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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111 불교 (대지도론/大智度論) 99권

by Kay/케이 2024.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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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지도론(大智度論) 99

 

대지도론 제99권

89. 담무갈품(曇無竭品)을 풀이함 ①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經】“그때에 담무갈 보살마하살이 살타파륜보살에게 말했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은 어디서 오신 곳도 없고 어디로 가신 곳도 없느니라. 왜냐 하면, 모든 법의 여(如)는 동요하지 않는 모양이어서 모든 법의 여가 곧 부처님이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무생(無生)의 법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데도 없나니 무생의 법이 곧 부처님이요, 무멸(無滅)의 법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데도 없나니 무멸의 법이 곧 부처님이며, 실제(實際)의 법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데도 없나니 실제의 법이 곧 부처님이요, 공(空)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데도 없나니 공이 곧 부처님이니라. 선남자여, 무염(無染)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데도 없나니 무염이 곧 부처님이요, 적멸(寂滅)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데도 없나니 적멸이 곧 부처님이며, 허공의 성품[虛空性]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데도 없나니 허공의 성품이 곧 부처님이니라.
선남자여, 이 모든 법을 여의고는 다시는 부처님이 없나니, 모든 부처님의 여(如)와 모든 법의 여는 하나의 여이어서 분별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이 여는 항상 하나이어서 둘도 없고 셋도 없으며 모든 수(數)의 법을 벗어났으니,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봄철의 마지막 달 한창 더운 대낮에 아지랑이가 이글거릴때 어떤 사람이 그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고는 그것을 쫒아가면서 물을 얻기를 바라는 것과 같으니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물은 어느 못이나 어느 산이나 어느 샘에서 와서는 지금 어느 곳으로 가버렸으며, 동쪽의 바다나 서쪽의 바다나 남쪽의 바다나 북쪽의 바다로 들어간 것이겠는가?’
살타파륜보살이 말하기를 ‘큰 스승이시여, 아지랑이 속에는 물이라는 것조차 오히려 없거늘 어떻게 오는 곳과 가는 곳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담무갈보살은 살타파륜에게 말했느니라.
‘선남자여, 어리석은 범부로서 지혜가 없는 이는
몹시 덥고 목이 마를 때에 아지랑이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물이 없는데도 물이라는 생각을 내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모든 부처님은 오는 곳도 있고 가는 데도 있다고 분별하면, 이런 사람들은 모두가 이와 같은 어리석은 범부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은 색신(色身)으로써는 볼 수 없으며 모든 부처님의 법신(法身)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데도 없기 때문이니, 모든 부처님의 오는 곳과 가는 데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비유하건대 마치 환술사가 코끼리나 말이나 소나 양이나 남자나 여자 등 갖가지를 환술로 만드는 것과 같나니, 이러한 갖가지 물건에 대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환술의 일은 어디서 왔다가 어느 곳으로 가는 것이겠는가?’
살타파륜보살이 말했느니라.
‘큰 스승이시여, 환술의 일에는 실체가 없거늘 어떻게 하여 오고 가는 데가 있겠습니까.’
[담무갈보살이 말했느니라.]
‘선남자여, 이 사람이 부처님은 오는 곳도 있고 가는 데도 있다고 분별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비유하건대 마치 꿈속에서 코끼리나 말이나 소나 양이나 남자나 여자를 보게 된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꿈속에서 보는 것은 오는 곳도 있고 가는 데도 있겠는가?’
살타파륜보살이 말했느니라.
‘큰 스승이시여, 이 꿈속에서 보는 것은 허망한 것이거늘, 어떻게 하여 오고 가는 데가 있겠습니까.’
[담무갈보살이 말했느니라.]
‘선남자여, 이 사람이 부처님은 오는 곳도 있고 가는 데도 있다고 분별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부처님은 〈모든 법은 마치 꿈과 같다. 만일 어떤 중생이 이 모든 법의 이치를 모르면서 이름과 색신으로 부처님에 애착한다면 이 사람은 모든 부처님은 오는 곳이 있고 가는 곳도 있다고 분별하는 것으로, 모든 법의 실제(實際) 모양을 모르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들은 모두가 어리석은 범부로서 지혜 없는 이의 범주에 들며, 이런 사람은 자주자주 5도(道)를 왕래하면서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의고 모든 부처님의 법을 여의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부처님은 말씀하시되 〈모든 법은 마치 환과 같고 꿈과 같다〉고 하셨으니, 만일 어떤 중생이 여실히 알면, 이 사람은 모든 법이 온다거나 간다거나 난다거나 없어진다고 분별하지 않나니,
만일 모든 법이 오고 가거나 나고 없어진다고 분별하지 않으면, 곧 부처님이 말씀하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알 수가 있느니라. 이런 사람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워져 진실한 부처님의 제자라 불리우리니, 허망하게 남의 신시(信施)를 먹지 않고 마땅히 공양을 받을 만하며 세간의 복전(福田)이 될 것이니라.
선남자여, 비유하건대 마치 큰 바닷물 속에 있는 모든 보물은 동쪽으로부터 오지도 않았고 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로부터 오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중생들의 선근의 인연 때문에 바다에서 이런 보물이 생겨났지만 이 보물 또한 인(因)과 연(緣)이 없이는 생기지도 않아서 이 보물은 모두가 인연의 화합으로부터 생기며, 이 보물이 없어진다고 해도 역시 시방에 이르지도 않나니, 모든 인연[緣]이 화합한 까닭에 있다가 모든 인연이 여의는 까닭에 소멸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의 몸도 이와 같아서 본래 업의 인연의 과보로부터 생기는 것이므로 생길 때에도 시방으로부터 오지 않았고 소멸할 때에도 시방에 가 이르지도 않나니, 다만 모든 인연이 화합한 까닭에 있다가 모든 인연이 여의는 까닭에 사라지느니라.
선남자여, 비유하건대 마치 공후[箜篌]의 소리는 나올 때에도 오는 곳이 없고 없어지는 때에도 가는 데가 없으며 뭇 인연이 화합한 까닭에 나는 것과 같느니라. 그것에는 몸체[槽]가 있고 목[頸]이 있으며 가죽[皮]이 있고 줄[絃]이 있으며 기둥[柱]이 있고 묶은 데[棍]가 있어서 어떤 사람이 손으로 공후를 뜯으면 뭇 인연이 화합하면서 소리가 있게 되느니라. 이 소리 또한 몸체로부터 나오지도 않고 목으로부터 나오지도 않으며 가죽으로부터 나오지도 않고 줄로부터 나오지도 않으며, 기둥으로부터 나오지도 않고 묶는 데서부터 나오지도 않으며, 또한 사람의 손으로부터 나오지도 않나니, 여러 가지 인연이 화합하여야 비로소 소리가 나고 이 인연을 여의는 때에도 또한 가는 데가 없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의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한량없는 공덕의 인연으로부터 생기되, 하나의 인[一因]이나 하나의 연[一緣]이나 하나의 공덕[一功德]만으로 생기지도 않고 또한 인연이 없이 있는 것도 아니니, 뭇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있느니라. 모든 부처님의 몸은
홀로 하나의 일로써만 이뤄지지 않지만 오되 어디에서 오는 곳도 없고 가되 어느 곳에 이르는 데도 없느니라.
선남자여, 마땅히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의 오고 가는 모양을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또한 온갖 법도 오고 가는 모양이 없음을 알아야 하나니, 그대가 만일 모든 부처님과 그리고 모든 법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며 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는 모양임을 안다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또한 반야바라밀과 방편의 힘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니라.’
그때에 석제환인이 하늘의 만다라꽃[曼陀羅花]을 가지고 와서 살타파륜 보살마하살에게 주면서 말했느니라.
