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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079 불교 (대지도론/大智度論) 67권

by Kay/케이 2024.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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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지도론(大智度論) 67

 

 

대지도론 제67권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


45. 탄신행품을 풀이함②

【경】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희유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큰 공덕이 성취되었나니, 이른바 온갖 중생들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고자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면 모든 보살마하살이 구족하게 반야바라밀을 닦게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물질[色]을 더한 모양[增相]으로 보지 않고 물질을 덜한 모양[減相]으로도 보지 않으며,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의식[識]을 더한 모양으로도 보지 않고 또한 덜한 모양으로도 보지 않으며, 나아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더한 모양으로 보지 않고 또한 덜한 모양으로도 보지 않는다면 보살마하살은 이때에 반야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것은 법이요, 이것은 법이 아니다.’라고 보지 않고 ‘이것은 과거의 법이요, 이것은 미래의 법이며 이것은 현재의 법이다.’라고 보지 않으며, ‘이것은 착한 법이요 착하지 않은 법이며, 이것은 유기(有記)의 법이요 무기(無記)의 법이다.’라고 보지 않으며, ‘욕계요 색계며 무색계이다.’라고 보지 않으며, ‘이것은 유위(有爲)의 법이요, 무위(無爲)의 법이다.’라고 보지 않고 ‘단바라밀이요, 시라바라밀이며, 찬제바라밀이요, 비리야바라밀이며, 선바라밀이요, 반야바라밀이다.’라고 보지 않으며, 나아가 ‘일체종지이다.’라고 보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은 구족하게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모든 법은 모양이 없기 때문이요, 모든 법은
공하고 거짓이고 견고하지 않아서 깨닫는 이[覺者]도 없고 수명을 누리는 이[壽者]도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불가사의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물질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말한 바도 불가사의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말한 바도 불가사의하며, 6바라밀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말한 바도 불가사의하고, 나아가 일체종지가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말한 바도 불가사의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물질 이것은 불가사의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불가사의하다고 알며, 나아가 일체종지도 바로 불가사의하다고 안다면, 이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구족할 수 없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그 누가 믿고 이해할 수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오랫동안 6바라밀을 행하고 선근을 많이 심었으며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고 공양하였으며 선지식을 따랐으면, 그 보살마하살은 깊은 반야바라밀을 믿고 이해할 수 있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했기에 보살마하살이 오랫동안 6바라밀을 행하고 선근을 많이 심었으며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고 공양하였으며 선지식을 따랐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보살마하살은 물질을 분별하지 않고 물질의 모양[相]을 분별하지 않고 물질의 성품[性]을 분별하지 않았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분별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모양을 분별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성품을 분별하지 않았으며, 눈ㆍ귀ㆍ코ㆍ혀ㆍ몸과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과 눈의 경계[眼界] 내지는 의식의 경계[意識界]에 대해서도 또한 그와 같았느니라.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를 분별하지 않고 삼계(三界)의 모양과 성품을 분별하지 않았으며,
단바라밀로부터 반야바라밀까지와 내공으로부터 무법유법공까지와 4념처로부터 8성도분까지와 부처님의 10력으로부터 18불공법까지를 분별하지 않고 18불공법의 모양과 성품을 분별하지 않았으며, 도종지(道種智)의 모양과 성품을 분별하지 않고 일체종지를 분별하지 않았으며, 일체종지의 모양을 분별하지 않고 일체종지의 성품을 분별하지 않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물질은 불가사의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불가사의하며 일체종지도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이것을 바로 보살마하살이 오랫동안 6바라밀을 행하고 선근을 많이 심었으며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고 공양하였으며 선지식을 따랐다고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물질은 매우 깊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심히 깊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매우 깊고 나아가 일체종지가 매우 깊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심히 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값진 보배 더미[珍寶聚]이오니, 수다원 과위의 보배가 있기 때문이요 사다함 과위와 아나함 과위와 아라한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보배가 있기 때문이며, 4선(禪)ㆍ4무량심(無量心)ㆍ4무색정(無色定)ㆍ5신통(神通)ㆍ4념처(念處) 내지는 8성도분ㆍ부처님의 10력ㆍ4무소외ㆍ4무애지ㆍ대자대비ㆍ18불공법ㆍ일체지 및 일체종지의 보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청정한 더미[淸淨聚]이오니, 물질이 청정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 청정한 더미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청정하고 나아가 일체종지가 청정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 청정한 더미입니다.”
【논】해석한다. 이 보살이 큰 공덕을 성취한 이임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나니, 자기 자신이 행하면서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행하게 한다.
또 ‘공덕이 많다.’ 함은, 중생이 친척이요 향리(鄕里)라고도 생각지 않고 또 이익을 탐낸 바도 없으면서 이 중생을 위하여 부지런히 애쓰면서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이런 이를 바로 보살마하살이라 하고 큰 은분(恩分)이 있기 때문에 큰 공덕이라 한다.
반야바라밀을 닦는 모양은 앞의 품[先品] 가운데서 갖가지 인연으로 설명한 것과 같다.
여기서는 반야를 구족하게 수행하는 모양[具足相]을 묻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되 “반야를 구족하게 수행하는 모양도 또한 그러하다. 그것은 왜냐하면, 보살이 물질 등의 모든 법을 더하거나 덜하는[增減] 것으로 보지 않으면 이와 같은 것을 바로 구족하다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 보살은 비록 10지(地)를 얻어 도량(道場)에 가 앉아 그때 반야바라밀을 구족하게 닦는다 하더라도 마치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아서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나니 마침내 공하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한다.
또 만일 보살이 온갖 법에 대하여 ‘이것은 법이다, 이것은 법이 아니다.’고 분별하지 않으면, 모두가 다 법이 됨은 마치 온갖 시내의 오만 흐름이 모두 큰 바닷물의 한 맛[一味]으로 합해진 것과 같다. 그때에야 반야바라밀을 구족하게 닦는 것이다.
