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221 불교 마하승기율(摩訶僧祗律) 25권

by Kay/케이 2024. 5. 20.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마하승기율(摩訶僧祗律) 25

 

 

 

마하승기율 제25권


불타발타라ㆍ법현 공역
이영무 번역


6) 잡송장의 법을 밝힘 ③
또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아리타(阿梨吒) 비구가 계경(契經)을 비방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장로여, 세존께서 설법하신 것을 내가 압니다. 도를 가로막는 법을 행하여도 능히 도를 막지 못합니다.”
여러 비구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장로여, 경전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경전을 비방하는 자는, 이것이 악한 사견(邪見)이므로 악도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갑니다.”
그러자 아리타 비구가 대답하였다.
“내 말은 좋은 견해요, 착한 견해여서 부모와 선사(先師)가 서로 이어오면서 항상 이러한 견해를 가졌소.”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가서 아뢰니,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아리타 비구가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께서 설법하신 것을 내가 다 안다. 도를 가로막는 법을 행하여도 능히 도를 막지 못한다.’ 그래서 가려진 곳에서 세 번 조언하고 많은 사람 가운데서 세 번 조언하고 승단에서 세 번 조언하여도 그치지 않는다.”
가려진 곳에서 조언할 적에 마땅히 먼저 물었다.
“아리타 장로여, 그대가 실제로 경전을 비방하여 말하기를 ‘세존께서 설법하신 것을 내가 다 안다. 도를 가로막는 법을 행하여도 능히 도를 막지 못한다’라고 하였느냐?”
아리타가 대답하였다.
“사실입니다.”
그러자 그때 가려진 곳에서 마땅히 조언하였다.
“장로여, 경전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경전을 비방하는 것은 악하고 삿된 견해로 악도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내가 자비한 마음으로 그대를 이롭게 하고자 조언하니, 그대는 마땅히 이 짓을 그만두시오.”
한 번 조언하고 나서 두 번째로 조언하여 말하였다.
“이 짓을 그만두겠습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내 견해는 좋은 견해이고 선한 견해여서 부모와 이전 스승들이 서로 이어오면서 이러한 견해를 지었으니, 내가 버릴 수 없소.”
이와 같이 두 번째의 조언과 세 번째의 조언에도 그치지 않으면 많은 사람 가운데서 세 번 조언하고, 그래도 버리지 않으면 승단에서 마땅히 갈마를 행해야 한다.

갈마하는 사람이 마땅히 이렇게 말하였다.
“대덕 스님들은 들으소서. 이는 아리타 비구가 경전을 비방하여 말하기를 ‘세존의 설법을 내가 다 안다. 도를 가로막는 법을 행하여도 능히 도를 막지 못한다’라고 하기에 이미 가려진 곳에서 세 번 조언하였고, 여러 많은 사람 가운데서 세 번 조언하여도 버리지 아니합니다. 그러니 스님들이여 때가 이르렀으면 승단에서 또한 마땅히 세 번 조언하겠습니다.”
승단의 스님들 가운데서 그에게 물었다.
“장로여, 그대가 실제로 경전을 비방하면서 말하기를 ‘세존의 설법을 내가 다 안다. 도를 가로막는 법을 행하여도 능히 도를 막지 못한다’고 하기에 이미 가려진 곳에서 세 번 조언하였고, 여러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세 번 조언하여도 그 짓을 그만두지 아니하였는가?”
아리타가 대답하였다.
“그렇소.”
그러면 승단에서 마땅히 권고한다.
“장로여, 경전을 비방하지 마시오. 경전을 비방하는 것은 악하고 삿된 견해여서 악도에 떨어져 지옥에 들어갈 것입니다. 승단에서 이제 자비한 마음으로 그대를 이롭게 하려고 그대에게 권고합니다. 한 번 권고가 지나도 두 번째의 권고가 있을 것이니, 그대가 이 짓을 그만두겠습니까?”
이에 대답하였다.
“이는 좋은 견해요, 선한 견해여서 부모와 이전의 스승들이 서로 이어오면서 이와 같은 견해를 가졌으니, 내가 버릴 수 없소.”
이와 같이 두 번째 권고하고 세 번째 권고하여도 그치지 아니하였다.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가서 아뢰니,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아리타 비구가 경전을 비방한 것으로서 이미 가려진 곳에서 세 번 권고하였고, 여러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세 번 권고하였어도 그 짓을 그만두지 않는 자는 승단에서 마땅히 경전을 비방하여 버리지 아니하는 거(擧)갈마를 행해야 한다.”
갈마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
“대덕 스님들은 들으소서. 이는 아리타 비구가 경전을 비방하여 말하기를 ‘세존의 설법을 내가 다 안다. 도를 막는 법을 행하여도 능히 도를 막지 못한다’고 하기에 이미 가려진 곳에서 세 번 조언하였고, 여러 많은 사람 가운데서 세 번 조언하였으며, 승단에서 세 번 권고하여도 버리지 아니합니다. 스님들이여 때가 이르렀으면 승단에서 이제 아리타 비구에게 경전을 비방하여 버리지 아니하는 거갈마를 행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아룁니다.”
이렇게 아뢰고
세 번 갈마를 해야 한다.
또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시리야바(尸利耶婆)가 악하고 삿된 소견으로 일어나서 말하였다.
“살생(殺生)을 하되 자기가 죽이든지 남을 시켜 죽이든지, 또는 악을 지어도 재앙이 없고 선을 하여도 복이 없어서 금세와 후세의 선과 악의 과보가 없다.”
그러자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시리야바 장로여, 악한 견해를 갖지 마시오. 악한 견해를 갖는 것은 이것이 불선(不善)이어서 악도에 떨어져 지옥에 들어갈 것입니다.”
시리야바가 대답하였다.
“이는 좋은 견해이고 착한 견해여서 나의 부모와 이전 스승들이 서로 이어오면서 항상 이와 같은 견해를 가졌소.”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가서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시리야바가 악하고 삿된 견해를 일으켰고, 또한 선과 악의 과보가 없다고 하니, 마땅히 가려진 곳에서 세 번 조언하고, 여러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세 번 조언하고, 승단 가운데서 세 번 권고하라.”
가려진 곳에서 세 번 조언한다’고 하는 것은 마땅히 먼저 물어야 한다.
“시리야바 장로여, 그대가 실제로 악하고 삿된 견해를 일으켜 말하기를 ‘살생은 스스로 죽이든지 남을 시켜 죽이든지 또한 악을 지어도 앙화(殃禍)가 없고 선을 행해도 복이 없으며, 금세와 후세의 선과 악의 과보가 없다’고 하였습니까?”
시리야바가 대답하였다.
“그러하였소.”
그러면 그때에는 마땅히 조언하여 말한다.
“장로여, 악하고 삿된 견해를 일으키지 마시오. 악하고 삿된 견해를 일으킨 자는 착하지 못하여서 악도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갈 것이오. 내가 이제 자비한 마음으로 그대를 이롭게 하려고 그대에게 조언하오. 한 번의 조언이 지나가도 두 번째 조언이 있을 것이오. 그러니 이 견해를 버리겠습니까?”
시리야바가 대답하였다.
“이는 좋은 견해이고 선한 견해요, 부모와 이전의 스승들이 서로 이어와서 항상 이와 같은 견해를 가졌으니, 내가 버릴 수 없소.”
이렇게 두 번째 조언에도 그치지 않고 세 번째의 조언에도 그치지 않기에 여러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세 번 조언하여도 이렇게 그치지 않는 자는 승단에서 마땅히 거갈마를 행해야 한다.
갈마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
“대덕 스님들은 들으소서. 시리야바가 악하고 삿된 견해를 일으키어
말하기를 ‘살생은 스스로 죽이든지 남을 시켜 죽이든지, 또한 악을 지어도 앙화가 없고 선을 행해도 복이 없으며, 금세와 후세의 선과 악의 과보가 없다’고 하기에 이미 가려진 곳에서 세 번 조언하였고, 여러 사람 가운데서 세 번 조언하였어도 그래도 버리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스님들이여 때가 이르렀으면 승단에서 이제 마땅히 세 번 권고해야 하겠습니다.”
이때 스님들이 물었다.
“시리야바 장로여, 그대가 실제로 말하기를 ‘살생은 스스로 죽이든지 남을 시켜 죽이든지, 또한 악을 지어도 앙화가 없고 선을 지어도 복이 없어서 금세와 후세의 선과 악의 과보가 없다’고 하였기에 이미 가려진 곳에서 세 번 조언하고 여러 사람 가운데서 세 번 조언하였어도 이 일을 버리지 않았는가?”
시리야바가 대답하였다.
“사실입니다.”
그러면 승단에서 마땅히 권고한다.
“장로여, 그대는 악하고 삿된 견해를 일으키지 마시오. 이는 착하지 못한 것이어서 악도에 떨어져 지옥에 들어가게 되오. 여러 스님들이 자비한 마음으로 그대를 이롭게 하려고 그대에게 조언하오. 한 번의 조언이 지나가도 두 번째의 조언이 있을 것이니, 이 견해를 버리겠습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이는 좋은 견해요, 선한 견해이어서 부모와 이전 스승들이 서로 이어오면서 이와 같은 견해를 지었으니, 내가 버리지 못하겠소.”
이렇게 한 번 조언하여도 그치지 않고, 또한 세 번 조언하여도 그치지 않았다.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가서 아뢰니,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이 시리야바가 악하고 삿된 견해를 일으켜서 세 번 조언하여도 그치지 아니하니, 승단에서 마땅히 불사악사견 거갈마(不捨惡邪見擧竭磨)를 행해야 한다.”
갈마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
“대덕 스님들은 들으소서. 이 시리야바 비구가 악하고 삿된 견해를 일으켰기에 이미 가려진 곳에서 세 번 조언하였고, 여러 많은 사람 가운데서 세 번 조언하였으며, 승단에서 세 번 권고하여도 그치지 아니합니다. 때가 이르렀으면 승단에서 이제 시리야바에게 불사악사견 거갈마를 행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아룁니다.”
이와 같이 한 번 고하고 세 번 갈마를 하며, 또한 스님들이 승인하여 잠자코 있으면 이 일을 이와 같이 행한다.

또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마루가자(摩樓伽子) 비구가 변견(邊見)을 일으키어 이렇게 말하였다.
“세계는 끝이 있는가? 세계는 끝이 없는가?”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장로여, 변견을 일으키지 마시오. 이는 악한 견해여서 악도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갈 것이오.”
마루가자가 대답하였다.
“이는 좋은 견해이고 착한 견해여서 부모와 이전의 스승들이 서로 이어오면서 항상 이와 같은 견해를 가졌으니, 내가 버릴 수 없소.”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가서 아뢰니,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마루가자 비구가 변견을 일으켜서 이렇게 말하였다. ‘세계가 끝이 있는가? 세계가 끝이 없는가?’ 그러므로 그를 마땅히 가려진 곳에서 세 번 조언하고, 여러 많은 사람 가운데서 세 번 조언하고, 승단에서 세 번 권고하여라.”
‘가려진 곳에서 조언한다’고 하는 것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그에게 묻는다.
“장로여, 그대가 실제로 변견을 일으켜 말하기를 ‘세계가 끝이 있는가, 세계가 끝이 없는가?’라고 하였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사실입니다.”
그때 마땅히 조언하였다.
“장로여, 이는 악한 견해여서 악도에 떨어져 지옥에 들어가게 되오. 내가 이제 자비한 마음으로 그대를 이롭게 하려고 그대에게 조언하오. 한 번의 조언이 지나가도 두 번째의 조언이 있을 것이니, 이 견해를 버리겠습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이는 좋은 견해이고 선한 견해여서 부모와 이전의 스승들이 서로 이어오면서 항상 이와 같은 견해를 가졌으니, 나는 이 견해를 버릴 수가 없소.”
