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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169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27권

by Kay/케이 2023.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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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27

 

대반열반경 제27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3. 사자후보살 ③

사자후보살이 또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과 같이 모든 법에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정인(正因)이요 하나는 연인(緣因)이오나, 이 두 가지 인으로는 묶고 푸는 것이 없으리이다. 이 5음은 잠깐잠깐 사이에 났다 없어졌다 하나니, 만일 났다 없어졌다 한다면, 누가 묶고 누가 푸나이까? 세존이시여, 이 5음으로 인하여 뒤의 5음을 내거니와, 이 5음은 스스로 멸하고 저 5음에 이르지 않으며, 비록 저 5음에 이르지 않더라도 능히 저 5음을 내나이다. 마치 씨를 인하여 싹이 나거니와 씨는 싹에 이르지 않으며, 비록 싹에 이르지 않더라도 능히 싹을 내는 것 같나이다. 중생도 그러하옵거늘 어찌하여 묶고 푼다 하오리까?”
“선남자여, 자세히 잘 들으라. 내가 그대에게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목숨을 버리려고 크게 괴로울 적에 일가 친척들이 둘러앉아 울고불고 슬퍼하거든 그 사람이 공포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며, 비록 다섯 가지 정(情)이 있으나 감각이 없고, 팔 다리는 떨리어 스스로 진정하지 못하며, 몸은 식어가고 더운 기운은 다하려 하거든, 먼저 닦아 익혔던 선과 악의 과보를 보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해가 지려 할 적에는 산이나 언덕의 그림자가 동쪽으로 나타나고, 서쪽으로 기울어질 이치가 없느니라. 중생의 업과 과보도 그와 같아서 이 5음이 없어질 때에 저 5음이 계속하여 생기나니, 마치 등불이 켜지면 어둠이 없어지고, 등불이 꺼지면 어둠이 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밀랍으로 만든 인[蠟印]을 인주[泥]에 찍으면 인과 인주가 합하였다가, 인은 없어지고 글씨가 생기거니와, 밀랍으로 만든 인이 변하여서 인주에 있지도 아니하고 글씨가 인주에서 나오지도 아니하고, 다른 데서 오는 것도 아니요, 밀랍으로 만든 인의 인연으로 글씨가 생기느니라. 현재의 5음이 없어지면 중음신의 5음이 생기거니와,
이 현재의 5음이 변하여서 중음신의 5음이 되지도 아니하고, 중음신의 5음이 스스로 생기는 것도 아니며, 다른 데서 오는 것도 아니요, 현재의 5음을 인해서 중음의 5음이 생기는 것이니, 마치 밀랍으로 만든 인을 인주에 찍으면, 인이 망그러지면서 글씨가 생기는 것과 같아서 이름은 비록 차별이 없으나 시절이 제각기 다르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중음신의 5음은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고, 천안(天眼)으로야 본다고 하느니라.
이 중음신에는 세 가지 먹는 것이 있으니, 하나는 생각으로 먹음[思食]이요 둘은 닿이어서 먹음[觸食]이요 셋은 뜻으로 먹음[意食]이니라. 중음신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선한 업의 과보요, 둘은 악한 업의 과보니라. 선한 업을 인해서는 선한 알음알이[覺觀]를 얻고, 악한 업을 인해서는 악한 알음알이를 얻나니, 부모가 교접할 적에 업의 인연을 따라서 태에 들게 되는데, 어미에게는 사랑함을 내고, 아비에게는 미워함을 내며, 아비의 정수가 나올 적에는 자기의 것이라 여기고, 보고서는 기뻐서 환희한 마음을 내나니, 이 세 가지 번뇌의 인연으로 중음신의 5음이 없어지고 후생(後生)의 5음을 내는 것이, 마치 인주에 찍었던 인이 망그러지고, 글씨가 생기는 것과 같으니라.
태어날 적에 모든 근이 구족하기도 하고 구족하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구족한 이는 색을 보고 탐심을 내며, 탐심을 내므로 사랑이라 하며, 광란(狂亂)하여 탐심을 내는 것을 무명이라 하느니라. 탐애(貪愛)와 무명의 두 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보는 경계가 모두 뒤바뀌어서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 보고, 내가 없는 것을 내가 있다 보고, 낙이 없는 것을 즐겁다 보고,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 보느니라. 네 가지 뒤바뀜으로 말미암아 선한 행과 악한 행을 짓나니, 번뇌는 업을 짓고 업은 번뇌를 짓는 것을 속박이라 이름하며, 이런 뜻으로 5음이 생긴다 이름하느니라.
이 사람이 만일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제자나 선지식을 친근하면, 문득 12부경을 듣게 되고, 법문을 들었으므로 선한 경계를 관찰하고, 선한 경계를 관찰하므로 큰 지혜를 얻고, 지혜를 얻은 이는 바른 지견[正知見]이라 하고, 바른 지견을 얻었으므로
생사 중에서 뉘우치는 마음을 내고, 뉘우치는 마음을 내었으므로 즐거운 마음을 내지 않고, 즐거움을 내지 아니하므로 탐심을 깨뜨리고, 탐심을 깨뜨렸으므로 8성도를 닦고, 8성도를 닦으므로 생사가 없어지고, 생사가 없어지므로 해탈을 얻었다 하나니, 불이 섶을 만나지 못한 것을 꺼졌다고 이름하는 것과 같으니라. 생사를 멸하였으므로 멸도(滅度)라 이름하나니, 이런 뜻으로 5음이 멸하였다 이름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허공 가운데 가시가 없거늘 무엇을 뽑는다 하오며, 5음에 속박하는 이가 없다면, 어찌하여 속박이라 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번뇌의 사슬로 5음을 속박하나니, 5음을 여의고 따로 번뇌가 없고, 번뇌를 여의고 따로 5음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기둥이 집을 지탱함과 같아서, 집을 여의고 기둥이 없으며, 기둥을 여의고 집이 없나니, 중생의 5음도 그와 같아서, 번뇌가 있으므로 속박이라 하고 번뇌가 없으므로 해탈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주먹과 손바닥을 모으는 것과 결박하는 것 등 세 가지는 합하고 흩어져서 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요, 다시 다른 법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중생의 5음도 그와 같아서, 번뇌가 있으므로 속박이라 하고 번뇌가 없으므로 해탈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명과 색[名色]이 중생을 속박하였다는 말과 같나니, 명과 색이 멸하면 중생이 없거니와 명과 색을 여의고 따로 중생이 없으며, 중생을 여의고 따로 명과 색이 없지만, 명과 색이 중생을 속박한다고도 이름하고, 중생이 명과 색을 속박한다고도 이름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치 눈이 스스로 보지 못하고, 손가락이 스스로 찌르지 못하고, 칼이 스스로 깎지 못하고, 수(受)가 스스로 받지 못하옵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명과 색이 명과 색을 속박한다 말씀하시나이까? 왜냐 하면 명과 색이라 말하면 곧 중생이요, 중생이라 말하면 곧 명과 색이기 때문이니, 만약 명과 색이 중생을 속박한다 말하면 이는 곧 명과
색이 명과 색을 속박한다 함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두 손을 합할 적에 다른 법이 와서 합함이 없느니라. 명과 색도 그와 같나니, 이런 뜻으로 내가 말하기를 명과 색이 중생을 속박한다 하는 것이며, 만일 명과 색을 여의면 곧 해탈이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중생이 해탈한다고 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명과 색이 있는 것을 속박이라 한다면, 아라한들이 아직 명과 색을 여의지 못한 것도 속박이라 하겠나이다.”