또 만일 보살이 법공(法空) 가운데에 들어가면 법에 3세(世)와 착하고 착하지 않는 것 등을 분별하지 않고 6바라밀 내지는 일체종지도 분별하지 않나니, 그때에 반야바라밀을 구족하게 닦는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모양이 없는[無相] 이것이 바로 실상이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법을 분별하면 모두 삿된 소견의 모양이니, 18공(空)을 쓰기 때문에 모든 법은 공하다 한다. 모든 법은 인연이 화합하여 생기면서 있다고 생각되다가 모든 연이 떠나면 파괴되기 때문에 거짓이라 한다. 온갖 유위(有爲)의 법 가운데서는 무상하고 진실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
견고하지 않다고 한다.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는 이가 없으니 중생이 공하기 때문이다. 깨닫는 이가 없다는 것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낄 이가 없다는 뜻이요, 수명(壽命)을 누리는 이도 없다 한 데서 수명이란 목숨의 뿌리[命根]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목숨 뿌리에는 나라는 모양[我相]이 있나니, 이 때문에 수명을 나라 여긴다.’고 한다.
중생이 공한 가운데서 이미 갖가지의 인연으로 논파했나니, 이 때문에 법을 닦는 이도 없고 법을 받는 이도 없다. 만일 모든 법이 공한 것임을 관찰하면 중생도 공하고 법도 공하다. 이와 같이 되면 곧 반야바라밀을 구족하게 닦는 것이다.
수보리는 이때에 놀라고 한편 기뻐서 스스로 편안하지 못한지라 말씀하신 반야바라밀이 불가사의하다고 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되 “물질 등의 모든 법은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보살마하살이 불가사의하다. 그것은 왜냐하면, 인과(因果)가 엇비슷하기[相似] 때문이다.”고 한다.
또 만일 보살이 물질 등의 법도 또한 불가사의인 줄 알거나 이 불가사의 가운데에 머무르면 반야바라밀을 구족할 수 없나니, 불가사의하다는 모양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말하기를 “만일 보살이 물질 등 법의 불가사의한 모양을 알면 반야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한다.”고 하신다.
그때 수보리는 반야 가운데서 의지할 곳[依止處]을 얻지 못함이 마치 큰 바다에 빠진 것과 같았나니, 이 때문에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이 깊은 반야는 불가사의하며 불가사의도 또한 불가사의한데 그렇다면 그 누가 믿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한다. 곧 “다만 불가사의한 것만도 오히려 믿을 수 없다면 하물며 불가사의한 그것조차 또한 불가사의한 것이랴.”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되 “만일 보살이 오래도록 6바라밀을 행하고 오래도록 선근을 심으며 오래도록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친근하며 오래도록 선지식을 따른 이면 이 인연 때문에 믿는 마음이 견고하여 깊은 반야바라밀을 믿고 받을 수 있다.”고 하신다.
그 밖의 품(品) 가운데서 설명하기를 “새로 뜻을 낸 이라도 깊은 반야바라밀을 믿을 수 있다.”고 하였지만
여기서는 부처님께서 “오래전에 뜻을 낸 이라야 믿을 수 있다.”고 하시기 때문에 수보리는 여쭈기를 “어떻게 한 이가 오래전에 뜻을 낸 이입니까”라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되 “만일 보살마하살이 분명하게 반야바라밀의 모양을 알면 온갖 법을 분별하지 않나니, 이른바 물질의 4대(大)와 4대로 만들어진 물질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다.”고 하신다.
‘물질의 모양을 분별하지 않는다.’ 함은 “물질은 볼 수 있는 것이다, 소리는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물질은 아름답다, 추하다, 짧다, 길다, 항상 있는 것이다, 무상한 것이다, 괴로운 것이다, 즐거운 것이다.”라고 분별하지 않는 것이다.
‘물질의 성품을 분별하지 않는다.’ 함은 물질을 항상하다는 법[常法], 즉 땅을 단단한 성품[堅性]으로 분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물질의 진실한 성품을 법성(法性)이라 하나니, 마침내 공하기 때문이다. 이 보살이 법성을 분별하지 않음은 법성은 파괴되지 않는 모양이기 때문이니, 나아가 일체종지도 또한 그와 같다.
【문】땅은 바로 단단한 모양이거늘 무엇 때문에 성품[性]으로 논하는가?
【답】이 모양을 쌓고 익히면 성품이 된다. 비유하건대 마치 사람이 날마다 성내는 습관을 그만두지 않으면 나쁜 성품[惡性]으로 되는 것과 같다.
혹은 성품과 모양이 다르기도 하나니, 마치 연기를 보고 불인 줄 아는 것과 같다. 그러나 연기는 바로 불의 모양이면서도 불이 아니다. 혹은 모양과 성품이 다르지 않기도 하나니, 마치 뜨거운 열은 그것이 불의 모양이요 또한 그것은 불의 성품인 것과 같다.
이 가운데서 부처님께서는 그 인연을 말씀하시면서 “물질 등의 모든 법은 불가사의하니, 불가사의가 곧 필경공이요 모든 법의 실상이며 항상 청정한 것이다.”고 하신다.
수보리는 말하기를 “보살은 비록 세월이 오래되지 않더라도 이와 같이 행하는 이면 바로 오래되었다고 한다.”고 한다.
수보리는 반야바라밀을 듣고 다시 깊은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매우 깊으니, 물질 등이 매우 깊기 때문입니다.”고 한다. 물질 등의 매우 깊은 모양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바로 값진 보배 더미[珍寶聚]입니다.’고 했는데, 값진 보배란 이른바 수다원의 과위는 3결(結)의 나쁜 독을 없애기 때문이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온갖 번뇌와 습기를 없애면서 온갖 소원을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위[果]는 모든 선(禪) 내지는 일체종지에 의하는 것으로 원인[因]과 결과[果]를 합쳐서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값진 보배더미라 한다.
이 반야바라밀은 청정한 더미[淸淨聚]이니, 물질 등의 모든 법은 청정하기 때문이다. 물질 등의 법 가운데서 바른 행으로 삿되지 않은 것을 청정하다고 한다. 모든 허물이 없으며, 나아가 마침내 공에도 집착하지 않고 불가사의에도 또한 집착하지 않나니, 이 때문에 청정한 더미라 한다.
