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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016 불설대마리지보살경(佛說大摩里支菩薩經) 5권

by Kay/케이 2024.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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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불설대마리지보살경(佛說大摩里支菩薩經) 5

 

불설대반니원경 제5권

동진 법현 한역
한지안 번역

11. 사제품(四諦品)
그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약 괴로운 것을 괴로움의 참 이치[苦聖諦]라 이름한다면 지옥과 축생에도 모두 괴로움의 참 이치가 있을 것이다. 괴로움의 참 이치라 이름하는 것은 여래가 항상 머무는 법신이며, 잡된 것을 먹는 몸이 아님을 아는 것을 말하느니라. 중생이 여래의 높은 지혜를 알지 못하고, 괴로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법 아닌 것을 법이라 하며, 오래도록 어리석음과 애착의 번뇌에 묶여 겁을 지나도록 나고 죽는 고통의 바퀴에서 항상 맴도느니라.설령 여래가 항상 머문다[常住]는 두 글자를 잠깐이라도 귀에 스친 자는, 천상에 태어나기를 구하고 해탈을 구하매 반드시 성과(聖果)를 얻어 저절로 쾌락하리라. 지혜로운 자는 모두 여래가 항상 머문다는 말을 잠깐 귀에 스침을 말미암아 이 묘과(妙果)를 얻는 줄 스스로 아느니라.오랜 옛적부터 여래가 항상 머문다는 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한량없는 생사의 고통과 의혹에 가고 왔으니, 이와 같이 괴로움을 아는 것이 괴로움의 참 이치를 아는 것이니라. 만약 이와 다르면 괴로움의 참 이치를 아는 것이 아니니라.괴로움과 쌓임의 이치는 모든 법의 실상이니 실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애욕의 모음이 불어나며, 노비나 법에 맞지 않는 물건을 쌓거나 길러 법 아닌 것을 법이라 하며 망령되이 취함이 생기고 바른 법이 곧 멸하느니라. 지혜가 없기 때문에 영원히 생사의 바퀴가 돌아가는 고통과 의혹에 처하느니라.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런 것들이 바른 법을 무너뜨리고, 종내 과(果)와 천상에 태어나거나 해탈을 얻지 못하게 하느니라. 괴로움의 모음의 진실한 모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바른 법을 무너뜨리느니라. 거짓으로 말한 죄보로 또한 다시 긴 밤을 생사에서 고뇌하느니라. 이와 같이 아는 자는 모음의 이치를 아느니라. 만약 이와 다른 자는 모음을 안다 이름하지 못하느니라.괴로움을 없애는 이치라는 것은 만약 공(空)을 닦아 행하면 모두 멸하여 여래 성품마저 무너뜨린다. 만약 공을 닦아 행함을 없애는 이치라 이름한다면 저 모든 외도들의 서로 어기는 뜻도 또한 공을 닦아 행하여 없애는 이치를 얻는 것인가? 마땅히 일체가 모두 여래의 항상 머무는 성품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결박(結縛)을 없애 번뇌가 영원히 다하면 여래의 항상 머무는 성품이 나타난다. 한마음을 일으켜 문득 묘과(妙果)를 얻어 항상 즐겁고 자재한 것을 법자재왕이라 이름하니, 이것이 괴로움을 없애는 참이치를 닦아 행하는 것이니라.만약 다시 여래의 성품을 닦아 행하여 공하여 내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마땅히 이러한 무리는 나방이 몸을 불에 던짐과 같은 것을 없애는 이치라 이름함을 알아야 하리라. 여래의 성품은 여래의 실상이다. 일체 한량없는 번뇌를 없애 제거하나니 왜냐하면 이것이 여래성품의 인(因)이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아는 자는 여래의 평등하게 없애는 이치를 알며, 이와 다른 것은 없앰을 안다 할 수 없느니라.괴로움을 없애는 도라는 것은 여래와 법과 승(僧)과 해탈의 성품이니, 이 네 가지 법을 도의 이치라 이름하느니라. 네 가지 법의 실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영원히 생사의 한량없는 고통과 의혹에 처하나니, 생사 가운데서 능히 부지런히 수행하여 여래와 법과 승과 해탈이 항상 머무는 법이며 변하여 바뀌지 않는 법이며, 마멸하지 않는 법이며, 다하지 아니하고 무너뜨려지지 아니한 줄 훤히 아느니라. 한마음을 일으켜 미묘한 과를 얻으면 쾌락하고 자재하리니, 항상 머물러 공하지 않는 네 법에 법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이런 무리는 삿된 견해의 과보를 얻게 되느니라.괴로움을 없애는 도라는 것은 이 세 가지 법에 항상 머물러 닦는 것이니, 이것의 이름이 괴로움을 없애는 도의 이치를 아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항상 머문다는 생각을 닦아 행하는 자는 마땅히 나의 제자로 네 가지 참된 이치를 알며 이들은 보살로 네 가지 참된 이치를 아느니라.”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비로소 네 가지 참된 이치를 닦을 줄 알겠나이다.”
12. 사도품(四倒品)
부처님께서 다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뒤바뀜이란 괴로움에 즐거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여래가 무상을 다 소멸하여 니원(泥洹)하는 것이 나무가 다하여 불이 꺼진 것과 같다 하여 큰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은 생각을 하여 여래를 무상이라 하면 이것이 뒤바뀜이니라. 즐거움에 괴로움이 있다 생각하며, 여래가 영원히 존재하지만 중생이 삿된 견해를 지으면 이것이 뒤바뀜이며, 3유(有)가 괴로우나 즐겁다는 생각을 하면 이것이 또한 뒤바뀜이니 이것이 첫째 뒤바뀜이니라.무상을 항상하다 생각하는 것도 뒤바뀜이며, 항상함을 무상하다 생각하는 것도 뒤바뀜이니라. 항상한 것을 무상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여래의 니원이 지극히 공하다는 생각을 닦는 것이니, 이것이 뒤바뀜이 되느니라. 지극한 공(空)을 닦고 나면 수명이 짧은 중생이 장수를 얻는다 하여 이에 과(果)를 닦아 항상 존재하는 법이라 하는 것을 이름하여 뒤바뀜이라 하니, 이것이 둘째 뒤바뀜이니라.내가 아닌 것을 나라 생각하는 것이 뒤바뀜이며, 나를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뒤바뀜이며, 일체 세간에 내가 있다 말하는 것도 뒤바뀜이니라. 부처님은 여래의 성품이 진실한 나라고 말하였으니 이 뜻에 대해 내가 아니라고 닦으면 이 이름이 셋째의 뒤바뀜이니라.깨끗한 것을 깨끗하지 않다 생각하는 것이 뒤바뀜이며,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하다 생각하는 것도 뒤바뀜이니라. 여래는 항상 머물러 잡된 것을 먹는 몸이 아니며, 육안(肉眼)이란 잡된 것을 먹는 몸을 말하나니 청정한 법이 아니요, 법과 승과 해탈도 또한 마땅히 소멸해 없어진다 하면 이 이름이 뒤바뀜이며, 모든 깨끗하지 못한 몸이 하나도 깨끗하다는 생각이 없어야 하지만 어리석고 뒤바뀐 의혹으로 깨끗하다는 생각을 일으키면 이 이름이 넷째의 뒤바뀜이니라. 이와 같이 선남자야, 이런 것을 네 가지 뒤바뀜이라 이름하느니라.”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본래부터 항상 뒤바뀜에 집착하였사오나 이제 처음 여래로부터 바르게 보는 것을 알았나이다.”
13. 여래성품(如來性品)
가섭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 내가 있다면 25유(有)가 있습니까, 없습니까?”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진실한 나라는 것은 여래성(如來性)이니 마땅히 일체 중생이 모두 가졌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다만 저 중생들은 한량없는 번뇌에 덮여 나타나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비유컨대 가난한 집의 집안에 진귀한 보배가 감추어져 있었으나 능히 알지를 못하였다. 그때 어떤 한 사람이 보배의 사정을 잘 알고 가난한 사람에게 말했다.
‘그대가 나를 위해 일을 하라. 내가 마땅히 그대에게 돈과 재물과 보물을 주리라.’가난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나는 가지 못하겠소. 왜냐하면 나의 선조가 집안에 진귀한 보배를 갈무리한 것이 있는 까닭이니 버리고 가지 않겠소.’
저 사람이 다시 말했다.
