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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445 불교 (대당내전록/大唐內典錄) 1권

by Kay/케이 2023.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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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당내전록(大唐內典錄) 1

 

대당내전록 서문


장안[京師] 서명사(西明寺)의 석씨(釋氏: 道宣) 지음


대개 원래 정법(正法)을 보배라 일컬음은 실로 그 까닭이 있으니, 참으로 이것은 속세를 벗어나게 하는 나루터이고, 진여의 세계로 들어가는 수레바퀴 자국이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 동안 영웅과 성인들이 부모와 같이 우러러보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해와 달처럼 융성하게 된 것이다.
어찌 나의 전도됨을 없애 주는 방편과 생멸이 없는 보위(寶位)를 무궁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선원(仙苑)1)에서 최초의 설법을 한 이래로 금하(金河)2)에서 고요히 열반에 들 때까지 온갖 문자를 펴서 번뇌에 덮인 중생을 인도하였으니, 근기(根機)에 따라서 교화의 방편을 세우고 본성과 욕망에 따라 가르침을 펼쳐 내어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대천세계(大千世界)를 총괄하였다. 그러므로 그 이치를 받아들인 사람은 헐뜯기가 어렵고, 그 근본을 전수받은 사람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존자(尊者) 가섭(迦葉)이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네 상자의 경전을 모았고, 대지(大智) 문수(文殊)는 위표(圍表)에서 팔장(八藏)을 결집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은택이 후세에까지 흘러서 부처님의 가피를 입게 하였고, 7만 년의 수명을 다하게 되었으며, 그 여파가 동쪽으로 전해져 6백년의 아름다운 운수를 누리게 되었다. 상세히 살펴보니 처음 범문(梵文)의 분량은 1억 마리의 코끼리에 실어야 할 정도였는데 중국말로 번역한 것이 대략 5천여 권이다.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와중에도 다시 계승되었고, 경박한 세상에서도 서로 전해졌으므로 권(卷)ㆍ부(部)ㆍ단(單)ㆍ중(重)ㆍ의(疑)ㆍ위(僞)ㆍ범(凡)ㆍ성(聖)을 진열하여 집록(集錄)을 만들기 위해 30여 가를 넘나들면서 그들 각각의 헌장(憲章)을 통괄하여 검증하고 살피다보니 번잡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여기에서 여러 가지 저술들을 비슷한 것끼리 구분하고 합쳐서 1부(部)를 이루었는데, 열 개의 조례로 나누고 조목에 의거해서 열(列)을 나타내니 서로 차례가 뒤바뀌거나 빠짐이 없다. 문장은 비록 겹쳐지고 장황하지만 그 뜻의 혼란스러움은 면하게 되었다.
대개 위대한 성인(聖人)의 올바른 가르침을 경(經)이라고 하고, 경을 풀이하고 성인의 뜻을 서술한 것을 논(論)이라고 하니, 이 경론은 모두 막힌 것을 옮겨 주는 방책이고, 정법에 회합하는 격언이다. 그러니 보배로 여겨 존중하면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것을 기약할 수 있고, 의심하고 비방하면 허물이 생사윤회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시험삼아 자세하게 가늠하고, 나머지도 따라서 다시 진술하며 서문을 쓰노라.

역대중경전역소종록(歷代衆經傳譯所從錄) 제1
시대별로 따로 번역된 경과 사람들이 저술한 것으로 법에 통하지 않은 것이 없고 모두 경에 수록되었기 때문에 경전을 따라 나왔다고 말한 것이다.
역대번본단증인대존망록(歷代翻本單重人代存亡錄) 제2
전후가 다르게 번역되었거나 번역한 사람들의 연대가 같지 않거나, 또 난리를 만나서 승려와 속인들의 구분이 뒤섞인 것을 말한 것이다. 지금 다 모아 중역(重譯)과 단역(單譯)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관련된 서술을 알 수 없는 것은 실역(失譯)으로 전하게 하였다.
역대중경총촬입장록(歷代衆經總撮入藏錄) 제3
경의 부(部)가 번다하거나 강요(綱要)가 갖추어 나열된 것을 말한 것이다. 질(帙)에 따라 입장(入藏)되어 서로 종류별로 모았으므로 대승과 소승의 두 가르침[乘]로 나누고, 중역(重譯)과 단역(單譯)의 두 번역으로 나타냈다.
역대중경거요전독록(歷代衆經擧要轉讀錄) 제4
전독(轉讀)하여 찾아 익히거나 요점을 넓히는 데 힘쓴 것이다. 번잡한 문장과 중복되는 뜻은 그 때를 말하지 않았으므로 부(部)에 따라 요점을 들고 도에 통하는 것을 간략히 취했다. 그 밖의 중본(重本)은 존재하지만 아직 넣지 않았다.
역대중경유목궐본록(歷代衆經有目闕本錄) 제5
여러 목록을 통틀어 검토하고 원본을 교감한 것이다. 나누어진 것에 따라 따로 번역한 것이 없어서 두루 통할 수 없기 때문에 특별히 서목(書目)을 나타내 찾게 하였다.
역대도속술작주해록(歷代道俗述作注解錄) 제6
성인의 말씀에 주(注)를 달고 서술하여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을 통하게 한 것이다. 전에 이미 있었으나 충분히 밝히지 못한 것을 여기에서 제목별로 수록하여 찾아보기 쉽게 하였다.
역대제경지류진화록(歷代諸經支流陣化錄) 제7
별도로 생긴 여러 경(經)은 시속(時俗)에 어긋나고 부합되는 것이 광본(廣本)에 통하지는 못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초심자(初心者)가 접할 때에는 한 사구(四句)의 게송이라도 가볍게 삭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대소출의위경론록(歷代所出疑僞經論錄) 제8
정법(正法)의 깊고 원대한 뜻을 평범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도달하지 못하지만 세속을 따라 중생들을 교화하면 많은 사람들이 진종(眞宗)을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마치 따로 표시하지 않아도 구슬과 돌이 넘치도록 드러나는 것과 같다.
역대중경록목종시서(歷代衆經錄目終始序) 제9
경의 목록이 시대별로 나와서 반드시 그 근원을 알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역대중경응감흥경록(歷代衆經應感興敬錄) 제10
경전이 중국에서 번역되어 감응함이 상서로움을 징험하였고 부처님의 가피로 믿음을 증장하게 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전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대당내전록(大唐內典錄) 제1권


석씨(釋氏:道宣) 지음


1. 역대중경전역소종록(歷代衆經傳譯所從錄)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대대로 제조(帝朝)를 거친 데에는 반드시 당시 임금이 성략(聲略)을 널리 전한 데 힘입은 후에 승속玄素이 갖추어짐에 의지하여 그 기틀을 열었다.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의로운 방법을 존중하여 진정으로 살피고 보호하였으며, 어리석은 임금은 그 인륜의 법도를 따라서 서로 좇았을 뿐이었다. 따라서 처음 후한(後漢)에서 거당(巨唐)에 이르기까지 세상이 변하고 인정이 경박하게 되어 근본과 계책이 다른 것이 없었다. 그러나 모두 지극한 가르침을 흠모하고 받들어 번뇌를 없애는 으뜸의 목표로 삼았으며, 불법을 체득하여 죽고 사는 본래의 근거를 비추어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범망(梵網)1)을 전하여 대대로 더욱 아름답게 빛나게 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불법이 빠르게 전해져 시대마다 끊어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서번(西蕃)과 오천축국(五天竺國)은 범어天言:梵語를 숭상했다. 그러나 중국의 구주(九州)는 애초에 새의 발자국 모양을 따랐기 때문에 범어의 문자나 말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서 생각을 전할 길이 끊어지게 된 것이다. 범어의 팔체(八體)2)와 육문(六文)3)은 중국[大夏]에서는 그 유래가 드물게 보이나, 예전에 “중역(重譯)이 여기에서 보인다”고 들었다. 그러나 대개 나라의 역사는 『예경(禮經)』과 더불어 질박한 문장을 번갈아 썼고, 부처님 말씀은 세속의 전적과는 말과 이치가 하늘과 같이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펴실 때 말씀으로 인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것이다. 어리석음을 열어 깨우쳐 주고 거친 본성을 풀어 주며, 의심나는 것을 해결해 주고 막힌 것을 제거해 주는 것은 문자의 화려함에 달려있지 않고 책에도 있지 않다. 부처님의 의도는 인정과 도리의 어둡고 밝은 것을 계도해 주고, 신령스런 생각의 기민(機敏)함에 도달하도록 하는 데 있으니, 이것이 그 이치이다.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해 보아라. 내가 마땅히 너희를 위해서 분별하고 해설해 줄 것이다.”라고 한 것이 성인이신 부처님의 말이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즐겨 듣기를 원합니다. 오직 세존께서 분별하여 해설해 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한 것은 법을 받는 것이다. “말은 뜻을 얻는 것을 중히 여기고 번거로움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바른 깨달음만 논하고 문장을 대응하여 서술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경의 근본이다.
번역이 지방의 풍속을 따르고 세속을 따라 전해져, 근거 없는 거짓에 빠져 잃어버리는 것이 많다. 그래서 도안(道安)이 저술한 다섯 가지 실수五失는 따르기 쉽지만 언종(彦綜)의 속사(屬詞) 여덟 가지 예[八例]는 미치기 어려우니, 이것이 참되게 증명하는 것이다. 그 밖의 여러 풍속과 습관은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지금 저 제세(帝世)의 현명한 번역을 수록하고, 아울러 그때의 임금이 믿음을 허물고 한쪽으로 치우쳐 다툼을 일삼은 것을 드러내어서 처음 기록으로 삼는다. 한편 한(漢)ㆍ진(晉)ㆍ수(隋)ㆍ당(唐)의 운수가 천하에 크게 같고, 정월과 초하루에 법문을 들으려고 모인 것은 한결같이 똑같았다. 위(魏)ㆍ송(宋)ㆍ제(齊)ㆍ양(梁) 등의 시대엔 조정의 땅이 나뉘고 무너져 중국과 오랑캐가 함께 정치에 참여하여 번역한 경전이 아울러 나오게 되었다. 부(部)가 더욱 자세해지고 전해진 풍속도 뒤가 끊어지고 앞을 뛰어넘는 데에 이르게 되었으니, 곧 널리 세상에 퍼져 그 빛이 더욱 멀리까지 퍼지게 되었다. 지금은 그 시대에 따라서 편집하고 승려와 속인이 편찬한 것을 그대로 서술하여 뒤에 덧붙이니 장래에는 그와 같은 사정을 함께 보기를 바란다. 모두 18대(代)에 걸쳐 번역된 여러 경전은 전부 2,232부이다. 7,200권. 실역경(失譯經) 310부 538권.

