㆍ늙은이ㆍ장로를 공경하지 않았다. 선남자야, 보살이 실제로는 이런 업이 없었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큰 원력으로 그 가운데 난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이 현겁 동안에 여인의 몸ㆍ나쁜 몸ㆍ탐욕의 몸ㆍ성내는 몸ㆍ어리석은 몸ㆍ질투하는 몸ㆍ간탐하는 몸ㆍ어린 몸ㆍ속이는 몸ㆍ속박하는 몸을 받았다. 선남자야, 보살은 이런 업이 없지만 중생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큰 원력으로 그 가운데 나기를 원한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이런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내가 현겁 동안에 내시의 몸ㆍ근이 없는 몸ㆍ근이 둘인 몸ㆍ근이 일정하지 않은 몸을 받았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실제로
이런 나쁜 몸을 받을 업이 없었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큰 원력으로 그 가운데 나기를 원하였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이런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나는 또 현겁에서 외도 니건자의 법을 익히고 그 법을 믿었으므로, 보시도 없고 사당[祠]도 없고 보시와 사당의 과보도 없으며, 선한 업도 없고 악한 업도 없고 선한 업 악한 업의 과보도 없으며, 현재의 세상도 없고 미래의 세상도 없고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으며, 성인도 없고 변화하는 몸도 없고 도와 열반도 없었다.
선남자야, 보살이 실로 이런 나쁜 업이 없었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큰 원력으로 이런 삿된 법을 받은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이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내가 생각하니 지난 옛적에 제바달다와 함께 장사치의 우두머리가 되어 각각 500의 장사꾼이 있었다. 그런데 이익을 위하여 바다에 나아가 보배를 따다가, 나쁜 인연으로 폭풍을 만나서 배가 파선되고 동무들이 모두 죽었다. 그러나 나와 제바달다만은 살생하지 않은 과보로 장수할 팔자가 되어 바람에 불려서 함께 육지에 이르렀다. 그때 제바달다는 보물을 탐하는 마음으로 크게 고통하면서 소리를 높여 통곡하였다. 나는 제바달다에게 통곡하지 말라고 일렀더니,
제바달다는 이렇게 말했다. ‘내 말을 들어보시오. 어떤 가난뱅이가 하도 빈궁하고 곤고(困苦)하여 무덤들이 있는 데 가서 송장을 붙들고 말하기를, 〈그대가 나에게 죽음의 낙을 준다면, 나는 그대에게 가난한 목숨을 주겠다〉고 하였소. 그때 송장이 일어나 앉아서 가난뱅이에게 하는 말이 〈선남자야, 가난한 목숨은 그대나 가지시오. 나는 이
죽음의 낙이 매우 좋아서, 그대의 빈궁하게 사는 목숨이 반갑지 않다〉라고 하였소. 그런데 나는 지금 죽는 낙도 없고 겸하여 빈궁하기까지 하니, 어떻게 울지 않겠소?’
나는 다시 위로하기를 ‘그대는 너무 근심하지 말라. 나에게 지금 두 개의 보배 구슬이 있으니 값이 한량이 없다. 한 개를 그대에게 나누어 주리라’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한 개를 주고 말하기를 ‘생명이 있는 사람이니까 이런 보배를 가지는 것이지, 생명이 없으면 어떻게 가지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는 피곤하여 나무 아래 누워서 쉬면서 잠이 들었는데, 제바달다는 탐욕이 불같이 일어나 나머지 한 개의 보배 구슬을 마저 빼앗으려고 나쁜 마음으로 나의 눈을 찌르고 구슬을 빼앗았다. 나는 그때 눈이 아파서 앓는 소리를 내었더니, 어떤 여인이 나에게 와서 묻기를 ‘당신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가?’하고 물었다. 그에게 사실대로 말하였더니, 여인이 듣고는 또 묻기를 ‘당신의 이름은 누구요?’ 하기에
‘나의 이름은 참된 말을 하는 이[實語]요’ 하였다. 여인이 또 말하기를 ‘무엇으로 당신이 참된 말을 하는 것을 증명하겠는가?’ 하기에 나는 이렇게 맹세하였다. ‘내가 만일 제바달다에게 원통한 마음이 있으면 내 눈이 지금 모양으로 영원히 소경이 될 것이고, 원통한 마음이 없으면 눈이 도로 온전하게 될 것이오’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말을 마치기도 전에 눈이 예전과 같이 되었다.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세의 과보로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내가 지나간 옛적에 남천축 부단나(富單那)1)성의 바라문 집에 태어났었다. 그때 가라부(迦羅富)2)라는 임금이 있었는데, 성질이 포악하고 교만이 많으며 나이 젊었고 얼굴이 잘생겨 5욕락에 탐착하였다. 나는 그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그 성 밖에서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들었다. 그 임금이 때마침 봄놀이를 하느라고 권속과 채녀(婇女)들을 데리고 성에서 나와 구경을 다니다가 나무숲 아래서
욕락을 즐기고 있었다.