“선남자여, 해탈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종자를 끊음[子斷]이요, 둘은 과보를 끊음[果斷]이니라. 종자를 끊음은 번뇌를 끊음이라 하나니, 아라한은 이미 번뇌를 끊었으므로 모든 속박[結]이 무너졌느니라. 그러므로 종자의 번뇌는 속박하지 못하거니와, 과보를 끊지 못하였으므로 과보의 속박이라 이름하니라. 아라한들이 불성을 보지 못하였나니, 보지 못한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느니라. 이런 뜻으로 과보의 속박이라고는 말할지언정, 명과 색의 속박이라고는 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등불을 켜는 것과 같아서, 기름이 다하기 전에는 밝은 빛이 꺼지지 않거니와, 기름이 다하면 꺼질 것이 의심없느니라. 선남자여, 기름은 번뇌에 비유하고 등은 중생에 비유한 것이니, 모든 중생들이 번뇌의 기름인 연고로 열반에 들지 못하거니와, 만일 번뇌를 끊는다면 열반에 드느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등과 기름은 두 성품이 각각 다르거니와, 중생과 번뇌는 그렇지 아니하여, 중생이 곧 번뇌요 번뇌가 곧 중생이며, 중생을 5음이라 하고 5음을 중생이라 하며, 5음을 번뇌라 하고 번뇌를 5음이라 하옵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등에 비유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비유에 여덟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수순하는 비유[順喩]요, 둘은 거슬러 하는 비유[逆喩]요, 셋은 현재에 있는 비유[現喩]요, 넷은 실제가 아닌 비유[非喩]요, 다섯은
먼저 하는 비유[先喩]요, 여섯은 뒤에 하는 비유[後喩]요, 일곱은 앞과 뒤에 하는 비유[先後喩]요, 여덟은 두루하는 비유[遍喩]니라.
어떤 것을 수순하는 비유라 하는가. 경에 말하기를 ‘하늘에서 큰비가 오면 도랑이 넘치고, 도랑이 넘치므로 작은 구렁이 넘치고, 작은 구렁이 넘치므로 큰 구렁이 넘치고, 큰 구렁이 넘치므로 큰 샘이 넘치고, 큰 샘이 넘치므로, 작은 못이 넘치고, 작은 못이 넘치므로 큰 못이 넘치고, 큰 못이 넘치므로 작은 강이 넘치고, 작은 강이 넘치므로 큰 강이 넘치고, 큰 강이 넘치므로 큰 바다가 넘치나니, 여래의 법비도 이와 같아서 중생의 계행이 만족하고, 계행이 만족하므로 후회하지 않는 마음이 만족하고, 후회하지 않는 마음이 만족하므로 환희한 마음이 만족하고, 환희가 만족하므로 멀리 여의는 것이 만족하고, 멀리 여의는 일이 만족하므로 편안함이 만족하고, 편안함이 만족하므로 삼매가 만족하고, 삼매가 만족하므로 바른 지견이 만족하고 바른 지견이 만족하므로 싫어함이 만족하고, 싫어함이 만족하므로 꾸짖음이 만족하고, 꾸짖음이 만족하므로 해탈이 만족하고, 해탈이 만족하므로 열반이 만족하니라’ 한 것을 수순하는 비유라 이름하니라.
어떤 것을 거슬러 하는 비유라 하는가. 큰 바다의 근본이 있으니 큰 강이요, 큰 강의 근본이 있으니 작은 강이요, 작은 강의 근본은 큰 못이요, 큰 못의 근본은 작은 못이요, 작은 못의 근본은 큰 샘이요, 큰 샘의 근본은 작은 샘이요, 작은 샘의 근복은 큰 구렁이요, 큰 구렁의 근본은 작은 구렁이요, 작은 구렁의 근본은 도랑이요, 도랑의 근본은 큰비인 것처럼, 열반의 근본이 있으니 해탈이요, 해탈의 근본이 있으니 꾸짖음이요, 꾸짖음의 근본은 싫어함이요, 싫어함의 근본은 바른 지견이요, 바른 지견의 근본은 삼매요, 삼매의 근본은 편안함이요, 편안함의 근본은
멀리 여의는 일이요, 멀리 여의는 일의 근본은 환희한 마음이요, 환희한 마음의 근본은 후회하지 아니함이요, 후회하지 않는 근본은 계행을 가짐이요, 계행을 가지는 근본은 법비니라 하는 것은, 거슬러 하는 비유라 하느니라.
어떠한 것을 현재에 있는 비유라 하는가. 경에서 말하기를 중생의 마음이 원숭이와 같나니, 원숭이의 성품은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가짐이니라. 중생의 마음도 그와 같아서 빛과 소리와 향과 맛과 닿임과 법에 취착하여 잠시도 머무는 때가 없다고 함은 현재에 있는 비유라 하느니라.
어떠한 것을 실제가 아닌 비유라 하는가. 내가 예전에 바사닉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어떤 믿는 사람이 사방에서 와서 각각 말하기를, 대왕이시여, 네 개의 큰 산이 사방으로부터 백성들을 해하려 한다고 하면 왕은 이 말을 듣고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자 왕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설사 이런 일이 있어도 도피할 곳이 없으니, 다만 전심으로 계율을 지키고 보시할 뿐입니다.’
나는 이렇게 찬탄하였노라.
‘훌륭합니다. 대왕이여, 내가 말한 네 개의 산이라 함은, 곧 중생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데 비유한 것입니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이 항상 와서 사람을 침노하거늘, 대왕은 어찌하여 계율을 지키고 보시를 행하지 않습니까?’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계율을 지키고 보시를 행하여 어떠한 과보를 얻나이까?’
나는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인간에나 천상에 태어나서 훌륭한 쾌락을 받나이다.’
왕은 또 말하기를 ‘니구타나무가 계율을 지키고 보시를 하여도, 인간에나 천상에서 쾌락을 받겠나이까?’ 하기에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니구타 나무는 계율을 지키고 보시를 행할 수가 없거니와, 그렇게 하기만 하면 쾌락을 받을 것이 다를 것 없습니다.’ 이런 것을 실제가 아닌 비유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먼저 하는 비유라 하는가. 내가 경 가운데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꽃을 탐내어 꽃을 꺾다가 물에 떠내려갔으니,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5욕락에 탐착하다가 나고 늙고 죽음의 물에 떠내려가느니라’ 하였으니, 이런 것을 먼저 하는 비유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뒤에 하는 비유라 하는가. 『법구경』에 말하였다.