후한 시대에 전역(傳譯)한 스님과 속인 12명이 번역한 경(經)ㆍ율(律) 등 334부416권. 실역경(失譯經) 125부 148권

전위(前魏) 시대에 전역한 스님과 속인 6명이 번역한 경ㆍ율 등 13부24권
남오(南吳) 손씨(孫氏) 시대에 전역한 스님과 속인 4명이 번역한 경(經)ㆍ전(傳) 등 148부185권. 실역경 110부 291권
서진(西晉)시대에 전역한 스님과 속인 13명이 번역한 경ㆍ계(戒) 등 451부717권. 실역경 8부 15권
동진(東晋)시대에 전역한 스님과 속인 27명이 번역한 경ㆍ전(傳) 등 263부585권. 실역경 53부 56권
전진(前秦) 부씨(符氏) 시대에 전역한 스님 8명이 번역한 경ㆍ전 등 40부239권
서진(西秦) 걸복씨(乞伏氏) 시대에 전역한 스님 1명이 번역한 경 14부21권. 실역경 8부 11권
후진(後秦) 요씨(姚氏) 시대에 전역한 스님 8명이 번역한 경ㆍ전 124부662권
북량(北涼) 저거씨(沮渠氏) 때 전역한 스님과 속인 8명이 번역한 경전 32부224권. 실역경 5부 17권을 아우른다.
송(宋) 시대에 전역한 스님과 속인 23명이 번역한 경전 210부490권
전제(前齊) 때 전역한 스님과 속인 19명이 번역한 경전 47부346권
양조(梁朝) 때에 전역한 스님과 속인 21명이 번역한 경ㆍ율ㆍ전(傳) 등 90부780권
후위(後魏) 원씨(元氏) 때 전역한 스님과 속인 13명이 번역한 경ㆍ논(論)ㆍ전(傳)ㆍ녹(錄) 87부302권
후제(後齊) 고씨(高氏) 때 전역한 스님과 속인 2명이 번역한 경ㆍ논 7부53권
후주(後周) 우문씨(宇文氏) 때 전역한 스님과 속인 11명이 번역한 경ㆍ논ㆍ천문(天文) 등 30부104권
진(陳) 시대에 전역한 스님과 속인 3명이 번역한 경ㆍ논ㆍ전ㆍ소(疏) 등 40부347권
수(隋)나라 때 전역한 스님과 속인 20여 명이 번역한 경ㆍ논 등 90여 부510 여권

지금의 조정에서 전역한 스님 등 11명이 번역한 경ㆍ논 등 200여 부1, 500 여권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국神州으로 펴짐으로부터 9대(代)에 걸쳐 옮겨오기까지 조정은 참과 거짓, 선비와 잡된 소인, 중화와 오랑캐로 갈라졌는데, 오량(五涼)ㆍ사연(四燕)ㆍ삼진(三秦)ㆍ이조(二趙)가 그것이다. 하촉(夏蜀)은 치우친 곳에 자리 잡고, 진(晉)ㆍ송(宋)이 강음(江陰)4)을 차지하자, 경전의 번역이 지방에 따라 나왔다. 다만 열국(列國)을 아울러 바로잡은 나라가 전해져 온 번역만을 취하여 자연히 그 나머지를 말하지 않게 되었으니, 법통을 잇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대에 살펴보는 사람들이 그 까닭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1) 후한전역불경록(後漢傳譯佛經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가르침이 두루 흐르게 된 근원은 진실로 본래 희주(姬周) 때에 일어났으나, 진(秦)나라 때에 거의 사라지고 남겨진 자취만이 간간이 나왔다. 유향(劉向)5)이 천록각(天祿閣)에서 글을 교정할 때 자주 불경을 보게 되었다. 이 일에 따라 헤아려 보건대 다만 한(漢)의 밝은 시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다른 시대에도 특별히 드러나는 것이 있었다. 지금 빛나는 풍속이 중흥되는 시초를 서술하였으므로 그 시작을 나열한다. 경(經)은 후한(後漢) 효명(孝明)황제 때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황제의 휘(諱)는 장(莊)이고, 묘호(廟號)는 현종(顯宗)이니, 광무(光武)황제의 넷째 아들이다. 정신은 깊고 대범하였으며 올바름을 거룩한 법칙으로 삼았다.
영평(永平) 7년(64) 밤 꿈에 신장이 장륙(丈六)인 금으로 된 사람[金人]이 목에 일륜(日輪)을 두르고 공중을 날아서 왔는데, 그 광명이 아름답게 궁전을 비췄다. 이튿날 아침 여러 신하들을 모아 꿈꾼 것을 점쳐 보게 했더니 박식한 학자인 부의(傅毅)가 나와서 대답하였다.
“제가 들으니 옛날 서방에 신이 있었는데 부처라고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보신 것은 반드시 이 분일 것입니다.”
황제가 옳다고 여겨서 기뻐하며 신령스런 상서로움에 감동했다. 그래서 사신 우림중랑(羽林中郞) 진경(秦景)박사와 그 제자 왕준(王遵) 등 열네 사람에게 조서를 보내 천축으로 가게 했다. 이들은 월지국(月支國)에서 사문 가섭마등(迦葉摩滕)과 축법란(竺法蘭)을 만나서 경(經)을 얻어서 베끼고 불상을 흰 말에 실어 낙양에 돌아왔다. 『한법본내전(漢法本內傳)』에 말한 것에 의하면, “이때에 5악(岳)과 18산(山)의 도관에 있는 모든 도사들이 표(表)를 올렸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황제는 서울 서쪽에 행전(行殿)을 설치하여 힘을 겨루도록 하였다. 도사들이 단을 설치하고 제물을 진설하고, 도경(道經)과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책을 단 위에 두고 불을 지펴 경전을 태웠으나 불타서 재가 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축문을 바쳐 간절히 빌었더니 경전이 불에 탔다. 남악도사(南岳道士) 저선신(褚善信)과 비숙재(費叔才)가 스스로 감복하여 죽자 나머지 도사 600여 명도 모두 불법에 귀의하여 출가하기를 구하니, 황제가 그것을 허락했다.
이 일로 비구와 비구니들을 널리 제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열 개의 절을 세웠고, 곧이어 이 땅에 백마사(白馬寺)를 세웠다. 모든 주마다 백마(白馬)의 은혜를 갚고자 앞 다투어 절을 세웠다. 장안의 옛 성의 청문(靑門) 길 왼쪽으로 2백여 걸음 정도 가면 중흥사(中興寺)가 있었고, 오른쪽은 곧 백마사의 남겨진 터이다. 축법란이 바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을 번역하여 난대(蘭臺)의 석실각(石室閣)에 봉함하였다.
이로부터 불교가 계속 이어져 구름처럼 일어났고, 사문과 신사(信士)들이 연이어 전파하고 번역하였다. 효환제(孝桓帝) 때에는 금과 은으로 불상을 만들었고, 효령제(孝靈帝) 광화(光和) 3년(180)에는 낙양 불탑사(佛塔寺)에 중대부(中大夫)를 보내 모든 사문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탱화를 걸고 향을 사르며 꽃을 뿌리고 등을 달게 하였다. 광화 7년(184)에 이르자 장각(張角) 등이 역모를 일으켜 그들의 내외 친인척과 권속들을 주살하였는데, 모두 노자(老子)와 요망한 무당이나 점치는 의원을 섬기는 이들은 모두 폐출하였지만, 그 가운데 부처님을 받들어 5계를 행하는 자가 있으면 죄가 연루되지 않도록 했다. 이 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이 바르고 참됨이 증명되자 진흙 밭에 있어도 검게 물들지 않았으며 갈아도 닳지 않았다. 어찌 요망하고 거짓된 티끌로 우리의 뜬구름에 물들게 하려 해도 정말로 물들여 무겁게 할 수 있겠는가?
진(秦)나라 때 사문 석리방(釋利防)으로부터 전한(前漢)의 유자정(劉子政) 이래로 비록 불경을 들어도 그 조목을 아는 이가 없었는데, 후한(後漢)에 와서야 비로소 목록을 정리하니, 곧 경전은 『사십이장(四十二章)』이 가장 처음이고, 스님은 가섭마등이 최초이다.
헌제(獻帝)의 건안(建安) 말년에 이르도록 그 기간이 152년이고, 열한 명의 군주를 거쳤다. 중국과 외국의 출가자와 속인들이 열두 명이 있는데, 모두 아울러 옛날에 남은 것을 모으고 먼저 빠진 것을 다시 보충하고, 예전의 실역(失譯)을 함께 아울렀다. 번역된 경과 율을 합치니 334부 416권이었다. 후한(後漢)의 경록(經錄)이 이 두루마리에서 나온 셈이다. 두루 고찰하는 사람이 고금(古今)의 경전이 흩어졌다가 모아진 것임을 알기 바라며, 법보(法寶)의 빛이 밝게 드날리고 융성하게 하기를 기대하겠다.
후한 사문 가섭마등(迦葉摩滕)1부 1권, 경(經)
사문 축법란(竺法蘭)5부 13권, 경
사문 안청(安淸) 자(字)는 세고(世高)176부 197권, 경
사문 지루가참(支婁迦讖)21부 63권, 경
우바새(優婆塞) 도위(都尉) 안현(安玄)2부 3권, 경
사문 축불삭(竺佛朔)2부 3권, 경
사문 지요(支曜)11부 12권, 경
사문 강거(康巨)1부 1권, 경
청신사(淸信士) 엄불조(嚴佛調)7부 9권, 경
사문 강맹상(康孟詳)6부 9권, 경
사문 석담과(釋曇果)1부 2권, 경
사문 축대력(竺大力)1부 2권, 경
제실역경(諸失譯經)은 125부 148권인데, 경(經)과 주문[呪]이 섞여 있다.