그때 수보리는 생각하기를 ‘이 반야바라밀은 바로 값진 보배 더미여서 온갖 중생의 소원, 즉 이 세상의 즐거움과 뒷세상의 즐거움과 열반의 즐거움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즐거움을 만족시켜 준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은 이 반야바라밀의 청정한 더미를 파괴하려고 한다. 마치 여의보주(如意寶珠)는 흠이 없고 허공과 같아서 더러운 때가 없는 것처럼 반야바라밀은 마침내 청정한 더미인데, 사람들은 스스로 삿된 소견의 인연을 일으켜 방해하고 파괴하려고 한다. 비유하건대 마치 사람의 눈에 병이 있으면 값진 보배를 보면서도 그것이 청정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이다.
【경】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괴이하게도 이 반야바라밀을 설할 때에는 많은 장애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에는 많은 장애가 있느니라. 이런 일 때문에 선남자나 선여인이 만일 이 반야바라밀을 쓰려고 할 때는 마땅히 빨리 써 마쳐야 하고 만일 읽고 외우고 생각하고 설하며 바르게 기억하고 수행하는 때에도 역시 신속히 수행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을 쓸 때에나 읽고 외우고
생각하고 해설하며 바르게 기억하고 수행할 때에 모든 장애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만일 한 달 동안에 쓰려고 하면 마땅히 그 동안에 다 써서 마쳐야 하고, 두 달ㆍ석 달ㆍ넉 달ㆍ다섯 달ㆍ여섯 달ㆍ일곱 달 동안이거나 일 년 동안에 다 써서 마치려 하면 그 동안에 부지런히 써서 마쳐야 하며, 또 읽고 외우고 생각하고 해설하며 바르게 기억하고 수행하면서 한 달 동안에 다 성취하려 하거나 나아가 1년 만에 다 성취하려 하면 마땅히 부지런히 하여 성취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이 값진 보배 가운데는 장애가 많이 있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 안에는 악마가 기뻐하면서 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에 쓸 수 없게 하며 읽고 외우거나 생각하고 해설하거나 바르게 기억하면서 수행하거나 하는 데에도 성취할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악마가 비록 이 반야바라밀에 장애를 일으켜서 쓰고 읽고 외우고 생각하며 해설하고 바르게 기억하면서 수행할 수 없게 한다 하더라도 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쓰고 나아가 수행하는 일을 파괴할 수는 없느니라.”
그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 누구의 힘 때문에 악마로 하여금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쓰고 나아가 수행하는 데에 장애를 일으킬 수 없게 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힘 때문에 악마가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쓰고 나아가 수행하는 데에 장애를 일으키지 못하느니라.
사리불아, 또한 시방세계에 현재 계시는 모든 부처님의 힘 때문이요, 이 모든 부처님이 이 보살을 옹호하고 생각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악마로 하여금 이 보살마하살을 장애할 수 없게 하며 반야바라밀을 쓰고 나아가 수행하는 일을 할 수 없게 하지도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시방세계 안에 현재 계시는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 보살을 옹호하고 생각하고 계시기 때문이며 깊은 반야바라밀을 쓰고 나아가 수행하면 으레 장애를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선남자ㆍ선여인은 마땅히 ‘내가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쓰고 나아가 수행하는 것은 이 모두가 시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의 힘이다.’라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사리불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쓰고 나아가 수행하면 이것은 모두 부처님의 힘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 모든 부처님의 옹호를 받는 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사리불아, 만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쓰고 나아가 수행하면 이 모두는 부처님의 힘인 줄 알아야 하며, 또한 이 모든 부처님께서 옹호하고 계시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불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시방에 현재 계시는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쓰고 나아가 수행하는 때를 모두 아시고 모두 불안(佛眼)으로써 보고 계십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사리불아, 시방에 현재 계시는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 선남자와 선여인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쓰고 나아가 수행하는 때를 모두 아시고 모두 불안으로써 보시느니라.
사리불아, 이 가운데서 보살의 도를 구하는 선남자ㆍ선여인이 만일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바르게 기억하면서 말씀대로 수행하면, 이 사람은 오래지 않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워지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나아가 바르게 기억하면, 이 사람은 깊은 반야바라밀에
믿고 이해하는 모양이 많으며 또한 이 깊은 반야바라밀에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꽃과 향과 영락 내지는 번기와 일산으로 공양하는 것이니라.
사리불아,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 선남자ㆍ선여인을 모두 아시고 모두 불안으로써 보시게 되며,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이 공양하는 공덕으로 당연히 큰 이익과 큰 과보(果報)를 얻을 것이니라.
사리불아,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이 공양하는 공덕과 인연 때문에 끝내 악도(惡道) 가운데에 떨어지지 않으며 아비발치(阿鞞跋致)의 지위에 이르기까지 끝내 모든 부처님을 멀리 여의지 않느니라.
사리불아,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이 선근의 인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6바라밀을 여의지 않고 끝내 내공으로부터 무법유법공까지를 여의지 않으며 끝내 4념처 내지는 8성도분을 여의지 않고 끝내 부처님의 10력 내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멀리 여의지 않느니라.”
【논】해석한다. ‘장애[留難]’라 함은 악마의 일[魔事] 등으로 반야바라밀을 파괴하는 인연이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가 하는 말을 옳다 하시면서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반야바라밀을 쓰고자 하면 빨리 써서 마쳐야 하며, 나아가 바르게 기억하고 말씀대로 수행할 때에도 신속히 수행해야 한다.”고 하신다.
빨리 해야 하는 까닭은 이 유위(有爲)의 법은 믿을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장애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반야바라밀에 속한 경전 중에는 권수가 많은 것도 있고 적은 것도 있으며 상ㆍ중ㆍ하가 있기도 하나니, 광찬(光讚)ㆍ방광(放光)ㆍ도행(道行) 등이 그것이다.
