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14권
마하반야바라밀경 제14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최봉수 번역
김형준 개역
47. 양과품(兩過品)거란본에는 양불화합품(兩不和合品)으로 되어 있음
“또 수보리야, 청법자(廳法者)는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고 독송하며 뜻을 묻고 바르게 억념하고자 하는데 설법자가 게으름을 부려 설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보살에게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수보리야, 설법자는 마음에 게으름을 부리지 않아 반야바라밀을 써서 지니게 하고자 하는데 청법자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여 두 마음이 화합되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청법자가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고 독송하며 나아가 바르게 억념하고자 하는데 설법자가 다른 곳에 가고자 하면,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수보리야, 설법자가 반야바라밀을 써서 지니게 하고자 하는데 청법자가 다른 곳에 가고자 하여 두 마음이 화합되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는 의복과 음식과 침구와 의약과 생활필수품의 보시를 귀중히 여기고, 청법자는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아 행하고 멀리 떠남을 행하며 기억을 정돈하고 정진하고 마음을 모으고 지혜를 행해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고 독송하며, 뜻을 묻고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수보리야, 설법자는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아 행하고, 멀리 떠남을 행하고 기억을 정돈하고 정진하고 마음을 모으고 지혜를 행하는데 청법자가 의복과 음식과 침구와 의약과 생활필수품의 보시를 귀중히 여겨서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고 독송하며 뜻을 묻고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는 12두타(頭陀)를 수용하나니, 첫 번째 한적한 곳에 머무르는 것, 두 번째 항상 걸식하는 것, 세 번째 누더기 옷을 입는 것, 네 번째 하루에 한 번만 먹는 것, 다섯 번째 과식하지 않는 것, 여섯 번째 오후에 장약을 먹지 않는 것, 일곱 번째 무덤 곁에 머무는 것, 여덟 번째 나무 밑에 머무는 것, 아홉 번째 노천에 머무는 것, 열 번째 항상 앉아 있어 눕지 않는 것, 열한 번째 차례로 걸식하는 것, 열두 번째 단지 세 벌의 옷만을 가지는 것 등이 그것이니라. 그런데 청법자는 12두타 중 고요한 곳에 머무는 것과 단지 세 벌의 옷만을 가지는 것 등을 수용하지 않아서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고 독송하며 뜻을 묻고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수보리야, 청법자는 12두타 중 고요한 곳에 머무는 것과 단지 세 벌의 옷만을 가지는 것 등을 수용하는데, 설법자가 열두 가지 두타 중 고요한 곳에 머무는 것과 단지 세 벌의 옷만을 가지는 것 등을 수용하지 않아서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반야바라밀을 써서 바르게 독송하고 뜻을 묻고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는 믿음과 선함이 있어서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하고자 하는데 청법자가 믿음이 없고 파계하고 악행을 하며,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수보리야, 청법자는 믿음과 선함이 있고 계를 지키는데, 설법자가 믿음이 없고 악행을 하여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는 능히 일체를 베푸는 마음에서 인색하지 않지만 청법자가 인색하게 여겨 희사하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수보리야, 청법자는 일체를
능히 베풀어서 마음에 인색하지 않지만 설법자가 법에 인색하여 베풀지 않아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청법자는 설법자에게 의복과 음식과 침구와 의약과 생활필수품을 공양하고자 하는데 설법자가 그것을 받지 않으려고 하면,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수보리야, 설법자는 청법자에게 의복 내지 생활필수품을 받고자 하는데, 청법자가 그것을 주지 않으려고 하여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는 쉽게 깨닫는데 청법자가 어둡고 우둔하다면,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수보리야, 청법자는 쉽게 깨닫는데 설법자가 어둡고 우둔하여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는 12부경(部經)1)의 차제의(次第義)를 안다. 이른바 수투로(修妬路)2) 내지 우파제사(優波提舍)3)를 아는데도, 청법자가 12부경의 차제의를 알지 못한다면,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청법자는 12부경의 차제의를 아는데도, 설법자가 12부경의 차제의를 알지 못하여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는 6바라밀을 성취하는데도, 청법자가 6바라밀을 성취하지 못하여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청법자는 6바라밀이 있는데도, 설법자가 6바라밀이 없어서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는 6바라밀에 입각한 방편의 힘이 있는데도, 청법자가 6바라밀에 입각한 방편의 힘이 없어서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청법자는 6바라밀에 입각한 방편의 힘이 있는데도, 설법자가 6바라밀에 입각한 방편의 힘이 없어서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는 다라니를 얻는데도, 청법자는 다라니가 없어서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청법자가 다라니를 얻는데도, 설법자가 다라니가 없어서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는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고 독송하고 나아가 억념하고자 하는데도, 청법자가 반야바라밀을 지니고 독송하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하지 않으려고 하여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청법자는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고 독송하고 설하고자 하는데도, 설법자가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지 않고 나아가 설하게 하지 않도록 하여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는 탐욕과 성냄과 수면과 들뜸과 후회함과 의혹 등에서 떠났는데도, 청법자는 탐욕과 성냄과 수면과 들뜸과 후회함과 의혹 등이 있다면,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청법자는 탐욕과 성냄과 수면과 들뜸과 후회함과 의혹에서 멀어졌는데도 설법자가 탐욕과 성냄과 수면과 들뜸과 후회함과 의혹 등이 있어서,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때에 가령 어떤 사람이 와서 3악도(惡道)에 대하여 극심한 고통을 설하면서 ‘그대는 어찌하여 이 몸에 대한 고통을 다하는 열반에 신속히 들지 않는가?’ ‘어찌하여 이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가?’라고 하느니라. 그리하여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써서 받아 지니고 독송하고 설하고 바르게 억념할 때에, 가령 어떤 사람이 와서 사천왕의 모든 하늘을 찬탄하고 삼십삼천ㆍ야마천ㆍ도솔천ㆍ화락천ㆍ타화자재천ㆍ범천 내지 비유상비무상을 찬탄하고, 초선 내지 비유상비무상처정을 찬탄하면서 말하기를 ‘선남자여, 욕계 속에서 다섯 가지 애욕의 쾌락을 받고, 색계 속에서 선정을 성취하여 즐거움을 일으키고, 무색계 속에서 적멸의 즐거움을 수용할지라도, 이러한 것은 역시 무상이고 괴로움이고 공이고 무아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하는 것이고 흩어지는 것이고 떠나는 것이고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이 몸으로써 수다원의 과위ㆍ