작은 악을 가벼이 여겨
재앙이 없다 말하지 말라.
물방울이 작지만
큰 그릇을 채우느니라.

이런 것을 뒤에 하는 비유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앞과 뒤에 하는 비유라 하는가. ‘마치 파초가 열매를 맺으면 죽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이양을 얻는 것도 그와 같나니, 노새가 새끼를 배면 생명을 오래 보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하는 것이, 앞과 뒤에 하는 비유니라.
어떤 것을 두루하는 비유라 하는가. 경에 말하기를 ‘33천에 파리질다나무가 있는데, 뿌리는 땅속으로 5유순이나 깊이 들어가고 높이는 1백 유순이요 가지와 잎은 사방으로 50유순이나 퍼지었다. 잎이 성숙하면 누렇게 되므로 하늘 사람들이 보고 환희한 마음을 내어, 이 잎은 오래지 않아 반드시 떨어지리라 하고, 잎이 떨어지면 또 환희심을 내어 이 가지가 오래지 않아 빛이 변하리라 하고, 가지의 빛이 변하면 또 환희심을 내어 이 빛이 오래지 않아 반드시 포(皰)가 생기리라 하고, 포를 보고는 또 기뻐서 이 포가 오래지 않아 꽃봉오리가 생기리라 하고, 꽃봉오리를 보고는 또 기뻐서 이 꽃봉오리가 오래지 않아 활짝 피리라 하나니, 필 적에는 향기가 50유순까지 퍼지고 광명이 80유순까지 비치나니, 그때에 하늘 사람들이 여름 석 달 동안 그 아래서 낙을 받느니라.
선남자여, 나의 제자들도 그와 같나니, 잎이 누렇게 되는 것은 나의 제자가 출가하려는 데 비유하고, 잎이 떨어짐은 나의 제자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는 데 비유하고, 빛이 변함은 나의 제자의 네 번 고하는 갈마[白四羯磨]를 하여 구족계를 받는 데 비유하고, 처음으로 포가 생기는 것은 나의 제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는 데 비유하고, 꽃봉오리는 10주 보살이 불성을 보는 데 비유하고, 꽃이 피는 것은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데 비유하고, 향기는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이 계율을 받아 갖는 데 비유하고, 광명은
여래의 명호가 걸림없이 시방에 두루 퍼짐에 비유하고, 여름 석 달은 세 가지 삼매에 비유하고, 33천이 쾌락을 받음은 부처님들이 대열반에 계시면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는 데 비유하였으니, 이것을 두루하는 비유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릇 비유하는 것은 반드시 모두 취할 것이 아니요, 혹 조금만 취하기도 하고, 혹 많이 취하기도 하고, 혹은 전부를 취하기도 하나니, 마치 여래의 얼굴이 보름달 같다고 함은, 조금만 취한 비유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애초에 젖은 알지 못하여서 다른 이에게 젖이 어떠냐고 물었다. 대답하기를, 물과 같고 꿀과 같고 조개와 같다고 하였으니, 물은 습한 모양이고 꿀은 단 성품이고 조개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 비유를 말하였으나 젖의 실상은 아니니라. 선남자여, 내가 등불을 이끌어서 중생에게 비유한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물을 떠나서는 강이 없나니, 중생도 그러하여 5음을 떠나서는 따로 중생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수레 바탕과 바퀴와 바퀴살과 굴대와 덧바퀴와 수레 지붕을 떠나서는 따로 수레가 없듯이, 중생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만일 저 등불의 비유를 법에 합치하려면 자세히 잘 들으라, 내가 이제 말하리라. 심지는 25유에 비유하고, 기름은 애욕에 비유하고, 밝은 빛은 지혜에 비유하고, 어둠을 깨뜨림은 무명을 없애는 데 비유하고, 더움은 성인이 도에 비유하고, 기름이 다하면 밝은 불꽃이 꺼지는 것은 중생의 애욕이 다하면 불성을 보는 데 비유한 것이다. 비록 명과 색이 있어도 속박하지 못하나니, 비록 25유에 있더라도 모든 유의 더럽힘을 받지 않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5음이 공하여 있지 않다면, 누가 가르침을 받고 도를 닦겠나이까?”
“선남자여, 온갖 중생이 모두 생각하는 마음, 지혜의 마음, 처음 내는 마음[發心], 정진하는 마음, 믿는 마음, 선정의 마음이 있나니, 이런 따위의 법이 비록 순간순간 생멸하더라도,
오히려 비슷하게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므로 도를 닦는다 이름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법이 모두 순간순간 멸하나이다. 이 잠깐잠깐 사이에 멸하는 것도 비슷하게 서로 계속하오나, 어떻게 닦아 익히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마치 등불이 비록 순간순간 멸하지만 광명이 있어 어둠을 깨뜨리나니, 생각하는 마음 등의 여러 가지 법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중생의 먹는 것이 비록 순간순간 멸하지만 굶주린 이로 하여금 배가 부르게 하며, 좋은 약도 순간순간 멸하지만 능히 병을 다스리며, 해와 달의 광명도 순간순간 멸하지만, 초목들을 자라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잠깐잠깐 사이에 멸하는데 어떻게 자라게 하겠는가 하지만, 마음이 끊어지지 아니하므로 자란다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사람이 글을 읽을 적에 읽는 구절이나 글자가 한꺼번에 읽는 것이 아니어서, 앞의 것이 중간에 이르지 못하고, 중간 것이 뒤에 이르지 못하여, 사람과 글자와 마음이 모두 순간순간 멸하지만 오래오래 닦으므로 통달하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은장이가 처음 견습할 적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비록 순간순간 멸하여서 앞의 것이 뒤에 이르지 못하지만, 오래오래 익힌 연고로 교묘하게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잘하는 은장이라 하나니, 글을 읽고 외우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씨앗을 보고 ‘네가 싹을 내라’고 땅이 가르치지 않지만, 법의 성품인 연고로 싹이 스스로 나는 것이며, 내지 꽃도 네가 열매를 맺으라고 말하는 것 아니지만, 법의 성품인 연고로 열매가 저절로 생기나니, 중생의 도를 닦음도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셈하는 법[數法]이 하나가 둘에 이르지 아니하고 둘이 셋에 이르지 아니하며 순간순간 멸하지만, 천과 만에 이르나니, 중생이 도를 닦음도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저 등불이 순간순간 멸하거니와, 처음 멸하는 불꽃이 뒤의 불꽃에게 가르치기를 ‘내가 멸하거든
네가 나서 어둠을 깨뜨리라’ 하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마치 송아지가 나면서 문득 젖을 찾는데 젖을 찾는 지혜는 누가 가르친 적이 없으며, 비록 순간순간 멸하지만, 처음은 주리었으나 나중에 배부르니라. 이러므로 서로 같지 않음을 많이 알지니, 만일 서로 같다면 마땅히 다른 데서 나지 않을 것이니라. 중생의 도를 닦음도 이와 같아서, 처음에는 증장하지 못하지만, 오래오래 닦으므로 모든 번뇌를 능히 깨뜨리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수다원이 과를 증득한 뒤에는, 비록 나쁜 나라에 태어나더라도 오히려 계율을 지키어 살생과 도적질과 음행과 이간하는 말과 술을 마시는 일을 하지 아니한다 하오니, 수다원의 5음이 여기서 멸하고 나쁜 나라에 이르지 아니한다면, 도를 닦는 것도 그와 같아서 나쁜 나라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만일 서로 같다면 무슨 연고로 깨끗한 나라에 나지 않나이까? 만일 나쁜 나라의 5음은 수다원의 5음이 아니라 하오면, 어찌하여 나쁜 법을 짓지 아니할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수다원은 비록 나쁜 나라에 나더라도, 수다원의 이름을 잃지 아니하거니와, 5음은 서로 같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송아지로 비유하였느니라. 