‘선남자여, 이 꽃을 가져다 담무갈 보살마하살에게 공양하십시오. 저는 마땅히 당신을 수호하고 공양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당신의 인연의 힘 때문에 오늘 백천만억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착한 사람은 심히 만나기 어려운 분이시니, 온갖 중생을 이롭게 하려고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갖은 애를 쓰면서 부지런히 고행하셨습니다.’
살타파륜 보살마하살은 석제환인이 준 만다라꽃을 받아 담무갈보살의 위에다 뿌리고는 말했느니라.
‘큰 스승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을 스승님께 맡기겠으며, 바치고 공양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세 번을 아뢴 뒤에 합장하고 스승 앞에 서 있었으니, 이때에 장자의 딸과 5백의 시녀들도 살타파륜에게 말했느니라.
‘저희들도 오늘부터 역시 이 몸을 스승님께 맡기겠습니다. 저희들은 이 선근의 인연 때문에 장차 이와 같은 법을 얻는 것도 스승님이 얻는 것과 같을 것이며, 스승님과 함께 세상마다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세상마다 언제나 스승님께 공양하겠습니다.’
이때에 살타파륜보살이 장자의 딸과 5백의 여인들에게 말하기를 ‘만일 그대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나에게 의지한다면
나는 그대들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여인들은 ‘저희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스승님께 의지하는 것이며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고 하였느니라.
이때에 살타파륜보살과 5백의 여인들은 함께 저 장엄한 모든 보물과 훌륭한 공양거리며 그리고 5백 대의 7보의 수레를 담무갈보살에게 받들어 올리면서 말했느니라.
‘큰 스승이시여, 저는 이 5백의 여인들을 큰 스승께 바칩니다. 그리고 이 5백 대의 수레도 마음대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때에 석제환인이 살타파륜보살을 찬탄하면서 말했느니라.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선남자시여. 보살마하살은 일체의 소유를 버림이 이와 같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보시해야 신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이와 같이 설법하는 이에게 공양하면 반드시 반야바라밀과 방편의 힘을 듣게 될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본래 보살의 도를 행하실 때에 역시 이와 같이 하시면서 보시 안에 머물러 반야바라밀과 방편의 힘을 듣게 되셨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던 것입니다.’
그때에 담무갈보살은 살타파륜보살로 하여금 선근을 두루 갖추게 하려고 일부러 5백 대의 수레와 장자의 딸과 5백의 시녀를 받았으며, 받은 뒤에는 도로 살타파륜보살에게 주었느니라.
이때에 담무갈보살은 법을 설한 뒤에 해가 지자 일어나서 궁중으로 들어갔으며, 살타파륜 보살마하살은 생각하기를 ‘나는 법을 위하여 일부러 왔다. 앉거나 눕지도 않아야 한다. 거닐거나 서 있는 이 두 가지 일만을 하면서 법사께서 궁중으로부터 나오셔서 법을 설하시기를 기다려야 되겠다’고 하였느니라.
그때에 담무갈보살은 7년 동안을 한마음으로 한량없는 아승기의 보살삼매(三昧)에 들어갔으며 반야바라밀의 방편의 힘을 행하고 있었느니라. 살타파륜보살도 역시 7년 동안을
거닐고 다니면서 서서 있었으니, 앉거나 눕지 않으면서 잠도 자지 않았으며, 탐욕이나 성냄의 번뇌도 없고 마음은 맛[味]에 탐착하지 않으면서 다만 ‘담무갈 보살마하살이 언제 삼매에서 일어나 나와서는 법을 설하시게 될까’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느니라.
살타파륜보살은 7년이 지난 뒤에 생각하기를 ‘나는 담무갈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설법하실 자리를 펴 놓아야겠다. 담무갈 보살마하살은 그 위에 앉아 법을 설하셔야 하리니, 나는 땅에 물을 뿌리고 깨끗하게 하며 갖가지의 꽃도 흩어 놓아 이곳을 장엄해야 되겠구나’고 하였으니, 그것은 담무갈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과 방편의 힘을 설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느니라.
이때에 살타파륜보살은 장자의 딸과 그리고 5백의 시녀들과 함께 담무갈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7보로 된 평상을 펴놓았으며, 5백의 여인들은 저마다 그들의 상의(上衣)를 벗어서 자리 위에 편 뒤에 생각하기를 ‘담무갈 보살마하살께서는 이 자리 위에 앉으셔서 반야바라밀과 방편의 힘을 설하시리라’고 하였느니라.
살타파륜보살은 자리를 펴 놓은 뒤에 물을 구해다 땅에 뿌리고자 하였으나 물을 구할 수가 없었느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악마가 물을 은폐시켜 드러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니, 악마는 생각하기를 ‘살타파륜보살이 물을 구하다가 얻지 못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행에 대하여 한 생각만이라도 하열한 마음이나 다른 마음을 내면, 그의 선근이 더하지 못하고 지혜도 밝아지지 못한 채 일체종지에 지체하게 되리라’고 했던 것이니라.
그때에 살타파륜보살은 생각하기를 ‘나는 스스로 몸을 찔러서 피를 내어 땅에다 뿌려 먼지가 큰 스승을 더럽히지 않게 해야 한다. 나에게 이 몸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몸은 반드시 파괴되고 말 것이다. 나는 시작도 없는 세상에서부터 나고 죽고 하면서 자주자주 몸을 잃었으면서도 아직 일찍이 법을 위하여 잃은 일이 없었다’고 하고는 즉시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손수 그의 몸을 찔러서 피를 내어 땅에다 뿌렸느니라.
살타파륜보살과 장자의 딸과 그리고 5백의 시녀들도 모두가 딴 마음이 없었으므로 악마 또한 그 틈[便]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이때에 석제환인이 생각하기를 ‘전에 없던 일이로다. 살타파륜보살이 법을 좋아하는 것이 이러하구나. 칼을 쥐고 스스로 몸을 찔러서 피를 내어 땅에다 뿌리면서도 살타파륜이나 여러 여인들은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있으므로 악마 파순(波旬)도 그들의 선근을 파괴하지 못하고 있다. 그 마음이 견고하면서 큰 장엄을 일으키고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깊은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면서 온갖 중생들을 한량없는 생사의 고통에서 제도하려 하는구나’라고 하면서 석제환인은 살타파륜보살을 찬탄하면서 말했느니라.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선남자여, 당신의 정진하는 힘이야말로 크고도 견고하여 움직이기 어렵고 불가사의 하십니다. 당신은 법을 좋아하여 법을 구하는 이로서는 으뜸이시니 그보다 더할 이가 없겠습니다.
선남자여,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또한 이와 같아서 깊은 마음으로 법을 좋아하고 아끼며 법을 소중히 여겨 모든 공덕을 쌓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습니다.’
살타파륜보살이 생각하기를 ‘나는 담무갈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법좌(法座)를 펴고는 비로 쓸고 물을 뿌린 뒤에 깨끗하게 하였으니 이제는 어디에서 이름난 좋은 꽃을 얻어다 이 땅을 장엄해야 하는가? 만약 담무갈보살이 법좌 위에 앉아 법을 설할 때에는 꽃을 뿌려 공양해야 한다’고 하자, 석제환인은 살타파륜보살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고는 즉시 3천(千) 석(石)이나 되는 하늘의 만다라꽃을 살타파륜에게 주었으므로 살타파륜은 꽃을 받은 뒤에 반은 땅에다 뿌리고 반은 담무갈 보살마하살이 법좌 위에 앉아 법을 설할 때를 기다려공양하려고 남겨 두었느니라.

