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마하승기율(摩訶僧祗律) 28권
마하승기율 제28권
불타발타라ㆍ법현 공역
이영무 번역
6) 잡송장의 법을 밝힘 ⑥
(95) 가치나(迦絺那)옷의 법
부처님께서 구섬미(俱睒彌)의 구사라원(瞿師羅園)에 머물러 여러 천신과 세상 사람들의 공양을 받고 계셨다. 그때 구섬미왕의 부인이 500장의 천을 세존께 받들어 올리니,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셨다.
“그대가 이 요를 가져가서 여러 비구에게 주어라.”
여러 비구들은 그것을 받지 않으면서 아난에게 말하였다.
“세존께서 여분의 옷을 저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이 천을 써서 무엇하겠습니까? 또 이 천은 세탁하여 물들이지 않았으니 이미 법도에 맞지 않습니다.”
아난이 이 인연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니,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셨다.
“이제부터는 여분의 옷을 10일 동안 저축함을 허락한다.”
여러 비구들이 여분의 옷이 10일의 기간이 지나자 이 옷들을 가지고 세존께 가서 아뢰었다.
“이 옷이 이미 10일이 찼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부터는 가치나의(迦絺那衣)를 받는 것을 허락한다.”
‘가치나의’라고 하는 것은 때와 여러 승과 여러 사람과 한 사람과 다섯 가지 이익과 새것과 받지 않은 것과 부정(不停)과 절정(截淨)과 염정(染淨)과 점정(點淨)과 도정(刀淨) 등이다.
‘때’라고 하는 것은 7월 16일로부터 8월 15일에 이르는 것을 때라고 한다.
‘여러 스님’이라 하는 것은 승단에서 가치나의 옷을 지어서 여러 많은 사람에게 주어서도 안 되고 한 사람에게 주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여러 많은 사람이 가치나의를 지어서 한 사람에게 주어서도 안 된다.
‘다섯 가지 일의 이익’이라 하는 것은 다섯 가지의 죄를 여의는 것이니, 어떤 것들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별중식(別衆食)과 처처식(處處食)과 식전과 식후에 알리지 않고 다니는 것과 여분의 옷을 저축하는 것과 옷을 떠나 자는[離衣宿] 것이니, 이를 다섯 가지 일의 이익이라고 한다.
‘새것’이라고 하는 것은 새 천이다.
‘받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아직 받아서 3의(衣)를 짓지 아니한 것이다.
‘부정(不停)’이라고 하는 것은 청정하게 희사한 옷[淨施衣]을 버리고서 가치나의를 얻는 것이니, 승가리와 울다라승과
안타회와 부창의와 우욕의 등 이와 같은 여러 옷과 구자(鉤刺)로써 일찍이 지어 수용치 아니한 것은 모두 가치나의를 지을 수 있다.
‘절정(截淨)’이라고 하는 것은 실을 끊어서 정을 짓는 것이다. ‘염정(染淨)’이라고 하는 것은 물들여서 정을 짓는 것이다.
‘점정(點淨)’이라고 하는 것은 각(角)을 점쳐서 정을 짓는 것이다.
‘도정(刀淨)’이라 합은 각의 위에서 4지(指)쯤의 한 곳에 세 번 칼을 대서 세올을 끊는 것이니, 이를 도정이라고 한다.
만일 외부의 사람이 스님의 가치나의를 보시하면 스님이 잠자코 받아서는 안 된다. 받는 자는 마땅히 말하여야 한다.
“내가 이제 승단에 희사하는 가치나의를 받습니다.”
그리고 받고 나서는 승단에 이르러서 천을 세워서 손에 잡고 길게 드리워서 높이 받들어 들고 이렇게 말한다.
“대덕 스님들은 들으소서. 이 중이 제때의 옷을 얻었습니다. 스님들이여 때가 이르렀으면 승이 이 가치나의를 취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아룁니다. 대덕 스님들은 들으소서. 이 중이 때의 옷을 얻었기에 이 중이 이제 이 가치나의를 취하겠습니다. 여러 대덕들은 이 가치나의를 취하는 것을 승인하시는 분은 잠자코 계시고 승인하지 않으시는 분은 말씀하십시오. 이 중이 이미 가치나의를 갖기를 마쳤습니다. 스님들이 승인하여 잠자코 계시므로 이 일을 이와 같이 행하겠습니다.”
‘스님들 가운데 능히 가치나의 뜻을 지을 줄 아는 이가 한 사람이든지 두 사람이든지 세 사람이든지 있으면 갈마하는 사람이 마땅히 말한다.
“대덕 스님들은 들으소서. 이 중이 제때의 옷을 얻었습니다. 스님들이여 때가 이르렀으면 승단에서 아무아무 비구와 나머지 사람을 임명하여 중의 가치나의를 짓게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아룁니다.
대덕 스님들은 들으소서. 이 중이 때의 옷을 얻었기에 승단에서 이제 아무아무 비구와 나머지 사람을 임명하여 가치나의를 짓게 합니다. 여러 대덕들은 아무아무 비구와 나머지 사람을 임명하여 가치나의를 짓게 하는 것을 승인하시는 분은 잠자코 계시고 승인하지 않으시는 분은 말씀하십시오. 스님들이 이미 승인하였기에 아무아무 비구를 임명하여
가치나의를 짓게 하는 일을 마칩니다. 스님들이 승인하여 잠자코 계시므로 이 일을 이와 같이 행하겠습니다.”
갈마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주(主)가 되어 옷을 받을 때에는 마땅히 이렇게 말한다.
“이 가치나의를 받습니다. 중이 마땅히 받습니다.”
이와 같이 세 번 말한다. 그 옷을 빨 때에도 마땅히 이렇게 말한다.
“이 가치나의를 빨아서 중이 마땅히 받습니다.”
그리고 실을 끊을 때와 꿰맬 때와 물들일 때와 점(點)으로 정(淨)을 지을 때에도 이와 같이 말하여서 짓는 데 따라 앞의 말과 같이 하여야 한다.
‘도정(刀淨)’이라고 하는 것은, 천의 모서리에서 네 손가락쯤 한 번 칼질할 때마다 말하기를 “이 가치나의를 이 중이 마땅히 받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도 그렇게 말하고 세 번째도 그렇게 말하여야 하며, 정을 지을 때에도 하나하나 이와 같이 말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서 정을 지으면서 가치나의라고 하는 자는 월비니죄를 범하고, 만일 하나하나 이렇게 말하고서도 정을 짓지 않으면 가치나의라고 할 수 없어서 월비니죄를 범한다. 그러므로 하나하나 마음을 일으켜서 정을 지어야 가치나의라 할 수 있으므로 죄가 없다.
만일 중이 제 때에 옷을 만들어 모두가 화합하면 갈마하는 사람이 세로 겹친 옷을 손에 잡아 길게 드리우고 높이 받들면서 마땅히 이렇게 말한다.
“대덕 스님들은 들으소서. 중이 제때의 옷을 만들기를 마쳤습니다. 스님들이 때에 이르렀으면 승단에서 이 가치나의를 받겠습니다. 이와 같이 아룁니다.
대덕 스님들은 들으소서. 중이 제때의 옷을 지어 마쳤습니다. 승단에서 이제 이 가치나의를 받겠습니다. 여러 대덕들은 이 가치나의를 받는 것을 승인하시는 분은 잠자코 계시고 승인하지 않으시는 분은 말씀하십시오. 승단에서 이미 가치나의를 받기를 마칩니다. 스님들이 승인하여 잠자코 계시므로 이 일을 이와 같이 행하겠습니다.”
그리고서 마땅히 이 옷을 개서 상자 속에 넣고서 여러 꽃을 그 위에 놓고서 윗자리의 사람으로부터 차례대로 따라 기뻐하며 말한다.
“장로들이여, 기억하소서. 중이 사는 곳에서 가치나의를 받았기에 저 아무 비구가 기쁘게 받겠습니다.
겨울 4개월 동안 입다가 머무는 곳에서 기한이 차면 제가 마땅히 버리겠습니다.”
이와 같이 세 번 말한다. 만일 대중이 1만이나 2만 명이어서 화합하기 어려우면 여러 많은 사람들이 가치나의를 개별적으로 지어 입으며 모든 것이 대중의 것과 같이 하지만, 다만 많다고 일컫는 것이 다르다. 4인(人) 이상의 대중이면 가치나의를 따로 짓지 못한다. 만일 1인이 혼자서 짓게 되면 그 옷을 취할 적에 마땅히 말하여야 한다.
“이 가치나의를 내가 이제 받습니다.”
이렇게 세 번 말해야 하니, 실을 끊을 때나 실로 꿰맬 때나 세탁할 때나 물들일 때나 점을 할 때나 도정할 때, 그리고 실을 끊을 때 마땅히 말하여야 한다.
“이 가치나의를 내가 마땅히 받습니다.”
그리고 꿰맬 때와 세탁할 때와 물들일 때와 점칠 때와 칼로 정을 지을 때에도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해야 한다. 짓기를 마치면 마땅히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말하여야 한다.
“저 아무 비구가 이 가치나의를 받습니다.”
이렇게 세 번 말해야 한다.
가치나의를 받는 것에는 만들 때이고 받을 때가 아닌 것이 있고, 받을 때이고 만들 때가 아닌 것이 있고, 받을 때이고 만들 때인 것이 있고, 만들 때가 아니고 받을 때가 아닌 것이 있다.
‘만들 때이고 받는 때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 가운데 만들 때에 받고 받을 때가 아닐 때에 받는 것이니, 받는다고 한다.
‘받을 때이고 만들 때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받을 때에 받고 만들 때가 아닐 때 받는 것이니, 받는다고 한다.
‘만들 때이고 받을 때’라고 하는 것은 만들 때와 받을 때에 받는 것이니, 받는다고 한다.
‘만들 때도 아니고 받을 때도 아니라’고 하는 것은 만들 때가 아닐 때 받고 받을 때가 아닐 때 받는 것이다.
마땅히 따라 기뻐하며 말한다.
“장로여, 기억하소서. 여기 사는 중이 가치나의를 받았기에 저 아무 비구가 기뻐하며 받습니다. 겨울 4개월 동안 입다가 머무는 곳에서 기한이 차면 내가 마땅히 버리겠습니다.”
이를 가치나의 법이라고 한다.
(96) 가치나의가 아님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때 손타라난타(孫陀羅難陀) 존자가 두구라(頭鳩羅)를 가지고 가치나의를 지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두구라로 가치나의를 지은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때 아난 존자도 용겁패로 가치나의룰 지었고, 또한 어떤 비구는 작은 단물(段物)로 가치나의를 지었으며, 또한 어떤 비구는 헌 물건을 가져다가 지었고, 또한 어떤 비구는 암양의 털로 흠바라(欽婆羅)를 지었으며, 또한 어떤 비구는 머리털을 가지고 흠바라를 지었고, 또한 어떤 비구는 풀을 가지고 옷을 지었으며, 또한 어떤 비구는 가죽을 가지고 옷을 지었고, 또한 어떤 비구는 나무껍질로 옷을 지었고, 또한 어떤 비구는 널판을 가지고 옷을 지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것으로 옷을 지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모두 옷이 아니어서 가치나의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가치나의라고 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때 아닌 때에 지은 것이거나 절루정(截縷淨)을 하지 않았거나 염정(染淨)을 하지 않았거나 점정(點淨)을 하지 않았거나 도정(刀淨)을 하지 않은 것 등은 가치나의라고 말할 수 없다.
(97) 가치나의를 버리는 법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무셨는데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때 어떤 비구가 자주 옷을 갈아입어서 식전에 다른 옷을 입고 식후에 다른 옷을 입었다. 부처님께서 아시면서도 일부러 물으셨다.
“그대의 옷이 자주자주 달라지니 이것이 누구의 옷이냐?”
“세존이시여, 이것은 저의 옷입니다.”
“어찌해서 그렇게 많으냐?”
“제가 가치나의로 받은 것입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모든 때에 가치나의를 받느냐? 오늘부터는 마땅히 버려야 하느니라.”
‘버린다’고 하는 것은 열 가지 경우가 있으니, 어떤 것들을 열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옷 짓기를 마치고 버리는 것이요, 둘째는 받을 때에 버리는 것이요, 셋째는 시간이 다 되면 버리는 것이요, 넷째는 듣고서 버리는 것이요, 다섯째는 보내서 버리는 것이요, 여섯째는 떨어져서 버리는 것이요, 일곱째는 잃어서 버리는 것이요, 여덟째는 나갈 때 버리는 것이요, 아홉째는 시기가 지나서 버리는 것이요, 열째는 구경에 버리는 것이다.