이와 같이 두 번째의 조언에도 그렇게 말하고, 세 번째의 조언에도 그렇게 말하여도 그 짓을 그만두지 않으면 여러 많은 사람 가운데서도 이와 같이 세 번 조언하고, 그래도 그만두지 않으면 승단에서 마땅히 거갈마를 행해야 한다.
갈마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
“대덕 스님들은 들으소서. 이 마루가자 비구가 번견을 일으켜 말하기를 ‘세계는 끝이 있는가, 세계는 끝이 없는가?’라고 하기에 이미 가려진 곳에서 세 번 조언하였고, 여러 많은 사람 가운데서 세 번 조언하여도 그치지 아니합니다. 스님들이여, 때가 이르렀으면 승단에서 또한 세 번 권고하겠습니다.”
스님들 가운데서 마땅히 물었다.
“장로여, 그대가 실제로 변견을 일으키어 ‘세계가 끝이 있는가? 세계가 끝이 없는가?’라고 하는 변견을 일으켰기에 이미 가려진 곳에서 세 번 조언하였고, 여러 많은 사람 가운데서 세 번 조언하였어도
이 견해를 버리지 않았는가?”
그가 대답하였다.
“사실입니다.”
그때는 승단에서 마땅히 그에게 권고한다.
“장로여, 변견을 일으키지 마시오. 이는 악한 견해로서 악도에 떨어져 지옥에 들어가게 되오. 승단에서 자비한 마음으로 그대를 이롭게 하려고 그대에게 권고하오. 한 번의 권고가 지나가도 두 번째의 권고가 있을 것이니, 이 견해를 버리겠습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이는 좋은 견해이고 선한 견해여서 부모와 이전의 스승들이 서로 이어오면서 항상 이와 같은 견해를 가졌으니, 내가 버릴 수 없소.”
이와 같이 두 번째 조언하고 세 번째 조언하여도 그치지 않았다.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가서 아뢰니,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이 마루가자 비구가 변견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가려진 곳과 여러 사람 가운데서 세 번 조언하여도 그치지 않는 자는 승단에서 마땅히 불사변견 거갈마를 행해야 한다.”
이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를 거갈마라 한다.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시리야바(尸利耶婆) 비구가 자주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장로여, 저에게 마나타(摩那埵)1)를 주소서.”
여러 비구들이 물었다.
“장로여, 어찌하여 마나타를 찾습니까?”
시리야바가 대답하였다.
“제가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였습니다.”
여러 비구들은 그가 자주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한 줄 먼저 알고 있기에 그에게 말하였다.
“시리야바 장로여, 스님들이 화합하여 함께 모여서 갈마를 행하기 어렵소. 그러므로 장로가 범한 모든 죄를 다 말하시오. 마땅히 일시에 갈마를 행해야 하겠소.”
이와 같이 두 번 세 번을 말하니, 시리야바가 대답하였다.
“내가 바로 이 죄를 범하였소.”
그래서 갈마를 행하고서 생각하였다.
‘내가 무엇 때문에 두 번씩 갈마를 행하겠는가? 마땅히 모든 것을 다 말하여 일시에 갈마를 행해야겠다.’
그리고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장로여, 나에게 마타나를 주시오.”
여러 비구들이 물었다.
“어찌해서 다시 마나타를 찾습니까?”
시리야바가 대답하였다.
“내가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였소.”
여러 비구들이 물었다.
“장로여, 어느 때에 범했습니까?”

시리야바가 대답하였다.
“그때에 범했습니다.”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내가 전번에 장로에게 말하기를 ‘스님들이 화합하여 갈마를 행하기 어렵다’고 하였소. 장로가 범한 것 모든 것을 다 말하시오. 마땅히 일시에 갈마를 행하겠소. 그때에는 어찌해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시리야바가 대답하였다.
“내가 죄를 지은 것이 부끄러워서 다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여러 비구들이 이 인연을 세존께 가서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리야바를 불러오너라.”
그가 오자, 부처님께서 앞의 일을 갖추어 물으셨다.
“그대가 실제로 그리하였느냐?”
시리야바가 대답하였다.
“사실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죄를 범할 때는 부끄러운 줄 알지 못하고서, 청정함을 구할 때에 어찌하여 부끄럽다고 여겼느냐? 이는 악한 일이어서 법이 아니요, 계율이 아니어서 부처의 가르침이 아니다. 이로는 착한 법을 크게 키우지 못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계율을 가진 비구가 다른 비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할 때[出罪時] 그가 죄가 있다고 말해도 알고, 죄가 없다고 말해도 알며, 죄를 숨겨도 알고, 숨기지 않아도 알며, 죄를 드러내어도 알고, 드러내지 않아도 알며, 마땅히 별주(別住)를 줄 것을 알고, 마땅히 별주를 주지 않을 것을 알며, 여법하게 별주를 주는 것도 알고, 여법하지 못하게 별주를 주는 것도 알며, 여법하게 바리바사(波利婆沙)2)를 행하는 것도 알고, 여법하지 못하게 바리바사를 행하는 것도 알며, 중간에 죄가 있는 것도 알고, 중간에 죄가 없는 것도 알며, 밤에 단정한 것도 알고, 밤에 단정치 못한 것도 알며, 수순하여 행하는 것도 알고, 수순하여 행하지 못하는 것도 알며, 마땅히 마나타를 주어야 할 것을 알고, 마땅히 마나타를 주어서는 안 될 것도 알며, 여법하게 마나타를 주는 것을 알고, 여법하지 못하게 마나타를 주는 것도 알며, 구경(究竟)에 마나타 주는 것을 알고, 구경에 마나타를 주어서는 안 될 것도 알며, 중간에 죄가 있는 것을 알고, 중간에 죄가 없는 것도 알며, 밤에 단정한 것을 알고, 밤에 단정하지 못함도 알며, 수순하여 행하는 것을 알고, 수순하여 행하지 못하는 것도 알며,
마땅히 아부가나(阿浮呵那)3)를 줄 것을 알고, 마땅히 아부가나를 주어서는 안 될 것도 알며, 여법하게 아부가나를 줄 것을 알고, 여법하게 아부가나를 주어서는 안 될 것도 알며, 함께 죄를 숨기는 것도 알고, 함께 죄를 숨기지 못하는 것도 알며, 한량없이 죄를 숨기는 것도 알고, 비사차각(比舍遮脚)도 알며, 혹은 죄가 있어 합하고, 밤에 합하는 것이 아니며, 혹은 밤에 합하고, 죄가 합하는 것이 아니며, 혹은 죄가 합하고, 밤에도 합하며, 혹은 죄로 합하는 것도 아니고, 밤에 합하는 것도 아니어서 근본 죄든지 중간 죄이든지 비구가 네 가지의 법을 성취해야 계율을 지킨다고 한다.
어떤 것들을 네 가지로서 계율을 지킨다고 하는가? 죄를 알고 죄 없음을 알고, 무거움을 알고 가벼움을 아는 것이니, 이를 네 가지의 법이라 한다.
또는 네 가지의 법을 성취하여야 계율을 지킨다고 하니, 죄를 알고, 죄 없음을 알고, 무거운 죄를 가볍다고 보지 말고, 가벼운 죄를 무겁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니, 이를 네 가지의 법이라고 한다.
또는 네 가지의 법을 성취해야 하니, 죄를 알고, 죄 없음을 알고, 죄 없는 사람을 죄가 있다고 말하지 말고, 죄 있는 사람을 죄가 없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네 가지의 법이라고 한다.
또는 네 가지의 법을 성취해야 하니, 무거운 죄를 가벼운 죄로 여기지 말고, 가벼운 죄를 무거운 죄로 여기지 말며,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을 죄를 범한 사람으로 여기지 말고, 죄를 범한 사람을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으로 여기지 말 것이니, 이를 네 가지라 한다.
또는 다섯 가지의 법을 성취하여야 계율을 지킨다고 말하니, 다툼을 잘 알고, 다툼이 일어난 곳을 잘 알고, 다툼을 처리하는 일을 잘 알고, 다툼을 처리하는 분별을 잘 알고, 다툼을 처리하여 그치게 함을 잘 아는 것이니, 이를 다섯 가지라 한다.
또는 여섯 가지의 법을 성취하여야 하니, 앞의 다섯 가지 일에 다시 다툼을 처리하는 결집(結集)을 더 보탠 것이니, 이를 여섯 가지라 한다.
또는 일곱 가지의 법을 성취해야 하니, 죄를 아는 것과 죄 없음을 아는 것과 무거운 죄인 줄 아는 것과 가벼운 죄인 줄 아는 것과 무거운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과 가벼운 죄를 무겁게 여기지 않는 것과 갈마를 잘 할 줄 아는 것이니, 이를 일곱 가지라 한다.
또는 여덟 가지의 법을 성취해야 하니, 앞의 일곱 가지 일에 다시 바라제목차를 잘 외우는 것을 더한 것으로서 자세하고 간략한 계율에서 연기(緣起)를 아는 것이니, 이를 여덟 가지라 한다.
또는 아홉 가지의 법을 성취해야 한다.
어떤 것들을 아홉 가지라 하는가? 앞의 여덟 가지의 일에 다시 계율을 잘 외워서 뜻을 잘 알아 잊지 않고, 견해가 투철하여 갈마할 줄을 잘 아는 것이니, 이를 아홉 가지라 한다.
또는 열 가지의 법을 성취해야 하니, 앞의 아홉 가지의 일에 다시 여러 근을 잘 다스려 범행이 만족하고 깊이 갈마할 줄 아는 것이니, 이를 열 가지라고 한다.
또는 다섯 가지의 법을 성취하여야 계율을 가진다고 말하니, 어떤 것들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계율을 가지고 죄를 알고 죄 없음을 알고 바라제목차를 외워서 간략한 것과 자세한 것의 뜻에 대해 그 연기를 알고 갈마하는 방법을 잘 아는 것이니, 이를 다섯 가지라 한다.
또는 네 가지의 법을 성취하여야 하니, 어떤 것들을 네 가지라 하는가? 계율을 가지고 죄를 알고 죄 없음을 알고 갈마할 줄을 잘 아는 것이니, 이를 네 가지라 한다.
또는 세 가지의 법을 성취해야 하니, 죄를 알고 죄 없음을 알고 갈마할 줄을 잘 아는 것이니, 이를 세 가지라고 한다. 또는 두 가지의 법을 성취해야 한다. 어떤 것들을 두 가지라 하는가? 죄를 알고 죄 없음을 아는 것이니, 이를 두 가지라고 한다.
또는 한 가지의 법을 성취해야 한다. 무엇을 한 가지라 하는가? 갈마할 줄을 잘 아는 것이니, 이를 계율을 가진다고 한다.
그밖에 열네 가지의 법을 성취하여야 이를 계율을 지킨다 하니, 이를 계율을 가지는 제1이라고 한다. 여래ㆍ응공ㆍ정변지를 제하고서 제1이다. 어떤 것들을 열네 가지라 하는가? 죄를 아는 것과 죄 없음을 아는 것과 무거운 죄를 아는 것과 가벼운 죄를 아는 것과 죄를 숨기는 것을 아는 것과 죄를 숨기지 않음을 아는 것과 죄를 다스릴 것임을 아는 것과 죄를 다스릴 수 없음을 아는 것과 청정한 얻음을 아는 것과 청정치 못한 얻음을 아는 것과 4선(禪)의 공덕에 머묾을 얻어서 현재 법락을 얻는 것과 천안통ㆍ천이통ㆍ숙명통을 얻는 것과 유루(有漏)가 다함을 얻는 것과 무루(無漏)를 얻는 것이니, 이를 열네 가지의 법이라 하여 모든 계율을 지키는 가운데 제1이 된다. 여래ㆍ응공ㆍ정변지를 제하고서 제1이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우바리(優波離) 비구는 이 열네 가지의 법을 성취하여서 계율을 지키는 데 제일이다. 죄 있는 것도 알고 죄 없는 것도 알며, 또한 유루가 다 없어져서 무루의 지혜 해탈을 얻었다.”