채녀들이 왕의 곁을 떠나서 구경 다니다가 나에게 왔으므로, 나는 그들의 탐욕을 끊기 위하여 법을 말하였다.
왕이 따라와서 나를 보고는 좋지 않은 마음으로 나에게 묻기를 ‘그대는 아라한과를 얻었는가?’ 하기에,
나는 ‘얻지 못하였다’고 대답하였다.
또 묻기를 ‘아나함과를 얻었는가?’ 하기에,
‘얻지 못하였다’고 대답하였다.
왕이 또 말하였다.
‘그대가 만일 두 가지 도과를 얻지 못하였으면 탐욕과 번뇌가 구족하였을 터인데, 어찌하여 방자하게 나의 채녀들을 보는가?’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나는 지금 탐욕의 결박을 끊지는 못하였으나, 마음에는 진실로 애착이 없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이구나. 세상에 있는 신선들이 기운을 삼키고 과실만을 먹으면서도 여색을 보면 탐심이 생긴다. 그대는 한창 나이가 젊었고 탐욕을 끊지 못하였는데, 어찌하여 여색을 보고 애착이 없겠는가?’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여색을 보고 애착하지 않음은 기운을 삼키고 과실을 먹는 데 달린 것이 아니며 무상하고 부정한 것으로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왕은 또 말했다.
‘남을 업신여기고 비방을 한다면 어떻게 청정한 계율을 지킨다고 말하겠는가?’
나는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만일 질투하는 마음이 있으면 비방도 하겠지만, 나는 질투하는 마음이 없는데 왜 비방한다고 말합니까?’
왕은 또 말했다.
‘대덕이여, 어떤 것을 계행이라고 하는가?’
‘대왕이여, 참는 것을 계행이라고 합니다.’
왕은 또 말하였다.
‘참는 것이 계행이라면, 내가 그대의 귀를 벨 것이니 만일 참으면 그대가 계행을 가지는 것을 믿겠다.’
그러면서 귀를 베었으나 나는 귀를 잘리면서도 얼굴빛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때 왕의 신하들은 이 광경을 보고 왕에게 간하기를 ‘이와 같은 대사(大士)를 해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왕은 신하들에게 ‘너희들은 이 사람이 대사인 것을 어떻게 아느냐?’라고 했다.
신하들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고통을 받으면서 얼굴빛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왕은 ‘내가 다시 시험하여 얼굴이 변하는지 않는지를 보겠다’라고 하면서, 코를 베고 손발을 끊었다.
그때 보살은 벌써부터 한량없고 그지없는 세상에서 자비를 닦았으므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가엾이 여겼다.
그때 사천왕은 분노한 마음을 품고 모래와 자갈 비를 내렸다.
왕은 그것을 보고 심하게 두려워 내 앞에 와서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아 말하였다.
‘바라건대 불쌍히 여기셔서 나의 참회를 허락하십시오.’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나의 마음에 성내지 않음 또한 애욕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대덕이여, 성내는 마음이 없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나는 곧 맹세하기를 ‘내가 참으로 성내는 마음이 없다면, 나의 몸이 예전과 같아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서원함에 따라서 몸이 예전과 같이 되었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세의 과보를 말한다고 한다.