‘옷 짓기를 마치고 버린다’고 하는 것은 가치나의를 받을 때에 생각하기를 ‘내가 옷 짓기를 마치면 마땅히 가치나의를 버리겠다’고 생각하여 옷 짓기가 이미 이루어졌으면 곧 버리는 것이니, 이를 옷 짓기를 마치면 버린다고 한다.
‘받을 때에 버린다’고 하는 것은 생각하기를
‘이 옷을 받는 즉시 마땅히 가치나의를 버려서 옷을 받는 즉시 버린다’고 하니, 이를 받을 때에 버린다고 한다.
‘시간이 다 되면 버린다’고 하는 것은 생각하기를 ‘일마쯤의 시간이 되면, 내가 마땅히 가치나의를 버리겠다’고 하여 그 기간이 차면 곧 버리는 것이니, 이를 기간이 차면 버린다고 한다.
‘듣고서 버린다’고 하는 것은 생각하기를 ‘내가 화상과 아사리가 가치나의를 버린다고 하는 것을 들을 때 나도 마땅히 버리겠다’라고 하고서, 뒤에 화상과 아사리가 “오늘 승단에서 가치나의를 버린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이때에 버리는 것이니, 이를 듣고 버린다고 한다.
‘보내서 버린다’고 하는 것은 생각하기를 ‘내가 이 옷을 남에게 주고서 마땅히 가치나의를 버리겠다’라고 하여 뒤에 옷을 보내고서 버리는 것이니, 이를 보내고서 버린다고 한다.
‘떨어져서 버린다’고 하는 것은 가치나의를 받고서는 중간에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이제 가치나의를 버리겠다”고 하였으면 말을 하였을 때 즉시 버리는 것이니, 이를 떨어져서 버린다고 한다.
‘잃어서 버린다’고 하는 것은 생각하기를 ‘이 옷이 중간에 이치에 벗어나서 잃어버려 나타나지 않으면, 내가 마땅히 버리겠다’고 하였는데 뒤에 옷이 이치에 벗어나서 잃은 것을 버린다고 하니, 이를 잃어서 버린다고 한다.
‘나갈 때 버린다’고 하는 것은 생각하기를 ‘내가 여기 살다가 나갈 때에 마땅히 가치나의를 버리겠다’고 하였으면 나갈 때에 곧 버리는 것이니, 이를 나갈 때에 버린다고 한다.
‘시기가 지나서 버린다’고 하는 것은 섣달 15일에 버리지 않고서 16일에 이르면 이를 버리는 것이니, 월비니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를 시기가 지나서 버린다고 한다.
‘구경의 버림’이라고 하는 것은 섣달 15일이면 마땅히 버려야 한다. 한 사람이 승단에서 외치기를 “대덕스님들은 들으소서. 오늘 승단에서 가치나의를 버립니다”라고 이와 같이 세 번 말하는 것을 구경에 버린다고 한다.
이 열 가지의 일을 가치나의를 버리는 법이라고 한다.
‘옷의 법’이라고 하는 것은 안거를 마치지 못한 것과 안거를 마친 것과 이 가운데 안거하는 것과 목숨 잃을 것이 두려운 것과 범행을 잃을 것이 두려운 것과 때 아닌 때의 옷과 때의 옷과 구섬미이다.
(98) 안거를 마치지 못함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때 육군 비구들이 마을에서 안거를 마치지 않고 단월의 처소에 가서 말하였다.
“장수여, 나에게 안거의 옷을 보시하시오.”
그 단월이 대답하였다.
“존자여, 지금이 때가 아닙니다. 안거 마치기를 기다려 주시오. 수확이 끝나면 백성들이 기쁘게 은혜를 생각하고 보시할 마음이 날 것이니, 그때에는 보시할 자가 있을 것입니다.”
육군비구들이 말하였다.
“장수여, 그대는 이 세상이 무상(無常)한 것을 알지 못합니까? 혹은 임금의 난(難)이 있고, 혹은 물이나 불이나 도적의 난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되면 나는 받는 이익을 잃게 되고 그대들은 복 지을 기회를 잃을 것이오.”
그러자 그 단월이 말하였다.
“존자여, 다만 저의 무상을 말씀하시고 자기가 무상한 것은 보지 않습니까? 존자여, 속히 안거의 물건을 얻어 가지고 다른 곳에 가서 도를 깨뜨리려고 그러합니까? 기이하고 괴이합니다. 욕심이 많아서 싫어할 줄 모르는군요.”
그리고 기쁘지 않은 마음을 내고서 갔다.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육군비구들에게 물으셨다.
“그대들이 실제로 그리하였느냐?”
육군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그대들이 어찌하여 안거를 마치지 않고서 안거의 옷을 베풀기를 요구하였느냐? 이제부터는 안거를 마치지 않고서 안거의 옷을 보시하기를 요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한 자는 월비니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를 안거를 마치지 않았다고 한다.
(99) 안거를 마침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때 여러 비구들이 기원정사에서 안거를 마치고 안거의 옷을 나누었다. 그때 육군비구들은 다른 곳에서 안거를 마치고 와서 좌중(座中)에 있다가 말하였다.
“장로여, 세존께서 제정하시기를 ‘안거를 마치면 마땅히 안거의 옷을 얻는다’고 하셨소. 우리들도 안거를 마쳤으니 마땅히 안거의 옷을 얻어야 하겠소. 우리에게도 안거의 옷을 나누어 주시오.”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곳에서 안거하였으면 이곳의 옷을 나눠줄 수 없느니라.”
안거한 곳을 따라 나누어 주는 것을 받는 것, 이를 안거를 마친다고 한다.
(100) 이 가운데 안거함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때 육군비구들이 안거할 때가 이르니, 방사를 배정받고는 가죽신을 신고 물들이는 도구와 나머지 소소한 물건들은 그 방에 두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 장로여, 우리들이 여기서 안거를 하려 하니 다시는 싫어하고 근심되는 짓을 하지 마시오. 우리는 그대들이 항상 우리를 기뻐하지 아니함을 압니다.”
그리고 곧 사람을 시켜 안거의 옷을 나누어 주고 문득 다른 곳에서 안거하였다.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여기서 안거하였으면 여기서 옷을 나누어 주는 것을 받아야 하느니라.”
(101) 목숨을 잃게 됨을 두려워함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때 비사리(毘舍離)에 큰 기근(饑饉)이 들어 걸식하기 어려워져 여러 비구들이 사위성에 가니, 마침 기원정사의 비구들이 안거를 마치고 옷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비사리의 비구들이 좌중(座中)에 있어, 기원정사의 비구들이 물었다.
“장로들이여, 세존께서 제정하시기를 ‘반드시 여기서 안거하여야 여기서 나누어 주는 옷을 얻는다’고 하였소. 그대들은 어느 곳에서 안거하실 겁니까?”
비사리의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장로들이여, 우리들은 목숨을 앓게 될 것이 두려워서 왔소. 만일 여기에 오지 않았으면 굶어 죽었을 것이오.”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목숨을 잃을 것이 두려워서 왔으면 마땅히 옷을 나누어 주어야 하느니라.”
이를 목숨을 잃을 것이 두렵다고 한다.
(102) 범행(梵行)을 잃을까 두려움
그때 왕사성에 어떤 외도의 아들이 출가했는데, 그의 부모가 아들이 출가하여 도를 닦는 것을 깨트리려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였다.
“사문들은 안거를 중하게 여기기에 안거 동안에는 반드시 동쪽 서쪽이 없을 것이니 그때 출가 수도를 못하게 해야 하겠다.”
그의 누님은 부처님의 법을 깊이 믿었기에 아우에게 말하였다.
“부모님께서 너의 수도를 막으려 하니, 너는 속히 피해 달아나거라.”
그래서 아우가 곧 사위성으로 가니, 마침 기원정사의 비구들이 안거를 마치고 옷을 나누어 줄 때였는데,
그 비구가 좌중에 있었다. 기원정사의 비구들이 물었다.
“장로여, 세존께서 제정하시기를 ‘반드시 여기서 안거해야 여기서 옷을 나누어 주지만, 목숨을 잃을 것이 두려워서 온 자에게는 나누어 주어도 된다’고 하셨소. 그대는 어떠합니까?”
그 비구가 대답하였다.
“부모가 나의 도를 깨트리려고 하여, 만일 여기 오지 않았으면 범행을 잃었을 것이오.”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행을 잃을 것이 두려워서 오는 자는 마땅히 옷을 나누어 주어야 하느니라.”
이를 범행을 잃을 것이 두렵다고 한다.
(103) 때 아닌 때[非時]의 옷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때 어떤 비구가 세상을 유행하고서 수레에 가득히 옷을 싣고 왔다. 부처님께서 아시면서도 일부러 물으셨다.
“이것은 누구의 옷이냐?”
“세존이시여, 이것은 저의 옷입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이것은 때의 옷이냐, 때 아닌 때의 옷이냐?”
“세존이시여, 이는 때 아닌 때의 옷입니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정(淨)을 행했느냐?”
“아직 못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모든 옷은 마땅히 여러 스님들께 주어야 하느니라.”
이를 때 아닌 때의 옷이라고 한다.
(104) 때의 옷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때 어떤 비구가 세상을 유행하고서 수레에 옷을 가득 싣고 왔다. 부처님께서 아시면서도 일부러 물으셨다.
“이것이 누구의 옷이냐?”
“세존이시여, 이것은 저의 옷입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이것은 때의 옷이냐, 때가 아닌 옷이냐?”
“때의 옷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옷이 너무 많으니 절반을 승단에 주어라.”
이를 때의 옷이라고 한다.
(105) 구섬미(俱睒彌)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구살라국(俱薩羅國)에서 구섬미 마을을 초략(抄略)하여 사위성에 이르렀다. 어떤 비구들이 먼저 이 마을을 의지하여 안거하고자 곧 따라왔다. 그때 기원정사의 여러 비구들도 이 마을에 이르러서 안거의 보시 옷을 요구하니, 구섬미의 비구들이 말하였다.
“장로여, 우리가 먼저 이 마을을 의지하여 안거하였으니, 우리가 마땅히 먼저 요구해야 하오.”
그리하여 두 무리의 사람들이 다투다가 함께 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서 이 인연을 세존께 갖추어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서 안거한 이가 마땅히 먼저 옷의 보시를 요구하고, 뒤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요구해야 한다. 만일 두 무리의 사람이 함께 요구하였으면 마땅히 함께 나누어야 한다. 만일 이곳에서 안거한 비구가 안거의 옷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다른데서 안거한 사람이 요구하는 것은 월비니의 죄를 범하는 것이니라.”
또한 그때 겁빈나(劫賓那) 존자에게 두 사람의 동행 제자가 있었는데 혐오감을 느껴 계를 버렸다. 그러나 범행은 허물지 않고 다시 구족계를 받았다. 그때 기원정사의 비구들이 안거를 마치고 옷을 나누어 가질 때, 그에게는 나누어주지 않으니, 그가 말하였다.
“장로여, 내가 혐오감을 느껴 계를 버렸다가, 그래도 범행을 허물지 않아 다시 구족계를 받았으니, 마땅히 나의 몫을 주시오.”
그리고 함께 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혐오하는 것이 있어 계를 버렸다가 범행을 허물지 않아 다시 구족계를 받은 자는 마땅히 동등하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의 마땅히 나누어 주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 있다. 어떤 것들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거갈마를 받은 자요, 둘째는 도(道)를 깨뜨린 자요, 셋째는 무상(無常)한 자요, 넷째는 안거를 깨뜨린 자요, 다섯째는 가면서 부탁하지 않는 자이다.
‘거갈마’라고 하는 것은 3견(見) 가운데의 하나하나의 견으로서 선경(線經)을 비방하고 악하고 삿된 견해와 변견(邊見)이 있어 충고하여도 버리지 않고 거갈마를 지은 자이니, 이를 거(擧)라고 한다.
‘도를 깨뜨렸다’고 하는 것은 계를 버렸기에 마땅히 주어서는 안 될 자이다. 그러나 그가 왕의 힘을 의지하든지 대신의 힘을 의지하든지 도적 무리의 힘을 의지해서 이렇게 말한다.
“사문이여, 만일 내게 나누어 주지 않으면 내가 마땅히 이롭지 못한 일을 하겠소.”
이와 같은 사람은 마땅히 얻어서는 아니 될 자이지만 마땅히 나누어 주어야 하니, 이를 도를 파괴한다고 한다.