(1) 가섭마등(迦葉摩滕)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1권

위 경전은 후한 명제(明帝) 때에 중천죽국(中天竺國) 바라문(婆羅門) 사문 가섭마등이 번역한 것이다. 가섭마등은 혹 축섭마등(竺攝摩滕)이라고도 하는데 여러 기록에 번갈아 나오므로 무엇이 옳은지 자세하지 않다. 앞 시대에서 이에 대해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자세히 서술했다.
영평(永平) 10년(67)에 가섭마등은 한나라 사신 채음(蔡愔)을 따라 중국으로 돌아와 낙양[雒邑]에 이르러 백마사(白馬寺)에서 이 경을 번역하여 내놓았다. 기록에 따라 편술하면 곧 이 한(漢)나라 때 경전의 시조(始祖)가 된다.
『구록(舊錄)』에서는 “이 경은 본래 인도의 경전에서 간추린 것으로 원래는 대부(大部)로 번역되었다. 중요한 것을 추려 모은 것이 『효경(孝經)』 18장과 거의 같다.”고 하였다. 『도안록(道安錄)』6)에서는 “『구록』에서 나왔다”고 하였다.7) 주사행(朱士行)의 『한록(漢錄)』과 승우(僧祐)의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에도 실려 있다. 다만 대법(大法)이 처음 전해질 때에는 귀의하여 믿는 사람이 적어서 가섭마등은 불법에 대한 깊은 뜻은 감추고 번잡하게 많이 번역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가섭마등은 낙양에서 입적하였는데, 가섭마등이 이를 맡게 된 연유가 주사행(朱士行)의 『한록(漢錄)』과 『고승전(高僧傳)』과 여러 목록에 자세히 실려 있다.
『보창록(寶唱錄)』8)에는 “이것은 축법란(竺法蘭)이 번역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가섭마등과 함께 왔던 시기에 근거했을 뿐이다.

(2) 축법란(竺法蘭)
불본행경(佛本行經) 5권
십지단결경(十地斷結經) 4권혹은 8권이며, 주사행(朱士行)의 『한록(漢錄)』에 보인다.
이백육십계합이(二百六十戒合異) 2권『별록』에 보인다.
법해장경(法海藏經) 1권어떤 본에는 장(藏)자가 없다.
불본생경(佛本生經) 1권

이상 5부 13권은 중천축국(中天竺國) 사문 축법란과 가섭마등이 함께 와서 축법란이 간행하여 훗날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명제(明帝) 시대에 이를 번역하였는데, 처음에는 가섭마등과 함께 『사십이장경』을 번역했었고, 가섭마등이 입적하자 축법란 혼자서 번역을 끝마쳤다. 옛날 한무제(漢武帝)가 곤명지(昆明池)를 팔 때 바닥에서 회묵(灰墨)을 발견하고는 동방삭에게 묻자, 동방삭이 말하였다.
“제가 모르니 서역 사람에게 물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축법란이 이미 중국에 와 있었기에 쫓아가서 그것을 물어 보았다. 축법란이 대답하였다.
“이는 겁화(劫火)로 불탄 재입니다.”
동방삭이 징험하는 바가 있다고 말하여 신자들이 대단히 많아졌다. 또한 박사(博士) 진경(秦景) 등을 사신으로 갔다가 월지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전왕(優塡王)의 전단상사(栴檀像師)9)가 그린 네 번째 그림을 얻어서 낙양에 이르자 황제는 칙령를 내려 그것을 그리게 하고 서양(西陽) 성문과 현절릉(顯節陵)에 공양을 올렸다. 이렇게 단청[丹素]을 그리게 된 이래로 지금까지 흘러 행하게 됐다. 또 불법이 처음에 이도(異道)와 어긋나 다투게 되었는데, 그때의 일을 서술하여 『한법본내전(漢法本內傳)』 5권에 실었는데, 지은 사람은 정확하지 않지만 지금도 현존한다.