그때에 담무갈 보살마하살은 7년 동안을 지낸 뒤에 모든 삼매로부터 일어나 반야바라밀을 설하기 위하여 한량없는 백천만 대중들에게 공경히 둘러싸여 법좌 위로 가서 앉았느니라.
살타파륜 보살마하살은 담무갈 보살마하살을 보자 마음이 즐거웠으니, 그것은 마치 비구가 제3선(禪)에 들어있는 것과 같았느니라.”
【論】해석한다. 살타파륜보살은 비록 모든 법이 공하여 오고 가는 모양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아직 깊이는 들지 못했고 또한 갖가지 법문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것은 모든 부처님의 몸에 대하여 공경하고 존중함이 너무도 깊었기 때문에 그것이 공하다고 관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큰 바닷물의 파도가 비록 그 힘이 세다 하더라도 수미산 곁에 이르면 물러나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살타파륜보살도 이와 같아서 비록 큰 공(空)의 지력(智力)이 있었다 하더라도 부처님께 이르기만 하면 역시 아무 소용이 없어졌다.
이 때문에 담무갈보살은 여기에서 그에게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은 어디서 오는 곳도 없고 간다고 해도 또한 이르는 데가 없느니라”고 하였다.
이 가운데서 담무갈은 스스로 인연을 말한 것이니, 이른바 “모든 법의 여(如)는 동요하지 않는 모양이며, 모든 법의 여가 곧 부처님이다”라고 한 것이다.
【문】어떤 것이 모든 법의 여(如)인가?
【답】모든 법의 실상(實相)이니, 이른바 성공(性空)과 무소득공(無所得空) 등의 모든 법문이다.
【문】마하반야바라밀은 부처님 법의 대승(大乘) 6바라밀 가운데서 으뜸가는 법이니, 만일 부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반야를 설한 이도 없을 것이다.
32상(相)과 80수형호(隨形好)와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 등은 형색 있고 형색 없는 것 등의 깨끗하고 묘한 5중(衆)과 화합하니, 그 때문에 부처님이라 하는 것이다. 마치 다섯 손가락이 화합한 것을 주먹이라 말하지만, 주먹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다. 이름은 벌써 다르고 형상 또한 다르며 힘과 작용도 다르다 하여 주먹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답】그렇지 않다. 부처님 법 가운데는
두 가지 진리가 있나니, 세속의 이치[世諦]와 제일의 이치[第一義諦]이다. 세속의 이치 때문에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을 말씀하시고, 제일의 이치 때문에 ‘모든 부처님은 공하여 오는 곳도 없고 가는 데도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대가 말한 것과 같아서 “깨끗한 5중(衆)이 화합하기 때문에 부처님이라 한다”고 하는데, 만일 화합한 까닭에 있다 한다면 그것은 곧 없는 것이 된다.
경에서 부처님은 친히 그 인연을 말씀하시기를 “5중은 부처님이 아니요 5중을 여의어도 또한 부처님은 없다. 5중은 부처님 가운데 있지 않고 부처님도 5중 가운데 있지 않으며, 부처님은 5중으로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셨느니라.
왜냐 하면 5중은 다섯이요 부처님은 곧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다섯이 되지 못하고 다섯도 또한 하나가 되지 못한다.
또 5중에는 제 성품[自性]이 없기 때문에 거짓이요 진실하지 못하다. 부처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온갖 거짓이 없는 법 가운데서 나[我]는 맨 첫째이다. 그러므로 5중은 곧 부처님이 아니다”고 하신다.
또 만일 5중이 부처님이라면, 5중을 지닌 모든 것이 곧 부처님이어야 한다.
【문】그런 힐난 때문에 나는 앞에서 “제일이면서도 가장 깨끗한 5중으로 된 32상 등을 부처님이라 한다”고 말했다.
【답】32상 등은 보살일 때에도 있는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 부처님이라 하지 않는가?
【문】그때에 비록 상호(相好)가 있어서 몸을 장엄한다 하더라도 일체종지(一切種智)가 없다. 만일 일체종지가 제일 오묘한 색신(色身)에 있다 한다면, 그 분은 곧 부처님이라 하게 될 것이다.
【답】일체종지는 반야 가운데서 ‘고요히 사라진 모양[寂滅相]’이거나 ‘희론이 없음[無戱論]’이라고 한다. 만일 이 법을 얻는다면, 얻을 것이 없다[無所得]고 하며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이라 하는 것이니, 부처님은 곧 공한 것이다.
이와 같은 등의 인연 때문에 5중이 곧 부처님이 되지 못하며, 이 5중을 여의고도 또한 부처님은 없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5중을 여의면 다시는 나머지 다른 법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 마치 다섯 손가락을 여의면 다시는 주먹이란 법을 말할 것이 없는 것과 같다.
【문】무엇 때문에 주먹이라는 법이 없겠는가? 형상도
다르고 힘과 작용도 다르지만 그것이 손가락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이 다섯 개의 손가락이 합치기 때문에 주먹이라는 법이 생기는 것이니, 이 주먹이란 법이 비록 덧없어서 생멸하기는 하나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답】이 주먹이라는 법이 만일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다섯 손가락을 제외하고 다시 주먹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하고 또한 다섯 개의 손가락에 의지할 필요조차 없어야 한다. 이러한 등의 인연 때문에 다섯 개의 손가락을 여의고는 다시는 주먹이라는 것이 없다.
부처님도 이와 같아서 5중을 여의고는 부처님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부처님이 5중 가운데에 있는 것도 아니요 또한 5중도 부처님 가운데에 있지 않다. 왜냐 하면, 그 차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5중이 부처님과 다르다면, 부처님은 5중 가운데에 있어야 하나 다만 이 일은 그렇지 못할 뿐이니, 부처님도 또한 5중에 있지 않다. 그것은 왜냐하면, 5중을 여의고는 부처님도 없고 부처님을 여의고도 또한 5중이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비구에게는 세 가지 옷[三衣]과 발우가 있기 때문에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다만 부처님과 5중만은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없는 것과 같나니, 이 때문에 ‘부처님에게는 5중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와 같이 5중으로 부처님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부처님은 없는 줄 알아야 하며, 부처님은 없기 때문에 오는 곳도 없고 가는 데도 없다.
【문】만일 부처님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삿된 소견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살은 어떻게 발심하여 부처님이 되기를 바라겠는가?
【답】이 가운데서 ‘부처님이 없다’고 함은 부처님에 대한 애착하는 생각을 파괴하라는 것이요 ‘부처님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라’는 말은 아니다. 만일 부처님이 있어도 오히려 취하게 하지 않겠거늘, 하물며 부처님이 없다는 삿된 소견을 취하겠는가.
또 부처님은 항상 적멸하여서 희론의 모습이 없거늘, 어떤 사람이 항상 적멸의 일(事)을 분별하거나 희론을 편다면, 이 사람도 또한 삿된 소견에 떨어진다. 이 ‘있다ㆍ없다’ 하는 두 가지 치우친 소견을 여의고 중도(中道)에 처하는 것이 곧 모든 법의 실상이요, 모든 법의 실상이 곧 부처님이다. 왜냐 하면, 이 모든 법의 실상을 얻으면 부처님이 되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또 물질 등 법의 여한 모양[如相]이 곧 부처님이다. 물질 등 법의 성품이 공한 것[性空]이 바로 여한 모양이며, 모든 부처님의 여도 또한 성품이 공하다.
이 때문에 오지도 않고[不來] 가지도 않으며[不去] 나지도 않고[不生] 없어지지도 않으며[不滅] 법성(法性)이요 실제(實際)요 공(空)이며 물드는 일도 없고[無染] 고요히 사라진 것[寂滅]이다.