‘죄 있음을 안다’고 하는 것은 다섯 가지의 죄를 아는 것이니, 바라이의 죄와 승가바시사의 죄와
바야제 죄와 바라제제사니 죄와 월비니의 죄를 다 아는 것이다 ‘바라이’라고 하는 것은 음행과 도둑질과 남의 목숨을 끊으면서 스스로 과인(過人)의 법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승가바시사’의 죄라 하는 것은 일부로 정액(精液)을 내서 서로 접촉하고 악한 말을 하며, 또한 마을 가운데서 남의 집을 더럽히는 것이다.
‘바야제’라고 하는 것은 30가지의 니살기(尼薩耆)와 92가지의 순바야제(純波若提)이다.
‘바라제제사니’라고 하는 것은 아련야에서 병이 없이 비구니에게서 먹을 것을 취하거나 비구니가 지시하는 대로 먹으면서 학가(學家)의 일을 맡아보게 되는 것이다.
‘월비니’의 죄라 하는 것은 열세 가지가 있으니, 아차여(阿遮與)와 투란차(偸蘭遮)와 추투란(醜偸蘭)과 부작(不作)과 불어(不語)와 돌길라(突吉羅)와 악성(惡聲)과 위의(威儀)와 위의가 아닌 것[非威儀]과 악한 위의[惡威儀]와 악하고 삿된 생활[惡邪命]과 악한 견해[惡見]와 마음으로 후회하는 것에 대한 계율이다.
‘아차여’라고 하는 것은 외도 수심마(須深摩)와 존자 발타리(跋陀梨)와 왕사성의 비구니 같은 이가 모두 부처님을 향하여 잘못을 뉘우쳤으니, 이를 아차여라고 한다.
‘투란차’라고 하는 것은 도둑질을 하는 것으로서 5전(錢)이 못 되든지 5전을 움직이든지 물건이 땅에서 떠나지 않았든지 하는 것이니, 이를 투란차라고 한다.
‘추투란’이라고 하는 것은 염오된 마음으로 성기(性器)를 희롱하는 것이니, 이를 추투란이라 한다.
‘부작’이라고 하는 것은 화상과 아사리에게 이 일을 함께 하겠다고 말하고서 공법(共法)으로 마땅히 하여야 한다. 만일 그 일을 하지 않는 자는 월비니의 죄를 범한다. 화상과 아사리가 부인을 불러오라고 말해서 술을 가져오게 하면 마땅히 화상과 아사리에게 말한다.
“제가 듣기로는 법 가운데는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부작이라 한다.
‘불어’라 하는 것은 화상과 아사리가 함께 말을 할 때, 듣고도 대답하지 않으면 월비니의 죄를 범한다. 그러나 입 속에 음식이 있어도 음성이 다르지 않으면 응답을 하고, 그렇지 못하면 먹던 것을 삼킨 뒤에 대답을 한다. 만일 화상과 아사리가 이렇게 말한다.
“어찌해서 내 말을 듣고도 응답하지 않느냐?”
그러면 마땅히 화상과 아사리에게 말한다.

“저의 입에 음식이 있어서 이 때문에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불어라고 한다. ‘돌길라’라 하는 것은 세존께서 우타이에게 말씀하셨다.
“육군비구들과 다른 비구들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이와 같은 것을 일러서 돌길라라고 한다.
‘나쁜 소리’라고 하는 것은 코끼리와 말과 소와 나귀와 낙타 등의 모든 축생의 소리로서 길게 끌고 짧게 끊든지, 짧게 끌고 길게 끊는 것이니, 이를 악한 소리라 한다.
‘위의’라고 하는 것은 새벽에 일어나서 마땅히 세숫물을 내놓고 대소변을 행하는 곳에는 마땅히 대소변을 행하는 곳에 더해야 하며, 독의 물은 마땅히 탑원(塔院)과 승방원(僧房院)을 소제하는 데 충당해야 한다. 만일 취해서 일하는 데 주고, 또한 끈 한 올이라도 화상이나 의지 아사리에게 고하지 않으면 월비니의 죄를 범하니, 이를 위의라고 한다.
‘위의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머리를 치장하고 눈을 장엄하게 꾸미고 좋은 빛을 하고, 옷을 다듬이질하여 입고 빛이 나는 명주 띠로 허리를 매고, 발우를 쪼여 빛이 나게 하고 거울로써 얼굴을 비추는 것을 위의가 아니라고 한다.
‘악한 위의’라고 하는 것은 몸으로 악한 위의를 하고 입으로 악한 위의를 하고 몸과 입으로 악한 위의를 짓고, 몸에 해롭고 입에 해롭고 몸과 입에 해롭고 몸에 삿된 생활을 하고 입에 삿된 생활을 하고 몸과 입에 삿된 생활을 하는 것 등, 이를 악한 위의라고 한다.
‘악하고 삿된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몸으로 잘못된 짓을 하고 입으로 잘못된 짓을 하고 마음으로 잘못된 짓을 하면서, 친절하고 사랑함을 나타내어 공양 받기를 희망하는 것이니, 이를 악하여 삿된 생활이라 한다.
‘악한 견해’라 하는 것은 단견(斷見)과 상견(常見) 등 일체의 소견이니, 이를 악한 견해라고 한다.
‘마음으로 뉘우치는 비니’라고 하는 것은 중학(衆學)의 위의로써 마음으로는 악을 생각하나 일부러 여인과 접촉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다 마음으로 뉘우친다고 하며 마음으로 뉘우치는 비니라고 한다.
혹은 죄가 욕심으로부터 나는 것이 있고, 혹은 죄가 진에(瞋恚)로부터 나는 것이 있으며, 혹은 죄가 우치(愚癡)로부터 나는 것이 있으며, 혹은 죄가 욕심 진에와 우치로부터 나지 않는 것이 있고, 혹은 죄가 몸으로 행하는 것이지 입으로 행하는 것이 아님이 있으며,
혹은 죄가 입으로 행하는 것이지 몸으로 행함이 아님이 있으며, 혹은 죄가 몸과 입으로 행하는 것이며, 혹은 죄가 몸과 입으로 행함이 아니며, 혹은 죄가 자신으로부터 나서 다른 이의 몸이 아니며, 혹은 죄가 다른 이의 몸으로부터 나서 자기의 몸이 아니며, 혹은 죄가 자기의 몸과 다른 이의 몸으로부터 나며, 혹은 죄가 자기 몸에서 나옴도 아니고 다른 이의 몸에서 나옴도 아니며, 혹은 죄가 자기 입으로부터 나와서 다른 이의 입에서 나옴이 아니며, 혹은 죄가 다른 이의 입으로부터 나오고 자기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혹은 죄가 자기 입으로부터 나오기도 하고, 또는 다른 이의 입으로부터 나오기도 하며, 혹은 죄가 자기 입으로부터 나옴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이의 입으로부터 나옴도 아니다.
혹은 죄가 마음을 취하고 일을 취함이 아니며, 혹은 죄가 일을 취하고 마음을 취함이 아니며, 혹은 죄가 일을 무겁게 여기고 마음을 무겁게 여기지 아니하며, 혹은 죄가 마음을 무겁게 여기고 일을 무겁게 여기지 아니하며, 혹은 죄가 일을 무겁게 여기고 마음도 무겁게 여기며, 혹은 죄가 일을 무겁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마음을 무겁게 여기지도 아니하며, 혹은 죄가 자기의 물건에서 나오며 다른 이의 물건에서가 아니며, 혹은 죄가 다른 이의 물건에서이며 자기의 물건에서가 아니며, 혹은 죄가 자기 물건에서이고 또는 다른 이의 물건에서이며, 혹은 죄가 자기 물건에서도 아니고 다른 이의 물건에서도 아니며, 혹은 죄가 한 장소에서 여러 많은 죄를 범하기도 하며, 혹은 죄가 여러 많은 장소에서 한 죄를 범하기도 하며, 혹은 무죄를 인연하여 유죄에 이르며, 혹은 유죄를 인연하여 무죄에 이르며, 혹은 유죄를 인연하여 유죄에 이르고, 혹은 무죄를 인연하여 무죄에 이르며, 흑은 죄가 무거운데서 가벼운 데 이르며, 혹은 죄가 가벼운 데서 무거운데 이르며, 혹은 죄가 무거운 데서 무거운 데 이르며, 혹은 죄가 가벼운 데서 가벼운데 이른다.
혹은 받을 때의 죄와 먹을 때의 죄가 있으며, 혹은 일을 이루면 죄가 되며, 받지 않으면 죄를 얻고 받으면 죄가 없으며, 주지 않으면 죄를 얻고 주면 죄가 없으며, 혹은 죄가 마을에서는 되고 아련야에서는 되지 않으며, 혹은 죄가 아련야에서는 되지만 마을에서는 되지 않으며, 혹은 죄가 마을에서도 되고 아련야에서도 되며, 혹은 마을에서도 되지 않고 아련야에서도 되지 않으며, 혹은 죄가 제때[時]에는 되고 제때가 아닌 때[非時]에는 되지 않으며 혹은 제때가 아닌 때에는 되고 제때에는 되지 않으며
혹은 제때에도 되고 제때가 아닌 때에도 되며 혹은 제때에도 되지 않고 제때가 아닌 때에도 되지 않으며, 혹은 죄가 밤에는 되고 낮에는 되지 않으며, 혹은 죄가 낮에는 되고 밤에는 되지 않으며, 혹은 죄가 밤에 되기도 하고 낮에 되기도 하며, 혹은 죄가 밤에도 되지 않고 낮에도 되지 않으며, 혹은 죄가 숨은 곳에서 되고 드러난 곳에서는 안 되며, 혹은 죄가 드러난 곳에서는 되고 숨은 곳에서는 안 되며, 혹은 죄가 숨은 곳에서 되기도 하고 드러난 곳에서 되기도 하며, 혹은 죄가 드러난 곳에서는 안 되고 숨은 곳에서도 안 된다.
혹은 죄가 행하는 곳에서는 되고 머무는 곳에서는 안 되고, 혹은 죄가 머무는 곳에서 되고 행하는 곳에서가 안 되며, 혹은 죄가 행하는 곳에서 되기도 하고 머무는 곳에서 되기도 하며, 혹은 죄가 행하는 곳에서는 안 되고 머무는 곳에서도 안 되며, 혹은 죄가 머무는 곳에서 되고 앉는 곳에서 되는 것이 아니며, 혹은 죄가 앉는 곳에서 되고 머무는 데서 되지 아니하며, 혹은 죄가 앉는 데서 되기도 하고 머무는 데서 되기도 하며, 혹은 앉는 데서 되는 것도 아니고 머무는 데서 되는 것도 아니며, 혹은 죄가 앉는 데서 되고 누워 잠자는 데서 되는 것이 아니며, 혹은 죄가 잠자는 데서 되고 앉는 데서 되는 것이 아니며, 혹은 앉는 데서 되기도 하고 잠자는 데서 되기도 하며, 혹은 앉는 데서 되는 것이 아니고 잠자는 데서 되는 것도 아니며, 혹은 죄가 잠자는 데서 되고 행하는 데서 되는 것이 아니며, 혹은 죄가 행하는 데서 되고 잠자는 데서 되는 것이 아니며, 혹은 죄가 행하는데서 되기도 하고 잠자는 데서 되기도 하며, 혹은 죄가 잠자는 데서 되는 것도 아니고 고행하는 데서 되는 것도 아니다.