선남자야, 선한 업으로 다음 생에 받는 과보와 후생에 받는 과보와 나쁜 업의 과보도 이와 같다.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는 모든 업이 현세에 과보를 얻게 된다. 나쁜 업으로 받는 현세의 과보는 왕이 나쁜 업을 지어서 하늘에서 나쁜 비를 내리는 것과 같고, 또 어떤 사람이 사냥꾼에게 곰이 있는 곳과 보배빛 사슴을 가리켜 주고 손이 떨어진 것과 같다. 이런 것을 이름하여 나쁜 업으로 현세에 받는 과보라고 하는 것이다.
다음 생에 받는 과보는 일천제가 4중금이나 5역죄를 범한 것과 같고, 그 이후의 생에 받는 과보는 마치 계행을 지니는 사람이 서원을 세우고 ‘미래의 세상에도 항상 이와 같은 깨끗한 계율을 지키는 몸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하였다가, 중생의 수명이 100년이나 80년 되는 때에 전륜성왕이 되어서 중생을 교화한 것과 같다.
선남자야, 만일 업이 반드시 현세의 과보를 얻는다면 다음 생의 과보나 그 이후 생의 과보는 얻지 못할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32대인상(大人相)의 업을 닦는다고 하여도 현세의 과보는 얻지 못하는 것이다. 업이 만일 세 가지의 과보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을 결정되지 않은 업보라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모든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는 것이라면 범행과 해탈과 열반을 닦는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며 마의 권속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일 말하기를 ‘모든 업은 결정된 것과 결정되지 않은 것이 있다. 결정된 것은 현세에 받는 것과 다음 생에 받는 것과 후생에 받는 것이며, 결정되지 않은 것은 인연이 합하면 받고 합하지 않으면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범행과 해탈과 열반을 닦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참으로 나의 제자이며 마의 권속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은 결정되지 않은 업이 많고 결정된 업은 적다. 그런 뜻으로 도를 닦는 일이 있고, 도를 닦으므로 결정된 중대한 업을 가볍게 받을 수 있으며, 결정되지 않은 업은 과보를 받지 않는다.
선남자야, 두 가지 사람이 있으니, 첫째는 결정되지 않은 과보를 결정된 과보로 만들며, 현생에 받을 과보를 다음 생에 받을 과보로 만들며, 가벼운 과보를 중한 과보로 만들어서 인간에서 받을 과보를 지옥에서 받는 것이다. 둘째는 결정된 과보를 결정되지 않은 과보로 만들며, 다음 생에 받을 것을 현생에 받게 하며, 중한 과보를 가볍게 만들어서 지옥에서 받을 것을 인간에서 가볍게 받는 것이다. 이러한 두 사람이 하나는 어리석고 하나는 지혜로우며, 지혜 있는 이는 가볍게 하고 어리석은 이는 무겁게 한다.
선남자야, 두 사람이 왕에게 죄를 지었을 때에 권속이 많은 이는 죄가 가벼워지고, 권속이 적은 이는 가벼운 죄도 무거워진다. 어리석고 지혜로운 사람도 그와 같아서 지혜로운 이는 선한 업이 많으므로 중한 업도 가볍게 받고, 어리석은 이는 선한 업이 적으므로 가벼운 업도 무겁게 받는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살이 쪄서 건장하고 한 사람은 여위었다. 함께 수렁에 빠졌을 때 건장한 이는 나올 수 있으나 여윈 이는 점점 빠지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두 사람이 함께 독약을 먹었을 때에 한 사람에게는 주문의 힘과 아가타(阿伽陀)약3)이 있고 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면, 주문과 약이 있는 이는 독약이 해치지 못하고 없는 이는 먹고 나서
곧 죽는다.