‘그대는 어리석은 사람이라 보배 있는 곳을 알지 못하니, 우선 나와 함께 일을 하면 그대에게 진귀한 보배를 주리니 써도 다함이 없으리라.’문득 그 말을 따랐다. 그런 뒤에 저 사람이 그 집안에서 진귀한 보배를 꺼내 그에게 주었다. 가난한 사람이 기뻐하면서 기특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저 사부(士夫)는 진실로 의지할 만하다는 것을 알았다.일체 중생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각각 모두 여래의 성품이 있으나, 한량없는 번뇌에 덮여 숨겨져 능히 스스로 알지 못하나니, 여래가 방편으로 달래 나아가게 하고 열어 교화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여래의 성품이 있으니 기쁘게 믿어 받을 줄을 알게 하느니라.또 선남자야, 비유하건대 어머니가 아들을 낳아 아직 어린데 갑자기 병이 들었다. 약사(藥師)가 방편으로 생소와 우유와 사탕으로 좋은 약을 만들어 아들로 하여금 먹게 하고 그 어머니에게 ‘젖을 주지 말고 아기가 약을 소화한 뒤에 주라’고 말하고 다시 쓴 약을 젖 위에 발랐다. 아기가 젖을 먹으려다 쓴 약의 냄새를 맡고 곧 젖을 멀리하였다. 그 약이 소화된 것을 안 뒤에 젖을 씻고 아기에게 젖을 먹였다.이와 같이 선남자야, 여래가 중생을 달래 교화에 나아가게 하는 까닭에 처음은 중생을 위하여 일체 법을 말하되, 내가 없는 행을 닦으라 하여 내가 없음을 닦을 때에 나라는 소견을 없애 제거하게 하며, 나라는 소견을 없애고 나서 니원에 들어가느니라. 세속의 나라는 것을 제거하는 까닭에 내가 아니라는 방편의 비밀한 가르침을 말하고 그런 뒤에 여래의 성품을 말하나니, 이것의 이름이 세속을 여읜 진실한 나이니라.”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사람이 처음 태어났을 때에 지혜가 아직 적었다가 점점 커지면 지혜가 따라 밝아지나니, 만약 나라는 것이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당연히 하나일 것이거늘 저 지혜가 점점 늘어나는 까닭에 마땅히 내가 없는 줄 알겠나이다. 또 나라는 것은 마땅히 나고 죽음이 없거늘 나고 죽음이 있으면 당연히 내가 없는 줄 알겠나이다.만약 일체가 모두 여래의 성품이 있으면 당연히 차이가 없을 것인데 지금 현재 장자와 범지와 찰리(刹利)와 거사와 전다라 등이 있어 모든 중생의 유들이 갖가지로 업이 다르며, 몸을 받음이 같지 않나이까? 만약 중생이 여래의 성품이 있다면 마땅히 같아야 할 것인데 이제 같지 않으므로 여래의 성품이 없는 줄 알겠나이다.만약 다시 진실로 여래의 성품이 있다면 마땅히 죽이고 훔치는 모든 갖가지 착하지 못한 악업을 짓지 말아야 할 것이옵니다. 만약 마땅히 중생이 여래의 성품이 있다면 귀머거리도 당연히 들어야 하며, 장님도 당연히 보아야 하며, 벙어리도 당연히 말해야 할 것이옵니다. 만약 각각 여래의 성품이 있다면 어느 곳에 머무나이까? 저 화합한 몸의 청ㆍ황ㆍ적ㆍ백의 갖가지 색깔이 한 곳에 머무나이까? 온몸 가운데 머무나이까?”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컨대 국왕이 힘센 장사를 두고 있었다. 능히 독이나 아픔을 제거하는 마니보배 구슬을 머리 위에 매고 적국과 싸움을 하다가 그가 맨 마니보배 구슬이 몸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피와 살과 피부가 덮어 드디어 보배구슬을 잃어버렸다.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때 훌륭한 의사가 있어 병을 치료하러 왔었다.의사에게 ‘내게 보배구슬이 있었는데 마침내 잃어버렸소. 곳곳에 찾아도 있는 곳을 알지 못하니 마땅히 재물과 보배란 덧없는 물건이라 물 위의 거품과 같아서 빨리 생겼다가 빨리 없어져 헛되고 거짓되기 허깨비와 같소’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영원히 보배구슬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하였다.훌륭한 의사가 ‘보배구슬은 잃어버리지 않았으니 잃었다는 생각을 마시오. 그대가 싸움을 할 때 구슬이 몸속으로 들어갔소. 피와 살과 피부가 덮어 이 때문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오’라고 말하자, 저 사람이 믿지 않고 의사에게 말하기를 ‘피와 살 속 어디에 구슬이 있단 말이오. 헛된 말을 하는구려’라고 하였다. 그때 저 훌륭한 의사가 곧 구슬을 꺼냈다. 그가 구슬을 보고 나서 훌륭한 의사의 아는 것이 기특하다고 믿었다.일체 중생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각각 모두 여래의 성품이 있으나 나쁜 지식을 익혀 음욕의 마음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일으켜 세 악도에 떨어지고 더 나아가 두루 25유로 갖가지 몸을 받았느니라. 여래의 성품인 마니보배구슬이 번뇌와 음욕의 마음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부스럼에 빠져 있는데 있는 곳을 알지 못하고 세속의 나라는 것에 내가 없다는 수행을 닦아서 여래 훌륭한 의사의 방편의 비밀한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내가 없다는 생각을 하여 능히 진실한 나를 모르나니, 이에 여래가 다시 방편으로 한량없이 타오르는 번뇌를 없애게 하기 위하여 여래의 성품을 열어 보여 나타내느니라.또 선남자야, 비유컨대 설산에 좋은 단 약이 있었는데 이름이 상미(上味)였다. 전륜성왕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때는 숨어 나타나지 않는다. 여러 병든 사람들이 모두 약이 있을 만한 곳에 나아가 땅을 파고 통을 묻어 약즙을 받았다. 어떤 이는 단맛을 얻고, 어떤 이는 쓴맛을 얻고, 어떤 이는 매운 맛을 얻고, 어떤 이는 신맛을 얻고, 어떤 이는 짠맛을 얻고, 어떤 이는 싱거운 맛을 얻었다. 여러 병든 사람들이 이 여러 맛을 얻었으나 진실한 상미의 약은 얻지 못했다. 땅을 팠지만 복덕이 깊지 않고 얕았기 때문이니라. 전륜성왕이 복덕의 힘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문득 진실한 상미의 약을 얻을 수 있었느니라.이와 같이 선남자야, 여래의 성품도 많은 종류의 맛이 있으니, 한량없는 번뇌와 어리석음이 덮어버렸기 때문에 중생들이 상미인 여래의 성품을 얻지 못하느니라. 갖가지로 업을 행하여 곳곳에 몸을 받으나 저 여래의 성품은 시해할 수 없느니라. 죽는다는 것은 수명이 짧다는 것이요, 여래의 성품의 이름이 참수명이니라. 끊어지지 아니하고 무너뜨려지지 아니하며 나아가 부처를 이루니, 여래의 성품이야말로 해치지 못하며 죽일 수 없으며 오직 몸을 키워줄 뿐이니라. 해침이 있고 죽임이 있으면 병든 사람들이 온갖 삿된 약을 만드는 것과 같아서 갖가지 과보가 찰리(刹利)나 범지에게 응하며 나아가 나고 죽는 25유에 응하나니, 진실한 여래의 성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니라.또 선남자야, 사람이 땅을 뚫고 금강의 보배를 구하매 손에 예리한 것을 잡고 파고 파서 단단한 흙과 돌이 모두 능히 부서지게 하면 오직 금강만 남아 능히 끊어지지 않는 것처럼 여래의 성품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천마(天魔)의 예리한 칼이 능히 상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며, 오직 몸을 키워줄 뿐이니라. 상하게 하거나 무너뜨림을 받으면 여래의 성품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 것이니, 여래의 성품은 해칠 수 없고 죽일 수 없느니라. 이것이 여래의 틀림없는 가르침인 방등경의 감로독약이니라.”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방등경의 감로독약은 그 뜻이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네가 이제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너를 위해 말하리라.”
이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떤 이는 감로를 먹고
영원히 신선의 수명을 얻었고
어떤 이는 감로를 먹고
수명을 다쳐 일찍 죽었네.
어떤 이는 독을 먹고 죽고
어떤 이는 독을 먹고 살아났네.
“감로라는 것은 마하연의 걸림 없는 지혜니 독약이라는 것도 또한 마하연의 걸림 없는 지혜다. 마치 제호(醍醐)ㆍ소유(蘇油)ㆍ석밀(石蜜)과 같으니, 먹고 소화하지 못하면 독약이 되고, 먹고 소화하면 감로가 되느니라.지혜가 없는 중생은 방등 대승의 비밀한 가르침을 알지 못하니 곧 이 사람의 이름은 독약이 되며, 대승법에 머무는 성문ㆍ연각 및 모든 보살들, 이들은 사람 가운데 영웅이니, 이들의 이름을 감로라 하느니라. 비유컨대 젖소가 비록 색깔은 같지 아니하나 그 우유는 한맛인 것과 같으니라.이와 같이 가섭아, 보살이 무외(無畏)를 이룬 자가 귀의할 바는 여래의 법의 성품임을 마땅히 알라. 저 성품과 나의 성품이 모두 동일한 맛이니라.”
이에 가섭보살이 곧 게송으로 말했다.
내가 이제 삼보에 귀의하노니
매우 깊은 여래의 성품이
자신의 여래장이며
불ㆍ법ㆍ승 삼보입니다.

이와 같이 귀의하는 자
이 이름이 최상의 의지이네.
이때 세존께서 다시 가섭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삼보를 알지 못하는 자
무엇을 귀의할 줄 안다고 말하는가.
뜻을 의지함도 오히려 요달하지 못했거니
어떻게 불성을 알랴.
만약 부처님께 귀의하면
이것이 가장 길하고 편안한 것이네.
또 무슨 인연 있어
다시 법에 귀의하는가?
법에 귀의하는 자
이것이 자기 마음의 생각이로세.
또 무슨 인연 있어
대중 스님들에게 귀의하는가?
부처님께 귀의하고도
틀림없이 진실한 것 믿지 아니하면
삼보의 여래 성품을
무엇을 말미암아 능히 다 알리오?
어떻게 뜻을 알지 못하고
미리 계교하는 생각을 내는가?
불법에서 스님들은
삼보의 사다리니라.
마치 아기를 배지 않고서
아들 낳을 생각을 하는 것 같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자는
다만 그 의혹의 어지러움만 더하리라.
빈 메아리를 찾는 사람처럼
진실을 여읜 우바새는
마땅히 부지런히 방편을 구하라.
대승의 결정한 뜻
여래가 따라 말하여
너로 하여금 의혹의 그물을 제거하게 하리라.
가섭보살이 다시 게송으로 말했다.

우바새 법을 위해
부처님께 귀의한 자여.
일체의 천신들은
귀의할 생각을 내지 않는구나.
우바새 법을 위하여
법에 귀의한 자여,
중생을 해치는 법으로써
법 아닌 것을 위하지 말지라.
우바새 법을 위해
스님들에 귀의한 자여,
온갖 삿된 길에서
좋은 복전을 청하거나 구하지 말지라.
그러므로 삼보에 귀의하여
세속의 세 가지 법 아닌 것을 제거하나니
그 세 가지에 귀의하는 법은
또한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네.