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도를 취하지 않는가? 어찌하여 나고 죽는 이 세간 속에서 갖가지 고통을 받으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려고 애쓰는가?’라고 하면서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는 일신에 속박이 없고 자재하여 걸림이 없는데도, 청법자가 많은 사람을 이끌어서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청법자는 일신에 속박이 없고 자재하여 걸림이 없는데도, 설법자가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서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가 말하기를 ‘그대가 능히 내 뜻에 따른다면 반드시 그대에게 반야바라밀을 주어서 쓰고 독송하고 설하며 바르게 억념하도록 하겠지만, 만약 내 뜻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대에게 줄 수 없다’라고 하느니라. 그리하여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청법자는 설법자를 추종하여 그 뜻대로 하고자 하는데도, 설법자가 듣지 않아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는 재물과 이익을 얻고자 하는 까닭에 반야바라밀을 써서 지니게 하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하게 하는데도, 청법자가 이러한 이유를 아는 까닭에 순종해 수용하지 않으려고 하여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청법자는 재물과 이익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쓰고 독송하며 설하고자 하는데도, 설법자가 이러한 이유를 아는 까닭에 주지 않으려고 하여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가 위험한 곳에 가고자 하는 청법자는 따라가지 않으려고 하여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청법자는 위험한 곳에 가고자 하고 설법자는 가지 않으려고 하여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는 굶주리고, 곡식이 귀하고 물이 없는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는데 청법자가 따라가지 않으려고 하여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청법자는 굶주리고, 곡식이 귀하고 물이 없는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는데 설법자가 가지 않으려고 하여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가 풍요로운 다른 곳에 가고자 하고 청법자도 따라서 가고자 하는데 설법자가 말하기를 ‘선남자여. 그대가 이익을 위하여 나를 따르는구나. 그대는 스스로 잘 생각하여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라고 하느니라. 이러한 작은 이유 때문에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게 되고 나아가 청법자는 이 말을 듣고서, 마음이 상하여 생각하기를, ‘이것은 거절하는 것이다. 나와 같이 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여 가지 않고
머물러 버린다. 이렇게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가 도둑의 위험과 천한 자들의 위험과 짐승을 죽이는 자들의 위험과 독한 짐승이나 독사의 위험이 있는 황야를 지나고자 하고 청법자도 따라서 가고자 하느니라. 그런데 설법자가 말하기를 ‘선남자여, 그대는 무엇 하러 저 곳에 가려 하시오. 가는 길에 도둑의 위험에서 독사의 위험까지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라고 하느니라. 청법자가 이 말을 듣고서 그것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함을 바라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하고는 상심하여 따라가지 않으려고 하느니라. 이러한 작은 이유 때문에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설법자에게는 많은 신도가 있어서 자주 그들에게 가서 법을 설하기도 하느니라. 이런 작은 이유 때문에 청법자에게 ‘나는 저곳으로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소’라고 말하는데, 청법자가 그 마음을 알아 바로 머물고 가지 않아서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악마가 비구의 모습을 하고 와서는 교묘한 수단으로 반야바라밀을 무너뜨리고 서사해 지니고 독송하며 설하고 바르게 억념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악마가 비구의 모습을 하고 와서는 교묘한 수단으로 반야바라밀을 무너뜨리고, 서사해 지니고 독송하며 설하고 바르게 억념하지 못하게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악마는 비구의 모습을 하고 와서 선남자ㆍ선여인의 마음을 파괴하여 반야바라밀을 멀리 떠나게 하고 말하기를 ‘내가 설하는 이러한 경전이 곧 반야바라밀이지, 그대가 가진 경전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다’라고 하느니라.
수보리야, 그러는 중에
많은 비구들을 무너뜨리고, 반드시 부처님이 되리라는 수기를 아직 받지 못한 어떤 보살은 바로 의혹에 빠지느니라. 의혹에 빠지는 까닭에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지 않고 수용하지 않고 지니지 않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하지 않아서 두 사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반야바라밀을 써서 성취하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악마는 비구의 모습을 하고 보살이 있는 곳에 와서 말하기를 ‘가령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해도 실상에 대하여 증득하고,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도를 얻을 뿐이다’라고 하느니라. 이로써 화합하지 않는다면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설할 때에 악마의 일들이 많이 벌어져서 반야바라밀을 장애하니,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깨달아야만 하고, 깨닫고 나서는 멀리 떠나야만 하느니라.”
수보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악마의 일이 나타나기에 보살은 깨달아야만 하고, 깨닫고 나서는 멀리 떠나야만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과 닮은 것으로 많은 악마의 일이 드러나느니라. 곧 선나바라밀과 닮은 것ㆍ비리야바라밀과 닮은 것ㆍ찬제바라밀과 닮은 것ㆍ시라바라밀과 닮은 것ㆍ단나바라밀과 닮은 것으로 악마의 일이 나타나니, 보살은 깨달아야만 하고 깨닫고 나서는 멀리 떠나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성문이나 벽지불이 마땅히 행해야 할 경전을 보살마하살에게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니, 깨달아야만 하고 깨닫고 나서는 멀리 떠나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내공과 외공 또는 무법공과 무법유법공, 그리고 4념처 내지 8성도분, 그리고 공해탈문과 무상해탈문과
무작해탈문 등, 이러한 법을 가지고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도를 얻는다고 하느니라.