허공의 성품[虛空性]도 이와 같아서 오는 곳도 없고 가는 데도 없는 여(如)이며, 나아가 허공의 성품의 여(如)가 부처님의 여이니, 이 여는 하나이어서 둘이라거나 셋이라는 등의 차별이 없다. 이 가운데서 스스로 그 인연을 말하면서 “왜냐 하면, 모든 수의 법[數法]을 벗어나서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라”고 한다.
여(如) 등의 법은 바로 진실이어서 이 가운데에는 기억이나 생각이나 분별이 없다. 모양을 취하기 때문에 이름이 있고 이름 가운데에 수(數)가 있나니, 이 가운데서 스스로 말하기를 “공은 진실이 아니니,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라”고 한다.
【문】만일 이 법이 있지 않다면, 어찌하여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으며 괴로움이 있고 즐거움이 있으며 속박이 있고 벗어남이 있다는 등의 모든 차이를 분별하는가?
【답】이 가운데서 담무갈 자신은 갖가지로 분별하면서 비유로 설명하고 있으니, 이른바 “봄철의 마지막 달에 아지랑이를 본다” 내지는 “이 사람은 모든 법이 온다거나 간다고 분별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같다.
마치 아지랑이 등의 가운데서는 비록 진실한 일은 없다고 하더라도 역시 사람을 속이며 스스로 괴로운 일과 즐거운 일들을 내는 것처럼 모든 법도 이와 같아서 비록 공하여 있지 않다 하더라도 역시 사람들로 하여금 괴로움과 즐거움과 근심과 기쁨 등의 일을 얻게 하나니, 꿈 등의 법에서도 이와 같다.
또 부처님에게는 두 가지 몸이 있다. 첫째는 법신(法身)이요, 둘째는 색신(色身)이다. 법신은 바로 참 부처님이요 색신은 세속의 이치 때문에 있게 된다.
부처님은 법신의 모양에서 갖가지 인연으로 모든 법의 실상을 말씀하시지만, 이 모든 법의 실상도 또한 오는 것도 없고 가는 데도 없다. 이 때문에 “모든 부처님은 어디로부터 온 곳이 없고 가되 이르는 데도 없다”고 말한다. 만일 사람이 모든 부처님의 법신의 모양을 얻으면, 이것을 일컬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워졌다고 한다. 아직 일체지(一切智)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가까워졌다 하나니,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이란 모든 법의 실상을 말한다. 만일 이와 같이 행할 수 있으면,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며, 그가 곧 진실한 부처님의 제자인 것이다.
‘진실한 부처님의 제자’라 함은, 모든 법의 실상을 얻은 이를 부처님이라 하는데, 모든 법의 실상과 차별을 얻었기 때문에 수다원 내지는 벽지불과 큰 보살이 있나니, 이 수다원에서 큰 보살까지를 이름하여 진실한 부처님의 제자라 한다.
‘헛되고 망령되게 남의 신시(信施)를 먹지 않는다’라 함은, 축생에게 보시하여 비록 백 배의 과보를 얻는다 하더라도 이 복은 다함이 있고 한량이 있으며 중생을 생사에서 제도할 수 없기 때문에 ‘헛되이 먹는다’고 한다. 수다원 등 내지는 부처님과 모든 성현은 남의 신시를 받으면 이 복의 과보가 열반에까지 이르면서 다함도 없고 한량도 없나니, 이 때문에 ‘헛되고 망령되이 남의 신시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온갖 중생들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고 한 것은, 만일 수다원이어서 온갖 범부의 사람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면, 사다함은 범부와 수다원의 공양을 받을 만하고, 아나함은 범부의 사람과 수다원과 사다함의 공양을 받을 만하며, 아라한은 범부의 사람과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의 공양을 받을 만하고, 벽지불은 범부와 수다원 내지는 아라한의 공양을 받을 만하며, 성불에 가까워진 큰 보살은 범부와 성문과 벽지불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
‘세간의 복전(福田)이 된다’고 함은, 마치 좋은 밭에 씨를 심으면 그 수확도 반드시 많은 것처럼 지계(持戒)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의 복전은 중생들에게 복을 심어 과보를 얻게 함이 한량없다.
위에서 “모든 부처님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데도 없다”고 말했으므로 살타파륜이나 듣는 이들은 생각하게 되기를 ‘모든 부처님조차 오히려 없으므로 모든 법도 모두가 소멸되어야 한다’고 하여 아주 없다[斷滅]는 데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여기서 인연(因緣)의 법으로 비유를 들어 설명한 것이다.
담무갈은 살타파륜에게 교시하기를
“마치 그대가 애착하여 실제로 있다고 여기는 것은 없는 것이며, 다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인연화합으로부터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일을 증명하려고 비유를 말한 것이니, 마치 큰 바다 가운데에 생겨난 보물은 시방에서 온 것도 아니고, 없어질 때에도 가는 데가 없으며 또한 인연이 없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4천하(天下) 중생들의 복덕의 인연 때문에 바다에서 이런 보물이 생기는 것이요 만일 겁(劫)이 다하여 없어질 때에도 역시 가는 곳이 없다.
마치 등불이 꺼지면 그 불꽃도 가는 데가 없는 것과 같나니, 부처님의 몸도 그러하여 처음 발심할 때부터 심은 선근과 공덕은 모두 부처님 몸의 상호(相好)가 되는 인연이다. 부처님의 몸도 또한 자재(自在)하지 않으며 모두가 본래의 인연에 속하고 업의 과보 때문이니, 이런 인연이 생겨서 비록 오래도록 머무른다 하더라도, 그 성품은 곧 유위(有爲)의 법이기 때문에 반드시 무상(無常)한데로 돌아가고 말며, 흩어져 무너지면 곧 몸은 없게 된다.
비유하건대 마치 활을 잘 쏘는 사람이 허공을 쳐다보고 활을 쏘면 그 화살은 비록 멀리 간다 하더라도 반드시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의 몸도 이와 같아서 상호와 광명과 복덕을 성취하고 명칭(名稱)이 한량없으며 사람들을 제도함이 무한하다 해도, 역시 닳아 없어지는[磨滅] 데로 돌아가고 만다.
【문】만일 중생의 복덕인연 때문에 바다에서 값진 보물들이 생긴다 하면, 무엇 때문에 중생들과 가까운 곳에 생기지 않고 얻기 어려운 큰 바다에 있게 되는가?
【답】바다 속에도 중생들이 있어서 용(龍)과 아수라(阿修羅) 등이 이 보물을 사용하게 된다.
또 만일 보물들이 인간의 탁한 세상[濁世]에 생기게 되면, 탐내는 이들이 감추어 두고 남들은 얻지 못하게 할 것이며, 만일 좋은 세상일 때에 값진 보물들이 저절로 생기면, 인간으로서 아끼는 이가 없게 되나니, 마치 미륵부처님 진귀한 보물들을 기와조각이나 조약돌처럼 여기게 되는 것과 같다.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들은 몸을 아끼면서 억지로 원을 일으키며 즐겁기만을 바란다. 때문에 보물들이 큰 바다에 있으면 얻을 수 없지만 만일 큰 마음을 지니고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서 부지런히 구하는 이면 이내 얻을 수가 있다.
큰 바닷물[大海水]은 시방의 6도(道)의국토에 비유한 것이요,
모든 값진 보물[諸珍寶]이란 곧 모든 부처님을 말한다.