쓰고 베끼는 이 중에는 더디게 쓰는 이도 있고 빨리 쓰는 이도 있으며, 어떤 이는 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쓰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게으름을 피우면서 부지런히 쓰지 않는 이도 있나니, 사람의 몸은 덧없고 유위의 법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악한 세상에 나오셨기 때문에 많은 장애가 있다. 이 때문에 “만일 한 달 동안에 써서 마칠 것이면 반드시 부지런히 써서 마쳐야 하며 그 중간에 그만두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하신다. 그것은 장애가 있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나아가 1년 동안에 써서 마칠 것이면 그 동안에 다 써야 하며, 나아가 수행하는 일도 또한 그와 같다.
사람의 근기의 예리함과 둔함에 따라 더디기도 하고 빠를 수도 있으므로 이 가운데서 부처님께서는 다시 그 인연을 말씀하시면서 “세간에는 값진 보배 때문에 도둑이 많이 있는 것처럼 반야도 크고 값진 보배이기 때문에 장애가 많이 있다.”고 하신다.
장애에는 비록 질병이나 굶주림 등이 있다손 치더라도 악마의 일이 더 크기 때문에 ‘악마의 일[魔事]’이라고 한다. 악마나 악마의 백성이나 나쁜 귀신 등이 나쁜 인연을 만들어 사람 몸속으로 들어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요란시키면서 쓰고 있는 반야를 깨뜨리기도 하고, 혹은 쓰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달프게 하기도 하며, 혹은 그 국토에 어떤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고, 혹은 쓰고 있는 사람에게 공양을 얻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등으로 읽고 외우고 할 적에 스승과 제자들이 화합하지 않게 하기도 하고, 대중 가운데서 설할 때에는 혹 어떤 사람이 와서 법사의 허물을 말하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말하기를 “말씀하신 대로 행할 수 없다면야 듣고 받아서 무엇 하겠느냐.”고 한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비록 계율을 잘 지닌다 하더라도 근기가 둔하므로 깊은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설한 바를 듣는다 해도 마침내 이익은 없다.”고 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말하기를 “반야바라밀은 공이요, 아무것도 없으므로 온갖 법이 모두 소멸되어 행할 만한 곳이 없다. 비유하건대 마치 벌거벗은 사람이 ‘나는 하늘옷[天衣]을 입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와 같은 등의 장애를 일으키면서 설할 수 없게 한다.
‘바르게 기억하지 못한다.’ 함은 악마가 좋은 몸이나 혹은 선지식의 몸이나 혹은 공경하고 믿을 만한 사문의 형상이 되어서 그에게 “반야바라밀은 공하여 아무것도 없고 비록 죄와 복의 이름이 있다 하더라도 도의 이치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반야바라밀은 공하므로 곧 열반을 취해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따위로 부처님 도를 닦으면서 바르게 기억하는 일을 파괴하나니, 새로 뜻을 낸 보살은 이런 일을 듣고 마음에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우리들은 나고 죽고 하는 몸이요 악마는
욕계의 주인으로서 그 위세가 아주 대단하거늘 우리들이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수행하여 위없는 도를 얻는다는 말이냐’고 하게 된다.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악마가 비록 장애를 일으킨다 하더라도 파괴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큰 인연은 항상 작은 인연을 파괴하기 때문이니, 마치 욕심을 여읜 사람은 항상 탐욕하는 이보다 뛰어나고 자비 있는 사람은 항상 성을 내는 이보다 뛰어나며 지혜 있는 사람은 항상 지혜 없는 이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은 진실한 지혜이어서 그 힘이 아주 크거니와 악마의 일은 거짓이라 아주 작다. 이 보살은 비록 아직 반야바라밀을 완전히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기분(氣分)을 얻고 있기 때문에 악마가 파괴할 수는 없다. 이런 일의 인연 때문에 사리불은 부처님께 여쭈기를 “누구의 힘 때문에 악마가 파괴할 수 없습니까?”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부처님의 힘 때문이다.”고 하셨다. 마치 나쁜 사람 안에서는 악마를 큰 이로 삼듯이 착한 사람 안에서는 부처님을 큰 이로 삼고, 속박된 사람 가운데서는 악마를 큰 이로 삼거니와 해탈한 사람 가운데서는 부처님을 큰 이로 삼으며, 장애를 일으키는 사람 가운데서는 악마를 큰 이로 삼고 통달한 사람 가운데서는 부처님을 큰 이로 삼는 것과 같다.
처음에 설명한 ‘부처님의 힘’이라 함은 석가모니부처님이요, 나중에 설명한 ‘부처님의 힘’은 시방에 현재 계신 부처님이며, 그 밖의 부처님께서는 아촉불(阿閦佛)과 아미타불(阿彌陀佛) 등이다.
마치 나쁜 도둑은 그 밖의 나쁜 모양을 돕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의 법도 그와 같아서 항상 온갖 중생들을 위하여 뜻을 낸 이가 있으면 곧 그들을 수호하게 된다. 그것은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바로 시방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너뜨리려 하면 보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어떤 이가 쓰고 읽고 나아가 바르게 기억한 이는 모두가 시방 부처님의 힘인 줄 알아야 하며 그것은 모든 장애의 힘이 크기 때문이니, 사리불은 말하기를 “만일 어떤 이가 쓰고 지니고 나아가 수행하면 이 모두는 모든 부처님의 옹호를 받는다.”고 하며 부처님께서는 그의 말을 옳다고 하신다.
사리불은 다시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쓰고 지니는 모든 선남자ㆍ선여인을 시방에 현재 계신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가 불안(佛眼)으로써 보시고 아시고 생각하는 것인지요?”라고 하시고,
부처님께서는 그의 말을 옳다 하시면서 “그러하느니라. 먼저 악마가 와서 파괴하려 하면 부처님과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수호하면서 파괴되지 않게 하며 지금은 불안으로써 이 선남자ㆍ선여인을 보시고 이 사람의 공덕은 있기 어려운 것임을 아느니라.”고 하신다.
그는 아직 악마의 그물을 파괴하지 못했으면서도 이 반야바라밀의 큰일을 능히 하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시방의 부처님께서는 불안으로써 이 사람을 보시고 아시며 생각해 주신다.
【문】천안(天眼)으로써 보시는 것인가, 아니면 불안으로써 보시는 것인가? 만일 천안으로써 본다면 어찌하여 이 가운데서 불안을 말씀하며 만일 불안으로써 본다면 중생은 거짓이거늘 어떻게 불안으로써 보신다는 것인가?