수다원은 비록 나쁜 나라에 나더라도 도력으로 말미암아 나쁜 업을 짓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향산에 사자왕이 있으므로, 모든 새와 짐승들이 이 산에는 종적을 감추고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더니, 어느 때에 이 사자왕이 설산으로 갔는데도, 온갖 새와 짐승들이 오히려 있지 못하는 것처럼, 수다원도 그와 같아서, 비록 도를 닦지 아니하더라도 도력으로 말미암아 나쁜 일을 짓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감로를 먹었으면, 감로는 비록 멸하였으나 그 세력으로 이 사람이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느니라. 선남자여, 수미산에 능가리(楞伽利)라 하는 좋은 약이 있는데, 사람이 먹으면 비록 그것은 순간순간 없어지나 그 약의 효력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전륜왕이 앉는 자리에는 왕이 있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가까이 가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왕의 위력이 있는 까닭이니라. 수다원도 그와 같아서 비록 나쁜 나라에서 나서 도를 닦지 않더라도, 도력으로 말미암아 나쁜 업을 짓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수다원의 5음이 여기서 없어지고 다른 5음이 생겼다 할지라도 여전히 수다원의 5음은 잃지 않느니라. 어떤 중생이 과일을 얻기 위하여 종자를 심느라고 애를 많이 쓰며 거름을 주고 물을 대었으나 과일을 얻기 전에 종자까지 없어졌지만, 그래도 종자로 인하여 과일을 얻는다 이름하나니, 수다원의 5음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재산이 매우 많은데, 외아들은 먼저 죽었고, 그 아들의 아들이 있었으나, 다른 지방에서 살았다. 그 사람이 홀연히 죽으매, 손자가 기별을 듣고 그 재산을 모두 차지하였느니라. 비록 그 재산이 자기가 모은 것이 아니지만, 그 재산을 차지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이 없었다. 왜냐 하면 그 내림[姓]이 같은 연고니, 수다원의 5음도 그와 같으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이런 게송을 말씀하였나이다.

비구들이 만일에
계와 정과 지혜를 닦으면
그것은 언제나 물러가지 않고
대열반에 친근하게 되리라.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계를 닦는 것이며, 어떤 것이 정을 닦는 것이며, 어떤 것이 지혜를 닦는 것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계율을 받아 지니더라도 다만 제 몸만 위하여 인간이나 천상에서 쾌락을 받으려 하고,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지 않으며, 위없는 정법을 보호하지 않고, 자기의 이양을 위하여 3악도를 무서워하거나, 생명과 색신(色身)과 힘과 편안함과 걸림없는 변재를 위하거나, 국법과 나쁜 이름과 나쁜 소문이 두려워서, 세간 사업만을 한다면, 이렇게 계율을 가지는 것은
계를 닦는다 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참으로 계를 닦는다 하는가. 계율을 받아 지닐 때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고 정법을 보호하기 위하며,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하고 알지 못하는 일을 알게 하고, 귀의할 데 없는 이를 귀의하게 하고 열반에 들지 못한 이를 열반에 들게 하기 위하며, 이렇게 계를 닦으면서도 계도 보지 않고 계의 모양도 보지 않고 계를 가지는 사람도 보지 않고 과보도 보지 않고 파계함도 보지 아니한다면, 선남자여, 이렇게 하는 이는 계를 닦는다고 이름하느니라.
어떤 것을 삼매를 닦는다 하는가. 삼매를 닦을 때에 스스로 해탈하기를 위하여 이양만을 위하고, 중생을 위하지 아니하며 법을 보호하기를 위하지 아니하고, 탐욕과 더러운 음식 따위의 허물을 보기 위하며, 남녀의 근(根)이나 아홉 구멍이 부정함과 소송하고 때리고 서로 살해함을 보기 위한다면, 이런 일을 위하여 삼매를 닦는 이는, 삼매를 닦는다고 이름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참으로 삼매를 닦는다 하는가. 만일 중생을 위하여 삼매를 닦되, 중생들 가운데서 평등한 마음을 얻으며, 중생으로 하여금 물러가지 않는 법을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성인의 마음을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대승을 얻게 하기 위하며, 위없는 법을 두호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수릉엄삼매를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금강삼매를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다라니를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4무애를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불성을 보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행을 닦을 적에, 삼매를 보지 아니하며 삼매라는 모양을 보지 아니하며 닦는 사람도 보지 아니하며 과보도 보지 아니하나니, 선남자여, 만일 능히 이렇게 한다면, 이것은 삼매를 닦는다 할 것이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하는가. 만일 지혜를 닦는 이가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이러한 지혜를 닦으면 해탈함을 얻어 3악도에서 벗어나리니, 누가 능히 모든 중생을 이익케 하며, 누가 능히 생사하는 갈래에서 사람을 제도하리요. 부처님께서 나시기 어려움이 우담꽃과 같나니, 내가 이제 번뇌의 결박을 끊고 해탈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내가 마땅히 부지런히 지혜를 닦아 빨리 번뇌를 끊고 해탈을 얻으리라 하여, 이렇게 닦는 이는 지혜를 닦는다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하겠는가. 만일 나고 늙고 죽는 고통을 관하되, 모든 중생들은 무명에 덮이어서 위없는 바른 도를 닦을 줄 알지 못하나니, 나의 이 몸으로 중생들을 대신하여 이 큰 고통을 받기 원하며, 중생들의 빈궁함과 미천함과 파계하는 마음과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은 죄업이 모두 나의 한 몸에 모이기를 원하며, 중생들이 탐욕으로 취(取)함을 내지 아니하여, 명과 색의 속박이 되지 아니함을 원하며, 중생들은 하루 빨리 생사를 벗어나고 나의 한 몸이 그 자리에 처하여 싫어하지 아니하기를 원하며, 모든 사람들이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원하며, 이렇게 닦을 때에 지혜를 보지 아니하고 지혜의 모양을 보지 아니하고 닦는 이도 보지 아니하고 과보도 보지 아니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렇게 계와 정과 지혜를 닦으면, 보살이라 이름할 것이요, 이렇게 계와 정과 지혜를 닦지 못하면, 성문이라 이름하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것을 다시 이름하여 계를 닦는다 하겠는가. 모든 중생의 16가지 나쁜 율의[惡律儀]를 깨뜨릴 것이니, 무엇을 16가지라 하는가. 하나는 이익을 위하여 양이나 염소를 길러서 살찌워 파는 것이요, 둘은 이익을 위하여 그런 것들을 사서 잡는 것이요, 셋은 이익을 위하여 돼지 따위를 길러서
살찌워 파는 것이요, 넷은 이익을 위하여 그런 것들을 사서 잡는 것이요, 다섯은 이익을 위하여 소와 송아지를 길러서 살찌워 파는 것이요, 여섯은 이익을 위하여 그런 것들을 사서 잡는 것이요, 일곱은 이익을 위하여 닭이나 오리를 길러서 살찌워 파는 것이요, 여덟은 이익을 위하여 그런 것들을 사서 잡는 것이요, 아홉은 물고기를 낚는 것이요, 열은 사냥함이요, 열하나는 겁탈함이요, 열둘은 푸줏간을 경영함이요, 열셋은 새를 잡는 것이요, 열넷은 이간하는 말을 함이요, 열다섯은 옥사장이요, 열여섯은 용을 주문으로 길들이는 것이니라. 만일 중생을 위하여 이런 16가지 나쁜 직업을 끊게 하면 이것을 계를 닦는다 이름할 것이니라.