(3) 안세고(安世高)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 6권『지민도록(支敏度錄)』 서문과 『보창록』, 『별록』 등에서 나왔으며, 일명 『순도행경(順道行經)』이라고 한다.
대승위의경(大僧威儀經) 4권『별록』에 보인다. 새로 덧붙인 다른 번역본과는 같지 않다. 『승우록(僧祐錄)』의 실역(失譯) 부분에서는 2부 2권으로 나누었는데, 이 별록에서는 합친 것이 이것이다.
법구경(法句經) 4권『위의경(威儀經)』과 같다. 『별록』에 보이는데, 2부로 나뉘어 있다.
선행삼십칠품경(禪行三十七品經) 1권『보창록(寶唱錄)』에 보인다.
십보법경(十報法經) 2권『승우록』에서는 일명 『다증도장경(多增道章經)』이라 했고, 『구록』에서는 『장아함(長阿含)』에서 나왔다고 했다.
음지입경(陰持入經) 2권『별록』에서는 도안(道安)이 주를 달았다고 했다. 주사행(朱士行)의 『한록(漢錄)』과 『승우록』에도 보인다.
대안반수의경(大安般守意經) 2권도안(道安)은 『소안반경(小安般經)』이라 했고, 주사행의 『한록(漢錄)』ㆍ『승우록』ㆍ『이곽록(李廓錄)』에 보인다.
대안반경(大安般經) 1권도안이 주를 달았으며, 『승우록』에 보인다.
잡사십사편경(雜四十四篇經) 2권혹은 『잡경사십사편(雜經四十四篇)』이라고도 한다. 이미 이름을 밝히지 않아서 어떤 경(經)인지 알 수 없다. 도안은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이라고 했다. 『승우록』에 모두 실려 있다.
대도지경(大道地經) 3권처음 번역되었다. 도안은 주에서 이것은 『수행경(修行經)』의 초(抄)인데, 원래 중국략본(中國略本)이라고 하였다. 혹은 대(大)라는 글자가 없다.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 나왔으며, 『승우록』에 보인다.
도의발행경(道意發行經) 2권『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 나왔으며, 혹은 1권이다. 『도안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선경(禪經) 2권처음 번역되었다. 『별록』에 보인다.
무량수경(無量壽經) 2권처음 번역되었다. 『별록』에 나오는데 사문 담란(曇鸞)이 논(論)을 짓고, 주해(注解)하였다.
백육십품경(百六十品經) 1권『구록』에서는 『증일아함경』 160장(章)의 경이라 하였고, 『승우록』에 보인다.
대십이문경(大十二門經) 1권『별록』에서는 2권이라고 하였다. 『장아함경』에서 나왔다. 도안이 주를 달았고 『보창록』과 『승우록』 두 목록에 보인다.
소십이문경(小十二門經) 1권『장아함경』에서 나왔으며, 『보창록』과 『승우록』 두 목록에 보인다.
칠법경(七法經) 1권『구록』에서는 『아비담칠법행경(阿毘曇七法行經)』이라고 하였으며,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 나왔다. 혹은 다만 『칠법행경(七法行經)』이라고도 하며, 『승우록』에 보인다.
십사의경(十四意經) 1권『구록』에서는 『보살십사의경(菩薩十四意經)』이라 했다. 『승우록』에 보인다.
아비담구십팔결경(阿毘曇九十八結經) 1권『승우록』에 보인다.
명도오십교계경(明度五十校計經) 2권
난제가라월경(難提苛羅越經) 1권『승우록』에 보인다.
독부장자경(獨富長者經) 1권한편으로 『독부장자재물무부경(獨富長者財物無付經)』이라고 하고, 『무자부물경(無子付物經)』이라고도 한다. 『잡아함경』 46권에서 나왔다.
장자요뇌이처경(長者夭惱二處經)한편으로 『장자오뇌이처경(長者懊惱二處經)』이라고 하고, 『이처뇌경(二處惱經)』이라고도 한다. 이하는 모두 단권(單卷)이다.
유기장자회과경(由起長者悔過經)한편으로 『신기장자회과공불경(申起長者悔過供佛經)』이라고도 한다. 유기(由起)ㆍ신기(申起) 중 어떤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불위나구설근숙경(佛爲那拘說根熟經)한편으로 『위나구라장자설근숙경(爲那拘羅長者說根熟經)』이라고도 한다.
장자형제예불경(長者兄弟詣佛經)한편으로 『장자이사달다형제이인왕불소경(長者利師達多兄弟二人往佛所經)』이라고도 하며, 『중아함경』에 나왔다.
불신력구장자자경(佛神力救長者子經)
아나빈기화칠자경(阿那邠祁化七子經)『증일아함경』에서 나왔다.
십지거사팔성인경(十支居士八城人經)『중아함경』 제60에서 나왔다.
무외리거백아난경(無畏離車白阿難經)『잡아함경』 21권에서 나왔다.
수주원경(受呪願經)한편으로 『최승장자수주원경(最勝長者受呪願經)』이라고도 한다.
장자자제경(長者子制經)한편으로 『제경(制經)』이라고도 한다.
욱가거사견불문법성오경(郁伽居士見佛聞法醒悟經)한편으로 『수가타거사불위설법득성오경(修伽陀居士佛爲說法得醒悟經)』이라고 하며, 『잡아함경』에서 나왔다.
득비상관경(得非常觀經)한편으로 장자야수자(長者夜輸子)를 덧붙이기도 한다.
사두간경(舍頭諫經)처음 번역되었다. 『구록』에는 『사두간태자명이십팔수경(舍頭諫太子明二十八宿經)』이라고 하였다. 한편으로 『태자명성이십팔수경(太子明星二十八宿經)』이라고도 하고, 『호이경(虎耳經)』이라고도 한다.
출가인연경(出家因緣經)한편으로 불설(佛說)이라는 글자가 더 있으며, 단지 『출가경(出家經)』이라고도 한다.
불도전다라아출가경(佛度旃陁羅兒出家經)
순타사미경(純陁沙彌經)혹은 사문(沙門)이라는 글자로 쓰기도 하며, 『잡아함경』 24권에서 나왔다.
외도출가경(外道出家經)
정근사념처경(精勤四念處經)『잡아함경』 제29권에서 나왔다.
부모은난보경(父母恩難報經)한편으로 『난보경(難報經)』이라고도 하고, 『중아함경』에서 나왔다.
선사만족경(禪思滿足經)『아함경』에서 나왔다.
수식사경(數息事經)
선비요경(禪秘要經)『선요비치병경(禪要秘治病經)』에서 나왔다. 혹 비(秘)라는 글자가 없기도 하다.
세간언미색경(世間言美色經)『잡아함경』 24권에서 나왔다.
일체행불항안주경(一切行不恒安住經)『잡아함경』 34권에서 나왔다.
인수신입음경(人受身入陰經)『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 처음 권에서 나왔다.
다도견중생권(多倒見衆生經)한편으로 다(多)라는 글자가 없기도 한다. 『출요경(出曜經)』 제16권에서 나왔다.
인신사백사병경(人身四百四病經)『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 처음 권에서 나왔다.
인병의불능치경(人病醫不能治經)『수행도지경』에서 나왔다.
분별선악소기경(分別善惡所起經)
작독수부생경(斫毒樹復生經)『출요경(出曜經)』에서 나왔다.
선정방편차제법경(禪定方便次第法經)
아련야습선법경(阿練若習禪法經)『보살선법경(菩薩禪法經)』 제1에서 나왔다.
사백삼매명경(四百三昧名經)
자서삼매경(自誓三昧經)내제(內題)에서는 “「독증품(獨證品)」 제4”라고 하였다. 『비구정행경(比丘淨行經)』에서 나왔으며, 처음 번역되었다. 축법호의 번역과는 조금 다르다.
유리왕경(流離王經)처음 번역되었으며, 『증일아함경』에서 나왔다.
매의경(罵意經)
불위빈두바라문설상류경(佛爲頻頭婆羅門說像類經)『잡아함경』 11권에서 나왔다.
바라문문불보시득복경(婆羅門問佛布施得福經)
불위조마취락주설법경(佛爲調馬聚落主說法經)『잡아함경』 32권에서 나왔다.
바라문행경(婆羅門行經)『중아함경』 39권에서 나왔다.
두차바라문논의출가경(豆遮婆羅門論義出家經)『잡아함경』 42권에서 나왔다.
불위사화바라문설법오도경(佛爲事火婆羅門說法悟道經)『잡아함경』에서 나왔다.
바라문허위경(婆羅門虛僞經)『잡아함경』 30권에서 나왔다.
불화대흥바라문출가경(佛化大興婆羅門出家經)『잡아함경』에서 나왔으며, 어떤 본(本)에는 화(火)자로 되어 있다.
불위아지라가섭설자타작고경(佛爲阿支羅迦葉說自他作苦經)
바라문자명종애념불리경(婆羅門子命終愛念不離經)『증일아함경』에서 나왔다.
사타바라문출가득도경(四吒婆羅門出家得道經)『잡아함경』 44권에서 나왔다.
불위교만바라문설게경(佛爲礬慢婆羅門說게經)『잡아함경』에서 나왔다.
바라문복백경(婆羅門服白經)『잡아함경』 28권에서 나왔다.
바라문문불장래유기불경(婆羅門問佛將來有幾佛經)『잡아함경』에서 나왔다.
바라문피사경(婆羅門避死經)『증일아함경』에서 나왔다.
불위바라문설경전경(佛爲婆羅門說耕田經)『잡아함경』에서 나왔으며, 어떤 본에는 전(田)이라는 글자가 없다.
칠노바라문청위제자경(七老婆羅門請爲弟子經)
바라문통달경론경(婆羅門通達經論經)『잡아함경』 25권에서 나왔다.
불복나형자경(佛覆裸形子經)『생경(生經)』에서 나왔으며, 한편에서는 『심나형자경(審裸形子經)』이라고도 한다.
바라문해지중술경(婆羅門解知衆術經)『잡아함경』에서 나왔다.
불위바라문설사법경(佛爲婆羅門說四法經)『잡아함경』 제2권에서 나왔다.
불위연소바라문설선불선경(佛爲年少婆羅門說善不善經)
여환삼매경(如幻三昧經)혹은 2권이다.
안반경(安般經)
내장경(內藏經)원가(元嘉) 2년(425) 10월에 두 번째 번역되었다. 한편으로 『내장백품경(內藏百品經)』 또는 『백보경(百寶經)』라고도 하며, 주사행의 『한록』에 보인다.
오문선요용법경(五門禪要用法經)처음 번역되었다.
수유경(水喩經)『증일아함경』에서 나왔다.
부목비유경(浮木譬喩經)
별유경(鼈喩經)『육도집경(六度集經)』에서 나왔다.
제바달생신입지옥경(提婆達生身入地獄經)『출요경』에서 나왔다.
마나기여인비방불생신입지옥경(摩那祇女人誹謗佛生身入地獄經)
시가라월육향배경(尸迦羅越六向拜經)한편에서는 『대육향배경(大六向拜經)』이라고도 하며, 축법호가 번역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인본욕생경(人本欲生經)『장아함경』에서 나왔으며, 도안이 주(注)를 달았다. 『승우록』에 보인다.
귀문목련경(鬼問目連經)
지옥죄인중고경(地獄罪人衆苦經)
목련견중생신모여전경(目連見衆生身毛如箭經)『잡아함경』 19권에서 나왔다.
마하연정진도중죄보품경(摩訶衍精進度中罪報品經)
존자박구라경(尊者薄拘羅經)『중아함경』 제8권에서 나왔다.
아난문사불길흉경(阿難問事佛吉凶經)한편에서는 『아난문사경(阿難問事經)』이라고도 하고, 『사불길흉경(事佛吉凶經)』이라고도 한다.
가전연무상경(迦旃延無常經)『생경(生經)』 2권에서 나왔다.
당래변멸경(當來變滅經)
견심정의경(堅心正意經)『견경(堅經)』이라고도 하고, 『견의경(堅意經)』이라고도한다.
분명죄복경(分明罪福經)
다증도장경(多增道章經)『구록』에는 도(道)라는 글자가 없으며, 『장아함경』에서 나왔다. 『십보법경(十報法經)』의 다른 번역이라고도 한다.
금색녀경(金色女經)
전세쟁녀경(前世爭女經)『생경』에서 나왔다.
승사승이경(承事勝已經)
회과법경(悔過法經)
사리불회과경(舍利弗悔過經)
태자몽경(太子夢經)
소반니원경(小般泥洹經)『별록』에 보인다.
자인불살경(慈仁不殺經)
아난동학경(阿難同學經)『증일아함경』 48권에서 나왔다.
상인탈적난경(商人脫賊難經)
과거탄금인경(過去彈琴人經)『잡아함경』 48권에서 나왔다.
세간강도보시경(世間强盜布施經)『증일아함경』에서 나왔다.
상인자작불사경(商人子作佛事經)『장아함경』에서 나왔다.
주적경(呪賊經)
졸봉적결의대주경(卒逢賊結衣帶呪經)
범천예바라문강당경(梵天詣婆羅門講堂經)『증일아함경』에서 나왔다.
오음성패경(五陰成敗經)『수행도지경』에서 나왔다.
팔광경(八光經)
오전투인경(五戰鬪人經)『증일아함경』에서 나왔다.
오법경(五法經)『승우록』에 보인다.
오행경(五行經)
삼독경(三毒經)
양시난우경(良時難遇經)
구난뇌옥경(求難牢獄經)
연화녀경(蓮花女經)
고모상일자경(孤母喪一子經)
석유이인상애경경(昔有二人相愛敬經)『출요경』에서 나왔다.
주음지입경(住陰持入經)혹은 2권이다.
경면왕경(鏡面王經)『육도집경(六度集經)』에서 나왔다.
자명과경(子命過經)『생경』에서 나왔다.
탄보녀경(歎寶女經)『사리불탄보녀설부사의경(舍利弗歎寶女說不思議經)』이라고도 한다.
대가섭우니건자경(大迦葉遇尼揵子經)『장아함경』에서 나왔다.
정제경(正齊經)
아나율사유목련신력경(阿那律思惟目連神力經)
사리불문보녀경(舍利弗問寶女經)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대월등삼매경(大月燈三昧經)』에서 나왔다.
아난혹경(阿難惑經)『인본욕생경(人本欲生經)』에서 나왔다.
불인삼매경(佛印三昧經)
가섭힐아난경(迦葉詰阿難經)한편에서는 『가섭책아난쌍도나한유경(迦葉責阿難雙度羅漢喩經)』이라고도 하며, 처음 번역되었다.
대승방등요혜경(大乘方等要慧經)
공정천감응삼매경(空淨天感應三昧經)『구록』에서는 『공정삼매경(空淨三昧經)』이라고 했다.
정리유죄경(情離有罪經)세주(世注)에서는 의경(疑經)이라고 하였다.
약왕약상보살관경(藥王藥上菩薩觀經)
의결률(義決律) 1권『의결율법행(義決律法行)』이라고도 하였고, 혹은 경이라고 한 것은 도안(道安)은 『아함경』에서 나왔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승우록』에 보인다.
사제경(四諦經)맹상(孟詳)이 번역한 것과 조금 다르다. 도안은 『장아함경』 이전에 번역되었다고 하였다. 『승우록』 34부 40권에 보이고, 나머지는 섞여 있거나 부록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보적삼매문수문법신경(寶積三昧文殊問法身經)한편에서는 『유일삼매보적경(遺日三昧寶積經)』이라고도 한다.
법수진경(法受塵經)『승우록』에 보인다.
선행법상경(禪行法想經)『보창록』과 『승우록』 두 목록에 보인다.
아함정행경(阿含正行經)한편에서는 『불설정의경(佛說正意經)』이라고도 한다.
건타국왕경(犍陀國王經)혹은 국(國)이라는 글자가 없기도 하다.
불설처처경(佛說處處經)
십팔니리경(十八泥鯖經)한편에서는 『십팔지옥경(十八地獄經)』이라고도 한다.
죄업보응교화지옥경(罪業報應敎化地獄經)한편에서는 『지옥보응경(地獄報應經)』이라고도 한다.
범계죄보경중경(犯戒罪報輕重經)한편에서는 『범죄경(犯罪經)』이라고도 한다.
문성십이인연경(聞成十二因緣經)한편에서는 『십이인연경(十二因緣經)』이라고도 하며, 『승우록』에서 보인다.
본상의치경(本相倚致經)『중아함경』에서 나왔다. 『오록(吳錄)』에는 『대상의치경(大相倚致經)』이라고 하였다. 『승우록』에 보이며, 『연본치경(緣本致經)』과 같은 경이다. 주사행의 『한록』에도 보인다.
보법의경(普法義經)한편에서는 『구법행경(具法行經)』이라고도 한다. 『아함경』에서 나왔으며,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마등녀경(摩鄧女經)한편에서는 『마등녀경(摩登女經)』이라고도 하고, 『아난위고도녀설경(阿難爲蠱道女說經)』이라고도 한다.
누분포경(漏分布經)도안은 『장아함경』에서 나왔다고 하였으며,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 두 목록에 보인다고 했다.
시법비법경(是法非法經)『중아함경』에서 나왔으며,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 두 목록에 보인다.
일체유섭수인연경(一切流攝守因緣經)『구록』에서는 『유섭경(流攝經)』이라고 했다. 한편에서는 『일체유섭수경(一切流攝守經)』이라고도 하는데, 『오록』에는 일체(一切)가 없다. 또 수인(受因)이라고도 한다. 『중아함경』에서 나왔으며,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칠처삼관경(七處三觀經)도안은 『잡아함경』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승우록』과 주사행의 『한록』에 같이 나온다.
구횡경(九橫經)『잡아함경』에서 나왔다.
팔정도경(八正道經)『잡아함경』에서 나왔으며,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 두 목록에 보인다.
오음비유경(五陰譬喩經)한편으로 『수말소표경(水沫所漂經)』이라고도 한다. 『잡아함경』에서 나왔으며,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 두 목록에 보인다.
전법륜경(轉法輪經)한편으로 『법륜경(法輪經)』이라고도 한다. 『잡아함경』에서 나왔으며, 『도안록』과 『승우록』 두 목록에 보인다.
사유요략경(思惟要略經)한편으로 『사유경(思惟經)』이라고도 한다.
청빈두로법(請賓頭盧法)
아함구해십이인연(阿含口解十二因緣)한편으로 『단십이인연경(斷十二因緣經)』이라고도 하고, 『아함구해경(阿含口解經)』이라고도 하고, 또 『안후구해경(安侯口解經)』이라고도 한다. 어떤 사람은 안현(安玄)이 번역하였는데, 제목을 들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아비담오법행경(阿毘曇五法行經)혹 『아비담오법경(阿毘曇五法經)』이라고도 하고, 『장아함경』에서 나왔다.