【답】천안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불안에 포섭되는 것이요, 둘째는 불안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다. 포섭되지 않은 것으로 현재 중생을 보면 한계가 있고 수량이 있거니와 불안에 포섭되는 것으로 3세의 중생을 보면 한계도 없고 수량도 없다.
법안(法眼)이 불안 안에 들어가면 다만 모든 법안을 보고 중생은 보지 못하거니와 혜안(慧眼)이 불안 안에 들어가면 법은 보지 못하고 다만 필경공만을 볼 뿐이다.
【문】불안에 포섭되는 천안은 진실한 것인가, 허망한 것인가? 만일 허망하다면 부처님께서는 허망한 것을 보지 않으셔야 하고, 만일 진실하다면 중생은 공한 것이라 현재의 중생조차도 오히려 진실하지 않거늘 하물며 미래와 과거이겠는가?
【답】불안에 포섭된 것이면 모두가 진실이다. 중생은 열반에 있어서는 그것이 허망한 것이로되 세계에서 보는 것으로는 허망한 것이 아니다. 만일 사람이 중생에 대하여 일정한 모양을 취하면 그 때문에 허망하다고 말하거니와 그것은 세속 이치로 허망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불안에 포섭되는 천안으로는 중생을 본다.
【문】만일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불안에 포섭되는 혜안으로는 중생을 보지 못하는가?
【답】혜안은 모양도 없고 날카롭기 때문이며 혜안은 언제나 공하고 모양이 없고 지음이 없는 것과 함께 상응(相應)하므로
중생을 보는 데에 알맞지 않다. 왜냐하면 5중(衆)이 화합하며 임시로 이름을 붙여서 중생이라 하기 때문이니, 비유하건대 마치 어린아이에게는 작은 매로써 때려야 하고 큰 매로써 때리지 않아야 하는 것과 같다.
이 가운데서 보살이 행하는 반야바라밀을 찬탄하는 것은 세속의 이치로서이지 첫째가는 이치[第一義]는 아니다.
【문】미래 세상은 아직 있지 않으므로 기억하고 아는 것조차도 오히려 어렵거늘 하물며 눈으로 보는 것이겠는가?
【답】과거의 법은 비록 소멸하여 있는 바가 없다고 해도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 안의 기억하는 힘 때문에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그 전생 일을 모조리 알 수 있는 것처럼, 성인도 또한 그와 같아서 거룩한 지혜의 힘이 있으므로 비록 아직 생기지 않았다 하더라도 알 수도 있고 볼 수도 있다.
또 이 반야 가운데서는 3세(世)가 나누어짐도 없으므로 미래와 과거와 현재는 다르지 않다. 만일 현재를 본다면 과거와 미래도 역시 보아야 하며, 만일 과거에 미래를 보지 못하면 역시 현재도 보지 못해야 한다.
【문】북방(北方)의 말법(末法) 중생들은 번뇌가 아직 다하지 못하여 죄악이 있는 사람들이거늘 부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보시고 아시며 기억하시는가?
【답】부처님께서는 대비(大悲)로 사랑해 주심이 골수까지 사무친다. 이 보살은 위없는 도의 마음을 일으켜 중생을 위하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이 법이 한창 마지막일 적에 당신이 열반하신 뒤에도 이 사람은 부처님 법을 도울 것이라고 관찰하기 때문에 기억하시고 아시는 것이다.
또 북방의 말세 사람들은 변두리 땅의 나쁜 세상에 태어나고 3독(毒)이 왕성하며 도병겁(刀兵劫)1) 동안이라 성현들이 드물다. 그러나 이 사람만은 스스로가 모든 죄와 복의 업의 인연을 모르면서도 다만 사람들로부터 반야의 경전을 듣기만 해도 곧 믿고 좋아하면서 공양하여 위없는 도에 오래지 않아 빨리 가까워질 것이다. 이런 일은 몹시 어렵거니와 만일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적에 아비발치(阿鞞跋致)가 되어서 반야바라밀을 믿고 행한다면 이것은 어려운 일이 되지 못한다. 이와 같은 갖가지의 한량없는 인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마땅히 보시고 기억하시고 아신다.
이 사람은
믿고 이해하는[信解] 모양이 크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에 공양할 수 있나니, 공양 거리와 꽃ㆍ향 등에 대해서는 앞의 설명과 같다. 이런 공양 때문에 큰 과보[大果報]를 얻고 반대로 헐뜯는 이는 큰 괴로움[大苦惱]을 받는다.
‘큰 과보’라 함은 마치 수다원이 끝내 3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이 보살이 일심으로 반야바라밀을 믿고 이해하면서 공양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모든 부처님을 애경하고 염해서 항상 염불삼매(念佛三昧)를 행하기 때문에 끝내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거니와 아비발치에 이르도록 중생들을 교화하면서 모든 부처님을 여의는 것에는 허물이 없나니, 마치 어린아이가 그 어머니를 여의지 않는 것은 모든 재난에 떨어질까 두렵기 때문인 것과 같다.
그는 항상 착한 법을 사랑하고 염하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6바라밀 등을 여의지 않으므로 이와 같은 등 금세와 후세의 큰 과보를 얻는 것이다.
【경】“사리불아, 이 깊은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이 열반한 뒤에는 남방(南方)의 국토에 이를 것이니, 그 안에 있는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등은 반드시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쓸[書] 것이요, 또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생각하고 해설하고 바르게 기억하면서 수행할 것이니라.
이런 선근의 인연 때문에 끝내 악도 가운데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의 쾌락을 누리며 6바라밀은 더욱 늘어나고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점차로 성문승(聲聞乘)ㆍ벽지불승(辟支佛乘)ㆍ불승(佛乘)으로써 열반을 얻을 것이니라.
사리불아, 이 깊은 반야바라밀은 남방으로부터 옮아가 서방(西方)에 이를 것이니, 그곳에 살고 있는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등은 반드시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쓸 것이요, 또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생각하고 해설하고 바르게 기억하면서 해설할 것이니라.