혹은 가려진 곳에서는 죄가 되고 사람이 많은 데서는 되는 것이 아니며, 혹은 죄가 사람이 많은 데서는 되고 가려진 곳에서는 되는 것이 아니며, 혹은 죄가 가려진 곳에서는 되기도 하고 사람이 많은 데서는 되기도 하며, 혹은 죄가 가려진 곳에서는 되지 않고 사람이 많은 데서는 되는 것도 아니며, 혹은 죄가 사람이 많은 데서는 되고 승단에서는 되는 것이 아니며, 혹은 죄가 승단에서는 되고 사람이 많은 데서는 되는 것이 아니며, 혹은 죄가 사람이 많은 데서는 되기도 하고 승단에서는 되기도 하며, 혹은 죄가 사람이 많은 데서는 되는 것이 아니고 또는 승단에서 되는 것도 아니며, 혹은 죄가 승단에서는 되는 것이고 가려진 곳에서는 되는 것이 아니며, 혹은 죄가 가려진 곳에서는 되고 승단에서는 되는 것이 아니며, 혹은 죄가 승단에서는 되기도 하고 가려진 곳에서는 되기도 하며, 혹은 죄가 승단에서는 되는 것도 아니고 가려진 곳에서는 되는 것도 아니며, 혹은 죄가 겨울에 이루어지고 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혹은 죄가 봄에 이루어지며 겨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혹은 죄가 겨울에도 이루어지고 봄에도 이루어지며, 혹은 죄가 겨울에도 이루어지지 않고 봄에도 이루어지지 않으며, 혹은 죄가 봄에 이루어지며 여름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혹은 죄가 여름에 이루어지며 봄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혹은 죄가 봄에 이루어지기도 하고 여름에 이루어지기도 하며, 혹은 죄가 봄에도 이루어지지 않고 여름에도 이루어지지 않으며, 혹은 죄가 여름에 이루어지고 겨울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혹은 죄가 겨울에 이루어지고 여름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혹은 죄가 여름에 이루어지기도 하고 겨울에 이루어지기도 하며, 혹은 죄가 여름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겨울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 것이다.
‘죄가 욕심으로부터 생긴다’고 하는 것은 일부러 성기를 희롱하여 접촉하는 것이다. 악한 말을 스스로 일컫든지 중매쟁이를 통해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체의 염오된 마음으로 말하는 것을 욕심으로부터 생긴다고 한다.
‘죄가 진에로부터 생긴다’고 하는 것은 근거 없이 비방하고 헐뜯으며, 이간질하는 말[兩舌]로 싸우고, 어지럽히며 쫓아내고, 식사가 이미 만족한 줄 알면서도 일부러 괴롭히고, 마을에서 쫓아내고 주먹으로 때리고, 손으로 잡으며 가려진 곳에서 듣는 것들이니, 이를 진에로부터 생긴다고 한다.
‘죄가 어리석음으로부터 생긴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마음으로 이르기를 “진실로 세계는 유상(有常)한가, 무상(無常)한가?”라고 하는 일체의 견해를 어리석음으로부터 생긴다고 한다.
‘죄가 욕심과 진에와 어리석음으로부터 생김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아라한이 범하는 것이니, 이를 욕심과 진에와 어리석음으로부터 생김이 아니라고 한다.
‘죄가 몸에서 일어나고 입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여인과 한방에 있고, 구족계를 받지 아니한 사람이 세 밤이 지나도록 있고, 한 걸상에서 앉고 곳곳에서 먹고 따로 모여 먹고 같은 그릇에 먹는 것이니, 이를 몸으로 죄를 짓고 입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죄가 입으로 이루어지고 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일체를 입으로 분류하는 것이니, 이를 입으로 죄를 짓고 몸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죄를 몸과 입으로 짓는다’고 하는 것은 근거 없이 비방하고 헐뜯고, 이간질 하여 싸우고, 어지럽게 하며 쫓아내고, 먹은 것에 만족하면서 일부러 괴롭히고, 마을에서 쫓아내고, 주먹으로 때리고, 손으로 잡으며 가려진 곳에서 듣는 것이니, 이를 몸과 입으로 짓는다고 한다.
‘죄를 몸과 입으로 짓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죄는 마음으로부터 나는 것이니, 이를 몸과 입으로 이루어짐이 아니라고 한다.
‘죄가 자기 몸에서 이루어지고 다른 이의 몸에서 이루어짐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진에하여 스스로 몸을 때리는 것을 자기의 몸에서 이루어지고 다른 이의 몸에서 이루어짐이 아니라고 한다.
‘죄가 다른 이의 몸에서 이루어지고 자기의 몸에서 이루어짐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다른 이의 음행과 도둑질과 사람을 죽이고 죄를 숨겨 감춤을 보는 것이니, 이를 다른 이의 몸에서 이루어지고 자기의 몸에서 이루어짐이 아니라고 한다.
‘죄가 자기 몸에서도 이루어지고
다른 이의 몸에서도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여인과 한방에서 자며, 구족계를 받지 아니한 사람이 세 밤이 지나도록 한 걸상에 자며 한 걸상에 앉으며, 곳곳에서 먹고 따로 모여 먹고 같은 그릇에 먹는 것이니, 이를 죄가 자기 몸에서 이루어지고 다른 이의 몸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죄가 자기 몸에서 이루어 지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이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모두 입으로 분류하는 것이니,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이 구법(句法)을 설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를 자기 몸에서 이루어짐도 아니고 다른 이의 몸에서 이루어짐도 아니라고 한다.
‘죄가 자기의 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다른 이의 입으로 이루어짐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일체의 입으로 지은 죄이니, 오직 구족계를 받지 아니한 사람으로서 구법 설함을 제외한다. 이를 자기의 입으로 지은 죄요, 다른 이의 입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죄가 다른 이의 입에서 이루어지고 자기의 입에서 이루어짐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비구 스님들 가운데서 비법(非法)으로 일을 처단하여 여욕(與欲)을 하지 않고 또는 불욕(不欲)을 보는 것을 주지도 않으며 잠자코 허물을 듣는 것, 이를 다른 이의 입에서 죄가 이루어지고 자기 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죄가 자기 입에서도 이루어지고 다른 이의 입에서도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구족계를 받지 아니한 사람과 더불어 구법을 설하는 것이니, 이를 죄가 자기 입에서 이루어지고 다른 이의 입에서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죄가 자기 입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다른 이의 입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죄가 몸과 마음으로부터 나기 때문이니, 이를 자기 입에서 이루어짐도 아니요, 다른 이의 입에서 이루어짐도 아니라고 한다.
‘죄가 마음에서 이루어지고 일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마땅히 묻기를 “어느 마음으로 도둑질을 하고 어느 마음으로 사람을 죽이고 어느 마음으로 여인을 접촉하고 어느 마음으로 생초를 끊고 어느 마음으로 땅을 팝니까?”라고 하는 것이니, 이를 마음에서 이루어지고 일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죄가 일에서 일어나고 마음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어느 마음으로 음행을 하고, 어느 마음으로 때 아닌 때에 먹고, 어느 마음으로 술을 마시고 어느 마음으로 여인과 한방에서 자고 구족계를 받지 아니한 사람과 세 밤이 지나도록 자는가를 물어서는 안 된다. 죄를 범하는 자는 여법하게 다스릴 뿐이니, 이를 일에서 죄가 일어나고 마음에서 죄를 따지지 않는다고 한다.
‘죄 중에서 일로 생긴 것이 무겁고 마음으로 생긴 것이 무겁지 않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때 아닌 때인데 이를 먹을 때라 하여 먹는 자는 바야제의 죄를 범하니, 이를 일에서 생긴 것이 무겁고 마음에서 생긴 것이 무겁지 않다고 한다.
‘죄가 마음에서 생긴 것이 무겁고 일에서 생긴 것이 무겁지 않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식사할 때인데 때 아니라 하여 먹는 것이니,
월비니의 죄를 범한다. 이를 마음에서 생긴 것이 무겁고 일에서 생긴 것이 무겁지 않다고 한다.
‘죄가 일에서 생긴 것이 무겁고 마음에서 생긴 것도 무겁다’고 하는 것은 때 아닌 때를 때 아니라고 하여 먹는 것은 바야제 죄를 범하는 것이니, 이를 일에서 생긴 것이 무겁고 마음에서 생긴 것도 무겁다고 한다.
‘죄가 일에서 생긴 것도 가볍고 마음에서 생긴 것도 가볍다’고 하는 것은 중학과 위의이니, 이를 일에서 생긴 것이 가볍고 마음에서 생긴 것도 가볍다고 한다.
‘죄가 자기의 물건에서 생기고 다른 이의 물건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비구가 자기의 재물을 도둑질할 마음에서 취하면 투란차의 죄를 범하니, 이를 자기 물건에서 생기고 다른 이의 물건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죄가 다른 이의 물건에서 생기고 자기의 물건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비구 도둑질할 마음에서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였을 적에 5전이 덜된 것을 훔치면 투란차의 죄를 범하고, 5전이 찼으면 바라이의 죄를 범하니, 이를 죄가 다른 이의 물건에서 생기고 자기의 물건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죄가 자기 물건과 다른 이의 물건에서 생긴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함께 다른 이의 물건을 도둑질할 마음으로 취할 적에 5전이 덜된 것을 취하면 투란차의 죄를 범하고, 5전이 찬 것을 취하면 바라이의 죄를 범하니, 이를 죄가 자기의 물건과 다른 이의 물건에서 생긴다고 한다.
‘죄가 자기 물건에서 생기지도 않고 다른 이의 물건에서 생긴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비구가 도둑질할 마음으로 주인 없는 물건을 취하는 것은 월비니의 죄를 범하니, 이를 자기 물건에서 생긴 것도 아니요, 다른 이의 물건에서 생긴 것도 아니라고 한다.
‘한 곳에서 여러 죄를 범한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한 곳에서 여덟 가지의 좋은 음식을 얻어서 각각 따로 먹는 경우에는 여덟 가지의 바야제의 죄를 범하니, 이를 한곳에서 여러 죄를 범한다고 한다.
‘여러 곳에서 하나의 죄를 범한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여러 곳에서 빌어 여덟 가지의 좋은 음식을 얻어 한 자리에서 먹는 경우이니, 하나의 바야제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를 여러 곳에서 하나의 죄를 범한다고 한다.
‘여러 곳에서 여러 죄를 범한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여덟 곳에서 빌어 여덟 가지의 좋은 음식을 얻어서 각각 먹는 경우에 여덟 가지 바야제의 죄를 범하니, 이를 여러 곳에서 여러 죄를 범한다고 한다.
‘한 곳에서 한 죄를 범한다’고 하는 것은 한 곳에서 여덟 가지의 좋은 음식을 얻어서 한 곳에서 먹는 것이니, 이를 한 곳에서 하나의 죄를 범한다고 한다.

‘무죄에서 유죄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죄가 없다가 죄를 짓고 회과(悔過)를 하면 월비니의 죄를 범하니, 이를 무죄에서 유죄에 이른다고 한다.
‘유죄에서 무죄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작은 방사와 큰 방사가 모직물 일체를 만들었고, 또한 세 번 조언하는 것이니, 이를 유죄에서 무죄에 이른다고 한다.
‘유죄에서 유죄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승단에서 바라제목차를 설할 때에, 또한 세 번 물을 때 죄가 있으면 법답게 짓고, 죄가 없으면 잠자코 있어야 한다. 그때 죄가 있으면서 법답게 짓지 않고, 또는 남에게 말하지 않으며, 또는 ‘내가 청정하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기다려 마땅히 여법하게 지어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잠자코 있으면 월비니의 죄를 범하니, 이를 유죄에서 유죄에 이른다고 한다.
‘무죄에서 무죄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짓지 않고 범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무죄에서 무죄에 이른다고 한다.
‘무거운 데서 가벼운 데 이른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바야제의 죄를 범하고 악하고 삿된 변견을 가지고 거갈마를 입은 사람을 향하여 회과하는 것이니, 이를 무거운데서 가벼운 데에 이른다고 한다.
‘가벼운 데서 무거운 데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월비니의 죄를 범하고 경전을 비방하여 거갈마를 받은 사람을 향하여 회과하면 바야제를 얻는 것이니, 이를 가벼운 데서 무거운 데에 이른다고 한다.
‘무거운 데서 무거운 데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바야제의 죄를 범하고 경전을 비방하다가 거갈마를 받는 사람을 향하여 회과하면 바야제를 얻는 것이니, 이를 무거운 데서 무거운 데에 이른다고 한다.