‘무상하다’고 하는 것은 죽은 자는 마땅히 나누어 주지 못한다. 그러나 안거를 마치고 옷을 모아서 나누어 주지 아니하였는데 목숨이 마칠 때가 되어 “누구에게 주라”고 부탁하였다면 그가 죽었어도 마땅히 부탁한 자에게 주어야 하니, 이를 무상이라고 한다.
‘안거를 깨뜨렸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전안거도 하지 않고 후안거도 하지 않았으면 옷을 나누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왕의 힘과 대신의 힘과 도적들의 힘을 의지하여 “만일 나에게 나누어 주지 않으면 마땅히 이롭지 못한 일을 하겠다”고 하면 이러한 사람은 마땅히 주어서는 아니 되지만 주어야 한다.
‘가면서 부탁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옷을 나누어 주라고 부탁하지 않고
간 자는 마땅히 나누어 주어서는 안 된다. 물건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물었다.
“누가 아무의 몫을 취해 갑니까?”
그리하여 만일 취해 가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그에게 물었다.
“그가 갈 때에 취하라고 부탁했습니까?”
취해 가는 자가 대답하였다.
“부탁하지 않았소.”
물건을 나누는 자가 마땅히 말해야 한다.
“그대는 이 일에 간섭하지 마시오.”
이렇게 말하자, 물건을 취해 가는 자가 말하였다.
“부탁을 받았소.”
물건을 나누는 자가 마땅히 그 사람을 관찰해서 만일 믿을 만한 사람이면 마땅히 주고, 만일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면 물건을 나누는 자는 말해야 한다.
“그대는 이 일에 간섭하지 마시오.”
만일 두 사람이 먼저 동의(同意)하여서 취하게 한 것이면 마땅히 주어야 하니, 이를 다섯 가지의 일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때 어떤 비구가 안거를 마치고 그가 본래 출생한 마을로 가니, 여러 친척들이 이 비구가 왔기 때문에 공양을 널리 베풀고 옷들을 보시하였다. 그런데 이 마을에 먼저 살면서 안거하는 중이 안거에 앉은 뒤에 베푸는 것이기 때문에 이 비구의 몫을 주지 아니하였다.
여러 친척들이 고향에 온 비구에게 물었다.
“옷을 나누어 주는 것을 받았습니까?”
고향에 온 비구가 대답하였다.
“얻지 못하였소.”
여러 친척들이 말하였다.
“내가 그대를 위하여 이 공양을 베풀었는데 어찌해서 얻지 못하였소?”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단월이 이 비구를 위하여 공양을 베풀었으면 마땅히 나누어 주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성(聲)의 베풂이 있으니, 첫째는 이 옷을 안거하는 스님에게 베풂이요, 둘째는 이 옷의 값을 안거하는 스님에게 베푸는 것이요, 셋째는 이 물건을 안거하는 스님에게 베푸는 것이요, 넷째는 이 물건의 값을 안거하는 스님에게 베푸는 것이요, 다섯째는 이 처소를 안거하는 스님에게 베푸는 것이니, 이를 다섯 가지의 베풂이라고 한다. 만일 베풀어 주는 집에서 통틀어서 다른 비구에게 주고자 하면 단월의 뜻을 따라 마땅히 주어야 하느니라.”
다시 네 가지의 물건이 말하는 바에 따라 마땅히 현재 계신 스님에게 소속되는 것이다. 어떤 것들을 네 가지라 하는가?
“내가 옷과 옷의 값과 물건과 물건의 값을 보시한다.”
이를 네 가지의 물건이라 하며, 현재 계신 스님에게 소속된다고 한다.
다시 열 가지의 물건이 있어 현재 계신 스님에게 소속된다. 어떤 것들을 열 가지라고 하는가? 시약(時藥)과 야분약(夜分藥)과 7일약(日藥)과
진수약(盡壽藥)과 죽은 비구의 물건과 베푸는 주처(住處)와 큰 모임과 때 아닌 때의 옷과 잡물(雜物)과 청식(請食)이다.
‘시약’이라고 하는 것은 전식과 후식과 치바나식(哆波那食)이니, 현재 계신 스님이 마땅히 얻으니, 이를 시약이라고 한다.
‘야분약’이라고 하는 것은 열네 가지 장(漿)이니, 마땅히 자세히 말하겠다. 이를 야분약이라고 한다.
‘7일약’이라고 하는 것은 소(酥)와 기름과 꿀과 석밀과 생소(生酥)와 고(膏)이니 마땅히 자세히 말하겠다. 이를 7일약이라고 한다.
‘진수약’이라고 하는 것은 가리륵(呵梨勒)과 비혜륵(鞞醯勒)과 아마륵(阿摩勒)이니, 제2계 가운데 자세히 말한 것과 같다. 이를 진수약이라고 한다.
‘죽은 비구의 물건’이라고 하는 것은 비구가 죽었을 때 가지고 있던 옷과 발우와 잡물들이니, 현재 계신 스님들이 마땅히 얻어 가진다. 이를 죽은 비구의 물건이라고 한다.
‘베푸는 주처’라고 하는 것은 단월이 승방과 정사를 지어서 큰 모임을 베풀고서 이주처와 다른 잡물로써 베푸는 것이니, 현재 계신 스님이 마땅히 얻는다. 이를 주처의 베풂이라고 한다.
‘큰 모임’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기념의 큰 모임과 보리(菩提)의 큰 모임과 법륜을 굴리신 큰 모임과 아난의 큰 모임과 라후라의 큰 모임과 5년의 큰모임이다. 여기서 베풀었던 물건들은 현재 계신 스님들이 마땅히 얻는다.
‘때 아닌 때의 옷’이라고 하는 것은 가치나의 옷이 없는 11월과 가치나의 옷이 있는 7월에 거기서 베푼 물건들은 현재 계신 스님들이 마땅히 얻으니, 이를 때 아닌 때의 옷이라고 한다.
‘잡물’이라고 하는 것은 발우와 발우를 받치는 대와 시루와 허리띠와 칼과 바늘통과 가죽신과 기름을 담는 가죽 주머니와 물병과 무늬있는 병들이니, 이와 같은 잡물들의 보시는 현재 계신 스님들이 마땅히 얻는다. 이를 잡물이라고 한다.
‘청식’이라고 하는 것은 단월이 현재 계신 스님들께 공양하기를 청하여 차례대로 가는 것이니, 이를 청식이라고 한다. 이를 열 가지의 일이라 하여 현재 계신 스님들이 마땅히 얻는다.
또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이다. 그때 여러 비구들이 실오라기를 끊지 않고 옷을 지었으니 자세한 말은 앞의 바야제와 세 가지 괴색(壞色) 가운데에서 설한 것과 같다.
또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때 어떤 비구가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서 머리 숙여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옷 한 벌만 입게 허락하여 주소서. 욕심을 적게 하고 번뇌를 적게 하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이르셨다.
“그대가 3의(衣)와 병과 발우를 가지는 것이 곧 욕심을 적게 하고 번뇌를 적게 하는 것이니라.”
또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3의(衣) 입기를 허락하여 주소서.”
또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암염소의 털로 흠바라를 지어 입게 허락하여 주소서.”
또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저에게 머리털로 된 흠바라를 입게 허락하여 주소서.”
또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저에게 말꼬리로 된 홈바라를 입게 허락하소서.”
또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저에게 풀로 만든 옷을 입게 허락하여 주소서.”
또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저에게 나무껍질로 된 옷을 입게 허락하여 주소서.”
또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저에게 가죽으로 된 옷을 입게 허락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여러 옷들은 다 입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또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저에게 벌거벗는 것을 허락하여 주소서. 욕심을 적게 하고 번뇌를 적게 하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야, 이는 외도의 법이다. 비구는 마땅히 3의와 병과 발우를 가지는 것이 욕심을 적게 하고 번뇌를 적게 하는 것이니라.”
또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때 여러 비구들이 화려한 옷을 입다가 세상 사람들의 혐오를 받았다.”
어찌하여 사문 석자들은 화려한 옷을 입기를 세속 사람들과 같이 하는가?”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갖추어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화려한 옷을 입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상색의 옷’이라고 하는 것은 구거(丘佉)로 물들이고 가미차(迦彌遮)로 물들이고 구비라(俱鞞羅)로 물들이고 늑차(勒叉)로 물들이고 노타라(盧陀羅)로 물들이고 진비울금(眞緋鬱金)으로 물들이고 홍람(紅藍)으로 물들이고 청(靑)으로 물들인 색과 검은 색과 꽃 색 등이 일체의 상색이니, 이는 허락하지 않는다. 마땅히 뿌리로 물들이고, 잎으로 물들이고 꽃으로 물들이고 나무껍질로 물들이고 아래로 내려와서 거마즙(巨磨汁)으로 물들여야 한다.
또 부처님께서 왕사성 천제석(天帝釋)의 석굴(石窟) 앞에 머물러 경행하시다가
마갈제(摩竭提)의 벼 논이 논 두덩과 논가가 분명하여서 서로 잘 알맞게 되어 있음을 보셨다. 이를 보시고서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과거의 여러 부처ㆍ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는 옷의 법도가 바로 이와 같으셨다. 그러므로 오늘부터는 옷을 지을 적에 마땅히 이 법대로 하여야 하느니라.”
또 그때 대가섭 존자가 승가리를 지을 적에 세존께서 손수 잡으시고 아난 존자가 끊었으며, 또 어떤 비구는 철(綴)하고, 어떤 비구는 단(短)을 바느질하고, 어떤 비구는 장(長)을 바느질하며, 어떤 비구는 옷 선을 바느질하고, 어떤 비구는 가는 끈을 두었으며, 또 어떤 비구는 옷을 지으면서 나뭇잎을 그려 넣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려서 나뭇잎을 넣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어떤 비구가 겹으로 나뭇잎을 그려 넣으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겹으로 나뭇잎을 그려 넣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땅히 베고 끊어야 한다.”
어떤 비구가 옷 머리를 꿰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옷 머리를 꿰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땅히 잎을 지어야 하니, 너비가 가지런히 4지(指)이고 좁기가 보리정도이니라.”
또 어떤 비구가 한결같이 잎을 만들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허락하지 않는다. 마땅히 양쪽을 향해야 한다.”
어떤 비구는 옷을 지을 적에 가로된 잎을 서로 같게 만들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허락하지 않는다. 5조(條)는 마땅히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으며, 7조에서 13조까지는 둘은 길고 하나는 짧아야 하며, 15조는 셋은 길고 하나는 짧아야 한다.”
다시 어떤 비구는 옷을 지어 꿰맬 때에 잎이 옷과 서로 붙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허락하지 않는다. 뒤의 옷은 마땅히 벗어야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말의 이빨처럼 지어야 한다.”
어떤 비구의 옷이 위아래로 찢어졌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옷 가장자리를 만들어라.”
어떤 비구가 네 가지의 색이 있는 옷을 지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허락하지 않는다. 마땅히 한 가지 색이어야 한다.”
어떤 비구가 화려한 색의 옷을 빨아서 괴색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아시면서도 일부러 물으셨다.
“비구야, 어떤 색을 만들려 하느냐?”
그 비구가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제정하시어 화려한 색의 옷을 입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셨기에 빨아서 괴색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태여 빨지 않아도 된다. 다른 물을 들임으로써 괴색하는 것을 허락한다.”
‘옷’에는 일곱 가지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흠바라(欽婆羅)의 옷이요, 둘째는 겁패(劫貝)의 옷이요,
셋째는 추마(芻摩)의 옷이요, 넷째는 구사야(俱舍耶)의 옷이요, 다섯째는 사나(舍那)의 옷이요, 여섯째는 삼옷이요, 일곱째는 구모제(軀牟提)의 옷이니, 이를 옷의 법이라고 한다.
포살과 갈마
여욕과 설청정(說淸淨)
안거와 자자
가치나의를 받음
가치나의가 아님
가치나의를 버리는 것과
안거를 마치고 옷을 베푸는 것 등
제4장 [발거(跋渠)]을 마친다.
(106) 병든 비구의 법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자물쇠를 가져 오너라. 여래가 승방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난이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리고 즉시 자물쇠를 가지고 세존의 뒤를 따랐다. 그때 세존이 허물어진 어떤 방에 이르러서 한 병든 비구가 똥과 더러운 것의 한 가운데 드러누워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셨다.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물으셨다.
“기력이 어떠한가? 아픈 곳은 더하지 아니한가?”
“세존이시여, 제가 아픈 곳이 더하기만 하고 덜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비구야, 오늘 먹을 것을 얻었느냐?”
“얻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어제는 먹을 것을 얻었느냐?”
“얻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그저께는 먹을 것을 얻었느냐?”