이런 선근의 인연 때문에 끝내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 안의 쾌락을 누리며 6바라밀은 더욱 늘어나고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점차로 성문승ㆍ벽지불승ㆍ불승으로써 열반을 얻을 것이니라.
사리불아, 이 깊은 반야바라밀은 서방으로부터 옮아가 북방(北方)에 이를 것이니, 그곳에 살고 있는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등은 반드시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쓸 것이요, 반드시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생각하고 해설하고 바르게 기억하면서 수행할 것이니라.
이런 선근의 인연 때문에 끝내 악도 가운데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의 쾌락을 누리며 6바라밀은 더욱 늘어나고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점차로 성문승ㆍ벽지불승ㆍ불승으로써 열반을 얻을 것이니라.
사리불아, 이 깊은 반야바라밀은 이때에 북방에서 불사(佛事)를 지을 것이니, 왜냐하면 사리불아, 나의 법이 흥성할 때요 소멸하는 모양이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나는 이미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나아가 수행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으며, 또한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공경하고 공양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며 꽃과 향 내지는 번기ㆍ일산으로 공양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느니라.
사리불아,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이런 선근의 인연 때문에 끝내 악도 가운데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 안의 쾌락을 누리며 6바라밀은 더욱 늘어나고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점차로 성문승과 벽지불승과 불승으로써 열반을 얻을 것이니라.
왜냐하면 사리불아, 나는 불안(佛眼)으로써 이 사람을 보고 나 또한 칭찬하고 찬탄할 뿐만 아니라 시방세계 안의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모든 부처님도 역시 불안으로써 이 사람을 보고는
또한 칭찬하고 찬탄하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깊은 반야바라밀은 뒷날에 북방에 있으면서 널리 행하게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사리불아, 이 깊은 반야바라밀은 뒷날에 북방에 있으면서 널리 행하게 될 것이니라.
사리불아, 뒷날에 북방에서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만일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거나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생각하고 해설하고 바르게 기억하면서 말씀대로 수행하면,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오래전에 대승(大乘)의 마음을 일으켜 모든 부처님을 많이 공양하였고 모든 선근을 심었으며 오랫동안 선지식을 따랐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뒷날에 북방에서 얼마나 많은 선남자ㆍ선여인이 부처님 도를 구하면서 깊은 반야바라밀을 쓰고 나아가 말씀대로 수행할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뒷날에 북방에서 비록 부처님 도를 구하는 선남자ㆍ선여인은 많이 있을지라도 소수의 선남자ㆍ선여인만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도 침몰하지 않고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겁내지도 않을 것이니, 왜냐하면 이 사람은 모든 부처님을 많이 친근하고 공양하였으며 모든 부처님께 많이 물었기 때문이니라.。
이 사람은 반드시 반야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단바라밀을 완전히 갖출 것이요 4념처를 완전히 갖출 것이며, 나아가 18불공법을 완전히 갖출 것이니라.
사리불아,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선근이 순수하고 두텁기 때문에 중생을 많이 이익되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느니라. 왜냐하면 나는 이제 이 선남자ㆍ선여인을 위하여 살바야(薩婆若)에 상응한 법을 설하기 때문이요,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또한 이 선남자와 선여인을 위하여
살바야에 상응한 법을 설했기 때문이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이 사람은 뒤에 태어났을 때에도 계속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얻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해설하느니라.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모두가 일심에 화합한지라 악마나 악마의 백성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무너뜨릴 수가 없거늘 하물며 악행을 짓는 사람[惡行人]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한 이를 헐뜯겠으며 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무너뜨릴 수 있겠느냐.
사리불아, 이 보살의 도를 구하는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들으면 크게 법의 기쁨과 법의 즐거움을 얻으며 또한 많은 사람을 선근에 세우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느니라.”
【논】해석한다. “이 깊은 반야바라밀이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에 남방의 국토에 이를 것이다.”고 했는데, 부처님께서는 동방에서 나오셔서 그 안에서 반야바라밀을 설하고 악마와 악마의 백성과 외도를 파괴하며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고 그런 뒤에야 구이나갈쌍수(拘夷那竭雙樹) 아래서 멸도(滅度)하셨다. 그 뒤에 반야바라밀은 동방으로부터 남방에 이른 것이니, 마치 해와 달과 5성(星)과 28수(宿)가 항상 동방으로부터 남방에 이르고 남방으로부터 서방에 이르며 서방으로부터 북방에 이르러 수미산(須彌山)을 둘러싸는 것과 같다.
또 마치 공양하는 법도에 오른편을 돌면서 두루 염부제 사람을 제도하는 것과 같나니, 이 인연 때문에 동방으로부터 남방에 이르고 남방으로부터 서방에 이른다.
마치 부처님께서는 집착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한 처소에 머물지 않는 것처럼 반야바라밀도 그와 같아서 한 곳에 일정하게 머무르지 않나니, 서방으로부터 북방에 이르는 것이다.
두 방향의 중생들은 공양하고 쓰고 읽으며,
나아가 수행하고, 꽃과 향 내지는 번기ㆍ일산으로 공양하기를 좋아하여 큰 과보를 받는 것이니, 마치 경 가운데서 설명한 것과 같다. 그 뒤에는 점차로 북방에 이르며 이 가운데서 공양하여 얻는 과보도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사리불이여, 이 반야바라밀은 북방에서 장차 불사(佛事)를 이룰 것이다.”고 하시고, 여기에 대하여 그 인연을 말씀하신다. 즉 부처님이 계실 때는 여러 의심들을 끊을 수 있고 부처님 법이 흥성하므로 법의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처님이 멸도하신 뒤에 5백 년을 지나면 바른 법[正法]은 점차로 소멸한다. 이때에는 불사는 갈수록 어렵게 되며 이때에 근기가 예리한 이는 읽고 외우고 바르게 기억하면서 또한 꽃과 향으로 공양하고 근기가 둔한 이도 서사하고 꽃과 향 등으로 공양하므로 이 두 가지의 사람들은 오래되면 모두 제도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장차 불사를 지을 것이다.”고 하신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되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나와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모두가 불안(佛眼)으로써 보고 기억하고 알고 찬탄한다.”고 하신다.