이상은 모두 후한(後漢) 환제(桓帝) 원가(元嘉) 원년(151)의 일이다. 안식국(安息國)에 태자가 있었는데 이름은 청(淸)이고 자는 세고(世高)였다. 순서에 따라 마땅히 왕위를 이을 수 있었지만 숙부에게 왕위를 양보했다. 그런 다음에 나라를 떠나 출가를 해서 도(道)에 뜻을 품고 사방으로 유행하며 널리 교화하는 것에 힘썼다. 환제(桓帝) 건화(建和) 2년(148)에 행각(行脚)하며 낙양[雒邑]에 이르렀다. 잠깐 사이에 말을 배우자 곧 중국말에 통달하게 되었다. 법의 교화가 오히려 미약함을 탄식하고 널리 번역하는 일에 힘썼다. 영제(靈帝) 시대에 이르는 20여 년 동안 통틀어 170여 부를 번역했는데, 모두 190여 권이다. 『도안록』과 승우의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과 혜교(慧皎)의 『고승전(高僧傳)』 등에서는 “안세고가 번역한 경은 39부이다”라고만 했다. 안세고의 번역은 뜻과 이치가 명석하고 문자가 정확하며, 기교가 있지만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으며, 질박하지만 촌스럽지 않다. 대체로 읽는 사람들은 모두 부지런하게 읽으며 싫증내지 않았다.
내가 여러 목록의 기록들을 널리 조사하여 묻고 살펴보니 안세고란 이름이 실려 있기도 하고 빠져 있기도 하였다. 방편으로 내보인 자취가 숨겨지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여 다양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안세고는 편의에 따라서 번역하였다. 다른 빠진 곳이 있어서 아직 전해지지 못하게 된 것은 또 그 전(傳)과 록(錄) 끝에 『고록(古錄)』과 『구록(舊錄)』 두 목록에 실려 있다고 했으니, 이것은 모두 안세고가 이전의 번역을 골라서 바로잡은 것인데, 반드시 완전한 번역은 아니다. 안세고가 서쪽으로부터 중원에 이르러 강남(江南)과 영표(嶺表)와 동월(東越)을 두루 돌아다녀서 비로소 숨겨진 것이 드러났고, 두루 다니며 자취들을 드러냈으니, 이 사람은 성인이며 보통사람이 아니다.
이제 여러 편(篇)을 총괄하고, 잡기(雜紀)를 찾아 갖추었는데, 제목에 주(注)가 있는 것은 대부분 하서(河西)와 강남(江南)의 길을 따라 인연을 따라 대부(大部)에서 번역한 것이어서 목록이 분산된 것이니, 되어 의심할 것이 못된다. 그들이 옛날 것을 보아서 여기에 남겨 두었으니 이를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감히 모으고 엮은 것에 의거해 이를 편집했으니 산재한 여러 분류들을 상세하게 살펴 볼만 하다. 바라건대 법의 흐름을 드넓혀 본원(本源)이 흘러나온 곳을 알아서, 그 자취를 알고 모든 승전(僧傳)을 갖추어 거울삼아 보고자 한다.