“얻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먹을 것을 얻지 못한 지 벌써 7일이 지났습니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비구야, 그대가 먹을 것을 얻고서도 먹지 않았는가? 먹을 것을 얻지 못하여 먹지 못했느냐?”
“먹을 것을 얻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비구야, 이곳에 그대의 화상이 있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화상과 같은 이가 있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사리는 있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사리와 같은 이는 있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옆방에 다른 비구는 없느냐?”
“세존이시여, 제가 냄새 나고 더럽다고 여겨 좋아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갔습니다. 저는 외롭고 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고독(孤獨)합니다. 여래시여.”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근심하고 번뇌하지 말라. 내가 마땅히 그대의 도반이 되어 주리라.”
그리고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옷을 가져 오너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세탁하여 주겠다.”
그때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만두십시오. 세존이시여,
이 병든 비구의 옷은 제가 마땅히 빨아 주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옷을 세탁하여라. 내가 마땅히 물을 대겠다.”
그리하여 아난이 그 병든 비구의 옷을 빨고 세존께서 물을 대어다 빨고서 햇볕에 말렸다.
그때 아난이 병든 비구를 안아서 노지(露地)에 두고 똥과 더러운 것을 제거하며, 병든 비구의 걸상과 요와 모든 깨끗하지 못한 그릇을 밖으로 내놓고, 병든 비구의 방 안에 물을 뿌려서 소제하고서 쇠똥을 땅에 바르며, 걸상과 요를 빨아 말리고 다시 노끈으로 승상(繩床)을 짜서 본 자리에 펴놓고서 병든 비구를 목욕시켜 서서히 걸상 위에 눕혔다.
그때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공덕으로 장엄하게 되어 금색(金色)의 유연(柔軟)한 손을 뻗쳐 병든 비구의 이마 위를 만지면서 물었다.
“앓는 곳이 더한가, 덜한가?”
병든 비구가 말하였다.
“세존의 손이 제 이마 위에 이르니, 온갖 괴로움이 다 없어졌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병든 비구를 위하여 적절한 법을 말씀하여 병든 비구가 환희하는 마음을 내게 하고 거듭 설법하시어 그가 법안정(法眼淨)을 얻게 하시니, 비구의 병이 나았다.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의 처소에 이르러서 니사단을 펴고 앉으시어 위의 일을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자세히 설하시고 물으셨다.
“그 옆방의 비구는 누구였느냐?”
그 비구가 대답하였다.
“저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이르셨다.
“그대들은 같이 범행하는 사람으로서 병으로 고통 받는 이를 서로 보살피지 않으면 누가 보살피겠느냐? 그대들은 각각 다른 성(姓)이고 다른 집이어서 신자의 집이든지 믿지 않는 이의 집이든지 세속의 집을 버리고 출가하였으니, 다 동일한 성의 사문 석자이고 한가지로 범행을 닦는 사람인데도 서로 보살피지 않으면 누가 마땅히 보살피겠느냐? 비구야, 비유하면 항하나 요부나나 살라마혜가 큰 바다에 흘러 들어가면 다 본 이름을 잃고 모두 한맛이 되는 것을 큰 바다라고 한다. 그대들도 이와 같아서 각기 본 성을 버리고 다 한가지의 성을 가진 사문 석자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서로 보살피지 않으면 누가 마땅히 보살피겠느냐? 비유하면 찰제리와 바라문과 비사와 수다라는 각각 성이 다르지만
함께 큰 바다에 들어가면 다 바다의 상인이라고 이르는 것과 같이, 비구들아, 그대들이 각각 다른 성이고 다른 집이지만 신자의 집이든지 믿지 않는 집이든지 세속의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다 동일의 성을 가진 사문 석자이니, 서로 보살피지 않으면 누가 마땅히 보살피겠느냐?
만일 비구가 병이 나면 그의 화상이 마땅히 간호해야 하고, 만일 화상이 없으면 화상과 같은 이가 마땅히 간호해야 한다. 만일 간호하지 않는 자는 월비니의 죄를 범한다.
만일 아사리가 있으면 아사리가 마땅히 간호해야 하고, 만일 아사리가 없으면 아사리와 같은 이가 마땅히 간호해야 한다. 만일 간호하지 않는 자는 월비니의 죄를 범한다.
만일 같은 방을 쓰는 이가 있으면 같은 방을 쓰는 이가 마땅히 간호해야 하고, 만일 같은 방을 쓰는 이가 없으면 옆방을 쓰는 이가 마땅히 간호해야 한다. 만일 간호하지 않는 자는 월비니의 죄를 범한다. 만일 옆방을 쓰는 이가 없을 때에는 승단에서 마땅히 사람을 보내 간호해야 하며, 병자의 필요에 따라서 몇 사람이든지 마땅히 보내야 한다. 만일 간호하지 않으면 모든 중이 다 월비니의 죄를 범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돌아가서 본 방이나 옆방에 있는 병든 비구들을 간호하러 가거라.”
그리고 그들이 부처님을 떠난지 오래지 않아 부처님께서 화현으로 한 병든 사미의 모습으로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모두 이 병든 사미를 간호하여라. 이것이 곧 그대들에게 복도 되고 벌도 되느니라.”
또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때 남쪽 지방에서 두 비구가 함께 와서 세존께 인사하기로 했는데 도중에 한 비구가 병이 났다. 한 비구가 병이 완쾌되기를 기다려서 두서너 날을 지나고서 병든 비구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나란히 가서 세존께 인사하려 하였는데 그대가 병이 났으니, 차도 있는 대로 뒤에 오시오.”
그러자 병든 비구가 말하였다.
“장로여, 나의 병이 완쾌되기를 기다려서 함께 갑시다.”
그 비구가 대답하였다.
“장로여, 내가 세존을 뵈옵지 못한 지 오래되어 사모하기를 마치 목마른 이가 물을 찾듯이 하니, 병이 완쾌되기를 기다리지 못하겠소. 그대가 병이 치료되거든 뒤에 오시오.”
그 비구가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머리 숙여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시면서 일부러 물으셨다.
“그대가 어느 곳에서 왔느냐?”
그 비구가 앞의 인연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야, 이는 악한 일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마음이 방일(放逸)하고 해태(懈怠)하여 정진하지 않고 여러 근(根)을 다스리지 않아 여섯 가지 욕심에 치달리게 되면 비록 나의 처소에 가까이 있어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도 그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비구가 능히 여러 근을 다스려 마음이 방일하지 않고 오로지 생각이 도에 있으면 비록 나와의 거리가 멀어도 곧 나를 보게 되고 나도 또한 그를 보느니라. 그러한 까닭은 무엇인가 하면 여래의 법신을 수순하기 때문이요, 온갖 악을 파괴하기 때문이요, 탐욕을 벗어나기 때문이요, 적정(寂靜)을 닦기 때문이니라. 그대들 비구는 동일하게 출가하여 범행을 닦으니, 그대들이 서로 간호하지 않으면 누가 마땅히 간호하겠느냐? 그대는 병든 비구를 간호하러 돌아가거라.”
또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때 발라진국(鉢羅眞國)에 두 비구가 함께 도반이 되어 세존께 인사하러 오다가 벌[蜂] 마을에 이르러 한 비구가 병이 나니, 같이 가던 비구가 병이 치유되기를 기다리며 이삼일이 지나고서 병든 비구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나란히 가서 세존께 인사하려 하였으나 그대가 병이 났으니, 그대는 차도가 있는 대로 천천히 오시오.”
병든 비구가 말하였다.
“장로여, 나의 병이 치유되기를 기다려서 함께 갑시다.”
같이 온 비구가 대답하였다.
“장로여, 내가 세존을 뵙지 못한 지 오래되어 사모하기를 목마른 이가 물을 찾듯이 하니 더 기다리지 못하겠소.”
병든 비구가 말하였다.
“그대가 반드시 먼저 가려 하면 나를 위해서 질제리(質帝利) 거사에게 부탁하여 주시오.”
같이 오던 비구가 즉시 질제리 거사의 처소에 가서 말하였다.
“장수여, 우리 두 사람이 먼 곳으로부터 와서 부처님을 가서 뵈려 하였는데 이제 한 사람이 병을 얻었기에 임시로 여기서 머물려고 합니다. 장수여, 나를 위하여 병자를 보살펴 주시오. 나는 가서 세존께 문안을 드릴 것이요.”
질제리 거사가 말하였다.
“존자여, 여기에 같이 머물면서 병자를 간호하여 병이 치유되는 대로 함께 가시오.”
길을 같이 떠나온 비구가 대답하였다.
“거사여, 그렇지 아니하오. 내가 부처님을 뵈옵지 못한 지 오래되어 사모하기를 목마른 이가 물을 찾듯이 하오.”
질제리 거사가 말하였다.
“존자여, 가시오. 그러나 세존께서 돌려보낼 것이니 스스로 피곤한 일이 될 것이요.”
그러나 그 비구가 짐짓 가서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머리 숙여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시면서도 일부러 물으셨다.
“그대는 어디에서 왔느냐?”
그 비구가 앞의 인연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야, 이는 나쁜 짓이다. 그대들이 각각 다른 성으로 신자의 집이든지 비신자의 집이든지 세속의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동일한 석종인데 병으로 고통받을 때에 서로 보살피지 않으면 뉘라서 마땅히 보살피겠는가? 그대는 돌아가서 병든 비구를 간호하여라.”
또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때 어떤 비구가 북쪽 지방으로부터 와서 세존께 인사하려 하였는데, 들으니 길가에 병든 비구가 있다고 하므로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세존께서 계율을 제정하시어서 병든 자를 마땅히 간호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만약 내가 병든 이를 보게 되면 갈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즉시 길을 돌아가서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머리 숙여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시면서도 일부러 물으셨다.
“그대는 어디에서 왔느냐?”
“세존이시여, 저는 북쪽 지방에서 왔습니다.”
“어느 길을 따라왔느냐?”
“아무 길로 왔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떠한 이유로 정도(正道)를 버리고 돌아서 오는 길로 왔느냐?”
그 비구가 앞의 인연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야, 이는 나쁜 짓이다. 그러니 그대도 돌아가서 병든 비구를 간호하여라.”
‘병든 비구를 간호하는 법’이라고 하는 것은 비구가 장사꾼과 함께 가다가 광야(曠野)에 이르러 병을 얻으니, 동반(同伴)한 비구가 그를 서로 버릴 수가 없어서 마땅히 그를 데리고 가며 옷과 발우를 대신 짊어져야 하고 마땅히 친근하게 부축하여서 마땅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가 병이 심하여 능히 걸을 수 없으면 마땅히 장사꾼으로부터 탈것을 사든지 빌려야 하기에 이렇게 말한다.
“장수여, 이 출가한 사람이 병으로 함께 가기 어려우니, 나를 위하여 싣고 갈 것을 마련해 주어서 어려움을 벗어나게 해주오.”
만약 그렇게 하여 주면 좋다. 그런데 그 장사꾼이 말하기를 “존자여, 나의 짐도 무겁소”라고 하면 그는 마땅히 말해야 한다.
“장수여, 내가 마땅히 곡식과 풀 값을 주겠소.”
그리고 그럴 때 암소가 끄는 수레나 암말에 실어서는 안 되고,
마땅히 황소가 끄는 수레와 수말에 실어야 한다. 만일 병이 위독하여 아무 분별이 없는 자는 수레에 실어도 죄가 없고, 만일 수레를 얻을 수 없을 때에는 마땅히 간병(看病)할 사람을 1인(人)이나 2인이나 3인을 머물러 있게 하면서 말한다.
“그대들이 병자를 잘 간호하면 내가 마을에 이르는 대로 마땅히 탈것을 구해 데리러 올 것이오.”
그리고 마땅히 양식을 남겨두어 있는 이로 하여금 궁핍(窮乏)하지 않게 하여야한다. 그러나 머무르는 자들이 각각 말한다.
“누가 이 광야에서 몸과 목숨을 버리겠는가?”
그리하여 머물러 있으려 하지 않으면 그렇다고 병자를 버리고 가서는 안 되고, 마땅히 암자를 지어서 풀자리를 깔아 주고 불을 피워 주고 땔나무와 물을 준비하여 주고, 시약과 야분약과 7일약과 진수약들을 마련해 주고 병자에게 말한다.
“장로여, 안심하고 여기 있으시오. 내가 가까운 마을에 이르면 마땅히 탈것을 구해 데리러 오겠소.”
마을에 이르러서는 탑을 돌거나 화상과 아사리에게 인사하지 말고 마땅히 그 마을에 사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한다.