무엇을 일컬어 정을 닦는다 하는가. 모든 세간의 삼매를 능히 끊는 것이니, 이른바 무신(無身)삼매는 중생으로 하여금 뒤바뀐 마음을 내어 열반이라 생각하게 함이요, 또 무변심(無邊心)삼매와 정취(淨聚)삼매와 세변(世邊)삼매와 세단(世斷)삼매와 세성(世性)삼매와 세장부(世丈夫)삼매와 비상비비상삼매들도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뒤바뀐 마음을 내어 열반이라 생각하게 하느니라. 만일 이런 삼매들을 영원히 끊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정을 닦는다 할 것이니라.
어떤 것을 다시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하는가. 세간에 있는 나쁜 소견들을 깨뜨림이니라. 모든 중생이 다 나쁜 소견을 가지었으니, 이른바 색(色)이 곧 나이고, 또한 나의 것이며, 색 가운데 내가 있고, 내 가운데 색이 있다 하며, 내지 식(識)도 그러하다 하느니라. 항상함이 곧 나이니, 색은 멸하나 나는 존재한다 하고, 색이 곧 나이니, 색이 멸하면 나도 멸한다 하는데, 어떤 사람은 짓는 이는 나라 하고 받는 이를 색이라 한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짓는 이는 색이라 하고 받는 이는 나라 한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짓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어 스스로 나고 스스로 멸하는 것이므로 모두 인연이 아니라 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은 짓는 것도 없고 받는 것도 없어서 모두 자재천의
조작이라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짓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어서, 모두가 시절(時節)로 되는 것이라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짓는 이나 받는 이가 모두 없고 지대[地] 등의 5대를 중생이라 이름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모든 중생들의 이러한 나쁜 소견을 깨뜨리면, 이런 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계를 닦는 것은 몸이 고요하기 위함이요, 삼매를 닦는 것은 마음이 고요하기 위함이요, 지혜를 닦는 것은 의심을 깨뜨리기 위함이며, 의심을 깨뜨림은 도를 닦아 익히기 위함이요, 도를 닦음은 불성을 보기 위함이요, 불성을 보는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위함이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은 위없는 대열반을 얻기 위함이며, 대열반을 얻음은 중생들의 모든 생사와 온갖 번뇌와 모든 유[一切諸有]와 모든 경계[界]와 모든 진리[諦]를 끊기 위함이며, 생사를 끊고 내지 모든 진리를 끊는 것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법을 얻기 위함이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만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을 대반열반이라 이름한다면, 나는[生] 것도 그러하여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겠거늘, 어찌하여 열반이라 이름하지 못하나이까?”
“선남자여, 그러하고 그러하니라. 그대가 말한 것처럼, 나는 것이 비록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나 처음과 나중은 있느니라.”
“세존이시여, 이 생사하는 법도 처음과 나중이 없나이다. 만일 처음과 나중이 없다면 항상하다 이름할 것이며, 항상하면 곧 열반이온데 어찌하여 생사를 이름하여 열반이라 하지는 않나이까?”
“선남자여, 생사하는 법은 모두 인과 과가 있나니, 인과 과가 있으므로 열반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열반의 자체에는 인도 과도 없는 연고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열반에도 인과 과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인을 따라서 천상에 나고
인을 따라서 나쁜 갈래에 나고
인을 따라서 열반하나니
그러므로 모두 인이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예전에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사문의 도과(道果)를 말하리라. 사문이라 함은 계와 정과 지혜를 갖추고 닦는 것이요, 도라 함은 8성도요, 사문의 과는 열반이니라’ 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열반이 이러하옵거늘, 어찌 과가 아니오니까? 어찌하여 말씀하시기를, 열반의 자체에는 인도 과도 없다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내가 말한 열반의 인이라 함은 불성을 말한 것인데, 불성의 자성은 열반을 내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열반은 인이 없다는 것이며, 능히 번뇌를 깨뜨리므로 대과(大果)라 하는데, 도(道)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므로 과가 없다 하나니, 그러므로 열반은 인도 없고 과도 없다 하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불성은 모두 함께 가졌나이까, 각각 가졌나이까? 함께 가졌다면 한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 모든 중생들도 함께 얻어야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20명이 함께 원수진 사람이 있는데 만일 한 사람이 원수를 없앴다면, 다른 19명도 함께 원수가 없어진 것이니, 불성도 그와 같아서, 한 사람이 얻을 적에 다른 사람들도 얻을 것입니다. 만일 각각 가졌다면 곧 무상한 것입니다. 왜냐 하면 셀 수가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중생의 불성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닙니다. 만일 각각 가졌다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평등하다고 말할 수 없고, 불성이 허공과 같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남자여, 중생의 불성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모든 부처님께서는 평등하고 허공과 같아서,
모든 중생들이 공동으로 가졌으니, 만일 8성도를 닦는 이가 있으면, 이 사람은 분명히 보게 될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설산에 풀이 있으니 이름이 인욕(忍辱)이라. 소가 먹으면 제호가 되나니, 중생의 불성이 이와 같으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욕초는 하나입니까, 여럿입니까? 만일 하나라면 소가 먹으면 끝날 것이요, 여럿이라면 어떻게 중생의 불성도 이와 같다 하시나이까? 부처님 말씀과 같이 8성도를 닦는 이는 불성을 보리라 하시나,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나이다. 왜냐 하면 도가 만일 하나라면, 인욕초와 같아서 끝남이 있을 것이요, 만일 끝난다면 한 사람이 닦고 나면 다른 이는 닦을 분이 없을 것입니다. 도가 만일 여럿이라면 어찌하여 구족하게 닦는다고 말할 수 있겠으며, 또한 살바야 지혜[薩婆若智]라고는 이름하지 못한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치 평탄한 큰길은, 모든 중생들이 모두 그 위로 다니고 장애할 것이 없으며, 중간에 나무가 있어 그늘이 매우 서늘하여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수레를 멈추고 그 아래서 쉬어가거니와, 그 나무 그늘은 항상 있어서 옮겨가지 아니하며 없어지지도 아니하고 가지고 가는 사람도 없는 것과 같으니라. 길은 성인의 도에 비유하고, 그늘은 불성에 비유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어떤 큰 성에 문이 하나뿐인데 여러 사람이 드나들지만, 아무도 막을 자가 없으며, 파괴하거나 훼손하거나 가지고 가는 자가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마다 다니는 다리가 막을 사람도 없고 파괴하거나 가지고 갈 이도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용한 의원이 여러 사람의 병을 모두 치료하거든, 아무도 의원을 제지하여 이 병을 다스리고 저 병은 버리라고 할 사람이 없는 것과 같나니, 성인의 도와 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끌어대시는 여러 가지 비유가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앞에 가던 사람이 길에 있으면, 뒷사람에게 방해가 되거늘, 어찌하여 장애할 것이 없다 하나이까? 다른 비유도 그러하오니 성인의 도와 불성이 그와 같다면, 한 사람이 닦을 때에 다른 이에게는 방해가 될 것입니다.”