(4) 지루가참(支婁迦讖)
대집경(大集經) 27권처음 번역되었으며, 『이곽록(李廓錄)』에 보인다.
도행반야바라밀경(道行般若波羅蜜經) 10권처음 번역된 이름은 『마하반야바라밀경(摩揀般若波羅蜜經)』이고 혹 8권이다. 『바야도행품경(波若道行品經)』라고도 한다. 『지민도록(支敏度錄)』과 『승우록』에 나온다.
수릉엄경(首楞嚴經) 2권후한 중평(中平) 3년(186) 2월 8일에 처음 번역되었으며,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오록(吳錄)』에서는 3권이라고 하였다.
무량청정경(無量淸淨經) 2권『오록』에 보이며, 백연(帛延)이 번역한 것과 다른 본(本)이다. 한편에서는 『무량청정평등각경(無量淸淨平等覺經)』이라고도 한다.
아촉불국경(阿閦佛國經) 2권한편에서는 『아촉불찰보살학성경(阿閦佛刹菩薩學成經)』이라고도 하고, 일명 『아촉불경(阿閦佛經)』 1권이라고도 한다.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패본경(孛本經) 2권처음 번역되었으며, 『승우록』에 보인다.
돈진다라소문경(伅眞陁羅所問經) 2권처음 번역되었으며, 『구록』에서는 『돈진다라니왕경(伅眞陁羅尼王經)』이라고 했다.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아사세왕경(阿闍世王經) 2권처음 번역되었으며, 도안은 『장아함경』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승우(僧祐)의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에 보인다.
불유일마니보경(佛遺日摩尼寶經) 1권방등부(方等部)에서 나왔다. 일명 『마하연보엄경(摩揀衍寶嚴經)』 또는 『대보적경(大寶積經)』이라고도 한다. 『고품(古品)』에서는 『유일반야경(遺日般若經)』이라고 했으며, 『승우록』에 보인다.
대보적경(大寶積經)내가 이 경(經)을 찾아보니 앞의 『불유일마니보경』과 대략 같은 것이다. 광화(光和) 2년(179)에 처음 번역되었다. 도안은 『마니보경(摩尼寶經)』이라고 했으며, 혹은 2권이다. 『구록』과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문수사리문서경(文殊師利問署經)한편으로 『문서경(問署經)』이라고도 하고, 도안은 방등부에서 나왔다고 했다. 『오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내장백보경(內藏百寶經)한편으로 『내장백품경(內藏百品經)』이라고도 하며, 두 번째 번역이다. 안세고가 번역한 것과 약간 다르다. 도안은 방등부에서 나왔다고 했다. 여러 목록을 두루 교정하다가 보니 모두 백보(百寶)라고 하였는데, 그 때문에 곧 이 경(經)인 줄 알았다.
호반니원경(胡般尼洹經)처음 번역되었다. 혹 2권이다. 주사행의 『한록』과 『출삼장기집』에 보인다.
아사세왕문오역경(阿闍世王問五逆經)한편으로 『아사세왕경(阿闍世王經)』이라고도 한다.
대방편보은경(大方便報恩經)『오록』에 보인다.
광명삼매경(光明三昧經)『도안록』에는 없다. 『오록』과 『출삼장기집』에 보인다.
선경(禪經)『별록(別錄)』에 보인다.
잡비유경(雜譬喩經)모두 열 가지 일[十事]이다. 승우(僧祐)는 실역(失譯)이라 하였으나, 지금 다시 점검해 보니 『별록』에 보이는 까닭에 여기에 실었다.
아육왕태자괴목인연경(阿育王太子壞目因緣經)이것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130년에 아육왕이 태어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 아니다. 어떤 본(本)에는 경(經)이라는 글자가 없는데 『승우록』에서 밝혀 놓았다.
도사경(兜沙經)『별록』과 『출삼장기집』에 보인다.

이상 21부 63권은 월지국(月支國) 사문 지루가참(支婁迦讖)은 또한 줄여서 그냥 지참(支讖)이라고도 한다. 한(漢)나라 환제(桓帝) 때인 건화(建和) 연간에서 중평(中平) 연간에 이르기까지 낙양에서 경전을 번역했고, 하남(河南)의 청신사(淸信士) 맹복(孟福)과 장운(張運) 등이 필수(筆受)하였다. 『승우록』을 검토해보니 24부이다. 지금 경의 목차를 살펴보면 이전과 같은 것을 얻는 데 그쳤다. 그 중에 『호반니원경(胡般尼洹經)』과 같은 경(經)도 있는데, 호(胡)자의 근본은 자세하지 않다. 가만히 윗대에 경이 번역된 때로부터 어질고 덕이 있는 사람들이 받아 적은 것을 살펴보건대, 언제나 말을 옮김[度語]에 이르러서는 오랑캐[胡]를 번역하여 한(漢)이라고 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또 중국 구주(九州)에서는 서역(西域)을 천축(天竺)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총괄해서 부르는 이름으로 어떤 사람은 신독(身毒)10)이라고도 한다. 인도에서 이곳 중국을 지나(脂那)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데, 어떤 사람은 진단(眞丹)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진단(震旦)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대개 소리를 취하여 구분한 것이 초(楚)나라의 방언과 중하(中夏)의 표준어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가령 중국을 한(漢)이라고 부르는 경우에 한은 단지 유씨(劉氏) 양대(兩代)의 한 호칭일 뿐 그 후에 위(魏)ㆍ진(晉)이 선양(禪讓)한 것과는 다르다. 제왕의 칭호에 따라 명확히 구별해야하므로 지금 이 목록을 모두 고쳐 바로 잡았다. 또 호(胡)의 잡된 오랑캐[戎]는 서방 변두리의 속된 부류로 강(羌)ㆍ만(蠻)ㆍ이(夷) 등의 무리인데 어찌하여 경서(經書)를 호(胡)의 말이라 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천축에서 태어나셨고 그 땅에서는 사족(士族)을 바라문(婆羅門)이라고 했는데, 통틀어 일컬어 범(梵)이라고 불렀다. 범(梵)은 청정하다는 뜻이며, 광음천(光音天)을 이어 받들었는데, 그 광음천이라고 하는 것은 범천(梵天)의 세계에서는 가장 아래이다. 겁초(劫初)에 땅에 내려와 땅의 살찐 짐승을 먹은 자는 몸이 무거워 돌아가지 못했다. 이것으로 인연해서 곧 사람이 됐기 때문에 그 본래 이름을 범(梵)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이미 하늘을 본떠서 하였으므로 그것을 범서(梵書)나 범어(梵語)라고 했던 것이다.
예전 그대로 승려들은 다 속세에서 쓰던 성을 썼는데, 석가(釋迦)라고 하게 된 것은 진(秦)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 석도안(釋道安)이라고 하는 사문(沙門)이 있어 당시 홀로 빼어났는데 본래대로 깨닫고는 말하였다.
“이미 머리를 깎고 물들인 가사를 입고 석가모니를 따라 잇기로 했는데, 아들이 되어 아비와 성을 달리한다면 어찌 이어받았다고 말하겠는가? 이제 출가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모두 석(釋)씨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4아함을 번역하고 보니, 과연 “사성(四姓)11)이 출가하면 동일한 석종(釋種)이 되는 것이다”하고 하니, 모든 사람들이 다 탄복했다사성은 첫째, 찰제리(刹帝利)인데 이것은 왕족이고, 둘째 바라문(婆羅門)인데 이것은 고상하게 행동하는 귀족이며, 셋째 비사(毘舍)인데 중국의 일반 백성과 같고, 넷째 수다(首陀)라고 부르는데 가장 낮고 비천하며, 이와 같은 무리는 하인으로서 종노릇을 하는 계급이다.
도안이 진(晉)ㆍ진(秦) 나라 때 목록의 항목을 바로잡고 여러 경(經)의 주(注)를 다듬어 간행하고 스스로 부르기를 미천(弥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말엽시대의 것을 본받아서 오히려 “오랑캐 말을 번역하여 진(秦)나라 말로 번역하였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또한 곤륜산의 자갈 하나하나 모두 아름다운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다만 옛날부터 호(胡)라는 말이 있는 곳은 모두 범(梵)자로 바꾸었으니 후대의 명철한 이가 적절한 말로 그 바르고 진실한 뜻을 얻게 해주길 바란다.