“지금 광야 가운데 병든 비구가 있으니, 함께 가서 데려옵시다.”
마을의 비구들이 말한다.
“병든 비구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아무 곳에 있습니다.”
“그곳은 호랑이와 이리가 많으니 아마 다 먹었을까 두렵소. 분명히 잡아먹혔을 것이오.”
그러나 비록 이러한 말을 들었어도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마땅히 가서 살펴봐야 하며, 그곳에 이르렀을 때에 까마귀와 새들을 멀리서 보더라도 그냥 돌아와서는 안 되고 반드시 그곳에 가서 확인해야 한다.
만일 이미 죽었으면 마땅히 시체에 공양하고, 만일 살아 있으면 마땅히 그를 데리고 마을에 와서 그 마을에 전부터 있는 비구들에게 말해야 한다.
“장로들이여, 이 사람은 아무 곳의 병든 비구입니다. 내가 광야에서 이 사람에게 공양하고 지금 데리고 여기 왔으니, 다음은 장로들이 간병하소서.”
그리하여 만일 간호하지 않는 자는 월비니의 죄를 범한다. 만일 그 마을에 비구가 없으면 마땅히 우바새에게 말한다.
“장수여, 광야 가운데 병든 비구가 있으니, 나에게 탈것을 빌려주시오. 가서 데려오겠소.”
그 단월이 말한다.
“병자가 지금 어느 곳에 있습니까?”
그리하여 이와 같이 또한 그 병자를 데려와서 단월의 집에 이르러 별채에 두고, 간병할 사람이 많다고 하면 마땅히 두서너 사람을 가려
병자를 간호하게 하고, 만일 병자가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을 좋다고 하면 마땅히 다 머물러서 함께 간병한다.
그리고 병자가 전식과 후식을 찾을 때면 시약과 야분약과 7일약과 진수약들을 공급하여 부족함이 없게 한다. 객으로 오는 비구가 있어도 그에게 “장로여, 그대가 병든 비구를 간호하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마땅히 말하기를 “잘 오셨소, 장로여”라고 하여 옷과 발우를 대신 짊어지고, 걸상과 자리를 깔아주고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발에 바를 기름을 주고 때에 온 자는 마땅히 전식과 후식을 주고 때 아닌 때에 온 자는 마땅히 때 아닌 때의 장을 주어서 머물러 쉬게 하고서 마땅히 그에게 말한다.
“장로여, 이 병든 비구는 내가 간호한 지 오래 되었소. 장로께서 차례에 따라 다시 마땅히 간호하시오.”
만일 병든 비구가 죽으면 마땅히 사리에 공양해야 한다.
만일 비구와 비구니가 장사꾼과 함께 길을 갈 적에 비구니가 병이 있으면 비구가 그를 버리고 가서는 안 되고 마땅히 말해야 한다.
“가십시다. 가십시다. 누이여.”
그리고 데리고 가서 접촉하는 것은 비구의 경우에 말한 것과 같다. 오직 끌어안고 취하는 것을 제외한다. 만일 안마를 하거나 기름을 몸에 바를 때는 마땅히 여인을 고용하여 해야 한다.
만일 병든 비구니가 죽었을 때에는 그 비구니에게 옷과 발우가 있으면 마땅히 사람을 고용해서 화장을 하고, 만일 옷과 발우들이 없으면 마땅히 버리고 가야 한다.
어떤 세속 사람이 이를 혐오하여 말하였다.
“어찌하여 이 죽은 시체를 두고 가는가?”
만일 능히 지상(地想)을 짓는 자라면 마땅히 먼 곳에 시체를 옮겨다 두어야 한다.
그때 우바리 존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대덕 비구가 병이 있을 적에는 마땅히 어떻게 간호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우바리에게 이르셨다.
“대덕 비구가 병들었을 때에는 가장자리의 누추한 작은 방에 있게 해서는 안 되고 남들이 피하는 곳에 있게 하여서도 안 된다. 마땅히 눈에 띄는 큰 방에 있게 해야 하며, 동행 제자와 의지 제자들이 항상 좌우에 모시고 있어 방 가운데를 쓸고 물 뿌리며 쇠똥으로 땅을 바르고 온갖 향기로운 향(茗香)을 태워서 냄새 나고 더럽게 하지 말며 걸상과 자리를 펴 두고, 만일 비구들이 와서 병문안을 하면
그들에게 마땅히 전식과 후식을 주어야 한다. 때 아닌 때에 오는 자는 마땅히 때 아닌 때의 장을 주어야 하며, 만일 일을 물으면 병자가 마땅히 대답해야 하나 병자의 힘이 열악(劣惡)하면 마땅히 시자가 대답해야 한다.
만일 우바새가 와서 문안을 하면 병자가 마땅히 말한다.
‘잘 왔소. 장수여.’
그리고 자리에 앉게 하고 그를 위하여 이렇게 설법한다.
‘그대는 크게 공덕을 얻었소.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계를 가진 병든 비구를 간호하는 것은 나를 간호함과 다름이 없다고 하신 것과 같소.’
만일 공양을 올리고 주원(呪願)을 받고자 할 때에 병든 자가 병이 심해졌으면 병 문안을 온 자가 오래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고, 마땅히 속히 떠나야 한다.
만일 병자가 나갈 수 없으면 마땅히 변기[除糞器] 셋을 저축하여야 하니, 하나는 병자에게 주고, 하나는 밖에 두고, 하나는 씻고 나서 기름을 바르고 햇볕에 쪼인다. 이와 같이 교대로 쓰면서, 한 사람은 문 쪽에 머물러 있어서 사람들을 함부로 들여보내지 않고, 한 사람은 병자의 옆에 있어서 때때로 그를 위하여 알맞은 설법을 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여 우바리야, 대덕 비구가 병들었을 때에는 응당 이와 같이 보살펴야 하느니라.”
그때 우바리 존자가 다시 물었다.
“세존이시여, 소덕(小德) 비구가 병들었을 때에는 마땅히 어떻게 보살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우바리에게 이르셨다.
“소덕 비구가 병들었을 때에는 마땅히 드러나는[顯現] 곳에 두어 냄새가 밖에까지 나게 하면 안 되며, 외지고 더러운 곳에 두어 죽었을 때 사람들이 몰라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마땅히 사람들 가운데 편히 있게 해야 한다.
만일 병자에게 화상과 아사리가 있든지 공행 제자와 의지 제자가 있으면 마땅히 간병하겠지만 만일 그러한 이들이 없으면 여러 스님들이 마땅히 간병하는 사람을 보내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나 세 사람으로 간병을 하게 한다.
만일 병든 자에게 옷과 발우 외에 의약(醫藥)의 값이 있는 자는 마땅히 병자로부터 받아서 공급해야 하고, 만일 병자에게 그런 여유가 없으면 여러 스님들이 마땅히 대신 주어야 하고, 여러 스님에게 없고 병자에게 중한 값의 옷과 발우가 있으면 마땅히 사소한 것을 팔아서 병자에게 공급해야 하고, 그것을 병자가 아까워하면 마땅히 승단에 아뢰기를 ‘대덕 스님들은 들으소서. 아무 병든 비구가 자신의 무상(無常)을 알지 못하여
옷과 발우를 아까워하여 팔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스님들께 말하고, 부드러운 말로 설법을 하여 그로 하여금 알아듣게 한 뒤에 팔아야 한다.
만일 팔 것이 없는 자에게는 마땅히 빌어서 주어야 하고, 빌어서도 얻지 못하면 마땅히 스님들의 식사 가운데서 좋은 것을 취해 주어야 한다. 그래도 얻지 못하면 간병하는 사람이 마땅히 발우 두 개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여서 좋은 것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우바리야, 이를 소덕의 병든 비구를 간호하는 법이라고 하느니라.”
병든 사람이 다섯 가지의 법을 성취하면 간호하기 어려우니, 어떤 것들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가?
병에 따라 약과 음식을 복용하지 않고, 병을 간호하는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고, 병이 더하고 덜한지 알지 못하고, 고통을 능히 참지 못하고, 게을러 지혜가 없는 것 등이니, 이를 병자를 간호하기 어려운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병자는 다섯 가지의 법을 성취하여야 간호하기 쉬우니, 어떤 것들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가? 병에 따라 약과 음식을 능히 복용하고, 명을 간호하는 사람의 말을 따르고, 사람이 물으면 병이 더한지 덜한지를 알아서 대답하고, 능히 고통을 참고, 정진하여 지혜가 있는 것이니, 이를 병자를 간호하기 쉬운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다섯 가지의 법을 성취하면 병을 간호할 수 없으니, 어떤 것들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가? 땀이 많이 나서 능히 대소변 보는 그릇과 침 뱉는 그릇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요, 병자를 위하여 약과 음식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요, 때때로 병자를 위하여 알맞게 설법하지 못하는 것이요,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이요, 자업(自業)을 아끼는 것이니, 이를 병자를 간호할 수 없는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다섯 가지의 법을 성취하여야 능히 병자를 간호할 수 있는 것이니, 어떤 것들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가? 땀이 적어서 능히 대소변의 그릇과 침 뱉는 그릇들을 내놓고, 능히 병자를 위하여 약과 음식을 구하고, 때때로 병자를 위하여 알맞게 설법하고, 바라는 마음이 없고, 자업을 아끼지 않는 것이니, 이를 병자를 간호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병자는 아홉 가지의 법이 성취되면 목숨이 비록 다하지 않아도 반드시 횡사(橫死)하는 것이니, 어떤 것들을 아홉 가지라 하는가? 첫째 이롭지 않은 음식인 줄 알면서 탐하여 먹는 것이요, 둘째 양(量)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먹는 것이요, 셋째 먹은 음식이
아직 소화되지 않았는데 먹는 것이요, 넷째 먹은 것이 아직 소화되지 않았는데 토하는 것이요, 다섯째 먹은 것이 이미 소화되어 마땅히 내보내야 하는데 억지로 참는 것이요, 여섯째 병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것이요, 일곱째 병에 따라 먹되 양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요, 여덟째 게으름이요, 아홉째 지혜가 없는 것이니, 이를 아홉 가지의 법이 성취되면 반드시 횡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아홉 가지의 법이 성취되면 횡사하지 않으니, 어떤 것들을 아홉 가지라 하는가? 첫째 이로운 음식이 아닌 줄 알면 조금만 먹으며, 둘째 음식을 먹되 양을 알아서 먹고, 셋째 이미 먹었던 음식이 소화되어야 먹고, 넷째 억지로 토하지 않고, 다섯째 억지로 참지 않고, 여섯째 병에 맞지 않는 음식은 먹지 않고, 일곱째 병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먹을 때 양에 맞게 먹고, 여덟째 게으르지 않고, 아홉째 지혜가 있는 것이니, 이를 아홉 가지의 법을 성취하면 마침내 횡사하지 않는다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우바리에게 이르셨다.
“세 종류의 병자가 있으니, 어떤 것들을 세 종류라 하는가? 혹은 병자가 병에 맞는 약과 음식을 복용하고 여법하게 간병하여도 죽는 이가 있고, 혹은 병자가 병에 알맞은 약과 음식을 복용하지 못하고 여법하게 간병하지 못하여도 사는 이가 있으며, 혹은 병자가 병에 알맞은 약과 음식을 복용하고 여법하게 간병하는 사람을 얻으면 병이 반드시 치유하여 죽지 않는 이가 있느니라.
우바리야, 병든 비구 가운데 여법하게 간호하지 못하여 죽고 여법하게 간호하여 사는 자가 있으니, 이런 까닭에 마땅히 잘 간호하여서 힘써 여법하고 안온(安穩)하게 하면 곧 목숨을 보시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간병을 잘하면 큰 공덕을 얻어서 모든 부처가 찬탄하느니라.”
이를 간병하는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107) 약의 법
부처님께서 구살라국(俱薩羅國)을 유행하고 계셨다. 그때 사리불 존자에게 바람이 동하는 병이 있었다.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어떤 약을 써야 하느냐?”
여러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가리륵(呵梨勒)이 잘 듣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부터 병든 비구에게 가리륵을 복용하는 것을 허락한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사위성에 돌아오면 기다려서 나에게 말하여라.
내가 마땅히 여러 제자들을 위하여 약의 법을 제정하겠다.”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돌아오시자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마땅히 여러 제자들을 위하여 약의 법을 제정하겠다’고 하셨으니, 지금이 바로 그러할 때입니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오늘부터는 여러 병든 비구가 약을 복용하는 것을 허락한다.”
‘약의 법’이라 하는 것은 때에 맞는 뿌리와 때 아닌 때의 뿌리와, 이와 같이 줄기와 껍질과 잎과 과일과 장 등이다.