내가 옛적에 이 법을 말미암아
이제 안온처를 얻었으니
그대들도 마땅히 행하면
끝에는 내가 이른 곳에 돌아가리라.
이와 같은 평등한 길을
그대들이 따라 행하는 자는
빨리 온갖 괴로움을 면하고
생사에 윤회하는 의혹을 면하리라.
여래의 성품은
또한 세존이 말씀하신 것
나와 모든 중생들이
이 여래의 성품과 같네.
모든 부처님이 따르는 도에
우리들도 모두 말미암네.
더 나아가 모든 마군의 하늘
또한 이 감로가 있어
끝에는 돌아가 모든 부처님과
유(有)를 여읜 모니존과 한가지가 되네.
이때 세존께서 다시 가섭을 위하여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너는 성문처럼
어리석은 지혜가 되지 말지니
오직 하나에 귀의하여
셋이 있지 않은 줄 알아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평등한 도는
불ㆍ법ㆍ승이 한 맛이라
어리석음과 삿된 견해를 없애기 위하여
이 세 가지 법을 세웠느니라.
네가 지금 나타내려 함은
세간을 수순한 것이네.
마땅히 이 가르침을 따라
삼보에 귀의할지니라.
만약 사람이 부처님께 귀의하면
문득 내게 귀의하는 것이 되며
등정각에 귀의하면
정각을 내가 이미 얻는 것이니라.
귀의함을 분별하는 자는
곧 여래의 성품을 어지럽히리니
마땅히 여래의 처소에
평등한 마음을 만들라.
합장하여 공경히 예배를 하면
일체 부처님께 예배하는 것이니
나는 모든 중생들에게
가장 진실한 의지 되며
청정하고 미묘한 법신을
내가 이미 갖추었기 때문이네.
만약 사리탑에 예배하면
마땅히 나에게 예경하는 것이니
나는 모든 중생들에게
가장 진실한 탑이 되며
또한 참 사리이니
그러므로 응당 예경할지니라.
만약 법에 귀의하는 자는
마땅히 내게 귀의하나니
청정하고 미묘한 법신을
내가 이미 갖추었기 때문이네.
내가 중생들에게 가장
진실한 법이 되나니
만약 여러 스님들에게 귀의하는 자
또한 마땅히 내게 귀의하나니라.
모든 나머지 일체 대중도
모두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포섭된 바라
내가 여러 중생들에게
가장 바르게 깨달은 스님이 되어
눈이 없는 중생의 종류들에
도안(道眼)이 생기게 하나니
그러므로 성문의 무리들과
연각승의 스님들과
여래의 스님들이 모두 포섭하여
가장 진실한 데 귀의하게 하노라.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참으로 착하지 못해 무지를 쌓아 모은 이들로 하여금 반드시 내게 부처의 성품이 있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저 건장한 장사가 전쟁에서 싸움을 할 때에 마땅히 내가 군사 가운데 장수임을 알고 일체 대중이 의지하는 자임을 알아야 하는 것과 같다. 왕자가 태자가 될 때에 마땅히 스스로 내가 일체 왕자의 위가 되며 마땅히 왕위를 이을 적에 모든 왕자들이 진실로 의지하니, 마침내 마음을 내어 하열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으니라.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금강과 같은 뜻을 세워 저 세 가지 법을 초월하고 저 왕자가 두려움 없음을 성취해 세 가지 법 가운데서 갖가지 생각을 여읜 것처럼 하나니, 여래가 최상임이 마치 정수리의 모양이 가장 제일인 것과 같으니라. 부처도 아니고 법도 아니고 비구스님도 아니라 하여 갖가지로 차별하는 것은 사다리와 같으니라. 세간의 의지가 되어 세간을 제도하는 까닭에 진실한 법에서 갖가지를 보여 나타내어 세 가지 법을 만들어 어리고 무지한 중생들을 달래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대승의 깊고 유익한 지혜에 들어오게 하느니라.”가섭보살이 다시 게송으로 말했다.

이 진실한 뜻을 알고
여래께 여쭙는 것은
보살의 용맹심을 발하고
때를 여읜 것을 나타내려 하는 까닭이옵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의 행할 바를 말씀하시오니
대승의 깊고 예리한 지혜는
금강을 단련하는 것 같은 지혜이옵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들의 안립함을 말씀하시어
여래께서 잘 나타내 보이시니
저도 이제 또한 마땅히 그렇게 하겠나이다.
일체 중생의 유들이
다 마땅히 스스로 관찰하면
자신의 여래장이
모두 삼귀의이옵니다.
일체 중생의 유들로
이 경전을 믿어 받는 자가
만약 이미 번뇌를 여의었거나
모든 욕망을 여의지 못하여도
다 마땅히 자신 여래의
미묘한 법장에 돌아가면
오직 이것이 바른 귀의라
둘이 없고 또한 셋도 없나니
까닭이 그러함은 어째서인가?
세존께서 널리 분별하시되
각각 자신에게 여래의
미묘한 법장이 있다 하셨으니
이 뜻을 아는 까닭에
다시 셋에 돌아가지 않나니
내가 이미 일체 세간의
진실한 의지가 되나니
법과 비구승의
일체를 섭수하기 때문이라.
성문과 벽지불이
다 모두 마땅히 예경하나니
가 모든 보살들이
바로 대승도에 향하네.
이와 같이 여래의 성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어
32상과
80종호를 갖춘 탓이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야, 그 모든 보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매우 깊고 예리한 지혜를 배워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내가 마땅히 다시 여래장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리라.”그리고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있어 영원히 존재하는 자
끝까지 괴로움과 근심을 지나지 않네.
만약 내가 없는 자로 하여금
부질없이 범행을 닦게 하면
일체 법에 내가 없어지니
이 이름이 단멸의 가르침이며
내가 영원히 존재한다 말하는 자도
곧 항상함을 계교하는 말이 되나니
일체 법이 무상하다 하면
이는 곧 단멸의 말이요
일체 법이 항상하다 하면
이는 곧 항상하다는 말이며
일체 법이 괴로움이라 하면
이는 곧 단멸의 말이며
일체 법이 즐거움이라 하면
이는 곧 항상하다 계교하는 말이며
일체 항상하다는 생각을 닦으면
이는 속히 단멸을 얻을 것이며
일체 무상을 닦으면
이는 속히 항상하다는 생각을 얻으리라.
비유컨대 누각을 깎아 먹는 벌레가
하나를 먹으면 둘을 바라는 것처럼
이와 같이 항상함을 닦는 이
이는 재빨리 단멸을 얻으리라.
만약 단멸을 닦는 자는 또한
속히 항상하는 생각을 얻나니
이와 같이 말한 비유는
하나를 얻고 다시 다른 것을 구한다는 것
다른 법으로 괴로움을 닦는 자는
곧 착하지 않은 몫을 말하고
다른 법으로 즐거움을 닦는 자는
곧 착한 몫을 말하며
다른 법으로 내가 없음을 닦는 자
온갖 번뇌 한량이 없고
다른 법으로 항상 존재함을 닦아
불성과 열반이라네.
다른 법으로 무상을 닦아
곧 몸이 견고하지 못하다 하고
다른 법으로 항상함을 닦는 자
여래의 평등한 삼보와
평등한 해탈
이 모든 법이 진실이라 하네.
여래가 말한 바는
저 비유와 같지 아니하니
마땅히 두 변을 제외한 곳에서
법을 말한 줄 알아야 하느니라.
항상함과 단멸을 계교하는
이 견해 둘 다 여의어야 하네.
세간의 어리석은 무리들은
부처님 말씀에 미혹하여
마치 파리하게 병든 사람이
한꺼번에 많은 소락을 먹고 어지럽네.
그 병이 더하거나 더하지 않는 것 같고
중병 걸린 사람이
4대(大)가 서로 늘거나 줄어
평등하게 화합하지 못한 것 같네.가래병은 더하여 쉬지를 않고
풍병이 치연히 일어나
풍음(風癊)과 어겨 다투니
침이 다시 더하네.
이처럼 화합하지 못해
온몸에 병이 도져 어지러우니
양의(良醫)가 좋은 처방으로 치료하고
따라서 네 가지를 편안케 하네.
모든 병을 제거해 없애니
기쁨이 온몸에 솟구치누나.
4대는 독사와 같아
번뇌의 병이 한량이 없네.
양의가 좋은 처방으로 치료해
평등한 성품에 안온하게 하니
그 평등한 성품은
이름이 여래장이네.
여래의 성품은
일체 경계를 여의어
항상 머물러 변하거나 바뀌지 않아
있고 없음에 모두 집착하지 않네.
어리석은 범부는 거짓말이라 하나
미묘하고 은밀한 가르침을 모르는 탓이네.
여래가 중생을 위해
방편으로 몸이 괴로움이라 말하네.
어리석은 범부는 알지 못하여
내 몸이 아주 없어진다 여기네.
지혜로운 자는 참된 이치 알아
일체를 모두 받지 않네.
능히 아나니 내 몸 가운데
안락종자가 있는 것을
내가 중생을 위하여
방편으로 무상을 말한 것을 듣네.
어리석은 범부는 내 몸이
옹기장이 굽지 않은 그릇 같다 하네.
지혜로운 자는 능히 자세히 알아
일체를 모두 받지 않네.
능히 내 몸에
미묘한 법신 종자 있는 것 알았기에
내가 중생을 위해 방편으로
내가 아니라 말한 것 들었네.
어리석은 범부는 불법이
일체 나란 것이 없다고만 여기며
지혜로운 자는 능히 자세히 알아
가명(假名)의 말을 다하지 않네.
청정한 여래의
참법성에 혹하지 않으며
부처님이 중생을 위하여
방편으로 공의 가르침 말하는 것 들었네.
어리석은 범부는 능히 알지 못하여
모두 말이 끊어졌다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능히 자세히 알아
일체를 모두 받지 않네.
여래의 법신이 영원히 존재해
변하여 바뀌지 않는 줄 알며
내가 중생을 위하여
방편으로 해탈을 말한 것을 듣네.