사리불은 부처님께 여쭈기를 “이 깊은 반야는 북방에 있으면서 널리 행하게 되는지요?”라고 한다.
‘널리 행한다.’ 함은 염부제에서 북방이 광대하기 때문이며 또 북방의 땅에는 설산(雪山)이 있어서 설산은 한랭한 곳이기 때문에 약초들은 모든 독을 죽이고 먹는 쌀 곡식은 3독(毒)을 크게 일으키지 못하며, 3독을 크게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들은 순해져서 신근(信根) 등의 5근(根)이 모두가 세력을 얻나니, 이런 등의 인연으로 북방에서 반야바라밀을 많이 행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 써서 지니고 나아가 바르게 기억하면서 말씀하신 대로 수행하나니,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오래전에 대승의 뜻을 일으켰고 부처님을 많이 공양하였으며 선근을 심었고 선지식을 따른 이들인 줄 알아야 한다. 이 때문에 나쁜 세상에서도 써서 지니고 믿고 받으며, 나아가 말씀하신 대로 수행하는 것이다.
사리불은 묻기를 “북방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서 쓰고
읽고 외우며, 나아가 말씀하신 대로 수행하는지요?”라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되 “이 깊은 반야바라밀은 알기도 어렵고 행하기도 어려우므로 비록 많은 사람들이 위없는 도의 마음을 일으키어 보살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하더라도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반야바라밀을 듣고 마음이 통달하여 놀라지도 않고 침몰하지도 않는다.”고 하신다.
마음이 통달하여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모양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이 가운데서 직접 말씀하시되 “이 사람은 모든 부처님을 많이 가까이했다.”고 하신다. ‘모든 부처님을 가까이한다.’ 함은 한량없는 세상에서 항상 모든 부처님을 뵙고 공경하면서 공양했다는 것이다.
‘묻고 따진다.’ 함은, 곧장 그 일을 물었지만 의심이 풀리지 않았으므로 거듭하여 갖가지로 묻는 것을 따진다[難]고 한다.
이 사람은 세상에서마다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반야바라밀을 묻고 따진 것이니, 이 사람의 공덕과 과보는 비록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 사람은 6바라밀과 37품(品) 내지는 18불공법을 완전히 갖추었고 이 복덕을 완전히 갖추어서 순숙(淳熟)하기 때문에 중생들을 이익되게 함이 많다.
이른바 단바라밀과 시라바라밀의 인연 때문에 재산이 풍부하고 귀한 집에 태어나서 자기 자신이 보시를 행하면서 남들에게도 보시하게 하며, 찬제바라밀과 선바라밀의 인연 때문에 한량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출가(出家)하고 계율을 받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이 가운데서 부처님께서는 그 인연을 말씀하시면서 “이 사람은 나와 과거의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살바야(薩婆若)와 상응한 대승의 법을 들었으므로 이 때문에 후생(後生)에 그의 마음을 상실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또한 다른 사람을 교화하면서 이러한 일을 해설하는 것은 마치 한 개의 등불에 불을 붙여 켜고는 차츰차츰 모든 등불에 불을 옮겨 붙이는 것과 같다.
이 사람은 모든 번뇌가 희박하여지고 간탐과 질투와 성내는 일이 없기 때문에 남을 헐뜯거나 비방하지 않고 항상한 마음에 화합하여 있기 때문에 악마나 악마의 백성이 무너뜨릴 수가 없다.”고 하신다.
만일 사람이 조그마한 착오라도 있으면 악마는 그의 틈[便]을 얻으니, 마치 어떤 사람의 몸에 상처가 있으면 곧 그곳으로 독이 들어가는 것과 같다. 악마는 바로 욕계(欲界)의 주인[主]인데도
오히려 무너뜨릴 수가 없거늘 하물며 악을 행한 사람이겠는가.
혹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면서도 악이 아님은 마치 아직 욕심을 여의지 못한 성인과 같나니, 이 때문에 말하기를 “악을 행한 사람은 반야바라밀을 헐뜯고 곧 보살을 헐뜯어 무너뜨린다.”고 한다.
또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은 한량없는 세상 동안에 부처님 법을 사랑하고 진실한 법에 깊이 집착하며 믿음의 힘[信力]과 지혜의 힘[慧力]이 많기 때문에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 대자대비의 마음을 얻는다. 때문에 중생의 힘에 따라 깊은 반야바라밀에 들게 하며, 또 반야의 인연인 이른바 보시와 지계 등의 모든 선근을 얻게 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한다.’ 함은,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위없는 도를 구하는 까닭에 다른 이로 하여금 모든 선근과 복덕에 머무르게 한다는 것이다.
【경】“이 선남자ㆍ선여인은 나의 앞에서 서원을 세우되 ‘저는 보살도를 행할 때에 수없는 백천만억의 중생을 제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하며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이익되게 하고 기쁘게 하면서 나아가 아비발치(阿鞞跋致)의 지위에 이르리라는 수기(授記)를 받게 하리이다.’고 하므로, 나는 그의 마음을 알며 나는 또한 따라 기뻐하느니라.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또한 과거의 모든 부처님 앞에서 서원을 세우되 ‘저는 보살의 도를 행할 때에 수없는 백천만억의 중생들을 제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하며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이익되게 하고 기쁘게 하면서 나아가 아비발치의 지위에 이르리라는 수기를 받게 하리이다.’고 하므로, 모든 과거의 부처님도 역시 그의 마음을 알면서 따라 기뻐하느니라.
사리불아,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그 하는 바 마음이 크고 받아들이는 바 빛깔[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촉감[觸] 및 법(法)도 크며 또한 크게 보시하고 크게 보시한 뒤에는 큰 선근을 심으며 큰 선근을 심은 뒤에는 큰 과보를 얻으며,
중생들을 거두어 주기 위하여 몸을 받아 중생들 가운데서 안팎의 온갖 물건들을 잘 버리느니라.