그리고 이러한 많은 경전을 악마는 비구의 모습을 하고, 교묘한 수단으로 보살마하살에게 주느니라. 이러한 까닭에 화합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악마는 부처님의 몸을 하고 금색의 광명을 드리우며, 보살이 있는 곳에 오는데, 보살은 이것에 탐착하고 탐착하는 인연 때문에 일체지를 멸하게 되느니라. 이렇게 화합하지 않는 까닭에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으니,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악마는 부처님의 몸이나 비구로 변하여 보살 앞에 오는데, 보살은 이것에 탐착심을 일으켜, ‘나도 다가오는 미래의 세상에서는 반드시 이와 같이 비구에게 둘러싸여서 설법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느니라. 이 보살은 결국 악마의 몸에 탐착한 것인 까닭에 일체지를 멸하게 되고,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써서 성취할 수 없으니,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악마는 변화로 한량없는 백천만억의 보살이 되어 단나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선남자ㆍ선여인에게 지시하느니라. 선남자ㆍ선여인은 보고 나서 탐착하게 되고, 탐착하는 까닭에 일체지를 없애게 되니,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 또한 악마의 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 가운데는 물질이 있을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있을 수 없으며, 나아가 아
뇩다라삼먁삼보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만약 이 반야바라밀에 물질이 있을 수 없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있을 수 없다면, 이 가운데는 부처님이 없고, 성문이 없고, 벽지불이 없고, 보살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일체의 법은 자체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또 수보리야,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쓰고 수용하고, 독송하고 설하고 바르게 억념할 때에 많은 장애가 일어나기도 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염부제에 있는 진귀한 보배인 금ㆍ은ㆍ유리ㆍ자거ㆍ마노ㆍ산호 등에는 어려움이 많고 도적이 많은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때에도 많은 장애가 일어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염부제에 있는 진귀한 보배인 금ㆍ은ㆍ유리ㆍ자거ㆍ마노ㆍ산호 등에는 도둑이 많고, 곤란한 것이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마찬가지로 선남자ㆍ선여인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때에도 많은 장애가 있고, 많은 악마의 장난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악마에 휘둘리기 때문이니, 선남자ㆍ선여인은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때에 파괴되고 멀리 떠나게 됩니다.
세존이시여, 이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가 모자라기 때문이니, 선남자ㆍ선여인은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때에, 파괴되고 멀리 떠나게 됩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으로 큰 법을 즐기지 않는 까닭에,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지도 않고 수용하지도 않고, 읽지도 않고 외우지도 않고, 바르게 억념하지도 않고 설한 대로 수행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타인을 파괴하여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쓰거나 나아가 설한 대로 수행하지도 못하게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처음 대승에 마음을 낸 선남자ㆍ선여인이 악마에 휘둘리기 때문에 선한 뿌리를 심지 않고,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지 않느니라. 그리고 선지식을 따르지 않는 까닭에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지 않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하지 않는 장애를 일으키느니라.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지혜가 모자라고 마음으로 큰 법을 즐기지 않는 까닭에,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지도 않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도 없는 것은 악마의 일이 나타났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수보리야,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이 능히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때에 악마의 일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능히 선나바라밀에서 단나바라밀에 이르기까지 구족하고, 능히 4념처에서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 구족하게 되느니라.
그리고 수보리야,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능히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하고 능히 선나바라밀에서 단나바라밀에 이르까지 구족하고, 내공에서 무법유법공에 이르기까지 구족하고, 4념처에서 8성도분에 이르기까지와 부처님의 10력에서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를 구족하는 것은 부처님의 위신력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수보리야, 시방에 나타나 계시는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의 모든 부처님들 역시 선남자ㆍ선여인을 도와서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할 수 있도록 하느니라. 시방에 계시는 아유월치의 보살마하살도 또한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고, 나아가 바르게 억념함을 옹호하고 도와주고 있다.”
48. 불모품(佛母品)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건대 마치 어머니에게 자식이 있는 것과 같으니라. 다섯 명 또는 스무 명 또는 서른 명 또는 마흔 명 또는 쉰 명 또는 백 명 또는 천 명의 자식들이 있는데 그들의 어머니가 병이 들면 모든 자식들은 각자 힘써 치료법을 구하면서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우리들은 어떻게든 어머니를 편안하게 해 드리고 병고로 인해 즐겁지 않은 어떤 일들도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모질고 찬바람과 뜨거운 열기 그리고 모기와 등에와 뱀이나 살모사가 어머니 몸을 침범한다. 이것이 우리들의 근심거리다. 자식들은 언제나 안락한 도구를 구하여 어머니를 공양하는 법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을 낳아서 길러주고 우리들에게 세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수보리야, 부처님은 항상 불안(佛眼)으로써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보시느니라. 왜냐하면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이 능히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니라. 시방에 계시는 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또한 불안으로써 항상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보시느니라. 왜냐하면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이 능히 모든 부처님을 탄생시키고 능히 모든 부처님께 일체종지를 주며 능히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니라.
그러한 까닭에 모든 부처님은 항상 불안으로써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보시느니라. 그리고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능히 선나바라밀에서 단나바라밀에 이르기까지를 일으키고 능히 내공에서 무법유법공에 이르기까지를 일으키며 능히 4념처에서 8성도분에 이르기까지를 일으키고 능히 부처님의 10력에서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를 일으키느니라.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은 능히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 및 모든 부처님을 탄생시키느니라.
수보리야, 계시는 모든 부처님이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지금 얻고 있고, 앞으로 얻을 것은 모두가 심오한 반야바라밀에
인연하여 얻은 것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불도를 구하는 선남자ㆍ선여인은 마땅히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고[書] 나아가 바르게 억념하여야 하니, 모든 부처님이 항상 불안으로써 그런 사람을 보시느니라.
수보리야, 시방의 모든 부처님은 보살도를 구하는 선남자ㆍ선여인을 항상 수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시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반야바라밀은 능히 모든 부처님을 내고 능히 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이 어떻게 능히 모든 부처님을 낳고, 어떻게 능히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지요? 그리고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을 따라서 탄생하시고,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은 세간의 모습을 말씀하시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부처님의 10력에서 18불공법과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가 나오느니라. 수보리야, 이 모든 법에 인연하는 까닭에 일컬어 부처님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렇게 심오한 반야바라밀은 능히 모든 부처님을 탄생시키느니라.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은 5중을 설하시니 이것이 세간의 모습이니라.”