“선남자여, 그대의 말은 이치가 맞지 아니하니라. 내가 비유한 것은 일부분만 비유함이요, 전부를 비유한 것은 아니니라. 선남자여, 세간의 도는 장애가 있으며, 이것과 저것이 달라서 평등하지 않거니와, 무루의 도는 그렇지 아니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장애가 없게 하고 평등하여 둘이 없으며, 이것과 저것이 다른 곳이 없느니라. 이렇게 바른 도는 모든 중생의 불성을 위하여 아는 인[了因]이 되는 것이요, 내는 인[生因]을 짓지 아니하니, 마치 밝은 등불이 물건을 비쳐 알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모두 무명의 인으로 행(行)을 반연하여 주나니, 한 사람의 무명이 행을 반연하여 주면, 다른 이는 그러한 몫이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라. 모든 중생이 다 무명의 인이 있어서 행을 반연하여 주므로, 12인연이 모든 것에 평등하다고 말하느니라. 중생들이 닦을 무루의 바른 도(道)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번뇌와 네 가지로 태어나는[四生] 모든 경계의 유(有)의 길을 평등하게 끊느니라. 이런 뜻으로 평등하다고 이름하며, 그를 증득하는 이는 피차의 지견(知見)이 장애됨이 없으므로 살바야 지혜라 이름하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모든 중생들의 몸은 한 가지가 아니어서, 혹은 하늘의 몸이요 혹은 사람의 몸이요 혹은 축생ㆍ아귀ㆍ지옥의 몸이라, 이렇게 여러 가지 몸으로 차별하여 한결같지 아니한데, 어떻게 불성이 하나라 말씀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젖에 독약을 넣으면, 내지 제호까지도 모두 독이 있게 된다. 그러나 젖은 타락이라 이름하지 않고, 타락은 젖이라 이름하지 아니하며,
내지 제호도 그와 같으니라. 이름은 비록 변하였으나, 독약의 성질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섯 가지 맛 속에 두루 있으며, 모두 그와 같아서 설사 제호를 먹더라도 사람을 죽게 하거니와, 제호에 독약을 넣은 것은 아니니라.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다섯 갈래로 다니면서 다른 몸을 받더라도, 불성은 항상 동일하여 변함이 없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16대국에 여섯 성이 있사오니, 사위(舍衛)성, 바기다(婆★多)성, 첨바(瞻婆)성, 비사리성, 바라나성, 왕사성의 여섯 성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성이온데, 어찌하여 여래는 큰 성을 버리고 이렇게 변방의 나쁘고 누추하고 작은 구시나성에서 열반에 드시려 하나이까?”
“선남자여, 그대는 구시나 성이 변방이고 나쁘고 누추하고 작다고 말하지 말고, 이 성이 미묘한 공덕으로 장엄한 것임을 말하라. 왜냐 하면 부처님들과 보살들이 수행하시던 곳이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미천한 사람의 집이라도, 임금이 한번 다녀가면 반드시 찬탄하기를, 이 집이 화려하고 웅장하여 복덕으로 이룩되었으므로 임금까지 거둥하였다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중병에 걸렸을 적에 보잘것없는 약을 먹고라도 병이 나으면, 반드시 기뻐서 찬탄하기를 이 약이 가장 훌륭하여서 내 병이 낳았다 하리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배가 별안간에 파괴되어 의지할 데 없더니, 마침 송장을 의지하여 저 언덕에 이르면, 크게 기뻐서 찬탄하기를 이 송장을 뜻밖에 만나서 내가 살아났노라 하리라. 구시나성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과 보살들이 수행하시던 곳이거늘, 어찌하여 변방이요 나쁘고 누추하고 좁다고 하겠느냐.
선남자여,
내가 기억하기로 지나간 옛적 항하의 모래 수겁 전에 선각(善覺)이란 겁이 있고, 그때에 전륜성왕이 있으니 이름이 교시가(憍尸迦)였다. 7보를 성취되고 1천 아들을 구족하였는데, 그 임금이 이 성을 설치하였으니 사방이 12유순씩이요 7보로 장엄하고, 흐르는 강이 많은데 밝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맛나는 물이 가득하였느니라. 이른바 니련선하ㆍ이라발제하(伊羅跋提河)ㆍ히련선하(凞連禪河)ㆍ이수말퇴하(伊搜末★河)ㆍ비파사나하(毗婆舍那河) 등의 강이 5백이며, 강의 언덕에는 수목이 무성하고 꽃과 열매가 아름다웠으며, 그때에 백성들의 수명이 한량없었느니라. 그 전륜왕이 백 년을 지난 뒤에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온갖 법이 모두 무상하거니와, 열 가지 선한 법을 닦는 이는 이렇게 무상한 고통을 끊을 수 있으리라’ 하니, 백성들이 이 말을 듣고는 모두 열 가지 선한 법을 닦았느니라.
나는 그때에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열 가지 선한 법을 받아 지니고 생각하고 닦아 행하면서,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고, 이 마음을 내고는 또 이 법으로 한량없는 중생들을 교화하여 온갖 법이 무상하고 변천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느니라.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서 모든 법이 무상하여 변천하는 것이며, 오직 부처님 몸만이 항상 있는 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나는 지난 옛적에 행하던 인연을 생각하므로, 지금 여기 와서 열반에 들려는 것이며, 또 이 땅의 지나간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니, 이런 뜻으로 나의 경에서 말하기를 나의 권속들은 받은 은혜를 갚으라고 하였느니라.