(5) 안현(安玄)
법경경(法鏡經) 2권혹은 1권, 강승회(康僧會)가 주(注)를 달았으며 『승우록』에 보인다.
아함구해십이인연경(阿含口解十二因緣經)한편으로 『단십이인연경(斷十二因緣經)』이라고도 하고, 『안후구해경(安侯口解經)』이라고도 한다.

이상 2부(部) 3권은 안식국(安息國)12)의 우바새(優婆塞) 도위(都尉) 안현이 후한(後漢) 영제(靈帝) 광화(光和) 4년(181)에 낙양(雒陽)에 무역을 하려고 왔다가 우연히 경(經)을 보게 된 인연으로 엄불조(嚴佛調)를 만나게 되었다. 곧 같이 번역하고 불조는 받아 썼다. 또한 세상에서 안후기도위(安侯騎都尉)라고도 불렀다.

(6) 축불삭(竺佛朔)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 2권『구록』에서는 『대반주삼매경(大般舟三昧經)』 1권이라고 했다. 두 번째로 번역되었으며, 『고승전』에 보인다.
도행경(道行經)희평(熹平) 원년(172)에 번역하였다. 주사행의 『한록』과 『삼장기』에 보인다. 도안은 이것은 『반주경(般舟經)을 가려 뽑은 것으로 외국의 고명(高明)한 사람이 찬술하였다고 했다. 도안이 주를 달고 아울러 서(序)를 지었다.

이상은 2부 3권이다. 천축의 사문인 축불삭14)이 영제(靈帝) 때 『도행경』을 가지고 낙양에 들어왔다. 범어를 중국말로 번역하였는데, 번역한 사람이 때때로 막혀서 비록 뜻을 잃은 곳도 있기도 하지만, 그 음구(音句)는 버리고 글의 본질적인 바탕은 살려 깊이 경(經)의 의미를 체득하였다. 나중에 광화(光和) 연간에 다시 『반주경』을 번역했는데 참서(讖書)로 말을 전하려 했다. 맹복(孟福)과 장운(張運)이 필수(筆受)하였으며, 문장이 조금 나아졌다. 앞의 일은 참전(讖傳)에 실려 있다.

(7) 지요(支曜)
소본기경(小本起經) 2권혹은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이라고도 하고, 혹은 『숙행경(宿行經)』이라고 하기도 한다. 근래에 소(小)자가 붙었다. 『구록』과 『고승전』에 보인다.
성구광명정의경(成具光明定意經)『성구광명경(成具光明經)』이라고도 하고, 『성구광명삼매경(成具光明三昧經)』이라고도 한다. 주사행(朱士行)의 『한록(漢錄)』ㆍ『지민도록(支敏度錄)』ㆍ『승우록』ㆍ『혜교록(慧皎錄)』 등 네 목록에 나온다.
마유팔태비인경(馬有八態譬人經)한편에서는 『마유팔폐경(馬有八弊經)』이라고도 하고, 『팔태경(八態經)』이라고도 하고, 『마유악태경(馬有惡態經)』이라고도 한다.
뇌타화라경(賴吒和羅經)처음 번역되었다. 도안은 방등부에서 나왔다고 했다.
수지문불십사사경(首至問佛十四事經)혹은 불(佛)자가 없다.
문성십이인연경(聞成十二因緣經)두 번째로 번역된 것이다. 안세고가 번역한 『십이인연경』과 조금 다르다.
타락우바새경(墮落優婆塞經)
소도지경(小道地經)
아나율팔념경(阿那律八念經)혹은 그냥 『팔념경(八念經)』이라고 하며, 『구록』에 보인다.
대마야경(大摩耶經)혹은 대(大)자가 없기도 한다.
마유삼상경(馬有三相經)

이상 11부는 서역(西域)의 사문 지요가 영제(靈帝) 때 낙양에서 번역했다.

(8) 강거(康巨)
문지옥사경(問地獄事經) 1권주사행의 『한록』에 보인다.

이상 1경 1권은 중국 사문 강거가 영제(靈帝) 중평(中平) 4년(187)에 낙양(雒陽)에서 번역했는데, 말이 곧바로 이치만을 말하였고 윤문하거나 꾸미는 것을 더하지 않았다.

(9) 엄불조(嚴佛調)
고유마힐경(古維摩詰經) 1권처음 번역되었으며, 『고록』과 주사행의 『한록』에 보인다.
유수보살무상청정분위경(濡首菩薩無上淸淨分衛經) 2권일명 『결료제법여환삼매경(決了諸法如幻三昧經)』이라고도 한다.
사의경(思意經)또한 『익의경(益意經)』이라고도 한다.
혜상보살문대선권경(慧上菩薩問大善權經)혹은 보살(菩薩)이라는 글자가 없기도 하며, 또한 2권으로도 되어 있다.
내육바라밀경(內六波羅蜜經)또한 『내외자경(內外者經)』이라고도 하고, 도안은 방등경(方等經)에서 나왔다고 했다.
십혜경(十慧經)엄불조가 스스로 편찬해 냈는데, 아울러 주(注)와 서(序)가 있고, 또한 『사미십혜경(沙彌十慧經)』이라고도 하며, 『승우록』ㆍ『보창록(寶唱錄)』ㆍ『고승전』 등 세 목록에 보인다.
가섭힐아난경(迦葉詰阿難經)두 번째로 번역되었다. 『봉호록(峯號錄)』과 『보창록』 등 두 목록에 보인다. 안세고가 번역한 『가섭책아난쌍도나한유경(迦葉責阿難雙度羅漢喩經)과 대동소이하다.

이상 7부 10권은 임회(臨淮)의 청신사(淸信士) 엄불조가 영제(靈帝) 때에 낙양에서 번역했는데, 모두 이치가 맞고 소리가 바르게 되어 경전의 아주 미묘한 뜻까지도 모두 번역해냈다. 영장(郢匠)15)의 아름다움이 있어서 후대에 저술의 모범이 되었다.

(10) 강맹상(康孟詳)
범망경(梵網經) 2권처음 번역되었으며, 『오록(吳錄)』에 보인다.
보복경(報福經) 1권혹은 『복보경(福報經)』이라고도 하는데, 『오록』에 보인다.
중본기경(中本起經) 2권처음 번역되었다. 일명 『서응본기경(瑞應本起經)』이라고 하기도 하고, 일명 『태자본기경(太子本起經)』라고도 한다. 『삼장기』에 나온다.
흥기행경(興起行經) 2권일명 『십연경(十緣經)』이라고도 하며, 『오록』에 보인다.
사제경(四諦經)안세고가 번역한 것과 조금 다르며, 『축도조한록(竺道祖漢錄)』에 보인다.

이상 6부 9권은 중천축국 사문 강맹상이 헌제(獻帝) 때 낙양에서 번역한 것이다.

(11) 석담과(釋曇果)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 2권

이상 1경 2권은 건안(建安) 2년(197) 2월에 사문 석담과가 축대력(竺大力), 강맹상(康孟詳)과 함께 가유라위국(迦維羅衛國)에서 범본(梵本)을 가지고 와서 낙양에서 번역한 것이다. 강맹상이 한문으로 옮겼는데 석도안이 말하기를, “강맹상이 번역한 것은 아름답고 유창하여 현묘한 멋이 우러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또 『석도안록』에는 “『중본기경(中本起經)』 2권한편에서는 『태자중본기경(太子中本起經)』이라고도 한다. 사문 담과가 가유라위국에서 이 범본(梵本)을 얻어 와서 건안 12년(207)에 낙양에서 번역했고 강맹상이 한문으로 옮겼다[度語]. 『시흥록(始興錄)』과 『장방록』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내가 상공(詳公)이 번역한 것과 전의 것을 살펴보니 다른 것이 없었다. 그래서 양쪽을 구별해 놓았을 뿐이다.