마치 값진 보물은 온갖 중생들을 위하여 생겼지만 게으르고 나태한 이들은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도 이와 같아서 비록 중생들을 위하여 세간에 출현하셨다 하더라도 게으르고 마음가짐이 작고 몸만을 탐하면서 나[我]에 집착하는 이면 제도되지 못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모든 법은 모두가 뭇 인연이 화합하여 생기기 때문이다. 중생들은 두 가지 인연 때문에 제도되니, 첫째는 안으로 바른 소견[正見]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밖으로 법을 잘 설해 주는 이가 있어야 한다. 모든 부처님은 비록 법을 잘 설해 주신다 하더라도 중생들이 안으로 바른 소견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가 다 제도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마치 보물이 비록 중생들을 위하여 출현한다 하더라도 빈궁한 중생들이 있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도 이와 같아서 비록 중생들을 위하여 출현하셨다 하더라도 중생들이 안으로 바른 소견이 적기 때문에 역시 제도되지 못한다.
또 공후[箜篌]의 비유가 있다. 그것에는 몸체가 있고 목이 있으며 가죽이 있고 줄이 있으며 묶은 데도 있는데, 어떤 사람이 손으로 공후를 뜯으면 뭇 인연이 화합하여 소리가 나게 된다. 이 소리는 여러 가지 인연 가운데에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여러 가지 인연을 여의면 또한 소리도 없다. 인연이 화합한 까닭에 소리가 있어서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의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6바라밀과 방편의 힘 등 여러 가지 인연이 화합하게 되는 데서 부처님 몸이 생기되, 그 부처님 몸은 6바라밀 등의 법 가운데에 있지도 않고 또한 6바라밀 등의 법을 여의지도 않는다.
마치 소리가 하나의 인연으로써 나는 것도 아니요 또한 인연이 없는 것도 아닌 것처럼 부처님의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인연이 없는 것을 좇지도 않고 또한 적은 인연을 좇지도 않으며, 모든 착한 법의 인연이 완전히 갖추어지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몸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거울 속의 형상이 뭇 인연이 화합한 까닭에 생겼다가 뭇 인연을 여의는 까닭에 없어지는 것처럼 부처님도 이와 같아서 모든 인연이 있기 때문에 출현하셨다가 모든 인연이 흩어졌기 때문에 사라지시는 것이다.
따라서 “선남자여, 마땅히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의 가고 오는 모양을 관찰해야 하며
온갖 법의 모양도 또한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고 한 것이다.
담무갈은 살타파륜에게 말하기를 “선남자여, 그대는 모든 법의 모양이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것임을 알게 되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물러나지 않으며, 또한 반드시 반야바라밀과 방편의 힘을 행할 수 있으리라. 왜냐 하면, 온갖 법에서 장애가 없기 때문이니라”고 하였다.
【문】석제환인은 무엇 때문에 만다라꽃을 변화로 만들어서 살타파륜에게 주었는가?
【답】석제환인은 부처님의 도를 좋아하기 때문에 언제나 모든 보살들에게 공양하고 있다.
또 석제환인은 중생들을 거두어서 부처님의 도에 들게 하려고 일부러 천왕(天王)의 몸을 나타내어 꽃을 가져다 살타파륜에게 준 것이요, 살타파륜은 일심으로 부처님 도를 구했기 때문에 모든 하늘들이 와서 공양한 것인데 중생으로서 보게 된 이면 역시 모두가 발심하게 되나니, 석제환인은 중생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살타파륜에게 공양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석제환인은 살타파륜을 깊이 사랑하고 공경하기 때문에 앞의 품[上品]에서처럼 와서 시험하였고, 그런 뒤에는 몸을 본래대로 회복시켰는데 지금은 다시 그에게 꽃을 준 것이다. 석제환인의 힘은 온갖 사람들에게 꽃을 줄 수 있기는 하나 중생들은 복력(福力)이 없기 때문에 설령 준다고 해도 꽃은 곧 변하고 무너져 버린다. 살타파륜은 복덕을 성취한 까닭에 꽃이 변하는 일이 없으니, 이 때문에 준 것이다”고 한다.
만일 온갖 보살이 그 스승을 공양할 때에는 모두 다 드리지는 못한다 해도 공양 받을 이를 수호는 해야 된다. 앞에서 이미 그 인연을 설명하였는데 이른바 살을 베고 피를 내게 하여 시험해 보면서 오래전에 가깝게 사귄 이였으므로 수호하는 것이다.
또 석제환인은 이 가운데서 스스로가 그 인연을 말하였으니, 이른바 “당신의 인연의 힘 때문에 백천 등의 많은 중생을 이롭게 하십니다”라는 것이다.
살타파륜은 꽃을 들어 그의 뜻대로 담무갈에게 공양하였다.
살타파륜은 처음에는 그 스승의 이름을 들었고 나중에는 눈으로 보고 법을 듣고는 의심이 끊어졌기 때문에 몸으로 공양한 것인데, 장자의 딸 등도 역시 살타파륜을 본받아 몸으로써 살타파륜에게 보시한 것이다.
【문】살타파륜이 그의 몸을 담무갈에게 보시한 것은 담무갈의 복전(福田)이 컸기 때문이거늘, 여인들은 무엇 때문에 그들의 몸을 담무갈에게 공양하지 않고 살타파륜에게 공양하였는가?
【답】여인은 지혜가 짧고 애착이 많기 때문에 본래 섬기던 스승을 버리고 다른 이에게 공양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또 여인의 몸은 허물이 있기 때문에 비록 마음이 청백(淸白)하다 하더라도 바깥에서는 비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장자의 딸은 처음에 부모를 버릴 적에 이미 살타파륜에게 맡긴 것이거늘, 지금 무엇 때문에 다시 몸을 보시 하는 것인가?
【답】처음에 부모를 버리고 살타파륜과 함께 담무갈에게로 나아가서 법을 위하여 공양을 하면서도 역시 자신의 몸을 보시하지 않았으며, 그의 부모도 살타파륜에게 보시하지 않았었다. 이제 살타파륜이 매우 깊은 이치를 묻자 담무갈은 그에게 해설하여 주었고 석제환인은 기뻐하면서 그에게 공양하였다. 이런 것을 보았기 때문에 기뻐하는 마음을 내어 몸을 공양한 것이니, 자재해진 마음 때문이다.
또 온갖 여인들의 몸은 매인 데가 없게 되면 나쁜 소문이 들리게 된다. 여인의 예(禮)는 어릴 적에는 부모를 따르고 젊었을 적에는 남편을 따르며 늙어서는 아들을 따르는 법이다. 이 장자의 딸 등은 비록 길은 같이 오기는 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여 오랫동안 매인 데가 없었던 것이니, 이 때문에 자신들의 몸을 보시하면서 원하기를 “스승님께서 얻으신 그대로를 저희들도 얻으리이다”라고 한 것이다.
그때에 살타파륜은 이 여인들을 담무갈에게 공양하려 하면서 그들이 행여 싫어하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하면서 묻기를 “그대들이 실로 순수한 마음으로 나에게 공양한다면 마땅히 그대들을 받아들이겠소”라고 한 것이니, ‘순수한 마음’이란, 자기의 생각대로 하지 않고 처분하는 대로 따라서 마치 무심(無心)한 물건처럼 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여인들이 말하기를 “실로 순수한 마음으로 공양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즉시 살타파륜은 장자의 딸과 모든 시녀들과 그리고 5백 대의 수레를 담무갈에게 받들어 올렸다.
살타파륜은 세상 사람들이 보통 의심하면서 ‘그가 장자를 속이고 모든 여인들을 데리고 왔다’고 하는 생각을 없애 주기 위한 것이니, 이 때문에 모두 다 보시함으로써 그 자신은 애착이 없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또 살타파륜은 공중에서 나는 음성을 들은 대로 이해한 뒤에 기뻐하면서 세간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안팎의 물건을 모두 다 공양한 것이니, 단바라밀의 문에 깊이 들어가려고 한 때문이다.