어리석은 범부는 부처의 몸이
해탈하여 모두 없어진다 하나니
지혜로운 자는 능히 자세히 알아
모두 왕래를 끊지 않네.
여래 사람 사자가
자재하게 홀로 노닐며 거니는 줄 아나니
내가 중생을 위하여
무명이 모든 행을 인연한다 말하는 것 듣네.
어리석은 범부는 능히 알지 못하여
이것을 두 가지 법이라 하나니
지혜로운 자는 능히 자세히 알아
밝음과 밝음 아님이 비록 다르나
해탈의 진실한 법은
두 가지 모습이 없는 줄 아나니
모든 행을 말미암아 식이 생기는 것을
어리석은 범부는 두 가지라 하네.
지혜로운 자는 행의 인연이
비록 둘이나 둘이 아닌 줄 아나니
10선과 10악도
어리석은 범부는 두 모양을 따르네.
지혜로운 자는 능히 자세히 알아
비록 둘이나 둘이 아닌 줄 알고
죄가 있고 죄가 없음도
어리석은 범부는 둘이라 하네.
지혜로운 자는 능히 자세히 알아
자성이 둘이 아닌 줄 아나니
청정함과 청정하지 못한 모양이
어리석은 범부는 둘이라 하네.
지혜로운 이는 능히 자세히 알아
자성은 곧 둘이 아니니
짓는 것과 짓지 않는 것을
일체 법이라 말하네.
어리석은 범부는 능히 알지 못하여
이것을 두 가지 법이라 하나니
지혜로운 자는 능히 자세히 알아
자성이 곧 둘이 아닌 줄 아네.
일체 법이
괴로움과 즐거움의 몫이라 말하네.
어리석은 범부는 알지 못하여
이것을 두 가지 법이라 하네.
지혜로운 자는 능히 자세히 알아
자성이 곧 둘이 아닌 줄 아네.
내가 중생을 위하여
일체 행이 무상하다 말하는 것 듣고
어리석은 범부는 능히 알지 못하여
모두 여래의 성품을 닦는다 하나니
지혜로운 자는 자세히 알아
자성이 곧 둘이 아닌 줄 아네.
내가 중생을 위하여
일체 법에 내가 없다 말하는 것 듣고
어리석은 범부는 능히 알지 못하여
부처님이 나가 없다고만 말했다 하네.
지혜로운 자는 자성을 알아
나와 내가 아님이 둘이 아니라 하네.
한량없고 수없는 부처님들이
여래장을 말씀하셨고
나 또한 일체 공덕
모여 쌓인 경전을 말했으니
나와 내가 아님이 둘이 아닌 것을
너희들 잘 받아 지닐지니라.
“선남자야, 마땅히 일체 공덕을 모은 경전을 기억해 생각하라. 내가 반야바라밀 대경에서 둘이 아님을 말했느니라. 이와 같이 나와 내가 아님이 둘이 아니라 말하느니라. 비유컨대 우유로부터 소락이 나오고 소락으로부터 생소가 나오며 생소로부터 숙소(熟蘇)가 나오며 숙소로부터 제호(醍醐)가 나오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인가,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인가? 만약 하나라 한다면 본래 일이 되는 것이요, 만약 우유가 소락이 되었다면 지금 우유일 때는 소락의 모양이 없으니 이와 같은 인연이 펼쳐져 서로 생기느니라. 이미 있지 않았으므로 펼쳐진다 하느니라. 만약 다른 곳에서 온다면 저것은 어느 곳에 머물러 있었는가?마땅히 우유일 때에 소락 등이 다른 곳으로부터 오는 것을 보지 못하되 저 일체의 몫에 모두 제호의 자성이 있느니라. 다만 모든 과정이 덮어져버린 까닭에 다른 몫으로 나타나며, 소가 먹은 것이 경과되어야 젖이 나온다. 소가 단 풀을 먹으면 젖이 달고 향기로우며, 소가 쓴 풀을 먹으면 쓴맛이 있느니라. 설산 밑에 감택초(甘澤草)가 있는데 소가 이 풀을 먹으면 제호를 이루어 다른 모양을 만들지 않느니라.마땅히 소가 갖가지 맛의 풀을 먹으면 곧 갖가지 다른 색이 있는 것처럼 밝음과 밝음이 없는 것이 둘이 아닌 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업의 허물을 행하기 때문에 밝음과 밝지 않은 것이 바뀌지만 일체 선법과 불선법이 모두 둘이 없으니, 그러므로 여래의 성품도 저 제호의 자성이 청정한 것과 같음을 알라. 번뇌의 허물 때문에 다른 모양이 나타나는 것이 있다.비유컨대 사람이 바닷물이 짜다고 말하나 일체 그 물이 모두 짠 것은 아니니라. 그 가운데는 또한 여덟 가지 맛의 물이 있느니라. 설산에 온갖 독초가 많지만 그러나 설산에는 먼저 좋은 약도 있다. 일체 중생의 몸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사대가 화합된 것은 비유하자면 독사와 같다. 그러나 이 몸 가운데 먼저 불성이 있으니, 저 좋은 약과 같다. 그 여래의 성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있어 만들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라. 다만 한량없는 번뇌가 중간에 다투어 일어난 것이니, 무릇 모든 중생으로서 부처를 구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한량없는 번뇌의 맺힌 우환을 제거해야 하느니라.비유컨대 봄에 큰 구름과 우레가 일어나도 비가 내리지 아니하면 초목의 꽃과 열매가 모두 싹이 트지 못하며, 여름에 큰 비가 내리면 일체가 무성하듯이 여래의 성품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한량없는 번뇌로 맺힌 우환이 덮여서 비록 경전과 여러 삼매를 들으나 아직 짐짓 여래의 성품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와 내가 아니라는 생각을 일으키느니라.대반니원방등계경의 비밀한 가르침의 법장이 세간에 소문나 중생이 듣고 나면 여래의 성품이 모두 싹을 틔워 능히 대의를 키우리라. 그러므로 이름이 대반니원이니라.이와 같이 선남자야, 어떤 중생이 이 대반니원을 배우는 자는 끝내는 여래의 은혜를 갚게 되느니라.”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성품은 모든 성문들과 벽지불들에게는 매우 보기 어렵고 얻기 어려운 보배이겠습니다.”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고 그러하니라. 선남자야, 내가 또한 항상 매우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피부가 눈을 가려 덮어 오색을 보지 못하다가 양의에게 가서 그 눈을 치료하여 문득 피부의 살을 조금 제거하여 한 물건을 보여 그로 하여금 보게 할 적에 그의 시선이 어지러워 두 개라 하고 세 개라 하다가 오래오래 자세히 보면 가까스로 이것을 본다.이와 같이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도의 땅을 깨끗이 다스려 10주(住)를 성취하여 자기의 몸 가운데 여래의 진실한 성품을 관찰해도, 오히려 내가 없다는 윤회의 미혹한 바가 되거늘 하물며 다시 성문이나 벽지불이 능히 알겠는가? 선남자야, 여래의 성품은 보기가 어려운 것이 이와 같으니라.또 어떤 사람이 날아가는 새를 쳐다볼 적에 멀리서 보면 새인지 아닌지 알지 못하여 눈을 지극히 밝게 하여야 가까스로 아는 것같이 10주의 보살도 또한 그러하니라. 자기의 몸 가운데 여래의 성품을 보매 오히려 의혹의 생각을 내다가 오래되어 이에 그런가 싶거든 하물며 성문이나 벽지불이겠는가?또 어떤 사람이 가래가 끓어 숨이 차기 때문에 가고자 하는 곳이 있었으나 방향을 잃고 마음으로 계속 생각하고 기억해도 오히려 길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10주 보살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자기의 몸 가운데 여래의 성품을 보고 마음으로 방편을 오로지 하여도 오히려 미혹하여 어지러움이 있거늘 하물며 다시 성문이나 벽지불이겠는가?또 어떤 사람이 멀리 광야에 갔다가 더위와 갈증으로 시달릴 적에 멀리 아지랑이를 보고 물이라 여기며, 혹 숲이라 하고 혹 마을이라 하는 것처럼 10주 보살도 또한 그러하니라. 자기의 몸 가운데 여래의 성품을 관하고도 또한 미혹한 생각을 내느니라.또 어떤 사람이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로 멀리 불탑(佛塔)을 보고 혹 물이라 생각하며, 혹 허공이라 하며, 혹 집이라 하며, 혹은 아지랑이, 산의 돌, 풀, 나무라 하다가 방편으로 자세히 보고서 이에 탑인 줄 아는 것처럼 10주 보살도 또한 그러하니라. 자기의 몸 가운데 여래의 성품을 보고 오히려 미혹한 생각을 내다가 방편으로 지극히 보아 이에 진실임을 아나니라.또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큰 바다를 가다가 멀리 성곽을 보고 미혹한 생각을 내어 혹 허공이라 하며, 혹 괴물의 모양이라 하듯이 10주 보살도 또한 그러하니라. 자기의 몸 가운데 여래의 성품을 보고 미혹한 생각을 내느니라.또 비유컨대 왕자가 밤새 재주 부리는 것을 보다가 햇빛이 나타남에 이르러 사람을 보고 의혹을 내어 친히 다른 것이라 생각하듯이 10주 보살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자기의 몸 가운데 여래의 성품을 보고 또한 미혹한 생각을 내느니라.또 비유컨대 대신이 왕의 처소에 가 왕의 일을 보살피고 밤이 어두워 집에 돌아오다 번갯불 속의 흰 소를 보고 미혹한 생각을 내어 혹 집이라 하고 혹 무덤이라 하듯이 10주 보살도 또한 그러하니라. 자기의 몸 가운데 여래의 성품을 보고 또한 미혹한 생각을 내느니라.또 비유컨대 계를 지키는 비구가 스스로 깨끗한 물을 걸러서 다시 거듭 자세히 보다가 만약 가는 터럭이 보이면 혹 벌레라 하고 혹 먼지라 하듯이 10주 보살도 또한 그러하니라. 자기 몸 가운데 여래의 성품을 보고 미혹한 생각을 내느니라.또 사람이 높은 산꼭대기를 보다가 만약 행인이 있으면 혹 짐승이라 하듯이 10주 보살도 또한 그러하니라. 자기의 몸 가운데 여래의 성품을 보고 미혹한 생각을 내느니라. 눈병 있는 사람이 야밤에 그림을 보다가 혹 사람 모양이라 하고 혹 귀신 모양이라 하고 혹 부처님 모양이라 하며 혹 제석 범천의 모든 보살 모양이라 하는 것처럼 10주 보살도 또한 그러하니라. 자기의 몸 가운데 있는 여래의 성품을 보고 미혹한 생각을 내느니라.이와 같이 선남자야, 여래의 성품은 매우 심오해 보기 어려우니, 오직 부처님의 경계이지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의 알고 보는 바가 아니니라. 이와 같이 선남자야, 여래의 교법은 지혜로운 자라야 알고 마땅히 믿어 받아들이느니라.”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의 말씀과 같이 여래의 성품은 매우 심오하고 미묘하니 육안(肉眼)으로야 어떻게 보겠나이까?”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컨대 비상비비상처천과 같으니라. 오직 부처님 경계이니 일체 성문과 벽지불이 어떻게 능히 보겠는가? 다만 저들은 여래의 경전을 믿는 마음의 방편을 따른 후에 평등하게 보느니라. 이와 같이 선남자야, 일체 성문과 벽지불들은 마땅히 여래의 방등반니원경에 신심을 내어 그 자신에게 여래의 성품이 있는 줄 아느니라. 이렇기 때문에 마땅히 알 것이니, 여래의 성품은 오직 부처님의 경계이며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계가 아니니라.”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간의 중생들이 모두 내가 있다고 말하는데 이 뜻이 어떠하나이까?”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컨대 한때 두 사람이 벗이었는데 한 사람은 왕자이고 한 사람은 빈궁한 사람이었다. 사이좋게 오고 가곤 하였다. 왕자는 길들인 외뿔소를 가지고 있었는데 가난한 사람이 그것을 보았다. 저들이 뒤에 함께 다른 나라에 가다가 날이 저물어 한 객사에 같이 투숙하였다. 가난한 사람이 꿈을 꾸면서 ‘외뿔소가 온다. 외뿔소가 온다’라고 말하였다. 그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그때 어떤 사람이 듣고서 왕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 들은 대로 왕에게 갖추어 말하니, 왕이 물었다.