‘가벼운 데서 가벼운 데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월비니의 죄를 범하고 구족계를 받지 아니한 사람을 향하여 참회하면 참회하였다고 할 수 없어서 다시 월비니의 죄를 얻는 것이니, 이를 가벼운 데서 가벼운 데에 이른다고 한다.
‘받을 때의 죄’라 하는 것은 날고기와 날곡식과 금과 은과 코끼리와 말과 낙타와 나귀와 소와 염소와 노비와 부녀와 전택(田宅)과 옥사(屋舍) 등이니, 이를 받을 때의 죄라고 한다.
‘먹을 때의 죄’라 하는 것은 따로 모여 먹는 것과 여러 곳에서 먹는 것과 같은 그릇에 먹는 것과 깨끗하지 않은 과일을 먹는 것이니, 이를 먹을 때의 죄라고 한다.

‘일을 이루는 죄’라 하는 것은 작은 방을 만들든지 큰 방을 만들든지 모두 두 번 조언하는 것을, 일을 이루는 죄라고 한다.
‘받지 않으면 죄를 얻고, 받으면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은 가치나(迦稀那) 옷을 받거나, 따로 모여 먹는 것과 곳곳에서 먹는 것과 이동식(離同食)과 여분의 옷을 고하지 않는 것과 옷을 벗고 자게 되면 다섯 가지 계율을 면제받게 되니, 이를 받지 않으면 죄를 얻고 받으면 죄가 없다고 한다.
‘주지 않으면 죄를 얻고 주면 죄가 없다’ 하는 것은 비구가 새 옷을 얻었을 때, 세 가지 색으로 괴색(壞色)을 하지 않고 하나하나의 색으로 괴색을 하여 깨끗이 하여 입는 자는 바야제의 죄를 범하니, 이를 주지 않으면 죄를 얻고 주면 죄가 없다고 한다.
‘혹은 죄가 마을에서는 이루어지고 아련야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승가리를 입지 않고 마을에 들어가든지 끈을 매지 않고 마을에 들어가든지 허리띠를 매지 않든지 발우를 가지지 않든지 말하지 않고 옮겨 먹든지 때 아닌 때에 마을에 들어가는 것, 이를 마을에서는 이루어지고 아련야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아련야에서는 죄이고 마을에서는 죄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비구가 도적 떼와 같이 가든지 여인과 같이 가든지 비구니와 같이 가든지 길을 함께 가기로 기약하는 자는 이를 아련야에서는 죄이고 마을에서는 죄가 아니라고 한다.
또한 ‘아련야에서도 이루어지고 마을에서도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과 칼을 들이대고 위협하는 것이니, 이를 아련야에서 이루어지고 마을에서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죄가 아련야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마을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것은 왕의 문을 말하며, 이를 아련야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죄가 제 때에는 되고 제 때가 아닌 때에는 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은 따로 모여 먹는 것과 여러 곳에서 먹는 것과 동기식(同器食)과 도식(挑食)과 여덟 가지의 좋은 음식과 부작정과식(不作淨果食)이니, 이를 제때에는 되고, 제때가 아닌 때에는 되지 않는다고 한다.
‘죄가 제때에는 안 되고, 제때가 아닐 때에는 된다’ 하는 것은 고하지 않고 제때가 아닐 때 마을에 들어가고 제때가 아닐 때 식사를 하고 날이 저물 때까지 비구니들과 교제하는 것이니, 이를 제때에는 안 되고, 제때가 아닐 때에는 된다고 한다.
‘죄가 제때[時]에도 되고, 제때가 아닌 때[非時]에도 된다’고 하는 것은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과 칼로 위협하는 것이니, 이를 제때[時]에도 되고, 제때가 아닌 때[非時]에도 된다고 하는 것이다.
‘죄가 제때가 아닐 때에 되고, 제때가 아님이 아닐 때에도 된다’고 하는 것은
정중(正中)의 때이니, 이를 제때가 아닐 때에 되고, 제때가 아님이 아닐 때에도 된다고 한다.
‘죄가 밤에 이루어지고 낮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은 여인과 한방에서 자는 것과 구족계를 받지 아니한 사람이 세 밤이 지나도록 자는 것과 해가 저물도록 비구니와 교계하는 것이니, 이를 밤에 이루어지고 낮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죄가 낮에 이루어지고 밤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은 별중식과 등등 부정과식이니, 이를 낮에 이루어지고 밤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죄가 낮에 이루어지기도 하고 밤에 이루어지기도 한다’고 하는 것은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이나 칼로 위협하는 것이니, 이를 낮에 이루어지기도 하고 밤에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죄가 낮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밤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밝은 상이 나을 때이니, 이를 낮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밤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죄가 숨은 곳에서 생기고 드러난 곳에서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여인과 한방에서 자고 구족계를 받지 아니한 사람이 세 밤을 한 곳에서 지내고 이부자리를 펴고 음란한 곳에 앉고 가려진 곳에 앉는 것이니, 이를 숨은 곳에서 생기고 드러난 곳에서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죄가 드러난 곳에서 생기고 숨은 곳에서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여러 스님들이 걸상과 요를 노지(露地)에서 스스로 펴든지 남을 시켜 펴고서 알리지 않고 25주(肘)를 떠나가면 바야제의 죄를 범하니, 이를 드러난 곳에서 생기고 숨은 곳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한다.
‘죄가 숨은 곳에서 생기기도 하고 드러난 곳에서 생기기도 한다’고 하는 것은 주먹으로 치거나 손바닥과 칼로 위협하는 것이다.
‘어찌해서 죄는 숨은 곳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요, 드러난 곳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가? 이는 지붕과 처마 밑에서 생기는 것이다.
어찌하여 죄는 행하는 곳에서 생기고 머무는 곳에서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가? 비구가 여인과 도적떼와 비구니와 함께 길을 가기로 기약하여 함께 갈 때, 승단에서나 화상이나 아사리가 가지 말라고 말하였는데 가는 자는 죄를 얻으니, 이를 행하는 데서 죄를 얻고 머무는 데서는 죄를 얻지 않는다고 한다.
‘어찌해서 죄는 머무는 데서 생기고 행하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가? 음녀 쪽에 머물거나 술 파는 쪽에 머물거나 도박하는 편에 머물거나 옥에 갇힌 죄인의 편에 머물거나 문에 이르러 머물러 서 있거나 승단과 화상과 아사리가 머물지 말라고 말하였는데 머무는 것은 죄를 얻으니, 이를 머무는 데서 죄가 생기고 행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무엇을 일러 죄는 행하는 데서도 생기고 머무는 데서도 생긴다’고 하는가?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과 칼로 위협하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죄는 행할 때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 머물 때에 생기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가? 이는 앉았을 때와 잘 때이다.
‘무엇을 일러 죄는 서 있는 데서 생기고 앉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가?
음녀 쪽에 서 있거나 또한 화상과 아사리가 서 있지 말라고 말하여도 서 있는 자는 죄를 얻는다.
‘무엇을 일러 죄는 앉는 데서 생기고 서 있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가? 이는 양이 지나치는 걸상에 앉거나 도라면(兜羅綿)을 저축하거나 요와 가죽과 좌구(坐具)와 음녀 쪽에 앉고 술 파는 집에 앉고 도박하는 쪽에 앉고 옥에 갇힌 죄수 쪽에 앉았을 적에 승단과 화상과 아사리가 앉지 말라고 말하여도 앉는 자는 죄를 얻는다.
‘무엇을 일러 죄는 서 있는 데서도 생기고 앉는 데서도 생긴다’고 하는가? 이는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과 칼로 위협하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죄는 서 있는 데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앉는 데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가? 이는 걸어 다닐 적과 잘 적에 생기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죄는 앉는 데서 생기고 잠자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가? 양에 지나치는 걸상에 앉거나, 또한 승단과 화상과 아사리가 앉지 말라고 말하였는데도 앉아 있는 자는 죄를 얻는다.
‘무엇을 일러 죄는 잠자는 데서 생기고 앉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라고 하는가? 여인과 한방에서 자고 구족계를 받지 아니한 사람이 세 밤이 지나도록 한 곳에 있고 양이 지나친 걸상과 도라면으로 만든 요와 가죽 좌구에 앉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죄는 앉는 데서 생기기도 하고 자는 데서도 생긴다’고 하는가?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과 칼로 위협하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죄는 앉는 데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자는 데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가? 이는 행할 때와 서 있을 때에 생기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죄는 잘 적에 생기고 행할 때에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가? 이는 여인과 한방에서 자고, 또한 가죽 요 위에서 자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죄는 행하는 데서 생기고 잠잘 때에는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가? 이는 비구가 여인과 도적떼와 더불어 가며, 또한 화상과 아사리가 가지 말라고 말하였는데도 가는 자는 죄를 얻는다.
‘무엇을 일러 죄는 자는 데서도 생기고 행하는 데서도 생긴다’고 하는가? 이는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과 칼로 위협하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죄는 잘 때에 생기지도 않고 행할 때에도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가? 이는 앉아 있을 때에도 생기고, 서 있을 때에도 생기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 죄는 으슥한 곳에서 생기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생기지 않는다’라고 하는가? 이는 가려진 곳에서 세 번 조언하여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 죄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생기고 가려진 곳에서는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가? 사람이 많은 가운데서 세 번 조언하여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 죄가 가려진 곳에서도 생기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생긴다’고 하는가? 이는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과 칼로 위협하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죄가 가려진 곳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가? 이는 승단에서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 죄가 여러 사람에서 생기고 승단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가? 이는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세 번 조언하여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 죄가 승단에서 생기고 여러 사람에게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가? 이는 승단에서 세 번 권고하여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 죄가 여러 사람에서 생기고 승단에서도 생긴다’고 하는가? 이는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과 칼로 위협하기 때문이다.‘무엇을 일러 죄가 여러 사람에게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승단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가? 이는 가려진 곳에서 세 번 권고하여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 죄가 승단에서 생기고 가려진 곳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가? 이는 승단에서 세 번 권고하여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 죄가 가려진 곳에서 생기고 승단이 아니라’고 하는가? 이는 가려진 곳에서 세 번 권고하여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 죄가 승단에서 생기기도 하고 가려진 곳에서 생기기도 한다’고 하는가? 이는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과 칼로 위협하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죄가 승단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가려진 곳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가? 이는 여러 많은 사람 가운데서 세 번 권고하여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 죄가 겨울에 일어나고 봄에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하는가? 이는 비구가 8월 15일에 이르러도 우욕의(雨浴衣)를 버리지 않고 그 달 16일에 이르러 버리면 월비니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죄가 봄에 이루어지고 겨울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가? 비구가 가치나의 옷을 받고서 섣달 15일에 이르면 마땅히 버려야 한다. 그런데 그달 16일에 이르러 버리는 자는 월비니의 죄를 범한다.
‘무엇을 일러 죄를 겨울에도 범하고 봄에도 범한다’고 하는가? 이는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과 칼로 위협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 죄가 겨울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봄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하는가? 이는 안거 때이다.
‘무엇을 일러 죄가 봄에 이루어지고 여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가? 이는 비구가 가치나의 옷을 받고서 버리지 않고 그 해 섣달 16일에 이르면 월비니의 죄를 범한다.
‘무엇을 일러 죄가 여름에 이루어지고 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가? 이는 비구가 4월 16일이 되면 마땅히 안거해야 하는데 안거하지 않는 자는 월비니의 죄를 범하고, 후안거(後安居) 때에 이르러서 다시 안거하지 않는 자는 두 가지 월비니죄를 범한다.
‘무엇을 일러 죄가 봄에 이루어지기도 하고 여름에 이루어지기도 한다’고 하는가? 이는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과 칼로 위협하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죄가 봄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여름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가? 이는 겨울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 죄가 여름에 이루어지고 겨울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가? 이는 두 가지 안거 때에 안거하지 않으면 두 가지 월비니 죄를 범한다.