다시 수보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심오한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어떻게 5중의 모습을 설하고, 심오한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어떻게 5중의 모습을 보는지요?”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5중의 무너짐을 보이지 않고 5중의 무너짐을 보이지 않느니라. 생함을 보이지 않고 멸함을 보이지 않느니라. 더러움을 보이지 않고 청정함을 보이지 않느니라. 더하는 것을 보이지 않고 모자라는 것을 보이지 않느니라. 그리고 들어감을 보이지 않고 나옴을 보이지 않느니라. 과거를 보이지 않고 현재를 보이지 않고 미래를 보이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공의 모습은 부서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니라.
무상(無相)의 모습과 무작(無作)의 모습이 부서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일어나지 않는 법과 생하지 않는 법과, 있는 바가 없는 법과 본성의 법이
부서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으니, 모습이 그러함을 보인 것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부처님은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설하여 능히 세간의 모습을 보이시느니라.
또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은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의 온갖 중생들이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수보리야,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 가운데는 중생도 없고 중생이라는 이름도 없느니라.
색도 없고 물질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라는 이름도 없느니라.
눈도 없고 나아가 뜻도 없으며 안식도 없고 나아가 의식도 없으며, 일체종지도 없고 일체종지라는 이름도 없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은 능히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느니라. 수보리야,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은 또한 물질을 보이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보이지 않으며, 나아가 일체종지도 보이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 가운데는 반야바라밀 역시 없기 때문이니, 어찌 하물며 물질 내지 일체종지이겠느냐?
또 수보리야, 존재하는 중생의 이름에 속하는 것으로서 물질이 있는 것이든 물질이 없는 것이든, 상(想)이 있는 것이든 상이 없는 것이든, 상이 있지도 않고 상이 없지도 않는 것이든, 이 세간의 국토에 있든 주변의 시방 국토에 있든, 또는 모든 중생으로서 마음이 정돈된 것이든 마음이 산란한 것이든 그 정돈된 마음[攝心]과 산란한 마음[亂心]을 부처님은 여실하게 아시느니라.
수보리야, 어찌하여 부처님은 중생의 정돈된 마음과 산란한 마음의 모습을 아시는가? 법상에 의하는 까닭이니라. 무엇을 법상(法相)에 의하여 안다고 하는가? 수보리야, 이 법상 가운데는 역시 법상이라는 모습이 없느니라. 어찌 하물며 정돈된 마음과 산란한 마음이 있겠느냐? 수보리야, 이 법상에 의하여 부처님은 중생들의 정돈된 마음과 산란한 마음을 아느니라.
또 수보리야,
부처님은 중생들의 정돈된 마음과 산란한 마음을 아시느니라. 어떻게 아시는가? 수보리야, 진상(盡相)에 의하여 아시느니라. 그리고 오염이 없는 모습에 의하여 아시고, 멸하는 모습에 의하여 아시고, 끊는 모습에 의하여 아시고, 고요한 모습에 의하여 아시고, 떠나는 모습에 의하여 아시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중생들의 정돈된 마음과 산란한 마음을 아시느니라.
또 수보리야,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중생들의 오염된 마음을 아시느니라. 여실하게 오염된 마음이라고 알고 화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에 대해서도 여실하게 화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이라고 아시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중생들의 오염된 마음을 여실하게 오염된 마음이라고 아시고, 화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을 여실하게 화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이라고 아시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오염된 마음의 여실한 모습은 곧 오염되지 않은 마음의 모습이니라. 왜냐하면 여실한 모습의 가운데에서는 마음에 속한 법[心數法]을 얻을 수 없으니 어찌 하물며 오염된 마음이나 오염되지 않은 마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수보리야, 화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의 여실한 상은 화냄이 없는 마음과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의 모습이니라. 왜냐하면 여실한 모습의 가운데에서는 마음에 속한 법[心數法]을 얻을 수 없는데 어찌 하물며 화내는 마음과 화내지 않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과 어리석지 않은 마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수보리야,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을 인하여 중생의 오염된 마음을 여실하게 오염된 마음이라 아시고, 화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을 여실하게 화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이라고 아시느니라.”
“또 수보리야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을 인하여 중생의 오염이 없는 마음을 여실하게 오염이 없는 마음이라고 아시고 화냄이 없는 마음과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을 여실하게 화냄이 없는 마음과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아신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중생들의 오염이 없는 마음을 여실하게 오염이 없는 마음이라고 아시고, 화냄이 없는 마음을 여실하게 화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아시며,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을 여실하게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아시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마음의 오염이 없는 모습 가운데는 오염된 모습과 오염되지 않는 모습을 얻을 수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두 마음이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중생들의 오염이 없는 마음을 여실하게 오염이 없는 마음이라고 아시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이 화냄이 없는 마음도 그러하고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의 모습 가운데서도 어리석은 마음과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을 얻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두 마음이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중생들의 화냄이 없는 마음과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을 여실하게 아시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이 중생들의 넓은 마음[廣心]을 여실하게 넓은 마음이라고 아시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이 중생들의 넓은 마음을 여실하게 넓은 마음이라고 아시는지요?”
“수보리야, 부처님은 온갖 중생들의 마음이라는 것이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음을 아시느니라. 마음이란 것이 여읨인 까닭에 이 마음은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으며, 나아가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마음은 본성이 없기 때문이니, 무엇이 넓게 만들고 무엇이 좁게 만들며 나아가 오고 가게 하겠느냐? 이와 같이 수보리야,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이 중생들의 넓은 마음을 여실하게 넓은 마음이라고 아시느니라.
또 수보리야,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이 중생들의 큰 마음[大心]을 여실하게 큰 마음이라고 아시느니라.”