‘어느 곳에 외뿔소가 있는가?’
그때 가난한 사람이 왕에게 말했다.
‘저에게 외뿔소는 없습니다. 있다는 것을 알 뿐이오며 제가 일찍이 본 적이 있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그 모양이 어떠하던가?’
‘그 뿔이 양과 같았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왕이 가난한 사람에게 말했다.
‘너는 돌아가라. 어디에 외뿔소가 있단 말인가? 없는 것을 헛되이 말할 뿐이구나.외뿔소가 양과 같다는 말이 천하에 전해졌다. 오래지 않아 그 왕이 죽었다. 태자가 즉위하여 또한 외뿔소를 찾았으나 얻지 못했다. 그 뒤 아들이 계속 왕이 되었고, 또다시 이와 같이 외뿔소를 찾았으나 얻지 못했다. 이렇게 차츰 전해져 내려오면서 항상 외뿔소에 대해 양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세상에 출현할 때에 중생들을 위하여 진실한 나를 말했으나 알지 못하는 자는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는 것을 듣고 그 진실을 알지 못하고 망령된 생각으로 ‘나란 작은 등(燈)과 같아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갖가지 중생이나 아(我)ㆍ인(人)ㆍ수명(壽命)도 저 꿈속의 말을 퍼뜨려 서로 잇는 것과 같다 하여 모두 삿된 견해를 일으켜서 나가 있다고 계교하고 나의 성품을 구하다가 실아(實我)를 얻지 못하여 내가 없다는 말을 하나니라. 모든 세간의 일체 중생들이 항상 망상을 만들어 내가 있다거나 내가 없다는 생각을 하느니라.이와 같이 선남자야, 내가 말하는 여래의 성품은 가장 진실하니라. 만약 세간이 내가 법을 따른다고 말하는 자는 마땅히 알아라. 이는 곧 세속을 여의는 것이 되나니, 마땅히 모두 보살이 변화하여 세속의 말과 같음을 나타내느니라.”
14. 문자품(文字品)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일체의 언설과 주술과 기론은 여래가 말한 바라 일체의 근본이 되느니라.”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 뜻이 어떠하나이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처음에 반 글자[半字]를 나타내어 일체의 근본을 삼느니라. 일체 주술과 언어가 지닌 것은 진실한 법의 무더기이니라. 어린 중생이 이 글자의 근본으로부터 모든 법을 배우고 통달하여 법과 법 아닌 것의 차별을 안다. 그러므로 여래가 글자의 근본을 변화해 나타내나니, 법이 아니라 하지 말 것이니라.”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글자의 근본이옵니까?”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처음 열네 가지 음(音)이 글자의 근본이 되느니라. 이 열네 가지 음은 항상 일체 다함이 없는 근본이 된다. 다함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파괴되지 않는다는 뜻이며 새지 않는다는 뜻이며 여래라는 뜻이니, 이름하여 다하지 않는 뜻이라 하느니라. 여래의 법신은 금강처럼 파괴되지 않나니, 그러므로 파괴되지 않는다 하느니라. 여래에겐 아홉 가지 세계[九道]의 모든 새는 것[漏]이 없나니, 그러므로 새지 않는다고 이름하느니라. 여래는 항상 머무르므로 다함이 없고 지음이 없는 뜻이라 말하느니라.처음 짧은 아(阿)는 길하다는 뜻이며 길하다는 것은 삼보(三寶)의 뜻이니라. 다음에 긴 아(阿)는 성인의 지혜를 나타낸다는 뜻이니 성인이란 세간의 헤아림을 여의어 청정하고 욕심이 없어 능히 일체 삼유의 바다를 건너므로 이름을 성인이라 하느니라. 성인이란 바름이며 능히 법도와 행하는 곳에서 율의와 세간 법도를 바르게 하는 것이 그 뜻이니라.또 아는 길러 키우는 바가 있고 다 성인을 의지하느니라. 일체 진실하고 바른 행의 근본이니 부모에게 효도로 봉양하는 것도 모두 이를 의지해 알며 바른 법을 알아 대승에 머무느니라. 선남자ㆍ선여인과 계를 지키는 비구 및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은 모두 이름이 성인에 의지하는 것이니라.또 아는 세계 언어법이 의지하는 바이니, 선남자를 아가차(阿伽車)라 말하는 것과 같다. 남자를 아나차라(阿那遮邏)라고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아는 또한 세간 언어가 의지하는 바이니라.짧은 이(伊)는 이것이니 이 법이라 말하는 것은 여래의 법이다. 범행(梵行)으로 때를 여읜 청정이다. 마치 보름달이 이 법을 나타낸 것과 같으므로 모든 부처님ㆍ세존이 이 이름을 나타내느니라.또 이는 말이 옳은 뜻이요, 이것이 그르다는 뜻을 말하느니라. 이것은 마군의 말이요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라는 것을 이를 의지해 분별하므로 이름하여 이것이라 하느니라.긴 이(伊)는 자재(自在)라 이름하며 대자재라 이름하니 자재범왕이 능히 여래의 얻기 어려운 가르침에 자재한 힘으로써 바른 법을 보호 유지하되, 이로써 하는 까닭에 이름하여 자재라 하느니라.또 이는 이 자재한 대승방등반니원경을 자재하게 거두어 가져 이 교법으로 하여금 자재하게 치연케 하며, 나머지 중생들로 하여금 자재하게 이 방등경을 받아 배우게 하느니라.또다시 이는 자재니 방등에서 능히 이를 제거하면 질투와 삿된 견해이니 밭의 싹을 키우매 잡초를 제거해야 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비교되느니라. 이리하여 여래가 이자재(伊自在)를 말했느니라.짧은 우(憂)는 위[上]이다. 이 계경(契經)에서 최상의 뜻을 말한 것이니라. 모든 성문과 벽지불들이 일찍이 듣지 못한 바이니, 한 구절 한 글자 편언(片言)이라도 귀를 지나면 비유컨대 모든 곳에서 울단월(鬱單越)의 복덕이 최상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대승방등도 이와 같아서 한 마디 말이라도 귀를 지나면 마땅히 이러한 사람은 사람 가운데 최상으로 보살이 되는 줄 알 것이니라. 이리하여 여래가 이 우자를 말했느니라.긴 우(憂)는 향기로운 우유와 같으니 그 우유의 향기로운 맛이 대승경전의 가장 으뜸가는 맛이 되느니라. 널리 여래의 진실한 성품을 말하여 법 아닌 교만을 모두 다 소멸하느니라.또다시 우는 큰 근심이 되나니 여래장(如來藏)에 대하여 지혜의 명근(命根)이 끊어지면 내가 없다는 말에 집착하게 된다. 마땅히 이런 이들은 큰 근심거리라 이름함을 알라. 그러므로 우를 말했느니라.열(咽)이란 바로 부처님 법을 말하며 여래 니원이며, 또한 이 법을 말하는 것이다. 열은 여래니 오고 간다는 뜻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를 여거(如去)라 말하기도 하느니라.오(烏)는 아래[下]다. 하천한 번뇌를 다 제거해 멸해 버린 것의 이름을 여래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오를 말했느니라.포(炮)는 마하연(摩訶衍)이니 열네 개 음에 포가 마지막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이름을 마하연이라 하며 일체 논(論)의 구경론이 되니, 이리하여 포를 말했느니라.안(安)은 일체다. 여래 교법은 일체 돈과 재물과 보물을 여의느니라. 안은 막는다는 뜻이며 일천제(一闡提)의 뜻이니라. 마지막 아(阿)는 다함이니 일체 경전에서 마하연이 최고요 다함이 되느니라.가(迦)는 일체 중생을 외아들과 같이 생각하여 일체 것에 모두 자비심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가를 말했느니라.