석제환인은 살타파륜이 탐애 등의 번뇌가 아직 다하지 못했으면서도 안팎의 것을 모두 다 보시하여 다시는 남기는 일이 없는 것을 알고는 찬탄하면서 “훌륭합니다”고 한 것이며, 과거의 부처님의 비유를 들면서 “하기 어려운 일을 행하기 때문에 얻기 어려운 과보, 이른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실 것입니다”고 말했다.
【문】만일 담무갈이 살타파륜으로 하여금 선근을 두루 갖추게 하려는 까닭에 이른바 단바라밀을 두루 갖추는 선근을 받은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도로 살타파륜에게 주었는가?
【답】담무갈은 큰 지혜와 방편이 있는 이이다. 살타파륜으로 하여금 크게 복덕을 얻어서 잃는 것이 없게 하려는 것이니, 이것이 곧 으뜸가는 받음[上受]이다. 살타파륜의 지극히 순수한 마음의 보시는 모든 탐착을 끊으려 함이요, 도리어 복덕이 두루 갖추기를 바란 것이 아니다. 담무갈은 생각하기를 ‘살타파륜은 멀리서 와서 5욕에 대하여 마음이 염착(染著)하지도 않고 오래 알던 사람을 잘도 공양하는구나’라고 하고, 이 때문에 도로 돌려준 것이다.
또 모든 여인들이 먼저 그들의 몸을 살타파륜에게 바쳤다는 말을 들었었고 또 사람은 재물이 아니므로 그 본래대로 뜻을 이루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 이 모든 여인들은 세상에서마다 살타파륜의 제자였나니, 이와 같은 등의 인연 때문에 도로 살타파륜에게 돌려준 것이다.
【문】모든 큰 보살은 법을 설할 적에 피로해 하지 않아야 하거늘, 무엇 때문에 궁으로 들어갔는가?

【답】세간 사람들의 법을 따랐기 때문이다.
또 중향성(衆香城)에 있는 중생들은 항상 도(道)를 구하지도 않고 때로는 쉴 줄도 모르는 채 5욕의 쾌락을 받으며 모든 하늘들처럼 언제나 5욕만을 누리고 있으므로 도를 구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어떤 보살은 살고 있던 나라에서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여 5욕을 받지 않았었는데 이 중향성의 중생들이 본래부터 잡다하게 받기를 원했으므로, 담무갈은 그들이 바라는 원에 따라 그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이니, 이 때문에 중생이 법을 들을 적에 피로해 하면 일어나 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또 아직 도를 얻지 못한 이는 법이 비록 미묘하다 하더라도 항상 듣기 때문에 피곤해하고 싫증을 낼 수도 있나니, 그 대중 가운데는 이런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담무갈은 여기에서 부귀와 즐거움을 누리고 있으며, 인간의 법도라면 해가 지면 쉬는 게 당연한 것이다.
이때에 살타파륜은 생각하기를‘ 나는 법을 위하여 왔으므로 앉거나 눕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다.
【문】법을 위해서는 무엇 때문에 앉거나 눕지 않아야 하는가?
【답】이런 것은 정해진 법은 없다 해도 이 사람은 큰 서원으로 크게 정진하며 법을 공경하기 때문에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앉거나 눕게 되면 곧 그것은 나태해지는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법을 구할 적에 몸조차도 오히려 아끼지 않았거늘 하물며 고달프다고 생각하겠느냐’고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았던 것이니, 큰 서원으로 크게 정진하는 것과 앉고 눕는 것은 서로가 반대되기 때문이다.
또 앉거나 누우면 부지런히 힘을 쓰지 못하게 되지만 거닐거나 서 있으면 부지런히 힘써서 정진할 수 있나니, 이 때문에 항상 두 위의(威儀)에 머무르면서 스승이 나오기만을 기다린 것이다.
【문】살타파륜은 먼저 스승이 7년 동안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가?
【답】처음부터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담무갈도 또한 항상 7년씩은 나오지 않았으므로 그런 인연 때문에 스스로가 7년 동안 선정에 들겠다는 맹세를 하였고, 살타파륜도 스스로가 ‘스승께서 나오시기 전에는 끝내 앉거나 눕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이다.
또 대인(大人)은 인간의 법조차도 오히려 스스로 어기지 않거늘 하물며 도를 위한 법이겠는가. 또 처음에 법을 구할 때조차 오히려 몸을 아끼지 않았거늘 지금 7년 동안 서 있는 것이
뭐 그리 어렵다 하겠는가.
【문】사람의 몸은 연약하거늘 어떻게 7년 동안이나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는다는 것인가?
【답】이때의 사람은 수명이 길었으니, 7년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오늘날의 7일과도 같은 것이다.
또 좋은 세상에 난 사람들의 몸은 복덕의 힘이 크므로, 비록 7년 동안 서 있다 해도 어렵다 여기지 않는다. 마치 근(勤) 비구(比丘) 같은 이는 나이 60에 비로소 출가하여 스스로 맹세하기를 ‘나는 겨드랑이를 자리에 대지 않겠으며 반드시 성문으로서 얻어야 할 일을 모두 얻고, 나아가 6신통을 지닌 아라한이 되어서 4아함(阿含)과 우파제사(優婆提舍)1)를 지으리라’고 하였으니, 지금 세상에도 크게 행해지고 있다. 이런 사람은 악한 세상에서조차도 오히려 그렇거늘, 하물며 살타파륜같이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이겠는가.
또 몸의 힘이 비록 약하다 하더라도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다.
또 일심으로 부처님의 도를 구하는 이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호념(護念)을 받고 있고 그리고 모든 큰 보살과 부처님 도를 구하는 모든 하늘들이 그의 기력을 더해주며 에워싸고 수호하나니, 이 때문에 비록 7년 동안 서 있다 하더라도 고달픔을 느끼지 않는다.
【문】담무갈은 삼매에 들어가서 무엇 때문에 7년 동안이나 걸린 것인가?
【답】앞에서 이미 대답하였다. 좋은 세상에 난 사람들은 수명이 길어서 비록 7년 동안이 걸린다 하더라도 오래라고 여기지 않는다.
또 담무갈의 궁전에 있는 채녀(婇女)들과 미묘한 5욕은 마치 천상과 비슷하다. 살타파륜 등과 같은 새로 뜻을 낸 이들은 마음이 아직 유연하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담무갈을 의심하니, 그가 비록 공한 법을 말하면서 욕탐을 여읠 것을 찬탄한다 하더라도 ‘그의 마음은 아직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여길 것이니, 이 때문에도 7년 동안이나 삼매에 들어가 있으면서 대중들의 의심을 없애려 한 것이다.
그러므로 살타파륜 등은 귀히 여기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면서 담무갈이 7년 동안 삼매에 들어서 그의 마음과 말이 상응하여 능히 말하고 능히 행하는 것을 듣게 되었으므로 곧 그의 말을 믿고 받아서 쉽게 제도될 수 있게 되었다. 비유하건대 마치 종기가 아직 익지 않았으면 의사는 바로 터뜨리지 않고 다만 약만 발라 두었다가 잘 곪은 뒤에 쉽게 터트리는 것과 같다.
또 마음에서 생겨나는 진실한 즐거움을 받기 위하여
한량없는 삼매에 들어간 것이다.
또 설법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입으로 법을 설하는 것이요, 둘째는 몸으로 법을 나타내는 것이다. 지금은 몸으로 법을 나타내려 하기 때문에 한량없는 삼매에 들어가서 중생으로 하여금 마음을 가다듬고 지혜에 들어가는 방법을 깨달아 여실지(如實智)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보살의 삼매’라 함은 보살의 뜻[菩薩義]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며, ‘반야 방편의 힘을 행한다’고 함은 「방편품(方便品)」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살타파륜은 7년 동안 세 가지 거친 생각[覺觀]을 내지 않았고 맛[味]에 맛들이지 않았으며, 이 사람은 비록 아직 번뇌는 깨뜨리지 못했다 하더라도 모든 착한 법을 쌓았기 때문에 모든 번뇌를 제어하여 일어나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만 일심으로 ‘담무갈은 언제쯤 나오실까. 나는 그분으로부터 반야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7년을 지난 뒤에 생각하기를 ‘나는 담무갈을 위하여 앉으실 곳을 마련한 뒤에 쓸고 닦고 물을 뿌리고 장엄해야 되겠다’고 하였다.