다시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이 중생들의 큰 마음을 여실하게 큰 마음이라고 아시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중생들의 마음이 오고 가는 것을 보지 않고, 중생들의 마음에서 생하는 모습과 소멸하는 모습과, 머물고 변하는 모습을 보지 않으시느니라. 왜냐하면 이 모든 심성이 없기
때문이니, 누가 오고 누가 가고, 누가 생멸하고 머물고 변하겠는가. 이와 같기 때문이니, 누가 오고 누가 가고, 누가 생멸하고 머물고 변하겠는가. 이와 같이 수보리야,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이 중생들의 큰 마음을 여실하게 큰 마음이라고 아시느니라.
또 수보리야,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이 중생들의 무량한 마음[無量心]을 여실하게 무량한 마음이라고 아시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이 중생들의 무량한 마음을 여실하게 무량한 마음이라고 아시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중생들의 마음이 머무는 것도 보지 않고 머물지 않는 것도 보지 않는다고 아시느니라. 왜냐하면 이 무량한 마음이라는 것은 행할 데가 없기 때문이니, 어디에 머물고 머물지 않을 곳이 있겠느냐. 이와 같이 수보리야,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이 중생들의 무량한 마음을 여실하게 무량한 마음이라고 아시느니라.
또 수보리야,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이 중생들의 불가견심(不可見心)을 여실하게 불가견심이라고 아시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이 중생들의 불가견심을 여실하게 불가견심이라고 아시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의 마음은 모습이 없는 것으로서 부처님께서는 여실하게 모습이 없는 것이라고 아시니, 자상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또 수보리야, 중생들의 마음은 다섯 가지 눈으로써도 능히 볼 수가 없다는 것을 아시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이 중생들의 불가견심을 여실하게 불가견심이라고 아시느니라.
또 수보리야, 부처님께서는 심오한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이 중생들의 심수(心數)가 나고 빠지고 굽고 펴는 것을 여실하게 아시느니라.”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이 중생들의 심수가 나고 빠지고 굽고 펴는 것을 여실하게 아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온갖 중생들의 심수가 나고 빠지고 굽고
펴는 등은 모두가 색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에 의해서 생하느니라. 수보리야, 부처님께서는 이 가운데서 중생들의 심수가 나고 빠지고 굽고 펴는 것을 여실하게 아느니라.
이른바 정신[神]4)과 세간(世間)이 항상하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는 색(色)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무상하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물질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물질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항상한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물질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항상하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는 수(受)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무상하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수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수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항상한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니라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수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항상하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는 상(想)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무상하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견해도 상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상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항상한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니라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상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항상하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는 행(行)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무상하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행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행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항상한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니라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행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항상하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는 식(識)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무상하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식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식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과 세간이 항상한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니라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는 식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세간은 끝이 있다[有邊]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물질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세간은 끝이 없다[無邊]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물질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세간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고 하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물질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세간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물질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에 의지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정신이 바로 몸이라는 견해는 물질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정신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는 견해도 물질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에 의지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사후(死後)에 여거(如去)5)가 있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물질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사후에 여거가 없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물질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사후에 여거가 혹은 있기도 하고 여거가 혹은 없기도 하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물질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사후에 여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거가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견해도 물질에 의지하고 있느니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에 의지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중생들이 나고 빠지고 굽고 펴는 것을 여실하게 아시느니라.
또한 부처님은 물질의 모습[色相]을 아시느니라. 어찌하여 물질의 모습을 아시는가? 곧 물질의 여(如)와 여상(如相)과 무너지지 않음과 분별이 없음과 모습이 없음과 생각이 없음과 희론이 없음과 얻지 못함이니, 물질의 모습도 그와 같음을 아시느니라.
수보리야, 부처님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모습을 아시느니라. 어찌하여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모습을 아시는가? 식의 여와 여상과 무너지지 않음과 분별이 없음과 모습이 없음과 생각이 없음과 희론이 없음과 얻지 못함이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모습도 그와 같음을 아시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부처님은 중생들의 여상과 중생들의 심수가 나고 빠지고 굽고 펴는 것에서의 여상과 5중의 여상과 제행(諸行)의 여상 등 곧 온갖 법의 여상을 아시느니라.
무엇이 일체 법의 여상인가? 이른바 6바라밀의 여상이니 6바라밀의 여상이 바로 37조도법의 여상이니라. 37조도법이 바로 18공의 여상이며, 18공의 여상이 바로 8배사(背捨)의 여상이니라. 8배사의 여상이 바로 9차제정의 여상이며, 9차제정의 여상이 바로 10력의 여상이니라. 10력의 여상이 바로 4무소외ㆍ4무애지ㆍ대자대비 내지 18불공법의 여상이니라.
18불공법의 여상이 바로 일체종지의 여상이니라. 일체종지의 여상이 바로 선한 법과 선하지 않는 세간법과 출세간법, 유루법과 무루법의 여상이니라.
유루법과 무루법의 여상이 바로 과거ㆍ미래ㆍ현재에 있는 모든 법의 여상이니라. 과거ㆍ미래ㆍ현재에 있는 모든 법의 여상이 바로 유위법과 무위법의 여상이니라.
유위법과 무위법의 여상이 바로 수다원의 과위의 여상이니라. 수다원의 과위의 여상이 바로 사다함의 과위 여상이니라. 사다함의 과위의 여상이 바로 아나함의 과위의 여상이니라. 아나함의 과위의 여상이 바로 아라한의 과위의 여상이니라. 아라한의 과위의 여상이 바로 벽지불도의 여상이니라.