거(呿)는 파는 것[掘]이니 여래의 매우 심오한 법장을 발굴하여 지혜로 깊이 들어가되 단단함이 없나니, 그러므로 거를 말했느니라.
가(伽)는 갈무리함이니 일체 중생이 여래장이 있는 까닭으로 가를 말했느니라. 중음(重音) 가는 부르짖음[吼]이니 항상 사자후로 여래가 상주함을 말하느니라.아(俄)는 무르고 부드러움[脆]이니 일체 행이 속히 일어났다 속히 소멸하느니라. 그러므로 아라 하느니라.
차(遮)는 행(行)이니 중생을 성취하므로 이름하여 차라 하느니라.
차(車)는 비춤[照]이니 여래의 항상 머무는 성품이다. 그러므로 차라 말했느니라.도(闍)는 생김[生]이니 모든 해탈을 내는 것이다. 생사의 위태하고 취약한 생과 같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도를 말했느니라. 중음 도는 태움[燒]이니 일체 번뇌를 불살라 속히 소멸하는 것이니라. 때문에 도라 하느니라.
야(若)는 지혜니 법의 진실을 아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야를 말했느니라.타(吒)는 보여 줌이니 염부제엔 구족하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니라. 저 여래의 법신은 항상 머무나니, 그러므로 타를 말했느니라.
타는 만족을 보이는 것이니 평등하게 만족된 것이다. 그러므로 타를 말했느니라.
다(茶)는 가볍고 날듯 하여 빠지지 않음이니, 그러므로 다를 말했느니라. 중음 다는 부끄러움을 알지 못함이니 무거운 은혜를 갚지 않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다를 말했느니라.
나(拏)는 바르지 않음이니 모든 외도들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나를 말했느니라.다(多)는 일체 유(有)를 막아 하여금 상속치 않게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다를 말했느니라.
타(他)는 앎이 없음이니 누에가 고치를 짓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타를 말했느니라.
타(陀)는 마하연에 기뻐하는 방편이니, 그러므로 타를 말했느니라. 중음 타는 지님이니 삼보를 보호 유지하여 수미산과 같이 하고 침몰하지 않게 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타를 말했느니라.
나(那)는 성문(城門) 곁의 인다라 깃대와 같으니 삼보를 세우느니라. 그러므로 나를 말했느니라.파(波)는 뒤바뀐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니 삼보가 침몰하여 스스로 미혹하고 어지러운 것이니라. 그러므로 파를 말했느니라.
파(頗)는 세계의 성패와 계를 지니는 성패와 자기의 성패이니, 그러므로 파를 말했느니라.
바(婆)는 힘이니 모든 여래의 한량없는 신력(神力)과 같다. 다만 10력(力)만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바를 말했느니라. 중음 바는 능히 바른 법을 짊어지고 보살도를 위하나니, 그러므로 바를 말했느니라.
마(摩)는 지경이니 보살 법의 지경에 들어가 스스로 그 뜻을 강하게 하여 온갖 무거운 짐이 되나니, 그러므로 마를 말했느니라.야(耶)는 보살의 네 가지 공덕을 익혀 행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야를 말했느니라.
라(羅)는 음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소멸하여 진실한 법에 들어가나니, 그러므로 라를 말했느니라. 경음(輕音) 라는 성문(聲聞)ㆍ벽지불승(辟支佛乘)을 받지 않고 대승을 받아 배우는 것이니, 그러므로 라를 말했느니라.
화(和)는 일체 세간의 주술을 제작하는 것이니 보살이 모두 말하느니라. 그러므로 화를 말했느니라.사(賖)는 세 가지 독가시를 모두 뽑아 버리는 것이니, 그러므로 사를 말했느니라.
사(沙)는 가득하다는 뜻이니 방등의 경전을 다 능히 듣고 받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사를 말했느니라.
사(娑)는 바른 법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를 말했느니라.하(呵)는 놀라는 소리니 ‘괴이쩍도다. 모든 행이 모두 다 끝났도다. 괴이쩍도다. 여래가 반열반에 드시어 모든 즐거움을 여의시도다’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하를 말했느니라.
라(羅)는 마군[魔]이니 천마(天魔) 억천(億千)이 능히 여래의 바른 승(僧)을 파괴하지 못하며, 세간을 따라서 무너뜨림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니라. 또 세간을 따라 나타나 부모와 모든 종친 등이 되나니, 그러므로 라를 말했느니라.리리루루(釐釐樓樓) 이 네 글자는 네 가지 뜻을 키우니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과 대(對)가 있음을 시현하여 세간을 따르는 것이니라. 상대가 있음을 시현하는 것은 조달(調達)이 승가를 무너뜨림과 같으니, 승가는 실로 무너뜨려지지 아니하나 여래의 방편으로 승가를 무너뜨림을 시현하니, 이 형상을 변화해 만듦은 계를 결성하기 위한 까닭이니라. 만약 여래 방편의 뜻을 아는 자는 마땅히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마땅히 이 이름이 세간을 따르는 것임을 알 것이니, 그러므로 이 최후 네 글자를 말했느니라.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와 혀에서 나는 소리와 코를 따라 나는 소리, 뛰어난 소리, 긴 소리, 이러한 등의 뜻으로 이 글자들을 화합하느니라. 이와 같이 여러 글자가 여러 소리에 조화되어 온갖 말과 소리에 따라 들어가니 모두 혀와 치아를 인해 차별이 있으며, 이들 글자들을 인한 때문이니라. 한량없는 모든 우환이 쌓여 모인 몸과 5음ㆍ18계ㆍ62인연으로 화합된 것이라, 쉬어 고요히 소멸되면 여래의 성품에 들어가느니라. 부처의 성품이 나타나면 구경을 성취하나니, 그러므로 반자를 이름하여 모든 글자의 근본이 된다 하느니라.만약 법의 실체와 여래의 해탈을 관하건대 또한 문자 언설의 모양이 없으니, 글자의 모양과 맛의 모양을 모두 멀리 여의었느니라. 그러므로 일체를 멀리 여읜 것을 이름하여 해탈이라 하느니라. 그 해탈자는 곧 여래다. 반 글자를 인하여 능히 모든 법을 일으키되 모든 법이 글자를 인한다는 생각이 없으니, 이것의 이름이 문자의 뜻을 잘 아는 것이니라.만약 이와 달리하면 문자를 알지 못하고 모든 법이 법인지 법이 아닌지를 분별하는 것이니라. 여래의 성품은 삼보며 해탈이니라. 능히 경전인지 경전이 아닌지, 율인지 율이 아닌지, 마군의 말인지 부처님의 말씀인지 알지 못하고 모두 능히 나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은 문자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선남자야, 너희들이 마땅히 잘 반 글자를 배워야 하느니라. 또한 마땅히 저 문자를 아는 축에 들어야 하느니라.”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마땅히 이러한 반 글자를 잘 배우겠나이다. 이제 저의 세존이시여, 비로소 부처님의 제자를 위하여 최상의 스승이 되셨나이다. 제가 이제 비로소 글을 배우는 집에 들어왔나이다.”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좋고도 좋구나. 선남자야, 바른 법을 닦는 것을 좋아하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느니라.”