또 선남자여, 지나간 옛적 중생들의 나이가 한량없을 적에, 그때에 이 땅의 이름이 구사발제(拘舍跋提)요, 가로와 세로가 50유순이었으며,
염부제에 사는 사람들은 닭이 날아서 서로 미칠 만큼 인접하여 살았다. 전륜왕의 이름은 선견(善見)이라, 7보가 성취되었고, 1천 아들이 구족하여 사천하에서 임금이 되었는데, 제1 태자가 바른 법을 생각하여 벽지불과를 얻었느니라. 전륜왕이 태자가 벽지불 된 것을 보니 위의가 단아하고 신통이 희유하였다. 그런 것을 보고는 즉시 임금의 지위를 침뱉듯이 버리고, 출가하여 이 사라나무 사이에서 8만 년 동안 인자한 마음[慈心]을 닦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悲非], 기뻐하는 마음[喜心], 버리는 마음[捨心]도 각각 8만 년씩 닦았느니라.
선남자여, 그때의 선견왕은 곧 나의 몸이었으니, 그러므로 내가 지금 이러한 네 가지 법에 노닐기를 항상 좋아하는 것이며, 이 네 가지 법은 삼매라 이름하나니, 이런 뜻으로 여래의 몸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니라. 선남자여, 이런 인연으로 지금 이 구시나성의 사라나무 사이에 와서 삼매에 드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내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적 한량없는 겁 전에는 이 성의 이름이 가비라(迦毗羅)였고, 그 성에 있는 임금의 이름은 백정(白淨)이요, 그 부인의 이름은 마야(摩耶)였고, 왕의 외아들은 실달다(悉達多)라 하였다. 그 왕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도 아니하고 저절로 생각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며, 두 제자가 있으니 하나는 사리불이요, 다른 하나는 목건련이요, 시봉하는 제자는 아난이었다. 그때에 세존께서 쌍으로 선 나무 사이에서 이와 같은 대반열반경을 연설하였는데, 나도 그때에 그 회중에 참석하여서,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며, 그 말을 듣고는 보리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스스로 원을 세워서 내가 이 다음에
부처를 이룰 적에 부모와 나라 이름과 제자와 시봉하는 사람과 법문을 말하여 교화하는 일이 지금 부처님과 같게 하여지이다 하였으며, 이 인연으로 지금 여기 와서 대반열반경을 연설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내가 처음 출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을 적에, 빈바사라왕이 사신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실달 태자여, 그대가 만일 전륜성왕이 되면 나는 신하가 될 것이요, 집에 있기를 좋아하지 아니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거든, 바라건대 먼저 왕사성에 와서 법을 말하여 사람을 제도하면서 나의 공양을 받으라’ 하기에,
그때에 나는 말 없이 그의 청을 받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교살라국으로 향하였느니라. 그때에 니련선하에 바라문이 있었으니, 성은 가섭(迦葉)이었다. 5백 제자들과 함께 그 강가에서 위없는 도를 구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사람을 위하여 일부러 가서 법을 말하였더니, 가섭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나는 지금 나이 늙어서 백스무 살이 되었고, 마가다국 사람들과 그 임금 빈바사라왕은 모두 내가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이제 당신의 앞에서 법을 듣는다면, 모든 사람들이 뒤바뀐 마음을 내어서 대덕 가섭이 아라한이 아니었던가 하리니, 바라건대 구담이여, 빨리 다른 데로 가시오. 만일 이 사람들이 구담의 공덕이 나보다 나은 줄을 알게 되면, 우리들은 다시 공양을 받을 길이 없소.’
나는 그때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가섭이여, 당신이 나를 대단히 미워하지 않을진댄 하룻밤만 쉬고 내일 아침에 가게 하시오.’
가섭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나의 마음에는 다른 생각이 없고, 당신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독한 용이 있는데 성질이 매우 포악하여서
당신을 해칠까 염려되오.’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가섭이여, 독한 것 가운데는 3독보다 더 독한 것이 없는데, 나는 그것을 모두 끊었소. 그래서 세간에 독한 것은 두려울 것이 없소.’
가섭은 또 말하였다.
‘만일 두렵지 않다면 자고 가도 좋소.’
선남자여, 나는 그때에 가섭을 위하여서 경에서 말한 것처럼 18 변화를 나타내었다. 가섭과 5백 권속들이 이것을 보고 듣고는 모두 아라한과를 증득하였고, 이때에 가섭은 두 동생이 있었으니 하나는 가야가섭이고, 하나는 나제가섭이며, 그들의 권속까지 모두 5백 사람인데, 역시 아라한과를 얻었느니라. 이때에 왕사성에 있던 외도 6사(師)들이 이 소문을 듣고는, 나에게 대하여 악한 마음을 가지었다. 나는 그때에 신의를 지키고 왕의 청을 받아서 왕사성으로 가는데, 반쯤 갔을 적에 왕이 한량없는 백천 사람으로 더불어 와서 나를 영접하였고, 나는 그들에게 법을 말하였다. 이 법문을 듣고 욕계천의 8만 6천 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고, 빈바사라왕이 거느리고 왔던 12만 사람은 수다원과를 얻고, 한량없는 중생들이 인위의 마음[忍心]을 성취하였다.
성에 들어가서는 사리불과 대목건련과 그의 권속 2백50 사람을 제도하여, 본래의 마음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게 하고, 나는 그 성중에 있으면서 왕의 공양을 받았는데, 외도 6사들은 서로 모이어 사위성으로 나아갔느니라.
그때에 그 사위성에 사는 수달다(須達多)라 하는 한 장자가 며느리를 맞으려고 왕사성에 왔다가 산단나사(珊檀那舍) 장자의 집에서 묵었다.
그런데 주인 장자가 밤중에 일어나서 권속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은 일어나서 옷을 정돈하고 방과 뜰을 깨끗하게 쓸고
음식을 장만하라’라고 했다. 수달다가 이 말을 듣고 생각하기를, ‘아마 마가다국 왕을 청하려는 것인가, 경사스러운 혼인 잔치를 하려는 것인가’ 하였다. 그리고는 장자에게 가서 물었다.
‘대사(大士)여, 마가다국의 빈바사라왕을 초청하렵니까, 즐거운 혼인 잔치가 있습니까, 무슨 일로 바쁘게 서두르십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거사여, 나는 아침에 위없는 법왕(法王)이신 부처님을 청하려는 것입니다.’
수달다 장자는 처음으로 부처님이란 말을 듣고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래서 ‘어떤 이를 부처님이라 합니까’ 라고 물었다. 장자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당신은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까? 가비라성의 석가씨 문중에 한 아들이 있으니, 이름이 실달다요 성은 구담이요, 부왕의 이름은 백정(白淨)인데, 처음 났을 적에 관상보는 이가 말하기를, 결정코 전륜성왕이 될 것이니, 마치 암라 열매를 손바닥에 놓은 듯하다고 하였더라오. 그런 것도 좋아하지 않아서, 버리고 출가하여서 스승도 없이 혼자 깨달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소. 탐욕ㆍ성내는 일ㆍ어리석음이 아주 없어지고, 항상 있어서 변하지 아니하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근심과 두려운 일이 없으며, 모든 중생에게 마음이 평등하기가 마치 부모가 외아들 보듯 하며, 몸과 마음이 여러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하지만 교만한 생각이 없고, 살을 베거나 약을 발라 주거나 두 가지 일에서 마음이 한결같으며, 지혜가 통달하여 무슨 법에나 걸림이 없으며, 10력ㆍ4무소외ㆍ다섯 가지 지혜삼매와 대자대비와 3념처에 머무는 일을 구족하였으므로 부처님이라 합니다. 아침에 우리집에 오시게 되었으므로 바쁘게 서두르느라 서로 쳐다볼 겨를도 없습니다.’