‘무엇을 일러 죄가 겨울에 이루어지고 여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가? 8월 15일이 되면 마땅히 우욕의를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않아
그달 16일에 이르면 죄가 된다.
‘무엇을 일러 죄가 여름에도 이루어지고 겨울에도 이루어진다’고 하는가?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과 칼로 위협하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죄가 여름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겨울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가? 이는 봄의 때이니, 이를 죄가 여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니라고 한다. 또는 몸을 다스리지 않고 입을 다스리지 않고 몸과 입을 다스리지 않고, 몸으로 죄를 범하고 입으로 범하고 몸과 입으로 범하고, 몸으로 악한 행동을 하고 입으로 악한 행동을 하고 몸과 입으로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을 죄라고 한다. 죄가 없는 것은 몸을 다스리고 입을 다스리고 몸과 입을 다스리고 몸으로 죄를 짓지 않고 입으로 죄를 짓지 않고 몸과 입으로 죄를 짓지 않고, 몸으로 악한 행동을 하지 않고 입으로 악한 행동을 하지 않고 몸과 입에 악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죄가 없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계율을 지키는 비구가 죄를 지은 사람을 승단에 복귀시킬 때에는 죄가 있는 것도 알고 죄가 없는 것도 알며 죄를 숨긴 것도 알고 숨기지 않는 것도 알아야 한다.
‘숨긴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새벽에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것이 죄인 줄 알고서 덮어 감출 생각이 없다가 해가 뜰 때에 이르러서 죄를 덮어 감출 마음을 내어 다음날 새벽까지 이르렀으면 이를 하룻밤을 덮어 감춘다고 한다.
또는 ‘덮어 감춘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새벽에 승가바시사를 범하여서 이것이 죄인 줄 알고도 덮어 감출 생각이 없다가 식사할 때에 이르러 덮어 감출 마음을 내어 새벽까지 이르는 것은, 이를 하룻밤을 덮어 감춘다고 한다. 중간 때와 저녁때와 해가 질 때와 처음 밤과 중간 밤의 때에도 이와 같아서 비구가 새벽에 이르러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 이것이 죄인 줄 알아서 덮어 감출 마음을 짓지 아니하다가, 또한 후야(後夜)에 이르러서 이것이 죄인 줄 알고, 덮어 감출 마음을 내어 새벽까지 이르면 이를 밤과 낮, 두 때에 하룻밤의 덮어 감춤이라고 한다.
또 덮어 감춘다는 것은, 비구가 새벽에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도 이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하다가, 해가 날 때에 이르러 이것이 죄인 줄 알고서 덮어 감출 생각을 내지 않았고, 식사할 때에 이르러서 덮어 감출 마음을 내어
또한 새벽까지 이르는 것, 이를 하룻밤의 덮어 감추는 것이라 하니, 중간 때와 저녁때와 해가 질 때와 처음 밤의 때의 죄도 이와 같다. 비구가 새벽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 이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하고서, 또한 중간 밤에 이르러 이것이 죄인 줄 알고 덮어 감출 마음을 내지 않았다가 후야에 이르러서 덮어 감출 마음을 내어 새벽까지 이른 것을 3시의 하룻밤 덮어 감추는 것이라고 한다.
또 덮어 감추는 것이 있으니, 비구가 새벽에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도 이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하다가 식사할 시간에 이르러서 이것이 죄인 줄 알고 덮어 감출 마음을 짓지 않았다가 해의 중간쯤 되어서 이를 덮어 감출 마음을 지어 새벽까지 이르면 이를 하룻밤의 덮어 감추는 것이라고 한다. 저녁때와 해질 무렵과 처음 밤의 것도 이와 같아서 비구가 새벽에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도 이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하다가 중간 밤에 이르러 이것이 죄인 줄 알고 덮어 감출 마음을 짓지 않았다가 후야에 이르러 덮어 감출 마음을 내어 새벽까지 이르면, 이를 4시의 하룻밤 덮어 감추는 것이라고 한다.
또 덮어 감추는 것이 있으니, 비구가 새벽에 승가바시의 죄를 범하여 이것이 죄인 줄 알고 덮어 감출까, 덮어 감추지 말까를 유예(猶豫)하다가 해 돋을 때에 이르러 덮어 감출 마음을 내어 새벽에 이르면, 이를 하룻밤 덮어 감추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식사 때와 중간 때와 저녁 때와 해질 무렵과 처음 밤과 중간 밤과 또한 호야에 이르러 덮어 감출 마음을 내어 새벽까지 이르면, 이를 두 때의 하룻밤 덮어 감춤이라고 한다.
또 덮어 감추는 것이 있으니 비구가 새벽에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도 이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하다가 해 돋을 때에 이르러 이것이 죄인 줄 알고 덮어 감출까, 덮어 감추지 말까 유예하다가 식사할 시간에 이르러 덮어 감출 마음을 내서 새벽까지 이르면, 이를 하룻밤 덮어 감추는 것이라 한다. 중간 때와 저녁때와 해질 무렵과 처음 밤의 것도 이와 같아서 비구가 새벽에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도
이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하다가, 또한 중간 밤에 이르러 이것이 죄인 줄 알고 덮어 감출까, 덮어 감추지 말까, 유예하다가 후야에 이르러 덮어 감출 마음을 내어 새벽까지 이르면, 이를 3시의 하룻밤 덮어 감춤이라고 한다.
또 덮어 감추는 것이 있으니, 비구가 새벽에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서 이것이 죄인지를 알지 못하다가, 또한 식사 시간에 이르러서 이것이 죄인 줄 알고 덮어 감출까, 덮어 감추지 말까를 유예하다가 중간 때에 이르러 덮어 감출 마음을 내서 새벽까지 이르면, 이를 하룻밤 덮어 감추는 것이라 한다. 저녁때와 해질 무렵과 처음 밤에도 이와 같아서 비구가 새벽에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 이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하다가 중간 밤에 이르러서 이것이 죄인 줄 알고 덮어 감출까, 덮어 감추지 말까 유예하다가 후야에 이르러서 덮어 감출 마음을 내어 새벽까지 이르면, 이를 4시의 하룻밤 덮어 감추는 것이라고 한다.
또 덮어 감추는 것이 있으니, 비구가 새벽에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서 이것이 죄인 줄 알아 덮어 감출 마음을 지었다가 해 뜰 무렵에 이르러 덮어 감추어서는 아니 되겠다는 마음을 내었다가, 또한 후야에 이르러 덮어 감출 마음을 내어 새벽까지 이르면, 이를 하룻밤 덮어 감추는 것이라고 한다.
또 덮어 감추는 것이 있으니, 비구가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 벽을 사이에 두고서나 참호를 사이에 두고서 어두움 가운데서 작은 소리로 그의 이름을 말하기를 “아무 비구가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했다”고 말하면 이를 드러낸다고 할 수 없다. 알면서 거짓말[妄語]을 하면 바야제의 죄를 범하니, 이를 덮어 감춘다고 한다.
또는 덮어 감추지 않는 것이 있으니, 만일 장애물을 사이에 두거나 참호를 사이에 두거나 어두움 가운데서 작은 소리로 스스로 일컬어서 남의 이름을 부르면서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였다고 하면, 이를 드러낸다고 한다. 다만 첨곡(諂曲)하게 지으면 월비니의 죄를 범한다.
또 덮어 감추지 않는 것이 있으니, 비구가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서 벽을 사이에 두지 않고 참호를 사이에 두지 어두움 속에서가 아니고 작은 소리가 아니고 남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스스로 이름을 말하는 것은 범죄지만, 이를 덮어 감추지 않는다고 한다.

또 덮어 감추지 않는 것이 있으니, 죄가 아닌데 죄라고 생각하며 덮어 감추는가 의심하는데 덮어 감추지 않았고 밤인가 의심하고 드러내는가 의심하는 것, 이를 덮어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또 덮어 감추지 않은 것이 있으니, 덮어 감춘다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였으나 미처 드러내지 못하고서 잊어 버렸거나 도를 파했거나 선정에 들었거나 목숨을 마쳤거나 하는 것이니, 이를 덮어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계율을 가진 비구가 남을 죄에서 나오게 할 때에 죄가 있는 것도 마땅히 알고 죄가 없는 것도 마땅히 알아야 하며, 죄를 덮어 감춘 것도 마땅히 알아야 하고, 덮어 감추지 않은 것도 마땅히 알아야 하며, 드러낸 것도 마땅히 알아야 하고, 드러내지 않은 것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은 덮어 감추었고 드러내지 않았고, 어떤 것은 드러냄으로써 덮어 감추지 않았으며, 어떤 것은 덮어 감추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하며, 어떤 것은 덮어 감추지도 않고 드러내지도 않은 것이 있다.”
무엇을 일러 덮어 감추고 드러내지 않았다고 하는가? 비구가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여서 이것이 죄인 줄 알면서도 덮어 감추는 마음을 지어 남을 향하여 말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덮어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을 일러 드러내고 덮어 감추지 않는다고 하는가? 비구가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 이것이 죄인 줄 알아 덮어 감추지 않고 남을 향하여 말하는 것이니, 이를 드러내고 덮어 감추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을 일러 덮어 감추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한다고 하는가? 비구가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 이것이 죄인 줄 알아 덮어 감춘 뒤에 남을 향하여 말하는 것이니, 이를 덮어 감추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한다고 한다.
무엇을 일러 덮어 감추지도 않고 드러내지도 않는다고 하는가? 비구가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 이것이 죄인 줄 알아서 덮어 감출 마음을 내지 않고, 생각하기를 ‘때를 기다리고 방위(方位)를 기다리고 사람을 기다려서 마땅히 법답게 하겠다’고 하는 것이니, 이를 덮어 감춤도 아니고 드러냄도 아니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계율을 지닌 비구가 남과 더불어 출죄시킬 때[與他出罪]에 죄가 있으면 마땅히 알고, 죄가 없어도 마땅히 알아야 하며, 죄를 덮어 감춘 것을 마땅히 알고, 덮어 감추지 않은 것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죄를 드러낸 것도 마땅히 알고, 드러내지 않은 것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별주(別住)를 주는 것도 마땅히 알고 별주를 주지 않는 것도 마땅히 알아야 한다는 것에 있어서, 무엇을 일러 마땅히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가?묻지 않으면, 마땅히 주어서는 안 된다. 무엇을 일러 마땅히 준다고 하는가? 죄 있는 이를 마땅히 주고 덮어 감추면 마땅히 주고 죄를 결정하였으면 덮어 감춘 이와 밤을 결정한 이와 앞사람이 찾아 물으면 마땅히 주어야 한다. 여법하게 주든지 여법하지 않게 주는 것이니, 무엇을 일러 ‘여법하지 못하게 준다고 하는가?
죄 없는 이와 죄를 결정치 않은 이와 덮어 감춘 것이 확실하지 않은 이와 밤이 확실하지 않은 이와 앞사람이 찾지 않고 묻지 않은 것이요, 대중이 성취되지 않은 것이요, 고함이 성취되지 않은 것이요, 갈마가 성취되지 않은 것이니, 이를 여법하지 못하게 준다고 한다. 무엇을 일러 여법하게 준다고 하는가? 죄가 있고 죄가 결정되고 덮어 감춤이 결정되고 밤이 결정되고 앞의 사람이 찾고 물었고 대중이 성취되고 고함이 성취되고 갈마가 성취되어서 하나하나 성취되는 것을 여법하게 준다고 한다.
‘여법하지 못하게 준다’고 하는 것은 바리바사(婆利婆沙)를 행하는 것과 여법하게 바리바사를 행하는 것이니, 무엇을 일러 여법하지 못하게 행한다고 하는가? 승가람에 비구가 없으면 그 중간에 죄를 범하고, 그리고 다시 거갈마를 하고 비구와 더불어 한방과 한 장자 안에서 살 적에 객비구가 왔는데 고하지 아니하였거나 때에 모이거나 때에 모이지 않거나 고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여법하지 못하게 행한다고 한다.