벽지불도의 여상이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여상이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여상이 바로 모든 부처님의 여상이니라. 모든 부처님의 여상은 모두가 하나의 여상이니라. 둘이 아니고 다름이 아니며 다하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으니, 이것을 온갖 법의 여상이라고 말하느니라.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이러한 여상을 얻느니라. 그리고 이러한 인연 때문에 반야바라밀은 능히 모든 부처님을 출생시키고, 능히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부처님께서는 온갖 법의 여상을 알아서 여상이 못되는 것도, 이상(異相)이 못되는 것도 아니라고 아시느니라. 이 여상은 얻은 까닭에 부처님을 여래(如來)라고 부르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법이 여상이 못되는 것도 이상(異相)이 못되는 것도 아니어서 매우 깊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위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설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누가 능히 이것을 믿어 이해하겠는지요? 다만 아유월치의 보살 및 정견을 구족한 사람과 누(漏)가 다한 아라한이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이 매우 깊은 여법(如法)을 얻어서 사람들을 위하여 설하시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如)는 다함이 없는 모습인 까닭에 매우 깊은 것이니라.”
다시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법이 다함이 없는 모습이어서 매우 깊은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온갖 법이 다함이 없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부처님은 이 온갖 법의 여를 이미 얻어서 중생들을 위하여 설하시느니라.”
49. 문상품(問相品)
그때 삼천대천국토 가운데 있는 욕계의 천자들과 색계의 천자들이 멀리서 꽃과 향을 뿌리면서 부처님이 계시는 곳에 이르러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서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설하신 바 반야바라밀은 매우 깊은 것입니다. 무엇이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의 모습인지요?”
부처님께서 욕계와 색계의 모든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천자들아, 공의 모습이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의 모습이니라. 모양 없고[無相] 조작 없고[無作] 일어남이 없고[不起] 생함이 없고[不生] 멸함이 없고[不滅] 더러움이 없고[不垢] 깨끗함이 없으며[不淨], 있는 바 없는 법의 없는 모습이자 의지할 바 없는 허공의 모습이 바로 심오한 반야바라밀의 모습이니라.
모든 천자들아, 실로 이러한 모습들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의 모습이니라. 부처님은 중생들을 위해서 세간법을 사용하여 설하지만 이것은 제일의(第一義)에 의한 것은 아니니라.
모든 천자들아, 이러한 모든 모습은 일체 세간의 하늘 또는 인간 또는 아수라가 파괴할 수는 없느니라. 왜냐하면 이 일체 세간의 하늘 또는 인간 또는 아수라도 또한 이러한 모양[相]이기 때문이니라.
모든 천자들아, 모습은 모습을 파괴할 수 없고, 모습은 모습을 알 수가 없느니라. 모습은 모습이 없음을 알 수가 없고, 모습이 없음은 모습을 알 수가 없느니라. 이 모습은 곧 모습이 없는 것이고, 모습이 없는 모습은 모두 있는 바가 없느니라. 이른바 앎의 모습 또는 아는 자 또는 아는 법은 모두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모든 천자들아, 이 모든 모습은 물질로 지은 것이 아니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로 지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단나바라밀로 지은 것도 아니고 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로 지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내공으로 지은 것도 아니고 외공으로 지은 것도 아니며, 내외공으로 지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나아가 유법공으로 지은 것도 아니며, 무법공으로 지은 것도 아니고 무법유법공으로 지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4념처로 지은 것도 아니고, 나아가 일체종지로 지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모든 천자들아, 이 모습은 사람이 소유한 것도 아니고 사람이 아닌 것이 소유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세간도 아니고 출세간도 아니기 때문이며, 유루도 아니고 무루도 아니기 때문이며,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모든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건대 마치 어떤 사람이 묻기를 ‘무엇이 허공의 모습인가’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라. 그렇다면 이 사람은 바르게 물은 것이더냐?”
모든 천자들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바른 물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허공은 모습을 말할 수 없고, 이 허공은 함이 없고 일어남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욕계와 색계의 모든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계시든 계시지 않든 모습의 성품[相性]은 항상 머무르니, 부처님께서는 여실하게 모습의 성품을 얻은 까닭에 일컬어 여래라고 하느니라.”
모든 천자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얻으신 모든 모습이 성품은 매우 깊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얻으신 까닭에 무애지를 얻어 이 모습 가운데 머무시며, 반야바라밀로써 모든 법의 자상을 모으십니다.”
다시 모든 천자들이 말씀드렸다.
“희유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께서 항상 도를 행하시던 곳입니다. 이 도를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나서는 온갖 법의 모습인 물질의 모습이나 혹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모습 내지 일체종지의 모습에 통달하시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모든 천자들아, 번민하고 파괴되는 것이 물질의 모습인데,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무상(無相)임을 얻었느니라. 감수(感受)하는 것이 수의 모습이고, 취함은 상의 모습이며, 일으키고 짓는 것이 행의 모습이고, 요별하는 것이 식의 모습인데,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무상임을 얻었느니라.
능히 버림이 단나바라밀의 모습이고, 뜨거운 고뇌가 없음이 시라바라밀의 모습이며, 변함없음이 찬제바라밀의 모습이고, 결코 눕히지 않음이 비리야바라밀의 모습이며, 마음을 정돈하는 것이 선나바라밀의 모습이고, 버려서 떠나는 것이 반야바라밀의 모습인데,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무상임을 얻었느니라.
마음에 뜨거운 고뇌가 없는 것이 4선(禪)ㆍ4무량심(無量心)ㆍ4무색정(無色定)의 모습인데,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무상임을 얻었느니라.
출세간이라는 것이 37조도품의 모습인데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무상임을 얻었느니라.
괴로움이라는 것이 무작 해탈문의 모습이고, 집기라는 것이 공 해탈문의 모습이며, 적멸이라는 것이 무원 해탈문의 모습인데,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무상임을 얻었느니라.
뛰어남이 부처님 10력의 모습이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4무소외의 모습이고, 두루 아는[遍知] 것이 4무애지의 모습이고, 다른 사람은 얻을 수 없는 것이 18불공법의 모습인데,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무상임을 얻었느니라.
중생을 불쌍히 여김이 대자대비의 모습이고, 진실함이 착각과 오류가 없는 모습이고, 취할 바가 없음이 항상 버리는 것의 모습이고, 드러내어 요지하는 것이 일체종지의 모습인데,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무상임을 얻었느니라.