‘때의 뿌리’라고 하는 것은 무우 뿌리와 파 뿌리와 긴차(緊衩) 뿌리와 아람부(阿藍扶) 뿌리와 토란 뿌리와 마두라(摩豆羅) 뿌리와 연 뿌리 등이니, 이와 같은 것들을 음식과 합친 것을 때의 뿌리라고 한다.
‘때 아닌 때의 뿌리’라고 하는 것은 파탁(婆吒)의 뿌리와 필발라(篳藜羅) 뿌리와 니구율(尼俱律) 뿌리와 거제라(佉提羅) 뿌리와 소건사(蘇楗闍) 뿌리들이니, 이와 같은 것들이 음식과 합치지 아니한 것을 때 아닌 때의 뿌리라고 이르며, 줄기와 껍질과 잎과 꽃과 열매들도 이와 같다.
‘장’이라고 하는 것은 때의 장[時漿]과 때 아닌 때의 장[非時漿]이다.
‘때의 장’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쌀뜨물과 밥을 만 물[饋汁]과 유락(乳酪)의 장 등이니, 이를 때의 장이라고 한다.
‘때 아닌 때의 장’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콩과 모든 곡식과 모든 보리의 머리[頭]를 적셔서 터지지 아니한 것이요, 소(酥)와 유(油), 꿀, 석밀들이니, 이를 때 아닌 때의 장이라고 한다.
비구가 병이 들었을 때, 의사가 말하기를 “약을 주워 먹게 하면 살아날 것이요, 주지 않으면 죽을 것입니다”라고 하면, 마땅히 깨끗이 그릇을 씻고 일곱 번을 곡식을 일어 톡톡한 주머니에 담아 매고서 그릇 속에 넣어 삶아서 곡식의 낱알이 터지지 않게 한 뒤에 병자에게 주어 마시게 하며, 모든 흙[地]을 때이든지 때 아닌 때이든지 먹게 하고 여덟 가지의 재[灰]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재도 때이든지 때 아닌 때이든지 먹게 하는 것을 약의 법이라고 한다.
(108) 화상과 아사리와 공행 제자와 의지 제자의 법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때 출가한 지 1년이 된 비구가 출가한 지 1년이 안된 제자를 데리고 두 어깨 위에는 각각 옷을 담는 주머니를 메고, 그의 머리 위에도 옷을 담는 주머니를 이고서 왼손에는 발우와 가죽신을 들었고,
오른손에는 물을 담은 그릇과 기름을 담은 가죽 주머니를 들고서 함께 부처님 처소로 나가서 머리 숙여 부처님 발에 예배하다가 머리 위의 옷 주머니가 세존의 무릎 위에 떨어지니, 세존께서 곧 손수 치우시면서 아시면서도 일부러 물으셨다.
“이것은 누구의 것이냐?”
“세존이시여, 이것은 저와 함께 사는 제자의 것입니다.”
“그대는 출가한 지 몇 해나 되느냐?”
“1년입니다.”
“그대와 함께 사는 제자는 출가한 지 얼마나 되었느냐?”
“1년이 되지 않았습니다[無歲].”
“비구야, 비유하면 물에 빠진 사람이 다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격이어서 그대가 출가한 지 1년밖에 안 되었는데 출가한 지 1년이 안된 비구를 제자로 길렀느냐?”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자기도 항복 받지 못하면서 남을 항복받으려는 것은 옳지 않고,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면서 남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도 옳지 않고, 자기도 제도하지 못하면서 남을 제도하려는 것은 옳지 않고, 스스로 해탈하지 못하면서 남을 해탈시키려는 것은 옳지 못하니라.”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이미 능히 자기를 항복시키고서야 다른 사람에게 항복받는 것이 옳고, 능히 자기를 다스리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옳고, 이미 능히 자기를 제도하고서야 다른 사람을 겸해 제도하는 것이 옳으며, 자기를 해탈하고서야 다른 사람을 해탈시키는 것이 옳으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부터는 중이 된 지 10년이 안된 비구로서 남을 제도하여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받게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 부처님께서 계율을 제정하시어서 중이 된 지 10년이 안된 비구가 남을 제도하여 출가시켜 구족계를 받게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때 난타와 우바난타가 중이 된 지 10년이 차서 남을 제도하여 출가시켜 구족계를 받게 하였으나 그를 교계하지 않았기에 그가 하늘의 소와 같이, 하늘의 염소와 같이, 마음대로 방탕하고 방일하여 그를 제어하는 자가 없어 청정함이 갖추어지지 못하고, 위의가 갖추어지지 못하고, 화상과 아사리를 받들어 섬길 줄 알지 못하고, 장로 비구를 받들어 순종할 줄 알지 못하고, 마을에 들어가는 법을 알지 못하고, 아련야에 있는 법을 알지 못하고, 대중에 들어가는 법을 알지 못하고,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는 법을 알지 못하였다.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부터 열 가지의 법을 성취하여야 남을 제도하여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주는 것을 허락한다.
어떤 것들을 열 가지의 법이라 하는가? 첫째 계를 가지고, 둘째 아비담(阿毘曇)을 많이 듣고, 셋째 계율을 많이 듣고, 넷째 계를 배우고, 다섯째 선정을 배우고 여섯째 지혜를 배우고, 일곱째 능히 자신의 죄를 내고[出罪] 능히 남으로 하여금 죄를 내게 하고, 여덟째 능히 병자를 간호하고 능히 남을 시켜 병자를 간호하게 하며, 아홉째 제자에게 난(難)이 있으면 능히 가서 난을 벗어나게 하고 능히 남을 시켜 보내서 난을 벗어나게 하며, 열째 중이 된 지 10년이 되는 것이니, 이를 열 가지 일로 남을 제도하여 출가시켜 구족계를 받게 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다. 아래로 10세가 차고 2부(部)의 율(律)을 알아도 된다.”
또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때 어떤 비구가 죽었다. 그에게 함께 사는 제자 두 명이 있어서 스승을 생각하고 슬퍼하면서 함께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장사하는 사람이 재물을 잃은 것 같았다. 부처님께서 아시면서도 일부러 물으셨다.
“이는 어떤 비구들이냐?”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부터는 의지하기를 청하여 공경하기를 화상과 같이 하는 것을 허락한다.”
의지의 법을 청하는 것은 마땅히 가사를 왼쪽 어깨에 걸치고 무릎 꿇고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기억하소서. 저 아무가 존자에게 의지하기를 빌어 구합니다. 존자여, 저를 위하여 의지가 되어 주소서. 제가 존자를 의지하며 살겠습니다.”
두 번째도 그렇게 말하고 세 번째도 그렇게 말한다.
또는 출가한 지 1년이 되는 비구가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비구의 의지가 되고, 또한 출가한 지 9년이 되는 비구가 8년이 되는 비구의 의지가 되기도 하였다.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갖추어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부터는 출가한 지 10년이 못 되는 자가 남의 의지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때 육군비구들이 중이 된 지 10년이 차서 남의 의지함을 받았으면서도 그를 가르치고 이끌지 아니하니, 의지된 자가 하늘 소처럼 하늘 염소처럼, 또한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는 법을 알지 못하였다.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부터는 열 가지의 법을 성취하여야 남의 의지 받음을 허락한다.”
어떤 것들을 열 가지의 법이라 하는가? 계율을 지키고 또한 출가한 지 10년이 된 것이니, 이를 열 가지의 남의 의지를 받는 것을 얻는다고 한다. 아래로 10세가 되고 2부의 계율을 알아도 된다.
의지를 청하고자 할 때에는 함부로 나가서 청해서는 안 되고 다섯 가지의 법을 성취한 뒤에야 청할 수 있다. 어떤 것들을 다섯 가지의 법이라 하는가? 첫째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둘째 공경하고, 셋째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며, 넷째 남에 대하여 창피함을 알아야 하며, 다섯째 수행적 삶을 사는 것이니, 이 다섯 가지의 법으로 마땅히 의지를 청하는 것이다.
아사리에게 네 가지의 법이 있으니, 어떤 것들을 네 가지의 법이라 하는가? 첫째 의지하는 스승이 되고, 둘째 법을 받은 스승이 되고, 셋째 계율을 지키는 스승이 되고, 넷째 수행처에서 가르치는 스승이 되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의 아사리가 있으니, 어떤 이들을 네 가지라 하는가? 묻지 않고 가는 아사리가 있고, 묻고 가는 아사리가 있으며, 괴롭게 머무르면서도 목숨이 다할 때까지 따르는 아사리가 있고, 수행하면서 비록 목숨이 다해 떠나도 떠나지 않는 아사리가 있다.
‘묻지 않고 간다’고 하는 것은 스승을 의지하여 살지만 옷과 밥과 병들어 수척할 때에 탕약(湯藥)이 없으며, 또는 출가하여 범행을 닦는 위 없는 사문과(沙門果)의 법을 말해 주지 않는 이니, 이러한 스승에게는 묻지 않고 가는 것이다.
‘묻고 간다’고 하는 것은 아사리를 의지하여 살고 비록 옷과 밥과 병들어 수척할 때에 탕약이 있지만 출가하여 범행을 닦는 위 없는 사문과의 법을 말하지 않는 것이니, 이러한 스승에게는 묻고서 가는 것이다.
‘괴롭게 산다’고 하는 것은 아사리를 의지하여 살 때에 비록 옷과 밥과 병들어 수척할 때에 탕약은 없지만 출가하여 범행을 닦는 위 없는 사문과의 법을 잘 말하여 주며, 이와 같은 아사리는 함께 사는 것이 비록 괴롭지만 목숨이 다하도록 마땅히 떠나가지 않는 것이다.
‘즐겁게 산다’고 하는 것은 아사리를 의지하여 사는데 아사리가 능히 옷과 밥을 넉넉히 주고 병들어 수척할 때에 탕약을 주며 출가하여 범행을 닦는 위 없는 사문과의 법을 잘 말하여 주니,
이와 같은 아사리에게는 비록 쫓아내어도 목숨이 다하도록 가지 않으니, 이를 네 가지의 법이라고 한다. 또 네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들을 네 가지라 하는가?
법을 받아 의지하고 조복하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 능히 제자를 위하여 설법을 잘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제거하는 이러한 아사리가 가장 위이고 가장 뛰어난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우유로부터 낙(酪)을 얻고, 낙으로부터 소(酥)를 얻고, 소로부터 제호(醍醐)를 얻으니, 제호가 가장 뒤지만 가장 뛰어난 것과 같이 화상과 아사리는 마땅히 공행 제자와 의지 제자를 이같이 가르쳐야 한다.
법을 가르치는 데에는 청정하지 못한 것을 응당 막는 것과, 가서는 안 될 곳과, 갈마를 하는 것과, 악하고 삿된 견해를 스스로 풀거나 남을 시켜 풀게 하는 것과, 스스로 출죄(出罪) 시키거나 남을 시켜 출죄하게 하는 것과, 병자를 스스로 간호하거나 남을 시켜 간호하게 하는 것과, 난이 일어나면 스스로 보내거나 남을 시켜 보내게 하는 것과, 임금이나 도적이 있다.
‘청정하지 못함을 마땅히 막는다’고 하는 것은 제자가 소소계를 범해서 별중식과 처처식과 여인과 한 집에 있는 것과 구족계를 받지 아니한 자와 세 밤이 지나도록 자고 산 풀을 꺾고 깨끗하지 못한 과일을 먹으면 마땅히 그에게 가르치기를 “이런 짓을 하지 마시오”라고 해서, 계를 범한 자가 말하기를 “화상과 아사리여, 내가 다시 그런 짓을 않겠습니다”라고 하면 좋지만, 계를 범한 자가 말하기를 “화상과 아사리여, 다만 스스로를 가르쳐야지 남을 가르쳐서 되겠소?”라고 하는 이에게는 마땅히 걸상과 요를 맡아 보는 자에게 말하여 그의 걸상과 요를 빼앗고 음식을 맡아 보는 자에게 말하여 음식을 중단하여야 한다. 만일 현전의 사람이 흉악하거나 임금의 힘이나 대신의 힘을 의지하여 이롭지 못한 일을 하는 자는 화상이 마땅히 피해가야 한다. 아사리를 의지하는 자는 마땅히 옷과 발우를 지고 경계 밖을 나가서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와서 즉시 의지를 떠나야 한다.
공행 제자와 의지 제자가 청정하지 못한 행을 지어도 화상과 아사리가 그를 가르치지 아니하는 자는 월비니의 죄를 범하니, 이를 청정하지 못한 것을 마땅히 막아야 한다고 한다.