이런 선근의 인연 때문에, 원을 세워 다른 지방 세계에 현재 계시는 모든 부처님께서 깊은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처소에 가 나고자 하며 그 모든 부처님 앞에서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들은 뒤에는 역시 그곳에서 백천만억의 중생에게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이익되게 하고 기쁘게 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희유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법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법이 없고 안다는 모양[知相]에 대해서도 알지 못함이 없으며 중생들이 행하는 일에 대해서도 알지 못함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지금 부처님께서는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성문을 모두 다 아시고 또한 지금 현재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계신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성문들도 모두 아시며 또한 미래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성문들을 모두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미래 세상에 선남자ㆍ선여인이 부지런히 6바라밀을 구하면서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나아가 수행하면서 얻는 이도 있고 얻지 못하는[不得] 이도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이 일심으로 정진하면서 힘써 구하면 6바라밀과 상응한 모든 경전을 얻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선남자ㆍ선여인이 이와 같이 부지런히 행하면 반드시 이 6바라밀과 상응한 깊은 경전을 얻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이 6바라밀과 상응한 깊은 경전을 얻나니, 왜냐하면 선남자와 선여인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중생에게 설법하면서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이익되게 하고 기쁘게 하면서 여섯 가지 바라밀 안에 머무르게 하기 때문이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이 선남자와 선여인은 후생 몸으로 바꾸어 태어나도
6바라밀과 상응한 깊은 경전을 쉽게 얻으며, 얻은 뒤에는 6바라밀에서 말한 대로 수행하되 부지런히 힘쓰면서 쉬지 않으며, 나아가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느니라.”
【논】해석한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되 “선남자ㆍ선여인은 내 앞에서 또한 과거의 모든 부처님 앞에서 서원을 세우기를 ‘저는 보살도를 행하면서 한량없는 백천만억의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도에 뜻을 두게 하며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이익되게 하고 기쁘게 하면서 아비발치의 수기를 얻게 하리이다.’고 하느니라.
나와 과거의 부처님께서는 이 선남자의 마음에 크게 짓는 것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따라 기뻐하며, 선남자ㆍ선여인은 부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아신다 함을 듣고 기쁜 마음을 내고 스스로가 과거에 서원을 세웠다는 일을 염(念)하면서 갑절 더 정진을 하는 것이니라.”고 하신다.
‘큰마음[大心]’이라 했는데, 온갖 중생들의 마음은 모두가 6진[塵]을 반연하기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잡스런[雜] 복덕을 행하나니, 이른바 복을 지을 때에 마음에 의심과 뉘우침을 내는지라 이 복덕의 과보로 비록 부귀를 얻는다 하더라도 좋게 이용할 수도 없고 또한 다른 이에게도 주지 못하며 죄업의 인연 때문에 모든 근기가 암둔(闇鈍)하여 아름답고 추함도 가리지 못한다.
그러나 이 선남자는 아직 도를 얻지 못한 때에도 청정한 복덕 때문에 훌륭한 5욕(欲)을 얻고 또한 뜻을 다하여 이용하여 마음대로 베풀어 줄 수 있어서 혹은 궁핍한 이에게 보시하기도 하고 혹은 복전을 심기도 한다.
만일 선지식(善知識)을 만나 불법을 들으면 집착하는 욕심이 쉬어지고 중생을 가엾이 여기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는 까닭에 안팎의 가진 모두를 보시하면서도 애석해 함이 없으며, 만일 계율을 지니면 두루 10선도(善道)를 행하면서 계율의(戒律儀)를 갖추며 자비로운 마음으로써 함께 행한다.
그 밖의 착한 법도 그와 같아서 모두가 깊은 마음으로 자기 자신이 행하면서 다른 사람을 인도하여 착한 길을 행하게 한다.

이 복덕의 인연 때문에 세간의 쾌락과 천상의 왕과 인간의 왕과 부유하고 귀한 처소를 구하지 않으며 현재 부처님이 계신 곳을 들으면 그곳에 가 나기를 원한다.
이 보살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알기 때문에 태어나기를 좋아하지 않고 만일 중생을 위하여 태어난다면 시방의 부처님 앞에 가 태어나 깊은 반야바라밀을 들으며 들은 뒤에는 그곳에서 한량없는 백천 중생을 교화하면서 위없는 도의 마음을 일으킨다.
사리불은 일체지가 없으므로 3세(世) 보살의 서원과 행하는 일을 듣고는 희유하다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3세 가운데서 법마다 알지 못함이 없고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로부터 알지 못한 것이 없으며, 모든 중생이 마음으로 행한 업(業)과 과보(果報)와 인연(因緣) 등의 일을 알지 못함이 없고 시방에 현재 계신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과거와 미래 세상의 부처님과 세계의 제자들이 행한 일을 모두 다 아시나니, 부처님의 일체지(一切智)는 그 힘이 매우 커서 불가사의합니다.”고 한다.
사리불은 또 생각하여 말하기를 “똑같이 출가한 사람들이 다함께 반야바라밀을 구하는데 무엇 때문에 얻는 이가 있고 얻지 못하는 이가 있을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되 “만일 이 보살이 항상 일심으로 6바라밀을 구하면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 이 사람은 안으로는 좋은 마음이 있고 밖으로는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모든 하늘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고 하신다.
사리불의 뜻으로는 ‘비록 또 정진이 있더라도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면 악마의 힘이 더욱 크거늘 이 보살이 어떻게 이 반야바라밀의 깊은 경전을 얻겠는가.’ 하고, 이 때문에 다시 “이 6바라밀과 상응한 깊은 경전을 얻는지요?”하고 묻는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되 “얻느니라.”고 하시고 이 가운데서 얻는 인연을 말씀하나니, 이른바 선남자ㆍ선여인은 위없는 도를 위하여 중생들에게 설법하며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면서 6바라밀에 머무르게 하며 부처님 도를 깨우쳐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업(業)의 과보 때문에
몸을 바꾸어도 6바라밀과 상응한 깊은 경전을 쉽게 얻는다. 만일 신속히 받아 지니고 나아가 말씀대로 수행하면서 정진하고 버리지 않으며 세상마다 항상 여의지 않으면 6바라밀의 과보 때문에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면서 이에 위없는 도에 이르게 하거니와 만일 법에 인색하면 항상 불법이 없는 변두리에 태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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