【문】살타파륜은 어떻게 하여 7년이 지난 뒤에는 담무갈이 나오게 될 줄을 알았는가?
【답】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먼저 일찍이 7년 걸린다는 것을 여기저기서 들어 알고 있었다”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담무갈은 처음 삼매에 들 때에 7년 동안이라고 스스로 말했었다”고 하기도 한다. 마치 석가문니(釋迦文尼)부처님은 아난(阿難)에게 “나는 한 달이나 두 달 동안 선정에 들고자 한다”고 말씀하면, 아난은 그 일을 4중(衆)에게 알려주는 것과 같다.
살타파륜은 부처님 법을 몹시 사랑하고 담무갈을 공경하며 존중한 까닭에 공양하고 설법할 곳을 장엄한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다만 그 마음만을 장엄하여 스승에게 나아가 법을 받으면 되지만, 재가의 보살은 설법하는 처소를 장엄하고 꽃과 향으로써 공양한다.
또 살타파륜은 이런 장엄을 함으로써 담무갈로 하여금 그 법을 사랑하고 법을 바라는 모양과 깊은 마음으로 믿고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이런 일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 때문에 마음을 내어 5백의 여인들과 함께 힘을 합쳐서 쓸고 뿌리고 하며 스스로 금은의 값진 보물로써 자리를 펴 놓은 것이다.
살타파륜 등은
비록 자신들에게 훌륭한 깔개가 있었기는 하나, 법을 사랑하는 정이 지극했기 때문에 몸에 입고 있는 상의(上衣)를 벗어서 자리에 편 것이다.
물을 구하여 땅에 뿌리려 하였으나 악마가 물을 숨겨버려서 얻을 수 없었으니, 이 가운데서 그 인연을 설명하고 있다.
“악마가 생각하기를 ‘만일 살타파륜이 물을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그의 마음이 하열해지리니, 그것을 바라던 원이 만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스스로 제 몸을 비천하게 여기면서 〈나는 복덕이 박하기 때문에 법에 공양하기 위하여 물을 구하는데도 얻을 수 없구나〉라고 하며, 스스로 자신을 업신여기면서 근심과 걱정으로 마음을 덮어버릴 것이므로 복덕은 더하지 못하고 지혜도 밝지 못하게 되리라’고 하였느니라.”
‘밝지 못하게 된다’고 함은, 모든 근심과 걱정하는 번뇌가 마음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모든 복덕과 지혜가 환히 비추어지면서 밝아질 수가 없다는 것이니, 비유하건대 마치 해가 가려졌기 때문에 그 빛이 밝게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악마는 그의 마음가짐이 커서 무너뜨릴 수 없음을 알면서도 다만 조금이라도 무너뜨려서 그를 지체시키려고 했을 뿐인데, 그때에 살타파륜은 스스로 그의 몸을 칼로 찔러서 피를 내어 땅에 뿌리며 먼지가 나지 않게 하려고 하였다. 사람의 피와 살은 비록 역겹다 하더라도 그는 지극한 마음으로 물을 구하다가 얻지 못하게 되자, 향기가 나건 냄새가 나건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먼지만은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또 살타파륜은 깊은 마음으로 반야바라밀을 애착하는 까닭에 아깝게 여기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모든 하늘ㆍ용ㆍ귀신들이 많이 있어서 언제나 살타파륜을 따라다니며 돕고 수호하였다. 그 때문에 나온 피도 향수(香水)로 변하게 된 것이 마치 찬제선인(羼提仙人)이 몸을 베고 끊을 때에 피가 젖으로 변한 것과 같다”고 한다.
또 한량없는 복덕을 성취한 까닭에 원하는 대로 곧 성취한 것이다.
【문】만일 복덕을 성취하여 원한 대로 곧 될 수 있었다면, 악마는 그 물을 숨기지 못했어야 한다.
【답】이 보살은 새로 뜻을 낸 이로서, 조그마한 소원은 성취할 수 있어도 아직 악마를 물리칠 수는 없다.
이 가운데서 살타파륜은 피를 낸 인연을 스스로 말하면서 “나는 비롯함이 없는 때부터 나고 죽고하면서 자주자주 몸을 잃었으면서도
아직 일찍이 법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였다.
【문】살타파륜은 법을 좋아하여 몸을 찔러서 피를 내었는데, 만일 그의 몸이 죽게 되면 누가 법을 듣는다는 것인가?
【답】이 일에 대해서는 앞의 ‘뼈를 부수어 골수를 내는 일[破骨出髓]’에서 대답한 것과 같다.
또 여기에서는 모든 하늘들과 큰 보살들이 수호하고 있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죽지 않게 할 것이며, 또 악마는 그의 마음을 무너뜨릴 수 없음을 알았으므로 물은 곧 도로 나오게 되었을 것이다.
‘살타파륜 등 모두는 다른 마음[異心]이 없었다’함은, 마치 사람들이 처음부터 자비심을 익히어 중생들을 위하고 그리고 반야바라밀을 위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았으면서도, 이미 날카로운 칼로 몸을 베었으므로 고통이 저절로 닥쳐오면 그 때문에 후회하기도 하고 원망한 마음도 내게 되나니, 이것을 바로 ‘다른 것[異]’이라고 한다.
이 보살은 믿는 힘이 컸기 때문에,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보를 얻고자 하기 때문에 이런 고통쯤은 헤아리지 않으며, 또 깊은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사랑하고 있기에 비록 갖가지 고뇌를 받는다 하더라도 어려운 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마치 인자한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기에 자식 때문에 오래도록 갖은 고생을 하고 더러운 것을 묻힌다 하더라도 싫다고 여기지 않는 것과 같다.
또 모든 법의 실상(實相)은 필경 공하다고 보기 때문에 이 몸은 다만 거짓으로 화합한 것뿐임을 알며, 이 거짓을 파괴하는 까닭에 몸을 벨 때에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방해하지 못한다.
‘악마가 그 틈[便]을 얻지 못한다’고 함은, 마치 사람에게 상처가 있으면 곧 독을 받아들이듯이 보살에게 만일 탐욕이나 근심하는 상처가 있으면 악마는 그 틈을 얻겠지만, 피를 내어 땅에다 뿌리면서도 마음에 근심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악마는 그 틈을 얻지 못한 것이다.
살타파륜의 마음가짐과 같이 이 5백의 여인들의 마음도 역시 이와 같았나니, 살타파륜을 공경하고 존중한 까닭에 그 몸을 찌르는 것을 보면 마땅히 근심하고 걱정했어야 하는데도, 그로써 그의 원을 만족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근심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그때에 석제환인은 이런 일을 보고 나서 “전에 없었던 일이로다”라고 찬탄하였으니, 이 사람은 아직 무생인(無生忍)을 얻지도 못했고
모든 번뇌를 아직 끊지 못했는데도 법에 공양하기 위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이 마치 모든 욕탐을 여읜 사람과 같아 다름이 없었고, 그의 몸을 베고 끊는 것이 마치 풀과 나무를 끊는 것과 같았으며, 처음 일으킨 마음도 이미 그러했었는데 나중의 마음은 한층 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 ‘전에 없던 일[未曾有]’이라 함은, 이 가운데서 석제환인 자신이 그 인연을 말하면서 “칼로써 자기 몸을 찌르고 있으니, 살타파륜이 법을 사랑함이 저러하구나”고 하는 등을 말한다.