수달다는 이렇게 물었다.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보살[大士]의 말과 같이 부처님의 공덕이 그지없사온데, 지금 어디 계십니까?’
장자가 대답했다.
‘이 왕사성의 가란타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십니다.’
수달다는 일심으로
부처님의 공덕이신 10력, 4무소외, 5지혜삼매, 대자대비 및 3념처를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니, 그 밝기가 대낮과 같았다. 밝은 빛을 따라서 성문까지 이르니 부처님의 신력으로 성문이 저절로 열리고, 문 밖으로 나가니 천인을 위하는 사당이 길 곁에 있었다. 수달다가 지나다가 공경하여 예배하였더니 밤은 다시 캄캄하여졌다. 무서운 생각이 나서 있던 데로 다시 돌아오려 하였더니,
그 성문에 어떤 천신이 있다가 수달다에게 말했다.
‘당신이 만일 부처님 계신 데 가면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이오.’
수달다가 ‘어떤 것이 좋은 이익이냐’ 하고 묻자 천신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장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좋은 보배로 장식한 준마(駿馬)가 백 필, 향상(香象)이 백 마리, 보배 수레가 백 대, 금으로 만든 사람 백 명과 몸에 영락을 차고 있는 단정한 여인과, 여러 가지 보배로 잘 꾸민 훌륭한 궁전과 여러 가지 무늬를 아로새긴 전당과 금쟁반에는 은쌀을 담고 은쟁반에는 금쌀을 담은 것들을 각각 일백으로써 한 사람에게 보시하며, 이렇게 염부제에 있는 사람에게 모두 보시하여 얻는 공덕도 어떤 사람이 부처님 계신 데 한 걸음만 나아가려는 마음을 낸 공덕에 미치지 못합니다.’
수달다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냐?’
천신이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나는 승상(勝相) 바라문의 아들로서 당신의 옛날 선지식이오. 나는 예전에 사리불과 대목건련을 보고 환희한 마음을 낸 인연으로 몸을 버리고 북방천왕 비사문의 아들이 되어 이 왕사성을 수호하고 있는 것이오. 나는 사리불과 목건련에게 예배하고 환희심을 낸 인연으로도 이렇게 훌륭한 몸을 얻었거늘, 하물며 부처님을 뵈옵고 예배하고 공양한 과보겠습니까?’
수달다 장자는 이 말을 듣고는 곧 걸음을 돌려서
나에게 왔느니라. 와서는 머리를 조아려 나의 발에 예배하기에 나는 그에게 알맞게 법을 말하였더니, 장자는 법을 듣고 수다원과를 얻었으며, 그리고는 다시 나에게 청하였다.
‘대자대비하신 여래시여, 바라옵건대 저를 굽어살피사 사위성에 왕림하시어 저의 변변치 못한 공양이나마 받으시옵소서.’
나는 이렇게 물었다.
‘그대의 사위성에는 우리가 묵을 만한 절이 있느냐?’
수달다가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저를 가엾히 여겨 왕림하신다면, 힘을 다하여 절을 새로 짓겠나이다.’
선남자여, 나는 그때에 잠자코 청함을 받았다. 수달다 장자는 허락을 받고 나에게 말하기를 ‘저는 한 번도 이런 일을 경험하지 못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 사리불을 보내시어 규모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하였다. 나는 곧 사리불에게 가서 감독하라 하였더니, 사리불은 수달다와 함께 수레를 타고 사위성으로 떠나서, 나의 신력으로 밤낮 하루 동안에 그곳에 도착하였다.
그때에 수달다는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이 성밖에 어느 곳에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으면서 샘과 못이 많고, 훌륭한 숲과 꽃과 과일이 무성하고 한적하고 깨끗한 데가 있습니까? 나는 거기에 부처님 세존과 비구스님들을 위하여 절을 짓겠나이다.’
사리불은 이렇게 말하였다.
‘기타숲 동산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고 깨끗하고 고요하며, 샘도 시내도 많고 수목이 우거지며 꽃과 과일이때를 따라 열리니, 거기가 절을 짓기에 가장 적당합니다.’
수달다는 그 말을 듣고는 그길로 기타 장자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내가 지금 위없는 법왕을 위하여 절을 지으려 하는데, 그대의 동산이 절터로 적당하기에 사려 하니, 허락하실 수 있겠소?’
기타가 대답하였다.
‘설사 진금을 그 땅에 가득히 깔아 놓는대도 팔 수 없습니다.’

수달다가 말하였다.
‘좋은 말씀입니다. 기타여, 숲 동산은 내것이 되었으니 그대는 금이나 받으시오.’
기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동산을 팔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금을 받겠는가?’
수달다가 말했다.
‘뜻에 맞지 않거든 나와 함께 재판관에게 가서 말합시다.’
두 장자는 함께 재판관에게 갔더니, 재판관은 이렇게 말했다.
‘숲 동산은 수달다가 차지하고 기타는 금을 받으라.’
수달다는 사람을 시켜 말과 차에 금을 실어오게 하여, 오는 대로 땅에 깔았는데 하루 동안에 5백 보밖에 금이 채 깔리지 못하였다. 기타는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만일 후회하거든 그만두어도 좋소.’
수달다가 대답하였다.
‘나는 조금도 후회하지 아니하오. 생각건대 몇 광의 금만 더 가져오면 넉넉할 것이오.’
기타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래이신 법왕은 진실로 위가 없으시고, 말씀하는 법문은 청정하여 티가 없는가 보다. 이 사람이 그렇기에 보배를 아끼지 않는구나.’
그리고 즉시 수달다에게 말하였다.
‘아직 깔지 못한 것은 그만두시오. 그대로 당신에게 주겠소. 그리고 나는 문루를 지어서 여래께서 출입하시도록 하겠소.’
그래서 기타 장자는 문을 짓고, 수달다 장자는 이레 동안에 3백 간의 큰 집을 지었는데, 조용한 선방이 63개요, 겨울에 머무는 방과 여름에 쓰는 방이 각각 다르고, 부엌과 욕실과 발씻는 데와 대ㆍ소변 보는 곳을 모두 구비하였다. 절 짓는 역사를 마치고는 곧 향로를 받들고 멀리 왕사성을 향하여 말하였다.
‘지을 것을 모두 마치었사오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사 이 절을 받으시옵소서.’
나는 그때에 장자의 마음을 알고, 대중을 데리고 왕사성을 떠나서 장사가 팔 한 번 굽힐 동안에 사위성의 기타숲 동산 수달다의 절에 이르렀더니, 수달다 장자는
그 절을 나에게 보시하고, 나는 그것을 받아 그 가운데 머물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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