무엇을 일러 여법하게 행한다고 하는가? 승가람에 어떤 비구가 살면서 바리바사를 행할 적에 중간에 죄를 짓지 않고 거갈마를 하지 않고, 비구와 더불어 따로 방을 쓰고 따로 장자를 쓰고 살면서 객 비구가 왔을 적에 고하고, 때에 모이든지 때에 모이지 않든지 고하는 것을 이를 여법하게 행한다고 한다.
‘밤에 단행하든지 밤에 단행하지 않든지 하는 것’이라 하는 것은, 무엇을 일러 밤에 단행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승가람에 어떤 비구가 살며, 또한 때에 모이든지 때에 모이지 않든지 고하는 것을 밤에 단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을 일러 밤에 단행한다고 하는가? 승가람에 비구가 없고, 또한 때에 모이든지 때에 모이지 않든지 고하지 아니함을 밤에 단행한다고 한다.
‘중간에 죄가 있든 중간에 죄가 없든지’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일러 중간에 죄가 있다고 하는가?
드러냄을 마치고서 승단에서 바리바사를 주지 않았는데 다시 죄를 짓는 것이니, 바리바사를 행하는 중간에 죄를 짓는 것을 중간의 죄라고 한다.
무엇을 일러 중간에 죄가 없다고 하는가? 중간에 죄를 짓지 않는 것을 죄가 없다고 한다. 바리바사를 행하는 비구가 마땅히 수순하여 일곱 가지의 일을 행하여야 하니, 어떤 것들을 일곱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비구의 일이요, 둘째는 비구니의 일이요, 셋째는 권속(眷屬)들의 일이요, 넷째는 마을에 들어가는 일이요, 다섯째는 여러 가지 고된 일을 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배명(拜命)을 받는 일이요, 일곱째는 임금의 일이다.
무엇을 비구의 일이라고 하는가? 비구의 예를 받지 않고, 비구의 죄를 말하지 않고, 비구와 더불어 말하지 않고, 사미의 죄를 말하지 않고, 사미에게 복을 주든지 벌을 주든지 하지 않고, 사미와 더불어 말하지 않고, 비구의 심부름을 하지 않고, 비구의 앞이나 뒤로 가지 않고, 마을에 들어갈 때와 대중이 모일 때에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다만 별처(別處)는 제외한다. 이를 비구의 일이라고 한다.
무엇을 비구니의 일이라 하는가? 비구니의 예를 받지 않고 비구니의 죄를 말할 수 없고, 비구니와 더불어 말하지 않고, 식차마니의 죄와 사미니의 죄를 말할 수 없고, 식차마니와 사미니에게 복을 주든지 벌을 주든지 할 수 없고, 식차마니와 사미니와 더불어 말할 수 없고, 비구니의 포살과 자자를 막을 수 없고, 비구니가 문에 가지런하게 서 있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비구니에게 가서 교계할 수 없고, 이미 받은 자도 가서는 안 되니, 이를 비구니의 일이라고 한다.
무엇을 권속들의 일이라고 하는가? 사람을 제도해서는 안 되고, 사람에게 구족계를 주어 받게 해서는 안 되고, 남의 의지(依止)를 받거나 사미를 길러서는 안 되고, 비구의 공급을 받아서는 안 되고, 남에게 경을 주어서는 안 되고, 남으로부터 경본(經本)과 외우는 경을 받아서는 안 되고, 마땅히 가는 소리로 외워야 하며,
만일 먼저 의지하는 제자가 있으면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게 하여서 마땅히 권속 됨을 끊어야 하니, 이를 권속의 일이라고 한다.
무엇을 일러 마을에 들어가는 일이라 하는가? 너무 일찍이 마을에 들어가고 너무 늦게 나오지 말며, 앞과 뒤에 가지 말아야 하며, 마을에 들어가거든 아는 단월의 집에 가지 말아야 하며, 비구가 없는 승가람에 살지 말아야 하며, 앉을 때나 밥 먹을 때에 비구의 밑에 있어야 하며, 사람을 시켜 밥을 맞이하지 말아야 하며, 사람에게 밥을 맞이하도록 시켜서는 안 된다. 다만 차례가 이른 것을 제외하니, 이를 마을에 들어가는 일이라고 한다.
무엇을 일러 여러 고된 일을 한다고 하는가? 새벽에 일어나서 탑원과 승원을 쓸고 스님들에게 물을 주고 스님들이 대소변 보는 곳을 씻어서, 이와 같은 모든 할 수 있는 것을 마땅히 힘에 따라 하여야 하며, 욕(欲)을 줄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의 욕을 받을 수도 없다. 다만 차례가 이른 것은 제외하니 이를 여러 고된 일을 한다고 한다.
무엇을 일러 절을 받는다고 하는가? 모든 절을 받아서는 안 된다. 백일갈마(白一竭磨)와 백삼갈마(白三竭磨)를 다 받아서는 안 되니, 이를 절을 받는 일이라고 한다.
무엇을 일러 왕의 일이라고 하는가? 임금이나 대신이나 거사나 흉악한 사람들의 세력을 믿어서는 안 되고, 부처님을 혐오하거나 법을 혐오하거나 스님을 혐오하거나 갈마하는 사람을 혐오해서는 안 되고, 다만 자기를 경책할지언정 남을 혐오해서는 안 되니, 이를 왕의 일이라고 한다.
바리바사의 비구는 이 일곱 가지의 일을 행해야 이를 수순하는 행이라 하고, 이를 행하지 않는 자는 수순하는 행이라 하지 않는다.
마땅히 마나타(摩那埵)를 줄 것인가, 또는 마땅히 마나타를 주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은 무엇을 일러 마나타를 주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가? 죄가 없으면 마땅히 주어서는 안 되고, 덮어 감추었으나 아직 별주(別住)를 주지 않았으면 주어서는 안 되고, 반은 덮어 감추고 반은 덮어 감추지 않았으면 주어서는 안 되고, 죄를 결정하지 않았거나 덮어 감춤을 결정하지 않았거나 밤을 결정하지 않았으면 주어서는 안 되고, 바리바사를 결정하지 않은 이에게 주어서는 안 되고, 찾지 않고 묻지 않는 이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무엇을 일러 응당 주어야 한다고 하는가? 죄가 있거나 덮어 감추었거나, 바리바사를 행하여 마쳤거나, 죄를 결정하였거나 덮어 감춤을 결정하였거나, 밤을 결정하였거나
바리바사를 결정하였거나, 앞사람이 찾고 묻는 것은 마땅히 주어야 한다.
마땅히 법답지 않게 줄 것인가, 법답게 줄 것인가 하는 것은 무엇을 일러 법답지 않게 준다고 하는가? 죄가 없거나 또한 찾지 않고 묻지 않으며, 대중이 성취되지 않고, 고함이 성취되지 않고, 갈마가 성취되지 않아 하나하나 성취되지 않은 것이니, 이를 법답지 못하게 주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일러 법답게 준다고 하는가? 죄 있는 이와 또한 찾고 묻고 대중이 성취되고 고함이 성취되고 갈마가 성취되고 하나하나 성취되는 것이니, 이것을 법답게 준다고 한다.
구경에 마나타를 행하지 않고 구경에 마나타를 행함에 있어서, 무엇을 일러 구경에 마나타를 행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대중이 차지 않으면 마나타를 행한다고 할 수 없고, 중간에 죄를 범하고, 다시 거갈마를 하고, 비구와 한방과 한 장자를 쓰며 살고 객비구에게 알리지 않고, 때로 모이든지 때로 모이지 않든지 알리지 않고, 날마다 계내(界內)의 스님들께 알리지 않는 것, 이것을 구경행이 아니라고 한다.
무엇을 일러 구경에 한다고 하는가? 대중이 가득 차는 것, 이것을 구경에 행한다고 한다. 중간에 죄를 범하지 않고, 거갈마를 안 하고, 비구와 한방과 한 장자에 함께 살지 않고 객비구에게 알리고, 때로 모이든지 때로 모이지 않든지 고하고, 날마다 계내의 스님들께 고하는 것, 이것을 구경행이라고 한다.
밤에 단행하든지 밤에 단행하지 않든지에 있어서 무엇을 일러 밤에 단행한다고 하는가? 밤 중간에 대중이 가득 차지 않고 또한 날마다 계내의 스님들께 고하지 않는 것, 이것을 밤에 단행한다고 한다.
무엇을 일러 밤에 단행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밤 중간에 대중이 차고 또한 날마다 계내의 스님들께 고하는 것, 이것을 밤에 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중간에 죄가 있는지 중간에 죄가 없는지에 대해서는 무엇을 일러 중간에 죄가 있다고 하는가? 마나타를 주지 않아 중간에 죄를 범하는 것과 마나타를 주어 중간에 죄를 짓는 것과 구경에 중간에서 죄를 범하는 것, 이것을 중간에서 죄를 짓는다고 한다.
무엇을 일러 중간에 죄가 없다고 하는가? 앞의 여러 일이 없는 것, 이것을 중간에 죄가 없다고 한다. 마나타를 행하는 비구가 마땅히 일곱 가지의 일을 수순하여 행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
이를 마나타라고 한다. 비구가 수순하는 행을 행하지 아니하는 것, 이것을 수순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땅히 아부가나(阿浮呵那)를 줄 것인가, 마땅히 주지 않을 것인가에 대해서 ‘마땅히 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죄가 없으니 응당 주지 말아야 하고, 덮어 감추었으나 아직 별주를 주지 않았으면 주지 말아야 하고, 마나타를 구경(究竟)하지 않았으면 주지 말고, 마땅히 덮어 감추지 않은 이로서 마나타를 행하지 않았으면 주지 말며, 마땅히 덮어 감출 것을 덮어 감추지 않았으면 주지 말고, 죄를 결정하지 않았으면, 덮어 감출 것을 결정하지 않았거나, 밤을 결정하지 않았거나, 별주를 결정하지 않았거나, 마나타를 결정하지 않았거나, 찾지 않고 묻지 않았으면 주어서는 안 되니, 이를 마땅히 아부가나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마땅히 준다’고 하는 것은 죄가 있으면 마땅히 주어야 하고, 죄를 덮어 감추었으면 주고, 마땅히 별주하여 마나타를 구경하였으면 주고, 마땅히 죄를 덮어 감추지 않고 마나타를 구경하였으면 주고, 죄를 결정하였거나 덮어 감춤을 결정하였거나 밤을 결정하였거나 별주를 결정하였거나 마나타를 결정하였거나 앞사람이 찾고 물은 것은 주어야 하니, 이를 마땅히 아부가나를 주어야 한다고 한다.
법답게 아부가나를 주는 것과 법답게 아부가나를 주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 ‘아부가나를 주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죄가 없으면 주지 말아야 하고, 또한 대중이 성취되지 못하고 고함이 성취되지 못하며 갈마가 성취되지 못하여서 하나하나 성취되지 못하는 것이니, 이를 법답지 못하게 준다고 한다.
‘법답게 준다’는 것은 죄가 있으면 마땅히 주어야 하고, 또한 대중이 성취되고 고함이 성취되고 갈마가 성취되어서 하나하나 성취된 것이니, 이를 아부가나를 법답게 준다고 한다.
‘함께 덮어 감춘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한 달에 하루 하나의 승가바시사를 범하여 이것이 죄인 줄 알고 덮어 감출 마음을 내지 않으며, 이와 같이 하여 2일, 3일, 또한 10일에 이르기까지 지어서 모두 다 이것이 죄인 줄 알아 덮어 감출 마음을 내어서 새벽에 이르면 이 열 가지의 죄 모두가 함께 하룻밤의 덮어 감춤이 되지만, 마땅히 열 가지 별주갈마(別住竭磨)와 열 가지의 마나타와 열 가지의 아부가나를 지어야 하고, 또 하나의 별주갈마와 하나의 마나타와 하나의 아부가나를 짓게 되니, 이를 함께 덮어 감춘다고 한다.