석제환인은 이런 마음으로 기뻐하고 나서 찬탄하기를 “훌륭하십니다”고 하며, 그가 법을 사랑하고 법을 좋아하면서 부지런히 마음으로 정진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님에 비유하면서 찬탄하기를 “다만 당신만이 지금 모진 고행을 하는 것이 아니요,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반야를 구하실 때에도 역시 그러하였습니다”고 하였다.
살타파륜은 석제환인이 그의 마음을 위로하는 말을 듣고 나자, 마치 불이 기름[蘇油]을 만나 더욱더 훨훨 타오르듯 하였으므로 생각하기를 ‘나는 이미 자리를 펴 놓고 땅에도 뿌려 두었다. 이제는 어디에서 이름 있는 좋은 꽃들을 얻어다 설법할 곳을 장엄해야 할까’라고 하였다.
【문】물을 보지 못했을 때는 무엇 때문에 “나는 어디서 물을 얻어다 땅에 뿌려놓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답】살타파륜은 먼저 물이 있었던 곳인데 바로 그때에는 모두가 없었으므로 악마가 하는 짓임을 알았다. 그 때문에 스스로가 4대(大)로 나눈 가운데서 수분(水分)을 내어 땅에 뿌린 것이다. 몸 가운데는 물의 요소[水種]가 비록 많다 하더라도 이 피는 생명에 관계된 것이니, 이 때문에 몸을 찔러 피를 내어서는 땅에 뿌린 것이다.
그런데 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며, 담무갈이 나올 때가 되었으므로 먼 데로 가서 구할 여유도 없었고, 또 소요될 꽃이 많은데다 그 땅에다 두루 깔아야 했으므로, 이 때문에 얻었으면 하는 생각을 낸 것이다.
제석은 그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곧 하늘의 꽃 가운데서도 묘한 꽃인 만다라를 3천 석(石)이나 가져다 그에게 주면서 그 일에 충분히 쓰게 하였다. 제석이 인간 세상에 있는 꽃을 주지 않은 까닭은 희유한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살타파륜은 그 꽃을 받은 뒤에 두 몫으로 나누어서 좋은 꽃들은 법을 설할 때에 뿌리려고 남겨 두고 그 나머지 꽃들로 땅을 덮었다. 그 나라의 풍속에서는
꽃을 땅에다 깔은 뒤에 그 위를 걸어가게 하는 것으로 공양을 삼았었다.
그때에 담무갈은 그가 먼저 약속한 대로 7년을 다 채운 뒤에 삼매에서 일어나 한량없는 백천 대중에게 공경받으며 둘러싸여 곧장 법좌(法座)가 있는 데로 나아갔나니, 반야를 설하기 위해서였다.
【문】만일 모든 보살이 미묘한 삼매에 들어가면, 누가 그를 일어나게 할 수 있겠는가?
【답】수행하는 이가 처음 들어갈 때에 자기 자신이 기한을 정하고 그런 뒤에 선정[定]에 들어가면 그때가 되어서 그 마음이 자재롭게 삼매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니, 비심(悲心) 때문에 생각[覺觀]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떤 비구가 멸수정삼매(滅受定三昧)에 들어갈 때에 자기 자신이 건추(犍槌)2) 소리를 듣고 일어나겠다고 정하고는 이미 들어가 있는데, 이때에 마침 승방(僧坊)에 불이 나서 비구들은 당황한 끝에 건추를 치지도 않고 모두 떠났다. 그 뒤 12년이 경과하고 나서 단월(檀越)3)들이 화합하고 여러 스님들이 비로소 승방을 일으키고자 건추를 쳤는데, 그는 그 건추 소리를 듣고 일어났으나 몸이 산산이 흩어지면서 죽었다고 한다. 뒷날 도를 얻은 여러 사람들이 이같은 말을 해 주었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법성생신(法性生身)의 큰 보살은 모든 부처님과 같이 항상 삼매에 들어가서 산란하거나 거친 마음이 없고 신통력으로 법을 설하고 날아다니면서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세속의 법 때문에 삼매에 들고 나는 모양이 있나니, 이 때문에 비록 미묘한 삼매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도로 나올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대비(大悲)의 마음에 끌리기 때문이니, 비유하건대 마치 주술(呪術)로써 용을 나오게 하는 것과 같다.
‘대중에게 둘러싸인다’고 함은, 바로 안[內]의 권속들이 공경하여 꽃을 뿌리고 향을 사르며 그의 뒤를 따라 나오는 것이니, 반야바라밀을 설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을 설한다’고 함은, 세속의 이치인 이름과 언어에 의지하여 중생들에게 제일의 이치[第一義]인 동요하지 않는 모양[不動相]을 보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살타파륜은 담무갈을 보자마자 곧 청정한 기쁨을 얻었으며 그 즐거움이 온몸에 스며드는 것이 마치 비구가 제3선(禪)에 들어간 것 같았다.
그것은 왜냐하면, 욕탐이 많은 중생조차 비록 깨끗하고 묘하지 않다 하더라도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을 얻거늘 하물며 진실한 공덕으로 몸을 장엄한 이를 보게 되는 것이랴.
살타파륜은 공중의 부처님으로부터 담무갈에 대한 말씀을 듣고 곧 큰 서원을 내어 모든 삼매를 얻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뵙게 되었으며, 다시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그의 전생 인연을 말씀하시면서 “오직 담무갈만이 그대를 제도할 수 있느니라”고 하심을 듣게 되었다. 이런 말씀을 들은 뒤에 그의 마음은 한층 더 간절하게 우러르면서 그를 만나고자 했던 것이다.그 때문에 도중에 몸을 팔아 공양하려 하였고 지금은 중향성에서 7년 동안이나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으면서 담무갈을 보고 싶어 하였다.
이와 같이 간절히 우러르면서 보고 싶어 한 지가 오래 되었으니, 마치 사람이 몹시 목이 마를 때는 흐리고 미지근한 길바닥 물을 만나도 오히려 기뻐하게 되거늘 하물며 맑고 시원한 맛있는 물을 만나는 것이랴. 이미 간절하게 우러르던 정(情)이 오래였고 또 담무갈의 공덕이 컸기 때문에 기뻐하고 좋아한 것이다.
【문】즐거운 것[樂]에는 네 가지가 있거늘 무엇 때문에 다만 제3선의 즐거움만 말하고 그 위 경지[上地]에서의 선정의 즐거움[定樂]과 해탈의 즐거움[解脫樂]은 말하지 않는가?
【답】욕계(欲界)의 중생들은 세 가지 느낌[三受] 가운데서 대개 즐거운 느낌[樂受]만을 탐하기 때문에 ‘열반의 즐거움은 있는 바가 없다’라고 들으면 곧 마음에 즐거워하거나 기뻐하지 않을 것이며, 위의 제4선(禪)에서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끊어졌기 때문에 역시 마음은 즐겁지 못하니, 제3선에서의 즐거움은 즐거움 중에서도 가장 극치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살타파륜은 새로 뜻을 낸 이라서 아직은 미세하고도 깊고 묘한 선정[定]에 들지 못했으므로 담무갈을 보자마자 큰 기쁨이 일어나는 것이 마치 3선의 즐거움과 비슷하였다”고 한다.
살타파륜은 스스로가 ‘나는 아주 기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즉시 그 기쁨을 버리고 깨끗한 법의 성품[法性]을 얻어서 온몸이 편안하여지고 즐거워졌나니, 이 때문에 3선의 즐거움으로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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