‘가서는 안 될 곳’이라고 하는 것은 큰 동녀(童女)의 집과 과부의 집과 도박하는 집과 술 파는 집과 악한 이름의 비구니와 악한 이름의 사미니들이니,
이러한 여러 곳에 가고 오는 이에게는 화상과 아사리가 마땅히 가르치기를 “이곳에 오고 가지 말라. 이는 익숙해지고 가까이 할 곳이 아니니라”라고 하여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좋고, 또한 경계 밖에 나가서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와야 하니, 이를 곧 의지를 떠난다고 한다. 공행 제자와 의지 제자가 가서는 안 될 곳을 왕래하여도 가르치지 않는 자는 월비니의 죄를 범하니, 이를 가서는 아니 될 곳이라고 한다.
‘갈마를 행한다’고 하는 것은 마땅히 이치로 처리하는 스님들이 절복갈마나 불어갈마나 발희갈마나 빈출갈마를 행하거나 세 가지 견해 가운데 하나하나의 견, 즉 선경(線經)을 비방하고, 악하고 삿된 소견과 변견(邊見)을 낼 때 충고하여도 그 짓을 버리지 않고 거갈마를 지으면, 화상과 아사리는 마땅히 제자를 위하여 여러 사람에게 참회하고 사과한다.
“여러 장로들이여, 이는 본래 악한 소견이었으나, 이제 이미 버리고 수순하는 법을 행합니다. 범부들은 어리석으니 어찌 능히 허물이 없겠습니까? 이 아이는 늦게 배웠기에 실로 이러한 허물이 있습니다. 오늘부터는 마땅히 가르치고 당부하여서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대중의 뜻을 기쁘게 하고 승단에 그를 위해 갈마를 풀어주기를 구하여야 한다. 공행 제자와 의지 제자에게 승단에서 갈마를 행하였는데 그를 위해 풀지 않으면 월비니의 죄를 범하니, 이를 갈마를 행한다고 한다.
‘악하고 삿된 견해가 일어났을 때에 스스로 풀거나 남을 시켜 풀게 한다’고 하는 것은 만일 제자가 악하고 삿된 소견을 일으키어 선경을 비방하거나 악하고 삿된 소견이거나 변견일 때에는 화상과 아사리가 마땅히 그에게 가르쳐서 이러한 소견을 일으키지 않게 한다.
“이는 악한 일이어서 악도에 떨어지고 지옥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밤에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이와 같이 가지가지로 그를 위해 말하여서 그가 그 짓을 그만두면 좋지만, 만일 버리지 아니할 때에는 마땅히 그와 잘 아는 이에게 말한다.
“장로여, 그를 위해 말하여서 그로 하여금 악한 소견을 버리게 하시오.”
만일 자기가 풀어 주지 않고 남을 시켜 풀어 주지도 않으면 월비니의 죄를 범하니, 이를 악한 소견을 자기가 풀어 주든지 남을 시켜 풀게 한다고 한다.
‘스스로 출죄(出罪) 시키거나 남을 시켜 출죄하게 한다’고 하는 것은 만일 제자가 가히 다스릴 만한 죄를 지어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 덮어 감춘 것은 마땅히 스스로 바리바사를 주고, 만일 덮어 감추지 않았으면 마땅히 마나타를 주고, 또한 월비니의 죄를 마땅히 스스로 다스리되, 만약 다스릴 수 없는 것은 남을 시켜 다스리게 한다.
만일 공행 제자와 의지 제자가 죄를 범했는데도 스승이 직접 출죄시키지 못하고 남을 시켜 출죄하게 하지도 못하는 자는 월비니의 죄를 범하니, 이를 스스로 죄에서 나오게 하거나 남을 시켜 죄에서 나오게 한다고 한다.
‘병자를 자기 스스로 간호하든지 남을 시켜 간호하게 한다’고 하는 것은 만일 제자가 병이 났으면 마땅히 자기가 간호하든지 남을 시켜 간호하게 하든지 해야 한다. 남만 시켜 간호하게 하고 자기가 직접하지 않아서는 안 되니, 하루에 마땅히 세 번은 가 봐야 하며 간병하는 사람에게 말해야 한다.
“그대가 피곤하게 여기거나 싫어해서는 아니 되오. 서로 간병하는 것을 부처님께서 찬탄하셨소.”
만일 공행 제자와 의지 제자가 병이 났는데도 스승이 간호하지 않는 자는 월비니의 죄를 범하니, 이를 병자를 스스로 간호하고 남을 시켜 간호한다고 한다.
‘어려움이 생기면 스스로 보내든지 남을 시켜 보낸다’고 하는 것은 만일 제자의 친척이 그의 도를 깨뜨리고자 하면 스승이 마땅히 멀리 피해서 출가의 공덕을 성취하라고 가르쳐서 마땅히 스스로 보내야 하고, 만일 늙고 병드는 괴로움이면 승가의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 마땅히 남에게 부탁하여 보내야 한다. 만일 스스로 보내지도 않고 남을 시켜 보내지도 않으면 월비니의 죄를 범하니, 이를 어려움이 생기면 스스로 보내든지 남을 시켜 보내든지 한다고 한다.
‘임금이나 도적이라’고 하는 것은 만일 제자가 임금에게 체포되었으면 스승은 마땅히 쫓아가서는 안 되고 마땅히 밖에 있으면서 소식을 기다려야 한다. 왕이 묻기를 “누가 화상이고 아사리냐?”라고 물으면 그때 들어가야 한다. 만일 일이 꼬였으면 마땅히 아는 이를 구해서 증명해야 하며, 만일 재물이 필요해서 쫓아오거든 마땅히 옷과 발우를 주어야 한다. 만일 옷과 발우가 없으면 마땅히 빌어 구해서라도 주어야 한다.
만일 제자가 도적에게 붙잡혀 멀리 팔려서 다른 지방에 있으면 스승이 마땅히 구해서 풀려나게 하여야 한다. 만일 제자가 왕이나 도적에게 붙잡혔는데 화상이나 아사리가 구하여 풀려나게 하지 않는 자는 월비니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만일 화상이나 아사리에게 공행제자와 의지 제자들이 마땅히 이와 같이 충고할 때에는 거친 말을 써서는 안 되고, 교계하는 법과 같이 마땅히 유연한 말로 화상과 아사리에게 충고하여 이런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화상과 아사리가 말하기를 “제자여, 내가 다시는 그런 짓을 않겠다”라고 하는 것은 좋지만, 만일 말하기를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그대는 나의 화상이나 아사리가 아니다. 내가 마땅히 그대를 가르쳐야 하거늘 그대가 나를 가르치니, 마치 대나무 마디를 거슬러 만지는 것과 같다. 그대는 다시 말하지 말라”라고 하여, 만일 이러한 화상이라면 마땅히 버리고 멀리 해야 한다. 만일 아사리를 의지하였으면 마땅히 옷과 발우를 가지고 경계 밖에 나가서 하룻밤을 자고 돌아와서 다른 사람을 의지하여야 한다. 그리고 만일 스승에게 세력이 있으면 마땅히 멀리 가야하고, 만일 가지 않으면 마땅히 덕망이 많은 사람을 의지하여야 한다.
만일 행할 곳이 아닌데 행하면 마땅히 충고해야 하고, 만일 갈마를 받은 이라면 마땅히 요리해야 하고, 만일 악한 소견을 일으켰으면 마땅히 자기가 풀어주든지 남을 시켜 풀어주어야 하며, 자기가 출죄하든 남을 시켜 출죄케 해야 하며, 병자든지 병자가 아니든지 마땅히 보살펴야 하며, 만일 스승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마땅히 보내서 가야하며, 만일 왕이나 도적에게 붙잡혔으면 마땅히 구해야 한다. 만일 공행제자와 의지제자는 스승이 소소계를 범했는데도 충고하지 않고, 또한 왕이나 도적에게 붙잡혔어도 쫓아가 구하지 않는 이는 월비니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공행제자와 의지제자는 화상과 아사리에게 마땅히 이런 일을 해야 하니, 일어나 맞이하는 것과 대답하는 것과 일을 하는 것과 스스로 하고 남과 함께 하는 것과 옷과 발우의 일과 자기 머리털을 깎고 남의 머리털을 깎아 주는 것과 종기를 짜는 것과 주거나 받는 것과 남에게 음식을 갖다 주거나 스스로 음식을 받는 것과 경(經)을 받거나 경을 주는 것과 욕(欲)을 주거나 욕을 받는 것과 약을 복용하는 것과 경계를 떠나는 것과 큰 보시와 묻지 않고 가는 것[不問去]이다.
‘일어나 맞이한다’고 하는 것은 제자가 멀리서 화상과 아사리를 보면 마땅히 일어나 맞이해야 한다. 만일 다섯 가지의 정식(正食)을 먹든지 1식의 법을 받아서 일어날 수 없는 자는 마땅히 머리를 숙여야 한다. 만일 1식의 법을 받을 때에는 마땅히 스승에게 말하여야 하고, 스승이 묻기를 “그대가 1식의 법을 견디겠느냐?”라고 하여
견디는 자는 마땅히 받지마는, 만일 “견디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마땅히 “받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 만일 제자가 스승을 보고도 일어나지 않는 자는 월비니의 죄를 범하니, 이를 일어나 맞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답한다’고 하는 것은 화상과 아사리와 함께 말하면 제자는 마땅히 대답해야 한다. 만일 입에 음식이 있어도 음성이 다르지 않으면 마땅히 대답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없으면 음식을 다 삼킨 뒤에 대답해야 한다.
스승이 말하기를 “어찌해서 나의 말을 듣고도 대답하지 않느냐?”라고 하면, 마땅히 말하기를 “제자의 입 가운데 음식이 있어 그랬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만일 스승의 말에 대답하지 않는 자는 월비니의 죄를 범하니, 이를 대답한다고 말한다.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은 화상과 아사리가 제자에게 이 일을 하라고 말하였을 때 법에 합당하면 마땅히 하여야 한다.
만일 “저 여자를 불러오라고 하거나 술을 가져 오라”고 말하면 마땅히 부드러운 말로 “제가 듣기로는 이와 같은 것은 비법의 일입니다”라고 하여 마땅히 해서는 안 된다. 스승이 만일 합당한 일을 하라고 말하였는데도 하지 않는 자는 월비니의 죄를 범하니, 이를 일을 한다고 한다.
‘스스로 하고 남과 함께 한다’고 하는 것은 만일 할 일이 있으면 마땅히 스승에게 묻기를 “제가 아무와 함께 이 일을 하고자 합니다”라고 할 때, 스승이 마땅히 살펴보아서 앞의 사람이 계를 잘 지키지 않는 자면 마땅히 ‘도와서 함께 일을 하지 말라’라고 말할 것이요, 만일 계율을 잘 지키는 자면 마땅히 ‘함께 하라’고 말해야 한다.
만일 차례가 되어 유나(維那)나 월직(月直)이 되면 마땅히 스승에게 고해야하니, 위의(威儀) 중에서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 이를 스스로 하고 남과 함께 한다고 말한다.
‘옷과 발우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 만일 발우를 훈증[熏]하고자 하면 쇠똥으로 화로에 바르고 훈증할 때에 낱낱이 알려야 하고, 만일 낱낱이 알리지 못할 때에는 다만 “내가 발우를 훈증하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라고 한 번 알리는 것으로 통한다.
발우를 훈증할 때에는 마땅히 화상과 아사리에게 묻기를 “발우를 훈증하고자 합니까?”라고 하여 만일 발우를 훈증하겠다고 하면, 묻기를 “먼저 훈증하겠습니까, 뒤에 훈증하겠습니까, 한 곳에서 훈증하겠습니까?”라고 물어서 만일 한 곳에서 하겠다고 하면 묻기를 “위부터 훈증할까요, 아래부터 훈증할까요?”라고 물어서 마땅히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옷을 물들이고자 할 때에도 마땅히 알려야 하고
세탁할 때와 꿰맬 때나 지지고 물들일 때에도 낱낱이 마땅히 알려야 하지만, 만일 낱낱이 알릴 수 없을 때에는 다만 “제가 옷을 물들이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라고 하여 한 번 알리는 것으로 모두 통한다.