또 함께 덮어 감춘다고 하니, 비구가 매달 하루에 한 승가바시사를 범하여 이것이 죄인 줄 알고 덮어 감출 마음을 내지 않았다가, 이와 같이 2일에 두 가지를 범하고 3일째에 세 가지를 범하고 또한 열흘째에 열 개의 승가바시사를 범하여서 모두가 죄인 줄 알고 모두 덮어 감출 마음을 내어서 새벽에 이르면 이것이 55가지 승가바시사의 죄이므로 모두 함께 하룻밤의 덮어 감추는 것이지만, 마땅히 55가지의 별주갈마와 55가지의 마나타와 55가지의 아부가나를 지어야 하고,
또 하나의 별주갈마와 하나의 마나타와 하나의 아부가나를 짓게 되는 것이니, 이를 함께 덮어 감춘다고 한다.
또 함께 덮어 감춘다고 하니, 비구가 매월 하루에 하나의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 이것이 죄인 줄을 알지 못하여서 이와 같이 2일, 3일, 또한 10일을 범하고서 모두 다 죄인 줄 알아서 모두 덮어 감추려는 마음을 내서 새벽에 이르면, 이 열 가지의 죄가 함께 하룻밤의 덮어 감춤이 되며, 또한 하나의 별주갈마와 하나의 마나타와 하나의 아부가나를 짓게 되니, 이를 함께 덮어 감춘다고 한다.
또 함께 덮어 감춘다고 하니, 비구가 매달 하루에 하나의 승가바시사를 범하고서 이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하여 덮어 감출 마음을 내지 않았다가 또한 열흘째에는 열 가지의 승가바시사를 범하고서 모두 다 죄인 줄 알아 덮어 감출 마음을 내서 새벽에 이르면 이것이 55가지의 죄가 함께 하룻밤의 덮어 감추는 것이 되고, 또한 하나의 별주갈마와 하나의 마나타와 하나의 아부가나를 짓는 것이니, 이를 함께 덮는다고 한다.
‘흩어지게 덮어 감춘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매달 하루에 하나의 승가바시사를 범하고서 이것이 죄인 줄 알아 덮어 감출 마음을 지었으며,
2일에 이르러 남을 향해 말하고 나서 다시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 또한 10일에 남을 향해 설하고 나서 다시 죄를 짓고 이것이 죄인 줄 알고서 덮어 감출 마음을 지었다가 11일에 이르러 남을 향하여 이 열 가지의 승가바시사를 설하면, 이와 같은 것은 일체를 각각 하룻밤에 함께 흩어지게 덮어 감춘 것이어서 마땅히 열 가지의 별주갈마와 열가지의 마나타와 열 가지의 아부가나를 지어야 하며, 또 하나의 별주갈마와 하나의 마나타와 하나의 아부가나를 짓게 되니, 이를 흩어지게 덮어 감춤이라고 한다.
또 흩어지게 덮어 감춘다고 하니, 비구가 매달 하루에 하나의 승가바시사를 범하고서 이것이 죄인 줄 알아서 덮어 감출 마음을 내었으나 2일에 이르러 남을 향하여 말하였고, 말하고서는 다시 범하여 이와 같이 하기를 또한 열흘째에는 열 가지의 승가바시사를 범하고, 이것이 죄인 줄 알아서 덮어 감출 마음을 내었다가, 11일에 이르러 남을 향하여 이 55가지의 승가바시사죄를 이와 같은 것은 일체를 각각 하룻밤에 흩어지게 덮어 감추는 것이니, 마땅히 55가지의 별주갈마와 55가지의 마나타와 55가지의 아부가나를 지어야 하며, 또 하나의 별주갈마와 하나의 마나타와 하나의 아부가나를 짓게 되니 이를 흩어지게 덮어 감추는 것이라고 한다.
‘한량없이 덮어 감춘다’고 하는 것은 혹은 죄를 기억하지만 밤을 기억하지 못하고, 혹은 밤을 기억하지만 죄를 기억하지 못하며, 혹은 죄를 기억하고, 또한 밤도 기억하며, 혹은 죄도 기억하지 못하고 밤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죄를 기억하고 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범한 죄의 많고 적음을 기억하여 알지만 약간의 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밤을 기억하지만 죄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얼마간의 밤은 기억하여 알지만 죄의 많고 적음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죄도 기억하고 밤도 기억한다’고 하는 것은 많고 적음을 기억하여 알고 약간의 밤도 기억하여 아는 것이다.
‘죄도 기억하지 못하고 밤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범죄의 많고 적음을 기억하지 못하고 또는 약간의 밤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 ‘죄를 기억하고 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마땅히 묻기를 “그대가 어느 때에 죄를 지었는가? 해와 때가 있지 아니한가?”라고 하여 앞사람이 잠자코 있으면 마땅히 연수(年數)에 따라 별주(別住)를 주어야 할 것이요, 만일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 다시 묻기를 “한 해입니까? 두 해입니까? 다섯 해입니까?”라고 하여 잠자코 있는 곳을 따라 별주를 주어야 하니, 이것을 죄를 기억하고 밤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밤을 기억하고 죄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밤의 다소에 따라 마땅히 한량없는 죄의 별주를 주게 되니, 이를 밤을 기억하고 죄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죄를 기억하고 밤도 기억한다’고 하는 것은 죄의 다소를 기억하고 기억하는 것의 밤을 따라 별주를 주는 것이니, 이를 죄도 기억하고 밤도 기억한다고 한다.
‘죄도 기억하지 못하고 밤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마땅히 묻기를 “해와 때가 없이 죄를 지었소?” 하고 물었는데 잠자코 있으면 연수를 따라 한량없는 죄의 별주를 지어줄 것이요, 만일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다시 묻기를 “연수가 없습니까? 한 해입니까? 두 해입니까? 세 해입니까? 네 해입니까? 다섯 해입니까?”라고 하여 잠자코 있는 곳을 따라 한량없는 죄의 별주를 주는 것이니, 이것을 한량없는 덮어 감추는 것이라고 한다.
‘함께 덮어 감추는 것’과 ‘흩어지게 덮어 감추는 것’과 ‘한량없는 덮어 감추는 것’ 이 세 가지를 모두 덮어 감춘다고 한다.
‘특별히 덮어 감춘다[別覆]’고 하는 것은 비구가 매달 하루에 하나의 승가바시사를 범하고서 이것이 죄인 줄 알아 덮어 감출 마음을 지었다가 남을 향해 말을 하지 않았으며, 둘째 날에 다시 범하여 이것이 죄인 줄 알고 덮어 감출 마음을 내어 남을 향해 말하지 않았으며, 또한 10일에 다시 범하고서 이것이 죄인 줄 알아서 덮어 감출 마음을 내서 남을 향해 말하지 않아서, 이 열 가지의 죄를 각각 따로 덮어 감추고 최후의 죄를 하룻밤에 덮어 감추어서 이와 같이 둘째 밤과 셋째 밤과 또한 처음 죄에 열 밤의 덮어 감춤이 있으면, 마땅히 열 가지의 별주갈마와 열 가지의 마나타와 열 가지의 아부가나를 주어야 하며, 또 한 가지의 별주와 한 가지의 마나타와 한 가지의 아부가나를 짓게 된다.
또 따로 덮어 감춘다는 것은, 비구가 매달 하루에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 이것이 죄인 줄 알고도 덮어 감추는 마음을 내어 남을 향하여 덮어 감추는 마음을 가져 남을 향하여 말하지 않고,
또한 열흘째에는 열 가지의 승가바시사를 범하고 이것이 죄인 줄 알아서 덮어 감추는 마음을 지어 남을 향하여 말하지 않아 이 55가지의 죄를 각각 따로 덮어 감추었고, 최후의 죄를 하룻밤에 덮어 감추어서 이와 같이 두 밤과 세 밤과 또한 처음 죄에 55가지 밤의 덮어 감추는 것이 있으니, 마땅히 55가지 밤의 별주갈마와 55가지의 마나타와 55가지의 아부가나를 주어야 하며, 또 하나의 별주와 하나의 마나타와 하나의 아부가나를 짓게 되니, 이를 따로 덮어 감춘다고 한다. 함께 덮어 감춤과 따로 덮어 감춤, 이 둘을 다 덮어 감춘다고 한다.
‘비사차각(比舍遮脚)’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은 죄가 길고 밤은 길지 아니함이 있으며, 어떤 것은 밤이 길고 죄가 길지 아니함이 있으며, 어떤 것은 죄도 길고 밤도 긴 것이 있으며, 어떤 것은 죄도 길지 않고 밤도 길지 않은 것이다.
‘죄가 길고 밤이 길지 아니하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날이 끝나도록 승가바시사의 죄를 빔하고서 이것이 죄인 줄 알아 남을 향해 말하는 것이니, 이를 죄는 길고 밤이 길지 않다고 한다.
‘밤이 길고 죄가 길지 않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하나의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 이것이 죄인 줄 알아 덮어 감추는 마음을 내어 남을 향해 말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밤은 길고 죄는 길지 않다고 이르는 것이다.
‘죄도 길고 밤도 또한 길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날마다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 이것이 죄인 줄 알아서 반을 덮어 감추고 반은 말하는 것이니, 이를 죄도 길고 밤도 또한 길다고 한다.
‘죄가 길지도 않고 밤도 또한 길지 않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승가바시사의 죄를 범하고 이것이 죄인 줄 알아서 덮어 감출 마음을 내지 않고 남을 향해 말하며 다시 범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죄가 긴 것도 아니요, 또 밤이 긴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 가운데서 ‘죄가 길고 밤이 길지 아니함’과 ‘죄도 길고 밤도 또한 길다’고 하는 것은 바리바사를 행할 때에 마땅히 식사는 적게 주고 작무(作務)는 많이 주어야 한다. 그래도 죄를 짓기를 그치지 않는 자는 마땅히 정인(淨人)을 시켜 그의 손과 발을 얽어 매어 걸상에 묶어 놓고 마땅히 말하기를 “만일 다시 죄를 지으면 승단에서 다시 무겁게 그대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니,
이를 비사차각이라 한다.
어떤 것은 죄에 맞고 밤에 맞는 것이 아니고, 어떤 것은 밤에 맞고 죄에 맞는 것이 아니며, 어떤 것은 죄에도 맞고 밤에도 맞는 것이 있고, 어떤 것은 죄에도 맞지 않고 또한 밤에도 맞지 않는 것이 있다.
‘죄에 맞고 밤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열 가지의 승가바시사를 범하였으면 모두 열 가지를 밤에 덮어 감추는 것이니, 승단에서 합당히 백야(百夜)의 별주갈마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 비구가 말하기를 “장로여, 저는 수척하고 병들어서 백야의 별주갈마를 준다면 감당하지 못하겠으니, 간략하게 바리바사를 행할 수 없습니까?”라고 하면 마땅히 백야의 갈마가 맞는다고 말하지 말고 십야(十夜) 별주를 주어야 하니, 이를 죄에는 맞고 밤에는 맞지 않다고 한다.
‘밤에는 맞고 죄에는 맞지 않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열 가지의 승가바시사를 범하고서 모두 열 가지를 밤에 덮어 감추면 승단에서 합당히 심야의 별주갈마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 비구가 말하기를 “장로여, 제가 부끄럽습니다. 제가 널리 바리바사를 행하고자 합니다”라고 하면, 마땅히 그에게 말하기를 “그렇게 하시오”라고 하는 것을 밤에는 맞고 죄에는 맞지 않는다고 한다.
‘죄에도 맞고 밤에도 또한 맞는다’고 하는 것은 비구가 열 가지의 승가바시사를 범하고서 열 가지를 밤에 덮어 감추었으면 승단에서 합당히 십야의 별주갈마를 주어야 하니, 이를 죄에도 맞고 밤에도 맞는다고 한다.
‘죄에도 맞지 않고 밤에도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각각 따로 바리바사의 갈마를 짓는 것이니, 이를 죄에도 맞지 않고 밤에도 맞지 않는다고 한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