선남자야, 두 사람이 모두 즙[漿]을 많이 먹었을 때에, 한 사람은 화기가 성하고 한 사람은 화기가 미약하다면, 화기가 성한 이는 능히 소화하지만 화기가 미약한 이는 병이 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두 사람이 함께 임금의 옥에 갇혔을 때에 한 사람은 지혜가 있고 한 사람은 어리석다면, 지혜 있는 이는 놓여날 수 있지만 어리석은 자는 놓여날 기약이 없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두 사람이 함께 위험한 길을 갈 때에 한 사람은 눈이 잘 보이고 한 사람은 소경이라면, 눈이 잘 보이는 사람은 걱정 없이 잘 가지만 소경은 구렁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두 사람이 함께 술을 먹을 때에 한 사람은 양이 크고 한 사람은 양이 적다면, 양이 큰 사람은 먹어도 근심이 없지만 양이 적은 사람은 먹는 대로 걱정이 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두 사람이 함께 원수와 싸울 때에 한 사람은 갑주로 몸을 무장하고 한 사람은 맨몸이라면, 갑주로 무장한 이는 원수를 파하지만, 맨몸인 이는 면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또 두 사람이 함께 더러운 것이 옷에 묻었을 때에, 한 사람은 알고 곧 빨았으나 한 사람은 알고도 빨지 않는다면, 빤 사람은 옷이 깨끗하지만 빨지 않은 사람은 옷이 점점 더러워지는 것과 같다.
또 두 사람이 모두 수레를 탔을 때에, 하나는 바퀴가 있고 하나는 바퀴가 없다면, 바퀴가 있는 것은 마음대로 가지만, 바퀴가 없는 것은 한 발자국도 가지 못한다.
또 두 사람이 모두 먼 길을 떠날 때에 한 사람은 양식이 있고 한 사람은 그냥 간다면 양식이 있는 이는 무사하게 지나갈 수 있지만, 그냥 가는 이는 지나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또 두 사람이 함께 도적에게 겁탈을 당하였을 때에, 한 사람은 보배 광이 있고 한 사람은 광이 없다면, 보배 광이 있는 이는 근심이 없지만 광이 없는 이는 근심이 되는 것과 같다. 어리석은 이와 지혜 있는 이도 그와 같아서, 선한 광이 있는 이는
무거운 업도 가볍게 받고 선한 광이 없는 이는 가벼운 업도 무겁게 받는다.”
사자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모든 업이 모두 결정된 과보를 얻는 것도 아니며, 모든 중생이 반드시 받는 것도 아니라면 세존이시여, 어떻게 중생이 현세에서 받을 가벼운 업보를 지옥에서 무겁게 받으며, 지옥의 무거운 업보를 현세에 가볍게 받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온갖 중생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혜 있는 이며, 둘째는 어리석은 자이다. 만일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으면 지혜가 있다고 할 것이며, 몸도 계율도 마음도 지혜도 닦지 않으면 어리석다고 한다.
어떤 것을 말하여 몸을 닦지 않는다고 하는가? 만일 5정(情)의 감관을 거두어들이지 못하면 몸을 닦지 못한다 하고, 일곱 가지 깨끗한 계율[淨戒]을 받아 지니지 못하면 계행을 닦지 못한다고 한다. 마음을 조복하지 못하므로 마음을 닦지 못한다 하고, 성인의 행을 익히지 못하므로 지혜를 닦지 못한다고 한다.
또 몸을 닦지 못한다고 함은 청정한 계율의 자체를 구족하지 못한 것이며, 계율을 닦지 못한다고 함은 여덟 가지 부정한 물건을 받아 두는 것이다. 마음을 닦지 못한다고 함은 세 가지 모양[三相]4)을 닦지 못하는 것이며, 지혜를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범행을 닦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몸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몸을 관찰하지 못하고 빛을 관찰하지 못하고 색상(色相)을 관찰하지 못하고 몸의 모습을 관찰하지 못하고 몸에 딸린 것[身數]5)을 알지 못하며, 이 몸이 여기로부터 저기에 이르는 것을 알지 못하여 몸이 아닌 데서 몸이라는 상(相)을 내고 색이 아닌 데에 색이라는 상을 짓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몸과 몸에 딸린 것에 탐착함을 이름하여 몸을 닦지 못한다고 한다.