옷을 물들일 때에는 마땅히 먼저 화상과 아사리에게 묻기를 “옷을 물들이겠습니까?”라고 물어서 만일 물들이겠다고 말하면, 마땅히 묻기를 “먼저 물들이겠습니까, 뒤에 물들이겠습니까, 일시(一時)에 하겠습니까?”라고 물어서 만일 일시에 하겠다고 말하면 마땅히 먼저 화상과 아사리의 옷을 물들여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옷을 꿰맬 때나 옷을 물들일 때나 옷을 들 때에는 스승의 옷으로 자기 옷을 싸서는 안 되고 마땅히 자기의 옷을 가져다가 스승의 옷을 싸야 한다. 옷과 발우를 지을 때에 스승께 고하지 않으면 월비니의 죄를 범하니, 이를 옷과 발우의 일이라고 한다.
‘자기 머리털을 깎고 남의 머리털을 깎아 준다’고 하는 것은 자기가 머리 깎을 때에는 마땅히 스승에게 아뢰어야 한다. 스승이 마땅히 묻기를 “누가 너의 머리를 깎아 주느냐”라고 물으면, 마땅히 대답하기를 “아무입니다”라고 하며, 스승이 묻기를 “아무가 머리 깎을 줄 아느냐?”라고 하면 마땅히 대답하기를 “이것은 눈으로 보고 하는 일입니다”라고 하면, 스승이 말하기를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한다.
만일 “머리 깎을 줄 안다”라고 말하면 스승이 마땅히 앞의 사람을 보아서 계율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이면 또한 “안 된다”고 말하고, 만일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이면 마땅히 “깎아라”라고 말한다.
만일 남의 머리털을 깎아 주고자 하면 마땅히 스승에게 “제가 아무 비구의 머리털을 깎아 주겠습니다”라고 하면 스승이 마땅히 그 비구에게 묻기를 “그대가 할 수 있겠느냐?”라고 한다. 그가 대답하기를 “이는 눈으로 보고 하는 일입니다. 어찌 못하겠습니까?”라고 하면 스승이 마땅히 “안 된다”고 말하고, 만일 그가 “능히 할 수 있다”고 말하면, 스승이 마땅히 그 사람을 관찰해서 만일 계율을 잘 지키지 않는 자이면 역시 “안 된다”고 말하고, 만일 그가 계율을 잘 지키는 자이면 스승이 마땅히 말하기를 “잘 주의해서 하라”고 한다.
만일 화상과 아사리가 마을에 들어간 뒤에 머리 깎는 사람이 와서 머리를 깎고자 할 때에는 마땅히 다른 장로의 비구에게 “제가 머리를 깎으려 합니다”라고 해야 하고, 스승이 돌아오면 마땅히 “스승이 가신 뒤에 머리를 깎아 줄 사람이 와서 머리를 깎았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를 자기 머리털을 깎고 남의 머리털을 깎아 준다고 한다.
‘도치(刀治)’라고 하는 것은 남의 종기를 쨀 때에는 마땅히 스승에게 “아무 비구의 종기를 째고자 합니다”라고 해야 한다. 그러면 스승이 마땅히 그 비구에게 묻기를 “그대가 그 일을 능히 할 수 있겠는가?” 하여, 그 비구가 대답하기를 “이는 눈으로 보고 하는 일이니 어찌 못하겠습니까?”라고 하면,
스승이 말하기를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만일 말하기를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 스승이 마땅히 앞사람을 관찰하여 만일 계율을 잘 지키지 못하는 자이면 마땅히 “안 된다”라고 말하고, 만일 계율을 잘 지키는 자이면 마땅히 그에게 묻기를 “어느 곳에 종기가 났느냐?”라고 물어서 만일 외설(猥褻)한 곳에 종기가 났으면, 마땅히 말하기를 “항문 근처의 약 4지(指) 정도 떨어진 곳까지는 만지면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가령 머리를 찔러서 피가 나거나, 또 다른 곳에 종기는 마땅히 째야 한다.
만일 자기의 종기를 째고자 할 때에는 마땅히 스승에게 알려야 한다. 스승이 묻기를 “그 종기가 어디에 났느냐?”라고 하여, 만일 의설한 곳에 있으면 마땅히 안 된다고 말해야 하고, 만일 다른 곳에 났으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해야 한다. 이를 도치라고 한다.
‘주거나 받는다’라고 하는 것은 만일 남에게 물건을 주고자 할 때에는 마땅히 스승에게 말해야 한다. 스승이 묻기를 “누구에게 주려 하느냐?”라고 할 때 만일 과부나 동녀(童女)나 음녀(婬女)나 도박하는 이나 흉악한 사람이나 악한 이름의 비구니나 악한 이름의 사미니나 계율을 지키지 않는 비구들에게 준다고 하면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사람들과 서로 가깝게 지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들의 부모가 삼보(三寶)를 믿지 않는 자이면 마땅히 경리(經理)를 적게 하고, 만일 신심이 있는 이라면 마음대로 주어서 모자람이 없게 한다.
만일 남의 물건을 취하고자 할 때는 마땅히 스승에게 말하여야 한다. 스승이 묻는다.
“누가 그대에게 주느냐?”
만일 큰 동녀나 또는 계율을 잘 지키지 않는 비구가 나에게 준다고 말하면 마땅히 말한다.
“이 사람들과 서로 가깝게 지내지 말라.”
만일 계율을 잘 지키는 자라고 말하면 마땅히 그 물건을 가지라고 말하며 얼마나 가져야 되느냐고 물어야 한다. 스승에게 알리지 않고 반의 실오라기나 반의 먹을 것도 주거나 받으면, 이를 알리지 않고 주거나 받는다고 한다.
‘남에게 음식을 갖다 주거나 스스로 음식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만일 남이 음식을 갖다 달라고 청할 때에는 마땅히 스승에게 알린다.
“아무 비구에게 음식을 갖다 주겠습니다.”
스승이 마땅히 묻는다.
“그 비구가 어찌해서 가지 않느냐?”
그가 대답한다.
“저곳에서는 식사하기가 괴롭고 여기서는 식사하기가 즐겁기 때문입니다.”
스승이 말한다.
“즐거움을 구하는 자는 청하면 안 된다.”
그러나 만일 유나(維那)나 병자를 위하여 청하면 스승이 그 사람을 관찰해 봐서 계율을 잘 지키지 못하는 자 면 마땅히 “안 된다”고 말하고,
만일 “차례가 되어 갖다 준다”고 말하면, 스승이 마땅히 “그의 발우를 깨끗이 씻어서 자기 발우와 합쳐 가지고 가라”고 말해야 하고, 만일 그가 계율을 잘 지키는 자라고 말하면, 스승이 마땅히 “식사를 갖다 주어라”라고 말해야 한다.
만일 남에게 청하여 식사를 받으려는 자는 마땅히 스승에게 말해야 한다. 스승이 그에게 묻는다.
“그대는 어찌하여 가지 않는가?”
그가 대답한다.
“저기에서는 식사하기가 괴롭고 여기에서는 식사하기가 즐겁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스승이 마땅히 말한다.
“그대는 즐거움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만일 유나가 되었든지 병자이면 스승이 마땅히 묻는다.
“누구를 시켜서 식사를 받느냐?”
그가 대답한다.
“아무입니다.”
만약 그가 계율을 잘 지키지 못하는 이라면 마땅히 “안 된다”라고 해야 하며, 만일 “그가 차례가 되어 해당하여 나에게 음식을 갖다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스승이 말한다.
“다시 다른 사람에게 청하라.”
만일 화상이나 아사리와 같은 이와 만일 계율을 잘 지키는 자라면 음식을 갖다 준다. 이를 스스로 음식을 받고 남에게 음식을 갖다 준다고 한다.
‘경(經)을 받고 경을 준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만일 남에게 경을 줄 적에는 마땅히 스승에게 알려야 한다. 스승이 마땅히 묻는다.
“누구에게 경을 주는가?”
그가 대답한다.
“아무 비구에게 경을 줍니다.”
스승이 묻는다.
“무슨 경을 주느냐?”
만일 사로가야타(沙路伽耶陀)를 준다고 말하면 스승이 마땅히 “주어서는 안 된다. 세존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가 만일 “주경(呪經)”이라 말하면 스승이 마땅히 “그렇게 해도 좋다”라고 하지만 마땅히 “이것으로써 생활해서는 안 된다”라고 해야 한다.
그가 만일 “아함(阿含)”이라고 말하면 스승이 그 사람을 관찰해서 계율을 지키지 않는 자라면 마땅히 “안 된다”고 말해야 하고, 만일 계율을 잘 지키는 자라면 스승이 말하기를 “그대가 경을 잘 아느냐?”라고 하여, 그가 대답하기를 “잘 알지 못합니다. 다른 편에 물었더니 마땅히 경을 주라고 합니다”라고 하면, 스승이 말하기를 “안 된다”라고 하고, 그가 만일 “잘 안다”고 하면 스승이 마땅히 “주어라”라고 말해야 한다.
만일 자기가 경을 받을 때에도 마땅히 스승에게 알려야 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를 스스로 받거나 남을 준다고 한다.
‘욕(欲)을 주거나 받는다’라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만일 욕을 주거나 받을 때에는 마땅히 스승에게 알려야 하는 것은 앞에 식사를 맞이하는 대목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다.
‘약을 복용한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약을 복용하고자 할 때에는 마땅히 먼저 스승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나 이미 앉아서 먼저 소(酥)를 마시고 뒤에 식사를 하고자 하는 이는 비록 아뢰지 않고 먹어도 죄가 없다.
‘경계를 떠난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승가람의 문을 나가서 25주(肘)를 지나가려면 마땅히 스승에게 알리고 가야 한다.
만일 경행할 때나, 좌선할 때에도 스승에게 있는 곳을 알려드려야 한다. 그러나 대소변을 볼 때에는 스승이 앞에 있으면 마땅히 머리를 숙여 공경을 표하고 가야 하지만 스승이 앞에 있지 않으면 공경을 표하지 않아도 죄가 없다.
‘큰 보시를 한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큰 보시를 하고자 하면 마땅히 스승에게 고하기를 “제가 가진 것의 일체를 다 보시하고자 합니다”라고 하면, 스승이 “출가한 사람은 반드시 3의(衣)와 발우와 니사단과 물 거르는 주머니와 가죽 신을 갖추어야 한다”고 하면 제자가 말한다.
“제가 이것을 제외하고는 일체를 다 보시하고자 합니다.”
스승이 마땅히 관찰해 보아서 만일 계율을 잘 지키지 않고 송습(誦習)과 행도(行道)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면 마땅히 말한다.
“허락한다.”
만일 계율을 잘 지키고 송습과 행도를 받은 자이면 마땅히 말한다.
“보시는 견고(堅固)한 법이 아니다. 그대가 이 모든 물건들을 의지하고 이것들로써 탕약을 준비하며 이것으로써 좌선과 송경과 행도를 하도록 하여라.”
제자가 만일 이렇게 말한다.
“저에게 친척이 있어서 저의 옷과 밥과 병들어 수척하였을 때, 탕약을 공급합니다.”
스승이 말한다.
“그러하다면 보시하는 것을 허락한다.”
이를 큰 보시라고 한다.
‘아뢰고 간다[白去]’고 하는 것은 가고자 할 때에는 마땅히 화상과 아사리에게 아뢰어야 한다. 아뢸 때에는 갈 때가 임박해서 아뢰지 말고 마땅히 먼저 1개월이나 반개월 전에 미리 이렇게 아뢴다.
“제자가 어느 지방의 국토(國土)에 가고자 합니다.”
스승이 묻는다.
“무슨 일로 그곳에 가려 하느냐?”
만일 “여기서는 승가의 일이 힘들어서 경을 받아 경을 외우기가 괴롭습니다”라고 하고, 화상과 아사리가 다시 말하기를 “적게 먹고 적게 마시며 많이 깨닫고 적게 자야 한다. 그곳은 머물기가 좋느냐?”라고 하면서, 스승은 마땅히 이렇게 말한다.
“그대는 그것을 견디기 위해서 출가하였다. 그러니 어찌 괴롭다고 말하느냐?”
그가 말한다.
“화상과 아사리께서 일이 바쁘셔서 저에게는 경을 주지 아니합니다. 그러기에 떠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면 스승이 경을 줄 능력이 있다면 마땅히 이렇게 말한다.
“가지 말라.”
그리고 능력은 없지만 대중 가운데 계율을 잘 지키고 경을 잘 외우는 자가 있으면 그분에게 말하여 경을 주게 하고 그럴 만한 이가 없고 저곳에 지식이 있고 보고 들음이 많은 비구가 있으면 마땅히 멀리서 부탁해야 한다.
만일 갈 때에 화상이나 의지하는 아사리에게 아뢰지 않고 가는 자는 월비니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 공행제자와 의지제자가 화상과 아사리의 처소에서 마땅히 이 일을 행하여야 하니, 이를 화상과 아사리에게 아뢰고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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