15. 조유품(鳥喩品)
부처님께서 다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기러기ㆍ학ㆍ사리새[舍利鳥]는 이른바 갖가지 무상ㆍ괴로움ㆍ공ㆍ내가 아님 등의 법을 뭇 기러기ㆍ학ㆍ사리새와 같다고 하는 것이니라.”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뜻이 어떠하나이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법은 무상하고 어떤 법은 항상하며, 어떤 법은 괴롭고 어떤 법은 즐거우니라. 어떤 법은 나이며 어떤 법은 내가 아니니, 비유컨대 농부가 오곡과 과수를 씨 뿌려 심되 그 싹으로부터 꽃과 열매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이 늘 항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다가 익음에 이르러 그 과실을 거두고 수용할 때에는 항상하다는 생각을 하나니, 까닭이 무엇인가? 참열매가 나타나기 때문이니라.”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오곡이 항상하여 여래와 더불어 같아 마멸되지 않는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오히려 여래로써 수미산에 비유하노라. 그 수미산이 세계가 무너질 때 어찌 무너지지 않겠는가? 선남자야, 비유에 비유하면서 이런 의문을 내지 말 것이니 모든 법이 다 마멸에 돌아가지만 오직 니원이 있어 항상한 법이니라. 세상의 언설을 따라 저것으로써 비유했을 뿐이니라.”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 세존이시여. 그 말씀이 훌륭하십니다.”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선남자야, 일체 경전에서 모든 삼매를 닦고, 나아가 대반니원방등경을 듣지 못했을 적에는 모든 중생들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다가 이 경을 들으면 선남자ㆍ선여인들이 품은 번뇌와 의심의 매듭을 영원히 여의고 항상한 법을 깨달아 알 것이다. 까닭이 무엇인가? 각각 자신 여래의 성품을 드러내기 때문이니라.또 선남자야, 비유컨대 금을 다루는 사람이 그 금을 녹일 적에 그릇이 이루어지기까지는 항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다가 보배그릇이 이루어지고 나면 항상 수용하나니, 이와 같이 선남자야, 일체 경전에 모든 삼매를 닦고, 나아가 대반니원방등경을 듣지 못했을 적엔 그 모든 중생들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다가 이 경을 들으면 품은 바 번뇌와 의심의 매듭을 영원히 여의고 항상한 법을 깨달아 알 것이다. 까닭이 무엇인가? 각각 자신 여래의 성품을 드러내기 때문이니라.또 선남자야,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사탕수수와 호마를 심어 익지 않았을 적엔 항상 갖가지 여러 맛을 생각하다가 마유(麻油)와 설탕이 만들어지고 나면 이에 참맛을 안다.이와 같이 선남자야, 일체 경전으로 모든 삼매를 닦고, 나아가 대반니원방등경을 듣지 않았을 적엔, 그 모든 중생들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다가 이 경을 듣고 나서 품은 바 번뇌와 의심의 매듭을 여의고, 항상한 법을 깨달아 아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각각 자신의 여래 성품이 드러난 때문이니라.비유컨대 온갖 냇물이[百川] 다 바다로 돌아가는 것처럼 이와 같이 일체 경전 및 모든 삼매가 다 방등반니원경으로 돌아간다. 무슨 까닭인가? 여래의 성품을 구경에 말한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어떤 법은 무상하고 어떤 법은 항상하다 말하느니라. 사리새와 같이 근심과 슬픔의 칼과 가시를 여래는 이미 끊었지만, 여기서 논함에 많은 의심이 있는 것은 여래에게도 근심과 슬픔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나 인간과 천상 및 다른 중생들의 슬픔 근심과는 다르니라. 비상처(非想處)에 어떻게 생각이 있겠는가? 하지만 만약 생각이 없다면 마땅히 수명이 있지 않을 것이요, 수명이 있고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생각과 5음, 18계의 이름이 있겠는가?또 숲의 나무에 모두 귀신이 의지해 있는 것과 같으니, 만약 귀신이 나무를 의지했다면 뿌리와 줄기에 의지하는가, 가지에 의지하는가? 이와 같이 아무 곳에도 다 나타나지 아니하니, 어디에 의지해 머무는가? 이와 같이 여래의 교법도 매우 심오하니라. 마땅히 알라. 여래에게도 이 근심과 슬픔이 있음을 나타내느니라. 라후라에게 자비심을 일으키고 나아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도 또한 이와 같이 하느니라.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이에 이 뜻을 아나니, 이러한 것이 모두 모든 부처님의 법이니라.오히려 마음과 의식이 없거니, 어찌 근심과 슬픔이 있으리요마는 근심과 슬픔이 만약 없다면 교법이 서로 어기니, 외아들과 같이 생각한다는 것이 헛된 말이라, 일체 법을 말하여도 모두 믿을 수 없느니라. 다만 여래가 말한 바는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으며, 모든 부처님의 교법도 또한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으며, 여래의 불법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으니, 이것이 진실이니라.비유컨대 허공 가운데 집을 지어 세울 수 없으나, 환술쟁이들은 능히 짓나니, 어리석은 범부들이 보고나서 생각하되 ‘어떻게 공중에 세우는가?’ 하는 것은 마음과 의식이다.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오히려 마음과 뜻이 없거니, 어찌 근심과 슬픔이 있으리오?’ 하는 것이니, 근심과 슬픔이 만약 없다면 라후라의 비유가 진실이 아니리라. 허공 가운데 여래의 근심과 슬픔을 얻을 수 없지만 그 환화(幻化)가 마음과 뜻을 따라 전변하니, 여래도 곧 근심과 슬픔의 생각이 있느니라.반니원을 듣고 생각하되 ‘어찌 근심과 슬픔이 있으리오?’ 하나 전변함을 들은 자는 항상 근심과 슬픔이 있다고 하니,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 머무느니라. 만약 무상하다면 근심과 슬픔이 없으리니, 이제 여래가 무상한 것이 아니니라. 여래의 근심과 슬픔 및 근심과 슬픔이 없음은 다들 모두 알지 못하나니, 하품인 사람은 하품 법만 알고 중품과 상품 법을 알지 못하며, 중품인 사람은 중품과 하품 법만 알고 상품 법을 알지 못하며, 오직 상품인 자라야 일체를 모두 아나니, 모든 성문과 벽지불이 각각 자신은 알지만 능히 여래 경계를 모르느니라. 그러나 여래는 다 아나니 그러므로 모든 장애를 여의었다 하느니라.비유컨대 환술쟁이가 갖가지 변화를 나타내듯이 여래도 또한 그러해서 갖가지를 보여 나타내 세간을 따르느니라. 능히 이렇게 할 줄 아는 것을 약은 지혜라 하느니라. 육안 범부들의 생각이 없다는 생각은 그 경계가 아니니라. 여래가 근심하고 근심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이러한 까닭으로 내가 어떤 법은 나이고 어떤 법은 내가 아닌 것이 사리새와 같다고 말하느니라.또 선남자야, 비유컨대 기러기와 학, 그리고 사리새는 여름에 비가 와 강이 넘칠 적에 높은 곳을 가려서 그 새끼를 안전하게 해 둔 후에 나들이를 간다. 이와 같이 여래가 세상에 나와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여 바른 법에 들게 하매 교화 받는 자들을 위하여 방편으로 법을 말하되, 혹 괴로운 법을 말하고 혹 즐거운 법을 말하나니, 함이 있는 모든 행을 괴로움이라 하며, 니원은 지극히 즐거워함이 있는 행을 여의어 즐거움이 된다 말하느니라.”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 뜻이 어떠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른바 여여하니라.”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중생이 니원의 즐거움을 얻나이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내가 먼저 모든 행은 태어나고 늙고 죽음이 없다고 말한 것과 같다.
만약 방일함이 없으면
이곳이 죽지 않는 데요,
만약 방일하면
이것이 죽는 길이니라.
방일함이 없는 자는
죽지 않는 곳을 얻을 것이요,
만약 방일한 자는
항상 나고 죽는 데 처하리라.
만약 방일한 자는 함이 있는 행이니 저 함이 있는 행은 곧 괴로운 법이요, 니원이 아닌 것은 죽는 곳이니라. 만약 방일하면 이 이름이 짓는 행이니, 마땅히 이 행이 곧 큰 괴로움이 됨을 알아야 하느니라. 니원에 나아가지 않는 것이 죽는 길이요, 방일함이 없는 자는 짓지 아니하는 행이니라. 비록 다시 짓는 행이라도 또한 나고 죽지 아니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금강처럼 파괴되지 않는 몸이라 하느니라.세속이란 방일한 것이니 세속을 여읜 것이라야 방일함이 없는 것이며, 나고 늙고 죽음을 여읜 니원의 쾌락이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괴로운 법을 말하기도 하고 즐거운 법을 말하기도 하며, 내가 아님을 말하며 나를 말하기도 하나니, 새가 공중을 날아가매 그 자취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천안(天眼)이 없어 번뇌를 끊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 여래의 성품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법이 내가 없음을 말하면 번뇌가 되는 까닭에 미세한 비밀의 가르침을 말하였는데 모든 중생들이 천안이 없어 나라 계교하여 한량없는 번뇌로 함이 있는 행을 지으므로 그들을 위하여 모든 법이 무상하다 말하나니, 이 때문에 내가 어떤 법은 무상하다 말한다 하느니라.
마치 밝은 달이 산꼭대기에 머물러
그 땅의 어리석은 범부들을 살펴 알듯
여래의 도안이 지혜의 대(臺)에 떠올라
근심 없는 근심으로 온갖 중생 생각하네.
이와 같이 한량없는 번뇌가 모두 없어진 것의 이름이 산꼭대기에 머묾이니, 그 한량없는 번뇌가 치성한 낮은 중생이 누가 지혜의 대에 오르는가 관찰하는 것이니라. 무엇을 근심 없는 것이라 하는가? 만약 근심이 없다면 어떻게 세간을 근심하여 생각한다 하는가? 만약 니원에 멸진하면 어찌 어리석은 자를 관찰할 수 있는가? 만약 여래로 하여금 니원에 멸진하게 하면 어떻게 능히 지혜의 높은 봉우리에 오르리오. 만약 마땅히 니원하면 어떻게 산꼭대기에서 능히 그 아래를 관찰하리오? 지혜의 대라는 것은 멸진한 니원을 이름이요, 근심 없이 근심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여래가 세간의 한량없는 뭇 중생들을 근심하여 생각하는 것이니라.산꼭대기는 해탈이며 머무는 자는 행인이며, 땅은 함이 있는 행이니라. 어리석음은 교묘한 방편의 말이 없는 것이요, 살펴 아는 것은 바른 깨달음이니라. 여래는 근심과 괴로움을 영원히 여읜 항상한 법이므로 자기의 근심을 여의고 예리한 가시에 찔려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중생들을 보고 저들을 위하여 근심을 내느니라.만약 여래가 영원히 근심을 여의었다면 바른 깨달음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저 중생들이 마땅히 교화를 받을 자를 따라서 여래ㆍ등정각이 곧 저들을 위하여 나타난다. 그러므로 마땅히 여래는 항상 머묾을 알라. 갖가지로 보여 나타내는 것이 마치 기러기ㆍ학ㆍ사리새와 같으니라.”