이와 같이 천자들아, 부처님께서는 온갖 법이 무상임을 얻었으니, 이러한 인연으로 부처님을 무애지라고 부르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이니라. 반야바라밀은 능히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니, 이러한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이 법에 의지하여 행하고, 이 법을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시느니라. 무엇을 이 법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반야바라밀이니라. 모든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에 의지하여 머물고, 이 반야바라밀을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시느니라.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을 출생시키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짓는 사람을 아시니, 만약 사람으로서 짓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부처님을 능가하는 사람이 없다고 바르게 대답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부처님께서는 짓는 사람을 아시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이 타고 온 이 법과 부처님이 따라 온 이 길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느니라. 그리하여 이 수레와 이 길을 부처님께서는 오히려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고 받아 지니며 수호하시니, 수보리야,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짓는 사람을 아신다고 하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부처님께서는 온갖 법이 무작(無作)의 모습임을 아시니, 짓는 자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온갖 법은 일어남이 없는 모습이니, 형태와 사건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온갖 법이 무작의 모습임을 아시며, 또한 이러한
인연으로 부처님께서는 짓는 사람을 아시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에 말미암아 온갖 법의 생하지 않음을 얻으니, 얻을 바가 없는 것인 까닭이니라. 이러한 인연으로 반야바라밀은 능히 모든 부처님을 출생시키고 능히 세간이 모습을 보여주느니라.”
수보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온갖 법에는 능히 아는 자도 없고 보는 자도 없다면, 어떻게 반야바라밀이 능히 모든 부처님을 출생시키고 능히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온갖 법에는 진실로 아는 자도 없고 보는 자도 없느니라. 어찌하여 아는 자도 없고 보는 자도 없는가? 온갖 법은 공하고 허황되고 견고하지 않으니, 그런 까닭에 온갖 법에는 아는 자도 없고 보는 자도 없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온갖 법에는 어찌하여 아는 자도 없고 보는 자도 없는가? 온갖 법에는 의지하는 것도 없고 메인 바도 없느니라. 이러한 까닭에 온갖 법에는 아는 자도 없고 보는 자도 없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능히 모든 부처님을 출생시키고 능히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느니라.
그리고 물질을 보지 않는 까닭에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보지 않는 까닭에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며, 나아가 일체종지를 보지 않는 까닭에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능히 모든 부처님을 출생시키고, 능히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느니라.”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물질을 보지 않는 까닭에 반야바라밀이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내지 일체종지를 보지 않는 까닭에 반야바라밀이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물질에 기대지 않고서 식별이 생한다면, 이것을 물질의 모습을 보지 않는 까닭에 보여준다고 하느니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에 기대지 않고서 식별이 생하고, 나아가 일체종지에 기대지 않고서 식별이 생한다면, 이것을 일체종지의 모습을 보지 않는 까닭에 보여준다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은 능히 모든 부처님을 출생시키고 능히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이 어찌하여 능히 모든 부처님을 출생시키고 능히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가?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느니라. 어떻게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는가? 곧 5중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고, 12처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고, 18계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고, 12인연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아견(我見)6)이 근본 되는 62견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고, 10선도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4선과 4무량심과 4무색정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고, 37조도품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6바라밀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내공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며, 외공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고, 내외공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며, 무법공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고, 유법공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며, 무법유법공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유위공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고, 무위공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부처님 10력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고, 18불공법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며, 나아가 일체종지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능히 모든 부처님을 출생시키고 능히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부처님은 이 반야바라밀로 말미암아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고, 세간이 공임을 알며, 세간이 공임을 깨닫고, 세간이 공임을 사유하며, 세간이 공임을 분별한다. 이와 같이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능히 모든 부처님을 출생시키고, 능히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에게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느니라. 어떻게 부처님에게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는가? 5중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고,
나아가 일체종지의 세간이 공임을 보여주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능히 모든 부처님을 출생시키고 능히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에게 세간이 불가사의함을 보여주느니라. 어떻게 부처님에게 세간이 불가사의함을 보여주는가? 5중의 세간이 불가사의함을 보여 주고, 나아가 일체종지의 세간이 불가사의함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에게 세간이 떠나야 하는 것임을 보여주느니라. 어떻게 부처님에게 세간이 떠나야 하는 것임을 보여주는가? 5중의 세간이 떠나야 하는 것임을 보여 주고, 나아가 일체종지의 세간이 떠나야 하는 것임을 보여주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에게 세간이 떠나야 하는 것임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에게 세간이 적멸임을 보여주느니라. 어떻게 부처님에게 세간이 적멸임을 보여주는가? 5중의 세간이 적멸임을 보여주고, 나아가 일체종지의 세간이 적멸임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에게 세간이 필경공임을 보여주느니라. 어떻게 부처님에게 세간이 필경공임을 보여주는가? 5중의 세간이 필경공임을 보여주고, 나아가 일체종지의 세간이 필경공임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에게 세간이 성공(性空)임을 보여주느니라. 어떻게 부처님에게 세간이 성공임을 보여주는가? 5중의 세간이 성공임을 보여주고, 나아가 일체종지의 세간이 성공임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에게 세간이 무법공임을 보여주느니라. 어떻게 부처님에게 세간이 무법공임을 보여주는가? 5중의 세간이 무법공임을 보여주고, 나아가 일체종지의 세간이 무법공임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에게 세간의 유법공임을 보여주느니라. 어떻게 부처님에게 세간의
유법공임을 보여주는가? 5중의 세간이 유법공임을 보여주고, 나아가 일체종지의 세간의 유법공임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에게 세간이 무법유법공임을 보여주느니라. 어떻게 부처님에게 세간이 무법유법공임을 보여주는가? 5중의 세간이 무법유법공임을 보여주고, 나아가 일체종지의 세간이 무법유법공임을 보여주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에게 세간이 독공(獨空)임을 보여주느니라. 어떻게 세간이 독공임을 보여주는가? 5중의 세간이 독공임을 보여주고, 나아가 일체종지의 세간이 독공임을 보여주느니라. .