계율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만일 하열한 계를 받으면 계율을 닦는다 고 하지 못하니 한쪽으로 치우친 계율[邊戒]이나 자기의 이익을 위한 계율이나 자기만 조율하는 계율[自調戒]을 받아 가지면 중생들을 널리 안락하게 하지 못하며, 위없이 바른 법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고 천상에 나서 5욕락을 받기 위한 것은 계율을 닦는다고 하지 못한다.
마음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산란하여
자기의 경계를 전일하게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의 경계란 것은 4념처(念處)이며 다른 경계는 5욕락이니, 4념처를 닦지 못하면 마음을 닦지 못한다고 하며, 나쁜 업 가운데서 마음을 잘 보호하지 못하면 지혜를 닦지 못한다고 한다.
또 몸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이 몸이란 것이 무상하고 머물러 있지 않고 위태하고 연약하고 시시각각 멸하는 것이어서 마군의 경계인 것을 깊이 관찰하지 못하는 것이다. 계율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시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며, 마음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선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지혜를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반야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하는 것이며,
몸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나의 몸과 나의 몸에 딸린 것을 탐착하여 나의 몸은 항상하여 변함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계율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몸을 위하여 10악업을 짓는 것이다. 마음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나쁜 업 가운데서 마음을 거두지 못한 것이며, 지혜를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마음을 거두지 못하므로 선한 법 악한 법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몸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나라는 소견을 끊지 못한 것이며, 계율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계율에 집착함[戒取]을 끊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탐욕과 성내는 업을 지어서 지옥으로 향하는 것이며, 지혜를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마음을 끊지 못하는 것이다.
또 몸을 닦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몸이 비록 허물은 없더라도 항상 원수가 되는 줄을 관찰하지 못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남자에게 원수가 항상 따라다니면서 짬을 엿보면 지혜 있는 이는 알아차리고 마음을 두어 방비하니, 방비하지 않으면 해를 받는 것과 같다.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항상 음식과 차고 더움을 따라 보호하여 기르는데, 그렇게 보호하여 기르지 않으면 곧 무너진다.
선남자야, 저 바라문이 불을 섬길 때에 매번 향과 꽃으로 공양하고 찬탄하고 예배하며 100년 동안을 섬기는데, 만일 한 번만
닿아도 곧 사람의 손을 데이고 만다. 이 불을 그렇게 공양하지만 조금도 섬기는 이의 은혜를 갚을 생각이 없는 것과 같다.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여러 해를 두고 좋은 향과 꽃과 영락과 의복과 음식과 와구와, 병나면 의약으로 공급하더라도 어쩌다가 안으로나 밖으로나 나쁜 인연을 만나기만 하면 곧 파멸하여 버리고 지난날 의복과 음식으로 이바지한 은혜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어떤 임금이 네 마리 독사를 기를 때에 한 궤짝에 넣어서 어떤 사람에게 맡겨 기르게 하면, 네 마리 중에서 한 마리가 성을 내어도 사람을 해치므로 이 사람이 항상 무서워서 먹을 것을 구하여 때에 맞춰 수호하는 것과 같다.
모든 중생의 4대라는 독사도 그와 같아서 1대만 성을 내어도 곧 몸을 망가뜨린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오래도록 병이 들었으면 마땅히 지성으로 의원을 구하여 치료하여야 한다. 만일 부지런히 구원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의심 할 나위가 없다.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항상 마음을 거두어서 방일하지 않게 하여야 하며 만일 방일하면 곧 소멸하고 무너진다.