16. 월유품(月喩品)
부처님께서 다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달이 지면 사람들이 없어졌다 하여 일체 인민들이 모두 없어졌다는 생각을 하나 다른 지방에 나타나면 다른 지방의 인민들은 모두 달이 떴다 하느니라. 그렇지만 저 달은 지지도 아니하고 뜨지도 아니하느니라. 수미산 때문에 뜨고 지는 것이 나타날 뿐이니라.이와 같이 여래ㆍ응공ㆍ등정각도 대천세계, 혹 염부제에 부모를 인하여 태어나 아들이 되는 것을 나타내었는데, 염부제 사람들이 모두 태어났다는 생각을 하나니라. 또 염부제에 열반에 듦을 나타내는데, 이 중생들이 모두 없어졌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실제는 여래는 태어나지도 아니하고 없어지지도 아니하느니라.또 선남자야, 달이 다른 지방에서 보름달을 나타내면 저 지방 중생들이 모두 달이 찼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 염부제에서는 초승달로 나타나 있느니라. 이 지방 인민들은 처음 생겼다는 생각을 하다가 점점 커져 이에 보름달이 되면 문득 찼다는 생각을 하느니라. 그렇지만 저 달은 커지지도 아니하였고 줄어들지도 않았느니라. 수미산을 인하여 커지고 줄어듦이 있는 것을 나타냈을 뿐이니라. 여래ㆍ응공ㆍ등정각도 또한 이와 같다.혹 염부제에서 니원을 나타내면 모든 중생들이 다 없어진다는 생각을 한다. 혹 염부제에 출생함을 보여 나타내면 마치 초승달과 같다 하며, 염부제 사람들이 영아라는 생각을 하며, 초사흘 달과 같다 한다. 걸음마를 하는 것을 나타내면 나흘 달과 같다 하며 글을 배우게 되면 여드레 달과 같다 하고 출가를 나타내면 이에 보름달이라 한다.큰 광명을 놓아 한량없는 뭇 마군을 부수고 몰래 열반에 듦을 나타내며, 서른두 가지 뛰어난 몸매와 80가지 좋은 모습으로 그 몸을 장엄하면, 마치 달이 별들에 싸여 없어져 나타나지 않듯이 염부제 사람들이 혹 생겼다는 생각을 하고 혹 없어졌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실은 여래는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아 항상 보름달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여래는 항상 머무느니라.또 선남자야, 밝은 달은 모든 곳, 성읍ㆍ마을ㆍ산ㆍ못에서 보나니, 그릇의 크고 작음을 따라 모든 물 가운데의 일체에 모두 나타나느니라. 만약 사람이 백천 유순(由旬)을 가면 달이 항상 따라다닌다. 저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되 ‘본래 달이 나를 따라 오는가, 다른 달인가?’ 하나니라.어리석은 사람은 달을 보고 마치 거울면과 같다 하고, 중간 사람은 달을 보고 수레바퀴와 같다 하며, 상위 사람은 달을 보고 둥글기가 5유순이라 하며, 그리고 다른 중생들도 능력 따라 보느니라. 여래 명월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가 모두 보는데, 중생들이 제각기 생각하기를 ‘부처님ㆍ세존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므로 나의 집에 머물러 있다’ 하며, 그리고 축생도에도 또한 그러하다 하느니라.귀머거리와 장님과 농아와 곱사등이들도 각기 여래가 자기들의 모습과 유사하며, 갖가지 말ㆍ갖가지 글ㆍ갖가지 몸들과 같다고 한다. 모두 생각하기를 ‘모든 부처님ㆍ여래께서 오직 내 말ㆍ내 글ㆍ내 몸ㆍ내 밥처럼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생각을 하되 ‘혹 성문이라 하며, 혹 연각이라 하며, 혹 갖가지 이도들이 출가했다 하며, 혹 여래께서 나를 위해 세상에 나왔다’ 한다.그러나 여래 법신은 진실로 변하여 달라지지 않느니라. 중생을 위하여 방편으로 몸을 갖가지 모양으로 나타내는 것이 좋은 약나무와 같이 여래도 그러하느니라.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백천 가지 변화를 나타내어 세간을 따르느니라. 이렇기 때문에 여래는 항상 머무는 법이니라.또 선남자야, 라후아수라가 해와 달을 잡을 때에 여러 중생들은 그가 달을 먹는다 하며, 그가 달을 놓고 나면 달을 토했다 하나니, 그가 달빛을 막아 세간에 나타나지 아니하므로 문득 먹는다는 생각을 하고 그가 달을 놓아 세간에 다시 나타나면 달을 토했다 하느니라. 그렇지만 달이 숨거나 나타나거나 실로 늘어나고 줄어듦이 없느니라. 여래ㆍ응공ㆍ등정각도 또한 그러하니라.저 조달이 부처님 몸을 상하고 무너뜨려 무간업을 지은 등과 더 나아가 일천제(一闡提) 무리들이 모두 미래 중생을 위한다는 탓으로 부처님 몸을 상처나게 하고 법을 무너뜨리고 스님들을 부수었다고 하지만 여래의 법신은 실로 상하고 무너뜨려짐이 없느니라. 바로 천마(天魔)가 백천억 수라도 또한 능히 법을 끊거나 스님들을 무너뜨리지 못하느니라. 이렇기 때문에 여래의 법신은 진실로 손상되어 무너뜨려지지 않느니라. 손상하고 무너뜨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세간을 따르는 것이니라.비유컨대 두 사람이 서로 싸울 적에 그 상처의 양을 따라서 죄가 가볍고 무거운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ㆍ여래도 또한 그러하니라. 상하여 무너뜨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무간업을 표현하는 것이니, 법률을 제정하여 장래를 경계하기 위한 것이니라.또 선남자야, 비유컨대 훌륭한 의사가 그의 아들을 가르쳐 의술과 약방을 배우게 하여 모든 약초의 뿌리와 줄기, 꽃과 잎, 향기와 맛, 색깔과 모양을 모두 분명히 알게 하고, 목숨을 마친 뒤에 그 아들이 계속하여 의술의 법을 잘 아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ㆍ여래도 또한 다시 그러하니라. 갖가지 변화로 중생을 치료하되 5역죄와 경법을 비방하고 헐뜯는 것을 나타내며, 더 나아가 일천제 무리들을 모두 변화하여 나타내느니라. 당래를 위하는 까닭으로 니원에 든 후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경전과 율을 따르게 하니, 여래의 말씀대로 죄의 가볍고 무거움을 알아 스스로 경계하여 삼갈 것이니라.또 선남자야, 인간 세상의 달은 여섯 달에 한 번씩 월식하지만 위의 여러 천상세계에서는 하루 만에 월식을 보며, 혹 다시 달이 잠깐 사이에 먹히는 것을 보나니, 무슨 까닭인가? 천상의 일월은 길고 인간은 짧기 때문이니라. 모든 부처님ㆍ여래도 또한 그러하여 혹은 장수하는 것이 여섯 달 만에 하는 월식과 같으며, 그리고 잠깐 사이에 열반에 드는 것은 번뇌의 마군ㆍ5음의 마군ㆍ죽음의 마군ㆍ자재천의 마군이 백천억 가지를 능히 무너뜨리지 못하는 바라, 한량없는 생을 나타내 세간을 따르지만 여래의 수명은 실로 한량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 머무는 법이니라.또 선남자야, 비유컨대 밝은 달을 일체 중생이 모두 좋아하나니, 여래ㆍ응공ㆍ등정각도 또한 그러해서 법을 좋아하는 중생들이 모두 좋아하느니라.또 선남자야, 비유컨대 해가 뜨는 것이 세 때의 변화가 있으니, 봄ㆍ여름ㆍ겨울이 다르니라. 겨울 해는 짧고 봄 해는 중간이며 여름 해가 가장 길다.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의 해도 또한 그러해서 세 가지 목숨을 나타낸다. 모든 중생들과 성문ㆍ연각들을 위하여 짧은 수명의 모습을 나타내면 이들이 보고 나서 마음에 곧 슬퍼 탄식하기를 ‘어찌 괴이쩍은가? 여래의 수명이 짧다니’라고 하느니라.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중간 목숨을 나타내나니, 한 겁에 이르고 한 겁을 지나느니라. 오직 부처님이라야 부처님의 수명이 한량이 없는 것을 보느니라.또 선남자야, 여래가 말한 방등대승의 미묘하고 비밀한 가르침이 세간에 나타남을 보여 큰 법비[法雨]를 내려 당래세에 그 어떤 중생이 이 바른 법인 마하연품으로써 세간에 열어 보이면 마땅히 알라. 이들은 참된 보살이라, 마치 여름비와 같으니라. 겨울날에는 냉해가 많아 사람들의 수명에 손해가 있는 것과 같다. 성문이나 연각들이 부처님의 방편인 미묘하고 은밀한 가르침을 들으면 그 수명이 짧은 보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 겨울 해와 같으니라. 모든 보살들은 미묘한 지혜를 이루어 여래의 항상한 법을 나타내나니, 마치 봄 해와 같으니라.이와 같이 여래가 세간을 따라서 세 때의 수명을 나타내느니라. 비유컨대 뭇 별이 낮에 나타나지 아니한다고 진실로 없어지지 않은 것과 같으니라. 이처럼 여래와 성문과 벽지불이 함께 세상에 나와 함께 니원을 나타내나니, 유독 성문ㆍ연각에게 무상만 있는 것이 아니니라. 마땅히 알라. 또한 항상 머무는 법이 낮의 별과 같으니라.또 선남자야, 하늘이 어두워 해와 달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리석은 범부들은 해와 달이 없어졌다 말하는 것처럼 여래의 바른 법이 다 멸한 때에 삼보(三寶)가 나타나고 없어짐도 또한 그러해서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라. 마땅히 알라. 여래는 항상 존재하는 법이며 또한 변하여 바뀌지 않으며, 마멸하지 않나니, 저러한 모든 허물이 오염되게 하는 것이 아니니라.또 선남자야, 달이 없는 밤에 혜성(彗星)이 밝고 어두운 중간에 잠깐 광명을 나타내면 뭇 사람들이 보고 찾으나 곧 다시 사라지나니, 사람들이 없어졌다 하지만 실은 없어진 것이 아니니라. 이와 같이 선남자야, 여래의 바른 법이 다 멸할 때에 모든 벽지불이 세상에 나와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함을 열어 보여 바른 법을 세워 놓고 곧 멸도하지만 그 실은 오래 있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라. 다만 모든 중생들이 능히 다 보지 못할 뿐이니라.또 선남자야, 비유컨대 해가 돋으면 온갖 어두움이 모두 제거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선남자야, 이 마하연 반니원경이 세상에 나오고 그것을 들은 적이 있는 자는, 무간죄업이 한량없이 쌓여 모였다 하더라도 다 모두 소멸되리라. 이와 같이 선남자야, 이 마하연 대반니원의 매우 심오한 경계는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이 여래의 미묘한 성품을 잘 말했느니라. 만약 선남자ㆍ선여인들이 여래가 항상 머무는 법과 바른 법과 다함이 없는 승보가 없어지지 아니함을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부지런히 방편으로 이 경전을 닦아 배울 것이니라. 이 사람은 부처님의 지위에 가까워진 사람이라고 나는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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