(12) 실역(失譯)
호본경(胡本經) 4권장안에서 번역된 것 같다. 지금은 당연히 『범본경(梵本經)이라고 말한다.
니원후천세중변기경(泥洹後千歲中變記經)4권이다. 일명 『천세변경(千歲變經)』이라고도 한다.
합도신족경(合道神足經)일명 『신도족무극변화경(道神足無極變化經)』이라고도 한다.
제경불명(諸經佛名) 2권
구비유경(舊譬喩經) 2권
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1권. 이하로는 모두 단권(單卷)이다.
용종존국변화경(龍種尊國變化經)
과거향연화불세계경(過去香蓮華佛世界經)
불견목우자시도경(佛見牧牛者示道經)
삼천불명경(三千佛名經)
오십삼불명경(五十三佛名經)
시방불명경(十方佛名經)
현겁천불명경(賢劫千佛名經)한편에서는 다만 『불명경(佛名經)』이라고 하기도 하며, 담무란(曇無蘭)이 번역한 『사제경(四諦經)』과 천불(千佛)의 명호가 다르다.
칭양백칠십불명경(稱揚百七十佛名經)또는 그냥 『백칠십불명경(百七十佛名經)』이라고도 한다.
남방불명경(南方佛名經)일명 『치성사경(治城寺經)』이라고도 한다.
멸죄득복불명경(滅罪得福佛名經)
관세음소설행법경(觀世音所說行法經)이것은 주문을 적은 경이다.
미륵위여신경(미勒爲女身經)
적조의소문경(寂調意所問經)일명 『여래소설청정조복경(如來所說淸淨調伏經)』이라고도 하는데, 앞의 경과는 다른 번역본이다.
살다바륜보살구심반야도상경(薩陀波崙菩薩求深般若圖像經)
보살생지경(菩薩生地經)
보살소생지경(菩薩所生地經)
보살수계법경(菩薩受戒法經)다른 번역본이다.
수보살계차제십법(受菩薩戒次第十法)
보살참회법(菩薩懺悔法)
초발의보살상주야육시행오사(初發意菩薩常晝夜六時行五事)
육보살명(六菩薩名)
선패비구경(善唄比丘經)
승명수사행(僧名數事行)
비구제금률(比丘諸禁律)
마하승기율비구요집(摩揀僧祇律比丘要集)일명 『마하승기부비구수용요집법(摩揀僧祇部比丘隨用要集法)』이라고도 한다.
비구니십계경(比丘尼十戒經)
수십선계경(受十善戒經)
사천왕경(四天王經)경전의 끝에 주문이 있는데, 뒷사람들이 붙인 것 같다. 『잡아함경』에서 나온 것이다.
행단바라밀경(行檀波羅蜜經)혹은 『일체시주행단바라밀경(一切施主行檀波羅蜜經)』이라고도 한다.
공덕장엄왕팔만사천세청불경(功德莊嚴王八萬四千歲請佛經)
마조왕경(摩調王經)다른 번역본이다.
회자경(誨子經)
교자경(敎子經)일명 『수달교자경(須達敎子經)』이라고도 한다. 『구록』에는 『수달훈자경(須達訓子經)』이라고 했다.
복자경(福子經)
소아문법즉해경(小兒聞法卽解經)
보살수행경(菩薩修行經)일명 『장자위시소문보살수행경(長者威施所問菩薩修行經)』이라고도 하고, 혹은 『장자수행경(長者修行經)』이라고도 한다.
장자현수경(長者賢首經)
장자명종무자부촉경(長者命終無子付囑經)
질다장자청비구경(質多長者請比丘經)
선덕바라문구사리경(善德婆羅門求舍利經)
외도유질다장자경(外道誘質多長者經)
무해범지집지경(無害梵志執志經)
범지피사경(梵志避死經)
범지상녀경(梵志喪女經)
범지관무상득해탈경(梵志觀無常得解脫經)
빈자득재발광경(貧子得財發狂經)
삭구설왕경(▼(犭+樂)狗齧王經)『구록』에서는 『삭구경▼(犭+樂)狗經)』이라고 했다.
거사신고위부비충경(居士身故爲婦鼻虫經)
철성니리경(鐵城泥犁經)
근고니리경(勤苦泥犁經)
지옥경(地獄經)
적골경(積骨經)
고음경(苦陰經)
지재경(持齋經)
인홍법경(人弘法經)
화엄영락경(華嚴瓔珞經) 1권
관세누탄경(觀世樓炭經)
바야득경(波若得經)
유일잡난경(惟日雜難經)
내신관장경(內身觀章經)
마하찰두경(摩揀刹頭經)『관정경(灌頂經)』의 구역(舊譯)과 대동소이하다.
청정법행경(淸淨法行經)
마하연보엄경(摩揀衍寶嚴經)
십주비바사경(十住毘婆沙經)
불유일마니보경(佛遺日摩尼寶經)
전여신보살경(轉女身菩薩經)일명 『낙영락장엄방편경(樂瓔珞莊嚴方便經)』이라고도 하고, 『낙영락장엄녀경(樂瓔珞莊嚴女經)』이라고도 한다. 역본은 같은데 따로 번역되었다.
수지불명불타악경(受持佛名不墮惡經)
칠보경(七寶經)
십이인연장경(十二因緣章經)『구록』에서는 『십이인연경』이라 했다.
사문위십이두타경(沙門爲十二頭陀經)
삼십이상인연경(三十二相因緣經)도안이 「실원록(失源錄)」에 정리해 넣은 『삼십이상경(三十二相經)』과 대동소이하다.
삼십칠품경(三十七品經)다른 번역본이다.
반주삼매염불동경(般舟三昧念佛童經)
유가삼마사경(庾伽三摩斯經)번역해서 말하면 『수행략경(修行略經)』이다. 일명 『달마다라선법(達摩多羅禪法)』이라고도 하고, 『달마다라보살찬선요집(達摩多羅菩薩撰禪要集)』이라고도 한다.
선요가욕경(禪要呵欲經)
항하비경(恒河譬經)다른 번역본이다.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비유경(譬喩經)
호음게본(胡音偈本)지금은 마땅히 범음(梵音)이라고 해야 한다.
아미타불게(阿彌陀佛偈)
찬칠불게(讚七佛偈)
항노니백구(恒怒尼百句)
오언영송본기(五言詠頌本起)140수(首)이다.
도행품제경범음해(道行品諸經梵音解)『구록』에는 호음(胡音)이라고 했다.
반야바라밀신주(般若波羅蜜神呪)다른 번역본이다.
칠불소결마유술주(七佛所結麻油術呪)
환사피타신주(幻師陂陀神呪)
오룡주독경(五龍呪毒經)
취혈기신주(取血氣神呪)『구록』에는 『혈주(血呪)』라고 했다.
주우치주(呪齲齒呪)일명 『치주(齒呪)라고도 하고, 『주치(呪齒)』라고도 한다.
주아통주(呪牙痛呪)다른 번역본이다.
주안통주(呪眼痛呪)다른 번역본이다.
주적주법(呪賊呪法)다른 번역본이다.
칠불안택신주(七佛安宅神呪)또 『안택주법(安宅呪法)』이라고도 하며, 별도로 유행되었다.

이상은 125부 148이다. 이것은 모두 승우(僧祐)율사의 『출삼장기』의 『고록(古錄)』ㆍ『구록(舊錄)』 두 목록과 도안의 『실원록(失源錄)』과 아울러 신ㆍ구 목록에서 얻은 실역경(失譯經)을 모은 것으로, 모든 경의 부와 권이 대단히 광대하다. 여러 목록을 교감하니 용렬하고 천한 것이 많아서 출입이 서로 교차하여 실로 바로잡기가 어려웠다. 경권(經卷)은 보이지 않는데, 헛되이 경의 제목만 보이는 것이 있고, 목록에 있고 원본이 있는 것으로부터 목록에도 없고 번역본조차 없는 것이 있었다. 그 시초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 유래가 모두 있는 것이고, 또한 이미 오랜 기간이 지났으므로 이 끝에 붙여 둔다. 바라건대 이제 뒷날 박식한 사람이 본류(本流)를 살펴 탈고하기를 바라고, 바르게 돌이켜서 거두는 근거를 마련하여 법의 바다를 맑고 맑게 하여 파도가 고요해지기를 바란다. 내가 또 입장록(入藏錄)을 보고 교감하여 25권을 얻어서 별록(別錄)처럼 서술하였으나 나머지 빠진 본(本)은 아직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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