이와 같이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능히 모든 부처님을 출생시키고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느니라수보리야,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은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니, 이른바 금세와 후세의 모습을 생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법은 금세와 후세의 모습을 이용하여 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큰 일을 위하여 일어납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불가사의한 일을 위하여 일어납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일컬을 수 없는 일을 위하여 일어납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무량한 일을 위하여 일어납니다. 세존시이여, 이 반야바라밀은 무등등(無等等)의 일을 위하여 일어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이 반야바라밀은 큰 일을 위하여 일어나고, 불가사의한 일을 위하여 일어나고, 일컬을 수 없는 일을 위하여 일어나고, 무량한 일을 위하여 일어나고, 무등등의 일을 위하여 일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무엇이 이 반야바라밀은 큰 일을 위하여 일어난다는 것인가?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의 큰일이란
이른바 온갖 중생들을 구제하여 온갖 중생들을 버리지 않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무엇이 이 반야바라밀은 불가사의한 일을 위하여 일어난다는 것이더냐?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일이란 이른바 모든 부처님의 법과 여래법(如來法)과 자연인법(自然人法)과 일체지인법(一切知人法)이다. 이러한 까닭에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의 반야바라밀은 불가사의한 일을 위하여 일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무엇이 이 반야바라밀은 일컬을 수 없는 일을 위하여 일어난다는 것이더냐? 수보리야, 온갖 중생들 가운데 능히 부처님의 법과 여래법과 자연인법과 일체지인법을 사유하고 일컬을 수 있는 이는 있을 수 없느니라. 이러한 까닭에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의 반야바라밀은 일컬을 수 없는 일을 위하여 일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무엇이 이 반야바라밀은 무량한 일을 위하여 일어난다는 것인가? 수보리야, 온갖 중생들 가운데 능히 부처님의 법과 여래법과 자연인법과 일체지인법을 헤아릴 수 있는 이는 있을 수 없느니라. 이러한 까닭에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헤아릴 수 없는 일을 위하여 일어나느니라.
수보리야, 무엇이 반야바라밀이 무등등의 일을 위하여 일어난다는 것인가? 수보리야, 온갖 중생들 가운데 능히 부처님과 동등한 이도 없거늘 하물며 능가하는 자가 있겠느냐. 이러한 까닭에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무등등의 일을 위하여 일어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단지 부처님의 법과 여래법과 자연인법과 일체지인 법만이 불가사의하고 일컬을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무등등의 일이 일어난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부처님의 법과 여래법과 자연인법과 일체지인법만이
불가사의하며 무게를 달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무등등의 것이니라. 그러나 물질도 또한 불가사의하며 무게를 달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무등등의 것이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또한 불가사의하며 무게를 달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무등등의 것이니라.
내지 일체종지와 법성과 법상도 불가사의하고 일컬을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무등등의 것이니라. 이 가운데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도 얻을 수가 없느니라.
또 수보리야, 물질이 불가사의라는 것도 또한 얻을 수가 없고, 나아가 물질의 무등등도 또한 얻을 수가 없느니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내지 일체종지의 무등등도 또한 얻을 수가 없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물질의 불가사의 내지 무등등을 얻을 수가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내지 일체종지의 무등등도 또한 얻을 수가 없다고 하시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물질의 양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양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고, 나아가 일체종지의 양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물질의 양은 얻을 수가 없고, 나아가 일체종지의 양도 얻을 수가 없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물질이 불가사의한 까닭에, 나아가 물질이 무등등인 까닭에 양을 얻을 수가 없느니라. 그리고 일체종지가 불가사의한 까닭에, 나아가 물질이 무등등인 까닭에 양을 얻을 수가 없느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불가사의 내지 무등등인 것을 얻을 수 있더냐?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내지 일체종지를 얻을 수 있더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수보리야, 온갖 법은
불가사의 내지 무등등인 것이니라. 또한 수보리야,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법도 불가사의하며 무게를 달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무등등인 것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모든 부처님법이 불가사의하고, 나아가 무등등인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수보리야, 이 모든 부처님법은 불가사의하니, 사의(思議)의 모습을 능가하기 때문이니라. 또한 일컬을 수가 없으니, 일컫는 것을 능가하기 때문이니라. 또한 헤아릴 수가 없으니, 양을 능가하기 때문이니라. 또한 동등한 것이 없으니, 동등함을 능가하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이러한 인연으로 온갖 법도 또한 불가사의하고, 나아가 무등등인 것이니라.
수보리야, 불가사의는 그 뜻이 불가사의함을 이름한 것이고, 일컬을 수 없음은 그 뜻이 일컬을 수 없음을 이름한 것이고, 헤아릴 수 없음은 그 뜻이 헤아릴 수 없음을 이름한 것이고, 무등등은 그 뜻이 무등등임을 이름한 것이니라.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의 법은 불가사의하고, 나아가 무등등인 것이니라. 불가사의 하다는 것은 허공이 불가사의함과 같고, 일컬을 수 없다는 것은 허공을 일컬을 수 없음과 같고,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허공을 헤아릴 수 없음과 같고, 무등등이라는 것은 허공이 무등등임과 같은 것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모든 부처님의 법이 불가사의하고, 나아가 무등등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법이 이와 같이 한량이 없다면 일체세간의 하늘 또는 인간 또는 아수라로서는 능히 생각하고 헤아릴 자가 없느니라.”
이 모든 부처님법이 불가사의하고 일컬을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무등등인 것이라는 품(品)을 설할 때에 5백 명의 비구는 온갖 법을 수용하지 않은 까닭에 누(漏)를 다하고 마음의 해탈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20명의 비구니도 또한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 않은 까닭에 누를 다하고 아라한이 되었으며, 6만 명의 우바새와 3만 명의 우바이도 모든 법 가운데서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떠나 모든 법 가운데서 법의 눈이 생겼다. 20만
명의 보살마하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으니, 이들은 이 경사스러운 겁 안에서 수기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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