선남자야, 마치 굽지 않은 그릇[坏甁]은 비바람을 맞거나 때리고 던지거나 밟고 누르는 것을 견디지 못하듯이,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기갈과 더위와 추위와 비와 바람과 때리고 얽어매고 심하게 꾸짖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선남자야, 부스럼이 곪지 않았을 때에는 잘 감싸서 사람이 건드리지 못하게 하여야 하며 만일 건드리면 매우 고통스러운 것처럼 중생들의 몸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노새가 새끼를 배면 제 몸을 해롭게 하는데, 중생들의 몸도 그와 같아서 속에 풍(風)이나 냉(冷)이 있으면 고통을 받는다. 선남자야, 파초가 열매를 맺으면 말라죽듯이 중생들의 몸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또 파초는 속에 굳은 고갱이가 없듯이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뱀과 쥐와 이리가 각각 서로 원수라는 마음을 내듯이 중생의 4대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거위가 무덤을 좋아하지 않듯이 보살도 그러하여 몸이라는 무덤에 탐착을 내지 않는다. 선남자야, 전다라가 7대를 계속하여 그 업을 버리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듯이,
이 몸의 종자도 그러하여 종자와 정혈(精血)이 궁극적으로 부정한 것이며 부정한 까닭에 부처님과 보살들이 천하게 꾸짖는다. 선남자야, 이 몸은 마라야(摩羅耶)산6)에서 전단을 내는 것과 같지 않으며 우발라꽃[優鉢羅花]ㆍ분다리꽃[芬陀利花]ㆍ첨파꽃[瞻婆花]ㆍ마리가꽃[摩利迦花]ㆍ바사가꽃[婆師迦花]을 내지 못하고 아홉 구멍에서는 농혈과 부정한 것이 항상 흐르며 난 곳은 더럽고 추하고 누추하여 싫어할 만하며 항상 벌레들과 함께 있다.
선남자야, 세간에서 아무리 훌륭하고 정결한 숲 동산이라도 송장이 그 가운데 이르면 부정해져서 여러 사람이 모두 버리고 좋아하지 않는다. 색계(色界)도 그와 같아서 비록 깨끗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몸이 있는 까닭에 부처님과 보살들이 모두 버리신다. 선남자야, 만일 이런 관찰을 하지 못하면 몸을 닦지 않는다고 이름한다.
계율을 닦지 않는다고 함은, 선남자야, 계율은 모든 선한 법의 사다리이며 모든 선한 법의 근본이니 마치 땅이 모든 나무들이 나는 근본인 것과 같으며, 계율은 모든 선근을 인도하는 우두머리이니 장사치의 두목이 여러 장사꾼을 인도하는 것과 같다.
계율은 모든 선한 법의 승리의 깃발이니 제석천왕이 세우는 승리의 깃발과 같으며, 계율은 능히 일체의 악한 업과 세 가지 나쁜 세계를 영원히 단절하고 능히 나쁜 병을 치료하는 약 나무와 같으며, 계율은 생사의 험한 길을 걸어가는
양식이며 계율은 번뇌의 도둑을 쳐부수는 병장기이며 계율은 번뇌의 독사를 없애는 주문이며 계율은 나쁜 업을 건네는 다리라고 관찰해야 한다. 만일 이렇게 관찰하지 못하면 계율을 닦는다고 이르지 못한다.
마음을 닦지 않는다 함은, 마음은 경솔하고 조급하고 요동하는 것이어서 붙잡기 어렵고 조복하기 어려우며, 멋대로 달아나기는 사나운 코끼리 같고, 잠깐잠깐 신속하기는 번갯불 같고, 경망하여 가만있지 못함은 원숭이 같다. 요술 같고 아지랑이 같아서 모든 악의 근본이 되며 5욕락으로도 만족하지 못함은 불이 땔나무를 얻은 것 같고, 바다가 여러 강물을 삼키는 것 같고, 만다(曼陀)산에 초목이 무성한 것 같고,
생사의 허망함은 관찰하지 못하고 탐을 내다가 환난에 부딪치는 것은 고기가 미끼를 삼키는 것 같으며, 항상 앞서서 인도하면 모든 업이 따라오는 것은 마치 어미조개 [貝母]가 새끼들을 인도하는 것과 같다. 5욕을 탐하고 열반을 좋아하지 않음은 마치 낙타가 꿀을 먹고 죽음에 이르도록 꼴[芻草]을 돌아보지 않는 것과 같고, 현재의 욕락만 탐착하고 뒷날의 허물을 관찰하지 못함은 소가 여린 싹을 먹느라고 채찍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과 같으며, 25유(有)로 두루 돌아다니는 것은 강한 바람이 도라(兜羅)솜을 날리는 것과 같다.
구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만족함을 모르는 것은 지각없는 사람이 뜨겁지 않은 불을 구하는 것 같고, 매양 생사를 좋아하고 해탈을 좋아하지 않음은 임바(紝婆)벌레가 임바나무를 좋아하듯 하며, 미혹하여 생사의 더러움에 애착함은 옥중의 죄수가 옥졸 여인을 좋아하는 것 같고 뒷간에 기르는 돼지가 부정한 데 있기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이렇게 관찰하지 못하는 것을 일러 마음을 닦지 않는다고 한다.
지혜를 닦지 않는다고 함은, 지혜는 큰 세력을 가진 것이 금시조와 같아서 악한 업을 깨뜨리며 무명의 어둠을 파함이 햇빛과 같으며, 5음의 나무를 뽑는 것은 홍수가 물건을 떠내려 보내듯 하고, 나쁜 소견을 불사름은 맹렬한 불과 같다. 지혜는 온갖 선한 법의 근본이며 부처님과 보살의 어머니가 되는
종자이니 이렇게 관찰하지 못하면 지혜를 닦는다고 이르지 않는다.
선남자야, 제일의(第一義) 중에서 만일 몸[身]ㆍ몸의 모양[身相]ㆍ몸의 인[身因]ㆍ 몸의 과[身果]ㆍ몸의 모임[身聚]ㆍ몸이 하나임[身一]ㆍ몸이 둘임[身二]ㆍ이 몸ㆍ저 몸ㆍ몸이 멸함ㆍ몸이 평등함[身等]ㆍ몸으로 닦음[身修]ㆍ닦는 이[修者]를 본다면 이렇게 보는 이는 몸을 닦지 않는다고 이른다.
선남자야, 만일 계율ㆍ계율의 모양ㆍ계율의 인ㆍ계율의 과ㆍ상계(上戒)ㆍ 하계ㆍ계율의 모임ㆍ계율이 하나임ㆍ계율이 둘임ㆍ이 계율ㆍ저 계율ㆍ계율이 멸함ㆍ계율이 평등함ㆍ계율로 닦음ㆍ닦는 이ㆍ계바라밀을 본다면 이렇게 보는 이는 계율을 닦지 않는다고 이른다.
만일 마음ㆍ마음의 모양ㆍ마음의 인ㆍ마음의 과ㆍ마음의 모임ㆍ마음[心王]ㆍ마음의 헤아림[心數]ㆍ마음이 하나임ㆍ마음이 둘임ㆍ이 마음ㆍ저 마음ㆍ마음이 멸함ㆍ마음이 평등함ㆍ마음으로 닦음ㆍ닦는 이ㆍ상심(上心)ㆍ중심ㆍ하심ㆍ선한 마음ㆍ악한 마음을 본다면 이렇게 보는 이는 마음을 닦지 않는다고 이른다.
선남자야, 만일 지혜ㆍ지혜의 모양ㆍ지혜의 인ㆍ지혜의 과ㆍ지혜의 모임ㆍ지혜가 하나임ㆍ지혜가 둘임ㆍ이 지혜ㆍ저 지혜ㆍ지혜의 멸함ㆍ지혜의 평등함ㆍ상품 지혜ㆍ중품 지혜ㆍ하품 지혜ㆍ둔한 지혜ㆍ예리한 지혜ㆍ지혜로 닦음ㆍ닦는 이를 본다면 이런 소견이 있는 이는 지혜를 닦지 않는다고 이른다.
선남자야, 만일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지 않으면 이런 사람은 작은 악업에도 크게 나쁜 과보를 받으며 공포에 떨기 때문에 항상 ‘나는 지옥에 속하니 지옥으로 갈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지혜 있는 이가 지옥의 고통을 말하는 것을 듣고도 ‘쇠로는 쇠를 치고 돌로는 돌을 치고 나무는 나무를 치고 불에 있는 벌레는 불을 좋아하듯이 지옥에 가는 몸은 지옥과 같을 것이며 설사 지옥과 같다 한들 괴로울 것이 무엇이겠는가?’하고 생각한다.
마치 파리가 가래침에 붙어 벗어나지 못하듯이 이 사람도 그러하여 조그만 죄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며, 처음부터 뉘우치는 마음도 없고 선한 일을 닦지도 못하며 있는 허물을 숨기기만 하므로
비록 지난 세상에 지었던 선한 업이 있어도 이 죄에 더럽혀져 이 사람의 현세에 받을 가벼운 업보도 지옥의 중대한 나쁜 과보로 변한다.
선남자야, 적은 물에 소금 한 되를 넣으면 너무 짜서 마실 수 없듯이 이 사람의 죄업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남에게 빚 1전(錢)을 지고도 갚지 않으면 몸이 속박을 당하고 많은 고통을 받듯이 이 사람의 죄업도 그와 같다.”
사자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무슨 까닭에 현세에서 받을 가벼운 업보를 지옥에서 받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들이 다섯 가지 일을 갖추면 현세에 받을 가벼운 업보를 지옥에서 받게 된다. 무엇이 다섯 가지 일인가? 첫째는 어리석은 탓이며, 둘째는 선근이 적은 탓이며, 셋째는 악한 업이 무거운 탓이며, 넷째는 참회하지 않은 탓이며, 다섯째는 근본 선업을 닦지 못한 탓이다.
또 다섯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나쁜 업을 닦아 익힌 탓이며, 둘째는 계율의 재산이 없는 탓이며, 셋째는 모든 선근을 멀리 여읜 탓이며, 넷째는 몸의 계행과 마음의 지혜를 닦지 않은 탓이며, 다섯째는 나쁜 동무를 가까이 한 탓이다. 선남자야, 이런 까닭에 현세에서 받을 가벼운 업보를 지옥에서 무겁게 받는 것이다.”
사자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지옥에서 받을 과보를 바꾸어 이 세상에서 가볍게 받습니까?”
“선남자야, 만일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아 익히되 앞서 말한 바와 같이하며, 모든 법이 허공과 같은 줄을 관찰하면서 지혜도 보지 않고 지혜로운 이도 보지 않고 어리석음도 보지 않고 어리석은 자도 보지 않고 닦음도 보지 않고 닦는 이도 보지 않으면, 그런 이는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능히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을 것이며 이런 사람은 지옥에서 받을 업보를 현세에서 가볍게 받는다.
이런 사람은 설사
중대한 나쁜 업을 지었더라도 생각하고 관찰하여 가볍게 하며, ‘나의 업이 비록 무겁더라도 선한 업만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마치 목화가 100근이라도 순금 한 냥을 대적하지 못하며 항하수에 소금 한 되를 넣더라도 짠맛이 없어서 마시는 이가 알지 못하며 억만 부자가 비록 남의 빚을 천냥 만냥을 졌더라도 그를 속박하여 괴로움을 받게 하지 못할 것이며
큰 코끼리가 쇠사슬을 끊고 자재하게 달아나듯이, 지혜 있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항상 ‘나의 선근은 크고 나쁜 업은 미약하니 내가 능히 모두 드러내어 참회하여 나쁜 업을 없애고 지혜를 닦으면 지혜의 힘은 커지고 무명의 힘은 적어질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선지식을 친근하여 바른 지견을 닦으며, 12부경을 배우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경전을 배우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는 이를 보면 공경하는 마음을 내고 겸하여 의복과 음식과 방과 가구와 약과 꽃과 향으로 공양하고 찬탄하고 존중하며,
이르는 곳마다 그의 선한 일을 칭찬하고 잘못을 말하지 않으며 삼보께 공양하고 방등대승의 대반열반경을 공경하며 여래는 항상하여 변함이 없고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는 줄을 믿으면, 이런 사람은 능히 지옥의 중한 업보를 현세에서 가볍게 받는다.
선남자야, 이런 이치로 온갖 업이 모두 결정된 과보가 있는 것이 아니며 모든 중생이 반드시 받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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